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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이미지 연상기법을 통한 동심적 상상력의 확대   -박방희 동시집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의 시세계-     김관식             1.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 현대동시는 그 출발이 동요동시 형식에서부터다. 운율과 리듬이라는 음악적 요소를 바탕으로 노래로 동심에 접근하는 동요로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다가 어린이의 동심을 노래보다는 현대시의 경향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회화적인 접근으로 방향이 전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시는 언어의 리듬을 중심으로 한 음악적인 요소와 이미지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회화적인 요소, 그리고 시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한 의미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동심으로 표현되는 게 이상적인 동시라고 보겠다. 동시든 시든 간에 참신한 은유구조로 텍스트화해야 언어의 내포기능을 통해 상상력을 환기시켜 줄 좋은 동시의 틀을 갖추게 된다. 짧은 언어로 정서를 환기시키고 시적 대상의 사물을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보기보다는 ‘낯설게 하기’작업으로 상상력을 증폭시켜 주는 동시가 바람직한 동시라고 하겠다. 동시의 표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시적 대상의 사물에 대한 의인화 접근법이다. 모든 사물을 물활론적으로 보는 동심의 세계를 시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의인화 표현이 참신해야 정서를 환기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동시집을 발간한 박방희 시인의 시가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을 의인화 접근을 시도하여 참신한 은유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수작의 동시들이다.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라는 시집은 제목부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참신한 이미지 연상기법을 통한 동심적 상상력의 확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란 “낯선 이름의 전의”라고 했다. ‘낯선’이라는 낱말은 ‘또 다른 사실을 나타내거나 하나의 다른 사실에 속함을 뜻하는 말로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일탈을 의미하기도 하며, 전의란 유(類)에서 종(種)으로 종에서 유로,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 방식으로 일어나는 유별이라는 닮음의 의미와 다른 낱말로 대체시키는 유비 전의를 포함하는 낱말이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사학은 물론 시 쓰기에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왔다. 리콰르와 그 밖의 많은 학자들과 시인들에 의해 은유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수많은 시인들이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누가 얼마나 참신한 은유로 사물을 표현해내느냐의 문제가 바로 시를 잘 쓰느냐 못 쓰냐를 변별하는 척도가 된다. 사물의 새로운 발견은 바로 은유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적인 발상과 사고를 통해 언어로 표현된 참신한 동시가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다. 정어리가 바다를 끌고 왔다는 놀랍게 과장된 발상은 은유적으로 사물을 바라본 데서 파생된 상상의 세계이다. “정어리 통조림”이라는 시적 대상물을 보고 상상해서 언어로 통조림한 시다.         비좁고 꽉 막힌 통 속으로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   -『정어리 통조림』전문-           19자의 짧은 언어로 『정어리 통조림』속의 정어리가 바다를 끌고 왔다는 생각이 재미있고 과장되었으나 공감을 일으킨다. 이 시가 바로 시집을 여는 시다. 여는 시가 참신하고 호기심을 끌기 때문에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 또한 여타의 시 또한 참신성이 확실하다. 4부로 짜인 46편의 시 모두가 시적 대상을 의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각 부의 제목만 보아도 신선하다. 『산의 귀가 닳는다』, 『새의 문자』, 『졸음의 무게』, 『따로따로 섬이다』 제4부의 표제들이다. 은유적인 신선한 시어가 참신성을 증명해준다.          졸졸졸졸   졸졸졸졸   ------   산허리를   감아 도는   물소리에   산의 귀가   다 닿는다.   -『산의 귀』』전문-           산을 인체에 비유하여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 한 물소리를 듣는 산의 귀, 산의 의인화가 빚어낸 은유다. 참신하고 새롭다. 그의 시의 시적대상은 항상 역동적이다. 움직인다.          조약돌에서   돌돌돌   소리가 난다.         수만 년   닳고 닳으며   스며든 물소리         돌돌돌   돌 속에서   흐르고 있다.   -『조약돌』전문-           조약돌까지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생물인 조약돌에 생명을 불어넣어 조약돌이 소리를 내고 흐르기까지 한다는 발상은 냇가에 흐르는 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속에 들여다보이는 조약돌까지 흐르고 있는 생명의 역동성까지 표현한 수작이다. 박방희 시인의 눈은 예리하다. 그리고 참신한 것을 볼 줄 아는 시인다운 눈이다. 냇가에 흐르는 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약돌 속의 물 흐름까지 감지하고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기 때문이다. 『징검돌』에서 부처님을 보기도 하고, 『목련나무』에서 구름 방을 보기도 하고, 『봄』에서 개구리가 봄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본다. 또한 『별』에서 금단추를 보고, 『섣달』에서 늙은 감나무에서 까치밥을 통해 식은 밥을 보는 눈은 시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시인의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끌어내 보여준다.         찍찍, 찌익, 찍   이 가지 저 가지   이 나무 저 나무에서   문자를 주고받는 새들   저들끼리 눈 맞추며   고갯짓 까닥까닥   시시덕거리다가   놀러 가고   군것질하러 가고   게임하러 간다.   -『새들의 문자』전문-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들의 모습을 어린이의 세계로 그려낸 역동적인 시로 그 모습을 『새들의 문자』로 시각화해내고 있다.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압축해내는 시의 참신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디지털시대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 오늘의 시대 어린이들의 모습을 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을 통해 보고 있다. 그의 시편 전반에 참신한 은유와 의인화 표현이 담겨있는 시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그의 참신한 은유를 예를 든다면, 『매미 허물』=배냇저고리, 『거미집』= 하늘의 입, 『푸른 자』=하늘을 재는 대나무, 『기린의 밥상』=긴 목, 『기러기』=하늘에 쓴 글씨 등등 모두 참신성이 돋보인다.          뭐라 뭐라 해 쌓아도 세상에 무거운 건         눈 위로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지요.         스르르   눈꺼풀을 닫치며         목까지   툭!   툭!   -『 졸음의 무게』전문-           잠이 올 때 눈꺼풀이 감기고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상황을 『졸음의 무게』로 압축한 은유적 표현은 참신하다. 그의 시는 시의 제목 자체가 어떠한 사물과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은유 그 자체이다. 따라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도대체 무슨 시일까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시를 읽지 않으면 안 될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상상력을 유발하는 시제로 인해 시를 스스로 읽어야겠다는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오늘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강한 흡인력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줄 좋은 동시가 박방희의 동시다.      『육지에도 섬이 있다 』는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산짐승들이 이리 저리 오가지 못하게 고속도로가 생긴 오늘날의 육지 모습을 섬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도시문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고속도로를 만들고, 각종 첨단미디어 매체를 만들어냈지만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섬으로 전락되고만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바다도   배를   띄우면   길이 된다.   -『배』전문-           바다가 섬을 만들 듯 섬과 섬을 오고 가려면 배가 필요하다. 사람사이에 단절을 몰고온 바다에 배를 띄우면 길이 되듯이 동시와 어린이와 단절된 상황에서 박방희 시인이 띄운 동시라는 배를 통해 동시와 어린이가 서로 소통하는 길이 될 것이 틀림없다.                3. 나오며           그의 시는 참신하다. 새롭다. 구태의연한 동시들이 주류를 이루는 동시단에 오랫만에 좋은 동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적인 테크닉이 넘치는 참신한 박방희 동시는 동시가 재미없다고 식상해하는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비타민 같은 동시다. 그의 동시는 한마디로 “참신한 이미지 연상기법을 통한 동심적 상상력의 확대”가 넘치는 동시다.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는 통조림 같이 동심과 단절된 어린이들에게 “동심을 끌고 온 동시”이며, "무한한 상상력을 끌고 온 동시”이다. 좋은 동시를 많이 빚어 생각하기 싫어하고 사랑과 우정이 단절된 어린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우쳐줄 박방희 시인의 무한한 상상력 비타민 동시가 많이 창작되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동시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619    병치기법 댓글:  조회:1201  추천:0  2019-01-14
퍼온 글임 현대시의 창작방법과 실제 김관식(시인, 문학평론가)   5. 병치기법   1) 프롤로그      단순하게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시간 순서로 배열하여 시를 형상화하게 되면, 너무 시가 단조롭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사물의 외형을 보고 그 느낌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시적 대상에 감정이입하여 진술한다. 여기에서 시의 원리를 모르는 초보시인은 사물의 외형에서 느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주로 하여 토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의 원리는 자신이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노래나 춤을 출 때이다. 여타의 나머지 예술작품은 자신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등장인물이나 사건, 배경을 만들어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로 꾸며서 무대 위에 올리게 된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따라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로 형상화하여 무대 위에 올리는 연출자인 셈이다. 연출자가 아 슬프다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감정토로의 시 아닌 시인 것이고. 슬픈 느낌이 들도록 상황을 적절히 한 컷의 사진을 찍는 듯이 언어로 형상화하여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현대시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 간단한 예술의 원리를 망각하고 직접 자신이 무대 위로 올라가 감정을 토로하려고 하니 그 시를 누가 읽으려들겠는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노래나 춤을 출 때임을 명심하고 가급적 무대 위로 올라가지 말고 느낌을 자아내는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이때 단조롭게 하나의 이미지만을 배열하면 시가 너무 평면적이고 단조롭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병치시켜서 재미있게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병치기법인 것이다. 병치기법은 여러 개의 공간이나 시간, 사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조향이나 이상 등 초현실주의 시들도 병치기법을 적용한 시들인 것이다. 이러한 병치 원리에 의해 숨겨진 이미지를 숨은 그림 찾듯이 찾아내면 쉽게 시가 이해되는데 대부분 시적 감수성이 청각적 이미지에 고착이 되어 시각적인 이미지로 치환되거나 병치된 시들은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니 현대시는 어렵다고 구시대적인 낭만주의 감정토로의 시들을 선호하는 것이다. 실제로 병치기법은 어렵지가 않다, 두 가지 상황이나 사건 또는 사물을 교묘하게 엮어서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방법인 만큼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자꾸 숙달이 되면 시를 쓰는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2) 병치비유의 개념      병치란 국어사전에 “한 장소에 나란히 놓이거나 동시에 설치되다”, “두 가지 이상의 것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거나 동시에 설치함”을 의미한다. 즉 두 가지 이상을 한 곳에 나란히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두 가지는 사물이 될 수도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의 시간이 병치될 수도 있으며. 공간이 병치될 수 있다. 따라서 현실과 환상이 병치되었을 때 초현실주의 기법 중의 하나인 데페이즈망 기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병치될 수도 있다. 병치기법으로 흔히 시에서는 병치비유로 표현되기도 한다. 비유는 크게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로 나눌 수 있다. 치환 비유는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여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비유의 본질은 어떤 사물을 드러내기 위해 그와 유사한 다른 사물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어법이다. 비교를 위해서는 먼저 설명하려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과 빗대어 볼 보조대상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사물간의 유사성이나 이질성을 통하여 대상을 보다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를 의미의 전이로 설명했고 이러한 의미의 이동을 대치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대치론의 맥락에 치환은유, 즉 옮겨놓기 은유가 있다. 치환은유란 두 사물간의 비교가 아니라 A라는 사물의 의미가 B라는 사물에 의해 자리바꿈되는 것을 뜻한다.    그 반면에 병치비유는 자리 이동이 아니라 함께 놓아두는 방식이다.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어서 그것들이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되어 서로 기능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이다.    휠라이트는 병치비유를 조합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조합이란 치환비유처럼 사물들 사이에 유사성에 의한 자리바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물들이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을 말한다.    병치비유는 나열하거나 병치하여 비유하기 때문에 치환 비유와 달리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찾기가 어렵다. 그 까닭은 치환비유에서는 어떤 한 방향으로 의미가 전이가 되지만, 병치 비유에서는 한 방향으로 의미가 전이되지 않기 때문에 시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시어들과 대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시어가 원관념, 보조관념이 아니라 각각의 시어가 원관념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시어의 나열과 병열을 통해 그 사이에서 이미지 또는 의미가 제시된다. 나열된 시어들은 무의미하게 배열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시어들이 시로 한자리에 구성됨으로써 이미지 또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병치비유의 시어들은 그 시에서 하나의 묶임으로 인해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미지 내지는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치환 비유보다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결합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미지의 병치라고 볼 수 있다. 또는 병치 비유는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이 형상을 엮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병치 비유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시를 해석할 때 언어 그 자체를 집중하여 맥락을 찾는 외적인 요소보다는 시 그 자체 즉, 내적 요소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병치 비유는 시 자체에 더욱 집중을 할 수 있게 한다.    휠라이트는 전이가 아닌 병치가 비유의 한 형태로 성립되는 근거는 비유를 어디까지나 의미론적 변용 작용으로 본 데 있다. 자연계의 요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자질을 생성하듯이 시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병치 비유의 예로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지하철 정거장에서」)이란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인용했다. 이 시에서 병치되어 있는 것은 '얼굴들'과 '꽃잎들'이다. '지하철 정류장'에서 첫 행의 '얼굴들'과 둘째행의 '꽃잎들'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하나의 인상적 대조하여 두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옮겨보기의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얼굴들의 환영과 나뭇가지에 걸린 꽃잎들은 서로 병치된 인상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얼굴이 꽃잎으로 대치된 치환적 구성이다. 그러므로 병치와 치환의 어법은 엄격히 구분되기보다는 병치에 가까운 치환의 시법을 요구하게 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같은 것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 판단이 유보된다는 점에서 병치은유는 해체주의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병치기법에는 공간의 병치, 시간의 병치, 시공간의 병치,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 자연과 인간의 병치, 존재와 존재의 병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병치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병치비유의 활용한 예시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3) 병치비유의 활용      가) 공간의 병치      병치기법에서 먼저 공간의 병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병치라는 의미 자체가 공간적인 형식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지속되는 언어의 연계성에 의해 진술되기보다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병치기법이기 때문이다. 김종삼의 다음의 시는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병치시킨 구조로 되어 있다. 현실공간에 대조적인 환상공간을 병치시킴으로써 부정의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불연속성을 허물고 새로운 연속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 소리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김종삼의 「라산스카」 전문      이 시는 하늘이라는 환상공간으로 환유된 천상의 세계와 결합된 양상으로 1〜2연은 환상공간이고, 3연은 현실공간으로 병치되어 있다. “하늘을 파헤치는/스콥 소리”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상승의 청각적 이미지 “소리”이고,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라산스카”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빛”이다. “스콥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와 “라산스카”의 시각적 이미지가 천상과 지상의 다리로 연결되는 매개 항이다. 스콥은 낯선 시어로 “scop”은 중세 서양의 음유시인과 땅을 파는 도구인 “삽”을 일컫는 중의적인 말이다. 라산스카는 뉴욕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헐더 라산스카이다.    동이 터 오르는 이른 아침에 어디선가 “하늘을 파헤치는 수콥 소리”가 들려온다. “파헤치는” 이미지와 “콥”이라는 파열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파괴의 이미지를 강하게 삽이라면 한 삽 한 삽 파헤치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파문을 일으키고, 음유시인이라면 그 천상을 뚫을 듯한 강렬한 음성으로 하늘로 상승하고, 그 삽질소리나 음유시인의 노래는 다시 새소리, 물방울 소리로 변형되어 하강한다. 결국 화자의 마음을 비추는 라산스카로 연결되면서 시적 주체가 의도한 은유의 의미가 드러난다.    상승하는 소리인 “스콥소리”가 하강하는 빛 “라산스카”로 전이되어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천상의 소리로 인간의 마음을 밝게 비추고 싶다는 시인의 의도가 드러나게 된다.    천상과 지상의 공간은 먼 거리로 불연속적이지만 라산스카가 연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두 공간을 서로 병치시켜 의미와 충돌이나 대립 없이 통일된 연속성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병치비유는 공간을 병치시켜 현실 공간과 환상 공간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연속성 있게 자연스럽게 연결했을 때 공간의 병치라고 할 수 있다.      나) 시간과 공간의 병치      병치비유의 예시로 이형기의 「폭포」를 보자. 이 시는 높은 벼랑 위에서 낙하하는 폭포와 바위가 만들어진 지질시대 石炭紀의 과거 시간과 공간을 병치시켜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한 시이다.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疾走하는 전율과 전율끝에 斷末魔를 꿈 꾸는 벼랑의 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마리 장수잠자리의 墜落을 나의 자랑은 自滅이다 무수한 複眼들이 그 무수한 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億年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의 「폭포」      이 작품을 부분적으로 보면 병치은유이지만 작품 전체로 보면 치환은유가 됨으로써 병치은유와 치환은유의 결합형태가 된다. 원관념인 폭포가 '시퍼런 칼자국', '질주하는 전율', '벼랑의 직립', '석탄기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추락' 등으로 자리이동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이질적인 보조관념들이 조합됨으로써 폭포가 새로운 의미체로 부상되기도 한다.    이 시에서 화자인 나는 폭포의 암벽이다. 폭포의 암벽에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을 “시퍼런 칼자국”으로 비유되고 있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현재의 순간과 공간을 “疾走하는 전율과/전율끝에 斷末魔를 꿈 꾸는/벼랑의 直立”으로 하강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환상공간을 병치시켜 지질시대의 순간과 공간을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로 묘사하고 있다. 환상공간인 지질시대는 “石炭紀의 종말”이다. 환상공간인 지질시대 石炭紀가 종말한 순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한마리 장수잠자리의 墜落을/나의 자랑은 自滅이다”라고 진술하고 있고, 다시 현실공간의 현재 시간에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무수한 複眼들이/그 무수한 水晶體가 한꺼번에/박살나는 盲目의 물보라”로 병치시켜놓고 있다. 현재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는 물이 쏟아지는 촉각적 이미지를 시각적인 이미지인 빛의 이미지로 병치시켜 다시 “2億年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라고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지질시대의 모습으로 새로운 의미를 과거와 현재, 환상공간과 현실공간을 의미와 충돌이나 대립 없이 통일된 연속성을 미무리하고 있다.      다)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어서 그것들이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되어 서로 기능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되는 새로운 결합으로 병치기법을 작용하나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사물을 병치하여 조합하기가 어려우므로 처음에는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여 자리바꿈을 하는 치환비유를 적용하여 비유하다가 고정적으로 병치시키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이는 엄격하게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를 구분할 필요 없이 치환비유와 병치비유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법이 더 쉽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시를 보도록 하자. 이 시는 식혜 만드는 과정과 미혼모가 아기를 낳아 고아를 다른 나라에 입양하는 과정을 병치시켰다.   둘이 좋아서 몸을 섞었습니다 사랑은 젖은 이슬이 되고 어머니 아닌 처녀 뱃속에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단단히 조여 오는 압박 벨트도 저희들의 몸부림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남이 볼까 두근두근 스스로 싹을 틔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달콤한 사랑도 모두 멈추고 엄마의 품을 떠나 영아원의 엿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랑도 산산이 부셔져 가루가 되고 허공으로 흩어져 낯선 나라 물과 밥알에 섞여 분노를 삭혀왔습니다  타국 땅에서 밥알로 동동 한때 뜨거웠다 차갑게 식어버린 미혼모의 젊은 날 한 순간 엿 먹은 은혜입니다           -김관식의 「식혜」      이 시는 식혜 빚는 과정과 젊은이들의 사랑과 미혼모들의 출산, 해외 입양으로 보내는 과거 우리나라의 고아수출이라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을 전체적으로 병치시켜놓고 있다.    식혜를 만들 때는 엿기름으로 만들게 됩니다. 엿기름은 싹이 튼 곡물, 즉 생맥아는 가마에서 말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데, 구멍이 뚫린 가마 바닥을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말린 것을 말한다. 맥주를 만드는데데 쓰이지만 엿기름은 주로 엿이나 식혜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이 엿기름은 식혜를 만드는 원료가 되는데, 만드는 과정을 보면 껍질째 빻은 엿기름을 따뜻한 물에 우러나게 하여 고운 체에 받친 다음 그 물을 가만히 가라앉힌다. 되게 지은 밥을 사기 항아리에 담아 엿기름의 윗물만을 붓고, 온도를 60~70℃로 4~5시간 유지시켜 밥을 삭힌다. 이때 온도가 낮으면 밥이 쉬고, 너무 높으면 당화가 잘 안 된다. 약 4시간 후에 열어보아 밥알이 동동 떠 있으면 밥알을 조리로 건져 찬물에 헹군 뒤 다른 그릇에 담고 나머지 식혜물을 끓이면서 설탕을 적당히 탄다. 끓일 때 떠오른 거품은 숟가락으로 걷어낸다. 식혜물에 생강·유자 등을 가미하여 맛과 모양을 내기도 한다.    이러한 식혜 만드는 법을 미혼모들이 젊은 혈기로 사랑을 나누다 그만 임신을 했을 때 몰래 아이를 낳아 영아원에 맡기고 이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 입양이 되어 갔다. 가끔 신문과 방송에 이 입양간 아이가 자라서 친모를 찾겠다고 나서나 대부분은 타국에서 한국 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을 작지 못하고 입양된 나라의 국민이 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두 사건의 유사성은 엿기름이 보리 싹의 자람을 멈추게 하여 만든다는 점, 그리고 식혜를 만들면 단맛을 내며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음료라는 점, 식혜를 더 졸이면 엿이 된다는 점, 식혜에는 밥알이 동동 떠있다는 점 등의 식혜 특징과 미혼모들의 사랑이야기가 처음에는 달콤하여 빠져든다는 점, 남에게 말을 못하고 숨겨오다가 몰래 아이를 낳게 된다는 점, 이 아이는 영아원에 맡겨져 고아가 되고 다른 나라에 입양된다는 점 등 미혼모의 사랑이야기가 전혀 유사점이 없는 것 같으나 곰곰이 살펴보면,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이 발견되게 된다.    따라서 식혜 만드는 과정과 미혼모의 입양이라는 두 사건을 병치시켜놓고 유사점을 찾아서 빈틈없이 엮어내면 이질적인 두 사물의 병치가 완성된다.      라) 자연과 인간의 병치      자연은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의식주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등 자연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들의 욕망이 극대화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망각하고 자연을 마구 훼손하여 생태계의 질서를 망가뜨려 오늘날 인간들은 자연의 재앙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생각보다 자연과 인간을 따로 분리하여 이분법적인 사고로 자연을 무조건 지배함으로써 인간만의 행복과 풍요를 누리려는 인간위주의 생태의식이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키는 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적인 구도에서 갈등양상을 노출시키기 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킴으로써 시적 대상에 대한 시야를 확대시켜서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눈보라 휘몰아간 밤 얼룩진 壁에 한참이나 맷돌 가는 소리 高山植物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던 오리 오리 맷돌 가는 소리    -박용래의 「雪夜」 전문      이 시는 “눈보라 휘몰고 간 밤”이라는 자연과 “맷돌 가는 소리”로 어머니를 병치시켜놓고 있다.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밤이면 맷돌을 돌리시던 어머니를 떠올려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켜놓고 있다.    1행과 2행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밤이라는 시간 집 밖의 공간에서 “얼룩진 壁”이 있는 방안으로 공간이 이동한다. 3행과 4행은 방안에서 어머니께서 밤이 이슥하도록 맷돌 가는 어머니가 떠올리고 있다. 5행과 6행에서 “얼룩진 壁”에 맷돌 가는 소리가 부딪혀 “高山植物”의 서정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이 되다가 7행과 8행에서 맷돌 소리를 여운을 청각적 이미지로 화자의 내면 정서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킨 김관식의 「죽방림」을 보도록 하자.   아파트 분양 떴다방 밀물이 몰려든다   기회는 이때다 밀려들 때 분양받아 웃돈 얹어 잽싸게 빠져야 한다   떴다방들 다 빠지고 어물어물 썰물인 줄 모르고 모델하우스 분양사무실 꾸역꾸역 멸치 떼들이 몰려든다   죽방령 입성 로또 당첨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남해 바다    -김관식의 「죽방렴」 전문      이 시는 남해바다에 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해놓은 죽방렴, 즉 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로 만든 그물을 세워서 물고기를 잡는 일, 또는 그 그물을 말하는데 이는 자연현상을 이용한 인간의 지혜이다. 그렇지만 자연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조류에 따라 물고기들이 죽방림에 갇히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아파트 분양으로 떴다방들이 몰려드는 모델하우스와 병치시킨 시이다.    이와 같이 자연과 인간을 병치시켜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시공간을 병치시켜 극도의 절제된 서정을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마) 언어의 해체, 의미를 바꿔서 병치      언어를 해체시켜서 그 의미가 바꿔지는 것을 병치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한 낱말을 분해시켰을 때 두 가지 의미가 생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서로 병치시키는 방법인데,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경향으로 장르간의 해체, 낱말의 해체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병치할 수 있다.   나 비다   구름 동동 하늘 떠돌다 되돌아올 줄 정말 몰랐다   팔랑팔랑 꽃을 찾아다닐 때 나를 잊었다   그땐 정말 눈물 흘릴 줄 전혀 몰랐다 비틀비틀 낙하하는 나비 나 비다        -김관식의 「나비」      이 시는 “나비”라는 시어를 “나”와 “비”로 분해해서 해체시켰다. “나”라는 인간과 “비”라는 자연현상으로 분해하여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 것이다.   4) 에필로그      이상에서 병치기법을 살펴보았다. 병치기법은 단순한 시상을 복합적으로 엮어서 시를 시답게 하는 현대시의 기법 중의 하나이다. 일부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기법도 병치기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구성법에서 단순구성이 아니라 복합구성, 평면구성이 아니라 입체구성, 액자식 구성, 피카레스식 구성보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이 바로 시의 병치기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병치기법에서 치환 비유를 하기 위해 유사점을 찾아 자리바꿈하는 요령은 첫째, 형태의 유사점→모양의 유사점을 찾는다. 예) 빌딩-하모니카. 둘째, 정서의 유사점→느낌의 유사점을 찾는다. 셋째, 상징의 유사점→의미의 유사점을 찾는다. 넷째, 행동의 유사점→움직임의 유사점을 찾는다.   다섯째, 언어의 유사점→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점을 찾는다.    이와 같이 유사점을 찾아 자리바꿈하다가 함께 놓아두는 방식으로 병치비유를 완성해 나가면 된다. 오늘날 현대시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시들이 병치기법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고, 이의 방법을 터득하는 일은 바로 현대시를 바로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며, 시를 창작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방법이 바로 이 병치기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서정문학 2018년 11.12월호에 실린 연재6회분의 원고입니다)  
618    詩의 이미지 댓글:  조회:1208  추천:0  2019-01-14
1. 詩의 이미지      이미지(Image)는 원래 영화에서 나온 말로 映像․心象․寫像 등의 여러 가지 말로써 표현된다.  시의 언어는 음악성과 회화성을 갖고 있는데 회화성을 이미지라고 한다. 영국의 시인 루이스(Lewis, Cecil Day)도 이미지를 가리켜 ꡒ시어에 의한 회화적 표상ꡓ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적 이미지는 문맥 속에 인간의 정서를 저류로 가진 어느 정도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의 감각적인 회화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종래의 시가 창조가 아닌 재현이었음에 비하여 현대시는 창조이지 재현은 아니다. 그러므로 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성이요, 독창성이었다. 따라서 시는 객관적 대상을 이미지에 의하여 재현하는 것, 흉내내는것, 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국화꽃 한 송이를 사람이 눈으로 보았으면, 마음속에 그 꽃의 이미지, 즉 象이 寫像된다.  시적 이미지들은 존재하는 대상을 전달하기 위한 수식적 형식이었다. 현대시의 이미지는 서로 모순되거나 이질적 정서 또는 관념들의 텐션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령 엘리어트가 ꡒ4월은 잔인한 달ꡓ이라고 표현했을 경우 우리는 언뜻 여기서 ꡐ탄생과 죽음ꡑ, ꡐ정열과 이성ꡑ 등의 서로 대립된 관념과 정서들의 텐션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실체의 모방으로 나타난다. 이미지를 말의 흐림(Word Picture)이라 했을 때, 그 의미는 대상을 재현하되 색채와 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ꡐ정신ꡑ은 곧 ꡐ언어ꡑ라는 생각은 바로 언어가 실재를 형성한다는 말이 된다. 언어에 의한 이미지의 실체화에는 비유적 방법과 상징적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자면 엘리어트의 ꡒ나는 내 생애를 커피 스푼으로 되질하였네ꡓ라는「프루프록의 연가」의 일절은 생의 일상적 반복을 뜻하는 내용으로서 그 자신이 말하는 ꡐ객관적 상관물ꡑ에 의한 시적 이미지 형식인 것이다.  이미지를 감각, 혹은 지각적 체험을 지적으로 재생하는 인식수단으로 보는 웰렉과 웨린(Wellek & Warren)은 이미지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청각적 이미지․미각적 이미지․후각적 이미지․근육감각적 이미지․색채적 이미지․역동적 이미지․공감각적 이미지 등으로 구분했다. 이 밖에도 프라이(Frye, Northmp)는 예시적 이미지와 악마적 이미지 그리고 유추적 이미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한편 이미지는 육체적 지각을 통하여 산출되는 경우와 육체적 지각을 통하지 않고 산출되는 경우로 나누어 고찰될 수 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전자는 지각과 관계되고 후자는 상상력이나 환상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각과 관계가 되든 상상력이나 환상과 관계되든 간에 이미지는 모두 정신 속에 기록되는 감각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미지라는 말과 이미져리라는 말이 쓰이는데 이는 개념의 혼란을 야기한다. 이미지는 去時的으로도 사용되고 未時的으로도 쓰인다. 이미져리(Imagery)란 말은 언어에 의해 정신 속에 생산되는 이미지들을 말한다. 이미지와 이미져리라는 말이 함께 사용되나 이미져리는 개별적 이미지들의 집합이라는 측면에서 이미지보다 훨씬 개념적으로 분명 해진다.    여기서는 일반성 있게 편의상 이미지라는 용어를 통일해서 쓰기로 한다. 이미지에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경우가 있다. ①정신적 이미지 ②비유적 이미지 ③상징적 이미지 등이다.  정신적 이미지는 시를 대할 때, 오로지 독자의 정신에 야기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한다. 표현에 있어서도 축어적 방법이나 비유적 방법인가를 분별하지 않으며 때로는 축어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그리고 더러는 두 가지 개념이 동시에 사용된다.  정신적 이미지를 많은 심리학자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다시 분류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앞에서 말한 웰렉과 웨렌(Wellek & Warren)의 유형과 거의 비슷하다. 곧 ①시각적 ②청각적 ③후각적 ④미각적 ⑤촉각적 ⑥기관적 ⑦근육감각적 이미지 등이다.  그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시각적 이미지의 경우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구름은 보라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불면 꺼질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에서」 에서-    여기서 시각적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향료를 뿌린 것처럼 고운 노을/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는 물론/구름=장미/와 같은 은유며. 보라빛 색지 위에/마구 칠한 /것과 같은 시각적 심상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ꡐ목장ꡑ의 ꡐ깃발ꡑ, ꡐ능금나무ꡑ와 같은 실재하는 사물의 시각을 통하여 ꡐ들길ꡑ 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② 청각적 이미지의 경우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 우는 사람처럼 가자  배골 물래  아름다움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전문」 전문 -    이 시에서 소리처럼 부는 바람/ 눈물짓는 것/ 백골이 우는 것/ 내가 우는 것/과 그리고 어둠을 짖는 개처럼 이 시는 나와 혼 백골의/ 울음소리/와 개의/ 어둠을 짖는 소리/의 청각적 심상에 의하여 정조 되어있다. 청각적 이미지 즉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전체가 상징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자연의 소리를 묘사하거나 의성․의음 등으로 나타내는 방법도 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 한하운 「보리피리」에서 -    이 시에서는 소리의 상징으로 리듬을 살려 음악성을 높이고 있다.    ③ 후각적 이미지의 경우    내 가슴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 해 고요히 지는 제  머 ㄴ 山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 이틀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 김영랑 「가늘한 내음」에서 -    여기서 가늘한 내음/과 떠도는 내음/은 깃든 향취와 동질적인 것으로 모란의 내음을 후각적 이미지로 형성하고 있다.    ④ 미각적 이미지의 경우    소년이었던 나는  담배에 입맛을 붙여  숨어 피우던 그 쌉쏘름한 담배 맛을  시방도 아예 잊을 길이 없다.  - 신석정 「오는 팔월에도」에서 -    이 시에 ꡐ쌉쏘름한ꡑ과 같은 관형어가 미각적 이미지로 나타났는데, 대개의 경우 달디단, 쓰디쓴, 시디신 둥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⑤ 촉각적 이미지의 경우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아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타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흘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에서-    이 시에서 촉각적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熱, 令 등의 감각을 표상한다. 더 좀 자세한 분석적 해설을 정한모에게서 들어보기로 한다.    유리창이라는 시각․청각․촉각적 연상의 복합적 이미지를 가진 소재를 시적 오브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이 시는 성공적이다.  유리창에/ 차고라는 촉감과 슬픈 것이라는 시적 정서와/ 어른거린다/는 시각이 화합하여/ 시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여기에 다시/입김을 흐리운다/는 촉감적인 모호한 슬픔의 심상을 결합하고 아울러 생명의 발돋움처럼/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라는 사건의 역동적 이미지를 부가하여 시의 전체적 結構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지우고 보고/새까만 밤이 밀려오고/와 같은 시각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조형하고 다시/물먹은 별이라는 다감각적 이미지의 시어가/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라는 多重的 감각으로/ 인각되어 시의 영역을 확대 심화하고 있다. 아울러/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다/는 상황과 사건 그리고 대상을/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多感的 정서와 결합시켜 객관적 상관물에 의한 시의 총체적 정서효과를 완결하고 있는 것이다.    ⑥ 기관적 이미지의 경우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나는 조선의 한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휜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 梁柱東 「조선의 脈搏」에서 -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 徐廷柱 「花蛇」에서 -    이 두시에서 보는 바 ꡐ맥박ꡑ, ꡐ모세관ꡑ, ꡐ기관ꡑ 그리고 ꡐ가쁜 숨결ꡑ 같은 것이 기관적 이미지다. 기관적 이미지는 대체로 고통, 맥박, 호흡, 소화 등의 감각을 표상 한다. 따라서 흐느끼는, 할딱이는, 답답한, 숨이 차는 따위의 관형어에 조응한다.    ⑦ 근육감각적 이미지의 경우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 조차 흘리고 싶다.  - 김종길 「성탄제」 에서 -    이 시에서 ꡐ쥐어ꡑ 나 ꡐ발목이 시도록ꡑ과 같은 근육감각적 이미지를 느낀다. 근육 감각적 이미지는 근육의 긴장과 움직임을 표상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유형들이 詩 해석에 다음과 같은 도움을 준다고 이승훈은 말하고 있다.  -이기반         첫째로 기호의 보편성을 강화한다. 모든 시인들은 상이한 유형의 감각적 능력을 지니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상이한 감각적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우리들의 기호의 편협성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로 시인의 상상력을 이해하는 하나의 색인이 된다. 이를테면 김광균은 시각적 이미지를, 김영랑은 청각적 이미지를 지향한다는 점은 두 시인이 성취한 상상력의 세계를 기술함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셋째로 교육적으로 유용하다. 교사나 비평가는 시의 이러한 양상을 강조함으로써 보다 훌륭한 독서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라고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문학 논의에 있어서는 이미지에 있어서 몇 가지 약점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그 첫째는 이미지 창조력이 시인들마다 다르듯이 독자 혹은 비평가의 이미지 창조가 다르다. 그러므로 시에 대한 상대주의적 해석이 나타난다. 둘째는 시의 감상에 있어 정신적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실제로 시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과 시가 구현하는 의미에서 멀어진다. 셋째는 이미지의 감각적 특질만 강조함으로써 시의 문맥 속에 놓이는 그 이미지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등이다.  스켈튼(Skelton Robin)이 지적한 바대로 시의 이미지에 있어서 세 가지 기능은 상징, 은유, 직유이다. 이 세 가지가 상호 종합적인 양식으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적 이미지는 비유적 양식으로서의 이미지들을 말하는데 대체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전통적 수사학자들의 견해와 둘째는 이것을 극복하는 신비평가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수사학자들의 견해는 문면과 문리, 혹은 매체와 취의를 기준으로 하여 제유법, 환유법,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만화법, 상징법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모든 비유법 이론의 핵심은 문명과 문리의 관계, 혹은 매재(媒材)와 취의(取意)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제유법이나 환유법은 문면과 문리 관계가 種과 類, 원인과 결과 같은 일종의 접촉성에 기초를 두며 그 외의 것은 ꡐ비상사성 속의 상사성ꡑ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서로 다른 즉 상이한 두 사물을을 병치함으로써 과학적 인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세계의 진리를 시가 통찰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의의가 신비평가들에 의해 진술되기도 했다. 여기서 예시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① 두 사물이 모두 이미지인 경우    구름은  보라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ꡐ구름ꡑ을 ꡐ장미ꡑ로 은유한 시각적 심상은 두 사물이 모두 이미지로 나타나 있으며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확연하게 나타나 있다.    ② 두 사물이 감정들이거나 관념들인 경우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 김춘수 「나의 하느님」에서 -    이 시에서 시인의 강렬한 의식을 통한 관념의 세계를 볼 수 있다.    ③ 취의는 이미지요 매재는 감정이나 관념인 경우    空間을  조용히 흔드는  종소리  너 향기로운  果實이여!  - 조지훈 「梵鐘」에서 -    이 시에서는 ꡐ종소리ꡑ가 매재로서 관념적이라면 ꡐ과실ꡑ은 취의로서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④ 취의는 감정이나 관념이며 매재는 이미지인 경우    잣나무와 잣나무  사이로 보이는 깊은 산협에  단풍이  타는 듯 붉은 단풍이 고웁고  - 장만영 「만추」에서 -    ꡐ단풍ꡑ이 매재요 ꡐ고웁고ꡑ는 취의이다. 여기서 매재는 이미지이지만 취의는 감정이요 관념으로 나타난다.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만남에 있어서는 형이상학적 명제로 수용된다. 과학적 진술이나 산문의 진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의 양식, 이해의 양식으로 비유적 이미지가 드러나며, 이때 논의의 핵은 은유가 된다.  신비평가들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는 동일화에의 욕망 때문에 비유어가 존재한다고 본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통합된 감수성의 세계가 시이며 통합된 감수성은 과학의 세계가 노출하는 비인간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훌륭한 시는 시적 상상력을 수단으로 체험의 전체성을 노린다. 체념의 전체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은유적 인식능력이다. 시적 이미지는 시의 주제와 조화되어야 하며 아울러 신선하면서도 독창적이며 감각적 체험을 재생시킬 수 있고 비유법이나 기타 상징법 등과 역동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논의의 기본 가정이 반복과 회귀이다. 대체로 반복과 회귀의 양상은 이미지들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이미지가 아닌 낱말들의 유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시가 노래하는 시로부터 탈피하여 읽고 생각하는 시로 매력의 초점이 移行된 것은 현대시가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미지스트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말했듯이 이미지는 융용 상태에 있는 관념의 소용돌이 또는 덩어리이며 따라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미지란 지적․정적 복합체(Complex)를 일순간에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정적 복합체이며 융용 상태에 있는 에너지를 지닌 소용돌이 같은 것이 이미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와 정의 표현을 언어를 통해서 하게 된다. 그런데 언어로써는 완전히 풀이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이미지의 효과이기도 하다.  그 방법의 하나인 상징적 이미지는 은유처럼 서로 다른 사이의 비슷한 성질 위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태극기가 우리 나라를 상징하고,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하듯이 형식에 있어서는 은유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나 은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태극기가 우리 나라와 유사한 점은 없으면서도 그것이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것은 국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십자가가 기독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 위에 못 박혔다고 해서 그렇게 상징된 것이다. 어떤 하나의 사실이 반복과 회귀에 의해서 이미지로 성립되기도 하지만 상징은 엄격하게 말해서 이미지는 아니다. 이미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본다.  시에 있어서 상징은 전통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과 그리고 시의 문맥 중에서 비로소 정해지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ꡐ비둘기ꡑ가 ꡐ평화ꡑ를 ꡐ무궁화ꡑ가 ꡐ우리 나라ꡑ를 상징하는 것은 전자의 경우요, ꡐ하늘ꡑ이 ꡐ자기만의 높은 이상의 세계ꡑ, ꡐ어느 시에서의 문맥상으로ꡑ라면 이는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전자도 후자도 다 함께 나타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예시로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서 그 첫 연만을 들어본다.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십자가는 전통적으로 상징화되어 있지만, 이 시에서는 문맥에 의해서 의미가 특수화되어 있다. ꡒ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ꡓ에서 시인 자신이 도달하기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상징하고 있다.  이미지는 현대시의 대명사라고 부를 만큼 시에 있어서 강조되어 왔다. 따라서 그 기능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앞에서 정신현상으로서의 이미지, 언어현상으로서의 이미지, 상징현상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하여 언급했지만, 그러한 이미지들이 시에서 어떠한 기능을 가질 것인가? 이것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지가 시를 형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잘 조화되고 종합되는 가운데 시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시의 율격, 음율, 리듬, 문체, 문법의 체계, 시점, 압축방식과 확대 방식, 선택과 생략의 방법, 인물, 행동, 사상의 양상들과 적절히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스켈톤(Skelton Robin)이 말한 이미지의 세 가지 기능은 상징․은유․직유라고 했다. 이것도 역시 호존 하는 것이며 시의 형성은 이미 삼자를 포괄하여야하며 삼자의 관계로 하여 시의 이해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기능은    첫째로 이미져리는 詩속의 화자가 말하고 있는 제재(Subject)를 지시한다. 화자가 詩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이미져리이며, 그것은 화자의 앞에 현전하 거나, 뒤에서 회상된다. 전경과 후경으로 나타나는 일체의 인간, 대상, 장소, 행동 사건들이 모두 제재가 된다. 둘째로 제재는 그러나 축어적 이미져리에서 비 유적 혹은 상징적 이미져리로 전환된다. 따라서 화자의 진술을 통하여 주어진 제재가 다른 제재와 대조됨으로써 이미져리는 제재이면서, 동시에 상징이 되기 도 한다. 셋째로 이미지들은 시속에서 하나의 유추가 된다. 곧 축어적 제재에서 벗어나 순전히 비유적 양식으로서의 기능을 나타낸다.    여기서 시 한 편을 놓고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가끔 편지를 받는다  발끝에 걸리는 일년의 마지막 낙엽  또는 살아 남은 겨울의 나비다    어둠을 뚫는 징검다리  그러나 어느새 돌 뿌리는 패어  삭은니처럼 흔들린다    가끔 편지를 쓴다  그대 흐린 눈의 원근을 밝히거나,  아니면 구멍 뚫린 암호다    그대 창 앞에  방긋이 피어날 꽃봉오리  아니면 떨어질 기러기의 날개다    이것은 문덕수의 시 「편지」의 전문이다. 여기서 ꡐ편지ꡑ를 사실적 기술이나 객관적 서술, 그리고 묘사적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다. 시인의 내면적 체험의 세계를 주관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첫째로 이 시의 화자는 시인 자신으로서 그가 말하는 ꡐ편지ꡑ는 ꡒ마지막 낙엽, 겨울의 나비, 징검다리, 구멍 뚫린 암호, 꽃봉오리, 기러기의 날개ꡓ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둘째로는 화자가 편지를 통해 체험한 양면성이다. 편지를 받는 경우와 편지를 쓰는 경우다. 여기서 시인의 내면적 이중성이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은유적인 국면이요 또 다른 하나는 상징적인 기법에서의 전환이다.  셋째는 이 시는 비유적 상징적 방법에 의하여 이미지가 유추로 나타나 있음을 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미지의 기능은 첫째로 화자의 말하는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깨닫게 한다. 둘째로 화자의 반응은 화자의 정서와 연결되며 시의 독특한 정조를 자아나게 한다. 셋째로 화자의 의식을 환기시켜 화자의 정신 활동을 자극하여 그 활동을 외면화한다. 넷째로 독자에게 시적 상황을 암시하며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시적 요소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유발케 한다. 다섯째로 독자의 기대를 인도하고 환기하는 방법으로서의 기능을 나나내기도 한다.  특히 현대시에 있어서는 심상이 그 자체로서 배경을 배제해 버리고 독립하여 한편의 시 속에서 제 구실을 하는 때가 많다. 따라서 시의 독자들은 이미지를 통하여 시인의 사상이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현대시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할 것이다   2. 詩의 象徵      상징이라는 말의 Symbol 은 본래 희랍어의 symballein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Symballein은 동사로서 ꡐ짜맞추다ꡑ를 뜻하며, 명사형으로서의 Symbolon으로 ꡐ표시ꡑ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징이란 용어의 설명은 단순하지 않다. 상징은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보조관념이 본래의 고유의미 외에 비 본래의 의미를 표현하는 일종의 수사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유적 방법과는 성질을 달리하는 상징은 유추적으로 가시의 세계, 즉 물질 세계가 연상작용에 의하여 불가시의 세계, 즉 정신 세계와 일치하게 되는 표현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연상이란 두 사물이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종합되는 정신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에서 말하는 상징이란 심상과 관념의 결합이며 관념은 심상이 암시적으로 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상징은 비유법과 유사한 것으로 논의되어 오기도 했다. 비유란 관례적인 언어의 사용에서 벗어나 특수한 의미나 효과를 위하여 언어가 인용되는 것을 뜻한다. 브룩스(Brooks. C)와 워렌(Warre. R)은 은유와 상징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징은 원관념이 생략된 은유법이다. ꡒ소녀들은 장미 동산에 있는 여왕장미ꡓ 라고 하면 은유지만, 시인이 단순히 그가 취급하는 사랑의 성질을 암시하기 위하여 장미를 지시한다면 그것은 상징이 된다. 예를 들면 ꡒ저 소녀는 장미꽃이다ꡓ 라고 하면 장미의 특질은 소녀에게 전화된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것으로 대상이나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상징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의미를 지적하는 기호이다.    그러니까 상징은 비유적인 기교가 아니라 自制的 독립적 존재인 것이다.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교의 양식으로 다른 지시 대상에 의해 매개화 되었을 때 일어나기 때문에 독립적 현실성이 없다. 이에 비하여 상징은 독립적 현실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가 하나의 체험의 묘사방법이라고 한다면, 상징은 의의 있는 체험의 심화방법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령 ꡒ고향은 아늑한 보금자리ꡓ라고 하면 은유가 되지만 ꡐ고향ꡑ을 빼고 그냥 ꡐ보금자리ꡑ라고만 표현하여 ꡐ고향ꡑ을 대신하면 이것은 상징이 되는 것이다.  상징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인습(관습)적 상징이며, 다른 하나는 개성(창조)적 상징이다.  인습적 상징이란 태극기가 우리 나라를 그리고 십자가가 기독교를 표상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개인적 상징이란 시인이 창조적 의미를 부여한 상징을 말한다. 시에서의 상징이란 후자의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 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횐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뿌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디찬 의상을 하고  횐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 「雪夜」전문 -    이 시에서 눈(설)을 ꡒ그리운 소식ꡓ, ꡒ서글픈 옛 자취ꡓ, ꡒ잃어진 추억의 조각ꡓ 등으로 상징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성(창조)적 상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어느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 趙炳華 「의자」에서 -    의자는 우리 인간이 앉는 도구로 쓰이나, 어떤 자리 즉 지위라는 인습(관습)적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순한 지위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또 하나의 다른 의미 즉 세대교체라는 개성(창조)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ꡒ아침을 몰고 오는 분ꡓ이라고 하는 문맥 의미의 특수한 관계와도 연결이 되는 까닭이다.    이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柳致環 「깃발」에서 -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많은 깃발이 있다. 어떤 종류의 깃발이건 그 깃발에는 공통성이 있다.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 혹은 이념의 표상으로서 그것들은 높이 나부끼게 된다. 그러므로 깃발은 이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대표된다.  상징주의 시인들의 암시의 미학은 시인의 내적 우주가 상징적으로 파헤쳐지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방법이며, 이러한 것은 보오들레에르(Baudelare. C)의 ꡐ교감ꡑ에 집중적으로 담겨져 있다.    자연이란 신전이며  산나무 두리기둥은  신비로운 소리로  때로 주절주절 말씀한다.  사람은 상징의 숲을 비껴 가고  숲은 낯익은 눈초리로 그를 살핀다.    아득한 먼 데서 합치는 긴 메아리처럼  어둡고 깊은 속에서  하나가 되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대낮처럼 가 없는 통일에서  향과 색과 소리는  서로 부르며 대답한다.    향기도 저마다  어린이 살결처럼 싱싱한 것  ꡐ오보에ꡑ 소리처럼 부드러운 것  풀에 덮인 들처럼 푸르른 것  또한 썩고 호사롭고 기승스러운 것에  만상이 피워져서 나타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혹은 祭香처럼  정신과 감각의 황흘을 노래한다.  - 보들레르의 「만상의 조응」전문 -    이처럼 상징의 방법은 물질 세계의 상징의 숲을 지나서 비로소 인간의 내면 세계와 접하게 됨을 말해 주는 듯한 상징주의 시인의 시를 보았다. ꡐ자연 이라는 신전ꡑ과 ꡐ숲ꡑ은 상징이다. 그런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본의는 분명치 않으며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상징적 수법을 통해서 본의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송욱도「만상의 조응」이 물질 세계와 영혼의 세계가 마치 소리와 메아리처럼 서로 짝을 지어 부르고 대답한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자연과 숲은 물질 세계인 동시에 영혼의 신비로운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의 구성원리이자 그 방법인 상징은 은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양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판별할 때 은유는 언어적 기교임에 대하여 상징은 언어적 연락만이 아닌 이중성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의 사유가 물질세계의 대상들과 갖는 상호반응을 그 조건으로 하여 형성되어진다.  -이기반       3. 詩의 類推      類推라는 것은 하나의 대상이 다른 또 하나의 대상과 많은 표징에 관해서도 유사하리라는 것을 추정해 내는 추리를 말한다. 바꿔 말하면 기지의 언어와 미지의 언어가 함께 나눠 가지고 있는 공통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사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위대한 일은 은유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힘이다. 그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창조적인 천재의 표징인 것이다 우수한 비유는 유사안식(an eye far resemblance)을 검출할 것을 의미한다.    라고 했을 때에 유사안식이란 바로 유추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비유 즉 우수한 은유는 유추의 발견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metaphor라는 어원 그 자체가 이동(motion-phora)과 변화(Changometa)의 뜻을 갖고 있는 것처럼 미지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과 유사한 기지의 언어를 이동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유추는 비유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것이다. 동시에 유추는 시인의 상상력에 기인한다. 상상력이란 베이컨(Bacon Francis)이 말하였듯이 ꡒ자연이 결합시켜 놓은 것을 분리하고 자연이 분리해 놓은 것을 결합시키는 인간의 힘이다.ꡓ 라고 했듯이 상상은 평범과 습관의 타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능력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확실히 발명․발견․창조는 상상(비전도 그것의 일종이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에서 상상력이란 기존자연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자연 창조가 가능한 것이며,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미지의 언어와 기지의 언어 사이에 유추가 형성되며 그것으로 인하여 토운(tone)은 풍요로워지고 미지의 언어가 기지의 언어보다 훨씬 더 풍성해 지게 마련이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완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 金光均 「秋日抒情」에서 -    이 시에 나타난 유추관계에서 먼저 ꡐ길ꡑ과 ꡐ넥타이ꡑ를 놓고 생각하기로 하자. ꡐ길ꡑ 은 미지의 언어이며 ꡐ넥타이ꡑ는 기지의 언어이다. 이것을 리처드(Richards. I.A)의 용어로 말한다면 관념과 매체로 설명된다.  ꡐ길ꡑ과 ꡐ넥타이ꡑ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데도 시인 김광균은 딴 사람이 미쳐 생각지 못했던 공통점을 발견하여 비유를 창조해 낸 것이다. 꼬불꼬불한 산길과 구겨진 넥타이와는 동질적인 일면이 있다. 이것으로 하여 ꡐ길ꡑ이 과연 어떻게 생긴 길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ꡒ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ꡓ 이 구절에서 ꡐ국화ꡑ와 ꡐ누님ꡑ 사이를 유추의 관계로 연결시켜 놓고 있다.  유사에는 관념(tenor)과 媒體 그리고 비유 등의 작용이 서로 뒤섞여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추사는 A는 B이다. A는 B와 같다. 또는 A와 X의 관계는 B와 Y의 관계와 같다. 이와 같은 식으로 명료하게 또는 함축적으로 기술된다. 이런 관계를 예의 파악한 김춘수도 그의 시론에서 유추를 직유와 은유의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사관계를 성립시킴에 있어서는 외형적인 상태나 특질도 있겠으나, 시에 있어서의 경우라면 보다 내재적이며 정서적이며 가치적인 유사성의 추구가 있어야 할 것이므로 유사도 역시 내재적 정서적 가치적인 것에의 성취에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기반     4. 詩의 修辭    (1) 直 喩    직유는 라틴어 Similis에서 온 말로서 ꡐ명유ꡑ라고 말하기도 한다. 두 가지 사물 또는 의미를 보조형용사인 (~와 같이, ~처럼, ~듯이, ~같은, ~만큼, ~인냥, ~마냥) 등의 연결어로 종합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의 하나이다. 연결어가 없는 은유보다는 분명하고 직접적이어서 그만큼 비유의 밀도는 약하나 어떤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릴 때에 쓰인다. 즉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A에 다른 대상 B를 끌어다 직접 연결 시켜 빗대는 방법이다. 이 때 A는 원관념이며 B는 보조관념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朴木月 「나그네」에서 -    흰 누더기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곳  - 김용호 「청계천변」에서 -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에서 -    직유의 방법을 구분하자면, 단지 사상을 선명하게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적 직유와 事象이 주는 인상을 강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적 직유로 대변된다. 기술적 직유는 단일직유와 확충직유로 세분된다. 단일직유는 ꡒ그는 여우 같다ꡓ, ꡒ장대같은 비ꡓ와 같이 단어와 단어가 보조형용을 매개로 하여 비교됨으로써 어떤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리고 있는 그러한 경우를 두고 일컬을 것이다.  여기서 예시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하다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들 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혼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 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네 영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전문 -    이 시에서 ꡒ가르마 같은 논길ꡓ, ꡒ아가씨 같이 ……웃네ꡓ, ꡒ삼단 같은 머리털ꡓ, ꡒ젖가슴과 같은 흙ꡓ 등 모두 ꡐ같은ꡑ과 ꡐ같이ꡑ의 연결어를 매개로 하여 단일직유로 간결한 비유를 보였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徐廷柱 「국화 옆에서」에서 -    이 시에서 ꡐ내 누님ꡑ 그 이전의 부분이 길게 확장된 보조관념이다. 그러므로 단일직유처럼 단어와 단어가 보조형용을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문 또는 문장과 문장이 서로 비유됨으로써 어떤 事象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이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朱耀翰 「빗소리」전문 -    이 시에서 첫 연의 끝 행은 본디 도치법으로 구성이 되었거니와 ꡒ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ꡓ는 ꡐ같이ꡑ를 매개로 하여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ꡒ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이ꡓ, ꡒ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ꡓ와 같은 정감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삼 연 이 행의 ꡒ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ꡓ는 ꡐ손님ꡑ 이라는 단어가 ꡐ같이ꡑ를 매개로 하여 ꡒ비가 옵니다ꡓ 라는 문장과 연결을 시키고 있다.  강의적 직유는 두 가지의 사상을 기술적으로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ꡒ유태인처럼 인색한ꡓ, ꡒ순이처럼 예쁜ꡓ 등과 같은 것으로 속담직유라고도 한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卞榮魯 「論介」전문 -    이 시는 ꡐ보다도ꡑ라는 매개로 ꡐ분노ꡑ를 ꡐ종교ꡑ보다 강조하고 ꡐ정열ꡑ을 ꡐ사랑ꡑ보다 강조했으며, 또한 ꡐ바다ꡑ를 ꡐ강낭콩 꽃ꡑ보다 푸르게, ꡐ마음ꡑ을 ꡐ양귀비꽃ꡑ보다 붉게 강조하여 시인이 표상 하고자 하는 논개의 애국적 정열을 고양하고 있다.    (2) 隱 喩    은유(Metaphor)는 transferring의 뜻으로 그리스어 metapherein에서 온 말이다. 직유가 (A=B) 의 관계라면 은유는 (A는 B다) 라는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A는 B와 같다) 라는 직유의 형식이 아니라A를 B로 대치시키는 것으로 본의와 유의를 결합시키는 비유법의 하나이다. 말뜻 그대로 은유는 ꡐ숨겨진 비유ꡑ로 원관념은 뒤에 숨고 보조관념이 표면에 나타나게 되므로 명유에 대립되는 암유라고도 한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전이의 개념으로 파악한 이래 많은 개념의 굴절을 나타내면서 가장 중요한 문학적 요소로 수용되는 용어이다. 허버트 리이드(Read Herbert)에 의하면 직유와 은유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직유와 은유의 차이는 단지 문체상의 정련도에 있다. 비교가 직접 두 개의 사물로 이루어지는 직유는 문학표현의 초기 단계에 속하는 것인데, 사물의 일치를 나타내기 위한 교묘한 조탁이며, 이따금 그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는 등가물을 민활하게 조명해내는 것이다. 두 개의 심상, 하나의 관념과 하나의 심상은 대등하게 서기도 하고 반대로 서기도 하는데, 서로 부딪치는가 하면 재미있게 조화하여 돌연한 조명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리이드는 은유를 ꡐ조명적인 것ꡑ과 ꡐ장식적인 것ꡑ으로 나누고 있다. 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은유는 도입되는 보조관념이 ①주어가 되는 경우 ②목적어가 되는 경우 ③술어가 되는 경우 ④관형어가 되는 경우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횐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어 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품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오다  - 金東鳴 「내 마음」전문 -    이 시에서 ꡒ내 마음은 호수요ꡓ, ꡒ내 마음은 촛불이요ꡓ, ꡒ내 마음은 나그네요ꡓ, ꡒ내 마음은 낙엽이요ꡓ 등은 모두 은유가 주관념인 ꡐ마음ꡑ 이 본의가 되고 ꡐ호수ꡑ, ꡐ촛불ꡐ, ꡐ나그네ꡑ, ꡐ낙엽ꡑ 등이 보조관념으로 유의가 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 ꡐ마음ꡑ과 ꡐ호수ꡑ는 유이성의 범위가 넓어 래디칼(rhetorical)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적 능력을 발동하여 은유를 깊이 분석할 필요가 없이 정서로서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휠라이트(Wheelwright Phillip)에 따르면 ꡒ치환은유(epiphor)와 병치은유(diaphor)가 있다.ꡓ 앞의 김동환의 시는 치환은유의 예가 된다. 치환은유란 취의와 매재 상호간에 어떤 유사성을 토대로 하여 그 의미를 전환시키는 것이다.  또 한 편의 예시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 김춘수 「나의 하느님」에서 -    이 시에서 ꡐ하느님ꡑ이나 ꡐ비애ꡑ라는 일상적 의미가 다른 의미, 즉 이 시의 문맥에 따라 포착될 수 있는 시적 의미로 치환된다. ꡒ하느님은 비애ꡓ, ꡒ하느님은 살점ꡓ, ꡒ하느님은 놋쇠항아리ꡓ 등에서는 혼합은유를 생각할 수 있다. 단일은유는 형식을 매재와 취의의 관계에서 볼 때 1 :1의 공식이 나타나지만 혼합은유의 관계는 多 :1의 공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보인 김춘수의 「나의 하느님」은 혼합은유의 형식에다 치환은유의 방법을 쓰고 있다.  한편 병치은유는 문자 그대로 병치의 방법을 취하는 것인데 휠라이트에 의하면 이것은 의미론적 전이가 신선한 방법으로 어떤 체험 ꡐ실질적이거나 상상적인ꡑ의 특수성을 통과함으로써 오직 병치에 의해서만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의  대리석, 그 마당 (사원) 한구석  잎사귀 한 잎 두 잎 내려앉았다.  - 김종삼 「주름간 대리석」에서 -    이 시는 병치은유의 좋은 예가 된다. ꡒ달빛 드는 낡은 구조의 대리석ꡓ과 ꡒ잎사귀가 한 잎 두 잎 내려앉는 마당 한구석ꡓ의 관계가 병치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는 은유라기보다는 이미지로 보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이질적인 두 요소 즉 ꡐ대리석ꡑ과 ꡐ잎사귀ꡑ의 병치로 말미암아 기존의 의미를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시에는 치환은유와 병치은유의 결합 양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치환은유의 역할은 의미를 암시함에 있고, 병치은유의 역할은 존재를 창조함에 있는 것이다. 은유는 ꡒ등가의 신속한 조명ꡓ이라고 하버트 리이드는 말했지만 20세기의 시 예술이 대체로 일시적인 은유의 원리, 자기 동일성 증명에 집착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은유의 형식보다 예기치 않은, 혹은 난폭한 은유의 형식으로 현대시는 삶의 동일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시의 본질적 구조는 은유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참된 은유는 치환은유와 병치은유를 동시에 요구하는 비유의 방법이기도 하다.    (3) 擬 喩    의유란 의인․의성․의태를 통괄하는 개념이다.  의인법은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추상개념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하여 표현하는 수법이다. 그리스말의 prosopopocia가 어원인 것으로 (Person+Fication)의 곁합어로서 (to make persons) 즉 ꡐ사람을 만들다ꡑ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비인격적인 용어를 인격적인 용어로 전용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폭 넓고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의인화는 단순히 은유의 한 변형이다. 보통의 은유가 대상과 대상 사이의 융합인데 비해서 이 의인화는 대상과 인간의 융합이다. 이러한 종류의 융합은 특별히 원시적인 상상력이 특성이었다. 의인법은 대상을 주체화하여 인간의 차원으로 대치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주관이 대상의 존재론적 관여를 기도하기 위하여 미학에서 말하는 감정이입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은빛 잠옷을 길게 끌어  온 마을을 희게 덮으려  나의 신부가 이 아침에 왔습니다.  - 노천명 「첫눈」에서 -    외등들이 입초하는  싸늘한 바람 속을  내게 허락된 하나의 귀로  - 정한모 「Limit time」에서 -    이 두 시에서 노천명의 시는 정적인 데 비하여 정한모의 시는 지적인 데가 있어 시대성 같은 것이 결부되어 보인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 신석성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니다」에서 -    산은 사람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를 올라간다.  - 김광섭 「산」에서 -    이 두 시가 모두 ꡐ산ꡑ을 의인화하여 인격과 생명을 부여하고 산의 내면에 시인의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의 정신적 저류에 깔린 종교적 자연관까지도 엿볼 수 있다.  김동명의 「파초」는 의인법의 표본적인 시이다. 은유법만큼이나 현대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 의인법은 ①불완전의인화 ②완전의인화 ③추상개념의 의인법 둥이 있다.  불완전의인법은 의인화 작용이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그 인격성은 단지 연상에 의해 시사될 정도로 이미지가 전체로서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ꡒ책상다리ꡓ, ꡒ산허리ꡓ, ꡒ뺨부비며 열려있는 꽃봉오리ꡓ 서정주의 「밀어」둥은 의인화되어 있으나 그 이미지는 여전히 책상, 산 꽃봉오리이며 단지 물리적인 인간 속성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완전의인법은 대상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특히 신화적 배경을 갖고 표현된 (해․달․별․바람) 등의 의인화가 그것이다. 예를 들면 ꡒ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ꡓ 박목월의「산이 날 에워싸고」같은 시이다.  추상개념의 의인법은 (진리․사랑․희망․이상) 등이 의인화된 것으로 예를 들면 ꡒ희망의 손짓ꡓ, ꡒ민주주의 미소ꡓ, ꡒ역사의 눈ꡓ, ꡒ회상의 계곡ꡓ 등이다.  의성법은 사물의 소리, 움직임, 모양, 의미 등을 음성으로 묘사하는 수사법의 하나다. 언어학에서는 의성, 수사학에서는 성유로 구별해서 쓰이기도 한다.  성음을 묘사하는 것은 음성상징으로서 그 만큼 어떤 사물의 표현에 실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쓰인다.    삐이 호이, 비이 호이, 홀로 우는 새의 소리…, 머언 산에서 뻐구욱, 뻐구욱, 울며오는 뻐국소리…, 또, 물소리…, 돌을 씻고 돌틈으로 돌돌돌 쪼로로록 흘러오는 물소리….  - 박두진 「햇볕살 따실때에」에서 -    이처럼 자연의 교감에 민감한 박두진의 표현에서 의성법이 많이 나타난다.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꺽삐꺽 소리를 치며  오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 김동환 「북청 물장수」에서 -    충암절벽상에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골 물이 주루루룩 저골 물이 솰솰…저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 「유산가」에서 -  툭 툭 털고 손 놓고 돌아서는 자리  - 조병화 「시간」에서 -    부 - 엉 부 - 엉  양식 없다 부 - 엉  걱정 마라 부 - 엉  낼 모래가 장이다  부 - 엉 부 - 엉  걱정 마라 부 - 엉  - 구전민요 「부 - 엉」에서 -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고대가요와 민요 같은 데서 의성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현대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 수사법이다.  다음에는 의태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의태법은 사람의 말이나 동작, 사물의 상태 등을 그대로 모방해서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의태어로 된 의태법은 음성상징의 하나이기도 하다. 음성상징은 그 언어의 음성과 사물의 소리 또는 실물의 모양과의 종합관계의 정도에 따라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단순한 의성어, 단순한 의태어, 묘사의 대상이 되는 동작을 흉내내기 위하여 입술, 혀, 이 등을 움직이는데 덧붙이는 암시적 음이 있는 경우, 음은 비슷하지 않으나 암시적인 것이 그것이다.    ① 찍찍찍, 쭈우쭈우, 찌이찌이, 삐이 호이, 비이 호이, 삐이삐이배, 뱃종 뱃종(이상 새의 울음소리), 철석철석, 돌돌돌, 쪼로록 (물소리)  ② 소곤소곤, 쑤근쑤근, 쑥덕쑥덕, 휘청휘청, 활활,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너울너울, (불꽃이 너울너울 거린다), 덥석덥석, 벌떡  ③ 오싹, 반짝반짝, 빤짝빤짝, 우뚝, 원산은 첩첩, 태산은 주춤하야 기암은, 층층, 장송은 낙낙    이러한 구분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므로 매우 힘들다. ①은 사물의 소리를 직접적으로 흉내내고 있으므로 알기 쉽다. 그러나, ②와 ③은 구분하기 힘이 든다. ②는 언어의 음성과 사물의 소리나 동작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고, 발음할 때 우리의 입술과 혀와 이를 움직여서 나는 소리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③은 사물의 소리나 상태와 같지 않고, 단지 그것을 암시하는 음으로 사물의 상태나 소리와 관련되어 있다.    해는 오르네.  둥실 둥실 둥실 둥실‥‥  어어 내 젊은 가슴에도 붉은 해 떠 오르네.  둥실 둥실 둥실 둥실‥‥    바다는 춤추네.  추울렁 출렁 추울렁 출렁  어어 내 젊은 가슴에도 바다는 춤추네  추울렁 출렁 추렁 출렁  - 金海剛 「출범의 노래」에서 -    이처럼 음성상징이 사물의 형태를 역동성 있게 표현함으로써 실감을 줌은 물론, 생명이 있는 언어가 독자에게 주는 인상은 평면적이나 단순하지가 않고 보다 입체적임을 볼 수 있다.    (4) 알레고리    알레고리(Allegory)는 諷諭 혹은 寓喩라고 풀이된다. 어원은 Speaking otherwise의 뜻으로 그리스어 allegoria 즉 allos (other)+(agora[speaking])에서 온 말이다. 원관념을 배후로 두고 보조관념으로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알레고리는 은유적 과정의 전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더러는 확장된 은유로 규정되기까지 한다.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원관념 A를 다른 구체적인 보조관념인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하게 암시하면서 원관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풍자․독설․냉소․야유 등의 비판적 표현에 적합하므로 예로부터 격언이나 속담 등에 잘 쓰인 비유이었다. 우화시나 풍자시 그리고 사회시 등은 이런 방법의 결과라고 하겠다. 굳이 우화와 구별을 해서 본다면 반드시 교훈성이 없어도 무방하고 동식물 외의 인물도 등장시킬 수 있다. 알레고리는 비유의 입체사진인 것이라고 할만큼 비유의 방법상 포괄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므로 아이러니(irony), 파라독스(paradox), 유우머(humour) 등이 부대조건처럼 따라다니며 이로써 표현 효과를 높인다. 알레고리의 대표적인 것은 「이솝의 우화」이다. 우화는 동물이나 식물의 생활 풍습으로 구성되는데 「이솝의 우화」에는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나 「구약성서」의 「사사기」에는 식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알레고리로 씌어진 시조도 많이 있다.    가마귀 검다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건 너 뿐인가 하노라    - 길 재 -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호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잇것 씻은 몸을 더럽힐가 하노라    - 정몽주 모친 -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아 웃지 마라  구만리 장천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이니 네오 지오 다르랴    - 李 澤 -    모두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교훈시요 풍자시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라 해서 반드시 동물이나 식물이 등장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에 나오는 ꡐ씨 뿌리는 자ꡑ 는 즉 ꡐ목자ꡑ요, ꡐ씨ꡑ는 ꡐ천국의 복음ꡑ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기반         5. 客觀的 相關物      객관적 상관물은 시작의 방법으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표현해 주는 어떤 사물, 정황, 혹은 일련의 사건을 발견하여 표현해야 한다. 이러한 사물, 정황, 사건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한다.  엘이어트(Eliot. T.S)가 말한 바    정서를 예술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방도는 ꡐ객관적 상관물ꡑ 을 발견하는 것, 말을 바꾸면 그 특정한 정서의 형식을 심는 한 묶음의 사물, 하나의 정황 일련의 사건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 형식이란 감각적 경험으로 끝나야 하는 외적 사실이 주어지면 정서가 즉시 환기되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면 가보세, 자네와 나와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에 퍼질 무렵,  밤 내 잠 못 이루는 헐찍한 일박여관과  굴 껍질을 내놓은 톱밥 깔린 식당에서  중얼거림이 새어나는 골목,  거의 인기척도 없는 거리를 빠져서 가보세  음흉한 의도에서 우러나오는  진저리나는 시비처럼 나닫는 거리는  압도적인 문제로 자넬 인도할 걸세․  오 ꡐ무엇이냐?ꡑ 고 묻걸랑 말게.  우리 가서 방문이나 하세.    방안에는 오가는 아낙네들이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고    창 유리에 둥을 문지르는 노오란 안개  창 유리에 주둥이를 문지르는 노오란 연기    이 시는 (J. 앨프릿 프루프록의 연가)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의 첫 부분이다. 주인공의 모노로그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가 된 환자 같은 저녁, 미켈란젤로를 이야기하는 하잘 것 없는 응접실 아낙네들과, 노오란 안개와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모두가 다 프루프록이라는 인물의 세계와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 위의 시 가운데서 한 부분을 찾아보면    나는 이미 그것들을 다 알았네, 그것들을 다 알았네  그 저녁들, 아침들, 오후들을 다 알았네,  나는 커피 스푼으로 나의 생을 되질해 나누었네.    이 시의 삼 행인 ꡒ나는 커피 스푼으로 나의 생을 되질해 나누었다ꡓ는 자기 생을 구체화해 주고 있는 객관적인 상관물 ꡐ커피 스푼ꡑ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상징적 수법이라고 하겠다.      6. 自動記述法      자동기술법(Automatisme)은 초현실주의자 앙드레브르통(Breton andre)이 창시한 방법이다. 그 후 초현실주의자들은 세계와 인간을 새로이 들여다보려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독특하고도 새로운 인식론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론은 현실은 도덕, 철학, 법률, 미학 등의 낡은 관념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조작된 현실을 탈피하여 진정한 삶의 공간을 찾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던 꿈의 세계를 기술하게 되고 자동연상(the automatic association)을 문학에 끌어들인 것이다.  의식이나 의도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의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구치는 이미지의 분류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것을 자동기술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아니하고 이성을 발동하여 합리성이나 논리성이 개재되면 자동연상작용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전개되는 무의식의 흐름이 중단되거나, 그 이미지가 파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브르통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를 응용하여 정신병 환자에게서 들으려고 한 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들으려고 시도한 데서 발명케 되었다는 자동기술법은 많은 동조자를 얻어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이상을 비롯한 신백수, 이시우 둥 1930년 대의 시인들에 의해서 실천되었다.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구경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가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지아니하는사람의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하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 李箱 「詩第三號」전문 -    이 시를 읽으면 브르통이 말한 ꡒ이성의 모든 속박을 배제하고 미학적 혹은 도덕적인 일체의 고려도 계산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ꡓ 라는 표현을 수긍케 된다.  ꡒ싸움하는 사람 =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ꡓ, ꡒ싸움하는 사람이 싸움하는 구경을 하고 싶거든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 싸움하는 것을 구경하든지ꡓ 등에서 보는 바처럼 논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상인의 사고로써는 이해조차 어렵다. 그러므로 잠식의식의 자동기술을 떠나서는 포착할 수 없는 독특한 인간정신의 내면을 조명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무의식의 세계만이 참된 삶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을 어떤 정신적 구속에서 풀어 자아의 인식에 도달 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장 새로운 방법임을 자부할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는 파괴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이단시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617    시의 구조와 행•연 댓글:  조회:11456  추천:0  2019-01-14
현대시의 시작법 - 시의 구조와 행•연      1.시의 행과 연    시의 구조는 행과 연을 나눠볼 수 있다. 행은 단어, 구, 절 또는 그것들의 연합으로 구성되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된다.  김춘수는 시의 행과 연이 이루워지는 이유를 세가지로 들고 있는데, 리듬의 단락, 의미의 단락, 이미지의 단락이 그것이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天然히    울타리 밖에도 花草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殘光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박용래,「울타리 밖」    이 시에 '天然히'가 한 연으로 놓여있는데 그만큼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天然히'는 앞과 뒤에 있는 각 연과 맞먹는 이미지의 중량을 작가가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2. 시의 형태와 행•연    시를 형태상으로 구분하면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나누어진다. 이 중 정형시는 자유시나 산문시와 달리 형태가 우선하므로 그 형태로부터 작가가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시조에서 보았듯 정형시는 틀이 우선하므로 행과 연은 그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만큼 틀이 우선하고 작가의 의도는 그 다음이다. 정형시의 행과 연은 그 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春三月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터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이영도, 「아지랑이」    이 작품은 정형시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현대시조의 모습을 갖고 있다.  회화적인 형태로 시행의 리듬을 시조의 음수율에 기대기 보다,  음수율을 뒤로 숨기고 시각적으로 행을 배열하여 회화적 리듬을 살리고 있다.  이와는 달리 자유시는 틀에 우선하지 않는다. 행과 연은 작가의 의도에 맡겨져 있다.  자유시에서 우리가 리듬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유사한 어구나 어절을 사용 때문인데,  리듬이란 반드시 정형의 틀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3. 리듬과 행•연    Ⅰ. 외국 시와 우리 시의 정형율    정형시의 리듬은 압운과 율격을 기본으로 한다. 압운은 영시나 한시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시행의 시작, 끝, 중간에 유사한 소리는 음절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그 반복은 단순한 소리의 반복이 아니라 엄격한 체계를 가진 소리의 반복이란 점에 유의해야하는데  우리의 언어는 첨가어로 음절 의식이 약해서 소리의 반복이 음수 또는 음보 단위로 형성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형시에서는 압운 형태의 구조를 주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2. 자유시의 리듬    자유시에서 리듬을 창조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그 첫째가 전통적인 시의 율격을 적절하게 변형시켜 운용하는 방법이다.    별똥 떠러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정지용,「별똥」    이 시를 2음보로 읽으면 우리의 전통 시가의 율격을 금방 느낄 수 있다.  2음보로 된 한 행을 각각 한 연으로 놓고 있어, 한 행 한 행에 여운이 감도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자유시에서 리듬을 살리는 둘째 방법은 전통적인 시가, 무가, 민요 등의 양식 또는 그 어투를 적절히 차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동일한 형태소, 낱말,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이다.      3. 이미지와 행•연    Ⅰ. 이미지의 개념    문학적 용어로서 이미지는 대개 3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넓은 의미로 시나 그 밖의 문학 작품에서 축어적 묘사나 암시 또는 직유, 은유에 사용되는 보조관념들로  언급된 감각적 지각의 모든 대상과 특성들을 의미한다.  둘째, 좁은 의미로 시각적 대상이나 장면의 묘사만을 의미한다.  셋째, 비유의 보조관념들을 의미한다.      4. 이미지의 강조와 행•연    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  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  돌아갈 것이 없는 빈 몸이다.  뒷산은 뒷산은 내 몸이다.  신달자,「뒷산」    이 작품은 감각적 특성보다 그림자→빈 몸→내 몸이라는 의미를 따라가다보니,  감각적 특성은 시행 속에 숨고, 의미의 단락을 분명히 하는 보다 논리화된 시행을 이룬 것이다.    5. 이미지의 종류와 행•연    시에서의 이미지는 언어발달의 단계에 따라 정신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로 나누기도 하고,  관념에 봉사하느냐 아니하느냐에 따라 서술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로 나누기도 한다.  정신적 이미지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의 감각기관에 의해 이루지는 현상으로  두 개 이상의 다른 감각이 합해진 형태는 공감각이라 한다.  비유적 이미지는 비유의 보조관념, 상징적 이미지는 상징적 표현 그 자체가 이미지가 된다.  시의 행과 연은 이미지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보다,  첫째는 개별적 이미지 또는 이미지의 단락에 주어지는 작가의 강조에 따라 다르고,  둘째는 회화적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6.회화적 구성과 행•연    회화적 리듬은 그 특성상 시각적 형태로 강조된다.  시각적 형태를 드러내는 대체로 세 가지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사실적 구성과 기하학적 구성, 그리고 기성품을 모방한 구성이 그것이다.  사실적 구성은 한 편의 시가 한 폭의 풍경화가 되도록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이다.  언술형태로 보자면 묘사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기하학적 구성은 시행을 적극적으로 시각화하는 형태이다.  사실적 구성이 언어의 표현 방법에서 찾아진다면 기하학적 구성은 시행 그 자체의 배열에서 찾아진다.  기성품을 모방한 구성의 한 예로는 오규원의 시 「프란츠 카프카」에서의 식단표 형식을 빌어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7. 의미와 행•연    Ⅰ. 의미와 양태    시에서의 의미란 시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것 또는 진술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묘사라 하더라도 서경적, 서사적, 심상적인 작품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있기도 하고,  그것들은 또 축어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한 만큼  그 의미의 가시적 양태는 다양하다.  진술 역시 독백적, 권유적, 해석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며, 서로 섞여 있기도 하다.    2. 의미와 연의 기능    정형의 시행을 가진 형태가 아닌 모든 시에서는 연은 작가의 의도에 맡겨져 있다.    가느다란 갈비뼈가 가만히 만져지는 한 마리 참새의 여윈 가슴과 같다 햇볕이 오히려 춥다  마지막 술 한사발이 조금씩 조금씩 엎질러지고 있다  정진규,「봄이 올 무렵」    이 작품은 이미지 도는 의미의 단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산문적으로 엮고 있다.  그 의도 속에는 단락별의 이미지라든지 의미보다 그것들이 어울려서 얻어지는  전체적인 정서의 질량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의미와 전형적 형태의 행•연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는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이 작품에서 보듯, 각 연은 시행의 다수와 관계없이 의식의 이동 단위로 연이 나누어져 있다.  그러니까,  '사랑'을 잃었다는 지각(1연)→"잘 있거라"라고 인사하고 싶은 것들(2연)→"내 사랑"을 본 것(3연)→ 이런 의식의 편차와 단속(단절과 이어짐)이 연으로 구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4. 양행 걸침과 행•연    양행 걸침이란 일상적 구문의 형태가 시행에서 의도적으로 분절되어 두 행에 걸치는 것을 두고 일컫는다.  즉 일상적인 구문과 시행의 구문이 동일하지만 행의 배열이 달라지는 것이다.  
616    시의 표현 및 비유와 상징 댓글:  조회:3423  추천:0  2019-01-14
시의 표현  (1) 비유(比喩, metaphor) ① 비유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의미를 다른 사물에 빗대어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② 비유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원관념)과 비유하는 사물(보조 관념)의 상관 관계가 성립된다. 즉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에 유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③ 대개의 경우 비유는 표현의 구체성, 직접성, 선명성을 높이는 수단이 되며, 일상어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   ④ 비유의 종류   ㈀ 직유(直喩) :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처럼', '∼같은', '∼인듯'과 같은 말로 직접 연결시키는 표현 기법→ 유사성 ㈁ 은유(隱喩) : 원관념과 보조 관념을 'A=B' 또는 'A=B 이다'로 연결하는 방법→동일성 ㈂ 대유(代喩) :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 나타내는 표현법 ㉠ 환유(換喩) : 사물의 속성 특징으로 그 사물을 대표함. ㉡ 제유(提喩) : 사물의 일부분으로 그 사물 전체를 대표함. ㈃ 풍유(諷喩) : 원관념을 숨기고 보조 관념만으로 뒤에 숨겨진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방법. ㈄ 의인(擬人) : 인간이 아닌 사물이나 관념에 인격을 부여해서 인간적인 요소를 지니게 하는 표현법. (2) 상징(象徵, Symbol) ① 어느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요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 기법이다. ② 상징은 의미의 암시성과 다의성을 지닌다. ③ 비유에서는 원관념:보조 관념=1:1의 유추적 관계를 보이지만 상징에서는 1:다수의 다의적 관계이다. ④ 상징의 종류 ㈀ 관습적 상징(고정적 사회적 제도적 상징) 일정한 세월을 두고 사회적 관습에 의해 공인되고 널리 보편화된 상징                 십자가 → 기독교, 비둘기 → 평화 ㈁ 개인적 상징(창조적 문화적 상징) 관습적 상징을 시인의 독창적 의미로 변용시켜 문화적 효과를 얻는 상징              윤동주의『십자가』에서 십자가의 의미→윤동주 자신의 희생 정신을 나타냄. ※ 기타 상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자연적 상징 : 자연물이 인간에게 주는 보편적 의미의 상징              해→희망, 밤→절망 2. 우의적 상징 : 풍자적 우희적 통로로 상징하는 것              빼앗긴 들→일제 치하의 조국 3. 기호적 상징 : 약속에 의해 정해진 것             숫자, 문자, 부호, 신호 4. 원형적 상징 : 시대와 공간에 관계없이 신화 이후에 문화에 빈번하게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상징             날개에서의 『방』→단군 신화에 나오는 『동굴』의 원형 상징. * 상징과 은유 은유는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한 유추적 결합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상징은 상관성이 먼 상징어를 연결함으로써 의미가 확대, 심화되는 언어 사용의 방법이다.    비유와 상징의 차이   비유와 상징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비유는 그 구조가 아무리 복잡한 것일지라도 궁극적으 로는 원관념에 해당하는 뜻의 파악이 가능하나, 상징은 원칙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비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간에 1:1의 대응 관계를 지니지만 상징은 보조 관념이 여러 가지 원관념으로 쓰일 수 있는 다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솜이불을 덮고 선 겨울 나무'라는 표현에서 솜이불의 원관념은 '눈[雪]'이 분명하므로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연인이나 조국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상징 은유 ① 암시적, 다의적이다 ② 한 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③ 상징 의미가 상징 뒤에 숨어 있다. ① 비교, 유추적이다. ② 한 편의 작품에서 1회적으로 나타난다. ③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관계가 명확하다. * 직유 직유와 은유의 차이는 비유의 효과적인 차이이다. 따라서, 시밀리가 축적된 것이 메타퍼이고, 그와 반대로 메타퍼가 부연된 것이 시밀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시밀리가 두 사물을 직접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메타퍼는 두 사물중 하나를 다른 것과 순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한 사물을 통해서 말하거나 하는 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이 시는 전적으로 직유에 의하여 이루어진 시로서 분노와 종교, 정열과 사랑, 강낭콩 꽃과 푸른 물결, 양귀비 꽃과 붉은 마음 등이 모두 유사한 것으로 비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매우 쉽고 독자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경우지만, 현대의 어려운 시에서는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관계가 불분명하고 비논리적 이어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너무 작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비유는 기발은 할지언정 결코 좋은 비유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갑시다. 그대와 나는 저녁이 하늘을 향해 퍼져가고 있으니 마치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T.S.Eliot 여기에서는 저녁과 마취된 환자를 비교하고 있는 직유의 기법을 쓰고 있지만, 저녁(evening)과 환자(patient)가 어떻게 해서 유사성을 지니는지 독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저녁의 어두움이 퍼져가고 있는 모습은 곧 마취되어 몽롱해지는 환자의 의식과 비슷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엘리어트가 쓴 비유의 참뜻을 이해하게 된다. 현대시의 이미지나 비유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유는 그 형태에 따라서 단일직유(simple simile)와 확충직유(enlarged simile or expanded simile)의 둘로 나누는데, 전자는 단어 사이의 비교이고 후자는 문장이나 구절 사이의 비교이다. 앞에 인용한 『논개』에서 씌여진 비유라든지 서정주의 『문둥이』에는 단일 직유가 나타나 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특히 '꽃처럼 붉은 울음'은 공감각적 이미지가 나타난 직유로서 매우 독창적이다. 다음의 영랑시는 확충직유의 한 예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 은유 은유의 구조적 특질은 다음과 같다.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 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커질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며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박두진 이 시에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원관념은 꽃이다. 그 꽃은 여러가지 다양한 사물에 바로 맺어져 있다. 그리하여 시적인 긴장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의미의 함축성도 높여주고 있다. 원관념인 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꽃의 개념이지만, 이것이 '속삭임', '울음', '피흘림', '핏방울', '정적', '호심' 등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여러 개의 보조관념과 동일성을 근거로 결합되어져 있다. 그러나, 꽃과 이상의 보조관념들은 내부 관계의 공통성의 불일치를 가져와 정적 은유를 형성한다. 未堂시의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처럼 외형상의 유사나 동일성보다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이며 가치적인 동일성이다. 이렇게 시에 있어서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동일성이 희박할수록 좋은 시가 된다. 현대시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이 없이 이질적인 사물과 결합시키는 경향이 더욱 시의 성과를 얻는다. 현대시의 특징이 바로 은유의 독창적인 사용에 있음을 생각할 때 시에 있어서 은유의 비중은 크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김광균 이 시에서 눈은 '그리운 소식' '여인의 옷벗는 소리' '추억의 조각' 등으로 정적인 은유가 된다.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音符들이 떨어진다. 은행 잎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語彙들을 적어 본다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을 한다.         양명문 원관념 은행잎은 보조관념인 '노오란 音符'로, '제법 노오란 발음'은 공감각으로 표현되어 복합은유(mixed metaphor)로 구성되어 있다. 광화문은 한 채의 소슬한 종교.        서정주 바다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추억의 꽃물결 우에 소북이 지다.        김광균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燭불이요. 그대 저 門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落葉이요. 잠깐 그대의 뜯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네를 떠나리다.          김동명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김광섭 위에 든 시들은 단순한 은유가 나타나 있는 비교적 성공한 작품이다. 따라서 '내 마음은 호수요' '내마음은 燭불이요'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등의 은유에서 '내 마음'이라는 원관념과 '호수', '燭불', '나그네','낙엽', '물결'이라는 보조관념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鳥籠도 없이 原罪의 噴水가 넘치는 입에서 한 마리 두 마리 띄워 보낸 다.  들은 울지도 않는다. 시간은 앞에 서서 달음박질하고 는 항상 시간의 뒤안에서 나고 있다가는 파다닥 파다닥 날개쭉지를 뒤채기고는 시간 위에 머리 박고 죽어가는 다.             신기선 이 시에는 '새'라는 보조관념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지만 원관념은 없어서 매우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탄식』이라는 시제목이 곧 원관념인 것을 알게 되고, 구체적으로 그 『탄식』이 무늬 놓는 이미지를 깨닫게 된다. *  의인법(personification)-활유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에서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해서 표현하는 비유로서, 활유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많이 쓰던 이 수사법은 메타포(metaphor)의 한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성난 파도', '시냇물이 소근댄다', '구름이 달린다'등 자연물을 인간화해서 그 성질과 동작을 표현하는 이러한 의인법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씌어지고 있다. 우리의 조선소설 중에는『장끼전』,『별주부전』,『서동지전』과 같이 전체가 의인법으로 되어진 작품들이 있다. 시에 있어서도 이 의인법은 널리 씌어지고 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넛은 수녀보다도 더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너의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김동오  동명의 파초는 김현승의『푸라타나스』, 이육사의『광야』와 더불어 의인법을 써서 성공한 대표적인 시다. 그밖에도 시 속에 부분적으로 의인법이 씌어진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이상의 시에서 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滅해간다. 食口야封한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鍼처럼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 그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壽命을헐어서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여달렸다. 門을열려고안열리는門을열려고 이상 라고 한 것은 띄어쓰기를 전혀 안한 시로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졸른다'라든지 '우리 집이 앓나보다' 등은 곧 의인법으로 수식되어 있는 시구이다 다음의 시도 활유법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먹구름이 몰고온 여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판으로 모여 든다. 할아버지 수염을 달고 익어가는 옥수수가 치마폭에 감싸여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알맹이 하나 하나에 이쁘디 이쁜 개구장이 꼬마들이 웃음소리가 가득차 있다. 신나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멋진 노래가 되어 입안 가득히 살아져 내리는 것이다. 여름이 오면 멋진 하모니카를 신나게 불고 싶어진다.        용혜원 '이야기들' '옥수수'를 의인화하여, 동심에 어린 생활의 서정이 옥수수에 이입되어 해학미를 더하고 있다.   * 인유(引喩, allusion) 인유라는 것은 고대의 신화, 전설이라든지 고전, 역사, 성서, 고사 등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 스토리, 시구 등을 인용하여 쓰는 비유를 말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 인유는 널리 씌어진 표현법으로서 동양에서 고대 중국의 문헌이라든지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및 성경 등은 시와 산문을 통털어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위 시 중 첫 연의 '4월'은 4 19학생혁명을 비유한 것이고, 둘째 연의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민중의 자각이 봉기했던 동학혁명의 함성을 뜻하며, 세째 연의 '아사달 아사녀'는 신라 시대에 불국사의 무영탑을 조각하느라고 비연을 감수한 석수와 그 아내를 두고 말한 인유이고, '한라에서 백두'는 한반도 3천리강산을, '쇠붙이'는 모든 무기를 말한 대유이다. 신동엽은 특히『진달래 산천』을 노래하고, 평화를 추구한 레지스탕스 시인이었다.  * 성유(聲喩) 의성어(onomatopoeia)라든지 의태어는 곧 음성을 되풀이 하여 효과를 내는 표현법이다. 전자는 자연이나 인간의 소리 등을 흉내내어 표현한 것이고, 후자는 사물의 모습이나 태도 등을 흉내내어 적는 표현법이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골어 흰 구름 걷는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박두진 박두진의『청산도』라든지 『해』에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씌어졌다. * 상징 비유(은유)와 비교해서 말하면 상징은 원관념을 떼어 버리고 보조관념만 남아 있는 형태이다.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셔질 그런 정도로 아팠다. 이내 어떤 정신도 발아하지 않았다. '사과'는 도입해온 보조관념이다. 원관념도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서 사과의 의미는 '죽음'을 암시할 뿐이다. '떨어지다' '부서지다' '움트지 않음' '아픔'은 다 죽음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동일성이다. 그래서 원관념의 '최후'인 죽음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감춰져 있을 뿐이다. 상징의 본질적 성격으로서 동일성을 든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이 살아있다는 생명을 느낀다. 눈과 기침의 내부관계는 공통성의 일치를 찾지 못한다. 다만 상상력으로 '눈'과 '기침'은 상징으로서, 이 감각적 이미지는 순결과 진실성이라는 관념과 밀착된 상징이다. 3연의 눈의 생명성은 이 순결의 생명성이며 기침을 하는 행위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성의 관념과 밀착되어 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이 시에서 '문둥이'는 시인 자신의 정신적 고뇌 자학을 상징하며 그것은 이 시의 문맥 속에서만 의의를 지닌 개인적 상징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이 시의 리듬은 상징의 암시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소리의 신비감으로써 무엇인가를 우리의 영혼에 공명케 하려는 것이 상징주의 순수시가 노린 상징의 기능이라면, 이 시의 리듬이 이미지와 결합되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한 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상징의 암시성을 효과적이게 한다. '풀'이 지닌 드러냄은 감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조화는 리듬이 빠른 템포로 흐르면서 주술성의 어떤 오묘한 맛을 내고 있는 데서 발생한다. 특히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울고 일어난다는 반복되는 논리적 모순과 융합되어 이 시의 리듬은 주술성을 느낀다. 이 주술의 리듬속에 풀은 민중을 감추고 바람은 그 민중이 살고 있는 실존적 상황을 감추고 있는 상징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것이다. 바람과 대비된 풀의 동작에서 민중의 끈질기고 활발한 삶의 양식만을 시인과 독자가 다같이 관심을 두었다면 이 시도 영락없이 드러남의 알레고리시가 되었거나 단순한 알레고리로서만 수용되었을 것이다. '풀'을 삶의 움직임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동력'으로 느끼게 한 것은 주술적 리듬, 음악적 성격의 개입으로 드러남과 감춤의 조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다른 곳에서 각각 자기와 만나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 그것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규원 '만물의 흔들림'은 상징이다. 역동적 이미지는 "잎은 흔들려서" "바람은 오늘도 분다"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등 여러 장면과 결합되어서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곧 '흔들림'의 역동성은 작품 전체를 확산, 생의 여러 감각을 일깨운 상징이다.   상징과 기호   상징과 은유 은유는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한 유추적 결합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상징은 상관성이 먼 상징어를 연결함으로써 의미가 확대, 심화되는 언어 사용의 방법이다. (3) 현대시의 표현 기교 ① 반어(反語, irony) : 작가가 의도와는 전혀 다른 표현을 하여 날카로운 멋과 예리한 감각을 발휘하는 기법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반어적 구조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② 역설(逆說, paradox) : 본질적으로는 참이나 외견상으로는 모순, 충돌되는 진술 형태, 모순되는 사물이나 관념을 연결하여 경이감, 신선감을 주는 기법. 모순 어법, 모순 형용의 표현 등이 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모순어법,  찬란한 슬픔의 봄-모순 형용 ③ 자동 기술법 : 인간 내면의 깊은 생각, 관념을 아무런 제재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출시키는 것이 인간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 믿고 꿈을 꾸는 자가 그 순간 그대로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표출하듯이 무의식의 세계를 기술하는 기법이다.  
615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 지성사, 2003 댓글:  조회:1881  추천:0  2019-01-09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 지성사, 2003          독자에게    어리석음, 과오, 죄악과 인색에  정신을 얽매이고 몸은 들볶이니,  우리는 친숙한 뉘우침만 키운다,  거지들이 몸에 이를 기르듯.    우리의 죄는 끈질긴데 후회는 느슨하다 ;  우리는 참회의 값을 톡톡히 받고  가뿐하게 진창길로 되돌아온다,  비열한 눈물에 때가 말끔히 씻긴다고 믿으며.    악의 베갯머리엔   홀린 우리 넋을 슬슬 흔들어 재우니,  의지라는 우리의 귀금속도  이 능숙한 화학자 손엔 모조리 증발한다.    우리를 조종하는 줄을 쥐고 있는 건 저 !  우리는 역겨운 것에 마음이 끌려  날마다 을 향해 한 걸음씩 내려간다,  겁도 없이 악취 풍기는 어둠을 지나.    늙은 갈보의 학대받은 젖퉁이를  핥고 물어뜯는 가난한 난봉꾼처럼  남몰래 맛보는 쾌락 어디서나 훔쳐  말라빠진 귤인 양 죽어라 쥐어짠다.    우리 머릿골 속에선 수백만 기생충처럼  ..떼가 빽빽이 우글거리며 흥청대고,  숨쉬면 이 숨죽인 신음 소리 내며  보이지 않는 강물 되어 허파 속으로 흘러내린다.    강간과 독약이, 비수와 방화가  비참한 우리 운명의 초라한 캔버스를  그들의 짓궂은 구상으로 아직 수놓지 않았다면,  아! 그건 우리의 넋이 그만큼 대담하지 못하기 때문!    그러나 승냥이, 표범, 암 사냥개  원숭이, 전갈, 독수리, 뱀,  우리 악의 더러운 가축 우리에서  짖어대고 악쓰고 으르렁거리고 기어다니는 괴물들 중에서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  그놈은 바로 !-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축복    전능하신 하느님의 점지를 받아  이 따분한 이 세상에 나타날 때,  그의 어머니는 질겁하고 신을 모독하는 마음 가득하여  측은해하는 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다 :    -“아! 이 조롱거리를 기르니느  차라리 독사 한 뭉치를 몽땅 낳고 말 것을!  내 뱃속에 속죄의 씨앗을 배버린  덧없는 쾌락의 그 밤이 저주스럽다!    내 초라한 남편의 미움거리로  당신은 수많은 여자 중에 나를 골랐으니,  그리고 연애 편지 던지듯 불꽃 속에  이 오그라진 괴물을 내던질 수도 없으니.    당신의 심술로 저주받은 이 연장 위에  나를 짓누르는 당신의 증오를 퉁겨 보내고,  독 있는 새싹이 피어내지 못하게  이 역겨운 나무를 마구 비틀어놓으리!”    그녀는 이렇게 원한의 거품을 삼키며,  영원한 섭리도 알지 못하고,  저 스스로 계곡 밑에  어미의 죗값에 바쳐질 화형의 장작을 쌓는다.    허나 의 보이지 않는 보살핌 아래  이 불우한 는 햇볕에 취하고,  마시고 먹는 모든 것에서  신들의 양식과 주홍빛 신주를 찾아낸다.    그는 바람과 놀고 구름과 이야기하고  십자가의 길에 노래하며 취하니,  그의 순례의 길을 따르는 은  숲속의 새처럼 즐거운 그를 보고 눈물짓는다.    그가 사랑하려는 이들은 모두 두려워 그를 지켜보고,  아니면 그의 평온함에 대담해져,  그에게서 탄식을 끌어내려 하고,  자신들의 잔인함을 그에게 시험해본다.    그의 입에 들어갈 빵과 술에  더러운 가래와 재를 섞어놓고,  그가 만지는 것은 착한 척 내동댕이치고,  그의 발자국을 밟았다고 자신을 나무란다.    그의 아내는 광장에 나와 외쳐댄다 :  “남편이 나를 미인으로 여겨 우러러보니,  나는 고대의 우상 역을 해야겠다,  그녀들처럼 나도 몸에 금칠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향과 향유, 미르,  아첨과 고기와 술에 취하리라,  나를 찬미하는 마음에서 신에 대한 신의 경의를  웃으며 가로챌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그리고 이 불경한 익살극에 싫증이 나면,  그에게 내 가냘프고 질긴 손을 얹고  하르푸이아 손톱 같은 내 손톱으로  그의 심장까지 길을 뚫으리라.    떨며 딸딱거리는 새 새끼 같은  새빨간 심장을 그의 가슴에서 도려내어,  내 귀여운 짐승 물리도록 먹으라고  땅바닥에 픽 던져주리라!”    그의 눈에 빛나는 옥좌 보이는 저 을 향해  고요한 은 경건한 두 팔을 들고,  그의 맑은 정신은 번개처럼 멀리 번득여  미쳐 날뛰는 무리들을 그에게 가려준다 :    -축복받으시라, 하느님이시여, 당신이 준 괴로움은  우리의 부정을 씻어주는 신성한 약,  강한 자들을 거룩한 쾌락에 준비시켜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순수한 정수!    나는 압니다, 거룩한 의 축복받은 서열 속에  당신께서 을 위해 한 자리 남겨두시고,  옥좌 천사, 힘의 천사, 주 천사들의  영원한 향연에 도 불러주신 것을.    나는 압니다, 고뇌야말로 유일하게 고귀한 것임을,  이승도 지옥도 이것만은 물어뜯지 못할 것임을,  또 내 신비로운 왕관을 엮기 위해선  모든 시대와 전 우주의 동원이 절대로 필요한 것임을.    허나 옛날 팔미르가 잃어버린 보석도  알려지지 않은 금속도, 바다의 진주도  설령 당신의 손으로 꾸민다 해도,  이 눈부시고 빛나는 아름아운 왕관엔 미치지 못하리 :    왜냐면, 그것은 창세기의 거룩한 광원에서 퍼낸  오로지 순수한 빛으로만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리고 인간의 눈은 제아무리 찬란하게 빛난들  흐려지고 애처로운 그 빛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상승    숱한 못을 넘고, 골짜기 넘고  산을, 숲을, 구름을, 바다를 넘어  태양도 지나고, 창공도 지나,  또다시 별 나라 끝도 지나,    내 정신, 그대 민첩하게 움직여,  파도 속에서 황홀한 능숙한 헤엄꾼처럼,  말로 다할 수 없이 힘찬 쾌락을 맛보며  깊고깊은 무한을 즐겁게 누비누나    이 역한 독기로부터 멀리 달아나  높은 대기 속에 그대 몸 씻어라,  그리고 마셔라, 순수하고 신성한 술 마시듯,  맑은 공간을 채우는 저 밝은 불을.    안개 낀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끝없는 슬픔에 등을 돌리고,  고요한 빛의 들판을 향해 힘찬 날개로  날아갈 수 있는 자 행복하여라 ;    그의 생각은 종달새처럼 이른 아침  하늘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올라,  -삶 위를 떠돌며 꽃들과 말없는 사물들의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알아낸다!            교감    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씩 어렴풋한 말소리 새어나오고 ;  인간이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가면,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끝없이 넓고  어둡고 깊은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우러지듯,  향기와 색채와 소리 서로 화답한다.    어린애 살결처럼 싱싱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들이 있고,  -또 다른, 썩었지만 기세등등한 풍요한 향기들이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확산되어,  정신과 관능의 환희를 노래한다.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한다    페뷔스 신이 상像들에 금칠하기를 좋아하던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한다.  그때엔 사내도 계집도 몸이 민첩하고,  거짓도 근심도 없이 삶을 누렸고,  다정한 하늘은 그들의 등을 어루만져  그들 몸의 귀중한 기관의 건강을 단련시켜주었다.  시벨 여신은 그때 풍성한 산물이 넘쳐  많은 아들들이 조금도 버거운 짐이 되지 않았고  어미 이리 골고루 애정 쏟듯,  검붉은 젖꼭지로 만물을 적셨다.  사내는 멋있고 건장하고 억세니,  자신을 왕이라 부르는 미녀들에 우쭐할 수 있었고 ;  티없이 깨끗하고 흠 없이 자란 과일들의  그 매끈하고 단단한 살점은 물어뜯고 싶었다!    오늘날 남녀의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는 잘이ㅔ서  옛날 저 자연스런 위대한 모습을  이 마음속에 그려볼 때면,  공포만을 자아내는 그 끔찍한 그림 앞에  그의 넋은 음산한 오한에 휩싸이는 것을 느낀다.  오, 옷을 아쉬워하는 괴물들!  오, 꼴좋은 몸뚱이들! 오 탈을 씌워야 할 몸통들!  오, 비틀어지고, 말라빠지고, 튀어나온 배와 혹은 축 처진 가엾는 몸뚱어리들,  이 매정하고 태연하게  어렸을 때, 그의 청동 배내옷 속에 둘둘 감아둔 몸뚱어리들!  그리고 아! 그대 여인들이여, 양초처럼 창백하고,  방탕이 좀먹고, 방탕이 길러주는 그대들,  그리고 그대 어미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악덕과  다산의 온갖 추악함 끌고 다니는 처녀들이여!    정녕 우리 타락한 민족들은  옛 민족들이 모르는 미美를 가지고 있다 :  가슴의 궤양에 좀먹힌 얼굴들과  우울의 미美라고나 할 그런 것을,  그러나 늦게 온 우리 뮤즈의 발명품도  우리 병든 인종이 젊음에 바치는  깊은 흠모를 막지 못하리,  -성스러운 젊음, 순박한 모습, 다정한 이마  흐르는 물처럼 맑고 깨끗한 눈동자,  그 향기, 그 노래, 그 부드러운 열기를  하늘의 푸름처럼, 새처럼, 꽃처럼 무심코  모든 것 위에 널리 퍼트려주는 젊음에!            등대들    루벤스, 망각의 강, 나태의 정원,  그곳에서 사랑하기엔 너무 싱싱한 살 베개,  그러나 거기선 생명이 끊임없이 넘치고 용솟음친다,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에 밀물처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깊숙하고 어두운 거울,  거기서 사랑스런 천사들, 신비 가득한  다정한 미소지으며 그들의 나라 에워싼  빙하와 소나무 그늘에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 소리 가득한 음산한 병원,  장식이라고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  눈물 섞인 기도가 오물에서 풍기고  겨울 햇살 한 줄기 불쑥 스친다 ;    미켈란젤로, 어렴풋한 곳,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헤라클레스 무리들과 그리스도 무리들이 어울리는 곳  억센 유령들이 꼿꼿이 일어나 땅거미 어스름 속에서  손가락 뻗쳐 저희들 수의를 찢는 모습 ;    권투 선수의 분노도 목신의 뻔뻔함도  천민들의 미美는 잘도 긁어모을 수 있었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마음은 넉넉하나, 허약하고 누렇게 뜬 사나이,  퓌제, 고역수들의 우울한 재앙    와토, 수많은 병사들이 나비처럼  번쩍이며 이리저리 거니는 사육제,  샹들리에가 비춰주는 산뜻하고 경쾌한 배경은  소용돌이치는 무도장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낯선 것들로 가득한 악몽,  마녀들 잔치 판에서 삶는 태아들이며  거울 보는 늙은 여인들과 마귀 꾀려고  양말을 바로잡는 발가숭이 아가씨들 ;    들라크루아, 악천사들 드나드는 피의 호수,  거긴 늘 푸른 전나무 숲으로 그늘지고,  우울한 하늘 아래 기이한 군악대 소리  베버의 가쁜 한숨인 양 지나간다.    이 모든 저주, 이 모독, 이 탄식들,  이 황홀, 이 외침, 이 눈물, 이 들,  그것은 수천의 미로에서 되울려오는 메아리 소리 ;  결국 죽게 될 인간의 마음에는 성스러운 아편!    그것은 수천의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부르짖음,  수천의 메가폰이 보내는 하나의 망령,  그것은 수천의 성 위에 밝혀진 하나의 등대,  깊은 숲속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이 부르는 소리!    왜냐면 주여, 이것은 진정  우리의 존엄을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증거,  이 뜨거운 흐느낌은 대대로 흘러흘러  당신의 영원의 강가에서 스러져갈 것이니!            병든 뮤즈    아 내 가엾은 뮤즈! 오늘 아침 무슨 일이오?  그대의 파인 두 눈은 밤의 환영들로 가득하고  그대 얼굴에 차갑고 말없는 광란과 공포가  번갈아 비치는 것이 보이오.    푸르스름한 음몽마녀와 분홍 꼬마 요정이  그들 항아리 속에 담긴 두려움과 사랑을 그대에게 쏟았는가?  악몽이 사납고 억센 주먹질로  전실의 늪 깊은 곳에 그대를 빠뜨렸는가?    바라나니, 건강의 향기풍기는  그대 가슴에 굳센 사상이 언제나 찾아들고,  그대 기독교의 피가 고동쳐 흐르기를,    노래의 아버지, 페뷔스와 추수의 영주인  위대한 牧神이 번갈아 다스리던  옛날 음절의 수많은 선율처럼.          돈에 팔리는 뮤즈    오, 내 마음의 뮤즈, 그대는 궁궐을 바라는데,  달이 그의 을 풀어놓을 때,  눈 오는 밤의 울적한 권태의 시간 동안  그대의 시퍼래진 두 발을 녹여줄 깜부기불이라도 마련해두었는가?    그래, 대리석 같은 그대 어깨를  덧문 스며드는 밤 빛으로 되살리려나?  그대 지갑 그대 궁궐처럼 텅 비었으면,  창공의 금별이라도 따올 작정인가?    그대는 날마다 저녁의 빵을 벌기 위해  성가대 아이처럼 향로 떠받들고,  믿음 가지 않는 도 불러야 하고,    아니면 속물들 마냥 웃기기 위해,  굶주린 어릿광대처럼 아양 떨고,  남모를 눈물에 젖은 웃음도 팔아야 하리.              무능한 수도사    옛날의 수도원은 그 널따란 벽을  성스러운 의 그림으로 꾸몄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신심信心을 부추기고  엄숙한 찬바람도 진정시켰다.    그리스도가 뿌린 씨가 꽃피던 그 시절엔  지금은 그 이름도 잊혀진 한둘 아닌 명수도사가  장례마당을 아틀리에 삼아  자연스럽게 을 찬미했다.    -내 넋은 하나의 무덤, 이 무능한 수도사  나는 허구헌 세월 거기서 돌아다니며 살고 있으되,  아무것도 이 흉측한 수도원의 벽을 치장하지 않는다.    오 게으름뱅이 수도사여! 언제 나는  내 서글픈 빈곤함의 생생한 광경을 그리기 위해  내 손에 일감 주고 내 눈에 즐거움 줄 수 있으랴?            원수    내 젊은 날은, 여기저기 찬란한 햇살 비추었어도,  캄캄한 뇌우雷雨에 지나지 않았고 ;  천둥과 비바람에 그토록 휩쓸리어  내 정원에 남은 건 몇 개 안 되는 새빨간 열매.    이제 나는 사상의 가을에 다가섰으니,  삽과 쇠스랑을 들어야겠다,  홍수로 무덤처럼 커다란 구멍이 파인  물에 잠긴 대지를 새로이 갈기 위해.    그러나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갯벌처럼 씻겨진 이 흙 속에서  신비한 생명의 양식 찾아낼 수 있을지?    오 이 괴로움이여! 은 생명을 좀먹고,  이 보이지 않는 는 우리 심장을 갉아먹어  우리가 잃은 피로 자라고 튼튼해진다!            불운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려면,  시지푸스여,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  아무리 일에만 전념한다 해도  은 길고 은 짧은 것.    유명한 무덤들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 묘지를 향해  내 마음은 목이 쉰 북처럼  장송곡 치며 간다.    -수많은 보석들이 잠자고 있다,  어둠과 망각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도 닫지 않는 곳에서 ;    수많은 꽃들이 아쉬움 가득,  깊은 적막 속에서,  비밀처럼 달콤한 향기 풍긴다.            전생    나는 오랫동안 널따란 회랑 아래 살았다.  바다의 태양은 수천의 불빛으로 그곳을 물들였고,  곧고 장엄한 큰 기둥들로  저녁이면 그곳이 마치 현무암 동굴 같았다.    물결은 하늘의 그림자를 바다 위에 떠돌게 하고,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내 눈에 비치는 석양빛 속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섞어놓았다    그곳이 바로 내가 살던 곳, 고요한 쾌락 속에서,  창공과 물결과 찬란한 빛 가운데서  온통 향기 배어 있는 발가벗은 노예들에 둘러싸여,    그들은 종려 잎으로 내 이마를 식혀주었고,  그들의 유일한 일은 내 마음 괴롭히는  고통스런 비밀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길 떠난 보헤미안들    눈동자 뜨거운 점쟁이 종족들이  어제 길을 떠났다, 새끼들  등에 들처업고, 또는 새끼들 걸신 든 아가리에  늘 마련된 보물, 축 처진 젖꼭지 내맡긴 채.    사내들은 번쩍이는 무기를 지고 걸어서 간다,  제 식구들 웅크리고 있는 마차를 따라,  사라진 환영 좇는 서글픈 미련 때문에  무거워진 눈을 하늘 쪽으로 보내며.    모래 성 안쪽에서 귀뚜라미는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목청 돋우고,  그들을 사랑하는 시벨 여신은 그들 앞에 녹음을 펼쳐,    바위에 물 솟게 하고 사막에 꽃을 피운다,  이 나그네들 앞에 열린 것은  어두운 미래의 낯익은 세계.            인간과 바다    자유로운 인간이여, 그대는 언제나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그대의 거울, 그대는 그대의 넋을  끝없이 펼쳐지는 물결에 비추어본다,  그리고 그대의 정신 역시 바다 못지않게 씁쓸한 심연.    그대는 그대 모습의 한가운데 잠기기 좋아한다 ;  그대는 그것을 눈과 팔로 껴안는다, 그리고 때로  사납고 격한 이 탄식의 소리에  그대 가슴의 동요도 잊는다.    그대들은 둘 다 컴컴하고 조심스럽다 ;  인간이여,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은밀한 보물 알 길 없다,  그토록 악착같이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득한 세월을 두고  연민도 후회도 없이 서로 싸워왔다,  그렇게도 그대들은 살육과 죽음을 좋아한다,  오 영원한 투사들, 오 가차없는 형제들이여!            지옥의 동 쥐앙    동 쥐앙이 삼도내로 내려가  샤롱에게 배 삯을 치르니,  한 음울한 거지, 앙트스텐처럼 오만한 눈초리를 하고  억센 복수의 팔로 노를 잡았다.    늘어진 젖퉁이 드러내고, 옷자락은 흐트러진 채, 여자들은 어두운 하늘 아래서 몸을 비틀고,  제물로 바쳐진 한떼의 짐승들처럼,  그의 뒤에서 긴 울부짖음 소리 내고 있었다.    스가나렐은 낄낄대며 판돈을 내라 조르고,  판편 동 뤼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가를 떠도는 모든 망령들에게  백발 덮인 제 머리를 비웃던 뻔뻔한 아들을 가리킨다.    정결하고 야윈 엘비르는 상복 속에 떨면서,  지난날 애인이던 배신한 남편 곁에서  최초의 맹세의 다정스러움이 다시 빛날  마지막 미소를 그에게 구하려 하는 듯.    갑옷 입고 똑바로 몸을 세우고 있는 큰 석상의 사나이  키를 꽉 쥐로 검은 물결 헤쳐 나간다,  그러나 이 침착한 영웅은 장검을 짚고 서서  지나간 배의 자취만 굽어보며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교만의 벌    이 활기와 힘에 넘쳐 꽃피던  저 희한한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어느 날 세상에서도 이름난 어느 박사가  -믿음 없는 사람을 억지로 믿게 하고 ;  캄캄한 마음 깊숙이에서 그들을 뒤흔들고 :  아마도 순수한 만이 다닐 수 있는  박사 자신은 가본 적 없는 기이한 길을  하늘의 영광을 향해 넘어갔는데, -  너무 높이 올라간 사람처럼 겁에 질려,  악마 같은 교만심으로 우쭐해 외쳤다 :  “예수여, 아기 예수여! 나는 매우 높이 그대를 치켜올렸다!  그러나 갑옷으로 막지 않고 그대를 치려는 마음 내게 있었다면  그대의 치욕은 그대의 영광 못지 않았으리,  그리고 그대는 일개 보잘것없는 태아에 지나지 않았으리!”    그 순간 그의 이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태양의 반짝임은 베일에 가려지고 :  온갖 혼돈이 그의 지성 속을 뒤흔들었다,  옛날에는 질서와 풍요 가득한 살아 있는 신전,  그 천장 아래서 그토록 화려함이 빛났건만.  흡사 열쇠 잃은 지하실처럼  침묵과 어둠이 그의 내부에 자리잡았다.  그때부터 그는 거리를 헤매는 짐승처럼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여름과 겨울도  분간 못하고 들판을 쏘다니고,  폐품처럼 더럽고 쓸모없고 흉측해져,  어린애들의 놀림감과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름다움    나는 아름답다, 오 인간이여! 돌의 꿈처럼,  그리고 누구나 차례차례 상처받은 내 젖가슴은  물질처럼 말없는 영원한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기 위해 빚어진 것.    나는 불가사의의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고 ;  눈 같은 마음을 백조의 흰 빛에 잇는다 ;  나는 선線을 흐트러뜨리는 움직임을 미워한다,  그리고 나는 아예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가장 위풍당당한 기념비에서 빌려온 듯한  내 고상한 몸가짐 앞에서 시인들은  엄격한 추구로 일생을 탕진하리라.    왜냐면 이 온순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한결 아름답게 하는 순수 거울을 가졌기에.  그것은 나의 눈, 영원한 빛을 발하는 커다란 눈!            이상    나 같은 사람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천박한 시대가 낳은 썩어빠진 산물인  가두리 장식된 미인도도 아니고,  긴 구두 신은 발도, 캐스터네츠 낀 손가락도 아니다    병원의 수다 떠는 그 미인들의 무리는  위황병 걸린 시인 가바르니에게나 맡기련다,  그 창백한 장미들 속에선  내 붉은 이상을 닮은 꽃을 찾아낼 수 없을 터이니.    심연처럼 깊은 이 마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대, 맥베스 부인이여, 죄악에 강한 꿋꿋한 넋,  폭풍우 속에서 꽃핀 에쉴르의 꿈이어라,    아니면 너 거대한 , 미켈란젤로의 딸,  들의 입에 길들여진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한가로이 바트는 너.            거녀    이 힘찬 기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거녀 곁에 살았으면 좋았으리,  여왕 발 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이 그 넋과 더불어 피어나  끔찍한 희롱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  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또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뙤약볕에 지쳐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드러누울 때,  나는 그 젖가슴 그늘에서 한가로이 잘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가면  -르네상스식 우의寓意적 조상彫像  조각가 에르네스트 크리스토프에게    저 플로렌스식 멋 풍기는 보물을 들여다보자 ;  근육 발달한 저 몸뚱이의 요동 속에  멋진 자매, 과 이 넘친다.  진정 기적 같은 작품인 이 여인,  기막히게 튼튼하고 사랑스럽게 가냘파  호사스런 잠자리에 군림하고  대주교 아니면 군주의 여가를 즐겁게 해주기에 제격이네.    -그리고 또 보라, 저 미묘하고 육감적인 미소를,  거기엔 이 절정을 이룬다 ;  저 앙큼하고 번민하는 조롱하는 듯한 눈길 ;  망사에 둘러싸인 저 교태 넘치는 얼굴,  그 모습 하나하나 우리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  이 나를 부르고, 이 내게 왕관을 씌운다!”  보라, 그토록 위엄 타고난 저 인물에  상냥함이 얼마나 자극적인 매력을 주고 있는가를!  자, 우리 다가가 저 미녀의 주위를 돌아보자.    오 예술의 모독이여! 오 불길한 기만이여!  신성한 육체의 여인, 행복을 약속하더니,  위쪽이 머리 두 개 달린 괴물로 끝나 있다니!    천만의 말씀! 그것은 한 개의 가면, 유혹적인 겉 장식일 뿐,  찌푸린 묘한 매력으로 빛나는 이 얼굴은.  그러나 보라, 여기 끔찍하게 오그라든  진짜 얼굴을, 거짓 얼굴 뒤로  뒤로 젖힌 진정한 얼굴을.  가련한 절세의 미인이여! 그대 눈물의  찬란한 강물이 근심 많은 내 가슴속에 흘러든다 ;  그대의 거짓이 나를 취하게 하고, 내 넋은  로 솟아나는 그대 눈의 물결에 목을 축인다!    -헌데 어찌하여 그녀는 울고 있는가? 정복된 인류를  제 발 아래 무릎 꿇게 할 만한 완벽한 미인,  무슨 수수께끼 같은 병이 튼튼한 그녀 옆구리를 갉아 먹는단 말인가?    -그녀는 하염없이 울고 있다,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기에! 하지만 그녀가 특히 한탄하는 건,  그녀의 무릎까지 떨게 하는 건,  아, 슬프다! 내일도 살아야 하기에!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들처럼!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그대 무한한 하늘에서 왔는가, 구렁에서 솟았는가,  오 이여! 악마 같으면서도 숭고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뒤섞어 쏟아부으니,  그대를 가히 술에 비길 만하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여명을 담고 ;  폭풍우 내리는 저녁처럼 향기를 뿌린다 ;  그대 입맞춤은 미약, 그대 입은 술 단지,  영웅은 무력하게 하고, 어린애는 대담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구렁에서 솟았는가, 별에서 내려왔는가?  홀린 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에 따라 붙는다 ;  그대는 닥치는 대로 기쁨과 재난을 흩뿌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여, 그대는 죽은 자들을 비웃으며 그 위로 걸어간다 ;  그대의 보석 중 도 매력이 못하지 않고,  그대의 가장 비싼 패물 중 이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서 요염하게 춤춘다.    현혹된 하루살이가 그대 촛불에 날아가  탁탁 타면서 말한다, “이 횃불에 축복을!” 하고  정부의 몸에 기대고 헐떡이는 사나이는  흡사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의 병자.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이랴?  오 「아름다움」이여! 끔찍하되 숫된 거대한 괴물이여!  그대의 눈, 미소, 그리고 그대의 발이  내가 갈망하나 만나보지 못한 을 열어줄 수만 있다면    로부터 왔건 에게서 왔건 무슨 상관이랴? 이건 이건, 무슨 상관이랴? -빌로드 같은 눈을 가진 요정이여,  운율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유일한 여왕이여! -  세계를 덜 추악하게 하고, 시간의 무게를 덜어만 준다면!            이국 향기    어느 다사로운 가을 저녁 두 눈을 감고  훈훈한 그대 젖가슴 내음 맡으면,  단조로운 태양 볕 눈부신  행복한 해안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게으르게 하는 섬나라,  거기서 자연은 키운다,  진귀한 나무들과 맛있는 과일들,  날씬한 체구에 활기 찬 사나이들은,  순진한 눈빛에 놀라운 여인들을.    그대 내음을 따라 매혹적인 고장으로 안내되어,  나는 본다, 바다의 파도에 흔들려 아직도 몹시 지쳐 있는  돛과 돛대 가득한 어느 항구를,    그 동안 타마린의 초록색 향기는  대기 속을 감돌매 내 콧구멍을 부풀게 하고,  내 마음속에서 수부들의 노래와 뒤섞이누나.            머리타래    오 목덜미까지 곱슬곱슬한 머리털!  오 곱슬한 머릿결! 오 게으름 가득한 향내여!  황홀함이여! 오늘 밤 이 어두운 규방을  그대 머리 속에 잠자는 추억으로 채우기 위해  손수건처럼 공중에 그대 머리칼을 흔들고 싶어라!    나른한 아시아, 타오르는 아프리카,  거의 사라져버린 이곳에 없는 아득한 전 세계가 고스란히  그대 깊은 곳에 살아 있구나, 향기로운 숲이여!  다른 사람들이 음악에 따라 노를 젓듯,  내 마음은, 오 사랑하는 님이여! 그대 내음 따라 헤엄친다.    나는 가련다, 저 곳으로, 생기 찬 나무와 남자가  작열하는 풍토 아래 오래도록 몽롱해 있는 곳,  거센 머리채여, 나를 데려갈 물결이 되어다오!  칠흑의 바다여, 그대는 눈부신 꿈을 품고 있다,  돛과 사공과 불꽃과 돛대의 꿈을 :    거기 우렁찬 항구에서 내 넋은 가득  들이마신다, 향기와 소리와 색깔을 ;  거기서 황금빛 물결 위로 미끄러지는 배들은  거대한 두 팔 벌려 껴안는다,  영원한 열기 흔들리는 순수 하늘의 영광을.    나는 담그련다, 도취를 갈망하는 내 머리를  다른 바다 숨기고 있는 이 검은머리 바다 속에 ;  그러면 애무 같은 배의 흔들림이 어루만지는  내 예민한 정신은 되찾으리,  향기로운 여가의 끝없는 자장가를, 오 풍요한 게으름이여!    펼쳐진 어둠의 정자 같은 푸른 머리여,  그대 내게 무한한 둥근 하늘의 푸름을 돌려주고,  비틀어 꼬여 내린 그대 머리타래의 솜털로 뒤덮인 기슭에서  나는 타는 듯이 취한다, 야자수 기름, 사향,  그리고 역청 뒤섞인 향기에.    오랫동안! 영원히! 내 손은 그대 묵직한 갈기 속에  루비와 진주와 사파이어를 뿌리리라,  내 욕망에 그대 귀를 절대 막지 않도록!  그대는 내가 꿈꾸는 오아시스, 또 추억의 술을  오래오래 들이마시는 표주박이 아니던가?            나 그대를 밤의 궁륭처럼 열렬히 사랑하오    나 그대를 밤의 궁륭처럼 열렬히 사랑하오,  오 슬픔의 꽃병이여, 오 말없는 키 큰 여인이여,  내 사랑은,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가 내게서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그리고 내 밤을 장식하는 그대가  비웃듯이, 푸른 무한으로부터 내 팔을 가르는 공간을  더욱 멀게 하면 멀게 할수록 그만큼 더 깊어만 가오    나는 공격을 위해 전진하고 돌격을 위해 기어오르오,  시체를 향해 달라붙는 구더기처럼,  그리고 무자비하고 매정한 짐승이여!  그대의 냉담함조차 귀여워하오, 그럴수록 내게는 더 아름답기에!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넣겠구나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넣겠구나,  더러운 계집이여! 권태로 네 넋은 잔인해지는구나.  그런 괴상한 놀이에 네 이빨을 단련시키자면,  날마다 염통 하나씩 네 이빨에 넣어주어야 하겠구나.  네 두 눈은 진열장처럼, 축제에 타오르는 등화대처럼  번뜩이며 빌려온 위력을 함부로 행사한다,  제 아름다움의 법칙 알지도 못하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눈멀고 귀먹은 기계여!  사람들 피를 빠는 유익한 연장이여,  어찌 너는 부끄럼을 모르는가, 그리고 어찌  네 매력이 퇴색하고 있음을 거울에 비춰보지 못하는가?  깊은 뜻을 감추고 있는 위대한 자연이  너를 가지고, 오 계집이여, 오 죄악의 여왕이여,  -천한 짐승 너를 가지고-하나의 전체를 빚어낼 때,  아무리 죄악에 능숙하다 자부하는 너라 해도,  그 엄청난 죄악에 질겁하여 뒷걸음질친 적은 없었던가?    오 더러운 위대함이여! 숭고한 치욕이여!            그러나 흡족하지 않았다    밤처럼 컴컴한 괴상한 여신이여,  사향과 하바나 향기 섞인 내음 풍기는  아프리카 마술사의 작품, 대초원의 파우스트,  흑단의 옆구리 가진 마녀, 캄캄한 한밤의 아이여,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콩스탕스 술, 아편, 그리고 밤의 술보다  사랑이 으스대는 네 입의 선약,  내 욕망이 너를 향해 떼지어 갈 때,  네 눈은 내 권태가 목을 축이는 물웅덩이.    네 넋의 창 같은 그 검은 커다란 두 눈으로,  오 잔인한 악마여! 내게 그토록 불꽃을 쏟지 말아라 ;  삼도내를 따라 흘러흘러 가도 너를 아홉 번이나 껴안을 수 없으니,    아 슬프구나! 방자한 메제르 여신이여,  네 용기를 꺾고 너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네 잠자리의 지옥에서 내가 프로세르핀이 될 수는 없구나!            물결치는 진줏빛 옷을 입고    물결치는 진줏빛 옷을 입고,  걸을 때도 그녀는 춤을 추는 듯,  신성한 요술쟁이의 막대기 끝에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기다란 뱀처럼.    인간의 고뇌에는 아랑곳 않는  사막의 우중충한 모래와 창공처럼,  바다 물결이 파도치며 얽히듯,  그녀는 무심코 몸을 펼친다.    반들반들한 두 눈은 매혹적인 광석,  그리고 야릇한 상징적인 그 천성 속에  순결한 천사를 고대 스핑크스에 섞어놓은 듯,    모든 것이 금과 강철, 빛과 금광석뿐,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차가운 위엄이  쓸모없는 별처럼 영원히 빛을 발한다.            춤추는 뱀    나는 보고 싶다, 태평한 님이여,  그토록 아름다운 그대 몸에서  하늘거리는 천처럼  살갗이 빛나는 것을!    짙은 그대 머리칼에서  풍기는 짭짤한 내음  푸른색과 갈색의 물결 위에서  넘실대는 냄새나는 바다,    거기 아침 바람에 잠깬  한 척의 배처럼,  내 꿈꾸는 넋은 떠날 준비를 한다,  어느 먼 하늘을 향해.    달콤함도 쓰라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대의 두 눈은  금과 쇳가루 섞인  차가운 두 알의 보석.    박자 맞추어 걸어가는 그대를 보면,  초연한 미인이여,  막대기 끝에서 춤추는  한 마리 뱀 같아.    게으름의 무게에 짓눌린  앳된 그대 머리는  흐물흐물 좌우로 흔들거린다,  코끼리 새끼처럼,    또 몸을 구부리고 드러누우면,  가느다란 배처럼  좌우로 흔들리다 물 속에  활대를 잠근다.    와르르 녹아내린 빙하로  불어난 물결처럼,  그대 이빨 가장자리에  침이 솟아오르면,    나는 씁쓸하고 기분 북돋우는  보헤미아의 술을 마시는 듯,  내 마음에 별들을 뿌려주는  흐르는 하늘을 마시는 듯!            시체    기억해보라, 님이여,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끔찍한 시체,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가득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 썩은 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위대한 「자연」이 한데 합쳐놓은 것을  백 갑절로 모두 되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고양한 냄새 어찌나 지독하던지 당신은  풀 위에서 기절할 뻔했었지.  그 썩은 배때기 위로 파리떼는 윙윙거리고,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기어나와,  걸쭉한 액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살아 있는 누더기를 타고.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하고,  그 모든 것이 반짝반짝 솟아나오고 있었다 ;  시체는 희미한 바람에 부풀어올라,  아직도 살아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이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장단 맞춰 까불리는 키 속에서  흔들리고 나뒹구는 곡식알처럼.    형상은 지워지고, 이제 한갓 사라진 꿈,  잊혀진 화포 위에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완성하는  서서히 그려지는 하나의 소묘.    바위 뒤에서 초조한 암캐 한 마리  성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놓쳐버림 살점을 해골로부터  다시 뜯어낼 순간을 노리며.    -허나 언제인가는 당신도 닮게 되겠지,  이 오물, 이 지독한 부패물을,  내 눈의 별이여, 내 마음의 태양이여,  내 천사, 내 정열인 당신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게 되겠지, 오 매력의 여왕이여,  종부성사 끝나고  당신도 만발한 꽃들과 풀 아래  해골 사이에서 곰팡이 슬 즈음이면.    그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심연에서 외친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  나는 그대의 연민을 비오,  내가 빠져 있는 어두운 구렁의 밑바닥에서.  그곳은 납빛 지평선이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세상,  공포와 모독이 어둠 속에서 헤엄을 친다 ;    열기 없는 태양이 여섯 달 그 위에 뜨고,  나머지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어 ;  이곳은 극지보다 더한 불모의 세계,  -짐승도 없고, 냇물도, 풀밭도, 숲도 없는!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냉혹함,  옛날 의 세계 같은 끝없는 이 어둠,  아, 이보다 더한 공포는 세상에도 없소.    미련한 잠에 빠질 수 있는  천한 짐승의 팔자가 나는 부럽소.  시간을 감는 실꾸리가 그토록 더디구려!            흡혈귀    슬픈 내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든 너 ;  악마의 무리처럼 억세고  화사하고 광기 서린 넌    창피 당한 내 정신으로  잠자리 삼고, 집을 삼는다 ;  -끔찍한 너에게 나는 얽매어 있다,  사슬에 매인 도형수처럼,    노름판을 못 떠나는 노름꾼처럼,  술병을 못 떼는 술꾼처럼,  구더기에 먹히는 시체처럼,  -저주받은, 저주받은 계집이여!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날쌘 칼에 빌기도 했고,  내 비겁함 도와달라고  더러운 독약에 하소연도 해보았다.    그런데, 아! 독약과 칼날은  나를 깔보며 이렇게 말했다 :  “넌 저주받은 노예 처지에서  구해줄 가치도 없다,    바보야! -설령 우리의 노력이  그녀의 지배에서 너를 구해준다 해도,  네 입맞춤은 네 흡혈귀의 시체를  되살려낼걸!”            끔찍한 유대 계집 곁에 있었던 어느 날 밤    어느 날 밤, 끔찍하게 생긴 유대 계집 곁에,  시체 곁에 또 하나의 시체 있듯이 나란히 누워,  그 돈에 팔린 몸뚱이 곁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 욕망이 포기한 저 서글픈 미녀를.    나는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녀의 타고난 위엄을,  힘과 우아함을 갖춘 그녀 시선을,  그녀 머리카락은 향내 나는 투구,  생각만 해도 사랑이 내게 되살아난다.    고상한 그대 몸에 열렬히 입맞추고,  싱싱한 그대 발끝에서부터 검은 머리칼까지  깊은 애무의 보물을 펼쳤으리,    만일 어느 날 저녁,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로 인해,  오 잔인한 계집들의 여왕이여! 그대  차가운 눈동자의 광채를 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사후의 회한    검은 미녀여, 새까만 대리석으로 만든  무덤 속 깊은 곳에 그대가 잠들어,  잠자리와 집이라곤 비에 젖은  땅속과 움푹 파인 구덩이뿐일 때 ;    무덤 돌이 그대 겁먹은 가슴 짓누르고  달콤한 나태에 젖은 그대 옆구리 짓눌러,  그대 심장 뛰지도 바라지도 못하게 하고,  두 발로 쾌락 찾아 뛰어다니지 못하게 할 때,    내 끝없는 몽상을 들어줄 무덤은  (무덤은 언제나 시인을 이해할 것이니)  잠 달아난 그 긴긴 밤 동안    그대에게 말하리 : “어설픈 유녀遊女여, 망령들이 한탄하는 까닭을  넌 알지 못했거니,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이랴?”  -그리고 구더기는 회한처럼 그대 살갗을 파먹으리.            고양이    오너라, 내 예쁜 나비야, 사랑에 빠진 내 가슴 위로 ;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 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잠기게 하렴.    내 손가락이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  한가로이 어루만지며  내 손이 전기 일으키는 네 몸을  만져보며 즐거움에 취해들 때,    나는 마음속에서 내 아내를 본다, 그녀 눈매는  사랑스런 짐승, 네 눈처럼  그윽하고 차가와 투창처럼 꿰뚫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기운, 위험한 향기  그녀 갈색 몸 주위에 감돈다.            결투    두 전사가 마주 달려들었다 ; 그들의 무기는  불꽃과 피를 공중에 튀겼다.  이 놀이, 이 요란한 칼부림 소리는  신음하는 사랑의 포로가 된 젊음의 소동.    칼은 부러졌다! 우리의 젊음처럼,  님이여! 그러나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이  이내 배신한 장검과 단검에 복수한다.  -오 사랑의 상처로 곪은 가슴의 분노여!    살쾡이와 표범이 넘나드는 골짜기에  우리 병사들은 짓궂게 맞붙어 뒹굴고,  그들의 살가죽은 메마른 가시덤불을 꽃피게 하리.    -이 심연, 그건 지옥, 우리 친구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거기서 뒹굴자, 미련도 없이, 매정한 여장부여,  우리 증오의 뜨거운 불꽃 영원히 타오르게!            발코니    추억의 샘이여, 애인 중의 애인이여,  오 그대, 내 모든 기쁨! 오 그대, 내 모든 의무!  그대 회상해보오, 애무의 아름다움을,  난로의 다사로움, 저녁의 매혹을,  추억의 샘이여, 애인 중의 애인이여!    이글대는 숯불로 밝혀진 저녁,  발코니에 깃든 장밋빛 너울 자욱한 저녁.  아 다사로왔던 그대 가슴! 고왔던 그대 마음!  우린 자주 불멸의 것들을 얘기했었지,  이글대는 숯불로 밝혀진 저녁.    다사로운 저녁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공간은 얼마나 그윽한가! 마음은 굳건하고!  연인 중의 여황, 그대에게 몸 기대면,  그대의 피 냄새를 맡는 듯했지,  다사로운 저녁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밤은 칸막이 벽처럼 깊어만 갔고,  내 눈은 어둠 속에서 그대 눈동자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 숨결을 마셨지, 오 그 달콤함! 오 그 독기여!  그대 발은 내 다정한 손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밤은 칸막이 벽처럼 깊어만 갔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순간들 되살리는 법을,  그리고 나는 본다, 그대 무릎 속에 숨겨진 내 과거를,  따스한 그대 몸과 그토록 포근한 그대 마음 아닌 다른 곳에서  그대 번민하는 아름다움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랴?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순간들 되살리는 법을!    그 맹세, 그 향기, 그 끝없는 입맞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다시 살아날 것인가,  깊은 바다 속에서 멱감고  다시 젊어진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듯?  -오 맹세! 오 향기! 오 끝없는 입맞춤이여!            홀린 사내    태양은 검은 베일에 가려졌다. 그처럼,  오 내 생명의 달이여! 그대도 어둠으로 푹 둘러싸이렴 ;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그리고 끝 모를 에 온통 잠기렴 ;    나 그처럼 그대를 사랑한다! 허나 오늘 그대가 원한다면,  어둠에서 벗어나는 가리어 있던 별처럼  이 법석대는 곳에서 으스대고 싶다면,  그것도 좋아! 매혹적인 단도여, 그대 칼집에서 나오렴!    샹들리에 불빛으로 그대 눈동자에 불을 밝혀라!  촌뜨기들 눈 속에 욕망의 불을 지피렴!  그대의 모든 것이 내게는 즐거움, 병적인 것도 발랄한 것도 ;    그대 원하는 대로 되렴, 검은 밤이든, 붉은 여명이든 ;  떨리는 내 온몸에서 이렇게 외치지 않는 세포 하나도 없으니,  오 내 사랑 마왕이여, 나 그대를 끝없이 사랑하오!            환영    1. 어둠  이 이미 나를 유배 보낸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굴 속 ;  장밋빛 즐거운 햇살 한 줄기 들지 않고 ;  침울한 여주인 과 홀로 사는    나는, 아! 조롱하는 의 강요로  어둠의 화포 위에 그림 그리는 화가라고나 할까 ;  거기서 나는 음산한 식욕 가진 요리사,  내가 내 심장을 끓여 먹는다.    거기 때로 아름답고 찬란한 유령 나타나  번쩍이며 몸을 뻗치고 펼쳐 보인다.  꿈꾸는 듯한 동양적인 자태로.    그녀 온전히 몸 드러내면,  나는 알아본다, 날 찾아온 미녀를 :  그것은 ! 어둡고 동시에 빛을 발하는 여인.    2. 향기  독자여, 그대는 취해 서서히 음미해가며  맡아보았는가,  성당 가득한 훈향을,  또는 주머니에 깊이 밴 사향 냄새를?    현재 속에 되살아난 과거가 우리를  취하게 한다, 깊고 마술 같은 매혹으로!  그처럼 애인도 사랑하는 육체에서  추억의 절묘한 꽃을 꺾는다.    살아 있는 향주머니, 규방의 향로,  그녀의 탄력 있고 묵직한 머리칼에서  야생의 사향 냄새 피어오르고,    순수한 젊음 흠뻑 밴  모슬린, 혹은 빌로드 옷에서  모피 냄새 풍겨나왔다.    3. 그림들  아무리 칭송받는 화가의 작품이라도,  무한한 자연에서 떼내어  아름다운 그림틀을 붙여야만, 뭔지 모를  신기하고 매혹적인 운치가 살아나듯이,    그처럼 보석과 가구, 금속과 금박은  보기 드문 그녀의 아름다움에 꼭 어울리었다 ;  아무것도 그녀의 완벽한 광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그녀에게 장식틀이 되어 보였다.    때로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고 생각했을까,  관능에 젖어 제 알몸을    명주와 린네르 속옷의 입맞춤 속에 잠그고,  느리게 또는 갑자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원숭이 같은 앳된 교태를 보였다.    4. 초상화  과 은 모조리 재로 만든다.  우리를 위해 타오른 불길을  그처럼 뜨겁고 다정하던 그 커다란 눈,  내 가슴 적신 그 입술,    향유처럼 힘찬 그 입맞춤,  햇빛보다 더 뜨거운 그 격정,  그중 무엇이 남아 있는가? 오 두렵다, 내 넋이여!  남은 건 오직 퇴색한 삼색의 소묘 하나뿐,    그것도 나처럼 고독 속에 스러져가고,  몹쓸 늙은이 은  날마다 그 거친 말개로 문지른다……    과 의 검은 말살자여,  너는 내 기억 속에서 절대로 죽이지 못하리라,  내 기쁨, 내 영광이던 그 여인을!      그대에게 이 시구를 바치노라    그대에게 이 시구를 바치노라, 내 이름  다행히 먼 후세에 전해져  저녁 사람들을 꿈에 잠기게 한다면,  거친 북풍에 실려가는 배여,    그대 기억이 희미한 전설처럼,  팀파논처럼, 독자들 귀를 지치게 울리고,  우정 어린 신비한 사슬고리로  내 고고한 시편에 매달리듯 길이 남아 있도록 ;    저주받은 그대, 저 깊은 나락에서  높은 하늘까지 나말고 누가 대답해줄까!  -오 그대, 흔적 곧 지워지는 망령처럼,    그대를 가혹하다 여길 어리석은 인간들을  가벼운 발걸음과 싸늘한 시선으로 밟고 간다,  흑옥 같은 눈동자의 상像, 의연한 대천사여!            언제나 이대로    그대는 말했었지, “저 벌거벗은 검은 바위 위로 바닷물 치솟듯  그 야릇한 슬픔 어디서 당신에게 밀려오는가?” 라고.  -우리 마음이 일단 수확을 끝내고 나면,  산다는 것은 고통, 그건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그것은 극히 명백한 고통, 신비할 것도 없고,  그대 기쁨처럼 누구에게나 드러나는 것,  그러니 그만 묻지 마오, 오 캐기 좋아하는 미인이여!  그대 목소리 달콤해도 입을 다물어주오!    입을 다물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언제나 기쁨에 찬 여인이여!  천진한 웃음 짓는 입이여! 보다 이 더  그 정교한 줄로 우리를 자주 옭아맨다.    제발 내 마음 미망에 취해  아름다운 꿈에 파묻히듯 그대 눈 속에 파묻혀,  그대 눈썹 그늘 속에 오래 잠들게 해주오!            그녀는 고스란히    가 높은 내 방으로  오늘 아침 날 찾아와,  내 흠집 잡아내려 애쓰며,  하는 말이, “정말 알고 싶구나,    그녀의 매력 만들어주는  갖가지 아름다운 것 중에,  매혹적인 그녀의 몸을 이루는  검거나 붉은 것 중에,    무엇이 제일 좋은가?” -오 내 넋이여!  너는 이 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그녀 속에는 모든 것이 향기,  어느 것도 고를 수 없다.    모든 것이 나를 황홀케 하니, 나는 모른다,  무엇에 내가 끌리는지,  그녀는 처럼 눈부시고  처럼 위안을 준다 ;    또 그녀 아름다운 몸에 온통 감도는  조화 너무도 오묘하여,  그 숱한 화으믈 적어내기에는  서툰 분석으로 불가능하다.    오 신비한 변모여,  내 모든 감각이 하나로 녹아든다!  그녀 숨결은 음악이 되고  그녀 목소리는 향기를 풍긴다!”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려는가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려는가, 외로운 가엾은 넋이여,  무엇을 말하려나, 내 마음, 일찍 시든 마음이여,  더없이 아름답고 착하고 사랑스런 여인에게?  그 거룩한 눈길에 너는 갑자기 피어났었지.    -우리 자랑스레 그녀를 찬미하여 노래부르자 :  아무것도 그녀 위엄 속에 숨겨진 다정함만 못하다 ;  맑은 그녀 살결은 천사의 향기 지녀  그녀 눈동자는 우리에게 광명의 옷을 입힌다.    밤중이든 고독 속에서이든  거리에 있든 군중 속에 있든  그녀 환영은 공중에서 횃불처럼 춤춘다.    때로 그 환영 내게 말하기를 : “나는 아름답다, 나는 명하노니,  나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대 오직 만을 사랑하라,  나의 그리고             살아 있는 횃불    빛 가득한 그 두 , 그들이 내 앞을 걸어간다,  박식한 에게서 아마 자력을 받았으리라 ;  그들은 걸어간다, 거룩한 형제들은, 내 형제들은,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그들 불꽃을 내 눈 속에 흔들면서.    온갖 함정, 온갖 중죄에서 날 구해,  그들은 의 길로 내 발걸음 이끌어준다 ;  그들은 내 하인, 나는 그들의 노예 ;  내 존재는 온통 이 살아 있는 횃불을 따른다.    매혹적인 두 이여, 너희는 한낮에 타오르는  촛불의 신비한 빛으로 빛난다 ; 햇빛이  붉게 비추어도 그 엄청난 불꽃은 끄지 못한다 ;    촛불은 을 기리고, 너희는 을 노래한다 ;  내 넋의 소생을 노래하며 걸어간다,  어떤 햇빛도 그 불꽃 사그라뜨리지 못할 별이여!            공덕    기쁨이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고뇌를,  수치심을, 회한을, 흐느낌을, 권태를,  그리고 종이 구기듯 가슴을 짓누르는  저 무서운 밤들의 막연한 공포를?  기쁨이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고뇌를    그지없이 착한 여, 그대는 아는가 증오를,  의 악마가 지옥의 나팔 불고  우리의 능력을 멋대로 지배할 때,  어둠 속에서 불끈 쥐는 주먹을, 원한의 눈물을?  그지없이 착한 여, 그대는 아는가 증오를?    건강이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을,  우중충한 양로원 높은 담을 따라  가느다란 햇볕 찾아 입술을 떨며,  유형자처럼 발을 질질 끌고 가는 사람들을?  건강이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을?    아름다움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주름살을,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우리의 탐욕스런 눈이  오래 세월 빠져 있던 두 눈 속에서 헌신을 꺼리는  숨은 낌새 읽어내는 그 무서운 고통을?  아름다움 넘치는 여, 그대는 아는가 주름살을?    행복과 기쁨과 빛이 넘치는 여,  죽어가는 왕이라면 매혹적인  그대 몸에서 발산되는 건강을 구했으리,  그러나 천사여, 그대에게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그대 기도뿐,  행복과 기쁨과 빛이 넘치는 여!            고백    한 번, 단 한 번,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람,  당신의 미끈한 팔이  내 팔에 기대었다 (내 넋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이 추억은 바래지 않는다) ;    늦은 밤이었다 ; 새 메달처럼 보름달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엄숙한 밤은 잠든 파리 위로 강물처럼  흥건히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집들을 따라 대문 아래로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빠져나와,  귀를 쫑긋 세우고, 또는 정다운 그림자처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문득 창백한 달빛 아래 피어난  거리낌없는 친밀감 속에서  쾌활한 소리만 울리는 소리나는  풍요한 악기, 당신의 입에서    빛나는 아침 화려한 군악 소리 울리듯,  밝고 즐거운 당신 입에서  흐느끼는 가락, 기이한 가락이  비틀거리며 새어나왔다.    가족들조차 부끄러워 사람들 눈을 피해  남몰래 오랫동안 굴 속에  숨겨두었던 허약하고, 흉측하고, 어둡고,  불결한 계집애처럼.    가엾은 천사여, 당신은 목청껏 노래불렀다 :  “이승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고  아무리 애써 꾸며본들 언제나  사람의 이기심은 드러나는 법 ;    미인 역을 하기도 고된 일,  그것은 억지 웃음 지으며  흥겨워하는 경박하고 쌀쌀한 무희가 부리는  진부한 재주 같은 것 ;    사람들 마음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 ;  사랑도 아름다움도 모두 부서져버린다,  마침내 이 에게 되돌려주려고 채롱 속에  그것을 던져줄 때까지는!”    나는 때로 회상했다, 그 황홀한 달을,  그 적막, 그 번민을,  그리고 가슴속 고해실에서 속삭인  그 무서운 고백을.            영혼의 새벽    방탕아의 방에 희뿌연 새벽이  마음을 괴롭히는 과 함께 비쳐들면,  신비한 응징자에 휘둘려  졸던 짐승 속에서 천사가 깨어난다.    다가갈 수 없는 은  아직 꿈속에서 고통받는 기진한 사나이 앞에  심연의 매혹으로 열리며 파고든다.  이처럼, 다정한 이여, 맑고 순수한 이여,    어리석은 향연의 연기 나는 잔해 위로  한결 또렷한 당신의 매혹적인 장밋빛 추억은  크게 뜬 내 두 눈 앞에 쉴새없이 나풀거린다.    햇빛은 이제 촛불을 흐려놓았다 ;  이처럼 언제나 승리에 찬 그대 모습은,  찬란한 넋이여, 불멸의 태양을 닮았구려!            저녁의 조화    이제 바야흐로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 속에 감돈다 ;  우울한 왈츠, 나른한 어지러움!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  바이올린은 상처받은 마음인 양 떤다 ;  우울한 왈츠, 나른한 어지러움!  하늘은 큰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다    바이올린은 상처받은 마음인 양 떨고,  어둡고 끝없는 허무를 미워하는 애틋한 이 마음!  하늘은 큰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고 ;  태양은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진다.    어둡고 끝없는 허무를 미워하는 애틋한 이 마음,  빛나는 과거의 온갖 흔적을 긁어모은다!  태양은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지고……  당신의 추억은 내 맘속에 성체합처럼 빛난다!            향수병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스며나오는 강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라도 뚫으리라.  에서 건너온 작은 함, 오만상 찌푸리고  삐걱거리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세월의 지독한 냄새 가득 밴  먼지 수북한 더러운 옷장 열면,  더러 옛 추억 간직한 오래된 향수병 눈에 띄는데,  되돌아온 넋 거기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온갖 생각들 거기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 펴고 힘껏 날아오른다,  창공의 빛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칠해지고 금박으로 장식되어.    이제 취한 추억이 흐린 대기 속에서  나폴거린다, 눈을 감는다 ; 이  쓰러진 넋을 쥐어 잡고 두 손으로 밀어낸다,  인간의 악취로 어두어진 구렁 쪽으로 ;    그리고 천 년 된 깊은 구렁 가로 넘어뜨린다,  거기서 제 수의 찢는 냄새나는 나사로처럼,  썩고 매혹적이고 음산한 옛사랑의  유령 같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해묵은 향수병처럼 늙고, 먼지가 끼고, 더럽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  음산한 옷장 구속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악취여!  네 힘과 독기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해준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이자 이여!            독    술은 아무리 누추한 오두막이라 해도  기적같이 호화롭게 옷 입히고,  붉은 안개의 금빛 속에 한둘 아닌  동화 같은 회랑을 솟아나게 한다,  흐린 하늘에 노을지는 태양처럼.    아편을 끝없는 것을 더욱 넓히고,  무한을 더욱 늘이며,  시간을 키우고 쾌락을 더욱 파고들어,  우울하고 서글픈 쾌락으로  내 넋을 채운다, 넘치도록 가득.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대 눈에서 흘러내리는  독만 못하다, 그대 초록색 눈,  내 넋이 떨며 거꾸로 비춰보는 호수……  내 꿈 떼지어 가  그 호수의 쓰디쓴 심연에서 갈증을 푼다.    그 모든 것도 나를 깨무는 그대 침의  무서운 위력만 못하다, 그대 침은  내 넋을 후회 없이 망각 속에 잠그고,  현기증을 실어,  죽음을 강가로 내 쇠잔한 넋을 굴리어 간다!            흐린 하늘    당신의 시선은 안개로 덮인 듯 ;  신비한 당신 눈은(푸른빛일까, 잿빛일까, 아니면 초록빛일까?)  다정하다가는 꿈꾸는 듯하고, 그러다가 매정해지며,  무심하고 파리한 하늘을 비추고 있다.    당신은 생각나게 한다. 저 따스하고 안개 낀 하얀 날들을,  홀린 마음을 눈물로 녹이는 날들을,  가슴을 쥐어짜는 알 수 없는 아픔에 흔들려  너무 곤두선 신경이 잠자는 정신을 비웃을 때에.    때로 당신은 안개 자욱한 계절,  태양이 비춰주는 저 아름다운 지평선 같다……  안개 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불태우는  젖은 풍경처럼 당신은 얼마나 찬란한가!    오 위험한 여인이여, 오 매혹적인 기후여!  나는 또한 당신의 눈雪과 서리마저 사랑하여,  얼음보다 칼보다 더 날카로운 쾌락을  혹독한 겨울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고양이    1  내 머리 속을 걸어다닌다, 예쁜 고양이  제 방안 거닐 듯,  힘세고 온순하고 매혹적인 잘 생긴 고양이,  야웅 하고 우는 소리 들릴까말까,    그토록 그 울림 부드럽고 은근하지만 ;  차분할 때나 으르릉거릴 때나  그 목소리 언제나 풍요하고 그윽하다.  바로 그게 그의 매력, 그의 비밀.    내 마음 가장 어두운 맡바닥까지  구슬처럼 스미는 그 목소리,  조화로운 시구처럼 나를 채우고,  미약처럼 나를 즐겁게 한다.    그 목소리는 지독한 고통도 가라앉히고  갖가지 황홀을 간직하고 있어 ;  긴긴 사연을 말할 때도  한마디의 말도 필요가 없다.    그렇다, 이 완벽한 악기, 내 마음 파고들어,  이보다 더 완전하게  내 마음으 가장 잘 울리는 줄을  노래하게 할 활이 이밖에 없다,    네 목소리밖엔, 신비한 고양이여,  천사 같은 고양이, 신기한 고양이여,  네 속에선, 천사처럼,  모든 것이 미묘하고 조화롭구나!    2  금빛과 갈색이 섞인 그의 털에서  풍기는 냄새 그토록 달콤해,  어느 날 저녁 한 번, 꼭 한 번  어루만졌는데, 그 냄새 내 몸에 배어들었다.    이거야말로 이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  제 왕국에 있는 모든 것을  판결하고 다스리고 영감을 준다 ;  그것은 요정일까, 신일까?    사랑하는 내 고양이 쪽으로  자석에 끌리듯 끌린 내 눈이,  순순히 내 몸으로 돌아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그만 깜짝 놀란다,  창백한 눈동자의 빛나는 불,  밝은 신호등, 살아 있는 오팔,  지그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눈.            아름다운 배    네게 들려주고 싶다, 오 나른한 매혹의 여인아!  네 젊음을 꾸며주는 갖가지 아름다움을 ;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우러진  네 아름다움 네게 그려보이고 싶다    네 폭넓은 치맛자락 펄럭이며 갈 때,  넌 흡사 난바다로 떠나는 아름다운 배,  돛 달고 떠간다,  감미롭고 나른하고 느린 리듬을 타고.    포동포동 굵은 목, 통통한 어깨 위에서  네 머리는 야릇한 매혹 풍기며 건들거린다 ;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한 아이, 너는 네 길을 간다.    네게 들려주고 싶다, 오 나른한 매혹이여!  네 젊음을 꾸며주는 갖가지 아름다움을 ;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우러진  네 아름다움 네게 그려보이고 싶다.    물결무늬 옷을 밀고 불쑥 내민 네 젖가슴,  당당한 네 젖가슴은 아름다운 찬장,  볼록하고 환한 그 널판은  방패처럼 번갯불을 맞부딪는다.    장밋빛 젖꼭지로 무장한 도전적인 방패여!  달콤한 비밀을 감춘 찬장, 술, 향료, 음료,  갖가지 맛좋은 것 가득 차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 열광시킬 찬장이여!    네 폭넓은 치맛바람에 펄럭이며 갈 때,  넌 흡사 난바다로 떠나는 아름다운 배,  돛 달고 떠간다,  감미롭고 나른하고 느린 리듬을 타고    당당한 네 다리는 밀어내는 치맛자락 밑에서  컴컴한 욕정 돋우고 부추긴다,  깊숙한 단지 속에 검은 미약을  휘젓는 두 마녀처럼.    어린 장사는 우습게 알 만도 한 네 팔은  번득이는 왕뱀의 강한 적수,  가슴에 애인의 모습을 새기려는 듯,  단단하게 껴안도록 만들어진 것.    포동포동 굵은 목, 통통한 어깨 위에서  네 머리는 야릇한 매혹 풍기며 건들거린다 ;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한 아이, 너는 네 길을 간다.            여행에의 초대    아이야, 누이야,  꿈꾸어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살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을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런 그대 눈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 :  진귀한 꽃들  향긋한 냄새,  용연향의 어렴풋한 냄새와 어울리고,  호화로운 천장,  깊은 거울,  동양의 찬란함,  모든 것이 거기선  넋에 은밀히  정다운 제 고장 말 들려주리.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보라, 저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 :  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저무는 태양은  옷 입힌다, 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  세상은 잠든다,  뜨거운 빛 속에서.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돌이킬 수 없는 일    저 오래된 지겨운 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꿈틀대며  우리를 먹으며 살아간다, 송장 파먹는 구더기처럼,  떡갈나무의 송충이처럼.  저 끈덕진 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무슨 미약, 무슨 술, 무슨 탕약으로  이 오래된 원수 달랠 수 있을까?  창녀처럼 욕심 많고 우리 몸 파괴하고  개미처럼 끈덕진 이 원수를  무슨 미약, 무슨 술, 무슨 탕약으로?    말하오, 아름다운 마녀여, 오! 그대 알거든 말하오,  부상병이 짓밟고  말발굽이 짓이긴 죽어가는 병사처럼  고통에 허덕이는 이 마음에게  말하오, 아름다운 마녀여, 오! 그대 알거든 말하오.    늑대가 이미 냄새를 맡고  까마귀가 감시하는 이 빈사자에게  말하오, 기진한 이 병사에게! 십자가도 무덤도 없이  이대로 절망해야 하는지를 ;  늑대가 이미 냄새를 맡은 이 가엾은 빈사자에게!    진흙처럼 컴컴한 하늘을 가치 밝힐 수 있을까?  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고,  별도, 음산한 번개도 없이 송진보다 더 짙은  저 어둠을 찢어버릴 수 있을까?  진흙처럼 컴컴한 하늘을 가히 밝힐 수 있을까?    유리창에 반짝이는 의 불은  숨이 끊겨 영원히 꺼져버렸다!  달도 불빛도 없이 험한 길 찾는 순교자는  어디서 묵을 곳을 찾아내랴!  유리창 불을 가 모두 꺼버렸으니!    귀여운 마녀여, 그대는 천벌받은 자를 사랑하는가?  말하라, 용서받지 못할 것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우리 심장을 독살로 겨누고 있는  저 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귀여운 마녀여, 그대는 천벌받은 자를 사랑하는가?    은 고약한 이빨로 쏠아먹는다,  가여운 기념비 우리의 넋을  그리고 자주, 흰개미처럼, 먹어 들어간다,  건물의 기반에서부터  은 고약한 이빨로 쏠아먹는다!    -나는 언젠가 보았다, 어느 신통치 않은 극장 안에서  오케스트라 우렁차게 울려퍼질 때,  선녀 하나 나타나 지옥처럼 캄캄한 하늘에  신기한 새벽의 불을 켜는 것을 ;  나는 언젠가 보았다, 어느 신통치 않은 극장에서    빛과 금과 망사로만 싸인 사람 하나  거대한 를 때렵눕히는 것을 ;  그러나 한번도 황홀이라곤 찾아온 적 없는 내 가슴은  헛되이 기다리는 극장,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망사 날개 돋친 그 을!              정담    그대는 맑은 장밋빛 아름다운 가을 하늘!  그러나 슬픔은 바닷물처럼 내게 밀려와,  썰물 때는 실쭉한 내 입술에  씁쓸한 진흙 같은 쓰라린 추억을 남긴다    -허탈한 내 가슴 그대의 손이 쓸어주어도 헛일 ;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손이 찾는 건 이미  여자의 잔혹한 이빨과 손톱으로 헐린 곳,  내 가슴 찾지 마오, 짐승들이 이미 먹어치웠으니.    내 가슴은 군중들에게 짓밟혀 망가진 궁전 ;  사람들 거기서 술 취하고 서로 죽이고 머리채 낚아챈다!  -어떤 향기 감돈다, 당신의 벌거벗은 앞가슴 주위에서! ……    오 이요, 넋에 가하는 가혹한 벌이여, 그대는 그것을 원하겠지!  축제처럼 환히 빛나는 불 같은 그대 눈으로  모조리 태워버려라, 짐승들이 먹다 남긴 이 찌꺼기 조각들!            가을의 노래    1  머지않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  안녕,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내겐 벌써 들린다, 음산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 위에 떨어지는 장작 소리.    분노, 미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강요된 고역,  이 모든 겨울이 이제 내 존재 속에 들어오면,  내 가슴은 지옥 같은 극지의 태양처럼  얼어붙은 붉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리.    나는 듣는다, 몸을 떨며, 장작개비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 ;  교수대 세우는 소리도 이보다 더 음산하지 않으리.  내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쳐대는 육중한 망치질에  허물어지고 마는 탑과도 같아.    이 단조로운 울림 소리에 흔들려  나는 어디선가 급히 관에 못박히는 소리 듣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어제만 해도 여름, 그러나 이제 가을!  저 신비한 소리는 출발을 알리는 신호처럼 울린다.    2  사랑하오, 그대 갸름한 눈에 감도는 푸르스름한 빛을,  다정한 미녀여,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씁쓸하오,  그 무엇도, 당신의 사랑도, 규방도, 난롯불도  내겐 바다 위에 빛나는 태양만 못하오.    그러나 사랑해주오, 다정한 님이여! 어머니가 되어주오,  은혜 모르는 사람, 심술궂은 사람일지라도 ;  애인이여, 또는 누이인 님이여, 찬란한 가을의,  아니면 지는 태양의 짧은 감미로움이나마 되어주오.    그것은 잠시 동안의 노고! 무덤은 기다린다, 굶주린 무덤음!  아! 제발 내 이마 그대 무릎에 파묻고,  작열하던 하얀 여름을 아쉬워하며,  만추의 노란 다사로운 빛을 맛보게 해주오!              어느 마돈나에게    -스페인 취향의 봉헌물    내 사랑 여, 나 그대 위해 세우리,  내 슬픔 깊은 곳에 지하의 제단을,  그리고 내 마음 가장 어두운 구석에,  속세의 욕망과 조롱하는 시선에서 멀리  하늘빛과 금빛으로 온통 칠해진 둥지를 파고  그곳에 눈부신 그대의 을 세우리.  수정의 운韻으로 정성 들여 뒤덮은  순금의 그물, 다듬은 내 로  그대 머리 위에 커다란 왕관을 만들어주리 ;  그리고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여, 내 로  그대에게 외투를 재단해주리라, 의심으로 안감을 넣고  딱딱하고 묵직하고 야만스럽게,  초소처럼 그대 매력을 거기에 가두리라 ;  아닌 내 모두 모아 수를 놓아서!  그대의 은 떨며 물결치는 나의 ,  봉우리에서 흔들거리고 계곡에서 휴식하며  장밋빛 하얀 그대 온몸을 입맞춤으로 덮으리,  내 으로 신성한 그대 발밑에 밟힐  고운 비단 그대에게 만들어주리,  그것은 푹신하게 그대 발 조여주고,  정확한 거푸집처럼 그대의 발 모양을 간직하리라,  만일 내 정성 어린 온갖 기술에도  그대의 위해 은빛 을 새기지 못한다면,  내 창자 물어뜯을 을 그대 짓밟고 비웃도록  그대 발꿈치 아래 갖다놓으리,  속죄로 넘치는 승리의 여왕이여,  증오와 침으로 뒤덮인 이 괴물을.  그대는 보리라, 나의 모든 이 꽃으로 뒤덮인  의 제단 앞에 늘어선 처럼,  파랗게 칠한 천장을 별 모양으로 비추면서  불타는 눈으로 언제나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  그리고 내 모든 것 다해 그대를 사랑하고 숭배하기에,  모든 것이 과 , 그리고 과 이되니,  백설이 덮인 봉우리, 그대를 향해  끊임없이 폭풍우 실은 은 되어 올라가리.    마침내 그대 의 역할을 완수하고,  또 사랑을 잔인함으로 뒤섞기 위해,  오 어두운 쾌락이여! 한 많은 사형집행관 나는  일곱 가지 로  일곱 자루 날이 잘 선 을 만들어  가차없는 요술쟁이처럼 그대 사랑 깊은 곳을 과녁 삼아  팔딱이는 그대 에 모두 꽂으리라,  흐느끼는 그대 에, 피 흐르는 그대 에!            오후의 노래    짓궂은 네 눈썹이  기이하게 보이지만  천사 같지는 않다,  매혹적인 눈을 가진 마녀여,    오 변덕스런 여인이여,  내 끔찍한 정열이여!  우상 섬기는 제관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난 너를 열렬히 사랑한다.    사막과 숲의 향기가  뻣뻣한 네 머리채에 풍기고,  네 머리는 비밀과  수수께끼 같은 모습.    향로 주위처럼  네 살결엔 향기 감돌고 ;  저녁처럼 사람을 홀리누나,  어둡고 뜨거운 요정이여.    아! 제아무리 강한 미약도  네 나태함과 견줄 수 없으리,  넌 죽은 자 되살려내는  애무를 알고 있다!    네 날씬한 허리는  등과 젖가슴을 원하는 듯하고,  나른한 네 자태는  방석마저 반하게 하누나.    때때로 알 수 없는 네 광란을  잠재우기 위해  넌 진지하게 아낌없이  깨물음과 입맞춤을 퍼붓는다.    갈색머리 여인이여,  넌 쌀쌀한 비웃음으로 내 마음 찢어놓고,  달빛 같은 다정한 시선을  내 가슴에 던지는구나.    네 비단 구두 밑에  네 귀여운 명주 발 아래,  나는 놓으리라, 내 큰 기쁨을,  내 재능과 내 운명을.    빛이며 색채인 너,  너로 인해 치유된 내 넋을!  어두운 내 마음의 시베리아 벌판에  폭발하는 정열이여!            시지나    상상해보라, 근사한 차림을 한 가  숲을 가로지르고 가시덤불 헤치고 가는 모습을,  머리칼과 가슴은 바람에 맡기고 몰이꾼의 환성에 취한  그 늠름함, 최상의 기사들도 무색하리!    당신은 보았는가, 살육을 즐기는 테루아뉴를,  맨발의 민중을 선동해 돌격하게 하고,  뺨과 눈은 불타오르고, 제 맡은 역도 충실하게,  주먹에 검을 쥐고 궁궐의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시지나 또한 그런 모습이다! 허나 다정한 이 여장부는  살육을 즐기는 만큼 따뜻한 마음도 지녀 ;  그녀의 용맹은 화약과 북소리에 끓어올라도    애원하는 자 앞에서는 무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정열의 불꽃이 휩쓴 그녀 가슴은  그럴만한 사람에겐 언제나 눈물의 저수지 같다.              나의 프란시스카를 찬양하도다    새 현악기로 그대를 노래하리,  오 고독한 내 마음속에  즐겁게 하늘대는 어린 나무여.    그대 꽃다발을 몸에 감으렴,  온갖 죄악 씻어주는  사랑스런 여인이여!    축복받은 처럼  자력 감도는  그대의 입맞춤으로 목마름을 끄리라.    궂은 정열의 폭풍이  모든 길 위로 휘몰아칠 때,  그대는 나타났다, 여신이여,    고통스런 파선을 당했을 때  발견한 구원의 별처럼……  이 마음 그대 제단에 바치리!    덕으로 넘치는 연못이여,  영원한 청춘의 샘이여,  다문 입술 열어주렴!    그대는 추한 것을 불사르고  거친 것은 고르고  약한 것은 굳히었다!    굶주릴 땐 나의 안식처,  어둠 속에선 나의 등불,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다오.    내게 힘을 북돋워다오  향긋한 향기 풍기는  다사로운 목욕이여!    내 허리 둘레에서 빛나라,  오 성수에 적신  순수한 갑옷이여.    보석 박힌 잔,  짭짤한 빵, 맛좋은 음식,  오 신의 술, 프란시스카여!            식민지 태생의 한 백인 부인에게    태양이 애무하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는 만났다, 게으름이 비오듯이 사람들 눈 위로 내리는  종려나무와 새빨갛게 물든 나무 그늘 아래서  알려지지 않은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백인 부인을.    얼굴 빛은 연하고 따뜻한 이 매혹적인 갈색의 여인,  목은 고상하게 교태부린 모습이고 ;  걸을 땐 사냥꾼처럼 훤칠하게 날씬하다,  미소 짓는 모습 잔잔하고 눈빛은 자신만만하다.    부인, 당신이 만일 진정한 영광의 나라,  센 강변이나 루아르 강변에 간다면,  고풍스런 저택에 알맞은 이여,    당신은 그늘진 은신처에 깊숙이 들어앉아  그 커다란 두 눈으로 시인을 검둥이들보다 더 온순하게 만들고,  시인의 가슴속에 수많은 소네트를 싹트게 하리.              슬프고 방황하여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이 더러운 도시의 검은 대양에서 멀리 떠나,  처녀성처럼 푸르고 맑고 또 깊은  찬란하게 빛나는 또 하나의 대양을 향해!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바다, 망막한 바다는 우리네 노고를 달랜다!  요란한 바람의 거대한 풍금에 맞추어  노래하는 쉰 목소리의 여가수 바다에게 어떤 악마가  자장가라는 숭고한 재주를 부여했는가?  바다, 망막한 바다는 우리네 노고를 달랜다!    날 실어가렴, 수레여! 날 데려가렴, 돛단배여!  멀리! 멀리! 여긴 우리 눈물로 만들어진 진창!  -진정 아가트의 슬픈 마음이 때때로 외치는가?  “뉘우침과 죄악과 고통에서 멀리  날 실어가렴, 수레여! 날 데려가렴 돛단배여!“ 라고    향기로운 낙원이여, 넌 멀기도 하다.  맑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사랑과 기쁨뿐인 그곳,  거기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순수한 쾌락 속에 마음이 잠기는 곳!  향기로운 낙원이여, 넌 멀기도 하다!    그러나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은,  달음박질과 노래와 입맞춤과 꽃다발은,  저녁이면 숲속에서 술잔과 함께  언덕 저쪽에서 떨며 울리는 바이올린은,  -그러나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은,    은밀한 기쁨 가득한 순결한 낙원은,  이미 인도나 중국보다 더 멀어졌는가?  흐느끼는 부르짖음으로 그걸 되불러와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되살릴 수는 없는가,  은밀한 기쁨 가득한 순결한 낙원을?            유령    야수의 눈을 가진 천사들처럼  나는 그대 규방으로 되돌아와  밤의 어둠을 타고  소리 없이 그대를 향해 스며들어가리,    그리고 갈색머리의 여인이여, 그대에게 주리,  달빛처럼 차가운 입맞춤을,  웅덩이 주변을 기어다니는  뱀의 애무를.    희뿌연 아침이 오면,  그대는 보게 되리, 내 자리 빈 것을,  그곳은 저녀까지 싸늘하리.    남들이 애정으로 그러하듯,  나는 공포로 군림하고 싶어라,  그대의 생명과 그대 젊음 위에.            가을의 소네트    수정처럼 맑은 그대의 눈이 내게 묻기를 :  “야릇한 님이여,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매력 있나요?”  -그저 귀엽게 입 다물고 있어다오! 내 마음은,  태곳적 짐승의 순박함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성나게 하는 내 마음은,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의 끔찍한 비밀을,  또 불꽃으로 씌어진 그 슬픈 전설도,  부드러운 손으로 날 흔들어 오래오래 잠들게 하는 요람이여,  나는 정열을 증오하고, 정신은 날 아프게 한다!    우린 그저 조용히 사랑하자구나, 이  제 집에 몰래 숨어 운며의 활을 당긴다,  그 낡은 무기고 속의 무기를 난 알고 있다 :    죄악, 공포, 광기를! -오 파리한 데이지꽃이여!  그대 또한 나처럼 가을의 태양이 아니던가?  오 그토록 새하얀, 그토록 차가운 나의 데이지꽃이여!            달의 슬픔    오늘 밤 달은 더욱 느긋하게 꿈에 잠긴다 ;  겹겹이 쌓아놓은 보료 위에서 잠들기 전에  가벼운 손길로 무심히 제 젖가슴 주변을  어루만지는 미인처럼,    부드러운 눈사태 같은 비단결에 등을 기대고,  죽어가듯 오랫동안 멍하게 몸을 맡긴 채  창공을 향해 피어오르는  하얀 허깨비들을 둘러본다.    때때로 한가로운 나태함에 지쳐,  남 몰래 이 지구 위로 눈물 흘려보내면,  잠과는 원수인 경건한 시인은    이 파리한 달의 눈물 손바닥에 옴폭 받아,  오팔 조각처럼 무지갯빛 아롱진 이 눈물을  태양의 눈이 못 미치는 먼 곳 가슴속에 간직한다.            고양이들    열렬한 애인들도 근엄한 학자들도  중년이 되면 하나같이 좋아한다,  집안의 자랑거리, 힘세고 다정한 고양이들을,  그들처럼 추위타며 움직이기 싫어하는 고양이들을.    학문과 쾌락의 친구 고양이들은  어둠의 정적과 공포를 찾아다닌다 ;  는 그것들을 상여말로 부렸겠지,  그것들이 자존심 굽히고 시중을 들 수만 있다면.    생각에 잠겨 의젓한 자태를 취할 때는  깊은 고독 속에 누워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를 닮아,  끝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는 듯 ;    풍만한 허리에는 마법의 불꽃 가득해,  고운 모래알 같은 금 조각들이  그 신비한 눈동자에 어렴풋이 별을 뿌린다.            올빼미들    검은 주목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  올빼미들이 줄지어 앉아서,  이방의 신들처럼 붉은 눈으로  쏘아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비낀 태양 밀어내고  어둠이 깔릴  저 우수의 시간까지  꼼짝 않고 저렇게들 있으리라.    저들의 몸가짐이 현자를 가르치리,  이 세상에서 두려운 것은  법석과 움직임이라고,    지나가는 그림자에 취한 사람은  자리를 옮기고 싶어한 것에 대해  언제고 벌을 받는다고.              파이프    나는 어느 작가의 파이프지요 ;  아비시니아나 카프라리아 여자 같이  새까만 내 얼굴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게 되죠,  우리 주인님이 굉장한 골초란 걸.    주인님이 괴로움에 잔뜩 휩싸일 때면,  나는 마구 연기를 뿜어대죠,  일터에서 돌아오는 농부 위해  저녁 준비하는 초가집처럼.    불붙은 내 입에서 솟아오르는  움직이는 파란 그물 속에다  그의 넋을 얼싸안고 달래주지요.    그리고 강한 향기 마구 감돌게 하여  그의 마음 홀리고  지친 그의 머리 식혀주죠.              음악    음악은 흔히 나를 바다처럼 사로잡는다!  창백한 내 별을 향해,  안개의 지붕 아래, 또는 망막한 창공 아래  나는 돛을 올린다 ;    돛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허파는 부풀어,  나는 기어오른다, 밤이 내게 가려준  겹겹 물결의 등을 ;    나는 느낀다, 요동치는 배의 온갖 격정이  내 안에서 진동함을 ;  순풍과 태풍, 그리고 그 진동이    끝없는 심연 위에서  나를 어른다, 때로는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  그것은 내 절망의 커다란 거울!            무덤    어느 어둡고 갑갑한 밤에  한 착한 기독교인이 자비심으로  어느 오래된 폐허 뒤에  으스대던 그대 몸 묻어준다면,    청초한 별들이  무거워진 눈꺼풀 감고,  거미가 그곳에 줄을 치고,  독사가 새끼 칠 시각    일년 내내 그대는 듣게 되리,  벌받은 그대 머리 위에서  늑대들 구슬픈 울음 소리,    그리고 굶주린 마녀들 울부짖음을,  음탕한 늙은이들 희롱도,  음흉한 야바위꾼들의 음모도.            환상적인 판화    이 별난 유령, 걸친 것이라곤  해골 이마 위에 괴기하게 올려놓은  사육제 냄새 나는 끔찍한 왕관 하나.  그는 박차도 채찍도 없이 말을 숨가쁘게 휘몰아간다,  이 황량한 늙다리 말도 그처럼 하나의 귀신,  간질병 걸린 듯이 콧구멍에서 거품을 내뿜는다.  그것들은 둘 다 허공을 가로질러 질주하며,  무모한 발굽으로 무한한 공간을 짓밟는다.  기사는 그의 말이 짓뭉개는 이름 없는 궁중 위로  번득이는 칼을 휘두르며 두루 돌아다닌다,  제 궁궐 검열하는 왕자처럼,  지평도 없이 아득한 차가운 묘지,  거기 희뿌연 햇빛 받으며  고금의 역사 속의 온갖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쾌활한 사자死者    달팽이 우글대는 기름진 땅에  내 손수 깊은 구?!--"  
614    수사학, 시학, 그리고 시-조너선 컬러 댓글:  조회:1161  추천:0  2019-01-04
수사학, 시학, 그리고 시     은유는 언어와 상상력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은유는 본래부터 경박스럽거나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상으로 존중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유의 문학적 힘은 그것의 모순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스의 시구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세대간의 관계를 새로운 견지에서 보도록 해준다. 이 시구는 아이의 관계를 후일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그의 아이와 맺는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교한 명제나 심지어는 이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은유는 가장 쉽게 정당화될 수 있는 수사적인 비유법이다.   하지만 이론가들은 다른 비유어의 중요성 역시 강조해 왔다. 로만 야콥슨에게 은유와 환유는 두 가지 기본적인 언어 구조이다. 은유가 유사성에 의해 연결된다면, 환유는 인접성에 의해 연결된다. 환유는 우리가 '여왕'을 '왕관'으로 말할 때처럼 그것과 인접해 있는 것에서부터 다른 것으로 이동한다. 환유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연속성 속에서 사물을 연결시킴으로써 질서를 산출한다. 그리고 환유는 한 영역을 다른 영역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은유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주어진 영역 안에서 어떤 것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이동한다. 다른 이론가들은 여기에다 제유법과 아이러니를 덧붙여 '네 가지 주요 수사법'의 목록을 완성시킨다. 제유법은 전체를 부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즉 '열 개의 손'은 '열 명의 노동자'를 뜻한다. 제유법은 한 부분의 성질로부터 전체의 성질을 추론함으로써 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러니는 현상과 실재를 병치시킨다.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일어난 것이 예측한 것과 상반되는 경우이다.(기상통보관이 소풍간 날에 비가 온다면?) 은유·환유·제유·아이러니, 이 네 가지 수사법은 역사가인 헤이든 화이트에 의해 역사적인 설명이나 그가 '플롯 짜넣기'라고 부른 것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수사법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가 경험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수사학의 구조이다.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은, 이 네 겹의 본보기에서 잘 표출되어 있는 바, 엄청나게 다양한 담론에서도 의미가 산출되도록 만들어 주고 의미의 토대가 되는 근본적인 언어의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 조너선 컬러, , 동문선, 1999, 117-118쪽.      
613    문학의 역사는 가능한가?(데이비드 퍼킨스) 댓글:  조회:1428  추천:0  2019-01-04
문학사는 역사와 다르다. 문학사가 다루는 작품들은 역사의 일부로서의 그들의 의미와 다르면서 그것을 초월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학사는 비평이기도 하다. 문학사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를 재구성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사는 문학작품을 조명한다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사는 한 작품이 어떻게, 또 어째서 그 형태와 주제를 갖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를 추구하고 그리하여 독자들이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기를 희구한다. 문학사는 문학의 이해에 봉사한다. 문학사의 기능은 부분적으로 읽기에 대한 충격에 있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문학사를 쓰는 것이다. - 데이비드 퍼킨스, "Is Literature History Possible?"(유종호, , 민음사, 2011, 24쪽에서 재인용)
612    어린이를 위한 시는... 댓글:  조회:1226  추천:0  2019-01-04
월터 데 라 메어는, 어린이를 위한 시는 단순하고 달콤하게 지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엔 조금도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또 어린이의 연령의 차같은 것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어린이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타내는 직감적인 반응을 전폭적으로 믿는다. 어린이들한테 시를 주는 경우, 그들은 자기네가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직감과 상상에 의하여, 한정된 경험의 울타리를 넘어 훨씬 앞의 일까지 짐작한다. 어린이들이 시다운 시를 읽을 때, 자기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말을 쌓아 올리면서 저축해 나갈뿐만 아니라, 아직 희미하게밖에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길을 발견한다. 많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시를 읽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쁨을 주는 힘이 늘 강하게 발휘되는 시를 어린이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놓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에 대한 제재는 아주 광범하고, 휘어 잡기어려울 뿐아니라, 시의 영향을 측량할 길이 없다. "어린이에게 어떤 시를?" 하는 데 대해서는, 이와 같은 짧은 장에서는 두 서너가지 제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시와 어른들이 좋아하는 시 사이에 그므을 한줄 그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어린이들이 시를 읽을 때의 그 신선한 태도, 열심, 이것이 어린이들의 이점이라는 것을 명념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이들은 가장 좋은 시에 반응을 나타내고, 또 어린이들은 가장 좋은 시를 읽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장 좋은 시와 비춰보고 어린이들한테 줄 훌륭한 시를 추려냈을 때, 또는 시인들 자신이 추려낸 것을 주었을 때, 비로소 어린이들은  좋은 시를 읽게 되는 것이다. - 릴리언 H. 스미드, , 교학연구사, 1966, 151-152쪽. 
윤삼현 작품세계 언급 비평] 2004 한국동시문학 봄호(제5호)                                  상징의 활용                                                                           유경환    동시를 쓰는데 상징(symbol)을 왜 알아야 할까?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자. 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어도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다. 이론 공부 없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하고 문예지 추천으로 등단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론 공부를 구태어 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창작 행위에 있어서 이론이란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을 알아 두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론 공부는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한 ‘거름주기’와 같다.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수준의 동시를 계속 생산하려면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동시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동시 창작에 있어서 상징의 활용은 필요 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쉬운 말로 한다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되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을 알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조건을 더 얻는 셈이다.  유치환 시인의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곧 생명의 몹부림을 상징하는 시어로 씌였다.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광막한 현실, 곧 일제 강점기 우리의 핍진한 현실을 상징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존재론적 의미를 상징한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상징이고 푸른 색 한반도는 통일 한국의 상징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며 학교마다 교기나 배지가 있다. 이들이 다 상징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은 복합적 의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대신하도록 특별한 의미를 확대한 표상(表象)이다. 그래서 문예이론서에서는 상징주의를 표상주의라고도 부른다.  동시 작품을 쓰는데 상징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직접 표현을 미뤄놓고 간접 표현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 더 깊고 더 넓은 뜻을 생각하도록 새로운 해석의 장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일종의 유도 기법이다. 참신한 동시를 쓰고자 한다면 참신한 상징 시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요즘 박두순, 이준관, 윤삼현, 이상문, 이정석, 한명순, 신형건(무순) 시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상징의 활용에 남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그 앞 세대가 구사하던 상징 기법과 아주 다른 상징 기법을 스스로 개척하여 활용하는 본보기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상징 활용과 상징 기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동시가 너무 어려워서…난해한 것을 써놓고 저희들끼리만 좋다고 하는,저들끼리 만의 잔치’라고. 직접 표현의 시어만 가지고 동시를 써온 세대가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읽고 들으면 금세 알아듣는 직접 표현의 세대가 오늘날 70대 후반, 80대에 이른 원로 세대다. 직접 표현의 대표격이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 등의 시어이다. 이들 시어는 상징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퇴색하고 말았다. 6·25 전쟁 직후 새로운 세대 동시인들이 직접 표현 대신에 간접 표현의 시어를 도입 구사하는 방식으로 ‘동시도 시여야 한다’는 기치를 올렸던 까닭이다. 이 기치는 필자가 맨 먼저 들었다. 동시도 시여야 한다는 말의 뜻은 동시는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라는 의미다.    동시가 한찬 전 세대의 노랫말 수준에 머물러서는 설득력이 없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받아들여 읽고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프랑스 어린이들이 보들레르의 시를 초등 과정에서 외워 낭송하는 까닭을 모르면 ‘동시에 왜 상징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것이 뻔한 일이다.  좋은 동시로서 난해한 시는 있을 수 없다.  산을 다룬 동시는 산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인물이 덕스런 할아버지의 상징성을 풍기기도 한다. 강을 다룬 좋은 동시는 강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오랜 역사나 삶의 흐름을 넌지시 던져주기도 한다.  좋은 동시인데도 난ㄹ해하다고 우긴다면 그 상징성을 파악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만한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독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일반 독자도 아닌 비평가라는 사람이 좋은 동시를 놓고 난해하다고 앞장선다면, 우리는 이비평가란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 『엄마휘파람새 』(윤삼현 제2 동시집)(1996. 2.10 발간)에 실린 몇 편의 동시                              야간 비행                    밤하늘을 바라볼 때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의 뜰에서 노닐고 있었다                    밤비행기를 타고 비행을 하다가                  나도 하늘의 뜰에서 노니는                  별이 되었다                    땅을 내려다 보니                  땅에도 별들이 노닐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반짝이는 별이었다.                                 분수                     분수는 분수는                   땡볕이 좋다                    더운 여름날이 좋다                    따가운 햇볕이 싫어                  찐득한 대낮이 싫어                  다들 그늘 속으로                  움츠러 들지만                    분수는 분수는                  햇살과 맞선다                  힘을 겨룬다                    그러다가 서로 좋아져 버렸는지                  아예 햇살과 손 잡으러                  쑤우우욱                  키를 키운다.                            꽃들의 약속                     같은 이름을 가진 꽃들은                   서두르거나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끼리끼리 한 날짜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같은 얼굴을 한 꽃들은                   양지에 있거나 음지에 있거나                   또래또래 제 날짜에                   꽃봉오리 터뜨린다.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한번은 밀물이다가 한번은 썰물                       밀물 들 때면                     뭍으로 뭍으로 설레임 출~렁                       썰물 날 때면                      먼 수평선으로 그리움 쏴~아.                             산을 오르다가                        산을 오르다가                      나는 뱃사람이 됩니다                        불끈 솟아난 파도 언덕 끝에서                      배를 멈추고                      저 크고 작은 산굽이 파도를                      내려다 봅니다                        넘실넘실 파도 떼                      쏴 쏴 물결소리                        내 배는 두둥실                      산 파도를 넘습니다.                                 도시에서는                    고향길에서 자주로 만나던 풀벌레 소리                  덤불 숲 같은 도심 한복판 거리를                  헤집고 다녀도                  여기선 왜 울음소리 한 개 걸리지 않지?    
610    冰 玻 璃 / 凌代坤 댓글:  조회:1798  추천:0  2019-01-03
冰 玻 璃  凌代坤     冬,给小河 安一块 长长细细的冰玻璃 小河不乐意 打碎玻璃 逃走了       冬,给池塘 安一块 圆不圆方不方的冰玻璃 孩子们不乐意 他们用石头砸 木棍捅 把玻璃打的稀巴烂 别把水里的鱼儿 闷坏了    
609    无 题 [土耳其] 纳齐姆·希克梅特 댓글:  조회:2003  추천:0  2019-01-02
无 题 [土耳其] 纳齐姆·希克梅特     把地球交给孩子吧,哪怕仅只一天 如同一只色彩斑斓的气球 孩子和星星们边玩边唱       把地球交给孩子吧 好比一只大苹果,一团温暖的面包 哪怕就玩一天,让他们不再饥饿       把地球交给孩子吧 哪怕仅只一天,让世界学会友爱 孩子们将从我们手中接过地球 从此种上永生的树       读诗小语:     诗歌可以说分成三节。第一节,把地球比喻成气球,孩子们和星星玩耍,唱歌。 银铃般的笑声与繁星点点交相辉映;第二节,把地球比喻成苹果和面包,让孩子们不再饥饿,让孩子温饱着肚子继续玩耍。第三节,孩子让世界变得友爱,并种上永生树。孩子们不分种族,不分肤色地携起手来,爱是通用语言,地球变美好家园。   诗人的心里怀着美好愿望和善意的期待,宁愿相信,如果把地球交给孩子,就会恢复到世界的本来面目,变得可爱,充满了歌唱,变得富足,变得友爱,变得绿色,变得永生,变得可持续的世界。诗人分别在三节里三次发自内心的呼唤:把地球交给孩子吧。带着真挚而热烈的期望和希冀。  
608    奶奶,是故乡的符号 文/詹胜利 댓글:  조회:1930  추천:0  2018-12-30
奶奶,是故乡的符号 文/詹胜利     菜园青青 弯腰劳作的奶奶 就像一个小小的逗号     桃花灼灼 奶奶沉醉的样子 多像一个长长的叹号     月儿弯弯 奶奶踮脚远眺的身影 犹如一个大大的问号     汤圆甜甜 当我们团聚在一起的时候 奶奶的笑啊 好像一串串的省略号     奶奶 是故乡的符号     来源 : "儿童诗歌"  
607    钢琴家 文/翟莹翔 댓글:  조회:1876  추천:0  2018-12-30
钢琴家 文/翟莹翔     天空是位钢琴家 春天 雨点是它的手 草地是它的琴键 嘀嗒—嘀嗒!     夏天 浪花是它的手 大海是它的琴键 哗啦—哗啦!     秋天 风儿是它的手 树木是它的琴键 沙沙—沙沙!     冬天 雪花是它的手 大地是它的琴键 呼哗—呼哗!   来源 : "儿童诗歌"    
606    (산문) 놀이 / 이낙봉 댓글:  조회:1461  추천:0  2018-12-28
놀이   이낙봉   세계의 안쪽이 있다면 세계의 바깥쪽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안쪽에 내가 살고 있다면 세계의 바깥쪽에 당신이 살고 있을 것이다. 세계의 안쪽이 나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다면 세계의 바깥은 날 그냥 방목할 것이다. 맑은 유리창은 세계의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에 있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유리창이 나와 당신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왼손을 들면 당신도 따라서 왼손을 들 것이다. 내가 밥을 먹으면 당신도 밥을 것을 것이고 내가 울거나 웃으면 당신도 울거나 웃을 것이다. 내가 잠을 자면 당신도 잠을 잘 것이고 꿈을 꾸면 당신도 꿈을 꿀 것이다. 그러나 교감이 문제다. 유리창이 나와 당신의 호흡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당신과 내가 놀이를 즐기려면 당신이 유리창을 열거나 내가 유리창을 깨해야 한다. 과연 누가 할 것인가?   영화 인셉션(Inception-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을 본다. 논리적 판단이나 이성적 판단은 필요 없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타인의 꿈속에 침투하여 생각을 훔칠 수도 있고 타인의 꿈속에서 그의 무의식을 이용하여 생각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꿈속의 꿈. 또 그 꿈속의 꿈. 다시 그 꿈속의 꿈으로 자꾸만 들어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꿈을 공유한다. 그럼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결국 나는 영화 끝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놀이에 인셉션 당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사실 영화를 분석하고 따질 필요는 없다. 그냥 보고 즐기면 된다. 붉은 악마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쳤고, 가수 인순이가 놀라운 가창력으로 ‘거위의 꿈’을 노래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연아도 환상의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런데… 꿈은 결국 깨는 것 아닌가? 강호순의 꿈은? 빙어의 꿈은? 꿈은 스스로 꿈을 꾸는 자가 완성하는가? 놀이는 스스로 노는 자가 완성하는가?   여자는 국선변호인 남자는 교통사고 피의자, 둘은 언젠가 스치듯 술잔을 나눈 사이, 남자는 개를 안고 운전 하는데 그놈이 오줌을 싸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여자에게 말한다, 흐흐,   여자의 꿈 속에서 보양음식점 주차장을 찾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자전거로 바뀐다, 자전거 주위로 골목의 개들이 미친 듯이 쫓아온다, 얼굴은 토끼를 닮았고 아가리는 뱀처럼 쩍 벌어진 개가 발목을 문다, 막대기를 집어 아가리에 넣었더니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다, 내 다리를 문 놈,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소주 한 병씩 먹이겠다고 다짐한다, 흐흐흐,   내 꿈 속의 꿈 속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다, 어떤 남자가 곁에 오더니 형님은 4번 타자라고 말한다, 바닥은 토사물이 홍건하다, 엉덩이 큰 여자가 대걸레 대신 치마로 토사물을 닦아낸다, 남자가 사실 형님은 4번 타자가 아니라고 소리치며 도망간다, 흐흐흐흐, -졸시 ‘꿈’ 전문   네 번째 시집 ‘미안해 서정아’ 수록 시 모두에 원제목 대신 주민등록번호 앞 번호를 제목으로 바꾼다. 시의 탄생일인 초고를 축하한다. 주된 의도는 처음부터 독자가 제목으로부터 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뻔한 시에 뻔한 제목. 식상한 일이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으나 놀기로 한다. 3년 전 일이다. 그때도 시원했는데 지금도 시원하다.   시란 무엇인가? 골치 아프게 시가 무엇인지 시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할지.생각하지 말고 시쓰기를 하자? 전통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하고 내용에 충실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뒤샹은 화단의 기존 형식에 염증을 느껴 사물로 말하기를 시도한다. 예술이란 우리 삶의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흔적(레디메이드)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보는 물건들에 작가의 고민에 의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하면 그것 또한 작품이라고 새로운 형태의 미술세계를 창조한다. 그의 전위적인 생각은 앤디워홀과 백남준이 그 뒤를 이어간다. 그들 뿐 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미술 외 다른 예술분야와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 계속 확대 재생산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시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마음가는대로 거리낌 없이 놀자.   신작시 4편 근작시 6편 합이 10편. 발표를 한 시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신작시와 근작시를 구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렇게나 그냥 10편을 고른다. 조금 부담스러운 분량이지만 골라서 대충 분류한다. 나는 신작시가 근작시고 근작시가 신작시이므로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발표한 시 중에서 근작시 6편을 고르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발표한 시를 또 발표하는 것 같아 싫었다.) 시 10편의 사족으로 산문을 마무리 하자. 요즈음 시와 내가 놀고 있는 종목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다. 대중가요 가사다.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즐겁다. 어차피 내가 하는 게임은 전통적인 방식의 게임이 아니므로 내가 룰을 만들고 내가 즐기면 된다. 그러다 재미없으면 또 새로운 룰을 만들어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계속 룰을 만든는 것도 썩 괜찮은 놀이다.                 개   이낙봉   g는 양갈보(주한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와 똥갈보(내국인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가 한 동네에서 공존하는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같이 노는 친구들은 니나놋집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모두 그렇고 그렇듯이 철모르고 건강하고 즐겁게 커간다. 발정기가 시작될 즈음엔 양갈보가 모여 사는 골목으로 이사를 간다. 양갈보의 방에는 포르노 잡지가 있고 미군 병사들은 술을 마시거나 대마초를 피운다. 양갈보는 g가 발정기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이면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뒷물을 한다. 낄낄대며 양갈보의 알몸을 엿볼 때 첫 욕망의 대상이 뻔질나게 집으로 놀러온다. g는 모르는 건지 어리석은 건지 발정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암내를 따라가지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비의 암내에 이끌려 무작정 시를 쓴다. 비의 암내에 이끌려 무작정 쓰는 시는 건방지고 허황되고 환각을 요구한다. 그런 환각을 위하여 아티반(신경안정제)을 복용하고 술을 마신다. 환각 속에서 깨어나면 세상이 도니까 나도 같이 돌아야 돌지 않는다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 착각을 하고 착각은 또 다른 착각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악순환 속에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갔을 때 만난 환상의 새. 환상의 새는 불타는 욕망에 기름을 붓고 잡힐 듯 말 듯 주위를 맴돌다가 날아나고 맴돌다가 날아난다. 그렇게 활활 타오는 욕망의 끝은?   이런 글쓰기는 사건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엮어나가야 흥미로운데 난 이런 글쓰기가 지겹고, 아무튼 g는 잡종이다. 잡종은 잡종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잡종은 잡종을 선택하고 또 선택하여 조금씩 조금씩 진화한다. 진화하면서 자칭 순수혈통이라고 자랑하는(사실 순수혈통인 척하는) 무리 속에 섞여 별종으로 살아간다. 간혹 순수혈통 중에는 뛰어난 시각과 후각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먹이를 단숨에 끝장내는 우두머리가 있다(사실 가짜 우두머리가 대부분이다). 가짜건 진짜건 우두머리 주변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무언가 얻어먹겠다고 독한 암내를 풍기며 덤벼든다. 그러나 사기의 자질을 가진 무리들은 교미가 끝나고 얼마간 허기가 채워지면 미련 없이 떠나거나 곁에서 뻔한 사기를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잡종은 다르다. 잡종은 잡종이기에 잡종끼리 끊임없이 교접하여 돌연변이를 만든다. 돌연변이는 눈에 잘 보이기 종속이어서 자짓하면 말라죽어버린다. 말라죽더라도 잡종을 선택하는 것은 또 다른 돌연변이의 탄생을 위해서다. 돌연변이가 돌연변이를 낳고 낳아 돌연변이는 명맥을 이어간다. 태생적으로 g는 잡종을 선택한다. 돌연변이를 선택한다.   등 낮추고 꼬리 내린/ 개, 침 흘리는/ 개, 막다른 골목의/ 개, 쓰레기통 옆에서 비 맞는/ 개, 발정한 성기 덜렁대는/ 개, // 황홀하게 부서지는 아카시아/ 꽃잎 따먹던 시절의 개,/ 배고파도 굶고/ 졸려도 자지 못하는 개, // 버석버석 말라가는/ 개, 사랑하고 싶은/ 개, 새끼 낳고 싶은/ 개, 이빨 감추고 사는/ 개, 비루먹으며 끝까지 살아남을/ 개, -졸시 전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장마철 습기처럼 눅눅하다. 이런 글쓰기는 변죽을 울리는 짓이지만 변죽이면 어떻고 팥죽이면 어떤가. 어차피 언어는 본질을 모르고 변죽을 울리는 화려한 북채인 것을. 욕망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허망한 것. 욕망은 계속 부패하는 거대한 똥덩어리. 거대한 똥덩어리는 작은 똥막대기 하나로는 깨끗이 치울 수 없는 일. 잡종 g는 환상의 새에 이끌려 활활 타오르는 욕망의 끝 천길 낭떠러지에 다다른다. 돌아설 수도 없고 한발 내딛으면 허공. 10년을 쪼그리고 앉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죽어도 좋다 뛰어내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허공에서 배설을 만난다. 배설할 대상은 많고 배설은 욕망보다 똥덩어리가 작다. g는 배설을 위하여 끝까지 간 욕망을 이용한다. 긴장 풀어진 첫 욕망의 배설(s), 건방지고 건조한 욕망의 배설(k), 바람의 축축한 욕망의 배설(m), 지금까지 계속 괴롭히는 끈끈한 욕망의 배설(j)을 철저히 기만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단 한번의 술의 배설(c)까지 시도한다.(괄호 속 알파벳은 개인적인 암호) 그러나 어느 배설이건 배설 후 죽음의 냄새가 스며들고, 스며든 죽음의 냄새는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욕망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태워 버려야 죽음의 냄새를 지울 수 있다. 그렇게 태워 버리면 배설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재속에 숨어있는 불씨까지 말끔히 죽인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재속에 숨어 있는 불씨.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불씨.   너는 아는가? 일회용배설, 똥막대기가 개의 좋은 장난감인 것을.   낡은 의자 위에 늙은 개가 앉아있다, 출입문 유리창이 조금 깨져있다,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이 격렬하게 섹스를 한다, 의자 위의 늙은 개가 출입문 쪽으로 뛰어내린다, 라고 생각나는 갈겨쓴다, //목욕탕에서 본 노인, 배와 엉덩이와 허벅지가 쭈글쭈글한 노인, 정욕에 좋다는 약탕에 누워있는 노인, 젊은 사내보다 길어 보이는 중심을 담금질 하는 노인이 부럽다, 라고 싱겁게 생각나는 대로 쓴다, //첫 연을 낡은 의자 위의 늙은 개,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의 격렬한 섹스, 낡은 의자와 늙은 개와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의 새벽이라고 또 생각나는 대로 지금 막 고쳐 써본다, -졸시 전문       *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집 ‘내 아랫도리를 환히 밝히는 달. 돌속의 바다. 다시 하얀 방. 미안해 서정아.  
2015년 가온문학 여름호 발표       이제는​          박남희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기우는 것은 빨리 파는 것이 남는 것이지요   술잔을 생각하면   저녁하늘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누가 술에 조금씩 어둠을 섞어 하늘에 버렸을까요   이제는 별을 팔아야겠습니다   벌을 받아야겠습니다   술 취한 별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을 사이에 두고   영영 벌 받기 위해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하늘을 팔아야겠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와   살아서 눈물 흘리는 자가 흘려보낸 시간 속   자꾸만 기울어지던 중심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힌 채 인양할 줄 모르는   저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판다’의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     위의 시는 ‘판다’라는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트라이앵글 구조는 대등하고 독립적인 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의미구조와 형태구조로 분석하여 살펴보자.    1. 의미 구조      위의 시「이제는」은 많은 시간의 경과를 겪어낸 ‘현재 시점’의 제목이다. 현재 시점에서 화자는 지금까지 생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며 소유한 것들, 이를 테면 에 대하여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놓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예견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까지 집착하며 소유하고 있던 을 팔고 싶다고 말한다.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팔고 싶’어하는 표현에 주목하여야 한다. 시적 반전 매력을 갖는 대목이다. 버리지 못할 정도로 간절하고, 집착하며, 소중한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팔다’는 ‘석양’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석양은 존재하다가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생물체의 쓸쓸한 뒷모습’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잡다’와 ‘놓다’라는 단어는 반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존재와 부재, 소유와 상실, 집착과 회피를 의미한다. ‘석양’의 이미지는 ‘놓음’의 이미지다.   ‘별’과 ‘하늘’이라는 단어를 의 적 상징성으로 해석하여 보자. ‘별과 하늘’은 실제하는 사물이지만, 등의 현대적 상징성을 가진 단어로 해석된다.   ‘석양, 별, 하늘’은 이미 많은 시인들이 상용한 단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단어들은 늘 새로운 의미와 표현으로 재탄생되는 신비로운 명약과 같은 이미지를 재창조한다. 굳어버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도 표현과 구조의 새로움을 갖는다면 독창적인 시로 탄생할 수 있다.         2. 형태 구조      다음은 위의 시의 형태 구조를 살펴보자.     첫째, 독립적 병렬구조   제목과 1, 2연의 연결 형태를 살펴보자.   제목 ‘이제는’은 독립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목을 1연과 2연 맨 앞에 배치하여 보자. 모두 의미가 통한다. 또한 ‘1, 2, 3, 6, 7, 8, 12, 15행’의 앞에 어떤 곳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다. ‘지금은’이라는 제목은 전체를 아우르는 수식어 작용을 한다. 물론 1연 1행과만 연결하여도 된다. 위의 시는 병렬적이며 독립적이다.        둘째, 트라이앵글 구조    이라는 단어를 중심어로 하는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3개 단어의 구조와 형태는 대등한 등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 연과 행들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유기적이다.     셋째, 파생적 구조   구조에서 파생어와 파생의미 구조를 갖는다.   1행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가 2행 ‘기우는 것’이다.   3, 4행도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의 구조를 갖고 있다.   3행 ‘술잔’과 4행 ‘붉어지는’은 5행의 ‘술에 어둠을 섞은 하늘’의 이미지로 파생된다. 5행의 ‘술’과 6행의 ‘별’은 8행의 ‘술 취한 별이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으로 연결된다. 8행의 ‘흐르는 것’들의 별의 이미지를 끌고 와서 10행의 ‘견우와 직녀’로 연결된다.     2행 ‘기우는 것’은 14행 ‘기울어지던 중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15행과 16행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석양’의 이미지와 같다.     1행 ‘팔다’의 이미지는 6행, 11행, 16행에서 반복적 파생을 한다.        넷째, 아이러니 기법   위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에서 보여주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와 같은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팔겠습니다’라는 단어는 역설적이다. 쉽고 짧지만 강렬한 연시다.  
604    [스크랩] 가온문학 이선 평론- 이낙봉 2016년 여름호 댓글:  조회:1758  추천:0  2018-12-28
시답잖은/시답지 않은 – 묘비명      이낙봉     1.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따뜻한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 지루한 안전한 더운 재미있는 지저분한 작은 무뚝뚝한 위험한 추운 높은 평화로운 어두운 활기찬 오염된 다정한 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4학년 2학기, 두산동아(주), 94쪽에서 인용   2.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외로운, 심심한,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걸,   3.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그럼에도 사는,   , , , 걸,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이 선         1. 서론   이낙봉은 작고한 오남구 시인이 주장한 디지털시론의 ‘탈관념’론 시를 창작하며 그와 뜻을 같이 한 시인이다. 현대의 하이퍼시 기초를 닦는데 한 역할을 하였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시리즈도 하이퍼시의 여러 구성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낙봉의 시를 하이퍼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위의 시는 연을 1. 2, 3의 장의 구조로 병렬적이며, 개별적, 독립적인 하이퍼시 구조로 구성하였다.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새로운 구성방법은 지금까지 본 일반 단어로만 된 시들과 차별화된다. 각 연들이 나타내고 있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장에서 필자는 편의상 1연, 2연, 3연으로 구분한 점 양해 바란다.     2. 1연-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기법   1연은 학습지 구조와 형식을 가진 도표를 영입한 새로운 하이퍼시 형태의 시다. 1연에서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0표한 부분은 독자의 의식구조를 대표한다. 또한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도 주목하여 보자.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부분에 해당된다. 시의 구조가 독자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인의 감정이나 시적화자의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독자중심이다.   반대어로 구성된 제시어는 사회화된 인간의 안전과 행복지수를 점검하게 한다. ‘따뜻한- 추운,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지저분한, 지루한- 활기찬, 안전한- 위험한, 더운- 추운, 작은- 큰, 평화로운- 어두운, 안전한- 오염된, 다정한- 무뚝뚝한’ 등 ‘지역’과 ‘사회’라는 집단구조에 대한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인의 문명사회를 향한 안전과 행복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주제의식을 배제한 도표를 통하여 가장 강한 주제의식을 전문처럼 주장하고 있다. 역설과 아이러니 기법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3. 2연-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음, 독자참여   2연은 세 개의 중요한 하이퍼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은 긍정어로 ’0표‘를 하라고 하였는데, 2연은 부정어로 ’x표‘를 하라고 한다. 1연과 구분하는 기교적 표현이다. 또한 ’나‘라는 개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긍정어 3개에 부정어 30개다. 긍정어는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단 3개 단어인 반면에 부정어는 ‘외로운, 심심한,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등 30개다. 현대인의 소외와 회피,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1연과 같은 구조로 독자에게 참여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걸,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이 부분은 ‘이상 시인’의 시와 소설에서처럼 나른한 권태가 느껴진다. ‘심심함, 나른함, 시시함, 시답잖은, 게으른’ 감정들이 주는 회피적 심리가 잘 드러나고 있다. 현대인의 무관심과 소외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걸’이 주는 메시지는 따라서 여러 방향으로 해석된다.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기법이다.   4. 3연- 개별적, 독립적, 자립적, 병렬구조의 하이퍼시   2연은 첫째,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세계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같은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다. 열정과 광기의 음악으로 ’헤비메탈,고전, 낭만파, 팝송 등‘ 다양한 음악 갈래를 병렬적 구조로 조합한 음악이며 열정과 소외, 우울과 집착 등 여러 복합적 현대인의 ’숨막히는‘ 불안한 정신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분열과 소외 중에서도 열정과 광기의 예술세계가 주는 희열과 집중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하이퍼시도 병렬적 구조로 각 연들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다. 사물시의 특징인 객관화된 문장은 과학적이다. 미술의 초현실주의 작품과 비슷하다. 둘째, ‘그럼에도 사는,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은 개인의 소통부재, 인터넷과 미디어와 소통하며 사는 소외된 현대인의 정신분열과 우울을 잘 대표하는 음악이다. 하이퍼시도 모든 연들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행과 단어도 서로 충돌하며 자립적이다. 병렬적이고 대등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고 있는 개인의 우울한 모습이 현대적이다. 셋째, ‘ , , , 걸,’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적인 문장이다. ‘, , , 걸’은 현대적 문장이다. 짐짓 아닌 척하는 시적 기교다. 이런 표현은 전체와 부분을 모두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있다. 시니컬하며, 방관적이며, 회피적 문장이다. 한정적이거나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조를 단 한 단어인 ‘, , , 걸’이라는 낱말은 니힐리즘의 대표어다.     5. 결론   이낙봉 시의 특징은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1연, 2연, 3연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독립된 하이퍼시는 무의미 문장과 무의미 단어들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제목부터 주장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으며, 착한 문장이다. 겸손한 문장이다. 주제를 주장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날카롭게 현대문명과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갈등을 첨예하게 논문처럼 주장하고 있다-행간 뒤에, 문장과 단어, 도표 뒤에 숨겨 두고 있다. 시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소외와 단절, 회피의 고독한 시대에도 하이퍼 시인들은 그 작품으로 문예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어로 번역되어도 손상받지 않는 것도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객관화된 문장으로, 질 높은 하이퍼시 작품을 생산하여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8月       박항식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   콩콩 찧어 물들이면 빨강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   나직한 歲月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한국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적 이미지스트 ― 박항식의 재조명     이 선(시인)     1. 서론   한국 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대표적인 유미주의적 이미지스트는 정지용과 김광균이다. 그런데 한국시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동시대를 살다 간, 남원 출신의 박항식 시인이 있다.   「8월」은 박항식의 대표적 이미지 시로서,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정지용의 「유리창」과 대비될 작품이다. 박항식의 시를 중앙문단에 소개하면서,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특징을 김광균, 정지용 시와 대조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2. 김광균의 이미지 시의 구조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은 도회적 감각과 서구적 세련미가 있다. 「설야(雪夜)」, 「와사등(瓦斯燈)」, 「외인촌(外人村)」, 「데생」 등의 작품에서도 선명한 이미지 시로서의 고른 작품성을 보여준다. 1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2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3 도룬 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4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5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6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7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8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9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10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11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12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13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14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15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16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전문   「추일서정」은 ‘낙엽’을 중심으로 한, ‘추락 이미지’와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각 시행 전체에서 골고루 보여준다. ‘낙엽이 떨어진다’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는 출발한다. 각 행들은 낙엽의 ‘하강 이미지’ ‘소멸 이미지’ ‘추락 이미지’의 동사와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 는 표현을 눈여겨보자. 모두 낙엽의 ‘사라진다’는 ‘소멸 이미지’와 ‘추락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가진 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각 시행의 명사나 주어들은 어떤 이미지 역할을 할까?  는 표현을 눈여겨 보자. 모두 낙엽의 ‘소멸 이미지’를 가진 단어와 표현이다. ‘떨어진다’는 낙엽의 이미지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각 행마다 철저히 계산된 낙엽과 치환되는 단어,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의 사물을 다양하고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각각의 사물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낙엽의 ‘날아간다’와 ‘떨어진다’와 ‘사라진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이러한 표현은 정지된 시에 운동감을 준다. 시를 흔들어 주며 정서를 환기시킨다. 낙엽의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어떤 표현이 있을까?  부분을 눈여겨 보자.각 문장들은 다른 사물을 차용하였지만, ‘사라진다’ ‘풀어진다’ ‘나부낀다’ ‘기울어진다’ ‘잠긴다’는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의 동사를 내포하고 있다. ‘낙엽’의 ‘떨어진다’는 이미지를 붙잡고 여러 형태의 공감각적 이미지의 합일을 보여준다. 6, 9, 11행  부분은 현대문명에 대한 반항과 부정, ‘소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연기, 지붕, 구름’의 연상 이미지는 ‘둥둥 뜬다’라는 ‘상승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시에 ‘운동감’을 주며 시를 처지지 않게 받쳐준다. 그러나 12-14행 에서는 다시 부정적 추락과 쇠락의 ’하강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다. 5, 7, 11, 16행  부분에서도 ‘하강 이미지’가 있다.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가볍게 그림을 그리듯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다양한 은유는 내용과 주제의식, 시대 상황까지 유의미한 진정성을 심어준다. 시는 역사와 사람을 대변한다. 욕구불만시대의 지성은 나라를 잃고 좌절하였다. 해방을 맞았지만, 남북분단과 강대국의 지배라는 혼란에 휩싸인다. 시인의 박제된 지성과 역사의식, 문명에 대한 불안감이 잘 표출된 작품이다.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 라는 표현은 절박하고 급박한 실존적 반항과 행동주의가 투영되어 있다. 김광균은 「추일서정」 에서 교과서적 표현주의 이미지 문학의 외형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는 가볍다, ‘단어 합성’의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시다, 위의 시는 현란한 기교주의, 표현주의 시의 감각적 미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3. 정지용의 이미지 시의 구조   정지용의 「유리창」은 또 다른 독특한 이미지와 심상을 보여준다.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2 열 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3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4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5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6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7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8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9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10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전문   정지용의 대표시 「유리창」은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박항식의 「8月」과는 다른 이미지의 시다. 1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객관적 상관물을 차용한 화자의 심상이 압축된 객관화가 완성된 표현이다. ‘유리’라는 사물에 화자의 마음을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라고 담아놓았다. 3행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나, 5~6행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부분의 선명한 이미지를 주목하여 보자. 「유리창」은 고요한 서정이 내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7-8행  부분의 내면적 고요의 관조적 심상에 집중하여 보자. 승화된 슬픔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기교가 찬란한 이미지 시가 아니다. 모든 이미지와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시의 기조는 조용하고 단정하다. 아니, 억압이 느껴질 정도로 정숙하다. 냉철한 이성이 폭발적 슬픔을 억압한다. 절제의 미학이다.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이 시는 사물인 ‘유리창’과 사물의 마음인 화자가 ‘산새가 되어 날아간, 너’에게 내밀하게 ‘말 걸기’를 한다. ‘너’에게 속삭이는 심상의 편지다. 화자의 독백적 고백록이다. 이미지 시지만, 언어유희라고 느껴지는 구절이 없다. 각각의 시행은 ‘슬프다’ ‘외롭다’ 라는 단어를 관통한다. 시와 시인이 먼저 감상에 빠지면 안 된다.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리창」은 심상의 진정성이, 독자를 압도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정지용은 찬란한 슬픔을 완성하는 마력의 이미지스트다. 4.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구조   (1) 박항식 소개   박항식 시인은 1917~1989년까지 생존한 남원 출신 시인으로 한국적 정한을 이미지로 선명하게 표현한 시인이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 시 『눈』 당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文藏臺』 당선. 1946년 시집 『白沙場』(1946, 삼덕문화사), 1959년 시집 『流域』(삼덕문화사), 1976년 시조집 『老姑壇』, 1981년 시집 『方壺山 구룸』을 발간하였으며, 원광대에서 시인을 양성한 교육자다. 박항식의 대표시 「8월」은 김광균과 정지용의 이미지 시와 어떻게 다를까? 어떤 구조적 차이와 내용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을까?   「8월」은 전통적 이미지 시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의 효과는 위에 소개한 김광균, 정지용의 시와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첫째, 민족적 정한의 상징인 ‘봉선화’를 제재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관념을 배제하며 유미주의를 지향한다. 이미지 시의 문제점은 화려한 기교주의로 인한 내용과 주제의 결핍인데 그 문제점을 박항식 시는 거뜬히 해결하였다. ‘봉선화’는 가장 한국적 정한의 ‘집단무의식’을 대표한다. 한국적 집단무의식은 참고 견디는 인고다.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에 애국가처럼 불렸다. 무언의 항변이며 데모였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구슬프게 부를수록 효과적이다. 시골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보는 봉선화, 화려하고 아름다운 봉선화, 낙화가 더 아름다운 봉선화, 손톱에 꽃물을 들여 겨울까지 견디는 봉선화. 봉선화는 민족의 눈물이요, 카타르시스다. 봉선화는 한국인의 정서적, 정신적 지주였다. 시골마을의 상징이면서― 서울로 시집간 순이, 서울로 돈 벌러 공장에 간 순이, 서울 술집에 팔려간 순이를 상징한다. 또한 아직도 그리운 고향, 어머니, 장독대의 상징이다. 둘째, 위의 시의 완성도는 제목 때문이다. 「8월」은 시간 이미지를 내포한 현대적 감각의 초현실주의적 제목이다. 아마도 시창작 초보자라면 위 시의 제목을 「봉선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가 제한적이며 한계성을 갖게 된다. 「8월」이라는 제목은 시원하다.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 확장된 제목이다. (2) 「8월」의 이미지 구조   그러면 「8월」 시가 갖는 구조적 매력은 무엇일까? 아래 세 가지 측면으로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가) ‘색채 이미지- 빨강’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8월은 선명한 ‘빨강색 이미지’다. 빨강 모자를 쓴 소녀는 곧 봉선화다. 선명한 ‘빨강 이미지’다. 위의 시는 봉선화를 소재로 빨강이라는 ‘색채 이미지’로 「8월」을 구조화하고 있다. 1   나) 「8월」이 상징하는, ‘시간 이미지’ 위의 시에서 모든 연들은 제목 「8월」에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각 연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시간) 2연―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시간) 3연―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장소인 동시에, 시간― 계절을 명시함)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봉선화 이미지) 4연―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시간) 5연― 세월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시간의 경과) 6연―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과거의 현재화, 지난 기억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   다) 봉선화-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본 시의 이미지 구조   「8월」은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씌어졌다. 1연: 봉선화― 빨강꽃― 8월(사물의 관점, 사물적 시점) 2연: 봉선화 물들임― 빨강― 8월― 손톱(봉선화 물들이기, 손톱도 사물임. 사실적 사물의 관점과 시점) 3연: 바닷가(시간, 계절)― 빨강모자(봉선화 치환은유)― 소녀(봉선화 이미지)(봉선화의 사물의 관점) 4연: 손톱― 8월(시간의 경과, 사실적 사물의 관점) 5연: 세월(인간의 관점과 시점) 6연: 1행 기억(화자, 또는 시인의 시간적 시점, 인간의 관점) 2행 손톱물― 빨강― 8월(제목과 연결시킴, 봉선화의 사물적 관점과 시점) 위의 시는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그러나 2연, 4연, 5연에서 보여주는 ‘세월’ ‘기억’ 등의 단어들은 숨은 인간 화자의 목소리가 엿보인다.   (3) 박항식이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런데 왜 「8月」과 같은 우수한 이미지 시를 쓴 박항식 시인은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필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관점에서 유추해 보았다. 첫째, 지방시인의 한계성. 중앙문단 진출이 막힘. 학연, 지연, 거리, 발표지면 등. 둘째, 장르적 분산. 교육자, 저자, 시인, 시조시인, 동시작가 등 지필활동이 분산됨. 셋째, 홍보 부족. 서울에서 시집을 출판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아서 중앙문단이 모름. 넷째, 평론가와 제자들이 부각시키지 않음. 다섯째, 노년기, 시인 후반기에 시집을 내지 않음.   (4) 박항식의 기타 이미지 시   박항식의 아래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위의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음을 밝혀 둔다. 아래의 이미지즘 시들은 박항식 시의 경계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시가 쉽게 독자와 친교할 수 있는 시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 靑山을 사랑에 눈 뜨게 한 도라지꽃 피었네 청산을 半만 취하게 한 한들한들 도라지꽃 피었네   淸明한 가을날 풀 푸른 내 故鄕 뒷山에 이쁜 固執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박항식, 「도라지꽃」 전문 * 청산을 반만 취하게 한 → 의인화 * 이쁜 고집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의인화 「도라지꽃」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단 7행의 짧은 시가 갖는 매력은 김소월의 「산유화」에 비교할 수 있다. 정답고 친절하며 사유적이다. 특히 밑줄 친 부분은 압권이다.  인간과 산, 도라지가 한 공간에서 포옹하고 호흡하는 시다. 「동그라미」처럼 노래로 만들어 불러도 좋은 이쁜 시다.     마음이 서러우면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하늘은 언제나 쪽빛이어도 푸른 잎 푸른 恨을 연상 지녀서…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길 잃은 새들이 여기 모여서 가지각색 이야기를 조잘대었다. ― 박항식, 「앵두」 전문 *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 앵두의 시각 이미지 *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 시각적 이미지 「앵두」처럼 그의 시는 달콤하다. 인간과 자연을 품어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동시를 쓰는 시인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다는 사과처럼 둥그러운 껍데기에 싸여 있습니다 (중략) 사과를 먹은 사람은 그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바다를 가는 사람은 그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바다! 바다는 사철 사과처럼 행그럽습니다 ― 박항식, 「바다」에서 *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 후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화 *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 시각 이미지, 색채 이미지 「바다」는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과 비교되는 시다. 같은 발상에서 시작한 시지만, 내용의 질량이 다르다. 박항식의 「바다」는 동그라미에서 이끌어낸 사유와 철학이 있다. 시의 향기가 시간을 넘어 코끝에 맡아진다. 세상을 위로하는 착한 시다.   해는 西으로 기울어 琉璃窓마다 칸칸이 곱게 크레용을 발라 놓고 ― 박항식, 「송학초등학교 일요일 오후」에서 * 크레용을 발라놓고 → 색채 이미지 곱디 고운 초등학교 교실의 어린이들 모습이 상상되는 색채 이미지 시다.     초록 치마를 입고 섰는 少女 덧없이 흐르는 歲月이지만 빠알간 리본 하나로 푸른 하늘을 온통 꾸미고 섰다. ― 박항식, 「코스모스」에서 * 빠알간 리본 → 색채 이미지 * 하늘을 꾸미고 섰다 → 역발상 역발상 시의 진수다. ‘소녀가 하늘을 꾸미고 섰다’는 새로운 표현은, 거시적 색채 이미지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 「포플라·Ⅰ」 *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시각 이미지/ 운동감 양면이 다른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팔랑이는 모습을, 이토록 귀엽고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발랑 발랑, 조랑 조랑 귀여운 의태어가 압권이다.   베짜는 소리 한창 들려 오는 날   나무는 고깔을 쓰고 합창을 했다. ― 박항식, 「살구꽃」 * 합창 → ‘살구꽃’의 청각 이미지 살구꽃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진한 향기와 팝콘처럼 닥지닥지 붙은 하얀꽃을. 꽃들이 합창을 한다면, 온 동네에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항상 끄트머리로부터 처음이 온다는 號外의 방울소리 ― 「아침」 * 방울소리 → ‘아침’의 청각 이미지 사유가 있는 한 문장의 짧은 시로 처음부터 창작하였으면 한다. 이 한 문장으로 완성된 시다. 아침의 청각 이미지가 청량하다.   5. 결론   「8月」과 함께 한국의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박항식의 이미지 시 몇 편을 소개하였다. 또한 과거의 작품을 통한 현재적 관점에서, 박항식 시인의 위치와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았다. 박항식 시의 한국적 서정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김광균, 정지용과 함께 박항식을 새로운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인정하는, 문학적 재평가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602    [스크랩] 김백겸 <기호의 고고학> 시집 서평- 이선 댓글:  조회:1337  추천:0  2018-12-28
신화적 서사, 강렬한 엑스터시의 예언서  ― 김백겸의 시세계 ―                                                                                        이 선(시인)       1. 3박자, 트라이앵글 시 구조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상징’과 ‘직관’의 숲속을 산책하다가, 젖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원색의 아름다운 아프리카 여인을 만났다. 그 눈은 하늘로부터‘예언서’를 받아 읽는 수도승처럼 경건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김백겸의 시집 『기호의 고고학』은, 고갱의 그림「세 명의 타히티인」속에 나오는 세 사람의 남자와 여자처럼 원색의 그림을 그린다. 직선적이고 원시적 생명성을 느끼게 하는 ‘그녀’는 대담하게 옷을 벗어던졌다. 시도 옷을 벗었다. 고갱의 그림에 김백겸의 시를 대입해 보자. 뒤돌아보는 왼쪽과 오른쪽, 두 여인 사이에서, 남자는 벌거벗은 등을 보이며 무심하게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어깨를 조금 웅크린 채 걸어가는 현대문명.)   왼쪽 여인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황홀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본다. 갸름한 얼굴과 입술이 섹시하고 관능적이다.(오, 김백겸이 반한 아름다운 고대 잉카문명과 아즈테문명, 그리스문화.)   오른쪽 여자는 하얀색 라바라바 치마만 걸친 채, 수줍게 젖꼭지를 드러내고 있다. 젖가슴을 감싼, 경건한 두 손은 꽃다발을 들고 있다. 강렬한 검은 눈은, 남자와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려 아래쪽으로 시선을 응시한다. 강한 턱선이 의지적이다.(종교의식- 그리스신화와 중세 기독교, 샤머니즘.)                                      고갱       3부로 된 김백겸의 시의 구조를 살펴보자.   고갱의 그림 속 세 사람은 배경까지 세 명의 인물이 균등하게 클로즈업되어 있다. 김백겸의 시도 고갱의 그림처럼 원근법을 무시한 채 과감하고 삭제된 선은‘고대문명’과‘종교’와‘현대문명’을 한 직선으로 트라이앵글 구조로 연결한다.   그의 시집에서 3부로 나눈 배치를 주목하여 보자.‘3’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3은 분류되지 않는 ‘트라이앵글’구조다. 한국의 노래처럼 3박자는 균형이다. 산만하지 않고 통합적이다. ‘고대, 중세, 현대’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클로업되고 문명비평 되었다. 사람(문명)과 자연(원시)과 신, 감성과 상상력과 재해석, 이, 강렬하고 원색적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신화와 시인 개인의 서정까지 삽입하여 ‘인물’과‘배경’과 ‘정서’3 구조로 3등분하여 배합하고 있다.     2. 신화적 서사, 강렬한 엑스터시의 예언서      미술의 구성요법처럼 그리스신화와 성경, 불경,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용어와 경전에 기록된 사건들이 시의 행간을 구성하고 있다. 김백겸의 시는 거대 신화적 구조와 패턴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대문명에서 직관적으로 문명신화를 만들어서 대담하게 철학적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시인의 시는 신화적 서사와 강렬한 예언적 엑스터시를 담고 있다.‘신화적 구조’와 ‘시적 상상력’, ‘철학적 직관’이 박학다식한 시인의 지식을 증언한다.       유전자정보의 집합인 게놈은 뱀 두 마리가 서로 몸 을 꼬아서 올라간 쌍두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의 印章에는 교접하는 쌍두사의 형 상인 뱀신‘닝기쉬즈다’가 있습니다   헤르메스가 사용한 쌍두사의 ‘카두케우스’ 지팡이 와 모세의 권능을 수행한 청동 뱀의 지팡이도 있군요   아즈텍의 깃털달린 뱀 신‘케찰코아틀’은 위대한 쌍둥이로도 불렸고 죽음을 통해 부활하는 힘의 기원 이었습니다   생명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에는 고대의 뱀이 있어서 이브에게 선악의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아마존의 샤먼들은 지금도 엑스타시에 젖은 채 환 상 속의 뱀으로부터 식물과 약초의 지혜를 전수받는 다고 합니다     딴뜨라 행자인 요기들은 호흡으로 미저골 아래 잠 자는 뱀의 기운 ‘쿤달리니’를 일깨워 머리를 들게 합 니다   불의 요가와 꿈의 요가와 빛의 요가가 이‘생명의 나무’인 척추를 거꾸로 올라가는 기술입니다   태양과 달의 기운으로 일곱 개의 차크라를 각성시 킨 쿤달리니는 요기의 정수리에서‘천 개의 꽃잎으로 피어난 연꽃’을 각성시켜 요기의 영혼을 불사에 이르 게 합니다   (중략)  그들은 환각식물이나 엑스타시의 힘으로 유전자에 숨어있는 생명의 프로그램을 엿본 해커였을까요                 ―「생명나무와 뱀」부분     위의 시는 강렬한 엑스터시를 보여주며 신성시되거나 금기시되는‘뱀’을 조명하고 있다. 「생명나무와 뱀」은 뱀을 거대 문명집단으로 나눠서 연대기를 세워 시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로 이어지는 ‘뱀 문화사’를 읽는 것 같다. 뱀이 주는 흥미와 무서움이 관능을 자극한다. 김백겸 시의 한 특징은 라는 시 구조를 지닌다. 영웅서사시처럼, 거대 역사를 한 줄로 짧게 해석적 시각으로 요약한다. 문명숭배의 ‘대상’인‘뱀’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관심을 받는 영적 존재이다.   3. 기호의 고고학-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신약전서 요한복음 1장 1절에는‘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말씀이 하나님이라면, 말씀은 창조자요, 알파와 오메가다. 기존에 존재하던‘식물’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인간은 창조자 행세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말을 찾아서 정렬하고 시인은‘시’창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는 문장처럼 말씀과 사물이 한 몸이었던 행복한 시대의 말이 있었 다   에덴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던져진 말들은 흙으로 돌 아가야 하는 아담의 몸처럼 썩고 부서지는 낙엽의 운 명이 되었다   말들이 인간의 의식에서 태어났으나 대양으로 흐르 는 시간의 강에 뜬 물살의 거품이었다   말들은 심연으로부터 솟구친 바위 같은 세계 풍경 에 걸리며 인간의식에 굴곡과 무늬를 만들어 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회교사원처럼   사각형과 원이 중첩된 티벳만다라처럼   말과 말이 결승문자처럼 얽힌 만화경이 문명이었다   말의 역사 속에서 상징의 피라미드, 은유의 크레타 미궁, 이미지의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졌다가 무너졌다     인간의 생각들이 말의 요람에서 태어나 말들의 무 덤에서 죽었다   제도와 법률과 화폐와 인간이 프로그램한 모든 도 구들이 부장품처럼 묻혔다   인류의 의식은 흙의 잠속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박 물관의 미아라 같은 말의 꿈을 꾼다   죽은 생각들이 진시황의 병마총처럼 묻혀 드라큐라 의 수혈 같은 재생의 시간을 갈구한다   나는 독자들을 비경秘境으로 안내하는 헤르메스처럼 지도와 랜턴을 준비해서 캄캄한 흙의 시간으로 내려가 문명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다      ―「기호의 고고학」전문     김백겸은 도식을 세우고, 태초부터 존재한 ‘말’에 집중한다.       말의 역사 속에서 상징의 피라미드, 은유의 크레타미    궁,     이미지의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졌다가 무너졌다(2연 4-5행)       인류의 의식은 흙의 잠속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박    물관의 미이라 같은 말의 꿈을 꾼다     죽은 생각들이 진시황의 병마총처럼 묻혀 드라큐라    의 수혈 같은 재생의 시간을 갈구한다(3연 5-8행)     문명의 역사는‘말’로부터 시작하고,‘시’의 역사는‘문자’로부터 시작하였다. 시인은 ‘박물관의 미이라’인 죽은 지식에 ‘수혈’을 하여 생명을‘재생’시킨다. 고고학자와 사학자가 가치없다고 판단하여 버려지고, 잊혀진‘문명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다’( 본 시의 끝행). 헌 ‘사물’에 ‘상징, 은유, 이미지’의 옷을 입혀 새 생명을 낳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은 ‘금’이라고 정의한 시대에도 ‘말’을 늘어놓는‘시의 향연’을 자축하며 축배를 든다. 또한 시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4. 우주와 자연숭배의 불교적 자기 구원관     아래 시를 읽으면 니이체의 가 연상된다. 누군가는 ‘호메로스’나 분노하는‘하나님’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영웅의 대 나 를 읽는 것 같은 힘을 느낄 것이다. 스스로 침묵의 언어인‘문자’로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화살이 신호로 날아가면 비구들은 모두 화살을 쏘 아라   전생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전생이 죽어야하고 후생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후생이 죽어야 하고 부처 를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부처가 죽어야 하느니   향전響箭이 날아가는데도 머뭇거리고 발심發心을 못 하는 자는 그 손목을 자르리라   용맹 정진한 비구가 드디어 갑옷 입고 칼을 찬 아라 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내 마음의 힘에 대하여 경전들이 말했네   육도의 윤회가 내 마음을 진흙탕으로 밀어 넣을 수 도 없고   삼세의 열반이 내 마음을 연꽃처럼 피어나게 할 수 도 없다고   들꽃처럼 피었다가 뱀허물처럼 몸을 바꾸는 세계의 변신이 불멸하는 내 마음이라고   마음은 침묵의 노래를 부르고 초끈 에너지들은 춤 추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비로자나불이 패션모 델처럼 걸어가네     나는 벤치에 앉아 별빛이 바위처럼 굳어가는 침묵 의 소리를 듣네   내 심장의 눈이 메두사처럼 빛나고 사물들은 이집 트 무덤의 벽화처럼 영원 속의 순간에 갇혀있네   9월의 저녁, 내 머리칼이 실뱀처럼 울부짖는 기운 을 느끼면서 나는 어두운 힘의 한가운데 밤의 수행자 처럼 앉아 있네     하늘에는 천억 개의 은하성단이 그린 도솔천의 세 상이 떠 있고 지상에는 가로등이 밝힌 인간의 문명이 꽃밭처럼 펼쳐있네     ―「선禪의 궁수는 화살을 쏘지 않는다」전문     김백겸 시집은 3부로 나누어 각각의 시를 편집하였다. 그러나 라는 이름을 붙인‘장시’라고 새로이 분류하고자 한다. 로 우렁차게 외치는, 시인이 말하고 싶은 인생의 근원적 본질적인 질문은 무엇일까? 질문하며 곧 자신이 대답하고 있다.   그 근원에는‘내 마음의 힘에 대하여 경전들이 말했네’(2연 1행)라고 시인이 고백하듯이, 경전에 철학적 기초를 두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그리스신화, 잉카력까지 동원하여 얻은 결론은 위의 시‘2연’에 압축되어 있다. 니이체의‘초인주의’의 영웅이 되어 얻은 결론은‘세계의 변신이 불멸하는 내 마음’이라고 노래하며, 자아의 세계화를 구원관으로 제시하고 있다.‘육도의 윤회’도‘영웅’을 더럽게 패배로 이끌 수 없고,‘삼세의 열반’도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비로자나불’은 이 영웅의 ‘중심’이며 ‘진리’다. ‘내 머리칼이 실뱀처럼 울부짖는 기운을 느끼’는 삼손의 마력의 힘을 지닌 영웅은‘하늘에는 천억 개의 은하성단’과 ‘지상에는 가로등이 밝힌 인간의 문명이 꽃밭처럼 펼쳐졌네’라고 노래하며 꿈과 현실을 이성으로 직관한다. ‘구운몽’의 일장춘몽처럼 고대에서 현대까지,    ‘오십억년의 긴  잠을 잤습니다’    ‘심십 억년의 긴 꿈을 꾸었습니다’(「검은 에너지의 열두 폭 병풍」중에서)     고정관념은 화살을 쏘아 모두 죽여 버리고, 다시 태어난 인‘초인’의 방대한 예언서를 구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5. 감각적 미의식과 서정성     「고양이 눈 속의 고양이」일부를 살펴보자.     ‘너와 나는 그렇게 작별했지/ 이상한 연인의 비상한 감정으로 헤어졌지/ 저녁이 오자 캄캄해진 숲/ 길들이 모두 어둠에 지워져 함정이 된 숲’   ‘검은 구름 사이로 저녁 흰 달이 고양이 눈처럼 나를/ 바라보자 나는 알아차렸네/ 고양이 눈 속에서 나는 고양이였음을/ 고양이는 내가 죽으면 다음 세상으로 안내할 영혼/의 친구였음을’     강한 근육과 힘을 자랑하는‘권력자’의 모습, 그러나 그 내면에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자의‘배려’와‘약함’이라는‘서정성’이 숨어 있다. 김백겸의 시는 솔직하고 강하며 세밀하다. 원시적 영감과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영웅’이 숨어 있다. 독자의 구원의 조건으로‘얼마나 김백겸의 시를 읽어내는가?’를 과제로 제시한다.     6, 김백겸 시의 과제     김백겸의 신작시집『기호의 고고학』은, 3부로 나누어진 각각 다른 시지만, 장시처럼 한 연결고리로 읽힌다. 과 라는 코드로 거꾸로 읽는 영웅 대 서사시다.  시인의 시에는 와 가 공존한다. 고정관념이 옷을 벗는다. 재해석된 철학은 대담하고 가식이 없다.  김백겸의 시는 외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한국의 어느 시인의 시보다도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객관화된 언어표현과 역사를 관통하는 직관의 눈, 철학적 재해석이 있는 사유는, 의성어와 의태어라는 신비의 언어의 숲에 가려졌던 서정시의 그림자를 벗겨내었다.     고대 캄브리아기와 창세기.   잉카문명과 아즈텍문명,   그리스신화의 여신 가이아와 무령왕.   노아의 홍수와 여미지 식물원.   UFO, 에로스, 파라다이스, 현대문명.    무령왕릉, 여미지식물원, 고인돌.   김백겸 시의 확장된 지식공간은‘역사서, 인류고고학, 문명종교학, 비교종교학’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방대한 지식의 양과 명쾌한 직관과 철학적 해석은, 독자의 오래된 질문에 시원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김백겸의 시는 칼릴 지브란의 철학시처럼 신화적 확장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문장은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객관화되었다. 고대문명과 현대문명에 대한 철학적 해석으로 유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상상력과 감성적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 문장은 일기장을 훔쳐본 것처럼 솔직하고 고백적이다. 박학다식한 주의주장은 프로이드가 주장한 방어기제를 충분히 예술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시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   첫째, 외국어로 번역하였을 때 객관화되어야 한다.   둘째, 상상력의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이 있으며, 감성적 서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한다.   넷째, 새로운 표현과 디자인, 시창작 방법론을 주장하며‘자기 이름을 붙인 상표’로 재탄생해야 한다.   다섯째, 신화적 스케일과 재해석된 현대문명 해석이 필요하다.   여섯째, 예술의 3대 요소인 유일성, 창의성, 철학성이 있어야 한다.   일곱째, 번역으로 반감된 ‘언어의 감각적 미의식’을 배제하더라도 작품성이 빼어나야 한다.   전 세계인이 모두 한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처럼 말하는 그날까지, 한국 시인의‘세계화’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시는 그 나라의 정신이며 생명이다.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 국력이다. 한국어의 아름다운 운율을 살린 의성어, 의태어, 음보율은 외국어로 번역할 때 그 효과를 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디자인, 내용, 철학으로 노벨상에 도전해야 한다. 김백겸의 시에서 노벨상을 향한 스케일과 내용, 철학, 표현과 시원한 자유를 발견하였다. *  
601    2017년 가온문학 여름호/ 정성수- 사기꾼 이야기/ 평론 이선 댓글:  조회:1631  추천:0  2018-12-28
사기꾼 이야기       정 성 수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사기꾼 이야기」 의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   이 선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각각의 연들이 보여주는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의 문장들이 감동적인 가난한 사기꾼(?)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기의 내용은 ‘봄이 온다고 가족들에게 사기를 쳤다’이다. 제목과 연관시켜보면, 이 시의 중심어는 ‘봄이 온다’이다. 그러므로 위의 시의 1-7연의 각 연들은 사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처럼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시인이 꿈꾸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상주의와 몽환적 환상주의를 나긋나긋, 비애적인 목소리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면 ‘사기꾼’이 맞기는 한데,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이게도 진정성 있는 한국의‘아버지상’과 직면하게 된다. 시인이 미리 장치한 ‘아이러니와 역설’의 시적 기교 장치 때문이다.   시인은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플라톤 시대부터 ‘시인 추방론’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시인은 ‘비현실적 사회부적응’ 인간형이 분명하다. 시인은 현존하는 자신의 주변의 실제적인 ‘현실 밀착형 인간’보다,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더 긴밀하게 소통한다. ―꽃과 나무, 구름과 바다, 돌과 별 등 자신에게 말로 직접적 비난이나 거부를 보이지 않는 자연과 더 긴밀히 소통하며 친애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기꾼 이야기」는 식물이 태양을 향해 나뭇가지를 뻗듯, 식물성 유전자를 가진 가난한 아버지의 거부당한 꿈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뇌와 감각들은 예민하고 촉수가 가늘고 길다. 태양의 후예라기보다는, 달과 별과 구름의 DNA를 유전적으로 상속받은 혼외자식처럼. 그러므로 위의 시의 화자인 ‘아버지’도 인간과 생활,의식주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난은 시인의 필연성일 터. 투쟁적이며, 경제관념이 투철한 태양의 후예들과는 달리, 시인의 감각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시의 자질이 형성되어 있다. 시는 ‘자유’와의 숨바꼭질이다.   위의 시 1-7연에서는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이 병렬적이며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정성수가 제시하고 있는 ‘아버지상’은 슬픈 소외자의 음성을 지녔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내하는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시적 화자인 ‘아버지’는 ‘사기꾼’이라고 자신을 지목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어조는 비애적이지만, 그 목소리는 당당하다. 1연을 살펴보자. 1연 1행은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라고 자신을 시니컬하게 고발한다. 시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두를 던지며 야심차게 시에 접근한다. ‘사기꾼’이라는 자기고발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기의 내용을 보니 죄로 인정하고 감옥에 넣기는 애매하다. 긴장감이 풀어지며 ‘어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흠’ 내심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그 대답은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1연 3행)라며 사기의 진상을 밝힌다. 죄의 지목은 현장성과 피해정도가 객관적으로 측정될 때 부가되는 것인데, 정성수의 사기죄는 성립이 애매모호하다.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가난 중에도 ‘꿈과 이상, 희망’을 잃지 않는 칭찬받아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기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날렵한 표현이다. 1연 4행―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으며 마음이 약할 것 같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지 않아도 바가지를 긁거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시인은 그런 아내와 딸, 아들의 약점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식구들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1연 5행) 부분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이 실현되어 있다. 사실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데 슬프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기꾼은 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바꾸는 말기술자다. 굳이‘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라고 자기성토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러니 기법의 표현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보여주는 반어적인 표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와 같은 ‘반어적 표현’이 아이러니의 기본 조건이다. 위의 시의 어조는 반성적이며, 고백적이며, 애조적이다. 그 부분들이 이 시를 해석할 때 반어적으로 작용하게 한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2연 1-3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가난한 60-70년대 풍경이 그려진다. 아내는 가난한 밥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후줄근한 이불을 차내며 곤히 잠을 자고 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의 볼은 창백할 터. 2연을 읽으면 독자는 아버지를 사기꾼이라고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수용을 하게 된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의 기억을 한국인은 누구나 배경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며. 가난한 아버지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그때 그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착했다. 3연에서는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3연 1-4행) ‘향기로운 화관’과 ‘푸른 채찍’의 이미지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의 이미지다. 봄날의 희망을 왕자의 이미지로 바꾸며 3연에서는 다시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다. 슬픈 이야기인데, 울고 싶은 이야기인데 지고지순 아름답다. ‘봄이 온다고’ 약속하는 가장의 거짓말 사기극은, 가난을 부끄러움 없이 숭상하던 계절의 인생관이며 순애보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의 아름다운 약속이며 꿈이다.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3연 4-5행)는 다시 아름다운 사기 약속으로 이어진다. 눈물 나게 그리운 아름다운 계절의 가난한 아버지의 약속이다. 가족을 보호하고 안락하게 숨겨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사기꾼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아니하고 약속은 어긋났지만-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은 약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3연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의 모순적인 문장과 기교가 돋보인다. 4연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4연 1-2행) 부분을 살펴보자. 생활과 삶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아버지의 고뇌는 춥다. 4연쯤 되면 독자는 연민과 동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점층적이며 반복적인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으로 시인은 독자를 압도적으로 사기꾼 아버지에게 끌어들인다. 어느새 시인의 삶 속으로 동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독자는 곧 시인의 마음이 된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5연 1-3행) 늙은 아내와 말이 없어진 사춘기 아이들의 대비는,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비애의 조건이 된다. ‘아이러니 비가’라는 제목을 붙여 따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연들이 갖는 호소력 때문이다.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6연 1-4행) 아버지의 사기 행각은 6연에서 절정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 부분이압권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이 시의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의 시적 장치다.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7연 11-5행) 7연에서도 1행과 2행, 3행에서 아이러니 기법을 보이고 있다.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7연 3행) 부분이다. 아직 겨울인데 봄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억지스러움이 이 시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는 애매하여 경계를 짓기 어렵다. 참인듯한데 거짓이고, 거짓인듯한데 참이다.   아이러니 기법은 시의 기본 구도이다. 넌지시 짐짓 말을 던져놓고, 반응에 반응하지 않는 언어유희다. 말 던지기를 하며, 은근히 역설적으로 반응한다. 「사기꾼 이야기」 는 진정성과 ‘아이러니와 역설’ 이라는 시적 기교, 시대상, 시인의 조건과 시인의 천형까지 드러내어 보여주기 하고 있다. 이 세대에도, 이전 세대에도, 다음 세대에도, 아버지들의 애환은 계속될 것이므로.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독자의 수용과 공감이 증폭될 가장의 비애로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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