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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    2004년 한국 현대시의 동향과 새로움의 모색/심상운 댓글:  조회:748  추천:0  2019-03-01
        2004년 한국 현대시의 동향과 새로움의 모색                     -------문제 시집과 시와 시론을 중심으로                                                                          심  상  운      1. 들어가는 글     현대시의 도전 양상은 무엇보다도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시인들의 자세와 젊은 의식에서 발견된다. 시의 숙명은 언어의 한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갖기 때문에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하고 도전하고 변화를 꿈꾸는 시인들의 의식은 그 자체가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면서 새로운 현대시를 낳는 모태가 되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1930년대의 박용철・ 김영랑 등의 순수시 운동이나, 이상李箱의 심층심리와 초현실주의, 김기림 ・정지용의 모더니즘 시운동 등은 외국의 문예사조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과 당대의 현실을 외면한 것을 지적하여 비판할 수 있지만, 한국 현대시의 준거를 마련하고 시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공적을 남긴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시에 대한 개념을 확대시켜 현재까지 한국 현대시의 다양한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때부터 시작된 한국 현대시의 회화성과 내면의식의 표현, 사상의 감각화 등은 전통적인 서정시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서 서정시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IT, DIGTAL, DNA 등이 주도하는 빠른 변화의 21세기에도 20세기의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의 방법으로 인간과 자연과 생명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지각知覺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사물인식事物認識과 표현기법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될 수 있는 시론과 시집과 시편들을 중심으로 2004년 한국 현대시의 동향을 예시하고 새로운 시의 모습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밖에도 한국 전통적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샤머니즘 계열의 시인들과 시는 자신의 영혼을 찾아가서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서정시인들의 시편들. 언어의 감각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 풍자나 역설, 사상의 감각화를 중시한 주지시. 사상이나 메시지 전달을 강조하는 관념시. 언어의 유희적 기능을 내세우는 초현실적인 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국 현대시의 시편들의 모습을 나름대로 살피면서 변화의 징후를 발견해보려고 한다.   먼저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21세기 시에 대한 대안으로 문덕수가 제시하는 사물시事物詩에 관한 시론이다. 문덕수는 「오늘의 시인 총서- 문덕수시 99선」의 후기 시론에서 “21세기에는 언어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한다”고 전제하면서, 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국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원로시인이 젊은 시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끊임없는 탐색의 정신에서 솟아나는 사고思考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현대의 언어는 인간의 존재 상황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인간의 사유思惟를 담고 있는 언어는 지식知識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그것은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것을 얼마나 잘 담고 있는가, 하는 언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바탕으로 하면서, 오진현(필명 오남구) 시인을 중심으로 IT 시대에 고뇌하고 도전하는 일군一群의 젊은 시인들이 벌이고 있는 탈관념과 디지털리즘의 시운동이다. 오진현은 90년대 중반에 탈관념의 시적 방법론을 제시한 이후 2002년에 과감하게 디지털리즘을 선언하고, 2년 만에 1930년대의 이상李箱의 시를 시발점으로 하는 「디지털리즘 선언」 3집(2004, 9, 11)을 내놓고 있어서 그 열정과 힘이 더욱 강하게 감지된다.    세 번째는 산업사회의 한계를 드러내며 인간의 존재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는 환경문제에 대응하여 생태시(녹색시, 환경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군一群의 시인들도 한국 현대시의 출구를 보여주고 있는 건강한 시인들로 분류된다. 신진, 송용구 등 이 분야의 시인들은 시작詩作에서 방법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있어서 현실 참여시의 폭을 넓히고 그 분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운동은 모두 2004년 한국 현대시에 젊고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변화의 시대에 과거의 틀에 안주하는 시인과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며 새로운 시를 꿈꾸는 시인들을 구분하고 그들의 시사적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2. 21세기 새로운 시의 모색       가. 사실과 생명과 현장 체험을 중시하는 사물시事物詩      문덕수는 「오늘의 시인 총서- 문덕수시 99선」( 2004,7,5)의 후기 시론 에서 21세기 시의 키워드로 “사실, 생명, 현장”이라는 세 가지 전제를 제시하면서 이것을 “DIGITAL, DNA, DMZ”의 공통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언어가 아닌 사물事物이야 말로 21세기 시의 모든 문제를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중적 리얼리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시학'으로 심화된 김지하의 시론, 이상李箱의 심층심리를 기점으로 출발한 탈관념의 실험, 에콜로지즘에 의한 녹색시학의 시도, 그리고 분단현장의 새로운 관찰과 전망 등은 모두 적나라한 사물의 실제에 대한 직접적 체험에서의 출발로 볼 수 있다.'사실''생명''현장'이라는 전제를 일관하는 밑바닥에는 '사물事物'이 공통분모로 자리 잡는다. 그것은 리얼리티를 찾고자 하는 시인들의 오랜 방황의 길목에서의 불가피한 만남이다. 21세기 시는 언어 이전 또는 모든 사유를 벗어난 사물 그 자체의 날것에서 출발한다. 21세기의 시는 모더니즘의 모든 언어주의(특히 언어유희)를 초극하고 내면세계와 외면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한 '사물'에서 새로운 시의 원점(제로지점)을 찾으며, 시의 내재적 특징과 지향적 특징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말 속에는 모더니즘의 언어주의(언어유희, 언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허구성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와 사물의 불일치라는 언어의 숙명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해보고자 하는 시인의 치열한 도전의식이 들어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시인의 주관적인 감성이나 사상,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의 본질과 만나는 방법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또 시속에서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인내심과 내공內空의 힘을 드러내게 하여 시를 도道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려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는 사물시의 특성을 안고 있는 시다. 두 편의 시를 살펴보자. 이솔의 시집 「수자직繻子織으로 짜기」(2003, 10, 30)에서 사물시의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큰집 마루에 앉아서 꽈리를 분다/아랫입술에 구멍을 대고 부풀린 다음 윗니로 살짝 누른다/뽀르륵 꽈리소리에 빠져서 자꾸 불어댄다//햇빛이 가득한 큰집 마루에 혼자 앉아 꽈리를 분다/원추형의 치마를 들치면 동그란 꽈리가 매달려 있다/아주 조심스럽게 만져가며 말랑말랑하게 만든다/심지가 만져지고 씨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꼭지를 살살돌리면서 천천히 심지를 뺀다/바람을 불어 넣고 햇빛을 담으니 동동 뜰 것 같다//꽈리 속에는 소리가 많다/입을 오므리고 불면 개울물이 굴러 흐른다/돌틈으로 비비대며 흐르는 개울물소리/바람을 잔뜩 부풀리고 서서히 불면 굴렁쇠소리가 난다/맨발로 마당을 빙빙 돌며 굴리던 둥근소리/입을 옆으로 하고 누르듯이 불면/칭얼대는 아기소리가 난다/돌사진 한번 찍어보지 못한 아기/입안 가득히 흐르고 구르는 소리//큰집 마루기둥에 기대앉아/꽈리를 부는 일은 지치지도 않는다//  -----------이솔 전문    이솔의 시에는 사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시인의 독특한 사물인식의 양식이 보인다. 이러한 사물인식의 방법은 사실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하여 시를 언어 이전의 사물세계에 접근시키고 있다. 그래서 시를 모더니즘의 언어주의(특히 언어유희)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시는 또 사물시에서 지향하는 순수직관의 방법도 보여주고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언어감각을 감지하게 한다. 최진연의 「여름시편․4-소나기」에서도 사물시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해열제를 먹고 누워서 듣는 이웃집의 피아노소리/갈매기한두 마리 끼룩거리며 날고 있을뿐/아직도 비어 있는 바다가 보임./시골에도 비가 온다는 조카의 고추밭 고추들처럼/얼굴이 환해지는 아내/방안에서도 비를 맞는 행운 목 잎들이 길게 늘어져 있음./비를 받아 먹느라 쳐들었던 그간에 마른 얼굴의 꽃들/보나마나 이젠 고개 숙이고 있을 것임./해열제를 먹은 내 몸에서도 소낙비는 쏟아지고/자면서도 나무들 지절거리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음.//  ---최진연 「여름시편․4-소나기」 전문    이 시에서는 시인과 사물과의 관계가 '사물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솔 시인의 시편들은 시인의 위치가 중립적인데 비해 이 시는 시인이 사물 쪽으로 들어가서 사물의 내면(혼)까지 드러내려고 한다. 사물이 시의 원점(제로지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시인이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사물과 만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솔, 최진연의 시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시의 모습은 문덕수가 제시하고 추구하는 사물시의 한 부분이다. 언어 이전의 사물인식은 “DIGITAL, DNA, DMZ”의 시편에 내재된 공통개념이다. 모더니즘의 언어주의(언어유희, 언어 이미지)와 관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사실과 생명과 현장 체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운동으로서의 '사물시'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나, 디지털리즘의 선언과 디지털리즘의 시    오진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디지털리즘 시운동은 사물시의 연장선상에서 더 구체화되고 세밀화 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생명, 현장”이라는 사물시가 지향하는 전제前提를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모더니즘의 언어유희, 언어 이미지를 포함하는 다른 측면을 실험시의 형태로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리즘」 1집(2003,3, 15)에서 선언한 디지털리즘의 핵심 내용을 인용해보면, “지금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시가 '기술記述' 또는 '자동기술自動記述 '하는 것이라면, 미래의 디지털 시대의 시는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염사 念寫'또는 '찍는다'는 행위로 구분 짓기도 한다. 그래서 ”인체人體의 신비전神秘展“에서 보듯 '진열된 세계'의 시신屍身을 종으로 갈라놓거나 횡으로 갈라놓아 진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그런 현란한 색깔의 무늬를 보고 황홀해 하는 '디지털리즘'을 실험하였다. 마치 이것은 현미경으로 보는 '생명의 절편切片'으로서 일찍이 초현실주의 작가 부르통이 몸에 유리관을 끼워서 내장을 들여다보았던 '상상의 세계'가 실제 시신의 절편을 통해서 충격적으로 직접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선언문의 내용을 찬찬히 짚어보면 디지털리즘의 표현방식은 염사念寫'또는 '찍는다'는 행위이고, 충격적인 사실을 직접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은'생명의 절편切片'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물시의 전제 조건 “사실, 생명, 현장”을 구체화한 것으로 사물시의 공통 개념에 부합된다. 그런데 “현란한 색깔의 무늬를 보고 황홀해 하는'디지털리즘'”이라는 말에서는 언어 이미지나 언어유희의의 세계가 발견된다. 이것은 사물시가 벗어나고자 하는 모더니즘의 언어주의 세계와는 다르지만 디지털리즘의 언어유희와 언어감각의 모양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언어 이미지, 언어유희, 찍어서 보여주기의 방법에서 디지털리즘은 사물시와 별개의 시로 나누어 진다. 디지털리즘의 시는 단순히 읽히는 시가 아닌 사실 또는 현상을 보여주는 시, 언어 그림의 시이면서 시인의 내면적 의식을 떠올리는 시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아침바다, 나의 첫 말言들이 꽃과 섹스를 시작한다./ 오늘/ 「미역국」 「미끄러졌다」는 탈脫의 이미지 미끄러지기/ 탈관념脫觀念이, 해日에서 「꽃」 꽃에서 「춤」으로 미끄러지기, 유쾌히 말이 미끄러진다./--수평선에 이쁜 눈썹 같은 민족이란 언어가 기우뚱하다. (단, 민모 또는 민족시인*이 내말을 못 알아/ 들어도 어쩔 수 없다.)/창가에서 언어와 꽃의 고독한 섹스,이미지 미끄러지기. 힘차게 꽃대 뽑아올리고 있는 제주 한란寒蘭, 뚝 뚝 피멍울이 져버리는 한란寒蘭, 순백이 일순간 흔들리면서, 오르르르...... . 전 신경이 떤다./ 꽃아,/ 달 하나 반짝이며 떨어진다/천 개 만 개 별들이 쏟아진다/간밤에 맺힌/ 이슬 한 방울 선한 자식듣,/모어母語의 첫 언어 아-.아-.                              ---오남구 < 해맞이 첫 언어- 디지털리즘 ①> 전문   * 민족시인:큰 고정관념을 상징. 참고로 나는 신(神)을 고정관념의 대표선수로 노래한 적이 있음      이 시는 「디지털리즘」 1집에 수록된 첫 실험시다. 이 시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시작한다, -미끄러지기, -미끄러진다 , -신경이 떤다, -쏟아진다” 등의 현재형 종결어미가 보여주고 있는 어떤 사실(현상)의 순간적 변화다. 의식의 흐름이 아닌 의식의 깜박임(단절과 이어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시계의 깜박이는 영상과 흡사하다. 여기엔 지나간 사실은 순간순간 지워지고 현재의 사실만 보인다. 모더니즘의 언어유희, 언어 이미지와는 다른 디지털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언어유희, 언어감각이다. “연속적 흐름”이라는 아날로그 세계의 개념을 넘어서 시간時間이 아닌 시각時刻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계의 현상이 담겨있다. 첫 행, 에서는 “해맞이 첫 언어”의 신선한 감각적 이미지가, < 「미역국」 「미끄러졌다」는 탈脫의 이미지>에서는 탈관념 언어유희의 한 부분이 보인다. 한 언어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가 해→꽃→춤으로 이어지고, 이'이미지 미끄러지기'는 제주 한란寒蘭→꽃→달→별→이슬방울→모어母語의 첫 언어 아- 아-로 맺어지는데, 어떤 의미나 관념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독자는 관념에서 해방되어 시의 언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의 전개는 순수하게 시인의 내면적인 염사念寫의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디지털리즘 선언」 2집(2003,12,15)에서 시 한 편을 또 읽어보자.    비,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닥팔닥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 수편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버린 빗길. 팔닥팔닥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오남구 「부드러움의 단상」 전문     이 시는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 거리에서 비를 맞고 섰다가 비가 그치자 빌딩 사이 조각난 허공을 한 번 흘깃 쳐다본 순간의 장면을 사진 찍듯 찍어 놓은 것이다. 비를 맞는 감각이 차다→단단하다→날카롭다로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비는 팔닥팔닥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지고, “부드러운 선들이 팔닥팔닥 숨을 쉰다”. 방금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動映像의 한 장면을 보는 거 같다. 사실과 현장 체험의 생생한 감각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생각의 속도가 들어 있다.   디지털리즘의 핵심은 대상(사물)을 접촉할 때 관념을 배제하고 대상(사물) 그 자체에 의식의 촉수를 넣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은 의식의 집중에 전념해야하고 의식의 힘으로 건저올린 사물(대상)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순수 언어로 드러내야 한다. 이 때 대상에 대한 표현 방법을 염사念寫와 접사接寫로 나누고 있는데, 염사는 내적인 의식의 흐름을 포착하여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듯이 표현하는 방법이고, 접사는 외적인 대상을 순간적 감각으로 포착하여 찍어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대상의 순간적인 포착과 사진을 찍는 듯한 언어표현의 방법을 현대과학의 용어인 디지털의 개념에 융합시켜 만들어 낸 “디지털리즘 시”라는 용어가 새로운 문학 언어로 성립된 것이다.  이 디지털리즘의 시론은 탈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 시론과는 다르다. 무의미시는 대상이 없이 언어를 유희적으로 사용하여 만들어낸 단순한 언어 이미지인데 반해 디지털리즘 시는 눈에 보이는 대상(또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상)을 어떻게 포착하여 표현하느냐 하는, 대상의 표현 방법에 관한 시론이다. 따라서 이 시론은 어떤 관념의 표현을 위해 사용되는 비유적인 이미지의 기법과도 다르다. 보통의 시들이 의식→대상→관념→ 비유적인 언어(이미지)→의미의 표현이라는 방식인데 반해 디지털리즘의 방법론은 의식→대상→이미지다. 이것을 순수 직관적 표현이라고 한다. 이 직관적 표현은 불교의 선시禪詩와도 차이가 있다. 선시는 하나의 분명한 관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리즘의 시에는 어떤 뚜렷한 의미(관념, 주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의식→대상→이미지로서 최종적인 것은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독자의 판단과 해석에 의해 재창조되는 소재로 탄생한다. 그래서 디지털리즘 시는 독자에게 일정한 역할을 맡기는 시, 즉 독자참여의 시로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리즘의 시는 독자들에게 기존의 시와는 전혀 다른 경험과 맛을 느끼게 해준다. 디지털리즘의 시는 또 '사진 찍기의 기법'이라는 측면에서 시인에게 종합적인 사고와 예술적인 다양한 기법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디지털리즘의 시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TV화면에 영상화 될 수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디지털리즘은 현대적인 감각과 시대의 조류에 잘 어울리는 시론이다. 그러나 단순한 ‘사진 찍기’의 기법이 안고 있는 가벼움과 차가움(비인간적인 면)은 문제로 남는다. 디지털리즘 시의 종결어미가 대부분 현재형 이라는 점이 그런 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현대의 복잡다기한 의식과 관념, 인간정서의 은은한 맛, 강렬한 감정 등을 표현하는 데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이 오히려 특징으로 남는다. 남과 다른 면이 있을 때 이것이 장점이 된다. 디지털리즘의 시운동은 현대와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선명한 이미지, 순간포착 등)을 내포하고 있어서 한국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리즘선언」3집(2004,9,11)에 실려 있는 박유라, 송시월, 이낙봉, 심언주, 김서은, 이인선, 류기봉, 김병휘, 박햇살, 고종목 등 동인들의 시편들이 풍기는 디지털리즘의 참신한 감각과 독특한 표현양식은 실험시의 범위를 넘어서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한 유파流派를 형성할 수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 한 편의 작품을 읽어보자.    아침, 나무사이/은색 자전거가 싱싱하게 지나간다/파란 산소 초록을 흘리며 간다/바짝, 4차선 쪽으로 촘촘히 걸어나오는 햇빛/물오른 캔버스를 한획 한획 푸르게 덪칠하며 걸어온다/초고층 아파트에서 졸고 있던 낮달이/슬며시 횡단 보도를 건너/하늘 파란 울음 한 조각 옆구리에 끼고서/빠르게 차창 안으로 날아든다./-누군가 내 핸드폰에 보내온/초록 문자 멧세지/전철안이 푸릇푸릇하다./누-구-세-요-?//---김서은 전문     김서은의 은 어느 여름날 전철 안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한 풍경(사물)이다. 이 영상은 한 순간에 마음(염사)과 눈(접사)을 통과하면서 어떤 관념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고 선명한 형태의 감각(디지털 감각)으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그러운 향기까지 풍기면서.    다. 현실 참여와  생명 사랑의 생태시      생태시의 바탕에는 생명의 근본 사상이 깊이 간직되어 있다. 그래서 환경시, 녹색시 등 인간의 환경파괴를 고발하고 무분별한 인공人工과 비자연성非自然性, 공해에 저항하는 사회참여의 시에서 출발한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중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생명의 근본 세계를 포함하는 보다 상승된 세계를 지향한다. 여기에는 인간을 위한 환경보존만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을 보존하기 위한 생태계의 문제가 들어있다. 그래서 생태주의 시는 환경시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명세계를 지향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시로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환경시, 녹색시와 생태시의 차이점이다.   생태시라는 용어는 생태학生態學과 시의 합성어로 환경에 대한 생태학적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송용구는 “자연환경과 생명체의 질적 변화를 생태학적, 사회적, 정치적 인식 및 생명의식에 근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고발하는 현대시의 한 장르”라고 생태시를 정의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송용구 번역)는 파괴된 생태계의 문제를 고발하고 그로 인해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인간의 운명을 저항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사화집에 들어 있는 시편들은 주제, 내용, 관심에서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21세기 한국의 생태시에 많은 영향과 자극을 주고 있다. 신진의 시집 「녹색엽서」(2002)도 산업화이후 파괴되고 훼손된 한국의 환경문제에 정면 대응하는 생태시로 평가 받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한 「시문학」의 생태주의・생명주의 시운동, 「문학사상」,「현대시학」,「녹색평론」 등의 생태시운동은 한국 현대시에서 생태시의 위치를 확고하게 정립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시정신 운동으로 한 단계 높이고 있다. 2000년 10월 호 「시문학」에 발표된 의 「환경선언문」은 인간과 예술과 환경의 인과관계를 지적하면서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고 황폐화 되는 환경과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정신의 황폐화와 정서의 궁핍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 인간과 자연을 똑같이 존중하는 생명사랑의 시정신을 천명闡明하고 있는데, 이 생명사랑의 시정신은 21세기 한국 생태시의 핵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태시의 언어에도 문덕수의 사물시가 전제로 내세운 “사실, 생명, 현장”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초여름 아침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 초록숲을 뒤흔든다// (황금꼬리를 낚아야겠다)//산수유 골진 잎사귀와 산벚꽃나무 팔랑팔랑 까불어대는 숨구멍 사이에다 초록그물을 친다 그물코에, 하루살이 작은 몸뚱이가 걸렸다//_ 작다고 얕보지마!// 이래뵈두 천일동안 물속에 잠겼다가 스물다섯번이나 허물을 벗은 후에 태어난 생이야/ 어디, 하찮고 떫은 생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그 누가/여름날 하루해가 너무 길다고 했던가?           -------- 이춘하 전문 (시문학, 2004, 8)     이춘하 시인의 는 파괴된 생태계의 문제를 고발하고 그로 인해신음하며 죽어가는 인간의 운명을 저항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기존의 환경시, 생태시와는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는 언어 이미지나, 주장, 고발, 당위적인 관념 등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모습을 세밀히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에게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잘 것 없는 미물이지만 천일동안 물속에 잠겼다가 스물다섯번이나 허물을 벗은 후에 태어난 하루살이의 생. 그 하루살이를 포획하는 초록그물. 이런 생태계의 사슬 관계를 시인의 미시적인 눈이 자연스럽게 포착한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생명존중, 생명평등의 열린 마음이 포옹抱擁한 생명세계의 현장이다. 이 말은 하루살이의 항변만이 아닌 시인의 항변이다. 이 세상에는 가치 없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명존중 의식. 여기서 새로운 생태시 모습이 발견된다. 이것이 21세기 한국 생태시의 미래를 예시해 주는 단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예단일지도 모르지만.    라. 변화의 징후徵候를 보여주고 있는 시편들    진헌성의 연작시(시문학, 2004,9)은 물성物性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비의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여 시화詩化하고 있다. 신神보다 앞선 물질계의 본성을 직관적인 감성과 과학적인 추리로 통찰하고 있다. 관념적인 면이 강하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우주적 신비세계를 추적하는 시인의 의지와 상상력이 뜨겁게 감지된다.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물성의 본질을 이만큼 추적하고 드러낸 시는 아직까지 없었다고 생각된다. 문덕수의 '사물시'시론과 원초적인 면에서 조화調和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시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샤머니즘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 박재릉은 시집「삭발하고 분바르고」(2002) 이후에도 신작시 특집 등을 통해 활발하게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 (시문학, 2004,9)에서, 아직도 시속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에너지는 여전하지만, 무속巫俗 세계의 뜨거운 인간적 욕망에서 벗어나는 탈속脫俗과 관조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을 넘어선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바다같이 출렁이는 생명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또 풍자와 역설로 관념의 속살을 드러내며 흥겨운 시의 판을 벌이고 있는 안수환의 시집 「하강시편」(2004,2)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감성과 관념 너머의 세계. 그리고 언어 놀이도 새로운 변화의 징후를 감지하게 한다.   이 밖에도 내적(정신적) 시선의 이동으로 시의 의미(상징)를 확장하고 놀라움을 주는 박찬일의「모자나무」, 독자들을 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의 언어를 즐기게 하는 양준호의 「포크」, 디지털리즘의 언어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내면찍기를 보여주고 있는 박유라의 「겨울 X-Ray」, 봄에 산에서 꽃이 피는 평범한 사실을 감각적이고 우주적인 발상의 이미지로 순간적인 언어자극을 통해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종현의 「우주가 하혈하는 희한한 풍경」, 사물과 사물의 연결을 통한 비유 속에(허물어진 �달의 그림자, 쭈그러져 누운 단화 등) 자신의 꿈과 현실을 함축하고 이를 “다시 피는 들꽃”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송문헌의 「소리의 넋-자화상」, 대상(나무)과 시인의 관계가 일체가 되어서 시인의 자아의식自我意識을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인식만이 감지되는 정유준의 시집「나무의 명상」(2004,6,30) 속에 들어 있는 시편들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개성적인 언어기법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로 평가된다.      3. 맺는 글     이 글에서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융합하는 문덕수의 '사물시', 탈관념을 바탕으로 사실과 현상을 순간적인 생각의 속도에 실어 사진 찍듯 찍어서 보여주는 오진현의 '디지털리즘의 시론과 실험시,'사회참여의 저항성에서 출발하여'생명사랑으로 변화하는 생태시', 그 밖에 개성적인 언어 기법과 변화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들을 대상으로 하여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변모를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이유는 1년간 상재된 시집을 열거하고 사족蛇足을 붙이는 일보다는 젊고 발랄한 정신을 뿜어내는 시인들의 참신한 의식과 언어를 추적하면서 새로움을 모색해보는 것이 더 즐겁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법의 변화에는 생각의 변화가 수반隨伴되고 생각의 변화는 새로운 기법을 탄생시킨다. 이 둘의 관계는 인과因果를 만들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사실・생명・ 현장을 전제로 하는 사물시, 디지털리즘 시, 생태시 등의 시들은 현대인들의 변화하는 생활과 사고思考와 환경과 행동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당위성當爲性과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사실(사물)의 본질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감각과 순간적인 변화를 즐기는 현대인들의 생활과 사고와 감성과 행동양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사물시와 디지털리즘의 시는 20세기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통합하는 21세기 새로운 현대시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시는 자신의 영혼을 찾아가서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의식의 서정시나 풍자나 역설, 사상의 감각화를 중시하는 주지시나 사상이나 메시지 전달을 강조하는 관념시 등 다양한 모습의 현대시들도 그 존재가치를 지속시키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시대적 흐름을 수용受容하는 새로운 시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4년의 한국 현대시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739    디지털 적 관점과 특성으로 해석한 이상(李箱)의 시 /심상운 댓글:  조회:739  추천:0  2019-03-01
* 이 글은 에서 발췌한 글로서, 이상의 시에 대한 새로운 디지털 적 접근을 시도한 글입니다.     디지털 적 관점과 특성으로 해석한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 와(詩第十一號)                                                                                                                                                  심 상 운     현대시에서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만큼 난해하면서도 많은 연구 과제를 던져주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시 중에서도 대표적인 난해시(難解詩)로 꼽히는 시가「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다. 이 시가 난해한 이유는 현실적 관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방법과 의미가 생산되었으며 앞으로도 누구나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한 의미의 공간”은  디지털의 특성과 만날 때 선명하고 명료한 공간이 된다. 그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것.  2) 이 시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에도 감염되지 않아서(탈-관념) 분리와 결합을 통한 변형이 자유롭다는 것.  3) 이 시의 언어들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4)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영상 즉 추상적인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라는 것.  5) 이 시는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운 그림 바꾸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아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해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   -----이상(李箱)「烏瞰圖」(詩第一號)전문   디지털의 기본적 특성을 나타내는 이 다섯 가지의 개념에「오감도烏瞰圖」(詩第一號)를 대입해보면 이 시가 안고 있는 새로운 시의 공간이 열린다. 먼저 이 시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도로(道路)를 질주하는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들(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들)에 대한 해석이다. 그 아해(兒孩)들을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첫 번째 특성에 대입하면 그들은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object)라는 디지털적 해석이 나온다. 따라서 시 속의 아해(兒孩)들를 수식하는 제1,제2,제3....제13이라는 서수(序數)에도 어떤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 그것은 이 서수(序數)가, 작가가 임의로 지정한 추상적인 숫자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의 아해를 제2의 아해로 바꾸어도 되고 제3의 아해를 제10의 아해로 바꾸어도 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서수(序數)로 표시된 이 시의 아해(兒孩)들은 시인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의미와 무의미의 이중적 이미지가 들어 있는 재료(object)라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를 “ '공포'라는 단 한 가지 감정원소로 환원된 추상적 부호집단”이라는 문덕수의 해석도(「이상론(李箱論)」) 고정된 의미가 없는 이미지 또는 재료라는 디지털적 해석에 수용된다. 그의 해석은 이 아해(兒孩)들이 캐릭터(character)의 원소(元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들은 “추상적 부호집단” 즉  디지털의 데이터(숫자나 문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 컴퓨터 프로그램의 객체지향적 모듈의 특성과도 부합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시에는 연극적인 캐릭터의 액션과 작가의 일방적 개입만 있을 뿐 언어단위들의 논리적인 연결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이 시 속에는 "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등장해야 하는지, 13인의 아해(兒孩)들이 도로를 질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다고 했다가 끝에서 왜 길은 뚫린 골목길이라도 적당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지, 왜 다른 사정이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지" 등 작가의 일방적인 개입 외에 사건의 배경이나 원인을 알 수 있는 어떤 논리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언어들이 표현하는 것은 문제만 제시하고 해답을 독자의 사유와 상상에 전부 맡기는 간화선(看話禪)의 화두(話頭) 같은 기능을 하는 순수한 가상현실의 동적인 그림이며 그것을 조정하는 시인의 심리적인 의도만 드러내는 추상화 된 그림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탈-관념의 가상현실이라고 해석된다. 그 해석을 확대하면 이 시 속의 화자는 연극의 연출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서 자신의 그림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행위자에 그치고, 시를 완성시키는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독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시는 텍스트(text)로서의 문학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수용이라는 소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판단하는 20세기 독일의 수용미학 (受容美學,Rezeptionsasthetik)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때, 디지털의 가상세계를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독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함정이나 속임수같이 생각되었던 이 시의 끝부분 "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의 진술기법(陳述技法)도 쉽게 풀리게 된다. 앞의 내용을 번복(飜覆)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이 끝 구절은 컴퓨터 그래픽의 그림 바꾸기 즉 디지털 적인 변형의 자유로움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1930년대의 이상(李箱)이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건축기사였던 이상(李箱)이 건물의 치수•비율•구조 등을 조정하기 위해 임의로 정하던 단위인 모듈(module)의 개념을 현대시의 구조 즉 “집합적 결합”(문덕수-「나의 시쓰기」『문덕수 시전집』에 수록) 속에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 건축용어의 모듈(module) 개념은 현대 컴퓨터에 응용되어서 독자적 기능을 가진 교환 가능한 구성 요소라는 단위(unit)로 쓰인다.   따라서 무서운 아해(兒孩)와 무서워하는 아해(兒孩)도 시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대상에 옷 입히기” 이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시에 등장하는 아해(兒孩)들의 수효를 2~3명 더 늘이거나 줄여도 좋고 길은 막힌 골목길이나 뚫린 도로(道路)나 모두 가능하다는 가정(假定)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오감도(烏瞰圖)」를 인류문명 위기의 암시란 관점으로 해석하여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를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12제자”로 인식하고 이해한 임종국의 견해(『이상전집(李箱全集)』)나,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기간의 10개월을 제10의 아해(兒孩)까지로 보고 이 시를 “생명의 탄생과 관념이 성장․분화․심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오남구의 견해를 (『이상(李箱)의 디지털리즘』) 이 시는 의미의 큰 격차에도 불구하고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까닭은 아무런 고정관념이 들어있지 않은 백지상태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즉 디지털의 영상(이미지)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이야기를 붙이는 것은 독자의 자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미 붙이기는 그들의 상상력과 분석력과 체험, 지적수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이 시의 순수 이미지를 지식이나 관념으로 덧칠을 해서 옳다거나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판단의 잣대로 가름한다면, 이 시의 끝부분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길이라도適當하오.)/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지않아도좋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로(迷路)의 비밀로 남을 수도 있다.   디지털에서 핵심이 되는 구성요소는 정수로 표시되는 최소의 단위들 즉 수리적(數理的)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의 기호와 숫자들은 각자의 기능은 있지만 고정된 의미가 없다. 그것은 디지털 시에서 탈-관념된 언어 단위와 같다. 이 단위들은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열린 공간과 열린 사고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시제1호(詩第一號)를 디지털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시의 공간이 얼마나 넓어지는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오남구의 성과도 높게 평가된다. 그는 이 시에서 “아해들” 또는 “아해들의 움직임을” 디지털의 최소단위(unit)의 표현 즉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의 점(dot) 또는 화소(畵素)로 직관하고 "관념의 제로 포인트(무의미, 탈-관념)"라는 시의 새로운 관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오남구의「이상의 디지털리즘」 범우사) 이 시에서 이상(李箱)이 창조한 시적공간은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추상화된 현실의 그림이 들어 있는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현실의 정서나 감각은 찾아볼 수 없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대시키는 사유의 공간만 보인다.   요컨대, 이 시의 언어들은 관념이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인지단계의 언어들이라는 것과 그 언어들을 조정하는 이상(李箱)의 사고(思考)가 탈-관념된 사고라는 것은 이 시의 해석과 감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나 이 시에 대한 이런 접근은 이 시가 이상(李箱)이 디지털적인 탈-관념과 상상의 언어로 그려낸 단순한 액션(action)의 그림(가상현실)이며, 그의 개성적인 사고(思考)가 창조한 짧은 허상의 드라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어떤 의미도 없다는) 관점 즉 디지털적 관점에 의한 해석일 뿐이다. 또 다른 해석의 방법이 나올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른 시를 읽어보자.    그사기컵은내骸骨과흡사하다. 내가그컵을손으로쥐었을때  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接木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  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  컵을사수(死守)하고있으니산산散散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  과흡사한내骸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  전에내팔이或움직였던들洪水를막은백지白紙는찢어졌으리라.   그러나내팔은如前히그사기컵을死守한다.                          -----「오감도(烏瞰圖)」「詩第十一號」 전문      에도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이미지(동영상)가 들어있다. ”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락에메어부딪는다/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라는 영상언어가 그것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영상언어는 사기 컵을 사수(死守)하는 내 팔과 사기 컵을 깨뜨려버리려는 또 하나의 팔(돋아난 팔)의 대립과 갈등을 디지털적 변형의 그림(graphic)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시인의 내면적인 심리현상과 관련된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이상(李箱)은 이 시에서도 「오감도(烏瞰圖)」같이 액션(action) 이외에 아무런 단서도 남겨놓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숨기고 있어서 이 시에 등장하는 팔이나 사기 컵, 해골 등에서 어떤 관념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의 언어들은 가상현실의 영상 속에서 캐릭터의 구실을 하는 도구(재료)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래서 ”내 팔“ ”돋아난 팔“ ”사기 컵“ ”해골“ 그리고 사기 컵을 깨뜨리는 행위와, 사수하는 행위, 깨어진 것은 사기 컵이 아니라 자신의 해골이었을 것이라는 시 속 화지(나)의 진술은 시의 공간을 확장하고 탈-관념의 가상공간을 만드는 디지털 시의 원소(元素)가 된다. 그리고 이 시에 의미공간을 여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 공간 속에는 독자들의 다양한 상상이 수용된다. 오남구는『이상의 디지털리즘』에서 “사기 컵은 해골과 흡사하다. 시각적으로 흰색과 빛나는 모양이 있고, 내용적으로 물을 담고 관념(생각)을 담는 유사성이 있다.“라고 하면서 ”깨뜨려진 것은 사기 컵과 흡사한 관념의 해골(환상)일 뿐, 집착하고 있는 손에 "실제 꼭 쥐고 있는 컵(고정관념)은 깨어지지 않고 해탈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의 해석은 이 시가 감추고 있는 숨은 의미에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그런 해석은 독자로서의 일방적인 해석일 뿐,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는 언제나 남아있다. 이 시에서도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시의 내용(시인의 심리현상 등)이 아니라, 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탈-관념의 이미지다. 그것이 이 시에서 발견되는 디지털적인 요소다.   
738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 /심상운 댓글:  조회:742  추천:0  2019-03-01
이 글은 월간 2006년 8월호에 발표한  글로서, 탈-관념에 대한 논쟁을 잠재우고 탈-관념의 이론을 새로 정립한 글입니다. 이 글의 논리를 바탕으로 해야 아방가드르의 시론이 성립됩니다.                                                                    탈관념 시에 대한 이해                                                                                 심 상 운             1. 인지의 본질과 인지과정        관념의 개념을 정리하고 탈관념이라는 새로운 단어의 성립이 가능한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인지認知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고대부터 철학자들은 인지의 본질 및 인식하는 정신과 외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철저히 논의해왔다. 원시불교에서는 인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그것을 감각기관인 근根(6근), 대상세계인 경境(6경), 식별작용인 식識(6식)의 세 범주로 분류하고, 그것을 인간의 존재문제로까지 확대․심화하였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지認知를 인식 혹은 인식행위와 관련된 과정으로 본다. 인지는 인식의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정신과정을 포함하는데, 인식은 감정이나 의지와는 구별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지는 감정과 의지를 제외한 지각•재인再認•상상•추론推論 등 지식을 구성하는 모든 의식적 과정을 포함한다. 따라서 인지의 본질은 지각과 판단이며 판단을 통해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별하고 그 대상을 어떤 한 개념 또는 몇 가지 개념으로 특징짓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의미형성의 전단계가 된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대할 때 몸에서 제일 먼저 발생하는 것은 감각기관 6근根(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을 통과(감지)하는 6식識(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작용이다. 이 감지작용은 지각知覺의 초기과정이다. 이 여섯 감각기관은 각각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을 6경境이라고 한다. 그런데 6식識 중 여섯 번째의 의식意識은 다섯 감각기관을 총괄하고 모든 감각을 식별하는 식識이다. 이 의식意識에는 인식認識하는 것과 인식認識되는 것이라는 두 가지의 계기契機가 내재되어 있다. 즉 의식意識 속에 주관과 객관이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다섯 가지의 식識이 모두 장애를 일으켜도 이 여섯 번째의 의식意識에 의해서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식識의 작용은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다는 데서 일반적인 인지와 구별된다. 그리고 이 여섯 번째의 의식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내적 행위를 하는데, 그것을 직관이라고 한다. 이 6식과 함께 인지과정을 정리하면 ①감지(6식의 초기작용)→②인지(의식의 분별작용)→③의미형성(의미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과정을 거쳐서 그 주위에 있는 것들과의 연관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순수인지는 ②항까지를 말한다.), ①감지(의식작용)→②직관의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직관直觀(intuition)은 선禪의 핵심이 되는 불교의 독특한 사유방법이지만 서양 철학에서도 중요한 사유의 방법으로 인정한다. 칸트(Kant, Immanuel)는 관찰에 근거하지는 않는 모든 사실인식의 원천을 직관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직관은 다른 원천에 의해 얻지 못하는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근원적이고 독자적인 인식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필연적 진리와 도덕원리들의 인식은 종종 직관의 방식으로 설명된다. 예컨대 논리학이나 수학의 진술은 다른 진리로부터 추론되거나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공리公理처럼 다른 명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 진술들은 직관을 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리와 규칙은 명백한 직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직관은 과학이나 일상적 관찰에 의해 얻어진 단편적인 '추상적' 인식과 달리 상호 연관되어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의미한다.   직관을 통해서 보는 상像을 직관상直觀像(eidetic image) 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관적인 시각현상의 하나다. 직관상을 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을 감고 있거나 상像의 배경 구실을 하는 표면만을 보면서도 마치 실제로 그 대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특정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제거된 후 곧바로 선명하게 떠오를 수도 있고 몇 분, 몇 날 또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떠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직관상과 그것이 나타내는 원래의 대상은 색깔, 모양, 외관상의 크기, 공간상의 위치, 세밀성 및 다른 많은 특징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고, 대상이 거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재생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직관상의 성격•원인•의미에 대해 거의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직관상은 현대시에서 관념을 뛰어넘는 방법론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꿈의 현상과는 다른 생생한 생명의 감각을 담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관념과 탈관념의 개념 정리     국어사전에서 관념觀念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풀이 되어 있다. 관념(觀念)[명사] 1.(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 2.《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어 생각에 잠김 3. 심리학에서 대상을 표시하는 심리내용의 총칭. 철학에서 대상을 표시하는 심리형상의 총칭. 선악의 관념, 죽음에 대한 관념 같은 것.   1번 항의‘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라는 풀이는 관념이 인식과 사유와 판단을 통해 “(어떤)의미”를 표시하는 인간의 의식내용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3번 항의 “대상을 나타내는 의식의 내용 (선악의 관념, 죽음의 관념 따위)”에서도 관념은 “의미”를 나타내는 의식의 내용이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관념은 대상에 대한 감지와 인지의 과정이 끝난 뒤에 일어나는 사유와 지식에 의한 의식의 현상이라고 풀이 된다.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방바닥이 차다.” “굶어서 배가 고프다” “그는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는 관념이 아닌 사실인식(감각)이다. 그리고 “꽃이 피었다”는 자연현상에 대한 단순한 인지다. 현상에 대한 느낌, 현상에 대한 사실적인 인식은 그 속에 배경의미가 없기 때문에 관념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 “사랑은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등은  관념이다. 그 말 속에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지식과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어 중에서 가장 관념적인 말들은 속담이나 잠언이나 명언들이다. 언어는 사물에 대한 인식기호다. 따라서 언어를 형성하는 기의와 기표는 관념이다. 그러나 그 조건만으로 언어로 표현되는 것들의 내용을 모두 “관념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형식주의적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다음은 “탈관념脫觀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는 일이다. 탈관념은 글자 그대로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대상의 의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지각知覺을 감지와 인식(의미형성 이전의 의식의 분별작용)의 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표현에서 대상에 대한 어떤 감정이나 판단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즉 감정, 판단, 배경의미의 유보를 뜻한다. 그것은 지각知覺을 사고思考 이전의 단계로 내려서 순수인지純粹認知의 세계로 낮추는 것이다. 이 때 대상은 그가 태어날 때의 상태로(원래의 상태)돌아 가게 되고 그것을 인식하는 인식주체들은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탈관념에서는 꽃은 식물학적인 꽃으로, 길은 도로의 의미로, 숲이나 나무도 자연 그대로의 숲이나 나무로 인식되고 표시된다. 여기에 관념의 표현 방식들 -상징, 암시, 풍자 등-은 발붙일 수가 없다. 이렇게 사물에 붙어있는 의미가 다 벗겨져서 의미(관념)의 제로 포인트로 돌아가면 어떤 의식현상이 생길까. 그런 상태에서 시인들은 무엇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그것은 시인들이 원시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가서 사물을 접촉하는 것과 같다.    3. 현대시에서의 관념과 탈관념의 문제     이상으로 인지의 본질과 과정, 관념과 탈관념에 대한 개념정리를 마치고, 한국 현대시에서 탈관념의 시가 성립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실제 작품의 예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관념과 탈관념의 철학적 심리학적 탐구는 계속 천착되어야하지만 그것은 전문적인 분야의 연구 성과에 의뢰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시에서 관념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모더니즘의 시에서 관념은 시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배경이 되어서 주제를 드러내고 독자들을 설득하고 시인이 의도한 형이상의 세계로 유인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모더니즘 시를 포함한 전통적 서정시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현대시에서 관념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관념이 없는 시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극소수의 시인들은 관념을 거부하는 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시를 추구하는 그들에게 고정관념들이 안고 있는 인생론이나 과거 지향적 향수, 누적되어 있는 때 묻은 지식은 거부의 대상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의식 속에 고약같이 끈끈하게 붙어있는 관념들을 지우고 직관直觀을 통해서 대상과 직접적인 내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로 탐색의 눈을 돌리기도 하고, 사물성의 이미지를 시의 목표로 삼기도 하고, 언어의 허구에서 벗어나 실상의 모습을 보고자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의 출발점을 관념이 침범할 수 없는 의미의 제로 포인트 지점인 대상의 인지영역에 두려고 한다. 이런 면에서 탈관념을 지향하는 시는 언어유희의 무의미 시, 초현실주의 시, 순수 이미지의 사물시를 비롯하여 21세기 아방가르드의 맨 앞에 서 있는 디지털리즘의 시 등 네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런 탈관념의 실험은 김춘수 시인이 시도한 무의미시의 원천이다. 김춘수 시인은 그가 내세운 무의미시에서 언어의 의미를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긍정과 부정의 충돌을 통한 의미 없애기, 정서나 의미가 묻어나지 않는 언어의 사용, 순수한 단순 이미지의 창출 등 언어유희의 방법을 동원한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너를 위하여 피 흘린  그 사람은  가고 없다    가을 벽공에  벽공을 머금고 익어가는 능금  능금을 위하여 무수한 꽃들도  흙으로 갔다    너도 차고 능금도 차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눈은  유리같이 차다    가버린 그를 위하여  돌의 볼에 볼을 대고  누가 울 것인가     -----김춘수 전문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이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 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바다,  그날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김춘수 전문    두 편 모두 김춘수 시인의 시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시를 시의 의미면에서 비교할 때 전혀 영역을 달리하는 시로 분류된다. 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의미의 시인데 반해 는 김춘수 시인 한 사람 외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의 시다. 그 이유는 의 내용 “가을 벽공에/벽공을 머금고 익어가는 능금/능금을 위하여 무수한 꽃들도/흙으로 갔다//너도 차고 능금도 차다/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눈은/유리같이 차다”는 이미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통하여 인식한 지식들이 굳어져서 만들어낸 “죽음의 의미”가 들어 있고 그것이 공감을 주고 있는데 반해 의 시의 내용,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 옷 속의/일찍 눈을 뜨는 남쪽바다,/그날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개인 체험과 인식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관념)도 형성되지 않는다. 또 이 시의 자연현상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눈은/라이락의 새순을 적시고/피어나는 산다화를 적시고 있었다/“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인지(사실) 외에 어떤 배경의미도 없다. 그래서 무의미의 시는 어떤 의미(관념의 틀)가 형성이 되기 이전의 인지단계의 시라고 판단된다. 이런 인지단계의 시는 관념의 때가 묻어 있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 속에 들어있는 감각이나 사실에 대해 누구도 시비를 걸 수없는 자유로운 상상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래서 언어유희라는 말이 타당성을 갖는다. 유희는 예술의 전단계로서 자기만족에 충실한 예술정신의 원천이다. 의미(관념)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김춘수 시인은 순수 언어를 도구로 하여 언어예술의 세계에 도전한 것이다. 이렇게 시의 예술성을 지향한 탈관념의 무의미시는 1950년대 조향 시인의 시가 더 적극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인정되는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 를 읽어보자.           모래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의 까아만 그림자              ------조향 일부    주어와 서술어가 없는 이 구절은 통사적인 면에서 문장구조가 불완전하다. 따라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의미가 모호하다. 그리고 시행의 독특한 나열은 형태면에서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이질적인 사물의 대립적 배치로 언어충돌을 일으킨다. 바닷가 모래밭과 수화기受話器는 자연과 물질문명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연상하게 하고 수화기受話器는 여인의 허벅지와 이미지의 조화를 이룬다. 끝부분 낙지의 까아만 그림자는 또 어떤 상상력을 불러일으킬까. 어떤 성적性的인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이 시는 그런 것들을 모두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그래서 관념(의미)의 틀로부터 해방된 언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 그림으로 남는 시가 된 것이다. 다음은 문덕수 시인의 「탁자를 중심으로 한 풍경」을 읽어보자.    빨간 저녁놀이 반쯤 담긴  유리컵 세 개.  횅하니 열린 문으로는  바람처럼 들어닥치 듯이 차들이  힐끗힐끗 지나간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이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속에 재떨이는 오롯이 앉아 있었다.  열린 문으로는  서 있는 한 사나이,  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  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  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유리컵  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  그 금 밖으로 밀려나  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  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  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           ------문덕수 전문     이 시도 어떤 관념이 보이지 않는다. 이 시의 이미지는 언어를 매개로 하고 있지만 그 언어는 사고(사유) 이전의 언어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의미를 철저히 배제한 이 시는 객관적인 눈으로 빨간 저녁노을이 반쯤 담긴 유리컵, 그 유리컵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의 표정과 위치, 한 사나이의 서 있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금방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긴장감 속으로 시의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그 하나의 풍경만으로도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충실한 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사물들의 생동하는 모습에서 사물성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도시와 인간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고 또 바람직한 행위다. 하지만 그 작업은 이 시가 시도하고 있는 탈관념의 언어 이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서 있는 한 사나이,/길 건너 어느 고층으로 뛰어오를 듯이/서 있는 그 신사의 등이 실은/유리컵을 노려보고 있었다./세 유리컵/그 세 지점을 그으면 삼각형이 되는/그 금 밖으로 밀려나/금박金箔의 청자 담배와 육각형성냥갑이 앉아 있고/그 틈새에 조그만 라이터가/발딱발딱 숨을 쉬고 있었다.”는 시인의 지각작용이 포착한 생동하는 사물성과 한 순간에 집중된 감각적인 순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탈관념과 디지털리즘 시를 주장하고 있는 오진현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어느 날 정원에서 가위를 들고 나무를 다듬다가, 문득  눈이 맞아서 나무가 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 화  단에 서있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꽃 !“하고 바로 눈  에 보이자, 국어대사전의 견고함이 무너지고 있었다. 눈  물이 주룩 쏟아지고 이날, 나무의 이름이 모두 없어져  서 내 앞에 선다.             ----------오진현 전문    시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감상과 해석을 낳는다. 그것이 시의 생명력이다. 만약 하나의 시점으로만 해석되고 감상되는 시가 있다면 그 시는 가장 불행한 시라고 말할 수 있다. 도 보는 이의 지식과 취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가 왜 탈관념을 주장하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 속에는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라는 관념의 틀에 갇혀 살다가 그 관념의 틀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체험하고 감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직관의 장면을 견성見性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그런 견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자아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언어와 사물(대상)의 관계에 대한 실제적인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언어는 사물과 사고思考의 표현기호다. 그런데 그 기호가 역전현상을 일으켜 오히려 사물과 사고를 지배한다. 따라서 “국어사전의 견고함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언어가 쌓아놓은 거대한 성벽 즉 고정관념의 성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의 화자는 “나무”와 “꽃”이라는 언어의 기호에서 해방된 기쁨을 감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언어와 그 언어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사고思考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가변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은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 시는 그런  배경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탈관념의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언어(기표․기의)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그가 말하는 탈관념의 첫 걸음이 된다.    비, 비,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오진현 전문     이 시는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 거리에서 비를 맞고 섰다가 비가 그치자 빌딩 사이 조각난 허공을 한 번 흘깃 쳐다본 순간의 장면을 사진 찍듯(접사) 찍어 놓은 것이다. 비를 맞는 감각이 차다→단단하다→날카롭다로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비는 팔닥팔닥 곡선을 그리다가 부서져 떨어지고, “부드러운 선들이 팔닥팔닥 숨을 쉰다”. 방금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動映像의 한 장면을 보는 거 같다. 사실과 현장 체험의 생생한 감각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생각(지각)의 속도가 들어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관념)도 보이지 않는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오진현 전문     자신의 내면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의 지각작용은 직관이다. 그래서 이 시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관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의 주관적 직관상直觀像(eidetic image)이다. 그 직관상 속에는 독특한 감각의 에너지가 전류처럼 흐른다. 그 에너지는 어떤 관념도 의도意圖도 들어갈 틈을 남겨주지 않는다. 그는 그 의식의 내면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찍어내어(염사)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의 자동기술과도 구별된다. 다만 마음의 눈이 마음에 비친 의식의 영상을 사진 찍듯이 찍어서 시각적 영상으로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리즘의 시인은 시의 주체이면서도 객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양준호 시인의 시에서도 탈관념의 한 장면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꽃잎을 짓밟고 간다. 문득 저승에서 뻐꾸기 세 번 울고  간다. 너는 뭐니 너는 뭐니. 노란 파도가 노란 파도를  따라간다. 비이슬에 젖은 철조망, 메뚜기의 눈이 등대처  럼 설레고 간다.                     ----------------양준호 전문    양준호 시인은 고정된 사고思考로부터의 탈출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조향시인의 초현실주의 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시에서는 꽃잎을 짓밟고 가는 어느 날 한 찰나의 의식이 담겨있다. 그 의식에는 “간다”라는 동사가 이끄는 네 개의 문장이 병렬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네 개의 문장은 논리적(객관적)인 의미의 연결이 안 된다. 따라서 어떤 의미의 형성이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 네 개의 문장이 담고 있는 영상은 그의 무의식의 내면에서 포착한 영상 같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다만 그의 무의식의 속으로 들어가 보는 희귀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송시월 시인의 시 를 읽어보자.    비 그친 후, 물웅덩이  붉은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 선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 조각  언뜻 멧새 한 마리가 휙 일렁이며 간다                      --------송시월의 전문    이 시는 오진현의 같이 비 그친 날의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찍어낸 시다. “그려낸”이 아닌“찍어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눈에 들어 온 풍경이 언어의 구문 조직상 순차적 연결로 되어 있지만 “물웅덩이,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 선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작이 끼인 나 한 조각, 멧새 한 마리가”가 눈에 포착되는 순간은 동시적同時的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각영상이 이렇게 질서화 된 것은 직관을 통한 의식의 작용이 선택하여 만들어 냈다는 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인정한 것이다. 우리들의 눈은 물리적인 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빛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단일시점單一視點이 아닌 다시점多視點의 시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의식(마음)은 외부의 것을 기억의 그릇에 선택적으로 담는다. 그것을 마음의 눈이라고 한다. 이 선택적인 시각視角 즉 마음의 눈에 관해서 영국의 수필가 가드너는 라는 수필을 통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깐 이 시는 송시월 시인의 마음의 눈이 카메라가 되어서, 비 그친 후 물웅덩이에 멧새 한 마리가 휙 일렁이며 지나가는 동動․정靜의 한 순간을 찍어낸 사진 즉 인식의 그림이 된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리즘이 주장하는 탈관념이며 직관을 통한 염사 또는 접사의 기법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독자들은 관념의 작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물과 직접 만남, 즉 인간과 사물(물에 비친 영상)과의 내통만이 있을 뿐이다. 다음은 이솔 시인의 을 읽어보자.    욕조 가득 비누거품이 부풀고 있다  거품 속에 색들이 팔딱거린다  거울 속에서 허물이 흘러내린다  구석구석 비누거품을 벗겨낸다  동그랗게 굴러가는 색깔들    텃밭에서 갓따온 가지빛깔  처음 우러나온 치자빛깔  옥수수 수염색깔  샘물바닥에서 솟아나는 모래빛깔  청심환을 싸고있는 금박지  씨가 환히 비치는 청포도빛깔    바구니 가득한 캔디  눈에 담기는 색깔부터 입 속에 넣는다  달콤하다가 시다가 씁쓰레 하기도  캔디맛인지, 색깔맛인지  욕조 가득 넘치는 맛과 색  맛으로 빛으로 춤춘다  ------이 솔 전문    이 시는 비누거품의 빛과 맛의 세계로 독자들의 감각을 끌어들인다. 그 빛과 맛은 시인이 감지하고 상상한 사물성의 세계다. 따라서 그것은 시인과 사물의 순수한 교감交感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시인과 사물의 직접적인 내통과 상상은 독자들에게 관념이전의 순수한 사물성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 세계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세계다. 그래서 이 시 속에 들어 있는 시인의 자기소멸의 빈 마음과 섬세한 감각,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과 상상은 신선하고 창조적인 사물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다.    이제까지 일반적인 관념(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무의미의 시(김춘수), 초현실주의의 시(조향, 양준호), 사물성의 감각과 이미지 중심의 사물시(문덕수, 이솔), 디지털리즘의 시(오진현, 송시월)의 시편들을 나름대로 살펴보면서 한국 현대시에서 창작된 탈관념 시의 존재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탈관념의 시는 대상에 대한 지각을 의미 형성의 이전, 감지와 인식의 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을 검증하였다. 어떤 의미도 형성되기 이전의 감지와 인식의 단계는 관념시와 탈관념 시의 경계가 된다. 따라서 관념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인간의 의식 활동 전체(생각)를 관념이라고 모호模糊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면(관념의 지나친 확대는 거대한 고정관념의 형성이다), 한국현대시에서 탈관념의 시는 가능하고 그런 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들은 언어의 관념에 시달려온 우리들의 정신을 맑은 물로 씻어주고 사물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감각과 정신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끝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대상을 보는 눈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하는 가장 기본적 관점觀點의 자세를 산문체로 풀어쓴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글을 줄인다.    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지 못 하나, 우리의 눈. 풍경들은 시시각각時時刻刻 새롭게 변화하고 치장하고 은밀한 부분까지 스스로 환히 보여주고 있데, 이미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그 계곡의 숲길이나 꽃나무들, 묵은 생각이 그려내어 벌려놓는 화판 위의 그림.    이젠 그 관념觀念의 안경을 깨뜨려 버려라, 우리의 눈. 순간순간 펼쳐 보이는 풍경의 색깔이나 모양, 변화의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눈부신 육체와 혼魂을 찾아내어 아이들처럼 즐겁게 놀면서 교감交感하라, 순백과 눈 맞춰라, 우리의 눈. 뇌세포 속에 푸른 반점으로 남아 있는 몇 만 년 전의 원시기억原始記憶까지 모두 지울 수 없나, 우리의 눈. 먼지 묻고 얼룩이진 유리창을 계속 깨뜨려라, 들어오는 밝은 빛을 굴절시키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형상形象들을 계속 깨뜨리고 또 깨뜨려라, 우리의 눈.    오오, 아무 배경背景 없는 순수인식純粹認識, 그 한가운데서 투명하게 빛날 새 눈을 위해.                               --------심상운 전문   
737    현장과 시--- 디지털 시의 현장성/ 심 상 운 댓글:  조회:765  추천:0  2019-03-01
이 글은   2006,1월호 에 발표한 를  2008, 1,21 대폭 수정한 글임                      현장과 시                                 --- 디지털 시의 현장성                                                                                                                심 상 운(시인)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은 시의 예술적인 면에서 풍성한 암시와 반짝이는 상상의 언어세계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잃어버렸던 신화를 되돌려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중세의 허풍장이기사騎士에 머물지 않고 현재까지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것은 그의 비현실적인 꿈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 때문이다. 모더니즘도 우리들의 시에 언어의 꿈을 담아주었기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의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이어온 것이다.  만약 시인들이 현실과 역사의 진보에만 매달려서 싸웠다면 시인들은 전사戰史에 기록될 수 있는 영웅은 되었을지 몰라도 예술의 세계에서는 상상력이 고갈된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주권을 일제日帝에 침탈당한 국권상실시대에 일제에 직접 저항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1930년대 이육사李陸史의 시편들 속에서 발견되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아름다운 만남이 명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絶頂」전문      이 시의 끝 구절 에서 강철+무지개가 던져주는 죽음을 초월하는 희망의 경이로운 상상과 암시는 지금도 생생한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더니즘의 이미지, 즉물적卽物的 감각이 우리의 현대시에 수놓은 금싸라기 같은 수사의 미학을 귀중한 재산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이 시인과 독자들을 자연발생적인 시들의 고식적인 감상感傷과 영탄성詠嘆性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딱딱한 관념어의 굴레에서 시를 해방시켰다는 공적만이 아니라,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더니즘의 긍정적인 생명력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꽃을 피우던 일은 그만두고 인제는 한 개 벽돌이나 되겠다. 이 살덩이를 흙가루로 빻고 썩기 전에 이 피로 곱게 물들여 1천도의 시뻘건 불 속에서 다시 벽돌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하여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여 백 층이나 삼백 층의 빌딩이 되거나 반월형半月形 의 만리장성이 되거나  원수의 포탄이 우박처럼 박혀도 끄덕도 않는........ 구름을 피우던 일은 그만두고 인제는 단단한 벽돌이나 되겠다. ----------문덕수의 「벽돌」전문      이 시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쓰인 과 , 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또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또 사물어事物語의 쓰임이 이 시에서 어떤 시적 효과를 나타내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어디까지 자극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 시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80년대의 사나운 현실 속에서 이 시가 보여주고 있는 모더니즘 언어의 바른 자세와 당당함이다.  이 시의 앞부분 는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정신과 함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시 속에서 결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예술)과 리얼리즘(현실)의 이런 아름다운 만남은 더 이상 넓게 확산되지 못 했다. 대부분의 모더니즘 시들이 삶의 현장의 뒤쪽으로 물러서서 스스로 존재영역의 범위를 축소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몇 가지 면에서 더 검토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한국의 모더니즘 시가 안고 있는 현실회피와 현장성(사물)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일부 모더니즘의 시인들이 현실과 예술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언어의 건강한 긴장감과 조화를 외면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생동하는 이미지나 환상과 상징을 잃어버린 편협偏狹한 언어 관념의 시로 변질되면서 모더니즘 시의 한계가 노정露呈된 것이다. 그것을 간단히 압축하면 모더니즘 시의 언어 관념주의는 모더니즘 시의 함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과 꿈을 담은 시의 탄생을 기다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병든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을 치유하고 개혁해야하는 당위성의 원천이 되었다.        주지적 모더니즘의 시를 ‘언어 관념의 시’라고 하는 것은 시인의 정서, 직관, 관찰, 순수한 상상력에 의해서 시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표출하기 위한 시인의 수사적인 언어작업에 의해서 시가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 수사적인 언어작업은 어떤 관념을 중심에 세우고 그것을 비유, 상징, 우유(allegory)로 포장하여 시인의 감정까지 관념이 만들어내는 의도성과 논리성으로 휘감아버린다. 이런 기법을 선관념 후사물(先觀念 後事物)의 기법이라고 한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한국 현대 시인들은 이러한 시의 기법에 익숙하고 그것을 정통적인 시의 기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시인은 아주 엄밀하고 냉랭하게 계산된 논리적인 비유, 상징의 언어를 시의 중심에 넣고 감정까지도 객관화하여 독자들의 반응을 계산하면서 시를 제작한다.       난 해질 무렵 몽상가 소부르주아 시인 세상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의자, 작은 방, 개미 , 염소    피와 이슬로 된 술 난 현실 따윈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난 현실을 모르는 국문과 교수 허리띠를 헐렁하게 매고 거울을 연구하는 교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감기엔 맥을 못 춥니다 30년 전부터 어디론지 떠나고 싶었지만 --------------이승훈 「오토바이」 전문       이승훈의 시는 비록 시인의 관념이 시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지만 시인은 현장(현실)에서 벗어나서 시라는 무대에 올라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시인과 독자들이 갈구하는 낯 설음, 새로운 기법의 언어, 경쾌한 감각의 현대성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 등의 언어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존재의 탐구에만 전념하는 시인의 모습을 통해서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대한 의식적인 외면과 환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강한 집착이 모더니즘 시의 원형인 것처럼 독자들을 유인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삶의 현장감이 생동하는 시의 실체는 사라지고 관념의 감옥 속에 갇혀버린 시인의 의식만 드러내게 된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김춘수 「처용단장 제1부의 1의 4」전문         김춘수의 시는 이승훈의 시와는 달리 실제의 현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장의 사실성을 무화無化 또는 추상화抽象化시키는 것으로 시적 효과를 달성하려고 한다. 그 근거는 이 시에서 의 구절에서 찾아진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실제의 바다 풍경을 비현실의 바다 풍경으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서해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대상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로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무화 또는 추상화하는 기법이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에서도 ‘죽은 물새’가 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 물새는 문맥상으로 보아 여름에 본 물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실제를 비실제로 변환시키는 실체적 대상의 무화 또는 추상화의 근거가 된다. 이 추상화의 그림은 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상식적인 의미의 세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인의 몸부림이 개척한 세계로 이해된다. “바다는 가라앉고”나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는 현실적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시적인 상상의 세계에서는 전혀 모순성이 없는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김춘수는 논리의 단절이라는 기법으로 일상의 의미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문덕수(시인, 예술원 회원)는 김춘수의 이런 기법을 그의 「시론」에서 ‘무의미의 심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시도한 ‘무의미’는 사실적인 현상現象을 추상적인 현상으로 상태를 전환시켜 ‘또 다른 세계의 의미’를 창조하려는 언어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대상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로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무화 또는 추상화하는 기법의 남상은 한국의 고전시古典詩에서 발견된다. 이규호(李圭虎 대구대학 인문교수)는「한국고전시학론」에서 그런 표현방법을 ‘정석가식鄭石歌式 표현’이라고 한다.의 작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실을 제시하여 현실적 시간을 무화無化시키고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다.   므쇠로한쇼를디여다가 므쇠로한쇼를디여다가 철수산鐵樹山에노호이다 그쇠철초鐵草를머거야 그쇠철초鐵草를머거야 유덕하신님여아와지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논리적인 조작으로 무의미를 추구하던 김춘수는 논리 단절의 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절망하여 관념(의미)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 것 같다. 논리적인 ‘모순어법’만으로는 의미(대상)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사물과 언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기호성과 가상현실에 관심을 두었다면 그의 세계는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졌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무의미의 언어실험’은 삶의 현장에 대한 이탈, 단순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고 있어서 그가 목적으로 한 "관념이 장차 거기서 태어날, 관념의 제로 지대地帶"(事物詩와 觀念詩의 問題- 1981년 12월호 「시문학」)에 도달하지 못하고, 현대시의 현장에 난해성만 남겨놓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의 무의미시는 한국 모더니즘 시에 대한 성찰의 근거가 되고 시에 대한 정의를 다시 찾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극단적인 언어논리주의 시에 대한 성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현장 속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향기 나는 생명체를 모셔놓은 언어의 집이라는 시의 정체성을 다시 찾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모더니즘의 언어예술로서의 시보다 자연발생적인 서정시가 더 본래적인 시에 가깝게 인식되기도 한다.    비오는 날 묵밭에 소를 먹이고 있으면 어디서 깊은 소리가 들리네.    온 天地가 共同墓地같은데 오동나무만 저승의 길잡이처럼 서 있네.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도 푹 빠졌을까. 안개사이로 인업이 꼭 걸어올 것만 같네.    喪輿를 놓고 그렇게 울던 곳. 그 곳엔 이상한 불빛이 서려 있었네. -------이성교「비오는 날(1)」 전문      자연발생적인 서정은 시인의 언어조직만으로는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자연스럽고 순수한 서정의 시에는 이성(지성)보다 감성이 주류를 이루어서 때로는 원시적인 야성의 감성이 시의 생명력을 키워내는 원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에서 관념과 비유, 상징을 떨쳐버리고 직관의 눈으로 직접 대상과 만나자는(의식→대상→이미지) 디지털 시 운동은 시의 현장성과 내재적인 생명성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인 서정시와 연결된다. 그것은 내면의식의 흐름 위에 자리한 디지털 시가 논리적인 관념의 시나 언어조작의 시보다 시의 원래 모습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지털 시는 현장과 상상의 예술적 언어융합을 시의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비가 오락가락, 찜통 더위 속 , 땀을 흘리고 확 터진 능 선에 올랐다. 앞에 서 있는 봉우리들 얇은 구름이 그림이다. 주저 앉아 상상하며 가슴쯤 산의 옷을 벗기면서, 이렇게 시에 빠져들고 있는데, 한 시인이한다. 나는 내색을  못하고 하고 이성理性을 말 했다. 그 때 지나가는 등산객이 했다. 멍! 모두 몽둥이로 한 대씩 맞은 기분이었다.    이 날 산행은 흰수염을 휘날리고 아슬히 바윗서리에 걸터앉은 내가 희죽이 웃으며, 리모콘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비밀한 얇은 비단을 밀어 올리고,                ---------오진현 「산행」 전문       오진현 「산행」은 때 묻은 감각과 지식을 뛰어 넘는 디지털 시대의 감각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그것을 수용하는 맑은 현장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떤 관념도 미리 들어가 있지 않은 탈-관념의 빈 마음은 새로운 감각이 모여드는 맑은 못이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 새로운 감각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열린 마음이 디지털 시대의 시인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숨을 쉬고 지느러미를 펄떡이면서 움직이는 자신의 심리적 현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직관(초논리超論理, 비논리非論理)의 눈이 살아 있다. 따라서 그 현상을 언어 카메라로 찍어내는 디지털 감각(염사念寫, 접사接寫)의 이미지 시와 어떤 관념을 솟대같이 중심에 세워놓고 언어의 수사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모더니즘의 이미지 시와는 선명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한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오진현 「밤비」전문       직관적인 염사의 시에서는 독특한 감각의 에너지가 전류처럼 흐른다, 그런 에너지가 흐르는「밤비」는 시인 자신의 내면이 시의 현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적 의식의 흐름 속에는 어떤 관념도 의도意圖도 보이지 않는다. 직관의 눈이 의식의 현상을 사진 찍듯이 찍어서 시각적 영상으로 떠오르게 할 뿐이다. 의식의 집중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의 자동기술과 구별된다. 그리고 디지털 감각은 시인이 시의 주체이면서도 객체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는 눈 덮인 12월의 산속에서 누군가가 두드리는 북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그가 촬영한 여름 바다 푸른 파도는 우 우 우 우 밀려와서 바위의 굳은 몸을 속  살로 껴안으며 흰 가슴살을 드러낸다.     나는 식탁 위의 빨간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고 TV를 켰다. 무너진 흙벽돌  먼지 속에서 뼈만 남은 이라크 아이들이 뛰어나온다. 그 옆으로 완전 무장한 미 군 병사들이 지나가고 있다.       갑자기 눈보라가 날리고 1951년 1월 20일 새벽 살얼음 진 달래강 얼음판 위  피난민들 사이에서 아이를 엎은 40대의 아낙이 넘어졌다 일어선다. 벗겨진 그 의 고무신이 얼음판에 뒹굴고 있다.       나는 TV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벽에 붙어서 여전히 흰 거품을 토하며 소리치고  있는 파란 8월의 바다    그때 겨울 산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바닷가로 왔다는 메시지가 핸드폰에 박혔다.                                    ---심상운 전문     이 시에는 현실과 가상현실이 결합된 디지털시의 현장성(하이퍼 세계)이 들어 있다. 이 디지털 시의 현장은 시의 구조에서 다선구조를 형성한다. 다선구조는 ‘선택과 집중’ ‘설득’을 중시하는 단선구조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상상의 결합과 연결’, ‘현실과 가상현실의 세계’를 시 속에 구축한다. 이 시에서는 눈 덮인 12월의 숲 속에 들어가서 북소리를 듣고 있는 그와 벽에 붙은 여름바다 사진, 식탁에서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TV를 켜는 나, TV화면 속의 이라크 아이들과 달래강의 풍경 등의 이미지 결합이 그 원천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의 시점도 평면적인 단일시점에서 입체적인 다시점으로 변화된다. 그것은 다선구조의 이미지는 시를 어떤 목적의식과 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에 입체성과 현장성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 다선구조는 우리들의 일상이 단일시점이 아니고 다시점(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이라는 점에서 더 자연스럽게 총체적인 실존의 모습을 형성한다.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은 우리들의 삶이 논리성보다는 심리적인 이미지의 세계에 더 가깝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 속에 흐르는 내적 의식의 흐름이 불연속적인 이미지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이러한 이미지 결합의 디지털 시는 또 문명적 사고(객관적이며 추상적인 과학적 사고)와 대립되는 문명이전의 야생의 사고(구체적 사고)에 맥이 닿는다. 문명이전의 야생의 사고는 구체적이고 주술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는 다른 표현으로 신화적 사고라고 한다. “신화적 사고는 표상(image)에 묶인 채 지각(percept)과 개념(concept)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에게는 표상으로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름으로는 과학적일 수 있다고 레비-스트로스는 주장한다.” 이런 면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 디지털 시는 비인간적인 기계의 시가 아니라 언어적인 면에서 모더니즘의 이미지를 확장하고 현장의 긴장감을 내포한 매우 인간적인 직관과 감성에 의해서 탄생하는 탈관념의 새로운 감각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 시는 사실, 생명, 현장을 바탕으로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을 중시하는 21세기적인 감수성(디지털 감각)과 인간의 내면에 잠겨 있는 야성적 감각이 만나서 순수 직관의 이미지(탈관념, 시공간 초월), 즉 신화적인 언어 표상(image)으로 탄생되는 시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것은 문명적인 면에서 볼 때, 과학적 사고(문명)와 야생의 사고(문명이전)의 융합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는 시인의 사유와 감각과 언어의 수사修辭에 의해서 제작되는 정통적 모더니즘의 시에 비해서 시의 일반화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디지털 시는 탈관념의 의식이 전제가 되고 이제까지 사용된 익숙해진 언어(비유, 상징)로부터 벗어나서 때 묻지 않은 원초적 현장언어와 디지털 감각(염사, 접사,가상현실)의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모더니즘 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시의 “새로운 신화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도정이 예상된다. 그러나 21세기는 도처에서 새로운 변화(IT, DNA 등)의 구름을 계속 몰아오고 있어서 시인들도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736    나의 시 나의 방법-자작시 해설/심상운 댓글:  조회:817  추천:0  2019-03-01
 나의 시 나의 방법-자작시 해설 / 심상운       시의 언어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에서 획득한 뜨겁고도 선연鮮姸한 빛깔의 언어이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감각과 생명을 얻은 시가 탄생한다.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기억되는 좋은 시들은 모두 이러한 언어로 표현된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황진이의 시조 이나 1930년대 미당 서정주의 등을 읽어보면 그 언어의 싱싱한 기운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은 바로 그 시에 담긴 시어가 뿜어내는 힘이 시대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 내가 제일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신선한 감각의 시어다.       “시의 표현은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소박한 생각도 시어의 신선한 감각과 생명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시인이면 누구나 하게 되는 정통적인 시의 일반론一般論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반론이 안고 있는 방법론은 조금만 깊이 들어가서 방향을 바꾸면 “비대상非對象, 무의미無意味, 탈관념脫觀念, 초현실超現實” 등 여러 가지 현대적 기법들과 만나게 되는데, 이 기법들은 일상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시적 피안彼岸을 보여준다. 시작과정에서 그것들의 깊이를 헤아리고 응용하는 것은 시인의 정신과 시를 젊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어떤 방법에 들어가든 그 중심中心에 자리잡고 있는 샤먼의 우주목宇宙木 같은 시인의 개성적인 시어가 좋은 시를 탄생시키는 근본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인들이 그러했듯이 언어와 관념을 안고 뒹굴며 밤잠을 설치는 운명을 감수甘受하는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하는 것으로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시작과정에서 시의 이미지image를 중시하였다.  이미지는 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의 의미를 싱싱하게 지속시켜주는 힘을 발휘하고, 이미지는 그 자체가 언어의 투명한 보석이 되어 자율적自律的인 독립된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스스로 돌파하고 무한히 넓혀준다. 그런데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나에게 고민이 되는 것은 이미지의 객관성과 주관적인 정서의 적절한 조화調和와 현실의 문제였다.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영혼, 생명, 그리움, 신적神的인 존재 등 ―을 중시하여도 현실의 문제들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는 안 되는, 시인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현실의 문제들도 문제의 원형原形속으로 들어가서 이미지화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다. 현실문제에 대한 시들은 첫 시집 「고향산천故鄕山川」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나는 또 시각적視覺的인 이미지와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시속에 담아보려고 시도하였다. 이 소리는 시속에서 의미를 감각화感覺化 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시의 리듬을 돋구어주고 신명을 불러들이는 구실을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세 편의 시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서 두 번째 시집「당신 또는 파란 풀잎」에서 골라 본 것이다.      아직 개발開發되지 않은  컴컴하고 습한 지역을 아시나요    눈 내리는 날 우리 그곳으로 가요  그곳에는 아직도  고생대古生代의 신神들이 살고 있어  이렇게 눈 내리는 날 저녁엔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웅웅 벌떼처럼 날아다니며  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인가人家와는 멀리 떨어져  마을의 길은 이미 끊어지고  컴컴하고 습한 진흙 벌만 계속되는  미개발의 그 곳은  하얗게 눈 내리는 겨울 저녁이면  자연의 거대한 사원寺院    하얀 잡목 넝쿨 사이사이  얼굴 비비며 히히덕 히히덕 너풀춤 추는  젊은 신神들의 환한 노래 소리가 들려요           -------- 전문     이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신神들의 마을”이라고 했는데 너무 직선적인 것 같아서 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시 전체의 이미지는 흰 색과 검은 색을 대조시켜 시의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하였다.     나는 이 시에서 생명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면서 개발開發이라는 인위人爲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컴컴한 잡목림雜木林속에서 벌어지는 생명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환희를 동적動的인 이미지로 그려보려고 하였다. , 라고 시의 앞뒤에 시청각視聽覺이 서로 한 데 어울린 동적인 이미지를 넣은 것은 생명의 움직임과 환희의 감정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그려보려는 의도였다.     이 시는 단순한 환경문제에 관한 시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생명이 지향하는 근원적인 삶의 모양을 환상적幻想的인 언어의 그림으로 그려보려고 하였다. 윤강원尹江遠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월평月評에서 고 하였다. 그는 이 시를 깊이 이해하고 시에 담긴 의미를 높은 정신세계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나는 이 시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원형적 생명의 기운을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신神을 등장 시켰다. 이 신은 생명의 원형을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독자들은 원시적인 에니미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시류성時流性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의미와 미감美感을 가진 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각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둔 시로 또 과 을 들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검은 꿈의 바다를  떠도는 수부水夫  한밤중 달의 은사시빛  밧줄이 부서진 내 배의  동체를 끌고 간다.  나는 저 북해北海의  빙산氷山 곁으로 가고 싶다.  그것이 항해의 끝이 되어도  설령 내가 영혼만으로  떠돈다 할지라도  사시사철 하얀 풀잎으로 덮인  지구地球의 지붕  나는 얼마나 황홀한 빛의  침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인가.  그 곳에는 악惡도 선善도,  오직 순수한 신神들의 소리만 살아  고생대古生代의 바다가 아직도 파도 친다.  아아, 나의 첫 항해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차디찬 꿈의  빙산氷山을 지나 더 멀고 먼  푸른 바다로 떠나가야 한다.  내 시간時間의 바닥이  환히 보이는 해변  그 모래밭까지  --전문     앞의 시 이 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데 반해 은 시인의 내면의식을 시각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시다. 두 편의 시에 공통점이 있다면 생명의 원적지原籍地를 찾는 의식의 흐름이다. 나는 이 시에서 내 존재의 고향을 찾아 항해하는 수부水夫가 되었다. "북해北海의 빙산氷山, 사시사철 하얀 풀잎으로 덮인 지구地球의 지붕, 황홀한 빛의 침대, 고생대古生代의 바다, 내 시간時間의 바닥이 환히 보이는 해변" 등은 내 의식을 객관화하여 드러내기 위한 은유의 언어이고 상상想像 속의 그림이다. 나는 불교의 선禪이 지향하는 세계를 아직 체험하지 못했지만 그 세계는 선善과 악惡, 죽음과 무無의 세계를 넘어선 푸른 바다와 같은 생명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최진연崔進淵 시인은 이 시의 앞부분 를 인용하여 "검은 꿈의 바다"를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로 해석하고, “은 불자로서 그가 도달하기를 꿈꾸는 정토淨土라는 관념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이 시의 내용을 불교의 구도 행위로 풀이하고 있다. 나는 그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어떤 고정된 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에서 의 의미를 절망적인 상황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꿈이든 꿈속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관념적觀念的이고 사색적思索的인 내용이 중심이 되는 시다. 나는 벽돌같이 딱딱한 관념을 부드럽고 신선한 상상의 언어로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어는 관념어를 배제하고 구상어具象語를 사용했으며, 객관적인 이미지와 주관적인 정서를 조화시켜 독자들에게 친근감과 시적인 감흥感興을 주기 위해서 "나"를 시의 화자로 삼아 독백조獨白調의 어조로 시를 구성하였다.           높은 산 벼랑 위 바위틈에 피어 있는  속살까지 빨간 꽃들을 아시는가    우리들이 산을 오르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땀을 들일 때  그 꽃들 만나고 가는 바람이  우리들 머리나 가슴을 향기롭게 스치고 지나가고  그 때마다 하늘은 유난히 파란 가슴을 드러내곤 하였지    높은 산 까마득한 벼랑 위  바위틈에 뿌릴 박고 피어 있는 꽃    햇볕 따뜻한 날이면  누군가 그 꽃 옆에 누워 잠을 자고 있을 거 같다  이 세상과는 영영 이별을 해버린 모습으로  한평생 찾아 헤매던 사랑을 찾은 듯한 모습으로  속살까지도 빨간 꽃 옆에서 파란 하늘을 이불 삼아  그 곳이 먼 옛날 떠나온 제집인 양 누워 있을 거 같다  ---- 전문      이 시는 어느 봄날 산행 중에 떠오른 순간적인 생각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갈무리한 시다. 높은 산 벼랑 위 바위틈에 피어 있는 속살까지 빨간 꽃은 실제의 꽃도 될 수 있지만 상상 속의 꽃으로도 확대된다. 저 신라시대 수로부인水路夫人을 유혹했던 절벽 위의 철쭉꽃으로, 아니면 이승과 저승의 중간쯤에서 피어있는 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산행山行을 할 때 우리들의 가슴을 더 향기롭게 해주는 것은 그 상상 속의 꽃들을 만나고 가는 바람의 향기라고 차원을 높여보았다. 그리고 햇볕 따스한 봄날 그 꽃 옆에 누군가 잠을 자고 있으리라고 상상의 세계를 넓혀 보았다. 여기서 "누군가"는 영원한 생명 속에 잠들고 싶어 하는 내 존재의 본래적本來的인 모습일 수도 있고, 떠나온 낙원을 그리워하는 인간존재의 한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시속의 은 영원한 생명의 고향을 상징象徵하는 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시의 기능 중에서 이 세상의 허무虛無를 극복할 수 있는 기능을 가장 궁극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은 그런 면에서 내가 아끼는 시가 되었다. 나는 이 시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시속의 빨간, 파란 등 색채언어色彩言語는 회화적인 효과를 높이고 또 의미를 상승시키는 구실을 하면서 미적 감각과 서정성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시의 표현은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의 속뜻을 짚어보면 시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는 존재로 만드는 존재의 암시와 발견, 존재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발견자요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 때문이다.                                 (월간 2003,년9월 호 발표)   
735    시의 자유의지와 자연 / 심 상 운 댓글:  조회:801  추천:0  2019-03-01
시의 자유의지와 자연 / 심 상 운                                                                        세상의 모든 시들은 자유를 꿈꾼다. 이미 태어난 시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들도 영혼을 가진 생명체들처럼 자유를 꿈꾸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꿈틀거린다. 존재의 형태로부터 또는 내용으로부터. 그래서 정형에서 벗어난 자유시(自由詩)가 태어났으며 이 자유시는 가장 보편적인 현대시로 인정받고 있다.   지식과 교양이 만들어 낸 시의 틀은 시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지만, 시가 일부 교양인들에게 향유되고 시를 사회의 계층에 고정시키는 구실을 하게 하였다. 자유를 지향하는 시의 내적욕망은 그런 언어의 틀로부터 분출하여 언어의 운율형식을 파괴하고 새롭고 자유로운 형태의 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시의 욕구는 시의 심장 속에서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그래서 현대시의 생명적인 움직임은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목표로 형이상학의 영역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절대 권력의 군주시대에는 군주의 권력을 칭송하고 복종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세속으로부터 탈피하여 개인의 자유를 노래하고 향유한 시들이 있었다. 그 시들은 자연을 지향하면서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꿈꾸는 것으로 시의 자유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들은 동양사상의 원류인 노장사상(老莊思想)에 거점을 두고 들꽃처럼 피어나서 그 향기를 천 년의 세월 너머로 보내오고 있다. 그런 시들 가운데 중국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의 시는 질박한 여운을 풍긴다. 그의 오언고시(五言古詩)「귀전원거(歸田園居)」는 관계(官界)의 그물에서 벗어나 전원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농부가 되어서 사는 사실적인 생활을 읊고 있다.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侵晨理荒穢(침신리황예)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夕露沾我衣(석로첨아의) 衣沾不足惜(의첨부족석)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콩을 남산 아래 심었더니,  풀이 무성해 콩 묘종이 드물다. 이른 새벽 기심을 매어 밭을 손보고,  달빛을 몸에 받으며 괭이를 메고 돌아온다. 길은 좁은데 초목들은 자라서  저녁 이슬이 내 잠방이를 적시누나.  옷이야 젖더라도 아까울 것 없으나,  다만 농사나 잘 되기 바라는 것이 절실한 소원이다. -최인욱(崔仁旭) 역(譯) 『고문진보(古文眞寶)』에서  이 시속에서 달빛을 몸에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정경(情景)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간 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정신의 자유로움 즉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실적인 표현이다. 이런 자연으로의 귀환은 동양에서 시의 자유가 거처하는 공간이 되었다. 어떤 무거운 관념도 사상도 정치도 침범할 수 없는 그 자유 공간은 현대시에서도 매우 소중한 정신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현대인들의 공해에 찌든 심신도 그 속에 들어가면 화평해지고 사색의 세계가 열린다.    한국의 서정시인 김소월(金素月)은 현대인들의 정신적 거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 가를 그의 짧은 시 「엄마야 누나야」에 담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걍변 살자 인공적인 거대한 구조의 공해(公害)와 물질의 욕망 속에 빠져서 미래의 밝은 청사진을 펼치기 어려운 21세기에도 자연은 변함없이 인간의 정신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은 물론 인간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정립(正立)해야 하는 시대이다. 상처입고 파괴된 자연이 언제까지 인간의 의지처(依支處)가 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자유의지를 자연 속에서 꽃 피워온 오랜 전통을 이어받은 동북아 시인들의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  2006년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발간『한중시집(韓中詩集)』1집 에서  
734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6) 댓글:  조회:1336  추천:0  2019-03-01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6)       미국편 / 공동번역: 이태주 성찬경 민재식 김수영 (1965년)     뮤리엘 루카이서(Muriel Rukeyser)     대화     제게 말을 걸어 주세요. 제 손을 잡아 주      세요. 당신은 이젠 어떠세요?   전 이 말씀을 드리겠어요. 아무 것도 숨기지      않겠어요.   제가 세 살 때, 한 꼬마애가 토끼 이야기를      읽어 줬댔죠.   그 토끼는 이야기 가운데서 죽었는데 전 의      자 밑으로 기어들어 갔댔죠.   색  토끼였어요. 그때 모두들 울지 말라고 타      일러 줬구요.     제발 절 이해해 주세요. 전 행복      하지 못해요. 전 다 털어놓겠어요.   전 지금 음악같은 하늘을 인 하얀 돛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즐겁게 우는 고동같은, 살처럼 나는 새같      은 하늘을. 그리고 절 끌어안는 팔뚝을      생각하고 있어요.   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인 배      를 타며 살고 싶어했습니다.     제게 말을 걸어 주세요. 제 손을 잡아 주      세요. 당신은 이젠 어떠세요?   제가 아홉 살 때, 저는 과일마냥 감상적이      었죠.   기분이 변덕을 부렸구요. 그리고 홀로 된      아주머니는 을 연주했는데   전 칠을 칠한 나무벽에 고개를 숙이고 울었      었지요.   전 이제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전   제 인생의 모든 시간을 당신의 인생에 바짝      이어놓고 싶어요.     전 행복하지 못해요. 전 모두 털어놓겠어      요.   전 저녁에 구석에 놓인 등(燈)불을 좋아했댔      죠. 그리고 조용한 시(詩)도.   제 인생엔 두려움이 있었답니다. 이따금      전 생각해 보죠,   그이의 인생은 정말 무슨 비극(悲劇) 위에 놓여      져 있었던가 하고.     제 손을 잡아 주세요. 제 마음을 당신의      손 안에 꼭 쥐어 주세요. 당신은 이젠      어떠세요?   제가 열네 살 때, 전 자살(自殺)의 꿈들을 꾸었      었지요.   그리고 일몰(日沒)엔 가파른 창(窓)가에 서서 죽음      을 바랐었지요.   빛이 구름과 들판을 아름답게 녹이지 않      았던들,   빛이 그 날을 바뀌게 하지 않았던들, 전      뛰어 내렸을 거예요.   전 불행해요. 전 외로워요. 말을 좀 걸어      주세요.     전 모두 털어놓겠어요. 그이는 하나도 절 좋      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이는 햇빛이 부서지는 해안을, 자그만 파      도를 타는 예쁜 입술같은 거품을   좋아했었죠. 그이는 방향을 돌리는 갈매기      를 좋아했었죠.   그이는 명랑하게 말했답니다. 난 그대를 사랑      한다구요. 저를 이해해 주세요.     당신은 이젠 어떠세요? 우리가 서로 접      촉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 나누어진 육신(肉身)이 맞잡게 될 수만      있다면   중국의 수수께끼처럼 엉키어--- 어제   저는 사람으로 들끓는 번잡한 거리에 서 있      었어요. 그리곤 아침은 빛났구요.   모두들 말없이 움직이고 있었답니다. 제      손을 잡아 주세요. 말씀 좀 해주세요.     (민재식 번역)       천공무한(天空無限)     가축 떼가 강기슭을 비켜 지나간다. 아      침을 하얗게 뒤흔들며,   어둠을 울음으로 깨뜨리면서. 우유차가      거리를 내닫는다.   차가운 우유병을 배달하면서. 대형 트럭      이 모퉁이를 질러간다.   씻기운 아스팔트 위에 바퀴를 잉잉거리면      서. 맑은 하늘이      트이고 이어 밝아 온다.              천공무한 시야무변(視野無邊)     부부는 배개 위에서 부시럭거린다. 아내는      다리를 움직여 얼굴을 창쪽으로 돌린      다.   아직도 잠결에 멍하니, 비치는 햇빛에 또      렷이 드러난 채. 남편은 검은 머리를   아내의 포근한 팔과 가슴 사이에 묻고 느      긋이 꿈결에 잠겨   옛말을 중얼거리며 영 깰 줄을 모른다. 부      부는 다시 조용해진다.               창가엔 가로등이 찰깍 꺼진다.     남편은 고개를 돌려 묻는다. 아내의      대답이다.        서북쪽에선 가벼운 강풍. 내일은 비.     거리는 길다. 쓰레기들이 즐비하고. 거지      들이   바나나 껍질과 종이곽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한다.   아내는 창으로 다가간다. 밝아오는 하늘      앞에 흐릿하고 거뭇하게,   무르익듯 완연히 임신 육개월의 배가 부      른 채.          서 있다. 공허한 하늘을 바라보면            서.     그러자 아내 남편은 말한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두 손을 배 위에 얹      어 내밀며   말없이 그를 쳐다본다. 아내는 그의 소망      을 잘 간직하고 있구나.           해 뜨는 시각은 오전 여섯 시 삼십분.               해 지는 시간은---            풍속은 19에서 30으로 변하고.     남편은 웃는다.          기상대의 정보는 정오까지 맞음.            뉴욕과 보스톤 사이엔 단운(斷雲)이 뻗쳤          다.       남편은 천천히 말을 잇는다.         워싱턴 방면은 조각구름이 뼏쳐           가고 있다.     아내는 빙      그레 대답한다.  
733    荷叶是青蛙的钢琴 文/一两阳光 댓글:  조회:1842  추천:0  2019-02-28
荷叶是青蛙的钢琴 文/一两阳光       荷叶是青蛙 一架绿色的钢琴 每天夜晚 青蛙都现场直播   池塘里的小鱼小虾 是它的粉丝 河里的鱼泡泡 都是小鱼小虾的点赞   一朵又一朵 粉红的荷花 是池塘送给 青蛙的奖赏礼物   风儿坐在 一棵树叉上 静静地聆听 夏日优美的琴声   池塘边的那条小路 不再走动 侧着耳朵、闭着眼睛去听 绿色的琴音   一群星星听不清 索性跳进池塘里听 直到天亮 才回去到天上     来源 "儿童诗歌"  
732    思念 文/胡香文 댓글:  조회:1905  추천:0  2019-02-28
思念 文/胡香文   熬过了跨年的寒假 校园生出许多思念的芽芽   教室思念嫩声嫩气的童话 红苹果和小鸭梨偶尔也会吵架   课桌思念握着彩笔的小手 把心中的理想描呀描画呀画   黑板和黑板擦 思念亲切和蔼的老师 她的微笑多像清晨的彩霞   爬满灰尘的窗台 思念红领巾的抹布帕 还有清水浇开的鲜花儿   花园里的小草 因为思念 从泥土里挤出半张小脸儿   校园里的小柳树 因为思念 都快憋出一身绿芽   操场上的秋千和蓝球架 因为思念 夜里时常说梦话   托阳光捎个话儿 托麻雀捎个话儿 快把这些事儿告诉娃娃     来源 "儿童诗歌"  
731    초현실주의 시 / 홍문표 댓글:  조회:1457  추천:0  2019-02-28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시 초현실주의 시  1) 쉬르레알리즘 선언   홍문표   1921년 다다의 일원이었던 브르똥은 「다다에 의한 모리스 바레스의 고별과 재판」이란 글을 발표하여 다다이즘의 기수인 차라를 비판하였다.   브르똥은 다다이즘과 완전히 손을 끊고, 그 사멸을 확인하게 된다. 『다다의 장례식의 행렬은 소수인으로 되어 있으나, 입체파와 미래파가 장례행렬의 뒤를 이었다』고 브르똥은 말한다. 그리고 격렬한 어조로 『모든 것을 버려라. 다다를 버려라. 너의 아내를 버려라……』라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쉬르레알리즘(surrealism)이란 초현실주의를 선언하였다.    쉬르레알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아폴리네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떤 지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절을 충분히 검토한 결과 마침내 나는 내가 맨 처음 쓴 쉬르내취럴리즘(surnaturalisme)이라는 말보다 쉬르레알리즘(surrealisme)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쉬르레알리즘이라는 말은 아직 사전에는 없지만,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에 의하여 씌여져 온 초자연주의라는 말보다는 훨씬 쓰기 쉬운 것 같이 생각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아폴리네르는 1917년 6월 24일에, 그의 초현실주의 연극 「티레지아의 유방」을 초연한다. 이 연극에는 「프로로그 및 2막으로 구성된 초현실주의 연극」이라는 부제가 있다. 어쨌든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은 아폴리네르가 처음 지어서 쓴 것이다. 그러다가 브르똥의 「쉬르레알리즘 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이 용어는 다다에 이은 새로운 예술 운동을 가리키는 결정적인 용어가 된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11 「한국 현대 모더니즘시론」(창조문학사,교보e북)에서   2) 자동기술법   홍문표   그러면, ‘초현실’이란 무엇인가? 선험적인 ‘객관적 의지’ 그 자체에 표현의 대상을 두는 것이다. ‘객관적 의지’란 인간의 의지가 주관의 세계 곧 현실을 부수고 완전한 것이 되려고 하는 힘이다. 곧 신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주관의 세계, 곧 현실로부터 자유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종류의 예술 표현 방법, 곧 표현에 쓰는 재료는 현실의 사상, 감정에 반대되는 것이다.   1921년과 1924년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초현실주의의 최초의 작품인 「자장」이 1921년에 간행된다. 이 시집은 브르똥과 수뽀의 공동 작품인데, 이것은 「쉬르레알리즘선언」이 발표되기 전에 출판되었지만 초현실주의의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이 작품은, 심리적 자동성을 강조한 이른바 「자동기술법」(automatisme)을 실험한 것이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11 「한국 현대 모더니즘시론」(창조문학사,교보e북)에서   초현실주의 시 3) 데페이즈망   홍문표   브르똥은 「제1차 쉬르레알리즘 선언」에서 꿈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나는 꿈과 현실이라는, 외견상 이것만큼 모순되는 두 개의 상태가, 미래에 있어서 이른바 초현실이라고도 할 일종의 절대적 현실에 용해되는 것을 믿고 있다』 쉬르레알리스트들의 꿈을 강조하는 것은 꿈과 현실을 미래의 초현실 속에 융합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적 오브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데페이제(dépaysé=위치 전환)된 사물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물 본래의 습관적인 틀에서 끌어내어, 그 사물이 가진 본래의 용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혹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사용법으로 사용된 사물이 곧 초현실적 오브제이다.    따라서,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만족 이외에는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고, 전혀 무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오브제, 따라서 또 무의식과 꿈의 욕구에 따라 만들어진 모든 오브제가, 그대로 초현실적 오브제이다. 위치 전환, 곧 쟁기나 수도꼭지나 양산이나 나사와 같은 사물을 본래의 용도에서 떼어내어 그 위치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본래의 용도를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의식을 환기하는 오브제가 된다. 이것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한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11 「한국 현대 모더니즘시론」(창조문학사,교보e북)에서   초현실주의 시  4) 콜라즈   홍문표   콜라즈(collage)의 방법도 초현실적 오브제를 만드는 한 방법이다. 그림에 신문조각, 떨어진 끈 등을 붙이는 화가들도 있다. 막스 에른스트가 시도한 콜라즈의 수법은 그 사물이 있어야 할 예기된 장소와는 다른, 전혀 예기 하지 않았던 장소에 둠으로써 오브제로서의 심연한 표현을 보이거나, 잠재의식의 어두운 영역에까지 밀어 넣은 오브제라고 할 수 있다.   1966년 쉬르레알리즘의 실질적 대표자인 브르똥의 사망으로 쉬르레알리즘은 끝났다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많은 문제를 우리 앞에 던져 놓았고, 그 문제는 계속해서 예술과 시와 사회에 작용할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초정신적 국면이 있다. 초현실주의의 혁명적인 실험 정신은 현실을 뛰어 넘어 육체의 눈이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 초현실주의는 선악이나 미추를 뛰어 넘은 자기의 내부 속으로 하강한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11 「한국 현대 모더니즘시론」(창조문학사,교보e북)에서  
730    명상과 시 / 장석주 댓글:  조회:1224  추천:0  2019-02-28
명상과 시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시를 쓰는 자들이 "비가 온다."고 표현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본디 비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온다."는 것은 사람의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있어온 현상이다. 비는 언제나 있다. 그것은 오고 가지 않는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도 비라는 현상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주체로 고정시키고 사물들을 객체화하는 인간 중심의 오래된 인습이 비를 제 몸 가까이 끌어당겨 "비가 온다."라고 쓰게 한다. 국소적 공간 경험에 갇혀 있는 자들만이 "비가 온다."고 쓴다.  좋은 시인은 "비가 온다."라고 쓰지 않는다. 제 몸의 경험을 받들어 이렇게 쓴다. "점, 점, 점, 사나워지는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주용일, 「봄비」)  "나무에서 나오는 방법은 나무를 통하는 길뿐이다."(프랑시스 퐁쥬)  명상은 인습적 관념의 속박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명상은 시의 반숙(半熟)이다. 그럼 완숙은 어떤 경지일까? 열반(涅槃). 하나의 현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순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 시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짓이다. 시는 우주의 데이터 베이스를 훔치는 짓이다. 플라톤이 역정을 내며 이상국가에서 시인들을 모조리 추방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화국에서 시인들은 파렴치한 자들이라고 낙인찍힌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1964년에 소비에뜨 공화국의 법정은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인 브로드스키를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하지 않는 기생충"이라고 규정지었다. 그 법정에서 있었던 심문 내용의 일부를 보자. 판사: 당신은 누구인가? 브로드스키: 나는 시인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판사: '~ 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브로드스키: 나는 시를 쓴다. 출판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판사: 당신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 브로드스키: 나는 시를 썼다. 그것이 내 일이다. 판사: 당신을 시인으로 공인한 것은 누구인가? 브로드스키: 없다. 그것은 나를 인간으로 공인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판사: 소비에뜨에서는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당신은 왜 일을 하지 않았는가. 브로드스키: 나는 일을 했다. 시가 나의 일이다. 나는 시인이다. 결국 브로드스키는 공화국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스키의 재판은 시의 DNA가 생물학적 합목적성과 무관하며 공익적 세계의 건설에 기여하는 바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혀준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시학』에서 "시인들에 대한 비난은 다음의 다섯 종류, 즉 불가능, 불합리, 도덕적으로 해로운 요소, 모순, 시 창작 기술의 올바른 기준에 반하는 것 등으로 구분된다."고 쓰고 있다. 시, 무용한 짓. 상상임신. 옐로카드를 받는 헐리우드 액션. 쇼펜하우어는 그것이 의지와 표상 사이에 있다,고 선언했다. 베르그송은 그것이 생의 비약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시의 미학적 선택에 내재한 반도덕성, 무용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명상은 초언어(超言語)를 지향한다. 초언어는 '나'와 '너'의 분별이 없는 태허(太虛)의 상태다. 가령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다음/너, 가련한 육체여/살 것 같으니 술 생각나냐?"(김형영, 「일기」).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뒤 비어서 가뿐한 몸에서 태허를 감지한다.  명상은 그 태허의 상태에서 사물들의 저편에 숨은 신을 만나는 일이다. 숨은 신은 죽은 고양이다. 어느 선사에게 물었다.―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죽은 고양이다. "국도 한 가운데 널브러져 있는/죽은 고양이의/저 망가진 외출복!"(이창기 「봄과 고양이」)  명상과 시는 그 계통분류상 다른 가지에 속해 있다. 하지만 명상과 시는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명상에서 깨달음은 갑자기 온다. 시의 영감도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순간에 뇌속에서 부화한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아니었음, 침묵도 아니었어,/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밤의 가지에서,/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격렬한 불 속에서 불러어,/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 얼굴 없이 있는 나를/그건 건드리더군."(파블로 네루다, 「시」) 사람들은 깨달음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한다. 일본 불교의 한 맥인 본각사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이미 깨달았으니 다른 좌선도 필요 없고, 악을 행하는 것도 자유다. 조악무애(造惡無碍)의 뿌리가 본각사상이다. 도겐(道元, 1200~ 1253)도 그 영향권 아래에 있던 승려다. 도겐은 수행의 결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게 아니라 좌선 그 자체가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깨달음은 없다. 깨달음을 향한 지향이 있을 뿐이다.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언어라는 도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되 궁극에는 언어를 버려야 한다. 퐁쥬는 새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새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 "하늘의 쥐, 고깃덩이 번개, 수뢰, 깃털로 된 배, 식물의 이"도 그 중의 일부다. 그러나 새는 공중에서 미끄러지듯 활강하지만, 프랑시스 퐁쥬가 원할 때 그의 시 속으로 날아들지는 않는다.  시는 언어를 딛고 언어를 넘어간다. 시는 없다. 시를 지향하는 마음 그 자체가 있을 뿐이다.  시와 명상은 다 함께 초언어를 지향하지만 시는 방법적 도구로 언어를 쓴다. 언어는 물(物)을 지시하는 기호다. 언어는 물이 아니다. 언어는 관념이다. 언어는 나와 물 사이에 있다. 언어는 나와 세계, 존재와 부재 사이에 걸쳐진 다리다.  시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의미론적 연관의 장(場)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만나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의 여백들에 메아리치고 있는 비언어적인 울림 속에서다.  시는 언어가 아니다. 시는 언어와 언어 사이 그 여백에서 아직 형태소(形態素)를 얻지 못한 생성하는 언어, 발효하는 언어다.  시는 의미가 아니다. 의미 이전이다. 이를테면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혹은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얼룩"(김기택, 「얼룩」)와 같은 구절들은 시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미의 잠재태(潛在態)임을 말해준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읽은 모든 작가들이 바로 나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사랑한 모든 여인들이 바로 나다. 또 나는 내가 갔던 모든 도시이기도 하며 내 모든 조상이기도 하다." 거울과 부성(父性)은 시와 상극이다. 다시 보르헤스는 말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거울의 뒷면, 그 텅 빈 공허를 본다. "내가 보는 것은 늘 청동거울의 뒷면이다"(조용미, 「청동거울의 뒷면」) 의미로서의 시는 사물로서의 시보다 하급이다. B급이다. 하이쿠는 17자로 끝난다. 의미가 언어의 양에 비례한다면 하이쿠는 가장 무의미한 언어의 형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의 의미는 대개는 언어와 반비례한다. 하이쿠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 형식 중에서 가장 슬림하다. 하이쿠는 해석의 언어가 아니다. 사물과 만나는 순간의 아주 희미한 떨림을 기록한다. 그것은 아직 시로 진화하기 이전의 원시적 흔적이다. 하이쿠에서 언어에 대한 근검절약은 의미에 대한 태만으로 이어진다. 가장 성공한 하이쿠는 무의미의 의미를 체현해낸다. 하이쿠는 언어가 아니라 사물의 은폐된 후경(後景)을 겨냥한다. 하이쿠는 오류와 우연들에 필연의 에너지를 수혈하는 선(禪)과 명상에 가깝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하나 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쉼보르스카, 「두 번이란 없다」) 명상은 사물의 계통분류상 속(屬)이고 시는 그 하위에 속하는 종(種)이다. 명상은 유실수고, 시는 앵두나무다.     출처 : http://cafe.daum.net/poem-reader?t__nil_cafemy=item  
729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댓글:  조회:1572  추천:0  2019-02-28
시 창작의 가장 핵심적 비법           * 시학 (詩學)                                                           시인.사상가 - 손홍집      - 시는 점등의 불빛을 하나로 엮은 사슬처럼 미지적 숲에 등불을 켜고 홀로    걷는 나그네의 가장 고독한 숨결이요,그 역사이다.   -시는 시인의 삶이 항상 치열하고,예술혼은 불타며 내면은 끓어오르고,   육체는 그 뭔가를 위해 방황해야 비로소 그 깊이를 추구 할 수 있다.   - 시는 자신을 거친 도마 위에 올려놓는 파닥이는 고기처럼 스스로 실험하고   그 깊이가 아니면,결코 큰 울림이나 거시적 미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   -시는 작가적 사상과 철학이 농축되어 맑은 물처럼 가라앉은 상태에서    마치 고요한 연꽃처럼 피어있는 형체.   - 시란 간결함 속에 그 뜻을 비치고 그것이 은은한 향기로 독자에게 다가와    마침내 그 상대의 내면과 정신에 큰 울림을 준 그 가치와 척도.   - 시란 관념에 해당하는 나무의 뿌리나 줄기의 흐름을 새롭게 변형시켜     꽃으로 환하게 피운 최후의 숨결과 그 자취의 흔적.   -시란 현실이란 작은 촛점을 거대한 망원렌즈로 바라보는 시각이요,   반대로 지나온 세월을 보다 작게 축소시켜 비쳐주는 새로운 거울.   -시란 현실이란 미개세계를 작가적 지각에서 빛처럼 투망하여   보다 먼 미래적 싯점을 비쳐주는 햇살같은 빛의 일종.   -시는 작가적 내면의 숭고한 정신과 영혼을 그 모체(母體)로 탄생하여    마침내 개체적 변환을 거친 후 개성적 순환을 거친 어떤 유형체.   -시란 깊은 고뇌와 고통의 수레바퀴에 자신을 내던져 그 안에서 싹튼   숭고한 의식과 새로운 정신을 갖춘 최후의 작업이요,그 의식체.   -시란 단 한순간 빛처럼 떠오른 착상을 새롭게 영상매체로 꾸미는 작업이요,   그로 인해 자신의 지각을 일깨워 잠든 사물을 일깨우는 위대한 힘.   -시란 마음의 눈으로 품고,정신으로 그 의미성을 일깨우며,최후 그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이요,그로 인해 천 개의 눈빛을 갖춘 영혼의 집합체이다.   -시란 작가적 삶과 체험이 녹고 응축되어 흐른 영혼의 슬픈 목가적 빗소리와    그 음률이요,보다 높은 사상성을 위해 비상하는 새의 깃털같은 것.   -시란 자신이 마지막 절망에 도달했을 때 마치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 뻗쳐   종교에 구원하듯이,작가의 혼과 정신을 그에 바친 최후의 기도서이다.     * 시는 지식이 아니다.보다 고도의 경험적 세계이다- 고로 생을 많이 체험하고,    많이 비교하며 사고하고, 많이 퇴고하고, 쓴 것을 많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듯,아님 물이 정화되듯이 조용히 그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도 꼭 갖춰야 정작 훌륭한 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위대한 인물이라면 자신의 타오르는 심장을 용광로 속에서     담금질한 언어를 직접 탄생시킬 수 있다!   ---------------------------------------------------------------------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저 바닷속 밑바닥의 조개에서 한알의 진주를 케내온 작업이다.-(열정)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가슴속의 사무친 멍울이 피를토해 마지막 단절된 그 숨결을 어루만지는 일이다.-(실천)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동굴에서 포도주가 오랫토록 숙성되어 최후의 그 깊고 오묘한 맛을 드러내는 순간이다.-(인내)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고욱(苦煜)의 참담한 눈꽃들이 핀 외진 산길을 한없이 고독하게 홀로 걷는 발걸음이다.-(고행)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자연을 한 호흡에 갖추기 위한 나의 최후의 몸부림이요,그 열매이다.-(사랑,나눔)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과정과 그 환희의 불꽃들을 보다 찬란하게 펼치는 환희의 광경이다.-(예술적 승화)           * 시 창작의 열가지 비법   첫째: 모든 사물과 친근한 벗이되라.        (모든 사물은 곧 시의 재료이며 또한 자신을 키우는 훌륭한 스승에 해당한다.)   둘째:작게 스친 영감을 그대로 놓치지 말라.        (짧게 스쳐간 착상이나 영감은 그것이 테마가 되어 정작 큰 작품의 줄기를 형성한다.)   셋째:삶에 대한 철저한 체험을 갖추라.        (어떤 일을하면 그냥 쉽게 처리하려든 생각보다 그 일의 깊이에 빠져 생활해야 한다.미친듯이-)   넷째: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버릇을 길들여라.        (작은 환경에 만족하면 그 의식체는 곧 고인 물에 해당한다.고로 창조자는 항상 새로움에 눈뜨라.)   다섯째: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        (어느 순간에 훌륭한 착상이나 영감이 떠오를지 모른 상태기에 항상 그것을 기다리는 자세라야 한다)   여섯째:때론 긍정보다 부정적 시각을 갖추라.       (긍정은 가장 일반적인 시각이다.그러나 그 긍정을 부정으로 바라봄은 파라독스를 제공한다.)   일곱째:모든 사물을 쳐다보면 먼저 의심하는 눈초리를 갖추고 점차 깊은 시각으로 관찰 투시하라.       (작은 돌맹이 하나에서부터 이름없는 풀 한포기를 쳐다봐도 그들의 깊은 내면을 읽어야 한다)   여덟째:고독한 환경에 갖혀 생활하고 최대한 말을 줄여라.       (고독은 시인의 집이다.또한 말이 많으면 정화될 시어들을 모두 미리 흘려버린 경우에 해당한다. 말은 곧 시다)   아홉째:문체와 문장을 항상 다듬고 조율하라.       (시어에 꼭 필요한 낱말이 들었는지,아님 전체 문장은 꼭 짜임새를 갖췄는지 항상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   열번째:홀로 고요히 참회하는 습관으로 시를 쓰라.       (참회란 곧 자신을 씻는 일이다.그로 인해 항상 마음을 닦고 정신을 일깨우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얼어붙은 토양을 일궈 그곳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스쳐가는 바람을 붙잡아 작고 투망한 그물에 가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피끊는 정열로 사막에 오아시스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약속없는 땅에 새로운 약속의 뜻을 세우는 거룩한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이 부활토록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과 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의 교량을 건설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곳에 미래적 사유의 집을 짓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진리가 철저히 외면당할 때 그것을 보상받기 위한 노력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범람하던 자신의 의식체를 다스려 고요히 그 강물이 잠들게 하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절망의 나락에서 최후로 자신의 의식을 찾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고요한 아침의 햇살을 품에안고 새로운 에너지를 축적시키는 일이다.   한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삶의 가장 진실한 참회록이다.     * 글을 쓰는 의미와 방법 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첫째: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자세로 써야 한다. 둘째:생을 관조하는 정신으로 써야한다. 셋째: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개척하는 위치에서 써야한다. 넷째:타인과의 동조의식에서 나눔이란 법칙을 성립해야 한다. 다섯째:그 모두를 다 버리는 과정으로 다시 되새김질 해야 한다.   ------------------------------------------------------------     ** 시에 대한 몇가지 명언들.. -시는 간소함에 대한 사색이다.-시란 좋은 친구, 관용의 미소이다. -시란 곧 부활하는 생명의 몸짓이다.-시란 경험에 의한 자신의 미래적 성찰이다.-시란 고상한 감정의 순환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기법이요, 보다 고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간들의 욕구이다.-시란 기다림의 미학이요,관찰자적 영감과 철학이 내재된 운율의 오묘한 조화성이다. *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나의 생명이 위태롭거나 험한 수렁에 빠질 때 스스로 구원을 얻기 위함이다.고로 그것은 나의 신비로운 생명의 힘이요,축적된 구원자의 언어요,힘차게 솟구치는 대지 위의 파란 새싹들의 함성이다. *시를 쓰는 것은,즉 예술가가 그 예술행위를 하는 것은 곧 죽음의 문턱을 스스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뿌리쳐도 다시 그 세계에 빠지는 이유는 오직 그것을 극복함으써만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poem-reader?t__nil_cafemy=item  
728    365일 탄생화와 꽃말 사전 댓글:  조회:2305  추천:0  2019-02-28
365일 탄생화와 꽃말 사전     개나리(Forsythia) 기대 거베라(Gerbera) 순수 과꽃 (China Aster) 믿음직한 사랑 국화 (Chrysanthemum)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빨강: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랑: 섬세한 사랑 흰색: 진실 글라디올러스 (Gladiolus) 진실 군자란 (Scarlet Kafirlily) 우아 금어초 (Snapdragon) 상냥한 숙녀   나스타 치움(한련화) 애국심 나팔꽃 (Morning-Glory) 기쁜 소식 네프로레피스 (Nephrolepis) 매혹 노루귀 (Hepatica) 인내   다알리아 (Dahlia) 변하기 쉬운 마음 데이지 (Daisy) 순수 도금양 (Myrtle) 사랑 도라지 (Ballon-Flower) 상냥하고 따듯함 독일 창포 (German Iris) 멋진 결혼 동백 (Camellia) 빨강: 당신은 내마음의 불꽃입니다. 흰색: 당신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라벤다 (Lavendar) 불신(Distrust) 라일락 (Lilac) 아름다움   흰색: 아름다운 약속 레몬 (Lemon) 진심으로 사모함 레몬밤 (Lemon Balm) 동정심(Sympathy), 위로 레몬 버베나 (Lemon Verbena) 인내 로즈마리 (Rosemary) 기억(Rememberance), 당신의 존재로 나를 소생 시킨다 로즈제라늄 (Rose Geranium) 선택 루 모멸 루피너스 (Lupinus) 모정   마가렛 (Maguerite) 마음속에 감춘 사랑 매쉬 메리골드(Mash Marigold) 반드시 오고야말 행복 매화 (Prunus Mume) 고결한 마음 머그워트(쑥) 행 복 메리골드 (Marigold) 질투 모란 (Peony) 행복한 결혼 목련 (Magnolia) 고귀함 물망초 (Forget-Me-Not) 진실한 사랑 미모사 (Humble Plant) 예민한 마음 민들레 (Dandelion) 행복 민트 (Mint) 미덕   바질(Basil) 증오(Hatret) 바베나 (Verbena) 행복 바이올렛 (Violet) 정숙함   파랑: 신뢰    흰색: 우리 함께 행복을 잡아봐요, 박하 (Mint) 미덕 발레리안 (Valerian) 기가 꺽이지 않는 성질 백일홍 (Zinnia) 애착   빨강: 끈임없는 애정    주홍: 변함없는 마음 노랑: 늘 생각함 흰색: 친절 백합(Lilly) 당신과 함께 있으니 꿈만 같아요 버베인 (Vervain) 마법, 매혹 베 이(월계수) 영 광 베고니아 (Begonia) 조심스러움 보리지(Borage) 둔감(Bluntness) 봉선화 빨강 (Balsam) 내게 손대지 마세요 빙카 (Periwinkle) 즐거운 추억   사프란(Springcrocus) 아름다운 청춘   노랑: 청춘의 환희 세이지 (Sage) 가정적인 덕(Domestic virtue), 존경 수국 (Hydrangea) 이해해주니 고마워요 수레 국화 (Corn Flower) 행복 수선화 (Narcissus) 편안히 지내세요 수련 (Water Lily) 청순한 마음 스노우드롭( Snowdrop) 희망 스위트피 (Sweet Pea) 사랑스러운 시간 너무나 고마웠어요 스위트바질 (Sweet Basil) 호의 스토크 (Stock) 당신은 내게 언제나 아름다워요. 스피아민트 (Spearmint) 따뜻한 마음 시클라멘 (Cyclamen) 내성적 성격   아가판사스 (Agaphanthis) 비밀스런 사랑 아네모네 (Wind Flower) 진실 아도니스 (Adonis) 영원한 행복 아르메리아 (Armeria) 배려 아마릴리스 (Amaryllis) 프라이드 아스파라거스 (Asparagus) 불변 아이리스 (Iris) 소식(Message), 당신의 우정은 내게 너무나 많은 의미가 있어요 아이비 (Ivy) 궂게 맺어진 사랑 아이비 제라늄 (Lvyleaved Geranium) 진실한 애정 아스타 (Aster) 사랑의 표시 안스륨 (Flaming Flower) 사랑에 번민하는 마음 안젤리카(신선초) 영감, 감화 야 로 (Yarrow) 싸 움 야생화(Wild Flower) 친숙한 자연 양귀비 (Poppy) 상상   빨강: 기쁨    노랑: 풍족함 엘다(Elder) 열중(Zealousness) 연꽃 (Lotus) 소원해진 사랑 용담 (Gentina) 슬픈 그대가 좋아요 원추리( Daylily) 매혹 인동 (Honey Suckle) 사랑의 인연   자스민 (Jasmine) 온순(Amiability), 행운을 빌어요 제비꽃 보라 (Violet) 사랑   노랑: 수줍은 사랑    흰색: 순진 무구한 사랑 장미 (Rose) 사랑(Love)   빨강: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황: 욕망 노랑: 기쁨 흰색: 순수    분홍: 당신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진분홍: 고마워요 연핑크: 찬양    복숭아빛: 우리 함께 있어요 흰색과 빨강: 결합    빨강과 노랑: 축하해요 장미 한송이: 영원한 사랑    장미 두송이, 묶음: 결혼약속 접시꽃 (Holly Hock) 열렬한 연애 제라늄 (Geranium) 그대와 함께하는 행복 종려나무 (Windmill Palm) 승리 쥬니퍼베리(Juniper berry) 보호(Protection)   창포 (Flag Lris) 우아한 마음 채송화 (Rose Mose) 가련 철쭉 (Azalea) 사랑의 기쁨 초롱꽃 (Canterbery Bell ) 감사 치자나무 (Cape Jasmine) 당신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치 커 리 (Chicory) 절 약 챠빌(Chervil) 성실(Sincerity)   카네이션 (Carnation) 열정   빨강: 당신이 그립습니다.    분홍: 당신을 잊지 않겠어요 흰색: 순수    노랑: 당신은 나를 실망시켰어요. 카틀레야 (Cattleya) 성숙한 매력 칸나 (Canna) 존경 칼라 (Calla) 순결 칼라듐 (Calladium) 넘치는 기쁨 캐모마일(Chamomile) 역경에서의 힘(Energy in a adversity), 숨겨진 아름다움 코리안다(Coriander) 감추어진 가치(Hidden worth), 아름다운 점 코스모스 (Cosmos) 순정 크래손(Cress) 안정성. 힘(Stability / Power) 크로커스 (Crocus) 기쁨 클로바(Clover) 약속 클레마티스 (Clematis) 아름다운 마음   타임 (Thyme) 용기(Activity) 탠 지 (Tansy) 당신에게 도전한다 튜울립 (Tulipa) 멋진 애인   빨강: 사랑의 선포    노랑: 사랑의 표시    보라: 영원한 애정 복색: 아름다운 눈동자   파슬리 (Parsley) 축 제 패랭이꽃 (Superb Pink) 사랑 팬지 (Pansy) 유쾌함 페니로얄 (Pennyroyal) 도 피 페츄니아 (Petunia) 당신이 곁에 있으니 위로가 됩니다 페파민트 (Peppermint) 미덕(Virtue), 진심 포인세치아 (Poinsettia) 축복 프리뮬러 (Primrose) 당신없인 살 수 없어요 프리지아 (Freesia) 신뢰 플록스 (Phlox) 온화     하이비스커스(Hibiscus) 섬세한 미(Delicate beauty) 한련화 (Nasturtium) 애국심 해바라기 (Sun Flower) 프라이드 헬리오토로프 (Heliotorope) 사랑이여 영원하라 휀넬(Fennel) 모든 칭찬에의 가치(Worthy all praise), 정신적 강함 홉프(Hop) 불공평(Injustice) 히솝(Hyssop) 청결(Cleanliness) 히야신스(Hyacinth) 차분한 사랑   보라: 미안해요    흰색: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노랑: 질투   ★갈대 친절, 믿음, 지혜 ★고사리 유혹 ★공작깃 화려 ★군자란 고귀, 우아 ★귤나무꽃 친애, 깨끗한 사랑 ★금잔화 이별의 슬픔, 실망 ★나리 순결, 깨끗한 마음 ★난초 청초한 아름다움 ★네프로레피스 매혹 ★다래넝쿨 깊은 사랑 ★달맞이꽃 소원, 기다림, 마법 ★도라지 상냥한 미소, 소망 ★라일락 첫사랑의 정시 ★무궁화 일편단심 ★민들레 내사랑 그대에게 ★별꽃 추억 ★부용 섬세한 아름다움 ★샐비어 타는 생각, 나의 마음은 불타고 있습니다. ★석산 슬픈 추억 ★수선화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유우칼리 추억 ★인동덩쿨 가슴의 두근거림 ★아스타 믿는 사랑, 추억 ★에델바이스 귀중한 추억 ★연꽃 당신이 아름다운 것처럼 당신의 마음도 아름답다 ★쟈스민 당신은 나의 것, 사랑의 기쁨 ★제비꽃 성실, 나를생각해주세요 ★천일홍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 ★카베라 신비함 ★튜울립 사랑의 고백, 매혹 ★트리토마 진실한 마음   스노우드롭 - 첫사랑의 한숨 사프란 - 후회없는 청춘 흰색 제비꽃 - 차분한 사랑 노란색 제비꽃 - 수줍은 사랑 회양목 - 참고 견디어요 향기알리섬 - 빼어난 아름다움 매쉬 메리골드 - 행복은 반드시 온다 양치 - 사랑스러움 물망초 - 나를 잊지 마세요 은매화 - 사랑의 속삭임 카모밀레 -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삼나무 - 그대를 위해 살다 무궁화 - 일편단심 살구꽃 - 아가씨의 수줍음 당근 - 죽음도 아깝지 않다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스노우 드롭(Snow Drop) 희망 2일 수선화 (Narcissus) 사랑에 답하여 3일 샤프란(Spring Crocus) 후회없는 청춘 4일 히야신스 (Hyacinth) 차분한 사랑 5일 노루귀(Hepatica) 인내 6일 제비꽃 (Violet) 순진무구한 7일 튜우립(Tulipa) 실연 8일 제비꽃 (Violet) 사랑 9일 제비꽃 (Violet) 수줍은 사랑 10일 회양목(Box-Tree) 참고 견뎌냄 11일 측백나무(Arbor-Vitae) 견고한 우정 12일 향기 알리섬(Sweet Alyssum) 뛰어난 아름다움 13일 수선화(Narcissus) 신비 14일 시클라멘(Cyclamen) 내성적 성격 15일 가시(Thorn) 엄격 16일 히야신스 (Hyacinth) 승부 17일 수영(Rumex) 친근한 정 18일 어저귀(Indian mallow) 억측 19일 소나무(Pine) 불로장생 20일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천진난만 21일 담쟁이덩굴(Ivy) 우정 22일 이끼(Moss) 모성애 23일 부들(Bullrusb) 순종 24일 사프란(Saffron-Crocus) 절도의 미 25일 점나도나물(Cerastium) 순진 26일 미모사(Humble Plant) 예민한 마음 27일 마가목(Sorbus) 게으름없는 마음 28일 검은 포프라(Black Poplar) 용기 29일 이끼(Moss) 모성애 30일 매쉬 메리골드 꼭 오고야말 행복 31일 샤프란(노랑)(Spring-Crocus) 청춘의 환희   2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앵초(Primrose) 젊은 시절과 고뇌 2일 모과(Chaendmeles) 평범 3일 황새냉이(Cardamine) 그대에게 바친다 4일 앵초(Primrose) 자연의 아름다움 5일 양치(Fern) 사랑스러움 6일 바위솔(Horse-Leek) 가사에 근면 7일 물망초(Forget-Me-Not) 날 잊지 말아요 8일 범의귀(Saxifrage) 절실한 애정 9일 은매화(Myrtle) 사랑의 속삭임 10일 서향(Winter Daphne) 영광 11일 멜리사(Balm) 동정 12일 쥐꼬리망초(Justicia Procumbes) 가련미의 극치 13일 갈풀(Canary Grass) 끈기 14일 카모밀레(Chamomile) 굴하지않는 강인함 15일 삼나무(Cedar) 그대를위해 살다 16일 월계수(Victor's Laurel) 명예 17일 야생화(Wild Flowers) 친숙한 자연 18일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천진난만 19일 떡갈나무(Oak) 붙임성이 좋다 20일 칼미아(Kalmia) 커다란 희망 21일 네모필라(California Blue-bell) 애국심 22일 무궁화(Rose of Sharon) 아름다움 23일 살구꽃(Prunus) 아가씨의 수줍음 24일 빙카(Periwinkle) 즐거운 추억 25일 사향장미(Musk Rose) 변덕스런 사랑 26일 아도니스(Adonis) 추억 27일 이라비아의 별(Star of Arabia) 순수 28일 보리(Straw) 일치단결 29일 아르메리아(Armeria) 배려   3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수선화(Narcissus) 자존 2일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아름다운 인격 3일 자운영(Astragalus) 나의행복 4일 나무딸기(Raspberry) 애정 5일 수레국화(Corn Flower) 행복감 6일 데이지(Daisy) 명랑 7일 황새냉이(Cardamine) 사무치는 그리움 8일 밤꽃(Castanea) 진심 9일 낙엽송(Larch) 대담 10일 느릅나무(Hackberry) 고귀함 11일 씀바귀(Ixeris) 순박함 12일 수양버들(Weeping Willow) 사랑의 슬픔 13일 산옥잠화(Day Lily) 사랑의 망각 14일 아몬드(Almond) 희망 15일 독(毒)당근(Conium Macutatum) 죽음을 불사하는 16일 박하(Mint) 미덕 17일 콩꽃(Beans) 꼭 오고야말 행복 18일 아스파라거스(Asparagus) 무변화 19일 치자나무(Cape Jasmine) 한없는 즐거움 20일 튜우립(Toulipa) 영원한 애정 21일 벚꽃난(Honey-Plant) 인생의 출발 22일 당아욱(Mallow) 은혜 23일 글라디올러스(Gladiolus) 정열적인 사랑 24일 금영화(California Poppy) 희망 25일 덩굴성 식물(Climbing Plant) 아름다움 26일 앵초(Primrose) 첫사랑 27일 칼세올라리아(Calceolaria) 도움 28일 꽃아카시아나무(Robinia Hispida) 품위 29일 우엉(Arctium) 괴롭히지 말아요 30일 금작화(Broom) 청초 31일 흑종초(Nigella Damascena) 꿈길의 애정   4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아몬드(Almond) 진실된 사랑 2일 아네모네(Wind Flower) 기대 3일 나팔수선화(Daffodil) 존경 4일 아네모네(Wind Flower) 그대를 사랑해 5일 무화과(Fig-Tree) 풍부 6일 아도니스(Adinis) 영원한 행복 7일 공작고사리(Adiantum) 신명 8일 금작화(Broom) 박애 9일 벚나무(Cherry) 정신미 10일 빙카(Periwinkle) 즐거운 추억 11일 꽃고비(Bleminium Coeruleum) 와 주세요 12일 복숭아꽃(Peach) 사랑의 노예 13일 페르시아 국화(Golden Wave) 경쟁심 14일 나팔꽃(Morning-Glory) 넘치는 기쁨 15일 펜 오키드(Fen Orchid) 훌륭함 16일 튜우립(Tulipa) 아름다운 눈동자 17일 독일 창포(German Iris) 멋진결혼 18일 자운영(Astragalus) 감화 19일 참제비고깔(Larkspur) 청명 20일 배나무(Pear) 온화한 애정 21일 수양버들(Weeping Willow) 내 가슴의 슬픔 22일 과꽃(China Aster) 믿음직한 사랑 23일 도라지(Balloon-Flower) 상냥하고 따뜻함 24일 제라늄(Geranium) 결심 25일 중국 패모(Fritillara Thunbergii) 위엄 26일 논냉이(Cardamine Iyrata) 불타는 애정 27일 수련(Water Lily) 청순한 마음 28일 앵초 (Primrose) 아름다움 29일 동백나무(Camellia) 매력 30일 금사슬나무(Golden-Chain) 슬픈 아름다움   5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앵초 (Primrose) 젊은 날의 슬픔 2일 미나리아재비(Butter Cup) 천진난만함 3일 민들레(Dandelion) 신탁(神託) 4일 딸기(Strawberry) 존중과 애정 5일 은방울꽃(Maylily) 섬세함 6일 비단향나무(Stock) 영원한 아름다움 7일 딸기[잎](Strawberry) 사랑과 존경 8일 수련(Water Lily) 청순한 마음 9일 겹벚꽃(Prunus) 정숙,단아함 10일 꽃창포(Flag Iris) 우아한 마음 11일 사과(Apple) 유혹 12일 라일락(Lilac) 사랑의 싹 13일 산사나무(Hawthorn) 유일한 사랑 14일 매발톱꽃(Columbine) 승리의 맹세 15일 물망초(Forget-me-not) 진실한 사랑 16일 조밥나물(Hieracium) 선언 17일 튜우립 (Tulipa) 사랑의 표시 18일 앵초(Oxlip) 첫사랑 19일 아리스타타(Aristata) 아름다움 소유자 20일 괭이밥(Wood Sorrel) 빛나는 마음 21일 참제비고깔 (Larkspur) 자유 22일 귀고리꽃(Ear Drops) 열렬한 마음 23일 풀의 싹(Leaf Buds) 첫사랑의 추억 24일 헬리오토로프(Heliotorope) 영원한 사랑이여 25일 삼색제비꽃(Pansy) 순애 26일 올리브나무(Olive) 평화 27일 데이지(Daisy) 순수한 마음 28일 박하(Mint) 미덕 29일 토끼풀(Clover) 쾌활 30일 라일락(Lilac) 사랑의 싹이 트다 31일 무릇(Scilla) 강한 자제력   6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장미(Madien Blush Rose) 내마음 아는 그대 2일 매발톱꽃(Columbine) 솔직 3일 아마(Plax) 감사 4일 장미(Damaskrose) 아름다운 얼굴 5일 메리골드(Marigold) 가련한 애정 6일 붓꽃(Yellow Water Flag) 믿는 자의 행복 7일 슈미트티아나(Schmidtiana) 사모하는 마음 8일 쟈스민(Jasmine) 사랑스러움 9일 스위트피(Sweet pea) 우아한 추억 10일 수염패랭이꽃(Sweet William) 의협심 11일 중국패모(Fritillaria Thunbergii) 위엄 12일 레제다 오도라타(Reseda Odorata) 매력 13일 디기탈리스(Fax Glove) 가슴 속의 생각 14일 뚜껑별꽃(Anagallis) 추상 15일 카네이션(Carnation) 정열 16일 튜메로즈(Tube Rose) 위험한 쾌락 17일 토끼풀(Clover) 감화 18일 백리향(Thyme) 용기 19일 장미(Sweet Brier) 사랑 20일 꼬리풀(Speedwell) 달성 21일 달맞이꽃(Evening Primrose) 자유스러운 마음 22일 가막살나무(Vihurnum) 강한 사랑의 힘 23일 접시꽃(Holly Hock) 열렬한 연애 24일 버베나(Garden Verbena) 가족의 화합 25일 나팔꽃(Morning Glory) 덧없는 사랑 26일 라일락(Lilac) 아름다운 맹세 27일 시계꽃(Passion Flower) 성스러운 사랑 28일 제라늄(Geramium) 그대로인한 행복 29일 제라늄(Geranium) 그대로인한 사랑 30일 인동(Honey Suckle) 사랑의 인연   7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단양쑥부쟁이(Fig Marigold) 태만 2일 금어초(Snap Dragon) 욕망 3일 양귀비(Papaver) 망각 4일 자목련(Lily Magnolia) 자연애 5일 라벤더(Lavendar) 풍부한 향기 6일 해바라기(Sun Flower) 애모 7일 서양까지밥나무(Goose Berry) 예상 8일 버드푸트(Birdfoot) 다시 만날 날까지 9일 아이바 제라늄(Ivyleaved Geranium) 진실한 애정 10일 초롱꽃(Canterbery Bell) 감사 11일 아스포델(Asphodel) 나는 당신의 것 12일 좁은입배풍등(Solanum) 참을 수 없어 13일 잡초의 꽃(Flower of Grass) 실제적인 사람 14일 플록스(Phlox) 온화 15일 장미(Austrian Briar Rose) 사랑스러움 16일 비단향꽃무(Stock) 영원한 아름다움 17일 장미 (White Rose) 존경 18일 이끼장미(Moss Rose) 가련 19일 백부자(Aconite) 아름답게 빛나다 20일 가지(Egg Plant) 진실 21일 장미 (Yellow Rose) 아름다움 22일 패행이꽃(Superb Pink) 사모 23일 장미(Lancaster Rose) 온화한 마음 24일 연령초(Thillum) 그윽한 마음 25일 말오줌나무(Elder-Tree) 열심 26일 향쑥(Wornwood) 평화 27일 제라늄(Geranium) 진실한 애정 28일 패랭이꽃(Dianthos Superbus) 언제나 사랑해 29일 선인장(Cactus) 불타는 마음 30일 보리수 부부애 31일 호박(Pumpkin) 광대함   8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양귀비(Papaver) 위로 2일 수레국화(Corn Flower) 행복 3일 수박풀(Flover of an Hour) 아름다운 아가씨 4일 옥수수(Corn) 재보(財寶) 5일 엘리카(Heath) 고독 6일 능소화(Trumpet Flower) 명예 7일 석류(Pomegranate) 원숙한 아름다움 8일 진달래(Azalea) 사랑의 희열 9일 시스터스(Cistus) 인기 10일 이끼(Moss) 모성애 11일 무늬제라늄(Geranium Zonal) 위한 12일 협죽도(Oleander) 위험 13일 골든 로드(Golden Rod) 경계 14일 저먼더(Wall Germander) 경애 15일 해바라기(Sun Flower) 광휘 16일 타마린드(Tamarindus) 사치 17일 튜우립나무(Tulip-Tree) 전원의 행복 18일 접시꽃(Holly Hock) 열렬한 사랑 19일 로사 캠피온(Rosa Campion) 성실 20일 프리지아(Freesia) 순결 21일 짚신나물(Agrimony) 감사 22일 스피리아(Spirea) 노력 23일 보리수 부부애 24일 금잔화(Calendula) 이별의 슬픔 25일 안스륨(Floming Flower) 사랑으로의 번민 26일 하이포시스 오리어(Hypoxis Aurea) 빛을 찾다 27일 고비(Osumunda) 몽상 28일 에린지움(Eryngium) 비밀스런 애정 29일 꽃담배(Flowering Tobacco Plant) 외롭지 않은 30일 전먼더(wall Germander) 담백 31일 토끼풀(Clover) 약속   9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호랑이꽃(Tiger Flower) 나를 사랑해줘요 2일 멕시칸 아이비(Cobaea) 변화 3일 마거리트(Marguerite) 감추어진 사랑 4일 뱀무(Geum) 만족된 사랑 5일 느릅나무(Elm) 신뢰 6일 한련(Nasturtium) 애국심 7일 오렌지(Orange) 새색시의 기쁨 8일 갓(Mustard) 무관심 9일 갯개미취(Michaelmas Daisy) 추억 10일 과꽃 (China Aster) 믿는 마음 11일 알로에(Aloe) 꽃도 잎새도 12일 클레마티스(Clematis) 마음의 아름다움 13일 버드나무(Weeping Willow) 솔직 14일 마르멜로(Quince) 유혹 15일 다알리아(Dahila) 화려함 16일 용담(Gentina) 슬픈 그대가 좋아 17일 에리카(Heath) 고독 18일 엉겅퀴(Thistle) 엄격 19일 사초(Carex) 자중 20일 로스메리(Rosemary) 나를 생각해요 21일 샤프란(Autumn Crocus) 후회스런 청춘 22일 퀘이킹 그라스(Quaking Grass) 흥분 23일 주목(Yew Tree) 고상함 24일 오렌지(Orange) 새색시의 기쁨 25일 메귀리(Animated Oat) 음악을 좋아함 26일 감(Date Plum) 자연미 27일 떡갈나무(Oak) 사랑은 영원히 28일 색비름(Love-Lies a Bleeding) 애정 29일 사과(Apple) 명성 30일 삼나무(Cedar) 웅대   10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빨강 국화(Chrysanthemum) 사랑 2일 살구(Apricot) 아가씨의 수줍음 3일 단풍나무(Maple) 자제 4일 홉(Common Hop) 순진무구 5일 종려나무(Windmill Palm) 승리 6일 개암나무(Hazel) 화해 7일 전나무(Fir) 고상함 8일 파슬리(Parsley) 승리 9일 희향(Fennel) 극찬 10일 멜론(Melon) 포식 11일 부처꽃(Lythrum) 사랑의 슬픔 12일 월귤(Bilberry) 반항심 13일 조팝나무(Spirea) 단정한 사랑 14일 흰색 국화(Chrysanthemum) 진실 15일 스위트 바즐(Sweet Basil) 좋은 희망 16일 이끼장미(Moss Rose) 순진무구 17일 포도(Grape) 신뢰 18일 넌출월귤(Cranberry) 마음의 고통을 위로 19일 빨강 봉선화(Balsam) 날 건드리지 마세요 20일 마(Indian Hemp) 운명 21일 엉겅퀴(Thistle) 독립 22일 벗풀(Arrow-Head) 신뢰 23일 흰독말풀(Thom Apple) 경애 24일 매화(Prunus Mume) 고결한 마음 25일 단풍나무(Aceracede) 염려 26일 수영(Rumex) 애정 27일 들장미(Briar Rose) 시 28일 무궁화(Rose of Sharon) 미묘한 아름다움 29일 해당화(Crab Apple) 온화 30일 로벨리아(Lobelia) 악의 31일 칼라(Calla) 열혈   11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서양모과(Medlar) 유일한 사랑 2일 루피너스(Lupinus) 모성애 3일 브리오니아(Bryonia) 거절 4일 골고사리(Hart's-Tongue Feen) 진실의 위안 5일 단양쑥부쟁이(Fig Marigold) 공훈 6일 등골나물(Agrimony Eupatoire) 주저 7일 메리골드(Marigole) 이별의 슬픔 8일 가는동자꽃(Lychnis Flos-Cuculi) 기지 9일 몰약의 꽃(Myrrh) 진실 10일 부용(Hibscus Mutabilis) 섬세한 아름다움 11일 동백(Camellia) 비밀스런 사랑 12일 레몬(Lemon) 진심으로 사모함 13일 레몬 버베나(Lemon Verbena) 인내 14일 소나무(Fine) 불로장생 15일 황금싸리(Crown Vetch) 겸손 16일 크리스마스 로즈(Christmas Rose) 추억 17일 머위(Sweet-Scented Tussilage) 공평 18일 산나리(Hill Lily) 장엄 19일 범의귀(Aaron's Beard) 비밀 20일 뷰글라스(Bugloss) 진실 21일 초롱꽃(Campanula) 성실 22일 매자나무(Berberis) 까다로움 23일 양치(Fern) 성실 24일 가막살나무(Viburnum) 강렬한 사랑 25일 개옻나무(Rhus Cotinus) 현명 26일 서양톱풀(Yarrow) 지도(指導) 27일 붉나무(Phus) 신앙 28일 과꽃(China Aster) 추상 29일 바카리스(Baccharis) 개척 30일 낙엽,마른 풀(Dry Grasses) 기다림   12월 생일 꽃이름 꽃말 1일 쑥국화(Tansy) 평화 2일 이끼(Moss) 모성애 3일 라벤더(Lavendar) 기대 4일 수영(Rumex) 애정 5일 엠브로시아(Ambrosia) 행복한 연애 6일 바위취(Saxifraga) 절실한 사랑 7일 양치(Fern) 신뢰 8일 갈대(Reed) 깊은 애정 9일 국화(Chrysanthemum) 고결 10일 동백(Camellia) 고결한 이성 11일 단양쑥부쟁이(Fig Marigold) 애국심 12일 목화(Cotton Plant) 우수 13일 국화(Chrysanthemum) 사랑 14일 소나무(Pine) 용감 15일 서향(Winter Daphne) 불멸 16일 오리나무(Alder) 장엄 17일 벚꽃난(Honey-Plant) 동감 18일 세이지(Sage) 가정의 덕 19일 스노우 플레이크(Snow Flake) 아름다움 20일 파인애플(Pineapple) 완전무결 21일 박하(Mint) 덕 22일 백일홍(Zinnia) 행복 23일 플라타너스(Platans) 천재 24일 겨우살이(Loranthaceac) 강한 인내심 25일 서양호랑가시나무(Holly) 선견지명 26일 크리스마스 로즈(Christmas Rose) 추억 27일 매화(Prunus Mume) 맑은 마음 28일 석류(Pomegranate) 원숙미 29일 꽈리(Winter Cherry) 자연미 30일 납매(Carolina Allspice) 자애 31일 노송나무(Chamaecyparis) 불멸   꽃말 사전 → [ ㄱ ] 가지 - 진실 과꽃 - 변화, 추억 까치밥나무 - 풍요, 숨겨진사랑 꽈리 - 약함, 수줍음 갈대 - 친절, 신의, 지혜 꽃양배추 - 이익, 유익 감나무 - 경이, 자애, 소박 구기자 - 희생 개나리 - 희망 국화 - 성실, 정조, 고귀, 진실 강아지풀 - 동심, 노여움 군자란 - 고귀, 우아 개양귀비 - 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 굴거리나무 - 내사랑 나의 품에 갯버들 - 친절, 자유, 포근한 사랑 귤나무 - 친애, 깨끗한 사랑 거베라 - 풀을수 없는 수수께끼 극락조화 - 신비(영생불락) 겨자 - 무관심 글록시니아 - 화려한 모습, 욕망 고데마리 - 노력한다. 금귤(낑깡) - 순결, 어릴때 우정 고데치아 - 순수한 사랑 금사철 - 변화없다. 글라디올라스 - 견고한 마음 금송 - 보호 고무나무 - 변함없는 사랑 금송화 - 질투, 나쁜마음 고사리 - 기적, 유혹 금어초 - 오만, 탐욕 고추(화초고추) - 맵자하다. 금잔화 - 실망, 비탄, 비애 곱슬버들 - 경쾌, 태평세월 기린초 - 소녀의 사랑 공작깃 - 화려함 긴잎아카시아 - 우정 공작련백 - 변하지 않는 사랑 꽃말사전 → [ ㄴ ] 나리 - 진실 네잎크로버 - 행운 나이프아카시아 - 곱고 아름답다. 네프로네피스 - 매혹 나팔꽃 - 기쁨, 결속 노란주나무 - 보호 낙엽송 - 대담, 용기 노송 - 불멸, 불사, 굳셈 난초 - 청초한 아름다움 뉴사이란 - 참신하다. 남천 - 전화위복 느릅나무 - 위엄 너도밤나무 - 번영 느티나무 - 운명 냉이 - 봄색시, 당신께 나의 모든것을 드립니다. 능금나무 - 은화, 참애호자 꽃말사전 → [ ㄷ ] 다래넝쿨 - 깊은 사랑 도꼬마리 - 고집, 애교 다알리아 - 화려함, 감사 도라지 - 기품, 따뜻한 애정 단풍나무 - 사양 돌배 - 참고 견딤 달맞이꽃 - 말없는 사랑, 소원 동백꽃 - 자랑, 겸손한 마음 담배 - 기분 동백의 가지 - 굳은 약속을 상징 담쟁이덩쿨 - 아름다운 매력 동심초 - 온순 당종려 - 승리 둥글래 - 고귀한 봉사 딸기 - 예견, 행복한 가정 드라세라 - 장고한 행운 떡갈나무 - 공명정대, 강건 들국화 - 장애물, 상쾌 대나무 - 지조, 인내, 절개 들장미 - 고독, 주의깊다. 대왕송 - 부귀 등나무 - 사랑에 취함 댑싸리 - 겸허, 청조 등대월계 - 달콤한 속삭임, 영광 데이지 - 평화, 순진, 미인 꽃말사전 → [ ㄹ ] 라난큐라스 - 비난, 비난하다. 로벨리아 - 불신, 정교, 원망 라일락 - 친구의 사랑, 우애 루나리아 - 정직 라스피 - 정의, 자유 루드베키아 - 정의 레몬 - 열의, 성실한 사랑 루피너스 - 모성애, 행복 렉스베고니아 - 부조화, 짝사랑 리아트리스 - 고집장이, 고결 로단테 - 영속 리넘 - 나는 당신의 친절에 감사   꽃말사전 → [ ㅁ ] 마가목 - 신중 목련 - 숭고한 정신, 우애 미디용수초 - 비범 목향 - 인정 마란타 - 우정 목화 - 어머니의 사랑 마로니에 - 천분, 천재 몬스테라 - 괴기 마가랫 - 자유, 사랑을 점친다. 무궁화 - 섬세한 아름다움 매실 - 고결, 끝내 꽃을 피우다. 무 - 계절이 주는 풍요 매화 - 고결, 결백, 정조, 충실 무화과 - 풍부함, 열심, 풍요 맨드라미 - 건강, 타오르는 사랑 문주란 - 청순함 머루(포도) - 기쁨, 자선, 박애 물망초 - 나를 잊지 마세요. 멍게 - 장난 미나리 - 성의, 고결 메꽃 - 속박, 충성, 수줍음 미모사나무 - 민감, 섬세, 부끄러움 명자나무 - 평범, 조숙, 겸손 민들레 - 사랑의 신, 무분별 모과 - 괴짜, 조숙 밀감 - 친애 모란 - 부귀, 왕자의 품격 밀토니아 - 슬픔은 없다. 모올 - 인내   꽃말사전 → [ ㅂ ] 바이올렛 - 영원한 우정, 사랑 보리 - 번영, 보편 박 - 밤에 열림 보리수 - 해탈 박쥐란 - 교묘함, 괴이함 보리수나무 - 부부의 사랑, 결혼 박달나무 - 견고 뽀삐(포피) - 위안 박하 - 순진한 마음 복숭아 - 매력, 유혹, 용서, 희망 밤나무 - 포근한 사랑, 정의 봉숭아(봉선화) - 정결, 나를 다치지 말라 밤안개 - 고은 마음 뽕나무 - 지혜, 못이룬 사랑 방울꽃 - 만족 부들 - 용기 배꽃나무 - 사랑, 환상, 위안, 위로 부바르디아 - 정열 배추꽃 - 쾌활 부처꽃 - 비연, 슬픈사랑 백양나무 - 시간 분꽃 - 수줍음, 소심, 겁장이 백일초 - 떠나간 님을 그리다. 붓꽃 -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람 백합 - 순결 불로초 - 믿고 따릅니다. 버섯 - 유혹 불루우불 - 동심, 독선 버베나 - 단란한 일가 비단향 - 한결같은 사랑 범부채 - 정성어린 사랑 비라칸사 - 알알이 영근 사랑 벚꽃나무 - 결박, 정신의 아름다움 비파 - 온화, 현명 베고니아 - 부조화, 친절, 정중 뱅카(빙카) - 즐거운 일이 생각난다. 꽃말사전 → [ ㅅ ] 사과나무 - 유혹, 성공 속세 - 비범 사보텐 - 온정, 열정, 존경 수국 - 성남, 변덕스러움 사철나무 - 변화 없다. 수레국화 - 미모, 가냘픔 사프란 - 즐거움, 지나간 행복 수련 - 깨끗한 마음, 청순한 마음 산나리 - 순결 수박꽃 - 큰마음 산당화 - 겸손, 단조 수박풀 - 애모, 변화 산세베리아 - 관용 수선화 - 신비, 자존심, 고결 산수유 - 호의에 기대한다. 수수 - 풍요 산앵두 - 오로지 한사랑 수양버들 - 슬픔, 평화 살구나무 - 처녀의 부끄러움, 의혹 수수꽃다리 - 회상, 기쁨, 우애 사르비아 - 타는 마음, 정력, 정조 쑥 - 평안 삼지닥나무 - 당신께 부를 드림 쑥부쟁이 - 인내 상수리나무 - 번영 스기(삼나무) - 곧은 마음 싸리나무 - 상념, 사색 스노우드롭 - 희망, 위안, 인내 샤스타데이지 - 만사는 인내 스노우플레이크 - 처녀의 사랑 새둥지나무 - 장족의 진보 스윗샤르당 - 우아한 아름다움 서향나무 - 불멸, 명예, 꿈속의 사랑 수윗트피이 - 사랑의 기쁨, 사랑스런 석류 - 전성, 원숙한 아름다움 스타티스 - 영구불멸, 변치 않는 사랑 석송 - 비단결같은 마음 스토케시아 - 깨끗한 소녀 석죽 - 평정, 무욕 스토크 - 영원한 아름다움 선인장 - 정열, 열정, 무장 스프링게리 - 항상 변함이 없다. 설유화 - 애교, 명쾌한 승리 씀바귀 - 헌신 섬향나무 - 숨겨진 진실 시네라리아 - 쾌활, 항상 즐겁다. 센토리아 - 고독, 미모, 그리운 엄마 시크라멘 - 성적 겸손, 수줍음 소귀나무 - 그대만을 사랑하오. 시프러스 - 우연한 상면 소나무 - 장수(불노장수), 고독 시프리페디욱 - 변하기 쉬운 사랑 소철 - 강한 사랑 심비디움 - 화려한 삶   꽃말사전 → [ ㅇ ] 아가위 - 희망 에델바이스 - 귀중한 추억, 인내, 용기 아가판더스 - 사랑의 전달 에리카 - 고독, 쓸쓸함 아나나스 - 만족, 미래를 즐긴다. 연지꽃 - 차별, 구별 아네모네 - 허무한사랑, 단념, 고독 연꽃 - 순결, 군자, 신성, 청정 아디언람 - 애교있는 사람 연산홍 - 첫사랑 아도니스 - 회상, 영구한 행복 연지수선 - 자기애 아르메리아 - 동정, 가련, 온순 엽란 - 거역, 거절 아마 - 책임 오렌지 - 순결, 신부의 기쁨 아마릴리스 - 침묵, 겁장이, 허영심 오동나무 - 고상 아스터 - 추억, 믿는 사랑 오랑캐꽃 - 나를 생각해 다오. 아스파라거스 - 한결같은 마음, 불변 오리나무 - 위로 아스파라가스프링게 - 항상 변함 없다. 오색고추 - 맵자하다. 아스파라가크리스프스 - 변화 오얏꽃 - 곤란 아이리스 - 기쁜 소식 오이풀 - 변화,존경,애모 일본아이리스 - 우아한 심정 오엽송 - 강건 토키아이리스 - 행운은 꼭 온다. 오크라 - 번영 영국아이리스 - 기쁨의 전달자 옥잠화 - 침착, 조용한 사랑 아이비 - 행운이 함께하는 사랑 온시디움 - 순박한 마음 아자리아 - 첫사랑 올리브 - 평화 아주까리 - 단정한 사랑 용담초 - 애수, 슬픔에 잠길때 당신이 제일 좋아요. 아카시아 - 희기한 연애, 숨겨진 사랑 와네기 - 약속을 실행한다. 아칸더스 - 기교, 복수, 절교 용설란 - 강한 의지, 용기 아케미나 - 만족 용수초 - 온순 아킬레아 - 투쟁한다. 충실한다. 우엉 - 인격자, 나에게 손대지 마오 안개초 - 고운 마음 원추리 - 지성 안드리움번뇌 월계수잎 - 죽어도 변함이 없다. 알리움 - 끝없는 슬픔 월계수나무 - 승리, 영광, 명예 앵두 - 수줍음 월도 - 우의 앵초 - 어린시절의 슬픔 유도화 - 주의 야생스타티스 - 생각할수록 그립다. 유부카리 - 추억 야자수 - 부활, 승리 유자나무 - 기쁜 소식 양골담초 - 겸손 으름덩쿨 - 재능 양귀비 - 위안, 잠(백색), 허영(홍색) 은사철 - 슬기로운 생각 양하 - 건망증 은단초 - 총명 억새 - 친절, 세력, 활력 은행나무 - 장수, 정숙, 장엄, 진혼 얼룩엽난 - 거역 일본대나무 - 청절 얼룩옥잠화 - 가인 잎세란 - 참신하다. 엉겅퀴 - 독립, 고독한 사람, 근엄 인도고무나무 - 남성적 에니시다 - 청초 꽃말사전 → [ ㅈ ] 자운영 - 그대의 관대한 사랑 접시꽃 - 풍요, 야망, 평안 자작나무 - 당신을 기다립니다. 제라늄 - 치구의 정, 결심 작살나무 - 총명 제비꽃 - 성실, 겸양 작약 - 수줍음, 수치 제스민 - 행복, 친절, 상냥함 장미 - 사랑, 애정, 행복한 사랑 조팝나무 - 노련하다. 장미/적색 - 열렬한 사랑 종려 - 승리 장미/백색 - 사랑의 한숨, 실연 주목나무 - 비애, 죽음 장미/황색 - 질투, 부정 죽(대나무) - 청절 장미/핑크 - 사랑의 맹세 쥐똥나무 - 강인한 마음 장미/진홍 - 수줍음 진달래 - 절제, 청렴, 사랑의즐거움 장미/잎 - 당신에게 바램이 있다. 진백 - 영구불변 장미/가시 - 엄격 진저 - 당신을 믿습니다. 적송 - 선비의 지조 질경이 - 발자취 전나무 - 숭고, 정직, 승진 찔레 - 고독, 주의 깊다. 꽃말사전 → [ ㅊ ] 차나무 - 추억 천문종 - 불변 참깨나무 - 기대한다. 천인국 - 단결, 협력 참나리 - 순결, 깨끗한 마음 천일홍 - 불변, 매혹 참나무 - 번영 철쭉 - 사랑의 즐거움 창포 - 경의, 신비한 사람 초롱꽃 - 충실, 정의, 열성에 감복 채송화가련, 순진 측백나무 - 건강, 기도하리 채꽃 - 이루워질수 없는 사랑 치자나무 - 순결, 행복, 청결 천리향 - 편애 칡 - 사랑의 한숨 꽃말사전 → [ ㅋ ] 카네이션 - 자비로움 켈리포니아가판사스 - 사랑을 찾아서 카네이션/핑크 - 부인의 애정 켈리포니아포피 - 나의 희망을 받아주세요 카네이션/적색 - 열렬한 사랑 코스모스 - 순정, 애정, 조화 카네이션/백색 - 나의 사랑 존재 콩(대) - 기름진 사랑 카네이션/황색 - 당신을 경멸 합니다. 쿠페아 - 세심한 사랑 카라디움 - 기쁨, 환희 크레마티스 - 마음의 아름다움 칼세오라리아 - 당신에게 나의 재산을 바칩니다. 크레오메 - 불안정, 인연을 맺음 카틀레아 - 우아한 여성, 당신은 미인 크로커스 - 불안한 청춘의 기쁨 칸나 - 행복한 종말, 존경 크로혼 - 요염하고 절색 칼라디움 - 즐거움 크리스마스로우즈 - 근심을 풀어 주세요. 캄파뉼라 - 변함없다. 클로버 - 약속, 행운, 평화 키르탄더스 - 고운 여인   꽃말사전 → [ ㅌ ] 태산목 - 위엄, 장엄, 자연의 애정 튜립 - 사랑의 고백, 매혹 터어키도라지 - 미인이 주는 사랑 튜립/적색 - 짝사랑의 선고 탱자 - 추상, 추억 튜립/황색 - 헛된 사랑 톱날꽃 - 충실, 숨은 공적 튜립/백색 - 실연 튜베로우즈 - 위험한 쾌락 튜립/자색 - 영원한 사랑 트리토마 - 이채, 그것은 믿을수 없다. 꽃말사전 → [ ㅍ ] 파꽃 - 인내 포도 - 기쁨, 박애, 자선 파초 - 기다림 포인세티아 - 행복, 추억, 축하 파피루스 - 정직한 사랑 프플라 - 용기, 비탄, 애석 팔손이나무 - 비밀, 기만, 분별 포피 - 위안 팜파스그라스 - 웅대, 자랑스럽다. 풍경덩쿨 - 어린시절의 재미 패랭이꽃 - 순애, 조심, 대담 풍란 - 참다운 매력, 신념 팬지 - 사색, 사고, 사랑의 추억 프리믈라 - 희망, 번영 폐츄니아 - 사랑의 방해 프리지아 - 순결, 깨끗한 향기 펜스테몬 - 은혜에 감사해요. 플라밍고훌라워 - 번뇌 편도나무 - 무분별, 추책이 없다. 플라타나스 - 휴식, 용서 편백 - 변하지 않는 사랑 피라칸다 - 알알이 영근 사랑 평지꽃 - 봄소식 피마자 - 단정한 사랑 꽃말사전 → [ ㅎ ] 하늘나리 - 변치않는 귀여움 호피나리 - 순결, 후박 한란 - 귀부인, 미인 화초고추 - 맵자하다. 할미꽃 - 충성, 슬픈 추억 화초도마도 - 완성된 미 함박꽃 - 수줍음 황매화 - 기다려주오. 해당화 - 온화, 미인의 잠결 회양목 - 인내 해바라기 - 동경, 숭배, 의지, 신앙 후록스 - 동의 온화 해오라기난초 - 꿈에도 만나고 싶다. 후박나무 - 모정 향나무 - 영원한 향기 훼닉스 - 뜨거운 사랑 헬리크리즘 - 슬픔은 없다. 흑버들 - 솔직 협죽도(유도화) - 주의 흑송 - 불로장수 호도 - 지성 흑조 - 평등, 용기 호랑고비 - 유혹, 숨겨진 사랑 히비스카스 - 남몰래 간직한 사랑 호랑이발톱나무 - 강직, 준비, 보호 히야신스 - 겸양한 사랑, 유희 호랑가시나무 - 가정의 행복, 평화 히오우이 - 꿈 호박 - 해독 방울히오우이 - 고독 호접란 - 당신을 사랑합니다       출처:지식인검색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3&dir_id=1309&eid=yqxeSaBjygLGIa9BrabbjzDwvZDi7QzL&qb=sN3BpCCyybi7&pid=fShq1woi5Tossarsj2hsss--222864&sid=SVYbHLjuVUkAACpDG6U    
7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4) 댓글:  조회:837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4)     첫번째 노래(14)     (14) 때로는 현상의 외관을 믿는 것이 논리적이라면, 이 첫번째 노래는 여기에서 끝난다. 아직은 자신의 리라를 시험하고 있을 뿐인 사람에게, 그 악기가 그리도 낯선 소리를 낸다고 엄혹하게 굴지 말라! 그렇지만 그대들이 스스로 공정하기를 바란다면, 불완전함 가운데 찍혀 있는 강한 흔적을 벌써 알아볼 것이다. 나로서는 너무 늦지 않은 기간 내에, 두번째 노래를 발표하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 십구세기 말은 제격의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니(그러나, 처음에는 걸작으로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적대하던 두 인민이 이제 물질적 정신적 진보로 서로 능가하려고 애쓰고 있는 아메리카 연안의 라플라타 하구에서 그는 태어났다. 남부의 여왕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요염한 여자 몬테비데오가 거대한 강어귀의 은빛 물을 가로질러, 우정 어린 손을 서로 내밀고 있는 곳, 그러나 영원한 전쟁이 파괴의 왕국을 평원에 건설하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꺼이 수확한다. 잘 있게나, 늙은이. 만일 그대가 내 글을 읽었다면, 나를 생각하게. 자네, 젊은이, 결코 절망하지 말게, 자네의 반대의견이야 어찌됐건, 흡혈귀 가운데 친구가 한 사람 있지 않은가. 옴을 일으키는 옴벌레도 꼽는다면, 자네에게는 친구가 둘 있는 셈이야!                                                                                                                         첫번째 노래 끝    
72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3) 댓글:  조회:863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3)     첫번째 노래(13)   (13) 거머리의 형이 숲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여러 번 멈춰 서서, 말을 하려고 입을 연다. 그러나 그때마다 목구멍이 조여들어 실현시키지 못한 노력을 뒤쪽으로 몰아붙인다. 마침내, 그는 외친다: 두꺼비는 뒤편이 넓적다리(인간의 넓적다리와 그리도 닮았구나)를 깔고 앉아서, 괄태충, 쥐며느리, 달팽이가 자기들의 숙적을 보고 날아나는 동안, 이런 날을 하였다. "말도로르여, 내 말을 들으라, 거울처럼 고요한 나의 얼굴을 주목하라. 나는 내가 너와 동등한 지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어느날, 너는 나를 네 삶의 지주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나는 네가 나에게 바친 신뢰를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갈대밭의 한낱 주민일 뿐이고, 그게 사실이지만, 바로 너와 접촉한 덕분에, 네 안에 있는 아름다운 것만을 취하여, 바로 너와 접촉한 덕분에, 내 이성을 증대하였고, 너에게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심연에서 끌어내기 위해, 네게로 왔다. 그대의 친구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극장에서, 공공장소에서, 교회에서, 창백하고 구부정한 나를 만날 때마다, 또는 길고 검은 외투에 둘러싸여, 제 유령-주인을 싣고 밤을 틈타서만 질주하는 그 말을 신경질적인 두 넓적다리로 재촉하는 너를 만날 때마다, 아연실색하여 너를 쳐다본다. 네 마음을 사막처럼 공허하게 하는 그 생각들을 버려라. 네 생각들은 불꽃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네 정신은 네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병이 들어서, 네 입에서, 지옥의 위대함으로 가득차 있긴 하나, 분별없는 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너는 네가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믿고 있다. 불행한 인간아! 너는 네가 태어난 날 이래로 무슨 말을 해왔느냐? 오, 신이 하 많은 사랑으로 창조했던, 불멸하는 지성의 슬픈 잔재야! 너는 굶주린 표범의 모습보다 더 소름끼치는 저주밖에 만들어낸 것이 없구나! 나로 말하면 눈꺼풀이 붙어버리더라도, 몸에 붙은 팔다리가 없어지더라도, 한 인간을 살해하더라도, 네가 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 나는 그대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를 놀라게 하는 그런 성격을 지닌다는 말이냐? 너는 무슨 권리로 이 땅에 와서, 여기 사는 자들을 조롱거리로 삼는가, 회의주의의 놀림감이 된 썩은 표류물아? 이 땅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네가 떠나온 그 천체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도회지의 주민이, 이방인처럼, 시골 마을에 거주해서는 안 된다. 우주공간에는 우리의 것보다 더 넓은 천체들이 존재하고, 그 천체들의 지적 존재들은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 떠나거라!--- 이 움직이는 땅에서 물러가라---- 네가 지금까지 감춰왔던 네 신적 본질을 드러내고, 우리가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 네 천체를 향해, 가능한 한 서둘러서, 네 비상의 방향을 잡아라., 오만방자한 녀석아! 네가 인간인지 또는 인간 이상인지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기에 하는 말이다! 그럼 잘 가라, 네 가는 길에 두꺼비를 다시 만나리라고 더는 기대하지 마라. 너는 내 죽음의 원인이었다. 나는 너를 용서해달라고 빌기 위해 영원을 향해 떠난다!"  
725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2) 댓글:  조회:915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2)       첫번째 노래(12)   (12) 울 줄 모르는 그 사내는 (그는 항상 고통을 안으로 억눌러왔기에) 자신이 노르웨이에 가 있음을 깨달았다. 페로제도에서, 그는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틈에서 바닷새 둥지 찾기에 참여했는데, 벼랑의 탐색자를 지탱해주는 줄 삼백 미터가, 그렇게 건실한 것으로 선택된 것을 보고 놀랐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 그는 거기에서 인간의 선량함을 말하는 충격적인 예를 보고,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줄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 자기였다면, 그는 줄이 끊어지도록 여러 군데에 홈을 파서, 채취자를 바닷속에 떨어뜨렸으련만! 어느 날 저녁, 그는 어떤 묘지를 향해 갔는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시체를 강간하는 데서 쾌락을 발견하는 청년들은,1) 그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동시에 전개될 어떤 행위의 장면 속에 파묻혀버렸을, 다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 여보게, 무덤파는 인부, 자네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가? 향유고래 한 마리가 바다 밑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와, 이 고독한 해역을 지나가는 배를 보려고,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네. 호기심은 우주와 함께 생겨났지.   - 여보게, 친구, 내가 자네와 생각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네. 부드러운 달빛이 무덤의 대리석에 빛을 뿌린 지 벌써 오래되었네. 한둘이 아닌 인간 존재들의 꿈속에, 사슬에 매인 여인들이 별로 덮인 검은 하늘처럼 핏자국으로 덮인 제 수의를 끌며 나타나는 고요한 시간일세. 잠자는 사람은 사형수의 신음소리와도 같은 신음소리를 내지르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현실이 꿈보다 세 배는 더 나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말일세. 내일 아침 묏자리가 마련되게 하려면, 지칠 줄 모르는 내 삽으로 이 구덩이 파는 일을 끝마쳐야 하네. 중대한 작업을 하려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서는 안 되지.   - 이 사람은 구덩이 하나를 파면서 중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먼!   - 야생 펠리컨이, 제 새끼들에게 제 가슴을 뜯어먹도록 내주기로 결심하며, 그와 같은 사랑을 창조할 줄 알았던 존재만을 증인으로 삼아, 인간들을 부끄럽게 할 때, 그 희생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행위를 이해할수 없는 것은 아니지. 한 젊은이가 말일세, 제가 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을 제 친구의 품에서 보게 될 때, 그는 시가를 피우기 시작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고통과 끊을 수 없는 우정을 맺을 터인데, 그 행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리세에서, 한 기숙학생이, 몇 세기나 다름없는 몇 년 동안, 아침에서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에서 그 이튿날까지, 그는 생생한 증오의 소란스러운 물결이 두터운 연기처럼 머리꼭대기로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뇌수가 거의 터져나가는 것만 같을 걸세. 그가 감옥에 처박힌 순간부터 하루하루 다가오는 출옥의 순간까지, 눈을 움푹 꺼지게 하겠지. 밤이면, 녀석은 잠을 자고 싶지 않기에, 깊이깊이 생각에 빠질 것이네. 낮이면, 녀석이 탈옥을 하거나, 페스트에 걸린 환자처럼 그 영원한 수도원 밖으로 내던져지는 순간까지, 그의 생각은 그 바보 만들기 관청의 담장 너머로 내달릴 텐데, 그 행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구덩이를 파는  일은 종종 자연의 힘을 능가한다네. 여보게, 이방인, 대지는 우선 우리를 길러주고, 그 다음은 우리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주어, 이 추운 고장에서 미친 듯이 불어대는 겨울바람을 막아주는데, 곡괭이가 이 대지를 파헤치기를 자네가 어찌 바라겠는가만, 그때 떨리는 손으로, 곡괭이를 든 자는,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오는 옛 산 자들의 뺨을 하루종일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매만진 다음, 저녁이면,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 영혼이 사멸하느냐 불멸하느냐를 묻는 저 살벌한 질문이, 나무 십자가 하나하나 위에 화염의 문자로 쓰인 것을 보게 되지. 우주의 창조자, 그에게 나는 항상 내 사랑을 간직했었네. 그러나 만약 죽은 후에는 우리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면, 왜 거의 모든 밤에, 무덤이 저마다 열리고, 그 주민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가려고 납 뚜껑을 조용히 들어올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인지?   - 자네 작업을 멈추게. 흥분이 자네에게서 힘을 빼앗아가는구먼. 자네는 내 눈에 갈대처럼 약해 보이네. 계속한다면 큰 망동이 될 걸세. 나는 강하니 내가 자네를 대신하겠네. 자네는 비켜서서,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충고를 해주게.   - 그의 팔은 얼마나 튼실한지, 저리도 쉽게 땅에 삽질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즐겁구나.   - 쓸데없는 의심으로 자네의 생각을 어지럽힐 필요가 없네. 진실이 결여된 비유이지만, 목장에 핀 꽃들처럼, 묘지에 흩어져 있는 이 모든 무덤들은 철학자의 평온한 컴퍼스로 재는 것이 마땅하네. 위험한 환각은 낮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특히 밤에 나타나지. 따라서 자네의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위험한 환영에 놀라지 말게. 낮 도안, 영혼이 쉬고 있을 때, 자네의 양심에게 물어보게. 그러면 자네의 양심은 자기 지성의 한 조각으로 인간을 창조한 신이 무한한 선의를 지녔으며, 지상의 죽음 이후에, 이 걸작을 그 품 안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줄 것이네. 여보게, 무덤 파는 인부, 자네는 왜 눈물을, 여인이나 흘릴 그 눈물을 흘리는가? 부디 잊지 말게. 우리가 이 돛대 꺾인 배에 타고 있는 것은 고통받기 위하여서가 아닌가. 그것은 인간에게 좋은 점이지. 인간에게는 가장 심각한 고통이라도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신이 그렇게 판단하였다는 것이니까 말일세.  자네의 가장 귀중한 청원에 따라, 인간이 고통을 받지 않게 된다 치면, 저마다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상인 저 미덕이 무엇으로 이루어질지, 말해보게. 자네의 혀가 다른 사람들의 혀처럼 만들어져 있다면 어디 말해보게.   -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내 성격이 바뀐 게 아닐까? 봄날의 미풍이 늙은이들의 희망을 되살리듯이, 한줄기 강력한 위안의 숨결이 내 맑아진 이마를 스치는 것만 같구나.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 숭고한 언어로 아무나 발설할 수는 없는 것들을 말하는가? 그 목소리의 비할 데 없는 멜로디에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있구나! 다른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느니보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솔직해 보이지 않는구나. 그의 얼굴 전체 표정은 오직 신의 사랑만이 불어넣을 수 있던 그 말과는 이상하게 대조를 이루는구나. 주름이 몇 줄 패어 있는 그의 이마에는 지워지지 않을 자국이 하나 찍혀 있다. 나이도 들기 전에 그를 늙게 만든 이 자국은 영예로운 것인가 수치스러운 것인가? 그의 주름은 존경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나는 모르겠으며, 알게 될까봐 두렵다. 그가 비록 자신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자기 마음속에서 파괴된 자비심의 갈가리 찢어진 잔해에 자극을 받았다면, 그가 행동했던 것처럼 행동할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명상에 잠겨 있고, 또 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 험한 작업을 하느라 더 열심히 움직인다. 땀이 그의 피부를 적시는데, 그는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한다. 그는 요람의 아이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감정보다 더 슬퍼하고 있다. 오! 그는 얼마나 침울한가! ---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 이방인이여, 내가 자네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감정보다 더 슬퍼하고 있다. 오! 그는 얼마나 침울한가! ---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 이방인이여, 내가 자네를 만지도록, 그리고 산 자들의 손을 잡는 이리 드문 나의 손이 그대의 고결한 육체 앞에 놓이도록 허락해주게.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야. 이 머리털은 내가 평생 만졌던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답구먼. 내가 머리털의 품질을 알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만큼 대담한 자가 누구일 것인가?   - 내가 무덤을 파고 있는데, 자네는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사자는 자기가 실컷 먹고 있을 때, 누가 성가시게 구는 것을 바라지 않지. 만약 자네가 그것을 모른다면 내가 가르쳐주지. 자, 서두르게. 원하는 일을 끝마치게.   - 내 접촉에 전율하고, 나마저 전율하고, 나마저 전율하게 하는 것은, 의심할 바없이 살(肉)이다. 사실이다. --- 내가 꿈을 꾸는 게 아니다! 타인의 빵을 먹는 게으른 사람처럼,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동안, 무덤을 파려고 거기 몸을 굽히고 있는 거네. 자네는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은 잠을 자거나, 또는 학문을 위해 휴식을 희생하는 시간이지. 아무튼, 제 집을 비운 사람은 아무도 없고, 누구나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열어놓지 않도록 조심하지. 오래된 벽난로의 재가 남은 열기로 아직 방을 덥히는 동안, 누구나 가능한 한, 제 방에 칩거하고 있지. 자네, 자네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않는구먼. 그 옷차림은 자네가 어느 먼 고장의 주민임을 알려주네.   - 내가 피곤한 것은 아니지만,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일세. 이제, 내 옷을 벗겨주게. 그러고 나서, 나를 안에 들게 하게.   - 우리가 얼마 전부터 함께 나눈 대화는 너무도 야릇하여, 자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가 웃고 싶어하는 것 같구나.   - 그래, 그래, 사실이야. 나는 웃고 싶었다네. 내가 말한 것에 더이상 신경쓰지 말게.   그가 주저앉았고, 무덤 파는 인부가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 무슨 일인가?   - 그래, 그래, 사실이야. 내가 거짓말을 했어---- 곡괭이를 던질 때 나는 피곤했던 거야 ---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야--- 내가 말한 것에 더이상 신경쓰지 말게.   - 내 생각이 점점 확실해지는군. 이 사람은 끔찍한 슬픔을 지닌 자다. 그에게 질문할 생각이 없어지기를. 미심쩍은 채로 있는 편이 더 낫겠어. 그만큼 나한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니, 그리고, 그는 내게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자기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두 배나 괴로운 일이니까.   - 나를 이 묘지에서 내보내주게. 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가겠네.    - 그 다리로는 전혀 자네를 지탱할 수 없네. 길을 가는 동안, 자네는 헤맬 것이네. 자네에게 변변찮은 침대라도 제공하는 것이 나의 의무지. 그 침대 말고 다른 것은 없으니. 나를 신뢰하게 무료숙박을 핑계로 자네의 비밀을 침해하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 오, 존경스러운 이(虱)여, 몸에 딱지날개가 없는 그대, 그대는, 드러나지 않는 그대의 숭고한 지성을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어느 날, 거칠게 나를 비난하였다. 나는 이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지도 않으니, 아마도 그대가 옳았을지 모른다. 말도로르의 길라잡이 등불이여, 그대는 그의 발걸음을 어디로 이끄는가?   - 나의 집으로 자네가 가증할 죄악을 저지른 후, 비누로 오른 손을 씻는 주의를 하지 않아서, 그 손 검사로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그런 죄인이든, 또는, 제 누이를 잃어버린 오빠든, 또는 자기 왕국에서 쫒겨나 도망치는 어느 군주든, 진정 웅장한 나의 궁전은 자네를 맞아드릴 만하네. 나의 궁전은 어설프게 지어진 초라한 초막에 불과할 뿐, 그것은 진귀한 보석들과 다이아몬드로 지어진 게 아니라네. 그러나 이 엄숙한 초막은 현재가 끊임없이 갱신시키고 또 지속시키는 역사적 과거를 지니고 있다네. 만약 그 초막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자네를 놀라게 할 것이네.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자네지만, 얼마나 여러 번, 나는 그 초막과 함께 초상난 관들이, 내가 기대선 나의 초막 문 안쪽보다 더 벌레 먹힐 뼈들을 담고, 내 앞으로, 줄지어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지. 내 신하들은 매일 늘어나 그 수를 셀 수 없지. 나는 그들을 알아보기 위해, 일정한 시기에, 어떤 인구조사도 할 필요가 없지. 여기라고 산자들의 세상과 다를 것은 없네. 그러니까 저마다 자신이 들어가게 된 그 처소의 화려함에 비례하여, 세금을 지불하지. 그래서 만약 어떤 수전노가 제 몫의 지불을 거부하면, 그의 신체에 말을 걸며 집달리처럼 행동하는 명령을 받고 있네. 좋은 식사를 하고 싶어할  재칼과 독수리가 없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아름다웠던 사람이, 죽음의 깃발 아래 자리잡는 것을 보았지. 삶을 마친 후에, 추해지지 않은 사람을, 남자, 여자, 거지, 왕들의 자식들을, 젊음의 가지가지 환상, 늙은이들의 해골을, 천재성, 광기를, 게으름, 그것의 반대를, 위선적이었던 자, 진실했던 자를, 오만한 자의 가면, 겸손한 자의 겸양을, 꽃들에 덮인 악덕과 배반당한 순진성을 보았네.   - 물론, 나는 거절하지 않겠네. 새벽이 지체하지 않고 다가올 때까지, 나에게 어울리는 자네의 잠자리를. 그대의 호의가 고맙네--- 여보게, 무덤 파는 인부, 도시의 폐허를 바라보면 아름답지. 하나 인간의 폐허를 바라보니 더욱 아름답네!   1) 1848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파리의 여러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훼손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인 프랑스 육군 소속 베르트랑 하사는 체포되어, 시체강간죄가 아닌 묘지훼손죄로 1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시간(屍姦) 하사' '몽파르나스의 흡혈귀'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724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1) 댓글:  조회:838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1)       첫번째 노래(11)       (11) 한 가족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램프를 둘러싼다.   - 아들아, 그 의자 위에 있는 가위를 내게 다오.   - 가위가 없는데요, 어머니.   - 그럼 다른 방에 가서 찾아보렴. 여보,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고, 우리 노후의 버팀목이 되어줄,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 도하던 그 시절이 기억나나요?   - 기억나지, 하느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셨지.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우리 몫으로 떨어진 운명을 놓고 불평할 것이 없소 날 마다 우리는 섭리를 찬양하며 그 은혜를 기리지요. 우리 에두아르 는 제 어머니의 매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소.   - 그리고 제 아버지의 남자다운 자질도.   -  여기 가위 있어요, 어머니. 제가 마침내 찾아냈어요.   그는 제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출입문에 나타나서, 제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잠시 동안, 살펴본다.   - 이게 뭘 하자는 장면이야! 이들만큼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이 널려 있지. 어떤 식으로 사유를 하기에 이들은 삶을 사랑하는 것인가? 말도로르여, 이 평온한 가정에서 멀리 떨어져라. 너의 자 리는 여기가 아니다.   그는 물러섰다!   -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온갖 능력들이 내 마음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만 같아요. 마음이 불안하고, 왠지 모르게, 공기가 무겁군요.   - 여보, 나도 당신과 똑같은 느낌이오. 우리한테 무슨 불행이  닥치지 않을까 마음이 떨리오. 신을 믿읍시다. 마지막 희망은 그 분께 있소.   - 어머니, 저는 숨쉬기가 힘들고 머리가 아파요.   - 너도 그러니, 아들아! 식초로 네 이마와 관자놀이를 적셔 주마   - 아니요, 어머니---   보시라, 그는 맥이 빠져,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 무언가 제 몸속에서 뒤집히고 있는데,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가장 작은 물건까지 거슬려요.   - 왜 그렇게 창백하냐! 무슨 불길한 사건이 우리 셋 모두들 절 망의 호수에 빠뜨리지 않고는 이 저녁이 끝나지 않을 것 같구나!   나는 멀리서 가장 처절한 고통의 길어지는 비명소리를 듣는다.   - 아들아!   - 아! 어머니!---무서워요!   - 아프면 어서 말을 해라.   - 어머니, 아프지는 않아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요.   아버지는 놀라움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 저게 바로 별이 없는 밤의 정적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그 비 명이로구나. 우리가 저 비명을 듣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그 소리 를 지르는 자가 여기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저 비명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바람에 실려다녀서, 삼십 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 이 현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 자 신이 그 진실성을 판단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여보, 당시는 내 앞에서 불행이란 말을 입에 담곤 했지요. 그보다 더 실제적인 불 행이 시간의 긴 나선 속에 존재했다면, 그것은 지금 제 동류들의 잠을 어지럽히고 있는 저자의 불행이오----   나는 멀리서 가장 처절한 고통의 길어지는 비명소리를 듣는다.   - 하늘의 뜻이 다르지 않아, 저자의 탄생이 그를 품에서 몰아 낸 그의 고향에 재앙이 되지 말아야 하련만, 그는 이 고장 저 고장 으로 떠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미움을 받는다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본원적 광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 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극단적이고 본능적인 잔인성을 지니 고 있어서, 자신도 그걸 부끄러워하고, 그의 부모가 그 때문에 고 통을 못 이기고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믿지요. 그의 젊은 시절 에 그에게 별명이 하나 붙어 치욕의 낙인이 찍혔고, 그 바람에 그 가 나머지 생애를 절망에 빠져 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 그의 상처 입은 위엄이 거기에서 인간들의 사악함, 초년기에 나타나 갈수록 불어나는 그 사악함의 명백한 증거를 보았기 때문 이라는 것이지요. 그 별명이 바로 흡혈귀였다오!----   나는 멀리서 가장 처절한 고통의 길어지는 비명소리를 듣는다.   - 그들은 이런 말도 하더군요, 낮에도 밤에도, 중단도, 휴식도 없이, 끔찍한 악몽이 그의 입과 귀로 피가 흘러나오게 하고, 또 유 령들이 그의 침대 맡에 앉아, 자기들도 어쩔 수 없이 미지의 어떤 힘에 떠밀려서, 때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때로는 전투의 포효와 도 같은 목소리로, 우주가 소멸하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을, 언제 까지나 끈질기고, 언제까지나 추악할 그 별명을, 누그러뜨릴 수 없이 완강하게, 그의 얼굴에 던진다는 거요. 몇몇 사람들은 사랑 이 그를 홀려 그런 상태로 끌고 갔다거나, 그 비명이 그의 불가해 한 과거의 어둠 속에 묻힌 어떤 범죄에 대한 회한을 증언하는 것 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측량 할 길 없는 오만이 그를 괴롭히고, 옛날 사탄처럼 말이오. 그가 신 과 대적하려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요----   나는 멀리서 가장 처절한 고통의 깊어지는 비명소리를 듣는다.   - 아들아, 이것은 예외적인 속내 이야기다. 네 나이에 이런 이 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안됐다만, 그 사람을 결코 본받지 말기 바란다.   - 말해라, 오, 나의 에두아르야, 그 사람을 결코 본받지 않겠다 고 대답해라.   - 오, 어머니, 제게 빛을 주신, 사랑하는 어머니, 아이의 경건한 약속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저는 결코 그 사람을 본받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합니다.   - 훌륭하다, 아들아. 무슨 일이든지 자기 어머니에게 복종해야 한다.   더이상 그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여보, 당신 일을 끝냈소?   - 이 셔츠를 몇 바늘 더 꿰매야 해요. 밤이 많이 늦어지기는 했 지만.   - 나도 역시 읽기 시작한 장을 끝내지 못했소. 램프의 마지막 불빛을 이용합시다. 기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하는 말이오. 우리 각자 자기 일을 마칩시다.   아이가 외쳤다   - 하느님이 우리를 살려주신다면!   - 빛나는 천사야, 내게로 오너라. 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 원에서 산책할 것이고, 전혀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장려한 궁전은 은 벽과, 황금 기둥과 다이아몬드 문들로 지어졌다. 너는 네가 자고 싶을 대, 천상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기도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눕게 되리라. 아침에, 태양이 그 반짝이는 햇살을 펼쳐 보이고, 명랑한 종달새가 저 허공으로 까마득하게 제 노랫소리를 실어갈 때에도, 지겹지만 않다면, 너는 여전히 침대에 누어 있을 수 있으리라. 너는 가장 값진 앙탄자 위를 걸을 것이고, 가장 내 음이 좋은 꽃들의 향기로운 정수로 이루어진 대기에 줄곧 감싸여 있을 것이다.   - 이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시간이오. 가족의 어머니인 당신, 그 실팍한 발목을 딛고 일어서시오. 당신의 굳어진 손가락이 이제 그 과도한 노동의 바늘을 내려놓아야 마땅하오. 극단은 하등 좋을 것이 없소.   - 오! 너희 삶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내 너에게 마술 반지 를 하나 줄터이니, 네가 그 반지의 루비를 돌리면 너는 선녀 이야 기 속의 왕자들처럼 보이지 않게 되리라.   - 당신의 일상 용구들을 안전한 장롱 안에 다시 넣어두도록 하오. 그동안 나는 내 물건들을 정돈하리다.   - 네가 루비를 원래의 위치로 다시 돌려놓으면, 너는 자연이 너를 빚어준 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오, 소년 마법사여. 이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 네가 누구이든, 사라져라, 내 어깨를 잡지 말라.   - 아들아, 너는 어린 시절의 꿈에 잠기어, 잠들지 마라. 우리가 함께하는 기도가 시작되지 않았고, 네 옷은 아직 의자 위에 정성 스럽게 놓여 있지 않구나---- 무릎을 꿇자! 우주의 영원한 창조 주여, 당신은 가장 사소한 일에까지 당신의 무궁무진한 선의를 보 여주십니다.   - 너는 수천 마리 붉은, 푸른, 은빛 나는 작은 물고기들이 미끄 러지는 맑은 시내가 그래 싫다는 말이냐? 너는 그물이 가득찰 때 까지, 하도 아름다워서 물고기들이 저절로 끌려들어올 그 그물로 물고기들을 잡을 것이다. 수면에서, 너는 대리석보다 더 반들반들 한, 빛나는 조약돌들을 볼 것이다.   - 어머니, 이 발톱들을 보세요. 저는 그를 경계하고 있지만, 제 의식은 평온합니다. 추호도 자책할 일이 없으니까요.   -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위대함에 대한 감정에 압도되어, 당신 의 발치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만약 어떤 오만한 생 각이 우리의 상상 속에 끼어든다면, 우리는 즉시 그 생각을 경멸 의 침에 섞어 뱉어내어 그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희생제물로 삼 아 당신께 바칠 겁니다.   - 너는 거기서 소녀들과 목욕을 할 것이고, 소녀들은 두 팔로 너를 끌어안을 것이다. 한 번 목욕을 하고 나오기만 하면, 소녀들 은 너에게 장미와 카네이션으로 화관을 엮어줄 것이다. 소녀들은 나비의 투명한 날개를 지녔을 것이며, 굽이치는 긴 머리칼이 그 사랑스러운 이마를 감싸고 나부낄 것이다.   - 너의 궁전이 수정보다 더 아름답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따라 가려고 이 집을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네 목소리가 들릴까 두려 워 네가 그렇게도 조용하게 속삭이는 것으로 보아, 나는 네가 사 기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 부모를 버리는 것은 못된 행동이다. 배은망덕한 아들이 될 사람은 내가 아니다. 네가 말한 소녀들에 관해서라면, 그녀들은 내 어머니의 눈만큼 아름답지 않 다.   - 우리의 모든 생명은 당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송가 속에서  소진하였습니다. 이날 까지 우리는 그러했으며, 이 땅을 떠나라는 당신의 명령을 받는 순간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 소녀들은 네 가장 미미한 신호에도 너에게 복종할 것이고 너 를 즐겁게 하는 것밖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가 결코 쉬지 않는 새를 원한다면, 소녀들은 네게 그 새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만약 네갸,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양까지 실어다줄 백설 의 마차를 원한다면 소녀들은 너에게 그 마차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 소녀들이 무엇인들 너에게 가져다주지 못할까보냐! 꼬리에 가 지가지 새들을 비단 끈으로 매달아 달 속에 감추어둔, 탑만큼이나  큰 연이라도 소녀들은 너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너 조심해라--- --내 충고를 들어라.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는 구조를 청하느라고 기도를 중단 시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네 몸을 떨쳐버리려 할 때, 네 몸이 감쪽 같이 사라진다 해도, 내가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라.   - 당신 앞에서는, 순수한 마음에서 발산하는 불꽃이 아니라면, 위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잘 생각해보아라.   -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막아주소서, 우리 가족을 덮칠지 모를 불행을 막아주소서   - 악령아, 그래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 낙담에 빠진 나를 위로해주었던 이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 주소 서---   - 네가 나를 거부하니, 내 너를 목 매달린 자처럼 울며 이를 갈게 하리라.   - 그리고 또 이 다정한 아들을 지켜주소서, 아이의 순결한 입술은 삶의 여명이 내미는 입맞춤에 이제 겨우 방긋이 열리고 있습니다.   - 어머니, 그자가 내 목을 졸라요--- 아버지, 저를 구해주세요-- -- 더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축도를 해주세요!   공중에서 한줄기 거대한 야유의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바야흐로  독수리들이 문자 그대로 바람기둥에 벼락을 맞고, 혼이 빠져, 구름 꼭대기로부터 서로 뒹엉켜 굴러떨어진다.   - 애의 심장이 이제 뛰지 않는구나--- 그리고 아내도, 자기 태내 의 결실, 내가 이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습이 흉하게 변해버린 그 결실과 함께 죽었구나--- 내 아내여! ---- 내 아들아!---나는 내가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던 머나먼 한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자기 눈에 펼쳐지는 그 장면 앞에서, 자신이라도 이 부당함 을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옥의 정령들이 자신에게 준, 아니, 오히려 스스로 자신에게서 끌어낸 그 권능이 효과를 지닌 것이라면, 그 아이는, 밤이 다 흘러가기 전에, 더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723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0) 댓글:  조회:887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10)     첫번째 노래(10)     (10) 나는 내 마지막 순간에(나는 내 죽음의 침상에서 이 글을 쓴다). 사제들에 둘러쌓인 모습이 아닐 것이다. 내가 바라는 죽음은, 폭풍 이는 바다의 파도에 흔들리거나, 산 위에 서서--- 눈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아니다. 나는 나의 적멸이 완벽하리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나는 희망을 품을 처지가 아니리라. 내 빈소리의 문을 여는 자 누구인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내 말했거늘, 당신이 누구이든, 물러가라. 하지만, 당신이 내 하이에나의 얼굴에서 (하이에나가 나보다 더 아름답고, 보기에 더 쾌적하다고 한, 나는 이 비율을 사용한다) 고통이나 두려움의 어떤 흔적이 보인다고 믿는다면, 착각하지 말라. 가까이 와서 볼지어다. 지금은 겨울밤이고, 바야흐로 원소들이 도처에서 충돌하고, 인간은 두려워하며, 젊은 아이는, 그가 청춘 시절의 나였던 그 아이라면, 자기 친구들 중의 하나에게 저지를 범죄를 궁리하고 있다. 바람이 존재하고,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그 구슬픈 휘파람소리로 인류를 슬프게 하는 바람이, 마지막 단말마의 고통을 맞이하기 전 몇 순간 동안, 나를 그 날개뼈에 태우고, 내 죽음을 안달하며 기다리는 이 세상을 가로지를지어다. 나는 여전히, 은밀하게, 인간의 사악함을 말해주는 수많은 예들을 즐길 것이다(한 형제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형제들의 행위를 보면 좋아한다). 독수리, 까마귀, 불멸의 펠리컨, 들오리, 나그네 두루미는, 잠에서 깨어나, 추위에 떨며, 내가, 무시무시하면서도 기쁨에 겨운 유령인 내가 지나가는 것을 번갯불에 볼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할 것이다. 땅 위에서는, 살무사, 두꺼비의 큰 눈, 호랑이, 코끼리가, 바다에서는, 고래, 상어, 귀상어, 모양새 없는 가오리, 북극 바다표범의 이빨이, 이 자연법칙의 위반에 대해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인간은, 떨며, 제가 지르는 신음소리에 싸여, 땅에 제 이마를 붙일 것이다. "그렇다. 나의 타고난 잔인성, 내가 없애고 말고 할 수 없었던 그 잔인성으로 나는 너희들 모두를 능가한다. 너희들이 내 앞에 엎드려 있음은 그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무시무시한 혜성처럼, 피투성이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나를, 이 새로운 환상을 보기 때문인가?(폭풍이 제 앞으로 몰고 가는 검은 구름장과도 같은, 내 거대한 육체에서 피비가 떨어져내린다) 아이들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들을 저주하려는 것이 아니다. 악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희들이 내게 행한 악이 너무 크고, 내가 너희들에게 행한 악이 너무 크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길을 걸었고, 나는 내 길을 걸었건만, 두 길 모두 같은 길이었고, 두 길이 모두  타락한 길이었다. 이 성격의 유사성 때문에,필연적으로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으니, 거기에서 비롯된 충격은 우리들 상호 간에 치명적이었다." 이때, 사람들은 용기를 되찾아 달팽이처럼 목을 늘이며, 이렇게 말하는 자를 보기 위해, 머리를 조금씩 다시 들어올릴 것이다. 갑자기, 열이 올라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이 가장 끔찍한 정염을 드러내며, 이리들이 무서워 할 정도로 험악해질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용수철처럼 동시에 몸을 일으킬 것이다. 그 엄청난 저주들! 그 찢어지는 목소리들! 그들은 나를 알아 보았다. 바야흐로 지상의 동물들이 인간들과 합류하여, 기괴한 아우성을 내지른다. 그들 서로 간의 증오는 이제 끝나고, 그 두 증오가 공공의 적, 나에게 돌려진다. 그들은 만장일치 투합하여 한데 뭉친다. 나를 떠받는 바람이여, 나를 더 높이 올려다오. 나는 배신이 두렵다. 그렇다 그들의 눈에서 차츰 차츰 사라지자, 정염의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완전히 만족한 증인이 되어---오, 박쥐여, 네 날갯짓으로 나를 깨워준 것이 고맙구나. 코 위에 말편자 모양으로 도가머리가 솟은 너, 나는 사실 그것이 불행하게도 일시적인 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역겹게도 내 생명이 소생하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내 몸 속에 있는 많지도 않은 피를 빨려고 내 쪽으로 왔다고 말한다. 이 가설이 왜 사실이 아니겠는가!  
722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9) 댓글:  조회:920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9)     첫번째 노래(9)   (9) 나는 이제 너희들이 듣게 될, 진지하고도 냉정한 한 문단을, 흥분하지 않고, 큰 소리로 낭송할 생각이다. 너희들은 이 문단이 담고 있는 바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이 너희들의 혼란스러운 상상력에 마치 낙인처럼 어김없이 남기게 될 고통스러운 인상을 조심하라. 내가 지금 죽음에 임하였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해골이 아니며, 늙음이 나의 이마에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존재가 날아가버리는 순간의 백조와 비교하려는 일체의 생각은 배제하자. 너희들은 오직 눈앞에 있는 괴물 하나만을 보아라. 그 얼굴을 너희들이 알아볼 수 없을 터이니 나로서는 행복하다만, 그러나 그 얼굴이 그의 영혼보다는 덜 끔찍하다.1)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범죄자는 아니고 --- 그 얘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내가 바다를 다시 보고 배들의 갑판을 밟은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어서, 바로 어제 내가 바다를 떠나기나 한 것처럼 내 기억은 생생하다. 너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벌써 후회하며 너희들에게 베푸는 이 낭독중에, 그럴 수 있다면, 나만큼 침착해져서, 인간의 마음이란 것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지 말라. 오, 문어야2), 시선이 비단 같구나! 그 영혼이 내 영혼과 떨어질 수 없는 너, 지구의 주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이며, 사백 개 흡반이 달린 터키 궁전을 호령하는 너, 마음을 여는 아리따운 미덕과 신성한 매력들이, 파괴할 수없는 끈으로, 만장일치하며, 자기들이 태어난 거주지라도 되는 듯, 네 안에 고상하게 깃들어 있거늘, 너는 왜 나와 함께, 네 수은의 배를 내 알루미늄 가슴에 맞붙이고, 둘이 모두 어느 해변의 어느 바위 앉아, 내가 찬미하는 이 광경을 관상하려 하지 않는가!   늙은 대양아, 수정의 파도 일렁이는 너는 소년 수부들의 병든 등에 보이는 그 하늘빛 자국의 비례를 닮은 꼴이다. 그대는 지구의 몸 위에 찍혀 있는 한 개 무변한 푸른 멍이다. 나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너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감미로운 미풍의 속삭임이라 믿고 싶을, 한줄기 슬픔의 긴 숨력이 깊이 동요하는 영혼 위로,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기며 지나가고, 너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의 추억에, 그들이 항상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첫걸음을, 자신에게서 끝내 떠나지 않는 고통과 낯을 익혀가는 인간의 험난한 첫걸음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기하학의 근엄한 얼굴을 유쾌하게 만드는, 너의 조화롭게 둥근 형태는 인간의 작은 눈을 너무 많이 떠오르게 한다만, 그 눈이란 것이 왜소하기로는 멧돼지의 그것과 같고, 동그란 윤각의 완벽함으로는 밤새들의 그것과 같다. 그런데도, 인간은 어느 세기에나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어왔다. 나로 말하면, 인간은 오직 자기애 때문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지만, 실제로는 아름답지 않으며, 스스로도 그 점을 미심쩍어 하리라고 추측한다. 인간이 제 동류의 얼굴을 왜 그렇게 경멸하며 바라보겠는가? 나는 너에게 경배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태양아, 너는 자기동일성의 상징, 언제나 네 자신과 동일하다. 너는 본질적인 방식으로는 변하지 않으니, 너의 파도가 어느 곳에서는 노호하고 있다 해도, 더 멀리, 어느 다른 해역에서는, 가장 완전한 정적 속에 들어 있다. 너는 인간과 같지 않은, 두 마리 불독이 서로 목을 물어뜯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길을 가다 멈춰 서면서도, 장례행열이 지나갈 때는 멈추지 않는 것이 인간이며, 아침에는 사귀기 쉽다가도 저녁에는 언짢은 기색을 하는 것이, 오늘은 웃고 내일은 우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태양아!   늙은 태양아, 네가 그 가슴속에 내장한 것에서, 인간을 위한 미래적 유용성에 해당 불가한 것은 추호도 없으리라. 너는 이미 인간에게 고래를 주었다. 너는 자연과학의 탐욕스러운 눈에 네 내부 조직의 수천 가지 비밀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게 하니, 너는 겸손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랑거리를 늘어놓는데,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네가 기르는 가지가지 여종들은 서로 간에 우애를 맹세한 적이 없다. 여종은 제각기 자기들끼리 산다. 각각의 종에 따라 다른 기질과 형태구조를 보면 처음에는 변태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충분히 설명된다. 인간도 이와 같은데, 이와 동일한 이유로 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뙈기 땅이 삼천만 인간 존재의 차지가 되었을 때, 그들은 땅뙈기에 뿌리를 내린 듯 붙박혀 있는 자기 이웃 사람들의 삶에는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큰 덩어리에서 작은 덩어리로 내려와도, 인간은 저마다 야만인처럼 자기 소굴에서 살며, 거기서 빠져나와 또하나의 소굴에서 똑같이 웅크리고 있는 제 동류를 찾아가는 일은 흔치 않다. 인류의 세계 대가족이란 것은 가장 빈약한 논리에나 어울리는 한 개 유토피아이다. 또한, 네 풍요로운 젖가슴을 보노라면, 배은망덕의 개념이 스스로 드러난다. 창조주에게 배은망덕하기가 자신들의 가련한 결합의 열매를 내버리고도 남을 정도인, 수많은 부모들이 금방 생각나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태양아!   늙은 태양아, 너의 물질적 거대함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네 부피 전체를 생성하기 위해 필요했으리라 측량되는 그 활력의 크기 밖에는 없다. 너를 한눈에 끌어담을 수는 없다. 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시선이 수평선의 사방 네 점을 향해 연속동작으로 저의 망원경을 돌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수학자가 대수방정식을 풀기 위해, 난제를 척결하기 전에 가능한 여러 경우를 분리해서 검토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비대해 보이려고 영양가 있는 음식물을 먹고, 보다 나은 운명을 가져다줄 여러 가지 다른 노력을 한다. 이 존경할 만한 개구리가 원하는 만큼 몸을 부풀리게 하라. 너는 안심하라. 개구리가 비대함으로 너와 겨룰 수 없으리라. 아무튼,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렇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너의 물은 쓰다. 그것은 비평이 마술에, 과학에, 모든 것에 떨어뜨리는 쓸개즙과 정확하게 같은맛이다. 천재성을 지닌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를 바보롤 통하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의 육체가 아름다우면, 그는 흉측한 꼽추가 된다. 분명코, 인간이 이렇게 불완전함을 비판하려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강하게 느껴야 할 터인데, 더구나 그 사분의 삼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 기인하지 않는가!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인간들은, 그들의 방법이 뛰어나다 하지만, 과학적 탐사 수단의 도움을 받고, 네 심연의 현기증나는 깊이를 측정하는 데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가장 긴, 가장 무거운 측심기가 가닿을 수 없다고 확인된 심연들을, 너는 지니고 있다. 물고기들에게는--- 접근이 허용되나, 인간에게는 아니다. 종종, 나는 어느쪽이 더 알기 쉬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태양의 깊이일까, 인간 마음의 깊이일까! 종종, 달이 돛대들 사이에서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동안, 문득 깨닫고 보면, 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배위에 서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닌 모든 것을 생각에서 몰아내고,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 대양과 인간의 마음,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깊고, 더 꿰뚫을 수 없는 것인가? 삼십 년의 인생 경험으로 이 해답의 저울대를 이쪽이나 저쪽으로 어느 정도까지 기울일 수 있다면3), 대양은 그 깊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성의 비교에 관해서라면, 인간 마음의 깊이와는 같은 줄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 허용되리라, 나는 고결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들이 육십 세가 되어 죽으면, 사람들은 저마다 잊지 않고 외쳤다: "그들은 이 땅에서 선행을 베풀었다. 다시 말해서 자비를 실천했다. 그게 전부다. 어려울 게 없는 일이고, 누구나 그만큼은 할 수 있다." 전날 밤에 뜨겁게 사랑하던 두 연인이 왜 말 한마디의 오해로, 증오의, 복수심의 사랑과 후회의 가시를 세우고, 한 사람은 동방으로, 한 사람은 서방으로 갈라서서, 제각기 제 고독한 오기에 휩싸여, 더는 다시 만나지 않는지 누가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날마다 되풀이해 일어나는 기적이지만, 그렇다고 덜 기적적인 것은 아니다. 왜 인간이 자기 동류의 보편적인 불운뿐만 아니라, 가장 귀중한 친구들의 개인적인 불운까지 즐기면서, 동시에 그 불운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지 누가 이해할 것인가. 이 시리즈를 막음하기에 이론의 여지 없는 예가 하나 있으니, 인간은 위선적으로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류라는 새끼 멧돼지들이 그토록 서로 신뢰하며 이기주의적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심리학에는 이루어야 할 진보가 많이 남아 있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너는 하도 강력해서, 인간들은 제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것을 알았다. 그들은 저희들이 지닌 재능의 모든 자원을 다 사용해도 헛일이니--- 너를 지배할 수 없다. 그들은 저희들의 스승을 발견했다. 그들이 저희들보다 더 강력한 어떤 것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이 어떤 것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대양이다! 네가 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 그만하니 그들은 너를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들의 가장 육중한 기계들을 아리땁고, 우아하게 수월수월 춤추게 한다. 너는 그 기계들이 하늘까지 곡예 도약을 하게 하고, 네 영역의 밑바닥까지 멋진 잠수를 하게 하니, 곡예사가 부러워하리라. 기계들은 복이 있나니, 네가 부글부글 거품 이는 네 주름 속으로 기계들을 결정적으로 휘감아들이지만 않는다면, 그것들은 네 물로 된 내장 속으로 철도도 없이 들어가, 물고기들이 어떠한지, 무엇보다도 자기들 자신이 어떠한지 보게 되리라. 인간은 말한다: "나는 대양보다 더 영리하다." 가능한 일이고, 자못 진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대양에 끼치는 두려움보다 대양이 인간에게 끼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이는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허공에 떠 있는 우리 구체의 태고 시절과 동갑내기인 이 관람객 족장이 국가들의 행상 전투를 목격할 때, 그는 안쓰러워 미소짓는다. 저게 바로 인류의 손에서 나온 백여 마리 레비아탕이로구나. 상관들의 과장된 명령, 부상자들의 비병, 포격, 저거야 몇 초를 소일하기에 안성맞춤인 소음이로구나. 드라마가 끝나고, 대양이 모든 것을 제 뱃속에 집어넣은 것 같다. 그 아가리는 무시무시하다. 그것은 분명 아래쪽에, 미지의 방향이 크나클 것이다! 마침내 그 어리석고 재미도 없는 굿판의 끝을 장식하려고, 하늘 한복파에 보인다. 피로로 뒤쳐진 어떤 두루미가, 활짝 펼친 비상의 날개를 멈추지도 않고, 외치기 시작한다: "저런!--- 굿판이 시시하구나! 아래에 검은 점들이 몇 개 있더니, 눈을 감았다 뜨니, 사라져버렸네."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늙은 대양아, 오 위대한 홀아비야, 네가 그 냉정한 왕국의 장엄한 황야를 답사할 때, 네 타고난 장려함과, 내가 너에게 서둘러 바치는 진정한 찬사를 너는 떳떳이 뽐내는구나. 지고의 힘이 너에게 베푼 속성들 가운데 가장 웅혼한 것인 네 장려한 느낌의 부드러운 활기로 쾌락하게 흔들리는 너는, 어두운 신비 한가운데에, 네 숭고한 수면에 고루고루,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네 파도를, 네 영원한 힘의 차분한 느낌과 함께 펼친다. 파도는 짧은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연이어 일어난다. 하나의 파도가 잦아들자마자, 곧바로 또하나의 파도가 솟아올라 그 파도를 따라가거니와, 녹아드는 거품의 우수 어린 소리를 동반하여,우리에게 모든 것이 거품일 뿐임을 일깨운다. (이와 같이, 인간 존재들은, 이 살아 있는 파도들은, 하나하나, 단조롭게, 그러나 거품소리를 남기지는 않고, 죽는다) 철새는 신뢰감을 가지고 파도 위에서 쉬며, 제 날개뼈가 공중의 순례를 게속하기 위해 일상의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오만한 매력으로 가득한 파도의 움직임에 제 몸을 맡긴다. 나는 인간의 위엄이 네 위엄을 반사하는 그림자의 화신이기만 바랄 뿐이다. 내 요구가 많긴 한데, 이 진지한 희망이 너에게는 영예롭다. 무한의 이미지인 네 정신의 위대함은, 철학자의 성찰처럼, 여인의 사랑처럼, 새의 신성한 아름다움 처럼, 시인의 명상처럼 무한하다. 너는 밤보다 더 아름답다. 대답하라, 대양아, 너는 네 형제가 되겠는가? 내가 너를 신에 대한 복수심과 비교하기를 바란다면, 네 몸을 흔들어라. 맹렬하게--- 더---더욱 맹렬하게 . 네 납빛 발톱을 펴고, 네 자신의 가슴 위로 길을 내고--- 좋다. 네 가공할 파도를 펼쳐라, 오직 나에게서만 이해받는, 무시무시한 태양이여, 그 앞에 나는 넘어져 네 무릎에 엎드린다. 인간의 위엄은 짐짓 꾸민 것이어서, 나를 위압하지 못할 것이나, 너는 다르다. 오! 네가 높은 물마루를 무섭게 세우고, 조신들에 둘러싸이듯 구불구불한 네 주름에 둘러싸여, 자기최면(磁氣催眠)4)을 걸며 악착스럽게, 자신이 어떤 자인지 자각하면서, 한 층 위에 또 한 층 파도를 굴리며 다가올 때, 인간들이 안전한 상태로 해안에서 떨며 너를 관상할 때조차도 그렇게 두려워하는, 그 끝날 줄 모르는 둔탁한 포효를, 내가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회한에 짓눌린 것처럼, 네가 그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내지르는 동안, 내가 너희 맞수라고 말할 수 있는 비범한 권리가 내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아차린다. 바로 그 때문에, 너와 가장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루고, 삼라만상에서 이제까지 보아온 것 가운데 가장 우스꽝스러운 반대명제를 형성하는 나의 동류들을 네가 생각나게 하여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않는다면, 너의 우월성과 대치한 나는 너에게 나의 사랑을 고스란히 바치련만(그런데 아름다움을 향한 나의 갈망에 담긴 사랑의 양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너를 증오한다. 왜 나는 천번이나 다시 네게 돌아와, 내 불타는 이마를 쓰다듬기 위해 살며시 열리는 그 우정어린 팔, 한 번 접촉하면 이마의 열이 사라지는 그 팔에 안기는 것인가! 나는 네 감춰진 운명을 알지 못하건만,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이 네게는 흥미롭다. 그러니 네가 암흑세계 왕자의 거처는 아닌지 내게 말해달라, 내게 말해달라----말해달라, 대양이여(아직 환상밖에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면, 오직 나 혼자에게만), 그리고 사탄의 입김이 폭풍우를 만들어 네 짠 물을 구름에까지 들어올리는 것은 아닌지 내게 말해달라. 네가 나에게 그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지옥이 그렇게도 인간 가까이 있음을 알고 나는 즐거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단이 내 기원(祈願)을 담은 마지막 문단이 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한 번만 더, 나는 너에게 경례를 올리고 작별을 하고 싶구나!  늙은 대양아, 수정의 파도 일렁이는-- 나의 눈은 넘치는 눈물로 젖어들고, 나는 더이상 계속할 힘이 없다. 야수의 모습을 한 인간들 사이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내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를! 크게 힘을 쏟자. 그리고 위무감을 가지고, 이 자상에서 우리의 운명을 완수하자. 나는 너에게 경례한다. 늙은 대양아!   1) 로트레아몽은 여기서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추론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으 말투를 비틀어 사용하고 있다. 말도로르는 좋은 선생과 나쁜 선생, 착한 학생과 불량한 학생 사이를 자주 오간다.   2) 이 '문어'는 초판에서 '다제'였다. 조르주 디제는 로트레아몽의 타르브 리세에서 수학할 때 그의 동기생 중 하나로 그의 후견인 장 다제의 아들이다. 로트레아몽과 우정이 돈독했던 조르주 다제는 로만 구성된 1868년판 에 여러 번 등장했으나. 이후 판에서 이 이름은 두문자로 축약하였으며, 여기서는 말도로르의 동맹세력 가운데 하나인 문어가 되어 있다.   3) 뒤카스가 이 글을 쓸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여기서 서른 살은 인간의 성숙기를 어림잡아 가리키는 나이일 뿐이다.   4)자이유체(磁氣流體)가 인간과 동물의 심리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에 따른 최면술로 18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시술되던 정신요법.    
721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8) 댓글:  조회:886  추천:0  2019-02-2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8)      첫번째 노래(8)   (8) 달빛 아래서, 바닷가에서, 벌판의 외진 곳에서, 쓰라린 상념에 잠겨 있으면, 모든 사물들이 노랗고, 아리송하고, 환상적인 형태를 띠어 보인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오고 다시 오며, 모양도 가지가지로, 납작하게 땅에 붙어 달린다. 그 시절, 내가 젊음의 날개에 실려갈 때는, 그것이 나를 꿈꾸게 했고, 기묘하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길이 들었다. 바람은 나뭇잎들 사이로 빠져나오며 나른한 음으로 신음하고, 부엉이는 그 장중한 한탄가를 노래하며, 듣는 자들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한다. 그때, 개들이 발광을 하며, 사슬을 끊고, 먼 농가에서 도망쳐나온다.1) 놈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벌판을 내달린다. 갑자기, 놈들은 멈춰 서서, 불덩이 같은 눈으로, 사납게 파고드는 불안에 싸여, 사방을 둘러보고는, 마치 코끼리들이 죽기 전에 사막에서 그 긴 코를 절망적으로 들어올리고, 무기력한 귀를 내려뜨리며, 마지막 시선을 하늘에 던지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개들은 무기력한 귀를 내려뜨리고, 고개를 쳐들고, 무서운 목구멍을 부풀리며, 때로는 배고파 울어대는 아이처럼, 때로는 배에 상처 입은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때로는 아이를 낳으려는 여인처럼, 때로는 페스트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처럼, 때로는 숭고한 곡조를 노래하는 처녀처럼, 번갈아가며 짖기 시작한다. 북쪽의 별들을 향하여, 동쪽의 별들을 향하여, 남쪽의 별들을 향하여, 서쪽의 별들을 향하여, 달을 향하여, 멀리서 보면 거대한 바위들과 비숫한,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산들을 향하여, 저희들이 폐부 가득 들이마시는, 저희들의 콧구멍 내부를 붉게 타오르게 하는 차가운 대기를 향하여, 밤의 정적을 향하여, 부리에 쥐나 개구리들, 새끼들에게 줄 맛있는 산 먹이를 물고, 비스듬히 날아 저희들의 콧등을 스치는 올빼미들을 향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산토끼들을 향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말을 달려 달아나는 도둑을 향하여,2) 히스 덤불를 휘저으며, 저희들의 피부를 떨게 하고 이빨을 갈게 하는 뱀들을 향하여, 저희들 자신마저 두렵게 하는 저희들의 짖음 소리를 향하여, 저희들이 턱을 한 번 거칠게 눌러 으스러뜨리는 두꺼비들을 향하여(왜 두꺼비들은 늪에서 멀리 나왔을까?). 부드럽게 흔들리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모두 저희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그 영리한 눈을 고정시켜 알아내고 싶은 신비일 뿐인 나무들을 향하여, 그 긴 다리 사이의 줄에 매달린, 달아나려고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거미들을 향하여, 낮 동안 먹을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지친 날개로 둥지로 돌아오는 까마귀들을 향하여, 바닷가의 바위들을 향하여, 보이지 않는 선박들의 돛대에서 비치는 불빛을 향하여, 어렴풋한 파도소리를 향하여, 헤엄을 치며 그 검은 등을 보이고는 이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커다란 물고기들을 향하여, 그리고 저희들을 노예로 만드는 인간을 향하여, 그러고 나서, 놈들은 저희들의 피투성이 다리로, 도랑을, 길을, 발을, 풀과 가파른 돌무더기를 뛰어넘어, 다시 벌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공수병에 걸려, 그 목마름을 가라앉히려고 드넓은 못을 찾는 것만 같다. 놈들의 깊어지는 울부짖음은 자연을 무섭게 한다. 지체된 여행자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묘지의 친구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찢고, 피가 흘러내리는 그 입으로 그를 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놈들은 이빨이 망가지지 않았으니까. 야생동물들은 감히 놈들에게 다가가 그 인육의 식사에 끼어들지 못하고, 몸을 떨며, 까마득하게 달아난다. 몇 시간 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기진맥진한, 초주검이 된 개들은, 혀를 입 밖으로 늘어뜨리고,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이놈 저놈이 서로 덮쳐들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서로 천 조각으로 찢어발긴다. 놈들은 잔인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흐릿한 눈으로,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네가 침대에 누웠을 때 벌판에서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녀석들이 하는 것을 가소롭게 여기지 말라. 너처럼, 나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길쭉한 그 밖의 다른 인간들처럼, 녀석들한테도 무한에의 채울 길 없는 갈증이 있단다. 그렇더라도, 네가 창 앞에 서서, 제법 장엄한 그 광경을 관상하는 것은 허락하마." 그 시간 이후, 나는 죽은 여인의 소망을 존중한다. 이 욕구를 채울 길이 없구나! 들은 바에 따르면, 나는 남자와 여자의 아들이다. 놀라운 일이다 --- 그 이상이라고 믿었건만. 그런데, 내가 어디서 왔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이었다면, 나로서는 차라리 그 배고픔이 태풍에 버금하는 상어 암컷과, 잔인성을 인정받은 호랑이 수컷의 아들이 되고 싶었으리라. 이렇게 악독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를 바라보는 너희들아, 나에게서 멀어지라. 내 숨결은 독기 서린 입김을 발산한다. 내 이마의 초록빛 주름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어떤 큰 물고기의 등 가시와 비슷한, 또는 해안을 덮은 바위와 비슷한, 또는 내가 머리에 다른 색깔의 머리칼을 이고 있었을 때, 내가 자주 훑고 다녔던 알프스의 가파른 산악과 비슷한, 내 앙상한 얼굴의 불거진 뼈를 본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나는 뇌우가 치는 밤중에, 두 눈을 이글거리며, 머리칼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길 한복판의 돌맹이처럼 외톨이가 되어, 인간들의 거주지 주위를 배회할 때, 굴뚝의 내부를 가득 채운 그을름처럼 새까만 비로드 한 조각으로, 내 낙인 찍힌 얼굴을 가린다. 지고의 존재가 강력한 증오의 미소를 띠며 나에게 썩은 그 추악함을 눈들이 목격하게 할 수는 없다. 매일 아침, 태양이 온 누리 자연에 건강에 좋은 환희와 열기를 퍼뜨리며, 남들을 위해 떠오를 때, 내 표정은 미동도 없는데 나는 사랑하는 내 동굴의 안쪽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어둠이 가득한 공간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포도주처럼 나를 취하게 하는 절망에 빠져, 내 강한 손으로 내 가슴을 해하며 갈기갈기 찢는다.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내가 공수병에 걸린 것이 아니구나!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나만 유일하게 고통받는 자가 아니구나!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제 근육들을 시험하며, 그것들의 운명을 생각하다, 이윽고 단두대에 오를 사형수처럼, 나는 내 밀짚 침대 위에 서서 눈을 감고는, 몇 시간을 고스란히 바쳐,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린다. 나는 곧장 꺼꾸러져 죽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나의 목이 같은 방향으로 더는 계속해서 돌아갈 수 없을 때,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멈출 때, 나는 동굴 입구를 덮고 있는 두터운 가시덤불이 어쩌다 드물게 남겨놓은 틈 사이로 삽시간에 지평선을 바라본다.3)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아무것도 --- 나무들이랑, 길게 줄지어 공중을 지나가는 새들이랑 소용돌이치며 춤추는 벌판 말고는 그것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피와 뇌수를 ---도대체 누가, 모루를 치는 망치처럼, 내 머리 위에 쇠막대를 박아대는가?   1) 뒤카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는 당시 또돌아다니는 개떼들이 많았다고 한다   2) 이 말 탄 도둑들 역시 우루과이의 추억과 연결될 것이다. '가우초 모테로'라고 불리는 원래 산악지대의 목동들이었던 이 도둑들은 미국의 서부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3) 동굴 속에 갇힌 '나'의 행태는 플라톤이 동굴 신화로 표현하는 인간의 지적 조건에 대한 알레고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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