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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인제야 알았습니다 댓글:  조회:2218  추천:0  2013-05-05
인제야 알았습니다       민들레를 보고 민들레꽃이라 했더니 우리 동이 벌써 민들레 꽃 피는줄 다 아는구나 잘한다고 똑똑하다고 엄마는  박수를 쳤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의 귀밑에 난 혹을 보고 혹부리령감이라 말했더니 이놈아, 그게 어디 혹이냐 버릇없다고 례절없다고 엄마는 나를 욕합니다   오― 무엇이나 보는대로 말하면 안되는줄 나는 인제야 알았습니다
527    우리 모두에게 댓글:  조회:2988  추천:0  2013-05-02
  이빨이 아픈것은 병이 아니라 합니다 남은 뼈속까지 저리게 아픈것을   아파봐야 합니다. 얼마나 아픈줄은 보는것 만으로는 알수 없습니다 남의 아픔을   아파하는이들을 위해 눈물 한방울 흘릴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526    황금엽* 종리화 댓글:  조회:1868  추천:0  2013-05-02
단편소설   황금엽(黄金叶)   종리화     1   선근이는 확실히 눈썰미가 좋았다. 그는 진작 엽아와 소만이의 일솜씨를 보아냈다. 엽아는 녀자지만 그가 살고있는 묘령에서는 손가락에 꼽힐만한 일군이였다. 엽아는 푼더분하게 생겼다. 얼굴이며 손이며 발이며 지어는 가슴, 엉뎅이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풍만하다”는 낱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엽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또 풍만하다고만 할수 없었다. 엽아는 몸뚱이가 크지만 피부가 탱탱하고 튼실했으며 행동도 여간 날파람이 있는것이 아니였다. 묘령사람들의 눈높이로 볼 때 녀자가 그 정도라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남자들은 누구나 신부감으로 엽아와 같은 녀자를 점 찍을것이였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밭일이나 가무일이나 그리고 아이 낳이까지 막론하고 어느 한가지도 빠지는데가 없을것이니 말이다. 선근이는 몇년전부터 벌써 엽아의 일솜씨를 맘에 두고있었다. 그날 엽아는 해볕 좋은 마당에 앉아 열심히 담배를 장대에 걸었다. 이 일은 담배를 건조실에 넣기전의 환절이였는데 높은 기술이 필요한것이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솜씨는 있어야 했다. 담배를 건조하여 꺼냈을 때 색갈이 좋은가 나쁜가? 한 장대에 걸려 있는 담배배렬이 성긴가 빽빽한가? 지어는 담배 수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것도 모두 일군의 솜씨에 따라 달라졌다. 한 농촌녀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범위나 표준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것 같았지만 내속을 따져보면 섬세한 부분들이 많았다. 엽아는 그러한 범위나 표준에서 어느 누구와 비해도 출중했고 속도도 빨랐다. 어스레한 달빛아래에 앉아 잽싸게 일하는 엽아의 솜씨는 손에 익을대로 익은 일종 악기를 다루는듯했다. 따분하고 지어는 어지러운 일이지만 엽아의 얼굴에는 그 어떤 향수를 누리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엽아는 왼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아쥐고 오른손으로 담배를 두잎씩 주어서는 장대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붙인후 손목에 힘을 주어 쓱- 당겼다. 줄이 당겨지는 소리가 싹- 하고 나면 담배는 예쁜 꽃처럼 정연하게 장대에 묶어졌다. 그 동작들은 엽아의 손끝에서 흥겨운 가락처럼 절주있게 흘러나왔다. 담배를 다 매달아놓은 장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였다. 장대기사이에 꽃처럼 묶여진 담배는 마치 솜씨 좋은 재봉공의 손끝에서 완성된 일매진 바늘뜸 같았다. 엽아의 일솜씨를 한참이나 구경하던 선근이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엽아의 솜씨는 마치 수놓이를 하는것 같아요.   선근이는 소만이의 완력에 탄복하고있었다.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지만 힘만은 무진장했다. 소만이는 마을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가지 않은 몇이 안되는 청장년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묘령의 남자들중에서 소만이처럼 늘 집구석에 박혀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 겨울에 집으로 돌아와 몸보신을 한 남자들은 보통 정월 대보름을 쇠고는 이부자리를 둘러메고 묘령 동산의 그 오솔길을 따라 산아래의 공로에 내려서서 각자가 목적한바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묘령마을이지만 로무송출에서만은 다른 마을의 앞장에 섰다.   사실 소만이도 로무송출에 나섰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후에는 누가 죽인다고 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소만이는 한 건축공지에서 일년간 일했지만 로임을 일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도시의 건달들에게 한바탕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 일을 두고 묘령사람들은 한바탕 입방아들을 찧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똑똑히 알지 못했다. 소만이가 그 일을 말하기 꺼려 했기에 누구도 감히 구체적으로 물을수 없었다. 묘령은 시골치고 꽤 큰 부락이였지만 인가는 여기저기에 분산되여있었다. 산골짜기에는 딱히 모서리라고 할만한 곳이 없어 두리뭉실 구릉이라고 하는것이 나을상싶었다. 선근이네 집과 엽아네 집은 두 산사이의 작은 평지에 자리잡고있었다. 그곳은 2, 30 가구가 살고있는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수 있었다. 소만이네 집은 마을서쪽 산마루 뒤켠의 한 골짜기에 자리잡고있었다.      엽아와 소만이는 선근이네 황연(黄烟)기지에서 삯일을 하고있었다. 황연은 묘령사람들에게 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을주변의 토양은 황연을 재배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누구나 황연재배에 대하여 손금보듯 잘 알고있었다. 황연재배에서의 관건은 담배종자를 잘 선정하는것이였다. 그것은 기초중의 기초였다. 만약 담배종자를 제대로 선정하지 못하면 담배는 키만 크고 헛꽃만 피여 나중에 담배잎이 버들잎처럼 되였다. 황연의 성장기는 아주 짧기에 절대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부지런히 밭에 가서 어린애를 돌보듯 잘 돌봐야 했다. 이를테면 김을 매주거나 가지를 쳐주는것과 같은 일이였다. 더욱 중요한것은 담배에 해충이 생기지 않는가를 제때에 보아내야 하는것이였다. 건조해낸 담배는 색갈이 좋아도 작은 반점이라도 있으면 제 값을 받을수 없었다. 그것은 미녀의 얼굴에 몇개의 얽은 자국이 있는것과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따서 건조시키는 과정은 기술이 필요했다. 어느때 불을 작게 하고 어느때 불을 세게 하는가를 잘 알아야 했다. 불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아무리 파아랗고 야드드한 담배도 색이 바래지게 되여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되였다. 색갈이 좋은 담배를 만들어낸후에도  머리가 아픈 일은 어떻게 제 값을 받고 파는가 하는것이였다. 묘령사람들은 황연수매소의 사업일군들은 모두 오기가 충천하고 자태가 하늘을 찌르며 이마나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듯이 보였다. 그들은 황연더미에 손을 넣어 그렇게도 쉽게 쑥- 뽑아내서 몇번 훑어보고는 값을 매겼다. 황연주인들은 수매소 일군들과 상론할 여지마저 없었다. 수매소 일군들이 매긴 가격이 황연주인들이 상상하던 가격과 큰 차이가 있어도 뒤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기에 어쩔수 없었다. 만약 팔지 않는다면 별수 없이 담배를 메고 다시 령을 톺아야 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황연수매소의 질량검사원이라고 생각했다. 황연을 수매하는데 얽히고 설킨 갈래들을 잘 알고있는 묘령사람들의 황연에 대한 감정은 사랑스럽거나 요염한 녀인을 대할 때와 같이 복잡했다. 그들은 황연을 잘 만들어 용돈을 벌려 하면서도 그 돈을 손에 쥐기까지의 여러가지 장애때문에  일종의 공포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많은 사람들이 황연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지 않고 산을 넘어 도시로 들어갔다. 묘령사람들은 산너머 도시에는 곳곳에 돈이 널려있어서 손만 뻗으면 그 돈을 주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남자든 녀자든 도시로 나가려고 했다. 작은 능력이라도 있거나 힘개라도 쓰는 사람이면 누구도 머리 한번 돌리지 않고 산을 넘어갔다. 남자들은 대부분 건축공지에서 일했다. 진종일 뜨거운 해볕아래에서 일하는 그들의 몸은 타서 거무튀튀해졌고 여기저기에 근육들이 불뚝불뚝 튀여나왔다.  녀자들은 대부분 식당에서 접시를 씻거나 거리에서 삼륜차를 몰고 다니며 과일을 팔거나 페품을 주었다. 어떤이들은 묘령에서 만든 전병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잔머리를 잘 굴리고 일처리에서 요사한 녀자애들은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 등에 들어가기도 했다. 묘령사람들은 처음에 그런 곳에 들어가는 녀자애들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녀자애들은 묘령으로 돌아올 때 옷차림이 깔끔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령사람들도 그들의 눈부신 옷차림뒤에 숨은 비밀들을 알게 되였고 막무가내라는듯 순진한 애들을 버리게 되였다고 한숨을 내쉬였다. 사실 그런 녀자애들도 묘령이라는 시골에 대하여 그렇다 할 미련을 가지고있는것은 아니였다. 묘령에서 황연을 재배하는 사람은 나중에 선근이 한 사람뿐이였다. 선근이도 사실 산을 넘어볼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선근이는 가고싶어도 선뜻이 떠날수 없는 신분이였다, 그는 마을의 당지부서기였다. 선근이는 자기가 어떻게 몇 임기나 촌의 당지부서기를 련임해왔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근이가 탁월한 지도자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묘령같은 산골에서 지부서기는 바로 닭갈비와 같은 존재였다. 묘령의 인구는 해마다 적어졌다. 일년에 한번씩 음력설을 쇨 때나 마을은 흥성흥성할뿐이였다. 평소 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해서 아무런 생기도 찾아볼수 없었다. 지어는 닭이며 게사니며 돼지며 개 등 가축들마저 대가리를 축 늘어뜨리고있어 온 마을 분위기가 괴괴했다. 선근이는 지부서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저 마을에 남아있는 평범한 나그네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에는 대부분 로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도시에 들어갈수 없는 몇몇 녀자들뿐이여서 선근이는 평소 얼굴을  맞대고  술잔을 기울일 친구마저 없었다. 어느 한번, 선근이는 진에 회의를 갔었는데 그 걸음에 진장네 집에 들어가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정을 부린 일까지 있었다. 그날 선근이는 진장을 보고 이렇게 애걸했다. ―제발 나더러 지부서긴지 무엇인지 하는 빌어먹을 일을 시키지 말아주시우.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생활이 구차하구 초라하게 산단말이우. 바깥사람들은 자가용승용차까지 굴리지만 우리 묘령사람들은 지어 뜨락또르마저 굴리지 못하니… 진장은 선근이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선근이, 자네가 우리 집에 엉뎅이를 들이밀 때부터 나는 무엇을 쏠것이라는것을 알았다네. 나더러 돈을 내라는거지? 고려해볼수 있네. 하지만 자네, 그 돈을 제 곳에 써야 하네. 그래,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읍세. 며칠후 선근이는 과연 진정부로부터 빈곤부축자금을 조달 받았고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았다. 길이라고 해야 그 너비가 녀자들의 허리띠만큼밖에 안되였다. 길은 산아래의 공로에서 갈라져나와 여러 골짜기나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갈라져나가다가 마을 동쪽의 구릉에서 합류되였다. 모두들 선근이가 마을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밭농사를 편리하게 하라고 그 길을 닦는것이라고 짐작했다. 길을 닦은후 선근이는 먼저 그 길섶에다  집들을 지었다. 그후 부근 농가들의 밭을 모두 임대해들였다.  남포를 터치우고 밭을 파헤치며 며칠이나 분주하게 돌아치더니 어느새 그럴듯한 다락전이 생겨났다. 그후에 선근이는 담배를 말리우는 건조실을 보란듯이 지어놓았다. 이어 길섶에 큰 간판 하나가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묘령황연기지”라고 씌여져있었다. 그제야 묘령사람들은 선근이가 황연농사를 크게 해보련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2   엽아는 집에서 셋째였다. 우로는 언니가 둘이 있었다. 도리대로라면 그의 부모들은 엽아를 낳은후 생육을 그만두어야 했었다. 하지만 엽아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어코 아들을 보고싶었다. 결과 엽아의 아버지는 과연 자기의 숙원을 이루게 되였다. 하지만 진에서 계획생육을 책임진 사업일군들은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소문을 듣자마자 엽아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 기세는 실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자칫하면 기둥뿌리마저 뽑힐 정도였다. 그때 엽아네 집은 살림이 구차하다 못해 그야말로 서발장대를 휘둘러도 거칠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후에는 살림이 좀 나아졌다. 엽아의 두 언니가 산아래의 마을로 시집갔다. 엽아의 남동생도 고중을 마쳤다. 엽아는 어찌 보아도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렇게 많은 중매쟁이들이 엽아를 넘보고 혼사말을 걸었지만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엽아는 높은 곳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낮은 곳으로는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녀자였다. 엽아는 점차 로처녀로 되여갔다. 하여 묘령사람들은 엽아를 두고 사유에 문제가 있다고 수군거렸다. 농촌에서 제 나이에 시집을 가지 않는 처녀들은 어딘가 특수한데가 있었다. 엽아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았다. 산기슭에 있는 담배밭에는 자람새가 좋은 담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흐믓하게 해주었다. 엽아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힘을 들여 호흡했다. 기분을 둥둥 뜨게 하는 신선한 담배냄새가 날아들어 온몸을 감싸는것 같았다. 엽아에게는 이렇게 담배냄새를 맡기 좋아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지만 누구도 모르고있었다. 엽아는 파아란 생담배잎에서 나는 냄새든 잘 건조된 황연에서 나는 냄새든 모두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또 엽아가 담배를 피운적이 있다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담배를 몇번 피운적이 있지만 담배인이 박힐 정도는 아니였다. 엽아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것은 몇년전이였다. 엽아는 남자들의 본을 따서 노오랗게 건조된 황연을 부스러뜨린후 종이에 담아 나팔모양으로 말았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엽아는 자기가 누구에게 크게 속기라도 한듯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엽아는 줄쳐 나오는 기침을 참을길 없었고 둘둘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처럼 참기 힘든 곤욕속에서도 이름할수 없는 일종의 흥분을 느낄수 있었다. 마치 구름속을 헤집고 다니는듯한 환각 같은것이였다. 그런 느낌에 엽아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느낌때문에 엽아는 한번 또 한번 담배대를 입에 물게 되였다. 하지만 필경 녀자의 몸이라 남들앞에서 대담하게 담배를 피울수 없었다. 묘령에서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필경 사람들에게 경박하다는 인상을 주게 돼있었다. 선근이의 2륜 모터찌클이 문앞에 있었고 모터찌클곁에는 검은 털을 가진 개 한마리가 매여져있었다. 개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왕왕 짖어댔다. 엽아가 개를 향해 소리쳤다. ―이 개같은 물건짝아. 이 할미도 알아보지 못한단말이냐? 그 소리를 들은 선근이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선근이의 모양새는 구질구질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그는 언제나  수염을 제대로 밀지 않아 꾀죄죄했고 코털은 코구멍으로 삐죽이 꼬리를 들어내고있었다. 엽아는 그런 선근이를 역겹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웃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야릇한 눈길로 엽아를 내다보며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엽아와 비겨볼 때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로 과하다할만큼 몸집이 뚱뚱했다. 하여 걸을 때면 몸집에 붙은 고기덩이가 덜렁덜렁 춤을 추는것 같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그야말로 “표준적인” 시골아낙네의 몸매라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곧추 외종숙모인 그 “표준적인” 시골아낙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녀자가 히히닥거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마당에 들어섰다. 해볕에 그을어버린 소만이의 피부는 검실검실했다. 웃통을 벗어제낀 소만이의 몸집에는 어디라 없이 불끈불끈 근육이 살아있었다. 소만이는 등에 메고있던 분무기를 벗어놓고는 수도가로 다가갔다, 소만이는 찬물이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푸푸- 소리를 내며 씻었다. 엽아는 세수하는 소만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엇을 느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그것을 눈치챈 선근이의 녀편네가 하하하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우람진 체구의 소만이는 어쩌면 튼실한 둥글소를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았다. 머리를 다 씻은 소만이는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꿀떡꿀떡 찬물을 마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종래로 배탈이 나지 않았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어 머리카락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버리더니 두 녀자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왔다. 그때 엽아의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 바람에 소만이가 흠칫 놀라는가싶더니 괜히 왼손을 들어 어쭙게 자기의 어깨를 쓸어댔다. 마치 웃통을 벗어버린 자기의 몸을 엽아에게 보이는것을 부끄러워하는것 같았다. 엽아는 그런 소만이를 향해 실웃음을 지어보이며 롱담했다. ―소만아, 듣자니 너 적반시장으로 가서 선을 봤다면서? 처녀가 마음에 들던? 엽아의 말에 소만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려는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머리를 푹 떨군채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수건을 찾아들고 머리를 마구 닦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소만아, 너하구 묻잖아? 왜 대답이 없니? 아무리 그렇다 해두 너와 나는 소학교동창이 아니냐? 엽아가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도 소만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에 선근이가 끼여들었다. ―엽아야, 네가 하루에 소만이를 열마디이상 말을 시키면 내가 너에게 두 사람치의 일당을 주마. 엽아가 선근이의 말을 받았다. ―정말인가요? 소만아, 너두 방금 들었지? 어서 나하구 맞장구를 좀 쳐주라. 내가 돈을 벌면 너에게도 절반을 갈라줄게. 그 말에 소만이가 벙글서 입을 벌리고 껄껄 웃어댔다. 엽아는 잔뜩 이마살을 찡그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너 웃지만 말고 말을 해야지. 하지만 소만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몸을 픽- 돌려 마당을 나가버렸다. 그 모양을 보고 선근이의 녀편네는 우스워서 죽겠다고 배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선근이가 소만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저 같은 자식을 두고 세다리를 다 흔들어도 방귀 한번 뀌지 못한다는거야. 담배건조를 책임진 일군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에 올라왔다. 성이 왕씨인데 별명은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호적이 다른 마을에 있었지만 묘령에 집을 잡고있었다. 엽아는 한참동안 왕절름발이를 눈여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의 다리가 아무 이상도 없는데 왜 절름발이라고 부를가요? 선근이의 녀편네가 대답했다. ―사실은 절름발이가 아닌거지 뭐. 이어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의 배속에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단다. 전에는 보따리장사를 하면서 주변마을들을 주름잡고 다녔단다. 한번은 어느 집 새각시를 희롱하다가 그 각시의 남정에게 들켜 한바탕 개패듯 얻어맞았단다. 그 바람에 한동안 다리를 절게 되였던거야. 엽아는 왕절름발이의 반질반질한 머리통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올 때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따는 일이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에서 담배기름냄새가 확확 풍겼다. 엽아는 빨아놓은 옷을 갈아입었다. 검고 기름기 흐르는 엽아의 머리칼은 어깨를 스쳤는데 정말 아름다왔다. 그녀의 머리칼은 다른 녀자들처럼 푸수수한적이 없었다. 엽아는 세수비누로 얼굴을 싹싹 씻은후 선크림을 발랐다. 엽아는 시원한 아침공기처럼 자기 몸도 청신하다고 느꼈다. 이런 날에는 아침 일찍 밭으로 가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해볕이 그렇게 강하지 않을 때 많은 일을 해제껴야 했다. 하지만 해볕이 머리를 들지 않은 이 시각에는 밭에 이슬이 많아 옷섶을 즐벅하게 적셔 정말 귀찮았다. 선근이네 담배밭에는 벌써 8, 9명의 얼굴이 보였다. 그중 소만이와 엽아, 왕절름발이는 삯일을 온 사람들이고 둘은 선근이네 부부였으며 나머지는 선근이가 특별히 불러다 도움을 받는 친척들이였다. 맞은켠의 산언덕에 심은 담배는 모두 한가지 종류였다. 선근이는 그 담배를 황금엽이라고 불렀다. 엽아는 허리를 굽혀 부지런히 담배를 따며 생각을 굴렸다. 참으로 황금엽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구나. 전에 어디 이렇게 좋은 담배를 본적이 있었던가? 황금엽은 잎이 컸는데 건조를 해도 그 색갈이 아주 고왔다. 잎으로 있을 때는 별로 냄새가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그 잎을 부스러뜨리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엽아가 한창 제 좋은 생각을 굴리고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엽아가 머리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임자는 왕절름발이였다.     작은 주머니 살랑살랑 흔들리네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허리에 둘러주게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옆구리에 둘러주려마 작은 주머니에 작은 칼을 넣어두게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의 목에는 하아얀 수건이 둘러져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왼손으로 담배를 따며 오른손으로 수건을 흔들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저으며 흥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엽아는 노래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차츰 입가에 실웃음을 물었다. 그녀는 왕절름발이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지긋한 그가 밭에서 노래를 부른다는것이 어딘가 남달라보였다. 선근이는 못마땅한듯 왕절름발이를 쏘아보며 두덜거렸다. ―뛸데 없는 푼수라니까. 묘령에서 푼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처리에서 참답지 못했다. 선근이의 말을 받아 선근이의 녀편네가 삿대질을 했다. ―왕씨, 이 사람아. 그 고질을 못 고치는구려. 승냥이가 고기를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개가 똥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그 바람에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이런 재미가 있어서였던지 엽아는 그날 아침 일이 참 인상깊다고 생각했다. 담배잎에 이슬이 많아 저마다의 옷은 푹 젖어버렸다. 엽아는 자기의 웃옷이 이미 가슴과 등에 착 달라붙었다고 느꼈다. 바지가랭이도 이미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 엽아는 아예 바지가랭이를 둘둘 말아올렸다. 그러자 하아얀 종아리가 들어났다. 이슬에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인지 온몸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몸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서 어딘가 민망한 감이 들었다. 특히 몸을 일으켜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부딪칠 때면 더구나 몸둘바를 몰랐다. 아침에는 밀국수가 나왔다. 엽아는 소만이가 벌써 여섯그릇채 먹기 시작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엽아는 어쩐지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문가에 쪼크리고앉아 밀국수를 먹고있는 왕절름발이를 돌아다보며 입을 열었다. ―왕아저씨, 아까 부른것은 무슨 노래인가요? 한번 더 불러주세요. 엽아의 말에 왕절름발이는 갑자기 못내 흥분했다. 그는 사발에 남은 밀국수를 후룩후룩 먹어치우고는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엽아야, 네가 나를 왕아저씨라고 하니 어쩐지 내가 늙어보이는구나. 아까 부른것은 “수놓이노래”이다. 너처럼 어린 녀자애들은 들어보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불렀다 해도 그 맛이 날수 없지. 왕절름발이는 왼손에 사발을 오른손에 저가락을 들고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엉뎅이까지 흔들어댔다.     기다리네 기다려 기다린다만 녀동생을 기다리는건 아니라네 누구를 기다리느냐 주머니를 수놓아 오빠를 주렴 오빠에게 편지를 전해주렴아 실을 사다줄게 편지를 보내주렴 실을 사다줄게…     엽아는 정색해서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를 보면서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소리쳤다. ―저 홀아비가 또 발정을 한게로군.  그 말에 선근이가 녀편네의 엉뎅이를 툭 걷어찼다. 그 바람에 선근이의 녀편네는 입속으로 뭐라고 우물거렸다. 아침밥을 다 먹었는데도 해볕은 그렇게 독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좀 자니자 해볕은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엽아네는 계속 담배를 뜯기 시작했다. 엽아는 시종 선근이의 녀편네와 나란히 서서 일했다. 그녀들은 누구도 입을 쉬우려고 하지 않았다. ―엽아야, 너 이미 로처녀 소리를 듣고있는데 왜 아직도 이러구있니? 나하구 말해보렴. 너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거지? 엽아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것처럼 했지만 사실 남들과 정면으로 이 문제를 론하기 꺼려 했다. 더구나 선근이의 녀편네가 성격이 곧아서 무엇을 생각하면 그대로 말하기에 더구나 그와 이 일을 론하기가 꺼림직했다. 엽아는 짐짓 내숭을 떨며 말했다. ―남자는 무슨, 전 평생 남자를 안 찾을거예요. 혼자 살죠 뭐.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웬 일이냐는듯 아이구― 하고 길게 소리를 뽑았다. ―귀신이나 믿으라구 해라. 너 무슨 생각하고있는거니? 어느 녀자가 남자를 마다해? 선근이의 녀편네는 잠간 말을 끊고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 너 한밤중에도 생각을 안한단말이니? 엽아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선근이 녀편네의 말을 당겨왔다. -숙모, 그만해요. 또 그러면 그 입을 이 담배잎으로 틀어막을거예요. 하지만 선근이 녀편네는 개의치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너두 인젠 알것은 다 알만한 나이지 않니? 남자와 녀자가 노는 그 유희를 정말 모른단말이니? 엽아는 담배대를 가운데 둔채 담배잎을 들어 선근이 녀편네를 후려쳤다. 선근이 녀편네는 몸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집애하구는. 네년도 어느날 남정네를 끌어안구 물고 빨 날이 있을게다. 그날에도 오늘처럼 당당할수 있을가? 엽아는 아예 선근이 녀편네의 입담을 당할수 없던지 입을 삐죽해보이고는 다시 응대하지 않았다. 선근이 녀편네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어제밤에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너하구 소만이가 배필인것 같다. 생각이 있으면 나에게 시원히 말해봐라. 내가 말하면 꼭 성사될수 있을게다.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건너다보며 입을 필룩거렸다. ―소만이요? 그 검둥이를요? 석탄굴에서 기여나온것 같은 그놈을요? 엽아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허리를 쭉 펴고는 몇고랑 밖에서 담배를 따는 소만이를 곁눈질했다. 소만이는 여느날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가 입을 열었다. ―남자들 몸뚱이가 좀 검은게 무슨 허물이니? 너 저 몸뚱이를 좀 봐라. 얼마나 튼실해보이니? 너, 내 말을 들으면 랑패가 없다니까. 남자를 찾으려면 바로 소만이 같은 애를 찾아야 해. 우리 남정 같은 남자를 고르면 랑패지. 겉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침대에 올라가서는 영 부실하다니까. 보기 좋은 개떡이지. 그 말에 엽아가 일부러 퉥- 하고 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숙모, 돌았어요? 선근이 녀편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 설마 소만이가 돈이 없다고 그러는건 아니지? 엽아는 선근이 녀편네를 흘기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숙모하고는 통 말이 안통한다니까요. 해볕이 재글재글 끓기 시작했다. 담배잎에 내려앉았던 이슬들이 차츰 화끈화끈 열기로 변해 날아갔다. 그러자 담배잎에는 끈적끈적한 기름이 내배였다. 엽아는 그것이 좋았다. 담배잎에 돋은 기름때문에 손가락이 떡떡 들어붙었지만 그럴수록 담배잎에서는 더 짙은 냄새가 풍겼다. 엽아는 그 냄새가 자못  친근하게 느껴졌다. 엽아는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여 선근이 녀편네를 보고 물었다. ―숙모는 담배냄새가 참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근이 녀편네가 이상하다는듯 눈동자를 키웠다. ―담배냄새가 좋다구? 세상에. 나는 담배냄새를 오래 맡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나거든. 그런데두 넌 이 냄새가 좋다구? 이상하다 이상해. 엽아야, 너를 어쩌면 좋니?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는 집안으로 들어가 물을 마신후 초모자를 쓰고 나왔다. 문을 나서면서 엽아는 웬지 소만이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만이는 수도가에서 찬물을 한소래 받아서 자기의 머리에다가 쏟아붓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되려 온몸이 오싹해나는것 같아서 입을 쩝쩝 다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되려 시원하다는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엽아는 흠칫하면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쩌면 그 한소래의 물이 몽땅 자기의 머리에 쏟아지는듯한 느낌이였다. 소만이는 진작 엽아의 눈길을 감지한듯싶었다. 소만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초모자밑으로 드러난 엽아의 하아얀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사처로 튕겨나갔다. 저녁식사는 풍성했다. 선근이 녀편네가 닭까지 한마리 잡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속에서 싱그러운 닭고기냄새가 절반 산기슭을 덮고있었다. 밭에서 일하고있는 사람들은 진작 그 닭고기냄새를 맡고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자못 흥분해하면서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끝낸 왕절름발이는 선근이를 보고 저녁에 술이 있는가고 물었다. 밭머리에 쪼크리고앉아 담배를 피우던 선근이가 통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취토록 마시라구. 오늘은 첫날이니까.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없을걸. 마시고싶으면 자비로 사다가 마시든지. 나는 더 이상 관계치 않겠으니까. 왕절름발이가 선근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 말일세, 작은 모병이 있거든.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면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니까. 그 말에 선근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네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난 자네를 건조실에 넣어 담배와 함께 쪄버릴거네. 옹근 하루 동안, 소만이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엽아도 확실히 소만이가 입을 여는것을 보지 못했다. 엽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소만이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벙어리도 아니면서 왜 진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을가? 말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속이 갑갑할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가? 손을 씻을 때 엽아가 소만이의 곁에 서게 되였다. 엽아는 가까이에서 소만이를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진후라 소만이의 얼굴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소만이는 그때 웃옷을 벗으려고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를 들어 엽아를 한번 훔쳐보고는 팔소매만 둘둘 감아올렸다. 엽아가 입가에 웃음을 피워올리며 물었다. ―웬 일이니? 나를 보고 부끄러워 그러니? 계집애들처럼. 소만이는 머리를 들어 엽아를 건너다보더니 벙그레 웃으면서 그제야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되려 엽아쪽에서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져 황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소만이가 세수를 끝내자 엽아가 소만이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소만이가 수건을 받아 몸을 닦을 때 엽아는 급급히 세수하기에 바빴다. 소만이가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선보러 간게 아니구, 장보러 갔던게요. 엽아는 한참이나 돼서야 소만이가 무슨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제 내가 물었는데 오늘에야 그 대답을 하다니. 엽아는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소만이가 건네주는 수건을 받았다. 수건을 넘겨준 소만이는 벌써 집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거동에 놀라 멍해있다가 천천히 수건을 들어 코밑에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순간 엽아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급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 밤, 남자들은 과연 취토록 술을 마셨다. 엽아는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나누웠다. 하지만 선근이의 녀편네가 강권하는 바람에 입술에 약간 술을 댈수 밖에 없었다. 엽아는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었다. 어느해 음력설날, 몇몇 친구들이 모였는데 흥이 나자 술을 마시기로 합의했다. 그번에 엽아는 근 한근에 가까운 술을 마셔버렸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말짱한대로였다. 그에 엽아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 마신 몇방울의 술은 사실 엽아에게 있어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술을 마실줄 안다는것을 들키기 싫어서였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로처녀가 남자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통이 크게 술을 마신다는것은 누가 알아도 좋은 일이 아니였다.  소만이는 술자리에서도 없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술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츰 소만이의 존재를 잃어버린듯싶었다. 엽아는 술자리를 피해 옆에 나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흘끔흘끔 소만이를 훔쳐보았다. 술자리에 앉은 몇몇은 이미 흥이 도도해있었다. 특히 왕절름발이는 기분이 둥둥 떠서 손발이 춤을 추고있었다. 선근이는 우뢰와 같이 큰소리로 옆에 앉은 나그네와 화권(划拳)놀이를 했다. 하지만 소만이는 돌덩이처럼 듬직하니 앉아서 연신 술잔만 기울였다. 엽아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선근이가 말했다. ―너도 여기서 자렴. 밤길이 험할텐데. 엽아가 대답했다. ―언제는 뭐 밤길을 걷지 않았나요? 괜찮아요.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동을 달았다. ―엽아의 몸매를 보세요. 웬간한 남정네들은 어쩌지 못할거예요. 그 말에 술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쳤다. 엽아는 힐끔 소만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흥, 내가 되려 덮치지 않으면 다행인줄 알라 하세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엽아는 웬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세수를 하면서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했다. 그녀는 자기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등도 켜지 않고 그렇게 앉아 한참동안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도무지 잠을 청할수 없었다. 엽아는 낮에 왕절름발이가 부르던 노래를 떠올렸고 소만이의 튼실한 몸매를 그려보았다. 소만이가 물방울이 맺힌 머리칼을 털어대던 모습이 참 멋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을 켜고 자기의 풍만한 젖무덤을 내려다보았다. 엽아의 머리속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소만이는 왜 그렇게 말했을가? 하루가 지나서 왜 그 한마디를 던진것일가? 내가 그래 그가 장보러 갔었다는것을 정말 모르는줄로 알았을가?  그날 엽아는 숱한 사람들 건너로 소만이를 바라보았었다. 그때 소만이는 혼자서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어릴적 모습을 그려보았다. 소만이는 어릴 때 겨울이면 늘 큰 솜외투를 입고 다녔는데 남들이 입다가 물려준것이였다. 늘 외투소매로 코물을 닦아서 반들반들했다. 그때도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고 마음씨가 어졌다. 하여 엽아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마음대로 소만이를 못살게 굴었었다. 엽아는 엇갈려 올라간 자기의 두손이 젖무덤을 꼭쥐고있다는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3   선근이의 녀편네가 엽아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어제밤에 말이다. 네가 가자마자 나그네들이 너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 말에 엽아가 입을 삐쭉거리며 한마디 했다. ―흥, 내 그럴줄 알았어요. 참으로 좋은 물건짝이 없다니까요. 뒤에서 입방아질이나 하구. 선근이의 녀편네가 말을 이었다. ―모두들 말하던데 네가 이상하다는거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 시집을 가지 않으니 말이다. 조건이 남보다 못한것도 아니구. 하기야 이제 어떤 나그네가 너를 품에 안고 복을 누릴지. 엽아는 얼굴을 뜨겁게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밭에는 선근이와 왕절름발이 그리고 소만이만 나와있었다. 엽아와 선근이의 녀편네는 담배를 따기 시작했다. 산더미같이 무져진 담배잎을 한잎한잎 장대에 엮는 일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엽아는 진작 이 일에 손이 익어있었다. 일손을 놀릴라치면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솜씨가 빨랐다. 엽아 혼자서도 다른 녀인네 두섯은 담당할수 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엽아를 건너다보면서 야릇한 웃음을 피워 올리다가 목소리를 한껏 깔면서 말했다. ―아침에 말이다. 왕절름발이, 그 사람이 글쎄 우물가에 앉아서 한참이나 몸단장을 하지 않겠니?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고 지어 하얗게 씻어놓은 적삼까지 꺼내 입는거 있지. 호불아비가 언제 제 몸을 그렇게 가꾼적이 있었니? 발정이 날 때를 말구는. 엽아가 다잡아물었다. ―무슨 뜻이예요?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돌아다볼 때 그는 허리를 굽혀 담배를 줏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그날 선근이가 입던 낡은 적삼을 몸에 걸치고있었다. 게다가 브래지어도 하지 않아서 주글주글한 두개의 젖무덤이 축 처져내린것이 다 보였다. 그 모양을 보면서 엽아가 되려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줄도 모르고 선근이 녀편네가 또 입을 삐쭉했다. ―남정네들은 말이다. 하나같이 그 모양이라니까. 오래동안 잠자리에서 녀자맛을 보지 못하면 단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한다니까. 그 말을 듣고난 엽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라잖으면 령감줄에 들어설 나그네들도 그런 생각을 해요?  선근의 녀편네가 말했다. ―그 나그네 그렇게 나이 많은게 아니다. 생긴게 늙다리 같아 그렇지. 그리고 또 늙었다고 해서 그 생각이 없다고는 할수 없지. 엽아는 믿지 못하겠다는듯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왕절름발이가 물 마시러 왔다. 그는 자기는 평생 끓이지 않은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한고뿌 받았다. 그는 고뿌를 들고 엽아네 곁에 앉아서 후룩후룩 뜨거운 물을 마셔댔다. 왕절름발이가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엽아는 웬지 자꾸 웃고싶은것을 참을수 없었다. 왕절름발이는 과연 하얗게 씻은 적삼을 입고있었는데 제일 웃단추까지 꼭 채웠다. 반들반들한 정수리와는 달리 옆부분에 성기게 난 머리칼들은 반반하게 빗겨져있었다. 적삼호주머니에는 원주필 한대가 꽂혀져있었다. 왕절름발이의 모양새를 이윽히 지켜보던 엽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왕절름발이는 모르겠다는듯 엽아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엽아야, 너 왜 그렇게 웃지? 엽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웃느라 젖무덤이 달랑달랑 춤을 추는것도 모르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자네, 왕씨. 엽아가 있잖아, 엽아가 그러는데 자네가 기실은 아주 젊어보인다네. 몸단장을 하면 멋도 나구말이야. 왕절름발이는 후룩- 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고는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뽑더니 말을 이었다. ―딱히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한 10년만 젊었다면 엽아의 말을 믿을수도 있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정말 괜찮게 생겼다고 할만 했었지. 내가 적반시장에 척 뜨면 처녀들이구 새각시들이구 모두 나를 돌아보고 침을 흘렸다네. 어느 핸가 현 연극단에서 사람을 보내와 나를 보고 리옥화역을 맡아달라는거야.  나는 기어코 사절해버렸어. 그까짓 역을 해서는 뭘 하겠는가 하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좀 후회된다니까. 내가 만약 그때 극단에 갔더라면 지금쯤은 중남해에 들어가 연극을 놀지 누가 알아? 그 말을 듣고 선근이 녀편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흥, 모양새 하구는, 토비역이나 맡으면 그나마 어울릴가? ―아니, 제수. 그래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거여? 내가  한번 몸을 움직여볼가? 왕절름발이는 손에 들고있던 고뿌를 내려놓고 가슴을 쑥 내밀며 “홍등기”에서 나오는 리옥화의 형상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나 막힘이 없다네 고난한 집 아이가 먼저 헴이 든다네 ……     선근이가 밭에서 소리쳤다. ―이봐, 왕씨. 난 자네를 불러다 일을 시키려는게지 노래를 부르라는게 아닐세.       그 말에 왕절름발이는 노래를 멈추고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에게 물었다. ―어떤가? 내 노래수준이. 선근이 녀편네가 말했다. ―당나귀소리 비슷하구려. 그 소리에 엽아가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왕절름발이가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흥,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들을줄을 모르는거야. 왕절름발이는 다시 고뿌를 들고 한참 후룩거리다가 흥얼거리며 밭으로 갔다.      사랑하는이, 천천히 날게나 앞에는 가시가 가득 박힌 장미가 있다네     왕절름발이의 노래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담배를 매단 장대를 건조실에 들여가기전에 왕절름발이는 못내 흥이 났다. 엽아는 분명 왕절름발이의 허리가 꿋꿋이 펴진것을 발견했다. 왕절름발이는 자기의 일솜씨를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는 건조실문어구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해대는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선 장군을 방불케 했다. ―이것은 내가 오래동안 연구해온 새로운 방법일세. 담배를 다는 이 방법을 가지고 전매특허를 신청할가고도 생각했더랬지. 자네들 아는가? 나는 팔괘도를 연구한후 이 방법을 고안해냈다네. 자네들은 그저 건조실에 담배장대를 거는 일이 아닌가고 코웃음을 칠수도 있을걸세. 하지만 그게 아닐세. 여기에는 많은 학문이 숨어있다네. 나의 연구에 의하면 한 담배대에 자란 잎도 우의잎과 아래잎은 거는 방법이 다르고 말리는 방법도 다르다네.  선근이가 그에 역정을 내며 욕했다. ―제밀할, 바빠죽겠는데 그까짓 큰소리는 왜 치는겨? 내가  큰 돈을 주고 당신을 청해온건 실제적인 일을 하라는거야. 건조실에 담배가 가득찼다. 그러자 왕절름발이는 또 한차례 사람들의 눈이 희뜩 번져지게 했다. 그는 건조실에 제사를 지낸다고 납떴다. 왕절름발이가 말했다. ―건조실에도 령적인것이 존재한단말이요. 그러니 불을 지피기전에 반드시 화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거요. 세상에서 제일 신성한 물건이 바로 불이란말이요. 옛날에도 병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전에 화신에게 큰 제사를 올렸단말이요. 건조실앞에는 진작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는데 우에는 여러가지 료리며 술이 올라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어디서 먹 한병을 얻어왔다. 그는 손에 먹을 묻혀서는 얼굴에다가 괴상한 도안을 그렸다. 얼굴에 그림을 그릴 때 왕절름발이의 기색은 매우 엄숙해보였다. 곁에 선 사람들은 입을 헤- 벌리고 왕절름발이를 바라볼뿐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왕절름발이는 경건하게 제사상앞에 꿇어앉아 건조실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손발을 놀리기 시작하더니 신들린듯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아가던 왕절름발이는 다시 제사상앞에 꿇어앉았다. 그는 향을 피우고 종이를 태운후 선근이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묘령사람들은 모두 선근이의 황연재배기지에서 터져오르는 폭죽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어 선근이네 건조실에서는 뭉게뭉게 연기가 피여올랐다. 그날 밤 사람들은 모두 흥분에 들떠있었다. 선근이는 전에 다시는 술상을 벌리지 않겠다고 말한적이 있었지만 그날 저녁 또 술상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선근이가 왕절름발이를 고무하기 위해서 술상을 벌린것을 알고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도중에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엽아가 마당으로 나갔는데 왕절름발이도 조용히 엽아의 뒤를 따랐다. 왕절름발이는 수도가에서 갑자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엽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엽아야, 선근이네 일이 끝나서 삯전을 받게 되면 내가 너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가마. 그 말에  엽아는 너무 놀라서 굳어졌다. 어쩌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듯한 느낌이였다. 엽아는 미처 뭐라고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왕절름발이를 건너다보았다. 잠간 지나서야 엽아는 솟구치는 분노를 느꼈다. 엽아는 정말 왕절름발이의 면상을 한대 갈겨주고싶었다. 한심했다. 왕절름발이가 제 주제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다 늙어가는 신세가 돼가지고 감히 처녀에게 그같은 주문을 걸다니? 엽아는 아무리 해도 참을수 없었다. 그야말로 묘령사람들의 말처럼 “늙은 소가 야드르르한 풀만 찾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차츰 왕절름발이로부터 씻지 못할 굴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머리를 저으며 사색을 정리했다. 그래, 이것은 저 절름발이의 하잘것 없는 롱담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엽아는 웬지 모르게 일종의 달콤함을 느끼게 되였다. 사실 로처녀로 불리우는 그날까지도 엽아는 어느 남자에게서 그같은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소만이는 죽어도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말을 할수 없을것이라고 엽아는 생각했다. 하기야 엽아가 롱담으로 한 말도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대답하는 소만이였으니 말이다. 엽아는 왕절름발이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  엽아는 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리라고 생각했다. 엽아는 늘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하나 또 하나의 비밀을 소중한 보물마냥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운 엽아는 또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북경은 어떠한 도시일가? 북경! 아, 그곳은 북경이야! 엽아는 그런 생각을 굴리는 자신이 어떤 병에라도 걸린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점점 요사해지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안되는 사이에 자기 생각에 그렇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자기가 선근이 녀편네가 하던 말처럼 자신을 수습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 내가 설마 지금 남자를 그리고있단말인가?     4   담배가 건조실에 들어갔다가 말라서 나오기까지는 닷새가 걸렸다. 그 닫새사이, 엽아는 선근이네 집으로 일하러 가지 않았다. 닷새후, 황연이 건조실에서 나온후 다시 선근이네 집으로 가서 황연을 급에 따라 조리하여 묶어놓으면 되였다. 그 일까지 마무리하면 황연에 관계되는 일련의 일들이 기본상에서 끝났다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그 닷새를 채 채우지 못하고 선근이네 집으로 갔다. 엽아는 자기가 먼저 선근이네 집으로 찾아갈 리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엽아는 선근이네 집을 자기의 집보다도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세번째날, 왕절름발이가 건조실아궁이에 불을 가하려고 할 때 엽아가 갑자기 왕절름발이앞에 나타났다. 왕절름발이는 너무도 좋아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엽아가 왔구나. 엽아는 얼굴을 찡그리고 왕절름발이를 찍어보며 물었다. ―그날 나에게 한 말이 롱담인가요? 아니면 진담인가요? 하지만 엽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괜한것을 물었다고 후회했다. 사실 건조실을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엽아는 근본 이 문제를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왕절름발이를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왕절름발이가 두눈을 껌쩍거리며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무슨 말을 그러니? 엽아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철렁하고 떨어지는듯싶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실망 비슷한것이 밀려왔다. 엽아는 약간 골이 난 기색으로 말했다. ―그날 나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간다고 했던 말. 왕절름발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문제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거지. 엽아가 다시 그루를 박았다. ―똑똑히 말하세요. 롱담이 아니죠? 왕절름발이가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너에겐 이 오빠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니? 엽아는 대충 왕절름발이의 진심을 안것 같아서 그곳을 떠날 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다. 엽아가 막 몸을 돌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담배밭에 있는것이 보였다. 소만이는 허수아비처럼 한곳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엽아는 소만이가 진작 자기를 보고있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엽아는 속에 모래가 가득 차있는듯 쓰리고 무거워났다. 하지만 잠간 시간이 지나자 엽아는 일종의 말 못할 쾌감을 느꼈다. 엽아는 소만이에게 보복하고싶었다. 그때에 와서야 엽아는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고있었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소만아, 소만. 너 참  그 개눈깔이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구나. 너 그래 내가 무엇때문에 선근이네 집에 와서 삯일을 하는지 정말 모른단말이냐? 그래 너는 내가 선근이가 주는 하루에 십여원되는 돈을 보고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느냐? 그날 장마당에서 나는 너를 오래동안 지켜보았는데 너는 정말 아무 느낌도 없었단말이냐? 너 참, 못난이로구나. 그래 내가 처녀의 몸으로 먼저 너에게 청혼해야 한단말이냐? 엽아는 자기가 진작 소만이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소만이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승인했다. 그것은 요 며칠사이에 일어난 감정이 아니였다. 엽아는 또 소만이도 은근히 자기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소만이는 시종 주동적으로 자기에게 그 감정을 털어놓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구차한 자기네 집살림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을 채우기 힘든 함정이라고 일러왔다. 소만이네 부모는 장기환자였다. 하기에 소만이네 집에서는 일년 사계절 중약을 달이는 냄새가 풍겼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에 시집 오는 녀자는 정말 눈이 멀었을것이라고들 말했다. 하기에 소만이는 평생 장가를 들수 없을것이라고 했다. 소만아, 맞지? 너 구차한 가정살림때문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것이지? 참, 이렇게 안타까울변이라구야. 네가 입만 벌리면 나는 너의 가정이 얼마나 구차해도 다 받아들일수 있는데. 나의 힘까지 합한다면 너 혼자 가정을 떠메고 나가기보다 쉬울텐데… 엽아는 자기의 마음을 소만이에게 보여주고싶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렇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로처녀라고는 하지만 필경 그에게는 처녀의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그래, 소만아. 내가 이렇게 너의 말을 기다리고있는데 너는  그것마저도 들어주지 못하는거니? 엽아는 소만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선근이 녀편네가 멀리서 엽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엽아야, 왜 그냥 가버리는거니? 엽아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건조실마당에서 흥얼거리는 왕절름발이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선근이 녀편네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선근이 녀편네는 자기의 근심을 선근이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선근이는 두손으로 열심히 녀편네의 젖꼭지를 주무르고있었다. 녀편네의 말에 선근이는 깜짝 놀라면서 손길을 멈추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속히운다구? 말두 안되는 소리. 녀편네가 급히 선근이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소리는 왜 질러요? 의심스럽단말이예요. 엽아가 요 며칠 우리 집에 오지 않다가 오늘 직접 왕절름발이를 찾아가 뭐라고 정색해서 지껄였어요. 그리구는 인차 돌아갔어요. 선근이는 여전히 못믿겠다는듯 말했다. ―그럴수 없소. 만약 그게 소만이라면 믿겠지만. 그들은 누가 봐도 배필이라니까.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안돼. 말라빠진 곶감같이 생겨가지구는. 녀편네가 말을 받았다. ―그 나그네를 그저 쉽게 봐서는 안돼요. 녀자를 꼬시는 수단이 보통이 아니라구요. 당신보다 열배는 나을걸요. 그 말에 선근이가 발딱 일어나앉았다. ―그 늙어빠진 개뼈다귀 같은것이 당신에게 직접거렸어? 단칼에 푹 찔러버릴가? 녀편네는 급히 몸을 돌리며 유들유들한 등짝을 선근이에게 돌리고 두덜거렸다. ―당신, 그래 녀편네도 못 믿는거예요? 선근이는 그 말에 대답도 않고 분해서 두덜거렸다. ―령감탱이, 감히 내 녀편네에게 집적거려? 내 녀편네가 아니라 엽아에게 집적거려도 가만놔두지 않을거다. 그 말에 선근이 녀편네가 머리를 돌리고 깐죽거렸다. ―세상에, 당신도 그래 엽아를 마음에 두고있었어요? 그 말에 선근이는 갑자기 녀편네의 엉뎅이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녀편네, 담이 바깥으로 나왔나? 좀 사람소리를 하지 그래. 정말 당신 말대루 엽아가 그 령감태기에게 속히운다면 내가 어떻게 엽아네 부모들 얼굴을 본단말이요? 엽아는 우리 집 일을 거들어주러 왔단말이요. 정말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안기는 날이면 우리도 묘령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단말이요. 선근이 녀편네도 그 말이 옳다는듯 “그럼요.” 하고 동을 달았다. 그후 이틀간 엽아는 선근이네 집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그제야 선근이와 녀편네는 약간 시름을 놓는 눈치였다. 어쩌면 자기들이 괜히 놀랐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리고 엽아의 일보다는 처음으로 건조실에 넣은 담배가 색갈이 어떻게 나올지 더 근심되였다. 선근이나 그 녀편네는 사실 왕절름발이가 담배건조에서 솜씨가 좋다는것을 소문으로만 들었을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닷새째되는 날 밤에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내게 되였다. 건조를 마친 담배는 보통 아침이나 밤에 꺼내는것이 상례였다. 금방 건조실에서 꺼낸 담배는 바짝 말라서 조금만 어디에 부딪쳐도 부서졌다. 하기에 담배를 꺼낼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했고 인차 누기를 주어야 했다. 엽아는 저녁밥을 먹은후 건조실로 왔다. 왕절름발이, 선근이, 선근이 녀편네, 엽아, 소만 모두가 건조실문앞에 서서 중요한 시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선근이가 손에 열쇠를 들고 왕절름발이에게 물었다. ―문을 열가? 왕절름발이가 대답하지 않고 눈을 쪼프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모양을 지켜보며 엽아는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웃지 않고 정색해있다가 드디여 소리쳤다. ―시간이 됐소. 열쇠를 든 선근이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건조실을 가득채운 황금엽을 진짜 황금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하기에 선근이는 이 황연기지를 일떠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시간만 나면 밭을 고르고 집을 짓는 일을 했다. 다년간 모아두었던 돈도 다 이 일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모자라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서 대부금도 맡았다. 만약 황연재배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선근이의 노력과 쏟아 부은 돈은 바다에 돌 던진격으로 될것이였다. 문이 열렸다. 선근이는 감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감히 안에 들어서지 못했다. 먼저 환성을 지른이는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애들처럼 껑충껑충 모두뜀을 했다. ―보라구, 어떤가? 선근이, 엽아야. 인젠 내 솜씨를 승인하겠지? 탄복하지? 선근이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등신 같은것이, 솜씨 하나는 괜찮네. 건조실을 가득 채운 담배는 “황금엽”이라는 이름처럼 노오랗게 색갈이 좋았다.   문을 열어젖혔는데도 건조실안의 온도는 매우 높았다. 잠간후 왕절름발이가 소리쳤다. ―빨리 담배를 꺼내야 하오. 왕절름발이가 먼저 웃옷을 벗어내치고 웃통을 들어낸채 건조실안으로 들어갔다. 갈비뼈가 아룽아룽한 왕절름발이의 앞모습이 엽아의 눈앞으로 쓱 스쳐갔다. 소만이가 두번째로 건조실에 들어갔다. 엽아는 놓칠세라 소만이를  바라보았다. 소만이가 두다리를 쩍 벌리고 두개의 란간우에 올라섰을 때 엽아는 소만이의 종아리에 불뚝 일어선 단단한 근육을 보았다. 색갈이 좋은 담배들이 한장대 또 한장대 밖으로 들려나와 땅우에 곱게 누웠다. 선근이는 차츰 시름을 놓고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다. 선근이는 종래로 이처럼 색갈이 좋은 담배를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엽아는 크게 들숨을 쉬며 한번 또 한번 담배냄새를 맡았다. 코구멍을 자극하는 그 싱그러운 냄새는 엽아로 하여금 또다시 온몸이 둥둥 뜨는듯한 흥분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진정으로 좋은 담배에서만 나는 냄새였다. 구수하면서도 맵싸한 담배냄새는 청신한 느낌까지 더했다. 왕절름발이와 소만이는 몇번이나 건조실을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한번씩 건조실에서 나올 때마다 그들의 온몸은 땀으로 하여 물참봉이 되였으며 머리카락은 이마에 찰싹 들어붙었다. 엽아는 왕절름발이와 소만이의 몸뚱이를 번갈아보았다. 소만이의 몸은 근육으로 단단하게 굳어져있었지만 왕절름발이의 몸은 근육 한점 없이 축 처져있었다. 엽아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실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속으로 자신을 미쳤다고 욕했다. 머저리, 천치라고 어이없어했다. 어쩌면 내가 그런 아둔한 생각을 할수 있었단말인가? 소만이가 다시 건조실에서 나왔을 때 엽아는 소만이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소만이는 수건을 받아 온몸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건조실을 꽉 채웠던 노오란 담배는 한참만에야 마당에 모두 옮겨졌다. 밝은 전등불아래에 촘촘히 가려진 담배는 마치 마당을 가득 메운 황금바다 같았다. 선근이는 자못 흥분된 기색으로 녀편네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팍한 엉뎅이를 삐뚤거리며 급히 폭죽을 가지러 갔다. 선근이는 인차 폭죽을 걸 참대가지를 주어왔다. 소만이가 참대가지에 폭죽을 걸고 불을 달았다. 폭죽소리는 산꼭대기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소만이는 귀를 틀어막고 탁탁 터져나가는 폭죽을 바라보았다. 소만이 역시 성공의 희열에 푹 젖어있는듯싶었다. 마지막 하나의 폭죽까지 다 터지자 소만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엽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어렸던 웃음이 차츰 굳어지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분명 왕절름발이와 나란히 서있는 엽아를 보았다. 소만이는 왕절름발이가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이는것을 보고있었다. 엽아도 담배에 불을 붙여 빨고있었다. 엽아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대에서 빨간 불빛이 반짝였다. 전등빛에 보이는 엽아의 모습은 무엇엔가 푹 빠져있는듯싶었다. 선근이며 그의 녀편네며 왕절름발이며는 엽아의 그 모습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오직 소만이와 엽아만이 밤하늘아래에서 전등불빛을 빌어 서로를 바라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소만이의 눈길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엽아는 진작 은은히 풍겨오는 담배냄새에 취해있었다. 엽아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발끝이 둥둥 뜨는듯한 기분을 느끼고있었다. 소만이를 바라보는 엽아의 심정은 여간만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끝내 소만이로부터 관심을 끌어냈다는데서 오는 흥분 그리고 끝내 소만이에게 보복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있었다. 그래, 소만아. 멋져. 나한테로 와. 네가 만약 이 시각 나를 끌어안을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밤 통쾌하게 너를 따라갈것이다. 너와 나만 향수할수 있는 그 행복을 만끽할것이다. 소만이가 천천히 엽아의 쪽으로 다가왔다. 엽아의 얼굴에 어렸던 미소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엽아는 그때에야 소만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그 불꽃을 보았다. 엽아는 그 불꽃이 분노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어린 절망과 막무가내의 빛도 보아냈다. 엽아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이제 곧 무슨 일이 발생할것을 느낀듯싶었다. 엽아의 앞에 다달은 소만이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엽아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대를 나꿔채 던지고는 죽어라고 짓밟았다. 엽아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소만이, 너 뭘 하는거야? 소만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는 수도가에 다가가 찬물 한소래를 받아 들었다. 소만이는 며칠전에 엽아가 보았던 그 모습대로 찬물을 머리로부터 쭉 내리부었다.     5   어쩌면 그날 밤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나게 되여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상은 선근이가 즉흥적으로 벌린것이였다. 사실말이지 술상을 벌려놓고서야 선근이는 무언가 후회되였다. 그날 밤 술을 마시면 누군가에게 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술상에 모여 앉은 다섯 사람 모두 그날 밤 자기의 속궁리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선근이와 그의 녀편네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들은 한 건조실 가득채웠던 황금엽을 성공적으로 말려냈던것이다. 엽아가 주동적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나섰다. 엽아는 무서움도 없이 꿀떡꿀떡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이미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는 엽아는 어쩌면 자기가 도대체 얼마만한 술을 마실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려고 작정한것 같았다. 차츰 술자리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여전히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앉아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근본 술을 마실줄 몰랐다. 몇방울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나고 손발이 허공에서 놀았다. 왕절름발이는 평소 술을 잘 마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역시 인차 나동그라졌다. 선근이, 소만이 그리고 엽아가 마지막까지 술상앞에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근이도 너부러지고 소만이와 엽아만 술상에 남았다. 술에 만취한 엽아는 어렴풋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간신히 일어나서 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도 일어나 말 없이 엽아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노오란 담배들이 잠들어있는 마당을 지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엽아는 여전히 자기의 머리가 맑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때 엽아의 머리는 놀랍게도 맑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천천히 자기의 뒤를 따라온다는것을 직감했다. 엽아는 그만 돌멩이에 걸려 밑둥 끊어진 나무처럼 앞으로  쿵- 하고 넘어졌다. 그 소리와 함께 은근히 뒤를 따르던 소만이가 뛰여와 엽아의 곁에 허리를 굽혔다. 소만이가 손을 내밀어 엽아를 부축하려고 할 때 엽아가 별안간 소만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소만이는 그 맵시로 엽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엽아는 끝내 소만이를 안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소만아, 이 곰탱이 같은것아. 너 나를 기를 채워 죽일 생각이지? 소만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만이는 마치 침대우에 누운듯 편했다. 엽아가 말했다. ―내가 왜 만나는 남자마다 퇴자를 놓았는지 너 알어? 바로 네놈이 와서 청혼하기를 기다린거다. 헌데 넌 왜 여직 안왔던거야? 똑똑히 알아둬. 내가 뭐 네가 아니면 시집을 못 갈줄 알아? 네가 계속 나를 기 채우면 아무 남자나 만나 도망갈거다. 너 내 말을 믿니?  엽아는 소만이의 두팔이 자기의 몸뚱이에 힘을 실어옴을 느꼈다. 소만이가 엽아를 힘껏 끌어들이고있었다. 그제야 엽아는 소만이가 자기의 입술을 찾는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엽아는 주동적으로 자기의 입술을 소만이의 입술에 가져갔다. 소만이의 입술이 엽아의 입술우에 포개졌다. 엽아는 자기의 입술이 끝내 행복의 대안에 닿았다고 생각했다. 소만이가 입을 열었다. ―누가 너에게 집적거리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머리가 진정 맑아서야 엽아는 그날 소만이에게 “누가 감히 나에게 집적거려? 너를 내놓고.” 하고 한마디 안심을 시킬것을 그랬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날, 엽아는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여서 소만이의 감수에 대해 크게 중시를 돌리지 못했다. 엽아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소만아, 너 그래 누구도 나를 집적거리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니? 닷새전에 왕절름발이가 나를 보고 같이 북경유람을 가자고 했거든. 엽아는 벌써 그 말을 그렇게 롱담으로 할수 있었다. 엽아는 세상일이란 이렇게 우스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래, 하늘이 얼마나 높은줄도 모르는 물건짝 같으니라구. 북경유람이 아니라 세계유람을 시켜준다 해봐라. 네까짓것을  소만이와 비길수 있는가? 하지만 그때 엽아는 소만이의 기분이 가라앉는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소만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소만아, 웬 일이니? 소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더니 갑자기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엽아는 저도 몰래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엽아는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벌떡 일어나서 소만이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쫓아갔다. 아차, 엽아는 또 한번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넘어졌다. 엽아는 엎어진 그 맵시로 왕왕 소리내여 통곡했다. 소만이를 내놓고는 누구도 그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정확히 해석할수 없을것이다. 그날 밤, 경찰들이 와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들이 술에서 깨여난후 한 사람 한 사람 심문했다. 경찰이 먼저 선근이에게 물었다. ―소만이가 벙어리요? 선근이가 대답했다. ―아닌데요. 절대 벙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하기 싫어했습니다. 경찰은 사건의 경과를 상세하게 물었다. 하지만 선근이도 사건의 시말을 상세하게 말할수 없었다. ―무슨 감투끈인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날 나는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냈거든요. 당신들도 보고있지 않습니까? 왕씨가 불을 보았습니다. 담배색갈이 참 좋지요. 나는 기뻐서 그날 밤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경축하려 했지요.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줄이야. 경찰이 또 물었다. ―그들 둘이 싸움한다는것을 당신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소? ―나는 그저 귀신이 곡하는듯한 소리만 들었을뿐입니다.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일어나려고 해도 다리가 떨려 도무지 일어날수 없었지요. 간신히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니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소만이가 한쪽에 서있었구요. 그도 못박힌듯했습니다. 손에는 괭이자루를 꽉 잡고서 말입니다. 괭이자루는 대추나무로 만든것이였습니다. 대단히 든든한것이죠. 며칠전에 내가 시장에 가서 사온것입니다.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선근이 녀편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더랬어요. 하지만 나는 워낙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요. 나는 하늘을 째는듯한 소리에 놀라 와들와들 떨었어요. 먼저 우리 나그네를 흔들어 깨웠어요. 우리 나그네는 술에 취했는지라 죽은 돼지처럼 동정이 없었습니다. 나는 감히 혼자서는 밖으로 나갈수 없었지요. 그때 밖이 아주 어두웠으니까요. 나는 우리 나그네의 몸뚱이를 발로 차서 겨우 깨웠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나그네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여들어와 소리쳤습니다. 큰일 났소. 소만이가 왕씨를 때려죽인것 같소. 엽아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내가 입이 싼 탓이예요. 정말이지 나는 지금 나의 입을 찢어버리고싶어요. 그때 나는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근본 일어날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괴성이 들려온거예요. 나는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더구나 일어설수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이를 옥물고 간신히 일어났죠. 하지만 몇걸음 걷지 못하고 또 쓰러졌어요. 한참후 또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몇걸음 옮기지 못하고 넘어졌어요. 나는 그렇게 무진 애를 써서야 마당에 들어섰어요. 소만이가 마당에 앉아있었어요. 몽둥이는 소만이의 옆에 놓여져있었구요.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있었어요.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았어요. 선근이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느라 헤맸어요. 선근이는 끝내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어요. 왕절름발이도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나는 그때 금방 자리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허궁 들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나는 누가 나와 롱질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소만이였지요. 소만이는 워낙 말하기 싫어합니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워낙 무서운데가 있지요. 소만이는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나도 그게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술에 녹초가 되여있었거든요. 나는 거기에 누워 또 잠이 들었습니다. 어슴프레 기억나는것은 소만이가 몽둥이를 휘둘렀다는것뿐입니다. 아마 나의 다리를 향해 내리친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 나의 다리가 끊어져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절름발이가 되는거지요. 나는 너무 무서워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진짜 몽둥이가 어디엔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소리로 보아서는 몽둥이가 끊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픔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나는 후에 또다시 잠에 곯아떨어졌으니까요…   종리화(宗利华): 1971년 출생. 로신문학원 제13기 청년작가고급연수반 수료. 중국작가협회 회원. 150만자의 소설을 발표. 여러편의 작품이 《소설선간》, 《문화발취》 등 잡지에 수록되고 영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됨.                                  
525    행복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 댓글:  조회:2393  추천:0  2013-04-25
행복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 마중하지 못할가봐 나는 늘 집을 지키고있다.  
524    봄아 봄아 댓글:  조회:2668  추천:1  2013-04-21
봄아 봄아  어디까지 왔니 온다는 기별 받고  네 마중 나간게 몇번이던지... 오늘일가 래일일가 앙상한 나무가지 바라보면서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있단다
523    살다보면 댓글:  조회:2449  추천:0  2013-04-20
살다 보면 바람 부는 날도 있겠지요. 천둥 치는 날도 있겠지요. 더러는 길 가다 미친개한테 장딴지를 물리기도 하겠지요. 생로병사 희로애락 전들 골라 먹을 수야 있나요. 개가 사람인 척, 사람이 개인 척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글밭이나 열심히 갈겠습니다. -이외수
522    행복의 조건 댓글:  조회:2548  추천:0  2013-04-12
따져보면 행복이란 참 간단하다. 사랑하는것이 있고 할수 있는 일이 있고 자기만의 기대가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수 있다.  내가  사랑 받아야만 행복한것이 아니다. 내가 다가가 사랑할수 있는 사람, 사랑할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것도 똑같이 행복한 일이다. 할수 있는 일이 있어서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보낼수 있다면 행복하다. 그 일이 크던 작던 중요한것이 아니다. 오직 하고싶은 일이면 된다. 기대는 사람을 흥분시킨다.  기대가 있어야만  생활은 희망이 있고 자비감을 느끼지 않을수 있으며 래일을 기다리게 되고 두팔을 벌려 미래를 포옹할수 있다.
521    소설의 묘미 댓글:  조회:2928  추천:0  2013-04-06
                                      단편소설 "유희인생"을 완성했다. 기분이 참 좋다. 소설이란 시작될 때 벌써 결말이 정해져있는가보다. 구상을 할 때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게 되지만 정작 집필을 할라치면 어느 정도에서 필이 딱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억지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피루노라면 처지는것 같은 느낌이다. 그럴 때 필을 놓고 처음부터 읽어내려가노라면 무릎을 툭 치게 된다. 이야기가 이미 끝나버렸다는것을 알게 되기때문이다. 그 결말을 기본으로 앞의 부분들을 살랑살랑 손질하면 완정한 소설이 탄생하게 되는것이다.   차츰 소설의 묘미가 보여지는듯해서 기분이 좋다.  
520    청명이 두개? 댓글:  조회:3269  추천:1  2013-04-04
이상하다. 중국의 달력과 한국의 달력이 다르다고 한다. 중국의 달력에는 분명 오늘이 청명인데 한국의 달력에는 래일이 청명이라고 한다. 아침 7시 30분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로 떠났다가  점심 11시 반에 돌아왔다. 금방 문을 떼고 집에 들어섰는데 한국에 계시는 큰형이 전화를 걸어와서 래일 산소에 갈 준비는  됐느냐고 물으셨다. 이상하다 생각하고있는데 한국에 있는 안해마저 전화를 걸어와서 오후에는  산소에 갈 준비를 하라고 걱정한다. 그제야 형님의 말씀이 우연이 아니였구나 생각했다.  청명이 다르다니?   이상하다.  청명은 중국이 먼저 시작되고 한국이 따르는것인가? ㅋㅋㅋㅋ~    역빠른 귀신은 오늘 중국에서 제사술을 마시고 래일 한국에 가서 또 제사술을 마셔도 되겠다.  암~ 귀신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
519    중편소설 * 탈 댓글:  조회:2257  추천:0  2013-04-03
중편소설     탈   최동일     1   탈을 쓰고있었다. 하얀 바탕에 관골에다 빨간 칠을 진하게 한 탈밑으로 가늘고 긴 목이 흘러 내렸고 그 목이 다하는 곳으로부터 하얀 피부의 녀체가 무연하게 펼쳐졌다. 젖무덤이 풍만하다는 생각이 마지막이였다. 그 생각을 이어 하늘이 노랗게 번져가면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고 속에서는 꾸역꾸역 열물이 치솟았다. 정우는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명치끝을 꼭 누르고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들어가 변기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달려올 때는 내장이 그대로 쏟아질것 같았지만 던져지는 걸레처럼 변기에 머리를 틀어박고보니 그렇다할 내용물이 나오는것도 아니였다. 꽥꽥 연신 헛구역질만 터질뿐이였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상체를 지탱한채 두손으로 변기의 변두리를 잡고는 힘껏 머리를 숙이면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무엇이라도 토해보려고 바득바득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요란한 소리만 날뿐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뜻 일어설수도 없었다. 일어나려고 머리를 쳐들면 다시 속이 들볶였다. 정우는 변기에 머리를 박은채로 두눈을 꼭 감았다. 토닥토닥… 심장 뛰는 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싶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거나 아닐가?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이런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내장이 파도를 칠 때 같아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것만 같았었다. 진정하자, 잠간 진정하고 일어나자. 후―후― 정우는 변기에 머리를 박은채로 길게 숨을 내뿜었다. 그 바람에 역한 냄새가 직접 코속으로 날아들었다. 신듯하면서도 매운 맛이 섞인듯한 그 냄새는 사정없이 페부를 파고들더니 문뜩 정우로 하여금 비릿한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꺽! 정우는 불시로 딸꾹질을 시작했다. 꺽꺽 딸꾹질이 올라올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가슴을 뻑뻑 긁었다. 정우는 가까스로 쳐든 머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떨리는 왼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간신히 화장실을 나가 세면대에 다가섰다. 꺽꺽! 딸꾹질은 아까 파도를 치던 내장들보다 더 힘들게 잘근잘근 정우를 씹어주려는듯 무시로 가슴을 톺으며 올라왔다. 정우는 길게 들숨을 쉬였다가 그대로 뚝 호흡을 멈춰버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몇초가 지나면 딸꾹질이 멈출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각엔 막힌 호흡때문에 가슴이 금시 뻥 하고 터질것 같은데도 멈추어주지 않았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아갔다. 정우는 두손으로 세면대를 짚고서서 다시 두눈을 꼭 감았다. 꺽꺽꺽… 끝없이 올라오는 딱꾹질을 두고 정우는 스스로가 그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참 하얬어. 백설같이 하얬단 말이야. 누구의 발길 한번 닿지 않은 백설 같았지. 련속 터지는 딱꾹질로 하여 몽롱한 머리속에서 문뜩 하얀 물체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있었다. 그 힘든 상황에서 “백설같은 그 모습”이 떠오른다는게 이상했다. 그래, 너무 하얘서 선뜻 다치기조차 두려웠었지. 하얬다구, 너무 하얬다구… ―너무하얘요. 백지장 같아요. 하얀게 탈이였어. 하얀데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줄로 알았었지. ―아저씨, 불편하세요? 병원 가보세요. 떨고있어요, 아저씨. ―뭐? 백설로 뒤덮인 하얀 계곡에서 들려오는듯한 그 조용한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정우는 간신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이 참 희다고 생각되였다. 그가 다가오고있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를 내놓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누구던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였다. 정우는 세면대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려 그 얼굴을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떨려 뜻대로 몸이 돌아서주지 않았다. 정우는 몸을 흠칫하면서 왼손을 뒤로 하여 다시 세면대를 짚었다. 그가 급히 손을 내밀어 비틀하는 정우의 어깨를 잡았다. ―조심하세요. 몹시 편찮은것 같은데 병원 가야죠. ―괜괜, 괜찮아요. 속이… ―속이 불편해서 딸꾹질이 나는거예요? 딸꾹질, 그게 진짜 힘든건데. 그가 정우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하얀 얼굴에서 빛나는 이가 눈부셨다. ―아니, 그런건 아니구, 종종 도지는 버릇이라서… ―그렇구나. “너무 하얘요. 백지장 같아요.” 하던 무거운 목소리가 아니라 한결 산뜻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로 그는 “아저씨, 딸꾹질하는 버릇이 있구나.” 하면서 또 한번 빙긋이 웃음을 피워 올렸다. 정우는 그 소리에 애써 얼굴을 펴면서 “아니…” 하고 한마디 던지고는 조심조심 목소리를 고르며 아래 말을 이었다. ―딸꾹질 하는 버릇이 아니구… ―그럼? 왜 이렇게 힘들어 하시죠? ―그게…그게… 정우는 뭐라고 해석을 하려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우의 얼굴을 잠간 바라보던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놀랬잖아요? 방금은. 아, 아저씨 얼굴색이 그새 약간 피였어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얼굴색이 이렇게 빨리 변한다는게. 아저씨, 우리 저쪽 걸상에 가서 잠간 앉아요. 그가 정우의 팔을 부축하면서 말했다. ―좋겠네, 그게. 정우는 그에게 팔을 내준채 로비에 걸어 나와 걸상을 찾아 앉았다. 정적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의 숨소리가 고르롭게 정우의 귀전을 파고 들었다. 그 숨소리를 누르며 아까 보다 훨씬 뜸을 들여 딸꾹질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그는 머리를 돌려 정우를 훔쳐보았다. 정우도 그에게 눈길을 돌리다가 공중에서 그의 눈길과 부딪쳤다. 정우가 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먼저 “그림…”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림 구경 왔댔어요? 정우가 그 뜻을 넘겨 짚으며 앞질러 물었다. ―네, 김교수의 그림이 전시됐다기에. ―김교수의 그림을 좋아해요? 정우가 그의 말꼬리를 물고 다잡아 물었다. ―아니요. 그가 살래살래 머리를 젓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김교수의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라 김교수라는분이 그리워서요. ―네? 김교수와 잘 아는 사인가요? ―그런것은 아니구요. ―그렇다면? 정우는 뒤말을 줄이며 그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그가 얼굴을 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김교수를 떠올리면 저도 행복해져요. 김교수는 행복하던 저의 한 순간을 직접 보신분이거든요. 인젠 모두 추억으로 되였지만… ―네? 정우는 웬 일이냐는듯 힘 없는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그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그가 그 눈길을 피하며 물었다. ―이상하죠? ―뭐가? ―아저씨의 눈에 이 사람 참 이상하구나 하고 씌여져있는데요. ―아닐텐데. 내 눈에는 지금 힘들어, 너무 힘들어 하구 쓰여져있을텐데. 정우가 애써 목소리를 띄우면서 한마디 했다. ―그런것 같아요. 힘들어하는 모습이 얼굴에 력력하거든요. 하지만 궁금증도 똑똑히 보이구요. ―참, 재밌는 친구네.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때 저의 꿈이 화가로 되는것이였어요. 그의 목소리에 흥분이 실리고있었다. 정우는 삽시에 변하는 그의 얼굴을 지켜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랬었구나. 그럼 지금은 미대 학생? 몇살이지? ―스물 두살. 하지만 학생은 아닌데요. ―어, 뜻밖인데. 정우가 놀랍다는듯 두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 ―미술을 무척 좋아 하는것 같은데… ―좋아했죠, 학교때. 미술써클에 다녔었거든요. ―그랬었구나. ―김교수가 그때 우리 학교에 와서 미술써클조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적이 있었어요. 그때 김교수는 저의 우상이였어요.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김교수가 미술전을 열었다는 기사를 본거예요. 그래서 오늘… 헌데 일부 그림은 맘에 안들어요. 그가 분명하게 자기의 의사를 밝혔다. 그 당당함에 또 한번깜짝 놀라면서 정우가 다잡아 물었다. ―어느 작품이 맘에 안들었죠? ―얼굴에 탈을 쓴 라체화요. ―왜죠? ―자기의 라체마저 보여줄수 있는 녀자에게 탈을 씌워준 화가의 저의는 무엇이였을가요? ―네? 화가의 저의요? 정우가 “저의”라는 두글자에 악센트를 주었다. ―그래요, 화가는 입으로 라체를 신성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라체에 대하여 말 못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있는거예요. ―어떤 뜻이죠? ―탈은 남에게 보여줄수 없는 치부를 감추고싶을 때 쓰는거 아닌가요? ―아! 정우는 그의 말에 뭐라고 확실하게 대답을 줄수 없어 입만 쩝쩝 다시다가 화제를 돌렸다. ―근데 왜? 그냥 미술공부를 하지. ―아, 그게… 그게… 됐어요. 아저씨. 설마 진짜 대답을 듣고싶은건 아니죠? ―아, 그래. 그렇지 뭐. 정우는 순간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나 않았나 하고 후회하면서 그의 눈길을 피했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또 다시 그의 숨소리가 고르롭게 귀전을 스쳤다. 그새 정우의 딸꾹질은 어디로 갔는지 가뭇없이 사라졌다. 토닥토닥… 숨소리 외의 그 소리는 심장 뛰는 소리라고 생각되였다. 참 조용하구나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도 따라 일어섰다. ―가시려구요? ―가야지. 점심시간도 훨씬 지난것 같은데. ―아저씨도 화가세요? 그의 눈이 화가라고 대답하세요 하고 말하는듯싶었다.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가를 취재하는 기자?! 오늘 김교수의 미술전을 취재하러 왔다가 그만…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아까 그 버릇이라는게 뭔지 말씀 안했잖아요, 아저씨. ―그게… 그게… 너 설마 진짜 대답을 듣고싶은건 아니지? ―와, 진짜 제대로 먹었네요, 꼴을. 그가 소리치며 두손을 탁 마주치고는 아래말을 이었다. ―종종 만나 수다 좀 떨어요, 우리. 오늘 참 즐거웠어요. 저, 환이예요. ―그래, 나두 즐거웠다. 환!   2   “저 환이예요.”라는 메시지가 들어온것은 이틀후의 아침이였다. 마침 일요일이라 정우는 그때 뭘 하면서 하루를 때울가 하고 생각을 굴리며 두눈을 슴뻑거리고있었다. 환? 아, 그날 그 애구나. 누운채로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하던 정우의 눈앞에 하얀 얼굴을 가진 환의 모습이 스쳐지났다. 정말 하얬어, 그 얼굴이. 사내라는게 계집애들보다 얼굴색이 더 하얬다니까. 이야기도 참 재밌게 했었지. 목소리도 달았구. 근데 그 애가 왜 미술공부를 하지 않았을가? 미술에 참 애착이 있는것 같았는데. 해볕이 눈을 뜨는 삼복철 아침의 아지랑이마냥 환에 대한 궁금증이 정우의 머리속에서 스물거렸다. 알고싶었다. 환이라는 얼굴색이 하얗고 이발이 눈부신 그 애에 대하여 알고싶었다. 그날 “저 환이예요.” 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난 그는 정우에게 핸드폰번호를 알려주었고 그 보답으로 정우가 자기의 핸드폰으로 그 번호를 눌렀던것이다. “환, 반갑다.” 정우는 핸드폰 메시지창을 열고 문자를 찍어 환에게 날려보내면서 어떤 답장이 올가 하는 생각을 굴렸다. 십초쯤 지나서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으로 설치된 핸드폰이 찌릉찌릉 정우의 손바닥을 자극했다. 어! 환이 메시지를 보낼것이라고 생각하고있던 정우는 뜻밖의 통화신호에 깜짝 놀라면서 막을 들여다보았다. 막에는 환의 핸드폰번호가 떠있었다. 정우는 인차 버튼을 누르며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대 댔다. ―아저씨, 놀랐죠? 이른 아침에 전화해서. 핸드폰에서 흐르는 목소리치고는 무척 맑았다. ―아니, 놀라긴. 잠을 깬지 오랜데. 정우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아저씨, 그거 있죠? 한번 우연히 만난것뿐인데 자꾸 눈앞에서 삼삼 거리는 사람. ―어. ―아저씨가 저에게 그런 사람 같아요. ―뭐? 환, 너 참 재밌는 꼬마네. ―아저씨, 방금 절 꼬마라고 했어요? ―그래 꼬마지. 그래 꼬마구 말구.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더 이상 절 꼬마로 못 볼걸요. 환의 목소리가 좀전보다 무게를 담아가고있었다. 그 무게를 느끼며 정우는 그날 “설마 진짜 대답을 듣고싶은건 아니죠?” 하던 환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대답”은 어떤것일가? 괜히 궁금증이 타래쳐오르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무슨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심각해? 22살이면 아직 꼬만거지 뭐. ―듣고싶어요? 그 이야길, 아저씨. ―들려준다면 나쁠거야 없지. 정우는 그가 22살에 나는 상대라것도 잊고 그렇게 자기의 진심을 비쳤다. 핸드폰을 타고 방금전에 비해 무게가 약간 덜어진 해피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좋았어요, 아지씨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견지에서 오늘 제가 무상으로 아저씨께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정말이야? ―아홉시까지 공원으로 오세요. 거기서 만나요, 우리. ―공공, 공원? ―네, 사람들이 춤을 추구 노래하는 그 정자 있는데서 만나요. ―어, 어… 공…공원… ―아저씨, 아홉시예요. 잊지 마세요.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정자예요. 그럼 이만. 정우가 일시 확답을 주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데 환이가 얼음에 박 밀듯 자기의 뜻을 밀어보내고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눈길을 벽시계에 돌려보니 시침이 일곱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아홉시? 공원? 춤을 추고 노래하는 정자? 정우는 머리속으로 환이가 던져준 낱말들을 되풀이 하면서 두시간후에 펼쳐질 화면들을 그려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것일가? 티없이 맑아보이는 애 한테 무슨 이야기가 있다는걸가? 왜 그 이야기가 무겁다고 생각되는걸가? 정우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면실로 들어가며 나름대로 생각을 굴렸다. 공원의 아홉시는 일찍한 시간이 아니였다. 공원은 벌써 사람들로 복새통을 이루고있었다. 오던 걸음으로 무작정 정문을 질러 들어간 정우는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공원에 들러본지도 몇달은 되는것 같았다. 지난번 국경절휴가때 친구들에게 끌려 와서 맥주를 마신게 마지막이니 정확히 일곱달만이였다. 그새 크게 변한데는 없었지만 사진가게에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세운 배경들이 눈길을 끌었고 길옆 놀이감가게의 문가에 동동 매달려있는 알록달록한 고무풍선들이 화사해보였다. 어느쪽이던가, 그 정자가? 공원 어딘가에 늙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정자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딱 어느쪽인지 일시 떠오르지 않았다. 정우는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주변을 두리벙거렸다. 련못을 지나 서쪽으로 50메터쯤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정자가 있은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맞아 바로 거기야. 정우는 확신하면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홉시가 다 되여오고있었다. 정우는 머리속으로 지도를 그리면서 정자를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련못을 지나 굽이를 돌자 정자가 보였다. 맞아, 바로 저곳이야. 정우가 자기의 판단에 머리를 끄덕이고있을 때 찌르릉 핸드폰이 진동했다. 정우는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집어냈다. 환이였다. ―아저씨, 어디예요? 저 이미 도착했어요. 곁이 복잡해서 그랬던지 환의 목소리가 약간 높았다. ―그래? 나도 지금 정자를 올려다보고있거든. 5분후에 아니 3분후에 만나. 정우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무가지에 앉은 새는 쌍을 이루고 록수청산은 웃음을 머금었네 오늘부터 고역에서 벗어나 부부 쌍쌍 집으로 돌아가네   큰 목단꽃을 앞뒤로 수놓은 치포를 차려입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늙은 녀자가 목소리를 한껏 올리 틀면서 악청을 뽑고 그 곁으로 꽹과리며 아쟁을 손에 든 늙은 남자들이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썽이고있었다. 노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어쩔줄을 모르고있었지만 정우는 그들이 무엇을 그렇게 흥겨워 하는지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여기야, 자식. 설마 이런 놀음을 좋아하는건 아니겠지? 정우는 야릇한 생각을 굴리면서 둘러선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어쩌면 누런 이를 들어내고 히쭉히쭉 웃어주는 그 늙은이들속에서 환의 하얀 이가 반짝일것 같아서였다. 한참이나 둘러보아도 환은 보이지 않았다. 조급증이 스멀스멀 기여들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 있다고 했는데? 불과 3, 4분전의 일인데… 정우는 저도 몰래 손목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저씨. 분명 환이의 목소리였다. ―어. 정우는 깜짝 놀라며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없었다. 거무칙칙한 옷들에 어울리지 않게 노오란 T셔츠를 입은 사람이 얼굴에 경극을 할 때 쓰는 뻘건 탈을 쓰고 정우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분명 이쪽에서 난 소리였는데 하면서도 정우는 딱히 누가 불렀는지를 짚어낼수 없었다. 정우는 다시 머리를 돌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지씨, 여기요. 또 그 목소리가 울렸다. 방금과 반대쪽에서였다. 정우는 인차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렸다. 역시 없었다. 정우는 혹시 자기가 환청을 듣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며 머리를 저었다.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똑똑한 목소리였다. 정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 떨어져 살피려고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 정우의 어깨를 덮쳤다. 앗! 정우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본능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뻘건 탈이 눈에 안겨들었다. 그리고 노란색 T셔츠가 눈을 자극했다. ―놀랐죠? 그 소리와 함께 뻘건 탈이 파란 탈로 확 바뀌였다. ―환이니? ―재밌죠? 탈이 내리워지고 하얀 얼굴이 들어났다. 정우는 순간 두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분명 그 어떤 환영에 빠져 너울거리다가 돌아온듯한 기분이였다. ―이게 재밌다구? ―그럼요. 한순간에 확 바뀌는 이 탈이 얼마나 재밌어요. ―확 바뀌는게 재밌다구? ―그럼요. ㅋㅋㅋㅋ… 가요, 아저씨. 우리 저기로 가요. 환은 손에 든 탈로 정자에서 50메터쯤 떨어져있는 곳을 가리키고는 흥겹게 앞에서 걸음을 옮겼다. 좋을 때지, 근심걱정 없이 무엇이나 생각할수 있고 재미있어 할수 있어서… ―아저씨, 전 늘 이런 생각을 해요. 환이가 걸음을 옮기다 말고 머리를 돌렸다. ―무슨 생각? ―사람의 일생도 이 탈처럼 척척 생각대로 바뀔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구요? ―왜 그런 생각을 하니? 너 지금 생활이 마음 안드니? ―생각하기 나름이죠. 환이가 자기곁에 도착한 정우의 얼굴에 갑자기 탈을 쒸워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데? 정우가 얼굴을 가리운 탈을 벗어 환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전 부모들 얼굴이 생각 안나요. ―엉? 정우가 깜짝 놀라며 먹이를 본 금붕어처럼 입을 벌름거렸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로씨야로, 엄마는 내가 일곱살 때 한국으로 갔대요. 그래서 난 삼촌네 집에서 컸어요. 내가 열살 때 아버지는 로씨야에서 세상 떴어요. 장사를 갔다 오다가 깽단을 만나 돈을 털리구 맞아죽었대요. 내가 초중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생활비를 보내주었어요. 그래서 초중을 졸업하고 고중에도 붙었죠. 대학에도 가고싶었어요. 헌데 고중 1학년 후학기부터 엄마에게서 소식이 끊긴거예요. 누군가 그러는데 내 엄마가 남의 녀자가 됐대요. 엄마 얼굴을 못 본지 몇년 돼요. 더 이상 공부를 할 형편이 못 됐죠. 삼촌은 그래도 계속 공부하라고 했지만 그럴수 없었어요. 제 자식 싫다는 엄마도 있는데… 그래도 저를 키워준 삼촌이 얼마나 고마와요. 더 이상 신세를 질수 없었죠. 그래서 사회에 나왔어요. 안마를 배웠어요. 저 중의안마 솜씨 죽여요. ㅋㅋㅋ… 힘들 때 저를 찾아 안마를 받아요, 아저씨. ―너…너… 정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절레절레 머리만 저었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는것 같았다. 그 아픈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그렇게 차분하게 엮어내려가는 환이가 22살의 애숭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아저씨. 인젠 아프지 않아요. 아, 이런 얘기는 안하려고 했는데… 환이는 왼손에 든 탈을 오른손으로 툭 쳤다. 그 바람에 뻘건색이 파란색으로 휙 바뀌였다. 그것을 다시 툭 쳐서 빨건색으로 만들어 놓으며 환이가 말했다. ―안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궁금해 하는것 같아서… 봐요 아저씨. 저기서 지금 그림전람을 하고있어요. 화제를 돌려서야 정우는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들어 환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소나무들 사이에 늘인 가는 쇠줄에 그림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아마츄어들 작품 같았어요. 하지만 괜찮은것도 있어요. 우리 가봐요, 네? 아저씨. 환이가 정우를 끌고 그림앞으로 다가갔다. 수채화도 있었고 수묵화도 있었다. 풍경화도 있었고 초상화도 있었다. 한폭의 그림앞을 지나다가 정우가 뚝 굳어졌다. 다리를 오무리고 비스듬히 누운 녀자의 라체를 그린 그림이였다. 짙은 회색배경때문인지 녀자의 몸체가 하얗게 안겨왔다. 참, 하얗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치는 순간 정우는 “악!” 하고 단말마적으로 비명을 터쳐올렸다. 정우는 저도 모르게 명치끝에 손을 가져가며 입을 앙다물었다. ―아지씨, 웬 일이예요? 불편해요? 환이가 정우를 부축하며 허리를 굽혔다. 억억! 정우는 녀자의 라체화앞에 물 먹은 담처럼 무너져 내리며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3   환의 눈에서 측은한 빛이 흘렀다. 그 빛은 고통때문에 오열하는 정우의 온몸을 실실이 감싸고있었다. 그 빛에 감긴 정우의 몸뚱이가 와들와들 떨리고있었고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둘둘 굴러내렸다. ―아저씨. ―환아. 나, 어디 가서 앉아야겠다. ―네, 아지씨. 저저, 저기 걸상이 있어요. 거거거, 거기 가서 앉아요. 환은 너무도 급해 꺽꺽 말을 더듬으며 허리를 굽혀 정우를 부축하려고 했다. 정우는 왼손을 들어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고는 그대로 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환은 땀이 질퍽하게 묻어난 정우의 왼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정우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정우는 환에게 기대면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괜찮겠어요? 아지씨. 걸을수 있겠어요? ―괜찮아, 천천히 가자. ―네, 아지씨. 조심하세요. 정우는 걸상등받이에 머리를 붙이고 조용히 두눈을 감았다. 눈까풀이 무시로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무시로 떨어대는 그 눈까풀을 바라보다가 환이 입을 열었다. ―힘들죠? 아지씨. ―나아졌다. 숨이 좀 나오네. 정우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숨소리가 고르로와지고있었다. 환은 호―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목소리에 궁긍즘을 담아 한마디 건넸다. ―수수께기예요. ―뭐가? ―아저씨가요. ―내가? ―그런데 알것 같아요. ―뭘? 정우가 환이쪽에 머리를 돌렸다. ―아저씰요. ―나를? 힘 없이 열려있는 정우의 두눈에서 동공이 커지고있었다. 환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 콤플렉스가 있죠? ―콤플렉스라니? ―맞아요. 그래요. 녀자의 라체에 대한 콤플렉스! ―너너, 너 그게 무슨 뜻이니? 정우가 와뜰 놀라 몸을 흠칫 했다. 환이가 잠간 아래입술을 씹다가 긍정적으로 짚어냈다. ―그날 미술관에서두 김교수가 그린 라체화를 보고 증상이 발작한것이였어요. 처음을 내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요. 오늘도 그랬어요. 기분 좋게 올라왔었는데 그 녀자라체화를 보고난후 갑자기 배를 움켜쥐였어요. 우연한 일치일가요? 어떻게 설명할래요? 아저씨는 정답을 알고있죠? 말해보세요. 환은 또박또박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어…어… 정우는 갓 기름을 먹은 사이문처럼 막힘없이 착착 여닫기는 환의 빨간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뭐라고 뒤말을 잇지 못했다. ―녀자의 라체에 어떤 콤플렉스가 있는게 분명해요. 이건 일종의 반사반응과 같은거지요. 바람이 불면 머리칼이 날리는것과 같은 도리죠. 제 말이 틀렸어요? ―어… 그래. 정우는 고통스럽게 두눈을 꽉 감으면서 어금이를 깨물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고있었다. ―털어놓으세요. 무슨 일인데요. 친구는 못 되더라도 믿음직한 조카는 될수 있잖아요? 도움은 못 되더라도 저 들어줄수는 있잖아요? ―그날 내가 먼저 돌아온것을 후회해야 했어. 후회해야 했다니까. 장춘으로 갔던 그번 취재가 예산보다 하루 먼저 끝났었거든.   노랗게 구워진 통닭이였다. 금방 가마에서 꺼내서였던지 등에 기름기가 찰찰 흐르고있었다. 한근에 13원이라고 했다. 눈짐작으로 두근이 좀더 될것 같았다. 그놈을 사고싶었다. 안해가 통닭구이를 그렇게 맛나했던것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살림때문에 먹고싶은것이라고 선뜻 사먹을수 있는 형편도 아니였다. 며칠전, 피곤때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퇴근한 안해가 옷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시장을 지나오는데 튀해서 걸어놓은 통닭이 눈에 뜨이지 않겠어요? 하나같이 하얗게 튀해진게 얼마나 먹음직스럽던지. 그옆에는 노랗게 튀겨진 닭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구요. 정우는 그 말을 하는 안해를 바라보면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다. 얼마나 먹고싶었으면 저럴가? 에잇, 녀편네가 먹고싶어 하는 통닭 한마리도 마음대로 먹게 못하는 이 신세… 정우는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호주머니에는 마침 출장비를 남긴 돈이 30원 푼히 있었다. 그래, 한마리 사다가 깜짝 기쁘게 해주는거야. 차에서 내린후 동료들끼리 식당에서 술까지 마셨는지라 정우는 기분이 붕 떠서 한결 흥분된 상태였다. 정우는 구운 통닭을 한마리 사 들고 집으로 잰걸음을 놓았다. 뜻밖에 집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벌써 자나? 아직 아홉시도 안됐겠는데. 피곤했나봐. 이 더운 날씨에 온 하루 시장에서 익었겠으니. 해볕에 피부가 상하기도 하겠건만 그의 피부는 왜 그렇게 하얄가? 정우는 나름대로 좋은 생각을 굴리며 조용히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꽂았다. 곤히 잠들어 있을 안해를 깨우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대로 들어가 잠든 안해의 하얀 옥체를 바라보는것도 행복할것 같아서였다. 집에 들어서보니 방문이 꼭 닫쳐있었다. 잠든게 아니구 어디로 갔나? 한풀 꺾이는듯한 기분이였다. 정우는 통닭을 담은 비닐봉지를 부엌에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웃방으로 다가가 주저없이 사이문을 당겼다. 순간 침대에서 검은 물체가 벌떡 솟구치는것이 보였다. 악! 정우가 비명을 터쳐올리며 스위치를 당겼다. 너무도 하얬다. 하얘서 눈부시는 몸뚱이가 눈에 안겨들었다. 와들와들 떨어대는 그 몸뚱이옆에서 검실검실한 피부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몸이 떨릴 때마다 그 남자의 후줄근해진 남성이 흔들흔들 춤을 췄다. 정우는 단말마적으로 소리지르며 그 남자에게 덮쳤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남자는 달려드는 정우를 잡아 침대아래에 팽개치고는 부랴부랴 옷을 찾아들고 정지칸으로 뛰여나갔다. 방바닥에 동그라졌던 정우는 악을 쓰고 기여 일어나 정지칸으로 향했다. 그때 안해가 정지칸으로 내려와 정우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우는 안해의 팔에서 다리를 빼려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정우의 다리가 빠지려는 찰나 안해가 정우의 종아리를 꽉 깨물었다. 정우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다리를 뽑은후 그 힘으로 힘껏 안해를 걷어찼다. 안해는 악 소리와 함께 벌러덩 넘어지더니 몸부림을 치며 한바퀴 휙 돌아 물독이 놓여져있는 콩크리트바닥쪽에 가서 쭉 뻐드러지고말았다. 하얬다. 죽은듯이 두팔을 쫙 벌리고있는 안해의 몸뚱이는 불륜의 현장에서 남편에게 채여 실한오리 걸치지 못하고 쓰러져있는 그 순간에도 먼지 한점 묻지 않은듯 그처럼 하얬다. 미칠것만 같았다. 그 하얀 몸뚱이를 꽉꽉 밟아 꺼어먼 발자욱을 팡팡 찍어주고싶었다. 정우는 한달음에 뛰여가 안해를 향해 발길을 날렸다. 하지만 발등은 안해의 몸이 아니라 안해의 옆에 있는 물독에 가 퉁 하고 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와잘랑 소리와 함께 물독이 깨여지면서 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정우의 속에서 뭔가 욱 올리 밀었다. 저녁에 마신 술이며 채 소화되지 않은 안주가 그대로 쏟아져 발등을 적셨다. 안해는 그날밤으로 집을 나갔고 두달후 협의리혼으로 4년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했다. 18년전의 일이였다.   ―텔레비죤을 보고있었어, 그날밤. 그림에 대해 소개하는거야. 라체화였어. 풍만한 몸매를 가진 녀자의 라체화였지. 몸뚱이가 하얬다구. 그 라체화를 보는 순간 어쩔 새도 없이 구역질이 올라왔고 나는 또 어쩔 새도 없이 저녁에 먹은것들을 그대로 토해버린거다. 처음이였지. 그때로부터 나는 녀자의 라체를 상상만 하면 토하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거야. 그리고 가끔 녀자의 라체화를 보기만 하면 진짜 구토가 시작되였구. 정우는 환을 건너다보며 “참, 너하구 별말을 다했구나. 어린애 하구.” 하고는 어쭙게 입을 다셨다. 그러는 정우를 바라보면서 환은 미동도 없었다. 연푸른 화판에 티없이 맑은 하얀 색으로 오롯이 그려놓은듯한 환의 모습은 충격에 굳어진듯싶었다. 정우가 환에게 얼굴을 돌리며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을 이었다. ―인젠 그나마 괜찮아졌다. 이렇게 한번씩 열병을 하고나도 인차 회복할수 있으니까. 전에는 아니였지. 한번씩 겪고나면 적어도 하루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랬지. ―어쩌면 좋아요. 아저씨를 어쩌면 좋아요. 환이 정우의 손을 꼭 쥐고 안타까와 목소리를 떨었다. ―보고싶지 않아, 진심이거든. ―그게, 그게 말이 돼요? 환이 속삭이며 정우쪽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정우의 눈길이 담담했다. 그 시각 그 눈길에는 더 이상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없었다. ―아저씨. 환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환아. 정우는 목소리마저 담담했다. 환이 정우의 앞으로 한뽐 다가앉았다. 환의 얼굴이 정우쪽으로 밀착되여갔다. 환은 천천히 정우의 두볼을 감싸들었다. 환의 빠알간 입술이 정우의 이마에 닿았다…   4   토탁토닥… 정우는 그 시각 분명 높뛰는 환의 심장소리를 듣고있었다. 토탁토닥… 정우는 그 시각 분명 자기의 가슴에서도 무엇인가 높뛰고있다고 느껴졌다. 이마가 달아오르기 사작했다. 이마로부터 온 얼굴이 화끈화끈 뜨거워졌다. 정우는 꼭 감았던 두눈을 천천히 뜨고 자기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쏘는 환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긴장때문인지 환의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환아.  정우의 갈린 목소리가 이사이로 터져나왔다. 환이 감싸안았던 정우의 두볼에서 손을 떼고 이윽토록 정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정우도 몸을 흠칫하면서 자세를 바로 앉아 중얼거렸다. ―어, 덥네. ―아저씨, 쉬다 오세요. 저 먼저 갈게요. 말을 마친 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을 놓았다. 환의 노오란 T셔츠가 정우의 눈에서 멀어지고있었다. 자기의 손을 떠나 저 멀리 하늘가로 날아가는 고무풍선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애들처럼 정우는 하나의 노란 점으로 되여가는 환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고있었다. 화끈거리다 못해 이마가 지지는듯 아파나기까지 했다. 정우는 두손을 쫙 펴들고 고통스럽게 이마를 감싸쥐였다. 머리속에서 천마리의 송충이가 스멀스멀 기여다니는듯 어지럽기 이를데 없었다. 스멀거리는 천마리의 송충이들을 헤집고 하아얀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안해 숙이의 얼굴인듯싶었고 다시보면 환의 얼굴은듯싶기도 했다.   그날밤, 안마를 끝내고 숙이가 정우의 이마에 도톰한 입술을 살며시 가져다 댔을 때 정우는 그닥 밝지 않은 불그스름한 보조조명을 빌어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끝났어요. 편히 쉬세요. 숙이는 밝은 조명을 켠 후 가지고 들어온 물수건과 발을 담궜던 물통을 들고 일어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제야 정우는 화뜰 몸을 떨면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왜왜, 왜 여기에 몸을 담게 되였소? 그렇게 당돌한 물음을 던져버린 정우는 맞선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방귀를 터쳐버린 로총각처럼 몸둘바를 몰라했다. 숙이도 정우의 물음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문쪽을 향해 세걸음째 옮기다가 굳어져서 정우쪽으로 몸을 돌렸다. 숙이의 눈길이 집요하게 정우의 얼굴을 훑고있었다. 정우는 웬지 그 눈길을 정시할 자신이 없었다. 하여 다시 자리에 등을 붙이면서 애써 목소리를 골라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 ―수고했소. ―대학교 다니는 동생이 있어요. 잘 생기고 공부 잘하고 셈이 든 애예요. 그애의 학비를 벌어야 해요. 이 일이 돈이 빨리 벌어져요. 숙이는 그렇게 많은 말을 뱉어냈지만 목소리는 정우의 목소리만치나 담담했다. 그때 정우는 담담하게 그런 말을 더듬어내는 숙이의 왼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다것을 느낄수 있었다. 미세한 그 떨림마저 느낄수 있다는게 신비하리만치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자기가 빗본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숙이에게 눈길을 박았다. 그때 숙이는 다시 나가려고 이미 몸을 돌린 상태였다. 하지만 정우는 여전히 숙이의 왼쪽볼이 파들파들 떨리고있다는 환각이 머리속을 치고들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제야 정우는 그 느낌이 눈으로 가슴으로가 아니라 토닥토닥 높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푸들푸들 떨어대는 이마로부터 느껴지는것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왜 꼭 그녀의 왼쪽볼이라고 믿고싶은지 알수 없었다. 정우는 벌떡 일어나 앉아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 ―그럼 부모님들은? 정우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전에 숙이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정우는 숙이가 사라진 문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벌렁 들어누웠다. 그녀가 왜 내 이마에 키스를 했을가? 아니, 내가 키스라고 생각하지 그녀에게도 그게 키스였을가? 대학교에 간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 몸을 던졌다는 그녀, 어디까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가?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온 혹부리령감처럼 정우는 그날부터 시종 머리속에서 야금야금 자리를 틀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을수 없었다. ―경운기에 옥수수를 싣고 벼랑가를 지나게 되였어요. 아버지가 경운기를 몰았고 엄마는 아버지곁에 앉았었지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에 고장이 생긴거예요. 경운기는 내리막길에서 쏜살같이 달렸고 아버지는 경운기에 제동을 걸려고 허둥거리다가 그만 벼랑에 굴러떨어진거예요. 세상 뜬 아버지어머니를 가슴 아파하기보다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두고 더 가슴 아파했어요. 저는 그해 고중 2학년이였고 동생은 초중 2학년이였어요. 하루새에 고아로 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어요. 생활이 유족하지는 못해도 부모들 품에서 별 고생 못해보고 자랐거든요. 그 힘든 와중에도 동생을 꼭 공부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어요. 저는 단연히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에 나왔어요. 그해 나는 20살, 동생은 16살이였어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숙이를 찾아 다시 그 안마원으로 갔을 때 그녀는 무좀이 번져가는 정우의 발가락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남의 이야기를 하듯 차분하게 엮어내려갔다. 드라마에서의 방백처럼 들려오는 숙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우의 머리속에서는 진짜 한부의 드라마가 펼쳐지고있었다. 친구들이며 동료들이 정우를 두고 “소설을 쓴다”면서 도리머리를 했다. 시골에 사는 누나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꺼이꺼이 곡까지 하면서 죽을둥 살둥 막아나섰다. ―안된다. 이것만은 절대 안된다. 네가 우리 가문에서 어떤 사람인데. 우리 가문의 유일한 대학생이라구. 가문을 떠멜 사람이라구. 그런데 농촌녀자를 데려와? 안된다. 안돼. 절대로 안된다. 그러는 누나의 마음을 모르는것은 아니였지만 정우의 귀에는 더 이상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치 정우는 자기가 숙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자신하고있었다. 정우가 기어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자 친구들은 내 놓고 “이 미친것아, 사랑은 무슨 얼어죽을 사랑이냐? 너 그 녀자의 이쁜 탈에 홀린거지?” 하면서 정곡을 찔러 댔다. 그 말에는 정우도 구구히 변명할수 없었다. 키가 1.65 메터도 되나마나한 정우는 피부마저도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사람 같지 않게 검실검실하고 몸매는 바람이 불면 훅 날아버릴것처럼 갸날팠다. 반면에 숙이는 정우의 키를 초과할만치 늘씬했는데 얼굴색마저 티 한점 묻지 않은듯 밝고 하얬다. 숙이와 나란히 거리를 거닐 때면 정우는 자기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는게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부러운 그 눈길들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능력이 있다고 손가락을 흔들어주는것 같아 그렇게 만족스러울수가 없었다. 지인들의 곱지 않은 눈길속에서 반년 가까이 련애를 한후 그들은 끝내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숙이는 농촌호구를 시내호구로 넘겨 정우의 호적에 올렸다. 그새 서시장에 옷매대도 하나 장만했다. 정우는 숙이와 함께 하는 그 나날들이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숙이도 진심으로 정우를 커하고 아끼는것 같았다. 단지 아이만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이 여유가 있을 때 가지자고 해서 좀 섭섭할뿐이였다. 그렇게 아기자기 4년철을 숙이와 살아온 정우였다. 감쪽같이 숙이에게 속혀 살아온 4년을 돌이켜보면 정우는 악몽을 꾼것 같으면서도 또 그것을 악몽이라고 믿고싶지 않았다. 숙이가 자기의 옷가지들을 꿍져가지고 집을 나가자 부럽게 정우네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이어 이러저러한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숙이와 불륜을 태운 그 남자가 결혼전에 만나던 남자라는 말도 있었고 지난해부터 가게에 드나들다가 눈이 맞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날밤, 불륜의 현장에서 후줄근한 남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부들부들 떨고있던 그 남자를 곰곰히 떠올려보노라니 정우도 그 남자가 자기와는 비교도 안될만치 잘 생기고 건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부터 어떻게 어긋났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의 진정이 어떻게 되여 그처럼 비참하게 찟기고 짓밟혀야 했는지를 가늠할수 없었다. 지어는 숙이가 자기를 사랑한적이나 있었는지마저 의심스러웠다. 그 의심이 시종 정우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었고 그 앙금이 물을 만나 고요하던 정우의 가슴을 휘저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정우는 숙이와 갈라진후 애써 자기를 숨기고 살아왔다. 세상앞에 나서서 춤을 추다가 혹시 누구에게 상처를 다치울가, 다치워 상처에서 진물이 흐릴가 내내 발걸음마저 제겨디디며 살아왔던것이다.   하얬어, 정우는 생각을 굴리면서도 환의 입술이 닿았던 이마가 여전히 화끈거리고있음을 느꼈다. 왼볼이였다니까. 파들파들 떨고있던 숙이의 얼굴이 눈가에 클로즈업되고 또 클로즈업된 그 얼굴이 환의 얼굴로 바뀌여지는 환각이 무시로 덮쳐드는것을 정우로서도 어쩔수 없었다. 왜왜, 왜 숙이의 얼굴에서 환의 얼굴이 떠오르는것일가? 쳐죽이고싶었던 그 징글징글한 얼굴이 왜 환의 얼굴로 바뀌는것이냐구? 정우는 두눈을 꼭 감고 부르르 몸을 떨다가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정우는 허리를 굽혀 두손으로 걸상등받이를 짚고서서 잠간 머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뻘건색이였다. 환이가 들고왔던 탈은 뻘건색 얼굴로 정우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정우는 뻘건 탈을 주어들었다. 주어드는 순간 탈에 힘이 갔던지 탈은 퍼런색으로 변했다. 정우가 왼손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퍼런 탈을 툭 치자 탈은 다시 뻘건색으로 돌아왔다. 정우는 다시 탈을 툭 쳐서 퍼런색으로 만든 후 몸을 돌려 정자가 있는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자가 가까와 왔다. 앞뒤에 큼직한 목단꽃을 수놓은 치포를 차려 입은 그 녀인이 그때까지도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 보였다. 올라올 때 시작한것이 그때까지인지 아니면 그새 한쉼 쉬고 다시 부른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정우는 정자곁을 지나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이 밭을 다루면 나는 천을 짤게요 당신이 물을 길어오면 나는 정원을 가꿀게요 집은 낡았어도 비바람을 막을수 있고 우리 살림 힘들어도 달콤하기만 해요   녀인은 노래를 부르면서 요리조리 몸까지 탈았다. 곁에 앉은 남자들이 꽹과리를 두드리고 아쟁을 치느라 열을 올리고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정우는 새삼스럽게 외롭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치고들었다. 환, 얘는 어디로 갔을가? 왜 그렇게 총망히 떠났을가? 환의 빨간 입술이 닿았던 이마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우는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이마를 문지르다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5   ―보고싶었어요, 아저씨. 이렇게 시작된 환이의 전화를 받은것은 이틀이 지난 그날이였다. 그때 정우는 점심식사를 금방 끝내고 사무실에 올라와 커피를 타서 상우에 올려놓고있었다. 환의 목소리는 사뭇 맑았다. 하지만 그날 공원에서 서운하던 생각이 떠올라 그닥 반갑지 않은 투로 응부했다. ―보고싶었다니? 설마… ―기다릴게요. 나와 주세요. 환의 목소리가 간절하게 들렸다. 웬 일일가? 얘가. 환의 얼굴이 삼삼 눈앞에 클로즈업되였다. 순간 환의 빨간 입술이 대였던 이마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저도 몰래 오른손을 이마에 가져다댔다. 이상했다. 그 새 잊고있던 그 느낌이 그처럼 진하게 그 시각 다시 나타나는것이 놀라왔다. 그날 환이, 그애는 왜 그렇게 돌아져 내려갔을가? 그 의문을 풀고싶었다. 환이라는 수수께끼같은 그 애를 헤쳐보고싶었다. 하얀 피부에 숨겨진 그 속에 뭔가가 살아 숨 쉬고있을것이라는 예감이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한번 만나는거야. 정우는 고뿌를 들어 커피 한모금을 마시고는 급히 문을 나와 서시장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얬다. 너무 하얘서 티 한점 묻지 않을것 같은 셔츠를 들고 정우를 바라보면서 환이 물었다. ―어때요? 이 셔츠가?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되였다. 전화로 자기를 불러내서 하려는 일이 고작 자기의 셔츠가 어떠냐고 묻기 위한것이였단 말인가? 정우는 쩝쩝 입을 다시다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좋네, 깨끗해 보이는게. ―그렇죠? 아저씨. 환의 얼굴에 기쁨이 찰랑이고있었다. ―그래, 네가 입으면 딱이겠다. 네 얼굴색과 잘 어울려. 그러는 정우를 향해 환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아저씨. ―아니라니? 두서를 잡지 못해 망연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정우를 향해 씩 웃어보인 환은 두손으로 셔츠를 들어 정우의 몸에 대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저에게 딱이면 안되죠. ―그럼? ―아저씨 몸에 맞아야죠. ―뭐? 내 몸에? 정우는 깜짝 놀라면서 환을 쳐다보았다. 환이 웃고있었다. 웃는 얼굴에 이가 눈부셨다. ―이틀간 내내 고민했어요. 아저씨를 다시 만나지 말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어요. ―그런데?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제가 아니면 아저씨가 계속 고독하구 외롭게 살것 같았어요. 그리구 사실 아저씨가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큰 마음을 먹구 오늘 시장에 와서 이 셔츠를 샀어요. 공원에 가서 아저씨를 부를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두 여기가 좋을것 같았어요. 시장 가까이니 편하잖아요. 혹시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뛰여가 바꿀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일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애들같이 순진한 얼굴로 정우를 바라보며 환은 술술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그러는 환을 쳐다보면서 정우는 점점 오리무중에 빠져드는듯싶었다. 나에게 셔츠라니? 웬 일루 얘가… 내 옷이 람루해보였나? 정우는 생각을 굴리면서 머리를 숙여 자기가 입고있는 웃옷을 내려다보았다. 새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환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낡아서 초라한것은 아니였다. 그럼 얘가 도대체 왜 이 셔츠를 샀을가? 눈덩이를 굴리듯 의문이 점점 더 커졌다. 그줄도 모르고 환은 여전히 맑은 목소리로 씨뚝해서 말했다. ―제가 얼마나 애썼는데요. ―왜? ―아저씨 몸에 어울릴만한것을 고르느라구그랬죠. ―왜? ―왜 자꾸 왜 하구 물어요? 아저씨는. ―왜 샀느냐구 왜 하구 묻는거지 왜 왜 하구 묻겠니? ―대답했잖아요. 아저씨께 드리자구 샀다구요. ―참! 정우가 입을 다시며 다시 환을 쳐다보았다. 정우의 눈길이 집요했다. 영문을 알아 내고야 말겠다는듯싶었다. 환의 입가에 아지랑이 같은 실웃음이 피여 올랐다. ―불쌍했어요. ―누가? ―아저씨 말이죠. 웃옷 벗어요. 환이 정우의 몸에 걸쳐진 웃옷을 벗겨내며 말했다. ―내가 왜 불쌍한데? 정우는 환에게 웃몸을 맡겨버린채 바투 들이댔다. 환은 벗겨낸 웃옷을 들어 툭툭 털면서 정우쪽에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밉기까지 했어요. ―누가? ―아저씨 말이죠. 입어보세요. 환은 셔츠를 정우의 어깨에 씌우며 말했다. ―아저씨가 바보, 멍청이, 천치 같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저 아직 어려서 어른들 세계가 뭐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게 다 똑 같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행복해지려는 그 욕망 말이죠. 아저씨가 행복해지려면 그때 아저씨와 근사한 직업을 가진 아주머니를 찾아야 했어요. ―그때두 지금두 나는 그 녀자와 결혼한것을 후회는 안한다. ―지금두요? 환의 눈길이 커지고있었다. ―그렇지, 지금두. 내 선택이였거든. 글구 그때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었구. ―세상에, 이처럼 비참하게 상처를 받고서두 후회를 안한다구요? 환이 되려 년장자라도 되는듯 두팔을 쭉 펴며 어깨를 뜰썩해보였다. ―후회라면 내가 못나구 돈이 없은것을 후회해야지… 정우가 뒤말을 흐리며 환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어쩌면. 아저씨를… 쯧쯧쯧… 환이 혀끝을 차면서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래쪽으로부터 단추가 하나하나 채워져 올라올수록 정우는 가슴이 쿵쿵 높뛰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고있었다. 그 하얀 운무속에서 정우는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 무기력한 자기의 몸에 하아얀 껍질을 씌워놓고 이리저리 료리해나가는 환이가 자기에게 무엇으로 비쳐지는지는 그로서도 아리송했다. 그때 숙이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아이를 갖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은 환이또래의 자식이 있을것이였다. 그게 아들이였다면 지금 이 순간 환이처럼 살뜰하게 나를 바라봐줄수 있을가? 환의 손이 정우의 가슴을 건드리고있었다. 네번째 단추를 채우려는것이였다. ―여기까지만 해요. 셔츠는 그래도 제일 웃쪽 단추 하나는 남겨둬야 제멋이 나거든요. 환은 네번째 단추까지 다 채운후 두손으로 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한결 겨벼운 목소리를 뽑아올렸다. ―바로 이 화면이잖아요? 셔츠 한장 바꿔 입었을뿐인데 와늘 다른 사람이 됐잖아요. 남자는 나이 들수록 몸을 가꿀줄알아야 해요. 그래야 남에게 꿀리지 않고 당당해질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아저씨. ―어, 왜? 정우가 괜히 놀라면서 환을 쳐다보았다. 환이 식지 두개를 펴서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저씨가 웃는것을 보지 못했어요. 웃을줄 모르는거예요? 아님 일부러 웃지 않는거예요? 환의 물음에 정우는 잠간 두서없이 두눈을 슴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웃지 않는가? 어, 그렇네. 웃을 일이 없는게지뭐. ―어쩌면… 어쩌면… 웃어보세요. 아저씨, 스마일, 이렇게요. 환이 정우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정우가 힘들게 입귀를 실룩거렸다. 정우의 홀쭉한 두볼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그 모습을 잠간 지켜보다가 환이 말했다. ―그래요, 아직 어색해보이긴 해도 딱딱한 얼굴보다는 훨씬 보기 좋아요. 됐어요, 아지씨. 저 오늘 소원을 풀었어요. 제 손으로 다듬어 내놓은 련인을 바라보듯 그윽한 눈길로 한참이나 정우를 바라보던 환이가 기쁘게 말했다. ―뭐, 소원을 풀었다구? 정우가 흠칫 놀라면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래요. 저 꼭 아저씨 같은 남자를 상대루 이걸 해보고싶었어요. 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차분하게 들렸다. 정우는 헉 하고 숨을 멈췄다가 푸 하고 내쉬며 뚫어질듯 환을 바라보았다. 날아오는 환의 눈길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환의 눈길이 반짝이고있었다. ―환아! 너…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니? ―아버지가 불쌍했어요. 돈을 벌어 식구들 호강시키겠다구 이국 타향에 갔다가 깽단에 맞아 죽으면서 울 아버지 뭘 생각했을가싶었어요. 아버지만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남의 마누라로 되여 아양을 떨어댈 내 엄마가 찢어죽이고싶게 미웠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녀성이라는 그 존재가 싫었어요. 녀자들 모두가 제 잘 살겠다고 자식 버리는 비정의 인간들로 생각되였어요. 물론 영화며 텔레비죤에서는 모성에 대하여 하늘높이 가송하고있지만요. ―너너, 너 그게… ―저도 힘들구 외로왔어요. 스스로 제가 허허 벌판에 던져진 고양이 같이 생각될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어떤 아저씨가 저를 주어다 키워주었으면 하는 꽃 같은 꿈을 꾸었더랬죠. ―물론 삼촌이 자주 전화를 걸어와서 저의 걱정을 해주었지만 그게 되려 저에게는 부담이였어요. 자기 자식 셋을 뒤바라지 하느라 큰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소처럼 엉기엉기 기여가는 삼촌에게 저는 완전 천덕꾸러기였으니까요. ―시루속같이 비좁은 뻐스에 오르기를 좋아했어요. 올라가 아저씨들 뒤에 서기를 좋아했어요. 차가 들추는 기회를 타서 앞에선 아저씨의 어깨에 얼굴을 대보고싶었어요. 그리구 내 손으로 고른 셔츠를 그 아저씨에게 입히고싶었어요. ―너 그게 얼마나 허황한 생각인지 아니? ―그날 아지씨를 보는 순간, 웬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는 아저씨를 안아드리고싶었어요. 과연 저의 느낌이 적중했던거죠. 그날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련민이라 할가요? 아니, 그보다도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거죠. ―나는 막부득이한 환경에서 막부득이 하게 그런 습관이 생겼지만 넌… 정우는 열변을 토하려다가 그만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환의 말대로라면 환 역시 충분하게 엄마를 싫어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들어왔던것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가? 정녕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얼어든 얘 가슴을 녹여줄수 있을가? 정우는 스르르 두눈을 감고 얼굴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해볕이 정우의 얼굴을 아프게 찌르고있었다. 찌르는듯한 그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싶었다. 그 아픔을 받아서 삼검불같이 엉켜지는 머리속이며 터질듯이 갑갑해 지는 가슴이며에 골고루 보내주고싶었다. 그러느라면 되려 아픔이 사라지고 마음이 따스하고 푸근해질것만 같았다. 해살처럼 퍼져나가는 아픔을 뚫고 쌕쌕 고르롭게 내쉬는 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고르로운 숨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콩콩 하는 강아지 짖음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정우는 그 소리에 두눈을 천천히 뜨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시장광장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처럼 걸상에 자리를 하고 앉은 사람은 몇이 안되였다. 그들로부터 약간 떨어진 분수대옆의 걸상에 앉아 하얀 털의 강아지 두마리를 지켜보고있는 두 녀인도 그 몇 안되는 사람들중의 일부였다. 앞발에 약간 까만 털이 있는 강아지가 쏘세지를 먹고있는 코등이 까만 강아지를 향해 짖어대고있었다. 하지만 코등이 까만 강아지는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강아지가 짖건 말건 여전히 열심히 쏘세지만 먹어댔다. ―꼬미야, 짖지만 말구 너두 와서 먹어라. 얘가 다 먹어버리겠다. 선글라스를 건 녀인이 코등이 까만 강아지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놈은 쏘세지에 관심이 없는듯 여전히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놈을 향해 콩콩 짖어댔다. 그러자 코등에 까만 털이 있는 놈이 아쉬운듯 쏘세지를 곁눈질 하면서 앞발에 까만 털이 있는 놈곁으로 다가갔다. 두놈은 한순간 얼굴을 맞대고 킁킁거리더니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 나란히 앞을 바라고 뛰여갔다. 선글라스를 건 녀인이 강아지들을 가리키며 옆에 앉은 친구인듯한 녀인에게 말했다. ―쟤들이 눈이 맞았나봐요. 련애하러 가는것 같아요. 녀인의 목소리가 별로 높지 않게 들렸지만 정우는 웬지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듯싶어 그쪽에 아니꼬운 눈길을 날렸다가 천천히 환에게로 돌렸다. 환의 눈길이 달려가는 강아지들에게 쏠려있었다. ―그놈들, 털이 참 하얗지? 정우가 환의 기색을 살피며 담담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조조, 조 앞발이 까만년이 나빠요. 코등이 까만놈을 홀렸다니까요. 조조, 조 꼬리질을 하는 꼴을 좀 봐요. 환이 강아지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코등이 까만 강아지가 앞발이 까만 강아지의 궁둥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꼬리를 하늘거리고있었다. 환이가 성난듯 그 모양을 지켜보다가 격하게 내뱉었다. ―저놈도 바보, 천치, 부실이예요. 그년이 뭐가 좋다고 궁둥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지… ―환아. 정우가 환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환이 정우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저 구름이 참 하얗지? 생각과는 달리 정우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에 환은 머리를 들어 하늘가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구름에 눈길을 가져갔다. 환이 잠간 하얀 구름송이들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하얀 구름속에 얼마나 많은 비가 섞여있을가요? ―거야 비로 변해봐야 알겠지. 저 하얀 구름속에 얼마나 많은 비가 숨어있을지는… ―탈을 좋아해요? 아저씨는. 환이 문뜩 화제를 돌렸다. ―뭐, 탈? 정우가 깜짝 놀라며 뒤말을 얼버무렸다. 노란 셔츠에 뻘건 탈을 쓴 환의 모습이 머리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정우는 환에게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 ―너, 혹시 경극을 좋아하니? ―아니요, 경극보다 경극에서 쓰는 탈을 좋아해요. 특히 뻘건 탈을 좋아 하죠. ―왜? ―뜨거워 보이잖아요. 뻘건색이. 스스로 초라해 보일 때 그리구 가슴이 시릴 때 전 뻘건 탈을 쓰군해요. 뻘건 탈을 쓰면 자신이 생기거든요. 안마방, 참 재수 없을 때가 많아요. 별별 손님들이 다 있거든요. 가끔은 제가 버러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뻘건 탈을 쓰고 버러지처럼 벌벌 방안에서 기여다녀요. 그럼 함께 있는 애들이 제가 청승을 떤다면서 제 궁둥이를 걷어 차요. 그 발길질에 저는 다시 일어서게 되죠.  환의 목소리에는 제법 유머감까지 녹아 흐르고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환은 이 이야기를 이처럼 쉽게 가볍게 할수 있을가? 정우는 그런 생각을 굴리다가 환의 눈길을 정시하며 말했다. ―다시 일어날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환아. ―생각하기 나름이죠. 아저씨… 환이 그렇게 정우를 부르고는 아래말을 끊어버렸다. 정우는 환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며 아래말을 기다렸지만 환은 점도록 아무 말 없이 씩 웃기만 했다. 궁금했다. 환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가? 정우는 환의 곁으로 한뽐 다가 앉으며 물었다. ―왜 불러놓고 말이 없니? ―좋아서요. ―뭐? 좋아서? ―네. ―뭐가 그렇게 말까지 잊을 정도로 좋은데? 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꿈을 꾸고있어요. ―무슨 꿈을? ―아저씨하구 시장에 가서 남새를 사구 그 남새를 다듬어서 료리를 하구 그 료리를 마주 앉아 맛나게 먹는 꿈을요. 아저씨, 저의 꿈이 너무 큰거죠? 환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환아! 순간 정우는 코등이 시큰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얼마나 외로왔으면… 얼마나 외로왔으면 얘가 이런 꿈을 다 꿀가? ―아니야, 환아. 우리 함께 시장에 가서 남새를 사자, 함께 다듬구 함께 료리를 만들자. ―정말이예요? 아저씨. 음… 일요일날 어때요? 이번주 일요일날 말이죠. 제가 그날 온하루 쉬거든요. 일요일날 말이예요. ―그래, 일요일날 우리 함께 시장 가서 남새 사구 다듬구 료리해 먹는거다. ―아저씨. 이게 꿈은 아니죠? ―환아! 정우는 으스러지게 환의 손을 잡아주었다.   6   환의 료리솜씨는 과연 일품이라고 할수 있었다. 주방에서 잠간 지지고 볶고 하더니 향기롭고 색갈이 고운 료리를 네가지나 만들어 상에 올렸다. 정우가 곁에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환이 기어코 정우를 걸상에 눌러앉혔다. ―아저씨, 오늘은 꼼짝 말구 앉아 향수만 하세요. 제 솜씨를 구경하다가 나중에 맛이나 제대로 평가하면 된다니까요. ―그럼 오늘은 진짜 환의 덕에 향수나 한번 해볼가? ―그럼요. 천만 지당한 일이죠. 아저씨, 이렇게 있으니 우리 진짜 가족 같지 않아요? 환이 얼굴에 홍조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파르르 떨리는 그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려왔다. ―가족? 정우는 속으로 그 말을 되네이다가 머리를 돌렸다. 예고도 없이 눈시울이 젖어올랐던것이다. 가족, 가족! 정우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지는 낱말이였다. 가족, 정녕 나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숙이가 짐을 꾸려 가지고 나간후로 정우는 가족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비록 우로 형님이며 누나들이 계시지만 그들도 진작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얼마전에 모두 한국에 진출했던것이다. 하기에 정우는 내내 혼자였고 그것이 습관이 되여 크게 외로운것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그래, 정말 우리 가족 같구나. ―그래요, 아저씨. 우리가 쭉 이렇게 함께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말을 마친 환이가 혀를 홀랑 내밀며 정우를 훔쳐 보았다. 정우는 일순 환의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할수 없어 어어 하고 입만 쩝쩝 다셨다. ―놀랐죠? 괜히 해보는 소리예요. 깊이 듣지 마세요. 아저씨, 맥주컵이 어디 있죠? 환이 인차 화제를 돌렸다. 그제야 정우는 걸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내리울게. 인젠 너 상에 와 앉아라. 정우는 뿌옇게 먼지가 오른 맥주컵을 찬장에서 내리워 물에 씻기 시작했다. 그새 환은 맥주병 두개를 들어 아구리를 맞붙여 마개를 따면서 말했다. ―시원할것 같아요. 어서요, 아저씨. 정우는 한손에 컵 하나씩 들고 상으로 다가왔다. ―그래, 시원하게 한잔씩 마시자. ―자요, 아저씨. 환이 두손으로 정우의 컵에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 환아. 너도 한잔 받어. ―네. 환이 두손으로 정우앞에 컵을 내밀었다. 하얀 손이 떨리고있었다. ―이렇게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는 오랜만이네. ―행복해요. 아저씨. 환의 눈에 이슬이 맺혀 가랑거리고있었다. ―참… 환이 맥주컵을 상에 올려놓고 주먹으로 질끔질끔 눈확을 눌렀다. 그러는 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마음껏 행복해 해두 돼. 환아. ―그래두 돼요? 제가 진짜 그래두 돼요? 아저씨. ―그럼, 그렇구 말구. 정우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환의 입가에 아지랑이 같은 실웃음이 하늘하늘 피여나고있었다. 더 이상 이 애가 외롭게 하지 않을거다, 얘게 모자라는것들을 내가 보상해줄거다. ―환아, 너 스물 두살이라구 했지? ―네. ―아직은 늦지 않아. ―뭐가요? 아저씨. 환이 정우를 바라보며 동공을 키웠다. 정우가 잠간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너 아직 어리거든. 이렇게 사회에 나와 안마방을 전전하며 허송세월하기는 아까운 나이라구. ―그럼 어떻게 해요. 저에게 중요한건 제 한 목숨을 먹여살리는 일이거든요. ―아저씨를 믿어. 환아. 아저씨가 너를 다시 학교에 보내줄거야. 그래, 미술공부를 그냥 하고싶은 생각은 없니? ―아저씨! 환이 정우를 바라보며 머리를 저었다. ―저 환이예요. 오다가다 만난 남남이라구요. 저 큰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이렇게 가끔 아저씨와 함께 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것만으로도 족하다구요. 가족처럼 이렇게 한순간을 행복하게 보낼수 있게 하는것만으로도 아저씨는 저에게 너무나 많은것을 주는거예요. 환은 흥분으로 하여 쌕쌕 거친 숨을 몰라쉬며 가슴을 들먹였다. 정우가 그러는 환의 얼굴에 눈길을 박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두 꼭 이것을 해보고싶었단다. ―…… ―나두 늘 아들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고 아들의 손에 학비를 쥐여주는 꿈을 꾸었더랬지. 하지만 그게 그냥 꿈으로만 끝날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고맙다. 환아. 잠자던 나의 꿈을 깨워줘서. ―아저씨, 저저, 저 정말 이렇게 행복해두 돼요? 환이 솟구치는 격정을 참을수 없다는듯 잘근잘근 아래입술을 씹어댔다. 바로 그때 찌르릉 환의 핸드폰이 울러댔다. 환은 흠칫 놀라면서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환이 얼굴색을 흐리우며 걸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정우도 놀라며 걸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누구의 전화니? ―삼삼, 삼촌의 전화예요. 환이 꺽꺽 말을 더듬었다. ―왜 그래? 빨리 전화를 받아야지. ―네. 환이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다댔다. ―네, 숙모님, 저 환이예요. 네? 뭐라구요? 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있었다. ―네네, 그래 어떻게 됐어요? 입원 했다구요? 수술을 해야 한다구요? 환이 입술을 감빨며 왼손에 들었던 핸드폰을 오른손에 빠꿔지고는 다시 귀가에 가져다 댔다. ―그래서요? 네? 보증금 만원을 내야 수술할수 있다구요? 어쩜 좋아, 어쩜 좋아. 저에게 그런 큰 돈이 어데 있어요? 알았어요. 숙모님. 환이 핸드폰을 힘없이 상우에 내려 놓고는 머리를 숙였다. 환의 어깨가 물결을 타고있었다. ―웬 일이야? 천천히 말해봐. 아저씨께. ―어쩌면 좋아요. 아저씨. 삼촌이 차사고를 당했대요. 경운기를 몰고 밭에 비료치러 갔다 오다가 그만 벼랑에서 경운기를 굴렸대요. 경운기는 파철이 되였구 아저씨는 의식을 잃은 상태래요. 병원에서 검사를 거쳤는데 뇌에 피가 고였대요. 당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대요.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입술을 감빨며 그렇게 말하고난 환이가 벌떡 걸상에서 몸을 일으켜 문쪽으로 뛰여갔다. ―환아, 너 어디로 가려는거니? ―이러고만 있을수는 없잖아요. 환의 두볼에서 콩알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안마원에 가야겠어요. 가서 로반(老板)하구 사정얘기를 해야겠어요. ―뭐? 로반하구?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제가 손을 내밀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어요. 그가 도와줄지는 모르지만. 노력은 해봐야할게 아니예요? 환은 허리를 굽혀 급히 신을 찾아신었다. ―잠간만. 정우가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웃옷을 들고 나왔다. ―가자. ―어디루요? ―급하다며. ―어디루 가냐구요? ―내가 났겠지. 너의 로반보다 내가 났겠지. 먼저 급한 불부터 끄고보자. ―아저씨! ―환의 목소리가 피터지게 울렸다. ―가자는데두. 어느새 신을 찾아신은 정우가 소리쳤다. 환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럴수 없어요. 절대 아저씨 돈을 쓸수 없어요. 아저씨를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이런 부담을 줄수 없어요. ―가족끼리는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다. 가자. 정우는 환의 손을 끌고 문을 나섰다. ―무사해야 할텐데. 너의 삼촌이 이 고비를 무사히 넘겨야 할텐데. ―무서워요, 아저씨. 우리 삼촌을 어쩌면 좋아요. 환이 다시 울음을 터쳐올렸다. 정우가 머리를 돌려 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괜찮다구. 힘을 놓지 말어. 아저씨가 있잖니? 꼭 좋아질거야. ―아저씨, 고마와요. 잊지 않을게요. 오늘 식사를 끝내구 아저씨랑 “탈놀음”도 놀려구 했는데… 잘 할게요. 아저씨께. 그리구 우리 “탈놀음”을 놀아요. 담날. ―환아! 정우는 꺽 메여 오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내며 가슴으로 웨쳤다. 그 와중에도 자기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있는 환이 목이 메이도록 고맙고 믿음직스러웠다.   7   “담날”은 언제쯤일가? 기다려졌다. 정우는 소풍가는 날을 기다리는 악동처럼 환이 “탈놀음”을 하자고 하던 그 “담날”이 기다려졌다. 그러다가도 자기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현금 인출기에서 만원을 뽑아 아무 담보도 없이 환에게 들려보내놓고도 돈 근심보다 “담날”에 하게 될 “탈놀음”이 어떤것일가를 상상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가끔 머리를 쳐들었던것이다. 그러다가도 스스로 머리를 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 그 돈을 남에게 줬는가? 환에게 준거라구, 환에게!  그러자 그날 공원 정자에서 황매희)를 구경하는 사람들속에 숨어있던 노란 셔츠에 뻘건 탈을 쓴 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탈놀음”이란 얼굴에 탈을 쓰고 색갈 바꾸기를 하는것일가? 환의와 똑 같은 탈을 쓰고 앉아 “뻘건색, 파란색” 하는 구령에 따라 누구 얼굴에 씌여진 탈이 더 빨리 색을 변화시키는가를 내기하는것도 제법 재미있을것 같았다. 정우는 시무룩이 웃음을 지으며 인터넷에 올라 검색창에 “탈놀음”이라고 처넣었다. 눈 깜박할 새에 수많은 글들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정우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멈췄다. 평소 생각조차 하지 않던 “탈놀음”을 두고 이렇게 많은 글이 인터넷에 올라있다는 사실앞에서 정우는 세상구석의 먼지알갱이보다도 더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탈놀음”, 도대체 어떻게 하는것일가? 정우는 마우스를 굴려 이것저것 클릭하기 시작했다. “탈놀음”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놀음방식은 각양각색이였다. 미녀의 얼굴에 눈이며 코며 입이며를 나름대로 바꿔 달거나 해괴망칙한 옷이며 액세서리 같은것들을 갈아주는 놀음이 대부분이였다. 누구의 착상인지는 몰라도 미국대통령 오바마에게 탈을 씌우는 놀음도 있었다. 오바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정우는 허허허… 웃음을 터쳐 올렸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럴수가, 이럴수도 있는것일가? 정우는 모니터앞에 한뽐 다가 앉아 놀음방법을 소개한 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간단했다. 바탕에 찍혀있는 오바마의 거무스레한 얼굴에다 옆에 준비되여 있는 부위들을 옮겨 붙이면 되였다. 정우가 손가락을 한번 까딱하면 흑인인 오바마가 백인으로 변했고 또 한번 손가락을 까딱하면 황인종으로도 변했다. 완전히 정우의 뜻에 따라 미남으로도 될수 있고 추남으로도 될수 있었다. 마우스 하나로 하늘같이 높은 대통령어르신을 마음대로 료리하는 그 기분이 참으로 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웬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걸상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며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정우의 눈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갑삭갑삭 허리꺽기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으며 살룩살룩 개다리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춤을 추는 자세는 저마다 달랐지만 한결같이 얼굴에 탈을 쓰고있었다. 정우는 자기도 그 인파속에 밀려들어가는 환영을 보고있었다. ―이놈아, 네놈이 여태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처럼 사는줄을 몰랐구나. 아이구, 원통해라. 저 인피를 뒤집어 쓴 짐승을 남편이라 믿고 살아오다니… 갑자기 웬 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깜짝 놀라며 두눈을 번쩍 떴다. 소리는 문밖에서 들려오고있었다. ―잘못했소. 잘못했다니까. 다시는…다시는… ―개소리라구 해라. 누가 그 소리를 믿어. 왕과부나 믿을가. 녀인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정우는 웬 일인가싶어 벌떡 일어나 문쪽으로 다가가 출입문을 열었다. 목소리 임자는 웃층에 사는 한족녀자였다. 녀자는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며 입에 거품을 물고있었다. 녀자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풀 꺾인 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정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라는데 왕왕, 왕과부는 무슨… ―이 짐승보다도 못한것아. 그래두 체면은 있는감? 아까 활동실에서 네놈이 왕과부에게 웃음을 슬슬 던지며 발정난 수캐처럼 헐떡거리는걸 내 이 두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두 발뺌을 해? 그러느라구 반나절에 200원이나 잃었지. 아니, 잃은게 아니라 네놈이 그 과부년에게 그 돈을 그저 찔러준거야. ―아아, 아니라는데… 아니라는데. 녀자는 입만 열면 청산류수로 거침없이 욕을 쏟아냈지만 남자는 입이 물꼬처럼 막혔는지 그저 아니라는 말만 똑똑 떨구고있을뿐이였다. 복도를 딱 때기기라도 하려는듯한 녀자의 욕지거리를 들으며 정우는 웬지 기분이 잡쳐 출입문을 닫았다. 거리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웃층의 남녀는 평소에도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복도에 나서서 동네사람들을 놀래우기는 처음이였다. 정우는 녀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싶지 않았다.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몸집이 둥글소처럼 튼실하게 생긴 남자는 절대 녀자가 말하는것처럼 무슨 탈을 쓰고있는 짐승 같지 않았다. 되려 거짓말을 모르고 수걱수걱 일만 하는 우직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는것이 나을상싶었다. 헌데 그 남자가 “왕과부에게 웃음을 슬슬 던지며 발정난 수캐처럼” 헐떡거렸다는것이다.  정우는 저도 몰래 쿡 하고 허구프게 웃음을 터쳤다. “발정난 수캐”는 어떤 모양일가? 정우는 어쩜 자신이 세상과 점점 멀어져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구경 어떤 탈을 쓰고 사는것일가?   그것은 정우가 리혼한 이듬해 겨울이였다. 당시 정우가 사는 도시에도 하루 새롭게 안마방이 들어서고있었다. 그때 정우는 경제부에서 기자로 뛰였다. 민영기업에대한 취재가 많았다. 기업의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주들은 기자들의 필끝에 눈길을 모으고있었다. 하기에 취재가 끝난후이면 주최측 사람들에게 끌려 안마방으로 가는 기회가 많았다. 정우는 브래지어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적삼만 달랑 걸치고 앉아 웃음을 살살 흘리며 자기의 몸뚱이를 주물럭거리는 그녀들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녀들의 몸뚱이를 볼 때마다 자기를 무참히 꺼꾸러 뜨린 숙이의 하얀 몸뚱이가 떠올랐던것이다. 그때마다 정우는 그곳에서 나오고싶었지만 주최측 사람들의 성의를 봐서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그날도 주최측에서는 정우를 끌고 2차로 안마방에 갔다. 말이 정우를 초대하는것이지 주최측 사람들이 다섯이나 따라붙었다. 그날도 브래지어가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야하게 차려 입은 녀자안마사들이 주르륵 들어섰는데 다섯뿐이였다. 마담이 죄를 진 노비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나불거렸다. ―어쩔가요? 귀한 손님들이 모처럼 오셨는데… 애들이 청가를 맡아서… ―뭔가? 안마사가 모자란다는 말인가? 들어오자 바람으로 침대에 벌렁 들어 누웠던 김경리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무뚝뚝하게 쏘아붙였다. 마담은 흠칫 몸을 떠는체 하다가 김경리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아이, 죄송스러워라. 그렇다니까요? 두시간쯤 지나면 서넛이 오기는 오겠는데, 급하시면 먼저 남자안마사를 부를가요? 그 애 안마솜씨가 좋아요. 생기기두 잘 생기구요. 마담의 말을 듣는 순간 정우의 머리에는 내가 왜 여태 남자안마사를 부를 궁리를 못했을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랬다. 남자안마사라면 녀자애들의 야한 브래지어를 보는 불편함이 없을것 같았다. 정우가 마담을 건너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남자안마사, 괜찮아요. 나는 힘 있는 안마사가 좋거든요.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경리가 입을 열었다. ―그럴수야 없지. 어찌 손님을 푸대접할수 있소? 먼저 이분께 제일 이쁜 아가씨를 붙여요. 그래, 저 애가 좋겠네. 김경리가 제일 이쁘게 생긴 녀자애를 가리키며 입가에 묘한 웃음을 피워 올렸다. ―아니, 괜찮대두. 괜찮다는데… 정우는 그저 “괜찮다”는 말만 더듬을뿐 끝내 “녀자의 손길이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후에도 정우는 안마방에 갈적마다 남자안마사를 부르고싶었지만 남들의 눈이 무서워 소원 성취를 못하고 녀자안마사들의 손에 몸뚱이를 맡기군 했었다. 그렇게 남들이 예쁜 녀자가 좋다면 자기도 따라서 예쁜 녀자가 좋다고 더 크게 웃으며 “호색”의 탈을 써보이려고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것이다.  ―아저씨같은 남자를 상대루 이걸 해보고싶었어요. 순간 정우의 귀전에 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김없이 진실한 자기를 남에게 보여줄수 있는 환이 참 당당하다고 생각되였다. 지어는 그 당당함이 부럽기까지 했다. 환이 보고싶었다. 정우는 컴퓨터상우에 놓여져있는 핸드폰을 집어다가 환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환의 목소리가 기다려졌다. 하지만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환의 해맑은 목소리가 아니라 “대방의 전화기가 꺼져있습니다.”라는 쇠붙이 부딪치는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왜 핸드폰이 꺼져있을가? 정우는 야릇하게 생각하며 다시 번호를 눌렀다. 전화기에서는 여전히 “대방의 전화기가 꺼져있습니다.”라는 소리만 반복되였다. 웬 일일가? 정우는 괜히 불안해나기 시작했다. 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것이 아닐가? 정우는 불길한 생각을 누르며 환이 삼촌의 수발을 드느라고 핸드폰을 꺼놓았을것이라 나름대로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이지 스멀스멀 몰려드는 근심은 도무지 쫓을수가 없었다. 정우는 다시 환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그후에도 십여번이나 반복했지만 환의 핸드폰은 번마다 꺼진 상태였다. 이튿날아침, 정우는 다시 환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핸드폰에서는 여전히 쇠붙이 부딪치는것 같은 녀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올뿐이였다. 정우는 또 다시 몰려드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어제 환이가 사준 셔츠를 꺼내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의 거울앞에 마주섰다. 하얬다. 하얀 셔츠에 감긴 자기의 몸뚱이도 하얗게 변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가무잡잡한 얼굴은 되려 하얀 몸뚱이와 대조를 이루어 더 검어보였다. 정우는 세면대에서 흰수건을 내리워 얼굴을 가리웠다. 그러자 까만 눈만 남아 판들거리는것이 스스로도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정우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크게 꾸짖었다. ―왜 얼굴이 하얗게 질렸냐? 정우는 인차 목소리에 비굴함을 가득 발라서 대답했다. ―대왕마마, 질리다니요? 소인은 하얀 탈을 썻는데요. ―네놈이 무슨 나쁜 심보를 품고 탈을 뒤집어쓴게냐? ―나쁜 심보라니요, 대왕마마. 소인은 앞으로 하얗게 살려구 결심했는데요. 정우는 연극무대에서 대사를 치듯 그렇게 혼자 말하고는 스스로도 어이없다는듯 크게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 웃음의 꼬리를 물고 코등이 시큰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가끔은 제가 버러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뻘건 탈을 쓰고 버러지처럼 벌벌 방안에서 기여다녀요. 그럼 함께 있는 애들이 제가 청승을 떤다면서 제 궁둥이를 걷어 차요. 그 발길질에 저는 다시 일어서게 되죠. 환의 차분한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 울리는듯싶었다. 환아, 너 지금 뭘하고있는거니? 왜 핸드폰은 꺼져있지?   *월 *일, 화요일. 환의 핸드폰은 온 하루 꺼진 상태이다. 혹시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나 아닐가?   *월 *일, 수요일. 꿈을 꾸는것 같다. 내가 실지 환이라는 애를 만난적은 있었던가?     *월 *일, 목요일. 두렵다. 내가 그 어떤 환각속에 사는것은 아닐가?   8   ―환이라구요? 그런 애가 없는데요. 경리가 정우를 바라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럴수가 없겠는데요. 그 애 분명 여기서 일한다고 말했다니까요. 정우가 경리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긍정적으로 말했다. 경리는 그러는 정우를 바라보며 막무가내라는듯 쩝쩝 입을 다시다가 어조에 가시를 박아 한마디 던졌다. ―진짜라니까요. 정 믿기지 않으면 저쪽에 가보세요. 거기 남자안마사들의 사진이 다 붙어있으니까요. 정우는 경리가 가리키는쪽으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가 벽에는 남자안마사들의 사진이 여라문장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환의 얼굴이 없었다. 정우는 속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져내리는듯한 진동을 감지하고있었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 다시 경리실로 들어갔다. ―없네요. 그 애 사진이. 그럼 요새 일을 그만둔 애는 없나요? ―없다니까요. 저 사진에 있는 애들이 반년째 쭉 여기서 일하고있어요. ―미미, 미안합니다. 시끄러움을 끼쳐들여서요. 정우는 경리의 야릇한 눈총을 받으며 문을 밀고 나왔다. 정우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머리를 돌렸다. 커다란 안마원간판이 눈을 치고 들어왔다. ―동시장앞에 있는 왕부안마원 있잖아요. 거기서 48호를 찾으면 바로 저예요. 환의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 울리는듯싶었다. 환아, 너 지금 어디에 있는거니? 정우는 끝내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세상 어딘가에 홀로 던져진듯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머리속으로 기여들었다. 정우는 두손을 머리에 가져갔다. 오른주먹을 들어 쿡쿡 머리통을 쥐여박다가 두손으로 와락와락 머리칼을 잡아뜯었다.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듯싶었다. 정우는 몸부림을 멈추고 머리를 쳐들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정우는 자기도 그 소용돌이에 실려 저 멀리 하늘가로 휠훨 날아오르는듯싶었다. 이게 아니지, 이건 아니야! 정우는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한껏 옹송그리며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검은 구름에 쌓인 하늘이 커다란 탈을 쓰고 정우를 내려다보며 찬 웃음을 짓고있었다.                                                   
518    모닝커피 댓글:  조회:2874  추천:1  2013-03-30
모닝커피, 참 좋다. 따뜻한 커피가 목을 넘어 속으로 들어가는 그 느낌이 좋고  입안에서 감도는 그 쓸사한 여감이 좋다. 그래서 점점 커피에 중독되여가나보다.                                          나는 커피를 그리 진하지 않게 타서 마신다. 너무 진한 커피는 떱떠름한 맛이 있어 첫 느낌이 안 좋다. 너무 급히 마시는 커피는 안 좋다. 한 모금 마시고 혀두번 굴리고 혀두번 굴리고 커피 한모금 마시고...  입에 부담스럽지 않게 은은한 향을 뿜을줄 아는 그런 커피가 좋다. 그런 커피를 마시고있노라면 내 머리에는 또 세상 사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517    단편소설 * 흑장미 댓글:  조회:1890  추천:1  2013-03-27
1 흑장미였다. 하얀 봉투에 검은색 펜으로 한 잎 한 잎 정성들여 그려진 흑장미는 시리게도 정우의 눈을 파고들었다. 정우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면서 주먹을 들어 질끔질끔 눈확을 찍었다. 차가운 웃음을 짓는 듯한 흑장미가 다시 부옇해진 정우의 눈으로 날아들었다. 언제 넣었지? 이 봉투를. 분명 그 애가 넣은 것일 텐데.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지? 해볕 좋은 여름날, 개울가에서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한줄기의 강한 호기심이 머리에 솟아올랐지만 정우는 선듯 그 봉투를 찢을 수 없었다. 두려웠다. 봉투안의 비밀이 백일하에 들어나는 순간, 그 충격을 받아 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정우는 봉투를 손에 든 채 두 눈을 감으면서 쏘파에 엉뎅이를 가져다댔다. "잘했어요."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정우의 귀전에서 울리는 듯싶었다. 정우는 봉투를 가져다 가슴에 꼭 붙였다. 후둑후둑 가슴이 널뛰기를 시작했다. 정우는 봉투를 쥔 왼손 우에 오른손을 포갰다. 마구 높뛰던 가슴이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온몸으로 말 못 할 흥분이 찌릉찌릉 퍼져나갔다. 아래다리가 뻣뻣해왔다.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던 정우의 남성이 버럭 성깔을 부리며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오래 동안 얘를 방치해두었던가 봐요. 이렇게 성나하는 것을 보니… 풀어주세요. 걔가 하고 싶다는 대로 활 풀어버리세요. 걔도 가끔씩은 들말처럼 날칠 권리가 있다구요." 그녀는 검붉게 달아오르며 벌떡벌떡 솟구쳐대는 그놈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도란도란 목소리를 이어갔다. 정우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살살 녹아내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감로수였다. 감로수로 되여 사흘 굶은 고양이처럼 머리를 다리사이에 꿍쳐 박고 누워있던 정우의 남성을 깨우고 있었다. 깨여난 남성은 더 이상 사흘 굶은 고양이가 아니라 포획물을 앞에 둔 늑대였다. 정우는 와락 그녀의 몸에 덮쳤다. "흐윽!" 그녀는 길게 들숨을 당기며 침대에 무너지더니 두 팔을 들어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정우는 거칠게 숨을 톺으며 그녀의 팔에서 몸을 빼고 상체를 세우며 오므리고 있는 그녀의 두 다리를 와락 열어 제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으윽 숨을 톺으며 바들바들 두 다리를 떨었다. 그 바람에 그녀 다리 사이에 숨어있던 꽃잎이 하늘거렸다. 정우는 상체를 숙이며 그녀의 꽃잎에 들떠있는 남성을 쏘았다. "천천히, 천천히요…" 정우는 천길나락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의식하면서 불끈대는 남성을 오른손으로 잡아 그녀의 꽃잎에 박아 넣었다. 시간이 멈춘 듯싶었다. 세상에 오직 자기만 남아있는 듯싶었다. "으윽- 아악- 어허억!" 그녀가 뾰족하게 손톱을 기른 손가락으로 정우의 가슴을 박박 긁어댔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간 가슴에 붉은 고랑이 패졌다. 붉은 고랑위로 뜨거운 땀이 흥건히 배여 올랐다. 그녀가 흑흑 느끼며 속삭였다. "다 먹어요. 아귀아귀 다 먹어버려요. 와와, 와늘 늑대 같아요." "아-우-" 정우는 진짜 한 마리의 굶주린 늑대처럼 단말마적으로 괴성을 뽑아 올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녀의 가슴에 상체를 던졌다. "까닥까닥…" 정적이 흐르는 방안에서 늑대가 뼈다귀를 씹는 듯한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청승스럽게 귀속을 파고들었다. 정우는 자기가 그 초침소리에 끌려 어디 론가를 향해 허이허이 기여 가고 있다고 생각 되였다. "힘드시죠?" 약간 맥이 빠진 듯한 바스음이었다.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어! 하고 중심 없이 소리를 뽑았다. "잘했어요." 약간 맥이 들어간 목소리에는 야유 비슷한 냄새가 배여 있었다. 그 냄새를 맡으며 정우는 어디로부터 치고 들어오는지도 모를 은은한 아픔을 느꼈다. 정우는 입술을 감빨면서 이마살을 찡그렸다. 그녀가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정우의 이마를 오른손식지로 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한국에 갔죠?" "응." "꽤 댔죠" "몇 살이야?" "스물하나." "스스, 스물하나?" "왜? 너무 늙었나요? 설마… 열여덟 살 짜리를 찾는 건 아니죠?" "재밌네." "몇 년 됐냐구요?" "뭐가?" "아저씨 부인 말이죠." "아저씨 부인이 뭐가 몇 년 됐냐구?" "한국에 가신지." "누가 아저씨 부인이 한국 갔댔어?" "방금 응 하셨잖아요?" "내가 그랬어?" "어마나, 이 아저씨 보셔…" 그녀가 말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러자 눈꼬리마저 살짝 우로 쳐들렸다. 정우는 두 눈을 질끔 감았다 뜨며 그녀 앞으로 한 뽐 다가앉아 뚫어져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며 "왜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니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우는 아닌 것이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 보았던가?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야… 정우는 차탁 우에 던져져있는 팬티를 주어다 다리에 걸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잘했어요." 하던 그 목소리가 다시 귀전에 스쳤다. 아! 정우는 신음 비슷이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왜 그러세요? 불편하세요?" 그녀가 겁에 질린 듯 다가앉았다. "아니." "놀랐잖아요. 무슨 생각을 했어요?" "너무 닮았어." "누구하구요?" "그런 사람 있어." "첫사랑하구요? 남자들은 참, 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잘했어요." 하고 말하던 한 여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22년이야. 22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가봐. 아니라면 어떻게 그 얼굴이 이처럼 또렷이 보여 질 수 있어? 바로 이 안마원이였다. 22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주인이 몇 번 바뀌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22년 전에도 바로 송림각이라고 부르는 이 안마원이였다. 텔레비전방송국 기자로 뛰던 시절이었다. 정우가 살던 도시에도 안마원이라는 이름의 유흥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금방 지역 텔레비전프로그램이 흥기하기 시작하던 때라 텔레비전방송국 기자는 어디가나 대우를 받았다. 하기에 취재가 끝난 후, 식사접대는 두말할 것도 없고 노래방에 이어 안마원 접대는 필수적인 코스였다. 그날, 잘 나가는 한 민영기업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끝낸 후 노래방에 이어 보스가 끌고 온 곳이 바로 송림각이었다. 그때 정우는 금방 결혼한 몸이었다. 집에서 기다릴 아내를 생각해서 일찍 귀가하려고 했지만 보스는 기어코 정우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 안마하러 들어온 여자가 바로 "잘했어요." 하고 말하던 장미였다. 그녀는 손에 들고 들어온 안마도구들을 조용히 침대 밑에 내려놓은 후 공손히 일어서서 아미를 살짝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미라 불러주세요. 흑장미라 해도 되구요." "뭐, 흑장미? 그 이름을 들으니 접선하러 들어온 지하당원이 생각나네." "호호호… 손님, 참 농담도 잘하시네요. 원체 여기 오는 분들은 다 지하당원이 아닌가요?" 방긋 웃는 얼굴이 그렇게 예쁜 축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성격이 활달하고 "일"에 열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금방 결혼해서 아내의 손에만 길들어져가던 정우로서는 장미의 "기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어머니의 슬하에서 곧은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정우로서는 남여 간의 일을 두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굴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정우에게 장미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번 장미가 리드하는 대로 체위를 바꿔가면서 그 일을 치르노라면 정우는 마치도 천당을 유람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일이 끝나면 장미는 소학교선생님이 받아쓰기를 잘한 학생을 칭찬하듯 "잘했어요." 하고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우는 "잘했어요." 하는 그 칭찬에 인이 박혀갔고 장미의 손길에 길들여져 갔다. 아내 몰래 그녀한테로 가는 스릴 또한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 걸 알고 있어?" 장미가 이 말을 던진 것은 "잘했어요." 하고 칭찬을 한 후 2분쯤 지나서였다. "뭘?" 정우는 여느 때처럼 팬티를 주어 입으며 건성으로 되물었다. "당신, 참 잘 생겼다는 거. 미남이잖아? 체격두 쭉 빠지구." 장미도 앉은 채로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으면서 말했다. "허허허…" 정우는 장미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웃고는 입을 열었다. "실없는 소리는." "사실이래두. 당신, 쉬원챵( 许文强)같아." "쉬원챵, 좋아해?" "당신, 쉬원챵 보다 더 멋져." 정우는 그 무렵 인기리에 방송되던 텔레비전드라마 "상해탄"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웃음을 터쳐 올렸다. "그럼 내가 주윤발보다 더 멋지다는 거야?" "그럼, 쉬원챵배우… 그래, 그 사람. 주윤발보다 당신 더 멋져." "웃기지마." "당신…" 장미는 네발로 엉금엉금 정우를 향해 기여 가더니 정우의 목을 감싸 안았다. "있잖아…" "말해." "나, 당신 아기 가지고 싶다." "뭐야?" 기절할 듯 놀란 정우가 장미를 밀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저쪽으로 나가 벌렁 넘어졌던 장미가 기어 일어나며 깔깔깔 웃어 제꼈다. "이런, 이런 샌님이라구야. 하하하…" "농담이라두 그러는 건 아니지." "당신, 참 귀여워. 돈, 안 받겠어. 오늘은 내가 당신을 놀았다고 생각할거야. 그랬어. 오늘은 내가 당신을 논거야. 즐거웠어. 하지만 다신 날 찾지 마." 말을 마친 장미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너무도 뜻밖에 일어나는 장면에 정우는 아연해 있다가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두 장을 뽑아 그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왜 이래? 오늘은. 답지 않게." "순화라 불러, 박순화." 말을 마친 그녀는 쫓기듯 문밖으로 사라졌다… 22년이 흘렀다. 순화, 내가 장미라고 불렀던 박순화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내가 송림각으로 다닌다는 것을 알면 그녀는 뭐라고 말 할까? 8년 후, 정우는 아내와 감정이 맞지 않아 이혼을 했고 가끔 그 일이 생각날 때면 송림각을 찾았다. 환경이 더 우아한 안마원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정우는 송림각만을 고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우는 8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자기가 순화를 아니, 순화와의 그 아릿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닮아있었다. 감쪽같이 자기의 가방에 흑장미가 그려져 있는 흰 봉투를 넣어준 스물한 살에 나는 그 애가 너무도 순화를 닮아있었다. 그녀를 만난 것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정우는 그만 허구픈 웃음을 터쳤다. 여자의 치마 밑을 들추러 다니면서도 마치나 그 어떤 거사를 치르듯 운명마저 거론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흰 봉투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져주지 않았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왜 소리 없이 이것을 가방에 넣었을까? 그 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우는 봉투를 들어 한동안 눈가늠을 하다가 결심을 내린 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잠간이었다. 봉투는 쩍 하니 입을 벌리고 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우는 봉투 안에 오른손식지와 중지를 밀어 넣었다. "악!" 정우는 순간 괴성을 지어 올렸다. 손가락에 집혀 나온 것은 걸찍한 액체가 흐물대는 콘돔이었다. 2 "불쌍하잖아요? 걔들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 터지게 슬펐어요. 걔들이 너무 슬퍼서 머리가 뻥 뚫리게 미쳐버릴 것 같았다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듯싶었다. 담담한 그 목소리가 정녕 그녀의 입에서 흐르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정우는 그녀 쪽에 한 뽐 다가앉아 나불대는 빨간 입술에 눈길을 박았다. 그녀가 정우를 할깃 훔쳐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거든요. 살다보면 그렇게 미쳐버릴 것 같을 때가 많아요. 아니, 미쳐버릴 때가 있다구요." "야!" 정우의 입에서 가시 돋친 함성이 튕겨나갔다. 두 볼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너너, 너 어쩌면…" 결이 나서 부들부들 떠는 정우와 달리 그녀가 사뭇 여유롭게 말했다. "왜 이러세요? 아저씨. 야라니요? 지금, 숙녀한테."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그러건 말건 정우는 정우대로 가쁜 숨을 톺아 올리며 소리쳤다. "숙녀 좋아 하구 있네. 네깟 것이." "프로답지 않아요, 지금 아저씨가. 장미예요. 장미라 불러주세요. 흑장미라 불러두 되구요…" "뭐? 장장, 장미? 흑흑, 흑장미?" "네, 도고하고 거무스름한 빛을 띤 흑장미요." 장미는 말을 마치고 입가에 아지랑이 같이 새물새물 웃음을 피워 올렸다. 정우는 일순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뚫어져라 장미를 바라보았다. 장미라구? 왜 얘가 장미야? 얘얘, 얘는 구경 어느 장미라는 거야? 정우는 사색을 굴리면서 고통스럽게 두 눈을 꼭 감았다. 장미였다. 정우가 너무 놀라 손에서 떨어뜨린 콘돔을 장미가 답삭 입에 물고 꼬리를 하늘거리며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거의 본능적이었다. 정우는 장미를 따라 주방 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내내, 냉큼 뱉지 못해? 뱉으라구." 장미는 냉큼 뱉을 대신 되려 엉뎅이까지 흔들며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분노가 치솟았다. 어디로부터 어떻게 되여 터지는 활화산인지 정우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노하고 분할 따름이었다. 정우는 히스테리 적으로 고래고래 목청을 뽑았다. "밟아죽일 년, 단매에 쳐 죽일 년, 집어먹다 체해서 뒤져버릴 년. 이 개새끼야." 장미라고 부르는 그 "개새끼"는 벌써 콘돔을 구멍내버렸고 콘돔 안에 들어있던 걸찍한 액체는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뿌옇한 그 액체를 보면서 정우는 가슴이 터지는 듯 아팠고 심장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뱉으라구. 이 개새끼야!" 정우는 소리 지르며 장미를 향해 발길을 날렸다. "아악!" 정우가 단말마적으로 괴성을 뽑아 올리며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발은 식탁에 맞았고 몸은 평형을 잃었던 것이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면서 텅 하고 둔중한 소리를 냈다. 순간 눈앞에서 무수한 오각별들이 노오란 빛을 뿌리면서 반짝반짝 춤추었다. 정우는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헤치면서 지끈지끈 덮쳐오는 아픔을 느꼈다. "콩콩콩…" 뜻밖의 사태에 당황했던지 장미가 짖어댔다. 온몸으로 덮쳐오는 아픔을 감지하면서도 정우는 장미의 짖음 소리가 참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픔에 잘 배합된 배경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장미야, 장-미-야-" 웬 일인지 정우의 입을 벗어나온 그 목소리에 야릇한 곡조가 묻어있었다. "자앙미야- 자아앙-미-야-" 정우는 누워서 염불하는 게으른 스님처럼 자꾸 장미만 불러댔다. 콘돔을 씹던 장미가 다가와 푸들대는 정우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정우의 눈귀를 타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굴러 내렸다. 왜 장미였을까? 왜 딱 장미여야 했을까? 아내와 이혼해서 8년이 되던 그해 정우는 친구들의 소개로 딸애 하나가 달린 한 여인을 사귄 적이 있었다. 소학교교원으로 사업한다는 여인은 총명했고 마음씨도 여렸다. 먼저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정우였지만 그 여인이라면 무난하게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겼다. 정우는 그해 늦은 가을에 여인과 그녀의 딸을 집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녀 간의 재결합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 사이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둥글어갔지만 그녀가 데리고 들어온 딸애와는 도무지 둥글어질 수가 없었다. 살림을 합해서 아홉 달이 되던 어느 날, 그녀는 끝내 딸애의 손을 잡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가슴 터지게 아프고 하늘이 무너질 듯 기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상처는 깊었다. 정우는 이생에서 다시는 여자를 집에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 후의 어느 날 오후, 정우는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고 시장에 갔다가 장미를 만나게 되었다. 금방 젖을 뗐다고 했다. 거무스름한 털을 가진 보동보동 살찐 강아지였다. "암컷이꾸마. 귀엽습지?" 강아지를 파는 뚱뚱한 몸매의 한족아줌마가 담배진이 더덕더덕 들어붙은 이발을 버젓이 들어내며 정우를 보고 벙긋 웃었다. "네네, 귀엽네요." "150원씩 하는 건데 아저씨가 딱 사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100원만 받겠습꾸마. 하나두 안 비싸꾸마." 한족아줌마가 큰 선심이나 쓰듯이 말했다. 정우는 아줌마의 거무스레한 이발에 눈길을 주었다가 돌리면서 말했다. "필요 없어요. 150원 들일게요. 데려가면 내 식구가 되는데요." "어마나. 세상에, 세상에… 오늘 귀인을 만났네. 감사합꾸마. 감사하다이. 너 가서 아빠께 잘해야 한다." 아줌마는 강아지대가리를 톡톡 치며 너스레를 떨다가 정우에게 물었다. "이름은 뭐라 하겠슴둥? 얘를." "이름이요? 장미라 하죠. 흑장미요." 왜 장미였을까? 왜 딱 장미였을까? 그때 왜 흑장미가 생각났을까? "왜 장미냐구? 왜왜?" "네?" 장미가 웬 일이냐는 듯 두 눈을 올롱하게 치뜨고 정우를 쳐다보았다. "어?" "참, 장미고 싶어서 장미라 했죠. 왜요? 제가 장미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아… 아니." "놀랐잖아요." 장미가 정우의 어깨를 톡 치며 까르르 웃더니 입을 열었다. "기다렸어요. 찾아올 줄 알았다구요." "왜? 왜 날 기다려?" 정우가 장미 쪽에 얼굴을 돌리며 바투 들이댔다. 장미가 픽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잖아요." "뭐가?" "그런 선물을 받고 궁금해 하지 않으면 그게 되려 이상한 게 아닌가요? "그러니 그걸 왜 내 가방에 넣었는가구?" "말했잖아요." "언제?" "불쌍해서라구요." "누가 불쌍한데? 내가?" "아니요. 걔들이요." "걔들이라니?" "어제 밤, 아저씨가 세상에 내보낸 1억도 넘을 그 애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뭐뭐? 어쩌면… 어쩌면 그런 생각을…" 정우는 대가리 아홉 개를 기웃거리며 엉금엉금 다가오는 괴물을 바라보듯 막연한 눈길로 장미라고 부르는 스물한 살의 애숭이 여자애를 지켜보며 벅벅 말을 더듬었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 왔어요." "그그, 그 일이라면?" "그래요. 아저씨들이 세상에 내보낸 그 애들께 아빠를 찾아주는 일, 흐흐흐…" 정우는 온몸에 으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 송골송골 식은땀이 이마에서 빠직빠직 돋아났다. 정우는 헉헉 모두숨을 쉬면서 주먹을 들어 툭툭 이마를 두르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세세,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너." "저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뭐라구?" "얼마였을까요?" "뭐가?" 대중없이 물어오는 정우를 향해 방긋 웃고 난 장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때, 그 아저씨… 아니 누군지 모르는 저의 아빠가 20대후반이였으니 제일 정력이 왕성할 때라고 봐야겠죠? 그러니 한 2억 마리 정도가 됐으려나? 단번에 최고로 3억 마리까지는 가능하다고 책에서 봤으니까요. 흐흐흐… 2억 마리라고 해두죠. 전 그 2억 마리에서 살아남은 여자라구요." 청산유수같이 쏟아 붓는 장미의 목소리에 승자의 희열 같은 것이 묻어있다고 정우는 생각했다. 다시 꺽 하고 가슴이 막혀왔다. 2억 마리, 2억 마리라니? 내가 왜 그 2억 마리를 생각해야해? 그럼 내 몸에서 지금껏 얼마나 되는 놈들이 빠져나갔을까? "여기서 장미로 통했대요, 제 엄마가." 장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낮은 그 목소리가 되려 천둥번개로 되여 정우의 뇌리를 쳤다. "뭐? 장미로?" 정우가 다잡아 물었다. "그래요. 한 달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어요. 어릴 때는 참 행복했어요. 엄마가 곁에 계셨으니까요. 그때, 마을의 많은 엄마들이 돈 벌러 집을 떠났었거든요.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상점에 가서 먹거리들을 가득 사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 했다구요.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외할머니는 늘 앓음 자랑만 했어요. 엄마가 마을식당에서 일해 버는 돈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나 봐요. 어느 날, 엄마는 한국으로 가는 밀항선을 탄다고 떠났어요. 저를 외할머니한테 팽개쳐둔 채. 석달 쯤 지나서부터 엄마한테서 돈이 왔어요. 외삼촌이 외할머니에게 그 돈을 가져다드렸어요. 전 그 돈으로 학비를 물고 옷을 사고 군것질을 했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전 풀어놓은 들말로 돼버렸어요. 공부보다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미났거든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 애들이 아빠들 손에 잡혀 엉뎅이를 맞으며 집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가끔 나에겐 왜 아버지가 없을까 하고 생각을 했더랬어요.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해준적이 없었거든요. 초중을 중퇴하구 사회에서 한 1년 구을다가 열여덟 살 되던 해에 무작정 북경으로 들어갔어요. 열여덟 살 되는 여자애가 북경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먼저 북경에 간 마을언니의 소개로 ‘천상궁전’이라는 룸싸롱에 들어갔어요. 저의 직업생애가 그렇게 시작된 거죠. 한달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갔어요. 촌장이 외할머니의 핸드폰에 수록된 저의 핸드폰번호를 찾아서 알렸어요. 그래서 돌아온 거죠. 그새 미국에 간 외삼촌은 올수 없는 처지였죠. 엄마도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나가 불법체류자로 있기에 돌아올 수 없었죠. 외할머니가 살던 집을 정리하다가 목책 한권을 뒤져냈어요. 그 책에서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나의 엄마가 송림각이라고 부르는 이 곳에서 장미로 한때를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였구요. 너무도 놀라왔어요. 엄마도 장미로 살았다는 사실이… 그 목책을 가방에 넣어들고 저는 이 도시를 누볐어요. 아직까지 송림각이 존재하려나 하면서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골목들을 참빗질한 거죠. 송림각, 나, 나의 종자가 뿌려지고 자라던 송림각이 이렇게 오늘까지 존재해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그래서 결심했죠. 여기서 건사를 못하고 사는 아저씨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제가 건사해주자구요. 재밌죠? 아저씨." "그래!" "영화 같죠?" "그렇지." "아저씨!" "그, 그 목책 지지, 지금 어디 있니?" "네?" 장미가 정우를 찍어보며 동공을 키우다가 소리쳤다. "아저씨가 왜 그 목책을 찾아요?" 3 "너무 일찍 오셨네요." "네?" 정우는 깜짝 놀라며 머리를 돌렸다. 50대의 한 여인이 넌지시 정우를 살피며 얼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길에는 어딘가 모르게 경계의 빛이 어려 있었다. "아, 네…" 정우는 여인의 눈길을 피하며 말을 더듬었다. "애 데리러 왔나 봐요? 전 이 유치원 부원장이예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여름철엔 5시가 돼야 애들을 내보내요." "네…" "두 시간도 더 남았는데 어디 가서 일을 보시다 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먼저 데려갈라치면 애들이 습관이 돼서 유치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거든요." "그… 그렇겠죠." "수고하세요." 여인은 정우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는 철문오른쪽에 붙은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우는 두 눈을 퀭하니 뜬 채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뒤 모습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체조를 하는 애들 쪽으로 다가가던 여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정우의 눈길도 체조를 하는 애들에게 고정 되였다. 여인이 동작이 서툴러 보이는 한 여자애의 팔을 잡더니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정우도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정우가 갑자기 픽 하고 코방귀를 터쳤다. "프프프… 하하하…" 정우는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싸쥐고 몸을 돌렸다.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우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을 놓았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뒤 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노래 소리가 귀 따갑게 들려왔다. 뒤 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개구리로 된 올챙이는 어떤 모습일까? 엉뚱한 생각이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정우는 걸음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노래 소리가 울리는 마당을 바라보았다. 아까 철문으로 들여다볼 때 체조를 하던 꼬마들이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두 팔을 펴들고 왼다리, 오른다리를 쭉쭉 펴면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란색 통일복장을 입은 애들은 오구구 모여서 볕쪼임을 하는 병아리들 같아 보였다. 귀엽다고 생각 되였다. 달려가서 한 놈을 확 나꿔채 가지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앙큼하게도 머리속에 자리를 쳤다. 정우는 으스스 몸을 떨었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불쌍하잖아요? 걔들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 터지게 슬펐어요. 걔들이 너무 슬퍼서 머리가 뻥 뚫리게 미쳐버릴 것 같았다구요." 장미의 목소리가 가슴을 찢고 들어와 심장에 박히는 것 같았다. 정우는 주먹을 들어 쿵쿵 소리 나게 가슴을 쥐여 박았다. 얼얼해났지만 가슴을 꽉 막은 체증은 종시 내려가지 않았다. 정우는 잠간 숨을 모았다가 후-후-후- 거칠게 내쉬었다. 눈앞이 가물가물해나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지러운 사색의 검불 속에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 당신 아기 가지고 싶다." "으으으…" "나, 당신 아기 가지고 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구!" "순화라 불러, 박순화." 필름은 거기서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때 순화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사실을 알고 나의 의중을 떠보느라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정녕 그랬다면 순화는 왜 다시 나를 찾지 않고 소문 없이 그곳을 떠났을까? 아니야, 아닐 거야, 정우는 더 이상 그대로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철 담장 밑판에 엉뎅이를 붙였다. 꼬물꼬물 꼬물꼬물 꼬물꼬물 올챙이가 뒤 다리가 쑥-앞다리가 쑥- 애들은 여전히 신나게 왼다리, 오른다리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개구리가 되기 위해 신나게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일듯 아물거리는 눈앞으로 거대한 무리가 덮쳐들고 있었다. 올챙이 같았다. 올챙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길을 주니 올챙이가 아니었다. 올챙이보다도 휠씬 더 작은 미물들이 꼬리를 하느작이며 어디론가를 향해 덮쳐가고 있었다. "전 그 2억 마리에서 살아남은 여자라구요." 장미야, 장미야! 정우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장미가 눈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 걔가 온 하루 굶고 있겠구나. 아침에 기분 잡치게 하던 그 사건을 치르느라 장미에게 사료를 주는 일까지 깜빡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장미가 아침이며 점심이며를 모두 굶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안 되지, 걔가 그렇게 배를 곯게 해서는 안 되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걔가 지금 얼마나 애타고 서러울까? 이럴 때가 아니야, 이렇게 여기서 청승을 떨 때가 아니라구… 정우는 급히 길가에 나가 달려오는 택시를 잡았다. 두 때나 굶었지만 장미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여느 때처럼 콩콩 짖으며 꼬리를 하늘거리고 있었다. "장미야, 장미야!" 정우는 되는대로 신을 벗어내치고는 덥석 장미를 품에 안았다. "어디 갔다가 오세요? 보고 싶었어요." 장미의 눈망울이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우는 장미를 가슴에 꼭 가져다 댔다. "정신 나갔었나봐, 내가. 아니, 내가 돌았었어. 너에게 밥 주는 것까지 까먹다니…" 정우는 급히 사료를 꺼내 사발에 쏟았다. "까닥까닥…" 걸탐스레 사료를 먹을 때 나는 소리였다. 아프게 귀를 찌르고 들어온 그 소리는 차츰 정우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정우는 갑갑하던 가슴이 서서히 뚫리는 것 같았다.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던 엄마의 말씀이 귀전을 스쳤다. "장미야." 장미가 머리를 돌렸다. "장미야, 장미야…" 정우는 술에 취한 나그네처럼 두 눈을 퀭하니 뜨고 대중없이 장미만 불러댔다. "…그 책에서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였어요. 나의 엄마가 송림각이라고 부르는 이 곳에서 장미로 한때를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장미야, 정녕 너는 누구냐? 누구란 말이냐? 22년이라는 세월을 장미야, 아니, 순화야, 너는 어떻게 살아온 거냐? 장미였다. 장미는 배부르게 먹었는지 정우의 무릎에 기어올랐다. 정우는 장미를 안아 가슴에 대며 부질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미야, 다 먹었니?" 장미는 정우의 가슴을 파고들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잠이 올 때 터지는 버릇이었다. 정우는 장미의 배를 살살 만져주며 입을 열었다. "배부르게 먹었으니 곤하다 이거지? 허허허…" 웃음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목구멍이 먹먹해지며 코등이 시큰해났다. 정우는 장미를 으스러지게 가슴에 끌어안았다가 활 내려놓으며 벌떡 일어섰다. "콩콩콩…" 웬 일이냐는 듯 장미가 짖어댔다. 정우는 장미의 짖음 소리를 등에 달고 문을 나섰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알았지. 알았다니까. 내 오늘 신시(申时)에 신수 멀끔한 놈 하나가 찾아올 줄 알았다니까." 여인은 손에 들었던 부채를 상우에 탕 내려놓으며 신경질적으로 뇌까렸다. 정우는 그 서슬에 놀라 흠칫하다가 허리를 꺾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할 수 있는 겨? 잡놈들이 자꾸 찾아드는데. 이런, 이런 잡것을 봤능 겨?" 여인이 소리치며 얼굴을 홱 돌렸다. 그 바람에 정우가 흠칫 뒤로 비껴 앉으며 물었다. "저… 저 말입니까?" "그럼, 네놈이지 그래. 여기 누가 또 있능 겨?" 여인이 정우 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게 어디라구 덜렁 들어앉는 겨? 들어앉긴." "네? 방금…" 정우는 뭐라고 더 변명하려다가 여인의 쏘는 듯한 눈빛에 질려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숙였다. 가시 박힌 여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정우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이런, 이런 잡것하구. 이게 어느 안전이라구 그까짓 개방귀 한번 뀌구 들어앉으려는 겨?" "아, 네." 정우는 문득 짚이는 데가 있어 급히 호주머니를 뒤져 1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놈아!" 여인이 좀 전보다도 더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 정우가 한 뽐 또 뒤로 비껴 앉으며 입을 떡 벌렸다. 여인이 손가락으로 정우의 코등을 삿대질하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게 어느 안전이라구 망칙하게 노는 겨? 이 잡것이…" "제… 제가 어어, 어떻게 해야…" "네놈은 그래 내 말이 돈 내놓으라는 소리로 들리는 겨? 냉큼 저것을 걷어 들이구 파란 색으루 한 장 곱게 펴서 올려." "네네." 정우는 몸을 돌리고 급히 돈지갑을 열어보았지만 안에는 50원짜리 돈이 없었다. "어어, 없는데요." "이런, 이런…" "그냥 100원을…" "동동할배, 동동할배- 나 어쩌라는 겨? 이 잡것들을 너그러이 용서하이소…" 여인은 100원짜리 돈을 활 집어가더니 상 밑에서 빨간색 돈지갑을 주어 들었다. 여인은 100원짜리 돈을 지갑에 넣고는 대신 50원짜리 돈 두 장을 꺼내어 정우 앞에 훌 던지며 소리쳤다. "천한 것이, 네놈 눈에는 그게 돈으로 보여? 이건 돈이 아니라 우리 지엄하신 동동할배 뵈러 가는 차표란 말인 겨, 차표라능 겨." "네, 차표요?" "그라이. 차표지, 차표. 차표를 샀으니께 어서 말해 봐봐." "네,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라이. 알고 싶겠지, 당연히 알고 싶을 테지. 기어이 알고 싶을 겨." 여인이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상을 내리쳤다. 탕 하고 상이 울리며 위에 있던 딸랑이북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우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선생님 앞에 선 소학생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 숨을 죽였다. "말하라니께." "네?" "사주팔자를 올려야 할 것 아니여?" "네, 네?" "사주팔자두 모르는 겨? 생신날을 이르라는 겨. 생일 말이여." "네? 네. 1965년 7월 7일입니다." "한 여름에 나온 독하디 독한 독종이네그려. 쯧쯧쯧…" "네?" "한 여름에도 사람 간담 서늘케 하는 놈들이지." 여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뭐라 한참 중얼거리더니 소리쳤다. "뭘 알고 싶은 겨?" "그그, 그해… 그녀가 진짜 내 애를 뱄을까요?" "이런 멍청한 놈 봤나? 그래 제 새끼가 자라는지 마는지도 모르구 살았던 겨?" "……" "낳았어. 낳았다구." "네? 제 애를 낳았다구요?" "그래, 팡팡 잘 자라구 있잖어?" "남자앤가요? 여자앤가요?" 정우는 금시 숨이 넘어갈세라 다잡아 물었다. "사내놈인가?!" "네? 남자애라구요?" "……" 여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또 한참이나 손가락을 폈다 굽혔다를 반복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미를 꼭 닮았네 무슨." "그렇죠. 여자애죠?" "그렇지. 어미를 닮았으니 당연히 계집애지." "그 애를 찾을 수 있을까요?" "거사 하늘의 뜻이지. 옆에 두고도 못 알아볼 수 있으니께. 암, 하늘의 뜻이구 말구." "네? 하늘의 뜻이라구요?" 여인이 두 눈을 스르르 감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왔느냐 왔을 손가 가느냐 떠날 손가 왔다가도 가는 이 떠나는 길 머이 급해 후여- 후여- 후르륵 후여- 여인이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너울거렸다. 두려웠다. 후여- 하는 그 소리에 모든 것이 구중천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듯싶었다. 정우는 올방자를 틀고 앉았던 그 맵시로 급급히 땅을 짚으며 두 뽐쯤 뒤로 물러났다가 머리를 숙이고 엉뎅이를 쳐들며 간신히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전 이만…" "이런, 이런… 여직 이러구 있어? 신수 멀쑥한 놈이." 여인이 주먹으로 상을 내리쳤다. "네? 네." 여인이 상 위에 놓여져 있는 사기그릇에서 뭔가를 집어 정우에게 뿌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빨랑 가보라니께, 큰 일이 터지려구 하는구만…" 4 "어머, 어머- 대단하시다." 문에 들어서는 정우를 보고 마담이 쫑드르르 달려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간드러지게 목청을 뽑았다. 장미, 장미 얘가… 그 생각만 하면서 문에 들어서던 정우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듯 흠칫 몸을 떨면서 머리를 들었다. 벌써 몇 년 째 송림각에 드나들 때마다 얼굴을 보는 마담이었지만 언제나 그 열정은 식을 줄도 모르고 팔팔 끓어 번졌다. 아까 점심에 장미를 찾아왔을 때 마담의 대사는 "어머, 어머… 이 아저씨, 뿅 갔구나. 장미 그 애 죽이죠?"였었다. 마담은 신을 벗고 올라서는 정우의 손을 잡아끌고 쏘파에 다가가며 연신 입을 놀렸다. "어쩌나, 근데 이걸 어쩌나?" "왜요?" 정우가 짧게 물었다. 마담이 잠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 와늘 섭섭하시겠다." "이 아줌마가… 뭐라구 궁시렁거리는 거요? 웬 일인가구 묻지 않소?" "그 애, 그 애 일 들어갔는데." "일?" "네. 아님, 다른 애를? 어리고 이쁘장한 애들이 많은데…" "필요 없어요." "인츰 나오기는 할 건데. 들어 간지 두 시간이 거의 되어 오니까…" 마담이 카운터 뒤 벽에 걸어놓은 벽시계를 힐끔 훔쳐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정우도 그 소리에 눈길을 벽시계에 돌렸다. 시침이 5분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미가 세시에 일을 들어갔다는 말이 된다. "미친놈들." "네?" 마담의 동공이 커지고 있었다. 마담의 반응에 괜히 무엇해난 정우는 서서히 차탁으로 눈길을 돌리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차라도 없어요? 아님 커피나…" "아니, 아니. 너, 쑈표(小朴), 뭐하고 섰냐?" 마담의 눈길이 카운터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곱살하게 생긴 사내애 몸에 박혔다. "네, 인차 올릴게요." 사내애가 주방 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참 멋지다니까요." 마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뭐가요?" "이 아저씨 봐라. 알면서…" "허참, 이 아줌마가…" "아저씨가 참말로 멋지다구요.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구요." "내가요?" "그럼요. 장미, 그 애 참 눈치 빠르구 총명하구 귀엽게만 노는 애라구요. 그런 애를 첫눈에 척 봐내시니 참, 아저씨의 눈썰미를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하기야 아저씨처럼 이 나이에 이렇게 샤프한 분도 많지는 않죠. 순정만화에 나오는 멋스러운 오빠들처럼 오직 한 마음으로 한 여자만을…" 마담의 눈에는 진짜 숭경의 빛까지 어리려고 했다. "아줌마!" 정우가 소리치고는 입이 쓰거웠던지 쩝쩝 다셔댔다. "설탕 몇 개를 넣을까요?" 사내애가 주방 쪽에서 나오며 정우네 쪽을 향해 물었다. 정우는 신경질적으로 사내애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블랙으로 내와. 커피를 팍 넣어서…" "네, 쓰게 탈게요." 사내애가 대답하고 돌아서서 금방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갑자기 ㄱ자로 꺾어 들어가는 그쪽 방에서 웬 남자의 욕지거리가 들렸다. "미친년, 죽자고 작정했어?" 그 목소리는 천둥번개로 되여 크지 않은 송림각을 들깨우고 있었다. 정우의 눈길이 일시에 소리 나는 쪽에 쏠렸다. 마담이 몸을 홱 돌려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카운터에 앉아 손톱눈을 물어뜯고 있던 여자애도 카운터 문을 제치고 나와 소리 나는 쪽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커피 타러 들어갔던 사내애도 웬 구경거리냐는 듯 그쪽으로 달렸다. "년들, 교육 어떻게 시키는 거야, 젠장…" "손님, 손님. 용서해주세요. 무슨 불찰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장미야, 너 손님에게 어떻게 모셨길래…" 뭐, 장미? 마담의 말에 정우가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장미라니? 장미, 그 애가 왜? 정우도 한달음에 소리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103이라는 패쪽이 붙어있는 안마실 문이 열려져있었고 손톱눈을 물어뜯던 여자애와 커피 타러 갔던 사내애와 몇몇 아가씨들이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우는 주저 없이 103호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얼굴색이 검실검실한 40대의 남자가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거친 숨을 헉헉 토하고 있었는데 마담이 그 옆에서 남자의 얼굴을 핼끔핼끔 살피며 손바닥을 뿌벼댔다. 장미가 침대머리에 걸터앉아 남자와 마담을 번갈아보며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왜 이렇게 흥분하세요? 그냥 장난 한번 쳤을 뿐인데." "이년아, 네년은 이렇게 하구 노니? 미친년."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흰 봉투를 장미의 얼굴에 홱 뿌렸다. 흑장미였다. 흰 봉투에 검은색 펜으로 알심 들여 그린 한 송이의 장미가 정우의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또, 또 그 놀음이었구나. 정우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누가 말치 않아도 사태의 엄중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우는 숨을 죽이고 장미와 남자를 살폈다. "왜 이래요? 답지 않게…" 장미 쪽에서 되려 눈을 곱게 흘기며 남자를 힐난했다. "뭐야? 이년이 진짜루 살기 싫었군." 남자기 갑자기 여린 토끼에게 덮치는 늑대마냥 장미의 머리채를 검어 쥐고 좌우로 흔들었다. "놔요. 이 손을 놔요." 장미가 숨이 넘어가게 소리쳤다. "이년아, 죽고 싶다며? 장난치구 싶다며." 남자가 주먹으로 장미의 얼굴을 들이쳤다. "악!" 장미가 숨이 넘어가듯 비명을 질러 올렸다. "그만!" 정우가 갑자기 괴성같이 소리 지르며 덮쳐들어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남자가 장미의 머리채를 잡았던 손을 풀고 정우의 팔을 틀어잡으며 머리를 돌렸다. "웬 일이요?" "그만하라구." "이 나그네, 왜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요?" 남자는 말하면서 정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탈았고 정우는 그럴수록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 남자가 갑자기 뒤로 머리를 날렸다.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우의 코등이 남자의 뒤통수에 맞았다. "으윽-" 정우가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허리에서 손을 풀고 코등을 부여잡았다. 정우의 손가락사이로 검붉은 피가 새여 나왔다. "피…피…" 마담이 피 흐르는 정우의 코등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삽시에 장미의 얼굴에 손바닥을 날렸다. "미쳤어? 네년이." "쳤어? 날!" 장미도 날렵하게 달려들어 마담의 머리채를 틀어잡았다. "에잇, 더러워서. 개똥을 밟았잖아." 남자가 툭툭 손을 털며 몸을 돌려 출입문 쪽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마담이 장미의 손에서 머리를 빼면서 급히 소리쳤다. "손님, 돈을 내고 가야죠. 쑈표, 그 손님, 결산 안하셨다." 마담이 남자를 따라 문 쪽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아저씨, 너무 터프해요." 달콤한 바스음이었다. 정우는 흐르는 코피를 주먹으로 닦으며 소리 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장미가 침대머리에 서서 웃고 있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내가 말했지?" "저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고 했잖아요?" 장미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쓸어 올렸다. "언제까지 하려니?" "뭘요?" "그 놀음을." "글쎄요." "제발 인젠 그만해라." "제발? 아저씨, 방금 제발이라구 했어요?" 장미의 두 눈이 동그랗게 굳어졌다. 정우가 손으로 피 흐르는 코구멍을 꼭 막고 서서 약간 숨이 찬 듯 씩씩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제발이라구 했다. 왜?" "그 말에 내가 방금 감동 먹을 번 했잖아요? 제발이란 말은 가슴 아프게 속에다 담고 사는 사람에게만 쓰는 말이 아닌가요? 흐흐흐… 아저씨, 와늘 내게 꽂혔구나? 글쵸? 아저씨." 정우를 빤히 쳐다보는 장미의 눈확에 장난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정우가 장미의 커다란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목소리를 깔았다. "널 보면 참 측은해져." "네? 절 보면 측은해진다구요? 설마…" "설마라니?" "측은하다면서 그렇게 아귀아귀 늑대처럼 걸탐스레 나를 잡아 잡수셨어요? 어제 밤에." "너…너…" "학교는 강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학교를 강남학교라고 불렀죠. 비가 오면 강이 불면서 물살이 여간만 세지 않았어요. 그때 강에는 출렁다리가 놓여있었는데 쇠사슬 위에 놓여 진 널판자가 몇 군데 떨어졌더랬어요. 비 오는 날 쏴쏴 소리치며 흐르는 강물위로 출렁다리를 건너기란 그처럼 무서운 일이였어요. 비 오는 날이면 거의 집집마다 아버지들이 자식들 마중을 오군 했더랬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데다 엄마까지 마을식당에서 일을 보다나니 누구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 나는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목에 서서 발만 동동 굴렀어요. 아는 사람들이 함께 다리를 건너자고 했지만 왜 그게 그렇게 싫던지… 아버지 있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 부러움이 나중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변했어요. 아버지가 뼈 속까지 미워지던 그런 날이면 나는 일부러 엄마나 할머니를 보고 아버지를 내라 떼질을 썼어요. 그때마다 엄마나 할머니는 그저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계신다고만 말했어요. 하늘나라에 계신다는 것은 세상 뜨셨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다시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었어요. 왜 세상을 뜨셨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아버지가 옆에 계시는 것 같은 환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참으로 측은하다고 생각했어요. 측은하다구요." "……" "아저씨, 아빠가 참으로 측은하다고 생각했었다구요." "어, 응?" "참, 저의 말을 듣고 있었어요?" "그래, 들었지." "전 아저씨가 되려 측은해보여요. 오세요." 장미가 침대머리에 걸터앉으며 정우를 불렀다. 정우는 코구멍을 막았던 왼쪽손가락을 떼고 오른손으로 코구멍을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어, 머… 멎었네." "오세요." 장미는 물수건을 한 장 뽑아들고 정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닦아드릴게요. 멋졌어요." "멋졌어요?" "흑기사 같았다구요. 아까 와늘 아저씨께 꽂힐 번 했어요." "장미야." "네?" "너너, 너…" 정우는 일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장미는 물수건으로 정우의 얼굴을 씻다말고 왜 그러세요 하는듯한 눈길로 빤히 쳐다보았다. "장미, 너 이년아.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냐구?" 급한 걸음소리와 함께 욕지거리가 먼저 들려왔다. 장미는 천천히 정우의 코등에 묻은 피를 문지르며 입가에 넌지시 실웃음을 피워 올렸다. "장미야, 우리 가자." 정우가 장미의 손을 밀치며 나직이 말했다. "어디루요?" 장미가 바투 들이댔다. "그 뒈질 놈이 기어코 돈을 안 내고 갔다. 장미야, 너 어떻게 할래? 로임에서 뗄 테다. 그런 줄 알어. 로임에서. 너 그 사람하구 무슨 장난을 친 거니? 설마 그게 사실이야? 그그, 그걸 봉투에 넣어 줬다는 게…" 마담이 입으로 침을 튕기며 연발탄을 쏘았다. 장미가 손에 쥐고 있던 물수건을 돌돌 말아 쥐고 흔들다가 휴지통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떼세요. 떼라구요." "너, 섭하다구 말아라." "아니요. 섭하긴요. 아저씨, 아저씬 제가 그렇게 좋아요? 저도 아저씨가 좋은데." "……" "어머- 아저씨 수집어 하는 거 좀 봐. 가요 아저씨." 장미가 정우의 손을 잡았다. 뜻밖의 거동에 정우도 마담도 놀라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가자면서요. 아저씨 요구에 손을 들어준다니까요. 가요, 우리." "그래, 우리 가자."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아라. 아저씨, 잠간. 저, 가방 가지러 가요." 말을 마친 장미가 어느새 문밖으로 사라졌다. 정우는 넋을 잃은 듯 잠간 멍해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장미를 따라 나갔다. "세상에, 세상에… 요즘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험하다 해도 어쩌면 새파란 것이 그새 애비 같은 사람과 눈이 맞아서…" 마담의 푸념이 뒤에서 들려왔다. 5 "후회 안할 자신이 있어요?" "후회라니?" 정우가 걸음을 멈추고 장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장미도 멈춰 서서 이윽토록 정우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지금 섶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아세요?"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장미의 얼굴에 가는 웃음이 스쳐 지났다. "집에 가자면서요, 절 보구 아저씨네 집에 가자면서요." "그런데?" "제가 아저씨네 집에 가면 뭐가 될까요? 안마방에서 남자들의 몸을 주물거리던 제가 아저씨네 집에 들어서면 뭐가 될지 참 궁금해지네요. 아니에요? 아저씨." "장미야. 잠간, 저기 오네." 정우가 말끝을 흐리면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아저씨." "왜?" "저… 안 갈 거예요." 장미가 정우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들며 말했다. "안 가다니? 그새 마음이 변한거야?" 정우가 장미의 얼굴에 눈길을 박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장미의 눈빛이 타는 듯 집요했다. "아니요. 원체 아저씨를 따라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그곳을 나오기 위한 방패였어요." 말을 마친 장미가 달려오는 택시와 반대방향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정우는 택시를 잡다 말고 몸을 돌려 장미를 따라 잰걸음을 놓으며 소리쳤다. "잠간, 장미야. 거기 서." "아니요. 관계 말아요." "서라는데, 거기." 정우가 뛰어 가 장미의 손에 들려있는 가방을 나꿔챘다. 장미가 급히 머리를 돌려 정우를 쏘아보았다. 정우가 장미의 눈길을 피하면서 말했다. "너, 무작정 어디로 간다는 거니?" "아저씨야 말로 무작정 웬 관심이 이렇게 많아요? 아저씨가 절 얼마나 알아요? 무슨 목적으로 이래요?" "너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좋았어요? 하긴… 아귀아귀 잘도 드신다했더니." 장미가 입가에 찬웃음을 피워 올리며 흥 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정우가 장미 옆으로 다가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암튼… 우리 먼저 집에 가자. 집에 가서 한숨 쉬면서 다음 일을 생각하자." "다음 일이요?" "그래… 다다, 다음 일을 생각하자구…" 정우가 장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싫다구요, 절 내버려둬요." 장미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 모양으로 선자라에 버티고 서서 몸을 탈았다. "얘야, 말을 들어라. 아부지가 참 안타까와 하는 것 같은데…" 일여덟 살 쯤 되는 남자애의 손목을 잡고 골목을 나오던 웬 할머니가 정우와 장미를 지켜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네?" 정우와 장미가 동시에 소리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할머니가 남자애의 어깨를 다독이며 끌끌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애들이 어찌자구 이러는지 쯧쯧쯧… 우리 이 도깨비도 제 맘이 내키지 않으면 입에서 범이 나오는지 구렝이가 나오는지 가리지 않는다오. 성깔머리는 또 얼마나 사나운지…" "네, 할머니…" "애비어미가 곁에 없다구 어랑어랑하구만 키워서 그런지 쯧쯧쯧… 처네, 아부지 말을 듣소. 다 잘 되라구 하는 것 같은데…" "네? 할머니, 방금 아버지라 그랬나요?" 장미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서서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미의 거동에 할머니가 흠칫 놀라는가싶더니 한풀 꺾인 목소리로 장미에게 물었다. "양, 그럼 아부지가 아닌감?" "흐흐흐…" 장미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자애의 입에서 나오는 웃음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섬뜩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장미는 주먹으로 눈확을 찔끔찔끔 누르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옳아요. 아버지가. 아버지, 가요. 우리 집에 가요. 흐흐흐…" 장미가 길옆으로 다가가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저었다. "콩콩콩…" 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리는 소리가 나자 집안으로부터 강아지 짖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미가 얼굴에 가는 웃음을 피워 올리며 물었다. "강아지를 키워요? 아저씨." "그래… 몇 년 째 식구처럼 키우는 강아지야." 정우가 머리를 끄덕이며 열쇠를 뽑아 호주머니에 넣고는 문을 당겨 열었다. 장미가 퐁퐁 뛰며 정우의 발치에서 달려들었다. "그래,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내 새끼." 정우는 장미를 품에 안고 신을 벗으며 말했다. "올라가자. 집에 왔으니." 정우는 장미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가방을 받아들고 침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가방은 먼저 침실에 들여다 놓자. 그리고 넌 거실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거라. 나 인차 커피를 끓일게." "……" "어려워 말아라. 제 집이라 생각하구." "그리구 또 아버지라 생각할까요?" "강아지를 키워요? 아저씨." 하던 순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딘가 불만이 가득 차서 잔뜩 비틀어진 듯한 어조였다. 역시 애들이야, 기분이 장백산날씨보다도 더 빨리 변하니… 정우는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빼어 물었다. "리모콘 다룰 줄 알지? 윗 쪽의 파란 단추를 눌러 텔레비전을 켜라." 정우는 주방으로 들어가 찬장 문을 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장미가 따라 들어오며 정우의 발치에서 설쳐댔다. "넌 저기 가서 언니하구 놀아라. 아빠는 커피를 끓여야 하니까." 정우는 커피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장미는 여전히 정우의 바지자락을 물어 당기면서 끙끙 앓음 소리를 했다. "저리 가라는데, 장미야. 가라니까." 정우는 장미에게 발길을 날리며 소리쳤다. "깨갱- 깽" 장미가 저쪽에 채여 나갔다가 다시 정우의 발치에 다가들었다. "가리니까, 장미야.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정우는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거실에서 장미의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웬 일이예요?" "뭘?" 정우가 커피잔을 들고 거실에 나오며 물었다. "섭하네요. 아직 엉뎅이를 붙이지도 못했는데 가라니요?" "뭐, 가라니? 누가?" 정우가 깜짝 놀라며 모르겠다는 듯 장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미의 얼굴이 흐려지고 있었다. "흥, 이런… 능청스럽긴. 방금 가라니까, 장미야 했잖아요?" "방금? 아, 어!" "네?" "허허허…" 정우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장미는 그러는 정우의 입술을 날이 선 눈길로 찍어보았다. "오해마라. 네가 아니라 쟤를 가라고 했어. 자꾸 발치에 와서 애먹이잖아?" "쟤라니요?" "쟤, 쟤를 그런다니까." 정우가 강아지를 가리켰다. 장미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쟤… 쟤를 그랬다구요?" "그럼, 쟤 이름이 장미거든." "쟤가 왜 장미예요?" "참, 쟤가 왜 장밀 수 없니?" "아니에요. 흐흐흐… 쟤가 장미라구요? 쟤가? 흐흐흐…" 웃음소리가 음침하게 들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못내 가슴이 침침해났다. 장미가 웃음을 거두고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주먹으로 닦으며 말했다. "쟤가 장미라면 전 더 이상 장미로 안 살래요." 장미가 몸을 일으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등을 쓸어주다가 저쪽으로 활 팽개치며 뾰로통해서 말했다. 그러는 장미를 바라보며 정우가 익살스럽게 한마디 했다. "개에게 이름을 양보하는 거니? 그럼 너는 뭐라구 할 건데?" 장미가 잠간 입술을 감빨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저야 제 진짜 이름을 써야죠." 그 말에 정우의 동공이 커졌다. "너, 제 이름이 뭔데?" "화요." "화라구?" "박화. 왜요? 제가 꽃 같지 않아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구…" "엄마는 제가 꽃이기를 바랐었나 봐요. 그래서 꽃 화자를 이름으로 주었겠죠. 하지만 비틀어질 내 팔자라구야… 개떡같이… 들꽃이라면 또 모를까… 그래서 북경에 있을 때 장미로 살았어요. 흑장미로." "흑장미로?" "네, 흑장미요. 흑장미의 꽃말이 무엇인지 알아요?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래요. 손님들 앞에 흑장미예요 하고 소개하면서 나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에요 하고 생각했더랬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정성껏 손님들을 위해 봉사했어요. 북경에서, 아니 천상궁전에서 저, 꽤 잘나가는 에이스였어요." "그랬었구나." 정우는 도도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장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속으로 한마디 중얼거렸다. "반응이 왜 그래요?" 장미, 아니 화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있었다. "응? 아니…" 정우가 머리를 흔들었다. 금세 화의 입가에 웃음이 찰랑거렸다. "웃기죠? 아저씨." "뭐가?" "저, 영어를 자습하고 있어요." "영어를?" "네. 외국인이 많았어요. 코대가 높은 인간들을 상대하려면 일상용어는 영어로 구사할 수 있어야 했어요. 하니까 되더라구요. 인젠 제법 안에서의 대화는 영어로 답새길수 있어요." 화는 차탁 우에서 커피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얘야." 정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화는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정우 쪽에 눈길을 돌렸다. 정우는 일시 뭐라고 말끝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엉뚱하게 한마디 했다. "너, 흑장미를 본 적 있니?" 화가 커피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정우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왜 그러세요?" 정우는 화의 빨간 입술을 이윽토록 응시하다가 속삭이듯 물었다. "흑장미에도 가시가 있지?" "물론… 있죠. 있어야죠. 것도 장미니까요." 말을 마친 장미가 하회를 기다리듯 정우의 입술에 눈길을 주었다. 정우가 두 눈을 멍하니 뜨고 천정을 하염없이 응시하다가 천천히 머리를 돌려 화에게 눈길을 주었다. "20여년 전이였지. 그때도 나는 흑장미라고 부르는 한 여인을 알게 되였단다." "저와 닮았다는…" 화가 다잡아 물었다. "그래, 역시 송림각이었어." "그랬군요." 화가 커피잔을 차탁 우에 탕 하고 올려놓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나, 당신 아기 가지고 싶다 하고 말하는 거야." "그그, 그래서요?" "박순화라 부른다 했어. 그녀 절로…" "바바, 박순화라구요?"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 거야. 사람들에게 끌려 다시 송림각에 갔을 때 박순화라는 본명을 가진 흑장미는 그곳을 떠나고 없었어. 따져보니 그새 내가 근 반년이나 송림각에 가지 않았던 거야." "가시에 찍힐까 두려웠던 거죠?" 화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있었다. "후-" 정우가 길게 한숨을 토하고 아래 말을 이었다. "그랬던가봐… 나는 장미와의 인연이 그렇게 끝나는 것으로 알았단다." "그래, 끝났어요?" "쟤를 장미라 부르고 싶었어. 흑장미라구." "쟤를요? 모르겠어요. 건 왜서죠?" 화는 천천히 눈길을 돌려 장미를 찾았다. 자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정우에게 실망했던지 장미는 쏘파 밑에 옹송그리고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후-" 정우가 또 한번 한숨을 톺았다. "장미야." 화가 일어나 장미 쪽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굽혀 장미를 끌어안았다. 장미는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는 말없이 장미의 등을 쓸어주다가 천천히 침실 쪽으로 다가갔다. "화, 박화야." 정우의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화가 침실 문을 열다 말고 머리를 돌렸다. "아저씨, 수수께끼 하나 내드릴까요?" "뭐? 수수께끼?" 정우의 눈길이 화의 입술에가 박혔다. 화가 입가에 실웃음을 피워 올리며 천천히 쏘파에 다가와 앉았다. "20여 년 전, 안마방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살던 한 여자가 있었대요. 어느 날, 그녀는 문득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대요. 안마방에서 날마다 남자들을 접대했던 그녀는 그 애가 누구의 애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대요. J의 앤가 싶으면 K가 의심되고 또 Z도 빼놓을 수 없었거든요. 하루 밤에 세 명의 남자도 접대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아저씬 알 수 있어요? 그 애가 과연 누구의 애인지?" 화가 잠간 말을 멈추고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우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감겨진 정우의 윗 쪽 눈까풀이 무시로 팔딱팔딱 뛰었다. 화가 일그러져가는 정우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잘래요. 푹 자야 내일 또 새 힘이 솟거든요…" 화가 침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우는 움직이는 화의 뒤 모습에 눈길을 박았다. 화가 입은 하얀 T 셔츠 등에 찍혀진 흑장미 한 송이가 아프게도 정우의 눈을 파고들었다.
516    내 블로그는 봄이다 댓글:  조회:3098  추천:1  2013-03-24
아무리 기다려도 봄은 아니온다. 올것처럼 하나가도 깜짝 몸을 숨기는 봄이라는년, 간밤엔  또 무슨  언잖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눈가루까지  살짝 뿌려놓았다. 어제만 같아서는 당금 강이라도 풀릴것 같더니... 기다리지 말자. 음식 잘못 먹고 체한년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올수도 없는 일... 그래서  내 블로그에다 먼저 봄을  불러왔다. 내 블로그는  봄이다.
515    백구그네대 * 막언 댓글:  조회:3141  추천:3  2013-03-15
    백구그네대   막언      고밀현 동북향에는 워낙 흰털을 가진 온순한 성격의 체대가 큰 개들이 많았다. 하지만 몇대를 내려온 지금에 와서는 거의 순종을 찾아볼수 없다. 지금 그곳에서 기르는 개들은 거의다 잡종이다. 간혹 흰털의 개들도 볼수는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역시 어느 한 부위에 잡색을 띠고있어 혼혈의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 잡색 털의 면적이 전반 개털 면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또 그렇게 눈에 뜨이는 부위에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백구”라고 부르지 구태여 그 뿌리를 찾아 무슨 품종인가를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온몸이 흰털로 뒤덮였지만 앞발에 약간 검은 털이 섞인 백구가 대가리를 푹 떨구고 당금 허물어질것 같은 돌다리를 지나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다리아래의 돌계단을 딛고 서서 맑은 물에 세수를 하고있었다.   음력으로 7월말이라 지세가 낮은 동북향은 한창 찜통더위에 몸살을 하고있었다. 내가 공공뻐스에서 내려보니 찐득찐득한 땀으로 하여 적삼이 등에 찰싹 달라 붙었고 목이며 얼굴에는 황토가루가 한벌 내려앉았었다. 나는 얼굴이며 목을 깨끗하게 씻느라했지만 도무지 개운함을 느낄수 없었다. 나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둥이 그대로 강에 뛰여들어 물장구라도 치고싶었다. 하지만 돌다리와 가까운 길옆의 갈색을 띤 밭머리 소로길에서 사람들이 오가는것이 보였기에 마음을 고쳐 먹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미혼처가 선물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이며 목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닦았다. 시간은 정오를 넘기고있어서 태양이 약간 서쪽으로 기울었다. 한줄기 동남풍이 불어와 시원하게 페부에 스며들었다. 수수송치가 한들한들 춤을 추면서 스륵스르륵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백구는 흰 털을 빳빳이 세우고 꼬리를 흔들거리면서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백구의 앞발에 있는 검은 털을 보아낼수 있었다.   앞발에 검은 털을 가진 백구는 다리목까지 와서 걸음을 멈추고 대가리를 돌려 지나왔던 황토길을 돌아보다가 다시 흐릿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깊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 깊고 처량함에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암시 비슷한 뜻이 숨겨져있는듯싶었다. 그 깊고 처량한 암시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가 대학에 붙어 고향을 떠난후 아버지도 외성에 있는 형님네 집으로 가 살았기에 고향에는 사실 친척이 없었다. 하기에 나도 고향을 찾을 리유가 딱히 없었던것이다. 그새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1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라고 해야겠다. 여름방학전에 아버지는 내가 임직해있는 학원으로 찾아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가슴은 몹시도 설레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짬을 타서 고향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내가 잠시 일이 많아 몸을 뺄 새가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머리만 설레설레 저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나는 웬지 가슴이 불안했다. 여름방학을 하자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모든 일을 팽개친채 고향행을 선택했던것이다.    백구는 대가리를 돌려 갈색의 황토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쪽으로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백구의 눈길은 여전히 그처럼 흐릿해있었다. 내가 백구의 앞발에 난 검은 색 털을 바라보면서 놀랍게도 무엇인가를 떠올리고있을 때 백구가 내밀었던 뻘건 혀를 거두어들이더니 나를 향해 컹컹 짖었다. 이어 백구는 다리목의 석판에 다가가 습관적으로 뒤다리 하나를 쳐들고 오줌을 쐈다. 일을 마친 백구는 내가 내려온 다리아래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내곁에 다달은 백구는 꼬리를 뒤다리사이에 가져다 붙이고 뻘건 혀로 한번 또 한번 물을 찍어마셨다.   백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같았다. 하기에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물을 마시면서 심심풀이를 하려는 심사같았다. 물에는 처량한 백구의 표정이 그대로 비꼈다. 물고기들이 쉼없이 백구의 얼굴이 비낀 물속을 스쳐지나고있었다. 백구와 물고기들은 조금도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때 개 비린내와 물고기 비린내를 맡고있었다. 나는 단번에 백구를 강물에 차넣고 물고기들을 잡아버리고싶다는 무서운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지 하며 자신을 달랬다. 그때 백구가 꼬리를 치켜들며 차디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리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백구가 목덜미의 털을 빳빳이 치켜세우고 오던길을 따라 헐레벌떡 올가는 장면을 지켜보고있었다. 이삭이 약간 초록빛을 띤 수수들이 길량옆에 숲을 이루면서 무연하게 펼쳐져있었다. 하얀 구름이 송이송이 피여난 파아란 하늘이 네모난 밭뙈기들로 이어진 벌판에 내려앉은듯싶었다. 나는 다리목까지 걸어가 행리를 주어들고 급히 다리를 건너려고 서둘렀다. 그곳에서 내가 살던 마을까지는 12리나 떨어져있었다. 올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일찍 마을에 도착해야 주숙을 해결하기 쉬울것이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굴리며 걸음을 옮기고있을 때 백구도 내앞에서 반달음을 했다. 나는 길옆 수수밭에서 커다란 수수잎묶음을 등에 진 한 사람이 걸어나오는것을 발견했다.    전에 나는 농촌에서 근 20년을 살았기에 수수잎은 소나 말의 최상의 사료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수수알이 밸 때 떡잎을 따도 수수 산량에는 영향이 없다는것도 알고있었다. 멀리에서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을 등에 지고 힘겹게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나는 웬지 가슴이 무거워남을 느꼈다. 찌는듯이 무더운 여름날, 바람 한점 뚫기 힘든 수수밭에 들어가 떡잎을 따기란 얼마나 힘들다는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땀으로 온몸이 적셔지고 옷이 가슴에 착 달라붙어 숨 쉬기조차 힘든것은 제쳐두고라도 수수잎에 난 잔털이 찐득찐득 땀이 내배인 피부에 달라붙어 근질거리는 그 고통은 실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는 괜히 갑갑해 나는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였다. 차츰 수수잎묶음을 지고 다가오는 사람의 륜곽이 보였다. 푸른 마고자에 검은 바지를 입었고 거무스름한 발에는 누르스름한 고무신을 신고있었다. 긴 머리칼만 아니라면 나는 실로 그가 녀자라는것을 믿을수 없을것이였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머리는 땅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있었는데 쑥 내민 목이 아주 길어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어깨에 가는 아픔을 경감시키려는 동작같았다. 그녀는 한쪽손으로 어깨를 조이는 끈의 아래쪽을 꼭 잡고 다른 한쪽손은 목뒤로 가져가 끈의 다른 한쪽을 틀어쥐고있었다. 해볕은 그녀의 목이며 두피에 배여나온 땀방울을 반짝반짝 비추고있었다. 담록색의 수수잎은 사뭇 신선해보였다. 그녀는 한발짝한발짝 힘겹게 걸음을 옮겨 끝내 다리에 올라섰다. 다리의 너비는 그녀의 등에 지워진 수수잎묶음의 너비와 비슷했다. 나는 방금 백구가 멈춰섰던 다리목의 석판우에 물러서서 그녀와 백구가 먼저 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렸다.   나는 백구와 그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구는 기분에 따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적느적 걸음을 옮겼고 그 끈도 때론 빳빳하게 때론 느슨하게 이어지는것 같았다. 그들이 내 앞에 다달았을 때 백구가 그 깊고도 처량한 두눈으로 나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백구의 눈에서 뿜겨져나오는 그 흐릿한 암시는 순간 똑똑하게 보여지는것 같았다. 백구의 검은 털이 약간 있는 두 앞발은 순식간에 나의 머리속에서 맴돌던 의문의 타래를 풀어주었다. 나는 인차 그녀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머리를 푹 숙인 그녀가 내앞을 스쳐가고있었다. 힘겨운 숨소리와 코를 찌르는 땀냄새가 내 가슴속 밑자락에 깊숙이 숨어있던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가 갑자기 등에 지고있던 커다란 수수잎묶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이 그녀의 뒤에 덩그라니 놓였는데 그녀의 젖가슴과 높이를 비슷하게 하고있었다. 그녀의 몸이 대였던 부분이 선명하게 옴폭 패여들어가있었다. 특히 힘을 받았던 부분의 수수잎들은 땀에 짓이개져있었다. 수수잎이 짓이개질 정도로 힘을 받았을 그녀의 신체 부위들이 선들바람에 특별히 시원하게 느껴질것이라는 야릇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녀는 온몸이 홀가분함을 느끼게 될것이고 순간이나마 그로부터 오는 만족을 느낄것이였다. 홀가분함, 만족 그것은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로 될수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도 그런것들을 피부로 느낀적이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있었는데 잠시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은것 같았다. 얼굴에 덮씌운 먼지가 땀에 반죽되여 얼기설기 고랑을 짓고있었다. 쩍 벌어진 입으로는 헉헉하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졌다. 그녀의 덩실한 코등은 잘 자란 파를 련상케 했고 이발은 하얗게 빛났다.   나의 고향마을에는 예쁜 녀인들이 많았는데 옛날에는 궁전에 들어가는이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몇몇은 북경에 들어가 영화배우로 활약하고있다. 그 몇몇 배우들을 나도 본적이 있지만 지금 내앞에 있는 그녀보다 별로 나은데가 없다고 느껴졌다. 만약 그녀도 그때 상처만 입지 않았어도 지금쯤은 북경에 들어가 큰 배우로 되였을지 모를 일이였다. 십여년전 그녀는 확실히 피여나는 꽃송이를 방불케 했고 별처럼 반짝이는 두눈을 가지고있었다.    “난!”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는 왼쪽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흰자위에 실실이 피발이 어려있었는데 나에 대한 증오가 불타는듯싶었다.   “난, 고모!” 나는 나를 모르겠느냐는듯한 어조로 다시한번 그녀를 불렀다.   나는 그해 29살이였고 그녀는 나보다 2살이 어리였다. 고향마을을 떠났던 그 십년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은듯 했다. 만약 그때 그네를 타다가 빚어진 그 사고의 흔적만 아니라면 나는 실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것이다. 백구도 나의 아래우를 찬찬히 뜯어보고있었다. 그러고보니 백구의 나이도 12살이나 되였다. 그러니 응당 백구가 “만년”에 이르렀다고 해야할것이였다. 나는 백구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는게 놀라울뿐이였다. 백구는 살아있을뿐만아니라 매우 건강한것 같았다. 그해 단오절, 백구는 겨우 롱구뽈만 했었다. 아버지는 현성에 사는 외삼촌네 집에서 그놈을 안아왔다. 12년전, 마을에는벌써 순종의 백구가 자취를 감추었었다. 백구처럼 약간 흠이 있지만 그런대로 백구라고 부를수 있는 개도 찾기가 힘들었다.잡종 개들이 마을을 채울 때 아버지가 그놈을 안아오자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을 보냈었다. 어떤 사람은 돈 30원을 내놓으면서 그놈을 사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 무렵, 농촌에서 특히 우리 고밀현 동북향과 같은 황페한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개를 기르고있었다. 우리 마을은 뜻밖의 자연재해만 없으면 그런대로 배를 불릴수 있는 곳이였다.   내가 19살, 난이 17살, 백구가 4달에 나던 그해였다. 한패 또 한패의 해방군들이, 한대 또 한대의 군대차들이 북쪽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지나 물밀듯이 돌다리를 건넜다. 우리 중학교에서는 거적으로 막을 치고 물을 끓여 해방군들에게 권했다. 학생선전대는 막옆에서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다리는 매우 좁았다. 첫대의 군용차가 조심조심 다리를 건넜다. 두번째의 군용차가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다리옆의 석판을 분지르면서 강에 떨어지고말았다. 차에 실었던 솥이며 대야며 사발 같은 취사도구들이 적지 않게 박산이 났다. 강에는 기름방울이 둥둥 떠다녔다. 전사들이 강에 뛰여들어 운전수를 들어내려 언덕으로 올려왔다. 운전수의 몸에서는 그때까지도 흙탕물이 줄줄 흐르고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운전수쪽으로 모여들었다. 흰 장갑을 낀 사람이 나팔을 들고 뭐라고 소리쳐댔다. 나와 난은 선전대의 골간이였다. 하지만 북을 치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것마저 잊고 운전수가 누워있는쪽을 흘끔흘끔 곁눈질 했다. 잠간후 높은 수장 같은분들 몇몇이 다가와 우리 학교 빈하중농대표 곽곰보할아버지와 학교 혁명위원회 류주임과 악수를 했다. 그후 다시 장갑을 끼고 우리를 향해 손을 젓고는 그 자리에 서서 대오가 강을 건너는것을 지켜보았다. 곽곰보할아버지가 나에게 피리를 불라고 지시했고 류주임이 난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를가요?” 난이 물었다. “ ‘그대들은 친인같아요’를 불러라.” 류주임이 대답했다. 나는 피리를 불고 난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전사들은 줄을 지어 다리를 지나갔다. 군용차들이 물을 건넜다. “흐르는 강물은 맑디맑고/곡식들은 골짜기를 덮었네” 군용차가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지나가자 그 뒤로 혼탁한 흙물이 일었다. “해방군들 마을에 와/우리를 위해 가을걷이를 하네” 큰 차들이 모두 강을 건넌후 찌프차 두대가 주춤주춤 강에 들어섰다. 그중 한대가 먼저 나는듯이 강을 건너며 5, 6메터쯤 되는 물기둥을 일으켰다. 다른 한대도 그 뒤를 따라 강에 들어섰지만 웬 일인지 부릉부릉 소리만 내다가 발동이 꺼졌다. “오가는 한담들에/흘러간 옛 이야기 머리속을 감도네” “젠장!” 한 수장이 투덜대자 다른 한 수장이 소리쳤다. “제미랄, 돌대가리같은것들, 왕말라꽹이를 불러다 차를 끌어올리라구해!” “한가마밥을 먹고/한 등잔밑에 산다네” 잠간새에 몇십명의 전사들이 강에 들어가 발동이 꺼진 찌프차를 밀기 시작했다. 전사들은 모두 군복을 입은채로 강에 들어갔다. 강물은 무릎아래에 닿았지만 물이 튕겨 모두들 가슴까지 젖었다. 물에 젖어 색이 진해진 군복이 전사들의 몸에 착 달라붙어 저마다의 가슴이며 엉뎅이 곡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대들은 우리의 친혈육이라네/그대들 마음 우리와 이어져있다네” 흰 가운을 입은 몇몇 사람이 그때까지도 옷에서 흙탕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전수를 들어 붉은색 십(十)자가 박혀져있는 군용차에 올렸다. “당의 은정 헤아릴수 없네/그대들을 만나면 친인을 보는것 같다네” 그때 한 수장이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그도 다리를 건너려는것 같았다. 나는 다시 피리를 불었고 난은 다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우리의 눈길은 여전히 그 수장의 몸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검은테 안경을 건 수장이 우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노래를 참 잘 부르는구나. 피리도 괜찮게 부는군.” 곽곰보할아버지가 그 말에 동을 달았다. “수장동지들이 수고가 많다고 쟤들이 저렇게 피리를 불구 노래를 하는겝니다. 괜히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곽곰보할아버지는 담배 한곽을 꺼내 아구리를 뜯더니 한가치를 집어서 공경스럽게 수장에게 권했다. 수장은 공손하게 담배를 사절했다. 바퀴가 여러개 달린 군용차가 강 맞은쪽에 와 멈춰 서더니 우로부터 몇몇 전사가 뛰여내렸다. 그들은 몇꾸레미의 굵직한 쇠줄과 흰 나무들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검은테 안경을 건 수장이 곁에 있는 젊고 영준하게 생긴 군관을 보고 말했다. “채대장, 선전대에 있는 악기들을 이들에게 선물하라구.” 대오는 모두 강을 건너 여러 마을에 배치되였다. 사부(师部)가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부대가 마을에 주둔해있던 그 나날은 매일이 설을 쇠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극도록 흥분되여있었다. 군대들은 우리 집 사랑채로부터 몇십오리의 전화선을 끌어내서 사면팔방으로 늘여나갔다. 영준하게 생긴 채대장은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부르는 문예병사들과 함께 난네 집에 주숙을 정했다. 나는 날마다 그들을 찾아가 시간을 보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채대장과 친해지게 되였다. 채대장이 늘 난을 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채대장은 키가 매우 컸는데 머리칼이 텁수룩하고 눈섭이 짙었다. 난이 노래를 부를 때 채대장은 머리를 수긋하고 걸탐스럽게 담배를 빨았다. 그때마다 채대장의 귀가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채대장은 난의 자연조건이 괜찮다고 말했다. 난과 같은 조건을 가진 애들을 찾기가 조련치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업적인 지도를 받지 못한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발전전도가 있다고 치하해주었다. 채대장이 우리가 기르는 앞발에 검은 털이 있는 백구를 매우 좋아한다는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백구를 채대장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채대장은 기어코 사양했다. 대오가 마을을 떠나더난던 그날, 나의 아버지와 난의 아버지가 채대장을 찾아가 나와 난을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했다. 채대장은 돌아가서 수장들에게 회보를 한후 년말에 징병을 할 때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답복했다. 갈라질 때 채대장이 나에게 《피리연주법》이라는 책을 선물했고 난에게는 《어떻게 혁명가곡을 잘 부르겠는가?》라는 책을 선물했다.   “고모.”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짧막하게 그녀를 부르고는 아래말을 이었다.  “설마 나를 못 알아보는것은 아니겠지?”   우리 마을에는 여러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장씨며 왕씨며 리씨며 두씨며가 사면팔방으로부터 모여들여 호칭도 여간만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친척고모가 친척조카에게 시집을 가거나 조카가 숙모를 홀려 도망가는 일도 어렵잖게 볼수 있었다. 그들의 나이가 어울리기만 하면 그런 일들을 구태여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난을 고모라고 부르는것은 어릴 때부터 내려온 습관때문이지 그와 무슨 혈연관계가 있어서는 아니였다. 십년전, 그녀를 “난”이요 “고모”요 하고 부르고싶은대로 마구 불러 댈 때만 해도 나는 가끔 가슴에 서려오르는 묘한 느낌을 받군했었다. 하지만 흘러간 십년사이에 우리는 모두 성숙되였었다. 하기에 나는 예전처럼 그녀를 고모라고 부르면서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고모, 정말 나를 알아 못보는거야?” 말을 마치고 난 나는 자신의 우직함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한층 처량한 빛이 어렸다. 땀방울이 둘둘 굴러내려 그녀의 머리칼을 볼에다 착 붙여놓았다. 워낙 거무스레하던 그녀의 얼굴이 그때 웬지 희읍스름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그녀의 왼쪽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오른쪽눈은 눈알이 없어서인지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깊이 패여들어간 오른쪽눈확에는 들쑥날쑥한 눈초리가 되는대로 자라있었다. 나의 마음은 더없이 찹찹해났다. 그녀의 푹 꺼져들어간 오른쪽눈확을 보고싶지 않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동그란 왼쪽눈섭이며 땀에 젖어 반짝이는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오른쪽볼은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는데 꺼져들어간 눈확쪽으로 올리달려 더욱 처량하고 괴상한 표정을 연출하고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별다른 느낌이 없을수 있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찟기지 않을수 없었다…     십여년전의 그날밤, 나는 너의 집으로 가서 너를 불렀지. “고모, 그네 뛰는 사람들이 모두 가버렸어. 우리 함께 마음껏 그네를 뛰자.” 그러자 네가 말했지. “나는 곤하거든.” 그에 내가 졸랐더랬지. “가자는데두. 한식에 여드레나 쉬구서두 곤하긴 무슨. 마을에서 래일 그네대를 헐어서 목재로 쓴대. 오늘 아침에 마부가 대장에게 말하는걸 들었거든. 마을에서 그의 바줄을 빌어다가 그네줄을 맸는데 다 닳아버렸다고 투덜거렸다니까.” 내 말을 들으면서 너는 길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지. “그럼 가자.” 그때 이미 중개로 자란 백구는 몸집이 여위여 새끼때보다 귀염성이 없어보였지. 백구가 우리의 뒤를 다라왔거든. 교교한 달빛에 백구의 하얀 털이 은빛으로 반짝거렸지. 그네대는 마당어구에 세워져있었더랬지. 기둥 두개를 세우고 그 우에 원목을 가로 놓아 고정시켰더랬지. 두 가닥의 굵은 바줄에는 각기 쇠고리가 달려있었고 아래에는 그네판이 놓여있었지. 달빛아래에 묵묵히 서있는 그네대는 웬지 음침하게 느껴졌는데 마치도 저승문을 보는듯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더구나. 그네대 뒤로 얼마 되지 않는 곳은 골짜기였는데 그곳에는 가시가 가득한 홰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었지. 뾰족뾰족 뻗어나온 가시들우로 차가운 달빛이 청승스럽게 비추더구나. “내가 앉을게, 너 밀어줘.” 네가 말했더랬지. “좋아. 내가 너를 하늘로 밀어보낼게.”   “좋아, 나 백구도 안고 하늘에 오를거야.”   “너 무슨 멋을 피우려구 그러니?” 내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너는 백구를 불렀더랬지. “백구야, 이리와. 너도 좀 호사를 해보라니까.” 너는 한손으로 그네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백구를 안았더랬지. 너의 품에 안긴 백구는 두려운지 빠져나오겠다고 끙끙거렸더랬지. 나는 두손으로 너와 백구를 잡았다가 젓 먹던 힘까지 다해서 힘껏 하늘로 밀어올렸지. 그네는 나의 힘에 의해 관성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지.      우리는 높이높이 날아올랐어. 달빛은 마치도 반짝이는 수면처럼 느껴졌거든. 귀바퀴로 바람이 씽씽 불어지났어. 나는 그때 머리가 어지러워남을 느꼈단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와 백구를 바라보면서 너는 재밋다고 껄껄 웃어댔더랬지. 백구는 무서운지 컹컹 짖어대더구나. 우리는 드디여 그네대에 가로 얹은 원목이 있는데까지 거의 날아올랐단다. 나의 눈에는 드넓은 전야와 출렁출렁 흘러가는 강물이 보였단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묘지들도 보였구. 싸늘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리고는 쌩쌩 물러갔단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너에게 물었더랬지? “고모, 어때?” 네가 대답했지. “신선같아.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야.” 그 말과 함께 그네줄이 끊어졌지. 너와 백구는 골짜기의 홰나무숲에 떨어졌구. 홰나무가시 하나가 너의 오른쪽눈을 찍었더랬지. 백구는 홰나무숲에서 기여나와 그네대아래에서 술에 취한듯      비틀비틀 맴돌아쳤지…   “너너, 넌 이 몇해 어…어… 어때? 잘 보내고있겠지?” 나는 그녀를 향해 꺽꺽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가 축 처져내리고 잔뜩 긴장되였던 얼굴근육이 느슨해지는것을 보아냈다. 오른쪽눈이 없는 생리적결함때문인지 아니면 힘든 로동때문에 커다랗게 변해버린것인지 모를 왼쪽눈에서 갑자기 차디찬 빛이 무섭게 쏟아져나와 나의 온몸을 마구 찔러댔다. “그럼, 잘 보내구 말구. 먹을게 있겠다, 입을게 있겠다 거기다가 남정네에 새끼들까지… 눈깔이 하나 없는것만 빼구는 아무것도 모자라는게 없어. 이보다 더 좋을수 있겠니?” 그녀의 말에는 분명 가시가 박혀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일순 뭐라고 대답을 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나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나 학교에 남게 되였다. 아마 오라지 않으면 강사로 될거야. 나는 늘 고향이 그리웠어. 고향사람들이 그리웠구 고향의 강이며 돌다리며 들이며 붉은 수수며 청신한 공기며 구성진 새소리며… 그래서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이렇게 뛰여온거다. ” “뭐 그리울게 있다구, 이 비루 먹을 고장이. 다 낡아빠진 이 다리가 그리웠다구? 수수밭은 또 뭐야, 시루속같이 무덥기만 하구. 눈 껌뻑 할 새에 사람을 홀랑 삶아낼 지경이거든.” 그녀는 말하면서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가 흰 재물이 꽃처럼 피여난 푸른색 마고자를 벗어 곁에 있는 돌판우에 던졌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강물에 얼굴이며 목을 씻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에다 헐렁한 라운드반팔적삼을 입고있었는데 적삼에는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나있었다. 적삼은 원래 흰색이였는데 세월을 내려오면서 회색으로 변한것 같았다. 그녀는 적삼깃을 고의춤에 쑤셔넣은후 흰 붕대로 꾹 졸라매고있었다. 그녀는 다시 나에게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손바닥으로 부지런히 물을 퍼서 얼굴이며 목이며 팔뚝을 씻었다. 이어 그녀는 내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는듯 고의춤에서 적삼깃을 활 당겨 둘둘 말아올리더니 손바닥으로 물을 퍼서 가슴을 문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적삼이 축축히 젖어들더니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에 찰싹 달라붙었다. 봉긋이 솟아난 두개의 젖무덤을 보면서 나는 전에 그렇게 신비하게 느껴지던 물건도 사실은 거기서 거기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다. 시골애들이 흥얼거리는 “결혼하지 않으면 금꼭지요 남정의 손을 거치면 은꼭지요 새끼를 낳으면 개젖이라네”라는 노래가 참으로 신통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보고 애가 몇이나 되는가고 물었다.   “셋이야.” 그녀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어내리며 말하고는 적삼깃을 툭툭 털어서 다시 고의춤에 찔러넣었다.   “셋이라니? 하나밖에 못 낳는게 아니야?”   “그래, 나두 새끼를 두번 밴것은 아니지.” 그 말에 내가 인차 납득을 못하자 그는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한번에 세놈을 낳았어. 개처럼 세놈이나 줄줄이 내쐈거든.”   그 말에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게발랐다. 그녀는 푸른색 마고자를 주어 무릎에 대고 몇번 털어 입더니 아래로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수수잎묶음옆에 쪼크리고 앉았던 백구도 일어서서 부르르 털을 털더니 허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렇게 큰 짐을 네가 어떻게?” 나는 자신이 없는듯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큰 짐이라고 메지 않으면 어쩔건데? 어떤 죄값을 치뤄야 하는가는 명에 정해진거야.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가 없거든.” “오누이들이야?” “아니, 몽땅 수컷들이야.” “참, 복이 터졌네. 아들은 많을수록 복이잖아?” “개떡같이 복같은 소리를 하구있네” “이 개는 그때 그게지?”   “그래, 몇날 더 살지 못할거야.”   “눈 깜박할 새에 십년이 흘렀네.” “다시한번 껌뻑 하면 우린 모두 뒈질거야.”   “그렇겠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것이 갑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수잎묶음옆에 앉아있는 백구를 보고 한마디했다 “너, 참 장수하구나.”   “왜? 너희들은 장수할수 있구 우리는 장수하면 안되니? 쌀밥 먹는놈들도 장수해야 하구 겨떡을 씹는놈들도 제명을 다 살아야지. 고급적인 사람도 오래 살아야 하구 저급적인 사람도 오래 살아야 한다구.” “왜 이렇게 말하니? 어디 고급적인 사람이 있구 저급적인 사람이 따로 있니?” “웃기네. 너같은 사람을 고급적이라 하지 않니? 대학교 강사까지나 되는데.”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귀뿌리가 화끈거렸지만 그녀에게 뭐라고 쏘아줄수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부터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나는 행리를 찾아들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여덟째아저씨네 집에 주숙하게 될거다. 시간이 나면 놀러 오너라.” “나 왕가덕에 시집을 갔다. 너 알고있지?” “네가 말하지 않는데 내가 알턱이 없지.” “알고 모르고 할것도  없어. 아무것도 볼것이 없으니까.” 그녀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내 모양을 업신보지 않는다면 시간을 내서 놀러오너라. 마을에 들어서서 ‘애꾸눈 난’이라고 하면 모르는이가 없어.”   “고모, 너 어쩌다 이 모양으로…” “누굴 탓할게 없어. 이게 바로 명이지. 명은 하늘이 정해주는거야. 그러니 잡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그녀는 다리아래로부터 씨엉씨엉 걸어올라와 수수잎묶음옆에 서서 말했다. “좀 도와 줄래? 귀한 몸이지만. 이 물건을 내 등에 올려줘.”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메다줄게.” “그럴수야…”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수수잎묶음옆에 꿇어 앉아 끈을 어깨에 가져가며 다시한번 소리쳤다. “일궈주라구.” 나는 급히 그녀의 뒤로 다가가 끈을 잡아 힘껏 우로 들어올렸다. 그 힘을 빌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은 짐에 눌리워 다시 구부정해졌다. 그는 짐이 편하게 등에 대이게 하려고 힘껏 들썽거렸다. 그 바람에 수수잎들이 부딪쳐서 쓰륵쓰륵 소리를 냈다. “놀러와.” 깊은 나락으로부터 울리는듯한 그녀의 석쉼한 목소리가 나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백구가 나를 향해 낑낑 뭔가를 호소하더니 앞을 바라고 뛰여갔다. 나는 오래도록 다리목에 서서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이 북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가는것을 바라보았다. 백구는 차츰 나의 눈에서 하얀 점으로 바래졌다. 그녀도 백구도 나중에는 까만 점으로 되였다가 내 눈에서 사라졌다.   다리목에서 왕가덕까지는 7리 길이였고 우리 마을까지는 12리 길이였다. 그러니 우리 마을에서 왕가덕까지는 19리에 달하는 셈이였다.    여덟째아저씨가 나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가라는것을 나는 밀막아버렸다. 십여리밖에 안되는 길을 걸어서도 쉽게 갈수 있을것 같았다. 여덟째아저씨가 말했다. “지금은 생활이 많이 펴서 집집마다 자전거가 있단다. 몇년전만 해도 온 마을에 자전거가 한두대밖에 없었지. 그때는 자전거를 빌리기가 쉽지 않았단다. 귀한 물건이라 뉘네가 쉽게 빌려주고싶었겠니?” 나도 몇년전에 비해 마을사람들의 생활이 좋아졌다는것을 보아낼수 있었다. 골목마다에서 자전거를 볼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자전거를 타고싶지 않았었다. 몇년간 지식분자라는 모자를 쓰고 살면서 치질을 얻은때문이였던지 나는 웬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기를 좋아했다.   여덟째 아저씨가 말했다. “책을 읽는 놀음도 그렇게 좋다고는 할수 없는것 같아. 이것저것 속타는 일도 많은것 같거든. 가끔은 생각이 이상하게 도는것 같기도 하구. 너두 그래. 난이네 집으로 가서는 뭘한다구 그러니? 애꾸눈에 벙어리에… 네가 난이를 찾아가는것을 알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웃을거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찾구 새우가 새우를 찾아간다고 할수도 있거든. 자기 신분을 스스로 낮출수야 없지 않니?” 나는 더 이상 여덟째아저씨와 싱갱이질을 하고싶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미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먹었는지라 어떻게 처신을 해야한다는것을 두고 속에 수자가 있었다. 여덟째아저씨도 더 말이 없이 일보러 휑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은근히 다리목에서 그녀와 백구를 다시 만날수 있기를 바랐다. 만약 그녀가 또 그처럼 커다란 짐을 지고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짐을 빼앗아 메리라고 마음 먹었다.  도시사람들은 대부분 몸단장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고향사람들은 그때까지도 내가 입고 간 청바지를 눈꼴이 사나와 했다. 그 바람에 나는 마을사람들을 만나기가 여간만 난처하지가 않았다. 나는 “눅거리입니다. 처리하는것을 샀는데 한견지에 3원 60전밖에 안하거든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내가 입은 청바지는 사실 25원을 주고 산것이였다. 내가 일부러 눅거리라고 해서야 마을사람들은 그런대로 넘어가는 눈치였다. 다리목에서 그녀와 백구를 만나지 못하면 왕가덕에 들어가서 난이네 집을 물을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내가 입고있는 청바지가 또 사람들의 말밥에 오를것이였다. 나는 혹시라도 지나가는 그녀나 백구가 눈에 뜨이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자주 주변을 살폈지만 그들은 시종 나타나지 않았다. 돌다리를 지나자 붉디붉은 태양이 수수밭에서 솟아 올랐다. 그 바람에 강에는 붉은 기둥이 비껴 강물을 물들였다. 태양은 붉다못해 야릇한 분위기까지 불러일으키는것 같았다. 붉은 태양주변에 검은 기운이 한벌 둘러쌓인것이 당금 비가 내릴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가 부슬부슬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접이식우산을 펼쳐들고 마을을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그때 어깨를 잔뜩 움츠린 늙은 녀자가 길을 지나고있었는데 바람에 옷깃이 펄펄 날렸고 그녀도 몸을 휘청거렸다. 나는 우산을 접어들고 늙은 녀자를 마주가서 물었다. “할머니, 난이네 집이 어딘지 아세요?” 늙은 녀인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서서 흐릿한 눈동자를 둘둘 굴리며 나를 뜯어보았다. 늙은 녀인의 반백이 된 머리칼이 바람에 어지럽게 날렸고 나무가지들이 몸부림을 쳐댔다. 동전만큼 굵은 비방울이 늙은 녀인의 얼굴을 때렸다. “난이네 집이 어딘지 아세요?” 나는 다시한번 물었다. “어느 난이네 집을 그러나?” 늙은 녀인은 흐릿한 눈길로 나를 살피더니 팔을 들어 길옆에 줄느런히 들어앉은 푸른 기와를 얹은 집들을 가리켰다. 나는 그 집어구에 서서 큰 소리로 불렀다. “난이고모 집에 있어요?” 나의 부름소리에 먼저 응답을 한것은 앞발에 검은 털이 살짝 간 백구였다. 그놈은 낯선 사람만 보면 뱅뱅 돌아치면서 기승스럽게 컹컹 짖어 그 기세로 사람을 물어 죽이지는 못해도 놀래워 죽이려는 성정이 포악한 여느 개들과 달랐다. 백구는 처마밑에 있는 마른 풀을 깔아놓은 개우리에 조용히 엎드려있었다. 백구는 두눈을 가슴츠레 뜨고는 몇번 짖는 흉내만 낼뿐이였다. 그러한 모습에는 백구의 온순하고 후더운 품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듯싶었다. 내가 다시 소리를 치자 난이 집안에서응기를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맞아주는이는 난이가 아닌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고 눈동자가 누르끼레한 억대하게 생긴 나그네였다. 그 나그네는 토황색의 눈동자를 딜딜 굴리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길은 내가 입고있는 청바지에 멈추었다. 나그네는 차츰 입귀를 실룩거리더니 얼굴에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나그네가 내앞으로 성큼 나가섰다. 나는 그 기세에 놀라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그네는 오른손약지를 뽑아 내앞에 대고 마구 흔들어대면서 입으로 힘겹게 억억 소리를 뱉어냈다. 나는 여덟째아저씨로부터 난의 남편이 벙어리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지만 분노로 이글거리는 거쿨진 모습을 직접 대하자 가슴에서 뭔가가 쿵하고 내려 앉는듯싶어 기분이 착잡해졌다. 애꾸눈이 벙어리에게 시집을 갔으니 누가 누구에게 빚졌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그 시각 난의 얼굴을 떠올리니 목구멍이 꽉 메여올랐다.      난, 그때 우리의 꿈은 참으로 아름다왔더랬지. 채대장이 마을을 떠나면서 우리들 가슴에 너무도 아름찬 꿈을 심어주었거든. 그들이 마을을 떠나던 날, 너는 줄곧 채대장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더랬어. 그때 너의 두볼을 타고 이슬같은 눈물이 굴러내렸는데 나는 그 눈물이 모두 채대장에게 드리는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단다. 그때 채대장도 얼굴이 해쓱해있었지. 그는 호주머니에서 빗 한자루를 꺼내서 너에게 넘겨주었지. 나도 그때 울고있었단다. “대장님, 대장님이 우리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내 말에 채대장이 이렇게 대답했더랬지. “그래, 기다려라.” 수수들이 빨갛게 익어가던 그해 가을, 우리는 현성에 징병을 온 해방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거야. 그때 우리는 너무도 기뻐 밤잠마저 설쳤더랬지. 어느날 선생님 한분이 현성으로 들어갈 일이 있다기에 우리는 그 선생님을 찾아가 무장부에 들려 채대장이 왔는가를 살펴보고 그에게 우리를 군대에 데려간다던 일이 어떻게 되였는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더랬지. 선생님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현성으로 갔더랬지. 하지만 선생님은 현성에서 아무 소식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던거야. 선생님은 못내 상심해 있는 우리를 보고 말했더랬지. “올해 징병을 온 해방군들은 모두 누런 웃옷에 푸른 바지를 입고있었어. 공군의 지상근무병이래. 채대장이 있는 부대가 아닌거야.” 네가 상심해있는 나에게 신심 가득히 말했더랬지. “채대장은 절대 우리를 속이지 않을거야.” 나는 기분없이 말했지. “아니야, 채대장은 벌써 그 일을 잊어버렸을거야.” 너의 아버지도 한술 뜨셨지. “쇠몽둥이를 주니 그게 바늘인줄 알았나보구나. 그는 너희들을 어린애로 보구 일시 홀리느라구 그렇게 말한거란다. 우수한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는거야. 좋은 쇠로 못을 만들지 않는것처럼.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집에 돌아와서 그 엉뚱한 생각들을 집어치우고 고분고분 돈이나 벌어라.” 너의 아버지의 말에 네가 정색해서 말했지. “채대장은 나를 어린애로 보지 않았어요. 절대 저를 어린애로 보지 않았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너의 얼굴에 차츰 홍조가 피여오르는것을 그때 나는 분명 보아냈단다. 너의 아버지가 또 말했지. “그래? 이 멍청한것을…” 나는 홍조가 비껴가는 너의 얼굴을 이상한 눈길로 살펴보았단다. 그때 너의 얼굴에서는 말 못할 흥분과 야릇한 표정이 흐르고있었지. 너는 긍정적으로 또박또박 말했단다.  “올해 오지 않으면 명년에 올거예요. 명년에 오지 않으면 후년에는 꼭 올거구요.” 채대장은 실로 미남자였지. 그는 사지가 늘씬하게 생겼을뿐만아니라 얼굴륜곽이 선명했으며 늘 수염자국이 파랗게 보일정도로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다녔었거든. 후에 너는 나에게 털어놓았더랬지. 채대장이 마을을 떠나기전날 밤에 너의 얼굴을 부여잡고 이마에 키스를 했다고말이야. 채대장은 너에게 키스를 한후 또 속삭이듯이 “너, 참 순결한거 알어?” 하고 말했다고 했었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치솟는 분노를 느꼈단다. 그줄도 모르고 네가 나에게 말했었지. “난 입대한후 그에게 시집을 갈거야.” 나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너에게 말했더랬지. “꿈 같은 소리는. 돼지고기 200근을 준다고 해봐라. 그가 너를 데려가나.” “그가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시집갈거야.” “나에게? 나도 싫거든.” 그러자 너는 나를 쏘아보면서 뾰로통해서 말했지. “눈깔은 잔뜩 높아가지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그때 실로 풋풋한 모습이였어. 그래, 꽃봉오리같은 너의 가슴을 보기만 하면 나는 당금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구.    벙어리는 나를 몹시 깔보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뽑아 든 약지로 나에 대한 멸시와 증오를 표달했던것이다. 그래도 나는 얼굴에 웃음을 게바르면서 벙어리로부터 신임을 얻어내려고 모든 애를 다 썼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들을 사이사이 꿰들고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앞에 흔들었다. 어릴 때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벙어리의 그 손동작은 지극히 저급적인 뜻을 내포하고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나는 마치도 뚜꺼비를 마주한듯 속으로부터 께으름직한 느낌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생각같아서는 그 울안에서 뛰쳐나오고싶었다. 그때 똑 같은 얼굴에 똑 같이 민머리를 한 세 아이가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감히 우리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똑 같은 토황색의 눈동자를 돌돌 굴리며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은 똑 같이 머리를 오른쪽으로 귀울이고있었는데 마치도 아직 털이 채 자라지 않은 성질이 급한 수평아리들 같았다. 애들은 어울리지 않게 나이들어보였는데 이마에 잔주름까지 몇오리 패여있었고 하악골은 크고 튼실했다. 세 아이 모두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나는 급히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여 그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얘들아, 와서 사탕을 먹어라.” 그러자 벙어리가 애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입으로 뭐라고 억억 소리를 질렀다. 애들은 내 손에 들려있는 포장이 알락달락한 사탕을 부럽게 바라만 볼뿐 다가오지 못했다. 내가 애들쪽으로 가려고 하자 벙어리가 나의 앞을 막아서서 야만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더욱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난이 두손을 모아 아래배에 대고 다리를 끌며 천천히 집에서 나왔다.  난을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늦게야 나오는가를 알게 되였다. 깨끗하게 빨아 다듬은 인단트렌 람색 마고자며 칼주름을 쪽 세운 테릴렌 회색 바지며는 그가 금방 갈아 입었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인단트렌 람색 천이며 인단트렌 람색 천으로 지은 리철매식의 마고자는 사라진지 오랜것들이였다. 그녀의 몸에 걸쳐진 그 마고자를 보노라니 별안간 잊혀졌던 세월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것 같아 괜히 가슴이 설레였다. 그런 마고자를 입은 가슴이 풍만한 녀자들은 실로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옛스러운 풍경이라고 할수 있었다. 난은 목이 시원하게 빠진 녀자였는데 얼굴모양도 청아하다고 할수 있었다. 난의 오른쪽눈확에는 의안이 맞춰져 얼굴평형을 이루고있었다. 나는 꺼져들어간 눈확에 의안을 넣는 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일종의 서글픔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난의 그 눈을 정시할수 없었다. 그 눈은 생명을 가지고있지 않았었다. 그 눈은 흐릿하게 자광(磁光)을 발산하고있을뿐이였다. 난은 내가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의식하고는 머리를 숙이고 벙어리를 지나서 내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의 어깨에 메워져있는 가방을 벗겨들더니 말했다. “집에 들어가자.” 벙어리가 그러는 난을 밀쳤다. 그때 벙어리의 얼굴에 분노가 이글거렸는데 눈에서는 금시 전기라도 뿜겨져나올것 같았다. 벙어리는 나의 바지를 가리키고는 다시 약지를 뽑아들고 흔들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련발했다. 그 바람에 오관이 마구 흔들리다 한곳에 모이는가싶더니 삽시에 제 각기 흩어져 놀아대는 그 표정은 그야말로 풍부함의 극치를 이루고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또 말 못할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 벙어리는 퉤 하고 가래를 뱉더니 큼직한 발로 빡빡 문질러댔다. 나에 대한 벙어리의 분노는 내가 입은 청바지로부터 오는것 같았다. 나는 청바지를 입고 고향에 온것을 후회했다. 나는 마을에 돌아가서 여덟째아저씨의 바지를 빌어 입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고모, 저 형이 아마 나를 알아 못 보는것 같아.”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벙어리를 툭 치더니 나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빼들고 내가 살던 마을쪽을 가리켰다. 이어 나의 손을 가리킨후 나의 호주머니에 꽂혀져있는 만년필이며 그 우에 달려있는 대학교휘장을 가리켰고 글을 쓰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네모난 책모양을 그려보였다. 난은 나중에 다시 엄지손가락을 들고 하늘을 가리켰다. 거침없이 그 동작을 해나가는 난의 표정은 그처럼 풍부할수가 없었다. 벙어리는 잠간 멍해있더니 인차 얼굴에 가득 어려있던 적의를 해소했다. 그러자 벙어리의 눈길이 어린애들처럼 온순해졌다. 그는 백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 바람에 벙어리의 누런 앞이가 그대로 들어났다. 그는 손바닥으로 나의 가슴을 툭툭 치더니 발을 구르고 꺽꺽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의 뜻을 알것 같았다. 못내 감격스러웠다. 나는 끝내 벙어리의 신임을 얻은것으로 하여 기분이 상쾌해졌다. 세 아이가 흘끔흘끔 눈치를 살피며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눈길은 시종 나의 손에 들려있는 사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오너라.” 애들이 한결같이 벙어리를 바라보았다. 벙어리가 머리를 끄덕이며 헤헤헤 웃자 애들이 민첩하게 내쪽으로 뛰여와 내 손에 있는 사탕을 마구 빼앗았다. 땅에 떨어진 사탕 한알을 줏기 위해 세 아이가 모두 허리를 굽혔다가 서로 민머리를 부딪쳤다. 그들을 보면서 벙어리가 만족한듯 헤벌쭉 웃었다. 난이 호 하고 한숨을 쉬다가 말했다. “너, 다 봤지? 내가 참 한심하게 살지?” “고모, 그럴수가… 애들이 다 귀엽구만그래…” 벙어리가 긴장한 눈길로 나를 훔쳐보다가 다시 헤벌쭉 웃음을 물고는 몸을 돌려 사탕을 더 가지겠다고 붙어 돌아가는 애들에게 사정없이 발길을 날렸다. 애들은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쏘아보았다. 나는 가방에 있던 사탕을 몽땅 꺼내여 세몫으로 똑 같게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벙어리가 다시 뭐라고 급히 소리치며 애들에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애들이 삽시에 손을 뒤로 가져다 숨기고는 한발한발 뒤로 물러섰다. 벙어리가 한참 더 소리 지르자 애들은 무서워 파들파들 볼을 떨었다. 이어 벙어리의 거쿨진 손바닥에 사탕 한알씩 올려놓고는 와 하고 소리지르며 종적을 감추었다. 벙어리는 손바닥에 있는 사탕 세알을 멍하니 내려다보더니 내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또 뭐라 웅얼거렸다. 나는 그의 뜻을 알수 없어 난에게 눈길을 돌렸다. 난이 말했다. “저 물건도 너의 이름을 들어본지 오래다고 그래. 네가 북경에서 가져온 사탕을 저 물건도 먹어보고싶대.”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사탕을 입에 넣는 시늉을 해보였다.  벙어리가 나를 보면서 느긋이 웃음을 빼여물며 종이를 벗긴 사탕을 입에 밀어넣었다. 벙어리는 사탕을 씹으면서 머리를 기웃하고 뭔가를 귀담아 듣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벙어리는 만족스러운듯 엄지손가락을 빼들었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벙어리가 사탕이 고급이라고 칭찬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벙어리가 두번째로 사탕을 입에 넣는것을보면서 나는 난에게 말했다. “담에 올 때는 더 고급스러운 사탕을 사다가 저 형에게 맛보일거다.” 그러자 난이 나를 힐끗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네가 다시 온다구?” 벙어리는 두번째로 입에 넣은 사탕까지 다 먹고는 잠간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바닥에 하나 남은 사탕을 난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난이 눈을 감고있어 사탕을 보지 못하자 벙어리가 꽥 소리 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벙어리는 다시 난에게 사탕을 쥔 손을 내밀었다. 난은 다시 눈을 감으며 머리를 저었다.   벙어리가 갑자기 얼굴에 노기를 띠며 억억 소리지르더니 왼손으로 난의 머리칼을 와락 잡아 뒤로 제꼈다. 난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쳐들었다. 벙어리는 이발로 사탕종이를 찢어낸후 침이 가득 발린 사탕을 그녀의 입에 밀어넣었다. 난의 입이 결코 작은것은 아니였지만 길다란 오이를 방불케 하는 벙어리의 손가락 두개가 들어가자 그처럼 작고 야들야들해보였다. 그리고 얼굴은 더없이 갸냘파보였다.   난은 사탕을 입에 문채 뱉지도 씹지도 않았다. 얼굴은 평온하다 못해 죽은 수면 같았다. 벙어리는 자기의 승리를 자랑이라도 하는듯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난이 말했다. “집에 들어가자. 멍하니 여기 서서 바람만 맞지 말구.” 그때 나는 울안을 둘러보고있었다. 난이 또 입을 열었다. “뭘 볼게 있다구. 저것은 암탕나귀야. 낯선 사람만 보면 차구 물구 뜯거든. 하지만 저놈의 손에서는 고분고분해져. 봄에 저이가 소 한마리를 사왔는데 새끼를 낳은지 한달째야.”   난네 마당에는 큰 막이 쳐져있었는데 그안에서 당나귀와 소를 키우고있었다. 소는 아주 여위여보였는데 포동포동한 송아지가 뒤다리사이에 서서 걸탐스럽게 젖을 빨고있었다. 송아지는 연신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가끔 대가리로 어미의 젖무덤을 들이 박기도 했다. 어미소는 고통스럽게 등을 꼬부렸는데 눈으로 퍼런 빛을 뚝뚝 떨구고있었다. 벙어리의 주량은 실로 대단했다. 알콜농도가 높은 “제성배갈” 한병에서 그가 9할을 마시고 내 1할을 마셨는데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그는 또 한병을 터치워 나의 잔에 가득 부어주고는 두손으로 잔을 들어 권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가봐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셔버렸다. 나는 그가 또 술을 권할가봐 술잔을 내려놓자 마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것처럼 포개여 놓은 이불에 비스듬히 누웠다. 흥분으로 하여 얼굴이 불깃불깃 상기된 벙어리가 난을 향해 뭐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난도 벙어리를 향해 뭐라고 한참이나 손짓을 하더니 내쪽에 머리를 돌리고 나직히 말했다. “너, 저이의 주량을 당하지 못할거다. 너 같은 주량으로는 열이 달려들어도 저이를 쓰러뜨리지 못할거다. 그러니 취하지 않게 조심해라.” 말을 마친 난은 나에게 눈을 끔쩍해보였다. 나는 인차 엄지손가락을 빼들어 벙어리를 가리키고는 다시 약지를 뽑아들고 내 가슴을 가리켰다. 난이 술병을 치우고 물밴새를 올렸다. 내가 난에게 말했다. “함께 먹자구나.” 난이 벙어리에게 눈길을 주어 동의를 구하는것 같았다. 벙어리가 머리를 끄덕이자 세 아이들이 상에 둘러 앉아 걸탐스럽게 물밴새를 먹어댔다. 난은 구들목에 서서 물을 떠오고 물밴새를 더 올리며 시중을 들었다. 내가 재차 난에게 함께 먹자고 권하자 난은 배가 불편하다면서 거절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바람이 자고 먹구름도 거쳐졌다. 찌는듯한 해볕이 남쪽에서 쏟아져 내렸다. 난은 장롱에서 누르스름한 천을 꺼내더니 세 아이들을 가리키고는 벙어리를 향해 동북방향을 가리켜보였다. 벙어리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난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진에 가서 애들의 옷을 몇견지 지어야겠다. 그러니 나를 기다리지 말어라. 점심을 다 먹구 쉬다가 가거라.” 말을 마친 난은 다시한번 나에게 눈을 끔쩍해보였다. 난은 헝겊꾸레미를 옆구리에 끼고 휑하니 집을 나섰다. 백구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헐떡거리며 난을 따라나섰다. 나와 벙어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간혹 서로의 눈길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는 헤벌쭉 웃어보였다. 세 아이는 한참이나 장난을 치다가 구들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거의 동시에 잠이 든것 같았다. 태양이 머리를 내밀자 날씨는 인차 뜨거워졌다. 나무우에서 매미들이 신나게 울어제꼈다. 벙어리는 웃옷을 벗어내치고 발달한 웃통근육을 그대로 들어내보였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야성에 가까운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저으기 두려움을 느끼고있었다. 벙어리는 두눈을 슴뻑거리면서 손으로 가슴을 뻑뻑 문질렀다. 그 바람에 몸으로부터 때가 쥐똥처럼 엉켜져 떨어졌다. 벙어리는 도마뱀처럼 령활한 혀로 두툼한 입술을 자꾸 핥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토하고싶다는 생각을 했고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감을 느꼈다. 나의 머리속에는 돌다리아래의 반짝이는 푸른 강물이 떠올랐다. 해볕이 창문으로 흘러들어 청바지를 입은 나의 다리를 비추고있었다.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벙어리가뭐라고 억억 소리를 하더니 구들에서 내려가 서랍에서 전자시계 하나를 꺼내여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벙어리의 얼굴에 어린 기대에 찬 표정을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약지로 내 손목에 있는 시계를 가리켜보이고 엄지로 그의 전자시계를 가리켰다. 벙어리는 나의 뜻을 알았던지 몹시 흥분해하며 전자시계를 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나는 사양하면서 그의 왼손목을 가리켰다. 그러자 벙어리는 힘주어 머리를 저었다.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피워올리며 그가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날씨가 참 좋구려. 올해 곡식이 잘 염글겠네요. 가을에 가서 천천히 수확을 해도 되겠네요. 집에서 기르는 나귀가 참 기품이 좋아요. 3중전회이후 농민들의 생활이 참 많이 제고되였지요. 형님도 생활이 펴이였으니 인젠 텔레비죤이나 갖춰놓아요. ‘제성배갈’은 오랜 이름 그대로 참 독이 있네요.” “어어어.” 벙어리의 얼굴에는 행복의 물결이 출렁이고있었다. 그는 모아쥔 두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목도 툭툭 건드렸다. 나는 혹시 그가 누군가의 목을 쳐버릴 궁리를 하는것이나 아닐가 하는 놀라운 생각을 했다. 내가 자기의 뜻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했던지 그는 못내 조급해하면서 또 억억 소리를 질렀다. 이어 그는 자기의 오른쪽눈을 가리켰다가 다시 두피를 긁적거리더니 목에 와서 손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난의 일을 알고있는가고 묻는다는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수 있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거무스름한 자기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이어 애들을 가리켰다가 다시 자기의 배를 가리켰다. 나는 그뜻을 알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판단할수 없어서 머리를 저었다. 그는 급해서 쪼크리고 앉아 취할수 있는 모든 형체언어를 다 동원하여 나에게 자기의 뜻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나는 그를 향해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수화를 배워두는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굴에서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면서 그곳을 떠나려고 서둘렀다. 더 이상 그 무엇을 리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벙어리의 얼굴에서 진정이 흐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나의 가슴을 툭툭 쳤다가 또 자기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나는 그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형님, 우리는 좋은 형제라우.” 그는 세 아이의 엉뎅이를 하나씩 차서 깨웠다. 나를 바래주라는뜻이였다. 나는 가지고 갔던 접이식우산을 가방에서 꺼내여 그에게 주면서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보배라도 얻은듯 우산을 들어 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세 아이는 얼굴을 한껏 쳐들고 벙어리의 손에서 펴졌다 닫겼다 하는 우산을 신기한듯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벙어리를 툭 치고는 남쪽으로 향한 길을 가리켰다. 그는 어어 소리를 내면서 손을 흔들고는 나는듯이 집으로 뛰여들어가 떡갈나무자루를 한 긴 칼을 들고나왔다. 그는 소뿔로 만든 칼집에서 칼을 빼내여 내앞에 흔들어보였다. 칼날에서 찬빛이 번뜩였는데 아주 날카로와보였다. 그는 발끝을 들고 문어구의 백양나무에서 손가락만큼 굵은 가지를 썩뚝 잘라들더니 칼날로 그것을 툭툭 쳐내려갔다. 끊어진 나무가지들이 후둑후둑 땅에 떨어졌다. 그는 칼을 나의 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사색에 잠겼다. 그는 비록 벙어리이지만 호방한 성정을 잃지 않은 대장부이다. 난도 그에게 시집을 가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것 같지는 않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결함도 시간이 흐르느라면 수화와 눈길에 의해 극복될수 있을것이다… 나는 그같은 생각을 굴리면서 나야말로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가를 근심하는격”이 아닌가 하고 웃어버렸다. 다리목에 이르면서 나는 난을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자 강에 들어가 시원히 목욕을 하고싶었다. 마침 길에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 하지 않았다. 오전에 약간 내린 비는 그 무렵에 벌써 말끔히 증발해버린것 같았다. 길에서는 풀썩풀썩 황토먼지가 날리고있었다. 길량옆에서는 검푸른 수수잎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설레이고있었다. 메뚜기들은 민망초 사이를 분주히 오갔는데 해볕에 분홍색 날개가 반짝였고 그 날개가 공기를 가르면서 파득파득하는 소리를 냈다. 다리아래에서 출렁출렁 물흐르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왔다. 백구가 다리목에 쪼크리고있었다. 백구는 나를 알아보고 멍멍 짖어댔는데 그때 하얀 이발이 내 눈에 안겨들었다. 나는 웬지 일이 묘하게 엮어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백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백구는 걸음을 옮기면서 가끔 대가리를 돌려 나를 훔쳐보았는데 마치도 나를 부르는것만 같았다. 나의 머리속에는 추리소설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백구를 따라 수수밭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가방에 넣어 벙어리가 나에게 선물한 칼자루를 움켜쥐였다. 나는 빼곡히 들어선 수수잎을 헤치면서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난이 수수밭에 앉아있었는데 헝겊꾸레미가 옆에 놓여져있었다. 난이 수수대를 쓸어눕혀 이미 작은 공간이 형성되여있었다.   주변에 둘러선 키 높은 수수대는 병풍을 방불케 했다. 나를 발견한 난은 헝겊꾸레미에서 누런색 천을 꺼내여 수수대우에 펼쳐놓았다. 얼룩덜룩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난의 얼굴에서 어른거렸다.   백구는 한옆에 엎드려 대가리를 앞다리에 올려놓고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였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나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이가 덜덜 쪼였다. 게다가 턱마저 뻣뻣해나서 겨우 입을 놀렸다. “너…너, 거리로 가지 않았니? 헌데 어찌 여기에 이러구…”   “나는 여직 명을 믿고 살았어.” 구슬같은 눈물이 그녀의 볼에서 둘둘 굴러떨어졌다. 난이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백구에게 말했거든, 백구야, 백구야. 네가 만약 내 마음을 안다면 다리목에 가서 그를 데려다주렴아. 네가 나를 찾아온다면 그건 아직 너와 나의 인연이 채 끊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니?”   “너 빨리 집으로 가봐라.” 나는 가방에서 벙어리가 선물한 칼을 끄집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나에게 이 칼을 선물했다.” “너는 이 마을을 떠난후 십년간 아무 소식도 없었더랬지. 나는 이생에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너 아직도 장가 들지 않았지? 그렇지? 너두 우리 집 그 사람을 봤으니 알겠지만 그래… 제 맘이 내킬 때면 나를 그렇게 아끼다가도 제 맘이 불편하기만 하면 나를 단매에 쳐죽일것처럼 날뛴단다. 내가 다른 남자들과 말이라도 하는것을 보기만 하면 그는 곧 나를 의심하는거야. 어쩌면 그는 나를 끈으로 꽁꽁 묶어두지 못하는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진종일 백구와 동무할 때가 많다. 백구는 나보다 더 빨리 늙는것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간 두번째 해에 임신을 했었다. 배는 무서움을 모르고 커지는 고무풍선처럼 둥둥 불어올랐더랬지. 해산을 앞두고는 걸음마저 옮길수 없었단다. 일어서면 발끝도 보이지 않았거든. 한번에 세놈을 낳았어. 4근 푼한놈들이였어. 여위기를 사람새끼가 아니라 고양이새끼 같았다니까. 한놈이 울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울구 한놈이 먹으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먹겠다고 설치구, 젖꼭지가 두개밖에 없으니 돌려가며 먹일수밖에 없었어. 먹지 못하는 놈은 또 앙앙 울어댔더랬지. 나는 너무도 힘들어 죽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이 힘든것보다도 더 나를 가슴 졸이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애들만은 제발 제 애비를 닮지 말아달라는것이였어. 나는 그놈들이 종알종알 말하는 장면을 그 얼마나 그려보았는지 몰라. 하지만 그 애들이 7, 8개월을 넘기면서 나는 내 하늘이 무너지는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였단다. 내 애들이 여느 집 애들과 달랐던거야. 애들이 하나같이 멍해있는게 도무지 바깥 동정에 반응이 없는것 같았어. 나는 너무도 억이 막혀 하늘에 대고 빌기만 했지. 하늘이시여, 하늘! 제발 세 놈 모두를 벙어리로 만들지는 말아주시옵소서. 한 놈이라도 말을 할수 있게 해주옵소서. 한 놈이라도 나와 말동무를 하게 해주옵소서. 하지만 결국은 세 놈 모두 벙어리가 되였어…” 나는 깊숙히 머리를 숙아고 꺽꺽 말을 더듬었다. “나나, 날을 원망해라. 그날 내가 만약 너를 끌고 그네 뛰러만 가지 않았어도…” “네탓이 아니야. 모두가 내 잘못이지. 내가 너에게 말했더랬지. 채대장이 나에게 키스를 했었다구. 내가 대담하게 채대장을 찾아 부대로 갔더라면 그가 혹시 나를 부대에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채대장은 진심으로 나를 좋아했었어. 그후 내가 그네에서 떨어져 눈을 상했더랬지. 네가 학교에 가서 나에게 편지를 보낸것을 나는 받고서도 고의적으로 회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이미 병신이 되여 너의 상대가 될수 없다는것을 알았더랬지. 모든것을 나혼자 안으려고 마음 먹었어. 너까지 재수없는 내 인생에 끌어드리지 못하겠더라구.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련한것 같기두 하지만. 지금은 너 실말을 해두 돼. 그때 만약 내가 너에게 기어코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면 너 나를 받아들일수 있었겠니?” 나는 흥분에 떠는 그녀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격동에 차서 대답했다. “받아들였을거야. 그래, 꼭 받아들였을거야.” “좋아. 그럼 너도 리해할거라고 생각해… 네가 나를 싫어할가봐 오늘 의안까지 박아넣었거든. 요즘이 바로 배란기야… 나는 말할줄 아는 자식을 낳고싶어. 네가 동의하면 바로 나의 목숨을 건져주는거야. 동의하지 않으면 나를 죽이는것과 같은거라구. 천가지 리유가 있어도, 만가지 구실이 있어도 오늘은 꺼내지 말아줘.” ……   막언(莫言), 1955년 산동성 고밀현에서 출생. 본명 관모업(管谟业). 당대 저명한 작가. 2006년 “전국작가부자순위” 제20위, 2007년 “중국작가실력순위” 제1위를 차지. 2011년 장편소설 《개구리(蛙)》로 제 8회 “모순문학상”을 받음.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514    단편소설 * 별은 그 자리에 있었다 댓글:  조회:1795  추천:1  2013-03-15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꽉 막힌듯싶었다. 은희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평소 병원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은흰지라 선뜻 병원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싫었다. 온 시내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는지 초저녁이 훌쩍 지났는데도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콜록콜록…” “쿨룩쿨룩…” 여기저기에서 기침소리가 터졌다. 앉을 자리가 없어 맨 바닥에 앉아 “오호호― 머리야―” 하고 앓음소리를 내는 할머니도 눈에 띄였다. “남녀로소 모두 다 모여들었네.”라는 노래의 한 구절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은희는 가슴이 갑갑해나고 얼굴에 열기가 확확 돋쳤다. 은희는 목깃까지 올렸던 쪼르래기를 아래로 내린후 오른손바닥을 펴서 얼굴에다 부채질을 해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괜히 짜증이 일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돌아나오고싶었지만 당금 뻥 터질것처럼 아파나는 머리때문에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은희는 굼벵이 길 건너듯 한없이 늘차게 줄어드는 순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바람이라도 쏘이고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자니 바람이 너무 찰것 같았다. 은희는 현관에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 유리창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희는 본능적으로 유리창을 마주하고 섰다.  유리창에는 성에가 두텁게 끼였는데 뿌연 먼지까지 우에 올라 시선을 막고있었다. 꽉 막힌 자기의 가슴처럼 침침해났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가슴도 뻥 뚫고싶었고 시야를 가로 막는 유리창문도 쿡 깨버리고싶었다. 은희는 머리를 유리창에 바투 가져다 댔다. 그후 입술을 동그랗게 오무리며 “호―” 하고 크게 입김을 뿜었다. 유리창에 꼈던 성에가 입김을 못이기고 차츰 색이 죽어갔다. 은희는 그 맵시로 연신 유리창에 입김을 불었다. 유리창의 성에가 녹기 시작하더니 이어 거짓을 모르는 아기의 눈망울처럼 동그랗게 맑은 유리가 드러났다. 은희는 익살궂은 악동처럼 동그란 유리에 오른 눈을 가져다댔다. 누르끼레한 가로등빛이 괴괴하게 내리 비추는 거리는 쌩쌩 몰아치는 서북풍에 한결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택시 한대가 은희의 눈길을 스쳐갔다.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려오더니 은희의 눈에서 사라졌다. 등산복에 달린 테두리에 흰 털이 보시시한 모자를 이마까지 폭 내리쓴 남자애가 은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이 갸름한 닭알형이였다. 등산복을 입었지만 몸집이 쭉 빠져보였다. 남자애는 점점 은희의 시야에 다가들고있었다. (쟤도 병원에 오는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남자애는 은희의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하지만 은희의 머리속에서는 그 남자애가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애의 닭알형얼굴이며 잘 빠진 몸매는 은희로 하여금 걸이를 떠올리게 했다. “걸이!” 부르기만 해도  울고싶은 이름이였다. 가슴으로 키워 온 이름이였다. 갑갑하던 은희의 가슴을 밝혀주는 별 같은 이름이였다.   남편이 자기의 짐들을 꿍져가지고 집을 나간것은 2월말이였다. 떠나가는 겨울이 슬퍼서인지 그날따라 지붕으로 눈석이물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아빠, 가지마. 가지 말란 말이야.” 걸이는 아빠의 옷자락을 움켜 쥐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자기의 짐들을 날라다 차에 실었다. 걸이는 그러는 아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은희는 그러는 걸이를 바라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는듯싶었다. (어떻게 일궈낸 가정인데, 어떻게 지키려고 아득바득 애를 써 온 가정인데…) 걸이가 여덟살을 잡는 그해까지 걸이에게 아빠 없는 설음을 주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은희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한 은희의 진정도 몰라주고 다른 녀인을 품에 안았다. 남편의 짐이 빠져나가고 어수선한 집안에 남겨진 은희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당금이라도 그 자리에 잦아들고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내놓으라고 발버둥질을 치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자기에게 맥을 놓고 앉아서 숨을 고를만한 여유마저  없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일어서야 한다. 내가 일어서서 걸이를 받쳐주어야 한다.  내 숲이 커야 걸이에게 비를 가리워줄수 있고 볕을 막아줄수 있다.” 은희는 한구들 가득 널려진 물건들을 치운후 소래에 물을 가득 담아 가루비누를 풀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걸레로구들을 빡빡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은희는 청소가 끝날 때까지도 어깨를 들먹이는 걸이를 달래여 품에 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걸이야.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걸이를 지켜줄거야!” 걸이는 여전히 은희의 품에 머리를 틀어박은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은희는 그러는 걸이를 더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말했다. “걸이야, 이제부터는 더 용감해야 한다. 아빠가 가버렸거든. 그래서 이 세상에 걸이와 엄마 두 사람만 남게 된거야. 하기에 옛날보다 더 용감해야 하는거지. 그래야 아빠가 지켜주지 못하는 그런 두려움도 이겨낼수 있는거야. 그리고 자기 일은 자기 절로 하는 습관도 키워야 하구. 우리 걸이, 그렇게 할수 있지? ” 은희는 너무도 때 일찌기 상처입은 어린양 같은 걸이를 내려다 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걸이가 살풋이 얼굴을 들고 은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걸이야, 시름 놓으렴. 엄마가 있잖아. 엄마는 우리 걸이의 눈빛이 하냥 별처럼 반짝이게 할거다. 엄마는 우리 걸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나는 음식을 먹일거구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옷을 입힐거구 세상에 제일 좋은 대학에 보낼거다.” 은희는 오래도록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시각 은희는 하고싶은 말이 그렇게도 많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그 말을 여덟살에 나는 걸이에게 하고싶은건지 아니면 남편을 떠나 보낸 자기에게 하고싶은건지 알수 없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품에 안긴 걸이가 동정이 없어 내려다보니 걸이는 입가에 느침을 줄줄 흘리면서 잠들어있었다. 이튿날, 은희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학교로 가는 걸이에게 아침밥을 끓여 먹이려는 생각에서였다. “얘는 지금도 자고있겠지?” 은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이의 침실문을 열어보았다. 순간 은희는 목구멍이 꺽 막혀왔다. 걸이는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책상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있었다. “걸이야, 너 뭘하고있는거니?” “학교갈 시간을 기다리고있슴다.” “너 어떻게 이리 일찍 일어났니?” “엄마가 나에게 자기 일은 자기절로 하는 습관을 키우라고 했잼까?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가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슴다.” 걸이의 목소리에는 피곤이 가득 묻어있었다. 하지만 은희를 바라보는 두눈만은 반짝였다. 별을 떠올렸다. 은희는 그 별이 바로 자기가 살아가는 전부의 리유라고 생각했다. 생각 같아서는 와락 걸이를 끌어안고 볼이라도 뿌벼주고싶었지만 은희는 애써 자기의 감정을 억제했다. “걸이야, 우리 걸이 참 장하네!” “내 일은 내 절로 하겠슴다.” 걸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들어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은희는 여덟살에 나는 아이가 하루밤 새에 그렇게 클수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은희는 하루 새롭게 변해가는 걸이를 믿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나이또래의 어린애 같지 않게 음식타발도 하지 않았고 놀이감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속에 작은 령감이라도 들어 앉은듯 너무도 일찌기 셈이 들어가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자기가 못나 걸이의 동년을 다 갉아 먹는다는 죄의식이 가슴 한구석을 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걸이의 동년을 보상해줄수 있을가?) 정신적으로는 어쩔수 없는 형편이였지만 물질적으로만은 자신의 조건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최고로 만족을 주고싶었다. 손바닥에 쥐면 보이지 않을만치 작고 깜찍한 핸드폰을 산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날 출근길에 그런 핸드폰을 목에 건 걸이또래의 한 남자애를 보면서 은희는 그 핸드폰을 꼭 걸이의 목에 걸어주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이 있으면 어디에 가서든지 수시로 걸이와 련락할수 있어서 생활에 매우 편리할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저녁, 은희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 좋아서 퐁퐁 토끼뜀을 할 걸이를 그려보면서 집에 들어섰다. 걸이는 책상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있었다. 은희는 걸이의 침실에 들어서면서 기쁘게 소리쳤다. “걸이야, 봐. 핸드폰이다.” “핸…핸드폰?” 걸이는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올롱한 눈으로 은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핸드폰이야. 핸드폰이 있어야 우리 걸이가 어디에 가도 쉽게 련계할수 있지.” “내가 어디로 감가? 날 어디 보내려구 그럼까? 엄마.” 걸이의 목소리는 무서움에 파르르 떨렸고 얼굴색은 파랗게 질려가고있었다. “아!” 은희는 가슴에서 철렁하고 돌멩이가 떨어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은희는 걸이를 와락 당겨다 한품에 끌어안았다. “걸이야, 너…너 왜 그렇게 생각하니?” “모르겠슴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듬다.” 속삭이는 걸이의 두눈에 이슬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은희는 걸이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부비며 목메인 소리로 떠듬거렸다. “거…걸이야, 절대, 절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주…죽어도 살아도 엄마는 걸이와 함께 할거야!” “네.” 걸이는 은희를 향해 어른스럽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러는 걸이를 보면서 은희는 걸이의 가슴속에 자리 잡아가는 그늘을 지워주고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회사의 중견으로 뛰고있는 은희는 회사의 일로도 힘들었던것이다. 은희에게 있어서 사업파트너들과 술자리를 하는 일도 밀어버릴수 없는 일과였다. 저녁 늦게까지 자기를 기다릴 걸이가 불쌍해서 될수록 일찌기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그날,  2차로 노래방을 끝내고 3차로 죽집에 가자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은희가 집에 돌아온것은  10시를 금방 넘겨서였다. 그때까지 걸이는 자지 않고있었다. “걸이야, 양뤄촬(羊肉串).” 은희는 포장마차에서 사가지고 온 양고기뀀을 걸이앞에 내밀었다. “감사함다, 엄마.” 걸이는 양고기뀀을 받아들고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걸이야, 엄마하구는 그렇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우린 가족이니까.” “네.” 걸이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물컵을 들고 나왔다. “엄마, 마시쇼. 꿀물임다.” 걸이는 두손으로 물컵을 들어 은희앞에 내밀었다. 전에도 은희가 늦게 올 때면 자지 않고 기다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미리 꿀물까지 풀어 랭장고에 넣고 기다리기는 처음이였다. 은희는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하다, 걸이야.” “아니요, 엄마. 우린 가족이잼까.” 은희는 와락 걸이를 끄러안고 약간 떨리는 손으로 걸이를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아프다고 그대로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였다. 아픔을 안고도 걸이는 무럭무럭 잘도 커갔다. 늘 새물새물 웃으며 “엄마, 엄마.” 하고 불러주던 걸이의 세계에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고있었던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걸이의 입에서는 “엄마”라는 호칭이 뜸해졌고 새물새물 웃던 웃음도 사라졌다. 은희가 벼르고 별러대화를 하려고 입을 열면 걸이는 “아니요.”, “네”, “별거 아님다.”로 대화를 대체했다. 사춘기를 앓고있는 걸이를 두고 은희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은희에게도 힘들게 사춘기를 넘어온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입에서 자식들이 힘들게 사춘기를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었다. 은희는 조용히 걸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어릴 때처럼 그렇게 밝은 모습은 아니지만 걸이는 그래도 용하게 사춘기를 넘기고있었다. 코밑이며 두볼에까지 수염이 자라나 하루라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이웃집나그네를 방불케 했다. 은희는 가끔 꿀물을 타서 랭장고에 얹어주던 어린 시절의 걸이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또 하늘이 무너져도 떠받칠수 있을듯 튼실하게 자라난 걸이로 하여 가슴속 한구석이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걸이는 그렇게 무난히 초중을 졸업하고 고중에 들어갔으며 대학에 입학했다. 걸이를 싣고 떠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저으며 은희는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좋은 날에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마음 먹었지만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은희에게 있어서 리혼후의 십여년 세월은 그야말로 걸이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쥐면 부서질가 불면 날아날가 애지중지 보듬어 오던 그 자식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여 그의 품을 떠나는것이였다. 자랑스러웠다.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을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면 그 놈이 한모퉁이를 든든히 받쳐줄것 같았다. 걸이가 첫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던 그날밤, 은희는 긴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지나간 하루하루가 영화필림마냥 은희의 눈앞을 스쳐지났던것이다. 이튿날부터 은희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걸이가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구석구석 먼지도 털어내고 어지럽지도 않은 이불도 뜯어 빨았다. 걸이가 차에 앉았다는 전화를 받던 그 순간부터 은희는 가슴이 활랑거려 도무지 진정할수 없었다. 그날, 은희는 렬차 도착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겨 역전으로 나갔다. 떠나는 사람, 바래는 사람 그리고 마중나온 사람들로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혼탁한 공기로 하여 머리까지 뗑해났다. 역에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쏘이며 기다리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함께 개찰구를 나왔던 사람들을 렬차에 실어보낸 역에는  찬바람만 쌩쌩 몰아칠뿐 사람그림자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 은희는 으스스 몸을 떨면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5시 10분이였다. 렬차가 역에 들어설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아있었다. (어디까지 왔을가?) 은희는 걸이를 그려보면서 머리를 들었다. 까아만 밤하늘에서 별무리들이 숨박꼭질이나 하듯 깜박이고있었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 별을 본듯한데 잠간 딴눈을 팔고나면 그 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보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별을 살피다가 다시 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또다시 그 자리에 별이 나타나 반짝이고있었다.  (저 별은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건가?) 은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무룩히 입가에 웃음을 피워 올렸다.  차츰 발끝이 시려왔다. 찬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드는것 같았다. 은희는 선자리에서 동동 발을 굴렀다. 30분이 지났건만 렬차는 역에 들어서지 않았다. (웬 일일가?) 은희는 초조한 마음을 안고 사업일군에게 사연을 물었다. 렬차가 30분 연착되였다고 알려주었다. “호― 하필이면 오늘 렬차가 연착될건 뭐람!” 은희는 얼어서 남의 살갗처럼 되여버린 입술을 감빨았다.아래턱이 덜덜 떨려나 좀처럼 진정할수 없었다. 그날밤, 걸이와 함께 택시에 앉아 집으로 돌아온 은희는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역전에서 바람을 맞아 그렇겠지. 저녁후에 감기약이나 먹어야겠다.) 은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성다해 저녁밥상을 차렸다. 걸이가 좋아하던 갈비찜이며 동태탕도 상에 올렸다. 은희는 저녁을 먹으면서 걸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다. 하지만 걸이는 오랜 시간 차에 치워 오느라 피곤했던지 겨우 은희의 말에 응부하면서 수걱수걱 밥술만 입으로 날라갔다. “걸이야, 이 갈비찜을 먹어봐라. 아침부터 삶은것을 엄마가 방금 조미료를 넣어 가공했단다. 고기가 많이 붙었거든. 살짝 당기기만 해도 뼈가 술술 빠질거다.” 은희는 큼직한 갈비 하나를 집어 걸이의 밥사발에 놓아주었다. “됐어요. 저 절로 먹을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걸이는 은희가 집어준 갈비를 집어들었다. 뼈에 붙은 두툼한 고기를 쑥 빼서 우물우물 씹는 걸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맛있슴다.”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해도 좋을것 같았다. 하지만 걸이는 고기를 다 씹어 꿀꺽 소리나게 삼킬 때까지도 말 한마디 없었다. 은희는 자기의 노력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듯한 생각이 갈마들면서 어딘가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하고싶은 말은 또 얼마나 많았구.) 하지만 너무도 덤덤한 얼굴로 밥만 먹어대는 걸이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는것이 부담스럽게 생각되였다. 은희는 기계적으로 입에 음식을 날라가는 걸이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딱히 어떻다고 음식에 대한 평가는 없었지만 걸이는 이것저것 잘 먹어주었다. 은희는 갈비 하나를 또 집어 걸이의 밥사발에 놓아주며 넌짓이 물었다. “맛있지? 갈비.” “네.” “학교식당에서도 갈비랑 하니?” “네, 가끔.” “자주 사먹어야지.” “비싸죠.” “애두, 비싸다구 먹고싶은것을 참겠니?” 은희는 걸이와의 화제를 찾은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걸이는 몇술 더 뜨는것처럼 하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벌써 다 먹었니?” “배 불러요.” 걸이는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는 걸상에서 일어섰다. “왜, 더 먹지.” 말끝이 떨어지기도전에 걸이는 은희의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은희도 그러는 걸이를 따라 객실로 나갔다. 걸이는 그러는 은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쿵 하고 방문을 닫아 버렸다. 순간 문소리와 함께 은희의 가슴도 꺽 막혀버리는듯싶었다. 그날밤, 은희는 온몸에 열이 오르고 목이 아파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은희는 가까스로 일어나 감기약을 주어 먹고 다시 자리에 들었다. 은희는 긴긴 밤을 악몽으로 모대기다가 새벽녘에야 쪽잠이 들었다. 얼마 잔것 같지 않은데 자명종이 울렸다. 걸이만 없다면 그대로 누워있다가 그 맵시로 출근하고싶었지만 걸이의 아침밥때문에 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은희가 밥상을 차려놓고 불러서야 걸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은 안 먹어도 괜찮은데요.” 걸이는 잠기 어린 두눈을 뿌비면서 밥상앞에 마주 앉았다. “얘를 봐라. 아침을 안 먹다니. 속을 버린다. 너 학교에서 자주 아침을 굶는것이 아니니?” “네, 보통 안 먹어요.” “쯧쯧쯧… 객지 밥을 먹는 사람들은 그래서 위를 버린다니까. 피곤해도 아침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 “네.” “집을 나가면 고생이지. 엄마곁에 있었으면 아침마다 따끈따끈한 밥을 먹겠는데.” “모두들 그렇게 살아요.” “하긴, 모두가 너 같은 도개비들이겠으니까.” 은희는 말하면서 걸이의 얼굴을 일별했다. 걸이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수걱수걱 밥술만 뜨고있었다. 그러는 걸이를 보기만 해도 은희는 배 부른것 같았다. 은희는 수저를 들 생각마저 잊고 뚫어져라 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잡수세요?” “먹어야지. 먹는다구… 아이참, 그런데 왜 내 얼굴에 이렇게 열이 오르지…” 은희는 얼굴에 대고 큰 동작으로 손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감기에 걸린거 아니예요? 약을 잡수세요.” “그래, 약 먹어야겠다. 너 밥 더 줄가?” “아니요. 배 불러요.” 말을 마친 걸이는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다 먹었니? 좀더 먹지.” “됐어요.” 말을 마친 걸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맵시로 침실에 들어가 덜컹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남자애들은 참 도틀이 없다니까. 녀자애들 같았으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랑 하면서 시시콜콜 수다나 좀 떨어줄건데…” 은희는 아쉬운 생각에 끌끌 혀를 차다가 밥맛이 돌지 않아 그대로 일어섰다. 은희는 천근같은 다리를 끌며 출근길에 올랐다.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은희는 그렇게 진종일 우왕좌왕 하다가 퇴근시간을 맞춰 일어섰다. 집에 들어서자 걸이의 침실문이 열렸다. “왔어요?” 걸이가 내복바람으로 나오며 인사했다. “오, 너 어데 놀러 안 나갔댔니?” 은희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걸이를 바라보았다. “네. 집에 있었댔어요.” 말을 마친 걸이는 다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뭔가 더 말하려고 입을 벌리던 은희는 탕 하는 문소리에  실망하고입만 쩝쩝 다셨다. 순간 웬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걸이의 침실과 객실을 막아놓은 그 침실문이 은희에게는 산처럼 느껴졌다. 그 산이 너무 높아 도무지 넘을수 없을것 같았다. 은희는 자신이 걸이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사람으로 되는것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은희는 옷을 벗어 옷장에 대충 걸어놓고는 무너질듯 침대에 쓰러졌다. 저녁이고 뭐고 관계 없이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싶었다. 은희는 이불을 당겨다가 머리까지 푹 덮어썼다. 눕자마자 잠이 쏟아질것 같았지만 정작 눕고보니 머리만 지긋지긋 아파나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말뚱말뚱해지는 눈앞으로 수걱수걱 밥술을 나르던 걸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걸이도 저녁을 먹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안되지, 나는 아파서 그렇다손 쳐도 몸이 펀펀한 걸이야 저녁을 굶길수 없지.) 가까스로 일어나 앉아 숨을 고르고 난 은희는 객실에 나가 걸이의 침실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걸이야, 저녁에 뭘 먹고싶니?” “아무거나.” 걸이는 나오지도 않고 자기의 침실에서 한마디 했다. “삼겹살을 구워줄가?” “맘대루.” 이번에도 걸이는 그렇게 외마디 대답만 할뿐이였다. “알았다.” 은희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녁밥상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은희는 온몸에 열이 팔팔 끓어 도무지 밥알을 넘길수 없었다. 은희는 들었던 수저를 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밥맛이 없네. 걸이야, 너 혼자 먹어라.” “감기 심하게  걸렸네요.  병원에 가서 링겔이라도 맞으시오.” “아니다. 잠간 누웠다 일어나면 낫겠지.” 은희는 천천히 몸을 이르켜 두어걸음 걷다가 머리를 돌렸다. 걸이는 머리를 수굿한채 부지런히 입에 밥을 퍼넣고있었다. (참, 내가 밥맛이 없다한다구 한번 더 권하지도 않네.) 은희는 서운한 생각에 “호—”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은희는 용하게도 잠이 들었다가 목에서 겨불내가 나는것 같아 깨여났다. 은희는 물을 찾아 주방으로 갔다. 걸이가 쓰던    밥사발과 수저가 가시대에 들어가 있는외에 나머지 반찬그릇들은 그대로 밥상우에 놓여있었다. 은희는 정수기에서 물을 뽑아 꿀꺽꿀꺽 마셨다. 타는것 같던 가슴이 잠시나마 시원해지는듯싶었다. 은희는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면서 침실로 들어가려다가 문뜩 머리를 돌려 걸이의 침실쪽을 바라 보았다. 침실문은 여전히 굳게 닫친대로였다. (걸이는 진종일 침실에 들어박혀 뭘 하고있을가?) 은희는 침실문을 확 밀어열고 들어가 걸이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싶었다. 하지만 걸이의 침실쪽으로 두어걸음 옮기던 은희는 문뜩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봐서는 뭘 하지? 그만두자, 설마 걸이가 침실에서 나쁜짓이야 할라구? 제 하고싶은 대로 하라지.) 은희는 주방으로 돌아가 밥상앞에 마주앉았다. 밥을 몇술이라도 떠넣어야 감기약을 먹을수 있을것 같았던것이다. 걸이가 먹다 남긴 반찬그릇을 그대로 마주하고 앉아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밥알을 세여 입에 넣노라니 저도 몰래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자기가 사람그림자 하나 없는 불모지에 던져진듯한 외로움이 갈마들었던것이다. 은희는 저도 모르게 걸이에게 의지하고싶어지는 자신이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지할수록 그만치 걸이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것도 사실이였다. (그래, 그게 아니야. 곧 내 품을 완전히 떠날 자식인데… 그 애에게 기대려고 생각하는 내가 틀린거지. 내 몸은 내 스스로 챙기는거야.) 은희는 애써 밥을 입에 퍼넣으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이  7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은희는 침실로 들어가 옷을 찾아 입었다. 병원에 가 링겔이라도 맞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은희는 옷을 다 입은후 그냥 나가려다가 걸이가 자기가 없는것을 발견하고 근심할것 같아 알리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걸이의 침실쪽으로 다가갔다. 걸이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된다는데. 정말이지 그럼. 우리 엄마가 와늘 열이 펄펄 끓는다. 그래, 자식이라구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지켜드리지 않으면 누가 지켜드리겠니. 그래, 다음날 보자. 우리 집 ‘로친’이 감기를 다 앓고난 후에 만나자.” 그 말을 들으며 은희는 가슴이 후더워 났다. (내가 병원에 간다고 하면 혹시 나와 함께 병원에 가주겠다고 하지 않을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 추운 날씨에 괜히 따라나섰다가 그 애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쩔라구. 아니지, 내가 혼자 갔다오면 될걸 가지구.) 은희는 그렇게 흐뭇한 생각을 굴리면서 걸이의 침실에 대고 소리쳤다. “걸이야, 엄마 병원에 간다.” “네?” 소리에 이어 침실문이 열렸다. (아니, 얘가 정말 함께 따라나서려는게 아닌가?) 은희는 가슴마저 후둑후둑 뛰였다. “엄마가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고 올테니 너 먼저 자거라.” “네, 갔다 오세요.” 말을 마친 걸이는 아무 일도 없는듯 몸을 돌려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은희는 우두커니 서서 쿵 하고 닫기는 침실문을  바라보다가 한풀 꺾여 힘겹게 다리를 끌며 출입문쪽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인사말로라도 “함께 가줄가요.”라고 한마디 못하는가? 그렇다면 아까 제 친구들과 한 말은 저녁에 나가기 싫어서 나를 방패로 내세운것이란 말인가? 그줄도 모르고 나는 괜히 감동까지 먹지 않았는가?) 떡줄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고 속에 엄마라는 개념마저 없는 자식에게 짝사랑을 하는것 같아 은희는 괜히 부아통이 터지려고 했다.   생각같아서는 하루쯤 쉬고싶었지만 하루만 견지하면 토요일, 일요일인지라 은희는 힘들게 기여 일어났다. 겨우 아침밥을 지어놓았지만 기름냄새까지 맡고보니 좀처럼 식욕이 돌지 않았다. 은희는 상우에다 가지가지 반찬들을 곱게 차려놓은후 조용히 출근길에 올랐다. 저녁편이 되자 또 온몸이 펄펄 끓어 올랐다. 은희는 퇴근하는 길로 병원에 가 링겔을 맞을가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집에 돌아가 걸이에게 저녁을 지어 먹인후 병원으로 가는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는 간신히 공공뻐스에 올랐다. 퇴근시간이라 뻐스안은 시루속처럼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런데도 정거장마다에서 손님들이 올랐다. 내리는 사람이 적고 오르는 사람이 많아 뻐스안은 점점 더 비좁아졌다. 은희는 지탱하기 힘든 몸을 완전히 인파에 맡겨버렸다. 차가 덜컹 하고 들추자 사람들이 하나같이 뒤로 쏠렸다. 은희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깐센마(干什么)?” 뒤에서 찢어질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가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려보니 뚱뚱한 몸매의 아줌마가 은희에게 눈을 부라리고있었다. 은희가 자기의 발을 밟았다는것이였다. 은희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사과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되려 기고만장해서 소리쳤다. “메이짱 얜징아(没长眼睛啊?” “네년은 뒤에도 눈이 달렸냐?” 하고 소리라도 치고싶었지만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지라 은희는 “나 죽었소.” 하는 식으로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아줌마는 계속 뭐라고 궁시렁거리다가 제풀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은희는 뻐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사는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컹 하고 출입문소리가 나면 침실문을 열고 내다보기라도 하던 걸이가 웬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데 나갔는가?) 신을 벗어놓는 바닥을 내려다보니 걸이의 신은 그대로 있었다. 아마도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라도 듣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은희는 침실로 들어가 되는대로 가방을 침대에 훌렁 던져버리고는  웃옷을 벗었다. 불시에 집안의 더운 공기가 몸을 감싸서인지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은희는 잠간 침대머리에 주저 앉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터지는것처럼 아픈 머리속으로 뻐스에서 만났던 뚱뚱한 몸매의 아줌마가 떠올랐다. “메이짱 얜징아(没长眼睛啊)” 아줌마는 얄밉게도 연신 소리치고있었다. 은희는 생각할수록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은희는 몸에서 열이 더 끓는것 같아 우에 입었던 실내복을 벗으려고 목깃에 채운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이 떨려 단추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은희는 신경질적으로 목깃을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단추가 떨어져나갔다. (왜 이래, 참 재수에 옴 붙었네.) 은희는 궁시렁거리며 실내복을 벗어 옷장에 넣은후 잠옷을 입고 주방으로 나갔다. 청국장에 고추가루를 팍 넣어 끓여 먹으면 속이 개운해질것 같았다. 은희는 배추김치잎이며 감자며를 썰어 냄비에 넣은후 청국장을 푹푹 떠넣고 물을 부었다. 그후 가스레인지를 틀어놓고는 랭장고에서 콩나물을 꺼냈다. 콩나물을 데쳐 랭채를 무치려는 생각에서였다. 은희는 왼손을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콩나물을 다듬었다. (괘심한 년, 공공뻐스가 그렇지. 그래 네년은 뒤에 눈깔이라도 달렸는감? 왜 나보고 “메이짱 얜징아?” 하고 욕하는거야?) 몸매가 뚱뚱한 그 아줌마가 지궂게도 은희의 머리속을 헤집고있었다. 은희는 고추가루 팔러 갔다가 서북풍을 만난 아낙네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 아줌마에게 궁시렁궁시렁 줄욕을 퍼부었다.   그때 갑자기 청국장냄새가 코를 찔렀다. 은희는 감짝 놀라며 가스레인지에 눈길을 돌렸다. 팔팔 끓던 청국장이 넘쳐나 가스레인지에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은희는 급히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는 청국장냄비를 들어내렸다. 은희는 행주로 가스레인지에 흘러내린 청국장을 닦아냈다. 밥맛을 당길것 같던 청국장냄새가 페부에 스며들자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은희는 두손에 행주를 움켜쥔채 그 자리에 폴싹 주저 앉았다. 한번 시작된 구역질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은희는 왝왝 구역질을 하면서 급히 화장실로 뛰여갔다. “왜 그램까?” 그 소리에 은희는 머리를 돌렸다. 걸이가 잠옷바람으로 뒤에 서서 초조한 눈길로 은희를 바라보고있었다. 순간 은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였는지도 모를 분노가 터져올랐다. “너, 너 진종일 집에서 무슨짓을 하고있는거니?” 너무나도 돌연적인 공격에 걸이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두눈을 퀭 하니 뜬채 은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건 말건 은희는 젖먹던 힘까지 다내서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너무하다, 너. 에미가 다 죽어간다는데도 아픈가 한마디 물어두 안 보니? 아예 에미가 죽어 없어져야 시름이 놓이겠구나.” 말을 마친 은희는 그 맵시로 바닥에 풍덩 주저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왜, 왜 이램까?” “됐다. 나…나, 너 없는셈 치겠다.” 말을 마친 은희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급히 부축하려는 걸이의 손을 쳐버리며 은희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걸이가 인차 따라 들어왔다. “나라고 왜…왜 어머니가 감기로 힘들어하는걸 모…모르겠슴까? 그런데 알면 또 어떻게 하람까? 같이 앓을수도 없구.” 걸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꺽꺽 말을 더듬었다. “누가 너보구 같이 앓아달라구 했니? 아픈가고 물어도 못보는가 말이다.” “참, 그래서 나두 ‘약을 잡수쇼.’, ‘링겔을 맞으쇼.’ 하고 문안하지 않았슴까?” “야, 그렇게 의무적으로 한때 한번씩 물어보는것두 관심이냐?” 은희는 오른손을 들어 식지를 쭉 펴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그럼 어떻게 하람까? 한때에 두번씩 물어보람까? 도움도 안될것을. 혹시나 엄마가 심부름이라도 시킬것 같아 친구들이 밤낮으로 놀러 가자고 전화 오는것도 내가  나가지 않고있잖슴까? 다른 애들은 집에 온날부터 뭉쳐다니며 놀고있슴다. 혹시 낮에 엄마 전화 올가봐 집을 지키구있었는데… 엄마는 그래 내가 녀자애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픔까?’, ‘열이 남까?’, ‘목이 아픔까?’ 하구 물어봤음 좋겠슴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시원히 말하쇼. 엄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내 어떻게 암까? 왜 말 못하구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함까? 내 엄마 아들임다.” 말이 없던 걸이였지만 정작 입을 여니 말이 술술 잘도 나왔다. 련주포를 쏘아대는 걸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은희는 잠시 뭐라고 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걸이의 마디마디가 그른게 없다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무너지는 체면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은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바락 소리 질렀다.  “듣기 싫다, 듣기 싫어. 그 잘나게 에미를 생각하면서.” 은희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그러는 은희를 바라보던 걸이가 입가에 시무룩히 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알았슴다, 엄마. 저녁 먹구 나랑 병원에 가기쇼. 앞으로는 진짜 ‘잘나게’ 엄마를 생각하겠슴다.” 걸이는 휴지를 쑥 뽑아 은희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어 큼직한 손바닥을 은희의 어깨우에 올려놓더니 힘있게  툭툭  다독여주기까지 했다. “쉬쇼!” 말을 마친 걸이는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 훤칠한 키꼴이며 떡 벌어진 어깨가 은희의 눈확을 파고들었다.    걸이가 다독여준 어깨가 뜨끔뜨끔해났다. 이어 그곳으로부터 달콤한 난류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것 같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당금 터져버릴것 같던 머리가 어깨로부터 퍼져오는 그 난류때문에 한결 가벼워졌다. 은희는 창문가로 다가가 한겨울이라는것도 잊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찬바람이 휙 불어들어와 화끈화끈 달아오르던 은희의 얼굴을 쓸어주었다. “후욱―” 은희는 길게 들숨을 끌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뭇별이 반짝이고있었다. 자기가 몸 담그고있는 도시에 그렇게 많은 별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울따름이였다. 그랬다. 별은 분명 그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은희는 자기가 그 별들을 보아내지 못했을뿐이라고 생각했다.                     
513    다 갔다 댓글:  조회:2001  추천:5  2013-03-05
다 갔다. 20여일간 흥성흥성 하던 집이 오늘 오후 4시 반을 시점으로 다시 적막한 사막이 되여버렸다. 컴퓨터앞에 앉아서 허둥대는 이 나그네의 몰골... 연변에 사는 나 하나의 형상이였으면 좋겠건만 이것이 연변 조선족사회의 보편적인 그림이라고 한다. 아우- 마누라는 지금쯤 안도를 지났을가? 대학에 간 큰 아들놈은 지금쯤 숙소에서 동학들과 너스레를 떨고있겠지? 외할머니를 찾아간 작은 아들놈은 지금쯤 그 로인을 애먹이느라 시간 가는줄 모를거구... 에라~ 오늘밤엔 컴퓨터자판이나 죽여줘야겠다.
512    피난을 다녀왔습니다 댓글:  조회:2679  추천:5  2013-02-12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보고있었습니다. 문득  걸상이 흔들흔들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착각이였나? 생각하면서 귀에 넣었던 이어폰을 빼고 걸상을 살폈습니다. 걸상이 더 세게 흔들리는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다시 이어폰을 귀에 넣고 걸상에 앉았습니다.  걸상의 진동은 더 강하게 엉뎅이를 통해 느껴졌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어폰을 뽑아던지고 텔레비죤을 시청하고있는 와이프를 부르며 객실로 나갔습니다. 와이프도 당황한 기색이였습니다. 꽃병도 책장도 마구 흔들리고있었습니다. 지진이다. 뇌리를 치는 생각이였습니다. 소리쳤습니다. -빨리, 빨리 집에서 나가자. 지진이다. 침실에서 제 놀음에 뼈져있던 큰 놈이며 작은 놈이 놀란 눈길로 객실에 얼굴을 보였습니다. -빨리, 일이 생기는것 같다. 식구들을 재촉했습니다. 란시에 앉은 뱅이가 없다는 말이 참말인가봅니다. 우리 네 식구가 복도에 나선것은 내가 소리쳐서 2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였을것입니다. 모두 바지만 입고 웃옷은 걸치며 나왔습니다. 우리는 무작정 층계를 내렸습니다.  3층에 사는 한족할아버지를 만나 진동을 느끼지 못했냐고 했더니 밖에는 아무 진동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밖으로 나와 잠간 우리 집이 있는 7층을 올려다보며 갖은 추측을 다했습니다. 나와 와이프가 사태를 지진으로 몰아가고있을 때  대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 아들놈이 “혹시 조선의 핵실험이 아닐가요?   2차 핵실험때도 진동을 느껴 학교들에서 휴학을 했다던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나도 매스컴에서 떠들던 제3차 핵실험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중구난방 자기의 생각들을 피력하면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장모님댁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진동도 감지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식구들이 너무 예민한것이 아니야고했습니다. 나는 빨리 한국 텔레비죤을 켜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때까지도 텔레비죤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서서  불과 5분도 채 안 되여 한국 SBS에서 뉴스속보가 떴습니다. 5.1급의 인공지진이 조선 함격북도에서 파악됐다는것입니다.  나는  지진이 아니라는데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내내 텔레비죤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에서 진행한 제3차 핵실험 여파라는것이 판정되였습니다. 불과 30초도 안되는 진동이였고 우리가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5분도 안되는 순간이였지만 돌이켜보면 5년을 살아온것보다 더 많은것을 감수한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는  죽음을 생각했고 가족을 생각했습니다. 실로 한치앞을 모르는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피난길에서 돌아와 다시 컴퓨터앞에 앉은 이 순간 내 뇌리에 뿌리 내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웅다웅, 아득바득 힘들게 살아가는것일가요? 죽음이 항상 눈앞에서 기다리고있을진대 더 이상 내려놓지 못할게 또 무엇일가요? 오늘의 삶을 여한 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겠습니다.
511    올해는 나의 본명년(本命年) 댓글:  조회:2557  추천:4  2013-02-10
  올해는 나의 본명년(本命年)이다. 며칠전에 사두었던 빨간 팬티를 꺼내 입으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무난하게만 살수 있다면 하는 소원을 빌어보았다. 아홉고개라는 말이 있다. 마흔 아홉살! 스물 아홉살의 격정도 서른 아홉살의 조급함도 없다.  내 삶이 이렇게 담담하게 느껴진다는게 조금은 서글프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삶을 반추해볼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졌다는것으로 하여 안도감을  느낀다.   지나온 발자국들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안도감을 느낄수 있다는것에 당당해진다.   비록 내앞에서 달리는이들이 수없이 많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쫓아 뛰지 않겠다. 나에게는 그들에게 있는 정력과 용기와 지혜가 없다.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느긋하게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다. 
510    儿童小说 * 金达莱花开的时候 댓글:  조회:1340  추천:0  2013-01-29
 儿童小说   金达莱花开的时候                                   崔东日 陈雪鸿  译     美英气得双脚直跳,可8岁的弟弟春奉却不管美英的心情,只是用拳头擦拭着眼泪,径直朝山下走去。 “春奉,你真的不听话?那好,姐姐再也不理你了。” 美英呆呆地望着弟弟朝山下走去的背影,咬了一会儿嘴唇,说出了这句弟弟平时最怕听到的话。不料,春奉依然头也不回地朝山下走去。美英用充满失望的目光注视着渐渐远去的春奉,然后无力地坐在路边一棵榛子树的树荫底下。她越想越生气。 (唉,真是个不懂事的孩子!我哪有钱给他买玩具喇叭呢?唉,太不懂事了……) 美英想着,又摸了摸手帕紧紧裹着的左手腕。裹手腕的手帕里有一张已经起了毛的2元纸币。 今天早晨,住在后面那家的双旋儿她奶奶拿着2元钱和10个煮熟的鸡蛋对美英姐弟说: “孩子们,今天到水库去看看吧。今天那地方一定是你们的天下啊。” “对,今天是6.1儿童节嘛。姐姐,咱们今天到水库去玩吧。哲浩、永洙他们都说今天要到水库去玩呢。” 美英用恻隐的目光看着高兴得又蹦又跳的春奉,无言地点了点头。 美应今天本来并没有去水库的想法。虽然没有钱也是不想去的原因,但更为重要的是怕弟弟看见伙伴们与爸爸妈妈一起玩的情景会伤心。 “谢谢您,奶奶。我会领着春奉到水库去的。” “呀——太好啦!我能到水库去玩啦!” 春奉高兴得拍起手来。 “好,那就好。孩子么,就应该像个孩子才是。没有大人就一定比别人矮一头吗?快趁热吃了以后去吧。” 双旋儿她奶奶一再嘱咐以后,回家去了。 “姐姐,咱们现在就到水库去好吗?其他孩子早就去了。” “春奉,咱们先说好了,今天到水库去什么吃的东西也不买。” “啊?刚才奶奶不是给你钱了吗?” “那钱得留着几天以后买酱油。以后咱们真的不会再有钱了。” “唉,那只好这样了。不过,能去水库就行。咱们快走吧。” 虽然春奉答应得挺痛快,但是到了水库以后还是变了卦。事情都是从县城来的小商贩卖的金达莱形状玩具喇叭上引起的。为了招徕顾客,小商贩还用那漂亮的小喇叭吹出了“嘀嘀嗒嗒……”动听的声音。每个小喇叭的价格为2元。像春奉一样到水库来玩的伙伴们,都缠着自己的爸爸妈妈买了一个小喇叭吹起来。 “姐姐,能不能让我也吹一下小喇叭……” 春奉开始缠磨起来。 “不行。早上不是说好了吗?什么吃的东西也不买。” 尽管美英不忍心,但还是断然拒绝了春奉的要求。 “我……又不是要买吃的东西。那金达莱形状的喇叭多漂亮,跟咱们家院子里开的金达莱一模一样。姐姐,给我买一个吧。” “要知道你这么不听话,我真不应该带你来……” 美英涨红着脸,提高了嗓门儿。 “小气鬼!哼,姐姐坏,大坏蛋!” 春奉随即也发起火来,赌气地转过身朝山下走去…… 美英眺望着已经不见春奉人影的山路,还在期待着他会呼喊着“姐姐——”从山路上跑过来。然后,过去了很长时间,山路上还是没有出现春奉的影子。美英不由担心起来。 (他会不会跑到什么地方起了呢?这里人那么多,会不会……) 美英突然产生了不祥的念头。她猛地站起身,快步朝春奉消失的方向走去。 美英终于在村口发现了春奉。但是,没等她安心地舒一口气,又被另外的什么东西堵住了心口。她看见比春奉大2岁的秀东正骑在春奉的背上,嘴里还喊着“得儿——驾……”。然后,春奉就像黄牛似地发出“哞——哞——”的声音,慢吞吞地朝前爬去。 “春奉!” 美英冲过去,双手把秀东一把推开,又一脚踢在春奉的屁股上。春奉朝前摔了个嘴啃泥,“哇——”地放声大哭起来。美英依然不依不饶地抓住春奉的前襟把他从地上拎起来,又在他脸上狠狠地扇了一巴掌。 “姐姐……” 春奉把脸埋在美英怀里,哭得更加伤心。 “秀东已经跟我说好了,我只要让他骑一次,他就把金达莱小喇叭让我玩。” “春奉呀——” 美英紧紧地搂住还在伤心哭泣的弟弟的肩头,狠狠地瞪了秀东一眼。她的眼睛里似乎冒出了可怕的火花。 “走,咱们这就去买喇叭。” 美英拉起春奉的胳膊就走。 “快去吧买,叫化子!” 秀东在他们身后喊了一句。 “什么?我们是叫化子?” 美英放开春奉的胳膊,转身一把揪住秀东的头发摇晃着大喊: “都是因为谁我们才会落到这个地步的……臭小子,你去死吧,去死!” 秀东真以为美英会打死他,吓得大喊大叫起来。但是,美英还是狠狠地把他揍了一顿之后才把手放开。她情不自禁地流下了眼泪,使劲咬住嘴唇,拉着春奉跑回家去。 迎接又气又伤心的姐弟俩的只有冷冰冰的铁门。铁门是院子里的金达莱第二次开花的那一年安的。美英在推开铁门走进院子的一刹那间,大喊了一声“爸爸——”,一下子瘫坐在地上哭出声来。 “姐姐,你别哭。姐姐一哭,我会害怕的。” “春奉呀,咱们以后怎么活呢?” “姐姐,你被哭。爸爸不是说过吗?明年金达莱花开的时候,妈妈也许会回来的。” “春奉呀!” 美英把吓得浑身发抖的春奉搂在自己怀里。没过一会儿,她又把春奉一把推开,狠狠地大喊起来: “撒谎,统统是撒谎!金达莱花开的时候回来?不,不会的!统统是骗我们的!” 美英猛地跳起来,不管三七二十一地要把种在院子里的金达莱拔掉。 “姐姐,不能拔!把金达莱拔了,妈妈怎么回来呢?姐姐——” 春奉紧紧抱住美英的双腿苦苦哀求。 “春奉呀——” 美英重新瘫坐在地上,把春奉抱在怀里。她的眼睛里流出的眼泪像断了线的珍珠,沿着脸颊跌落下来。 “姐姐,咱们再把金达莱种上吧,好吗?” 春奉抬起充满恐惧的眼睛望着美英,怯生生地问道。美英慢慢地把目光转向已经被拔起的金达莱。往事像走马灯似地从她的眼前一一闪过…… 4年前,美英家从后山上挖来金达莱花种在院子里。 那年,已经去外国打工2年的秀东爸爸回来了。村里人络绎不绝地来找秀东爸爸,向他打听有没有带回什么挣钱的门路来。 美英妈妈年轻的时候对文学独有情钟,练习写作几乎到了疯狂的程度。然后,随着成为文学家的梦想逐渐破灭,又想以富有的生活来加以弥补。于是,她找秀东爸爸打听的次数和热情远远超过了任何人。果然,秀东爸爸终于把一条挣钱的绝妙门路告诉了美英妈妈。他让美英妈妈与美英爸爸佯装离婚,然后与外国人办理假结婚的手续。 经不住美英妈妈的死缠烂磨,美英爸爸终于同意佯装离婚。美英把1万元手续费交给了秀东爸爸,并经他牵线与一个上了年纪的外国人见了面。 至此,一切手续就算办理完了。 在动身去外国的几天前,美英妈妈与美英和春奉,以及美英爸爸一起去后山挖来了金达莱种在院子里。她还说,等第二年金达莱花开的时候,就会从外国把美元寄回家来。她甚至还说,等金达莱花开过5次以后,就会把美英爸爸和美英姐弟俩一起接到外国去共享富贵。美英妈妈根据自己的姓氏,把这个计划称之为“南氏5年计划”。 当年,美英11岁,春奉才4岁。 第二年春天金达莱花开的季节里,美英妈妈果然从外国寄回来了美元。美英爸爸一直在乡下过着安静的生活,突然收到了花花绿绿的美元,高兴得有些不知所措。 又过了一年,还是在金达莱花开的季节里,美英妈妈又从外国寄回了厚厚的一叠美元。那年,美英家把原先的草房拆了,又在原地盖起了宽敞的砖瓦房,还用砖砌了围墙,安上了铁门。 然而,没过多久传来的消息使美英爸爸大吃一惊。美英妈妈已经在外国生了孩子,正式组成了家庭。美英爸爸生性耿直淳朴,难以接受这个残酷的事实,终日借酒浇愁,边喝酒还边重复着“金达莱花开的时候……呵呵呵……金达莱花开的时候……”,然后就像疯了似地狂笑不止。 今年春天,已经是金达莱花第4次开的时候,而美英爸爸在把美英妈妈从外国寄来的美元全部花在喝酒和赌博上,并欠下一屁股债之后,因患脑出血而去世了。就在他临终的那天,嘴里还在不断地说着: “金达莱花开的时候……春奉呀,你等着明年金达莱花开的时候吧,也许你妈妈会回来的……” 这一连串的打击使美英更觉得自己已经长大了,而且也懂得了许多原先不知道的道理…… “姐姐,咱们重新把金达莱种上吧。明年金达莱花开的时候,妈妈也许真的会回来的。” 春奉又一次拉了拉美英的衣角。美英吃了一惊,把目光转向春奉,正好与春奉充满期待的目光碰在一起。美英默默地站起身来。春奉也跟着一起站起来。 “春奉,咱们一起把金达莱重新种上吧。” “太好了。这是能让妈妈回来的金达莱花……当然要重新种上。” 春奉的嘴角边露出天真的笑容。 “不,春奉呀,这不是能让妈妈回来的金达莱花,是春奉和姐姐两个人的花。来,把咱们自己的花重新种上。” 美英似乎下定了什么决心,说话的口气十分坚决。 “咱们自己的花?” 春奉眨着眼睛,似乎并不明白姐姐的话意。 “是的,春奉和姐姐一起把这美丽的花重新种好,坚强地活下去,直到金达莱花开的时候!无论是金达莱花开10年还是20年,姐姐是不会离开春奉的。” 不知道春奉是不是真正明白了姐姐的话意,只见他有力地点了点头。 姐弟俩精心地把拔起的金达莱花重新种好……                                      
509    儿童小说 * 好 心 烦 댓글:  조회:1137  추천:0  2013-01-29
儿童小说            好 心 烦   作者 崔东日 翻译 李玉花   2004年6月1日,晚9点15分 好心烦。 也许对永洙、哲浩,还有秀英他们来说今天是个好日子,可是对我来说却不是,我真的打心眼里不喜欢这一天。也许只有被自己最最信任的人欺骗过的人才会理解我此时的感受。 爸爸一周前就对我许下诺言:今年的“六一”儿童节一定带你去公园,让你痛痛快快地玩一天。听到爸爸的话,我甭提有多高兴了。 第二天,我来到学校,按耐不住内心的喜悦,向永洙、哲浩、秀英他们炫耀: “我爸说了,“六一”儿童节带我去公园,让我痛痛快快地玩个够!” 听到我的话,他们一脸羡慕的表情。说实话,他们虽然和父母生活在一起,可是,由于生活拮据,无论买东西还是去游玩都受到限制。而我的爸爸却出手大方,每年都带我去公园尽情地游玩,只要是我看上的玩具,他会毫不吝啬地给我买。永洙他们不羡慕才怪哩。 我翘首期盼着这一天。然而,今天早晨,我的美梦就像一个吹得过大的气球,瞬息间就破灭了。爸爸接待“上面”来的人,凌晨3点多钟才回到家。我抱着一线希望摇醒爸爸,缠着他要去公园,没想到爸爸眼睛都睁不开,含含糊糊地对我说: “裤兜儿里有钱,你自己拿钱去玩吧。” 我从爸爸的裤兜儿里拿出30元走出家门。我不愿意在公园里看到那些牵着爸爸妈妈的手嘻嘻哈哈孩子们,头一次走进了网吧。 网吧里有许多像我这样大的孩子。看来,像我一样被爸爸或者妈妈欺骗的孩子还真不少……   2005年6月1日,晚10点20分 好心烦。 最近,我特别不喜欢爸爸。晚上10点以后回家的次数越来越频繁了。回回都说接待“上面”来的客人。“上面”来的客人长得到底什么样呢?大概“上面”来的人都没有家吧。都是那些“上面”来的人惹的祸,害得我今年的“六一”儿童节又独自一个人从爸爸的裤兜儿里拿着50元钱去了网吧。去年的“六一”,我第一次走进那里的时候,心里还直发抖呢,可不知不觉中,我似乎也习惯了网吧里的气氛。现在,除了这里,我似乎找不到一个可以让我安心的地方……   “你还想骗我?这事儿在延吉这个地方早就传开了,现在该知道的人都已经知道了,你还想抵赖?” 妈妈尖利的声音穿过客厅钻进小彬的寝室。小彬猛地把手里的日记本摔到地下,用被子捂住了头。 “我抵赖?你知道你不在的这5年我是怎么过来的吗?为了小彬我吃尽了苦头,你知道吗?” “为了小彬?哼!说得倒好听!要是为了小彬,你怎么能做出这种事儿来?” 妈妈的声音透过厚厚的被子刺痛着小彬的耳朵。小彬紧紧地咬住嘴唇,厌烦地闭上了眼睛。 爸爸和妈妈的战争已经持续了两个多月。小彬再也无法忍受了,猛然掀开被子坐起来。 (什么,为我?假如不是我,你们又会过怎样呢?) 小彬一脚踹开房门走到客厅。也许是踹门的声音惊动了父母,只见妈妈一脸惊讶地推开门问道: “彬儿,怎么啦?你哪儿痛啊?” 妈妈慌忙跑到客厅,一把抓住小彬的手。小彬厌烦地甩开妈妈的手喊道: “是啊,我很痛,我痛得快要死啦!快要死啦!” “哎呀!彬儿,我的宝贝,你告诉妈妈哪儿痛?” 母亲有些颤音的语调让小彬心里说不出的厌恶。 “你问我哪儿疼?要我告诉你吗?我的心痛,我的心口痛啊。妈妈,你有过这种感觉吗?你有过这种痛吗?” 听到小彬的话,妈妈一时茫然失措地站在那里,过了一会儿她似乎才回过神来,拍了一下小彬的肩膀,眯着眼睛对他说: “这孩子,看你说的!没想到~几年不见说话像个小大人喽。来来,吃过早饭啊,咱们到公园去,这可是你在小学里的最后一个‘六一’儿童节啊,和妈妈一起痛痛快快地玩一天吧。今天咱们就甩它个5张大票?好不好?咯咯咯咯……” 大概一想到花钱妈妈就兴奋了,和刚才与爸爸吵架时判若两人,表情和声音都变得生动起来。小彬越来越觉得妈妈陌生了。 “不用了。你和爸爸去花它个5万块吧。今天我要做的事情多着呢。” 小彬不想再和妈妈交谈下去了,转身走进了自己的卧室。他看见摔到地上的日记本,弯腰拾起来。翻开日记本的一瞬间,记在日记本里的一件件往事浮现在他的眼前。日记本里记录着妈妈离家五年里的喜怒哀乐……   妈妈走的那一年,小彬才9岁。从妈妈走的那时起,他的天空里便开始充满了孤独。曾经撒娇要睡在爸爸妈妈中间被爸爸敲脑瓜的事情都成了一个甜蜜的回忆。为了驱赶内心的孤独,他让爸爸给买了一个大布娃娃,晚上睡觉的时候时常抱着它睡,有时他还会把手悄悄地放到爸爸平平的胸脯上。每到这时,爸爸也会难过地用那粗壮的胳膊把他紧紧地搂在怀里。然而,这一切却无法替代母亲温暖的怀抱。     在这种孤独与思念中,小彬的脸上渐渐失去了笑容,小小的心中渐渐地结起了冰。冰可真是一种奇怪地东西,起初,只要有人轻轻地碰一下就会破碎或者出现裂痕,可是,渐渐的,随着冰层的加厚,无论别人怎样撞击和践踏也不怕了。如果别人不理睬反倒感到孤单,心底会升出一种不安的感觉。小彬逐渐发现自己似乎在等待着别人来碰撞或者是践踏。因而,到学校后,他千方百计引起大家的注意,希望周围的人能发现他的存在。晚上回到家后,他只能向日记本倾诉自己的喜怒哀乐。     时间真的像流水一样,流走了一个又一个日子。小彬的妈妈也在5年后的一天回到了家。 那天,小彬和爸爸一起到机场去接妈妈。小彬的心情和往常等待时一样,很复杂。 (见到妈妈后我会流泪吗?) 小彬自己也说不准。想想这5年的思念,他似乎觉得会流泪,可是再想想这5年的孤独岁月似乎又不会流泪。小彬在脑海中反复描绘着妈妈的面孔。妈妈的脸上似乎长着许多黑色的雀斑,总是一脸忧心忡忡的样子,眼睛好象是单眼皮。 小彬多次听外婆说,这五年,妈妈吃了不少苦。起初她到饭店打工,刷碗、打杂什么都干,后来又到一户人家护理患老年痴呆症的老人,期间受到许多欺辱和非人的待遇。五年来,妈妈流的泪加起来足足可以装上几大桶。 (见到妈妈我一定会的哭的。她受了那么多的苦,身体一定变得虚弱不堪。脸上的雀斑也许更多了……) 渐渐的,小彬感到胸口刺痛起来。事实上,五年来,小彬第一次从内心深处想象着妈妈的样子,也第一次生出一种自责感来。而且,一种感激之情也油然而升。 事实的确如此。 他们一家曾租住一间只有25平方米的小平房里。冬天屋里冷得一张嘴就会冒出白色的气体。妈妈说,说啥也不能再把这种困难传给小彬,于是毅然辞职,决定到韩国打工挣钱。到韩国后,妈妈寄了很多钱回来,家里买了一个100多平方米的两室一厅的楼房,还把房子装修了一番,欢欢喜喜搬了进去。也许是妈妈的牺牲换来了爸爸的晋升。搬进新居后,爸爸很快就从普通科员晋升为科长。 从那年起,爸爸便开始做起了接待“上面”人的工作,在外面过夜也是常有的事情。而且,接妈妈电话的时候总是吵架。后来,妈妈寄钱的次数越来越少了,再后来,妈妈干脆就不往家里寄钱了。 五年的时间说长也真长。 小彬变了,爸爸也变了。但小彬希望那个当年离开延吉火车站时脸着长着黑色雀斑、单眼皮的妈妈不要变。想到此,小彬鼻子一酸,泪水不由自主地涌了出来。小彬低下头,悄悄地擦去泪水。他第一次刻骨铭心感到妈妈对他来说是如此的重要。 (会的,见到妈妈一定会泪如泉涌。嗨,男子汉大丈夫有泪不轻弹嘛!我要是哭鼻子妈妈一定会伤心的。一定要忍,千万不能让妈妈看到眼泪。) “出来啦,出来啦!你看— 那边,是小彬他妈!” 外婆的喊声打断了小彬的思路。小彬踮起脚尖顺着外婆手指的地方望去。只见一位戴着黑色的墨镜,穿着红色上衣的贵妇人,拖着一个大大的旅行包款款走来。外婆一个劲地说那是“小彬他妈”,可是小彬却从那个女人身上丝毫找不到母亲当年的影子。小彬从那位红衣女人身上移开视线重新寻找。这时,那位红衣女人已经通过检票口来到外婆的面前,一把握住外婆的手喊道: “妈!哎哟,我的妈呀,您也见老了耶。您看您这身打扮,明天啊,我出去让您从头到脚改头换面。” 红衣服拉着外婆的手大声说着,随后搂着外婆的脖子哽咽起来。小彬望着红衣服,仿佛当头挨了一棒。这时,红衣服松开搂着外婆的双臂转过身,声音拔高一调,夸张地望着小彬说: “哎呀,这孩子就是我们家的小彬啊?哎哟哟,比妈妈还高呢。红衣服几乎要扑到他的身上,小彬赶紧把身体躲向一边。   深夜,小彬被一阵吵闹声惊醒。 “你给我说清楚,那个女人到底是谁?是哪儿来的臭婊子?” 小彬竖起耳朵仔细一听,原来这是妈妈的声音。 “你说,你们是怎么勾搭在一起的,你以为我在首尔看不见是不是?可我还有耳朵。我还知道你去年和那个女人一起去了海南岛!哼,想骗我,没门!” 妈妈近乎歇斯底里的尖叫声打破了夜晚的寂静,强烈刺激着小彬的耳膜。 那天晚上的导火索是妈妈听说爸爸当上科长后有了别的女人。 “是哪个该死的对你说的?我敢对天发誓,绝没有那种事情。怪不得你这两年不给家里寄一点生活费。我靠那点工资供小彬吃穿、念书还不够,哪有钱养情妇?” 小彬用被子蒙住头,捂住耳朵,他不想听到这些不堪入耳的话。他内心里感到极度不安。 (难道爸爸真的有了情人?“上面”来的人难道是爸爸的情人?假如这是真的,那么爸爸和妈妈以后会怎么样?难道爸爸妈妈不在一起就会产生情人吗?大人可真是……) 小彬胡思乱想着,好不容易才入睡。等他睁开眼睛的时候,外面已经是阳光灿烂了。 “爸爸—爸爸!” 他赶紧爬起来向爸爸的卧室走去。可是卧室里既没有爸爸也没有妈妈。小彬又赶紧跑到厨房,只见餐桌上放着50元钱和一张留言纸。 “你爸昨晚出去后就没回来,妈妈也有事要出去一下,你自己买点东西吃吧。妈妈。” 看到纸条的瞬间,小彬顿时感到全身松软无力,一下子坐到椅子上…… 他觉得妈妈回来的这两个月似乎比妈妈不在的那五年还长,还吃力。 爸爸和妈妈一天到晚争吵不休。起初是为一些与他无关的事情争吵,可是吵着吵着,到后来总是要说“要不是小彬”怎么怎么样。 (难道没有我你们就会过得好吗?没有我你们就安心了?) 小彬把日记本锁住抽屉里,穿好衣服走出卧室。 这时,妈妈走进来拉着小彬的衣袖说道。  “小彬,你这是去哪儿?和妈妈一起去公园吧。”  “算了,我有地方要去。” “这可是你在小学的最后一个‘六一’儿童节呀,应该好好过啊。” “妈妈什么时候给我过过‘六一’节呀?现在我也不是小孩子了。” “这孩子,今天我本想给你花它几百块钱呢……” “您去花吧,钱多就尽情地花啊。” 小彬一边提鞋一边尖刻地说道。见到小彬这个样子,妈妈不悦地说: “你越来越不象话。妈妈不在家你是不是学坏了?” “对,我就学坏了,我该死行了吧?” 小彬猛地转身踢开门,随后又“咣”地把门关上。接着,只听妈妈推开门,冲着小彬的背影喊道: “小彬啊—拿着钱,拿着钱—” 小彬不由自主地朝着公园那边走去。只见大街道上人头攒动,牵着父母手的孩子们个个兴高采烈,一脸幸福的神情。 “哼,有什么可高兴的,嘻嘻哈哈……” 小彬也不知道自己是在骂谁。反正看到那些和父母一起去公园的孩子们,他心里很不舒服。他倚在公园桥的栏杆上,再也不想去公园了。说心里话,小彬真的很希望自己也能像别的同学那样,在公园里快快乐乐地度过小学时代的最后一个“六一”儿童节。 4月份的时候,当他听说妈妈要回来心里特别高兴。他暗暗期待着今年的“六一”儿童节自己也能牵扯着爸爸妈妈的手去公园。然而,妈妈回来后,家里的气氛整天都处于高度紧张状态,与去公园的气氛格格不入。 小彬望着涌向公园的人流,心情变得很郁闷。 (到底是哪儿出了问题?家里的钱比过去多了,房子比过去好了,可是爸爸妈妈为何整天吵架,难道真的像他们所说的,是因为我的存在吗?) 小彬又想起了爸爸妈妈吵架时常说的那句话。 (好,那我就走给你们看,我不在了你们就不会吵架了。) 小彬靠在栏杆上,紧紧握住了双拳。 (好,我现在就给你们消失!) 小彬似乎下了决心,一步步向车站走去。 也许人们都去了公园的缘故吧,大大的候车室里空荡荡的,没有几个人。 小彬把手伸出裤子兜儿里,他摸到了钱。这是他为上公园平时攒下的零花钱,数额还不少呢。他心里一直希望能与爸爸妈妈一起去公园。 (去哪儿呢?) 他手里攥着钱,却不知应该去哪儿。 (去北京?那么大的城市总会有我的安身之处吧。) 对北京他还是蛮有信心的。去年暑假,学校组织学生到北京游览了十天,参观了许多名胜古迹。 (对,就到北京去。) 小彬拿着钱走到了售票处。前面有几个人正排队买票。小彬也排在后面等候。 轮到小彬买票时,突然一个染着一头黄发的男孩儿挤到前面冲着售票员喊道: “北京,有到北京的卧铺票吗?” 小彬感到很恼火,“黄毛”他分明是在蔑视自己,根本就没把他放在眼里。 “排队,到后面排队!” “我有急事,先问问还不行啊?” “就是不行。你这小子,还有理了呢!” 小彬挥手就给了他一拳。顿时,男孩儿的鼻子里鲜血直流。黄发男孩儿不甘示弱,猛地向小彬扑了过来。二人扭成一团,打得不可开交。此时,小彬不想知道自己在和谁打架,他只想找到一个发泄口。于是,他大打出手。 结果,他们二人双双被铁路民警请进了铁路派出所。 “你们俩打什么打?等会儿再说。” 值班民警说着先去处理别的事情。小彬的嘴唇被打破了,肿得老高,不过心情还不坏。小彬抬头看黄发男孩儿。只见他垂着头,脸上青一块紫一块的,黄色的头发被他抓得像一堆乱草,就像一个败将。小彬以讥讽的口吻问道: “喂,黄毛,疼不疼啊?” “这小子,打得那样了还能不疼?” 民警不知何时走到小彬的身边。在值班民警的追问下,小彬只好说出父母的手机号码。 大约半个小时后,妈妈首先来到派出所。 在有关材料上摁下手印后,妈妈带着小彬走出了派出所。刚走出派出所的大门,就碰到气喘吁吁赶来的爸爸。 看得出爸爸十分恼怒。见到小彬不问青红皂白就挥起了拳头。 “你这是干吗?干吗打孩子啊?” 妈妈上前护着小彬。 小彬却异常平静的对爸爸说: “爸爸,您什么时候管过我啊?干吗打我?我被派出所抓了您害怕了吧?” “太不像话了!你怎么这么不争气?” “您说得对,我确实不争气!怎么着吧,您不是巴不得我消失吗?这样您和妈妈就可以安心地过日子了。” “彬彬,你怎么可以这么说?妈妈可是为你活着啊。” 妈妈靠在小彬的肩上抽泣起来。小彬推开妈妈,冷笑道: “是啊,妈妈为谁活着?爸爸又谁活着?难道你们都是为我而活吗?那么,那个叫‘情妇’的人怎么办啊?” “你说什么?小孩子怎么能说这种话?” 爸爸的拳头瞬间又挥了过来,重重地落在小彬的肩上。 “你干吗打孩子?他有什么错?孩子,看来你已经长大了,长大了…真是太丢人了。” 妈妈搂着小彬的脖子说道。小彬推开妈妈,转身走了。 “彬彬— 彬彬啊!你去哪儿啊?一起走—” 小彬头也不回地向前跑,招手停下一辆出租车……   2006年6月1日晚11点45分   好心烦啊。 在小学的最后一个“六一”儿童节竟然在派出所度过。 现在,我不喜欢节日,也不喜欢妈妈和爸爸,更不喜欢我自己。反正什么都不喜欢。 白天在派出所的时候还没觉得怎样,可是现在回过头来想真的好后怕。照此下去,我会不会进监狱? 白天妈妈对我说我已经长大了。 14岁! 我有时觉得自己已经长大了,有时却又觉得离开爸爸妈妈什么也做不好。 永洙那家伙可真丢人,听说至今还睡在妈妈身边,常常被爸爸敲脑瓜。 嘻嘻嘻嘻— 白天在书店里买了一本《青春期的秘密》。 我得抽时间好好读一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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