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지오 신문- 시가 있는 마을
탈
위선환
목 안이 칼칼하고 바람은 낮게 분다 돌들이 구르면서 서로 부딪친다
냇가에서 집어든 물방울은 깨졌고 돌멩이가 뛰어서 건너간 수면은 잘게 부서졌고
달빛 환한 밤에
河回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의 하얀 각시탈을 입 벌리고 바라보는 이매의 이매탈은
턱이 떨어져나가고 없다
걸립할 때, 별이 춤판으로 떨어졌다 강 건너 낮은 하늘로 빛이 지나가고 개가 짖더니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위선환의「탈」은 4연으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기법의 시다. 마당극이나 춤판에 올릴 수 있는 극적 구성을 갖고 있다. 시인은 4연에서 ‘춤판’과 ‘다섯째 마당’을 제시어로 사용하여이 시의 공연성을 암시하고 있다.
위의 시는 극의 구성요소인 4단계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더 세분하여 의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위선환의 시는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가장 모던한 스타일의 현대적 기법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위의 시는 강한 극적 자극이 있다. 시골장날 마당극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하고 느긋한 해학적 소재는 아니다. 굳이 분류한다면 스릴러 추리극에 가깝다. 불안하고 급박한 위기감이 시 전체에 깔려 있다.
위의 시를 구성의 5단계로 나누어 보면 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연 발단 부분 - ‘목 안이 칼칼하고’ ‘서정적 자아’는 불안정하다. ‘돌이 구르면서 부딪치고/ 물방울이 깨지고/ 돌멩이가 수면을 부순다‘. 연극이 일상적이지 않듯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도 일상적이지 않다. 극 초반부터 불안과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2-3연 전개 부분 - ‘달빛 환한 밤’에 모호한 극적 분위기가 고조된다. 도깨비가 나올 것도 같고 사랑이 무르익을 것도 같은 아릿한 밤이다. 턱이 없는, 모자라고 불안정한 병신탈인 ‘이매탈’은 ‘하회의 물굽이를 깔고 앉은’ ‘각시탈’을 입을 벌리고 넋놓고 바라본다. 정신지체인 병신이 젊은 아낙을 ‘짝사랑’하면 집착의 사랑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도망치느냐, 죽느냐, 죽이느냐 결국, 극단의 사랑이 될 것이다.
4연 1행 위기 부분 - ‘턱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는 부분은 ‘위기 부분’에 해당된다. 불안과 위기상황은 4연 2행의 ‘개가 짖’을 때에 한층 고조된다.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했을 때 개가 짖는다. ‘이매탈’은 드디어 행동을 일으키며, 사건을 벌이는 것이다.
4연 3행 절정 부분 - 극은 박진감 넘치게 ‘절정’을 향하여 달린다.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 치정살인? 복상사? 과연 어느 쪽일까? 이매탈인 많이 모자라는 ‘병신탈’은 ‘젊은 각시탈’을 짝사랑하다 동반자살을 하는 것? 갈대밭 무성한 저녁, 쪽배 위에서? 궁금궁금 하게, 위태위태하게, 긴장감 조성하기.
4연 4행 결말 부분 -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다. 스산하다. 왜냐하면 이 시극은 스릴러물이기 때문이다. 파계와 파격미.
스릴러 기법을 도용한 위선환의 시는 연극과 시나리오로 꾸미거나 마당극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성을 가지고 있다.
위의 시는 하회탈 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여자가 남자를 짝사랑한 하회탈 설화를, 반대로 남자인 ‘이매탈’이 ‘각시탈’을 사랑하다 죽는 것으로 바꿔서 각색하였다. 하회탈의 열 번째 탈인 ‘이매탈’은, 허도령이 꿈에 계시를 받아 외부와 단절하고 숨어서 목욕재계하고 신성한 ‘탈’을 만들던 중, ‘허 도령’을 짝사랑한 동네 ‘처녀’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문에 구멍을 뚫고 문구멍으로 들여다본 죄로, 허도령은 부정을 타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그래서 10번째 ‘이매탈’은 턱이 없는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선환은 ‘아사달과 아사녀’ 설화처럼 고려시대의 슬픈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재구성하여 한편의 시로 완성하였다. 국보 제121호로 박물관에서 귀히 대접받는 하회탈. 분명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회탈은 ‘신’으로 모시고, 사람이 범접하지 않고 신성시하여 제를 올리고 잘 보존했기 때문에 11-12세기 작품이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제사장만 1년에 한번 제사를 지내고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성시하는 성경의 ‘언약궤’와 같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빈아답의 집에서 나왔는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붙들었더니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고 성경에서 언약궤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탈을 만들던 장인은 천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의 지배계급인 ‘양반’과 정신의 지배계급인 ‘중’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천민 계급인 ‘백정’과 같이 춤판과 마당극으로 등장시켜 회화하여 놀이를 하였다.
계급을 뛰어넘은 사랑은 어느 시대나 금기다. 그 사랑의 결말은 비극이다.
위선환의 「탈」은 서정주의 ‘문둥이’ 시처럼 섬뜩한 배반의 사랑을 다룸으로써 ‘낯설게하기’를 실현하였다. 묘하게 호기심과 미의식을 자극한다.
마지막 행의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는 부분에서 다시 1행의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서정적 자아’가 재등장한다. 그러나 1연의 사건이 생기기 전의 시점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미 ‘어떤 결과’를 도출한 위기의 상황에 서정적 자아가 놓이게 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막이 내려도 독자는 불안하다.
아주 희귀한 복상사를 다룸으로써, 위험하고 불안정한 사랑의 정점을 ‘보여주기’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의 배 위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세기 동안 동네 아낙네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쉬쉬, 만담거리가 될 것이다.
전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시는 꼭 스릴러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죽었는데 꼭 또 현재에 살아날 것만 같은.
극적 긴장감과 호기심, 불안감을 조성하는 능력은 위선환 시의 힘이다.
위선환은 가장 한국적인 하회탈을 소재로 가장 현대적인 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탈은 존재의 분신이면서 또한 존재 자체이다. 몸체이면서 외형이요, 내면이다. 외형에 자아의 얼굴을 가리고 자유롭게 자신을 희화하고 상대를 조롱한다. 그리하여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진정한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적나라하고 보여준다.
탈 뒤에 숨은 자아와 탈을 벗은 자아의 괴리감이라고나 할까? 성을 버려야 하는 중이 성을 선택한다면 갈등과 불안증이 고조될 것이다. 파계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현재의 자아를 던져버리고, 탈 뒤에 숨는다. 얼굴 없는 자아다.
어느 것도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탈’을 쓰고 있어도 ‘탈’을 벗어 던져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는, 시인의 존재의 불안.
부조리극의 극치다,
위선환의 「탈」은 민화처럼 가장 한국적인 소재다. ‘탈’은 ‘자아’며 ‘초자아’다. 왜냐하면 ‘탈’의 인물은 초월자인 ‘신’을 의미하면서 또한 타락자인 ‘양반’과 ‘병신’, ‘중’ 등 기존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천시받는 인물을 대변한다. 현대물로 치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는 치정행각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미 각시는 각시가 아니다. 중은 중이 아니다. 양반은 양반이 아니다. ‘탈’을 뒤집어 쓴 순간 역할이 바뀐다. 대표성을 잃고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인물이 된다.
위선환은 4연 3행의 ‘벗은 여자의 배 위에서 벗은 남자가 죽었다’는 극적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극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었다. 치정관계에 얽혀 보험사기를 하고 아내를 죽인 살인자나,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 연애질과 잡기를 하는 현대 양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다섯째 마당에 나가서 파계하고 중탈을 벗는데 갑자기 얼굴이 없다’
마지막 4연 4행 결말 부분은 ‘다섯째 마당’이라는 극의 장면제시를 하고 있다. 파계한 중이 ‘탈’을 벗으니 얼굴이 없다. ‘탈’은 얼굴을 가려서 진짜 얼굴이 안 보인다. 오랫동안 탈을 쓰고 있으면 이미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 없다. 탈을 벗는 순간 진실에 노출된다. 탈을 쓰지 않으면 현실과 존재마저도 위태롭고 불안하다. 현대에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성이 있는 질문이다. 누가 ‘탈’을 벗을 것인가?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선|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