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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가온문학 평론 특집- 세자르 바예호의 시 세계 / 이선 댓글:  조회:1773  추천:0  2018-12-26
          같은 이야기                                                                  세자르 바예호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있고,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을 모르지요 여쟀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 데… 그러나 빛이 폐병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자학과 절망의 종착점에서 피어난 해탈의 시학 ―하이퍼시 구조론을 중심으로   이 선(시인)     1. 서론 세자르 바예호Ce'sar Vallejo(1892-1938)의 시 세계는 내용면에서는 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시의 표현구조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를 가지고 있다. 세자르 바예호는 현대 초현실주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모더니즘 시와 초현실주의 시로 문예사조를 갈라놓는다. 바예호의 시가 현대 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의 어떤 조건을 내포하고 있는지, 하이퍼시의 구조론에 입각하여 작품을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시의 형식인 외형을 살펴보자. 본 논문 2장에서는 표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하이퍼시의 기본요소인 ‘링크- 리좀 - 무의미 시- 환타지 영상시(이미지의 결합)-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에 초점을 맞추어 시의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시의 내용을 중심으로 3장과 4장에서‘자학과 절망- 해탈의 시학’으로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자학과 절망을‘해탈의 시학’으로 승화시켜 독자를 매료시킨 바예호의 하이퍼시의 특징을 분석하는 일은 현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필자가 바예호의 시를 하이퍼시 구조로 분류하는 것은 학계 최초의 학문적 고찰임을 밝혀 둔다.   2. 하이퍼시 하이퍼시는 ‘링크’와 ‘리좀’기능이 시의 단절과 결합, 연결을 실행하고 있다. 모든 행과 연은 제목과 소통되지만, 종속적이지 않다.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필자는 바예호의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인‘하이퍼시’구조를 으로 명명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링크 링크(link)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하이퍼시의 링크 기능은, 각 행과 연의 자립성과 독립성을 실현한다. 하이퍼시의 링크 기능이 바예호의 시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연과 연의 이질적 결합’‘제목과 내용’이 분리된다. ‘링크’의 기능은 ‘연결’이다. 그러나 내용이 제목에 제한을 받거나 구속받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 다른 내용’이가능하다. 각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위의 시 1-7연의 각 연들은 제목 「같은 이야기」와 연결되어 링크된다. 그러나 이미지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제목과 독립적으로 연결된다. 새로운 이미지 덩어리들의 합성이다. 그 이미지들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새로운 감각적 미의식을 시에 준다. 1-7연의 각행은 자립적이며 독립적이다. 각 행들은 앞문장을 뒷문장이 지배하지 않는다. 각행도 ‘이질적 단어와 단어의 합성으로 각 행은 독립적이다. 단어, 행, 연은 삭제와 삽입을 하여도 시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자립적이다. 아래 3연과 5연의 시를 살펴보자.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3연)//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5연)//   위의 시「같은 이야기」 3연과 5연은 제목과 링크되어 연결된다. 그러나 1, 2, 4연과 6, 7연을 모두 빼거나 넣어도 시의 구조가 유지된다. 그 이유는 각 연들이 링크되나, 각 연들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기 때문이다. 링크 기능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한다. 2) 리좀 리좀(Rhyzome)은 그물망처럼 얽혀, 확장되는 기능이다. 리좀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시에 제공한다. 리좀은 확산적 기능이다. 리좀은‘이질성, 다양성, 무의미적 단절’을 실현하는 하이퍼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은‘중첩 이미지’로 실현된다. ‘리좀’의 기능은 거미줄처럼, 그물망처럼 러너로 퍼져나가 확산적 기능을 한다. 다음 시 「삶의 발견」일부를 읽어보자. 한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 번도 삶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 번도 사람이 지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지금 아니고는 한번도 집이나, 거리, 대기, 수평선이 있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 친구 빼리에가 오면 난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우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사실 내가 언제 내 친구 빼리에를 알았던 걸까요? 오늘 처음 우리가 아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가라고, 가서 다시 돌아오라고, 그리고 나를 보러 들어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하자면 처음처럼. 우리가 산 세월은 얼마나 짧은 겁니까! 내가 태어난 것은 갓 지금입니다. 내 나이를 셀 단위가 없습니다. 지금 금방 태어났거든요! 아직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여러분, 나는 지금 너무 작아서 하루가 내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어요. 됐어요! 삶이 시방 나의 모든 죽음을 정통으로 꿰뚫었습니다. ―「삶의 발견」3, 5,7연   「삶의 발견」은 리좀 기능을 활용한 하이퍼시다. 한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자꾸 덧붙인다. 각각의 다른 단상과 의견을 계속 끼워 넣는다. 삽입하고 점점 부풀려져서 한권의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생성된다. 리좀 기능을 사용하여 그물망처럼 여러 이야기를 촘촘하게 실로 짜놓은 듯 구성하고 있다. 리좀은 구성력이며 내용과 표현을 결정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무의식적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자동기술기법’으로 쓰고 있다. 요즈음 현대 시인들이 막 시작한 시창작 기법을 바예호는 백년 전에 이미 실험한 것이다. 리좀은 나뭇가지가 각각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같다. 시의 기둥에 뿌리가 내리고, 시의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간다. 그 가지에서 줄기가 나온다. 잎이 피고, 꽃이 핀다. 허공엔 새가 날아다니고, 비가 오고, 나비가 와서 앉는다. 구름이 흘러가다 발을 멈추고 머물기도 한다. 바람이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할 것이다.   3) 무의미 시 하이퍼시의 ‘무의미 시’는‘열린 문장’이다. 시의 내용을 한정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지시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무의미 시는 불확정적이며 무제한적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아래 시에서 하이퍼시의 ‘무의미 시’의 요소를 살펴보자.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위의 밑줄 친 4연 3-5행을 눈여겨 살펴보자.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라는 표현은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표현이다. ‘초현실주의 하이퍼시’는 굳이 의미적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무의미 시’라고 보면 된다. 굳이 해석하려는 독자나 평자가 있다면, 1월에 어떤 단어를 대입하여도 제한받지 않는다. ‘나무, 장미, 도자기, 애인’ 어떤 다른 단어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현재와 미래, 과거’라는 시제를 넣어도 시가 성립된다. ‘무의미 시’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어떤 행과 연을 삭제하거나 삽입할 수 있다.   4) 환타지 영상시― 이미지의 결합 하이퍼시는 ‘환타지 기법’과 ‘영상 기법’을 결합하고 있다. 현대인은 ‘환타지’한 영상과학의 시대, 빛의 파노라마 세계에 살고 있다. 바예호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비디오쇼와 빛의 쇼가 합성되는 광전자 시대다. 멀티비젼은 초현실주의의 특징이다. TV도 한 화면에서 여러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각각의 다른 요소와 단위의 덩어리들이 합하여 개별적, 선별적 전체를 만든다. 다음 「한 사내가 빵을 어깨에 메고…」전문을 소개한다. 한 사내가 빵을 어깨에 메고 간다 좀 있다가 나의 조정에 대해 시를 써볼까? 다른 사내가 앉아 긁는다. 겨드랑이에서 이를 꺼내 죽인다. 무슨 용기로 정신분석학에 대해 말하지? 다른 사내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의사한테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해볼까? 절뚝발이가 한 어린애의 팔에 의지해 간다 나중에 앙드레 브르통 책을 읽을까? 다른 사내가 추워서 떨고, 기침하더니 피를 뱉는다. 심오한 '나'라는 존재를 결코 암시할 수 없는 걸까? 다른 사내가 진흙탕에서 뼈다귀와 과일껍질을 뒤진다. 그 다음에 영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지?     샤갈의 그림처럼 바예호의 시는 이미지의 작은 알갱이들이 결합하여 이미지 덩어리를 만든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한 화폭 위에 낯선 이미지 덩어리로 펼쳐져 있다. 그 낯선 이미지들은 환타지 영상을 만든다. 위의 시는 새로운 형식의 시다. 각 연마다 끝행에 물음표를 넣고 있다. 평서문과 의문문이 첫연부터 끝연까지 똑같은 형식으로 반복된다. 어긋나는 낯선 질문은 낯선 이미지다. 그 질문이 시에 극적 상황을 만든다. 초현실주의 기법의 하이퍼시다. 동문서답, 선문답 같은 질문과 대답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작가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던, 진정성을 가진 의문이다. 새로운 시창작 기법은 환타지하다. 대답과 질문을 반복하고 있지만, 반어적으로 하고 있다. 역설적이다. 남자 앞에 나타난 새 여자처럼. 위의 시는 마지막 연, 끝행부터 거꾸로 서술하여도 시가 된다. 무의미적 나열형식의 시다. 바예호는 시는 표현주의를 추구하며, 언농일 뿐이라는 것, 심각한 물음도 심각하게 풀지 않고 가볍게 터치하듯, 음악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라는 작가 나름의 메시지다. 실험정신으로 쓴 하이퍼시다.   위의 시는 필자의 시 「소금꽃을 꺾다」와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이 비슷하여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래에 필자의 졸필, 시문학 문예지에 발표된 논문을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주 전에는(2017년 9월 28일, 오후 5시- 국회 시낭송회 날) 단연코 바예호의 시를 만난 적이 없다. 어느 지방 국회의원이 바예호 시인의 「같은 이야기」를 낭송하는 것을 듣고 전율을 느꼈다. 몇 명의 시인들에게 다음날부터 전화로 「같은 이야기」를 낭송해 주며, 서러움에 함께 숨죽여 울었다. 그의 매력의 빠져서, 17편의 시를 타자를 쳤다. 갑자기 바예호 시인으로 인하여 필자는 페루에 대하여 급 호감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페루는 당장 알고 싶고, 여행가고 싶은 나라 1순위가 되었다. 단지 바예호를 더 이해하기 위하여.   아래 필자의 졸시「소금꽃을 꺾다」전문을 소개한다.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천 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1세 초등학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필자의 졸시는 하이퍼시의 몽타주‘환타지 영상시’기법을 장치한 시다. 현대문명 속의 부조리한 상황을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였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한 공간에 마구‘불안’한 현재를 뭉쳐서 던진다.  위의 시는 ‘신’과 ‘인간’의 ‘질문과 대답’ 형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하이퍼시는 상투어와 일상적 문장을 거부한다. 그 대화는 혼돈스럽고, 낯설며, 단절적이다. 미성숙한 초등학생이 낳은 아기는 곧 외국으로 입양되어‘알렉스’나‘미미’로 자랄 것이다. 위의 시는 제목에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소금’은 잎도 줄기도 없는 몸통만 있는 사물이다. ‘소금’과 ‘꽃’을 합성한 ‘소금꽃’도 꽃만 있지 줄기나 뿌리가 없다. 꽃받침도 없다. ‘소금꽃을 꺾다’라고 행위를 강조한 제목에 주목하여 보자. 제목이 아이러닉하며 역설적이다. 소금꽃은 꺾을 그‘무엇’이 없다.  필자는 환타지 기법의 환경고발, 사회고발 부조리 시를 여러 편 발표하였다. 하이퍼시는 철학과 사유가 없는 말장난 시라는 비난을 극복하려 한 시도다. 까지 시의 중심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으로 이동한다. 필자가 백년 뒤 한국에서 죽은 페루 시인 바예호에게 순간이동하여 만나듯이. 환타지 영상시는 장면이동이 가능한 한편의 시극이다. 환타지 드라마다. 5) 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 바예호의 시에, 젊은이와 시인들이 탐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금 시대에 딱 맞는 표현, 딱 맞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바예호의 시는 SNS가 친구인 시대, 단절의 시대, 고독의 시대에 적화된 시다. 쇼셜미디어적 감각이 있다. 바예호의 시는 방안에 앉아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에서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는 시대에 알맞은 하이퍼시다. 모든 시는 거의 다 현재형으로 쓰고 있지만, 내용은 과거인 경우가 많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시에 현장감과 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다음 시 5연에서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위의 5연의 시의 중심어는 나의 시 --> 사막의 스핑크스 --> 해묵은 바람 --> 울음>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시에 적용하였다. 그 기능은 시의 깊이와 감각적 미의식을 더하고 있다. 정적이며 한정적인 시의 답답함을 해소해 준다. 시에 운동감을 준다.‘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초현실주의적 하이퍼시’를 창조하였다.   3. 자학과 절망 본 논문 2장에서는 ‘초현실주의 하이퍼시’의 표현기법을 위주로 하이퍼시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본 논문 3장과 4장은 시의 내용 측면에서 시를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위에 제시한 시작품 「같은 이야기」 를 살펴보자.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1, 2, 4, 7연) 위의 시‘1, 2, 4, 7연’을 살펴보자. 화자인 시인은 자신의 탄생을 아파한다. 신이 아픈 날 만든 미완성 제품이라고 자학한다. 4연에서는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라며 거듭 항변한다. 신이 아픈 날 만든‘나’는 모든‘인간’을 대표한다. 신이 아픈 날 제조된 인간이라는 제품은 불완전하고 조악스러울 것. 그 모양새나 쓰임새도 미숙하며, 고장이 잦고 어설플 것. 이미 슬픔과 불행이 예견된 현재다. 다음 시 「아가페」일부를 살펴보자.   그 누구도 오늘 나에게 물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이 오후에 그 아무것도 내게 청하지 않았습니다.(1연)// 찬란한 빛의 행렬 아래에서/ 단 한 송이 묘지의 꽃마저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음을 용서해주세요.(2연)// 그 아무도 오늘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나는 너무도 조금밖에 죽지 못했습니다.(7연)//   위의 시는 죽음과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한 하루는 죽은 하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과 삶이 딱 붙어서 같이 살고 있다. 그는 가난과 병마, 11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니와 형이 일찍 사망하여 전 생애 동안, 분리불안을 겪었다. 러시아, 영국, 파리 등 해외로 떠돈 이유도 정체성의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는 자학과 절망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음 시는 「하얀 돌 위에 검은 돌」전문이다. 소나기 오는 날 난 파리에서 죽으리, 그 어느날에 대한 기억이 내겐 벌써 생생하다. 난 파리에서 죽으리-아직 바쁘진 않지만- 어쩌면 어느 가을, 목요일, 오늘같은. 목요일일 것, 왜냐하면 오늘, 목요일, 지금 이 시들을 산문으로 베끼고 있는 순간, 내 상박골이 쑤시기 시작하고, 한번도 오늘같이, 이 많은 길을 걸어오며, 정말 혼자라는 생각을 다시 한 일 없다. 세자르 바예호가 죽었다, 그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모두들, 그는 아무에게 아무 짓도 안 하는데; 그를 몽둥이로 거세게 때렸다, 거세게 또한 밧줄로; 이 목요일들 그리고 고독과 비의 길들......   1936년에 발표한 「하얀 돌 위에 검은 돌」의‘소나기 오는 날 난 파리에서 죽으리(1연 1행 참조)’라는 예언처럼. 2년 뒤인 1938년 ‘세자르 바예호가 죽었다’(같은 시 3연 1행 참조). 정말 ‘파리’에서.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자인 바예호는 마르크시즘에 심취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시를 발표하다가 1919년 첫 시집 「검은 전령」을 발표했다. 1920년 방화범으로 몰려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1922년 그의 두 번째 시집 「트릴세」를 발간했다. 바예호의 시는 자학과 절망, 추락의 종착점을 향하여 점프한다. 시는 정신이 아픈 거다. 시를 쓰는 정신의 도구인 시인도 영혼이 아프다. 그렇다, 세자르 바예호는 한 몸에 두 개의 모순된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디오와 메스티소의 혼혈아로 태어나, 평생 한 몸에 두 문명의 DNA가 갈등한다. 억압된 불안과 절망은 그의 시를 예민하고, 깊고, 강하게 했다. 4. 해탈의 시학 본 장은 시의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의 기능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배설’ 즉 ‘카타르시스’라고 하였다. 시인의 ‘나르시시즘’과 ‘감상주의’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세자르 바예호의 시는 반전이 있다. 죽음과 절망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독자에게 미치는 결과는 시원한‘해탈의 미학’과 카타르시스다. 필자가 본 논문에서 바예호의 시적 논제를‘자학과 절망의 종착점에서 피어난 해탈의 시학’이라 명명한 이유다. 아래 시행을 살펴보자.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2연 1-2행)’/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4연 4-6행)’   ‘모두들 아는 데… 그러나 빛이/ 폐병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6연)   위의 시 6연은 빛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빛의 상징은 밝음, 선함, 신을 지칭한다. 빛은 사물인 빛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빛을 중의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아픈 신’의 부연 설명이다. 인디오의 후예인 바예호가 섬기는 페루의 신은 ‘태양신’이다. 지금 그 태양신이 아프다. ‘폐병환자, 곱사등이’로 묘사되어 있다. 외세침략과 전란, 이데올로기의 혼란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겪은 페루. 황금이 많다고 소문나서 에스파냐의 침략을 받은 페루. 과연 폐병쟁이, 곱사등이 신은 페루를 구원할 수 있을까? 바예호의 고독을 구원해 줄까? 신의 역할은 남의 일에 관여하여 구해주는 해결사다. 프롤레타리아였던 바예호는 신을 부정한다. 그의 시는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하다. 빛은 선이며, 어둠은 악이라는 원시적 개념을 부정한다. 위의 시는 ‘빛은 통통’하고, 어둠은 ‘비실거린다’는 발상을 버렸다. 빛이 상징하는 ‘상승 이미지’를 ‘하강이미지’로 바꾸었다. 어둠과 ‘악’을 오히려 통통한 상승이미지로 격상시켰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지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2연, 4연   가을비 내리는 날 바예호의 시를 읽어보라, 그 시의 울림이 깊게 아프다. 그의 시는 너무 아파서 아름답다. 당신의 심연에서 피어난 꽃처럼, 시의 구절들이 내 안에 침잠한다. 내 몸처럼.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는 반어적이다. 아이러니하다. 제목이 「절망에 대하여 말씀드리지요」라고 들린다. 그러나 깊이 음미하여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깊은 사유와 철학의 힘이다. 작가는 존재론적 고독을 직관으로 깨우친 것이다. 슬픔에 탐닉하다보면, 슬픔을 모두 쏟아내어 울어보라, 정신과 몸이 맑아진다. 눈물은 카타르시스다. 슬픈 시도 슬픈 영화나 슬픈 노래처럼 정화작용을 한다. ‘3포 시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감성이 예민한 시인집단이 바예호의 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망의 나락의 정점을 찍으면 집착을 버리게 된다. 승려가 느끼는 해탈의 경지다. 바예호의 시는‘절망과 추락의 종착점에서 피어나는 해탈의 시학’이다. 슬픔의 미학, 절망의 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집착을 버리면 영적, 정서적, 육적 평안을 얻는다. 완전한 자유다. 바예호의 시가 보여주는 새 패러다임이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소리없이 울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 모두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다. 한 줄기 강력한 빛이 십자가에 박힌 못을 빼내어 거룩한 두 손이 부자들이 포도밭에서 먹을 것을 꺼내오면 좋으련만   이 차가운 시간, 땅이 인간의 먼지로 변하는 서글픈 시간,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누구에게든 용서를 빌고 싶다. ―「일용할 양식」1, 4연   바예호의 시는 위의 「일용할 양식」처럼, 갓 구은 빵 같은 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손바닥이다. 누구에게든 용서를 빌고 싶은 손이다. 내가 당신에게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그의 시는 구원과 해탈이다. 5. 결론 세자르 바예호의 시는 링크와 링크, 리좀으로 이루어진 ‘하이퍼시’다.‘환타지 영상시’는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하며 시에 운동감을 준다. 그의 시는 단절과 단절 사이, 질문이 있다. 반전과 반전 사이, 역설적 질문은 독자에게 황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세자르 바예호의 삶과 시는 드라마틱한 ‘극적 갈등구조’를 지니고 있다. 패망한 고대 잉카문명처럼, 마추픽추 돌담 언덕처럼. 그의 시는 가파르게 질주하며 점프한다. 슬픔을 녹여내어 해탈의 시학을 완성하고 있다. 황금에 눈이 먼 스페인에 학살당한 인디오―제1차 세계대전― 국경분쟁―내전―가난―이데올로기 전쟁- 페루의 역사와 함께 바예호 시인은 동시대적 고난을 아파 한다. 바예호는 시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방화범으로 몰리며 외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 타국에서 죽는다. 그러나 그는 처절하게 열정을 가지고 시를 썼다. 그의 초현실주의 문학은, 남미 라틴문학을 세계화시켰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바예호의 시를, 한국의 하이퍼 시인인 필자가 로 분류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예사조에 올려놓고자 한다. 시문학을 중심으로 문덕수, 오남구, 심상운, 김규화 등 하이퍼시 동인들이 출범시킨 하이퍼시는, 현재 40 여명의 하이퍼시 동인들이 매년 시집을 내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하이퍼 시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하이퍼시는 현재 평론가와 시인들의 조명을 받고 있다. 앞으로 평론가들이 서로 논쟁하며, 시창작 기법을 연구할 것이다. 정반합의 원리에 의하여, 하이퍼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로 문예사조에 족적을 남길 것이다. **  
599    날샘일기- 김정현/ 가온문학 봄호 2016년/ 이선 명시 읽기 댓글:  조회:1745  추천:0  2018-12-26
  날샘일기      김정현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여름 가을 뜨거운 햇볕, 늙어버린 호박에 기대었다가 몇 잎 남지 않은 파인애플데이지와 눈을 마주쳐보다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새까만 하늘에 그림을 그리다가 빈방에 윙윙 휘젓고 다니는 파리 한 마리를 지켜보다가 밥 달라고 빽빽거리는 휴대전화를 달래다가 책을 꺼내어 활자를 끌어당기다가 꿈길로 들어서려고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도로 이불을 걷어내고 앉아 새벽의 문턱 넘는 시간을 주물럭거린다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     별과 달이 잠 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       위의 시는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이 있는,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다. 반복미와 확장성, 역발상과 도치 등 시창작의 표본처럼 여러 기법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기법을 간단하게 아래의 여덟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진정성과 의인법, 아이러니 기법   1연은 매력적인 전개방식이다. 잠이 안 온다고 하지 않고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라고 역발상적 아이러니 기법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별과 달은 사실, 하늘에 뜨지 않은 날에도 하늘에 존재한다.  시인은 달과 별이 뜨지 않은 것을 잠자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이러니 기법과 의인화 기법을 써서 잠자고 있다고 표현한다. 인간의 눈, 시인의 눈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를 살펴보자.  불면의 상황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또 지금 겪고 있을 법한 상황이다. 1연과 3연의 2행의 시는 짧지만 강렬하다. 1연에서 잠이 안 온다는 사실을 말하였다면,  2연에서는 왜 잠이 안 오는지 그 이유를 말할 법하다. 그런데 이 시는 한 단계 진보하였다. 그 이유를 관념으로 하지 않고 여러 잠 안 오는 밤에 일어날 수 있는 행위로  대치하였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이다. 군더더기가 필요없다. 1연과 3연의 상황과 이유를 2연에서 부연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설명적이지 않고 사실적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는 사건의 이류를 사실과 사물적 접근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연과 3연은 참이며 사실이다.   2연의 모든 행은 사실이다. 거짓이 없는 참이다.    위의 시는 독자와 평자, 시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성이 있는 시다라는 명제에 적합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2. 사실적, 사물적 은유   1연과 2연, 3연의 행에서 무리한 관념이 전혀 없다. 사실과 사물에 기본적 발상을 두고 있다. 이것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 중 하나이다. 관념에 흐르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사물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사념도 사물화하고 있다.  ‘뜨거운 햇볕- 늙은 호박- 파인애플데이지-툇마루-하늘-파리-휴대전화-이불-새벽-붉은 해- 별과 달’ 등 온갖 사물을 나열하고 있지만 산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념과 정서적 방황을 사물에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초보 시창작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관념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사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3. 나열형 어미의 효과    2행을  주목하여 보자. 나열형 어미를 왕성하게 활용하고 있다. 나열형 어미는 설명적 시와 다르다. 위의 시에서 2연의 나열형 어미  ‘-다가’ 가 범람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2연은 사건과 사물,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다. 의식의 나열, 생각의 나열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기교에서 관념을 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관념과 사념에 빠지면 시인 본인의 감정에 치우친  감정시, 토로시가 되기 쉽다. 그러나 위의 시는 사물과 사건, 행위를 나열하여 그 우를 범하지 않았다. 무기교의 기교의 좋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이여, 사물에 집중하라.   4. 짧고 간결한 행과 연   위의 시는 짧고 간결하다.  손바닥 그림처럼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는 문자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1연 2연은 단 두 줄이다.    3연의 각 행들의 길이도 짧다. 또한 2연의 각 행들은 그 길이가 각각 다르다. 각 행마다 들어가기, 나가기, 들쭉날쭉하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각적 미의식도 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 행이 너무 길면 시인의 의도와 달리 책이 출판되었을 때, 한 행만 다른 줄로 넘어간다. 특히 한 칸 들어가고 시작하는 경우기 때문에 미완의 그림처럼 불균형이 되기 쉽다.    짧고 간결한 행과 연은 독자에게 시원함을 준다. 질리지 않고 쉽게 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말이 통한다면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것이 좋다. 명사에 붙는 조사도 뗄 수 있으면 떼면 좋다. 각 행과 연도 줄일 수 있는 대로 더 줄이면 시가 더 단단해진다.   5. 심심함과 나른함과  게으름의 미학   시는 바쁘고 조급하게 쓰면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어렵다.  일제 통치시대  한국의 초창기 현대시를 쓰던 서정시인들은 룸펜생활을 하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야 무념무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에 잠겨야 개성적인 좋은 시를 쓴다.  조급하게 급생산하면, 발표된 후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시는 심심하고 나른하고 게으르게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한다. 한 사물과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느긋하게 한 사물을 계속 직시하면 직관적 사유를 얻게 된다.    위의 시도 1연과 3연에서 밤을 꼴딱 새웠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하릴없이 이일 저일, 이것 저것 만지작 거리고 참견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1연과 3연은 시인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2연은 시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2연은 한없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또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그것은 시인의 역량의 문제다.     6. 행간과 여백의 확장성   행간과 여백은 상상력의 폭을 넓게 하여 시를 확장시켜 준다. 시에서 확장성은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위의 시는 각 연들의 배치가 시적 완성미를 더해주고 있는 부분적 한 이유다.      7. 반복과 강조, 도치   반복법은 시의 대표적인 강조법  중 하나이다. 서정시인 김소월의 시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는 기법이다. 위의 시에서는 1연과 3연의 반복이 시의 미의식을 더해 주고 있다.  1연 1-2행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와 3연 1-2행 ‘별과 달이 잠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애잔한 외로움과 번민을 강조한다. 또한 1연과 3연에서 1행과 2행을 도치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도치를 함으로써 시적 매력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8. 긍정적 에너지   위의 시는 긍정의 힘이 있다. 2연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를 주목하여 보자. 번민과 불면의 날밤을 새우고 또 희망의 아침을 기대한다.        위의 시는 읽을 수록 윤이 난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시와 차별화된다.   진정성이 주는 힘이다.  좋은 시는 독자가 읽고 읽고 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더 좋은 시는 시를 창작한 시인 자신과 독자, 평론가가 모두 힐링된다. 오랜 만에 시창작 강의 자료가 될 좋은 시를 발견하여 필자도 힐링되었다.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       민용태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던 봉숭아는 서울에 시집와서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를 하다 그만 허리가 부러져 누워버렸다.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아파트에 아파 누워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의인화 기법을 사용한 상징 시     1. 서론   민용태의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는 다음과 같은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의 형태와 구성요소로 시의 외부적 요소로 보면 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시의 내부적 요소로 시의 내용적 면을 분석하면, 등으로 요약하여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본장에서는 이와 같은 기준에 준거하여 다음과 같이 논의하기로 한다.   2. 의인화 기법   위의 시는 봉숭아의 자서전 같다. 그 장치는 이다. 위의 시에서 인용한 아래 낱말과 문장은 ‘봉숭아’인 식물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패턴을 통한 의 실례이다.       3. 사물시의 요소   위의 시는 사물시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강렬하게 지니고 있다. 아래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벌 나비마저 날아오지 않는 아파트 철창에 화분 되어 걸쳐 있는 봉숭아. 꽃보다는 차라리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2연-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   위의 1연과 2연의 부분은 “봉숭아”의 관점에서 보면 참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시의 눈으로 보면 거짓 없는 참이다. 위의 시가 봉숭아의 자서전이라고 본다면, 객관화된 사물시의 형태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시는, 아래 부분 때문에 완벽한 사물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식물인 봉숭아는 객관적으로 ‘철인 3종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의인화 기법으로 재해석하면, 봉숭아가 당면한 환경 즉, 강한 햇빛과 건조한 기후, 폭우를 ‘생활의 철인 3종 경기’로 생각할 수 있다. 사물시는 철저히 사물의 관점에서, 사물이 말하고 행동하게 씌어야 한다. 그러나 2연에서 ‘손톱에 꽃물 들이는 봉숭아’라는 표현은 사물시의 요건에 맞지 않다. 봉숭아는 자기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봉숭아꽃에게 꽃물을 들여 주는 존재는 햇빛이거나 공기거나 토양일 것이다. 위의 시는 객관화된 사물시의 여러 요소를 함의하고 있지만, 100% 사물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위의 시가 시적 논리에 어긋난 잘못 창작된 작품인가? 절대 아니다, 독자를 집중하게 만드는 2중 구조적 표현방식이 이 시의 매력 포인트다.     4.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   위의 시는 1연과 2연으로 된 짧은 시다. 그러나 각각의 연은 다초점의 모자이크 된 복합적 구성 및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시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외적 요소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여러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의식화하고 있다. 1연은 ‘봉숭아’라는 사물과, 봉숭아와 대비시킨 ‘인간’이라는 두 개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1연 1행-4행, ‘첫눈 올 때까지~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은 인간이 주체다. 인간의 관점으로 씌어졌다. 다음 1연 아랫부분 4행-6행, ‘비스듬히 누워 편히 등을 기댈 장독대도 없고~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식물인 ‘봉숭아’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2연을 살펴보자. 2연은 ‘봉숭아’로 대변되는 어떤 ‘인간’의 삶의 배경이 노출되어 있다. ‘꿈-서울-막노동-병’ 패턴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고도의 위험군에서 일한 ‘봉숭아’로 대변되는 국민, 즉 노동자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해석하면 그 상징성이 증폭된다. 또한 제목이 「서울에 시집온 봉숭아」라고 하여 주체가 여자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봉숭아꽃의 여성 이미지 때문에, ‘서울에 시집온’이라는 꽃을 주체로 한 사물의 관점으로 쓴 시로 해석해야 한다. 1연 5-6행은 ‘찬란한 스마트폰이나 값비싼 월급봉투가 되고 싶’은 노동자 관점의 시다. 노동자의 최고 행복은 삽, 톱, 망치를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서류로 일을 하는 것이다. 펜 노동은 몸을 사고로 죽게 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또 다른 꿈은 화이트칼라의 여유다. 월급봉투는 일당이 아닌 빨간색 날 유급휴가도 포함된다. 위의 시의 다초점의 복합적 구성은, 시에 긴장감과 해석의 묘미를 준다.   5. 서울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도시빈민층 노동자 문제   위의 시를 앞에서 외연적 측면, 즉 시적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제 위의 시를 내용적 측면, 즉 사회적 배경, 즉 환경적 측면에서 조명하여 보자. 시인이 시를 쓰는 동기는 정서적 자극이다. 행복한 나라에는 시인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시는 심성의 깊은 상처나 자극, 깨달음이 창작 동기가 된다. 창작욕구는 시인이나 시인주변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산된다. 1연 2-4행을 살펴보자. ‘봉숭아는 꽃보다는 몸을 으깨는 생활 전선의 손톱이 되고 싶었지만, 하루 9 시간 철인 경기는 손톱도 등도 다 닳고 허리마저 부서져 누웠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위험한 육체노동에 노출된다. 위의 시에서 봉숭아는 노동자를 상징한다. ‘서울에 시집 온 봉숭아’는 상징일 뿐이다. ‘지구에 온 인간’이거나, ‘외국에서 온 근로자’거나, 시골에서 서울에 온 봉숭아거나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방인’으로 분류된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병든 노동자에 대한 연민이 문제제기의 골자다.   6. 질병과 소외, 노인문제 위의 시를 또 다른 측면으로 고찰하여 보자. 2연 1-2행을 살펴보면,   ‘지금 봉숭아가 기다리는 것은 나비가 아니다. 고층 복합 빌딩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   위의 시는 ’봉숭아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전선에서 난투극을 벌이다가 허리를 다쳐 누워있는 샷시공, 건설현장에서 비계를 타다가 떨어진 노동자의 슬픈 뒷얘기다. 소외계층의 인권과 행복권, 생존권에 대한 사회고발적 시다.. ‘나비’는 노동자의 이상주의와 꿈의 실현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런데 병든 몸은 이제 날고 싶은 의지가 없다. 아픈 노인은 자신을 찾아올 자녀의 전화벨소리에 예민하다. 그러나 2연 3행 ‘손톱 위에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 웃고 있다.’처럼 허탈한 자조가 느껴진다. 한 편의 시는, 노인 소외문제, 장애우의 환경문제, 자녀에게 희생과 외면을 당한 부모 등, 당면한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호소하며 각성시키고 있다.   7. 결론   시의 세계에서는 사물과 자연, 인간과 동물이 물아일체를 이룬다. 시인은 사유와 관찰을 한 뒤 시를 써서 사회문제로 클로즈업하여 이슈로 만든다. 시인은 상상력과 이미지로 최초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특허권자가 되기도 한다. 시는 웅변하지 않지만 데모군중보다 부드럽게 대중을 재빨리 흡입한다. 시인이 베란다 난간에 있는 허리가 꺾인 ‘봉숭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직면하고 아파하지 않았다면? 노동자의 생명권과 행복권에 관심이 없었다면?   그 사회는 아프고 병든 거다. 지성을 잃어버린 도시는 영혼이 죽은 거다.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병리현상을 고발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의 행복이 곧 국가의 힘의 원동력이다. 시는 짐짓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이다. 위의 시는 설명하거나 웅변하지 않는다. 재해석의 관점으로 ‘봉숭아’의 삶을 인간, 특히 병든 노동자의 사회적 소외로 치환한 것이다. 짧은 2연의 시로, 긴 대하소설 분량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 상징성이 있다. 단어와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일. 독자와 평론가에게 주는 시의 이벤트다.  
  담쟁이 1                                                        강기옥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내 모든 소망을 걸어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그리기 기법     강기옥의「담쟁이 1」은 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 그리기 기법’으로 씌어졌다. 3연의 짧은 시로, ‘1연-3행, 2연- 3행, 3연-4행’으로 간결하다. 현대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심플라인 옷처럼, 심플하다는 것은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삭제하여 내다버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버리면 시는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강렬한 파장을 가지고 확장된다.      위의 시「담쟁이 1」이 가지고 있는 ‘ 그리기 기법’의 특징을 아래 7가지로 분류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함축미와 형태미   위의 시는 10행의 짧은 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함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욕심을 내려놓기’하지만 더 큰 ‘이상주의의 실현’이라는 거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또한 형태미에서도 3연의 짧은 시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어 배치를 하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2. 상징성   상징과 확장은 시에서 요리사의 절대미각과 같다. 3연 1-2행의 ‘당신의 크기만큼만 / 당신의 넓이만큼만 ’ 부분을 눈여겨보자. 이보다 큰 상징이 없다. 결코 인간이 우주를 벗어나 살 수 없듯이, 담쟁이도 결코 기대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서 생존할 수 없다. 당신이 있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연시’로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위의 시는 상징과 함축, 확장이 큰 시다.     3. 감각적 미의식   위의 시는 짧은 시어의 반복, 패턴을 통하여 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주고 있다. 그림 같은 연 배치도 시인의 의도된 계획이다. 반복적이고 점층적인 시어들은 독자의 뇌를 세뇌시키는 작용을 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적 방법의 시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현대적 시창작법을 적용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완성된 형태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 좋은 시다.     4. 확장성   확장성은 사물인 담쟁이와 인간에게 치환된 주제의 확장성으로 두 가지로 분류하여 해석할 수 있다.  먼저 1-3연에서 비중있게 강조된 ‘이상주의’ 부분을 살펴보자. 다음 항목으로 요약된다. 인간과 담쟁이 모두 포함된다.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1연) ->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2연) -> 내 모든 소망을 걸어/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3연)      ‘비현실적인 꿈 -> 당신이 보여준  현실적인 이상실천 의지 -> 전심전력 의지표명’으로 점층적으로 확장된다.     다음 1-3행의 점층적 구조를 살펴보자.     1연 1-2행: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2연 1-2행: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3연 1-2행: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이상을 실천한다는 내용이지만, 1-3연에서 보여주는 계속 반복되는 형태는 점층적으로 확장되어 강조된다.     5. 패턴구조   위의 시는 1연, 2연, 3연이 아래와 같은 구조의 패턴화를 보여주고 있다.     1-3연에서 부사어 사용과 내용에서 패턴화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연 1-2행: 무섭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2연 1-2행: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서히   3연 1-2행: 당신의 크기만큼만/ 당신의 넓이만큼만      다음 이상주의의 실천의지에서도 같은 패턴화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연 3행: 당신의 꿈을 쫓겠습니다.   2연 3행: 당신의 이상을 따르겠습니다.   3연 3-4행: 내 모든 소망을 걸어 / 웅숭깊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6. 철학과 사고의 힘   불교의 참선의 마지막 목표는 ‘내려놓다’와 ‘해탈’이라고 본다. 위의 시는 삶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철학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첫째, 천천히(1연 2행)   둘째, 서두르지 않기(1연 2행)   셋째, 욕심부리지 않기(2연 103행)   넷째, 당당하기(1연 1행)   넷째, 이상주의(1연 3행, 2연 3행, 3연 4행)   다섯째, 되바라지지 않기(3연 4행)     그런데 위의 다섯 가지 철학은,  ‘더불어 살기’와 ‘양보하기’까지.  종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범인의 경지를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삶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시인은 영원히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현실이 좌절과 고통스러워도 이상을 품고 산다. 배신과 압박에도 이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위의 시가 일제시대 발표되었다면 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위의 시가 198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로 거론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7. 감동의 힘   3연의 짧은 시는 파장이 커서, 하루쯤 욕심을 내려놓고 온종일 생각에 잠기고 싶어지게 한다. 그만큼 시가 독자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3연 4행 ‘웅숭깊다’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보자. 사전에는 ‘ 1.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 /  2. 사물이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 ’라고 정의되어 있다. 1번 해석과 2번 해석 모두 포함하여 이 시의 중심어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현재 잘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단어를 발굴하여, 반짝이는 기쁨을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 ‘웅숭깊다’라는 단어는 보석과 같다.     ‘담쟁이’의 묘한 매력은 이상주의에 거치는 것이 아닌, 강력한 실천의지를 계속 설파하고 있다. 지하철역에서 매일 만나고 싶은 시다.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시인들이 꿈꾸는 쉽고 아름다운 시다. 매일 읽고 묵상과 반성을 촉구하는.  
596    이선 평론/ 가온문학- 명시 읽기/ 이기철- 불행에게 이런 말을 댓글:  조회:1736  추천:0  2018-12-26
불행에겐 이런 말을                                                              이기철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내 새 옷 한 벌 사 줄게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그러나 내가 그를 찾아가 이마를 짚어주면   불행도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나는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연극은 일상적인 것이 없다.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범상한 갈등으로 끝난다. 시 제목이 일상적이면, 그 내용과 구조와 표현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좋은 사유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대로 시가 독특한 제목으로 출발하면, 그 내용과 방법론은 일상과 연계시켜야 한다. 사유를 이끌어내어 인생과 개인의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    이기철의 시,「불행에게 이런 말을」은 일상적인 제목이지만,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제목이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잘 알고 있고,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하면 관념이나 사설로 흐르기 쉬운 제목이다. 그런데 이기철 시인은 가장 관념적인 ‘불행’에 대하여 쓰면서, 전혀 관념적이지 않은 시를 완성하였다. 그 방법론을 살펴보면 다음의 6가지 방법론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시각적 이미지와 객관화   ‘불행’이란 ‘관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해석하고, 사물화하여 ‘객관화’하였다.  다음 시행을 읽어보자.   ‘신장에도 장롱에도 책상에도 지붕에도 이슬 같이 내리는 불행’ (7행)   위의 시 7행의 중심단어는 ‘신장-장롱-책상-지붕’이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각각의 형태와 색깔이 연상된다.  나무나 플라스틱 신장.   흰색, 나무색, 갈색, 검정색 나무장롱.   빨강, 파랑, 흰색 플라스틱 장롱.   파랑, 주황, 회색 기와집.   한옥, 전원주택, 연립과 아파트   각각의 사물들은 각각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신장, 장롱, 책상, 지붕’이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불행의 조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신장- ‘신발’은 서정주의 시에서 보여주듯 식구들을 상징한다. 신발은 저녁이 되면 온전히 신발장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당당히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혼, 가출, 입양, 군입대, 해외근무, 병원입원, 병사, 사고사’ 등 수많은 이유로 신발은 신발장을 떠난다. 신장은 불행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대표적 사물이다. 신발은 모양과 색깔이 다른 색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장롱- ‘옷’은 인간을 대표한다. 인간의 취미와 교양, 직업을 나타낸다. 장소에 목적에 따라서 모양과 색깔이 수시로 바뀐다. 신발과 똑같은 기능을 하면서 좀더 눈에 띈다. 신발장의 신발이 저녁을 상징한다면 옷은 활동하는 낮을 상징한다. 개성과 색깔이 분명히 표출된다. 옷이 떠난다는 것은 ‘노랑 원피스’와 ‘검정 청바지’의 대결구도처럼 갈등과 비극을 반영한다. 결혼, 이혼, 별거, 사별 등, 어떤 이유로든 옷장을 떠난 옷은 소속과 집단을 떠난 불행한 사건을 상징한다.   책상- ‘책상’은 직업, 특히 회사원이나 교수, 작가 등을 상징한다. 한국은 1998년 IMF때 출근하면 책상이 없어지는 실직의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책상에서 불행이 발생한다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붕- ‘지붕’은 각 세대를 의미한다. 지붕은 생로병사가 한통속으로 읽히는, 세대와 가족을 상징한다.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이 아프다. 불행은 세대에게 집단으로 일어난다. 가족 구성원이 불행의 피해자가 된다.   위의 시는 ‘불행’이라는 관념에 ‘신발, 장롱, 책상, 지붕’ 이라는 상징물에 옷을 입혀 객관화시켰다. 또한 각 사물들은 개인, 가족, 집단을 상징한다. 불행이 일어나는 장소를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은 불행의 형태까지 포괄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불행’이라는 관념어에 옷을 입혀서, 실제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각적이며 채색적인 색채 이미지가 있다. 모든 사물들은 그 단체사회가 규정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체험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성   아래의 행을 살펴보자.   불행도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더운 물로 그의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불행을 친구와 유순한 내복으로 본 것은 늘 가까이 불행 속에서 산 사람만이 경험적으로 요약하여 도출해 낼 수 있는 수학적 공식이다. 체험적이며 경험적이다.      ‘한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조금씩 내리는 찬비처럼 내게 오는 불행이여’ (5행)   순전히 경험적 체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공식이다. 위의 시는 인생의 ‘10일’은 불행이고 ‘1일’을 행복으로 보았다. 인생의 9할은 불행이고 1할은 행복으로 본 것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한 달을 30일을 기준으로 삼을 때, 불행과 행복은 27.27: 02.72라는 공식이 도출된다. 1달에 3일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의 시처럼, 우리 인생은 불행을 맞받아치고 추스를 사이도 없이 찬비처럼 계속 맞고 살아간다. 불행 속에서 불행과 함께, 불행과 일심동체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산다. 불행에 대한 눈물겨운 한줄 엑기스 문장이다.   하늘이 주는 불행이라는 비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다만 우산을 쓰든지, 개인 비행기를 타든지, 부모나 형제의 등에 업혀 편히 가든지, 저축한 돈으로 고용인을 고용하든지 목적지로 가는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셋째, 달관의 미학   아래에 제시한 행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친구사이에서 흔히 행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자주 만나면 친구가 된다 (1행)   면내복처럼 유순해진다 (3행)   내 새 옷 한 벌 사줄게 (6행)   부츠처럼 편안해진다 (9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 (15행)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16행)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7행)   스스로 행복의 누이 (19행)   친구라면 자주 만나고, 유순해지고, 생일에 옷도 선물하고, 편안하고, 함께 걷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찜질방에 가서 잠도 잔다. 친구가 어려울 때는 뒤를 봐주고 돈도 빌려준다. 서양에서는 만날 때마다 볼에 입도 맞춘다. 친구라면 서로 행복한 형과 동생의 역할도 나누어 한다.    시인이 시를 구상할 때, ‘불행’을 친구라고 직관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친구와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의 순간들과 조건을 불행이라는 관념에 대입하였다. 불행을 ‘행복의 누이’라고 정의한, 역발상 관점이 이 시의 포인트다. 누구나 싫어하고 경계하는 불행을 기꺼이 초대한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의인화 기법   불행이라는 관념어를 인간의 행위로 치환하고 의인화하였다.     친구가 되어주고, 발을 씻겨주고, 몸을 타월로 닦아주고, 함께 걷고, 만나고, 밥먹고, 잠을 잔다. 머리카락 냄새, 속옷 냄새를 맡으며, 뒤도 닦아주고, 입도 맞춘다. 이런 경지라면 친구가 아니라 애인에 가깝다. 친구가 장애인이 아닌 이상, 뒤를 닦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뒤는 뒷배경이 되어 도움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다섯째,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   아래의 행들을 살펴보자.    열흘은 불행하고 단 하루는 행복하자 (4행)   채소 같은 행복 한 잎만 들고 오면 안 되겠니 (6행)   서른까지는 불행하고 마흔은 행복하고 (10행)   쉰은 조금씩 아끼며 불행하고 예순은 조금씩 보태며 행복하고 싶었다 (11행)  철조망 안에도 햇볕이 놀듯 활짝 불행을 꽃 피워 (12행)  행복의 열매를 맺고 싶었다 (13행)  먼 길 걷는 사람은 처음부터 불행할 줄 알아야 한다 (14행)  그와 함께 걷는 신발소리가 행복을 맞으러 가는 발자국소리임도 알아야 한다 (15행)   위의 시에서 주장하는 불행의 개념과 재해석은 포기와 절망이 아니다. 순응적인 희망의 메시지다. 사실 필자가 살면서 터득한 이치는, 불행의 극점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시점은 희망을 잉태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 극점에서 포기하고 절망하여 도태되든지, 극기로 새로운 모색을 하여 발전하든지, 극명하게 갈리는 분기점이다. 가장 큰 시련과 비극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그 행복은 견디고 넘어선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눈비와 가뭄이라는 불행 뒤에 열리는 열매가 더 맛있는 법이다.     여섯째, 연극적 구조와 문장   위의 시는 입체적이고 연극적이다.   발을 씻겨주고/ 그의 몸을 타월로 닦아주면 (2행)   이마를 짚어주면 (8행)   그를 만났고 그와 밥 먹고 그와 잠자면서 (16행)   마침내 그의 머리카락 냄새 속옷냄새까지 맡을 수 있게 되었다 (17행)   때로는 그의 뒤를 닦아주고 그와 입도 맞추었다 (18행)   불행은 행복의 언니에게 안기면 스스로 행복의 누이가 될 줄도 안다 (19행)   시의 문장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 거리가 숨어 있다. 그 문장과 구조는 옷을 입고 행동하며 움직임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기승전결이 있으며, 클라이맥스가 있다. 시작과 끝이 있다. 대사와 지문도 들어 있고, 행위도 있다. 스토리가 있으며 연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6가지 방법론을 적용하여 분석하여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첨언하면, 위의 시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제목이다. 보통의 시인이라면 제목을「불행」이라는 명사로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불행」과「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라는 제목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고정하면, 시가 관념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불행에게 주는 말’은 구체성과 객관화를 획득한 제목이다. 말은 추상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관념으로 흐르더라도 적합성과 정당성, 타당성을 약속받고 들어간다. 더구나「불행에게 이런 말을」이란 제목은 구체성과 객관화는 물론, 현재성과 현장성까지 확보한다. 직접적이며 생동감과 힘이 있다.   시가 주는 절정의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이런 부분에서 느낀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 그러나 시어를 파고 들어가면 지적이며 예리한 사유, 승화된 내용.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내공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친근한 주변의 내용을 극화시켜 읽는 재미가 크다.   ♣♧♣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                                                      심 상 운       나는 가끔   페인트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     페이트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칠 놀이에 지칠 줄을 모르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들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페인트 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아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 심상운 신작시집 『녹색 』전율 중에서                                              하이퍼시의��겹쳐그리기 기법��                     ―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이 선( 시인 )       심상운은『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시론집을 통하여 하이퍼 시론을 정립하였다. 이번 신작시집 『녹색 전율』에 실린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은 그의 신작시집에 실린 하이퍼시 중 하나이다.   필자는 위의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적 요소에 이라는 이름을 명명하고자 한다. 이미 다른 논문에서 발표한 바 있다. 각각의 연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과 을 하여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1-7행의 각 연들을 분석하여 의 요소들을 살펴보자.       1.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칠 놀이 또는 페인트통」의 시적소재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페인트칠이 된 벽��이다. 그런데 1-7연의 시행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각각 다른 패턴의 그림이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시점의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1-7연은 각각 다른 상상력의 조합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필자는 다시점과 다초점의 여러 각각의 다른 그림들의 합을 이라고 명명한다. 의 구성요소인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의 예를 1-7연의 시행을 분석하여 살펴보자.     1연- 나는 가끔/ 페인트통을 들고 낡은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제각기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는다(1연 1-3행)   페인트통을 들고 벽에 칠을 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시인의 상상력의 공간으로 과거의 아이들을 현재시점으로 초대한다. 시인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벽의 그림에서 듣는다. 그림은 보는 것인데, 본다고 하지 않고,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한시각 이미지를 청각이미지로 교환하였다.  단계를 뛰어넘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살린 표현이다.   한 편의 시를 극이라고 가정하여 보자. 시의 도입부부터 현재형으로 극적 현장감을 준다.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시에 집중도를 높여주는 장치다. 과거와 과거완료형을 현재형으로 재생하여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2연- 페이트통 속에선 붉은 해가 부글부글 끓고/ 가지가지 형상의 구름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2연 1-2행)   위의 시에서는 그림에서 붉은 해가 끓고 구름이 피어오른다고 하지 않았다. 페이트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등장한다.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림의 재료인 페인트통에서 붉은 해와 구름이 이미 만들어져 펑하고 마술처럼 빠져나온다. 1연과 같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의 상상력의 세계에서 시적논리가 맞는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위의 표현은 비논리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 단계를 건너뛴 표현이다.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는 4세경까지 물활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물건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시는 어린이의 물활론적 세계와 비슷한 세계가 있다. 시와 어린이의 정신세계에서는 상상력의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지렁이를 늘려 줄넘기도 하고, 지렁이로 팔찌도 하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어린이들의 고정관념을 깨며 큰 인기를 받았었다. 시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업이다. 여러 색깔로 칠이 된 벽에서, 그 이전의 칠의 단계인 페인트통으로 상상력이 이동되어 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중 구조적인 상상력의 겹치기 기법이다.     3연- 칠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나고/ 나는 온 몸에 페인트를 묻히며 칠 놀이에 빠진다( 3연 1-3행 전문)   아이들의 놀이에서 어른 놀이로 행동의 주체가 바뀐다. ��아이들->나��로 상상력의 수평적으로 순간이동 하였다.     4연- 벽에 묻은 칠들은 나뭇잎같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제각기 새가 되어 포르르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한다.( 4연 1-2행 전문)   벽의 그림은 정지된 화면이다. 그런데 벽의 그림들에 움직임을 주었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림 속의 나뭇잎이 팔랑거리고, 그림 속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그런데 사실 벽의 페인트칠에는 실제로 나뭇잎이나 새가 없을 수도 있다. 순전히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다.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며 행동을 시작한다. 정지된 그림이 공간이동을 시도한다. 하이퍼적 상상력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재형의 그림에 미래형 옷을 입혔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5연- 붉은 빛에서는 타히티 여인의 허리 곡선이 굼실거리고/ 퍼런 빛에는 아파트 담을 넘어오다 총탄에 맞은/ 젊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도 묻어 있다( 5연1- 3행)      붉은색- ��타이티 여인의 허리곡선��을 상상하였다.   푸른색- ��총탄에 맞은 멧돼지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상상하였다.   색깔 이미지를 살아있는 인물과 사물로 치환하였다. 사물인 색깔에 행위를 주어 실제성과 현장감을 주었다. 극적 구성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소설과 극에서 사건을 담당하는 주요한 포인트인 여자를 드디어 등장시켰다. 또한 가장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멧돼지를 등장시켜 극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있다. 정물에 행위를 주어 의인화하였다. 상상력의 공간이동이 현재형으로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6연- 나는 빛깔들을 다 쏟아낸 빈 페인트통을 두드려본다/ 가볍고 맑은 아이들 소리가 나고(6연 1-2행)   시적화자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빈 페인트통을 두드린다.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페인트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의 상상력의 이동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그림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림의 원재료인 페인트통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 시의 포인트다. 상상력의 이동을 대대적으로 크게 한 것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라는 2개의 과정을 동시에 이행하고 있다.     7연- 눈부신 햇살 속에서 수천의 이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흔들리고 있던/ 은사시나무의 잎사귀소리가 들린다( 7행 1-3행)   7행은 시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효과다. 한정적인 시의 공간인 벽과 그림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의 지문이나 그림의 배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연이다. 죽은 그림에서 살아있는 그림인 자연으로, 독자의 눈을 공간이동시킨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이파리, 바람, 잎사귀소리��로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벽과 칠’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모두 벗어나버렸다. 아주 다른 공간이다. 아이들과 멧돼지와 여자라는 동물에게서도 벗어났다.       2. 하이퍼시의��겹쳐그리기 기법��     위의 시는 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1-7연에서 골고루 상상력의 순간이동과 시간이동, 공간이동이 자유롭게 실현되고 있다. 여러 연들은 각각의 다른 그림을 그린다. 상상력이 겹쳐지고, 중첩 이미지를 만든다. 공감적 이미지가 정서를 환기시킨다. 위의 시 1-7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하이퍼시의 이 겹쳐그려지며 반복된다. 이 반복적이고 중의적인 겹쳐그리기 그림 기법이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필자는 이 기법을 본 장에서 이라 명명한다.  제한적인��페인트칠이 된 벽��에서 얻은 단순한 시인의 아이디어가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시인이 아이들이 낙서를 해 놓은 벽을 보고 시상을 얻었을 것이다. 과거의 벽 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현재의 시점에서 행동을 한다.    여러 이미지들이 재탄생하여 각각 다른 옷을 입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무한대로 이동한다. ��나-아이들-나뭇잎-새-타히티 여인-멧돼지-눈부신 햇살- 바람- 나뭇잎소리��등 상상력을 현재로 끌고 와서 각각의 사물에게 행동과 행위를 부여하고 있다.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모호하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시가 가지는 특징은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의 겹치기가 계속 반복된다. 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무한대의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무형의 사물인 페인트와 그림에 행위를 제공한다. 그림이 여행을 떠나고, 작가인 시인도 합류하여 함께 페인트칠을 하며 논다. 시에 자유로움을 주어 작가와 독자와 등장인물이 함께 상상력의 세계에서 논다. 재미있게 시원하게 잘 논다. 한정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지 않다. 상상력의 폭이 무한대다. 그러나 이 시가 횡설수설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하이퍼시의 특징인 각 연들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각 연들의 다른 그림은 서로 링크된다.    각각의 행들은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여 다른 이야기를 산만하게 하는 것 같지만, 링크되어 한 공간에서 만난다. 링크는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위의 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각 연 중에서 한 연을 빼도, 한 연을 더 집어넣어 8연, 9연을 만들어도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이퍼시의 독립성과 개별성 때문이다.         3. 결론         위의 시는 이 1-7연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1장에서 하이퍼시의 특징인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하이퍼시의 특징인 링크, 개별성, 독립성 등 하이퍼시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하이퍼시는 답답하지 않다. 상상력의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하여 시를 한정적이지 않게 한다. 독자에게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정서환기를 시키며 시에 재미를 더한다.       하이퍼 시인은 한 공간에서 연줄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아이와 같다. 어린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다. 그러나 실은 허공을 날아가서 꽃과 나무, 언덕을 넘어 하늘 끝까지 날아간다. 어린이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낮달과 숨바꼭질하는 낮별과 은하수계까지 도달할 것이다.      지금 문학사에서 하이퍼시가 서 있는 위치는 어린아이가 연을 들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줄을 끊지 말고 문학사에 족적을 남기도록 좋은 하이퍼시가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하이퍼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심상운의 하이퍼시 신작시집 『녹색 전율』이 집중받기를 바란다.  
594    6 ․ 25 33 전봉건 댓글:  조회:1555  추천:0  2018-12-26
  6 ․ 25 33   전봉건     문이 열리면 드륵 새가 날아도 드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며       이 선 (시인)     전봉건과의 첫 만남은 속눈썹이 떨리는, 첫눈내리는 날 같은 운명적 만남이었다. 시인과의 만남은 청계천 헌 책방을 매일 뒤지며 보들레르 과, 프루스트의 를 구했을 때의 감격과 같다. 전봉건의 시는 필자에게는 발견이다. 1970년대 초,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는 것이 필자의 큰 낙이며 매일의 습관이었다. 표지가 다 낡은 투명 비닐커버가 씌어진 황색으로 된 누런 갱지로 된 두꺼운 시집인데, 상하권으로 한국의 모든 시인의 시가 여러 편씩 총망라되어 있는 이라 기억한다. 지금도 그 책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문이 섞여서 여고 2학년 실력으로 시집을 음미하기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당시 필자는 한글세대로서 괄호 안에 한자가 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그 시집은 원문 그대로 모두 한문으로 된 시집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 많은 시인 중에서 ‘전봉건’이라는 시인이 필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그 당시 세계 명시와 한국의 명시를 거의 다 외웠는데, 유독 그때까 전봉건 시인 작품은 한 편도 못 만났다. 그 시선집을 다 통독하고 ‘전봉건 시인은 시를 아주 잘 쓴다’라는 인식이 필자의 뇌리에 지금까지 박혀 있다. 언젠가 전봉건 시인에 대하여 평론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는데, 그러나 요즘은 현존 작가들의 현재 작품을 조명하고 있는 시점이다. 전봉건 시에 대하여 평론을 쓰기로 작정하고, 다시 50년 만에 전봉건의 여러 시를 읽어보았다. 여중 때부터 여러 시인들의 시를 외웠는데 유독 전봉건의 시는 한편도 외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는 전봉건의 시가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청계천 헌책방에 그 누런 낡고 오래된 시집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명시선에 실린 시보다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왜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빠졌는지 의문이다. 전봉건의 시는 고른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작품을 고민하다가 필자가 선정한 시는 이다. 위의 시는 ‘객관적인, 가장 객관적인 감각의 정수리’를 보여준다. 감각적 미의식은 전봉건 시의 특징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설명이 없다. 간결함 속에 인생을 관통하는 심미안이 있다. 간단명료하지만 긴 침묵, 뒤에 숨은 철학이 있다. 눈물이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철학적으로 간결하게 냉정하게 처리되어 있다. 필자는 전봉건 시의 특징인 ‘객관화의 정수’와 감각적 미의식을 높이 평가한다. 위의 시는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한 전쟁 고발시다. 8연 모두 짧은 시구들이 ‘절절하다, 안타깝다, 애련하다’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그런데 그 슬픈 상황이 지독히도 감각적이며 아름답다는 것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울고 싶도록 애절한데, 그 눈물이 쏙 들어가게 하는 이성적인 문장이다. 각 연들이 가지고 있는 시창작 기법과 시적 미의식을 1-8연의 시구를 읽고 살펴보자. 1연- 문이 열리면/ 드륵 보통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누가 들어오나 살핀다. 호기심은 관심이다. 호기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전쟁 시에는 다짜고짜 총을 갈긴다. 묻지도 않는다. 살펴보고 이런 저런 상황과 이유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갈긴다. 죽이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다. 2연- 새가/ 날아도/ 드르륵 새가 날아간다는 것은, 제삼자의 침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가 날아간다는 상황은 평화 시에는 희망이나 이상주의를 암시한다. 어떤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 전쟁이다. 3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1연에서는 ‘드륵’ 한번 총을 갈긴다. 그러나 2연에서는 ‘드르륵’ 점층법을 썼다. 글자 수도 변화를 주어 현장감을 주고, 총을 갈기는 횟수도 늘어난다. 3연에서 중심어는 ‘우리는’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너’가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우리집, 우리동네, 우리나라, 우리는 가장 정겨운 복합어인데, 서로 보살피는 아름다운 대명사인데, 그 우리가 서로 총을 쏴갈기는 거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아이러니 기법이다. 언어의 기본적 의미를 역설로 뒤집으며 전쟁을 고발한다. 4연- 지붕 위에서/ 햇살이 번쩍거리면/ 드르르륵 4연의 타자는 ‘햇살’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햇볕. 무한정 내어주는 헌신의 존재인 햇살을 향해서 ‘드르륵’ 총을 쏜다. 지붕은 적의 틈입이 가장 잘 보이는 가장 높은 장소다. 한국의 지붕은 뒤쪽이 경사져서 목을 들이밀었다, 내밀었다 정찰하기 좋은 조건이다. 총구가 햇살을 받으면 번쩍거릴 것이다. 가장 짧은 문장 속에 모든 상황을 다 캐치하는 표현이다. 전봉건 시인의 시적 역량이 돋보인다. 5연- 길 아닌 데서 그리고 물론 길에서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나기만 하면 드륵 드르르륵 5연의 ‘길 아닌 데’와 ‘길’을 합치면 모든 곳이다. 아무데서나 총을 쏜다는 뜻이다. ‘드륵 드르르륵‘ 점층법이 고조되고 있다. 점층법은 시에 운동감을 더해주고, 현장감을 더하여 준다. 또한 음절의 길이의 변이를 통하여 각행과 연의 시각적, 감각적, 미의식도 더해 준다. 6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3연과 6연은 반복이다.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강조법이다. 처절하고, 냉정한 전쟁에 대한 고발이다. 또한 시의 흐름에서 표현의 기교로써, 3연에서 언급한 것을 6연에서 반복한다. 비슷한 시점에 다시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시적 운율도 살리고 있다. 시의 치밀한 계산이다. 7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7연은 가장 슬프고 심미적 미의식이 표현된 시구다. ‘꽃’은 연애시의 대명사다. 그런데 꽃덤불이 흔들려도 ‘드르르르륵’ 총을 갈긴다. 총을 더 오래 갈긴다. ‘꽃’을 선물로 받을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다. 왜냐하면 금방 시들어버릴 비싼 꽃을 선물받는 것은 고급스러운 사치다. 꽃무더기는 여자나 남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누구나 백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 꽃이 총상을 입고, 찢겨진다. 꽃덤불은 무슨 꽃일까? 상상해 보라. 필자는 싸리꽃이나, 찔레꽃이 연상된다. 싸리꽃이나, 찔레꽃은 무리지어 피고, 부피는 둥글고, 키가 낮아서 그 뒤에 포복하거나 숨기에 적합하다. 은행나무나 소나무는 위로 높게 뻗어서 적군의 몸이 다 드러난다. 그때는 달리며 서로 전면 대항전을 하며 싸운다. 전쟁은 보통 산에 숨은 적을 향하여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다. 전쟁 때는 사람이 직접 면대 면으로 맞닥뜨려 싸우는 것보다, 버리는 총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총을 갈긴다’는 표현이 맞다. 8연- 우리는 총을 쏴갈겼다 8연에서 다시 강조법을 사용하였다. ‘총을 쏴갈기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의 본질은 총을 적에게 쏘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이고자 전쟁을 한다.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토록 냉정하고, 처절하게 고발하는 시는 처음 본다. 필자가 아직 다른 전쟁 시를 많이 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가장 객관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쓴 전쟁 시라고 감히 말한다. 전봉건의 시에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없다. 전봉건은 우회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만 관념적이지 않다. 가장 객관적인 문장으로, 가장 객관적인 대상을 도입한다. 여러 편의 6 ․ 25 전쟁 시 중에서 위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2016년과 2017년이라는 한국적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소통될 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우리는 정치적으로 서로 총을 겨누었다. 말로 싸웠지만 전쟁보다 더 저급하고 치사스럽게 싸웠다. 올해도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다. 말로 싸우지만, 글로 싸우지만, 가장 치사스럽고 저급하게 서로 총을 겨누고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여 더욱 전쟁기운이 고조되는 시점이다. 지구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타이틀도 눈에 뛴다. 전봉건의 시를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그 진정성에 눈물이 난다. 그 표현의 미려함에 눈물이 난다. 그가 북한에서 월남하여 망향의 한을 가진 시인이기에 전쟁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30년 동안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워하였다는 걸 걸 알기 때문에- 그 시를 읽었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전봉건 시인’이라는 이름이 눈물 나게 좋다. 전봉건의 시를 읽으면 눈으로, 마음으로, 뇌로 운다. 죽도록 아름다워서.  
593    가을의 노래 / 이수화 댓글:  조회:1626  추천:0  2018-12-26
    가을의 노래                                                                  - 이수화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잎이 진다. 아침을 나서는 생활의 문턱에도 이름 모를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잎을 떨구고,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우리가 살아갈 누리에 낙엽이 져도 나의 기도(祈禱)는 낙엽과 더불어 흙이 되리니- 아아.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 가을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생애 단 한편의 대표작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수화의「가을의 노래」는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감상주의적인「가을날」이나, 릴케의 기도 시「가을날」과는 다른 품격과 내용, 철학, 시적 표현 방법으로 변별력을 갖는다.   이수화의 「가을날」은 위의 시들보다 날선 감각과 표현이 있다. 또한 반성적 철학과 지혜를 갈구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1-5연에서 보여주는 아래 구절들은 ‘가을 이미지’를 ‘철학’과 ‘사유’로 승화시켰다.     1연- ‘이 가을에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2연-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4연-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5연- ‘나의 기도(祈禱)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아래에 제시한 2연과 3연의 감각적 미의식과 날카로운 직관적 표현은 압권이다.    2연-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3연-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아래에 제시한 4연과 5연은 자연의 섭리에 무조건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갈등과 항거를 통해 배운 순리를 깨달은 자의 지혜가 번뜩인다. 가난도 아름다운 비움의 철학으로 빛난다.     4연-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5연-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수화의 「가을날」은 시인의 하늘로 높게 솟은 아름다운 ‘백발’처럼, 그의 내면이 범상치 않은 ‘개성’과 칼칼한 ‘직관’을 그의 ‘시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시는 그 사람이다’라는 등식을 확인한다.     천상병의 「소풍」이나, 릴케의 「가을날」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쉽고 간절한 진정성과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잉걸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수화의「가을날」도 매력적인 ‘표현주의’ 적 기법이 맛깔스럽다.
592    나의 꽃밭에는 / 여한경 댓글:  조회:1353  추천:0  2018-12-25
나의 꽃밭에는                                             여한경   나의 꽃밭에는 꽃씨를 뿌리지 마세요. 이미 절로 자라난 꽃들과 꽃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 이리도 가슴을 두들기는데 나의 꽃밭에는 김을  매지 마세요. 꽃잎들이 새 하늘을 열고 비바람 다녀가고 벌레들 다녀가고 나의 꽃밭에는 울타리를 만들지 마세요. 이 신비로운 꽃향기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어요.                       여한경의「나의 꽃밭에는」의 특징은 ‘수용과 확장’이다. 그의 시는 선함을 추구한다.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수용’과 ‘확장’의 범위는 매우 넓다. 불교적인 종교의식처럼 경건하고 맑다. 위의 시에서 보여주듯, 그의 시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꽃, 나비, 비바람, 벌레’까지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확장과 수용의 무한대한 범위는 ‘신비로운 향기’로 작가 자신과 치환하여 작가의 좋은 이미지를 만든다.  각 연의 마지막 행에서  ‘― 마세요’라는 부정적 시어를 세 번씩 반복하여 패턴화 하고 있다. 여한경 시의 아이러닉 기법은 김소월의 시「먼 후일」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잊었노라’의 기법과 같다.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김소월, 「먼 후일」 전문      김소월의 시에서 보여주듯이, 여한경의 ‘부정어’도  의미가 역설적으로 확장된다.      ‘잊었노라’가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강한 애착을 보이듯, 여한경의 ‘―마세요’는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보통 시에서 반복적인 ‘부정어 사용’의 패턴화 작품은 축소지향적이며 갇힌 이미지로 끝나기 쉬운데, 여한경의 ‘-마세요’는 오히려 그 파장이 크다.  
591    그가 숨 쉬는 법 / 김 종 희 댓글:  조회:1412  추천:0  2018-12-25
그가 숨 쉬는 법           김 종 희   그는 등에 거대한 초원을 짊어지고 맨발로 구름을 향해 걸었다 초원은 가볍고 아늑했다   비행기가 그의 다리 밑으로 지나가고 활처럼 휘어진 초원의 양 끝이 푸른 하늘에 맞닿았다   바람이 하늘과 초원 사이를 공처럼 둥글게 부풀렸다   위험에 노출된 성난 새들은 소리 지르며 구름동굴 속으로 달아나고 구름 밑으로 떨어진 그는 뽀로로와 함께 에메랄드빛 오즈의 성을 찾아 떠났다   풀밭에 벗어놓은 그의 신발에 붉은 해가 매달려 하늘을 온통 분홍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작은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공처럼 떠올랐다     이선의 시 읽기..'추상화 시 모델을 제시'    김종희의 『그가 숨 쉬는 법』은 오버랩 된 색채 이미지가 선명하다. 몇 개의 그림을 오려서 사선과 직선, 곡선, 원으로 디자인하였다. 여러 개의 사물을 한 화면에 흩어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미지들은 시적 질서를 가지고 산만하지 않다.     위의 시에서 ‘그’라는 대상은 극적인 요소를 가진 어떤 현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한다. 여러 개의 화면을 오버랩하여 펼쳐보여줌으로써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시에 새로운 정서를 부여한다. 정지된 화면을 한번 흔들어주어 이미지에 운동감을 줌으로써, 정서환기를 시킨다.     아래 동사와 동사어들은 운동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단어들이다. ‘구름을 향해 걷고, 다리 밑으로 지나가고, 맞닿았고, 부풀리고, 달아나고, 찾아떠나고, 해가 매달리고, 바꾸어놓고, 떠오른다’     또한 위의 시에서는 많은 동사와 명사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선명하다. 그 이유는 ‘초원, 구름, 비행기, 다리, 하늘, 구름, 새, 구름동굴, 뽀로로, 에메랄드빛 오즈의 성, 풀밭, 붉은 해, 하늘, 나뭇가지, 하얀 달, 공’ 등 명사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명사는 사물을 대표한다. ‘사물시’를 씀으로써 시를 ‘객관화’하고 있다.      김종희는 위의 시에서 오버랩 기법으로 추상화 시의 새 모델을 제시하였다. 또한 움직이는 그림을 실험하여, 하이퍼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590    헤라클레스를 사랑한 요정 4 / 이신강 댓글:  조회:1357  추천:0  2018-12-25
헤라클레스를 사랑한 요정 4                                                     이신강     코브라는 제 몸속이 온통 독으로 만들어 진 것을 알았다.  코브라는 지아비도 제 새끼도 다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 쳐졌다.        자기 단속을 위해서 화 안내기, 구박도 참아내기, 독설도 웃어넘기기, 못 참을 일은 몸을 흔들어 풀어내기, 그러다가 그녀는 아름다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서늘한 바람을 불러 오고 모래바람도 비켜가며 푸른 하늘을 들어낸다.  사막이 촉촉해지고 지아비도 함께 춤추게 하며 선인장 가시도 제 몸속에 숨고 그녀의 새끼들이 모두 살아나게 한다.              참아야 산다는 일념으로 춤으로 독을 해체시키며 사막의 별들과 함께 춤추는 그녀.                     이신강의 시에는 재해석의 시점에서 출발한 철학이 담겨 있다. 간결한 문장 속에 ‘사실’과 ‘사건’을 뛰어 넘는, 존재의 아픔이 있다. 삶의 철학과 진정성은 어떤 미사여구의 기교적 표현보다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사물을 관통하여 투시의 눈으로 ‘코브라’를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자기 몸으로 수용한다. 이신강 시의 스케일이다. 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사물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시인의 삶을 아는 사람은 그녀의 삶을 재연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헤라클레스’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남편을 상징하며, ‘요정’은 그를 따르는 여자들을 상징한다는 시인자신의 말을 헤아려본다. 코브라는 온통 독으로 만들어진 아내며 엄마인 자신의 상징물이다. 어머니 세대의 지어미의 덕성은 ‘자기 단속을 위해서 화 안내기, 구박도 참아내기, 독설도 웃어넘기기, 못 참을 일은 몸을 흔들어 풀어내기’였다.      피리 부는 사나이와 코브라의 춤을 TV에서 본 적 있다. 몸속에 독을 품고 사는 미물인 코브라에게 ‘춤’이라는 예술행위를 부여하였다. 시를 고단한 삶의 춤으로 해석한 시인의 아이덴티티에 박수를 보낸다. 삶의 질곡과 절박한 상황에서 춤으로 자아를 승화시키고 있다. ‘춤으로 독을 해체시키며 사막의 별들과 함께 춤추는 그녀.’ 부분은 이 시의 중심문장이다. 철학과 인생관, 자연주의가 한 문장 속에 압축되어 있다.    ‘그녀의 춤은 서늘한 바람을 불러 오고 모래바람도 비켜가며 푸른 하늘을 들어낸다. 사막이 촉촉해지고 지아비도 함께 춤추게 하며 선인장 가시도 제 몸속에 숨고 그녀의 새끼들이 모두 살아나게 한다.’     이신강의 시는 달관의 시다. 여린 여자의 가슴에 묻힌 한과 독을, ‘사물’과 ‘사건’을 몸으로 모두 껴안고 참을 뿐만 아니라, 춤으로 승화시켰다.  
589    그리운 곡선 / 최종천 댓글:  조회:1267  추천:0  2018-12-25
그리운 곡선    최종천   곡선의 애무를 받고 싶을 땐 욕조의 물속으로 들어간다 아주 옛날에 물은 곡선을 느꼈다 그 기억 본능 녹이 슨 배관을 따라 흐르는 동안 놓아버리고 이제 나의 몸을 만나리라 “이것이 나의 곡선이에요” 나는 담겨진 물만큼이나  곡선을 그리워했던 건 사실이다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섹스를 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을 때 나는 욕조에 담겨진 물에 대하여 말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조의 강요로 섹스를 한다 사랑이라는 강박관념에 갇힌 성을… 당연하게도 우리들 대다수는 성이 없는 사랑보다는, 사랑이 없는 성을 원한다! 그것은 옳은 일이다. 성이 사랑을 낳았다. 이제 본론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인간에게 성은 유일한 實在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허구이다, 특히 예술을 핑계삼아 성을 수식하거나 상징화하지 말자. 오늘 나는 헤어진 그녀를 생각 하다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다. 느껴보고 싶었던 그녀의 곡선이 나를 휘감는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 은 관념이기에 형태가 없다 실재가 아니다 영원하다 실재하게 하고 싶었던 그녀와의 사랑, 이라는 관념 바다에까지 흘러넘치는 나의 형태. 나의 실재 나의 孤獨!    * 2012년 제5회 오장환 문학상 수상 시집『고양이의 마술』(실천문학사, 2011) 중에서         이선의 시 읽기     최종천의 시는 단순한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끝까지 치고 들어가 철학적 관념을 이끌어낸다. 단순한 사실과 사물과 사건에서 출발하여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다. 최종천의 시는 힘이 있다. 어느 작품도 그의 색깔이 선명하며 작품성이 고르다. 시인의 성격처럼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솔직당당하다. 단정적이고 결론적이며 시적 논리가 강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선명하고 개운하다.     그의 시는 삼단논법이다. 부드럽게, 말랑말랑하게 접근하여, 점층적으로 점점 강렬한 펀치를 날리며 강직하게 결론을 맺는다. 그것이 시적 힘으로 나타난다. 위의 시「그리운 곡선」도 1단계-4단계까지 점층적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다.     1단계 - 여체와 사랑과 섹스 이야기로 부드러운 도입부. 교사가 수업시작하기 전에 하는 1-2분 동안의 주의집중 학습과 같다. 사랑얘기로 한껏 분위기를 업시킨다. 2단계 - ‘사랑의 강박관념’을 얘기하며 슬슬 논조를 펴기 시작한다. 3단계 - 본론으로 들어가서 ‘주의주장’을 강렬하게 논문 발표하듯 전개한다. 시인지 논문인지 헷갈린다. 4단계- 결론. 제목과 도입부, 상황을 다시 언급.고 서정적 자아를 내세워 고백적 결론.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마감.   위의 시에서 각 단계를 대입해 살펴보자.    1단계(기) - 욕조안 풍경(1-12행) 2단계(승) - 사랑학 이론 펴기 시작(13-17행) 3단계(전) - 본론 ‘이제 본론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인간에게 성은 유일한 實在이다.’(18-21행)   4단계(결) - 결에 해당.  ‘욕조 물/ 그녀의 곡선/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기억/ 이별/ 사랑의 관념과 철학 도출/ 나의 고독’ 을 시적 논리로 다시 정서환기함. 부드러운 서정적 자아로 마무리.(22행- 마지막행)  최종천은 실천적 노동과 실존적 행동주의자다. 어느 시에서 ‘말을 줄이라’고 강요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가 시에서 말하면 꼭 그것이 옳은 것 같다. 최종천의 힘이며 능력이다.    위의 시에서도 시인은 단순한 행위인 ’욕조에서 목욕을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진지하게 ’사랑학 개론‘을 전개한다. ’육체냐, 정신이냐‘ 논쟁으로까지 끌어올린다. 사물과 사실에서 출발하여 관념과 철학으로 독자를 힘있게 끌고간다.      인간에게 성은 유일한 實在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허구이다, 특히 예술을 핑계삼아 성을 수식하거나 상징화하지 말자. 최종천이 위의 시에서 하고 싶은 결론은 ‘성은 사랑이다’ ‘성은 육체다’ 고로 ‘사랑은 물질이다’는 관념적 철학을 얘기하고 싶은 거다. 또한 ‘사랑도 관념이다’는 논쟁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맺어버린다.    그런데 묘한 것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그의 어투에 낯익어 길들은 것처럼, 독자는 그에게 설득당한다. 그의 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시가 그 사람이라면 최종천의 시는 최종천 자신이다. 한 줄로 말을 끝내버리는 ‘어, 아니’ 툭 전화를 끊는 것처럼 그의 시는 선명하고 직선적이며, 결정적이다.
588    고경숙 '미궁에 빠지다' 댓글:  조회:1336  추천:0  2018-12-25
미궁에 빠지다                                                                                고경숙       악마가 뜯어낸 창살사이로 반년 치 달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당신이 만지작거리던 모자 끝에 깃털 하나를 꽂기 위해 죽었던 새는 목통을 펄떡이며 바다를 건너왔다 타로 점을 보던 인도여자가 친친 독사를 감고 손을 뻗는 이곳은 교교한 달빛이 점거한 차가운 밀실 떠나면 다신 못 돌아올 것 같은  안개 속 기억은 꿈의 예감과 일치해서이다 여명까지 불과 얼마를 남겨두고 창백해지는 당신의 이마에 성호를 긋는다 이지러졌다 피어나고  불같이 타다 사그라드는 달의 칼날에 베인 수많은 팔목에서 붉은 장미꽃잎이 떨어진다 탄탄한 밤을 건너오며 수없이 죽고 수없이 되살아날 피보다 진한 바람의 체액 아무도 거두어 갈 수 없는 여기, 지상에 존재하고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그대와 내가 미궁에 빠질 수 있는  영원한 은닉처.                   고경숙의 시는 에로틱한 환타지와 언어의 폭력성이 거칠고 대담하다. 거친 사내의 호흡과 여인의 애욕이 꿈틀대는 드라마틱한 남녀의 절정의 장면이 생생하게 상상된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예민한 태초의 몸의 언어다. 보들레르와 릴케가 꿈결처럼 만난다. 무속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강렬한 문장들은 속도가 빠르다. 다음 장면으로 독자를 급박하게 끌어들인다.    위의 시는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짧고 강렬한 시행 속에 긴 드라마가 함축되어 있다. 연극의 구성요소 중에서 ‘절정’부분만 잘라 놓은 영화 같다. 그러나 그 짧은 ‘절정’ 속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1부는 라는 중심단어로 집약되는 과 의 강렬한 이국적 이미지다. ‘낯선 당신’과 자유와 호기심, 상상력은 무한대의 환타지적 사랑을 꿈꾸는 랑의 전개와 발단부분이다.    2부는 라는 중심단어로 집약된다. ‘이곳’이라는 ‘밀실’이미지는 장소를 나타내며 ‘객관화’를 실현한다. 사랑의 과정이 그려진다. 그달빛사랑처럼 열정과 냉정, 상처와 배반을 반복한다. 화자는 사랑의 마무리로 ‘성호’라는 ‘종교의식’을 집행한다. 화자의 심리를 분석하여 보자. 자신이 저지른 사랑에 후회없이 당당하고자 하는 화자의 심리는 자신의 사랑을 숭고하게 격상시키려고 하는 고자 심리적 특징을 보여준다.    3부는 라는 단어로 집약되는 ‘재인식’ 단계다. 사랑의 결론이다. 그 결론은 ‘미궁’과 ‘은닉’을 선택하였다. 화자의 선택을 심리분석 하여 보면 ‘미궁’ 속으로 자신을 숨기고 결론을 피하는 ‘회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인의 무의식도 결론을 회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회피’보다는 적극적인 ‘사유’와 ‘철학’에 접근하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철학적이거나 깨달음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랑의 본질이며 생리일 것이다.    연애시는 부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궁금증을 일으키고, 섹시해야 한다. 또한 슬프고 아파야 한다. 멜로 드라마처럼. 연애의 방정식은 본시 짧은 만남, 긴 고통이다. 사랑은 아픈 거다.    연애시는 감정에 빠지기 쉬운데 고경숙의 시는 미사여구가 없다. 사족을 붙이지 않고 문장을 힘껏 집어던진다. 직선적이고 솔직하다. 구조와 문장에 힘이 있다.  
587    김규화 '그 안이 텅 비어' 댓글:  조회:900  추천:0  2018-12-25
  위의 시는 제목의 ‘디자인’ 구조를 가진 하이퍼시다. 그림 이미지의 하이퍼적 요소인데, 제목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의미의 영역’ 안에서 ‘새로움’에 도전하고 있다. 위의 시는 1연에서 하이퍼성을 강하게 나타낸다.   동네 골목길에는 가게 한 칸 그 안이 텅 비어 간판의 첫 자와 그 다음 자도 텅텅 비어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가게‘만 홀로 버티고 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눈 입이 없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한쪽 귀와 턱만 있다   1연 2-7행의 ‘비어 있음’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가게 안이 텅 비어 있다/ 간판 글자도 텅텅 비어 있다/ 간간가게만 홀로 있다/ 눈 입이 없다/ 한쪽 귀와 턱만 있다‘ 모두 ’비어있음‘의 이미지다. 또한 그 이미지들은 ’객관화‘된 ’사실‘이다.    또 하이퍼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 )로 구성된 2연이다.  ‘(나는 떨어져나간 그 자리를 훈민정음의 초성으로 채워본다)’   2연은 ‘사실’과 ‘상상력’이 공존한다. ‘간판이 떨어져 나간 가게-가난한 어머니, 학생, 개밥바라기 별’까지 각각의 연들은 하이퍼적으로 ‘링크’ 된다. 4연은 개연성을 가지며 개별적이나 위의 시의 ‘디자인 구조’에서 ‘배경’ 역할을 한다. 2연과 4연은 짧은 1-2행으로만 되어 있고 1연과 3연은 5-7행으로 길다. ‘시는 디자인이다’라는 필자의 의견을 확인하는 연구성이다.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다가 간판 한 자가 떨어져 나간 간판을 보고,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 ‘반찬가게-어머니-군것질하는 아이들-개밥바라기 별’까지 의미화 영역 안에서 ‘상상력의 공간이동’을 하였다. 또한 ‘현재성의 반찬가게’에서 ‘과거의 어머니’와 ‘미래의 아이들’까지 ‘상상력의 시간이동’을 하고 있다. 사실 반찬가게에서는 떡볶이나 오뎅을 팔지 않는다. 그건 분식센터에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상력의 산물이다.   필자는 ‘의미의 하이퍼시’를 필자의 시에서 추구하여 왔다. 상상력의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무의미’에 집중한 하이퍼시와 달리, ‘새로운 의미구조’의 ‘구성요법의 시 디자인’에 집중하여 하이퍼시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하이퍼시의 구조를 ‘리좀’과 ‘모듈’로 좁게 한정하였다. 또한 ‘무의미’ 와 ‘기호’에만 집중하였다. 그러나 회원들은 여러 번의 토론을 거쳐 하이퍼시를 ‘새로움’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였다. 하이퍼시의 중요한 요소인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필자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 을 무시하였다. ‘연과 연의 단절’, ‘행과 행의 단절’과 ‘수직이동’과 ‘수평이동’ 내용도 하이퍼시의 중요 요소로 첨부해 둔다  
586    사랑이여 흐르다가 / 문 효 치 댓글:  조회:1009  추천:0  2018-12-25
사랑이여 흐르다가  문 효 치       사랑이여 흐르다가  물처럼 흐르다가    여울이 되어 소리도 내며 흐르다가  파도가 되어 몸살처럼 부딪다가    사랑이여   물처럼 거침없이 흐르다가 맑고 곱게 흐르다가     때로는 얼음처럼 꽁꽁 막히다가 다시 터져 속 시원히 터져서 흐르거라 어허 사랑이여          인간의 DNA는 죽기 전까지, 사랑에 대한 욕망을 추구한다.  ‘사랑’은 ‘생명’이라는 말과 같다. 대중은 사랑 시를 좋아한다. 시인도 사랑 시를 좋아한다. 누구나 사랑에 관해서는 한 마디쯤 할 말이 있다고 믿는다.   문효치는 사랑을 ‘흐르다’로 풀이하였다. 그런데 긍정문이 아닌, ‘흐르다가’라는 애매한 단어가 중심어이다. 단순한 유동적인 ‘흐른다’가 아니다. 이 시의 묘미는 ‘-다가’라는 어미에 반전매력이 있다. ‘흐르다가’는 한 방향으로의 전진이 아니다. ‘행위’와 ‘방향성’의 전환을 예고하는 단어다. 아래 1-4연의 변화된 형태를 살펴보자.     1연: 물처럼 흐르다가   2연: 소리도 내며 흐르다가/ 파도가 되어 몸살처럼 부딪다가    3연: 맑고 곱게 흐르다가   4연: 얼음처럼 꽁꽁 막히다가/ 다시 터져/ 속 시원히 터져서 흐르거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갑자기 낮은 곳으로 흐를 때는 바위에 몸을 부딪쳐 풍란이 인다. 얕은 계곡에서 얼어붙었다가도, 심연의 깊은 물길은 뚫려 맑은 물이 흐르기도 한다. 사랑도 물과 같다.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때 사랑은 폭발적 힘을 갖는다.     위의 시에서 사랑의 관점은 3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한 사람이 ‘타인을 알고-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의 과정에서 좌충우돌 겪게 되는 에로스적인 연애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여러 타입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화해와 조화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과 모양과 성질을, 소설의 ‘전지적 작가적 시점’으로 관찰한 다시점적 시각의 시로 해석할 수 있다.         문효치의 시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정서는 시의 자질이다. 정서가 행복하고 안정된 시는 힘이 약하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여러 개의 사랑을 소유하고 살아간다. 정신적 사랑, 정서적 사랑, 육체적 사랑 등 여러 종류의 사랑이 복합적인 형태로 꼬여 있다. 사랑은 물과 같아서 유동적이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585    가을 현상現像 · 4 / 최진연 댓글:  조회:906  추천:0  2018-12-25
가을 현상現像 · 4     최진연     누런 벼메뚜기들이 펄쩍펄쩍 뛰고 있는 들판 그 위에 아득한 코발트빛 하늘 하얀 줄을 긋고 은빛 반짝이며 사라지는 비행기 콜로라도의 강물에 누군가 발을 담갔다가 얼른 들어올린다 아이들은 아직도 더러 풀잎 물레방아를 돌리고 종이배 하나가 얄랑얄랑 흐르다가 빠지는 마리에나 해구보다 깊은 바다엔 하얀 섬 하나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흐르고 있다 곤돌라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끌려온 베네치아의 바다는 그 사막도시의 발등도 묻지 못하고, 저절로 떠가는 배에서 남녀가 어깨를 안고 부르는 아라리 같은 곡조의 사랑 노래 소리 갑자기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들 스산한 노래에서 검은 시베리아 바람을 보았을까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조각품처럼 굳어지고, 콜로라도 강물보다 찬 동강을 건너 김삿갓이 햇살 설핏한 산등을 넘어가고 병 속의 메뚜기 몇 마리가 꼼작거리고 있다               최진연의 「가을 현상現像 · 4」는 하이퍼시의 여러 조건들을 함의하고 있다. 그 중 하이퍼시의 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모자이크 기법은 각각의 다른 이미지들을 사각형 구도 안에서 모자이크 그림처럼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그 특징은 각 연들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다. 위의 시에 나타난 모자이크 기법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자.     첫째, 내용 중심의   각 행에 나타난 ‘중심어’를 요약하여 ‘중심어- 모자이크 기법’을 살펴보자. 위의 시는 샤갈의 그림처럼, 이미지 덩어리들이 낱개로 뭉쳐 있다. 시 한 편에 매우 많은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겹쳐 있다. 필자는 이 기법을 ‘겹쳐 그리기 기법’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1행: 벼메뚜기 들판 2행: 하늘 3행: 비행기 4행: 콜로라도 강물 5행: 발을 담그다 6행: 풀잎 물레방아 7행: 종이배 8-9행: 바다의 섬 하나 10-11행: 곤돌라,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아 바다 12행: 배 위의 남녀 13행: 아라리 사랑노래 14행: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 15행: 스슨한 노래, 시베리아 바람 16행: 울긋불긋 물든 잎 17행: 콜로라도 강물보다 찬 동강 18행: 김삿갓 19행: 병 속의 메뚜기   자동기술기법으로 각 행들은 바로 위의 행을 이어 받아서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하는 구조다. 현대시의 자동기술기법의 특징이다. 각각의 다른 작은 모자이크들을 합성하여 한 개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위의 시는 행마다 각각 다른 사물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그러나 한 개의 모자이크 그림처럼, 각각의 행들 안에 있는 단어들은 각각 독립적이다. 한 단어도 밀리거나 소외되지 않고 선명하다.     둘째, 색깔 중심의   2행: 코발트빛 하늘 3행: 하얀 줄, 은빛 반짝이며 사라지는 비행기 6행: 풀잎 물레방아(녹색) 8행: 하얀 섬 하나 15행: 검은 시베리아 바람 16행: 잎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색깔 이미지는 시에 감각적 미의식을 준다. 위의 시는 단편적인 한 가지 색깔을 벗어나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반짝이는 모자이크 이미지를 만들었다.     셋째, 동사 중심의   1행: 펄쩍펄쩍 뛰고 있는 벼메뚜기 2행: 아득한 하늘 3행: 사라지는 비행기 5행: 발을 담갔다가 얼른 들어올린다 6행: 풀잎 물레방아를 돌리고 7행: 얄랑얄랑 흐르다 8-9행: 섬 하나가 흐르고 있다 10행: 곤돌라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끌려온 베네치아 11행: 바다는 사막도시의 발등도 묻지 못하고 12행: 저절로 떠가는 배, 어깨를 안고 부르는 13행: 사랑 노래 소리 14행: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떠는 나무들 15행: 세베리아 바람을 보았을까 16행: 조각품처럼 굳어지고 17행: 찬 동강을 건너 18행: 햇살 설핏한 산등을 넘어가고 19행: 메뚜리 몇 마리가 꼼작거리고   1-19행까지 모든 행에 동사를 사용하여 운동감을 주고 있다. 동적 움직임은 시에 생기를 주는 역할을 한다. 시에 현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생동감 있고 펄쩍펄쩍 시가 살아 있다.     넷째, 상상력의 시간이동, 공간 이동 중심의 < 상상력- 모자이크 기법>   위의 시의 특징은 상상력이다. 하이퍼시는 여러 번 필자가 주장한 ‘상상력의 시간 이동’과 ‘상상력의 공간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행과 연은 동시에 공간과 시간을 벗어났다가 다시 ‘순간접속’ 한다. 의 예는 다. 시의 스케일을 크게 한다. 또한 을 한 예는 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모자이크 그림이다. 상상력의 시간적거리가 멀다. 먼 거리의 사물과 행위를 하여 동시에 펼쳐 보인다.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위의 시는 복잡한데 선명한 것이 장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난해한 기법이나 문장이 없다. ‘하이퍼시’ 시 구조를 가진 자립적이며 독립적인 모자이크 이미지가 선명하다. 하이퍼시의 ‘ 중심어 모자이크 기법’은 샤갈 그림의 이미지 덩어리들의 집합과 같다. ‘색깔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은 몬드리안 그림의 구성과 같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시간이동과 공간 이동은 시에 감각적 미의식과 운동감을 준다. 중첩 이미지의 복합적 구도는 파도와 강물의 물결과 반짝임을 생각나게 한다.  
584    황사 / 허순행 댓글:  조회:903  추천:0  2018-12-25
황사     허순행     햇살이 빈혈을 앓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웅크렸던 몸을 펴서 그림자를 키웠다 먼지를 뒤집어쓴 시간들이 수채구멍으로 들었고 바람이 황허강을 건너왔다 허공을 떠돌던 어둠이 붉 은 눈물을 흘렸다 물기가 돌지 않던 자궁에서 낮달이 바깥을 기웃거 렸다   (흰옷의 여자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여자: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바람 속에서 바람 처럼 사라지는 말들을 따라다니며 당신을 찾 았어요 걸인처럼(또는 광인처럼) 누군가의 문 을 두드리기도 했어요 떨어지는 해를 지켜보 다가 울음을 토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을 만난 건(나로서는) 행운이었지요 오랜만에 정말 깊 은잠을 잤어요 당신이 찾아왔을 때, 그게 생 시였을까요? 유령처럼 서 있는 당신이 실물이 라는 게, 만질 수 있는 실체라는 게 무서웠어 요 골목 끝에서 숨죽여 웃는 운명을 본 듯도 했어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문 뒤로 숨는 나를 지켜봐야 했어요 굴헝처럼 깊은 남자의 눈이 허공을 헤매고 있다   밤은 캄캄한 어둠을 기어 나와 달리는 승용차에 올 라타기도 한다 물에 빠진 달그림자를 흔들어보다가 모퉁이에 살고 있는 흰 꿩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구두 뒷축으로 달라붙는 여자의 목소리를 떼어내다가 어둠과 충돌한 그가 어둠 속으로 쓰러졌다   밤이 손을 내밀어서 한 생애를 덮어주었다 울음을 매달고 서쪽으로 옮겨가던 별자리가 천년 후의 빛을 쏟아냈다                   - 극시 형태의 꿈의 형상화 작업     위의 시는 꿈을 형상화한 극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5가지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고 시의 법과 방법론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극시 형태의 시로서 드라마틱하다. 의 1인 모노드라마 형식이다. 2연 도입부에서 ‘흰옷의 여자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는 지문으로 사별한 여자가 죽은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2의 등장인물인 남자는 대사가 없이다. 망자인 남자는 허상이다. 또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관찰자’ 시점인 소설 기법을 차용하였다. 위의 4연의 시는 2연만 극본이다. 1연, 3연, 4연은 해설, 또는 지문에 해당한다. 출연자는 두 명이다. 침묵하는 남자와 일방적으로 말하는 여자다. 배역은 두 명인데 한 목소리만 들린다. 모노드라마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1연- 해설(또는 지문) 2연- 극본(대사: 여자만, 남자는 침묵. 독백으로 보아야 함) 3연- 해설(또는 지문) 4연- 해설(또는 지문) 모든 시점과 관점은 여자 중심이다. 여자가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나타낸다.   둘째,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황사와 꿈의 ‘불명확성’을 ‘중첩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황사」는 원래 흙과 먼지가 쌓인 곳 위에 또 계속 쌓이는 ‘중첩 이미지’와 시야를 흐릿하게 가리는 ‘불명확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고 흐릿한 꿈과 연계된다. 위의 시 제목「황사」는 황사현상을 꿈으로 치환하여, 꿈의 ‘중첩 이미지’로 환원시켜 극적으로 갈등구조를 만들고 있다. ‘햇살이 빈형을 앓고, 물기가 돌지 않는 자궁에서 낮달이 낮달이 바깥을 기웃거린다.’ 부분처럼 이 시에서는 명확한 것이 없다. 남자의 부재로 인하여 여자는 불안정하다. 사물과 스토리가 황당무계하고 불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황사와 꿈의 갖고 있는 동질성이다. 모든 것이 부조리한 상황이다.   셋째, 시의 기법은 ‘해리현상’처럼 ‘자아’를 ‘타자화’하고 있다. 라깡의 ‘자아의 타자화 기능’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객관적으로 타자화 된 자신을 만난다. 자아는 온전히 타자화되어 극을 전개해 나간다. 위의 시에서 ‘여자’는 망자가 된 ‘당신’을 만나고 있다. 1연, 3연, 4연은 자신의 상황을 영화를 보듯이 관찰한다. 시적화자는 여자인 ‘나’이다. 제 삼자의 눈으로 관찰하여 냉정하게 상황을 기록한다.   넷째, 극은 독백적이며 고백적이다. 그 이유는 2연의 일방적인 여자만의 대사 때문이다. 고백록이나 일기처럼, 이야기를 혼자 한다. 대사를 치고 있지만 대사를 주고받는 대상이 없다. 그 형식은 독백체이다. 그런데 1, 3, 4연이 시에서 ‘객관화’에 큰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적 거리’가 가깝다. 그래서 2연의 톤은 직접적이며 감정적이다. 위의 시의 화자는 시인이고 청자는 독자다. 독백은 니힐하고 직접적 효과가 크다.   다섯째, 자동기술기법과 무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이다. 프로이드는 ‘꿈의 기능’을 숨겨져 있던 ‘무의식’이 의식화하여 밖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았다. 무의식은 ‘술, 꿈,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의식 밖으로 표출된다. 꿈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은 상상력의 비약으로 신비스러운 경향을 띤다. 생시에 의식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상상력의 순간접속으로 시를 감각적이게 한다. 위의 시에서는 망자를 초대하여 현실에서처럼 ‘여자’가 ‘말’을 건다. 또한 위의 시 1연, 3연, 4연에서는 ‘자동기술기법’으로 소설의 ‘지문’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시가 시인의 감정의 산물이라면, 시인은 탈출과 극복을 시도한다. 니힐하고 우울한 현재의 갇힌 상황을 꿈으로 극복하려 한다. 현대인의 절대고독과 극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사건과 사실만 일방통행으로 존재할 뿐. 드라마적 요소와 ‘꿈’이라는 불확실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이며 여자의 고독과 불안정을 클로즈업 시킨다.   갱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든 여자의 우울하며 건조한 삶을 반영한다. 여자는 죽은 남자를 밤에 꿈으로 초대하여 고독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행동의 제한을 받는 꿈은 여자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극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위의 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생각하게 한다. 무의식의 흐름을 무리하지 않게 객관화시킨 작품이다. 시적 화자와 시인 자신, 망자와의 흐르는 이미지가 제목인「황사」와 조화롭다.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불투명성과 제한성을 극적장치를 하여 선명하게 해결하고 있다.  
583    환호 / 김규화 댓글:  조회:889  추천:0  2018-12-25
환호     김규화     후반 선제골을 터뜨린 축구선수 리의 세로 쩍 벌린 입에다 시인 〇와 함께 캔 삶은 햇감자 한 알 퐁 집어넣어줄까 감자는 흙 속에서 수줍은 듯 숨어 있다가 호미를 옆으로 뉘어 살살 긁으면 하얀 속살을 드문드문 내놓는다 두근두근 내 가슴이 뛰고 철통 같은 근육의 오른팔을 수평으로 뻗은 리 선수의 가슴이 뛰고   초록 풀잎을 단 줄기를 고스란히 뽑아올리면 조르르 따라오다가 감자는 흙 속에 다시 주저앉고 나는 감자를 따라잡으려고 왼손을 휘젓고 리좀은 떨어지고 오른손의 호미는 캐내고 중심은 변두리로 감자 따라, 호미도 중심 따라 변두리로 끊어진 리좀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다양성으로 쿠이아나 판타나우 월드컵경기장에는 이과수폭포보다 더 센 붉은악마들의 입 그 옆에서 흰 감자 캐는 〇시인과 나   리 선수가 지르는 고함소리에 튀어나온 감자가 칠레 산맥을 넘어가는 소리                 김규화의「환호」는 ‘하이퍼시’의 ‘리좀 기법’을 적용하여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살리고 있다. 김규화는 청각 이미지의 하이퍼 신작시집 『날아가는 공』을 발표하여 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환호」는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변용하여 그 영역을 확대하였다. 이 부분은 기술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하이퍼시의 리좀기법을 적용하였다. 리좀 기법은 하이퍼시의 링크 기능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확산되는 기법이다. 각각의 연들은 독립적이면서 자립적으로 제목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단선구조의 시가 다선구조의 형태를 갖게 된다.   위의 시에서 실행된 몇 가지‘리좀 구조’를 분석하여 보자.   첫째, 영문자‘O'라는 문자 이미지를 사용하였다.‘환호’라는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변환하였다. O자 모양은 하이퍼시의 리좀 구조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리 선수 입모양 O - O 시인- 햇감자 한 알 모양 O - 둥근 월드컵 경기장 모양 O - 붉은 악마들의 입 O- 응원하는 고함소리 입모양 O- 리 선수 입에서 튀어나온 감자 O - 감자 둥근 호미질 모양 O’ 등 8개의 ‘O’ 자 모양이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리좀으로 단선구조의 시를 다선구조로 확산시켰다. 중첩 이미지는 시를 확장시키며, 새로움과 청량한 느낌을 준다.   둘째, 운동 이미지로 움직임과 생동감을 준다. 운동 이미지는 시에 운동감과 움직임을 주어, 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이퍼시의 특징 중에서도 리좀은 다양한 확장된 공간을 갖는다. ‘리 선수 고함소리- 철통 같은 근육의 오른팔- 리 선수 가슴이 뛰고- 칠레 산맥을 넘어가는 소리’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열정과 환희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리좀의 ‘연결’과 ‘러너’ 기능으로 이미지를 확장시켰다. 시를 읽는 독자는 실제로 축구경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리좀은 긴 설명을 요하는 신문기사의 영역을 단 몇 줄로 압축시켜 준다.그러나 효과는 배가된다.   셋째, 하이퍼시의 순간접속 시간 기능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인데, 하이퍼시는 상상력의 순간이동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자유로이 한다. 전혀 관계없는 것들도 결합된다.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러너’한다. ‘시간의 개념’과 공간과 공간이 해제된다. ‘쿠이아나 판타나우 월드컵경기장’과 ‘감자 캐기’는 전혀 관계성이 없다. 독립적이다. 그러나 ‘TV 방송’과 ‘TV시청’이라는 순간접속을 통하여 ‘축구’와 ‘감자 캐는 나’도 순간접속을 한다. 전혀 관계성이 없는 무의미한 것들끼리 하이퍼적 리좀으로 묶어 버린다. 독립된 의미없는 연들이 의미의 기능을 갖게 된다. ‘삶은 감자’를 먹으며 ‘TV시청’을 하고 있는 ‘나’와 ‘O 시인’은 쿠이아나 판타나우 월드컵경기장과 순간접속 한다. ‘감자-축구장-나- O 시인’이 한 시간대에 순간접속 한다. 이처럼 하이퍼 시의 리좀은 거미줄처럼 관계성이 없는 독립된 연들이 관계성을 갖는다. 위의 시 ‘2연 7행’ 의 문장처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다양성’으로 리좀이 실행된 것이다.   넷째, 각각의 연과 행은 독립적이다. 삽입과 삭제가 자유롭다. 위의 시는 분명 ‘축구경기’ 이야기다. 그런데 난데없이 ‘감자 캐기’의 비중이 커진다. ‘축구경기’를 밀어내고, 사물인 ‘감자’에 집중하고 있다. ‘햇감자- 왼 손을 휘젓고- 오른손의 호미는 캐내고- 중심은 변두리로 감자 따라- 호미도 중심 따라 변두리로’ 리좀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처럼 하이퍼시는 의미의 영역을 해제한다. 부분이 전체를 제압한다. ‘의미’보다는 ‘구조’와 ‘형태’와 ‘표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100호 특집으로 어떤 시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김규화의 시「환호」를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환호’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환호’라는 제목은 기쁨과 탄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100호의 숫자‘OO’와 위의 시의 시각 이미지인‘O'의 중첩은 리좀적으로 연결되며 매력을 갖는 요소다. 또한 김규화의「환호」는 문덕수 시인이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고 주장한 새로운 문예사조인 의 리좀 구조를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시다. 필자는 으로 활동하면서‘표현’과‘내용’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하여 고민하였는데, 위의 시는 내용이 있는 하이퍼시다. 앤지오신문 100호 기념 평론으로 하이퍼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필자가 평론을 쓰면서 ‘창의성 추구’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100호까지 평론의 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나름대로 하였다. 각각의 시의 구조를 분석하여, 역으로 시 창작 방법론과 기법을 소개하였다. 시를 공부하는 시인들에게 시 창작의 기본지침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100호 발간을 자축하며, 에서 작품성 있는 좋은 시를 만나기를 바란다.
582    해바라기 / 김예태 댓글:  조회:828  추천:0  2018-12-25
해바라기     김예태     지하철에 앉아 색종이를 접던 여자의 손가락에서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이번 역은 동작 현충원역입니다” 여자가 주섬주섬 해바라기를 들고 내린다 (햇살 부서져 내리는 강물을 건너와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피웅피웅 총알들이 햇살의 레이더망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베티고지* 낙동강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하고 쓰러진 병사들이 노란 철모를 벗어 푸른 하늘에 푹 찔러 넣고 무리지어 외치고 있다 “우리는 꽃 같은 색시를 두고 왔슴다”   소피아로렌이 해바라기 가득 핀 들판을 걷고 있다**   묘역에서 병사들이 걸어 나와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6.25때 35명으로 중공군 800여 명을 물리친 최고의 승전 전투지역 ** 영화 해바라기의 한 장면-신혼에 소집영장을 받은 남편과 비극적인 이별을 한다             김예태의「해바라기」는 다음의 여섯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제목 ‘해바라기’가 주는 원형성- 태양을 상징한다. 태양을 향한다는 이미지다. 이 시에서는 전쟁에 징집당한 어린 병사들의 무조건적인 격한 애국심이 해바라기와 일맥상통한다.   둘째, 1-6연의 연들은 각각, 모두 제목 ‘해바라기’ 와 연계되어 있다. 1연- 해바라기를 접다. 2연- 해바라기를 들고 내린다. 3연- 햇살 레이더망(원형 컷 사진 같은 해바라기 이미지) 4연- 꽃 같은 색시 5연- 해바라기 들판 6연- 해바라기 배경 기념사진 촬영   셋째, 두 사건이 현재라는 한 시점에서 행위가 일어나는 동시다발성 현재형 시점이다. 1-2연의 여자의 행위는 현재형이다. 그런데 3-6연의 행위도 현재형이다. 6. 25 사변 때 일어난 행위가 순간이동 기법으로 같은 시간대에서 일어난 듯 착각하게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그림이 포개진다. 이러한 방법은 영화에서 오버랩 기법으로 많이 등장한다. 과거회상 씬에서 처리하는 영화기법을 시에 도용하였다.   넷째, ‘전쟁과 젊은 병사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아래의 표현들이 서정적으로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전쟁 내용이라기보다 사랑 시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제목-해바라기 1연- 색종이접는 여자- 손가락에서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2연-(햇살 부서져 내리는 강물을 건너와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4연- 노란 철모를 벗어 푸른 하늘에 푹 찔러 넣고 5연- 소피아로렌이 해바라기 가득 핀 들판을 걷고 있다 6연- 병사들이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특히, 6연에서 젊은 병사들이 모두 죽었다고 사실적 표현을 쓰지 않고, ‘묘역에서 병사들이 걸어나와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소피아로렌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압권이다. 상상력의 공간이 몇 개의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를 하이퍼적이게 한다.   다섯째, 러너기능과 리좀- 시가 촘촘하면 답답하다. 각 연들이 건너뛰기를 함으로써 공간의 여백이 장면전환을 하며 답답하거나 지루함을 덜어준다. 그물처럼 얽힌 사건과 해바라기 이미지가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하고 있다.   여섯째, 주석의 효과-시를 설명적이지 않게 한다. 만약 시의 내용으로 이야기식으로 주석 내용의 사건을 펼쳤다면, 분명 시는 지루하고 설명적일 것이다.   시는 표현예술의 꽃이지만 내용에 철학적 질문과 인생의 극한 상황을 표현하는 이슈가 없으면 말장난이 되기 쉽다. 김예태의「해바라기」는 감각적이며 가벼운 터치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언농으로 가볍지 않은 것은 내용의 비중 때문이다. 6.25 전쟁과 어린 병사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위기상황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는 내용인가, 표현인가?’라는 화두를 오늘 다시 던져본다.
581    순례자 / 권순자 댓글:  조회:764  추천:0  2018-12-25
순례자     권순자     저녁이 되면 낯선 마을 처마 밑을 맴돌지요 달빛이 휘영청 길을 열어주지만 길도 추워서 바람이 머물지 않지요 한 몸 뉠 곳 없는 고양이 주뼛주뼛 처마 밑을 서성거리지요   흙에 묻힌 역사는 다시 살아 되풀이 되는데 창백한 꽃들이 달빛에 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데   어둠이 왜 자꾸 짙어만 가는지 꽃들의 잔기침 소리, 목울대를 흔드는 소리 어느 새 길고 가늘게 뻗어 밤안개로 피고 있어요 안개끼리 기침하고 있어요   뿌연 고통의 뿌리들이 사방에 퍼지고 있어요   새 가슴 두드리는 넝쿨손, 허우적허우적 반짝이는 푸른빛들이 날카롭게 허공을 조각내는 한밤 앞서간 순례자들이 뼈를 이어 하늘로 다리 놓고 있어요         * 권순자 신작시집 『순례자』중에서                  위의 시는 길고양이의 삶을 여성적 화자의 목소리로 5연으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1-5연의 중심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연- 주뼛주뼛 처마 밑을 서성거림   2연- 흙에 묻힌 역사, 추위   3연- 어둠, 안개, 기침   4연- 고통의 뿌리   5연- 앞서간 순례자들의 뼈를 이어 하늘로 다리를 놓음   위의 중심어를 합성하면 길고양이의 삶이 한눈에 그려진다. 화자인 시인이 측은지심을 가지고 관찰한 길고양이의 삶이 재현된다.   위의 시 제목에서 말하는 ‘순례자’는 삶의 순례자가 아니다. 죽음의 순례자다. 험난한 삶을 살다가 희생된 길고양이들의 뼈(주검)들이 이어진 순례자의 행렬인 것이다. ‘결’ 부분의 아이러니한 내용이 이 시의 제목이 되었으며, 매력 포인트다.     길고양이는 야생의 상태에서 먹이가 부족하고 영역다툼이 심하여 4년 이상 생존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보통 2년 정도 사는데 음식쓰레기 봉투를 없앤 뒤로 그나마 썩은 밥이나 생선도 먹을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야생에서 들쥐나 메뚜기, 비둘기를 잡아먹고 산다. 이러한 때에 권순자의 야생 길고양이를 향한 애정과 관심에 주목하게 된다.    사실 길고양이의 삶은 위의 시 제목「순례자」처럼 따뜻한 삶의 터전이나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다. 고양이는 영역을 지키며 사는 동물이다. 고양이는 순례를 떠나지 않는다. 고양이는 주인이 떠나도, 그 자리를 지킨다. 장소를 옮겨 살지 않는 이유는 다른 영역에 침입하면 기존에 살고 있던 다른 고양이로부터 테러를 당하기 때문이다.     들개, 들고양이, 야생동물로 분류되어 밀렵의 대상이던 야생동물을 인간이 길들이면서 애완견, 애완고양이라는 사랑스런 이름으로 불린다. 요즘 개와 고양이는 현대사회의 소외된 개인에게 반려동물로서, 가족의 자격으로 인정받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야생동물은 인간의 큰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동물과 인간은 영원히 대치된 관계에서 벗어나 밀접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야생동물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경외의 대상, 노동력,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수단, 재미있는 구경거리, 인간과 다른 독특한 특성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다.    위의 시는 사회부조리,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인 인간에게 향하던 시선을 동물에게로 확장시키고 있다. 야생동물에 대한 시는 인간에게 정서적 위안을 준다. 인간은 외로움과 소외를 동물에게 위로 받으며, 동물은 인간에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믿는다. 아직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고양이들을 가족으로 따듯하게 맞아들여 반려동물로 받아 줄 날을 기대해 본다. 야생동물에 대한 보호와 관심과 애정은 그 사회의 문화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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