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ckkh99 블로그홈 | 로그인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인물漫筆

붉은 별과 파란 눈의 저널리스트
2013년 12월 24일 08시 58분  조회:2623  추천:10  작성자: 김혁
 
인물만필
 

붉은 별과 파란 눈의 저널리스트
 

김 혁

 


중국청년출판사에서 출간한 “스노 평전”
 
 
1,
지난세기 80년대까지만해도 집집마다 모택동주석의 초상화며 빠지들을 갖추어두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 빠찌들을 웃방 정면의 벽에 붉은 주단을 걸고 그우에 주렁주렁 달아두었는데 그중에서도 어린 내가 아끼는 빠찌가 있었다. 조금은 젊은 나이의 모택동주석이 연안요동앞에서의 모습. 풀빛 군모우에 반짝이는 붉은 별이 유난히 눈길을 끌던 삐지였다.  어려서 그런 오각별 하나 가져봤으면 하는것은 당시 어린 홍소병들의 숙망이였다.
그 사진을 외국사람이 찍어주었다는것을 알게된것은 썩후의 일이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Edgar Snow)가 찍었다고 했다. 서방 기자로서는 최초로 중국공산당의 본부가 있던 섬서성을 방문취재해 저서 “중국의 붉은 별”을 펴냈는데 그 책은 80년대 중국에서 초인기를 누리며 베스트셀러로 되였다. 그후 나 역시 기자의 길을 걸으면서 에드거 스노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요즘 에드거 스노의 평전이 뒤늦게 출판되였다. 용기와 재능을 갖춘 저널리스트에 관한 보고서인 동시에 그가 사랑했던 중국의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수 있는 매력적인 평전이였다.
그 평전을 읽으며 중국을 사랑한 이 외국기자의 생애를 더듬어 보았다.
 
 
2,
 
  스노는 미주리대학교 신문대학 출신으로 졸업후 신문사업에 종사했다. 그는 평생 기자로 지냈지만 처음부터 기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증권투자로 약간의 돈을 거머쥔 이십대 초반의 미국인 청년은 머리도 식히고 삶의 에너지도 재충전할 겸 중국려행을 떠난다. 그러나 거기서 목도한 중국의 모습은 이 청년의 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애초에 스물두 살의 청년 스노는 한 1년쯤 세계를 돌면서 모험을 즐길 마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쳐진 중국을 목격하면서 그 참상은 그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휴머니즘을 부추겼고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그를 력사의 중심부로 이끌어들였다.
 

 
 
젊은 시절의  에드거 스노


1936년 스노는 송경령의 도움으로 서안을 거쳐 섬북 소베트지역에 도착했다. 이 기간 그는 모택동 등 중국공산당 지도자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각 지방에서 취재를 진행하면서 중국 2만5천리 장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이듬해에 그 유명한 “중국의 붉은 별”을 발표했다. 당시 국민당정권이 장기간 거짓 선전을 진행한 탓으로 국민당 통제 구역내 인민들은 중국 공산당 그리고 홍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때 스노는 홍군 지역에서 취재를 진행한 외국 기자중의 첫사람으로 아무런 정치적 편견과 당파 색채가 없는 립장에서 직접 따낸 대량의 취재 자료에 근거해 객관 사실을 진실하게 보도했으며 전중국 나아가 전세계가 진실된 중국공산당, 중국 홍군 그리고 지도자들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책으로 당시 곤경에 처해있던 중국공산당과 홍군에게 큰 도움을 줬고 그 역시 이 책으로 세계적인 명예를 취득했다.
이후 중국에서 많은 글과 책을 발표했고, 중국정부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모택동과 함께 한 스노
 
  1941년 중국에서 결혼한 안해 님 웨일스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1942년 전쟁 특파원으로 세계각지를 돌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취재했다. 력사의 기록자로서 스노는 북경과 모스크바, 뉴델리와 워싱턴서울 등지를 종횡하며 모택동, 송경령, 로신, 루즈벨트, 간디, 네루,등 수많은 인물들과 만나 력사가 이루어지는 격변의 현장에서 려행자의 감수성과 언론인의 집요함으로 세계사적인 사건들의 진실을 포착해 서방에 알렸다.
  공산주의에 온정적인 그의 태도때문에 매카시즘이 만연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는 활동에 제약을 받아 미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했다.
  기자로서 스노의 취재 범위는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있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기울인 곳은 중국이였다. 그는 끝까지 혁명 중국에 대한 사랑을 간직했다. 1960년과 1964년 다시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과 주은래와 회담했다. 1969년에도 방문하여 중국 지도부로부터 "닉슨 대통령이 방중한다면 우리는 그를 환영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때까지 중국과 미국은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채 랭랭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닉슨이 방중하기 불과 엿새 전에 “자신이 뿌린 씨앗의 발아를 보지 못한 채” 1972년 2월 15일, 제네바에서 암으로 별세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뉴욕과 북경에 나뉘여 묻혔다.
그가 암으로 투병하자 주은래총리는 그를 위해 중국인 의사들을 파견하기도하였다.
 
3,
 
스노의 이름은 또 한 명의 작가 님 웨일스와 련결돼 있었다. 님 웨일스는 중국 땅에서 싸웠던 조선인혁명가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의 저자이다.
 

스노의 부인 님 웰스
 

자유분방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미모와 두뇌를 겸비한 녀성인 님 웨일스는 스노와 비슷한 무렵에 중국에 와 대사관 직원, 학생, 자유기고가 등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던 중 스노와 만나 열애에 빠졌다.
스노역시 무한에 체류하던 시절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조선족 화가 한락연과도 깊은 우의를 맺었었다.
님웰스는 스노와 결혼한후 남편과 함께 중국을 누비며 중국혁명가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번 오르기도 했다.
스노는 부인 님 웰스와 함께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뒤엉켜 피비린내 나는 력사를 만들어내는 20세기의 현장을 온몸으로 관통한 빼여난 저널리스트였다.


 연변일보 종합신문” 2013 12 23일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파일 [ 4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0 채플린을 다시 만나다 2014-05-10 5 3406
19 타계 70주기를 맞는 녀류작가 강경애 2014-04-30 9 3356
18 외발로 력사의 질곡을 넘어서 2014-03-31 10 2479
17 잘 가요, 유키 티나리 2014-03-17 11 3034
16 력사의 들머리에 새겨진 이름들 2014-02-12 10 2897
15 왕붓으로 돋을새김 할 그 이름 2014-01-06 12 2313
14 붉은 별과 파란 눈의 저널리스트 2013-12-24 10 2623
13 조선의용군 작가 김사량 2013-12-02 12 4446
12 간(肝)을 위한 랩소디 2013-08-26 15 2879
11 피카소,실크로드 그리고 한락연 2013-07-17 12 2840
10 간도체험을 대하소설로 펴낸 안수길 2013-07-12 10 3588
9 청산리 전투 승리에로 이끈 서일 2013-07-08 13 3233
8 달의 몰락을 읊다 2013-06-14 13 3290
7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 송몽규 2013-04-27 10 3231
6 채플린과 다시 만나다 2013-01-31 11 3064
5 조선의용대 부녀대장 리화림 2012-07-19 16 3479
4 [명상시 4] 習慣 2012-05-20 12 3240
3 [暝想詩 3] 어둠속을 걷는 법 2012-05-14 10 3349
2 [暝想詩 2] 구멍 2012-05-11 11 3496
1 [暝想詩 1] 얼굴 2012-05-05 15 40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