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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외수님의 글 댓글:  조회:1799  추천:0  2012-05-14
어떤 사내가 벼락을 맞아 즉사했는데 시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사내의 영혼이 염라대왕 앞으로 호출되어 갔을 때 염라대왕이 물었다. 벼락 맞아 죽으면서 활짝 웃은 이유가 무엇이냐. 사내가 대답했다. 사진 찍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한국작가 이외수님이 한시간전에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재밌다. 그래서 옮겨왔다.  
34    소통 댓글:  조회:1683  추천:0  2012-05-14
퇴근길에 시장에 들렸다. 저녁편이라 마당에도 장사진이 이루어져있었다.  큰  랭장궤를 놓고 얼음과자를 파는 한족아줌마에게 물밴새가 있는가고 물었다.   한족아줌마가 나더러 잠간 기다리라 하고는 시장안으로 달려들어가더니 한근짜리와 두근짜리 봉지를 들고 나와  문밖에서 어느것을 가지겠냐고 물었다. 내가 손가락 두개를 펴보였다. 내뜻은 분명 "두근짜리요." 였다. 시장안에 들어갔던 아줌마가  두근짜리 두봉지를 들고왔다. 너무 많다고 했다. 한족아줌마가 내앞에 손가락 두개를 쫙 펴보이며  이렇게 달라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자기는 분명 두근짜리 두개로 알았다고 했다. 허허허 웃고말았다. 두개면 어떻고 세개면 어떠랴.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 두근짜리 물밴새 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33    거짓말 댓글:  조회:1653  추천:0  2012-05-14
입을 짝 벌리고 거짓말을 한다. 분명 2층까지 왔는데도 3층까지 왔다 한다.  2층이면 어떻고 3층이면 어떠랴. 그처럼 아무  리득  없는 일에도 거짓말을 해야 직성이 풀려한다. 고름이 들어차면 빼내야 하듯이 거짓말도 들어차면 빼내야 하나보다. 체질적으로  머리속에 가짓말이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 있다.
32    인간인게 부끄러워? 댓글:  조회:1855  추천:0  2012-05-14
아침에 메일을 열면  늘 요강덮개로 물 떠 먹은듯 기분이 꿀꿀하다. 반갑지 않은 쓰레기메일들때문이다.   바아그라며 아저씨기둥 살리기며 한시간도 빵빵이며... 그런 메일을 처리하고난 후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아하, 인간은 필시 인간이구나. 호랑이가 비아그라를 먹는것을 본적이 있나? 애들이 보고 인간으로 태여난것을 부끄러워 할가봐 근심이다.
31    욕복이 터진 사람 댓글:  조회:1899  추천:0  2012-05-13
얼마전, 한 현성의 화장터에 다녀온적이 있다.  연길화정터 같겠지 생각했다. 오산이였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영결식장의 남쪽문으로  시체가 들어갔고 조문객들도 그 문으로 들어갔다. 고인과 영결을 하고 나와 나이 지긋한 한 녀성분이 왈: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가는 길이 다른데 왜 한 문으로 들어가지?  그 말을 들으며 평소 귀신 같은것을 믿지 않는 나도 기분이 묘해났다. 제를 지내는 마당은 동쪽켠에 있었다, 그날 따라 살랑살랑  바람이  불었다. 제사를 지내는 마당 서쪽에서  불과  얼마 떨지지 않은 곳에  고인의 유물을  태우는 화로가 있었다. 유물울 태우는 연기며 재며 지어는 채 타지 않은 찌꺼기까지 바람에 날려와 제사를 지내는 객들의  어깨며 머리며 얼굴을 스쳤다. 모두들 왈: 누가 설계했는지 진짜  개*같이 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그 현성의 화장터시설을 설계한 어른은 날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어야 할지 근심되였다. 욕복이 터져도 웬간히 터진게  아니다. 그 어른도 마지막길을 그곳에서 가겠는지는 몰라도 한번쯤 다른 사람의 감수를 헤아려주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페단은 극복할수 있지 않았을가?
30    갔단다 댓글:  조회:1974  추천:0  2012-05-11
갔단다. 모든것을 걷어가지고 갔단다. 와우~ 기뻐해야 할가? 아니면 그를 위해 가슴 아파해야 할가? 그가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나는 알고있었다. 그 좋아하는것을 다 버리고 떠나가면서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가?   좋아했다면 그만치 사랑해야 했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좋아한다는것은 집착일뿐이다. 하늘님에게도 눈이 있다고 한다.
29    립하날 등산길 댓글:  조회:1633  추천:0  2012-05-06
오늘 아침,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아플줄 알았는데 생각밖에도 개운하다. 어제 모아산등산에서 내 몸이  이긴것이다.   토요일은  "할머니등산대"활동일이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할머니들도 정상까지 등산을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호랑이님앞에서 애교스럽게 률동을 하는것으로 등산을 대신하신다. 어제가 립하란다. 여름에 들어섰다고 할머니들이 말씀하셨다. 여름? 벌써 여름? 올해는 봄이 없은것 같다. 봄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부끄러움을 타며 조용히 사라진다.  떠나가는 봄을  손 저어 바래줄 생각도 하지 못한채... 
28    창작소감 한마디 댓글:  조회:1669  추천:0  2012-05-04
창작소감 한마디   며칠전에 중학교 교원으로 사업하던 은이를 오늘 아침에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는 장사군으로 만들어버렸다. 은이가 내 심기를 건드려놓은것도 아니고 은이가 스스로 나에게 그렇게 하고싶다고 제의를 해온것도 아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은이는 꼭 시장에서 작은 장사를 해야 했고 “죽벌이도 못하는” 장사에 매워 얇은 돈지갑을 만져야 했던것이다. 이것이 소설이다. 응당 옷장사를 해야할 사람을 구태여 교원으로 설정하게 되면 이야기를 엮어나갈수 없고 엮는다 해도 어딘가 억지스러움이 묻어있을것이다. 인물을 있는 그대로 생동하게 묘사하는게 작가의 재간이다. 생동하다는것은 곧 인물의 성격이 생활의 론리에 맞아야 한다는것일것이다.   쓰면서 늘고 늘면서 터득하는게 소설의 기법이다. 재밌다.  
27    모아산등산 그리고 그 후유증 댓글:  조회:1400  추천:0  2012-05-02
  종아리가 띠끔띠끔 아파나 질질 끌면서 층계를 내리는데 한 동료가 웬 일이냐고 물었다. “어, 글쎄, 아파서…” 뭐라고 딱히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사무실에 올라왔다. 종아리가 아파나는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과연 무엇때문에 아픈것인가? 그냥 아프려니 하고 생각했지 무엇때문에 하고 그 근원을 따지지 않다가 동료의 물음에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것이였다. 지난 4월 30일, 쏟아지는 해볕에 마음이 동해 올봄 들어 첫 모아산등산을 갔던것이다. 산중턱까지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났다.  중도에서 포기할수도 없고 해서 쉬염쉬염 늘차게 정상까지 올라갔던것이다. 그날은 좀 힘겹다는 느낌뿐, 어디가 불편한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이튿날아침부터 걸음을 걸을라치면 다리에 통증이 느껴진것이다. 다행히 어제까지 휴식이라 움직이기 싫어서 진종일 컴퓨터앞에 앉아있지 않으면 침대를 등지고 누워 천장바라보기를 하느라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출근하여 다리를 많이 움직이게 되니 종아리로부터 오는 통증에 여간만 불편한것이 아니다. 참으로 입밖에 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모아산등산 한번에 며칠씩이나 종아리 통증을 느껴야 하다니. 지난 겨울,  뻐스를 타고 출근했다 뻐스를 타고 퇴근을 하고 휴일에는 방구석에 “방콕족”으로 붙박혀있었다. 그 바람에 내 다리에 엄살이 들어붙었나 보다.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생명은 운동에 있다.”는 명언도 생겼나보다. 움직여야겠다. 내 몸을 움직이고 내 머리를 움직이고 내 정감을 움직이고 내 배운것들을 움직이고… 내 생명이 살아있다는것을 느낄수 있게 악착같이 움직여야 겠다.   
26    모아산등산길에서 주은 이야기 댓글:  조회:1736  추천:0  2012-04-30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 날 때가 있습니다.  환절기여서 그런가?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지만 딱히 그런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뭔가를 쓰고싶은데 그게 딱 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가물가물 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을 괜히 환절기에 가져다 붙이는것은 어쩜  열리는 봄날에 대한 모독인듯싶습니다. 그런 싱숭생숭한 마음을  지니고 어제 모아산을 찾기로 했습니다. 음료수병에 커피를 타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가다가 생수도 한병 샀습니다. 43선뻐스시발점에 도착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온 연길시내의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벅적이는듯 했습니다. 힘겹게 차에 올랐지만 기분만은 뻥 뚫리는듯싶었습니다.  그제야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모아산광장에서 “2012년모아산민속문화관광절"이 열린다던 뉴스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무튼 좋은 구경을 하게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름만 굉장했지 사실은 몇몇 상가에서 자기들의 상품을 가지고 나와 벌이는 홍보전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흥미를 끄는데가 없어서 모아산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산바람이 좋았습니다. 간만에 해볕도 따스했습니다. 어느 부근까지 갔을 때였던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도 갑작스럽게 치매에 걸린 한 늙은이가 머리속에 나타났습니다. 그 늙은이의 뒤를 따라 30대중반의 한 사나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그의 안해며 깜찍한 아들까지 줄레줄레 달려왔습니다. 누굴가? 애써 치매에 걸린 그 늙은이의 얼굴을  그려보고 30대의 그 사나이를 두고 생각을 굴려보았습니다.  그로부터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아야 하는 한 가족이 떠올랐고 민족 대이동을 맞은 조선족의 삶의 현장이 떠올랐으며 한때  중국의 "꼬마황제, 꼬마공주"들로 불리우던 제1대 독신자녀들이 떠올랐습니다.  따라서 일련의 이야기들이 줄레줄레 엮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체가 한부의 소설이였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모아산등산길에서 내 머리에 떠오른 그 이이기가  고마왔습니다. 그  시각으로부터 그  가족의 이야기는  내 머리속에서 떠날줄을 몰랐습니다. 아마도 오늘 새벽에 이야기가 무르익은것 같습니다. 새벽 4시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단숨에 이야기의 첫 부분을 써냈습니다. 한동안은 이야기속의 주인공들과 같이 울고 웃어야 할것 같습니다.
25    가슴 뿌듯한 하루 댓글:  조회:1592  추천:0  2012-04-24
쉼없이 돌아쳤다. 5월호 잡지를 공장에 내려보내느라 팽이처럼 돌아쳤고  그 일이 끝나자 오래동안 방치해두었던 블로그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월간잡지편집은 올해가 처음이라 아직도 원고를 공장에 보내 놓고는 강가에 애를 혼자 내보낸듯 긴장하다. 혹시 부주의로 어느 한 구석이라도 소홀히 한 곳은 없는지 하는 근심에 손에 땀을 쥐게 되는것이다.  책이 인쇄되여 나와 사고가 없어야 한 시름을 놓을수 있다.  긴장하면서도 뿌듯한 이 느낌, 진정 일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기분이리라. 그렇다. 블로그라는 이 물건도 만질수록 재미를 느끼게 하는 놈이다. 진종일 글과 씨름했지만 나름대로 가슴 뿌듯한 하루였다.
24    와인잔을 들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댓글:  조회:1847  추천:0  2012-04-24
    올해 음력설련휴기간의 어느날, 외지에서 사업하는 고향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가 연변에 있을 때 우리는 가끔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때 그의 주량이 “소주 한병”이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분위기가 좋은 양고기구이집을 찾았다. “어쩌지, 나는 소주를 완전히 뗐는데.” 내가 미안해 하며 량해를 구하자 친구도 다행이라는듯 말했다. “나도 지금은 소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술을 마시고 사업에서 실수를 한후로 결심을 내리고 소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나와 친구는 맥주 두병을 시켜놓고 양고기궴을 구웠다. 전에 랭수 마시듯 술을 마시던 우리들인지라 맥주잔을 들고 홀작거리자니 정말 멋적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앉기만 하면 술술 나오던 “속심의 말”도 닫아놓은 수도꼭지처럼 도무지 흐르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맥주 두병도 채 마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지라 그저 그렇게 보낼수 없어서 나는 2차로 친구를 분위기가 괜찮은 다방에 안내했다. 그날 나는 생크림을 살짝 바른 과일에다 육포와 함께 와인 한병을 청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 그럴사한 잔에 레드와인을 부어놓고 앉으니 방금 양고기구이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였다.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래도 이런 분위기가 좋구나.” 친구가 말했다. “그래, 우리도 인젠 술문화를 바꿀 때가 됐나보다. 시골에서 나온 우리도 이런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니…” 나도 친구의 말에 동을 달았다. 그날 나와 친구는 부담없이 나름대로 와인을 마시며 흘러간 옛일을 회억했다. 그중에는 술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전에 친구들은 나를 두고 “한근 술을 마시면 한근 힘이 솟고 두근 술을 마시면 두근 힘이 솟는다.”고 말했었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여서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술만 마시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손이 좌우로 춤을 춘다.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다가도 속에서 뭔가 올리밀기 시작하면 죽인대도 더이상 술을 넘길수 없어하지만 나의 내장은 어떻게 되여먹었는지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윽— 처리하고 나면 또 그만한 술이 배속으로 들어갈수 있었던것이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온줄을 모르는 동료들은 나의 주량이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워낙  술을 그렇게 좋아한것은 아니다. 25살에 입사를  해서 몇년간, 내가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은 “술을 마실줄 모르는 젊은이”였다. 처음 들어간 단위에서 4년쯤 일을 하다가 나는 다른 단위로 전근하게 되였다. 운수가 좋아서였던지 새 단위로 전근해 가서 2년후에 주임자리가 하나 생겨 내가 차지하게 되였다. 그해 내 나이 30살, 동료들이라고 해야 모두 나하고 비슷한 젊은이들이여서 나는 세상 무서운것 없이 일을 하고 누구 눈치를 볼것 없이 술을 마시고 즐겼다. 31살 땐가 내 인생에서 손꼽아 기념할만한 "큰 일(?)"을 끝낸것을 기념하여 나는 처음으로 소주 한병을 혼자서 굽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 없이 술을 배워서 그런지 나는 점점 술상에서 담이 커졌고 주량도 늘어갔다. 그후로 나는 자주 폭음하기 시작했고 주사도 부리는것 같았다. 형님, 누나들이 그러는 나를 두고 못내 근심을 했다.  "닮을것이 없어서 아버지의 술버릇을 닮자고 그러냐? 조심해라." 나의 머리속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주정을 부리고 어머니와 싫은 행동을 하던 기억이 깊히 박혀있다. 내가 아버지의 그런 주사를 닮아가다니,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다니… 나는 스스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술을 마시고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날 나는 괴로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꼭 술을 통제하자고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술을 통제하자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지만 내가 술상분위기를 깨는것 같아서 여간만 민망한것이 아니였다. 그것도 나에게는 작지 않은 고민이였다. 어떻게 하면 이 현실을 타개할수 있을가? 나는 짬나는대로 인터넷을 뒤지며 마땅한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눈길을 끈것이 와인이였다. 많은 사람들은 와인은 고상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 차츰 불기 시작한 와인바람은 와인인구 및 와인산업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와인은 어디에서나 흔히 접할수 있을 정도의 대중적인 술로 자리를 다져가기 시작하고있는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와인을 술이 아니라 약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기원전에는 외상치료제, 안정제, 수면제로 와인을 사용하였는데 전투에 출정하는 군인들에게 와인을 마시게 하여 장질환을 예방하였다는 설도 있다. 레드와인은 피부의 기미, 주름 그리고 피부가 처지는 현상을 막아준다. 그리고 레드와인속에 함유된 폴리페놀은 피부로화방지에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하기에 매일 레드와인 1~2잔을 마시면 피부 트러블이 없어져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유지할수 있다. 와인은 마시는 야채라고도 할수 있는데 수분 85%, 알콜 8~13% 그외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이 함유되여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도 불린다. 와인잔을 손에 들면 맥주잔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스스로 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내가 마련해야 할 술자리는 극력 와인을 찾아 다방이나 와인바로 간다. 그런 장소의 분위기가 좋고 너무 강렬하지 않은 와인의 유혹이 좋아서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자리를 비켜갈수 없다. 문제는 어떤 술문화를 고양해야 하는가이다. 우리의 술문화도 변화를 가져올 때가 되였다. 아직도 술자리여하를 불문하고 맥주잔을 높이들며 목에 힘을 주는이들에게 나는 한마디 귀띔하고싶다. 와인잔을 손에 들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23    손가락을 꼽는 습관 댓글:  조회:1639  추천:2  2012-04-20
  손가락을 꼽는 습관     무슨 일에 부딪치면 손가락을 꼽는 습관이  생겨났다. 딱히 그러자고 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일단 무슨 일에 부딪치면 손꼬락부터 꼽게 된다. 5월호 원고를 주필님께 넘기고 6월호 원고들을 한줄로 쭉 세워 놓은후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원고들을 두고 손가락을 꼽아보니 이게 얼만가, 7월호까지는 원고때문에 속을 썩이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순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머리속을 스쳤다. 언젠가 나는 그 속담이 어찌되여 만들어졌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본적이 있었다. 그만치 나는 나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나는  열심히  내 하늘을 받치고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3년전의 그날,  내 딴에는 있는 노력을 다해 떠받들고있다고 생각하던  하늘이 하루밤새에 무너져버린것이다. 단위의 최고상사가 나를 불러 이리저리해서 내가 맡고있던 주임직을 내놓고 편집부에 내려가 단련하라고 했을 때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그런 느낌이였다. 25살에 사업에 참가하여 20년간 3번 단위를  옮겼지만 어디에 가서도 모든것을 사업에 올인해온 나였다. 30살부터 15년이나 주임이라는 일을 해왔으니 그까짓 주임이라는 허울을 벗어놓는것은 하나도 아쉬울것이 없었지만  사회에서  떠도는 황당한 소문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태연할수 없게 만들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망스러웠다. 말단편집으로 생소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멍하니 컴퓨터앞에 앉아 있노라면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퇴직까지 얼마나 되는 시간이 남았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손을 꼽아 해수를 세고 날자를 셌다. 그때  나는 퇴직까지 15년이 남아 있었고 날자로는   5400일 푼하게 남아 있었다. 5400일이라는 나날을 넋을 놓고 앉아 손가락을 꼽으며 퇴직을 기다릴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래도 내가 새로 내려간 부서의 주임이 진정으로 내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전에도 은근히 나에게 힘이 되여주던 단위의  몇몇 누님들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히우는대로  글과 씨름했다.여기저기에 블로그며 카페도 개설했다.  그새 번역을 할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전에는 단 1000자짜리 짧은 문장도 번역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것도 부딪쳐 보고싶었다. 일에  정력을 쏟으니 밤잠을 설치게 하던 잡생각도 사라져버렸다. 처음으로 20만자를 웃도는 책을 번역하여 내 이름 석자를 박아 출판했을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수 없이 흥분되였다. 그렇게 2년철,  나는 “주임”이라는 허울을 벗은 진정한 편집으로서의 자신을 찾게 되였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있을 때 나는 또 다른 부서에 자리를 옮기게 된것이다. 당금 50살을 바라보는 나이, 모두들 힘들거라라고 하는 자리였지만 공직자의 신분으로 “싫소.” 하고 말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이튿날로 무작정 컴퓨터 하나를 달랑 들고 새로운 부서에 왔다.  근심스럽긴 했지만 지난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새로운 부서에 온지도 100날이 지났다. 그새 밤잠을 설쳐가며 발등에 떨어진 불들을 껐다.   “일이란 사람하기 나름”이라더니 차츰 일에 줄이 잡혀갔고  경험도 쌓여갔다. 그새 발등을 달구던 불을 꺼버리고 드디여 한쉼을 쉴수 있게 된것이다.   또 손가락을 꼽게 된다. 퇴직까지 12년이 남았다. 그새 새로운 탈피를 꿈꾸며 1100일이나 살아온것이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공직생활은 4300일 푼하다. 그새 내가 영위해가고있는 이 하늘에 또 어떤 변고가 생길지 알수 없지만 나는  내 공직생활에 남은 4300일을 위해 열심히 손가락을 꼽아갈것이다.         
22    나란 나그네의 수다 댓글:  조회:2077  추천:0  2012-03-23
또 한 고개를 넘은듯한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16일에 내 생활에 지각변동이 생겨 또 다른 동네로 떠 밀리워 온것이다. 그날부터 정신없이 채바퀴돌듯 팽팽 돌아치며 달려온 하루 하루들, 손꼽아보니 100날이 며칠 안 남았다. 아우~ 매일 같이 다니던 요기 블로그에도 그새 몇번 못 와보구 일에만 몰두... 드디여 한쉼을 쉬여두 괜찮을듯하다. 내가 맡은 일을 5월분까지 다 마치고 6월분을 준비하고있으니  최저로 두달은 앞에 두고 사는 팔자가 된것이다. 고맙다. 그새 지켜봐주고 밀어주고 당겨준 모든이들이. 가끔은 블로그에 들어와 세상 사는 이야기랑  수다랑도 떨어 봐야겠다. 허허허~ 나그네가 주책이다.
21    미소가 없는 내 마음을 울고싶다 댓글:  조회:2552  추천:0  2011-12-27
미소가 없는 내 마음밭에 과연 꽃이 필수 있을가? 서럽다. 미소를 미소처럼 지을수 없는 내가 서럽다. 미소가 고운  내 볼우물이 얼마나 깊은가며 손가락을 찔러보던이들에게 내가 미소를 잃어버렸다고 울고싶다. 과연 그게 언제부터였을가?  잘 나가는 친구가  괜히 시샘이 나던 그날부터? 아니면  옆집의 인테리어가 우리 집보다 낫다는 생각에  이웃집 벽에다가 애꿎은 신바닥을 찍어대던 그 순간부터? 미소가 없는 내 마음을 울고싶다
20    미소란 없었다 댓글:  조회:2146  추천:0  2011-12-27
그날  복도에서  네가  나에게 미소를 보낼 때 내  가슴의 높은 담장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시는 너를 나라는 우주에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그렇게도 열심히 쌓아올린 마음의 담장이 너의 그 미약한 미소에 무너져 내릴 때 나는 그 미소보다도 작은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날 나는 거울을 마주보며 너의 그 미소보다도 더 크게 더 환하게 미소를 짓느라고 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 미소는 되려 우박이  되여 무너진 내 가슴을 때리고있었다. 그랬다. 부서진 담장을 안고 사는 내 가슴에 미소란 없었다.
19    산은 산이여야 한다 댓글:  조회:3187  추천:1  2011-12-13
산이 내물처럼 촐랑거린다면 산이라고 할수 없다. 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한자리에 듬직하니 앉아있어야만 산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산이 산처럼 한곳에 자리를 든든히 잡고있을 때라야만 나무도 뿌리를 내릴것이고 산새들도 나무숲을 찾아 날아들것이다.  나무가  있고 산새의 노래소리가 들려야만 산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내물은 산의 입내를 낼수 없다.    
18    101한수째의 동시를 주으러 댓글:  조회:1964  추천:2  2011-11-09
  “허허허~ 여러분, 저도 인젠 동시100수를 가지고있는 동시인으로 되였습니다.” 이 말을 해버리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오늘 100수째의 동시를 써냈다. (이 사람이, 그까짓것을 가지고 웬 자랑이냐?)  하고  눈살을 찌프릴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자축하고싶어서 “허허허~”  하고 웃어본것이다. 누군가의 감독이 없이 순전히 하고싶은 마음에서 뭔가를 해냈다는것은 어찌 생각해보아도 참 행복한 일이다. 2007년,  중국작가협회 로신문학원에 학습을 가서 며칠이 지난 어느날 나는 한 사이트에 문학원에서의 감수를 적은 글을 올렸었다. 그 글에다  어느 어른이 “좋겠소, 남들이 못가는 로신문학원에 가게 돼서. 글을 써야 작가지...” 하는 댓글을 올렸었다. 그 어른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댓글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정말 얼굴이 뜨거워졌었다. 그래서 무작정 필을 들고 달려든것이 장편소설  였다. 이틀에  3시간씩 있는 교수들의 특강을 듣는 외에는 하루에 십여시간씩 집필에 파묻혀있었다. 어떤 날은 집필이 끝나면 새벽3시가 되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고 지치는 나날들이였다. 15일만에 17만자에 달하는 장편소설원고가 탈고되였다. 연길로 돌아온후 두달간의 수개를 거쳐 연변교육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생각밖에도 괜찮은 반응이 왔고 그들의 손에 의해 고맙게도 책으로 출판되였던것이다. 그 책을 가슴에 안고서도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오기로 시작한 일이였기에 그냥 해냈다는 기분외에는 창작과정에서의 기쁨 같은것을 음미할수 없었던것이다. 하여 나는 그 누군가에게 “까불고 있네, 나도 글을 쓸수 있다는거!” 하고 뇌까린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동시농사는 누구도 나에게 “동시를 써야 작가지.” 하고  말한적이 없는 정황에서 순전히 해보고싶어 시작한것이다. 개인취미로 시작한 문학카페에 동시를 옮겨오면서 한국의 동시들을 접촉하게 되였고 차츰 동시의 매력에 빠지게 되였으며 나도 뭔가를 써보고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였던것이다. 2011년  7월  4일 오전, 우리 아빠트앞 담장밑에 자라있는 애기풀을 보고 뭔가 떠올라 그 길로 머리속에 오려둔 글이 바로  총서에 발표된 “동시바구니”중의 “애기풀”이다.   담장밑  돌틈에서/애기풀이  머리를  내밀었습니다/빠끔히~ 어디로 /가시나요?/애기풀이  나에게  묻습니다/조용히~ 나는  아직  모릅니다/나는  그냥  산책을  나왔거든요/무작정~ 애기풀아,/나와   함께  산책을  갈가?/시원히~ 애기풀이  말합니다/아니요/나는  여기서  꽃을  피워야  해요/화알짝~ ㅋㅋㅋㅋ/그놈이,꿈   하나는/야무져~   넉달하고  5일만에 나는 “동시100수”를 가진 동시인이 된것이다. 내가 아무리 자부심을 가지고 소리쳐도 나는 여전히  변한것 하나 없는 나다. 변했다면 날로 비여가는 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한오리가  더 빠진것, 마음속에 자부심 하나 더 채워진것이라 할가? 100수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길로 나는 101한수째의  나의 동시를 주으러 떠날것이다.      
17    과음에서 깨여난 그 다음의 독백 댓글:  조회:1950  추천:1  2011-11-07
  꽤 오랜만에 과음했다. 직장에서 늘 믿음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아주는 후배들이랑 마음 먹고 나가서 한잔 한것이다. 사실 전에 비하면 술도 아닌(흰술  반근에 맥주5병정도?)량이였지만 한1년 과음을 하지 않았더니 위가 놀란 모양이다. 금요일밤에 마신 술을 토요일 내내 앓고 일요일까지 뒹굴었는데도 오늘점심까지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정신이 맑은 편이다. 어제까지는 머리가 흐리터분하고 가슴이 후둑후둑 뛰는것이 큰 실수를 저지른듯하고 세상보기가 부끄러워(?)진종일 커텐을 치고는 이불속에 누워있었던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몸은 여전히 지긋지긋해났지만 가슴이 뛰고 해볕이 싫던 그 느낌은 다소 사라진듯 해서 애써 면도까지 말끔히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의식적으로 머리를 굴리다보니 동시가 나의 머리속을  찾아들었다. 바스락바스락… 가랑잎 밟히는 소리가 정답게 귀전을 스쳤다. 한국학자 이어령님이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낼 때 “가랑잎을 쓸지 말라.”고 지시했다던 글이 머리속을 치고 들어왔다. 그렇다. 콘크리트로 도배된 이 거리에서 가랑잎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삭막해서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그렇게 태여난 글이 “사람이라는것을 잊지 말게” 이다. 토요일날, 커텐도 걷지 않은 방안에서 혼자 끙끙 앓고있을 때 대학에 가있는 아들놈이 오랜만에(한달 반?) 집에 왔었다. 이불속에 있는 나를 보고 아들놈이 막연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놈은 아마 내가 늘 그렇게 술을 마실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그놈이 어리고 내가 한나이 더 젊었을 때, 나는 아들놈의  그런 눈길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지만 그날만은 그 눈길이 나에게 뭔가 많은 말을 하는듯 느껴졌던것이다. 오늘 나는 또 그 느낌들을 글줄에 꿰기 시작했다. “부품이 나갔답니다.”,  “술술”, “아빠는 남자이니까” “어쩌면 좋아”는 그렇게 태여난것이다. 나는 동시가 있어 행복하다, 만약 동시가 없었더라면 오늘도 나는 흐리멍텅한 기분으로 오전을 보냈을것이다. 동시와 함께 세상을 돌아보는 사이에 나의 머리가 맑아지고 또다시 활력을 찾은것 같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나의 동시가 이렇게 저렇게 예쁠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조용하고 해맑으면 그만인것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역시 내 모습 그대로를 읽어낼수 있다면 만족이겠다. 오~ 나의 동시, 나의 동심이여~  
16    반짝이는 그 무엇~ 댓글:  조회:2257  추천:2  2011-11-04
    이것들을  과연  동시라고  할수  있는지  모르겠다.     방금  꿈결에  뭔가가  여기저기에서  유난히  반짝거려  눈을  떴다.   잠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반짝이는  그  무엇들만  나의  손끝을  간질렀다.  그래서  나는  반짝이는  그것들을  주어  글줄에  꿰고싶은  충동을  느낀것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부지런히  뀄더니 단숨에  10개!     곱든 밉든, 가치야  어떠하든  누구에겐가  자랑하고싶다.     이것들을  동시라고  해도  좋고  동시가  아니라 해도  소중한것만은  사실이다.     분명  내것이까.     “동시가  솟는  샘터”라고  달았던  코너의  이름을  어제  “동심으로  쓰는  짧은  이야기”라고  바꾸어버렸다.     그렇다.   나는  지금  동시를  쓰고있는것이  아니라  내  머리속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주어  짧은  이야기를  엮고있는것이다.      40대  후반을  거의  지나  50대의  언덕을  향해  달려가는  내앞에  문뜩문뜩  나타나는  그것들을  주어  글줄에  꿰여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애들에게  선물할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이  밤을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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