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정 호 승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물고기는 조용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말을 듣고만 있을 뿐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대중이 좋아하는 시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쓴다.
둘째, 대중이 좋아하는 연애시와 사랑시를 쓴다.
셋째, 감각적 미의식을 가진 표현을 한다.
넷째, 자연, 생물, 사물에서 얻은 직관과 사유로 시의 품격을 높인다.
다섯째, 작가의 해석적 깨달음과 재해석이 있다.
여섯째, 약자가 되어 진정성과 애환적 어조로 독자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위의 시를 살펴보고, 대중들이 사랑할 만한 요소를 찾아보자.
첫째, 제목이 짧고, 직접적. 내용도 진정성이 있으며 감각적이다. 바쁜 현대인도 한번쯤은 ‘나무, 풀, 별’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
둘째, 대중이 좋아하는 ‘사랑시’. 1-2행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는 정서적, 정신적, 감정적 사랑 모두를 포함한 사랑의 일반화다. 대중적 사랑이다. 그러나 3-4행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는 현재적, 현실적 적나라한 사랑의 현재감정이다. 사랑은 원래 ‘통속적’이며 육체적이다. 1-4행은 솔직하다. 직접적이다. 감각적이다. 에로스적 사랑은 대중의 원초적 욕구를 자극한다.
셋째, 시의 품격. 5행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 부분을 살펴보자. 미완의 사랑은 번뇌와 번민을 가져온다. 아마도 신라시대 여인들은 촛불을 바위 위에 켜 놓고,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주술적 기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강가에서 기도를 하지는 않는다. 속도화 시대에 별을 쳐다볼 여유도 없는 현대인의 사랑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5행은 아름답다. 기원하는 한 남자의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다. 또한 사랑을 통속적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승화’하였다.
넷째, 사유와 감각적 미의식. 2연 1-2행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를 살펴보자. ‘산’을 남성성으로 ‘밭’을 여성성으로 치환하여 보자. 애로티시즘과 섹슈얼리즘의 극치다.
다섯째, 솔직함과 진정성. 2연 3-4행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 사랑의 감정은 이런 거야’ 라고 독자는 절절하게 공감한다.
만약 그 사랑이 나는 유일한 진정성을 가진 우주적 사랑인데, 세상은 부정과 불륜이라고 지탄한다면? 불같은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 것. 금지된 사랑일수록 뜨겁게 불탄다.
여섯째, 상상력과 동정심 유발. 2연 5행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면, 독자는 영화처럼 무조건 주인공편이다.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우는 비현실적 진실에 독자의 상상력은 심미적 자극을 받는다. 동정과 공감 100%.
일곱째, 객관화와 사실적 표현, 재해석. 2연 6-7행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처럼. ‘침묵’은 사실적인 표현인 동시에 객관화, 재해석을 내포한다. 침묵하는 사랑은 더 아파서, 독자의 공감까지 이끌어낸다.
초월적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예술의 주제였다. 갈등과 극적 요소가 강한 내용은 지금도 우리의 안방극장을 독점하고 있다. 연예인이라면 가십거리가 되지만. 평범한 옆집 중년부부의 사랑에 누가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서 구경할까? 불안정하고 쇼킹한 내용에 대중은 돈을 지불하고, 실 컷 울고 카타르시스를 한다.
한 편의 짧은 시 속에는 10권의 대하드라마가 숨어 있다. 위의 시는 필자가 제시한 여섯 가지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진정성을 가진 시인의 숨은 사랑 이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독자를 공범자로 흡입한다. ‘시는 소설이다, 영화다’, 정호승은 흥행을 아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