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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 송몽규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지난 2월, 겨레가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 유품 기증 특별전이 한국 연세대학교 삼성 학술정보관에서 개막했다.
윤동주 시인의 큰 조카인 윤인석 씨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비롯한 육필원고들과 유품들을 시인의 모교에 기증했다.
그 유품가운데서 윤동주의 중학교 시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였다.
류례없이 까까머리를 한 윤동주가 학우들과 함께 룡정의 허허벌판에 앉아 찍은 사진이다. 사진의 맨 오른쪽에 앉은이는 송몽규이다.
막상 송몽규하면 누구? 하고 흐릿한 기색을 짓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한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아! 하고 송몽규라는 인물에 대해 얼추잡아 깨닫게 된다. 송몽규는 바로
요즘의 형용어를 빈다면 송몽규와
송몽규의 생애에 대해서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사학가인 송우혜가 “
또 지난 2011년 7월, 일본 교또 검찰청은 송몽규의 재판 판결문을 최초로 전격 공개하였는데 그 기록에서도 우리는 송몽규의 행적을 세세히 살펴볼수가 있다.
꿈꾸는 별, 태여 나다
1917년 파평 윤씨네 가문에서는 겹경사가 났다. 가문의 어른인 윤하현(尹夏鉉, 1875-1947)은 외아들 영석(永錫, 1895-1962)과 딸 신영(信永, 1897-?), 신진(新眞) 둘을 두었는데 명동촌 친정 집에 얹혀있던 큰 딸 신영이가9월 28일 아들애를 낳았고 외아들 영석이네가 12월 30일 또 아들애를 보았던것이다. 석달을 차이두고 태여난 그들이 바로 송몽규와
송몽규는
송몽규 가문은 본적이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웅상동이다. 송몽규의 할아버지 송시억(宋始億)은 15세 때에 충청도로부터 연해주로 가다가 그 길목인 웅상에 머물러 가세를 일으켰다고 한다.
아버지
늘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물고 조선인이라기보다는 서구사람처럼 이목구비가 컸던
문과로 진학하겠다는 동주를 억지로 의과로 진학시키려고 했던 윤씨가문에 비해 그는 “아이들은 그들의 의향대로 키워주어야지 부모 욕심으로 키우려면 안된다”면서 몽규의 의도를 늘 존중했었다.
대바르며 너그러웠던 아버지의 애대속에 구김없이 자라난 송몽규는 아이들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문학소년이면서도 대범한 성격을 갖고 있고 어려서부터 무서운 활동가의 재질을 보인 야무진 소년이였다.
소학교 5학년때 동주등과 “새 명동”이란 등사판 문예지를 발행했고 성탄절이면 연출 선생님을 모시고 연극을 하곤 했는데 그런 때에도 몽규가 선두주자로 나서 애들을 휘동하곤 했다.
부끄럼 잘 타고 조용한
명동학교 시절의 윤동주(가운데 줄 맨 오른쪽)와 송몽규(가운데 줄 오른쪽 세번째)
1925년 여덟살인 송몽규는
(계속)
연변일보 "종합신문" 2013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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