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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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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별 닦는 나무 / 공광규 댓글:  조회:792  추천:0  2018-12-24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는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삶이 지고 싶은 나를               시인이 원하는 시의 정점은 어디인가? 작품이 대중에게 사랑받고, 시인에게 인정받고, 평론가에게 선택되는 것. 또한 문예사조와 역사에 거론되는 것. 작가 사 후 50년 백년이 지나도 석박사 논문으로 조명하고 연구되어지는 것. 쉬운 시, 감각적 미의식이 있는 시, 진정성이 있어 대중들이 유치하지 않은 시. 무기교의 기교, 은밀하게 기교를 숨긴 작품성 있는 시를 지향할 것이다.   어제 새벽 4시 20분쯤 잠이 깨어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가지들이 휘늘어져, 나의 방,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지는 별 사이로, 밤벚꽃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별꽃을 보았다. 앞집 빌라, 수능을 코앞에 둔 입시생도 잠든 시간. 모든 사물이 숨죽인 공간, 홀로 별꽃 피어 빛나고 있었다.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빛을 밝히는 걸 목격했다.   공광규 시인의 『별 닦는 나무』는 대중이 좋아할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선 대중이 좋아하는 ‘사랑 시’라는 거다. 쉽다. 진정성이 있다. 시인이 읽어도 유치하거나 작품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석박사 논문으로 연구될 새로운 구조와, 문예사조를 바꿀 표현 기교를 가지고 있는 반전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을 작품이다.      이시의 백미는 1연의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부분이다. 은행나무와 나를 치환하고 있다. 이 시의 또 다른 매력은 ‘진다’라는 주제어다.    ― ‘뜨는 별’은 당신에게 양보하고, 나는 ‘지는 나뭇잎’을 택하겠다는      공광규의『별 닦는 나무』를 여러 번 다시 읽는다. 순수하다. 여과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 “이 사람, 사랑을 하나?” 작품과 작가가 오버랩된다. 그 대상이 아내라면 더욱 좋겠지만, 남의 아내라고 하여도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비난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별처럼 서로를 빛낼 것이므로. 흔들리지 않는 은행나무가 되어, 큰나무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내 여자의 길을 닦아 주고 싶은 것. 더 반짝거리게 하고 싶은 것. 질투하지 않는 사랑.   용문사 은행나무를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고, 필자는 졸시『보들레르와 은행나무』를 썼다. 몇 년 뒤, 가을에 용문사를 찾아 대웅전 앞 천년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시에게 미안해서다. 하늘을 찌르는 은행나무는 감탄과 감동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신성을 느꼈다. 그 은행나무를 먼저 만났다면, 다른 시를 썼을 것이다. 그 시는 매우 짧을 것임. 서양풍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긴 ‘고백록’이 아니다. 천년 동안 삭제한 나뭇가지. 지우고 지운 몸, 은행나무 그 여백의 지혜를 배울 것.   공광규 시인의 ‘별 닦는 나무’를 용문사 은행나무 ‘답사기’, 또는 ‘감상문’ 이라 이름하여 본다. 조지훈과 박목월처럼 화답가를 쓰고 싶은 욕구. 소곤소곤 대화 같다. 밤에 쓴 부치지 않은 편지. 답장을 하고 싶은― 짧고 아름다운 시, 결코 쉽지 않은 언어장치. 진정성이 주는 멋스러움.  
539    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댓글:  조회:835  추천:0  2018-12-24
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뛰어가며 한 말 빠르다고 진실은 아니다 바람탄 말 물에 젖기 쉽고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순간 부서진다 똑같이 한 말도 속삭였다고 가깝지 않고 강 건너 온 말 귓가에 잡으려면 많은 메아리를 재워야 한다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전했다고 색깔이 없을까 믿었다고 하는 대답 눈웃음이다 산 하나 넘을 때마다 울림으로 퍼지다가도 합쳐지질 못하고 휘돌아도 사그라지지 않고 퍼져가는 말. 말. 말 콩 심은데 콩, 팥 심은데 팥 혼자서 한 말도 굴러가면서 번져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       시인은 ‘말’로 ‘시’를 쓴다. 말을 못하는 갓난아기가 하는 ‘말’은 생존에 필요한 ‘요구’와 ‘요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은 생존의 요구보다는 ‘설득’과 ‘변명’과 ‘거래’의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시인’의 ‘말’인 '시'는 더욱 발전하고 고품격화하여, ‘비유’와 ‘이미지’로 진화하였다. ‘다의성’과 ‘모호성’으로 점철된 시인의 말은 ‘사실’과 ‘사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화적이고 함축된 ‘시’의 ‘언어유희’는 몇 껍질 ‘의미 벗기기’를 하여 수수께끼처럼 ‘말’을 해독해야 한다.   소쉬르는 말을 ‘기의’와 ‘기표’로 분리하여 정의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사물’에 옷을 입힌 것을 ‘이름’이라고 본 것이다. ‘이름’은 단지 ‘기호’라고 보았다.  ‘사물에 옷을 입혀 관념의 옷을 벗겨’ 감각적 미의식을 살려야 좋은 시로 인식된다. 대중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시’를 좋아하지만, 시인에게 관념은 독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구절은, 태초에 ‘사물’이 먼저 존재하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뜻일까? 구약성서 에는 하나님은 사물을 짓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미지의 시대인 현대에는 단어는 이미지를 대신한다. ‘강, 바람, 산, 꽃, 구름’이라는 단어를 나열하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계곡이나 강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바다, 파도, 갈매기, 돛단배’라는 단어가 나열되면 여름바캉스를 떠나고 싶어진다. 언어는 이제 ‘사물+느낌+행동욕구’까지 함의하고 있다.   한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가 지시하는 ‘사랑’이라는 말은 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해’ ‘I LOVE YOU’ ‘愛’ ‘쥬뎀므’ 는 한 단어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사랑해’라는 말도 ‘사랑해’라고 아기가 엄마에게 말하면 애교로 인식된다. 여고생 딸이 아빠에게 말하면 ‘용돈’을 더 타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이 젊은 처녀에게 말하면 그 말은 ‘키스해도 돼?’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노인이 노파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맛있는 밥을 줘서 고마워요’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말의 다의적인 측면을 잘 나타난 말이다. ‘사물’ 앞에 서서 ‘이것’이라고 지시하며 가리켜도, 각각의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오장의 시에서 ‘말 ․ 말 ․ 말’은 ‘전달’과 ‘해석’의 오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의 해석적 시각으로 말을 분류하였다. 말은 사람의 수만큼, 아니 각 사람의 생각의 갈래만큼 여러 가지로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위의 시에서도 ‘뛰어가며 한 말, 바람탄 말,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말, 똑같이 한 말, 강 건너 온 말, 메아리,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한 말, 믿는다는 말, 눈웃음 말, 퍼져가는 말, 혼자서 한 말, 등 여러 말의 실례가 제시되고 있다.   위의 시에서는 마지막 행에서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는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말에 대한 여러 정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론은 간략하다.   말의 종류는 ‘색깔’과 ‘맛’의 종류보다도 복잡하고 많은 것 같다. 위의 시를 발상의 전환을 하여 보면 어떨까? 혜안을 지닌 노시인의 눈이 아닌, 사춘기 소년의 시안으로 ‘말’에 대한 시를 썼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소년이 마음을 교환한 사랑하는 소녀에게 보내는 시라고 상상해 보라. 소년에게 ‘말’은 ‘믿음+신뢰+희망’이다. 말은 ‘호기심+친밀함+사랑’의 감정이다. 소년에게 있어서 말은 어른보다 천배, 만배 긍정적인 힘을 가질 것이다. 소년이 가진 ‘말’의 ‘상상력’과 ‘환타지’는 우주까지 뻗어나가리라. 그 시는 분명 긍정적인 시가 될 것이다.   어린이 때는 ‘눈빛 언어’도 호소력이 강하다. 그러나 청년기를 지나고 기성세대인 어른이 되면 ‘습관성’과 ‘의도성’이 과다 표출되어 ‘말’은 ‘신비주의’의 옷을 벗는다. ‘냉정’과 ‘배반’과 ‘모순’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폭력성’을 갖는다.   이오장 시를 읽으며 심도있는 자성의 질문을 해 본다. 말의 ‘매력’과 ‘마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이 ‘호기심’과 ‘매력’을 잃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538    君子三樂* / 우 원 호 댓글:  조회:787  추천:0  2018-12-24
君子三樂*     우 원 호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왕도王道를 바랐던 이천 년 전의 맹자孟子의 말씀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부모를 향한 효심과 형제간에 우애가 깊지 않음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버림이 두번째 즐거움이요   후학後學들 모두에게 존경尊敬받지 않는 삶을 사는 일이 세번째 즐거움이다   '오늘날의 군자君子는 자본가로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역사가들이 말할 것이므로……   *군자삼락君子三樂: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인 맹자(孟子 B.C. 372~B.C. 289)가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른 말로 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군자2 (君子)     [명사] 1.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2. 예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을 이르던 말. 3. 예전에, 아내가 자기 남편을 이르던 말. [유의어] 남편1, 현자1, 대인1     우원호 시인은 군자라는 말이 사라진 시대에, 군자를 언급하고 있다. 문학에서 ‘정치’나 ‘돈’을 언급하는 것은 고상한 시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 같아 터부시하는 주제다. 80년대 독재에 저항한 ‘인권운동’이 NGO 활동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그런데 우원호는  ‘시’에서 외면당하는 정치이야기와 ‘관념’의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륜’과 ‘사도’와 ‘사회문제’에 집중관심조명을 하고 있다. 패륜의 시대에 살고 있는 불쌍한 ‘시’, 우원호의 용기있는 ‘발언’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군자’라는 단어가 사양어가 된 것은, 현대문명사회에서 ‘군자’라는 존재가 사라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먼저 위에 제시한 ‘군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어질고 덕성과 학식이 높은 사람, 둘째 높은 벼슬을 한 사람, 셋째 남편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벼슬을 한 사람은 어질고 덕과 학식이 높다는 명제가 생긴다.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 예전에는 벼슬을 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 아내는 ‘군자의 자질과 조건’을 갖춘 남편과 살았다는 가설도 성립된다.  군자가 사라진 뒤에 ‘선비’라는 단어가 그 뒤를 이었다. ‘선비’라는 단어에는 ‘꼬장꼬장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 고집, 문학의 깊이를 가진 학식, 인간적 품위를 가진 인성’이 함의되어 있다.   현대는 선비라는 단어도 사라지고 ‘선생’이 난립한다. 모두 사장인 시대에 모두 선생이다. 좋은 일이다, 선생이 많으면 배움과 지식을 갈구하는 희망사회가 될 것이니까. 그러나 현대의 ‘선생’이라는 단어는 ‘컴퓨터 선생, 테니스 선생, 바이얼린 선생, 발레 선생, 미술 선생’ 등 기술적인 분업강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전에 그 단어는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권위를 가진 때도 있었다.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인성, 덕성, 지성’을 갖춘 선비정신을 가진 존경받는 사람을 지칭한 단어였다. 그러나 ‘경제’와 ‘문명’과 ‘자본’의 원리가 현대사회의 최우선 구성요소가 된 이후로 선생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되었다. 사립학교 교사 자리에 수천만원이 오가고, 강사와 교수 자리에 수억이 거래된다는 얘기가 신문지상에 올랐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가 수십억에 거래된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금권시대다.   물론, 핵가족 사회에서 이혼하지 않고 살려면 부모 형제와 독립하여 ‘아내’에게 충실하여야 한다. 처와 자식을 충실히 부양하는 가장이 되려면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제자를 좋은 대학에 입학을 많이 시켜야 명문고다. 물론 대학도 취업준비를 위한 수련장이다. 좋은 대학친구의 우정은 기관에 포진하여 나눠먹기식 공생공존을 한다.     우원호의 ‘무기교의 기교’ 시가 나른한 삼복더위에 한방 시원하게 펀치를 날린다. 잘 먹고 잘 살던 ‘시’가 주눅이 든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얼싸 반갑다고 껴안고 웃는다.
537    분꽃들 / 최서진 댓글:  조회:769  추천:0  2018-12-24
이선의 시 읽기- 최서진 분꽃들 최서진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 비로소 피어나는 분꽃들 엄마의 독백이 화단으로 흘러가 비를 맞는다 무거운 침묵이 꽃밭을 가득 메울 때 왼쪽으로 꺾이는 얼굴 엄마는 화단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엄마 가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 꽃일 뿐 꿈을 조절할 수 없어 목이 자랐고 비가 내리지 않는 오후에는 벌레처럼 서로를 갉아 먹었다 언니들은 풀처럼 빨리 자란다. 엄마를 닮아가기 위해 짙어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별들은 여러 각도에서 몸을 부딪쳐 왔다 나는 어두운 화단을 걸어 나가고 싶은 얼굴로 날마다 분명해진다 꽃잎이 모르는 단어처럼 흩어진다 쓸쓸한 화단 끝에 매달려 잘 발음되지 않던 꿈 풍경을 기억하던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질문처럼 쌓인다 언니들의 얼굴로 발음해 봐 다섯 시에 피는 배고픈 꽃 분꽃이 지는 쪽으로 여름과 저녁이 태어나고 나는 분꽃으로 중지 된다 최서진은 위의 시에서 새로운 패턴을 제시하며 자신의 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10연으로 구성된「분꽃들」은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신선한 감각적 자극을 준다. 그러나 연과 연들은 분리되지 않고 라는 대상을 ‘분꽃’으로 치환하여 연결시키고 있다.   위의 시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엄마의 독백, 분꽃   2연- 엄마, 화단   3연- 엄마 가지 마세요, 우리는 어린 꽃   4연- 서로를 갉아 먹었다   5연- 언니, 풀, 엄마를 닮아 짙어지고   6연-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7연- 나는 어두운 화단을 걸어나가고 싶다   8연- 꿈, 질문   9연- 언니들 얼굴, 배고픈 꽃   10연- 나는 분꽃으로 중지된다   로 이어지는 ‘가난’과 ‘분꽃냄새’는 멜로적 요소를 가지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할 만한 뻔한 가족사가 진부하지 않은 것은 시의 품격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묘사력과 사유,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주는 힘이다.  묘사-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1연 1행)  사유- ‘꿈을 조절할 수 없어 목이 자랐고’(4연 1행) ‘분꽃이 지는 쪽으로 여름과 저녁이 태어나고’(10연 1행)  진정성-‘비가 내리지 않는 오후에는 벌레처럼 서로를 갉아 먹었다’(4연 2행)  당위성- ‘나는 분꽃으로 중지 된다’(10연 2행)      객관화된 소설의 묘사기법을 사용한 피동적 고백체 문장도 눈길을 끈다.   ‘떨고 있는 새들의 늦은 오후가 풍금소리처럼 모인다/ 엄마의 독백이 화단으로 흘러가 비를 맞는다’(1연 1, 3행) ‘풍경을 기억하던 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질문처럼 쌓인다’(8연 2행)       위의 시는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를 잘 적용하였다. 그러나 문장들은 산만하지 않고 일맥상통하게 읽힌다. 그 이유는 복합 문장구성을 하고 있지만, 각 문장들이 객관화되었기 때문이다.
536    페르시안 인체신경총 / 김백겸 댓글:  조회:641  추천:0  2018-12-24
 페르시안 인체신경총                                   김백겸     페르시아 의사들이 온 몸을 해부해서 그려놓은 고 대의 인체신경지도를 보았다   노란 장기들과 파란 핏줄들을 배경으로   붉게 그린 신경들은 가슴을 발화점으로 피어오른 불꽃이었다   온 몸을 의식으로 채운 불꽃들은   몸을 용광로처럼 태워 그 빛을 사방으로 보내고 있 었다     빛이 닿는 범위가 나였다   나의 빛은 눈과 귀와 입과 항문과 정수리에서 닫히 고 매듭으로 꼬여 세계와 나의 분별을 만들어냈다   이 빛들이 매듭을 풀고 세계의 끝까지 실패의 명주 실처럼 풀려나가는 날   몇 억 광년 밖의 별들의 소식이 풀잎 같은 떨림으로 내 가슴에 전해지는 그 때   나는 곧 세계가 될 것이었다         김백겸의 『기호의 고고학』시집은 경전이다. 예언서다.   칼릴 지브란이 윤회하여 폭포수 아래서 다시 들려주는 외침이다. ‘물소리’와 뒤섞인 ‘진리의 소리’를, ‘듣는 자’가 ‘언어의 기호’를 가려내어 해독해야 한다.   ‘시’와 ‘부처’와 ‘태양’과 ‘인간’이 하나인 빛의 세계. ‘욕망’과 ‘육욕’과 ‘문명’이 하나의 DNA인 어둠의 세계. 작가는 신의 혜안으로 ‘인간현세’와 ‘내세’와 억만년 전 ‘전세’를 처럼 요약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작가의 의식은 항상 깨어 ‘온 몸을 의식으로 채운 불꽃들은’(1연 6행) ‘그 빛을 사방으로 보내고 있’(1연 7행)다.   ‘나’는 ‘빛’이다.(2연 1행)   ‘나’는 곧 ‘세계’다.(2연 8행)   작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신’의 입장으로 거대안목으로 시를 쓴다.     작가의 의식은 자연의 섭리를 관찰하고, 인간본질을 관찰한다. 자신을 법안으로 꿰뚫는다.  ‘나의 빛은 눈과 귀와 입과 항문과 정수리에서 닫히고/ 매듭으로 꼬여 세계와 나의 분별을 만들어냈다’(2연 2-3행) 작가가 말하는 ‘분별’은 ‘진리’를 득도한 상태다. ‘눈’은 혜안, 지식과 지혜다. ‘귀’는 ‘들어주는 마음’으로 임금의 백성을 향한 열린 마음과 연민이다. ‘항문’은 욕망이다. ‘항문’을 닫는 것은 ‘욕망의 절제’다. 욕심과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면 이미 ‘성인’이나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정수리’는 몸의 ‘중심’이다. 머리는 몸의 가장 윗부분, 이상과 현실을 중재하는 곳이다. 이 모든 이치를 ‘매듭으로 꼬’아 (2연 3행) 분별하는 ‘나’는 바로 신이다.   위의 시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빛’인 진리는 작가가 현실과 시에서 추구하는 테마다. “나”는 ‘데미안’이며, 부처며, 예수다. 작가의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예지는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스케일이 큰 예언서 같은 작품에서, 고대인들이 고인돌 앞에서 갖는 경건함을 느낀다.  
535    플라스티네이션 4 -조용한 증인 / 김해빈 댓글:  조회:693  추천:0  2018-12-24
플라스티네이션 4  -조용한 증인                                                  김해빈    빛을 삼켜버린 전시실   창백한 남자 그리고 나  거리는 1m도 되지 않았다    두근거리며 피를 내뿜던 심장과 날카롭던 시신경 그를 둘러싼 미세한 세포들  모두가 한 발 건너 조용한 증인으로 섰다    웃음이 빠져나간 텅 빈 두개골과 횡간막 사이  남자의 목소리는 납덩이로 굳어있다  어느 기억을 가리키는지 손끝은 하늘을 향하고  중추신경과 말초신경마저 끊어버린 몸짓은 완전한 균형이다    수만 번 손끝으로 요일과 날짜를 새던 그의 네트워크  쏟아지는 정보를 찾아 시신경보다 빠른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지도 몰라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      * 플라스티네이션: 인체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은 1977년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 박사에 의해서 처음 연구 개발되었다. 시체에서 수분과 지방을 깨끗이 제거하고 실리콘 고무 에폭시나 플라에스테르 합성수지 등을 주입해 통통하게 살아있는 듯 그 상태로 영구 보존하는 방법을 말한다.                 김해빈의 시는 구조화에 집중하고 있다. 1-5연의 시들이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객관화되어 있다. 또한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에 주목하여 보자. ‘사물’과 ‘사실’ 사이에 객관화된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1m 거리’(1연)방경 내에서 대치하고 있는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증언한다. 혹은 변명하고 싶은 것일까?   시인의 무의식은 ‘창백한 남자’(1연 2행)의 현존했던 삶을 재생시켜 구조화하고 있다. 그 남자가 살아있을 때의 실재적인 몸- 피, 심장, 세포(2연), 두개골, 횡간막, 중추신경, 말초신경(3연), 시신경(4연), 껍질(살갗), 근육을 상상력은 재현한다.   또한 그 남자의 생활도 복원해 본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는/ 손끝’(4연 1-2행)과 ‘자유에너지’(5연 1-2행)를 인지한다. 5연에서 화자인 ‘나’의 ‘플라스티네이션 남자’를 향한 욕망을 읽는다.     주검 앞에 껍질을 벗어 버린   그의 선홍빛 근육에서 자유에너지가 불끈 솟구친다’(5연 1-2행)      과학이 재현한 인물, 즉 ‘대상’에 대한 관찰과 관심은 시의 본질이다. 또한 죽은 남자를 향한 연구와 분석은 시인의 ‘대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다. 여기에 ‘욕망’과 ‘욕구’를 결합하여 주면 ‘시적 에너지’가 증폭된다. 비록 ‘주검’으로 변한 인간, 무생물화하여 단지 ‘사물’인 인간도 관심을 받으면 ‘생명력’과 ‘에너지’를 갖고 힘을 얻는다.   뼈대가 단단한 김해빈의 시를 읽으면 남성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리하지 않은 수사가 ‘현실’과 ‘현재성’을 강조하며, 생장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534    장자론壯者論 / 차영한 댓글:  조회:818  추천:0  2018-12-24
장자론壯者論   차영한     지리산에서 줄 없는 낚싯대로 떡갈나무 숲 가실거리는 파도 사이 농어를 낚고 있다 짙푸른 절정의 깊이에서 한없이 헤엄치는 물살 쪽으로 내던져 흔들리는 만큼이~나 휘어진 낚싯대를 힘차게 끌어당기는 좌사리, 치리섬들 산머루 같은 눈매로 달려온다. 가뭄에 탄 골짜기가 소낙비를 마시듯 얼큰한 내 술잔 안에서 파닥이는 지느러미 오호라 저것 봐 내뿜는 눈부신 꽃 비늘 튄다. 컥컥 미늘을 물어뜯는 욕망덩어리 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흥건한 땀방울 맺힌 생소금에 툭툭 떨어진다. 이것 봐 석쇠에 굽고 회를 치는 칼빛 웃음소리 내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는 새빨간 아가미 다시 짓누르는 하늘 한 자락 들썩이다가 갑자기 내 숨소리를 빼앗아 먼 산맥 굽이치게 파도 소리는 떡갈나무 숲 물고기 떼를 휘몰아 펄떡펄떡 뛰며 가로질러 헤엄치고 있다          위의 시는「장자론壯者論」이라는 제목과 시 내용에서 장자의 ‘이도관지以道觀之’의 범신론적 자연주의 향내가 물씬 풍긴다. 또한 ‘이미지의 극점’을 만난다. 시각과 청각과 미각을 동원하여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리산 단풍과 가랑잎이 바람에 쏠려 구르고, 떠다니는 모습을 로 이미지화하였다. ‘나’라는 화자는 무아지경의 풍경 속으로 감정이입 되어 무아지경이다. 시 제목과 ‘산’과 ‘나’와 ‘물고기떼’가 하나로 선경을 이룬 모습이 조화롭다.   차영한의「장자론壯者論」의 구조는 ‘지리산-나-나와 지리산’ 이라는 3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1부 1-10행(감상자 시점), 2부 11-15행(적극적 개입자 시점), 3부 16-19행(나와 자연의 합치)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차영한의 ‘장자론’은 장자의 ‘자연주의’에서 진일보하였다. ‘자연’을 향한 ‘나’의 적극적 개입을 주목하여 보자. ‘나’라는 주체는 식물성이 아니라 동물성이다. 생존과 번성을 위하여 약육강식을 하는 ‘욕망’ 덩어리다. ‘지리산 물고기 떼’ 이미지를 감상하는 모습도 적극적이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시적거리가 먼 ‘관찰자 시점’이 아니다. ‘입’으로 ‘먹음’으로써 더 직접적으로 자연에 개입한다. ‘생소금…, 석쇠에 굽고, 회를 치는’ (13-14행) 감상방법은 얼마나 감각적이고 육감적인가? 이보다 더 멋진 적극적인 자연감상 자세가 있을까?   3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풍경을 먹다가 평정심으로 돌아간다. 나를 자연에 풀어놓고 있다. ‘내 숨소리- 파도소리- 물고기 떼'가 합치된다.      짓누르는 하늘 한 자락 들썩이다가    갑자기 내 숨소리를 빼앗아 먼 산맥 굽이치게    파도 소리는 떡갈나무 숲 물고기 떼를 휘몰아    펄떡펄떡 뛰며 가로질러 헤엄치고 있다     차영한은 위의 시에서 이라는 제목에 맞는 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풍랑에 휘말려 독자도 함께 표류한다. 장자의 무아지경의 자연에 합치된 나. 이미지가 맛있다. 지리산을 꼭 한번 먹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533    무성의 입술 / 위상진 댓글:  조회:723  추천:0  2018-12-24
무성의 입술   위상진   석고상은 붉은 입술로 일렁거리는 말을 한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아무 말이나 좀’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진다 회색 피가 흘러나오는 제라늄 화분 그는 입술을 더듬어 본다 ‘좋은 말을 해본지가 오래 되었어’   낮에도 밤은 여러 번 찾아왔고 휘어지는 길을 따라 아침은 사라졌다 간호사들은 오늘 죽은 사람의 생일 케잌을 우물거린다 ‘나는 내 맘에 들고 싶어’   밧줄에 묶인 채 거꾸로 올라가는 간판 창밖의 검은 태양은 바닷물 색을 울컥 울컥 쏟아내고 간판이 있던 자리 공중에 걸린 둥지 하나 어린 새의 솜털이 묻어 있다   구름그림자를 덮어쓴 간판은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는다 ‘내가 벗어둔 집에게 인사를 한 적이 없어’   그는 유리창 위에 입술을 벙긋거린다 한 단어 한 단어 말의 입김이 번진다         필자가「무성의 입술」을 논평하는 이유는, 필자가 주장한 시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시론은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한 행에서 단어와 단어의 낯설게하기, 어절과 어절의 낯설게하기, 제목의 낯설게하기’를 완벽하게 실현하여, 자기 이름의 상표를 창조하여야 한다는 필자의 시론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또한 시를 쓸 때 ‘제목, 단어, 표현, 비유’에서 닮은 표현을 피하기 위한 고민을 필자도 한다. 누군가의 시에서 읽은 것을 ‘무의식적 표절’을 할까 두려워 새로운 ‘표현’을 버리기도 한다.   위상진 시인은 그럴 때 ‘인터넷 검색’을 하여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위상진 시인의 시 특징은 사동보다는 피동적 표현기법이 주조를 이룬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는 그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위의 시에서 6개의 연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며 ‘낯설게하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제목의 낯설게하기, 행 안에서의 단어의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그믐달 마돈나』에 실린 다른 작품들처럼, ‘한 연 내에 여러 개의 파생된 보조관념’이 등장한다. 부채살처럼 여러 개의 보조관념이 마디마디 퍼져 있다.      은 1980년대부터 양준호가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을 도용한 ‘단어 흩뿌리기’ 표현기법을 구사하여 ‘행과 행’,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를 이미 보여주었다. 그러나 위상진은 ‘객관화’와 ‘재해석’ 특징을 추가하였다.   또한 표현주의를 추구하지만, 감각적 미의식과 진정성이 엿보인다. 아래의 대사는 거짓이 아닌 참이다. 작가의 목소리든, 화자의 생각이든, 3인칭 타자의 무의식을 차용하였든, 진정성이 있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아무 말이나 좀’(1연)   ‘좋은 말을 해본지가 오래 되었어’(2연)   ‘나는 내 맘에 들고 싶어’(3연)   ‘내가 벗어둔 집에게 인사를 한 적이 없어’(5연)     자동기술기법으로 연과 연을 단절하고, 흐름을 끊어주지만, 객관화에 집중하였다. 또한 ‘제목’과 ‘마지막 끝연’의 ‘끝행’에서는 반드시 객관화를 실현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지나치게 집중한 ‘낯설게하기’가 산만하거나 복잡하거나, 통일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의적, 다의적 ‘표현주의’ 기법은 새로운 ‘심미적 미의식’을 만들고 있음에 주목한다.  
532    시와 섹스 / 김용오 댓글:  조회:764  추천:0  2018-12-24
시와 섹스   김용오   나에게 있어서의 시는 본능적으로 즐기는 섹스와 동일하다. 정갈한 저녁상을 물려놓고 감미로운 서정의 음악을 들으면 조금씩 발기하는 나의 남성. 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을 한순간 따뜻한 어둠 속에 엎드려 맛보는 알몸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의 섹스는 정신적으로 즐기는 시와 동일하다. 질척거리는 일상의 골목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조용히 앉아서 마시는 한잔의 블랙커피, 수도하는 선승처럼 불켜진 한밤의 집중의 침실에서 꼭 다문 침묵의 혀를 빨면 조금씩 밝아오는 영혼. 온몸을 끌어안고 뒤척이는 여자들의 신음소리나 부르르 흐느끼는 허벅지의 짜릿함을 한순간, 하얀 종이 위에 엎드려 느껴보는 언어의 정사. 나에게 있어서 시와 섹스는 서로 두 손 잡고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는 쾌락과 배설을 시의 효용성으로 정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배설이다”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Horace)― “시는 심미적 쾌락과 교훈을 준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다간 두 석학은 다르지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작년에 작고한 김용오 시인의 ‘성담론’을 화두로 ‘성’과 ‘시’의 상관관계를 논해보자.    물리적 배뇨작용과 ‘성’적 배설작용은 모두 카타르시스를 준다. 시에서 느끼는‘심미적 미의식’과 ‘감각적 흥분’도 카타르시스를 준다. 창녀와 연애를 하든, 수녀나 승려를 짝사랑하든 사랑의 본질은 같다. 호기심과 쾌감이다. 손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눈으로 만지는 쾌감인가?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담론 ‘시’가 성공하는 이유는 만유공통의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교묘하게 섹슈얼리즘을 은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시 쓰기’에 대한 ‘성적 환타지’는, 정절을 내세우며 음탕하게 숨어서 읽는 처럼 은밀한 쾌락의 극점이 있다. 발가벗은 시어들은 오감을 자극한다. 심미적 자극과 쾌감을 준다.   필자도 잘 생긴 육체보다는, 샤프한 지성에 오르가즘을 느낀다. 육체를 가진 이성보다, 자기중심적이고‘자기애’가 강한 시인들의 기질 탓일 것이다. 암수 한 몸의 ‘달팽이’처럼. ‘시 쓰기’는 자위행위의 고급스런 변형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강한 것을 아름답다고 정의한다. 힘은 아름다움이다. 고대 선사시대부터, 여자들은 동물과 싸워 먹이를 잘 구하는 사내를 추켜 세웠을 것이다. 힘은 어느 시대에나 삶의 근본이며 가장 큰 효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강렬한 물리적인 힘은, 무용가나 미스코리아처럼 자기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적이며 강렬하다. 배우도 자기 몸이 기업이다. 그 다음 부류가 손가락을 이용하는 미술가다. 그런데 시인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생각이 많다. 언어유희는 가장 추상적인 ‘생각놀이’다. 지치지도 않고 혼자 숨어서 논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면 당연히 육체가 약해진다.‘육체’가 죽고, ‘생각’을 키운다. 위의 시의 화자 ‘나’는 시를 쓰면서‘알몸의 정사’(9행)‘언어의 정사’(22행)를 맛본다.   미식가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찾아다니듯이, 시인은 ‘맛있는 언어’를 먹으려고 숲과 바다를 찾고, 바람과 비를 맞는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부족함이다. 결핍은 배고프다.‘욕구’를 숨기고 있다가, 가장 안전한 기회를 갈구한다. 그것이 혼자 노는 성이다. 아니, 사실은 ‘성’이 아니고 ‘성놀이’다. ‘유사 성행위’다.   관능과 성에 탐닉한 김용오 시인은 사실은 성에 가장 약한 남자였을 수도 있다. 강렬한 욕구는 결핍과 불만족에서 발기되기 때문이다.‘햇빛을 물고 빤짝거리는 나무들의 잎새나/ 빗물에 씻긴 푸른 산빛의 황홀’(6-7연) 은 거세된 가장 정갈한 유사 성행위다. 승려나 신부의 섹스와 같다. ‘욕구’와 ‘배설’이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같다.’(마지막 행) 갈등이 성욕을 자극한다. 지치지 않고 시에 흥분하게 한다.
531    나무의 외출 김용언 댓글:  조회:649  추천:0  2018-12-24
나무의 외출   김용언     달력 몇 장이 뜯겨져 나가고 시침 몇 개가 부러지고 드디어 초침까지 곤두박질 친 후 나무 꼭지에는 서너 개의 바람이 펄럭인다 외롭다는 건 나무가 나무 밖의 세상에 서 있을 때였다   여름이 농익을 무렵 화려하던 나무는 뱀의 허리처럼 구불거리고 드디어 가까운 길도 아득해진다   외출을 시작하려나 보다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몇 장의 마지막 메시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젠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을 아침 인사처럼 받아들일 모양이다   가을로 서 있는 나무 이미, 나무는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나무는 고정된 ‘장소’를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식물’이다. 그러나 나무가 고정된 ‘장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나무에게 ‘시간’이라는 절대상황을 부여하면 ‘움직임’을 시작한다. 「나무의 외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째, 위의 시는 1-4연에서 식물인 나무에게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수를 주어 나무의 ‘환경’과 ‘형태’를 바꾸고 있다.   1연 1-3행: ‘달력 몇 장이 뜯겨져 나가고/ 시침 몇 개가 부러지고/ 드디어 초침까지 곤두박질 친 후‘   2연 1행: ‘여름이 농익을 무렵’   3연 3행: ‘몇 장의 마지막 메시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4연 1행: ‘가을로 서 있는 나무’        둘째, 위의 시의 주제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4-6행:  ‘서너 개의 바람이 펄럭인다/ 외롭다/ 나무 밖의 세상에 서 있을 때’   2연 3행: ‘가까운 길도 아득해진다’   3연 4-5행: ‘시퍼렇게 날이 선 고독을/ 아침 인사처럼 받아들일 모양’   4연 2행: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셋째, 위의 시는 ‘겨울 —> 여름 —> 가을’로의 시간이동 과정에 따라 나뭇가지와 줄기는 자라 ‘장소이동’과 ‘형태변화‘를 동시에 진행한다. ‘시간’은 나무를 자라게 하고, 추위에 떨며, 나뭇잎을 떨어뜨리게 한다.    시인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간이동’은 ‘공간이동’을 유도하여, 운동감을 준다. 또한 위의 시는 상황만 제시하고 있을 뿐, 설명적이지 않다. 생의 허무와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나무는 나무 밖의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는 문장은 압권이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표현법은, 낯설고 직관적이고 아름답다.
530    사라지는 길 / 박소원 댓글:  조회:744  추천:0  2018-12-24
  사라지는 길     박소원     저 속까지 마를 대로 마른 단풍잎 계절 끝까지 각자 한 가지 색만 쓰고 있습니다   전깃줄 위로 빈 가지를 세우는 덩치 큰 나무 밑에서 나는 몇 권의 일기장을 불태웁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색만 쓰던 형은 결국 정신요양원으로 나는 멀리서 형을 보내는 길로 들어섭니다   바람이 붑니다 붉은 잎사귀들 솟구치는 불길 위로 뛰어내립니다 두툼한 내 일기들도 벌겋게 한 가지 색만 쓰며 사라집니다.           지하철에 걸린 시를 읽으며, 어떤 연령층이 읽어도 이해되는 시, 그러나 졸렬하거나 유치하지 않은 시, 진정성과 감동이 있는 시를 목표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박소원 시에서 대중과 시인이 꿈꾸는 정직하고 쉬운 언어로 쓴 감동적인 시의 요소를 본다, 거기다 사유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위의 시는 쉬운 생활어로 씌어졌다. 구성도 단일하다. 어조도 ‘―습니다’체의 고백적 문체가 담담하다. 복잡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시의 감정은 복잡하다. 화자와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형의 ‘인생’이 있다. 진정성과 깊이가 있다. 가족사가 아프다.   위의 시는 철저한 ‘사물시’다. 2연 ‘전깃줄 위로 빈 가지를 세우는/ 덩치 큰 나무 밑에서/ 나는 몇 권의 일기장을 불태웁니다.’ 부분을 눈여겨보자. ‘일기장을 불태운다’는 단순한 ‘그 사실’은 ‘정리한다, 청산한다. 잊는다. 버린다, 아프다’ 등 여러 ‘감정의 전이’를 파생시키며 연상작용을 한다.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1연과 4연에서 보여주는 ‘색’에 대한 ‘사유’도 힘 있다.     저 속까지 마를 대로 마른 단풍잎   계절 끝까지 각자 한 가지 색만 쓰고 있습니다(1연)     두툼한 내 일기들도   벌겋게 한 가지 색만 쓰며 사라집니다.(4연)     다음, 4연으로 구성된「사라지는 길」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의 중심어― 단풍잎, 색   2연의 중심어― 일기장을 불태우다   3연의 중심어― 형, 정신요양원   4연의 중심어― 바람, 붉은 잎사귀, 일기, 색     이 시의 중심어를 압축하면 ‘일기장-형-정신요양원-색’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소원 시인은 화자를 여성인 ‘언니’를 버리고 남성인 ‘형’으로 치환하였다. 상담심리에서는 ‘성’을 바꾸는 것을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해석하여 정신병 증후군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정신분석적 심리분석 시각으로 보면 ‘정신요양원’과 ‘형’은 밀접한 관계성을 가진다. 위의 시는  ‘설명적이지 않’다. 시시콜콜 ‘형’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았다. 시를 읽는 독자는 아픈 형을 상상력의 세계로 끌어들여, 소설보다 긴 스토리를 재구성하며 궁금해 할 것이다. 단절이 주는 극적인 효과다. 아직 다 타버려 재가 되기 전에, 일기장에 남아있는 곧 사라져버릴 ‘색’에 대한 비밀들을 들추어 읽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시는 가지치기를 할수록 선명해진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가족관계’의 ‘상처’를 시인은 홀로 꽃 피우려 애쓰고 있다.   박소원 시의 저력을 느낀다. ‘클로즈업’과 ‘가지치기’ 기법, 12행의 짧은 시가 주는 파장이 깊고 선명하다.
529    꽃을 위한 예언서 / 강영은 댓글:  조회:749  추천:0  2018-12-24
꽃을 위한 예언서                                                       강영은     초저녁별과 나 사이, 꽃잎 위를 기어가는 투구벌레의 등이 꼭짓점이다. 제 등이 꼭짓점인지 모르는 황금 갑옷이 반짝일 때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잎이 휘어진다.     곡선을 봉인한 날개 속에 죽음이 유지되기를 원할 뿐, 꽃잎을 덮고 있는 어둠을 보지 못한 당신은 에게해의 하늘을 건너 온 별빛이라고, 노래한다.     핀다는 것은 경배 받는 자이며 경멸 받는 자의 노래, 대지가 받아 적는 어둡거나 환한 문장이라는 걸, 나는 말하지 못했다.     순간의 영원 같은 꽃의 화엄에 양 날개를 묻은 투구벌레처럼 당신은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있나,     사랑에 대한 최초의 예언서는 알지 못하지만 삼각형의 문장을 접는 당신의 입속으로 붉은 모가지가 툭, 떨어진다.     곡선으로 피었다 곡선으로 지는 꽃,     태양의 문신을 몸에 새긴 투구벌레는 검게 빛나는 도리아식 기둥을 숭배할지 모르지만 꽃의 신전을 삼킨 당신을 나는 지평선이라 부른다.    * 2011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작품.       ‘꽃’을 노래한 시는 비유와 상징어로 이루어진다. ‘꽃은 ‘사랑’이다‘ 라는 등식을 대입한다면, 꽃은 시의 영원한 ‘은어’다. 위의 시의 ‘꽃’은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표출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자동기술기법의 예리한 문장력으로 형상화하였다.   위의 시의 구조를 분석하여 보자. 먼저 각 연의 중심어를 살펴보자.   1연- 별, 나, 꽃, 꼭짓점, 투구벌레, 휘어지다   2연- 곡선, 봉인, 죽음, 당신, 어둠, 별빛   3연- 핀다, 경배, 경멸, 어둠, 환함   4연- 순간, 영원, 꽃의 화엄, 투구벌레, 당신, 영원한 침묵   5연- 사랑, 예언서, 삼각형, 당신 입, 붉은 모가지   6연- 곡선, 피다, 지다, 꽃   7연- 태양, 문신, 숭배, 신전, 당신 지평선   위의 시 1-7연의 문장을 분석하여 보면, 제목 ‘꽃을 위한 예언서’는 ‘사랑에 대한 예언서’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시작, 행위, 배반, 소멸’까지 사랑의 모든 과정을 ‘7연’의 짧은 시 속에 완전하게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 놀랍다. 지금까지의 진부한 사랑론이 아니다. 구질구질 설명적이지도 않다. 사물이 말하게 하는 ‘표현주의’ ‘사물시’다. 사랑의 ‘상징성’과 ‘의미화’를 실현하며, ‘객관화’까지 실현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 다른 구조는 반어적 표현법이다. 반어적인 사랑의 본질을 관통하였다.   1연- 피다, 지다/ 2연- 어둠, 빛/ 3연- 경배, 경멸, 어둠과 빛/ 4연- 순간, 영원/ 6연- 피다, 지다/ 7연- 태양, 지평선      강영은의 시는 위대한 다. 구조와 표현, 철학이 있다. 사랑의 배반과 절정, 소멸을 다루면서도 대상을 향한 저주와 원망, 분노가 없다. 감각적 미의식이 객관화되었다. 각 연들은 ‘중의적 2중구조’로 표현의 극치를 이루며 연결되었다.  
528    꽃들은 아직도 춥다 / 박소향 댓글:  조회:698  추천:0  2018-12-24
꽃들은 아직도 춥다   박소향   흘러도 흘러도 누가 뭐랄 것 없는 새벽 강에서 꽃들의 떨리는 입술을 만났다 언제나 먼저 다가서게 하는 꽃들의 눈을 보았다   가끔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으로 서 있기도 하다가 조용히 제 이름을 내려놓는다   꽃들은 저마다 제 몫을 다하여 삶을 누리다 간다 그러나 잊히는 것은 아니리 그 어디에 향기로 남아 문득 바람으로 바다로 섬으로 울음을 참았으리   보라 저 만발한 들에 띠를 두른 꽃들이 종종걸음으로 기어코 볓빛 하나 따라 나선다 질러가던 바람도 배고픈 달빛으로 누웠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박소향의 전원시는 겸손하고 따뜻하다. ‘그대, 너’는 ‘자연, 신, 님, 절대자’로 치환하면 의미가 증폭된다. 생을 터득한 지혜자의 눈빛이 고요하다. 맑은 신앙과 명상 뒤에 체득한 소박함이다.    전원생활을 하며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전원시집’ 한 권 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일찍 밭에서 삽질을 해 본 시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안다. 자연이 주는 힘은 단순함이다. 먹고 자고 땅 파고, 벌레 잡고 풀 베고.   위의 시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버림의 미학’이 있다. 꽃처럼 귀하게 대상을 존중하는 ‘존재의 미학’이 있다. 춥고 배고픈 날의 가난을 향한 ‘그리움’이 있다. 꽃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향내를 가리어 내는 ‘소박한 정열’이 있다. 위의 시는 마지막 연이 이 시의 주제어다.     꽃들은 아직도 춥다     생의 ‘허기, 욕망, 열정, 좌절, 인내, 희망…’ 여러 감정과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한 행의 시어는 어떤 ‘관념’도 성립시킬 수 있는 무한한 ‘확장적 의미어’ 구절이다. 이 짧은 시어 한 구절이 긴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27    詩 / 박수현 댓글:  조회:703  추천:0  2018-12-24
詩 박수현 당신은 뒷골목 담배가게 한켠에서 나를 훔쳐보는 치한 온 몸을 훑는 눈길에 내 피돌기는 화들짝 빨라지지 당신은 상한 통조림에서 뽑아낸 신경독 이마며 눈가의 주름 다림질하듯 펴준다며 반평생 나를 홀리지 당신은 나의 배후가 된 저녁 종소리 세상 가장 구석진 곳까지 따라온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시인과 詩(시)는 어떤 관계일까? ‘시 쓰기’에 대한 ‘시’작품을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편쯤은 써 보았을 것이다. 또한 아직 못 써 보았다면, 시인 자신이 시를 쓰면서 체험한 나름의 시론에 입각한 감각적인 ‘시’를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시인과 시는 천형의 무속인과 영매처럼 ‘운명적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詩(시)와 설레는 연애질을 하든, 중독증에 걸렸든, 집착 증후군을 앓든 간에 스스로 행복하여 택한 천형임에 분명하다. 김기림에게 어느 시인이 “그 나이에도 아직도 철이 안 났느냐?”고 놀렸듯이, 시는 어린 마음에서 싹이 튼다. 늙고 병든 마음에서는 시의 싹이 트지 않는다. 아직 덜 여물고 약한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시가 발화한다.   시인은 홀린 듯 평생을 시에 애착을 갖는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신경쇠약에 걸릴 지도 모른다. 릴케는 ‘젊은이여, 잠 안 오는 밤에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밤’에 시를 쓰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프로이드는 ‘사회화에 실패하여 부적응을 겪는 사람이 정신적 고통과 갈등을 예술로 ‘승화’하여 표현한 것이 ‘시’라고 하였다. 독자가 작가의 사회화의 부조화로 인한 내면의 상처에 공감하는 과정을 ‘감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만약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을까?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황홀한 마법의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무당이 공수를 받듯, 시인은 영감을 받아 언어의 직조를 짠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돈이 적게 드는 예술행위다. ‘가난한 시인’이란 말은 훈장처럼 명예롭게 현재까지 전수되어 오고 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가장 직접적이고 싸게 비용이 지불되는 ‘자가 정신(정서)치료’ 수단이다.   위의 3연 3행처럼 시는 ‘불길하고도 황홀한 呪文’임에 분명하다.   나는 당신의 캄캄한 입술   온갖 체위로 서로 더듬다가   한 백년쯤 깊디깊은 묘혈 속에   나, 머리채 잡힌 채 매장되고 싶지   박수현의 시를 읽고, 위의 몇 가지 시론을 전개해 보았다. 성실하게 묵묵히 시만 쓴 박수현 시인에게도 시의 끼가 보인다.
526    철쭉나무 그늘 / 김선진 댓글:  조회:707  추천:0  2018-12-24
철쭉나무 그늘                                                                                      김선진                                                                             장맛비 바삐 오는 축축한 발걸음 소리                   이른 아침, 베란다 건너 철쭉나무 밑 음습한 그늘 속에서 화다닥, 놀란 만삭의 길 고양이 얼결에 줄줄이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아침나절 까치 울음소리   몸을 푼 철쭉나무 그늘을 벗어나 측백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뜨거운 여름, 하오 고단한 산후조리   꼬물꼬물 다섯 새끼들 축 늘어진 어미 배를 딛고 젖꼭지를 찾느라 분주하다 어미는 마음껏 몸을 부려두고 가슴을 쭈욱 펴고 젖꼭지를 새끼 쪽으로 밀어준다   아무도 떼어내지 못할 젖꼭지   채 눈도 뜨지 못하는 새끼를 종일 핥더니 오늘, 퍼붓는 폭우 뒤에 행방 묘연   어디로들 갔나,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시인의 길고양이를 보는 시선이 나른하고 길다, 따뜻하다.     우장산 공원 영산홍나무 밑에도 세 마리 새끼고양이가 살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어둠을 사랑하는 족속들이다. 의자 밑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숨어버린 아기같다. 사람들에겐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걸 모르는 걸까?   화려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깜짝 놀라 새끼를 주루룩 낳는 길고양이 모습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우습고 재미있고 측은하고 애틋하고 처절하고 믿음직스럽고 아련하고 애잔한   ‘새끼를 낳는다’는 단순한 ‘사실’이 왜 이렇게 감동스러울까?   사실적이 주는 힘이다. 명징하고 철학적이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순간적으로 포착한 진실은 감동의 파장이 길다.   가슴을 쭉 펴고 젖꼭지를 내어주는 어미 고양이의 자세가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절망의 끝에서 태어나는 희망처럼. 눈물나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비쩍 말라 비실비실 말라갈지라도 제 새끼를 잘 거두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섯 마리나 키우려면 어미 길고양이는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 거다. 요즘 음식물 분리수거로 먹을 게 없는데.   시인의 궁금증은 몇 날이고 고양이를 눈으로 찾고, 관찰하고, 지켜볼 것이다. 더 마음이 내키면 생선 몇 마리 넌지시 건널지도 모를 일. 결국 데려다 안방에서 기를지도 모를 일.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위의 시 8연은 늘 고양이를 궁금해 하는 ‘철쭉나무 그늘’에게 슬며시 시인의 마음을 실어놓은 것. 시인의 마음이 자못 어떠해야 하며, 시의 눈은 자못 어떠해야 하는지 이 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웅변하지 않고 넌지시. 은근하게. 시인의 성격대로. 무기교의 극치다.
525    불꽃나무 한 그루 안차애 댓글:  조회:824  추천:0  2018-12-24
불꽃나무 한 그루   안차애   마이크로 월드 잡지에 찍어 논 뇌동맥 칼라 사진을 보고서야 누구나 자기의 하늘이 꽉 차도록  가지 많은 나무 한 그루씩 키운다는 걸 알았다    이글이글 타는 용광로 쇳물빛 혈관이 위로위로 불꽃 날름대며 타오르고 타오르다 굽이치며 굽이치다 제 몸을 터뜨려 새 가지를 내면서 불타는 나무 한 그루로 자라고 있었다   사랑이야! 소리치며 힘차게 뻗어가던 가지 하나가 슬픔인걸,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큰 가지에 눌려 휘청 구부러진다 휘어지며 생긴 작은 매듭 하나, 둘, 셋...... 종양처럼 나비처럼 열매처럼 굽이굽이 맺혀있다 신기하기도 하지 엉겨도 끊기지 않고 휘어져도 꺾이지 않은 나무 가지들의  저 먼 끝에선 푸른 노을이 피어오르고.   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  더 붉게 무너져오는 네 슬픔을 휘감아 블루마블,  둥그런 천구에 푸른 별빛으로 연신 스며들고 있다 청남빛 둥근 세상 한 귀퉁이로 기어이 타오르고 있다    뇌혈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뇌관이 목에서 머리꼭대기로 불꽃처럼 마구마구 솟구치고, 양쪽 귀 옆에서도 마구마구 솟구치고, 정수리쪽으로 뻗은 빨간 뇌혈관 사진을 보며 놀란 적이 있다. 위의 시처럼 정말 한 그루 ‘불꽃나무’였다.     안차애의 시는 ‘빠르다, 붉다, 굵다. 달린다’   재해석된 문장들이 급박하게 밀려드는 물살처럼 솔직하다      사랑이야!   소리치며 힘차게 뻗어가던 가지 하나가   슬픔인걸,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큰 가지에 눌려 휘청 구부러진다   휘어지며 생긴 작은 매듭 하나, 둘, 셋......   종양처럼 나비처럼 열매처럼 굽이굽이 맺혀있다     위의 시 3연 1-6행은 생을 단막극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희망이 절망의 전환점이 되는 사랑의 꺾은선 그래프.  ‘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 더 붉게 무너져오는 네 슬픔을 휘감아/ 블루마블,’로 부딪치고 상처입는 사랑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안차애의 시는 급박한 삶의 현장을 스케치한다.‘붉게 독 오른 내 사랑이’(4연 1행)에서와 같이‘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현재의 ‘나’를 등장시켜 삶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강조한다.   안차애 시를 만나면 누구나 창자를 모두 꺼집어내어 속내생각을 시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같다. 이내 잠재된 생각까지 들킬 것 같다. 재해석된 문장들은 화끈하고 솔직하게 다가오고, 시인에게 생의 화두를 화끈하고 솔직하게 풀어놓어야 할 것 같은 ‘충동감’을 느낀다.  
524    보자기 / 김유선 댓글:  조회:711  추천:0  2018-12-24
보자기   김유선     보자기는 싸기 위해 비어있다 감싸주기 위해 종일을 비워놓는 그녀 온종일을 기다려서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     김유선의 시를 읽으면 들국화 가득 핀 들판에 서서, 별을 보며 심호흡을 하는 소녀의 싱싱한 다리가 생각난다. 그의 시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겉치레가 없다. 건강하고 씩씩한 힘이 있다. 김유선의 손이 닿으면 관념도 아름다운 꽃이 된다.   김유선 시의 관념은 인간과 인간성 회복이다. 그 관념은 사람의 향기를 품고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목적성과 시인이 좋아하는 표현주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시인이다. 위의 시도 지하철역에 전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시다. 또한 안방 침실 위에 걸어 놓고 외우고 싶은 시다. 치솟는 가슴속 불길을 다독이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하얀 손. 다소곳한 손.     도망치고 싶은 주둥이 긴 길도(6행)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는 그녀.(7행)    위의 시는 ‘여백과 압축, 사유의 사다리 오르기 관점’으로 그녀의 삶을 펼쳐놓고 있다. 위의 시 6-7행 두 줄은 대하드라마보다 긴 스토리를 함축하고 있다. 재해석된 짧은 문장, 짧은 행, 짧은 여백의 공간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상처. 흰 치마, 흰 고무신 내 어머니들의 삶이.   나무 사다리를 꼭 붙들고 밑을 내려다보지 않고, 위로만 올라가는 위기의 삶을 살아낸 여인의 도전이 보인다. 과정을 포기하고 자식을 버리고 이혼하였더라면, 오늘의 ‘나’와 ‘우리’는 없다. ‘여자’보다 위대한 ‘어머니’를 선택한 그녀. 오늘 과정을 포기한 여자는 내일의 결과(열매)를 알 수 없다. 흔들리는 사다리 위에서 얼마나 절망하였을 것인가? 어지러움과 위기를 견딘, 그 종착지에는 아름다운 박꽃이 별빛에 반짝일 터. 하얀 박덩이가 어서 따가라고 넌지시 말해 줄 터.     찌든 감정도 더러운 시간도(5행)   무엇이든 감싸주는 그녀(4행)   시인의 자서전을 읽는 것처럼 경건하게, ‘네 귀퉁이 아귀 맞춰 꽃잎으로 묶은 그녀의 보자기’를 펼쳐본다. 긴장되는 손. 눈. 마음.   아귀가 딱 맞는 아름다운 마음꽃 보자기.
523    저수지에 빠진 의자 / 유종인 댓글:  조회:697  추천:0  2018-12-24
저수지에 빠진 의자   유종인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 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르는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 그림자를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시’의 의자에 앉은 ‘사유’의 물살     ‘저수지에 빠진 처녀’ 이야기라면, 달콤한 사랑과 배반이 흥미를 끌 것이다.   ‘저수지에 빠진 남자’ 이야기라면, 실직의 고달픔, 가장의 비애가 출렁일 것이다.   ‘저수지에 빠진 할머니’ 이야기라면, 자식의 짐이 되기 싫어 택한 죽음의 방법으로 수면제보다 물이 더 안전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뜬금없이 ‘저수지에 빠진 의자’가 주인공이다?   유종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저수지에 둥둥 떠다니는 보잘 것 없는 의자에 집중하고 있다.  1. 의자는 다리가 부러졌다  2. 의자는 물속에 빠져있다   저수지라는 갇힌 공간에서, 다리가 부러진 의자는 헤엄을 쳐서 저수지를 벗어날 수도 없다.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갈 힘도 없다. 그러나 평생 남의 엉덩이만 받아주던 의자는 누군가의 버팀목이었다. 누군가의 의지처였다. 지금, 다리가 부러진 의자는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양수같은 저수지에 첨벙 뛰어들어 한 많은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누군가의 뒤에서만 존재하던 다리병신 의자는 누워서 편히 쉬고 싶은데 편히 죽을 수도 없다. 그 힘없는 절름발이 의자에게 ‘물줄기가 기대고, 산 그림자가 앉고, 물고기들이 둥지로 삼으려 모여’든다. ‘제 울음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5연 1-2행)게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이 있다. 죽음 이후에도 끝내지 못한 의자의 삶이 있다. 하늘과 땅, 물과 물고기들을 의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아니 이미 죽었는데), 죽음 이후에도 부양하고 있다.   아니, 의자는 영원히 타인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능력자로, 긍정의 힘으로 해석하여야 할까?   ‘의자’는 많은 시인들이 사랑한 시적 대상이다. 관념적 의자, 사물의 의자, 바닷가에 버려진 의자, 공사장에 버려진 의자, 삐걱거리는 의자, 필자의 ‘빨간 손바닥의자’까지. 그러나…   유종인의 ‘의자’는 가장 성스러운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사유하는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봉사하는 의자다   유종인의 ‘의자’는 유종인 자신이다   유종인의 ‘의자’는 유종인의 삶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모든 우주와 자연, 인간을 앉히고도 넉넉한 그의 인품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질 것이다.     ‘시’의 의자에 앉은 ‘사유’의 물살이 시원하다.   연과 연 사이, 행과 행 사이   찌든 생활의 때를 말끔하게 씻어내보자.  
522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 강인한 댓글:  조회:753  추천:0  2018-12-24
시가 있는 마을- 강인한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강인한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초보에게 딱 맞는 체리핑크는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지요 십 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 사십 대 아저씨가 뒷문으로 들어와 찾을 때도 있어요.   육질 좋은 선홍색의 연애는 오후 두 시 이후에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와요. 구릿빛 그을린 사내가 옆구리에 낀 서핑보드 질척거리는 파도 사이 생크림 같은 흰 거품은 덤이지요.   아무래도 못 잊는 블루 그중에서도 뒷맛이 아련해 다시 찾는 코발트블루는 땅거미 질 무렵 산책로에 숨었다가 뛰쳐나오기도 하지만요.   가장 멋들어진 연애는 한밤의 트라이앵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라지는 삼각관계로 구워내 당신의 눈물에 찍어먹는 간간한 마늘빵 그 맛이지요.       강인한의 시는 두 부류로 나뉜다. 건조하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재해석된 사회 고발성 시와 부드러운 키스처럼 달콤하지만, 선명하고 이성적인 서정시로 분류된다. 굳이 후자의 시를 선택하여 사랑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금은 밤 11시 반, 추운 어둠의 계절 속에 홀로 서서, 사랑을 갈구하며 인터넷 배에 매달려 표류하는, 현대인이라 불리는 족속으로 살고 있는 ‘나’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함이다.   2.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무러면 어때 사랑시대, 급하게 싼값에 포장되어 각 가정으로 배달되는 택배사랑을 매일 받는데도, 이 기쁜 사실을 망각하고 착각하여 슬픈 사랑의 주인공인양 ‘나’를 거듭 ‘실연자’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3. 달리, 더 자세히, 부연설명하자면, 사랑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외롭냐는 거다? 왜 ‘너’가 바로 ‘나’ 옆에 꼭 붙어 있는데 왜 이리 불안한가? 묻고 싶기 때문이다.   4. 그러나, 또한, 그리고, 그러면서,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불륜 드라마 몇 편을 매일 제작하는. 아직도 진정성있는 진지한 사랑을 기다리는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정된 결말의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5. 그런데 오늘 ‘나’는 텔레비전 주말 연속극에 흥분하여, 수목 드라마, 화목 드라마, ‘다시보기’ 클릭 매일 연속극 클릭.      아직 늙지 않은 이성을 억누르고, 감정을 부추기는 몽매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마늘빵 사랑도 놓쳐버린 상실의 주인공이라 시인하기 때문이다.     강인한이 해석한 현대인의 사랑 색깔은 핑크, 체리핑크, 선홍색, 블루(코발트 블루) 네 가지다. 강인한이 명명한 사랑의 맛은 민트향, 케잌맛, 서핑보드, 흰 거품, 눈물 젖은 마늘빵 맛이다. 수만 가지 사람의 수만큼, 아니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사랑을 강인한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하였다.   1. 10대- 첫사랑, 민트향   2. 20대- 육체의 사랑, 체리핑크(때늦은 중년의 불륜 포함)   3. 40대- 선홍색, 위험한 데미지의 사랑(첫사랑을 찾아나섰다가 패가망신함)   4. 50대- 사랑과 전쟁 드라마의 주연배우,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 자신이 되고 만다.   강인한의 사랑 시는 기지와 재치, 예리함 위에 올려놓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상큼한 초콜릿 맛이다.      사랑에 대하여… 논문을 쓰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라면 서울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 들렸다가 아프리카까지 가도 끝나지 않을 거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특급사랑일 테니까.   사랑아, 너를 경외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종족보존이라는 절대절명의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여 왔구나. 세상에 불륜과 거짓을 다 제거하고 순수사랑만 남긴다면, 아마 지구는 이미 멸종하고 말았으리라.   어떤 색깔이든 사랑이란 이름이 붙은 것들을 존경한다.   거짓사랑, 배반의 사랑, 미련의 사랑, 아첨의 사랑, 그 외 모든 사랑이란 이름들에 박수를 보낸다. 모태 솔로들이 자랑스레 ‘짝’이란 프로에 나와 공공연히 시위를 벌이는 이 살벌발칙한 시대에. 풍요하여 빈곤한 사랑을 위하여! 건배를 들자.     질문한다. 강인한 시인의 사랑은 지금 몇 시쯤일까? 그의 사랑시간 계산법은? 시인의 사랑 감정계산은? 지금… (컨닝하여 본 결과)아직 진행 중…행복. 젊고 건강하다. 아직도 살아있는 시인의 사랑을 위하여…건배! 짝짝짝,  
521    구름 위의 발자국 신현락 댓글:  조회:636  추천:0  2018-12-24
시가 있는 마을- 신현락 구름 위의 발자국 신현락 나비는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새는 죽어서 구름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아무도 꽃잎의 발자국을 보지 못 한다 꽃잎이 지고 나비의 날개는 비에 젖는다 나비를 비애의 그림자라고 명명하는 건 당신 몫이겠으나 여기부터는 구름의 영역이다 당신은 꽃잎을 밟으며 꽃잠에 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구름의 문장을 해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름이 하늘색을 지우는 건 잠깐이다 한때 나는 구름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나 새들만이 그 너머로 날아갔음을 안다 꽃잎 위에 비 내리고 어제가 오늘이 되었다 시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는 죽은 새를 들고 구름 위의 발자국을 맞히는 신궁을 기다린다           환상과 직관의 모자이크 액자 '나비'를 A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꽃’을 B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구름’을 C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새’를 D 이미지라고 명명하여 보자 신현락의「구름 위의 발자국」은 제목처럼 가볍고, 보드라운 A, B, C, D 이미지들의 모자이크다.  ‘나비, 꽃, 구름, 새’는 ‘가볍다’는 공통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가벼운 ‘집합 이미지’들은 자칫 공상으로 흐르기 쉬우며, 표현주의와 감상주의로 흐르기 쉽다. 그런데 위의 시는 깃털처럼 가볍게 단어를 터치하면서도 시의 뿌리가 단단하고 깊다. 그 힘은 사물성에서 출발한다. 사물에 입힌 사유의 힘이다. 또한 ‘사물’에 행동과 행위를 줌으로써 ‘동적 이미지’로 ‘사실성’을 강화하고 있다.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나비의 날개는 비에 젖는다 꽃잠에 들 구름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 그 너머로 날아갔 비 내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는 죽은 새를 들고 발자국을 맞히는 신궁을 기다린다 위의 밑줄 친 행위를 주도하는 문장들은 ‘공상’과 ‘상상’의 시적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좋은 비유는 관념보다 더 깊은 확장된 관념을 생산한다. ‘사물’과 ‘사실’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시적 논리를 강하게 한다. 환상과 직관, 죽음과 현실, 과거와 현재, 상상과 이성, 과거와 미래가 한 공간에서 반짝이는 복합그림의 선명한 이미지액자가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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