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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그 겨울의 날개/김우종 댓글:  조회:2329  추천:1  2014-01-28
  그토록 황홀한 변신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놈은 분명히 눈도 입도 없고 다리도 날개도 없는 병신이었다. 그런데도 죽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찬 서리가 내리던 어느 가을날 들판의 나무 줄기에서 나는 놈을 발견하고 집에 가져와 분명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 후 작은 상자 속에 밀폐시켜 버렸었다. 바늘 구멍을 알아야만 여는 나의 비밀 상자다. 그 후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나는 온갖 비밀스런 것들을 비장해 둔 나의 찌그러진 트렁크 속에서 이 바늘 구멍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비취처럼 반짝이는 푸른 날개를 달고 나온 나비, 그리고 그 병신 벌레는 허물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황홀한 탈바꿈이 가능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상한 벌레는 밀폐된 공간에서 겨울을 나고 오랜 침묵 끝에 드디어 마술을 부리듯 나비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비로 변신한 그는 상자 속에서 단 한 번도 푸른 하늘을 날아보지 못한 채 가엽게 죽어 있었다. 내가 그것을 자살이라고 믿고 싶어 한 것은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일이었다. 그 후 나는 고향을 떠나 개성의 송도중학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8.15 이듬해에 나는 전국 학생 미전에 특선하면서 장차 화가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운명의 장난으로 나는 가던 길을 바꿔 버리고 말았다.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다는데 하급생에 대한 상급생의 억압은 여전했었다. 미술반의 다른 애들은 모두 반장에게 경례를 붙였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미술반은 상하 주종관계가 요구되는 군대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장은 이런 나를 마침내 지하실로 끌고 내려갔다. 힘이 센 상급생 또 한명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를 챈 나는 “기왕에 맞을 바엔” 하는 생각으로 먼저 반장 녀석의 턱을 힘껏 갈겨 버렸다. 그런 후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몇 시간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 후 미술반을 떠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방과 후가 되면 혼자 암실 같은 하숙방에 돌아와 자신을 밀폐시키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분노와 외로움을 안으로 삭이며 나는 차차로 독서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술 지망생이 문학 지망생이 된 운명적 변신 과정이다. 유신 독재 반대 투쟁이 계속되던 1974년 초 여름, 오래간만에 감옥에서 나온 나는 기약 없는 긴 휴식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동안 그립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지만 거리에선 날마다 최루탄이 터지고 나처럼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어서 나를 멀리 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두문불출이 시작되었다. 검찰청까지 와서 오랏줄에 묶인 나를 보고 갔던 정호승은 에 발표했던 시를 킨트지에 써서 가져 왔다. 내게 관한 시다. 집안에만 칩거하면서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창밖을 내다 보고 있는 시간도 많았다. 집이 회기동의 학교 근처여서 문밖에 나가면 거북한 일도 자주 있었다. 학생들은 나를 만나면 언제 다시 돌아 오느냐고 묻고 동료 교수들을 만나면 서로 어색한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나는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원고를 쓰는 일이다. 그래서 출옥 인년만에 낸 것이 에세이집 이다. 그런데 곧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출판 배포 판매 금지조치를 당했다. 다음에는 현실비판이 없는 고전 비평 쪽의 평론집 가본(假本)을 만들어 문공부에 냈지만 심의 자체를 거부당했다. 할수 없이 대학 교문 앞에서 좌판을 별려 놓고 땅콩 장수라도 하려다가 그만 두고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수직도 문필업도 막힌 막다른 길에서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한 생존 수단이었다. 그림을 팔아서 쌀도 사고 연탄도 사고 애들 학비 마련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그림을 본격적인 업으로 삼으며 미술협회에도 가입하여 어릴 적에 가려던 길로 되돌아 간 것이다. 나는 강남의 상도동 약수터로 이사했다. 문밖에서 제자나 동료 교수들을 만나지 않아서 좋았다. 찬 바람에 실려서 뒷산으로부터 낙엽들이 우수수 날려 오면 마당의 베짱이들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곧 겨울이 온다. 나는 꽃나무들을 짚으로 싸다가 어린 딸을 불렀다. “나리야, 빨리 나와, 이것 좀 봐라.” “아빠, 그게 뭐야?” “번데기야” “어머, 징그러워” “그래, 못생겼지, 애벌레는 얼마쯤 자라고 나면 저렇게 이상한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고 긴긴 겨울을 나게 되는 거야. 답답하고 춥고 어두운 세상이지, 그렇지만 봄이 오면 번데기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을 수 있는 거야” “어머 멋있어, 그게 정말이야?” “그럼, 나도 옛날에 이런 번데기를 잡아다가 곽 속에 담아 두었더니 나비가 되었단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벌레들처럼 일생에 몇 번은 탈바꿈을 하지. 그렇지만 그냥 바뀌는 건 아무 뜻도 없어,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새 생명으로 탈바꿈을 해야지, 긴긴 겨울의 외로움을 참아내고 말이야,” “아빠, 우리도 이 번데기 상자 속에 넣어 두자” “아니 ,그건 좋지 않아, 나비가 된들 상자 속에 갇혀 있으면 어찌 날 수 있겠니? 날개는 날기 위해 달려 있어. 그러니까 날 자유가 없는 나비는 살아 남을 이유가 없어지지. 날개 있는 것한테 날 자유가 없는 슬픔은 애초부터 날개 없이 날지 못하는 슬픔과는 전혀 달라. 아주 비참 한 거야. 네가 크면 무슨 뜻인지 더 잘 알게 될 거야.” 우리는 번데기를 그 자리에 두고 어서 긴긴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봄이 와서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멋지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자고. 그러나 내가 날 수 있는 봄은 언제 올지 약속할 수도 없었고 내가 기다리는 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어린 것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547    행복한 고구마/ 목성균 댓글:  조회:2116  추천:0  2014-01-27
내가 강릉영림서 진부관리소 말단 직원일 때 월급이 칠천 몇 백 원이었다. 그 돈으로 어린 애 둘과 아내와 내가 한 달을 빠듯하게 살았다. 어떤 때는 아내가 담배를 외상으로 사다 줄 정도였다. 새댁이 담배 갑을 건네주면서 조심스럽게 신랑한테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담배는 외상 주는 게 아니래, 자기 담배 못 끊지?” 늘 퇴근이 늦었다. 잔무가 있어서 늦을 때도 있었지만 잔무가 없어서 늦는 때도 많았다. 잔무가 없으면 미뤄두었던 고스톱 화투를 쳐야하기 때문이다. 직원들간에 숙직실에서 화투를 치는 것은 동료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지 절대로 노름은 아니다. 특히 산읍이 눈 속에 깊이 묻히는 겨울에 그랬다. 어두워져서 전등에 스위치를 넣으면 늙은 소장 님은 큰곰처럼 어정어정 소장실을 나갔다. 보나마나 면장 님 사택이거나 지서장님의 하숙집으로 마작 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사무실 뒤 숙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 사환은 알아서 관리소 앞에 있는 ‘삼척 집’에 직원들이 숙직실에서 고스톱 화투를 친다고 이르고 퇴근을 했다. 밤이 이슥해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오는 소리가 숙직실 앞에 와서 멎으면 문이 벌컥 열렸다. ‘삼척 집’ 늙은 아주머니였다. 머리에 이고 온 도토리묵과 찌개와 막걸리 주전자가 담긴 함지박을 숙직실 안에 드려놓으며 볼멘소리를 질렀다. “색시들 기다려, 먹고 그만 집에 가-.” 마치 자기가 직원들의 장모님이라도 되는 양 성미를 부렸다. 그러면 고스톱 판은 끝났다. 직원들은 밤참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만족해서 “크- 윽-” 트림을 하면서 숙직실을 나섰다. 지금도 가끔 행복한 포만감을 느낄 때면 그 때처럼 생리적인 소리를 일부러 내본다. 그러면 한결 행복하다. 숙직실을 나서면 흰눈이 소복한 부피를 지으며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나의 집은 읍내 밖 진부농고 뒤에 있는 농가의 바깥채였다. 버스정거장 앞을 지나서 논둑 길을 건너가야 했다. 아내가 어두워지면 윗방에 있는 전등을 내다가 추녀 밑에 걸어 놓고 불을 밝혀놓았다. 나는 그 전등 불빛을 등댓불처럼 의지하고 어두운 논배미를 건너서 집에 가곤 했다. 그러나 그 전등은 따뜻하게 내 삶을 고무해주는 정도지 삶의 길잡이 역할까지는 못했다. 적설에 뭍인 논배미에는 도대체 어디가 논바닥인지, 논둑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그 불빛은 논배미의 적설상태까지 밝혀 주진 못했다. 다만 ‘빨리 오세요’ 하는 아내의 눈짓에 불과했다. 논둑을 더듬어 가다가 실족하면 논둑아래 적설 속에 빠지고 말았다. 버스정거장 모퉁이에는 소아마비를 알아서 수족을 잘 못 쓰는 아주머니가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눈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산읍 모퉁이, 내가 집에 돌아오는 그 늦은 시간에는 군고구마가 팔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아주머니는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늘 몇 알의 고구마를 샀다. 그 해 겨울 나의 하루일과의 마지막은 그 아주머니에게 군고구마 몇 알을 사는 일로 끝나는 셈이었다. 늦은 밤 그 군고구마를 가지고 가서 깜박깜박 졸면서 신랑을 기다리던 새댁에게 불쑥 내밀면 참 좋아했다. 그 재미에 몇 알의 군고구마를 사들고 갔다. 군고구마를 사서 잠바 앞섶에 넣으면 온몸이 따뜻했다. 논둑에서 떨어져 눈 속에 빠져도 춥지 않았다. 따뜻한 고구마를 품어서 그런지 눈 속이 아늑했다. 넘어진 자리에서 쉬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눈 속에 빠져서 잠시동안 그대로 있었다. 고구마의 온기도 따뜻하고, 논배미 건너 내 셋집 추녀 밑에 걸린 분홍색 백열등 불빛도 따뜻하고, 내 마음도 따뜻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밤이 늦었다. 차라리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은 푹한데 눈이 오고 난 뒤 개인 날 밤은 숨을 못 쉴 지경으로 냉기가 혹독했다. 산맥들도 칼날처럼 등성이를 세우고, 별들도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날은 고스톱 화투를 해서 돈도 좀 땄다. 숙직실을 나서자 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잠바 속에다 자라목처럼 얼굴을 묻고 종종걸음을 쳤다. 고구마도 몇 알 더 사고 아주머니에게 개평을 몇 푼 줄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정거장 모퉁이까지 왔다. 그런데 아주머니 대신 왼 어린 소년이 서있는 것이었다. “너 누구냐?” “영림서 아저씨이에요?” “그래-” “일찍 좀 다니세요” 처음 보는 녀석이 볼이 부어 가지고 감정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임마. 내가 일찍 다니든 늦게 다니든 네가 무슨 참견이야-.” “아저씨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감기 걸렸으니까 그렇죠.” 그녀석이 군고구마장수 아주머니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늘 그래요. 영림서 아저씨 퇴근이 늦어서 늦었다고요.” 그 때 내 나이 서른 한 살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내가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에게 고구마 몇 알을 사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지 그 아주머니 장사시켜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품고 발간 전등 불 빛을 지향해서 눈 쌓인 논배미를 건너가면서 나는 늘 행복했다. 먼바다에 나갔다가 포구의 등대 불을 지향하고 돌아오는 작은 만선 어부의 마음이 그럴까. 그 행복감은 따뜻한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안음으로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었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소년은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늘 사 가지고 가는 그 몇 알의 고구마를 가슴에 안겨주고, 군고구마 화로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휭하니 거리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군고구마 값 받는 것도 잊어버리고 갔다. 그 소년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내가 사 가지고 갈 그 몇 알의 고구마 온기를 혹한 속에 몇 시간 동안 떨고 서서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저의 어머니의 친절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가를 발견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다행이 그 아주머니는 바로 감기를 털고 고구마 장사를 했다. 나는 고스톱 화투를 치면서 아주머니를 거리모퉁이에 세워 놓지는 않았다. 일찍 그 아주머니 앞을 지나갔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늦은 밤에 군고구마를 안고 들어가서 조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것 만치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고생할 생각을 하면 도리가 없었다. 장중한 태백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산읍의 겨울밤, 칠천 몇백원 짜리 말단 공무원을 행복하게 해준 아주머니의 행복한 고구마가 먹고싶다.
546    이 아침은 행복하다 댓글:  조회:2258  추천:0  2014-01-21
커피 한잔 타가지고 컴퓨터앞에 앉았다. 진한 커피향을 길게 들이마시며 모니터에 있는 문건창을 열었다. 한송이 또 한송이 날아내리는 장미꽃들… “나는 지금 꽃비를 맞고있나봐!”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뇌리를 스쳐지났다. 꽃비가 내리는 아침, 드라마같은 이 순간! 한 직장에 다니는 동료이자 친구같고 누님같은 선생이였다. 가끔 복도에서 만나면 시름없이 벙그레 웃어줄수 있어 편하고 혹시 기분이 꿀꿀할 때면 커피 한잔 함께 마시면서 수다(?)도 떨수 있어 믿음이 가던 선생이였다. 어느날, 그 선생이 메모리를 들고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일에 지치면 장미꽃이라도 감상하라면서 사무실 동료들의 컴퓨터마다에 이 문건을 담아주고간것이다. 평소 롱담도 재미있게 할줄 아는 선생이라 또 어떤 깜짝쇼를 하는가보다 생각하며 그 문건을 터치하는 순간 보슬비처럼 날아내리는 장미꽃에 입을 떡 벌렸던 그 감동은 오늘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감동너머로 반짝이는 추억의 편단들은 날마다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간다. 노란 장미꽃을 보면서 다섯살 때 해볕 좋은 고향집뜨락에서 시름없이 뛰놀던 노오란 병아리가 떠오르는것은 흘러간 유년의 향수때문만일가? 빨간 장미꽃을 보면서 열다섯살 더벅머리 소년이 밤잠을 설치고 찾아헤매던 우물집 숙이를 떠올리게 되는것은 잃어버린 소년의 감성때문만일가? 연분홍 장미꽃을 보면서 장미꽃을 닮은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것은 너무도 일찍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때문만일가? 세상에 부대껴 삭막해만 진다고 느끼던 내 마음의 사막에서 오아시스 한줄기를 찾아내여 스스로의 마음밭을 적실수 있게 해준 사람이 있어 이 아침은 행복하다.  
545    소젖을 먹는 돼지 댓글:  조회:1829  추천:0  2014-01-20
콩크리트길량옆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파아란 풀밭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작은 돼지를 떠올린다. 보잘것 없는 그 작은 돼지가 세상에 무서운것 없다는듯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풀밭을 지나서 혼자 숙영지로 돌아오군 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해빛아래에서 반짝이던 연분홍 몸뚱이를 가진 그 작은 돼지를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모종의 의미에서 볼 때 젖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그중 한가지는 송아지가 먼저 젖을 빨아 먹은후에야 젖을 짜게 하는 류형이다. 만약 송아지가 젖을 먹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어미소는 사람들이 젖을 짜지 못하게 한다. 다른 한가지는 송아지가 젖을 빨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젖통을 내주는 류형이다. 내가 초원에 있을 때 거주했던 빠투네 집 젖소는 첫 류형에 속했다. 빠투네 집에 살 때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소를 보게 되였다. 그날아침, 금방 태여난 송아지가 무슨 영문인지 우리안에 죽어있었다. 내가 밖에 나갔을 때 검은 점과 흰 점이 얼룩진 어미소가 담장 한구석의 나무기둥에 매여져있었는데 얼굴에서 콩알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어미소는 그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있었다. 그 장면을 보기전에 나는 동물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지만 그저 사람들이 해보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있는 어미소를 보면서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수 없었다. 눈물을 통해 비감한 정서를 표달하는것을 보면 소도 감정이 풍부한 동물인가싶다.  내가 빠투네 집에 거주할 때 마신 우유차는 모두 그 젖소의 젖으로 만든것이였다. 송아지가 죽은 그날아침부터 어미소는 젖을 내지 않았다. 빠투의 안해가 갖은 방법을 다해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느날, 빠투는 마두금(马头琴)으로 흐느끼는듯 쓸쓸한 곡조를 연주했고 그의 안해는 그에 걸맞는 몽골족민요를 불렀다.   그것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권내가(劝奶歌)였다.  목민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려는 어미들의 모성을 자극해서 젖을 내게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곡조도 어미소에게는 아무 작용이 없었다. 빠투는 어미소가 그냥 그 상태대로 나가면 꼭 병에 걸릴것이라고 근심했다.  빠투는 사실 식구들이 마실 소젖이 없어 근심하는것은 아니였다. 빠투네 소우리에는 금방 새끼를 낳은 어미소가 두마리나 더 있었다. 며칠간, 비통에 젖어있던 어미소는 차츰 투우장에서 칼에 찔린 투우처럼 미쳐날뛰면서 보이는 물건은 모두 떠박질렀다. 빠투는 별수없이 어미소를 우리에서 끌어내여 울안 한구석에 단독으로 매놓았다. 어미소는 조각상처럼 외롭게 서서 울밖의 세상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미소는 세상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은것 같았다. 지어는 밤에 미친듯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대는 등에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송아지가 죽은후 네번째 아침, 내가 아침밥을 먹고 강변에 나가려고 할 때 어미소가 송아지를 단 다른 두마리의 어미소와 함께 울안을 벗어나 방목장으로 가고있었다. 나는 빠투에게 어미소가 안정을 찾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빠투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소, 아침에 젖을 짰다오.” “참 좋은 일이군.” 나의 말에 빠투가 동을 달았다. “참 알고도 모를 일이요. 저놈이 새끼를 잃고도 저렇게 빨리 젖이 돌아서다니.” 그날 나는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더 이상 어미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날밤, 나는 일기를 쓰고난후 울안에 나가 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손전지를 들고 밖에 나섰다. 교교한 달빛이 울안에 부드러운 빛을 뿌려주고있어 손전지가 필요 없었다. 얼마나 오래동안 별구경을 하지 않았던가? 하늘에는 뭇별들이 바다를 이루고있었다. 나는 수많은 별자리중에서 몇개밖에 알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둥지에 돌아온 제비의 즐거운 비명 같았다. 아니, 든든히 닫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소우리의 한쪽 구석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초원의 지평선에서 아름다운 람색의 불꽃이 튕겨올랐다. 나는 어딘가 긴장해 났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그 불꽃은 초원에서 흔히 볼수 있는 린광에 지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나는 손전지를 켜들고 소우리안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았다. 나는 그 불빛을 빌어 영원히 잊을수 없는 그 장면을 보게 되였다. 그때, 송아지를 잃은 어미말은 엎드려 저녁에 먹은 먹이를 반추하고있었다. 놀라운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빠투네가 기르는 흰털의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젖을 빨고있다는것이였다.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열심히 소젖을 빨고있었다. 어미소도 작은 돼지도 내가 자기들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있었다.  어미소는 손전지의 강렬한 빛에 눈이 부신지 두눈을 껌뻑이다가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손전지를 끄고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썼다. 어미소가 돼지에게 젖을 먹인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일이였다. 나는 다시 손전지를 켜서 어미소와 작은 돼지를 비춰보았다. 작은 돼지는 그때까지도 소젖을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쩌면 흘러간 동년의 그 행복했던 나날로 돌아간듯싶은 모양이였다. 나는 기적과도 같은 그 장면을 두고 상상을 펼쳐보았다. 어느날, 송아지를 잃고 비통에 빠져있던 어미소가 지쳐서 우리바닥에 엎드려있는데 세상 무서운줄을 모르는 그 작은 돼지가 우연히 어미소의 젖꼭지를 발견하고 달려들었을것이다. 작은 돼지가 젖꼭지를 빨자 어미소는 서서히 잃어가던 모성의 본능을 다시 찾게 되였을것이다. 그것은 새끼를 잃은 어미늑대가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려 키웠다는 전설과도 같은 맥락일것이다. 이튿날아침, 나는 빠투네 부부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다. 나의 말을 듣고도 빠투네 부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작은 돼지는 여러 사람이 보는앞에서 어미소의 젖을 빨려고 하지 않았다. 빠투네 부부가 못 믿겠다는듯 나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나도 어제밤에 본 모든것이 꿈인양 아리숭해졌다. 우리안에 있던 다섯마리의 소가 방목장으로 풀을 뜯으러 나갈 때 놀랍게도 작은 돼지가 따라나섰다. 나와 빠투네 부부는 놀라운 눈길로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곁에 딱 붙어서서 작은 언덕을 지나 초원심처로 들어가는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장면이였다. 나는 작은 돼지가 머리에 뿔을 이고 돌아올가봐 겁이 났다. 그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하려다가 앞바퀴가 터진것을 발견했다. 뾰족한 작은 양뼈가 바퀴에 박혔던것이다. 바퀴를 다 수리하니 오전 아홉시가 넘어있었다. 초원의 오전 열기가 확확 뿜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무더위로 하여 몹시 기분이 처졌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나갔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또 한번 깜작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로 하여 나는 내가 잘못본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가 타박타박 걸어오고있었던것이다. 망망한 대 초원에서 늑대 한마리가 달려온다면 말 한필이 뛰여온다면 지어는 소 한마리가 걸어온다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그놈은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였다. 나는 도무지 믿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돼지는 그렇게 당당해보였다. 그렇게 당당한 걸음으로 초원에 있는 숙영지로 돌아오고있었던것이다. 그 장면을 띄워본것은 나 혼자가 아니였다. 백양나무아래에 서서 뻐스를 기다리던 그 두 사람도 분명 그 장면을 보았던것이다. 그들도 작은 돼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것 같았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해보려는듯 작은 돼지의 뒤를 한참이나 쫓아가며 큰 소리로 뭐라 웨쳐댔다.  뻐스가 백양나무아래에 멈춰서자 그 두 사람은 뻐스에 올랐다. 나는 사라져가는 뻐스를 바라보면서 그 두 사람은 긴긴 장거리려행에 흥미로운 화제를 찾게 되였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작은 돼지는 당당하게 소우리에 자리를 옮겼다. 소무리가 숙영지로 돌아올 때면 작은 돼지는 깡충깡충 뛰여나가 어미소를 마중했다. 어미소도 머리를 숙이고 작은 돼지를 살랑살랑 핥아주었다.  우리에 들어가 어미소가 엎드리면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젖꼭지를 빨았다. 소문을 듣고 모여온 애들이 그 장면을 보고 놀라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쯧쯧쯧 혀를 찼다. 매일아침, 작은 돼지는 어미소를 따라 방목장으로 갔다가는 해가 중천에 걸리기도전에 혼자서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해 늦여름, 내가 초원을 떠날 때까지 작은 돼지는 본분에 어울리지 않는 어미소와의 동거를 계속하고있었다. 초원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작은 돼지는 행운스럽게도 한번도 늑대를 만나적이 없는것 같았다. 이듬해, 나는 다시 초원으로 가서 빠투네 집을 찾았다. 나는 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빠투에게 작은 돼지가 잘 자라는가고  물었다. “잡아 먹었소.” 빠투가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는 문뜩 커다란 실의감을 느꼈다. 내 표정이 몹시 흐려있었던지 빠투가 물었다. “왜 그러오?” “정말 잡아 먹었단 말이요? 그 돼지를.” “그럼 정말이지. 그놈의 고기가 참 고소했다오. 다른 돼지고기들은 비교도 못할만치.” 나는 작은 돼지가 큰 돼지로 성장했다는것을 잊고있었던것이다. 큰 돼지로 성장한 “작은 돼지”는 필경 여느 큰 돼지들이 맞는 운명을 빗겨갈수 없었던것이다. 그놈이 비록 소젖을 먹고 자란 돼지일지라도. 그놈은 망망한 초원을 수없이 홀로 지나면서도 늑대에게 잡히우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식탐은 벗어날수 없었던것이다. 나는 어미소에 대해서도 물었다. 빠투네가 작은 돼지를 잡아 먹은후 어미소는 또 거칠게 변하여 사람을 몇이나 상하게 했다고 한다. 원성이 잦아지자 빠투는 어미소를 팔아버렸다는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놈들을 머리에 떠올리군 한다. 
544    망아지가 강을 건너다*거르러치무거 헤어 댓글:  조회:1664  추천:0  2014-01-07
이른아침, 초원으로 들어온 파는 말안장을 내리웠다. 몸이 홀가분해진 어미말은 여유작작 말무리들을 떠나서 무성한 풀밭에 가 엎드렸다. 파는 멀리서 어미말을 바라보면서 그놈이 저절로 이제 다가올 모든 일을 잘 수습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는 풀언덕에 앉아서 유유히 흐르는 말무리를 바라보았다. 말들은 가을의 높은 하늘아래서 풍성한 풀밭을 누비며 마음껏 먹이를 뜯느라 머리도 들지 않았다. 겨울이 오기전에 말들은 영양분이 풍부한 우질 개보리풀을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옆구리에 지방이 두둑하게 올라 붙어야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날수 있었던것이다. 일부 몸이 허약한 말들은 초원의 차디찬 겨울을 이길수 없어 조각처럼 눈속에 얼어붙을 때도 있었다. 그들은 고독하게 긴긴 겨울을 그렇게 서있다가 봄이 터서 눈이 녹는 어느날에 가서야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어미말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무엇이 불안한지 안전부절 못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새끼를 낳는 어미말들의 본능적인 행동이였다. 비록 천성적으로 생육능력은 가지고있으면서도 정작 마주치니 당황스러운것 같았다. 어미말은 천천히 맴돌이를 치면서 크게 코투레질을 했다. 땅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새끼를 낳기에 마땅한 곳을 찾아헤맸다. 어미말은 머리를 흔들고 불안하게 꼬리를 저으면서 비릿한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를 쫓았다. 어미말의 옆구리는 살이 찌다못해 가을날의 풍요로운 풀밭처럼 풍만하고 안온해보였다. 밤색의 털은 기름기가 흘러 해볕에 눈부셨고 배는 불러서 남산을 방불케 했다. 털밑으로 불뚝 솟아오른 혈관은 당금 툭 하고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파는 머리를 들고 저 멀리 지평선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것은 가을날 초원의 오후였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하얀 구름 한송이가 저 멀리 하늘가에 나타났다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어릴 때 파는 푸르른 하늘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커다란 구름송이때문에 몹시 놀란적이 있었다. 그는 뿌리를 내린듯 한자리에 굳어져서 커다란 보루같은 구름송이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그 바람에 달려오는 양들과도 몇번이나 부딪쳤는지 모른다. 하여 어른들은 파를 두고 좀 바보스러운데가 있다고 비웃었다.  파는 십여살이 된 오늘에도 그처럼 넋을 놓고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파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고있노라면 어느 순간에 그 푸르름에 빨려들어가 헤여나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풍요로운 초원에 불어오자 무성한 풀들이 쏴쏴 기분 좋은 음악을 연주했다. 파는 명랑한 가을하늘을 좋아 했다. 반대로 비가 쿨쩍거리는 날씨는 웬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비오는 날이면 바람마저 젖어버린듯 불안했다. 파는 오직 태양이 머리를 내밀어야 젖은 바람도 말리울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은 누르스름하게 변해가는 초원을 부드럽게 쓸어주고있었는데 마치도 설레이는 수면을 보는듯싶었다.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풀들이 가을바람에 파도를 일으키며 저 멀리 지평선으로  사라졌다. 지평선저쪽에는 무엇이 있을가? 해볕 좋고 바람 시원한 어느 명랑한 하루, 파는 말을 타고 길에 올라 옹근 하루를 달린적이 있었다. 하지만 앞에는 여전히 일망무제한 록색의 지평선이였다. 얼마나 오래 달리든 세상은 달라질것이 없을것만 같았다. 순간 파는 초원은 끝이 없으며 자기는 영원히 지평선을 밟아볼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원에 어둠이 깃들자 파는 말등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파는 꿈결에 동년의 요람으로 돌아간듯싶어 그처럼 행복할수 없었다. 파는 그날 말등에서 옹근 하루밤을 보냈다. 초원의 오솔길을 익숙히 알고있는 말은 파를 등에 싣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파가 눈을 떠보니 숙영지의 천막들에서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해는 이미 한발이나 떠있었다. 파는 해볕을 받아 온몸이 따뜻해났다. 파는 초원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고있었다. 그는 움직이고싶지 않았다. 그 맵시로 따스한 초원에서 계속 단잠을 자고싶었다.  파는 어릴 때 진종일 풀을 뜯고 배가 뚱뚱해서 숙영지로 돌아오는 말들을 보면서 늘 일종의 묘한 충동을 느끼군했다. 바로 그 배를 칼로 오려보고싶은것이였다. 안에서 무엇이 튀여나올가가 그렇게도 궁금했던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파는 동년의 유치했던 그 상상으로 하여 얼굴을 붉히군 했다. 몇몇 젊은 말들이 심심했던지 쫓고 쫓기는 놀음을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에게 그처럼 빠른 속도와 민첩한 운동신경이 있다는것을 놀랍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진정한 질주를 배우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들은 멋지게 생긴 발굽으로 큰 호선을 그을줄도 알았다. 그들이 발길질을 할 때면  수많은 곤충들이 놀라서 도망쳤다. 초원에 사는 제비들은 그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바짝 쫓아가서 오동통 살이 오른 곤충들을 잡아 먹었다. 파는 천천히 초원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그 어미말을 떠올리며 깜짝 놀랐다. 어미말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때 어미말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작은 구덩이에 들어가있었다. 파는 어미말을 발견한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어미말은 네다리를 쭉 펴고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그 동작이 사뭇 괴상해보였다. 파는 종래로 말이 그같은 동작을 취한것을 본적이 없었다. 말은 몸집이 매우 여위여있었는데 배만 남산처럼 커보였다. 파는 자기 앞에 누워있는 말이 그처럼 생소하게 보일수가 없었다. 어미말은 그곳에서 벌써 한참이나 몸부림을 친듯 몸뚱이밑의 흙이 군데군데 패여있었다. 털은 그새 거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괴상하게 취한 그 동작은 어미말로 하여금 호흡을 더 힘들게 하는것 같았다. 어미말은 자꾸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파를 본 어미말은 물에서 구원을 청하는듯 높이 쳐든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잠간 지나자 어미말은 머리마저 무거워 쳐들기 힘든듯 다시 아래로 떨어뜨리며 킁 하고 코숨을 내쉬였다. 그 바람에 땅에서 풀썩 먼지가 일어났다.  피가 섞인 걸쭉한 물이 어미말의 뒤다리사이에서 흘러내렸다. 망아지가 곧 나오려는것 같았다.  파는 종래로 망아지를 받아본적이 없었다. 파는 너무도 긴장해서 연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점심시간이라 주변에서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어미말이 거칠게 숨을 톺았다. 파는 꿇어앉아 어미말의 머리를 쳐들었다. 파는 그렇게 하면 어미말이 숨 쉬기가 쉬워질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가 어미말의 숨이 고르로와지기 시작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신 어미말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파는 어미말의 긴장된 목을 바라보면서 그놈이 안간힘을 다해 자기 일생에서의  첫 생명을 탄생시키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어미말은 무기력하게 머리를 저어댔다. 두눈은 애써 크게 뜨고있었는데 큰 사발아구리를 방불케 했다. 어미말의 머리를 받쳐들고있는 파는 차츰 팔이 저려나는 감을 느꼈다. 파는 땀으로 흥건한 어미말의 머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어미말의 호흡은 다시 곤난해졌다. 그 자세는 확실히 어미말로 하여금 호흡을 힘들게 하는것 같았다.   량쪽으로 들어나보이는 어미말의 갈비대는 죽어가는 나비의 가냘픈 날개를 방불케 했다. 입귀로 뻘건 혀가 흘러왔는데 풀잎이며 흙 같은것들이 묻어있었다. 파는 방금 자기가 누워있던 곳으로 달려가 안장과 굴레를 찾아들었다. 파는 말무리로 달려가서 해빛에 번쩍이는 늙은 말의 등에 안장을 올려놓았다. 그후 손 쉽게 굴레까지 씌우고는 말등에 올라앉았다. 한시바삐 숙영지로 가서 경험이 있는 어른을 모셔다 어미말의 출산을 도와야 했던것이다. 늙은 말은 조급한 파의 마음을 아는지 마는지 여유작작 몸을 흔들면서 숙영지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를 달리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코두레질을 했다. 파가 말등에서 다리질을 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러도 말은 더 이상 앞으로 달리려 하지 않고 괜히 헛다리질만 해댔다. 파는 늙은 말이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받은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어른들은 워낙 온순하던 말이 갑자기 불안해지는데는 꼭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고 말씀했던것이다. 파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에야 파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서 머리를 수긋하고 풀을 뜯어 먹던 말들이 모두 머리를 쳐들고 그곳을 바라보고있는것을 발견했다. 몇몇 어미말들은 젖을 빠는 망아지들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젖꼭지를 빼앗긴 망아지들은 윤기흐르는 몸뚱이를 바들바들 떨면서 불안하게 투레질을 했고 발굽으로 흙을 파올렸다 늑대는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도사리고있었다. 바싹 여윈 늑대는 혀름 날름거리면서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늑대는 예민한 후각으로 어미말이 곧 새끼를 낳게 될것이라는것을 감지한것 같았다. 파는 늑대를 향해 말을 달렸다. 늙은 말은 불만스럽게 연신 투레질을 해대면서도 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늑대도 많이 늙어보였다. 그 세월을 살아오느라 늑대는 한두번만 사냥군들의 추격을 받은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번마다 용케도 사냥군들의 추격을 벗어난 모양이였다. 그놈은 십여살밖에 안되는 남자애가 말무리를 돌보고있다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아니라면 감히 대낮에 말무리를 접근하려고 하지 못했을것이다. 파가 말을 달려 늑대의 앞에 도착했는데도 늑대는 도무지 도망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파는 늑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말등에 앉았는지라 파는 늑대가 두렵지 않았다. 늑대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으로 몇발작 뛰여갔다. 하지만 파가 더 이상 쫓아오는 눈치가 없자 다시 걸음을 멈추고 멀리에 있는 말무리들을 바라보았다. 그 계절에 말은 절대 늑대를 따라잡을수 없다는것을 파는 잘 알고있었다. 초원의 풀은 풍성했고 말은 한창 살이 오르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늑대는 몸을 숨길만한 곳이 참 많았다. 아무 곳에나 숨어도 풀바다에 빠진듯 찾기 쉽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겨울이라면 늑대는 초원에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의 눈에 뜨일것이고 말의 추격을 당해내지 못할것이였다. 파는 혼자 숙영지에 가서 어른들을 모셔다 어미말의 출산을 돕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늑대는 근근히 망아지가 쓰고있던 포의를 주어먹으려고 기다릴수도 있는것이였다. 하지만 늑대가 갑자기 어미말과 망아지를 습격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단 말인가? 비록 곁에 있던 수말이 어미말을 보호하려고 나설수 있지만 망아지가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보장할수 없는 일이였다. 파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풀이 죽어 말등에서 내려왔다. 해빛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파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어미말은 출산을 앞두고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물에 빠진듯 네다리를 마구 허둥대다가도 갑자기 이발을 다 들어내며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말은 한참씩 몸부림을 치다가도 지친듯 네다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죽은듯이 옆으로 누워벼렸다.  파는 두려운듯 발볌발볌 어미말쪽으로 다가가 풀우에 쪼크리고 앉았다. 이제 곧 망아지가 나오게 될거야. 파는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 시각 어미말의 두눈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가을의 해볕에 말라가고있던 풀잎들이 그 눈물을 흡수해들여 인차 흔적마저 남지 않았다. 어미말은 길다란 눈초리에 싸인 두눈을 연신 껌뻑거렸다. 그 시각 어미말은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아 하는것 같았다.  멍하니 뜬 그의 두눈에는 하늘에 둥실 뜬 구름이 비껴있을뿐이였다. 그 시각 어미말은 자기의 눈길을 푸르른 하늘에 용해시켜버리는려는것 같았다.  파가 갑자기 일어섰다. 더 이상 기다릴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몰려오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미말이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면 별수없이 어미말을 풀밭에 그대로 두고갈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수 없었다. 파는 채찍에서 가죽끈을 풀어냈다. 그 순간 초원에서 파가 리용할수 있는것은 오직 그것뿐이였다. 파는 어미말곁으로 다가가 그놈의 두뒤다리사이에 쭈크리고 앉았다. 어미말은 그때 이미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는지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쳐댔다. 뒤다리는 경련을 일으키는듯 마구 떨렸다. 어미말은 길게 숨을 토했다. 그 순간이 너무 길어 파는 어미말이 다시는 숨을 들이쉬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근심했다. 파는 초원에 살면서 그런 일들을 가끔 본적이 있었던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미말은 들숨을 끌었다. 파도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어미말은 몹시 추운듯 덜덜 이를 쪼아댔다. 그 소리와 함께 뜨거운 액체가 풀우에 줄줄 흘러내렸다. 봄날의 따뜻한 밤에 그해의 마지막 얼음이 녹아내리는듯싶었다. 어미말은 태고연한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느라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밤처럼 생긴 촉촉한 물건이 어미말의 두다리사이에 나타났다. 파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것이 망아지의 발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파는 손에 감아 쥐고있는 끈을 떠 올렸다. 끈이 손가락을 너무 꼭 감고있어서 하얗게 번져가고있었다. 파는 끈을 풀고 손을 흔들었다. 그후 저려나는 다리를 펴들고 선자리에서 몇번인가 풍풍 올리 뛰다가 다시 쭈크리고 앉았다. 파는 주저없이 끈의 한쪽끝을 올가미로 만들어 들고 어미말의 두다리사이에서 아까 보았던 밤처럼 생긴 그 물건을 찾았다. 망아지의 발굽이 옳았다. 파는 올가미를 발굽에 걸고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한껏 긴장되여있는 파의 모습은 마치도 폭파물의 도화선을 손에 쥐고있는것만 같았다. 파는 망아지가 어미말의 배속에서 몸부림을 치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놈도 빨리 세상에 나오고싶은데 무엇인가 산도에 걸린것 같았다. 파는 차츰 손에 힘을 주었다. 어이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미말은 갑자기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 맞은듯 흠칫하더니 머리를 돌려 파를 바라보았다. 어미말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미말의 머리가 또 떨어뜨려졌다. 파는 더 이상 힘을 주기 무서웠다. 마치도 자신이 가공하는 옥석에 흠을 내면 머리가 날아갈 처지에 놓인 석공이 된듯한 기분이였다.  산도에 걸려있는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사작했다. 나올듯말듯 파의 애간장을 태웠다. 잠간 지나자 육안으로 보아낼수 있을 정도로 빨리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망아지의 다리가 다 나왔다. 이어 축축히 젖어있는 머리도 나왔다… 줄곧 비슷한 힘으로 끈을 당기고있던 파는 갑자기 자기와 줄당기기를 하고있던 대방이 완전히 힘을 놓아버린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뒤로 훌렁 자빠졌다. 망아지가 수많은 즙에 들쓰워진 과실처럼 땅에 떨어졌던것이다. 덮씌워져있던 막이 터지면서 망아지가 풀밭에 들어났다. 망아지가 끝내 세상을 보게 된것이다. 파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망아지는 얇은 종이장처럼 톡 치면 구멍이라도 뚫릴듯  취약해보였다. 배가 가볍게 움직여졌다. 망아지는 안간힘을 다해 생명중의 첫 공기를 마시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여름날 황혼의 초원의 공기에는 싱그러운 풀향기가 가득 배여있었다. 파는 또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그는 오른손식지의 손톱을 망아지목아래의 흰색막에 끼워넣고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리고 풀잎을 뜯어 쥐고 망아지몸뚱이에 들어붙은 포의를 긁어내고 입과 코구멍에 들어있는 점막을 닦아냈다. 망아지의 호흡은 차츰 정상으로 돌아갔다. 까아만 털을 가진 귀엽게 생긴 망아지였다. 털은 채 마르지 않았지만 여전히 해빛에 반짝이였다. 파는 풀우에 앉아 가죽끈에 달라붙은 풀씨며 점막이며 피자국들을 뜯고 닦아냈다. 파는 가죽끈을 다시 채찍대에 비끌어 맸다. 파가 어미말쪽으로 머리를 돌렸을 때 그놈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있었다. 배속에 있던 망아지가 빠져나오고보니 어미말은 전보다 많이 여위여있었다. 어미말은 머리를 숙이고 잠간 망아지냄새를 맡다가 귀와 코를 핥아주기 시작했다. 망아지는 어미말의 사랑에 힘을 입었든지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다. 망아지는 처음에 가느다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망아지는 이슬을 가득 머금은 이삭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있었다. 가느다란 목으로 머리를 쳐들어올릴수 없는 모양이였다. 코등마저 수시로 풀밭을 쪼았다. 망아지는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쿵 넘어졌다. 어마말은 머리를 숙이고 망아지의 목을 핥다가 갑자기 투레질을 하면서 다시한번 용기를 내라고 고무하는것 같았다. 파는 그때 망아지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 순간 망아지가 일어서려고 애를 쓰는것은 생명의 본능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기전, 말은 갓 태여나 일어서기전의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한 시각이였다. 그 시점의 망아지에게는 위험에 대적할수 있는 아무 능력도 없었던것이다. 망아지가 스스로 일어서서 젖을 빨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생존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관건적인 문제였다. 망아지는 또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가락처럼 가는 네다리로 미끄러운 풀우에 든든히 발을 부치기는 여전히 무리인것 같았다.  망아지가 끝내 몸을 일으켰다. 후들후들 다리를 떨다가 간신히 몸의 평형을 잡는것 같았다. 망아지는 놀랍게도 어미말의 곁으로 다가가 젖꼭지를 찾아 물고 빨기 시작했다. 누가 배워주지 않았건만 그 동작은 그처럼 익숙해보였다. 젖을  몇 모금 빨자 보리이삭처럼 꼬부라졌던 꼬리가 천천히 펴지더니 한들한들 움직였다. 차츰 움직임이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제법 절주까지 느껴졌다. 흐르는 금빛이 초원을 감싸안았다. 초원은 이미 세상에서 제일 큰 고요의 왕국으로 된듯싶었다. 말들은 차분한 모습으로 황혼에 몸을 맡기고있었는데 저마다 그렇게 의젓해보일수 없었다. 초원의 말들은 대를 이어오면서 그렇듯 아름다운 황혼을 얼마나 많이 맞이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들의 후손들도 선조들처럼 황혼이 아름다운 그 초원에서 한세대 또 한세대를 이어 번식해갈것이다. 파는 말등에 올라앉아 채찍을 휘두르면서 배 부르게 풀을 뜯어 먹고 꾸벅꾸벅 조는 말들을 몰아 숙영지로 돌아갔다. 파는 길에서 하루 낮을 애타게 기다리고있던 늙은 늑대가 조용히 몸을 숨기고있던 풀숲에서 나와 어미말이 엎드려있던 풀밭쪽으로 가는것을 보았다. 늙은 늑대는 하루 낮을 기다린 보람으로 망아지를 감쌌던 포의를 주어먹을수 있을것이였다. 늙은늑대는 얼마후 그 포의를 소화시켜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낼것이고 초원은 그 배설물을 흡수하여 풀들을 키울것이며 망아지는 그 풀을  뜯어먹고 큰 말로  자랄것이다 초원의 생명은 그렇게 이어지는것이였다. 파는 줄곧 망아지곁에 서서 걸음을 옮겼다. 망아지의 다리는 가늘고 길었으며 발굽은 뾰족했다. 콤파스처럼 생긴 망아지의 발굽이 땅을 내디딜 때마다 부드러운 풀잎들이 밟혀서 모양을 잃었다. 망아지는 어미말과 약간 떨어져 뛰여가다가도 어미말의 곁에 붙어서서 어미말과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망아지는 어미말을 바짝 따라 붙으면 아무 위험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파는 발뒤축으로 말의 뚱뚱한 배를 가볍게 때리며 고삐를 당기고는 머리를 돌려 무리를 벗어나는 말을 향해 소리쳤다. 휘두르는 채찍이 무서운지 그놈은 고분고분 무리에 돌아왔다. 낮은 언덕을 넘어서자 강줄기 하나가 앞을 막았다. 강은 뱀처럼 구불구불 풀밭을 누비며 내려오고있었다. 전에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그 강을 볼 때마다 파는 자기도 그 강물을 따라 어디론가 정처없이 흘러가는듯한 환상을 하면서 스스로가 강의 일부분으로 된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오래동안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우울함을 털어버리려는듯 파는 갑자기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사람처럼 목청을 다해 소리치며 말을 몰아 언덕을 내려갔다. 그것은 파가 말들을 이끌고 숙영지로 돌아갈 때마다 취하는 행동들이였다. 대부분 말들이 파의 애어린 목소리를 뒤로 한채 늘쩡늘쩡 언덕을 내려왔다. 하지만 뒤에 있는 성질 급한 놈들이 달리면서 앞의 놈들을 재촉했기에 나중에는 전반 말무리가 줄기차게 언덕을 달려 내려오기도 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선명한 절주에 따라 말발굽밑에서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파는 채찍을 후두르면서 말무리를 쫓아 강에 들어섰다.  수많은 말발굽들이 고요하던 강물을 흔들어놓았다. 말발굽에 튕겨오른 물보라가 칠색의 빛을 발산하면서 예쁜 무지개를 형성했다. 말들은 강물에 들어선후 속도를 늦추고 맞은켠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숙영지는 바로 강언덕 맞은켠에 있었다. 진종일 해볕에 달구어진 파는  찬 강물이 몸에 닿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강물에 들어선후에야 파는 어미말이 무리에 없는것을 발견했다. 파는 머리를 돌려 어미말을 찾았다. 어미말이 그제야 강물에 들어서고있었다. 하지만 어미말을 따르던 까아만 털의 망아지는 감히 강에 들어서지 못했다. 파는 말머리를 돌려 강기슭으로 달려갔다. 망아지에게 있어서 황혼에 물든 금빛의 강물은 범접하기 힘든 존재인듯싶었다. 망아지는 아직 굳지 않은 자기의 발굽을 강물에 넣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어미말은 몸을 돌려 강기슭으로 돌아가 망아지의 등을 가볍게 핥아주었다. 망아지는 인차 어미말의 다리밑으로 들어갔다. 망아지에게 있어서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인것 같았다. 하지만 어미말이 강으로 들어가자 망아지는 여전히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망아지의 눈에는 고요한 강물이 큰 홍수처럼 느껴지는것 같았다. 어미말이 강역에 서서 연신 투레질을 했지만 망아지는 좀처럼 발굽을 강에 들여놓지 못했다. 파는 말을 타고 언덕에 올랐다. 망아지는 물에 들어서있는 어미말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 시각 저가락처럼 가는 망아지의 네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파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손에 움켜쥐고 천천히 망아지쪽으로 다가갔다. 긴 눈초리에 싸인 포도같은 눈망울이 흑진주처럼 반짝였다. 망아지는 미동도 없이 파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막연해보였다. 망아지는 어미를 따라가야 안전하다고 믿고있었지만 그 시각 물에 들어서있는 어미를 감히 따라설수 없는 처지라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파에게 일종의 희망을 걸어보려는것 같기도 했다. 파는 허리를 굽히고 두손을 내밀어 망아지의 겁에 질린 얼굴을 받쳐들었다. 망아지의 몸에는 싱그러운 풀향기가 배여있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이 파의 두손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망아지의 눈길은 여전히 어미말의 몸뚱이를 떠나지 못했다. 파는 망아지의 작은 심장이 터질듯 빨리 뛴다고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대두.” 파가 중얼거리며 망아지를 안았다. 망아지는 조금도 발버둥질을 치지 않았다. 파는 망아지를 자기가 탔던 말등에 올려놓았다. 파는 망아지를 붙잡은채 조심스럽게 말등에 올랐다. 말등에 앉은 망아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던지 불안스럽게 머리를 저어댔다. 어미말은 맞은켠 언덕에 거의 오르고있었다. 파는 속도를 내서 어미말을 따라 잡았다. 어미말은 그들쪽으로 다가와 망아지냄새를 맡았다. 망아지는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말등에 엎드렸다. 말무리는 이미 맞은켠 언덕에 올라서서 파네를 바라보고있었다. 이미 바싹 마른 망아지의 털은 부드러운 원단같이 느껴졌다. 파는 망아지의 몸뚱이를 꼭 잡아주었다. 망아지의 심장은 전처럼 그렇게 높이 뛰지 않았다. 망아지는 말등에 납짝 엎드려 두려운 눈길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중심에 들어사자 물소리가 한결 또렸해졌다. 강변에서는 물이 급촉하게 흐르는것을 느낄수 없다. 강바닥까지 내리비치는 어룽어룽한 나무가지의 그림자가 강물의 속도가 얼마나 급촉한가를 잘 보여주고있을뿐이였다. 파도 한줄기의 강한 힘이 웃쪽에서 밀려내려와 말의 배를 치고있다는것을 감촉할수 있었다. 강물은 절주가 있던 말의 발걸음을 흐트러놓고있었다. 하지만 말은 인차 발걸음을 조절하고 침착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파는 매일 말무리를 이끌고 강을 지나기에 제일 깊은 곳이라고 해야 말배에나 대일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강밑이 평탄하기에 정상적인 말이라면 절대로 미끌어 넘어가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듯한 강물이 파의 무릎을 적셔주었다. 초원을 가로지나는 이 강은 북방에 있는 큰 호수에서 발원한것이였다. 강은 풀들이 무성한 초원을 지나 남방에 있는 다른 한 큰 호수에 흘러들었다. 파가 세상을 알아서부터 그 강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흘러 초원의 생령들을 키워주었던것이다. 파는 강도 초원처럼 생명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강언덕에 오른 파는 말등에서 내렸다. 물이 가득 들어간 장화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났다. 파는 망아지를 조심스럽게 풀밭에 내리워놓았다. 망아지는 몇초동안 풀밭에 멍하니 서있었다. 발굽밑의 그 땅이 새롭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망아지는 갑자기 머리를 돌려 어미말을 찾았다. 망아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망아지는 어미말을 향해 뛰여갔다.  그것은 그 망아지의 생명중 첫 질주였다. 파는 망아지가 뛰다가 넘어라도 질가봐 손에 땀을 쥐였다. 하지만 망아지는 용케도 어미말의 곁에 도착하여 몸뚱이를 비벼댔다. 파는 초원의 말들은 땅에 든든히 발굽을 박은후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만약 진짜 넘어졌다면 그 말은 절대 다시 일어설수 없을것이였다. 태양은 지평선너머로 얼굴을 숨겼다. 파는 태양이 지평선너머의 그 대지에 떨어지는 거대한 소리를 듣는듯싶었다. 태양은 광활한 초원을 쩌렁쩌렁 울리며 대지의 품에 안겨 혼신을 불태울것이고 그 정열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것이였다. 초원의 행운아로 불리우는 말들은 솟아오르는 태양의 따스한 빛속에서 단잠을 자다가 땅과 하늘이 맞닿는 장려한 풍경을 감상하게 될것이다. 지평선너머에는 무엇이 살가? 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원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것이다. 파는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몰아 숙영지를 향해 떠났다. 멀리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지평선에 숙영지의 륜곽이 보여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유백색의 천막과 수레가 있었다. 흰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바람이 숨어버린 황혼녘이라 연기는 곧추 하늘로 솟아올랐다. 엄마는 파를 향해 저녁을 먹으라고 소리쳤다. 동생 T.BING에게: 이 글은 너에게 보내는 새해선물이다. 나는 전에 그렇듯 너를 부러워했더랬지. 동생아, 너도 그때 곁에 있었더라면 금방 태여난 망아지를 안고 강을 건널수 있었을거다. 검은 털의 망아지는 지금도 잘 있느냐?  
543    백조목장*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093  추천:1  2013-12-23
백조목장 ―초원의 여름을 적는다 그해 봄과 여름에 나는 친구네 목장에서 생활했다. 천당같은 그곳은 후룬베엘초원의 오원커기에 자리잡고있었다. 친구네 목장부근에는 모래산 하나가 있었는데 그우에는 초원에서 보기 힘든 적송 몇그루가 자라고있었다. 나무들의 직경으로 미루어볼 때 모두 백살이 넘을것 같았다.  나는 매일 목장에 있는 몇마리의 세퍼드를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머나먼 초원을 바라보는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초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록색의 세계였다. 머나먼 지평선을 바라보다보면 나중에는 하늘과 하나로 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후 목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친구들은 목장의 순결한 록색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내가 포토샵을 리용해 그런 사진효과를 얻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구구히 해석을 하고싶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초원은 일종의 생활방식일뿐이다. 나도 사실 초원의 그 푸르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방법이 없다. 초원은 푸르다 못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속에 흘러들고싶게 하는 광활한 세계이다. 그해봄, 나는 일생에서 처음으로 그처럼 방대한 철새의 이동장면을 보게 되였다. 수만마리의 큰 기러기들이 무리를 지어 낮게 날아예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은 검은 구름과도 같았다. 그것은 세상 모두가 분망한 계절이였다. 큰 기러기들의 이동은 이른 아침으로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 되였다. 맑은 밤하늘에서는 병에 걸려 날기 힘든 갈매기들의  급한 울음소리가 오래도록 퍼지기도 했다. 그들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싶었던것이다. 북방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끼를 낳아 키우고싶었던것이다. 망망한 밤하늘을 쳐다보노라면 뭉게뭉게 흐르는 구름들사이에서 무리를 지어 날아예는 갈매기들을 자주 볼수 있었다. 그들의 가늘고 뾰족한 날개는 수면을 스치는 날렵한 지느러미를 방불케 했다. 초원도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목장은 바로 호수가에 자리잡고있었다. 목초사이에는 좁지만 물이 많은 개울이 흐르고있었다. 하여 그 초원은 더없이 아름다와보였다.  해맑은 어느날 아침, 나는 철새들이 더 이상 북쪽으로 날지 않고 그곳에서 배회하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풀밭에 내렸다 날아올랐다를 반복하며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있었다. 일부 철새들이 초원에서 둥지를 틀만한 곳을 찾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새들에 대하여 익숙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그저 물새가 아니면 도요새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한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안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멀리로 날아가지 않고 주위에서 배회하다가 다시 원 자리에 내려 앉군 했다. 바로 그 무렵에 한 친구가 목장으로 나를 보러 왔다. 이튿날 이른아침, 우리는 함께 모래산으로 가서 일출을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가 풀밭을 지날 때 한마리 또 한마리의 새들이 련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친구에게 손쉽게 새둥지를 찾을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실 그 목장은 그 친구의것이였다. 친구는 전에 초원에 새둥지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없었던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로부터 5, 6메터쯤 떨어진 풀밭에서 또 한마리의 새가 우리의 발걸음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방금 새가 날아오른 그 위치를 확정하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허리를 굽혀 풀들을 헤쳤다. 아니나 다를가 풀밑에 옴폭하게 들어간 새둥지가 있었다. 풀을 결어만든것이였다.  겉에 회색 반점이 있는 담청색 작은 알 세개가 둥지에 들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알을 꺼내들었다. 방금 하늘로 날아오른 어미의 체온이 여전히 알에 남아있었다. 나는 시무룩히 웃으며 새알을 친구앞에 내밀었다. 친구는 매우 놀라와 하며 어떻게 새둥지를 그처럼 쉽게 찾을수 있느냐고 물었다. 새둥지와 주변의 환경 그리고 새알의 보호색이 모두 비슷해서 쉽게 분별할수 없었던것이다. 친구가 자세하게 새알을 구경한후 나는 인차 새알을 다시 둥지에 넣어주었다. 새알이 식으면 부화에 영향이 있었던것이다. 내가 간단한 솜씨를 보인것뿐인데 친구는 나의 재간에 탄복하는것 같았다. 전에 친구는 내가 맹견들앞에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것을 보고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던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자세히 관찰을 하면 그쯤한것은 쉽게 알아낼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둥지에서 날아오른 새는 메추리처럼 그렇게 교활한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둥지에 다가서는것을 보고도 그 새는 그냥 둥지에 앉아있다가 사람들이 거의 접근해서야 날아오른것이다. 그로 미루어보아 그 새의 지력이 낮거나 그들이 종래로 사람을 접촉한적이 없는것 같았다. 그 종류의 새들은 언제나 직접 둥지에서 날아오르지 종래로 다른 음모궤계를 꾸미지 않았던것이다. 산꼭대기의 소나무에는 또 꿩매의 둥지도 있었지만 나는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뀅매가 이미 새끼를 부화했던것이다. 모래산아래의 옅은 골짜기에는 늙은 오소리 한마리가 살고있었다. 나는 아침에 세퍼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가끔 검은 색과 흰색이 섞인 오소리의 머리가 굴어구에 나타나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몇번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래산기슭에 이르렀을 때 금방 먹이를 먹고 굴로 돌아오는 늙은 오소리를 직접 본적도 있었다. 혈기왕성한 세퍼드가 오소리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놈은 오소리처럼 체대가 작고 똥똥하게 생긴 짐승을 대적해본 경험이 없었다. 오소리가 송곳이를 들어내면서 도망을 치자 세퍼드는 감히 쫓아가지도 못했다. 이면에서 그놈은 숙영지에 사는 “검은 곰”이라 불리우는 세퍼드를 따라배워야 할것이다.  “검은 곰”에게 물려 죽은 오소리가 얼마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검은 곰”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얼굴에 난 상처자국에는 흰 털이 돋아올랐다. 그놈은 늙어서 힘겨운 탓인지 종래로 나와 함께 산책을 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굴에 엎드려 잠을 잤다. 젊어서 한때는 아주 예리했을 그놈의 이발은 이미 다 빠져있었다. 만년에 이른 “검은 곰”은 자는 일을 내놓고는 더 이상 할수 있는게 없는상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였다. 그해봄, 내가 금방 목장에 갔을 때 “검은 곰”은 놀랍게도 나에게 자기의 솜씨를 펼쳐보였다. 그것은 어느 황혼무렵이였다. 양들은 이미 우리에 들어갔다. 나는 문앞에 서서 불타는 노을이 내려앉은 풀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줄곧 굴안에 엎드려있던 “검은 곰”이 몸을 일으키더니 풀밭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눈길이 진지했다. 전에 늘 보던 생각은 뻔하지만 힘이 부쳐하던 그 표정이 아니였다. “검은 곰”의 온몸에 갑자기 혈기가 왕성해진듯싶었다. 나는 “검은 곰”의 눈길을 따라 푸른 초원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검은 곰”은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닥 빠르지 않았지만 차츰 나는듯해보였고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목표를 향하고있었다. “검은 곰”이 2, 30메터를 달렸을 때 앞에서 갑자기 털뭉치 같은것이 불쑥 솟아올랐다. 순간 나는 그 털뭉치의 임자가 바로 늑대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늑대는 양들 몰래 목장으로 따라오다가 풀밭에 매복하여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던것이다. 늑대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달려오는 “검은 곰”을 마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것은 “검은 곰”이 달려가면서 소리를 쳐 다른 세퍼드들을 부르지 않는것이였다.   “검은 곰”은 열살도 넘어있었다. 악렬한 기후와 충족하지 못한 먹이때문에 초원의  세퍼드들은 보통 열살을 넘기지 못하고있었다. “검은 곰”은 진작 늑대앞을 막아서있었다. 내가 이발 한대 없는 “검은 곰”이 어떻게 공격을 할가를 두고 근심하고있을 때 그놈이 갑자기 돌멩이처럼 늑대에게 몸을 던졌다.  늑대는 “검은 곰”에게서 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벌렁 나가 넘어져서 한고패 구르고는 겨우 기여일어났다. 늑대는 어리둥절해서 “검은 곰”을 바라보았다. 그놈은 종래로 그런 공격을 당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검은 곰”은 이발이 한대도 없었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면서 늑대에게 덮쳐들었다. 늑대가 “검은 곰”을 맞받아 나갔다. 늑대와 “검은 곰”은 한동아리가 되여 돌아갔다. 그때 몇마리의 세퍼드가 집뒤에서 뛰여나왔다. 그놈들은 너무도 놀라 풀밭에서 늑대와 결투를 벌리고있는 “검은 곰”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나는 세퍼드들에게 빨리 공격하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제야 그놈들은 번쩍 정신이 들었던지 현장을 향해 뛰여갔다. 세퍼드들이 소리치며 달려오자 늑대는 인차 사태를 파악하고 몸을 돌려 초원심처로 도망을 쳤다. 늑대는 그때 이발이 없는 늙은 개 한마리는 대적할수 있었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세퍼드무리는 당할수 없을것이라고 판단했을것이다. 봄날의 초원에는 먹이가 많지 않았다. 늑대는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해 몸이 몹시 여위여 있었다. 그놈은 세퍼드들과 힘으로 대적은 할수 없었지만 속도는 세퍼드들을 찜쪄먹을 정도였다.  달려온 세퍼드들과 함께 늑대를 쫓아가던 “검은 곰”이 얼마를 안가서 돌아왔다. 그의 입부근에 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다. “검은 곰”은 마당에 엎드려 늑대가 도망친 방향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세퍼드가 먹지 못해 몸이 겨릅대같은 늑대를 쫓아 잡을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령에 가까왔다. “검은 곰”은 늑대를 자기의 령지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검은 곰”은 내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았고 내가 자기의 몸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검은 곰”이 그런 뜻을 보이자 나도 더 이상 그런 동작으로 그놈의 존엄을 건드리지 않았다. 늑대를 쫓아가던 다른 세퍼드들은 바보스럽게도 둥근달이 떠올라서야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들은 울안에 들어서자 마자 물통에 마주서서 벌컥벌컥 물을 먹었다. 젊은 세퍼드들은 기를 돋구며 늑대를 쫓아가서 굴에 몰아넣은것 같았다. 나는 그 늙은 오소리가 늘 세퍼드들에게 쫓기우면서도 왜 이사를 가지 않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나는 목장부근에 있는 그 호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 호수는 옛날에 강이 막히면서 생겨난것 같았다.  물속은 그렇게 깊은것 같지 않았다. 그것을 호수라고 부르는것도 억지감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어쩌면 물웅덩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였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 호수를 찾아갔다. 호수에는 아비목에 속하는 새들과 들오리 같은 물새들이 많이 살았다. 호수로 통하는 풀밭에는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가득 널려있었다. 호수가에 이르니 땅이 어찌나 진지 빠졌다가는 발을 뽑기가 어려울것 같았다. 봄이 되여 금방 얼음이 풀릴 때 소 한마리가 호수가에서 물을 먹다가 진창에 빠져들어간적이 있었다. 나는 부근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그 소를 진창에서 끌어내느라 진종일 애를 뗐다. 온몸이 흙투성이로 된것은 물론 춥고 배 고파서 참을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진창에 목까지 빠져버린 그 소를 그냥 버리자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수도 없었다. 날이 어두워서야 우리는 끝내 소를 구해냈다. 나는 그 소 신세처럼 될가봐 겁이 나서 감히 호수가로 다가갈수 없었다.    나는 맑은 날씨를 골라 호수와 멀리 뻘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수면을 관찰했다. 그 호수에 사는 물새의 품종을 파악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수면에는 확실히 내가 모르는 품종의 물새들이 있었다. 나는 그 호수가 왜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말라들지 않았는가 하는것이 궁금해서 주변을 살피다가 우에서 흐르는 강줄기가 좁은 지류를 형성하면서 호수에 흘러드는것을 발견했다. 한메터도 되나 마나한 그 강줄기가 호수에 물을 공급하고있었던것이다.   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진(镇)이 있었다. 나는2, 3일에 한번씩 걸어서 진으로 가 pc방에 들려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그리고 슈퍼마케트에 들려 전화를 치거나 노트북에 충전을 했다. 목장에는 전기가 없었던것이다. 진으로 가려면 반드시 십여메터 길이의 콩크리트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날 나는 진에서 돌아오다가 다리우에 잠간 서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 다만 무료한 감이 들어서 무엇인가 놀음거리나 찾아보려는것이였다. 나는 교각이 경도가 아주 높은 암석이라는것을 발견했다. 그 무렵, 나는 몸에 지니고 다니던 스위스군도로 고기를 잘라 먹고 물건을 깎고 가죽을 벗기다보니 칼날이 무뎌있었다. 나는 천연숫돌과도 같은 교각에다가 칼을 갈고싶어 맞춤한 각도를 찾았다. 내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내가 각도를 잘못 잡았던 탓인지 그만 칼이 내 손을 벗어나 다리밑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다리아래를 내려다보니 붉은 칼자루가 맑은 물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있었다. 나는 칼자루가 붉은 색이이기를 참 잘했다고 감탄했다. 칼자루가 붉은색이기에 떨어뜨렸을 때 주변의 환경과 선명한 구별이 되여 인차 찾을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다리에서 내려서서 칼이 떨어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나는 어깨에 메였던 노트북을 벗어서 강가에 내려놓았다. 그곳은 다리우에서 보기보다 거리가 좀더 멀었지만 빨간 칼자루는 여전히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물깊이가 반메터쯤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과 양말을 벗고 바지가랑이도 높이 말아올렸다. 그 시각은 비록 점심녘이였지만 강물은 찬기운이 뼈속까지 슴여드는것 같았다. 강밑에 울퉁불퉁한 조각돌들이 깔려있어 발바닥이 여간만 아프지 않았다. 나는 물밑에서 칼을 주어들어 물기를 닦고는 칼날을 접어서 칼집에 넣었다. 나는 몸을 돌리면서 다리우를 힐끔 바라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교각에 옅게 묻고있는 갈대뿌리에 매달린 수초덩이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 모양이 너무 정교한것 같았다. 비록 그것이 교각에 자란 갈대들 사이에 섞여있었지만 여전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그 것이 절대 자연적으로 형성된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리가 찬물에 얼어서 뻣뻣했지만 나는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도중에 나는 두개의 교각이 교차하면서 생긴 물살이 센 곳을 지나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급물살로 하여 도무지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나는 차츰 다리아래의 소용돌이때문에 형성된 작은 모래섬과 가까와졌다.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야 교각에 매달려있는 그것이 바로 큰 새둥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잠간 주저하다가 생둥지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섰다. 갈대의 그루터기가 칼끝처럼 뾰족했다. 그것은 내가 본 새둥지들가운데서 제일 큰것이였다. 새둥지는 콩크리트다리의 교각에 있었는데 수면과 반메터쯤 떨어진것 같았다. 새둥지의 직경은 한메터가 넘을것 같았다. 나는 흥분으로 하여 가슴이 후둑후둑 높뛰였다.  그것은 분명 백조둥지였다. 나는 갈대를 헤치고 둥지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 둥지가 꼭 금방 튼것이라고 확정했다. 둥지에 사용된 갈대의 물에 잠긴 부분이 그때까지 신선한대로 있었던것이다. 그 발견으로 하여 나의 가슴은 매우 흥분했지만 물에 들어서 있는 나의 다리는 너무 얼어서 감각마저 잃어질것만 같았다. 나는 급히 강가에 올라가 양말을 가지고 젖은 발을 닦았다. 그때에야 나는 나의 발이 조각돌에 긁혔던지 갈대뿌리에 긁혔던지 군데군데 상처가 나있는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발이 감각을 잃어서인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여 상처를 닦은후 신만 신었다. 젖은 양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나는 노트북을 주어 메고 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리우에 올라섰다. 나는 다리우에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곳에서는 근본 새둥지를 똑똑하게 볼수 없었다. 나는 목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을 굴려보았다. 이 일망무제한 초원에서 백조는 왜 하필 교각에 둥지를 틀었을가? 그 다리우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리고 오래동안 수리를 하지 않은 그 다리우로 차들이 자나갈 때면 언제나 큰 진동이 발생하군 했다. 어떤 시각으로 보나 그곳은 절대 백조가 둥지를 틀기 적합한 곳이 아니였다. 전에 나는 초원에서 유람을 할 때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한적이 있었다. 그 둥지는 놀랍게도 두 바퀴흔적 사이의 풀밭에 있었다. 초원심처의 길은 사실 수레나 자동차바퀴가 지나가면서 낸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종달새는 바로 그 바퀴흔적 사이에다가 둥지를 틀었던것이다. 어느날, 나는 오전의 4시간을 리용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통계한적이 있었다. 결과 대형트럭 2대와 소형트럭 3대, 수레 한대와 사람을 등에 태운 말 두필 그리고 행인 네 사람이 지나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종달새의 둥지를 다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미종달새는 대형트럭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잠간 하늘로 날아올랐을뿐 다른 때는 줄곧 둥지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늘 종달새의 둥지를 살펴보았다.   둥지에서는 네마리의 새끼종달새가 까나왔고 그 둥지에서 날개를 굳혀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연계에서의 일부 현상을 사람들은 영원히 리해할수 없을것이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망원경을 들고 모래산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금방 솟아오르고있었다. 몇마리의 세퍼드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곁을 스쳐지났다. 나는 끝내 산꼭대기에 올라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없는 초원이 푸른 파도를 일으키고있었다. 지평선에서 하얀점 하나가 보여왔다. 나는 그것이 금방 일떠세운 누군가의 천막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천막옆의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천막의 녀주인이 아침에 먹을 우유차를 끓이는것 같았다. 유목민들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고있었다. 하늘이 푸르렀다.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초원의 독수리 몇마리가 공중의 높아가는 난기류를 빌어 하루의 첫 사냥을 시작했다. 금빛 명주끈같은 강물이 조용히 흘러가는것이 그처럼 고요해보였다. 그러한 정경은 천당과도 같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목장에서 천여년을 계속되고있었다. 나는 어깨에 메였던 망원경을 내리워 들었다. 그 다리는 모래산과 3킬로메터쯤 떨어져있었다. 콩크리트다리는 처음에 망원경에서 어슴프레 륜곽만 보였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단추를 돌려 초점을 맞추었다. 다리아래의 수면이 보였다. 하지만 영상이 그렇게 똑똑하지 않았다. 나는 또 교각에 붙어있는 겨울날 유리창에 얼어 붙은 서리와 같이 흰 물건을 어렴풋이 볼수있었다. 나는 연신 단추를 돌려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려고 했지만 그 흰 물체가 도무지 똑똑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나는 몇년 동안 줄곧 그 로씨야망원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지만 그번처럼 실망한적은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고 그 흰 물체를 똑똑하게 보고싶었다. 나는 급히 모래산을 내려섰다. 목장의 작은 집 벽에는 렌즈가 하나인 오래된 망원경이  걸려있었다. 나는 이미 색까지 거멓게 변해버린 그 망원경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겉모양으로 봐서는 력사가 100년도 넘을것 같았다. 나는 벽에 걸려 고라니머리와 같이 장식품으로 되여있던 망원경을 내리워 먼지를 닦았다. 망원경은 그런대로  사용할만 했는데 길이를 다 늘궈보니 놀랍게도 한메터나 되였다. 내가 낡은 망원경을 들고 다시 모래산에 오를 때 세퍼드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고 밖에서 먹이를 기다렸다. 나는 몇십메터나 되는 모래산에 다시 올라갔다. 나는 낡은 망원경을 눈앞에 가져다댔지만 모든것이 뿌옇게 보일뿐이였다. 나는 단추를 돌려 망원경의 거리를 조절했다. 차츰 물체가 똑똑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끝내 검은 물체가 눈에 안겨들었다. 나는 좀더 세심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성공했다. 그놈은 바로 마당에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세퍼드였다. 그놈의 수염까지 똑똑하게 보였다. 나는 망원경을 내리워 자세히 관찰했다. 렌즈부근에 로씨야문자 몇개가 적혀있었다. 망원경은 로씨야에서 제작한것이 확실했다. 백년이 지난후에도 그 망원경의 렌즈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나는 웬지 내가 수년간 감금되여있다가 풀려나온 해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대단한 해적이야! 나는 해적 랑빠얼(让巴尔)이고 나는 해적 듀건(杜根)이야. 무연한 초원은 바로 나의 바다이고 모래산은 나의 함선이야. 나는 지금 망원경을 들고 먼 바다를 바라보고있는거야… 나는 그렇게 잡생각을 굴리면서 망원경을 돌다리쪽으로 돌렸다. 망원경에 갑자기 커다란 머리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인차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것은 분명 클로즈업된 백조의 머리였다. 렌즈의 효과때문인지 부리가 매우 넓어보였다. 백조는 그때 바로 내쪽을 응시하고있었다.  나는 종래로 그처럼 똑똑하게 야생백조를 관찰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후둑후둑 높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낡은 망원경의 초점을 조절해나갔다. 백조는 내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자기를 관찰하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때 백조는 수면우에 둥실 떠있었는데 날개를 몸량쪽으로 넓게 펴고있었다. 하얀 그 모습은  채 녹지 않은 눈덩이처럼 순결해보였다. 호형으로 되여있는 긴목과 살풋이 숙이고있는 아래턱은 조류중에서 보기 드문 그 우아함을 자랑하고있었다. 그 순간 백조는 그냥 물에 떠있을뿐이였는데 그 모습은 누구도 범접 못할것 같은 천사의 기품을 보여주고있었다. 나는 계속 단추를 돌려 거리를 조절했다. 그 바람에 시야가 점점 더 넓고 똑똑해졌다. 교각아래에는 또 다른 백조 한마리가 물에 떠있었다.  나는 비록 그 두마리 백조의 성별을 구별할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교각아래에 있는 놈이 암컷이라고 추측되였다. 그놈은 내가 처음에 본 그 백조쪽으로 천천히 헤염을 쳐갔는데 목을 낮게 숙이고있었다. 마치 총각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숫처녀를 보는듯 했다. 처음에 보았던  백조옆에 다달은 그놈은 귤색 부리를 내밀어 대방의 등을 부드럽게 빗어주었다. 한참후 암컷이라고 생각되는 그 백조가 천천히 교각밑의 모래섬으로 헤여갔다. 그놈은 천천히 모래섬에 오르더니 교각에 있는 둥지로 날아들어갔다. 그렇다면 그놈은 분명 알을 낳으려는것일것이다.  백조들의 번식기가 시작된것이다. 나는 너무도 흥분되여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백조가 어쩌면 사람들이 오가는 다리아래에 알을 낳는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목장에서 제일 사람을 흥분시키는 비밀을 속에 품게 되였다. 매일아침, 나는 모래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돌다리를 관찰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평범해보일 다리이지만 교각에 있는 백조둥지로 하여 나는 그 다리가 매우 특수하게 생각되였다. 아침이면 백조는 조심스럽게 수면을 헤여다녔다. 그들은 종래로 다리량측의 행인들의 눈에 뜨일수 있는 넓은 수면에는 나가지 않았다. 어느한번, 나는 그놈들이 함께 나는것을 본적이 있다.   그놈들은 약속이나 한듯 나란히 앞뒤에서 날개를 퍼득이며 넓은 수면을 가르고 나아갔다. 날개짓이 빨라지자 그들의 몸뚱이는 차츰수면을 떠올랐다. 잠간후 그들의 두발만 노처럼 수면을 긋고있었다. 그 바람에 그들의 몸뚱이옆에 튀여오르는 물보라는 아침의 해빛속에서 아름다운 색채를 련발했다. 넓게 펼쳐진 백조의 날개는 해볓아래에서 투명하게 보였다. 이어 그들의 몸뚱이가 류선형으로 변했고 차츰 날개를 젓는 차수가 적어지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공중에 날아오른 그들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살폈다. 드디여 그들의 흰 몸뚱이가 두개의 작은 점으로 보아다가 푸른 하늘에 섞여버렸다. 백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아름다운 장면은 한번만 보아도 오래오래 머리속에 남아있을것이다. 이틀에 한번씩 나는 노트북을 들고 진에 가서 충전을 하고 전화를 걸었으며 PC방에 가서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진으로 가는 길에 나는 꼭 그 다리를 지나야했지만 절대 교각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갈 때는 먼저 주변을 살펴 사람이 없는것을 확인한후 목장쪽을 향한 다리어구에서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 말 그대로 잠간 걸음을 멈추고 교각을 힐끔 훔쳐볼뿐이였다. 나는 감히 직접 교각에 내려가 백조둥지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둥지에 살고있는 한쌍의 백조를 놀래우면 큰 죄라도 받을가봐 두려웠던것이다. 백조들도 조심성이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행인들이 다리를 지날 때면 모래섬에 있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줄을 알고있는 나는 번마다 갈대숲에 눈길을 주었지만 겨우 한번인가 갈대숲에서 언뜰거리는 백조의 그림자를 보았을뿐이다. 그렇게 조용히 반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 내가 진에 갔다가 돌아올 때 끝내 내가 줄곧 근심해오던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다리우에 차 한대가 서있었고 다리아래에서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있는것이 멀리에서 보였다.   나는 너무도 급해서 손에 땀을 쥐였다. 나는 애써 정서를 통제하면서 아무일이 없는듯 다리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에 가서야  나는 그것이 개량을 거친 찌프차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차체에는 수많은 조명과 필요없는 물건들이 달려있었다. 그밖에 “곰이 출몰합니다. 조심하세요.”라는 문구도 붙어있었다. 총적으로 차주인은 본분을 지키는 온순한 사람이 아니는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가 차를 타고 온 두 젊은이도 몸에 괴상한 옷들을 걸치고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들을 그곳에서 떠나게 할가를 두고 고민했다.  그들은 다리아래 강가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사진 찍고있었다. 나는 다리란간에 붙어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대밭에서 하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백조였다. 나의 긴장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털색이 선명해서인지 갈대밭속에 있는 백조가 유난히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젊은이들은 강가에 피여난 노랜색 꽃을 사진 찍고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때까지 젊은이들은 분명 백조를 발견하지 못고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만약 그들이 백조둥지를 발견한다면 그 안전을 담보할수 있다고 장담할수 없을것이였다. 나는 그들에게 서쪽으로 4, 5킬로메터쯤 떨어진 곳에 매우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먼 옛날 칭키스칸이 그 계곡에서 첫 안해를 맞이했다는 전설도 들려주었다. 계곡에 가면 예쁜 보석도 주을수 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이들의 눈이 반짝했다. 한시바삐 그 보석을 손에 넣고싶어하는 욕망이 그대로 보여졌다. 그들은 나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는 부랴부랴 차를 몰아 그곳을 떠났다. 사실 나의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그곳에는 정말 아름다운 계곡이 있었고 아름다운 마노석을 주을수 있었다. 칭키스칸이 첫 안해를 맞이했다는 전설도 아예 없는 일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칭키스칸이 그곳에서 첫 안해를 맞지 말라는 법도 없지는 않는가? 전설에 의하면 칭키스칸이 첫 안해를 맞으러 그곳에 갔을 때 그만 세퍼드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나는 숙영지에 있는  “검은 곰”이 바로 칭키스칸을 물었다는 그 세퍼드의 몇십대 후손쯤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굴려보았다.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백조가 나의것도 아닌데 그들이 만약 백조를 발견했다해도 다치지 말라고 권고할만한 리유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그들이 잠시는 그곳을 떠났지만 인차 돌아올가봐 근심되였다. 그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생태평형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사진을 찍던 노란 꽃을  꺾어가지고 떠났던것이다. 그들도 사실은 미지의 세계를 알고싶어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최저한도의 존중마저 모르는것이였다.  지난해 봄, 나는 대흥안령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오원커족숙영지에서 향항의 한 녀기자를 만난적이 있었다. 당시는 바로 순록이 새끼를 낳는 계절이였다. 갓 태여난 새끼순록은 매우 깜찍했다. 나는 그 기자에게 절대로 갓 태여난 순록을 만져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당부했다. 하지만 내가 오원커족친구와 함께 산에 가서 사슴을 찾아가지고 돌아오자 갓 태여난 새끼순록이 어미순록의 발밑에 죽어있었다. 녀기자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새끼순록을 손으로 만져보았던것이다. 그렇게 새끼순록의 몸에는 녀기자의 체취가 남게 되였고 어미순록은 사람의 냄새가 배인 새끼순록을 죽여버렸던것이다. 그 무렵, 다리우에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그가 유람객이든 현지인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 갖은 방법으로 그들이 그곳을 떠나게 했다. 나는 웬지 다리우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백조를 해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강가에서 양을 방목하는소년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나타나 세번째로 말을 걸자 소년은 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 양무리를 몰아 그곳을 떠나갔다. 소년에게 오해를 받았지만 나는 내 목적을 이룬것으로 하여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별 일 없이 한달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아침에도 나는 망원경을 들고 모래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차츰 그 망원경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망원경을 닦았고 양가죽으로 통도 만들었다. 그날도 백조들은 다리밑에서 춤을 추고있었다. 날개는 넓게 펴져있었는데 한번씩 물을 칠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뽀얗게 날아올랐다. 그 장면을 살펴보던 나는 갑자기 그들의 동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몸집이 좀더 큰 수컷이 아름다운 털을 정리하고 풍도가 있게 암컷의 주변에서 빙빙 돌아치면서 친절을 보였었는데 그날은 그냥 날개로 물장구만 치는것이 전처럼 그렇게 힘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에 없이 꼭 붙어있었는데 모양으로 보아 물밑에서 무엇인가 그들을 속박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물장구를 치는것이 아니라 몸부림을 친다고 판단했다. 어제저녁편에 내가 모래산에 올라서 망원경으로 관찰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강변에서 물을 먹던 소들이 그 아름다운 장면에 넋을 놓고있었다. 나는 백조들이 수초에 발이 묶인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쏜살같이 모래산에서 달려 내려왔다.  세퍼드들은 어제밤에 잡은 양머리가 욕심 나 문앞에 쭈크리고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래산에서 달려내려오는것을 보고는 웬 일이냐는듯 내쪽으로 뛰여왔다. 그들은 내가 무슨 사냥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놈들을 데리고 다리를 향해 줄곧 뛰여갔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는 차츰 숨 쉬기마저 가빠졌다. 하지만 나는 다리어구에 도착해서 실망하고말았다.   한 사람이 백조를 어깨에 메고 강가에 올라오고있었다. 백조는 놀랍게도 커보였다. 백조의 목이 그 사람의 어깨에 메워져있었는데 그때 백조의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고있었다. 하얗던 백조의 털에 이미 검은 오물이 가득 묻어있었다. 백조의 발목에는 덫이 물려있었다. 그것은 쇠사슬이 달린 산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덫이였다. 나는 전에 그런 덫을 본적이 있었다. 보통 초원에 출몰하는 늑대를 잡을 때나 쓰는 덫이였다. 나는 일시 억이 막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백조는 이미 죽어있었다. 생명을 다한 그 커다란 몸체는 더 이상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답지가 않았다.  다른 한마리의 백조도 죽어서 강가에 던져져있었다. 그놈의 발목에도 똑 같은 덫이 물려있었다. 다른 한 사람이 쭈크리고 앉아 덫에 련결된 쇠사슬을 벗겨내고있었다. “손을 떼시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그들은 놀라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금 백조를 잡은데서 오는 승리의 희열때문에 내가 곁으로 다가가는것조차 중시를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나를 발견한 그들은 놀라움에서 벗어나 어색한듯 얼굴에 웃음을 띄워올렸다. 나는 그 두 사람을 기억하고있었다. 초봄의 어느 깊은밤, 세퍼드들이 갑자기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누군가 양우리에 들어갔다가 세퍼드들에게 포위되였던것이다. 나는 손전지를 켜서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장기간 술을 과하게 마셔 얼굴이 붓고 눈알이 파랗게 변해있었다. 그날도 그 사람은 술을 가득 마시고 취해서 양우리에 들어와 멍하니 서있었던것이다. 그는 눈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 사람의 옷소매 한짝은 벌써 세퍼드들에게 물려 찢어져있었다. 그때 만약 어느 세퍼드가 그 사람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게만 한다면 그 피비린내는 다른 세퍼드들의 야성을 한껏 불러일으킬것이였다. 나는 그 사람의 욕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앞에 나서서 세퍼드들을 물러서라고 소리쳤다. 나는그 사람을 이끌고 양우리밖에 나와 길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해 흔들흔들하면서 진방향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은 몸이 몹시 허약했다.  한달전의 어느날 오후였다. 나는 그 사람이 삽을 들고 나의 친구네 목장으로 가는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그게 이상스럽게 생각되여 세퍼들을 끌고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오소리굴을 파헤치고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오소리굴을 파지 말것을 간청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 아니꼬운 눈길로 나를 쏘아보더니 그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돌아갔다. 바로 그 두 사람이 손을 맞춰 백조를 잡은것이였다. 나를 알아본 그들의 눈길이 복잡해졌다. 그들은 나의 눈길로부터 일종의 불안감을 느낀것 같았다. 그때 나는 금방 3킬로메터를 단숨에 뛰여오느라 얼굴이 불깃불깃해지고 숨이 거칠어있었던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백조를 잡은것으로 하여 더없는 분노를 느꼈던것이다. 그들은 사실 그러한 나의 표정보다도 내뒤에서 자기들을 노려보는 몇마리의 세퍼드들때문에 더 겁을 먹은듯 해보였다.   그들은 나의 뜻을 읽지 못한듯 멍하니 서서 사태의 진전을 살피는듯싶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쭈크리고 앉아 백조의 발에 걸린 덫에서 쇠사슬을 뽑아내던 사람이 갑자기 그 일을 그만두고  까닭도 없이 백조의 곁에 있는 풀을 와락와락 잡아뽑았다.  나는 그때 목숨을 잃은 백조때문에 그들이 백조알까지 둥지에서 들어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모두 발에다가 목이 긴 장화를 신고있는것이 만단의 준비를 하고 백조 잡으러 온것 같았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제저녁에 물에다가 덫을 놓은것 같았다. 두마리의 백조는 아침에 깨여나 강가에서 배회하다가 덫에 걸린모양이였다. 나는 일시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당신들이 백조를 잡은것은 잘못된 행실이요.”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장면에서 그런 말을 입에 올린다는것은 양이 늑대를 보고 “나를 잡아 먹지 마세요.” 하고 청을 드는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백조가 죽었다는 사실은 개변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들의 눈에서 백조는 게사니보다 좀더 큰 동물로 보일것이고 고기가 좀더 많이 날것이라고 생각될것이였다. 총적으로 그들은 이 세상 동물을 모두 고기덩이로만 볼것이였다. 나는 끝까지 그자들에게 세퍼드들을 추기고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그들도 어쩔바를 몰라 난처해 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가 자기들에게 큰 위협으로 될수 없다는것을 느꼈던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땅에서 백조를 주어들려고 했다. 그 사람이 백조의 목을 들어 우로 당기자 아래로 처져있던 백조의 머리가 덜렁 움직였다. 그때 백조의 머리와 목은 겨우 가죽에 붙어있는듯 해보였다.  백조의 목은 이미 끊어져버렸던것이다. 그 사람은 백조의 목을 잡아 어깨에 멨다. 그러자 백조의 귤색 발이 땅에 끌렸다. 그 사람은 다른 한쪽손으로 땅에서 둥지를 들려고 했다. “못 내려놓겠소?” 내가 큰 소리를 질렀다. 목이 끊어진 백조를 어깨에 메고있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끝내 리지를 잃고말았다. 세퍼드들이 나의 어조에서 이미 무엇인가를 느낀듯싶었다. 그들은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쏘아보면서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아니면 세퍼드들이 지나친 위엄을 보였던지 두 사람은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간교한 눈길로 어떻게 하면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갈것인가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그들의 눈길은 천천히 내곁에 있는 세퍼드들에게 쏠렸다. 세퍼드들은 저 멀리 지평선에서 울려오는 우뢰소리처럼 낮고 무게있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길에서 나는 그놈들이 나의 명령만 떨어지면 어떻게 행동할것이라는것을 보아낼수 있었다. 목부근의 털을 꼿꼿이 치켜세우고 연신 으르렁거리는 그놈들은 모두 성난 사자를 방불케 했다. 나는 평소 주방에서 신선한 고기들을 가만히 꺼내여 그놈들에게 먹인 효과가 그 순간에 발휘된다고 생각했다. 세퍼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키가 좀더 큰 사람의 얼굴이 사색이 되였다. 그 사람은 분명 술에 취해 양우리로 잘못 들어갔던 그날밤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떠올리는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친구에게 백조알을 담은 둥지를 내리워놓으라고 눈짓을 하며 입속으로 얼버무렸다. “그…그것 말이야, 새끼를 깨워 자래우면 한마리에 8백원은 실히 받는다구.” 그들이 떠났다. 요행 백조알을 구할수 있게 되였다. 나는 그들이 생태평형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을뿐이지 그렇게 탐욕이 많은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렇게 순순히 돌아간것은 내가 목장부근의 몽골족목민들에게 자기들의 행실을 일러줄가봐 두려운것도 원인이였을것이다. 오랜세월을 내려오면서 목민들은 종래로 백조와 같은 물새들을 해치지 않았던것이다. 초원에는 많은 금기들이 있었다. 만약 목민들이 그들의 행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것이였다. 그들이 죽은 백조를 어깨에 메고 사라지는 뒤모습을 보면서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내가 어릴 때 놀음에 탐하여 일을 그르치면 할머니가 그렇게 나를 욕했던것이다. 그 욕을 그놈들에게 하고나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 순간에 왜 입으로 그런 욕이 터져나갔는지를 알수 없다. 둥지에 들어있는 백조알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일시 어쩌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백조알은 모두 아홉개였다. 유백색의 백조알은 집에서 기르는 가금알들에 비해 좀더 클뿐 모양에서는 조금도 다른데가 없었다. 그중 한알은 방금 그들이 들고나올 때 부딪쳐 깨여졌는데 그 쯤으로 노란색의 섬유질 같은 물질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알을 골라서 조심스럽게 옆에다 놓은후 다른 알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더는 깨여진것이 없었다. 백조알은 하나가 한근은 실히 될것 같았다. 나는 강가에다 작은 구뎅이를 파고 깨여진 백조알을 파묻은후 교각의 백조둥지가 있던 곳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둥지를 가리기 위하여 백조들이 물어다놓은 갈대가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하루아침 새에 단란하던 백조가족이 그렇게 훼멸되고만것이다. 나는 웃옷을 벗어서 백조알우에 조심스럽게 덮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백조알은 여전히 따듯한 상태를 유지하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백조알을 목장으로 무사하게 가져갈수 있을가? 나는 한참이나 머리를 굴렸다. 나는 웃옷을 땅에 펴놓고 둥지를 그우에 올려놓은후 알들이 서로 부딪칠가봐 사이에 보드라운 풀을 넣어주었다.  그후 소중한 보물이라도 안은듯 조심스럽게 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목장에 있던 친구는 멀리에서 벌써 내가 무엇인가를 안은 모양을 보고 또 좋은것을 주은 모양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목장으로 간후 나는 늘 내딴에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주어들여 방에 쌓아놓았던것이다. 그 속에는 락타의 두개골이며 선사시대에 살았던 거대한 체대를 가진  쥐화석이며 괴상한 룡모양의 나무가지며가 있었다. 친구는 나를 “쓰레기 줏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성공적으로 메추리알을 부화시킨 경험이 있을뿐 다른 가금알은 부화시켜본적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백조알을 침대우에 올려놓은후 집안을 발칵 뒤져 백조알을 넣고 부화시킬만한 용기를 찾았다. 라면을 담은 종이상자가 눈에 띄였다. 나는 보드라운 원단으로 된 옷을 종아상자안에 펴고 백조알을 한알한알 정성스럽게올려놓은후 백조알우에다가 두터운 수건을 덮었다. 나는 백조알을 넣은 종이상자를 부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나의 침대머리에 올려놓았다. 더없이 흥분되였다. 목장이 당금 백조의 천국으로 될것만 같았다. 그러한 환상은 어릴 때 풀밭에서 주어온 새알을 보면서도 늘 있었다.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여난다는것 자체가 바로 크나큰 기대였던것이다. “키워낼수 없을거다.” 친구가 신심이 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고맙기까지 했다. 최저로 백조알을 부화시킬수 없다고 랭수는 끼얹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확실히 백조알과 같이 큰 알은 부화시켜보지 못했던것이다. 관찰에 의하면 백조부부가 그 알을 부화시키기 시작한지 거의 한달이 되여오는것 같았다. 하기에 부화에서 관건적인 시간은 지났을것이라고 판단했다. 알속에서 백조가 이미 모양을 갖춰가고있을것이였다. 부딪쳐 깨여진 알에서 보았던 섬유질 비슷한 물체가 바로 새끼백조의 털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조알이 제대로 된 온도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새끼백조가 태여날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부화되여 나온 새끼백조를 어떻게 키우고 나중에 어디로 보낼것인가 하는 일들은 모두 그때에 가서 연구할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백조알을 어떻게 새끼백조로 만드느냐 하는것이였다. 이튿날아침, 나는 백조알들이 매우 안정되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백조알들이 식어버린것이 아닌가 하고 근심되였다. 알속의 생명이 박동을 멈춘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나는 한알을 꺼내여 해빛에 들어 자세히 살폈다. 안에 있는 검으스름한 물체가 똑똑하게 보였지만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알을 귀가에 가져다 대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양우리에서 양똥을 쳐냈다. 저녁에 밥상에 마주앉아서야 나는 백조알을 살펴보는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차 둥지로 다가가 우에 덮었던 두터운 수건을 열어젖혔다. 알들은 돌멩이처럼 둥지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나는 손으로 알들을 만져보았다. 아무런 동정이 없었지만 따뜻했다. 너무도 피곤했던 나는 부랴부랴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나는 늦게야 잠에서 깨여났다. 따뜻한 해볕속에서 보드라운 털을 가진 무엇이 나의 귀를 간지르는듯한 감을 느꼈다. 내가 거주하는 그 집에는 쥐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양이도 한마리 있었다. 고양이는 그때 발정기에 있었다. 그놈을 내놓고는 사방 몇십킬로메터안에 다른 고양이가 없었다. 사랑때문에 지쳐버린 고양이는 매우 우울한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진종일 히스테리적으로 울부짖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쥐들이 잔치를 벌려도 실컷 놀아라 하는 태도였다.  목장의 쥐들은 실로 사람들곁에서 잔치를 벌리고도 남을 놈들이였다. 시퍼런 대낮에 사람들이 빤히 보는앞에서 먹이를 훔쳐 먹거나 물건을 쏠아대군 했다. 며칠전 내가 모래산에서 내려와 금방 집에 들어서는데 큰 쥐 한마리가 내 침대앞에 떡하니 앉아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것이였다. 목장에 사는 쥐는 대개 집에서 사는 그런 품종이였다.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초원에 들여올 때 묻어온것 같았다.  나는 대부분의 동물을 좋아했지만 쥐는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쑥 내밀어 내 귀를 건드리는 그놈을 한쪽에 탁 밀쳐버리며 두눈을 번쩍 떴다. 하얀 물체가 눈앞에서 아장거렸다. 나는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서며 머리를 한쪽으로 비켰다. 그 바람에 나는 머리를 벽에다 퉁 하고 부딪치고말았다. 그 충격에 나는 정신이 드는듯싶었다. 나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그 하얀 물체를 살폈다. 그놈은 하얀 털을 가진 작은 새였다. 아니 새가 아니라 바로 새끼백조였다. 그놈은 나의 베개우에서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놈의 머리를 몇번 다독여준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나의 침대우에는 새끼백조가 가득했다.  짧은 흥분이 지나가자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잠결에 몸을 마구 뒤적이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뢰구역에나 들어선듯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불을 포갠후 침대에서 내려갔다. 바닥에 내려선 나는 새끼백조들을 세여보았다. 일곱마리까지 세였을 때 나는 정말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여덟번째 새끼백조가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내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깔아죽은것은 아닐가? 나는 침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문뜩 무슨 생각엔가 잡힌 나는 백조알을 넣어두었던 종이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새끼백조 한마리가 안간힘을 다해 알에서 까나오고있었다. 몸뚱이가 절반쯤 밖으로 나와 있었고 엉뎅이쪽은 그냥 알에 묻겨있었다. 새깨백조가 알에서 까나오는 일은 그야말로 생사를 가름하는 아름찬 과정이였다.    나는 새끼백조의 몸에서 조심스럽게 껍질을 뜯어냈다. 새끼백조의 촉촉한 털이 나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새끼백조를 본적이 없었다. 마치도 한송이의 순결한 눈꽃을 보는것만 같았다. 작은 부리는  분홍색을 띠고있었다. 나는 죽어간 두마리의 백조를 슬퍼했다. 어쩌면 새끼들의 출생을 하루 앞두고 그처럼 불행하게 눈을 감는단 말인가? 여덟마리의 새끼백조가 성공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였다. 그들놈은 천성적으로 나에 대한 공포같은것은 가지고 나오지 않은것 같았다.   그놈들은 껍질에서 나오자 마자 단잠에 든 나를 보게 된것이다. 모든 조류들처럼 그놈들도 세상에 나와 제일 처음으로 본 생명체를 어미로 생각하고 따르는것 같았다. 내가 손을 내밀면 그놈들은 주저없이 나의 손바닥우에 올라와 작은 부리로 나의 손가락을 쪼아주었다. 너무도 깜찍하고 여려보였다. 나는 만지기만 해도 그놈들이 사라져버릴것만 같아 힘주어 쥐지도 못하고 그냥 손바닥에 들고 다녔다.  나는 그놈들을 한마리 한마리 주어서 보드라운 수건을 밑에 깐 종이함에 넣은후 부엌에 닿은 벽쪽에다가 놓아주었다.  금방 까난 새끼백조들의 배에는 노른자위 같은 물질이 있어서 구태여 먹이를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후날이 문제였다. 나는 어떻게 새끼백조들의 먹이를 해결할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나는 진종일 일손이 잘 잡히지 않아 잠간 일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 새끼백조를 살펴보았다. 새끼백조들은 모두 편안해보였다. 어제보다 큰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종이상자우에 머리를 들이밀자 여덟마리의 새끼백조가 동시에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목에서는 작은 소리가 새여나왔고 눈길은 나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밤에 나는 종이상자를 나의 침대우에 올려놓았다. 나와 부엌에 닿인 벽 사이에서 새끼백조들은 온밤을 따듯하게 보낼수 있을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식사후, 나는 새끼백조들의  먹이를 준비하느라 바삐 돌아쳤다. 하루 동안의 고민을 거쳐 나는 먹이가 풍족하지 못한 목장에서 그래도 적합하다고 느껴지는 메뉴를 고안해냈는데 그게 바로 좁쌀죽에다가 우유를 섞어 먹이는것이였다. 거기다가 어분이나 뼈가루 같은것을 섞어주면 더 이상 좋을수 없겠지만 목장에서는 정말 구할수 없는것들이였다. 그대신 소나 양들에게 먹이는 소금을 가져다 약간 타주었다.  나는 먹이를 쟁반에 담아 조심스럽게 종이상자안에 넣어준후 옆에 앉아 그놈들이 먹이를 먹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놈들은 좀처럼 먹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아직 머리를 숙이고 먹이를 찾아 먹을줄을  모르는것 같았다. 그놈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높이 쳐들고있었기에 쟁반에 담겨진 먹이를 볼수 없었던것이다. 그놈들이 한번 또 한번 먹이가 담긴 쟁반을 밟고 지나가자 나는 갈수록 실망스러워 아예 종이상자곁을 떠나고말았다. 그날오후, 나는 종이상자옆에 다가서서 습관적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쟁반에 가득 담겨있던 먹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중 한마리는 그때까지도 머리를 숙이고 먹이를 쪼아댔다. 나는 얼마나 흥분되는지 몰랐다. 보통 야생의 날짐승을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것은 그놈들이 끝까지 먹이를 거절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나의 백조들은 용케도 그 난관을 넘었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이 밤에 추위를 탈가봐 종이상자를 계속 부엌에 닿아있는 벽밑의 침대머리에 놓아주었다. 매일아침, 그놈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용케도 종이상자를 넘어나와 나의 머리를 쪼아주었다. 그놈들은 나의 얼굴에서 귀나 코와 같이 불거져 나온 부분을 쫓기 좋아했다. 나는 아침마다 잠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이불로 머리를 가리웠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몸을 뒤적이지는 못했다.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새끼백조들을 깔수 있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은 알에서 까나와 처음으로 나를 본때문인지 평소에도 내가 곁에 나타나기만 하면 못내 흥분하는것 같았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서면 그놈들은 한무리의 강아지들마냥 나에게 모여들어 뭐라고 지절거렸다. 지어는 나의 발등에 뛰여올라 바지가랭이를 타고 바라오르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나는 애써 그놈들에게 쏠리는 사랑을 억제하면서 될수록이면 그놈들을 만지는 일 같은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몇번인가 그놈들을 만지는 과정에 사람들이 왜 부드러운 물체를 묘사할 때 “백조같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지를 알것 같았다. 백조의 털은 그만치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교하지 못할만큼 부드러웠던것이다. 나는 나의 백조들이 푸르른 하늘에 날라올라 저 멀리 남쪽세계로 려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들이 결국은 어느 동물원에 남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김생김이나 코에 난 반점 그리고 몸뚱이에 있는 다른 미세한 특점들로부터 완전히 그놈들을 분별해낼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곧 그 목장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전에 백조들을 어디에든지 안착시켜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백조들과 갈라질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깊이 하는것은 나에게 있어서나 백조들에게 있어서나 모두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한주일이 지나자 백조들은 원래의 한배나 커보였다. 해볕이 찬연하던 어느날 오전, 나는 그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싶었다. 문밖으로 나가기전 나는 호기심이 많은 세퍼드들이 백조들에게 끼칠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했다. 만약 세퍼드들이 마음 먹고 백조들에게 덮치지 않고 그냥 호기심으로 앞다리를 한번 휘두른다 해도  백조들의 다리는 쉽게 끊어질것이였다. 나는 종이상자를 들고 집에서 나갈 때 가죽채찍을 손에 드는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종이상자를 들고 문밖을 나서자 울안에 엎드려 볕쪼임을 하던 세퍼드들이 제법 신나했다. 그들은 모두 종이상자안에 무슨 먹이가 들어있는줄로 아는것 같았다. 먹이가 아니라도 꼭 자기들이 모르는 신비한 물체가 들어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 같았다. 세퍼드들은 평소에도 모든 미지의 세계에 짙은 호기심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종이상자를 땅에 내리워놓고 채찍을 든채 곁에 섰다.  새끼백조들이 경사져있는 종이상자에서 하나둘 기여나오자 세퍼드들속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나이 어린 두마리의 세퍼드가 선참으로 제일 앞에선 새끼백조에게   덮쳐들었다. 나는 크게 소리치며 채찍을 휘둘러 앞에선 세퍼드를 힘껏 내리쳤다. 세퍼드들이 처음으로 백조들에게 덮쳐들 때 반드시 깊은 기억을 남겨주어야 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의 금후의 안전을 위하여 나는 세퍼드들에게 미안한줄을 알면서도 독한 마음을 먹었다. 앞에서 다려오던 세퍼드는 너무도 아파 선자리에서 펄쩍펄쩍 올리뛰였다. 그 바람에 그놈의 뒤를 다라오던 놈들도 옆으로 비켜섰다. 세퍼드들은 모두 소가죽채찍의 위엄을 잘 알고있었다.  세퍼드들이 주방에서 고기를 훔쳐먹었거나 옷을 물어찢을 때면 친구는 소가죽채찍으로 그놈들을 단단히 훈계했던것이다. 내가 소가죽채찍을 사용한것은 그번이 처음이였다. 세퍼드들이 세상물정에 대한 료해는 실로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세퍼드들은 단번에 눈앞에 있는 작은 새들은 주인의것으로서 절대 침범할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것 같았다.  세퍼드들은 천천히 헤쳐져가 다시 울안에 엎드려 해볕을 쪼였다. 그 전반 과정에서 나이 든 개들이 침착성을 보였다. 그중에서 “검은 곰”은 시종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세퍼드들의 호기심을 말살시켜버린후 머리를 돌려 새끼백조들을 찾았다. 세퍼드가 달려올 때 제일 앞에 있던 새끼백조는 너무도 놀라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세퍼드들이 물러가자 그들은 집앞의 풀밭으로 몰려갔다. 그놈들은 부리로 작은 풀들을 쪼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먹이도 그들의 식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비타민이 들어간 푸른 잎 식물을 먹어야 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이 세퍼드를 보고 놀랄것이라 생각한 나의 추측이 빗나갔다는것이 인차 증명되였다. 새끼백조 한마리가무서움도 모르고 마당에 엎드려 볕쪼임을 하는 세퍼드를 향해 쫑드르르 달려간것이다. 세퍼드는 머리를 들어 새끼백조를 지켜보면서도 감히 일어나 쫓지는 못했다. 내가 휘두른 가죽채찍이 그놈의 호기심을 억제하는것 같았다. 새끼백조가 세퍼드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세퍼드는 코방울을 벌름거리면서 새끼백조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너무도 긴장해서 다시 채찍을 부여잡았다. 세퍼드는 엎드린채로 그 한마리만 냄새를 맡았다. 세퍼드는 호기심을 보이는가싶더니 인차 흥미를 잃은듯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새끼백조는 그야말로 세상 무서운것을 모르는듯 세퍼드의 다리를 밟고 올라 등을 딛고 섰다. 세퍼드의 등에 난 나른한 털때문에 새끼백조는 자꾸 발을 헛디디며 몸을 가누지못했지만 여전히 발볌발볌 세퍼드의 몸우에서 산책을 했다. 한참이나 그대로 새끼백조에게 몸을 맡기고있던 세퍼드가 갑자기 상가신듯 몸을 떨더니 벌떡 일어나 등에 있던 새끼백조를 떨구어버리고 풀더미곁으로 다가가 엎드렸다. 세퍼드의 등에서 굴러 떨어진 새끼백조는 다시 기여일어나 부리로 애기풀을 쫏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새끼백조들은 목장에서 제일 사나운 존재인 세퍼드들과 능히 우호적으로 지낼수 있었던것이다. 그후로부터 낮이면 새끼백조들은 목장부근의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놀았다. 만약 새끼백조들이 너무 멀리 가나싶으면 나는 세퍼드들을 시켜 몰아오게 했다. 세퍼드들은 과연 나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뛰여가 새끼백조들을 나의 옆으로 데려왔다. 새끼백조들은 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았다. 그놈들은 사나운 세퍼드들에게 엉뎅이라도 물릴가봐 무서운듯 되똥되똥 달려오면서 점차 힘이 자라나는 날개를 퍼덕이고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항은 할수 없는 그들이였다. 새끼백조들이 어떻게 불만스러워 하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위한것이였다. 광활한 초원우에서 모든 육식동물들은 통통하게 살이오른 그놈들을 보고 침을 세발씩이나 흘릴것이였다. 새끼백조들은 그렇게 목장에서 날이 어두울 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밤을 보냈다. 그놈들은 더 이상 나의 침대우에서 잘수 없었다. 나는 드디여 침대보를 깨끗이 씻을수 있게 되였다. 침대에보에서 나는 냄새는 그야말로 뭐라고 형용할수 없었다. 두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또 진에 가서 전화를 걸고 노트북에 충전을 했다. 충전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한 손님이 상점주인과 한담을 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들은 바로 무참히 죽어간 한쌍의 백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들은 백조를 튀해서 삶아먹었다고 한다. 백조고기는 큰 솥으로 세개나 됐는데 그 두사람의 친척, 친구들이 모여 옹근 이틀이나 먹었다고 했다. 백조의 껍질은 통채로 벗겨냈는데 매우 아름다왔다고 했다. 그자들은 겨울에 껍찔까지 붙어있는 그 털을 솜바지에 넣을것이였다. 그러면 능히 씨베리아의 찬바람도 막을수 있을것이였다. 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는 새끼백조들을 어디에 보낼가를 궁리했다. 료해한데 의하면 후룬베얼초원에는 그때까지 새끼백조를 수양할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부근에 있는 습지보호구역에는 그래도 새끼백조를 맡길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곳 사람들에게 새끼백조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가 근심될뿐이였다. 나는 시간이 날 때 도시로 들어가서 새끼백조의 수양을 두고 자문을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참으로 분망한 나날들이였다. 새끼백조들이 날마다 몰라보게 커갈수록 생각지 못했던 시끄러운 일들도 련속 생겨났다. 나는 늘 새끼백조들을 세기에 바빴다. 언제나 마리수가  채 차지 않았다. 나는 세퍼드들을 동원하여 새끼백조를 찾아오게 했다.  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세퍼드들이 찾아온 새끼백조까지 합쳐서 마리수가 차는것 같다가도  잠간 지나 다시 세여보면 또 모자라는것 같았다. 그런 현상이 자꾸 반복되자 세퍼드들도 흥미를 잃어가는지 전처럼 그렇게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새끼백조들도 하루에 몇번씩 세퍼드들에게 쫓기느라 피곤에 지쳐있었다. 목장에 있는 모든 세퍼드들이 나에게 신심을 잃게 되자 나는 직접 풀밭으로 가서 새끼백조들을 몰아왔다. 나의 근심은 필요없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새끼백조들에게 위험으로 되는것은 내가 근심하는 맹수도 아니요 교활한 초원의 여우도 아닌 까치였다. 목장에는 까치가 매우 많았는데 도무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바로 집부근에 서식했다. 금방 목장에 왔을 때 나는 늘 먹고 남은 밥을 그놈들에게 뿌려주었지만 그후 인차 그런 인심을 베풀고싶지 않아졌다. 그놈들은 천성적으로 좀도적습성이 있는것 같았다. 조금만 눈길을 다른데로 팔면 그놈들은 물건들을 훔쳐갔다. 내가 빨아서 널어놓은 셔츠의 단추도 그놈들이 싹 뜯어가버렸고  등산화의 신끈도 뽑아갔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이 옷단추를 어떻게 뜯었고 등산화에서 신끈은 어떻게 풀어냈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놈들은 또 세퍼드의 먹이그릇에 덮쳐들어 먹이를 훔쳐 먹기도 했다. 그 모양은 마치도 아프리카초원에 사는 흉악한 콘도르를 방불케 했다.  까치들에게는 한가지 무서운 애호가 있었는데 늘 피에 굶주려있는것이였다. 그들은 소만 보면 잔등에 내려 앉아 여기저기 뛰여다녔고 귀등이나 어깨의 주름이 간 피부를 쪼아댔다. 소는 그것을 향수하는것 같았다. 하기에 나는 까치들이 소의 몸뚱이에서 기생충을 잡아 먹는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놈들은 소의 몸뚱이에서 기생충만  잡아 먹는것이 아니였다. 그놈들은 소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가죽을 쪼아 상처까지 내는것이였다. 소는 사실 반응이 둔한 동물이였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가죽이 너무 두껍고 가죽밑의 신경도 풍부하지 못한 탓이였을것이다.  그놈들은 그렇게 소의 가죽을 짓찧은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먹었던것이다. 3, 4마리의 까치가 얼룩소의 잔등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무도 놀라 굳어졌다. 까치에 대한 좋은 인상이 삽시에 사라져버린것이다. 까치들때문에 난 소등의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았고 쉽게 감염이 되였다. 까치들은 기회만 있으면 아물어 붙기 시작하는 소등의 상처를 다시 짓찧어서 피를 빨아먹었다. 그놈들이 과연 내가 알고있던 까치란 말인가? 나는 그래도 그놈들을 리해하자고 자신을 달랬다. 초원에 사는 까치들은 생활이 어렵기에 생존을 휘해서는 그처럼 흉악하게 변할수도 있는것이였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놈들이 새끼백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견했을 때 세마리의 까치가 새끼백조 한마리를 포위하고는 참혹하게 물어 뜯는것이였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까치들도 놀랐는지 새끼백조를 던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멀리로는 날아가지 않고  자칫 입에 들어올번 했던 새끼백조를 호시탐탐 노려보는것이였다.  나는 새끼백조를 안아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새끼백조는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있었는데 날개에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나는 그쯤한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까치들을 절대 방심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 받침대가 있는 새총을 꺼내왔다. 그때까지도 그 세마리의 까치는 멀리 가지 않고있었다. 나는 받침대에 붙어있는 탄창에서 탄알을 꺼내여 고무주머니에 넣고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새들이 놀라 공중에 날아오를 때 새총을 당겨 명중만 하면 되는것이였다.  나는 첫번에 까치 한마리를 명중했다. 내 사격술이 좋은것보다 까치와의 거리가 가까왔던것이다. 내가 곁으로 다가갔을 때까지도 그놈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를 발견한 그놈은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몸부림을 쳤다. 나는 잽싸게 손을 내밀어 그놈을 붙잡았다. 다른 두마리는 눈 깜빡할 새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나는 사실 새총을 쏠 때 손에 힘을 크게 주지 않았다. 까치를 쏴죽이고싶지는 않았던것이다. 하기에 탄알은 그저 까치의 몸에 맞았를뿐 큰 상처는 내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끈으로 까치다리를 묶어서 바자에 달아매놓았다. 그러자 까치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댔다. 십여마리의 까치가 그곳을 향해 낮게 날아오더니 풀밭에 내려앉았다. 잠간후 그놈들은 한결같이 날아올라 다시 묶이워 있는 그놈을 향해 몰려들었다. 나는 그놈들을 향해 새총을 쏘았다. 탄알은 그들 부근의 땅에 떨어져내리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까치들은 다시 위험을 느꼈던지 탄알이 닿치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나는 바자에 매달려 기진맥진해진 까치를 풀어주었다. 그놈은 드디여 살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던지 다른 놈들은 돌아볼 새도 없이 멀리멀리로 날아갔다. 그놈에 대한 나의 징벌이 과연 효험이 있는듯싶었다. 그후로부터 까치들은 다시 목장에 나타나지 못했다. 간혹 한두마리가 목장부근에서 먹이를 찾아헤매다가도 나만 보면 도망쳐버렸다. 나는 다시 아침에 모래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큰 백조들이 불행을 당하던 그날 모래산에 던지고온 망원경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망원경을 주어들고 우에 묻은 모래를 닦은후 눈앞에 가져다댔다. 나는 망원경을 돌다리쪽으로 돌렸다. 습관적이였다. 그 시각 나는 망원경에서 백조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볼수 없다는것을 너무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백조들이 그곳에다 둥지를 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참히 죽어간 한쌍의 백조가 사람과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교각에 둥지를 틀었다는것은 이미 기적인것이였다. 만약 다른 백조가 또 그곳에다 둥지를 틀었다면 그것은 이미 기적을 넘어선 평범한 사연으로 될것이였다. 한달쯤 지난 어느 맑은 아침, 나는 평소처럼 세퍼드들을 데리고 모래산에 올랐다. 나는 망원경을 눈앞에 가져다 대고 망망한 초원을 둘러보았다. 그 광활함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의 친구가 말했듯이 초원은 그야말로 신심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줄수있을것만 같았다. 나의 곁에 서있던 세퍼드가 갑자기 불안하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몇달 동안 나는 세퍼드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신체언어와 소리에 대하여 많은 료해를 하고있었다. 지어는 그들의 눈길만 보아도 그놈들이 주방에 들어가 고기를 훔쳐 먹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짧으면서도 급한 소리는 그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나는 망원경을 내리우고 곁에 있는 세퍼드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있었다. 멀리 지평선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보통 그러한 행동을 취했다. 그들의 눈길을 따라 바라보니 그곳은 바로 집이 있는 방향이였다. 찬연한 해빛속이지만 웬지 집 륜곽이 희미하게 보여왔다. 나는 인차 검은 연기가 집을 둘러싸고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나는듯이 모래산을 달려내려갔다. 금방 먹이를 먹고 돌아가는 늙은 오소리가 나의 앞을 스쳐지나다가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그놈은 짧다란 다리를 달싹이며 급급히 굴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야  오소리도 그렇게 빨리 달릴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미친듯이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연기가 입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인차 밖으로 나와 헝겊쪼박을 찾아서 물에 적셨다가 얼굴을 가리웠다.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연기가 밖으로 밀려나간후에야 나는 불이 난것이 아니라 젖은 양똥이 타지 않고 부엌으로 연기만 몰려나온것임을 알게 되였다. 한참 지나자 연기는 집안에서 말끔히 빠져나갔다. 나는 얼굴에 가리웠던 잡냄새가 진동하는 젖은 헝겊을 벗고 긴 숨을 내쉬였다. 그때에야 나는 나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져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모든것이 끝난 뒤였다. 백조들이 모두 방구석에 쓰러져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연기를 피해보려고 모진 애를 쓴것 같았다. 연기가 방으로 쓸어들 때 그들은 공포에 떨면서 한걸음한걸음 벽구석으로 물러서서 한덩이로 된듯싶었다. 연기가 점점 짙어지면서 공기가 희박해지자 그들은 별수 없이 다른 백조의 몸뚱이를 밟고 서서 머리를 우로 쳐들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그들의 불쌍한 생명을 구해줄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들이 두려움에 차서 구석으로 몰려들지 않고 용감하게 밖으로 달려나갔다면 신선한 공기는 그들의 생명을 구해줄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덮쳐든 생명의 위험앞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던것이다. 나는 백조들의 시체를 종이상자에 주어담아 밖으로 내간후 한마리한마리 땅에 꺼내놓았다. 그제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살아날수 있지 않을가 하는 바램에서였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조들의 주둥이에 입을 대고 인공호흡까지 시켰다. 하지만 주둥이가 내 입에서 떨어지는 찰나 통통하게 불어올랐던 배가 후즐근하게 줄어들었다. 그놈들의 몸뚱이는 이미 생명과 아득하게 멀리 떨어져있었던것이다. 나는 “돌이킬수 없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똑똑하게 알것만 같았다. 그 며칠, 나는 백조들을 데리고 물가에 가보려고 계획했었지만 시종 시간을 탈수 없었다. 하여 그들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물통보다 더 넓은 수면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을 목장남쪽의 습기가 없는 풀밭에 묻어주었다. 세퍼드나 맹수들이 파낼가봐 근심되여 구덩이를 매우 깊이 팠다. 나는 그해 늦여름에 친구네 목장을 떠나왔다. 이듬해봄, 친구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와 목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늙은 오소리가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고 굴옆에서 얼어죽었다는것이였다. 기나긴 겨울을 나기에 그놈은 너무도 늙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마리의 암세퍼드가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아홉마리라고 했다.  
542    참 좋은 세상~~~ 댓글:  조회:2306  추천:1  2013-12-13
하하하하~ 참 좋은 세상! 내 1분사이에 한어로 시를 막 쓰게 됐씀다. 보갰씀다? ************************* 慢长的伤 漫步在黑夜园 满眼的成熟 摘一个狠咬一口 满嘴的慢长 那慢长的苦水在我的肠胃化成了血 流进了我的心 ***************************** 내 요거 제까닥 조선어로 만들게 예. 기나긴 상처 컴컴한 밤정원을 산책하네 눈에는 성숙함이 가득하고 하나를 따서 꾹 하고 씹으니  입에 가득 물리는 길다람  끝없는 고통 나의 위에서 피로 변하여 심장에 흘러드노라. ************************* ㅋㅋㅋㅋ~ 어디다 발표할가? 운수 좋으면 무슨 상도 뚝딱 받을지 멀라~
541    매트리스우에서 자는 곰*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134  추천:0  2013-12-11
“깨여나라, 아야…” 소리가 들려온지 한참 되는것 같았다. 아야는 끝내 무거운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침대머리에 서서 아야를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의 머리칼은 창밖에서 비쳐들어오는 해빛에 반사되여 눈부셨다. “왜 그러세요?” 아야는 해빛이 찔러대는 두눈을 연신 비비면서 물었다.아직도 1분쯤 지나야 아야는 완전히 잠에서 깨여날수 있을것 같았다. “얼른 일어나라니까. 오늘 너를 데리고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마.” 할아바지는 말씀하면서 집을 나섰다. 문은 여전히 빠금히 열려져있었다. 해빛은 둑을 넘어선 홍수마냥 집안에 흘러들어 아야를 삼켜버렸다.  “좋은 구경을 시켜준다구요?” 아야는 잠나라에서 펄쩍 뛰여나왔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야말로 유혹적이였다. 아야는 속도를 내서 옷을 주어 입은후 신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어깨가 원목으로 된 문가에 맞혔다. 피부에 소나무의 거친 껍질흔적이 남았을것이라고 아야는 생각했다.  여름이 시작돼서부터 할아버지는 벌써 여러번이나 아야를 데리고 어디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말씀했었다. 한번은 비가 멎은후의 아침이였다. 공기습도가 100프로에 달하는지 걸을라치면 수분이 얼굴에 물방울로 매쳐 흘러내렸다. 아야는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는데 물에 빠졌다가 금방 구원되여 강변에 올라온 강아지처럼 연신 얼굴의 물방울을 훔쳤다. 그날 아침, 아야와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을 걷기만 했다. 아야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걸을 맥이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우치던 아야가 그만 할아버지의 몸에 부딪쳤다. 아야는 할아버지와 함께 인차 아름드리 자작나무뒤에 숨었다. 아야는 조심스럽게 숨소리마저 죽였다. 오래동안 삼림에서 살아온 아야는 어떤 때에 소리를 내야 하는지 그리고 큰 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잘 알고있었으며 또 어떤 때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지를 짐작하고있었다.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그들이 서있는 언덕아래의 작은 물웅뎅이였다. 웅뎅이옆에는 이미 이삭이 패인 부들이 가득 했고 좁은 수면에는 부평초가 두텁게 떠있었다.  빠알간 잠자리들이 지난밤의 추위에서 아직 헤여나오지 못했던지 수면우에서 부자연스럽게 빙빙 돌아쳤다. 아야는 그곳에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것이 보이지 않았다. 수면에는 수생식물이 너무 많아 많은 산소와 자양분이 필요했다. 물속에는 물고기도 별로 없었다. 아야는 웬 일이냐는듯 연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물웅뎅이를 지켜보고 계셨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어리지 않았는데 지어  땀방울도 볼수 없었다. 긴장한듯 뻣뻣해진 피부밑에는 관골만 불뚝 살아나보일뿐이였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가는 미소가 피여올랐다. 아야도 분명 물결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아야도 할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언덕아래에 있는 물웅뎅이를 바라보았다. 아야는 처음에 그것을 물가운데 솟아난 작은 언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 “언덕”이 움직였다. 잠간후, 파아란 수초가 섞인 물이 그 “언덕”에서 흘러내렸다. 먼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것은 오래동안 물속에서 부패된것 같은 나무토막이였는데 우에 많은 가지들이 남아있었다.  그 뒤를 따라 산짐승의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 머리는 놀랍게 컸는데 앞부분에 괴상하게 생긴 코가 붙어있었다. 그야말로 너무도 못 생긴 동물이였다. 그놈이 물웅뎅이에서 완전히 몸을 들어내자 그 모양이 작은 섬을 방불케 했다. 어림짐작으로도 그놈의 길이는 3메터에 가까왔고 키는 2메터를 접근할것 같았다. 아야로서는 종래로 본적이 없는 커다란 체대의 동물이였다. 큰 코밑에 있는 입술은 연신 푸들거리고있었는데 입귀로는 파아란 수초가 새여나오고있었다. 커다란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작은 두눈은 툭 튀여나왔는데 할아버지와 아야가 있는 곳을 망연하게 바라보고있었다. 물에 젖은 갈색 나는 털은 해빛에 반사되여 반짝반짝 빛났다. 그놈의 어깨부근은 불쑥 튀여나와 있었는데 단봉락타의 육봉 같았다. “엘크로구나.”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씀했다. 어쩌면 아야가 놀라서 소리를 쳐 엘크를 쫓을것 같아서 먼저 말해 안심을 시키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아야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그런 정황에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하면 할아버지와 같은 년장자들이나 가능할지 모를 일이였다. 사실 아야도 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른것은 아니였다. 그때 아야는 아침이슬에 흠뻑 젖은 신을 벗었다가 다시 신으려고 했던것이다. 젖은 신속에서 발이 퍼져 여간만  불편한것이 아니였다. 신을 벗어들고 무엇인가에 발을 올려 놓으려는 순간 아야는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넘어지면서 저도 몰래 큰 소리를 질러 엘크를 놀래웠던것이다. 엘크는 침착하게 몸을 돌리더니 놀라운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도 매생이를 타는 재간이 좋은 사람이 푸른 수면을 가르고 질주를 하는것만 같았다. 엘크는 축축하게 젖은 흙언덕으로 올라가더니 인차 무성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곳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삼림이였지만 엘크가 얼마나 행동이 잽쌌던지 아야는 나무가지 흔들리는것조차 본것 같지 않았다. 엘크가 언덕에 오르자 물웅뎅이에 커다란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가 인차 떠다니는 부평초에 의해 메워졌다. 그날아침, 할아버지는 아야를 나무람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바로 아야에게 엘크와 같은 거대한 체구의 산짐승을구경시키기 위한것이였다. 할아버지는 늘 지금 보지 않으면 후에는 볼 기회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오늘은 무엇을 구경시키려는것일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좋은것들이 점점 적어진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앞에서 걸음을 옮기셨다. 그뒤를 따르는 아야는 할아버지의 등에서 땀이 흘러내려 점점 더 큰 흔적을 남겨놓는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발밑에는 길이 아니라 뽑혀진 나무뿌리며 꺾어진 나무가지며 날이 선 돌쪼박들이 널려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시종 침착했다.  아야가 되려 허둥지둥 발걸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돌멩이를 밟아 휘청이지 않으면 나무가지에 옷섶이 걸려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삼림에서 오래동안 말라온 나무가지들은 아야의 몸에 맞혀 신음같은 소리를 내며 부러져내렸다. 그때마다 아야는 흠칫흠칫 놀라군 했다. 그리고 두툼한 락엽에 몸을 숨기고있던 쥐들이 뛰쳐나올 때면 아야는 당금 심장이 멎는듯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랐다. 무서워서 조금도 게을리 할수 없었던것이다. 처음에 할아버지와 함께 삼림에 들어갔을 때 아야는 너무도 힘들어 휴식을 하자고 연신 할아버지를 졸랐었다. “너 참, 몸이 허약하구나.” 할아버지가 근심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말씀했다. 삼림이 끝나고 완만한 비탈이 나타났다. 아야는 무성한 삼림 한가운데에 그 같은 비탈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왔다. 파아란 풀은 융단처럼 비탈로부터 저쪽면의 골짜기에까지 펼쳐져있었다.  아야는 미끄러운 얼음우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강변에 올라온 새끼사슴처럼 파아란 풀로 덮인 언덕을 보고 잠시 어쩔바를 몰라했다. 아야는 할아버지를 따라 록색언덕에 올라섰다. 파아란 꿈나라에 들어선듯한 느낌이였다. 그곳은 해볕이 따스한 바람 한점 불지 않는 곳이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고추잠자리가 모여있었다. 그놈들은 삼림에서 흐르는 일종의 기류에 좌우지되는듯 보이지 않는 중심을 에워싸고 배회하고있었다. “조심해라, 물을 밟지 않게.” 앞에서 걸음을 재우치던 할아버지가 귀띔했다. 할아버지는 아야의 기분이 붕 떠있다는것을 진작 보아낸듯싶었다. 아야는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하던 선선한 느낌이 운동화속의 발을 감싸는듯싶었다. 그들은 이미 록색으로 뒤덮인 골짜기밑에 도달해있었다. 여름내내 내린 비물이 모두 그곳에 고인듯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의 발검음소리에 놀란 청개구리가 물속에서 펄쩍 뛰여올랐다. 할아버지는 풀들에 가리워진 오솔길에 올라섰다. 하지만 아야는 그 길로 걷기 싫어 고의적으로 곁에 고여있는 물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더 많은 청개구리들이 란시라도 터진듯 풀쩍풀쩍 뛰여오르더니 그 맵시로 더 깊은 물속에 사라졌다. 아야의 바지에는 가루같은 부들의 노르스름한 씨들이 들어붙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돌려 아야를 바라보았지만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았다. 두개의 작은산 사이에 있는 습지를 걸어지난 그들은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늘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래동안 산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특유의 발걸음이였다. 할아버지는 선택성이 있게 발을 옮겨디뎌 될수록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땅에 널려있는 돌멩이나 바싹 마른 나무가지를 용케 지나서 맞춤한 곳에 발을 내려놓는 할아버지의 발밑에서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야는 할아버지처럼 걸음을 옮기자면 쉽지 않지만 기어코 그 방법을 배워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들은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갑자기 퍼더덕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아야는 지뢰라도 밟은듯 깜짝 놀라 두눈을 꼭 감았다. 온몸을 으스스 떨리게 하는 찬 기운이 아야의 발에서부터 머리쪽으로 스멀스멀 기여올랐다. 아야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듯싶었다. 아야가 두눈을 떴을 때 부산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새는 벌써 멀리로 가서 두어번 원을 그리더니 습지곁에 있는 풀밭에 내려앉았다. 그놈은 메추리였다. 아야는 자기의 행동이 저으기 만족되였다.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지난번처럼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자신을 통제했던것이다.  메추리와 같은 새들은 몸뚱이가 무겁기때문에 땅에서 날아오를 때 반드시 안간힘을 다하여 날개짓을 해야했다. 하기에 날개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던것이다. 그놈들은 또 평소에는 죽은듯이 나무에 숨어있다가도 사람들이 다가가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야는 그놈이 방금 할아버지가 곁에 갔을 때는 왜 날아오르지 않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뒤에서 그렇게 큰 동정이 났지만 할아버지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묵묵히 걸음만 재우쳤다. 아야의 발걸음도 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신에 물이 들어가서 자꾸 꿀럭꿀럭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잠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아야도 멈추어섰다. 아야는 그것이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산길에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그런 습관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임의의 마른 나무가지 하나로도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알아낼수 있을것이라고 아야는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돌려 아야를 바라보았지만 얼굴에는 별 다른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진작 아야의 눈길에서 답안을 찾은것 같았다. 그에 할아버지도 내심으로 만족하는것 같았다. 조용한 삼림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눈길로도 얼마든지 뜻을 전달할수 있었던것이다. 아야도 못내 흥분되였다. 그도 진작 그런 방법으로 할아버지와 교류를 해보고싶었던것이다. 아야는 자기도 차츰 성숙되여 가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뒤를 바싹따라 “좋은 물건”이 있는 그곳에 거의 도착하고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큰 동정을 내지 않았다.  태양은 이미 두어발 떠오른 상태였다. 해빛은 나무가지사이를 뚫고 땅을 비추었고 습기는 나무가지사이를 지나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무지개같이 황홀한 색채를 련발했다. 아야는 삼림속의 고요함이 좋았다. 아야는 저 멀리 삼림의 어느 곳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쫓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높은 소리는 아니였지만 삼림이라 멀리까지 울렸던것이다. 바람이 불어와 나무꼭대기에 난 가지들을 어루쓸어 싸락싸락하는 소리를 냈다. 삼림에는 또 작은 새들의 합창도 있었다. 아야는 근본 그 작은 새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구성진 노래소리는 아야로 하여금 어느 성대한 모임에 참가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야는 전에 가끔 집뒤에 있는 자작나무숲에 들어가 새소리를 들은적이있었다. 날이 희붐하게 밝아올 때의 새소리가 제일 구성졌다. 아야는 새들의 노래소리를 록음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록음된 새소리는 현장에서 듣기보다 못했다. 그뒤로부터 아야는 새소리를 다시 록음하지 않았다. 참, 무슨 헛생각이람… 아야는 잡생각을 굴리는 자신을 나무랐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무엇인가에 부딪쳐 소리를 낼수 있기때문이였다. 아야는 할아버지와 함께 언덕우에 올라섰다. 큰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며 쭉쭉 올리 뻗어있었는데 아야로 하여금 연신 감탄을 터치게 했다.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소나무들은 자기옆에 있는 나무들도 해볕을 충족하게 받게 하기 위해 우만 바라보고 자란다고 알려주었다.   아야는 소나무에 응고되여있는 송진 한쪼박을 뜯어내서 입에 넣었다. 씁쓰레한 느낌이 바짝 마른 아야의 입안에서 감돌았다. 삼림에 사는 애들은 모두 아야처럼 송진을 껌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는 물속에서 걷는듯 걸음을 늦게 옮겼다. 아야는 가끔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나 뒤를 돌아보았다. 제일 처음 할아버지와 함께 삼림으로 들어왔을 때 아야는 나이가 매우 어렸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보고 매우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삼림으로 들어오는 차수가 잦아질수록 아야는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놓는가를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삼림속의 모든것을 놀래우지 말자고 생각했던것이다. 아야는 조용하게 삼림에 서있으면 자기도 삼림의 일부분으로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한그루의 나무로 된듯했던것이다.   어느한번, 아야는 의식적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나무옆에 꼼짝 않고 서있은적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먼저 나무옆에 다가가셨던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숲에 사슴뿌리 한쌍이 나타났다. 아야는 호기심이 동해 사숨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간 지나 사슴머리가 나타났다. 이어 길다란 목이며 미츨한 몸뚱이도 보였다. 털은 해빛에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사슴은 머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먹으며 다가왔다. 얼마후 머리를 쳐든 사슴은 나무옆에 꼿꼿이 서있는 할아버지와 아야를 발견한듯싶었다. 하지만 사슴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어리지 않았다. 아야는 종래로 그처럼 부드러운 눈길을 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까아만 눈망울에는 티끌 한점 묻지 않은것 같았다. 사슴은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로 아야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사슴은 아야와 할아버지를 삼림의 일부분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잠간후 사슴은 몸을 돌려 삼림심처로 들어갔다. 아야는 갑자기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높뛰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도무지 자기의 눈을 믿을수 없었던것이다. “네가 노력만 한다면 영원히 삼림의 일부분으로 될수 있단다.” 할아버지는 아야를 보고 말씀하시면서 의미심장하게 앞쪽을 가리켰다. 아야는 “좋은 물건”이 앞에 있다고 믿었다. 긴장해서 호흡마저 가빠졌다. 하지만 아야는 더 힘을 주어 숨소리를 눌렀다. 그 바람에 얼굴마저 빨개졌다. 아야는 끝내 할아버지의 옆에 붙어섰다. 언덕저쪽에는 나무가 몇그루밖에 서있지 않는 넓고 평탄한 풀밭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산아래의 모든것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파아란 풀과는 어울리지 않는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져있었다. 재료때문이였던지 매트리스는 해빛에 반사되여 눈이 부셨다. 아야는 심산속에서 그같이 현대적인 매트리스를 본다는게 놀라왔다. 설마 저 매트리스를 “좋은 물건”이라고 했을가? 몇년전,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떨이지지 않은 곳에 리조트가 있었다는것을 아야는 지금도 기억하고있었다. 리조트는  경영부진으로 하여 인차 문을 닫았었다. 호기심으로 왔던 유람객들은 사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는 산중생활에 적응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때 누군가 리조트에서 쓰던 매트리스를 이곳에 던져버린게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저 매트리스가 그렇게 좋은 물건으로 생각되셨을가? 아야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판단력에 이의를 느끼게 되였다. 아야는 머리를 돌려 할아버지를 훔쳐보았다. 그때 할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아야옆에 서서 두눈을 쪼프리고 언덕아래의 아늑한 풀밭을 바라보셨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무엇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삼림에 대하여 아는것이 매우 많았다.  아야가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첫 겨울의 큰 눈이 내리던 그날밤, 아야는 난로가 뿜어내는 열기에 취해 혼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등잔불밑에서 사슴뿔을 다듬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손에 들었던 사슴뿔을 상우에 올려놓았다. 사슴뿔에는 어미사슴이 새끼사슴에게 젖을 먹이는 륜곽이 절반쯤 조각되여있었다. 할아버지는 두눈을 쪼프리고 미동도 없이 앉아서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돌려 아야에게 눈길을 돌렸다.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에는 목적을 달성한데서 오는 만족감 같은것이 어려있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눈길에서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싶었다. 할아버지는 등잔심지를 돋구어놓고 창가로 다가가서는 아야에게 다가오라고 눈짓을 했다. 아야는 창문에 한벌 얼어붙은 성에를 손가락으로 파서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고요한 달빛아래에서 눈덮인 삼림은 그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로씨야황야에서 제일 아스라니 멀어져있는 동화를 보는것 같았다. 두마리의 예쁜 여우가 밖에 서있었다. 그중 한마리가 깜찍한 머리를 돌려 창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낙언을 실현했던것이다. 아야가 산에 들어오기전에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여우를 구경시켜주겠다고 말씀했던것이다. 아야는 정말 타는듯한 붉은 털을 가진 여우를 보고싶었었다. 겨울을 맞은 여우털은 예쁘고 두터웠고 굵직한 여우꼬리는 가볍게 한들거렸다. 여우의 몸은 고동색으로 보였는데   달빛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그 시각, 그놈들은 먹이를 찾으러 집앞에 나타났던것이다. 아야가 여우를 구경하러 삼림으로 가고싶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여우 구경을 왜 삼림속에 가서 하려는거니?” 하고 되물었었다. 그날밤부터 할아버지는 먹고 남은 밥이나 반찬을 마당에 있는 큰 나무아래에 뿌려놓았다. 할아버지는 그놈들이 꼭 먹이를 찾아 마당에 올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삼림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손금 보듯 알고있었던것이다. 아야는 얼어붙은듯 꼿꼿이 서서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무엇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놈은 엄청나게 큰 몸뚱이를 가진 동물이였다. 곰이다! 아야는 심장이 당금 튀여나올것만 같이 긴장해졌다.  식물이 풍부한 이 계절에 곰은 삼림속에 있는 모든 먹이를 배에 집어넣고 그것들을 지방으로 만들려는것 같았다.  그놈은 흔들흔들 삼림을 벗어나더니 여유작작 아야네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을 내놓고 삼림에는 더 이상 곰의 상대가 없었다.  사냥군이라는 직업도 차츰 인류사회에서 사라져가고있었다. 하기에 그놈은 “천당”에서 사는거나 다름없었다. 아야는 산처럼 큰 몸뚱이의 야수를 바라보면서 공포로 하여 온몸이 오그라드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그놈이 매트리스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것은 여간만 흥미롭지 않았다. 곰은 매트리스를 보고도 생소한 물건을 접촉할 때 보이는 조심성 같은것은 진작 팽개친듯싶었다. 매트리스곁으로 다가간 곰은 잠간 걸음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어 굵은 목을 흔들면서 코방울을 벌름거려 주변의 공기냄새를 맡는것 같았다.  아야는 호흡을 멈추고 손가락 하나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으로 입안이 몹시 말라있었다. 아야는 힘껏 침을 모아 손가락을 적신후 입에서 뽑아 눈앞으로 가져왔다.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려는것이였다. 하지만 방향이 가려지기전에 손가락이 선뜩 해나면서 약간 묻어있던 침을 몰아가버려 도대체 어느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인지 가려낼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가락에 침을 묻쳐 바람방향을 알아내는 방법을 아야에게 배워준지 오래지 않았다.  곰은 자기의 후각을 완전히 믿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놈은 갑자기 뒤다리 두개에 몸을 의지하여 섰다.  가슴에 있는 둥근 달 모양의 하얀 털이 들어났다. 곰들은 간혹 그렇게 선 자세로 사냥물을 관찰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 자세는 결코 곰들이 마음대로 취할수 있는그런 자세는 아니였다. 그놈은 몇초간 그렇게 선자세를 취하다가 앞발을 매트리스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멀리 떨어져있는 아야도 곰이 매트리스에 떨어져 내릴 때 나던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곰은 그 동작을 련속 세번이나 반복했다. 아야가 매트리스속의 용수철이 곰의 그같은 충격을 받아낼수 있을가 근심하고있을 때 곰이 매트리스변두리에 앞발을 걸치더니 차츰 매트리스우로 기여올라갔다. 잠간후 곰은 완전히 매트리스우에 올라가 엎드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아야는 할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그곳에 온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할아버지는 꼭 먼저 그곳에 와서 미트리스우에서 자는 곰을 관찰하기 맞춤한 지점을 선택한것이 분명했다. 곰은 찌는듯이 내리 쬐이는 해볕을 가리우기 위해 왼쪽앞다리로 눈앞을 가리우고있었는데 그 자세는 모래사장에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는 피서객을 방불케 했다.     자는듯 움직이지 않던 곰이 갑자기 분노해서 오른쪽앞다리를 번쩍 들어 마구 휘둘렀다. 곰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것 같았다.  아야는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서있는다는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는 신체중심을 왼발에 실으려고 시도했다. 그런 방법으로 한쪽발이나마 쉬워보려는것이였다. 하지만 정말 신체의 중심이 왼쪽발에 모두 옮겨가는 순간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야가 딛고있던 마른 나무가지가 우지끈 하고 부러졌던것이다. 아야는 너무도 놀라 숨마저 멎는것 같았다. 곰도 놀라 머리를 쳐들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삼림속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매트리스우에서 자고싶은 흥미가 없어진 모양이였다. 아야가 머리를 돌렸을 때 할아버지는 오던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아야는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 큰 소리를 내게 된것을 매우 후회했다. 자기가 정말 있을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곰이 갑자기 그곳을 떠난것을 두고 아무 반응도 없었다. 어쩌면 곰의 그 표현이 빨리 끝나기를 은근히 기다린것 같기까지 했다. 귀로에 선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때는 정오라 태양은 머리우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무성한 나무가지들이 해볕을 가리워주어 그렇게 무덥지는 않았다. 삼림은 너무 고요해서 새들의 노래소리조차 들을수 없었다. 다만 나무가지를 뚫고 내리는 해빛이 길에 얼룩덜룩 그림자를 던져줄뿐이였다. 길에서 습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등에 돋았던 땀이 차츰 마르고 륜곽이 분명한 가루로 된 땀흔적이 남는것을  발견했다. 매번 삼림에 들어올 때마다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 어쩌면 그것은 여름날에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반드시 겪어야 할 규칙 같은것인지도 모를 일이였다. 할아버지는 그런 행동으로 아야에게 삼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주려고 한것 같았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제일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랐다. 나무집이 멀리에서 보여왔다.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어깨에 멨던 물통을 내리워 아야에게 넘겨주었다. 아야는 물통덮개를 탈아열고 할아버지의 체온때문에 미지근해진 물을 몇모금 마셨다. 아야는 이미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군용물통을 다시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도 물통을 받아 한모금 마셨다. 그것은 아야와 할아버지의 휴식이였다. 그 습관은 이미 몸에 배여있었다. 번마다 산길을 걸을 때면 할아버지는 적당한 지점을 찾아서 한참씩 휴식을 했다. 할아버지는 두눈을 쪼프리고 하늘가로 펼쳐진 무연한 삼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군했다. 그곳에서는 지평선을 볼수 없었다. 아야가 오기전, 할아버지는 그 삼림에서 홀로 살았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망망한 삼림은 쏴쏴 파도소리를 냈다. 수많은 락엽수들이 바람에 파도를 타고있었다. 대면적의 삼림은 언제나 사람들의 눈으로는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바람에 설레이고있었다. 그것은 푸른 삼림의 호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삼림은 자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 그 곰말이예요…” 아야가 잠간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죠, 그렇죠?” 할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물통을 다시 어깨에 멨다. 그들은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산을 내리는것은 오르는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아야였다. 아야는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뒤로 한채 걸음을 옮겼다. 아야는 어떤 자세로 산을 내려가야 쉽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처음에 아야는 흥에 겨워 소리치며 달려내려가 풀밭에 쓰러졌었다. 풀이 부드러웠기에 아야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번 경험을 통하여 아야는 산을 내릴 때는 몸을 뒤로 하거나 반쯤 옆으로 돌리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디뎌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거의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그들이 울안을 나갈 때 해빛은 아직 나무가지를 넘어와 울안을 비추지 못하고있었다. 한번 다녀왔던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걸음은 전날보다 빨랐다. 그들의 몸을 스치는 매 한그루의 식물은 모두 작은 물땅크를 방불케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될수록 식물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은 사실 위험이 도사리고있는 지대이기도 했다. 나무가지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동시에 떨어져 내리면 그야말로 작은 못이 터져내리는것과 같은 파괴력이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나무들이 빼곡한 삼림에서 걸을 때 그놈들을 다치지 않는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가 삼림을 벗어났을 때는 옷이 몽땅 젖은 뒤였다. 만약 그들이 좀만 후에 삼림에 들어섰다면 이슬이 말라서 그 정도는 되지 않았을것이다. 태양이 높이 솟아올랐다.  걸음을 재우치느라 지쳐버린 그들은 마른 나무가지를 찾아 앉아 휴식을 하면서 이슬에 젖은 옷을 말리웠다. 할아버지가 물통을 벗어서 아야에게 넘겨주었다. 아야는 물 몇모금을 마신후 다시 할아버지에게 물통을 돌려주었다. 할아버지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태양이 높이 솟아오름에 따라 젖었던 옷도 차츰 말라드는것 같았다. 아야는 옷에서 수증기가 증발하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옷을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할아버지의 옷에서 수증기가 빠져나가는것이 가물가물 보였다. 이슬에 젖은 깃털을 다 말리웠던지 새들도 차츰 삼림에서 날아예기 시작했다. 새들마다 자기의 독특한 목소리로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삼림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처럼 생동한 새들의 노래를 들을수 없을것이다. 그야말로 몇백가지 새들의 노래의 하모니라고 할수 있었다. 애들의 휘파람소리 같은것도 있었고 나무몽둥이로 무엇을 치는것 같은 소리도 있었으며 들고양이가 놀라서 우짖는것 같은 소리도 있었다. 그런 비슷한 소리외에 듣기만 해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릴것 같이 시원한 소리도 있었다. 아야는 만약 삼림에 새들의 소리가 없다면 묘지처럼 적막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야는 새들의 노래속에서 처음 듣는 생소한 소리만 골라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만약 정말 생소한 소리를 가려낸다면 신대륙을 발견한것처럼 기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 생소한 소리는 언제나 수많은 새들의 노래에 파묻겨 제대로 가려내기 힘들었다. 아야는 삼림에서 노래하는 그 새들을 영원히 보지 못할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래도 아야는 생소한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차츰 그 노래소리는 바위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샘물소리처럼 똑똑해지는듯싶었다. 아야는 그 노래소리를 깊이깊이 머리속에 간직했다. 그해여름, 아야는 세가지의 부동한 새소리를 새롭게 기억하게 되였다. 아야는 가끔 자기에게 절대 새소리에 속히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느날아침, 아야는 굉장하게 높은 새소리에 놀라 깨여난적이 있었다. 아야는 근 한시간이나 갈대밭을 헤집으면서 대관절 얼마나 큰 새이기에 그같이 높은 소리를 낼수 있는가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대밭에 숨어서 그같이 큰 소리로 우짖는 작은 새 한마리를 보았을 때 아야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자기의 눈마저 의심되였다. 아야는 꾀꼬리소리를 제일 좋아했다. 꾀꼬리는 나무집앞에 있는 관목림에 둥지를 틀었다. 둥지는 나무잎과 여러가지 섬유소로 지어졌는데 닭알보다도 더 작았다. 금방 부화된 새끼꾀꼬리는 콩알만큼밖에 되지 않았다. 아야는 새끼꾀꼬리가 부화되여 둥지를 떠나기까지 12일이 걸린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야는 꾀꼬리의 청아한 노래소리와 함께 잠을 깨군 했다.  꾀꼬리들이 나무집앞에 둥지를 트는것은 그곳이 다른 동물들의 습격을 받지 않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였다. 갑자기 멀리로 보이는 삼림에서 연기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그것도 바람 없는 날 굴뚝에서 피여오르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솟는것이 아니라 세찬 바람을 만난듯 마구 머리를 풀어헤치고 놀라운 속도로 사방에 퍼져나갔다. “연기”는 갑자기 진해지다가 또 연하게 번지기도 했다.  그것은 사실 집단적으로 먹이를 찾으러 나선 찌르레기무리였다. 그놈들이 앞다투어 지저귀는 소리와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가 어울려 수천만개의 비방울이 나무잎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던것이다. 수만마리의 새들이 함께 움직였기에 그 소리가 성세호대했고 강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수 있었던것이다. 찌르레기들은 눈 깜빡할 새에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그 기세에 매도 놀라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것은 찌르레기들만의 생존방식이였다. 새로운 하루가 또 시작되였다. “걸을가요?” 아야는 여전히 몸이 근질근질해나서 좀더 해볕을 쪼이고싶었지만 너무 오래 앉아있은것 같아 몸을 일으키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매트리스는 여전히 원래의 곳에 놓여져있었다. 그것은 안에 용수철을 넣은 보통매트리스로서 별 다른 특징이 없었다. 매트리스변두리쪽에 무엇엔가 찔려서 난 구멍이 있었는데 주인은 그것때문에 매트리스를 던진것 같았다.  매트리스에 찍혀져있는 몇송이의 백합꽃은 이미 색이 바래져있었다. 아야는 쪼크리고 앉아 매트리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엇을 찾느냐?”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니요.” 아야가 대답하면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는체 했다. 아야는 사실 매트리스우에서 곰털을 찾아보았던것이다. 아야는 부근의 관목림에서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왔다.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매트리스우에 장져놓았다.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숲으로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재삼 당부했다.   “곰이 부근에 숨어있을지 모른단다.” 마른 나무가지가 매트리스우에 가득 장져졌다. 할아버지가 성냥개비를 그어 나무가지에 불을 달았다. 불은 바람에 파르르 떨더니 인차 꺼져버린듯싶었다. 나무가지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것 같았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비오는 날에도 우등불을 피우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자기가 그래도 말랐다고 주어온 나무가지에 불을 붙이지 못하는것이 참 이상하다고 아야가 생각하고있을 때 갑자기 확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지에 불꽃이 피여올랐다.  불길은 빨리도 옮겨 붙으며 확확 열기를 뿜었다. 그 바람에 아야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아야는 못내 흥분되였다.  할아버지는 시종 아야에게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더구나 삼림속에서는 성냥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했다. 연기도 별로 나지 않았지만 불꽃은 아야의 키를 훤씬 넘어서며 확확 소리까지 냈다. 불은 반시간 넘어 타올랐다. 그 사이에 아야는 마른 나무가지를 더 집어넣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자 하얀 재와 검으스름하게 변한 용수철 십여개가 남았다. 아야는 몇차례의 비를 맞으면 검으스름한 용수철이 벌겋게 녹이 쓸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흐른뒤 벌겋게 녹이 쓴 용수철은 붉으스름한 가루로 변하여 흙속에 완전히 묻혀버릴것이였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모두 산언덕에 올라섰다. 할아버지가 아야에게 무슨 손동작을  해보였다. 그 바람에 아야는 선자리에 굳어졌다. 그때 아야와 할아버지는 모두 한그루의 큰 나무뒤에 서있었다. 그때 검은 털을 가진 곰 한마리가 맞은켠의 산기슭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놈은 불길이 타오르는 냄새를 맡고 그곳에서 서성이는것 같았다.  그놈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몇걸음을 옮겨놓았다.  목표는 한무지의 재로 변한 매트리스인것 같았다.  곰은 갑자기 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아야는 그놈이 다시는 그곳으로 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540    엘크*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1755  추천:0  2013-12-06
1. 지난밤의 바람 봄을 맞은 강에서 늦게까지 녹기 싫어하는 얼음처럼 오래동안 삼림에 내려 앉아 자리를 틀고있던 적막은 고독한 총소리에 산산히 깨여졌다. 거리썬커(格利什克)마저도 그 총소리가 머리칼을 쭈볏이 일어서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귀청을 째는듯한 총소리는 고요한 삼림에서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갔다. 총소리는 보이지 않는 맹수의 포효소리처럼 산곡에 메아리쳤다. 산골짜기들에 머물고있던 새들이 황망히 우짖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리썬커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탄알의 궤적을 똑똑히 보았었다. 탄알은 사실 날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지경으로 총소리가 울리기 바쁘게 인차 그놈의 굵고 번들번들한 목에 검은 꽃무늬를 피워놓았었다. 그놈은 마치도 커다란 흙무지가 덮쳐오는 홍수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듯 개울에 쓰러지며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겼다. 거리썬커는 총을 들고 여전히 사격자세를 취하면서 그놈이 넘어간 곳을 주시했다. 덩실한 그놈의 등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줄곧 거리썬커의 옆에서 돌아치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펄쩍 뛰여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썬커는 드디여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어깨에 올려놓고있던 총을 내리우고 앉아 여태 쪼크리고있느라 뻣뻣해진 다리를 움직였다. 거리썬커는 호주머니에서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작은 함을 꺼내여 안에서 입담배(口烟)를 조금 꺼내 입에 넣었다. 맵싸하면서도 편한 느낌이 입안에서 감돌더니 그 냄새가 가슴속에까지 유유히 퍼졌다. 거리썬커는 흡족한듯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죽음이란 그렇듯 완만하면서도 고통스러운것이였다. 거리썬커가 총을 들고 개울가로 다가갔을 때 모든것이 끝나있었다. 그놈은 이미 호흡이 멈추어 개울에 쓰러져있었다. 마치도 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작은 섬 같아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미친듯이 그놈의 몸을 물고 뜯어댔다. 그놈은 어미엘크였다. 거리썬커가 소리를 질러서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극도록 흥분된 상태로 개울복판에 서서 마지못해 피가 얼룩진 머리를 쳐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거리썬커가 안간힘을 다 쓰고 꼬리 없는 사냥개가 옆에서 거들었지만 도무지 어미엘크를 강변에 끌어올릴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엘크의 머리를 개울쪽으로 향하게 하고 목을 찔러 피를 뽑았다.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거리썬커의 뒤에서 들려왔다. 거리썬커는 반사적으로 옆에 놓인 총을 주어들고 몸을 돌려 묘준했다. 그런 동작들을 하는데 1초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금방 사냥물을 포획했을 때가 사냥군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였다. 사냥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냄새가 부근에 있는 곰과 같은 맹수들을 불러올수 있었던것이다. 무성한 관목림에서 몸을 움츠리고있는 붉으스름한 털을 가진 작은 동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썬커는 그제야 천천히 총을 내리웠다. 그놈은 새끼엘크였다. 그놈은 부들부들 떨면서 강변의 관목림에서 간신히 머리를 내밀었다. 그놈의 털은 붉은색을 띠고있었는데 가을날의 불타는 락엽송 색갈을 방불케 했다. 몸뚱이 크기로 보아 태여난지 한달쯤 됨직했다. 그놈은 포도처럼 동글한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펼쳐지는 생소한 세상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놈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그 사실을 믿고싶지 않아 하는것 같았다. 하늘을 진감할듯한 그 총소리가 그놈을 몹시 놀래운듯싶었다. 어미엘크가 개울에 쓰러지자 새끼엘크는 어쩔바를 몰라 하며 허둥지둥 삼림으로 들어가 숨은 모양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제야 자기의 실직때문에 부끄러워 하는것 같았다. 그놈은 분노한듯 포효하면서 새끼엘크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갔다. 거리썬커가 큰 소리로 제지시켜서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새끼엘크에게 덮치지 않았다. 아니라면 새끼엘크는 진작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목줄을 물려 끊겼을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아쉬운지 새끼엘크의 곁을 맴돌면서 가끔씩 거칠게 소리를 질러댔다. 새끼엘크는 너무도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 시각 삼림도 새끼엘크를 숨겨주지 못했다. 새끼엘크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거리썬커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두다리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거리썬커는 사냥개를 제지시킬뿐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하지만 새끼엘크는 어느새 거리썬커의 손을 찾아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새끼엘크의 보들보들한 혀바닥이 따듯한 난류가 되여 사냥으로 거칠어진 거리썬커의 손가락을 덥혀주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어미 잃은 새끼엘크를 어떻게 처리할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줄을 모르는 새끼얼크는 거리썬커를 졸졸 따라 숙영지로 갔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살이 쪼록쪼록한 그 늙은이의 몸에 어미엘크의 혼이 옮겨 붙은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가 천막으로 들어가자 새끼엘크도 따라들어갔다. 새끼엘크는 너무도 지친듯싶었다. 그 하루사이에 새끼엘크는 받아 당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일을 껶어냈던것이다. 새끼엘크는 천막으로 들어가자마자 구석을 찾아 엎드렸다. 그제야 새끼엘크는 저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는 천막으로 들어선것을 좀 후회하는듯싶었다. 삼림속을 뛰여다니는 야생동물인 새끼엘크가 사람들이 사는 작은 공간에 들어선후 느껴지는 공포감은 무지한 호기심으로 표달되였다. 천막중간에 놓여진 난로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새끼엘크는 그것이 바로 모든 야생동물들이 제일 꺼리는 그 불이라는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포감도 새끼엘크의 피로를 물리칠수는 없는것 같았다. 새끼엘크는 그곳을 자기에게 제일 안전한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새끼엘크는 천막 한구석에 옹크리고 누웠다. 그 모습은 너무도 작아보였다. 새끼엘크는 머리를 배에 딱 붙이고 혼곤히 잠들어버렸다. 거리썬커는 총을 침대머리에 걸어놓은후에야 천막 한구석에 쪼크리고 누워 단잠을 자는 새끼엘크에게 주의를 돌리기 시작했다. 거리썬커가 일생 처음으로 엘크를 사냥한것은 13살 나던 해였다. 그번에 사용한것은 당시 거리썬커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로씨야제 보총이였다. 그때로부터 거리썬커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엘크를 사냥했다. 하지만 새끼엘크를 잡은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거리썬커는 새끼엘크의 옆에 조크리고 앉았다. 새끼엘크의 붉으스름한 털은 천막밖에서 비쳐들어오는 해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는데 여름날 황혼녘의 불타는 노을을 방불케 했다. 거리썬커는 새끼엘크의 발굽에 무엇인가 뽈록 튀여나온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동한 거리썬커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만져보았다. 하지만 다른것은 만져지지 않고 나른한 발굽만 손에 맞혀왔다. 마치 잘 익은 밤톨 같았다. 뽈록 튀여나온 그 부분을 꼭 누르자 쏙 하고 들어가기까지 했다. 거리썬커는 소중한 골동품을 잘못 눌러 망가먹을가봐 두려운듯한 표정으로 손을 당겨왔다. 새끼엘크는 거리썬커의 그 행동에 놀라 눈을 뜨고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눈동자가 참 맑았다. 너무 맑아서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을 방불케 했다. 그 눈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졸졸 새여나와 더없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새끼엘크는 자기가 어떻게 그 생소한 세상으로 왔는지를 아는것 같지 않았다. 새끼엘크는 흠칫흠칫 놀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거리썬커를 발견하고는 두려운듯 다시 조용해졌다. 새끼엘크는 귀엽게 생긴 머리를 조심스럽게 거리썬커에게 가져가서는 인사라도 하는듯 부드러운 혀를 나름거리며 거리썬커의 손을 찾았다. 또 거리썬커의 손가락을 빨려는것 같았다. 잠간후 새끼엘크는 머리를 배에 붙이고 바들바들 떨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새끼엘크는 단잠에 들었던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천막밖에서 흉악스러운 눈길로 자주 천막안을 들여다보며 으르렁거리는것도 모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번마다 꼬리 없는 사냥개를 제지시켰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그것은 꼬리 없는 사냥개의 직책이였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삼림에 들어와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부터 그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믿고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물을 추격하여 면바로 대방의 몸에 덮쳐야 했고 그놈들의 뒤다리를 물어 뜯어야 했으며 더 좋기는 그놈들의 목줄을 물어 끊어야 했다. 그리고 일찍 동면에서 깨여난 곰이 숙영지를 습격할 때면 용감하게 맞받아 나가 등에 덮쳐 들어 게거품을 흘리면서 주인이 그놈에게 총을 쏘아 넘어뜨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밤, 거리썬커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넘어지는듯한 큰 소리에 잠에서 깨여난 거리썬커는 급히 침대머리에서 총을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천막안에서 울렸다는 생각이 인차 머리를 쳤다. 그렇다면 그것은 숙영지를 습격하러 내려온 곰이 한 짓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것이다. 거리썬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초불을 붙였다. 귤색의 따뜻한 불꽃이 어두운 천막안을 밝혔다. 꿈속에서 보는듯한 정경이 펼쳐졌다. 새끼엘크가 삼림에서 길을 잃은듯 길다란 네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초불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 눈에는 맑은 물이 가득 담겨 반짝이고있었다. 그때 새끼엘크는 난로옆에 서있었는데 가냘픈 그 모양은 처음으로 삼림에 들어갔다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를 방불케 했다. 그놈의 발굽옆에는 차번져놓은 먹이그릇이 놓여져있었다. 한참이나 초불을 바라보던 새끼엘크는 초불에 대한 호기심을 접었는지 다시 먹이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새끼엘크는 바닥에 널려진 밥덩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하지만 그놈은 바닥에 가득 널려있는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아직 모르는것 같았다. “배가 고파?” 거리썬커는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천막안에서 거리썬커는 보통 말을 하지 않았었다. 말을 하고싶지 않은것이 아니라 말할 기회가 없었던것이다. 심산속에 위치한 그 숙영지에서 거리썬커는 혼자 근 백마리에 달하는 순록을 방목하고있었다. 새끼엘크는 방금 난생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것이다. 생소한 목소리, 생소한 환경에 불안해진 새끼엘크는 방금전의 그 소리를 더 똑똑히 들으려는듯 두귀를 쫑긋 치켜세웠다. 그것은 새끼엘크가 인류의 소리에 대한 첫 기억으로 될것이였다. 새끼엘크가 원하든 말든 그놈은 이미 인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던것이다. 거리썬커는 병에 넣은 순록의 젖을 찾아냈다. 순록의 젖은 워낙 많지 않기에 평소에는 차를 끓일 때 조금씩 넣을뿐이였다. 전날에 짠 젖이였기에 벌써 얼마간 응고되여 있었다.  거리썬커는 손으로 한덩이를 떠서 들고 새끼엘크를 불렀다. 새끼엘크에게는 그때까지도 이름이 없었다. 만약 줄곧 어미엘크를 따라다녔다면 새끼엘크는 근본 이름이 필요없었을것이다. 엘크의 세계에서 그놈은 너무도 평범한 한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이미 인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라 인류가 사는 방법대로 이름이 있어야 했다.  이름은 사람들이 그놈을 부를 때 꼭 필요한것이였다. 거리썬커는 그놈을 그냥 “작은 엘크”라 부르기로 했다. 순록의 젖은 작은 엘크에게 익숙한것이였다. 비록 어미엘크의 젖에서 나는 상큼한그 냄새와는 좀 달랐지만 그 시각 순록의 젖은 그처럼 작은 엘크의 구미를 당기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거리썬커곁으로 다가와 혀를 내밀어 병을 핥고 빨아대기 시작했다. 병에 들어있는 순록의 젖을 단숨에 다 먹어치우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운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의 몸에서 벌어지고있는 모든것을 향수하는것만 같았다. 작은 엘크는 눈 한번 깜빡 할 새에 순록의 젖을 한병 굽을 냈다. 말끔하게 빨아 먹은 병을 당겨오자 작은 엘크는 머리를 들고 거리썬커를 쳐다보았다. 아직 배가 차지 않는 모양이였다. 전에 어미엘크의 젖을 마음대로 빨아먹던 작은 엘크는 종래로 그런 일을 당해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그곳으로 오기전 작은 엘크는 어미엘크의 젖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날이 이미 어두웠는지라 거리썬커는 밖에 나가 순록의 젖을 더 짜올수도 없었다. 긴긴밤, 배가 고파난 작은 엘크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천막안에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천막안의 모든것이 점점 작은 엘크의 호기심을 유발하는것 같았다. 먹이그릇을 올려놓은 시렁이 너무 높아 작은 엘크는 도무지 입을 댈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냄새는 못 견디게 작은 엘크의 코를 파고들었다. 어둠속에서 그놈은 끝내 먹이그릇을 올려놓은 시렁을 걷어차 넘어뜨렸던것이다. 시렁우에 올려놓았던 소래며 병이며가 바닥에 가득 널렸다. 큰 일을 저질러 놓고도 작은 엘크는 진정하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여전히 허둥거렸다. 작은 엘크는 그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고 할수 있었다. 초불아래에서 작은 엘크는 바닥에 가득 널려있는 높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자연에서는 그러한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수 없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향해 상징적으로 한마디 소리치고는 다시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는 정말 눈을 뜨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거리썬커는 웬 재채기소리를 듣게 되였다. 거리썬커는 이상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작은 엘크도 재채기를 할줄 안단 말인가? 거리썬커는 엘크가 재채기를 할줄 안다는 소리를 종래로 들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손더듬으로 성냥을 찾아 초에 불을 붙였다. 거리썬커의 눈앞에는 폭풍이 스쳐지난듯한 살풍경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밀가루포대가 찢어져 사처에 밀가루가 날려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천막복판에 서있는 작은 엘크의 온몸에는 밀가루가 하얗게 들씌워져있었다. 그날밤, 거리썬커는 도무지 제대로 잠을 잘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한시도 진정하지 않고 련속 일을 쳤다. 그놈은 방금 물통을 번져놓는가싶더니 또 조심하지 않아 엉뎅이를 뻘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부딪쳐서 데기도 했다. 천막안은 작은 엘크의 털이 끄슬고 가죽이 익어번지는 이상한 냄새가 가득 찼다. 나중에 작은 엘크는 술통마저 차서 번져놓았다. 거리썬커는 별수 없이 끈을 찾아 그놈의 목을 비끌어매서 천막구석의 가름대에 묶어놓은후 초불을 불어껐다. 거리썬커는 사냥개가 작은 엘크를 물어 뜯어 내장을 파먹을가봐 감히 천막밖에는 내놓을수 없었다. 천막안은 잠시 안정을 찾았다. 거리썬커가 잠에 곯아떨어진지 얼마 안되여 갑자기 천막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라 깨여난 거리썬커는 일시 영문을 알수 없어 창문을 통해 천막밖을 내다보았다. 뭇별이 반짝이는 맑은 하늘이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귀를 기울여보아도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천막은 왜 그렇게 흔들린것일가? 거리썬커는 피곤해서 몸도 가누기 힘들었지만 별수 없이 또 일어나서 초에 불을 붙였다. 거리썬커의 예산대로 작은 엘크가 밭갈이를 하는 둥굴소처럼 안간힘을 다해 자기의 목에 감겨진 줄을 끌어당기고있었던것이다. 그 바람에 크게 뜬 두눈이 뻘겋게 충혈되여있었고 배에는 굵은 피줄이 퍼렇게 살아나있었다. 끈은 이미 작은 엘크의 목부위의 털을 비집고 들어가 가죽을 죄이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목을 죄이는 그 끈을 끊으려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멀건 침이 그놈의 입귀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거리썬커는 그 작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힘에 천막이 흔들린다는것이 놀랍게 생각되였다. 거리썬커는 주저없이 작은 엘크쪽으로 다가갔다. 그놈의 목에 감긴 끈을 인차 풀어주지 않으면 그놈이 곧 목이 졸려 죽을것만 같았다. “죽여치워야 속이 시원할 놈 같으니라구.” 거리썬커는 중얼중얼 작은 엘크를 욕하기 시작했다. 끈이 작은 엘크의 목을 너무 꽁꽁 죄였기에 일시 거리썬커의 손가락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있었다. 거리썬커는 별수 없이 베개밑에서 사냥칼을 꺼내들었다. 끈이 너무 팽팽하게 죄여있었기에 칼날을 대자마자 툭 하고 끊어져버렸다. 작은 엘크는 끈이 끊어지는 속도 그대로 천막벽에 부딪쳤다. 다행히 범포로 만들어진 천막이였기에 작은 엘크는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겨우 몸을 바로한후 크게 들숨을 들이쉬였다. 거리썬커는 그놈이 천막안의 공기를 다 마셔버리려는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작은 엘크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놈은 비록 작은 체구였지만 절대로 그 어떤 속박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후 거리썬커는 다시 작은 엘크의 목을  끈으로 묶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놈은 엘크였지 순록이 아니였던것이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푸르스름한 그 빛은 겨울날의 얼어붙은 수면을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다시 천막구석을 찾아 몸을 옹송그리고 잠이 들었다. 거리썬커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는 자리에 눕자 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거리썬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창문을 비추고있었고 난로불은 진작 꺼져있었다. 하지만 창문으로 비쳐든 해볕때문에 거리썬커는 그닥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몹시 차다고 느껴졌다. 거리썬커는 머리를 돌려서야 작은 엘크가 자기의 손가락을 빨고있음을 발견했다. 거리썬커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작은 엘크는 손가락을 빨던 동작을 멈추고 불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리썬커는 빨리 일어나 난로에 불을 피우고 차물을 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먼저 순록의 우리에 가서 젖을 짜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거리썬커는 일년 사계절 사람그림자 하나 없는 심산에서 순록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한두달에 한번씩 쌀이나 밀가루 그리고 소금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올려다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은 비닐주머니에다 흰술을 담아다줄 때도 있었다. 술은 숙영지로 들어오기만 하면  요귀처럼 거리썬커를 곤죽이 되도록 취하게 만들었다. 거리썬커는 번마다 많은 술을 마셨고 그 술은 거리썬커의 위에서 빨리 타번졌다. 술은 거리썬커의 몸을 활활 태워 재더미로 만들고싶어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산에서 뛰여노는 순록을 돌보는 일마저 까맣게 잊었고 순록이 달아난것을 발견하고는 끝도 없이 산을 찾아 헤매군했다. 그렇게 술에 취해 쓰러지는 순간은 거리썬커가 휴식을 하는 시간들인지도 몰랐다. 그런 시간들에야만 거리썬커는 비로소 모든 시름을 던져버리고 마음껏 휴식을 할수 있었다. 가끔 한번 취하면 일주일이나 깨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잠간 술을 깨는가싶으면 또 대량의 술을 마셔 사라지려던 화염을 활활 타오르게 했던것이다. 한주일후, 무연한 황야와도 같은 혼미에서 깨여난 거리썬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강변으로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때면 버려진 숙영지와 같이 거칠은 얼굴이 수면에 삐끼군 했다. 거리썬커는 천막에 돌아와 차물을 끓여놓고 신선한 순록의 젖을 마셨다. 며칠이나 음식을 받지 못한 위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거리썬커는 연신 구역질을 했지만 파아란 담즙만 찔끔찔끔 올라올뿐이였다. 거리썬커에게 있어서 그것은 삼림에서의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할수 있었다. 순록의 젖이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거리썬커는 다시 삼림에서의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 생활은 전에 아무것도 발생한적이 없는듯 그처럼 평범했다. 진종일 가도 숙영지에는 거리썬커와 순록과 꼬리 없는 사냥개뿐이였다. 거리썬커는 날마다 꼬리 없는 사냥개를 끌고 숙영지를 멀리 벗어난 순록을 찾아와야 했다. 작은 엘크의 돌연적인 출현은 거리썬커의 조용한 생활에 파문을 밀고왔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 속도로 커갔다. 얼마 안되여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먹여주는 신선한 순록의 젖에 의탁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어떤 먹이에나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참, 대단해!”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영원히 포만감을 모를것 같은 위를 두고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작은 엘크의 세계에는 먹이밖에 없는것 같았다. 그의 모든 세상은 먹이를 둘러싸고 돌아가는듯싶었다. 그외 더 있다면 거리썬커라고 부르는 머리칼이 뿌옇게 세여가는 늙은일것이였다. 그 늙은이는 작은 엘크의 먹이의 원천이였다. 쌀밥, 남새, 고기… 어느 한가지도 마다하는것이 없었다. 작은 엘크의 위는 먹이가 들어가도 들어가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심연인듯싶었다. 숙영지에는 언제나 작은 엘크의 먹이가 충족했다. 거리썬커는 가끔 호기심이 동해 작은 엘크의 위가 도대체 얼마나 큰가를 실험해보고싶었다. 하여 작은 엘크가 마음대로 먹게 놔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거리썬커는 놀랍게 많은 수량의  먹이가 놀라운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지는것을 놀랍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앞에 먹이가 있기만 하면 작은 엘크의 입이 영원히 닫겨지지 않을것이라고 판단했다. 지어 천막까지도 아작아작 다 먹어버릴것만 같았다. 거리썬커는 고무풍선처럼 똥똥 뿔어나는 작은 엘크의 배에 파아랗게 돋아나는 혈관을 보면서 감히 더 이상 지켜볼수만 없었다. 만약 자기가 제지시키지 않는다면 그놈은 배가 툭 터져버려도 계속 먹이를 먹어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엘크는 절대 먹이의 맛을 가늠하는것이 아니라 무작정 먹이를 위에 집어놓는것을 목적으로 하는것 같았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먹이를 모두 배속에 집어넣어야 비로소 시름을 놓을것 같았다. 눈앞에 놓여져있던 먹이그릇이 굽을 보여서야 작은 엘크는 머리를 쳐들고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작은 엘크는 그제야 탐식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로 돌아온듯싶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의 현실세계에는 여전히 먹이가 모자라는듯싶었다. 먹이야, 먹이야. 다 어디로 갔느냐? 작은 엘크의 가련한 표정은 거리썬커에게 그렇게 묻는듯싶었다. 절대 더 먹일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드디여 작은 엘크의 위의 크기를 시험해보자던 생각을 포기하고말았다.   2. 고요한 세계 가을날 아침, 작은 엘크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해빛아래 숙영지앞의 공지에 서서 몸뚱이와 어울리지 않게 큰 머리를 흔들어댔다. 작은 엘크의 머리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영양을 흡수한듯 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 큰 머리로 아직도 하루종일 뭘 하면서 놀가를 결정하지 못한듯싶었다. 가는 나무가지가 작은 엘크에게서 머지 않은 풀밭에 떨어지면서 낮은 소리를 냈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듯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삼림세계에서 극히 평범하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그 장면을 보게 되였다. 넋을 잃은듯한 친칠라 한마리가 용수철같은 등허리를 잔뜩 쳐들고 키가 큰 락엽송줄기를 미친듯이 기여올랐다. 그뒤로 털색이 알록달록한 꿩매가 놀라운 비행기교를 발휘하여 친칠라를 쫓아 나무주위를 뱅뱅 돌아쳤다. 그렇게 고속비행을 할수 있는 맹금들은 날렵한 날개와 길고 가는 꼬리로 빼곡한 나무가지사이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수렵물을 공격할수 있었다. 꿩매는 부지런히 날개를 퍼덕이면서 보슬보슬한 털을 가진 친칠라의 뒤를 바싹 쫓았다. 조류의 세계에서 아마도 꿩매만이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수렵물을 쫓아 잡을것이다. 매나 독수리 같은 대형의 맹금들은 감히 그러한 환경에서 사냥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것이다. 그놈들은 힘이 무진장 하지만 령민성은 부족해서 걸핏하면 빽빽한 나무가지에 부딪쳐 목을 끊어먹을수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삼림에서 늘 볼수있는 장면이였다. 친칠라는 반드시 꿩매보다 더 빨리 달려야 생명을 부지할수 있었다. 반면에 꿩매는 친칠라보다 더 빨리 날아야 수렵물을 사냥해서 허기진 배를 달랠수 있었다. 이것은 삼림에서의 생존법칙이였다. 머리를 잔뜩 쳐들고 쫓고 쫓기는 친칠라와 꿩매의 사투를 지켜보고있던 작은 엘크는 천막쪽에서 거리썬커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따라 삼림에 들어온후 그러한 부름이 먹이와 련결되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작은 엘크는 나무우에서 펼쳐지는 친칠라와 꿩매의 사투에 흥미를 잃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여오르는 천막으로 네다리를 날렸다. 천막은 안온함을 의미하는 곳이였고 먹이를 상징하는 곳이였다. 그날아침, 작은 엘크는 단번에 큼직한 소래에 담겨져있는 입쌀죽을 다 먹었고 또 제일 큰 빵도 두개나 먹어버렸다. 배 부르게 먹이를 먹고난 작은 엘크는 천막앞에서 고무풍선처럼 똥똥하게 불어난 배를 땅에 딱붙이고 엎드려 해볕을 쪼였다. 그 모양은 다리가 가늘고 배가 큰 게으른 거미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숙영지에서 입쌀죽을 한 소래씩 먹어치우는 하나 또 하나의 행복한 아침을 맞았고 아무 할 일도 없는 하루 또 하루의 무료한 낮시간들을 허송했으며 활활 피여오르는 난로불로 따뜻한 천막의 밤을 보냈다. 숙영지의 생활에 습관이 된 작은 엘크는 차츰 뼈가 굵어갔다.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와 함께 숙영지와 멀리 떨어진 곳까지도 갈수 있었다. 체형상으로 볼 때 엘크는 순록들과 같은 과에 속하는 동물이였다. 오랜시간 동안 작은 엘크는 자기를 순록이라고 믿고있은것 같았다. 어릴 때 어미엘크와 함께 했던 그 약간의 기억마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말끔히 사라져버린듯 했다. 아침마다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들과 함께 숙영지를 떠나 깊은 삼림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야성을 상실한 순록들이 머리를 숙이고 날렵하게 입술을 움직여 땅에서 리트머스이끼(石蕊)나 지의류를 찾아 먹을 때면 그뒤를 따라가는 작은 엘크는 막연한 눈길로 그놈들을 바라볼뿐이였다. 작은 엘크는 머리를 숙여 그런것들을 직접 뜯어 먹지 않고도 자기의 위가 근본 그런 식물들을 받아당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는듯 했다. 그때 작은 엘크는 이미 진정으로 황야를 떠나있었지만 그의 몸에 잠재해있는 본능은 그에게 먹이가 눈앞에 널려있다고 암시를 하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시력이 그닥 좋지 않은 자기의 두눈보다 코를 더 믿었다. 작은 엘크는 인차 자기만의 세계를 찾은듯싶었다. 작은 엘크가 머리를 쳐들기만 하면 자작나무며 백양나무며 관목과 같은 나무의 새싹들이 그의 입에 닿을수 있었다. 작은 엘크는 도톰한 입술을 벌려 수지향이 짙게 풍기는 파릇파릇한 나무잎을 입에 넣으면 될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그것이야 말로 자기의 훌륭한 먹이라고 알고있었다.  누구도 작은 엘크에게 그 같은 나무잎이나 싹을 먹어야 한다고 배워준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몸에 숨어있는 본능의 지배아래 무성한 삼림에서 자기에게 적합한 먹이를 더 많이 찾으려고 애쓰게 되였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차츰 작은 엘크가 이미 야생의 엘크들이 오래동안 이어오던 식습관에 적응되였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하기에 작은 엘크는 순록들과 함께 삼림으로 가도 절대 순록들과 먹이를 쟁탈하지 않을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필경 서로의 부동한 먹이가 있었던것이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작은 엘크의 간식으로 될수도 있었다. 그는 빵이며 구은 만두며 밀가루국수 같은 음식도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한 음식들은 작은 엘크의 몸을 부단히 변화시켜주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어릴 때 가지고있던 적갈색의 털이 차츰 황혼빛을 방불케 하는 짙은 갈색으로 변한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영양이 충족하여 털에 기름기가 흘렀는데 비단필처럼 윤기가 돌았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변화는 털뿐만이 아니였다. 그놈의 체구도 튼실하게 변해갔는데 다리는 길었고 키는 다 큰 순록과 비슷했다. 다만 체중이 보통 순록들보다 좀 가벼울뿐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야생의 같은 나이의 엘크들보다 크고 튼실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엘크가 그처럼 빨리 크기 시작하기전에 거리썬커는 그놈이 인차 천막생활에 작응하는것을 보고 잠간 놀랐을뿐이였다. 밤이면 작은 엘크는 머리로 천막문을 막은 커튼을 밀어 열고는 밖으로 나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간후 관목림에서는 개울물 흐르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줌 누는 소리였다. 작은 엘크는 오줌도 참 오래 누었다. 한번은 거리썬커가 그 시간을 재여보았는데 2분도 더 되였다. 그놈의 방광도 위처럼 큰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오줌을 다 눈후 한몸 가득 한기를 안고 천막안에 들어와 난로곁의 따스한 곳을 찾아 다시 꿈나라에 들어가군 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성장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그냥 새끼라고만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사실 날마다 몰라보게 자라갔다. 작은 엘크는 계속 천막안에서 거리썬커와 함께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천막은 이미 작은 엘크를 용납하기에 너무 작았다. 작은 엘크가 육중한 몸을 움직일라치면 가끔은 엉뎅이로 난로를 쳐서 비뚤게 만들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난로안에서 나온 까만 재들이 천막안을  뽀얗게 어질러 놓았다. 그런것에 이미 습관이 된 작은 엘크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천막의 여지저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물통에 주저앉기도 했다. 물통이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면 작은 엘크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기여 일어났다. 하지만 물통은 이미 세찬 바람을 만난 종이함처럼 찌그러진 뒤였다. 작은 엘크는 평소 늘 조심하느라 했지만 천막안은 언제나 코끼리가 도자기상점에 들어간 판국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먹이그릇이 나뒹굴고 시렁이 넘어지면서 소래며 사발과 같은것들이 바닥에 널렸다. 달빛이 교교하던 어느날저녁, 거리썬커는 끝내 작은 엘크를 천막에서 쫓아냈다. 작은 엘크는 기어코 다시 천막안으로 들어가려고 부득부득 애를 썼다. 하지만 거리썬커가 끈으로 천막문을 막은 커튼을 고정시켜 놓은데서 작은 엘크는 도무지 소원성취를 할수 없었다. 작은 엘크가 고정한 커튼쯤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천막안을 살필라치면 거리썬커는 인차 묵직한 장작가지를 뿌렸다. 작은 엘크는 별수 없이 천막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을 포기하는듯싶었다. 하지만 그놈은 천막밖에서 시종 고통스러운 신음을 했다. 거리썬커는 창문을 통해 작은 엘크가 분노에 찬 눈길로 지나가는 순록을 막아서서 으르렁 거리는것을 보았다. 작은 엘크는 긴긴 밤을 패며 천막주변을 분주하게 돌아쳤다. 이튿날아침, 날이 채 밝지도 않았지만 거리썬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난로를 피우려고 커튼을 고정한 끈을 풀었다. 천막주변에서 작은 엘크를 찾을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급히 작은 엘크를 찾아나섰다. 다행이 멀지 않은 관목숲에서 작은 엘크의 재빛 륜곽이 보여왔다. 털끝에는 온통 이슬이 덮여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향해 다가오는듯싶더니 못 본듯 그의 옆을 스쳐지났다. 작은 엘크는 그때까지도 거리썬커에게 화를 내고있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관목숲에서 밤을 낸 모양이였다. 관목숲에서의 그 첫날밤이 상상처럼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듯 했다. 그날부터 작은 엘크는 다시 낮고 비좁은 천막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간혹 천막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살피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천막안에서 풍기는 먹이냄새의 유혹때문이였다. 작은 엘크는 나날이 숙영지에서의 생활에 습관되여갔다. 날마다 황혼이 되여 천막마다에서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피여오를 때면 커다란 몸뚱이의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들과 함께 천천히 숙영지로 돌아왔다. 숙영지에 어둠이 깃들어도 순록들은 여전히 밖에서 서성대기를 좋아했다. 그놈들도 자기들에게 위협으로 되는 야수들이 사람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불을 제일 무서워하고있다는것을 아는듯싶었다. 하기에 순록들은 사람이 살고있는 숙영지를  안전지대로 생각하고있었다. 숙영지보다 삼림을 더 좋아하는 순록들도 가끔씩 있었지만 그들도 나중에는 숙영지로 돌아왔다. 거리썬커는 한무리의 흘갈색 순록무리가 멀리에서 숙영지를 향해 다가오는것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은 삼림에서 뭉게뭉게 떠다니는 연무를 방불케 했다. 그 몽롱한 연무속에서 한줄기의 밝은 불꽃이 타오르고있었는데 그 색갈은 마치도 용해된 동을 보는듯싶었다. 그것은 바로 순록무리에 서있는 작은 엘크의 털색이였다. 숙영지에 돌아온후이면 순록들은 인차 제각기 흩어졌지만 작은 엘크는 천천히 천막앞으로 다가가 큼직한 머리를 어둠침침한 천막에 들이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거리썬커를 찾는것 같았다. 만약 그때 거리썬커가 천막안에 있다면 작은 엘크에게 빵과 같은 먹이를 던져주었을것이다. 그것은 작은 엘크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작은 엘크는 기어코 천막안에 들어가려고 했을것이다. 만약 거리썬커가 천막안에 없다면 작은 엘크는 천막어구에 잠간 앉아있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조용히 그를 기다렸을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거리썬커를 기다릴 때면 작은 엘크는 반혼미상태에 들어간듯 머리를 푹 숙이고 두귀를 떨어뜨리고 앉아 두눈을 반쯤 감고 졸음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날, 작은 엘크는 무슨 동정인가를 들은듯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고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작은 엘크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나는 방향이 삼림속의 어느 구석이라는것을 확인한 작은 엘크는 껑충껑충 그쪽으로 뛰여갔다. 작은 엘크의 네다리는 길고 튼실했는데 고요한 수면을 가르고 나가는 전투함을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중도에 거리썬커와 그의 뒤를 따르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만났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몸뚱이가 얼마나 컸다는것을 조금도 모르는듯 주인을 만난 강아지마냥 거리썬커에게  매달렸다. 작은 엘크는 연신 킁킁 거리면서 큼직한 머리를 거리썬커의 가슴에다 마구 부볐다. 진종일 삼림을 누비고 다니느라 지칠대로 지친 꼬리 없는 사냥개는 못마당한듯한 눈길로 작은 엘크를 쏘아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거리썬커는 총에 재웠던 탄알을 뽑았다. 작은 엘크가 잘못해서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한다면 큰 일을 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후 거리썬커는 스스로 여전히 새끼라고 자처하고있는 커다란 몸뚱이의 작은 엘크를 몇마디 훈계했다. 그 바람에 하늘을 찌를것 같던 그놈의 열정이 좀 식은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커다란 몸뚱이를 끌고 강아지마냥 거리썬커의 뒤를 졸졸 따라 황혼의 깃드는 숙영지로 돌아갔다. 작은 엘크는 처음에 물에 대하여 특수한 느낌이 없었다. 작은 엘크는 가끔 강을 건너거나 못을 가로지날 때면 설레이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공포를 느낄 때도 있었고 커다란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놈은 자기도 순록과 꼭 같다고 생각하면서 오직 륙지만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믿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의 몸에 숨어있던 야수의 본능은 종래로 그를 포기한적이 없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언제나 속에서 꿈틀대고있는 그 욕망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야드르르한 나무가지나 싹만 아니라 다른 먹이도 굶주림을 달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인차 새로운 먹이들을 발견하게 되였다.  강변이나 못 곁은 작은 엘크가 먹이를 찾는 새로운 지점으로 되였다. 수련이며 가래며 향포며 부평초며… 먹을만한것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 작은 엘크는 무릎까지 오는 물에 들어가서 헤맸지만 차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작은 엘크의 넓은 발굽은 바로 그때를 위해 준비된것 같았다. 두쪽으로 갈라진 발굽은 그놈의 큰 몸뚱이를 받아당하는데 유리했을뿐만아니라 수렁에 쉽게 빠져들지 않게 해주었다. 딱 한번, 작은 엘크는 급히 몸을 앞으로 내밀어 향포를 뜯어 먹으려 하다가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진적이 있었다. 강물은 삽시에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삼켰다. 작은 엘크는 안간힘을 다해 네다리를 허둥거렸다. 작은 엘크는 몇초동안 그렇게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스스로 코구멍을 딱 막을수 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리고 처음에 황급히 허둥거려지던 네다리가 노대처럼 조화롭게 저어지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여 작은 엘크는 손쉽게 물을 가르며 강역으로 헤여 나가 신선한 공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작은 엘크는 천성적으로 헤염을 칠줄 알고있었던것이다. 조물주는 세상만물을 만들 때 작은 엘크에게 그러한 재간을 선물한것 같았다. 모기와 말파리들이 안개처럼 뽀얗게 하늘을 덮으며 날아와 작은 엘크의 몸뚱이에 덮쳐들어 피를 빨아댔다. 말파리는 지어 알을 순록의 코구멍에 쓸어놓기도 했다. 말파리알은 순록의 코구멍에서 까난후 큰 말파리로 자라서야 날아나왔다. 말파리알이 코구멍에서 까나고 자라는 동안 순록은 불편하여 끊임없이 재채기를 해댔다. 모기며 말파리들이 날치는 밤이면 거리썬커는 늘 지의류와 젖은 나무로 불을 피워 연기를 쏘여주었다. 하지만 웬간해서는 모기나 말파리들을 쫓는데 별 작용이 없었다. 일부 순록들은 모기나 말파리의 습격을 너무도 참기 바빠 삼림속에서 미친듯이 뛰여다니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순록들은 그놈들의 습격을 참으면서 억지로 참을 청하다가도 극도에 달하면 부르르 머리를 털어댈뿐이였다. 그만치 순록들은 풍성한 털과 두터운 가죽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그러한 날밤이면 작은 엘크는 혼자서 숙영지를 벗어나 강변을 향해 발걸음을 재우쳤다. 하늘 가득히 반짝이는 별무리며 교교한 달빛아래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이슬방울은 작은 엘크의 발걸음을 여간만 흥겹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엘크가 모기며 말파리와 같은 해충을 피할수 있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였다. 작은 엘크가 강변으로 오는 동안에도 모기나 말파리는 놓치지 않고 쫓아와 여간만 성가스러운것이 아니였다.  부드러운 달빛아래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게 된 작은 엘크는 주저할 새 없이 강둑을 내려가 물에 들어섰다. 작은 엘크는 한참 등을 물에 잠그고있다가 아예 머리까지 물속에 쑥 집어넣었다. 미친듯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 먹던 모기나 말파리들은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간 작은 엘크로 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물은 모기나 말파리들의 천적이였다. 자기들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하던 작은 엘크가 순식간에 물속에 사라지자 모기나 말파리들은 별수없이 오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 다른 목표물을 찾을수밖에 없었다. 하긴 크게 실망할것도 없었다. 그놈들은 돌아가는 길에 관목림에 들렸다가 달빛을 빌어 먹이를 찾으러 나온 마록을 만날수 있었던것이다. 잠간후 작은 엘크는 물속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물방울이 작은 엘크의 머리에 자란 손바닥만한 뿔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엘크의 입에는 어느새 신선한 수초가 가득 물려있었다. 작은 엘크는 긴긴밤을 시원하게 물속에서 보내면서 수초를 뜯어 먹었다. 작은 엘크는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서야 아쉬운 표정으로 강변에 올라왔다. 삼림에서 일찍 깨여난 새들이 지저귀면서  숙영지로 날아가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아침에 사람들이 먹는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있는 먹이를 줄것을 바랐다. 그날, 거리썬커는 무리를 떨어져 흑룡강경내에 들어간 순록을 찾기 위해 옹근 하루를 헤매고 다녔었다. 어둠이 깃들어서야 거리썬커는 흑룡강경내에서 찾아낸 순록들을 끌고 숙영지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들이 고요한 강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꼬리 없는 사냥개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무섭게 으르렁거리더니 뚫어져라 수면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일시 꼬리 없는 사냥개의 행동이 무엇을 설명하는지를 알수 없었다. 절대 사냥물을 발견했을 때 하는 행동은 아니였다. 하지만 무엇엔가 유혹된것만은 틀림없었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가 멋쩍은듯 머리를 젓는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공기중에 있는 무슨 냄새를 몰아가기라도 하려는것 같았다. 이어 꼬리 없는 사냥개는 머리를 돌리고 숙영지방향으로  달려갔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가 피곤해서 그럴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강변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강에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어 물속에서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록색 털의 괴물이 솟아올랐다. 당황해난 거리썬커는 인차 어깨에 멘 총을 내리워 들었다. 하지만 그 록색의 털은 인차 떨어져 내리고 큰 코를 가진 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작은 엘크였다. 그때 그놈의 머리에 난 뿔에는 아름다운 수련이 걸려있었다.  작은 엘크는 쩝쩝 무엇인가를 씹고있었는데 록색의 즙이 그놈의 입가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엘크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다가 거리썬커를 발견했다. 작은 엘크는 성큼성큼 강변으로 올라와 요란하게 몸을 떨면서 사처에 물방울을 튕겨놓았다. 작은 엘크는 생각밖의 지점에서 주인을 만난것이 그처럼 반가운지 도무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이였다. 작은 엘크는 단숨에 거리썬커의 가슴에 덮쳤다. 사냥물을 덮치는 온몸이 물에 젖은 악어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큰 소리로 제지시켜서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커리썬커의 옷은 몽땅 젖어버렸다. 3. 가을날의 힘겨운 그 순간들 작은 엘크는 또 하나의 가을을 맞아왔다. 가을은 삼림에서 제일 고요하고 풍요로운 계절이였다.  락엽송은 하루밤사이에 빠알갛게 타오르기 시작하여 봄날보다 더 생기로 차넘치는 경상을 연출했다.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해빛은 공기가 투명함에 따라 더욱 풍부한 침투력을 가지는것 같았다. 단풍 든 나무잎들이 맑은 개울물에 떨어져내렸다가 눈 깜빡 할 새에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삼림의 모든것이 안정적이고 따스해보였다. 동물들은 차디찬 북방의 겨울이 돌아오기전에 에너지를 보충하느라고 바빴다. 숙영지의 순록들도 더 이상 곰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가을이면 곰들은 열매가 주렁진 관목림에 들어앉아 과즙이 줄줄 흐르는 과일들을 만포식했다. 당분이 많은 그런 과일들은 곰의 배에 들어가 풍부한 지방으로 되여 자리를 잡았다. 첫눈이 내리면 피둥피둥 살이 찐 곰들은 바람을 피할수 있는 나무구멍을 찾아 동면을 하면서 옹근 겨울을 나군 한다. 과일로 축적된 지방으로 곰들은 이듬해 봄까지 버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방울들이 동면에 처한 곰들을 깨운다. 메돼지는 오래동안 개암나무숲을 헤맨다. 탱글탱글 잘 여문 개암을 실컷 주어먹은 메돼지들은 식곤증이 도발해서 나무아래에 들어누워 잠을 잘 때도 있다. 하지만 그놈들은 눈을 뜨기 바쁘게 또 먹이를 주어 먹는다. 갈비대밑에 지방이 두둑하게 올라붙을 때까지 그들은 끊이지 않고 먹이를 주어 먹는다. 삼림의 가을에서 제일 분망한 놈은 그래도 다람쥐라고 해야할것이다. 그놈들은 놀라운 속도로 잘 염근 여러가지 종자들을 굴속으로 끌어들인다. 곧 찾아오게 될 겨울을 위해 먹이장만을 하는것이다. 계절의 신비한 유혹때문인지 부끄럼을 잘 타고 담이 작은 고라니까지도 삼림의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예는 고추잠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흠칫 놀라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작은 엘크는 사실 계절의 변화에 대하여 그렇게 민감한것은 아니였다. 그놈은 늘 할일없이 강가에 앉아있다가는 물에 들어가 수초나 향포를 뜯어 먹은후 숙영지로 돌아가 물에 젖은 몸뚱이를 말리우고 모래불에서 한참씩 싱갱이질을 하고는 또 삼림에 들어가 먹이를 찾아헤맸다.  삼림이 큰지라 어디를 가도 먹이를 찾을수 있었다. 작은 엘크는 날마다 배가 떡 벌어져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작은 엘크는 가끔 혼자 삼림에 들어가 염기구덩이를 찾거나 순록의 무리를 멀리 떨어져 강이나 못가에서 배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순록들과 함께 했다. 작은 엘크는 매일 순록들과 함께 숙영지부근에서 먹이를 찾다가도 황혼녘이면 불타는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군 했다. 거리썬커가 소금주머니를 흔들어 내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작은 엘크는 순록들과 함께 나무사이를 꿰질러 황급히  그곳에 도착한후 앞다투어 거리썬커의 손에서 소금알갱이를 핥아 먹군 했다. 작은 엘크도 삼림의 모든 동물들과 똑 같이 광물질과 무기염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어느새 순록중에서 제일 큰 수순록보다도 더 몸집이 더 크게 자라났다. 머리에 자란 뿔도 놀랍게 컸는데 사람들은 그 뿔이 작은 엘크의 머리를 눌러 쳐들수 없게 할가봐 근심했다. 작은 엘크가 믿건 말건 황야의 기아인 엘크의 몸에서 야성은 이미 사라지고말았지만 야수와도 같은 외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작은 엘크는 나날이 튼실하게 변하고있었다. 목덜미의 가죽은 하루 다르게 처져내렸는데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작은 엘크는 가려운데를 긁으려고 사발아구리만큼  굵은 마른 나무에다 썩썩 몸뚱이를 비볐다. 얼마 힘을 쓰지 않은것 같았는데 그 마른 나무가 우찌끈 끊어지고말았다. 작은 엘크에게는 어느새 놀라운 힘이 자라있었던것이다. 그 엄청난 힘은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것이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 상자를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모르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아직 다 크지 못한 새끼였다. 하지만 해마다 9월이 돌아와 일종의 욕망때문에 흥분하고있는 수놈들의 목이 차츰 실해지고 그놈들이 먹이사슬끝에 처한 육식동물들처럼 거칠게 부르짖을 때 그리고 진종일 두눈을 붉히며 암사슴을 쫓아다닐 때 작은 엘크는 어김없이 그놈들의 눈에 든 가시처럼 치부되였다. 어쩌면 모든 수놈들이 자기들 순록무리에 몸집이 굉장하게 큰 적수가 숨어있다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가 순록무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놈들은 힘을 합쳐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순록들의 뿔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작은 엘크는 풀이 죽어 삼림속으로 깊이 들어가 몸을 숨길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타래쳐오르는 욕망을 주체할수 없어 두눈이 뻘개진 수놈들은 웬간해서는 작은 엘크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별수없이 강변으로 피신해서 강물에 뛰여들어갈수밖에 없었다. 수놈들은 그제야 더 이상 작은 엘크를 쫓을 용기가 없었던지 몸을 돌려 다른 목표물을 찾아 떠났다. 작은 엘크는 날마다 변해가는 세상을 제대로 리해할수 없었다. 평소 그렇게 온순하던 수놈들이 왜 갑자기 흉악하게 변한것일가? 그놈들이 흥분할 때면 바위라도 뚫고 지나갈것만 같았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물속에 서서 수놈들이 당당한 기세로 삼림을 향해 달려가는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작은 엘크는 수놈들이 다시 돌아올가봐 두려워 감히 언덕에 오를수 없었다. 만약 그놈들이 다시 자기를 쫓아온다면 작은 엘크는 그놈들의 발톱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을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물속에 오래도록 서있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조심스럽게 역에 올라와 몸에 묻은 물방울을 털고 발볌발볌 숙영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수놈들은 다시 작은 엘크의 냄새를 맡고 쫓기 시작했다. 작은 엘크의 피난처는 강뿐이였다. 하지만 늦가을의 강물은 이미 살을 에이는듯 차가왔다. 그러한 일은 하루에도 5, 6차례씩 반복되였다. 해마다 순록이 발정하는 계절이면 작은 엘크는 늘 불안한 순간들을 보내야 했다. 갑자기 덮쳐드는 수순록들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엘크는 낮이면 숙영지를 멀리 떠났다가 날이 어두워야 천막부근으로 돌아와 먹이를 얻어 먹었다. 그러한 나날은 순록들의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였다.   첫눈이 내려야 수순록들을 흥분에 떨게 하던 호르몬이 차츰 소실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그제야 다시 순록들의 무리에 끼여 안정된 생활을 할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순록들의 발정기가 일년에 한번뿐인것이였다. 작은 엘크가 세살에 나던 그해 가을, 순록들의 발정기가 되였다. 하루밤사이에 수놈들은 집단적으로 미쳐난듯싶었다. 전날밤에만 해도 그놈들은 여전히 얌전한 순록이였다. 하지만 이튿날아침에 잠에서 깨자 그놈들은 활활 타는듯한 눈길로 작은 엘크를 노려보았다. 그놈들은 차츰 작은 엘크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작은 엘크를 공격한것은 수순록중에서 몸집이 제일 큰 놈이였다. 그놈은 작은 엘크의 옆으로부터 갑자기 덮쳐들었다. 뿔은 사정없이 작은 엘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 방비도 없이 서있던 작은 엘크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옆으로 훌렁 나가 번져졌다. 하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있는 작은 엘크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다시 기여일어났다.  그때까지도 작은 엘크는 자기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지난해 가을, 순록들의 발정기에 껶었던 그 아픈 추억들이 차츰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렸던것이다. 그해는 날씨가 일찍 차가와져서인지 순록들의 발정기도 앞당겨진듯싶었다. 먼저 작은 엘크를 공격했던 그 수놈은 자기의 공격이 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것을 보고 분노해서 자세를 바로 잡고는 다시한번 덮쳐들었다. 돌연적인 공격에 깜짝 놀란 작은 엘크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여 뿔로 그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작은 엘크와  비교해볼 때 그놈의 힘은 많이 부족해보였다. 그번 공격으로 하여 수놈은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듯 아팠지만 작은 엘크는 수놈의 뿌리와 엉켰던 자기의 뿌리를 픽 돌려뽑아냈다. 그 바람에 몇백근이나 되는 수놈이 한켠으로 뿌리워나가 쓰러졌다. 그놈이 다시 일어났을 때 작은 엘크는 보란듯이 머리를 떡하니 쳐들고있었다. 그 순간 작은 엘크는 갑자기 자기의 힘을 발견하게 되였다. 여태껏 자기밖에 없는듯 시뚝거리던 순록들이 그처럼 무맥하다는것에 놀랐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황야에서 온 무한한 힘이 있고 돌멩이같은 몸뚱이가 있으며 튼튼한 목덜미가 있고 큼직한 발굽이 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수놈은 실패를 승인하는듯 머리를 푹숙이고 돌아섰다. 하지만 겨룸이 끝난것은 아니였다. 순록무리에 있는 모든 수놈들이 작은 엘크를 적수로 생각했던것이다. 한마리 또 한마리의 수놈이 작은 엘크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그것은 영원히 끝이 없는 결투와 같이 느껴졌다. 작은 엘크가 금방 한놈을 쓰러뜨리고 자세도 바로 잡지 못하고있을 때 또 다른 놈이 뿌리를 세워들고 공격해왔다. 결투는 점점 더 치렬해졌다. 처음에 옆에서 구경만 하던 거리썬커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어 나무가지를 찾아들고 수놈들을 쫓아냈다. 거리썬커가 금방 천막에 들어가면 수놈들은 또 다시 작은 엘크에게 모여들었다. 거리썬커도 두눈이 충혈되여 미쳐날뛰는 그놈들을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작은 엘크가 손해를 볼 일은 없을것 같았다. 되려 결투에서 작은 엘크가 최선을 다하는것 같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수놈들을 물어 땅에 메치기는 했지만 웬지 요해부위를 물어 뜯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투는 긴긴 밤을 이어졌다. 컴컴한 삼림은 그놈들이 물고 뜯는 소리로 아비규환이 되여있었다. 이튿날아침, 천막밖으로 나온 거리썬커는 순록무리의 수놈들이 모두 숙영지에서 얼마간 떨어진 자작나무숲으로 도망쳐간것을 발견하였다. 모두들 풀이 죽어있었다. 작은 엘크는 어미순록과 새끼순록들 사이에 떡하니 서있었다. 표정이 시뚝해보였지만 두눈에는 역시 피곤기가 가득 몰려있었다. 하루 낮과 하루 밤을 이어진 결투에서 수놈 두마리가 뿔을 한쪽씩 잃어버렸고 한놈이 갈비뼈가 끊어졌지만 작은 엘크의 몸에는 근근히 순록들의 뿔에 긁히운 자리가 약간 났을뿐이였다. 작은 엘크가 순록무리의 모든 수놈들을 격패시켰지만 어미순록들은 작은 엘크에게 꼬물만치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세살에 난 작은 엘크는 더 이상 그제날의 새끼엘크가 아니였다. 황야의 무성한 삼림도 더 이상 그에게 공포의 존재가 아니였다.  그후로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작은 엘크는 순록의 무리에서 나와 삼림속으로 들어가군 했다. 한달이 지나 순록들의 발정기가 끝나면 작은 엘크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듯 순록의 무리에 나타났다. 그 한달간 작은 엘크는 몸이 몹시 축해지군 했는데 겨우 껍질만 붙어있는듯싶었다.        4. 오향   작은 엘크가 4살이 되던해 봄, 산에 덮인 눈은 늦게까지 채 녹지 않았다. 그때, 거리썬커가 장작을 패고있었는데 뾰족하게 생긴 나무토막이 날아와 장화를 들이쳐 발에 작은 상처를 냈다. 거리썬커는 상처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 처치를 했다. 이튿날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처를 입었던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불에 달구어가지고 작 익은 밤처럼 불깃불깃하게 부어오른 부위를 째고 안에서 나무가시를 뽑아낸후 알콜로 깨끗하게 상처자국을 닦았다. 하지만 상처자국은 벌써 감염되여있었다. 발은 놀라운 속도로 무섭게 부어올랐다. 산아래의 오향에 집이 있었지만 거리썬커는 평소 정말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면 마을로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간다고 해도 보통 집에서 밤을 새는 법이 없었다. 집에는 누구도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감염된 상처때문에 마을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날아침, 거리썬커는 휘붐히 밝아오는 새벽빛을 밟으며 쩔뚝쩔뚝 천막을 나섰다. 작은 엘크가 천막앞에 서서 불안한 눈길로 거리썬커를 바라보고있었는데 머리에는 성에가 한벌 덮여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천막에서 나온것을 보고 흥분해 하며 대포소리를 방불케 하는 높은 소리로 재채기를 한후 거리썬커의 품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하얀 성에들이 후두둑 땅에 떨어져내렸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머리를 톡톡 다독여주었다. 거리썬커가 천천히 산길을 내려갈 때 작은 엘크는 꼬리없는 사냥개를 따라 걸음을 재우쳤다. 거리썬커의 발걸음은 매우 더뎠다. 그는 걷다가도 개울을 만나기만 하면 신음소리를 내면서 개울가로 다가가 풍덩 주저앉았다. 그는 장화며 양말이며를 모두 벗고 뻘겋게 부어오른 발을 차디찬 개울물에 담구었다. 그러면 열이나고 아픈 증상이 다소 가라앉는듯 했다. 그렇게 겨우 오향으로 통하는 모래를 편 길가에 이르렀을 때 태양은 이미 한발이나 떠오른 뒤였다. 거리썬커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엘크는 끝까지 거리썬커를 따라갈 모양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간 주저했다. 처음에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목재를 수송하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모래를 편 길가에까지 왔다가 혼자서 숙영지로 돌아갈것이라고 믿었던것이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도무지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엘크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간다는것은 어찌보나 타당한 처사가 아닌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자세히 작은 엘크를 여겨보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그처럼 커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평소 날마다 보다나니 그새 작은 엘크가 성장하는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뿐이였다. 거리썬커의 눈앞에 서있는것은 윤기가 흐르는 갈색의 털을 가진 커다란 몸뚱이의 야수였다. 다 큰 수소처럼 건장해보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에게는 수소의 다리보다도 더 튼실한 긴 다리가 있었다. 작은 엘크의 울퉁불퉁하게 생긴 머리에 돋아난 두개의 뿔은 거인이 내민 두개의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마을로 데리고 내려갔다가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할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큰 소리를 쳐 작은 엘크를 숙영지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또 작은 엘크대로 도무지 거리썬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평소 거리썬커가 사냥을 가거나 순록들을 방목하러 나갈 때면 작은 엘크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따라나서지 않았었다. 아마도 아침에 거리썬커가 부드럽게 등을 다독여준것을 그놈이 다른 뜻으로 리해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려온 길이 전보다 다른 방향으로 향해져서 그놈이 뭔가 근심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 길이 어디로 통한다는것을 알게 되면 작은 엘크가 근심을 하는것도 당연할것이였다. 그 길을 따라 앞으로 줄곧 가게 되면 삼림이 점점 적어지고 야수와 새들이 갈수록 적어지는 반면에 불과 쇠붙이냄새가 짙어질것이였다. 그 길의 한쪽끝은 바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였다. 작은 엘크는 그 아침이 다른 날과 다르기때문에 반드시 주인인 거리썬커를 바싹 따라야만 안전할것이라고 믿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를 쫓는 거리썬커의 높은 목소리가 삼림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아침먹이를 먹던 다람쥐가 놀라서 소나무꼭대기에까지 치달아올라 모습을 숨겼다. 장밤을 바삐 보내고 나무우에 올라가 휴식을 하던 올빼미도 불만스러운듯 거리썬커를 노려보다가 조용히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작은 엘크는 그 시각 어릴 때 천막을 마구 뒤흔들어놓던 그러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썬커가 어떻게 고함을 질러도 작은 엘크는 뒤에 맞춤하게 떨어져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게속 따라왔다. 발이 불편한 거리썬커는 몇발자국 쫓아가다가도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거리썬커는 그 시각 작은 엘크를 두고 정말 어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추겨 작은 엘크를 쫓아버리게 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가 쩔뚝거리면서 높은 소리로 작은 엘크를 쫓는것을 보고 웬 일인지 몰라 몹시 궁금해 했다. 게다가 또 작은 엘크를 쫓으라는 거리썬커의 명령을 받고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의 명령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른바 주인의 어떤 명령은 반드시 집행하고 어떤 명령은 보류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이를테면 주인이 도망치는 사냥물을 쫓아가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곰이 숙영지에 들어와서 순록무리를 향해 포효를 하고있다면 만사를 불구하고 충격해야 하는것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런 일에 종래로 주저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이 함께 사는 작은 엘크를 쫓아버리라고 명령을 내린데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주저할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주인의 명령은 천막안에 들어와 먹이를 훔치는 순록들을 쫓아버리라는 경우와 똑 같았던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은 나를 보고 사냥물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린것은 아닐가?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것도 불가능한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근에는 근본 사냥물의 냄새가 없었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체력과 시력이 전보다 못한것은 당연한것이였다. 하지만 후각은 조금도 퇴화되지 않고있었다. 그 부근에는 절대 숨어있는 사냥물이 없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엘크가 사냥물이란 말인가?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가 숙영지에 나타난후 꼬리 없는 사냥개는 호기심이 동해 그를 쫓아다니다가 번마다 거리썬커에게 된욕을 보았던것이다. 거리썬커가 다시 독촉을 하자 꼬리 없는 사냥개도 어딘가 조급해났다. 그는 어둡게 으르렁거리면서 작은 엘크를 향해 덮쳐들었다. 그 시각 작은 엘크는 전에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쫓기우던 새끼 엘크가 아니였다. 작은 엘크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공격을 물리칠수 있는 충족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례의적으로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리썬커가 계속 추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다시 덮쳐들어 작은 엘크의 앞다리를 슬쩍 무는 시늉을 해서 거리썬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순간 작은 엘크는 슬쩍 머리를 숙여 커다란 뿔로 꼬리 없는 사냥개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만약 근근히 막아보려는 생각이 아니였다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진작 배가 찢어졌거나 저쪽으로 훌렁 나가 넘어지고말았을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의 힘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진작 젊을 때 메돼지를 쫓아 잡던 그러한 힘을 잃어가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공격에 대한 반응도 전처럼 민감하지 못하였다. 아니라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가 미처 반응을 하기전에 앞다리를 물어버라고 슬쩍 비켜섰을것이다. 사실말이지 젊을 때라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가 아니라 미친 곰이 덮쳐든대도 슬슬 골려줄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꼬리 없는 사냥개는 필경 너무 늙어있었다. 그럴만한 힘도 없었고 그렇게 날렵하지도 못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미안한듯 거리썬커를 훔쳐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나무리려는 뜻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어쩌면 거리썬커도 꼬리 없는 사냥개도 몸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솟아나는 작은 엘크를 두고 스스로 무기력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거리썬커는 상처를 입은 발이 너무도 불편해서 잠간을 걷고는 개울에 내려가 발을 물에 담구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 낮, 하루밤을 걸어 이튿날아침에야 마을어구에 도착했다. 해빛이 산등성이에 있는 나무가지를 비출 때 그들은 마을의 륜곽을 어렴풋이 볼수 있었다. 아담한 마을에 들어 앉은 나무집들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오향은 삼림에 사는 오원커부족의 산아래에 있는 주둔지였다. 그들이 오향에 들어서면서 보니 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평소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서면 개들이 먼저 발견하군 했다. 그날도 례외가 아니였다. 멀리에서 개 한마리가 먼저 거리썬커네를 발견하게 되였다. 사람 하나, 개 한마리 그리고 몸뚱이가 커다란 야수 한마리로 구성된 거리썬커네 대오는 오향의 그 개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어딘가 공포감을 던져주는듯싶었다. 거리썬커네 대오를 처음 발견한 개가 기승스럽게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마을의 다른 개들로 그곳으로 몰려왔다. 어쩌면 오향에 사는 모든 개들이 다 모여온듯싶었다. 오향에 사는 모든 가정들에서는 한마리 혹은 그 이상의 개들을 기르고있었다. 그놈들은 앞다투어 짖어대는것으로 거리썬커네를 환영하는것 같았다. 사실 사람과 개는 그렇게 생소한 사이가 아니였다. 하지만 거리썬커를 따르는 작은 엘크는 그놈들에게 큰 위협을 주는 모양이였다. 오향에 사는 어린 개들은 아직 삼림에 들어가 엘크와 같은 몸집이 큰 야수들을 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진종일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별 할일이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오향의 개들은 작은 엘크에게서 나는 그 냄새가 사뭇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것 같았다. 오향에 사는 늙은 개들은 몸집이 커다란 그 야수가 바로 엘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놈들은 젊었을 때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눈알을 잃는 대가를 내면서 엘크를 포위공격하여 잡은 경력이 었었던것이다. 그놈들은 또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서 나는 냄새에 대해서도 매우 익숙한듯 했다. 오향의 개들은 처음에 사람과 개가 왜 엘크라는 몸집이 큰 야수와 함께 마을에 내려왔는가 하는것을 못내 이상스럽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인차 오래동안 삼림을 떠나있다가 다시 야수를 만났다는 흥분에 밀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모양이였다. 먼저 나이 지긋한 개들이 작은 엘크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그 시각, 작은 엘크는 처음 보는 오향의 모든것에 큰 호기심을 느끼고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나무집이며 울안이며 골목길이며 그리고 전에 맡아보지 못했던 이상한 냄새들이며가 모두 신비하게 느껴진것 같았다. 그러한것들은 모두 작은 엘크가 처음으로 접촉하는것이였다. 처음 보는 생소한 물건과 냄새가 주의력을 분산시켰던지 처음에 작은 엘크는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는 개무리들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작은 엘크는 그놈들이 바로 꼬리 없는 사냥개와 같은 동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다른것이라면 모두에게 꼬리 하나씩 더 붙어있다는것뿐이였다. 거리썬커의 질책과 꼬리 없는 사냥개의 울부짖음 그리고 오향의 개무리들의 포효속에서 작은 엘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듯 미약하게 들렸다. 오향의 개들은 이미 피비린내를 맡은 늑대들처럼 흉악하게 송곳이를 들어내며 거리를 줄여왔다. 기진맥진한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는 오향의 개들에게 밀리워 한 곳에 몰려섰다. 젊었을 때 사냥군을 따라 삼림을 질주하던 나이 많은 개들이 앞에 섰다. 그놈들은 훈련을 받은 사냥개들처럼 빙 둘러서서 안으로 조여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개들이 늙은 개들의 뒤에 빠싹 붙어서서 으르렁거렸다. 만약 늙은 사냥개들이 앞에서서 위용을 떨치지 않는다면 젊은 사냥개들은 감히 작은 엘크에게 다가들지 못할것이였다. 작은 엘크의 몸에서 풍기는 야수의 자신감과 황야의 거친 분위기는 오향의 젊은 개들로 하여금 저으기 주눅이 들게 했던것이다. 앞에 섰던 개가 갑자기 습격을 해왔다. 작은 엘크가 아직 영문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있을 때 그놈의 예리한 이발이 뒤다리를 물어 뜯었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놀라 펄쩍 올리뛰면서 뒤다리를 물고있는 그놈을 한쪽에 뿌려쳤다. 그때 다른 한놈이 또 작은 엘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어 앞다리에 이발을 박았다.  삼림을 벗어난지 오래 된 오향의 사냥개들은 단결합작하여 사냥물을 포획할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게 된것으로 하여 사뭇 흥분하는듯 했다. 그놈들은 평소 각자의 울안에 엎드려 망망한 삼림을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작은 엘크를 둘러싸고 그놈들은 단합이 참 잘 되였다. 그러한 포위공격은 작은 엘크가 처음 당해보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일시 어느쪽을 중시해야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숙영지에 있을 때 작은 엘크는 한번에 순록 한놈씩 상대하였기에 산지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경험이 없었던것이니다. 작은 엘크는 풍성한 털때문에 심한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여전히 모양은 볼썽사납게 변했다. 작은 엘크는 등을 물어 뜯으려고 두눈이 혈안이 되여 달려드는 오향의 사냥개들의 포위를 간신히 벗어나 강변으로 도망쳐서 풍덩 강물에 뛰여들었다.  오향의 사냥개들은 강변까지 쫓아와서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물에 몸을 담근 작은 엘크를 노려보았다. 그놈들도 물에서는 자기들이 엘크의 적수가 못될것이라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 속도로 강저쪽기슭으로 헤염을 쳐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바라보면서도 그닥 급해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은 숙영지로 가는  방향이였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숙영지로 돌아가는게 오향에 있기보다 훨씬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향은 필경 작은 엘크가 있을 곳이 아니였던것이다. 오향에 있는 거리썬커의 집은 비워둔지가 벌써 몇년이 잘되였지만 줄곧 이웃들이 보살펴왔기에 깨긋하게 정리되여있었다. 거리썬커는 이웃집에 가서 장작을 한아름 안아다가 불을 지폈다. 나무집에는 간단한 침대와 나무걸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삼림속의 천막에서 오래동안 생활해온 거리썬커는 지붕이 있는 나무집이 훨씬 더 호화로운 느낌이 들다가도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리썬커는 오전에 향위생소로 갔다. 의사는 거리썬커의 발에 난 상처를 째고 곪긴 부위를 도려낸후 소독을 했다. 그후 적점주사를 꽂아주었다. 소염을 해야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오향에서 한달쯤 휴식을 해야 할것 같았다. 점심밥을 먹고난 거리썬커는 울안에 엎드려있는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먹이를 준후 집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불편한 발로 하루 낮, 하루 밤을 걸어서 오향에 도착한 거리썬커는 온몸의 뼈들이 모두 각이 나간 나무걸상처럼 어느때 뽑혀나갈지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거리썬커는 부지중 젊었을 때를 떠올렸다. 어느한번은 상처를 입은 사슴을 붙잡기 위해 이틀 낮, 이틀 밤을 쫓아다닌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은 힘들지 않았었다. 거리썬커는 끝내 상처집은 그 사슴을 붙잡아 메고 숙영지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비록 삼림이라고 하지만 세월은 역시 사람들에게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것 같았다.   인간의 쇠락은 반드시 찾아오는 계절과 같은것이여서 싫다고 거절할수도 없는것이였다. 오향의 나무집들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를 때 거리썬커는 밖으로 나와 황혼으로 붉게 물든 뭇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거리썬커는 저도 몰래 작은 엘크가 근심되였다. 작은 엘크가 용케 숙영지를 찾을수 있을가? 혹시 길에서 맹수를 만나 불행을 당하는것은 아닐가? 거리썬커는 삼림에서 작은 엘크에게 해를 끼칠수 있는 동물은 곰밖에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때는 바로 곰들이 금방 동면을 끝내고 사처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계절이였다. 저녁편이 다 되여서야 거리썬커는 피곤이 좀 풀린것 같았다. 그제야 거리썬커는 자기가 누워있는 침대가 너무 폭신폭신해서 되려 불편함이 느껴졌다. 거리썬커는 몇번이고 뒤척거리다가 저도 몰래 스르르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거리썬커는 갑자기 무엇인가 버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오래동안 삼림에서 생활해온 거리썬커는 약간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소리라쳐 잠을 깨군 했다. 거리썬커는 손을 더듬어 총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거리썬커는 그곳이 삼림속의 천막이 아니라 따뜻한 나무집이라는것을 생각했다. 총은 자기전에 진작 벽에다가 걸어두었던것이다. 발은 금방 산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걸음을 옮기려면 여전히 쩔뚝거려야 했다. 거리썬커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밀어열었다. 교교한 달빛아래 울안에는 하얀 빛이 가득 깔려있었다. 성에가 살짝 내려앉은듯싶었다. 검으스름한 그림자가 울안에 떡 버티고 서있었는데 그곳에서 뽀얀 김이 모락모락 서려오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그곳을 향해 다가가다가 놀라 굳어졌다. 그놈은 작은 엘크였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머리를 숙이고 서서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어쩌면 인사를 건네는듯싶었다. 거리썬커가 나온것을 본 작은 엘크는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썬커는 손을 내밀어 작은 엘크의 목을 다독여주었다. 그때 작은 엘크의 온몸은 몽땅 젖어있었다. 금방 강을 건너 달려온것 같았다. 몸에서는 계속 따듯한 김이 피여올랐다. 강물이 작은 엘크의 몸에서 나던 냄새를 씻어버렸던지 오향의 사냥개들은 그때 다른 냄새를 맡아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향의 그 밤은 광란의 밤으로 변해버렸을것이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의 손을 찾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작은 엘크의 코등을 만져주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에게 먹이를 찾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오향의 사냥개무리를 따돌리고 용케 자기의 나무집을 찾아온것이 참 대견스럽게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는 분명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의 냄새를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이튿날아침, 작은 엘크는 일찍 잠을 깼다. 간밤에 작은 엘크는 꼬리 없는 사냥개와 함께 울안에서 잠을 잤던것이다. 산아래는 삼림의 숙영지보다 좀 따스한것 같았다. 이틀이나 제대로 된 먹이를 먹지 못했던 작은 엘크에게 지난밤 거리썬커가 던져준 빵은 그야말로 보잘것 없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너무도 피곤한데서 울안에 엎드려 잠을 청할수 밖에 없었다. 푸름푸름한 새벽 빛을 밟으며 작은 엘크는 울안을 나섰다.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 단잠을 자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머리를 약간 들어 작은 엘크를 살펴보다가 다시 머리를 배에 붙이고 잠이 들었다. 늙은 개는 충족한 수면이 필요했던것이다.   적막이 흐르는 산길에서 작은 엘크는 잠간 어디로 갈지를 몰라 주저했다. 하지만 그는 인차 자기가 가야할 방향을 가려냈다. 그곳은 오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못이였는데 안에는 수초와 달콤한 부들이 가득했다. 그곳은 어제 도망을 치려고 급급히 넘었던 그 강의 아래쪽이였다. 못에 들어가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는데는 그곳이 매우 안전했다. 그리고 배가 불룩하게 수초를 뜯어먹고 그 달콤한 맛을 음미하며 못가에 오르기도 참으로 편리한 곳이였다. 비록 배가 뽈록하게 먹이를 먹었지만 작은 엘크는 그때가지도 완전한 포만감을 느낄수 없었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그곳은 필경 생소한것이였다. 삼림속의 숙영지와 비교해볼 때 그곳에는 집이며 먼지가 너무 많았다. 작은 엘크는 급히 거리썬커의 곁으로 돌아가고싶었다. 따스한 해살이 작은 엘크의 몸에 맺혔던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모두 걷어가버렸다. 흥겨운 기분으로 걸음을 다그치고있던 작은 엘크는 그때 미처 오향의 사냥개들이 모두 잠에서 깼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영문도 알아차릴 새 없이 자기가 오향의 사냥개들에게 포위되여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위험이 눈앞에 박두한것이다. 오향의 사냥개들은 한놈도 빠짐없이 모여든듯싶었다. 무슨 집회를 방불케 했다. 앞에는 늙은 사냥개들이 서있었다. 그들은 음침한 표정으로 웃입술을 말아올리고 으르렁으르렁 거친 소리를 냈다. 늙은 사냥개들의 뒤에 붙어선 다른 개들도 모두 흉악한 표정으로 포효하고있었다. 그 시각 작은 엘크의 옆에는 거리썬커도 꼬리 없는 사냥개도 없었다. 하지만 오향의 사냥개들은 섣불리 다가들지 못했다. 그들은 온몸이 물에 젖어있는 작은 엘크가 굉장한 힘을 가진 야수로 느껴졌던것이다. 해빛에 반짝이는 작은 엘크의 갈색 털이 그처럼 위엄있어보였다. 작은 엘크의 몸에서는 한번도 삼림속에 들어가본적이 없는 오향의 사냥개들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야성이 살아숨쉬고있었다. 아직 배가 채 부르지 않은 작은 엘크는 한시바삐 거리썬커가 있는 작은 울안으로 가고싶었다. 그곳에 가서 숙영지에서처럼 거리썬커가 던져주는 빵을 먹고싶었다. 작은 엘크는 앞을 바라고 걸음을 다그쳤다.  사냥개들도 작은 엘크를 따라 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시종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그것은 하나의 가상적인 공간과 같은것이였다. 그놈들은 시종 작은 엘크를 중간에 넣고 든든한 울타리를 형성하고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가 앞만 바라보고 달리느라 머리 한번 돌려보지 않고있는데 갑자기 또 한마리의 늙은 사냥개가 덮쳐들더니 뒤다리를 덥썩 물어 당겼다. 늙은 사냥개가 몇대 남지 않은 이발로 그처럼 멋진 동작을 완성한것으로 하여 득의양양해 하고있을 때 작은 엘크는 반사적으로 늙은 사냥개에게 물리워 있는 뒤다리를 탁 잡아챘다가 다시 한번 힘껏 날렸다. 늙은 사냥개는 어쩔 사이 없이 저쪽으로 나가 털썩 하고 떨어져내렸다. 그 바람에 땅에서 뽀얀 먼지가 날아올랐다. 다른 사냥개들이 앞다투어 작은 엘크에게 달려들었다. 일부 늙은 사냥개들은 젊은 날의 휘황했던 순간들을 그리워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젊은 사냥개들은 하루빨리 용기를 키워 삼림속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얻고싶어하는 모양이였다.   사냥개들의 힘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작은 엘크는 여유작작 거리썬커가 있는 울안으로 들어갔다. 오향의 사냥개들이 작은 엘크를 놓칠세라 바짝 쫓아와 덮칠 기회를 노렸다. 그놈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최대의 능력을 다 발휘하여 작은 엘크의 넓은 등이며 튼실한 다리며 근육이 불끈 솟은 목덜미며 지어는 치렁처링한 꼬리까지도 물어 뜯고싶어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그놈들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여유작작 걸음을 옮겼다. 작은 엘크의 큰 뿔은 흐늘흐늘 춤을 추는 큰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튼실한 발굽은 둥글둥글한 몽둥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에 비해 작은 엘크의 뒤를 따라오는 사냥개들은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을 보는듯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울안으로 들어오는 동정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작은 엘크는 뒤를 따라는 마지막 사냥개를 걷어차서 이웃집 지붕우에 뿌려던진 뒤였다. 그놈은 지붕우에서 정신을 차린후 일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인차 자기의 처지를 감안하고는 놀라서 지붕우에 엎드린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놈은 종래로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밖으로 나오는것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삼림의 숙영지에 있을 때처럼 기대에 차 작은 눈을 껌뻑거리며 거리썬커의 두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잠간 남은 위의 공간을 채울 빵이나 죽을 바라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이미 섬유질을 배 부르게 먹은후 사람들이 먹는 탄수화합물을 약간씩 먹는것에 습관이 되였던것이다. 그날아침, 오향에 사는 사람들은 작은 엘크가 식은죽 먹기로 오향의 사냥개들을 소탕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백씨도 구경군들속에 있었다. 이튿날, 백씨는 거리썬커를 찾아갔다.  오향은 크지 않은 동네였다. 거리썬커는 비록 몇년 동안 마을에 내려오지 않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백씨를 본 기억이 없었다. 거리썬커는 흐릿하고 음침한 백씨의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씨는 거리썬커에게 뭐라고 많은 말을 했다. 거리썬커는 한족말을 잘 몰랐지만 그래도 백씨가 작은 엘크를 팔라고 청을 든다는것만은 짐작할수 있었다. 거리썬커는 여직 아무 물건도 팔아본적이 없었다. 하기에 작은 엘크를 사겠다고 나서는 백씨를 앞에 두고 일시 어떻게 답변했으면 좋을지 몰라 주저했다. 물론 거리썬커는 뭐라고 말할수도 없었다. 거리썬커가 한족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것처럼 백씨도 오원커족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수 없을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침묵으로 말이 많은 백씨를 상대하며 조용히 총을 닦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것을 눈치챈 백씨는 몸을 일으켰다. 거리썬커네 집을 떠날 때 백씨는 아쉬운듯 울안에 엎드려 있는 작은 엘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백씨는 지난번에 순록 두마리를 대흥안령에 가져다 팔아서 번 얼마 안되는 돈을 진작 술을 마시는데 다 처넣었던것이다. 그번에 팔아넘긴것은 보통 순록이였다. 하지만 백씨가 지금 눈독을 들이고있는것은 엘크이다. 만약 작은 엘크를 끌어다 팔수만 있다면 꼭 백씨가 1년동안 술을 사 마실 돈이 생길것이였다. 백씨는 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괴벽한 성격을 가진 거리썬커를  삶아낼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백씨의 그 야망은 시종 성공을 하지 못했다. 오원커족남자들을 넘어뜨리는데 제일 효험이 있다는 술도 거리썬커에게는 조금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도 백씨는 술의 힘을 굳게 믿고있었다. 아무리 성정이 곧은 사람이라 해도 술을 취하게 먹여놓으면 움켜쥔 물건을 손쉽게 내놓을것이라고 믿었던것이다. 지난번에 대흥안령에 내다가 팔아버린 그 순록 두마리도 백씨가 순록을 기르는 한 나그네에게 술을 가득 먹인후 상상도 못할 싼 가격으로 산것이였다. 백씨는 그 가격이 양 두마리의 가격도 채 안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흐리멍텅한 기분에 순록 두마리를 헐값에 팔아버린 그 사람은 그후 며칠이나 후회를 했다. 오원커족사람들은 세세대대로 순록을 파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백씨마저도 그 순록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술병을 들고 집에 들어서는 백씨를 보고도 머리 한번 끄덕이지 않았다. 그때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갈고있었다. 백씨는 또 그럴듯하게 자기의 생각을 피력해갔다. 이를테면 작은 엘크를 자기에게 팔면 삼림과 진배없는 동물락원에서 잘 먹이고 잘 재우며 행복하게 키울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일년 사시절 콩크리트속에서 사는 도시사람들은 작은 엘크를 통하여 삼림야수의 진면목을 보아내게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리썬커는 백씨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한마디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흥이 도도해서 열변을 토한 백씨는 자기가 또 헛물을 켠것이라고 판단했다. 급해난 백씨는 고무줄로 중간을 묶은 돈다발을 꺼내여 거리썬커의 호주머니에 넣어주려고 했다.  백씨의 행동이 드디여 거리썬커를 노하게 했다. 거리썬커는 백씨에게 머리도 돌리지 않고 돈을 꺼내 홱 팽개쳤다. 백씨는 너무도 놀라 멍해졌다. 그때 거리썬커는 손톱으로 칼날이 잘 갈아졌는지를 가늠하고있었다. 거리썬커의 옆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이 몹시 성나있다는것을 읽어낸듯싶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갑자기 졸음을 털어버리고 목덜미의 털을 빳빳이 치켜세우며 상처자국이 가득한 코등가죽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입술을 말아올린후 날카로운 송곳이를 들어냈다. 목에서는 으르렁으르렁 음침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만약 거리썬커가 약간 눈짓이라도 했다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끝없이 주절거리는 백씨에게 달려들어 아작아작 뼈라도 씹어 삼켰을것이다. 백씨는 속으로 거리썬커를 세상물정을 모르는 괴벽한 령감이라고 욕했고 꼬리 없는 사냥개를 빨리 뒈져버리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는 바닥에 널린 돈을 다 주은후 가지고갔던 술병을 찾아들고 급급히 거리썬커네 나무집에서 나왔다. 울안에서 볕쪼임을 하던 작은 엘크는 커다란 머리를 천천히 들어 집안에서 나오는 백씨를 하찮게 쓸어보았다.  백씨는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어찌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백씨는 문을 나서기전에 이웃들에게 거리썬커의 성격에 대하여 물은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웃들은 거리썬커를 두고 결정한 일은 죽어도 번복하지 않는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때 백씨는 설마 하고 깊이 듣지 않았었는데 과연 톡톡히 꼴을 먹은것이다. 백씨는 그저 그렇게 손을 놓는다는게 마음에 걸렸다. 작은 엘크를 산밖에 내다가 팔아서 큰 돈을 벌어보고싶은 유혹이 시종 백씨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던것이다. 백씨는 잠간 주저하다가 다시 나무집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차 다시 들어간다 해도 나무껍질같은 거리썬커의 거친 얼굴을 한번 더 보게 될뿐 희망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씨는 푸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백씨는 거리썬커네 울안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갑자기 나무집옆에 있는 작은 창고를 발견하게 되였다. 창고문은 닫겨져있었는데 우에 녹이 쓴 자물쇠가 걸려져있었다. 백씨는 전날 거리썬커가 두병 한주머니를 그안에 넣던 생각이 났다. 백씨의 머리에는 순간 음험한 계획이 모양을 잡아갔다. 그는 주저없이 창고를 향해 다가갔다. 백씨는 금방 오향에 왔던 어느날 양을 잡은적이 있었다. 백씨가 칼을 들고 다가서자 놀란 양은 몸부림을 치다가 백씨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다시 기여일어난 백씨는 그 양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산채로 껍질을 발라냈다. 숱한 애들이 그것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껍질을 절반도 넘게 벗기우고도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며 피를 흘리는 양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애들을 쫓으면서 중얼거렸다. “저 순진한 애들의 몸에 악귀가 들어가면 어쩌누…” 백씨의 몸에는 정말 나쁜 령혼이 얼마간 들어있는듯싶었지만 그 자신은 시종 그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는 살그머니 창고문을 당겨열었다. 찌익- 하는 문소리에 백씨는 그만 제풀에 놀라 식은땀을 쫙 흘렸다. 그는 인차 머리를 돌리고 집안을 훔쳐보았다. 거리썬커가 집안에서 창문을 등지고 앉아 칼을 가느라 밖에다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백씨는 분명 꼬리 없는 사냥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뒤에 서서 백씨를 내다보고있었던것이다. 순간 백씨의 머리에는 오향의 한 사냥군과 함께 술을 마실 때 들은 꼬리 없는 사냥개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엄동설한의 어느날 거리썬커가 삼림에서 주은 강아지가 자란것이였다. 그때 강아지는 얼어서 마지막 숨을 톱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웃웃을 헤치고 강아지를 인차 품에 넣었다. 강아지가 눈을 뜨자 거리썬커는 사슴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 강아지가 자라서 오향에서는 보기드문 용맹한 사냥개로 된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을 나가서 령활하게 거리썬커를 협조했다. 겨울이면 가끔 두툼한 눈속에서 고라니를 잡아 숙영지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해 이른 봄, 곰 한마리가 갑자기 숙영지를 습격한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급하게 총알을 재우다가 그만 실수하고말았다. 곰이 거리썬커를 공격하려는 찰나, 꼬리 없는 사냥개가 곰에게 덮쳐든것이다. 그 기회를 빌어 거리썬커는 다시 탄알을 재운후 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바로 그번 곰과의 결투에서 그놈은 꼬리를 잃게 되였던것이다. 전에 누군가 백씨에게 거리썬커네 집에 갔다가는 장작개비 하나도 거저 들고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귀띔한적이 있었다. 만약 무엇이라도 들고나오다가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들키기만 하면 손목 하나쯤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수시로 꼬리 없는 사냥개가 뛰쳐나와 궁둥이를 물어 뜯을 위험이 도사리고있었지만 백씨 또한 쉽게 그 기회를 놓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창고문을 당겨 열었다. 두병이 그대로 문옆에 놓여져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그것을 발견하고 음침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그것은 공격을 앞두고 취하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마지막 경고였다. 하지만 백씨는 억지로 용기를 내서 꽁꽁 묶어놓은 자루아구리를 열었다. 너무도 긴장해서 온몸에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행운스럽게도 꼬리 없는 사냥개는 웬 일인지 백씨에게 덮쳐들지 않았다. 백씨는 천천히 뒤걸음질을 쳐서 창고를 나와 잰걸음으로 울안을 벗어났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여전히 쫓아올 기미가 아니였다. 끝내 무사히 거리썬커네 울안을 벗어난 백씨는 해방을 받은듯 안도의 숨을 길게 토했다. 백씨는 담장쯤으로 꼬리 없는 사냥개를 훔쳐보았다. 그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창고앞을 한고패 돌아보고는 다시 울안으로 가서 엎드려 잠을 청하는것 같았다. 울안 한구석에 멍하니 엎드려 있던 작은 엘크는 갑자기 바람에 날려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게 되였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고 코방울을 벌름거렸다. 작은 엘크는 그 생소한 냄새가 문이 열려져있는 창고안에서 풍긴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창고쪽으로 다가갔다. 창고문이 너무 낮아 기여들어갈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인차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문옆에 놓인 주머니에 쏠렸다. 작은 엘크는 문안에 머리만 들이밀었다. 무엇인가를 발견한듯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듯한 표정이였다. 백씨는 울밖에서 그 장면을 훔쳐보고있었다.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흥, 내가 가질수 없다면 죽여버리는거야! 그날 저녁무렵에 거리썬커는 칼날이 잘 가라졌는가를 검사하려고 손톱에 그어보았다. 칼날은 손톱에 하얀색 가는 줄을 남겼다. 거리썬커는 흡족한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칼을 칼집에 넣은후 숫돌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이 나온것을 보고 머리를 쳐들더니 약간 남은 꼬리를 살살 저어댔다. 거리썬커는 우호적으로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손을 저어보였다. 그때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괴상하게 네다리를 옆으로 향한채 땅에 누워있는것을 발견했다.   거리썬커는 천천히 작은 엘크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작은 엘크의 배는 보기에 무서울 지경으로 커져있었다. 삽시간에 임신을 한것이나 아닐가 하는 착각이 거리썬커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분명 수컷이였다. 거리썬커는 뚱뚱한 배를 가누지 못해 땅에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는 작은 엘크를 바라보면서 일시 어쩔바를 몰라했다. 땅에 엎드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주인의 긴장한 표정을 보고 큰 일이 발생했다는것을 알게 된것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작은 엘크쪽으로 다가가 코방울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인차 거리썬커를 쳐다보았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그 눈길을 리해할수 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분명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죽음의 그림자가 왜 그곳에 드리워야 했는지 그리고 작은 엘크가 왜 그 불행을 당해야 했는지를  알지 못해 안달아 하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피를 부르지 않은 이상한 죽음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옆에 쭈크리고 앉아 그의 목덜미를 만져보았다. 작은 엘크의 꽛꽛한 털이 거리썬커의 손바닥을 간지를뿐 조금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이미 호흡을 멈추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주머니에 있던 두병을 다 먹은후 또 한통의 물을 다 들이켰던것이다. 최대한 압축된후 말라버린 두병은 작은 엘크의 위에 들어가 놀라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배 터져 죽어버린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오래도록 울안에 앉아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리려 할 때 태양은 이미 산너머에 떨어졌다. 거리썬커는 웬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났고  두다리가 마비되는듯싶었다. 오직 왼쪽다리바깥쪽만이 약간 온기가 돌았다. 그것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줄곧 왼쪽다리옆에 엎드려 거리썬커를 동반해주었기때문이였다.  어둠이 울안을 삼키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집안으로 들어가 칼을 꺼내들었다. 금방 갈아놓은 칼이 그렇게 빨리 용도가 생길지를 몰랐던 거리썬커였다. 거리썬커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껍질도 발라내지 못할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몸집이 너무 크기에 울밖으로 끌어내자 해도 각을 뜯어야 할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뽑아들었지만 일시 어디로부터 칼을 내야할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거리썬커가 제 손으로 잡지 않은 동물을 껍질 벗기는것은 그번이 처음이였다. 껍질을 벗기려면 어디에라도 칼을 대야 했다. 거리썬커는 습관대로 먼저 동맥을 끊어 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꽛꽛하게 굳어버렸는지라 피도 흐를것 같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칼자루를 꽉 틀어잡고 작은 엘크의 목에  칼날을 박았다. 칼을 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렸다. 칼날은 작은 엘크의 목에 있는 두터운 가죽을 약간 찌르고 들어갔다. 거리썬커가 결심을 내리고 다시 칼을 잡은 손에 힘을 가하려고 할 때 놀랍게도 작은 엘크가 푸―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거리썬커는 너무도 놀라 뒤로 벌렁 넘어지고말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도 너무 놀라 펄쩍 올리뛰였다. 날렵한 그 동작은 도무지 늙은 사냥개의 몸에서 연출된것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실 작은 엘크에게 특별한 감정 같은것이 없었다. 당년에 처음 작은 엘크를 발견했을 때 만약 거리썬커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날가로운 발톱으로 작은 엘크의 배를 갈라버렸을것이였다. 죽은것 같던 작은 엘크를 보면서도 꼬리 없는 사냥개는 특별한 느낌 같은것이 없었다. 지어는 거리썬커가 빨리 작은 엘크의 배를 가른후 내장을 뽑아 던져주기를 기다리기까지 했었다. 그날밤, 오향의 많은 사람들은 거리썬커가 꼬리 없는 사냥개와 함께 소처럼 큰 몸뚱이의 야수를 데리고 마을을 벗어나는것을 보았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사냥용칼로 목을 따주는 바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다시 살아난듯싶었다.    그들은 오향을 벗어나 교교한 달빛이 부드럽게 비춰주는 오솔길로 해서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느새 강변에 도착했다. 출렁이는 강물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급급히 흘러갔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목이 마르는지 강변에 가서 머리를 숙이고 물을 마시려고 하다가 거리썬커가 제지 시키기도전에 그만두었다. 작은 엘크는 아까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두병을 한주머니 다 먹어치운후 물도 한통 다 마셨던것이다. 잠간 지나자 목이 타는듯 하던 갈증이 해소되였다.  이어서 작은 엘크가 난생 겪어보지 못한 괴로움이 덮쳐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작은 엘크는 위에서 따뜻한 기포가 올라오는것 같았다. 그것은 사실 위험한 신호였다. 그것은 위에 가득 쌓인 두병사이에 약간 남겨진 쯤으로 올라오는 공기였다. 차츰 물이 공기가 나가버린 모든 공간을 메웠다.  두병이 위속에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미쳐난 야수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배속에서 야수같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뿐이였다. 두려웠다. 작은 엘크는 안간힘을 다해 호흡을 했고 배가죽에 힘을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꾸 커지는 야수같은 그놈을 배에서 축출해버리고싶었다. “야수”는 놀라운 속도로 자라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그 “야수”앞에서 너무도 무기력했다. “야수”가 작은 엘크의 페를 눌러 숨을 바로 쉴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차츰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되는 모양이였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몸마저 움직일수 없었다. 몸이 발굽에다 커다란 돌멩이를 달아매놓은것처럼 무거웠다. 작은 엘크는 끝내 무너지는 돌담처럼 땅에 쓰러지고말았다. 힘껏 호흡을 하느라고 했지만 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없었다. 작은 엘크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고통스러운 추억에서 헤여나오려는듯싶었다. 그날 작은 엘크는 다시 물을 먹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데리고 강변에 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엘크의 배에서는 그새 전쟁이라도 터진듯 연신 꾸르륵꾸르륵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작은 엘크는 그 영문을 모르고 그냥 웬 야수들이 자기의 배에서 싸움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놈들을 나의 배에 들여보냈단 말인가? 작은 엘크는 몸뚱이에 비해 너무도 작은 두눈에 불안한 기색을 가득 담아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거리썬커가 작은 엘크의 머리를 다독여주었다. 그게 큰 위안으로 느껴졌다. 작은 엘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갈어나갔다. 작은 엘크는 한참 걸음을 옮기다가 멈추어 서서 목을 길게 빼들고 고통스럽게 부르르 몸을 떨더니 드디여 꺽 하고 높은 소리로 트림을 했다. 메탄냄새가 지독한 트림이였다. 만약 그때 어디서 불씨라도 날아온다면 작은 엘크의 트림은 그대로 한줄기의 푸른 룡이 되여버릴것이였다. 또 몇걸음을 걷다가 작은 엘크는 다시 불안한 표정으로 멈추어섰다. 그는 어색하게 뒤다리를 벌리고 서더니 홍수라도 터진듯 쏴 오줌을 갈겨댔다. 그 바람에 작은 엘크를 바짝 따르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옆으로 비켜섰다. 홍수와도 같은 그 배설물에 자기의 털이라도 버릴가봐 저어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잠간 걷다가는 오줌을 쏘고 또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북처럼 불거졌던 배는 차츰 꺼져내리기 시작했다. 새벽빛이 푸름푸름 밝아서 삼림의 어둠을 걷어갔다. 작은 엘크는 긴긴 밤을 두고 얼마나 많은 오줌을 쌌는지 모른다. 작은 엘크는 무거워 나는 머리를 간신히 쳐들었다. 어쩌면 산밖에 나가서 장밤을 패며 미친듯이 놀다가 새벽에야 숙영지로 돌아오는듯한 기분이였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피곤했다. 사람과 엘크와 늙은 사냥개는 강변의 삼림속에서 긴긴 하루밤을 걸었다. 옹근 한주일이 지나서야 작은 엘크는 원기를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시로 긴 트림을 했다. 속을 파며 올라오는 트림은 언제나 역한 냄새를 동반했는데 금방 술에서 깬 사람이 다시 술냄새를 맡았을 때처럼 작은 엘크를 힘들게 했다. 트림이 올라올 때마다 작은 엘크는 고통스럽게 두눈을 꼭 감고 반사적으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숙영지에 돌아와서 처음 며칠간, 작은 엘크는 물을 먹는 외에 다른 먹이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작은 엘크는 눈에 뜨이게 축해갔다. 어쩌면 가죽을 씌워놓은 해골을 보는것 같았다. 달빛이 밝던 어느날밤, 작은 엘크는 크게 한번 트림을 하고는 갑자기 못을 향해 뛰여갔다.   이튿날아침, 밖으로 나온 거리썬커는 뿔에 수초를 가득달고있는 작은 엘크를 발견했다. 그놈은 금방 쏟아지기 시작한 해볕에 젖은 몸을 말리우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의 배는 또 눈에 띄이게 불룩해있었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크게 근심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쉽게 소화되는 수초였던것이다. 오향사람들은 인차 몸뚱이가 큰 작은 엘크를 좋아하게되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에게 큰 상처를 입은 몇몇 사냥개들의 주인은 여전히 시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전에 칼로 곰을 잡았다는 전설을 가지고있는 덕망이 높은 거리썬커앞에서 그들도 내놓고 뭐라 시비를 걸지는 못했다. 게다가 상한 발만 나으면 거리썬커가 곧 삼림속으로 들어가게 될것이라고 짐작했던것이다. 오향의 애들도 며칠간은 작은 엘크에게 호기심을 보이더니 인차 흥미를 잃은듯싶었다. 어쩌면 작은 엘크가 얼굴이못생긴 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엉뚱한 짓을 좋아 하는 애들은 가끔 작은 엘크에게 돌멩이 같은것을 쥐여뿌리기도 했다. 그런 돌멩이들이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명중할 때도 있었다. 딴딴한 가죽을 가지고있는 작은 엘크는 비록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애들이 자기에게 왜 돌멩이를 뿌리는지는 리해할수 없었다. 차수가 잦아지자 작은 엘크는 아에 자기에게 돌멩이질을 하는 애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슬렁슬렁 꼬리질을 해서 모기를 쫓으며 볕쪼임을 했다. 성격이 온순한 거대한 몸뚱이의 야수를 앞에 두고 애들도 더 이상의 어뚱한 짓은 생각해낼수 없었다. 전날밤에 강에 가서 수초를 가득 뜯어 먹은 작은 엘크는 그날아침에 몸에 묻은 물기를 말리우면서 천천히 골목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방목을 끝낸 소처럼 늘쩡늘쩡 걸음을 옮겨놓았다. 작은 엘크는 오향에서 더 이상 무서운것이 없었다. 작은 엘크에게 혼뜨검이 난 오향의 사냥개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꼬리를 내리우고 몸을 피했다. 작은 엘크는 로씨야식으로 지은 나무집을 에도는 담장곁에서 예전처럼 잠간 걸음을 멈추고 가려운데를 긁었다. 그때 또 웬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작은  엘크가 종래로 맡아본적이 없는 냄새였다. 작은 엘크는 그 냄새를 따라서 두 담장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갑자기 무슨 물건인가 눈앞을 스쳐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에 중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 바람에 날려온 가는 나무가지나 거미줄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을뿐이였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이 점점 더 많이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누군가 작은 엘크를 향해 던지는 올가미였다. 작은 엘크는 일시 그 물건이 자기에게 어떤 해를 끼치리라는것은 알수 없었지만 자기의 목을 조이는 그 물건이 절대 가는 나무가지나 거미줄이 아니라는것은 확인할수 있었다. 백씨와 진종일 할일없이 빈둥거리는 몇몇 마을청년들이 담장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엘크가 상상처럼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않자 그들이 되려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작은 엘크의 목에 떨어진 올가미가 차츰 죄여졌다. 하지만 아직 호흡이 곤난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그때 목을 죄이는 올가미보다 몇발자국에 하나씩 떨어져있는 당근에 더 흥미가 있었다. 작은 엘크는 혀를 길게 내밀어 눈앞의 당근을 입에 넣은후 인차 또 다른것을 찾아 앞으로 나갔다. 백씨네는 느슨하게 줄을 끌고 천천히 앞으로 갔다. 량쪽담장사이의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낡은 트럭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작재함뒤면이 열려져있었는데 나무판자가 그로부터 땅에 놓여져있었다. 백씨는 당근을 매단 끈을 당겨서 적재함에까지 가져간다면 작은 엘크는 순순히 트럭의 적재함에 오를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때 적재함뒤면을 막고 차를 몰아가면 거액의 돈다발이 손에 들어오는것이였다.  끈에 달린 당근을 하나하나 뜯어 먹으며 앞으로 발걸음을 다그치던 작은 엘크는 트럭앞에까지 와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쳤던것이다. 머리를 들어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본 기억이 없는 물건이였다.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근본 그런 괴물이 없었던것이다. 우에다 방수포를 덮어놓은 적재함은 어두컴컴한 상자처럼 느껴졌다. 작은 엘크는 그러한 방수포는 응당 삼림에 있는 천막에나 덮어놓아야 한다고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도 다른 동물들처럼 벽이나 천정에 대해 천성적으로 공포를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백씨네는 너무도 순조롭게 작은 엘크를 트럭에까지 데려와서였던지 더 이상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엘크가 갑자기 멈추어서자 신경질적으로 작은 엘크의 목을 건 올가미를 힘껏 당겨 억지로 트럭에 끌어올리려고 시도했다. 작은 엘크는 목을 죄여오는 감을 느꼈다. 숙영지에서 작은 엘크가 그렇게 많은 사단을 일으켜도 거리썬커는 종래로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지 않았었다. 작은 엘크가 천막을 뒤집어 엎기직전으로 치달으던 그날 뒤로는 말이다.  작은 엘크는 뒤로 물러서서 한시바삐 숨막히게 하는 그 좁은 골목을 벗어나려고 했다. 작은 엘크는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재채기를 하며 힘있게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 작은 엘크의 작은 두눈에서는 공포의 빛이 흘러나왔고 커다란 발굽은 연신 땅을 두드려댔다. 하지만 백씨네는 그것이 작은 엘크가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들은 적재함량쪽에 두줄로 서서 올가미를 당겼다. 백씨는 작은 엘크가 반항하는것을 보고 어딘가 불만스러워 하는것 같았다. 그는 당기던 줄을 느슨히 벌려들고 작은 엘크의 뒤로 가서 힘껏 발을 날렸다. 백씨는 큼직한 돌멩이를 걷어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엘크의 근육은 실로 돌처럼 단단했던것이다. 백씨는 미처 아파나는 자기의 발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작은 엘크는 머나먼 동굴에 갇쳤다가 뛰쳐나오는 야수의 포효와도 같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렸다. 아까까지도 조금 남아있던 공포의 눈길이 어느새 맹수의 포악한 눈길로 변해있었다. 경험이 있는 사냥군이라면 모두 성난 엘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것이다. 백씨가 작은 엘크의 발굽에 채워 저쪽으로 나가 떨어졌는데도 그 몇몇 청년들은 여전히 손에 쥔 끈을 힘껏 당겼다. 작은 엘크가 몇번 머리를 젖자 끈이 청년들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 바람에 청년들의 손바닥에 뻘건 피자국이 선명하게 생겨났다. 사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그쯤한 끈은 사실거미줄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진작 야수로 변해 미친듯이 포효하고있었다. 그는 그 몇몇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포위망에서 벗어나 한시바삐 거리썬커의 곁으로 돌아가고싶었다. 그들은 여전히 실패를 달가와 하지 않고 작은 엘크를 트럭에 올리실으려고 시도했다. 작은 엘크는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백씨네는 내 꼴 봐라 하는 식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오향사람들이 동정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땅크를 방불케 하는 야수가 트럭과 담장 사이를 미친듯이 오가며 닥치는대로 마구 들이박는것을 똑똑하게 보고있었다. 트럭이 무섭게 흔들렸다. 담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진정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담장이 무너져내렸다. 작은 엘크는 십여개의 올가미를 목에 건채 커다란 네 발굽으로 세상을 다 뒤엎으려는듯 련달아 땅을 굴러대다가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그곳을 벗어났다. 작은 엘크가 떠나간 골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에게 공격을 당한 청년들이 랑패상을 짓고 땅에 너부러져 연신 신음을 했다. 거리썬커가 금방 울안에 나왔을 때 작은 엘크가 금방 포화를 뚫고 나온듯한 모습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목에는 십여개의 올가미가 걸려있었고 뿔에는 너덜너덜해진 바지 하나가 걸여있었다. 거리썬커를 본 작은 엘크는 다소 시름이 놓이는지 멈추어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어릴 때 수순록들에게 당한후 억울한듯 거리썬커를 찾던 그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거리썬커는 부드럽게 작은 엘크의 입과 코를 만져주었고 그의 목에 걸려있는 올가미들을 풀어주었으며 뿔에 걸려있는 너덜너덜해진 바지를 내리워주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더 이상 오향에 둘수 없다고 판단했다. 백씨네가 어느날 또 작은 엘크를 꾀여다 팔아버리려고 시도할것이라 생각되였다. 만약 팔려가기만 하면 작은 엘크는 영원히 철창에 갇혀 살아야 할것이였다. 몇년전에 거리썬커는 새끼곰을 잡아다가 산밖의 동물원에 보낸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산밖에 나갔다 온 사람들을 통해 성년이 된 그 곰이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혀 산다는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황야에서 무적의 힘을 과시해야 할 그놈은 야성을 다 잃어버리고 맨날 구경군들앞에서 뒹굴며 먹이를 동냥한다는것이였다. 그 소문을 들으면서 거리썬커는 일찍 그럴줄을 알았더면 어릴 때 진작 총으로 쏴죽일것을 그랬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거리썬커는 발이 채 아물지 않았지만 그날밤으로 작은 엘크와 꼬리 없는 사냥개를 데리고 숙영지를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5. 봄날의 강물   그것은 작은 엘크가 숙영지로 와서 여섯번째로 맞는 봄이였다. 거리썬커는 웬지 자꾸 졸음이 몰려들었다. 지어는 장작을 패다가도 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눈만 붙이면 오래도록 잠을 잤다. 날이 어두워지면 울안의 기온이 크게 떨어져 온몸이 꽛꽛해났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부드럽게 거리썬커의 얼굴을 핥아주어서야 놀라 잠을 깨군 했다. 처음에 거리썬커는 그저 춘곤증이 작용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음은 보통 춘곤증을 초월하는것 같았다. 어느날 저녁무렵, 거리썬커는 울안에 앉은채로 잠을 자다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얼굴을 핥아주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전에 없던 편안함이 느껴졌다. 해볕이 따스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도 어릴 때 삼림에서 친구들과 함께 유희를 놀던 동년으로 돌아간듯싶었다.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는듯한 환청이 들렸다. 소나무가 파도처럼 설레였다. 하지만 그 순간 거리썬커는 막을수 없는 자연의 힘을 볼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느낄수 있을뿐이였다. 작은 엘크는 숙영지부근에서 배회하고있었다. 내심하게 거리썬커를 기다리는듯싶었다. 거리썬커가 자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작은 엘크를 떠나보내는 순간이였다. 그날아침, 밤도와 배부르게 수초를 먹은 작은 엘크는 만족스러운듯 흥겹게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를 기다리는것은 홍탕을 섞은 죽이였다. 작은 엘크가 후룩후룩 죽을 먹고있을 때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귀등에 숨은 이를 잡아주었다. 작은 엘크는 한통이나 되는 죽을 말끔히 먹어치웠다. 죽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걸음을 걸으니 배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밥을 먹은후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와 작은 엘크를 데리고 길에 올랐다. 거리썬커는 해빛 따스한 삼림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는 벌써 얼마나 오래동안 삼림에서 생활했던지 기억마저 묘연했다. 그는 백여년을 내려오며 순록의 발자국밑에서 생겨난 오솔길들을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있었다. 그는 또 삼림속에 일곱가닥의 뿌리가 달린 아름다운 마록이 살고있고 강물 어느 부근에 살찐 물고기들이 노닌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리고 삼림에서 수시로 들꿩이 날아예고 고라니가 출몰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흥흥 코김을 내쏘며 거리썬커에게 무엇인가를 귀띔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못 들은듯 머리를 수긋하고 앞으로 걸음만 옮기다가 갑자기 자기의 앞을 스쳐 앞으로 달려가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뜻을 몰라 멍해졌다.  거리썬커는 눈앞에 나타난 사냥물도 발견하지 못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만 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수시로 머리를 돌려 삼림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고라니의 달싹거리는 꼬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못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작은 엘크는 별 생각이 없이 거리썬커의 뒤를 묵묵히 따라 걷다가도 금방 머리를 쳐드는 애기풀을 뜯어 먹었다. 그들은 오래동안 걸어서 작은 엘크가 종래로 와본적이 없는 풀밭에 닿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사람의 발자국도 닿은적이 없는 원시삼림이였다. 그곳은 삼림속의 평평한 공지였다. 거리썬커는 쓰러져있는 고목을 당겨다 걸터 앉은후 조심스럽게 총을 걸쳐놓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발치에 엎드렸다. 하지만 힘이 넘쳐나는 작은 엘크는 옆에 있는 자작나무곁으로 다가가 돋아나는 파아란 싹을 뜯어 먹었다. 작은 엘크의 위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같았다. 거리썬커는 그곳에 앉아 오래도록 작은 엘크를 주시했다. 작은 엘크를 금방 숙영지에 데려왔을 때 그놈은 새끼양처럼 작았었는데 지금은 그의 키를 넘어서는 커다란 엘크로 자라난것이다.  거리썬커는 그러한 생각을 굴리면서 찾아드는 어둠을 맞이했다. 거리썬커는 어디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게 생각되였다. 멀지 않은 나무숲에서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오르며 청승스럽게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는 거리썬커에게 손을 쓰게끔 용기를 준것 같았다. 거리썬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크게 소리쳤다. 그때 그의 손끝은 작은 엘크의 코를 가리키고있었다. 작은 엘크는그 소리에 깜작 놀라 멍해졌다. 금방 따서 입에 넣은 파란 싹이 그의 입귀로 흘러내렸다. 숙영지에서처럼 상자를 밟아 마스지도 않았고 물통을 차번지지도 않았으며 천막안에 들어가 시렁을 넘어뜨리지 않았고 먹이를 훔쳐 먹지도 않았는데 거리썬커가 왜 그렇게 성나 소리치는지 알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거리썬커의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코등을 내밀어 거리썬커의 손바닥에 비벼댔다. 거리썬커의 표정에서 구경 무슨 영문인지를 알고싶어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의 꺼칠꺼칠한 손바닥이 작은 엘크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작은 엘크는 흠칫 놀라면서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서 작은 두눈을 크게 치떴다. 그는 방금 발생한 모든것을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작은 엘크는 선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만약 그때 손을 멈춘다면 다시 손을 쓸만한용기를 얻지 못할것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주먹에 힘을 주어 작은 엘크의 목을 들이쳤다. 작은 엘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모든것이 환각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시큰시큰해 나는 손등을 비볐다. 더 이상 작은 엘크를 때릴 힘이 없는것 같았다. 그 시각 거리썬커는 분명 자기가 돌멩이를 내리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거리썬커는 막연한듯 머리를 설레설레 젓다가 뒤로 몇걸음 물러서서 쓰러진 고목에 기대놓았던 총을 주어들었다. 거리썬커는 탄알을 재운후 총탁을 어깨에 올려놓았다. 총알은 작은 엘크에게서 한메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 떨어졌다. 총소리는 고요하던 삼림의 황혼을 들깨워놓고는 인차 사라졌다.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있어서 총소리는 공격의 전주곡이였다. 그놈이 다른 사냥개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기 시작해서부터 총소리는 바로 추격을 의미했고 결투를 상징했으며 피비린내를 떠올리게 했다. 감정을 표달하는데 꼭 필요한 그놈의 꼬리도 총성이 지나간후의 한차례 결투에서 잃은것이였다. 탄알은 땅을 스치며 먼지만 일으켰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기억에 다른 사람이 총을 쏘아 사냥물을 명중하지 못한적은 있어도 거리썬커가 명중하지 못하는 일은 처음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생각할수록 뭐가 무엇인지 통 리해할수 없었다. 주인이 쏜 탄알이 왜 저놈의 발치에 와서 떨어진단 말인가? 그 정도로 명중을 잘 하지 못했단 말인가? 꼬리 없는 사냥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안을 찾을길이 없는지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얼기설기 주름이 간 거리썬커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지났다. 어쩌면 처음 보는듯한 생소한 표정이였다. 평소 거리썬커는 총을 쏜후 얼굴에 아주 평온한 기색을 짓군 했다. 아니라면 다시한번 총을 쏘아 사냥물의 고통을 빨리 끝내줄뿐이였다. 뽀얗게 날리던 먼지가 가라 앉은지 이슥했건만 작은 엘크는 연전히 무슨 일이 발생하고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그는 무거워 나는 머리를 불안하게 저어댔다. 이어 또 총소리가 울렸다. 탄알은 작은 엘크로부터 더욱 가까운 거리에 떨어졌는데 튕겨오른 모래알들이 그의 앞다리를 스쳐지났다. 작은 엘크는 불안해서 진정을 하지 못했다. 그는 크게 뜬 충혈된 두눈으로 뚫어져라 거리썬커를 찍어보았다. 가슴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져올랐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몹시 불안할 때 그러한 동작을 취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줄곧 거리썬커의 옆을 지키고있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알것만 같았다. 거리썬커는 분명 작은 엘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것이였다. 그러자 꼬리 없는 사냥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주인이 작은 엘크에게 총을 쐈는데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주인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생활해온 식구와도 같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추운 겨울밤, 서로 몸을 꼭 붙이고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내던 동지와도 같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꼬리 없는 사냥개는 급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어릴 때 거리썬커와 함께 사냥을 나가군 했는데 사냥물을 보기만 하면 흥분해서 마구 날뛰였다. 하여 총을 쏠 적당한 시기를 놓친 거리썬커는 결김에 꼬리 없는 사냥개를 마구 때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썩 후에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물을 발견하면 앞에서 날뛰지 말고 사냥물이 어디에 숨어있다는것을 알려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바로 그 순간이 소리를 치지 말고 조용하게 있어야 할 때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가슴속에서 올리미는 일종의 충동은 도무지 그를 진정할수 없게 만들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목에 힘을 주며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어쩌면 판단력을 잃은것 같은 주인에게 당신이 죽이려고 하는것은 숙영지에서 매일 함께 살던 작은 엘크라고 엄하게 경고를 하는듯싶었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사냥개의뜻을 전혀 아는것 같지 않았다. 급해난 꼬리 없는 사냥개는 용기를 내서 거리썬커의 다리에 자기의 몸을 힘껏 부딪쳤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동작이였다. 탄알을 총에 재워 들고있던 사냥군이 준비 없는 공격에 넘어라도 지면서  방아쇠를 당긴다면 후과는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정신을 번쩍 차리면서 꼬리 없는 사냥개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너무나도 강력한 발길이였다. 하지만 꼬리 없는 사냥개는 이를 옥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영원히 리해할수 없을것 같은 인간세상을 두고 막연하게 머리만 저을뿐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에게 더 이상 이 세상을 리해할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작은 엘크의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묘준해 또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바로 돌멩이의 옆면을 묘준했던것이다. 총알은 정확하게 돌멩이를 마치면서 귀청을 째는듯한 소리를 냈다. 탄알에 맞아 떨어진 돌조각이 날아서 작은 엘크의 코등을 때렸다. 작은 엘크는 크게 재채기를 하면서 펄쩍 올리솟았다.  이어 작은 엘크는 몇발자국 앞으로 달리다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에는 수많은 의문이 담겨져있었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장본인이 바로 거리썬커의 손에 들려서 파아란 연기를 몰몰 피워올리는 그 총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었다. 이어서 발생한 일들은 거리썬커마저도 놀라서 두눈이 휘둥그레해지게 했다. 거리썬커는 한번 또 한번 탄알을 재웠다. 탄알은 정확하게 작은 엘크의 발굽밑이며 귀옆이며를 스쳐지났다. 거리썬커는 스스로도 자기의 사격술이 그렇게 뛰여난것에 놀라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놀라 미칠것만 같았다. 그는 종래 그렇게 많은 총알이 신변에 떨어져내리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었다. 련달아 터지는 총소리와 코를 파고드는 매캐한 탄약냄새는 작은 엘크를 공포의 수렁으로 몰아가고있었다. 탄알에 맞은 돌멩이며 흙덩이들이 어지럽게 날아와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때렸다. 한순간이였다.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잔물결 출렁이던 작은 엘크의 마음의 호수에 면바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그 파문이 채 가셔지기도전에 작은 엘크가 아득바득 잡아쥐고있던 인류와의 뉴대가 우지끈 부러져나가는듯싶었다. 작은 엘크는 순간 공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년전의 피로 얼룩졌던 그 오후에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에게 어미를 잃고 숙영지로 갔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부르르 몸을 떨며 기승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재현되려는 몇년전의 그 악몽을 떨쳐버리려는것 같았다. 비발치는듯한 탄알도 더 이상 작은 엘크의 중시를 일으키지 못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총을 쏴대는 거리썬커를 절망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한때 나에게 먹이를 주고 잠자리를 주고 사랑을 주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작은 엘크는 낯선 사람을 보는듯싶었다. 종래로 본적이 없던 낯선 사람을 마주한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금방 시동을 건 군함을 방불케 했다. 차츰 속도가 빨라졌다. 네다리가 어울려 돌아가는것이 달리는게 아니라 나는것만 같았다. 삼림속의 울퉁불퉁한 돌밭길에서 자기가 그처럼 빨리 달릴수 있다는게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였다. 나무사이에 엉켜진 풀덩굴도 작은 엘크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삼림은 작은 엘크의 세상이였다. 작은 엘크는 황야에 속하는 맹수였다. 작은 엘크의 적동색 그림자는 눈 깜박 할 새에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썬커는 쉬지 않고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향해 눈먼 총질을 해댔다. 사격은 탄알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였다. 마지막 탄알까지 날려보내고난 거리썬커는 멍하니 서서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콩 볶는듯한 총소리가 여전히 귀청을 째는듯 했다. 거리썬커는 손에 들고있던 총을 스르르 땅에 떨구었다. 그 순간총은 거리썬커에게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초연이 말끔하게 걷혔다. 거리썬커는 총을 주어들고 그에 기대여 겨우 몸을 지탱했다. 거리썬커는 그곳에 뿌리를 내린듯싶었다. 태양은 서서히 산저쪽에 얼굴을 감추고있었다. 삼림에 찬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쳤다. 거리썬커는 그제야 청각이 회복되는것 같았다. 자지러진 총소리와 그 메아리들이 차츰 멀리로 사라지는것 같았다. 바람이 연출하는 소나무파도가 쏴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삼림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거리썬커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찾아 주변을 살폈다. 그놈은 소리없이 거리썬커의 옆에 엎드려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두터운 목덜미가 축 처져내린것을 발견했다. 벌써 몇년째 꼬박 거리썬커를 따른 사냥개였다. 털에도 기름기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옆구리는 쑥 꺼져들어가있었다. 뿌옇한 눈길에는 한점의 정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놈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것이였다. 거리썬커는 뼈속까지 파고드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는 겨우 총에 몸을 의지하여 돌멩이우에 앉았다. 그는 조용히 총을 곁에 내리워놓고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불렀다. 거리썬커는 벌써 오래동안 그렇게 다정하게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부른적이 없었다. 그들은 함께 있은 시간이 너무 오래기에 그렇게 부르지 않고 눈짓 한번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전할수 있었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머리를 돌려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눈길에서 잠간 초점이 사라진듯 해보였다. 거리썬커는 다시한번 조용히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불렀다. 그 부름소리에 초점을 잃은것 같던 꼬리 없는 사냥개의 눈길이 반짝 빛났다. 어릴 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은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그때 바로 지금처럼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부르면서 찾아헤맸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천천히 거리썬커의 곁으로 다가가 무거워 나는 머리를 그의 품에 기댔다.  그들은 함께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서야 그들은 숙영지로 돌아갔다. 봄이 왔다. 공기중에는 언 땅을 녹이는 따듯한 기운이 타래치고있었다.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강에 가로 놓인 나무다리를 지나 또 오래도록 걸음을 옮겼다. 숙영지는 삼림심처에 있었다.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6.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그번 바람은 터지기전에 아무 징조도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정오가 지나자 검은 구름이 고삐를 벗어난 들말처럼 산등성이를 넘어왔다. 바람은 성냥가치를 끊어버리듯 아름드리 나무들을 동강냈다. 산아래의 오향에도 세찬 바람이 불어쳐 몇몇 나무집은 지붕이 날려갔다. 그번 광풍은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갔지만 오향은 전쟁을 거치고난듯 황량한 풍경을 연출해냈다. 날씨가 차츰 맑아지면서 하늘에서 갑자기 눈송이가 날아내렸다. 그것은 6월의 하늘이였다. 오향의 몇몇 젊은이들이 삼림에 있는 숙영지로 갔을 때 거리썬커는 천막앞에 누워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꽛꽛하게 굳어있었다. 그의 손에 그때까지 도끼가 쥐여져있는것으로 보아 장작을 패다가 쓰러진것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여위다 못해 뼈에다 가죽을 씌우놓은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울안에 모여드는것을 보고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의 두눈은 흐려있었는데 이미 머리를 쳐들 힘마저 없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거리썬커의 시신을 숙영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그루의 큰 나무우에 올려놓았다.  풍장은 오원커족인민들의 원시석인 장사방법이였다. 사람들이 거리썬커의 시신을 금방 나무우에 안치했을 때 꼬리 없는 사냥개가 다가왔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거리썬커의 시신을 올려놓은 나무주위를 묵묵히 몇고패 돌더니 소리없이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커리썬커를 따라 몇년을 삼림에서 살아온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후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두눈을 감았다… 오원커족사람들은 소금주머니를 흔들면서 순록을 끌고 새로운 숙영지를 찾아 떠났다. 그후 오원커족사람들은 다시 그 삼림에 들어가지 않았다. 몇년후, 산밖에서 온 한 사냥군이 그 삼림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냥군은 그 삼림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진 엘크 한마리를 보게 되였다. 그놈의 키는 사람의 기보다도 더 컸다. 당황한 가운데 사냥군은 가지고 왔던 탄알을 단숨에 쏴버렸다. 그중 한알이 엘크의 왼쪽귀방울을 뚫고 지나갔다.   사냥군이 정신을 추스리고 결과를 확인하려고 할 때 엘크는 이미 그의 곁에 달려와 있었다. 그놈은 커다란 뿔로 사냥군을 툭 쳐서 저쪽에 뿌리쳤다. 사냥군이 다행히 관목숲에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뼈가 부러졌을것이였다. 사냥군은 머리가 어지러워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그때 엘크가 세수소래아구리만큼한 발굽을 번쩍 들어 사냥군에게 덮쳤다. 죽었구나, 꼼짝 못하고 죽게 되였구나. 얼굴이 파김치로 되여버린 사냥군은 두눈을 꼭 감고 중얼거렸다. 엘크의 커다란 발굽이 사냥군의 머리를 밟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서 뇌수가 터져버릴것이였다. 사냥군은 비록 엘크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본적이 없었지만 엘크에게 채워서 다리가 끊어진 사냥개는 본적이 있었다. 사냥군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놀라서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얼마후 사람들이 사냥군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죽은듯싶었다. 해볕은 그의 얼굴도 빠드리지 않고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얼마후, 사냥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때 엘크의 갈색 뒤모습이 삼림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물론 이 모든것은 그 사냥군이 후에 전설처럼 이야기한것이여서 그 진실성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사냥군의 옆구리에는 확실히 깊은 상처자국이 나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상처자국은 엘크가 자기를 들어 뿌려던질 때 뿔에 긁혀 난것이라고 했다.  그 사냥군을 내놓고도 땔나무를 하는 사람들이나 약재를 캐는 사람들이 가끔 삼림에 발을 들여놓을 때가 있었는데 모두들 수풀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엘크를 본적이 있다고 했다. 모두들 그놈의 왼쪽귀에 탄알자리가 똑똑하게 나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엘크는 사람을 보고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에 우뚝 솟아있는 커다란 뿔이 위무당당해보였다. 그놈은 코방울을 벌름거리며 삼림에 들어선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여유작작 삼림속으로 살아지군 했다. 삼림속에서 엘크를 본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놀라운 크기에 혀를 내둘렀다.      엘크: 몸길이는 2∼2.6m이고 키는 1.5∼2m이다. 무스, 락타사슴이라고도 불리운다. 현존하는 최대의 사슴으로서 몸집이 말보다 크다. 수컷에게는 손바닥모양의 뿔이 있다.     몸은 튼튼하고 앞다리와 뒤다리는 길지만 꼬리는 짧다. 주둥이는 넓고 밑으로 늘어졌으며 얼굴은 길고 귀는 크다. 발굽은 가늘고 길며 끝이 뾰족하다. 여름털은 검은빛을 띤 갈색, 검은색, 붉은 빛을 띤 갈색, 회색을 띤 갈색이지만 겨울털은 회색을 띤다. 어린 새끼는 붉은 빛을 띤 갈색이다.      엘크는 보통 습지나 삼림지대에서 단독으로 생활한다.  9―10월의 번식기에는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격렬하게 싸움을 한다. 여름에는 호수나 산간계곡이 가까운 곳에서 수중식물을 찾아 잎이나 가는 가지를 뜯어 먹는다. 임신기간은 240일좌우이고 한배에 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명은약 20년이다. 카나다, 북아메리카, 스웨덴, 노르웨이, 씨베리아, 중국, 몽골 등지에 분포되여있다.
539    고요한 자작나무숲*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1859  추천:2  2013-12-03
고요한 자작나무숲 -나의 동년의 이야기 빠투는 총을 내리웠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빠투는 천천히 두걸음을 뒤로 물러선후 몸을 돌려 관목림으로 들어갔다. 바람 한점 없는 관목림은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을 련상케 했다. 그놈은 록색의 호수에 빠져들어간듯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빠투는 그 늑대를 다시 만나리라고는 정말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놈은 귀신도 모르게 그곳에 나타났었다. 그놈은 자기가 감쪽같이 삼림과 하나로 융합된것으로 하여 기쁨을 금할수 없어했을것이다.  빠투는 수렵물에 접근할 때 될수 있는 한 대방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다. 그는 숨소리 한번 크게 내쉬지 않았다.대방은 그를 나무가지나 돌멩이로 착각할 때가 많았다. 빠투는 어릴 때부터 이 삼림에서 다람쥐와 같은 작은 동물을 쫓군 했다. 그때 그의 키는 총대보다 얼마 더 크지 않았었다.  근심이 가득해보이는 암늑대는 그때 빠투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빠투가 걸음을 천천히 옮겨놓았기에 발밑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것이다. 게다가 빠투는 그때 바람이 흐르는 방향에 서있었다. 하여 늑대가 백화림을 돌아나올 때 빠투는 늑대와 정면으로 딱 마주쳤던것이다. 몇년간 산에서 생활했던 빠투는 본능적으로 어깨에서 총을 내리워 들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후에는  그 동작이 신체의 일부분으로 굳어지게 되는것이다. 가늠쇠가 그놈의 두눈사이에서 좀 올라간 위치에 놓였다. 빠투는 그놈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다른 부위를 근본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빠투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진 금속에 오른손식지의 힘을 살짝 주어 당기는 그 동작은 사실 그처럼 간단한것이였다. 그것은 빠투가 수렵물을 발견한 다음 모든 준비를 마친후 취하는 최후의 동작이였다. 땅 하는 총소리가 울린후 빠투는 천천히 죽어있는 수렵물곁으로 가서 편안한 자리를 찾아 앉아 한참씩 해볕을 쪼였다. 그후 허리에 찼던 비수를 꺼내여 껍질을 발랐다. 암늑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놈도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도망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있는것 같았다. 그놈은 멀거니 빠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빠투는 잠간 주저했다. 아주 잠간이였다. 빠투는 총을 내리웠다. 늑대가 내 꼴봐라 하고 도망을 치는것을 보면서도 빠투는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취해야 했는지를 똑똑히 알수 없었다. 혹시 총소리가 강변에 있는 사슴을 놀래울가봐 두려웠던것일가? 그놈은 머리에 아름다운 뿔을 떠인 멋진 수사슴이였다. 어제 빠투는 강변에서 그놈을 놓쳤던것이다. 확실히 총소리는 그놈을 놀래울수 있었다. 빠투는 총을 다시 오른쪽어깨에 메였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에 자작나무숲은 파도처럼 설레이면서 쏴쏴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몽롱한 아침해빛속에서 자작나무줄기에 난 검은색 마디는 눈처럼 빠투를 바라보고있었다. 빠투는 강변으로 갔다. 그해봄, 빠투는 이미 사슴 두마리를 잡았었다. 그해, 남자애는 여섯살이였다. 겉모습만 보면 그는 아직 어린 양과도 같아 웬간한 바람에도 쓰러질것 같았다. 나무숲은 어린 양과 같은 남자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듬해, 그 자작나무숲부근에서 빠투는 또 암늑대 한마리를 발견했다. 빠투는 그놈이 꼭 지난해 보았던 그 암늑대라고 판단했다. 빠투는 한번만 보면 그 짐승의 특점을 기억할수 있었다. 특히 그의 총부리앞에서 도망친 짐승에 대해서는 더구나 인상이 깊었다. 사실 그의 총부리앞에서 도망친 짐승이 얼마 안되였다.  곰이든 고라니든 나중에는 꼭 그의 총부리앞에서 사라질것이였다. 그 암늑대는 다른 늑대들보다 알아보기 더 쉬웠다. 그놈의 얼굴량쪽에 다른 놈들에게 없는 흰 털이 자라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늑대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빠투는 인차 총을 쏠수 없었다. 그놈은 잠간 삼림에 머리를 들어내보였다가  빠투를 발견하고 인차 사라졌던것이다. 빠투는 자작나무숲으로 걸어들어가다가 오솔길을 발견하였다. 늑대는 꼭 그 부근에 있을것이였다. 늑대는 그 오솔길로 먹이 찾으러 가거나 물을 먹으러 다닐것이였다. 그놈은 오솔길부근에 한두해 있은것 같지 않았다. 빠투는 매일 강변의 사냥터로 나왔다. 사흘이나 지났지만 사슴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빠투는 이른새벽에 밥도 먹지 않고 천막을 나왔다. 그는 추위를 막느라 연신 털옷을 여몄다. 하지만 삼림을 뒤흔드는 칼바람은 여전히 뼈속까지 파고들었다. 빠투는 습관적으로 삼림속에 있는 오솔길에 올라섰다. 마른 나무가지나 나무잎을 밟아도 사슴가죽신을 신은 발밑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늘에는 려명전의 마지막 어둠이 감돌고있었다. 몇개 남지 않은 별들은 그때까지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서로 영원히 리해할수 없는 눈처럼 아아한 하늘가에서 차가운 빛을 뿌리고있었다. 삼림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노라면 바람이 참백송나무가지를 지날 때 내는 속삭임 같은 낮은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새들이 모두 단잠에 든것 같았다. 염기구덩이(碱场)는 숲속의 작은 공지에 있었다. 고라니며 사슴과 같은 동물들이 늘 염기구덩이에 내려와 염분을 섭취하군 했다.  빠투는 강변의 작은 언덕에 있는 관목림에 몸을 숨겼다. 그곳은 시야가 넓어서 능히 염기구덩이부근을 살필수 있었고 강둑도 30여메터는 바라볼수 있었다. 그리고 맞은켠 강변의 자작나무숲에 있는 간격이 그닥 떨어지지 않은 두개의 갈라진 틈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사슴이 강변으로 물을  먹으러 오느라 남긴 흔적이였다. 염분이 섞인 흙을 한참씩 핥고난 사슴들은 보통 강변에 가서 물을 먹었다. 검푸른색을 띤 수면에서 흰색의 안개같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는데 영원히 벗겨낼수 없는 삼림의 면사포를 방불케 했다. 빠투는 잘 다져진 고라니껍질을 땅에 펴고 그우에 엎드렸다. 그렇게 하자 찬바람을 피할수 있었다. 빠투는 총의 가늠쇠를 왼쪽켠의 갈라진 틈에 맞추어놓았다. 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새소리가 풀리는 얼음소리처럼 들려왔고 별들이 차츰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부드럽거나 히스테리적인 동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려왔고 수많은 새들의 합창이 시작되였다. 그 시각 삼림은 동물들의 세계였다. 하지만 삼림의 그 같은 환락의 장면도 빠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빠투는 땅에 펴놓았던 고라니껍질을 돌돌 말아 들고 총을 어깨에 멘채 그곳을 떠났다. 역시 아무 수확도 없는 아침이였다. 사슴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천막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빠투는 지름길을 택했다. 삼림속에 펼쳐진 풀밭을 지날 때 빠투는 바람을 타고 간간히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피냄새였다. 빠투는 그런 냄새에 너무도 익숙해있었다.  빠투는 손에 들었던 고라니가죽을 땅에 놓은후 어깨에서 총을 내리웠다. 빠투는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발걸음을 조심한데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풀밭의 정황을 똑똑히 보게 된 빠투는 긴장을 풀면서 손에 꽉 쥐였던 총을 다시 어깨에 멨다. 풀밭에는 사슴의 잔해 한구가 널려있었던것이다. 내장은 이미 다 들어낸 상태이고 남은것은 꽛꽛하게 된 복강과 하늘로 쳐들린 네다리뿐이였다. 그놈은 암사슴이였다. 그 사슴을 공격한 동물은 늑대이지 곰은 아닌것 같았다. 사슴의 몸에는 곰의 발톱에 긁히운 면도칼에 베인듯한 좁고 긴 상처가 없었던것이다. 곰은 수렵물을 먹은후 나머지는 꼭 마른 나무잎이거나 흙으로 덮어놓고 그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군 했다. 하기에 곰이 남긴 먹이에 접근한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빠투는 전에 보았던 그 암늑대가 사슴을 물어죽인것이라고 생각했다. 암늑대는 새끼를 낳아 기르고있었던것이다. 아마도 어제저녁 황혼무렵에 사슴을 포획한것 같았다. 암늑대는 사슴을 잡아서 급히 배가죽을 찢은후 내장을 먹어버리고 급히 굴로 가서 새끼늑대들에게 젖을 먹인것 같았다. 자작나무숲은 그 암늑대의 사냥터인것 같았다. 하기에 사슴들은 그 늑대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것이였다. 빠투는 벌써 몇년전에 그곳을 사냥터로 정했었다. 빠투는 그곳을 아주 좋은 사냥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로부터 자작나무숲속의 그 사냥터를 물려받은후 빠투는 해마다 그곳에서 사슴 한마리씩 잡았던것이다. 어느해도 빠친적이 없었다. 빠투에게 있어서 그곳은 산신령이 보호하는 사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빠투는 사슴잔해를 그대로 둔채 고라니껍질을 주어들고 돌아섰다. 천막에 돌아오니 날이 이미 밝아 있었다. 빠투는 강변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차를 끓였다. 그는 구운 빵과 말리운 고기를 먹은후 한순간의 휴식도 하지 않은채 총을 들고 다시 사냥터로 갔다. 빠투는 암늑대가 꼭 다시 사슴잔해가 있는 곳으로 갈것이라고 판단했다. 암늑대는 바로 포유기에 처해있기에 많은 먹이가 필요했던것이다. 빠투는 강변에 몸을 숨긴후 고라니가죽을 나무아래에 펴고 그우에 엎드려 강 맞은켠을 살폈다. 빠투는 강변에서 매화꽃 같은 암늑대의 발자국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로보아 암늑대의 굴은 부근에 있는것 같았다.    늑대는 늘 지나다니던 길로 다니기를 좋아했다. 따뜻한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빠투의 몸에 어룽어룽 내려앉았다. 어느새 빠투는 살풋이 잠이 들어버렸다. 빠투는 꿈에 어릴 때의 왜소한 자신을 보았다. 그는 어른들 몰래 혼자서 강변으로 달려가 은빛 물고기들이 노니는 강물에서 자맥질을 했다. 따뜻한 해볕에 데워진 강물은 빠투로 하여금 쏟아지는 졸음을 달래기 힘들게 했다. 그때 암늑대가 나타났다. 어쩌면 그놈의 동정을 들었다기보다 느꼈다고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빠투는 두눈을 번쩍  뜨고 오른손식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암늑대 한놈뿐이 아니였다. 맞은켠 강변의 모래불에서 청회색 털을 가진 암늑대가  두리벙두리벙 주변을 살피고있었다. 그놈의 곁에는 금방 젖을 뗀듯한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새끼늑대 두마리가 서있었다. 새끼늑대들은 처음으로 어미를 따라 나온것 같았다. 새끼늑대들의 예리한 송곳이로 하여 어미늑대는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였다. 하여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고기를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러 나온것 같았다. 새끼늑대들에게 사냥터는 생소한 세상이여서 모든게 신기한듯 했다. 그때 새끼늑대들은 강변에 가로 누워있은지 오랜 마른 나무가지를 뛰여넘느라고 헤덤볐다. 어미늑대가 손쉽게 나무가지를 뛰여넘었지만 새끼늑대들에게는 직경이 그닥 크지 않은 그 나무가지도 가파로운 산봉우리만치나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새끼늑대들은 그 나무가지를 돌아 갈수도 있었지만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한번 또 한번 나무가지에 올랐다가 두르르 굴러떨어졌다. 어미늑대는 어딘가 긴장한 표정을 보이면서 주변을 살피다가도 코를 쑥 내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빠투는 자기가 정한 그 위치가 매우 안전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곳은 바람이 흐르는 방향이여서 늑대는 빠투의 냄새를 절대 맡을수 없었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들이 큰 바위를 움직이는듯 나무가지를 바라오르는데 집착을 보이는것을 보고 그만 인내심을 잃고말았다. 어미늑대는 마른 나무쪽으로 다가와 두마리의 새끼늑대를 물어 마른 나무의 다른 한쪽에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강변에 이른 어미늑대는 또 주저했다. 그곳은 여울이라 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물이 제일 깊은 곳이라고 해야 어미늑대의 배를 넘지 않았다. 여울에는 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가득 깔려있었다. 어미늑대로 말하면 그 여울을 지난다는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새끼늑대들에게는 바다를 가로지나는것만치나 두려운 일이였다.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생소한 물질― 물을 두고 새끼늑대들은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 생소한 물질은 새끼늑대들에게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던것이다. 새끼늑대들은 불안한 눈길로 조심스럽게 쉼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물은 자기들이 서있는 땅과 완전히 다른 세상인듯 해보였다. 새끼늑대들은 조심조심 다가가 코등을 물에 살짝 대였다가 놀라서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차디찬 물은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딱히 어떻다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수 없었다. 어미늑대도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나올 때 이 점을 고려하지 못한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가볍게 한 새끼늑대의 목덜미털을 물었다. 어쩌면 그놈을 물고 강을 건너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웬 일인지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를 내리워 놓았다. 강변의 모래밭에서 어미늑대는 앞발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강변의 흙은 축축하고 보드라와서 인차 두개의 구덩이가 패워졌다. 빠투는 드디여 어미늑대를 가늠쇠에 묘준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빠투는 어미늑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두마리의 새끼늑대를 하나하나 구덩이에 물어다넣은후 모래를 밀어넣었다. 얼마 안되여 두마리의 새끼 늑대는 머리만 밖에 내놓게 되였다. 새끼늑대들은 어미늑대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모래밭에 들어난 새끼늑대들의 작은 머리를 흐뭇하게 살펴보았다. 마치 땅밑으로부터 자라오른 이상한 과실 같아보였다. 어미늑대는 인차 강을 건넌후 자기가 내장을 다 파먹고  남긴 사슴잔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미늑대는 먹이를 배부르게 먹고 다시 강을 건너가 새끼늑대들을 데리고 굴로 돌아가려고 계획하고있는것 같았다. 빠투는 그때까지도 총을 쏘지 않았다. 빠투는 자작나무삼림을 에돌아 강변의 모래밭으로 갔다. 머리만 내놓은 두마리의 새끼늑대가 조용히 빠투를 바라보고있었다. 몸을 모래에 묻기지 않았다면 깡충깡충 뛰여 도망이라도 갔을지 모를 일이였다.  빠투는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새끼늑대들 옆에 쪼크리고 앉아 손으로 그중 한마리의 머리를 꾹 눌렀다. 보슬보슬한 털이 손에 느껴졌는데 막 피여나는 민들레씨앗 같았다. 새끼늑대는 빠투의 손길이 불만스러운지 마구 머리를 내저었다. 빠투는 정말 딱히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대개 어미늑대가 돌아올 시간이 되였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떠오를뿐이였다. 빠투는 사실 어미늑대가 그렇게 두려운것은 아니였다. 다만 새끼늑대를  앞에 두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주저할 때 어미늑대까지 돌아온다면 더구나 어쩔바를 몰라 속수무책으로 될것이라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잠간후 빠투는 사냥용칼을 꺼내여 손쉽게 새끼늑대들의 머리를 잘라냈다. 새끼늑대들은 몸이 모래에 묻겨있었기에 몸부림도 치지 못했다. 새끼늑대들의 두개의 머리는 익을 때로 익어서 떨어진 열매처럼 빠투의 손에 들렸다. 빠투는 손에 들려있는 새끼늑대들의  머리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다시 그놈들의 목에 붙여놓고 흙으로 옆을 묻어주었다. 새끼늑대들은 워낙 피를 얼마 흘리지 않았었는데 얼마 안되는 그 피도 빠투에 의해 모래로 잘 덮혀졌다. 그렇게 되자 겉으로 보건대 어미늑대가 떠날 때와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빠투는 자기가 엎드려있던 곳으로 돌아와 고라니껍질우에 엎드려 총부리를 새끼늑대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놓았다. 빠투는 손바닥에 질펀히 배여나오는 식은땀을 바지섶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때 어미늑대가 무거운 배를 끌고 돌아왔다. 너무 급히 많은 고기를 집어삼키다 나니 어미늑대는 몸을 움직이기 힘겨워 했다. 어미늑대의 배가 커진것이 확연하게 알렸다. 포유기의 어미늑대는 단번에 십여근의 고기도 먹을수 있었다. 어미늑대는 굴에 돌아와 배속의 그 고기들을 소화시키군 했다. 어미늑대는 인차 무엇인가 자기가 떠날 때와 다른것을  발견한것 같았다. 그리고 생소한 냄새도 맡은것 같았다. 강을 건넌후 어미늑대는 불안한 표정으로 멈추어섰다. 어쩌면 방금 빠투가 남긴 냄새가 어미늑대에게 긴장감을 불러주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어미늑대는 사실 한시라도 새끼늑대들의 곁을 떠나고싶지 않았었다. 만약 새끼늑대들이 없다면 어미늑대는사람의 냄새나 쇠붙이 그리고 불냄새를 맡으면 인차 그곳을 떠날것이였다. 삼림에 사는 늑대들에게 있어서 사람은 철전지 원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를 구덩이에서 꺼내 올리려고 서둘렀다. 자기의 배가 불렀으니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굴에 돌아가 그놈들에게 젖을 먹이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그 하루는 먹이감을 얻으러 다시 굴에서 나오지 않아도 될것이였다. 어미늑대는 한 새끼늑대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미늑대는 현실이 상상과 완전히 다른것을 감안하게 되였다. 먹이를 달라고 머리를 마구 흔들며 낑낑소리를 질러대야할 새끼늑대가 아무 반응도 해오지 않았던것이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가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어미늑대는 다른 한마리 새끼늑대곁으로 다가가 모래를 파내다가 상상도 못한 기막힌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새끼늑대의 머리가 떨어져내렸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너무도 놀라서 한켠으로 피해 섰다. 어미늑대는 그 같이 공포스러운 일을  종래로 당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도무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수 없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앞발을 내밀어 땅에 떨어진 새끼늑대의 머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어쩌면 새끼늑대에게 속했던 그 머리가 불시에 날아올라 자기의 코등이라도 물어뜯을가봐 두려워 하는것 같았다. 피비린 냄새가 어미늑대의 코를 파고들었다. 빠투가 사냥용칼로 새끼늑대의 머리를 벨 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칼자국도 너무 가쯘해서 피가 얼마 흐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새끼늑대의 머리를 다시 몸뚱이에 붙여놓고 모래로 파묻을 때 또 모래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흡수하였기에 새끼늑대의 몸에서는 피가 얼마  흐르지 않았던것이다. 어미늑대의 앞에서 구으는 새끼늑대의 머리는 마치도 그의 몸에서 떨어진 부속품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어미늑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영문을 알수 없어 다른 새끼늑대앞으로 다가갔다. 어미늑대는 다리를 들어 조심스럽게 새끼늑대의 머리를 건드렸다. 순간 그놈의 머리도 땅에 떨어져내렸다. 그 모든것을 이미 당해본 어미늑대였지만 여전히 놀라 어쩔바를 몰라하며 한옆으로 비켜서서 두려운 눈길로 새끼늑대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어미늑대는 미동도 없이 굳어져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었다. 어미늑대에게 있어서 그 모든것은 생소한 유희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어미늑대는 머리가 떨어져나간 새끼늑대의 몸뚱이를 둘러싸고 빙빙 돌아치다가 갑자기 멈추어섰다. 그리고는 먹이를 먹다가 목이 메기라도 한듯 머리를 잔뜩 쳐들고 높은 소리로 꺼이꺼이 울어댔다. 빠투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좋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미늑대를 향하여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어미늑대를 명중하지 못했다. 방금 어미늑대가 갑자기 멈추어설 때 가늠쇠에 어미늑대의 옆구리가 놓였던것이다. 빠투는 가늠쇠를 어미늑대의 앞다리에서 조금 뒤에 있는 위치에 놓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웬지 인차 흥미가 없어졌다. 탄알은 어미늑대앞에 있는 모래밭에 떨어져 구덩이를 파면서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총소리에 놀란 어미늑대는 용수철처럼 펄떡 올리 솟더니 삼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빠투는 그곳을 떠나 천막으로 돌아와 굳잠에 빠져들었다. 그해봄, 빠투는 사냥에서 아무 수확도 얻지 못했다. 그해 남자애는 일곱살이였다. 그해겨울. 남자애는 오래동안 병마에 시달렸다. 빠투가 삼림에 들어가 사냥을 하던 그때, 남자애는 금방 병이 완쾌된 뒤였다. 남자애는 몸이 허약하여 종이장을 방불케 했다. 남자애는 문옆에 힘 없이 기대 서서 삼림속으로 사라지는 빠투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여전히 삼림으로 들어갈만한 자격이 없었다. 세번째 해, 남자애는 빠투와 함께 자작나무숲에 있는 그 숙영지에 나타났다. 숙영지에는 지난해 우등불을 피웠던 검스레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빠투는 숙영지에 천막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해도 남자애는 소학교에 붙을 나이가 안되였다. 그처럼 어란 남자애가 삼림으로 들어온다는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납득이 안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남자애는 끝내 삼림으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아니, 어쩌면 남자애를 데리고 삼림으로 들어온 빠투가 성공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빠투가 남자애를 데리고 집을 나올 때 남자애의 할머니는 그 일을 감감 모르고있었다. 그 같이 위험한 일은 빠투를 내놓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것이였다. 남자애는 당당하게 삼림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던것이다. 남자애는 세살나던 해에 처음으로 도시에서 삼림으로 들어온적이 있었다. 그때 빠투는 남자애를 강변으로 데리고 가 목욕을 시켰었다. 남자애는 그때 같은 나이의 다른 애들보다 좀더 커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숭이는 애숭이였다. 삼림은 남자애에게 있어서 생소하기를 미지의 야밤같은 세상이였다. 전에 남자애에게 있어서 삼림은 그저 마을뒤에 있는 록색의 숲이나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고요한 밤에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늑대의 울부짖음은 남자애에게 삼림의 생소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시작했다. 달빛이 교교한 밤이면 늑대의 포효는 혼자가 아니라 삼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한부분으로 된듯 했다. 뽀얀 안개를 뚫고 들려오는듯한 포효는  언제나 삼림의 상공에서 오래도록 메아리 치군 했다. 남자애는 가끔 갈망이 가득 찬 떨리는 목소리로 높이높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인차 빠투에게 제지를 당했다. 삼림에서 도전적인 그러한 부르짖음은 허용되지 않았던것이다. 늑대들의 포효가 없는 날밤이면 남자애는 웬지 뭔가를 잃어버린듯한 실의감이 들었다. 워낙 단조로운 세계에 뭔가가 결핍한듯 느껴졌던것이다. 남자애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스스로 애수란 어떤것인가를 리해하려고 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비록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삼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있는듯싶었다. 남자애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려왔다. 하기에 남자애는 그 순간에도 꿈이 현실로 변한것으로 인한 흥분 같은것을 얼마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빠투의 뒤를 졸졸 따랐다. 남자애의 등에는 빠투가 준비해준 소금과 성냥을 넣은 작은 주머니가 메워져있었다. 남자애는 삼림에서 될수록이면 발자국소리를 작게 내야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는 애써 발걸음을 가볍게 옮겨놓았다. 남자애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 어려운 동작이 아니였다. 남자애는 자기를 작은 사슴이나 새끼고양이라고 상상했다.  천막을 다 세우자 남자애는 삼림속에 들어가 마른 나무를 주어왔다. 삼림은 전에 한번도 벌목을 당해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듯 꼿꼿이 자랐는데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있었다. 그러한 자세로 나무들은 충족하게 해볕을 쪼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것 같았다.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진 부분들은 눈으로 되여 조용히 남자애를 바라보는듯싶었다. 남자애는 천천히 지난해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들을 주으며 나아갔다. 그새 바싹 마른 나무가지는 매우 가벼웠다. 남자애는 생명이 다하면 무엇이나 그렇게 가벼워지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애는 넘어져있는 자작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한차례의 폭풍우나 벌레의 침입이 다 자란 그 나무를 넘어뜨린것 같았다. 그 나무에 비해볼 때 남자애는 자기가 주어들고있는 나무가지들이 그처럼보잘것 없이 작아보였다. 하지만 남자애는 그것들을 내리워놓고 넘어져있는 큰 나무를 끌려고 하지 않았다. 나무가 넘어진지 너무 오래서 이미 땅과 이어져있지나 않을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남자애는 빠투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넘어진 나무를 천막에 끌어가고싶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그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마른 나무가지들을 줏기 시작했다. 남자애가 천막앞에 왔을 때 빠투는 이미 불을 지피고 앉아서 총을 검사하고있었다. 로씨야에서 사왔다는 그 사냥총은 평소 보양이 참 잘되여있었다. 빠투는 총을 사용하지 않는 계절에는 늘 벽에 정중히 걸어두었었다. 가죽으로 만든 총집에는 양기름이 가득 발라져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총개머리는 오래동안 사람들의 손에 달아서 짙은 갈색을 보이고있었는데 옥을 만지는듯 매끌매끌 했다.  빠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남자애는 총을 만져본적이 있었다. 남자애는 금방이라도 날아나버릴듯한 새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총을 다루었다. 좀더 나이가 들자 남자애는 자기에게 속하는 총을 가질수 있었다. 삼림속에서 남자애는 많은 시간을 빠투의 등에 업히워있었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자애는 종래로 그렇게 많은 길을 걸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남자애가 빠투의 뒤를 따를 때면 관목림에서 갑자기 족제비가 뛰여나와 나무가지 사이를 비추는 해빛을 받으며 감쪽같이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한줄기의 금빛 해살이 스쳐가는듯싶었다. 남자애는 순간 무엇을 보았던지 멍해질 때도 있었다. 유연한 몸집을 가진 족제비가 몸을 날릴 때면 땅에서 솟아오르는 황금빛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족제비도 남자애를 발견하고 놀라는것 같았다. 남자애의 발자국소리가 가까와 지자 족제비는 제일 빠른 속도로 해빛 따스한 오솔길에 치달아 올랐다. 족제비는 한참 달리다 말고 멈춰서서 너무도 놀라 어쩔줄을 몰라하는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그애말로 령민한 들짐승이였다. 그놈은 종래로 남자애처럼 작은 사람을 보지 못한것 같았다. 그로 하여 그놈은 더구나 놀라는것 같았고 그렇게 작은 사람도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비록 작기는 했지만 영락없는 사람이였다. 남자애는 높뛰는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는 앞에서 걸어가는 빠투를 부르고싶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애써 자기의 정서를 통제했다. 그는 삼림속을 거닐 때 응당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빠투는 남자애가 걸음을 멈추었다는것을 느끼고 머리를 돌렸다. 족제비는 놀라운 속도로 눈 깜빡할 새에 오솔길옆의 관목림으로 들어가버렸다. 하기에 빠투는 머리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물새물 웃기만 했다. 아직 생소한 삼림을 마주한 남자애지만 나름대로의 비밀을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남자애는 급히 몇걸음을 달려 빠투를 따라잡았다. 삼림에서 빠투를 떨어진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던것이다. 남자애는 너무 힘들어 빠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갑자기 나무우에서 무엇인가가 스쳐지나는것을 발견했다.  남자애는 사냥군의 후대로서의 예민한 감각을 이미 구비하고있었던것이다. 나무우를 스쳐지난 그놈은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나무에 붙어서서 볼주머니로 견과 한알을 내밀어보이면서 앞발로 가슴을 붙안고있었다. 그때 다름쥐는 빠투와 남자애를 발견한듯싶었다. 어쩌면 그들의 출현이 너무 급작스러웠던지 다름쥐는 놀라서 펄쩍 올리 뛰였다. 딴딴한 견과가 다름쥐의 볼주머니에서 흘러나와 빠투와 남자애의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굴러왔다. 다름쥐는 놀랍고 당황했던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잽싸게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삽시간에 뒤면으로 사라졌다. 남자애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하지만 빠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듯 묵묵히 걸음만 옮기면서 남자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른 아침, 빠투가 강변의 염기구덩이로 갈 때 남자애는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있었다. 빠투는 남자애의 몸에 고라니껍질을 여며주고 거의 사그러지는 우등불에 장작 몇개를 더 넣은후 총을 들고 일어섰다. 남자애가 잠을 깬것은 날이 밝은 뒤였다. 남자애는 자기가 물론 집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 비쳐들어오는 해빛은 유리창문을 뚫고들어오는것이 아니라 천막에 난 쯤으로 새여들어오는것이였다. 남자애는 오래동안 꾸어오던 삼림으로 오고싶던 꿈이 현실로 된것으로 하여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남자애는 천막을 나왔다. 해빛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수 없었다. 수많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있었지만 남자애는 그 새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남자애는 땅에서 돌멩이를 주어들고 새들이 있겠다싶은 나무숲을 향해  힘껏 뿌렸다. 하지만 그 돌멩이는 바다에 던져넣은듯 아무 효과도 없었다. 새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구성진 노래를 계속하고있었다.  빠투가 빈손으로 천막에 돌아왔을 때 남자애는 강변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반찬을 만들어놓은 후였다. 빠투는 밥술을 뜨는둥 마는둥 하고는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 들었다. 남자애가 빠투와 함께 처음으로 사슴을 잡은것은 삼림에 들어와서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였다. 깊은 잠에 들지 못했던 남자애는 빠투가 일어나면서 잠자리에 깔았던 고라니가죽이 벌컥벌컥 소리를 내자 따라서 눈을 떴다. 남자애는 자기가 어디에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가 내다보니 천막밖은 여전히 컴컴해있었다. 별빛이 총총한 저 멀리 하늘가에서 파르스름한 가는 빛들이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남자애는 빠투의 뒤를 부지런히 따르면서 자기의 꿈에서 헤여나오려고 애를 썼다. 남자애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워보였다. 그는 종래로 그처럼 일찌기 잠에서 깬적이 없었던것이다. 너무 일찍 일어난데서 남재애는 눈을 붙이자 마자 깨여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애는 어둠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잠간 시간이 흐르자 주변의 나무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그들이 자작나무숲에 거의 이르고있을 때 갑자기 은빛을 내는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어둠속에서도 그렇게 눈에 띄우는것이 마치도 금방 갈라놓은 흰색의 어복 같았다. 새벽녘의 시원한 공기는 남자애로 하여금 차츰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어쩌면 몸속에 있는 다른 한쪽 눈이 차츰 뜨여지는듯싶었다. 남자애는 빠투의 발자국을 꼭꼭 밟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빠투가 걷고 지나간 곳에는 마른 나무가지 같은것들이 발에 밟혀서  요란한 소리를 낼 근심이 없었다. 빠투가 발걸음을 크게 떼지 않았기에 따라 잡기도 쉬웠다. 그들은 강변의 관목림에서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았다. 삼림은 너무도 조용했다. 남자애는 고라니껍질우에 엎드려 앞에 있는 강줄기를 살폈다. 강물은 그때까지도 어둠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는데 괴물이 검은 꿈을 꾸고있는듯싶었다. 남자애의 애 어린 머리에 그 같은 생각이 한두번만 떠오른것이 아니였다. 갑자기 수면에서 커다란 몸집의 괴물이 떠오르는듯한 환영이 보였다. 비늘이 가득한 뿔은 예리한 검은색 칼처럼 고요한 수면을 가르고 지나가면서 뒤에 흰색의 소용돌이를 이루었고 수많은 물꽃을 피워올렸다. 남자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수면에 나타난 괴물의 커다란 륜곽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놀라운 속도로 헤여나왔다. 남자애는 너무도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호흡이 가빠졌고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들었다. 남자애는 머리를 돌려 빠투를 바라보았다. 그때 빠투는 머리를 총탁에 대고 굳잠에 빠져있었다.  남자애는 빠투를 깨우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괴물이란 없는것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괴물은 확실이 존재해있었고 슬금슬금 그들이 몸을 숨기고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괴물이 앞을 헤여지나는 찰나 남자애는 그 괴물의 정체를 똑똑히 보았다. 그야말로 괴성을 지르고싶게 무서운 놈이였다. 몸집이 거대했고 검은 색을 띠였으며 전문 물속에서 사는것 같았다.  그놈은 또 지느러미와 뿔을 꼿꼿이 치켜세우고있었다. 그것은 사실 끊어진후 강에 들어와 오래동안 물에 떠다닌 나무였다. 장시간 물에 잠겨있었기에 곰팡이까지 끼여있었던것이다. 나무에는 또 가지가 끊겨진 자리가 가득 나있었는데 어둠속에서 한마리의 괴물을 방불케 했던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괴물이 아니라 나무였다. 그 나무는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림을 벗어나게 될것이고 초원을 가로지나게 될것이며 마을과 평원과 광활한 대지를 거쳐서 땅의 끝쪽에 이르러 바다에 흘러들게 될것이다. 남자애는 여직 바다를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은 끝을 알수 없는 무변의 초원과도 같은 가없는 물의 세계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는 피곤기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남자애는 맞은켠 강변의 한 나무에서 록색의 불빛 두개가 반짝이는것을 발견했다. 남자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그 불빛을 여겨보았다. 그 불빛은 지하에 오래동안 묻혀있다가 다시 해빛을 본 보석과도 같아보였다. 남자애는 록색의  불빛을 내는 무엇인가의 어슴푸레한 륜곽을 볼수있었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록색의 그 불빛이 사라지려고 할 무렵, 남자애는 뚱뚱한 몸집을 가진 큰 새 한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와 비슷한 머리에 두개의 뾰족한 귀를 방불케 하는 털모숨을 치켜세우고있었다. 그놈은 금방 밤 사냥을 마친 올빼미였는데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고있었다. 올빼미는 남자애에게 발각되였다는것을 알았던지 날개를 퍼덕거리며 둔중한 몸집을 하늘로 날아올렸다. 올빼미가 떠난 그 나무아래의 갈라진 틈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지가 놓여있는듯싶었다. 남자애는 그 나무가지에 눈길을 모았다. 아, 그것은 나무가지가 아니라 나무가지와 같은 뿔을 머리에 떠인 사슴이였다. 그것은 남자애가 처음으로 보는 사슴이였다. 남자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멋지게 생긴 그 짐승을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갑자기 잘못 본것이나 아닐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사슴의 머리는 줄곧 움직이지 않았는데 진짜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지 같아보였다. 한참 지나서 그놈의 귀가 약간 움직였다. 그놈은 주변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던것이다. 그놈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따라서 귀는 더욱 령활하게 움직였다. 그놈은 무슨 동정인가를 들은것 같았다. 그놈은 또 돌멩이처럼 굳어졌다. 한참 지나서 사슴이 또 몸을 움직였다. 남자애는 그제야 건장한 몸집의 수사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주변의 색갈과 다른 갈색의 털은 반짝반짝 빛을 뿌렸는데 하늘거리는 불꽃을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남자애의 눈길도 반짝 빛났다. 사슴은 길다란 목을 쑥 내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사슴은 갑자기 머리를 잔뜩 쳐들고 마술에라도 걸린듯 마구 흔들더니 뒤에 있는 삼림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남자애는 인차 사슴이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알수 있었다. 워낙은 사슴이 물을 먹던 곳에서 10메터도 채 못되는 곳에 늑대 한마리가 나타났던것이다. 늑대는 사슴이 도망친방향을 가늠하는듯 주변을 살펴보더니 관목림속으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늑대는 아무 동정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남자애가 종래로 본적이 없는 분주한 세상이였다. “저놈이 또 나타나서 성가시게 구는군.” 빠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자애는 그때에야 빠투가 깨여난것을 알게 되였다. 빠투는 오른손식지를 방아쇠에서 내리우고있었다. 사슴이 도망치는 소리가 빠투를 잠에서 때운듯싶었다. 하지만 빠투는 미처 방아쇠를 당길 새가 없은것 같았다. 사슴을 겁 먹게 한 그 늑대도 빠른 속도로 삼림속에 몸을 숨겨버렸다. 빠투는 천막에 돌아와 아침밥을 먹은후 다시 남자애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빠투는 아침과 다른 길을 택했다. 도중에 그들은 강 하나를 건넌후 찌는듯한 해볕을 머리에 이고 삼림을 가로 지났다. 빠투는 길을 가다가도 허리를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오렸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얼마 걷지 않고 멈추어섰다. 남자애는 자기들이 어디에 왔는지를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아침에 매복해있던 그곳의 맞은켠에 와있다는것은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빠투는 또 주변을 살펴보다가 앞에 있는 언덕을 목표로 정한것 같았다. 그들은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빠투가 갑자기 남자애를 향해 걸음을 멈추라고 눈짓을 했다. 그후 빠투는 총을 들고 살금살금 언덕을 향해 다가갔다. 빠투가 다시 남자애를 향해 눈짓을 하자 남자애는 그 뜻을 알아맞추고 언덕쪽으로 걸음을 재우쳤다. 만약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파아란 풀들이 돋아난 작은 언덕옆에 비물에 밀려 생겨난 골짜기쯤으로 여겨질것이였다. 하지만 빠투가 골짜기어구에 무성하게 돋아난 풀들을 헤치자 작은 동굴입구 하나가 나타났다. “어미늑대가 나갔다.” 빠투가 조용히 말하면서 동굴우에 올라가 힘껏 발을 굴러댔다. 흙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동굴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동굴입구가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다.  남자애는 빠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수 없었다. 빠투는 남자애를 데리고 그곳을 따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남자애는 자기들이 그냥 동굴입구를 한고패 돌아온것 같은 느낌이였다. 남자애는 빠투가 선택한 한그루의 고목뒤에 몸을 숨겨서야 자기들이 작은 언덕의 다른 한쪽켠으로 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놈이 꼭 이곳에서 떠났을거다.” 남자애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다림은 차츰 따뜻한 해빛과 시원한 바람에 녹아들었다. 남자애는 소르르 잠이 들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기다리고있는것일가? 남자애는 흠칫 놀랐다. 빠투가 남자애의 손등을 살짝 다쳤던것이다. 남자애는 머리를 쳐들었다. 어미늑대가 남자애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늘쩡늘쩡 했다. 어미늑대의 입에는 무엇인가 물려있었다. 피뜩 보면 물건을 가득 담은 검은색 주머니 같았다. 절대 새끼늑대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남자애는 의심스러웠다. 그래 이놈은 제 먹이만 밝히는 어미늑대란 말인가? 하지만 빠투는 어미늑대가 동굴입구가 파괴된것을 발견한후 인차 새끼늑대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온다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것은 늑대의 본성이였다. 어미늑대는 빠투네가 돌아져오던 반대방향으로 오는것이였다. 남자애는 점점 가까와 오는 어미늑대를 주시했다. 어미늑대에게 그 주머니는 너무나 무거운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매우 힘들어했다. 어미늑대는 힘껏 머리를 쳐들고  입에 문 주머니가 땅에 끌리지 않게 했다. 어미늑대는 남자애가 전에 보았던 모든 늑대들보다 더 잘생긴것 같았다. 그놈은 체대가 미끈했고 코등이며 머리며 등허리의  륜곽이 선명했다. 회백색의 입술도 매우 깔끔해보였다. 남자애는 갑자기 자기의 그 생각을 빠투에게 들려주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바투는 이미 그놈에게 총부리를 겨누고있었다. 남자애는 빠투를 향해 입을 열고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하지만 어미늑대는 그때까지도 자기를 기다리는 운명이 어떠하리라는것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있었다. 총소리가 울렸다. 남자애는 그 소리가 빠투의 총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총부리에서 파아란 연기가 몰몰 피여나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애는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구역질이 올라옴을 느꼈다. 남자애는 그제야 매번 총을 만지고 난후 손에서 나던 그 냄새가 무슨 냄새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남자애는 탄알이 날아가던 그 궤적을 똑똑하게 본듯싶었다. 탄알은 상상도 못할 속도를 가진 꿀벌처럼 어미늑대의 가슴으로 날아들었었다. 남자애는 꿀벌과도 같이 작은 그 물건이 그렇게 큰 힘이 있다는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앞으로부터 불어오는 태풍을 만난듯 멈추어 서서 몸을 떨어댔다. 물론 그놈은 자기에게 총을 쏜 흉수를 확인할 새도 없었다. 어미늑대는 선자리에서 고통스럽게 뱅뱅 돌아쳤다. 그놈은 분명 세상이 그렇게 빙빙 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해빛도 초원도 자작나무잎도 땅도 그렇게 도는것이라고 느꼈을것이다. 그놈은 안전한 곳을 찾아 자기의 몸을 안정시키려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몸뚱이 하나 안정하게 눕힐만한 그런 자리를 찾을수 없었을것이다. 그놈은 무엇인가를 찾아 빙빙 돌아가는 자기의 몸을 기대이고싶었을것이다. 어미늑대는 쓸어지고싶지 않았을것이다. 아니 쓸어지면 안되였던것이다. 어미늑대는 그때까지도 입에 물고있는 주머니를 내리워놓지 않았다. 빠투는 남자애와 함께 어미늑대를 향해 다가갔다. 빠투는 남자애가 어미늑대의 곁으로 바짝 다가드는것을 제지시키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그때 이미 쓰러져버렸던것이다. 빠투는 자기의 사격솜씨를 두고 십분 만족해 하는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이미 죽어있었다. 천천히 식어가는 늑대의 몸은 그처럼 여워고 가냘파보였다. 정말이지 웬간한 개보다도 커보이지 않았다. 남자애는 자기가 아직 잘 모르고있는 그 무엇이 절반쯤 뜨고있는 어미늑대의 눈에서 사라지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남자애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싶었다. 그리고 어미늑대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고싶었다. 빠투는 옆에 있는 돌멩이우에 주저 앉았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힘들게 신음소리를 냈다. 빠투는 웬 일인지 자기의 사냥물을 살펴보고싶은 생각마저 없는듯 했다. 그 계절에는 늑대의 털마저 다른 계절처럼 그렇게 풍성하지 않았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옆에 쪼크리고 앉았다. 남자애가 해빛을 가리우자 어미늑대의 머리가 그림자에 가리워졌다. 그때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눈이 맑은 개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맑음도 순간이였다. 어쩌면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잠간스쳤다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것 같았다. 어미늑대의 눈은 차츰 흐려졌다. 남자애는 더 이상 늑대의 눈을 보고싶지 않았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몸에서 상처자국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미늑대는 죽는 그 순간에도 검은색 주머니를 내려놓지 않고있었다. 그것이 남자애의 주의력을 끌었다. 남자애는 나무가지를 주어들고 어미늑대의 입에서 그 주머니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가지가 너무 가늘어서 성공하지 못했다. 남자애는 손에 들었던 나무가지를 던져버렸다. 어미늑대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무서움도 사라졌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머리를 쳐들었다. 무거움이 손으로 느껴졌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입을 벌렸다.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거품이 섞인 피가 어미늑대의 입에서 흘러내렸다.  피는 남자애의 손에 흘러내렸다. 피는 그때까지도 따듯했다. 빠투의 총은 단번에 어미늑대의 페를 명중했던것이다. 파편은 또 다른 중요한 기관에도 박혔다. 어미늑대는 얼마 고통을 느끼지 않고 눈을 감았던것이다. 남자애는 주머니를 손에 들었다. 주머니는 그리 크지 않았다. 주머니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남자애는 그 주머니가 눈에 익었다. 주머니는 바로 웬 동물의 위였다.  어쩌면 고라니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위 같아보였다. 주머니는 이미  꺼덕꺼덕 말라있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무슨 물건인가 꿈틀거리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놀라 소리치면서 주머니를 땅에 던져버렸다. 주머니안에서 무엇인가가 불만스러운듯 낑낑 소리를 냈다. 남자애는 다시 주머니를 다치지 않았다. 빠투가 주머니를 주어 꺼꾸로 들었다. 주머니안에서 털이 보송보송한 물건이 세개나 떨어져내렸다. 그 물건들은 땅에 닿자 마자  소리를 내는 놀이감처럼 불안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놈들은 바로 세마리의 새끼늑대였다. 새끼늑대들은 갑자기 주머니안의 검은 환경에서 밖으로 나와서인지 몹시 불안해 했다. 짧은 네다리는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몸뚱이를 받치기 힘들어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그놈들은 무엇을 찾는지 부산하게 선자리에서 맴돌이를 쳤다. 새끼늑대들의 눈빛은 푸르스름한 짙은 빛을 띠고있었는데 이른 아침 세상을 덮은 안개의 색갈을 방불케 했다. 남자애는그 눈빛에 무엇이 섞여있는지 보아낼수 없었다. 새끼늑대들은 인차 자기들의 목표를 찾아낸듯 쓰러져있는 어미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새끼늑대들은 힘있게 어미늑대의 품을 파고 들어가 조용히 머리를 숨기고있었다. 어미늑대의 차가와지는 품은 새끼늑대들에게 여전히 그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였다. 새끼늑대들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남자애는 머리를 숙이고 서서 어미늑대의 품에 몸을 채 숨기지 못한 새끼늑대를 바라보았다. 새끼늑대의 붉으스름한 작은 입은 어미늑대의 배에서 젖꼭지를 찾아 헤매고있었다. 남자애는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자기의 몸에 있던 따스한 그 무엇이 차츰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작나무숲에서 나무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애는 그 바람이 꼭 산꼭대기에까지 불어갈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제일 높은 산꼭대기의 그 삼림을 지나면 뒤에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질것이였다.  
538    스키장의 썰매견*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349  추천:1  2013-11-29
고산훈련기지에 가 썰매를 탈 때 나는 처음으로 그놈을 보았다. 전에 나는 늘 시내에 있는 썰매장으로 가거나 야외썰매장으로 가서 스키를 탔다. 올해 겨울이 시작될 때 내가 사는 집뒤 광장의 호수에다 초급스키애호자들을 위한 몇십메터 길이의 설매장을 만들었다. 스키장이 채 완성되기도전에 나는 스노우보드를 메고 그곳으로 갔다. 나의 몸은 늘 제설기에서 나오는 싸라기눈을 맞아 얼군했는데 마치도 흰 껍데기를 뒤집어 쓴듯 했다. 그곳에서 사업하는 한 일군이 나에게 조건이 괜찮은 스키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에 나는 인터넷에서 그 스키장에 대한 정보를 본적이 없었다. 알고보니 그 스키장은 체육학원의 제2학교구역이였다. 고산지대에 위치한 스키훈련기지였기에 학교에서는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을수밖에 없었다. 기차를 두번 갈아탄후 뻐스에 앉아 한참을 달려서야 높은 산사이에 있는 스키장을 볼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2킬로메터에 달하는 가파로운 미끄럼길을 볼수 있었다. 나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한시바삐 스키화를 바꿔 신고 미끄럼길에서 날아내리고싶었다. 나는 행리들을 봉고차에서 내리웠다. 머리를 들어 산정을 바라보니 하얀 눈에 반사되는 해빛은 무던히도 나의 눈을 자극했다. 나는 머리우로 올렸던 스노우고글(雪镜)을 내리워 눈을 가리웠다. 바로 그때 그놈이 오렌지색으로 변해버린 나의 시야로 뛰여들었다. 나는 그놈의 모양을 똑똑히 보려고 스노우고글을 벗어들었다. 그놈은 은백색 털을 가진 개였다. 그놈은 스키도구를 파는 대청에서 달려나와 줄곧 나에게로 뛰여왔다. 그놈의 목표는 바로 나였다. 그때 내곁에는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그 어떤 개라도 “당신을 공격하겠습니다.”라는 신호를 그런 방법으로 보내지는 않았던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에 이미 습관되여있었다. 매번 한동안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나의 두마리 개도 그런 방법으로 나를 환영해주었던것이다. 내가 그들의 시야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들은 주저없이 그렇게 나에게 덮쳐들었던것이다. 주인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이 그들의 격정을 불러주었던것이다. 그들은 열광했다. 그 열광은 자기들의 앞을 가로막고있는 그 어떤 장애라도 모두 뒤엎으려는것 같았다. 그놈들은 높이 솟으며 나의 품에 안겨 입을 맞추었고 이발로 나의 손을 핥아댔다. 그놈들은 애써 자기들의 흥분을 통제하고있었기에 절대 나의 손을 진짜 물어 뜯는 불상사는 생길수 없었다. 그놈들의 꼬리는 직승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팽팽 돌아쳤다. 그놈들은 그런 방법으로 오래동안 주인과 갈려져있던 그리움을 보여주고 해소하려 했던것이다. 그런 환영식이 긴 시간 이어질 때도 있었다. 모든 동작이 끝나고나면 그들은 마치 10킬로메터를 금방 달린듯 숨이 차서 헐떡 거렸고 입귀로 느침을 질질 흘렸다. 사실 더 많은 느침은 이미 나의 옷과 얼굴을 흥건히 적신 뒤였다. 스키장에서 만난 그놈도 바로 오래동안 떨어져있던 주인을  맞는듯한 열정으로 나를 향해 뛰여왔던것이다. 나는 그놈을 마주하고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놈의 표정으로 보아 그놈은 필경 나를 자기의 주인으로 착각한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그런 놈을 키웠던 기억이 없었다. 그놈의 속도가 아주 빨랐지만 나는 그래도 인차 그놈이 은회색 털을 가진 세퍼드(狼犬)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나는10여마리의 개를 기른적이 있는데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똑똑히 알고있었다. 확실히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놈도 한두마리 있기는 했지만 그놈들은 눈앞에서 껑충거리는 그놈과 같은 품종이 아니였다. 나는 어려서 초원에 살 때 유백색의 세퍼드를 기른적이 있는데 어느날 황혼녘에 조용히 집을 나간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있다. 물론 그들의 털 색갈이 다르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변할수는 있것이다. 그리나 그놈이 머나먼 초원에서 적설이 두터운 그 고산지대로 들어올수 있단 말인가? 그놈이 만약 지금도 살아있다면 20살에 가까울것이다. 나는 아직 20살에 나는 개를 본적이 없다. 나는 사실 개에 대하여 깊은 료해는 없지만 개의 20살은 사람의200살에 해당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한 친구는 14살에 나는 개를 기르적이 있는데 잘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걸음도 잘 걷지 못했다. 나의 친구는 늘 그놈을 안고 밖에 나가서 해볕쪼임을 시켰다. 그렇다면 20살에 나는 개는 더구나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맞아줄수 없을것이다. 그놈이 나의 앞에 달려와 섰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던 간에 그놈은 여전히 자기의 방식대로 오래동안 속에 품고있던 그리움과 열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손에 들려있는 행리들이 행동을 방해할가봐 나는 그것들을 눈우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작은 개라고 해도 마음 먹고 덮쳐들 때의 그 힘을 절대 얕볼수 없다. 나는 전에 가방을 등에 메고 있다가 개가 덮쳐드는 바람에 넘어진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개들이 속에 있는 전부의 열광을 보여줄 때 그 힘은  가늠하기 어려운것이다. 나는 그놈이 오래전에 나와 갈라졌던 그놈이 옳든 말든 먼저 열광에 가까운 그놈의 충동을 마주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차 두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그렇게 하면 그놈이 달려들 때 인차 팔을 벌려 그놈을 안아줄수 있었으며 또 그놈이 너무 높게 올리뛰여 나의 얼굴을 긁는것도 예방할수 있었다. 내가 기르는 개 아야(阿雅)도 그렇게 덮치기를 좋아했다. 여름이면 나는 늘 아야에게 그렇게 당하군 했다. 그놈의 네다리가 어제 내린 눈을 마구 찍어올려 사처에 뿌렸다. 먼거리를 달려온 뻐스에서 행리를 내리우는 유람객들의 눈길이 우리에게 쏠렸다. 나도 어딘가 그놈의 열광에 감동되여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개들의 열정은 그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힘을 가지고있었다. 그놈은 내앞에 뛰여와 덮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나를 찍어보았다. 방금까지 보이던 열정과 흥분이 눈 깜빡 할 새에 령하 50도로 내려가는듯싶었다. 그놈은 크나큰 실망에 빠져들고있었다.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세상을 다 잃은듯 실망하고있었다. 그것은 내가 제일 보기 힘든 다른 물종의 눈에서 새여나오는 눈빛이였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영원히 그러한 눈 빛을 보지 않을것이다. 나는 매번 스키타러 가거나 공무로 먼길을 떠날 때면 내가 기르는 두마리 개들의 눈에서 그런 빛을 보군 한다. 그 눈빛에는 늘 커다란 실망이 섞여있다. 그 순간이면 나는 그놈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까지 흥미를 잃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그놈은 차츰 나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것을 의식하는것 같았다. 습관적인 랭담이 안개마냥 그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놈은 차디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그때를 빌어 그놈을 똑똑히 살펴볼수 있었다. 그놈은 수컷이였는데 흔치 않은 품종인 씨베리아썰매견이였다. 그놈은 체구가 건장했고 허리통이 단단했으며 털이 매우 풍성했다. 게다가 두귀까지 꼿꼿이 올리솟아 피뜩보면 늑대를 련상케 했다. 그놈의 홍채는 흰색이였기에 눈빛에는 개들에게서 보기 힘든 랭혹함이 력연했다. 나는 종래로 쌜매견을 길러본적이 없었기에 그한 품종에 대하여 아무 료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이 방금 나를 보고 흥분하던 그 행위가 아무 유래도 없을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주변에서 줄곧 나를 지켜보고있던 사람들도 어쩌면 그놈의 행동이 잘 리해되지 않는듯싶었다. 그들은 워낙 오래동안 갈라져있던 주인과 개의 감동적인 상봉을 그려보았을것이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마치도 절반쯤 흘러가던 연극이 갑자기 정지된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의 돌연적인 행동으로 하여 크게 난처한 느낌이 없었다. 그놈에게 꼭 그럴만한 리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실은 빨리 산에 올라가 스키를 타고싶었다. 하여 상징적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놈도 나의 인사에 답례를 하는듯 차가운 코끝으로 나의 손을 가볍게 다쳐주었다. 나는 대청에 들어가 돈을 내고 삭도표를 받아들었다. 나는 머리를 돌려 대청문곁에 있는 그놈을 바라보고는 인차 삭도를 타려고 기다리고있는 사람들속으로 들어갔다. 그놈은 목을 길게 빼들고 큰 길을 바라보고있었다. 무릇 스키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모두 적설이 두터운 산길을 지나야 했다. 스키장 미끄럼길은 참으로 훌륭했다. 금방 눈을 다져놓은데다가 어제 또 눈까지 내렸던것이다. 산으로 올라가기전에 나는 스키판에다가 초를 먹였었다. 스키가 날아내릴 때 흩날리는 눈안개는 그처럼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나는 쉬지 않고 스키를 탔다. 지어는 점심밥도 먹지 않았다. 삭도가 작동을 멈추어서야 나는 스키를 타고 대청앞까지 내려갔다. 그놈은 그때까지도 대청문앞에 쭈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산길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둠이 깃들고있는지라 산길에서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내려올리 만무했다. 진종일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느라 기진맥진한 유람객들이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가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였다. 나는 대청문앞에 서서 묵묵히 그놈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산길 저 멀리로 사라지는 차들을 막연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놈의 뒤모습이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나는 이틀을 예산하고 떠났기에 그날밤은 스키장에서 나기로 했다. 저녁밥을 다 먹은 나는 대청에 놓인 쏘파에 앉아 산발을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았고 체육학교 학생들이 나누는 한담도 귀동냥했다. 비록 하루낮의 접촉이였지만 나는 이미 그들과 익숙해있었다. 그들은 모두 10여살 푼한 애숭이들이였다. 그중 제일 어려보이는 애는 겨우 10살이나 됨직해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스키 타는 재간이 좋아서 180도, 360도 회전동작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밖에도 올리비아점프를 끝낸후 공중에서 스키판을 잡기며 공중회전 같은것과 같은 고난도 동작도 훌륭하게 완성했다. 그들이 가을날의 기러들떼처럼 줄을 지어내려올 때면 미끄럼길에는 호선들이 보기 좋게 생겨나군 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내려오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의 속도를 따라 잡을수 없었다. 그들의 한담을 통해 나는 그들중에 전국선수권보유자가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내가 소년들과 한담하고있을 때 그놈이 또 우리앞에 나타났다. 밖에 너무 오래동안 있었던때문인지 그놈은 대청에 들어오자마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놈은 언몸을 녹이려는 심사에서였던지 한동안 대청안에 서있었는데 그때 그놈의 눈은 흐릿한것이 초점이 없어보였다. 내가 시탐조로 부르자 그놈은 깜짝 놀라는것 같았다. 금방 동면에서 깨여나는듯싶었다. 그놈은 여직 나를 기억하고있었다. 일종의 례의에서였던지 그놈은 천천히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년들도 그놈을 발견하고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놈의 얼굴에는 성에가 가득 끼여있었다. 소년들은 그놈의 등을 다독여주었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 동작으로보아 소년들은 그놈과 익숙한 사이인것 같았다. 어쩌면 그놈은 소년들 모두의 애완견이나 되는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이 억지로 소년들의 친절을 받아주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놈은 애써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들더러 마음껏 자기의 털을 만지게 내버려두었다. 그 와중에도 그놈의 눈에서는 우울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눈빛은 그놈의 털을 만지작거리는 소년들의 손길을 벗어나 대청의 커다란 유리창을 뚫고 석양에 붉게 물든 산길에 가있었다. 그 시각 산길은 스키장의 미끄럼길처럼 고즈넉해있었다. 그 시각 그 길로는 절대 차들이 내려올수 없었다. 나는 그놈이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있는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기다림은 그놈의 전부의 세계라고 할수도 있을것이였다. “얘를 알아요?”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코등에 약간 동상을 입은 한 남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남자애에게 인상이 깊었다. 낮에 나와 그 남자애는 두번이나 한 삭도에 앉아 산꼭대기에 올라가면서 어떻게 스키를 보양해야 하는가를 두고 담론했던것이다. 나는 그 남자애에게 아침에 내가 금방 스키장으로 왔을 때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나의 말을 듣고난 남자애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지났다. “형은 참으로 얘 주인 같이 생겼어요.” 남자애는 나에게 그놈의 경력을 이야기해주었다. 남자애의 친구들도 옆에서 가끔 한두마디씩 보충했다. 갓 눈이 내려 얼마 안돼서부터 스키장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업성을 띤 전문스키장이 아니기에 필경은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미끄럼길이 가파로와서 초학자들은 감히 찾아오지도 못했다. 그놈은 키골이 장대한 한 사나이와 함께 스키장에 나타났다. 그놈은 스키장에 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놈과 같은 씨베리아썰매견은 금방 북방도시들에 나타나기 시작했기에 그 수효가 많지 않았고 가격도 놀라울 정도로 비쌌다. 유람객들은 주인의 동의를 얻은후 앞다투어 그놈과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놈의 주인은 진종일 스키를 타느라고 여념이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곧 스키장을 떠나게 될 무렵에 무슨 일이 발생했던지 주인은 갑자기 그놈을 때리고 차고 야단이였다. 그후 주인은 그놈을  떨궈둔채 차를 타고 그곳을 훌쩍 떠나버렸다. 그놈은 죽기내기로 차를 따라 뛰여갔다. 한참 지나자 차도 그놈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튿날아침, 소년들은 대청밖에서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채 피곤에 지쳐있는 썰매견을 발견하였다. 그놈은 주인의 차를 따라잡지 못했고 또 고속도도로에까지 닿지도 못한것 같았다. 그놈은 주인에게서 완전히 포기당한것이였다. 비록 그놈은 달리기에 능한 품종이였지만 네 바퀴를 가진 찌프차를 따라 잡기엔 심장이 받아당할수 없었던 모양이였다.  그날부터 그놈은 줄곧 스키장에 남아있게 되였다.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였다가 다시 그해의 첫눈을 맞았다. “여름에 유람객들이 없을 때 얘는 늘 길옆에 나서서 하염없이 산길을 바라보았다고 해요.” 소년들중 유일한 그 녀자애가 말을 잠간 끊고 그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첫눈이 내리자 얘는 더없이 흥분돼 했대요. 얘는 날마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서 내리는 유람객들을 살펴보았대요. 분명 자기를 두고 간 주인을 기다리는것이죠. 애타게…” 나는 지난 겨울 주인이 앉은 차를 쫓아가다가 심장이 폭발하는것 같아 멈춰서서 사라지는 찌프차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그놈의 모습을 상상하고싶지 않았다. 그놈에게 있어서 그 절망은 어떠한것이였을가? 그놈은 또 어떠한 인내심으로 이 스키장에서 일년을 기다려왔을가? 그놈은 자기의 주인이 꼭 자기를 데리러 올것이라고 굳게 믿는듯싶었다. 소년들은 그놈에게 먹이를 마련해주었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놈은 여직 그 어느 소년도 새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다. 그놈은 날마다 길어구에 쭈크리고 앉아 산길을 바라보았다. 첫눈이 내린후 그놈은 대청문앞으로 옮겨가 앉아 대청을 드나드는 유람객들을 참빗질했다. 어느날 어느 차에서 주인이 내리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는 모양이였다. 소년들이 말했듯이 나의 키꼴이며 내가 입은 스키복의 색갈이 그놈의 주인과 비슷한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의 주인도 스노우보드를 탔다고 했다.  내가 차에서 내릴 때 그놈은 나의 겉모습을 피뜩 보고 지레 흥분한것 같았다. 하지만 그 흥분뒤로 몰려드는 절망은 또 얼마나 컸을가? 나는 필경 그놈의 주인이 아니였다. 그냥 그놈의 주인과  비슷했을뿐이였다. 나는 소년들과 함께 레몬파이를 먹다가 한조각을 그놈에게 뿌려주었다. 그놈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으며 불안한 눈길로 나를 시탐했다. 그 모양이 못내 조심스러워보였다. 그러한 조심성은 늘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개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것이였다. 그놈들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에게 던져두는 한줌의 먹이뒤에 몽둥이가 숨겨져있거나 거친 발길질이 뒤따를것이라고 의심하는것 같았다. 그만치 그놈들은 요지경같은 심사를 가지고있는 인류를 그닥 믿어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패러독스인지도 몰랐다. 그놈은 오직 한마음으로 일년내내 자기를 떠나버린 주인을 기다려왔던것이다. 그놈은 한참이나 냄새를 맡은후 소년들의 고무아래 천천히 레몬파이를 먹기 시작했고 잠간후에는 나의 손에 묻은 레몬파이부스러기까지 핥았다. 개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  믿음의  표시였다. 소년들의 말에 의하면 그놈은 소년들외에는 종래로 누구의 손에서도 먹이를 받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일년내내 스키장에 살면서 그놈은 유람객들에게서 많은 수모를 당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추장을 중간에 바른 빵을 그놈에게 던져주었고 또 일부 사람들은 먹이를 뿌려주었다가 그놈이 먹으려고 다가서면 불시에 괴상한 소리를 질러 그놈을 놀래웠던것이다. 그래도 그놈이 나에게 약간한 믿음을 주는것은 나의 외모가 그놈의 주인과 비슷하고 나의 몸에 나의 개들의 냄새가 배여있는것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내가 소년들과 한담하고있을 때 그놈은 줄곧 우리곁에 엎드려있었다. 하지만 그놈은 좀처럼 주의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대청문앞에서 조금이라도 동정이 있으면 긴장한 눈길로 그쪽을 바라보군 했다. 그놈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소년들과 인사를 나눈후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은 6인용이였는데 나는 그중의 침대 하나를 사용할뿐이였다. 하지만 다른 다섯 침대에 손님이 없었기에 내가 그 침실을 혼자 사용하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짜른 팔 운동복을 입고 봄날처럼 따스한 대청에서 희희닥닥 한담을 하던 소년들이 숙소로 돌아가자 대청안은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지만 인차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책 한권을 찾아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나는 저도 몰래 잠이 들었다. 조용히 문을 밀어 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여났다. 그놈은 잠그지 않은 나의 침실문을 코등으로 밀어 열었지만 여전히 문밖에 서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들어와!” 나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며 그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놈은 나의 침대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속도가 매우 느렸다. 어쩌면 매 한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깊이 고려하는것 같았다. 그놈이 분명 자기의 대담한 행동을 두고 불안해 한다는것을 나는 인차 보아낼수 있었다. 어쩌면 그놈은 불시에 떨어질 스키스틱이나 무거운 눈신을 받아 당할 결심을 하고 나를 찾아온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끝내 나의 침대곁에 와 섰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놈의 턱과 귀등을 만져주었다. 무릇 정상적인 개라면 그렇게 만져주는것을 모두 좋아했다. 그놈도 례외가 아니였다. 얼마 안되여 그놈의 긴장되였던 근육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놈은 턱을 나의 침대가에 걸치고 소르르 두눈을 감았다. 그놈의 털은 아주 깨끗했는데 아무 잡냄새도 없었다. 소년들이 그놈을 정말 열심히 돌보는것 같았다. 하지만 영양불량때문인지 아니면 음식물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때문인지 지방은 그리 많이 축적되여있지 않았다. 나는 소년들이 방학을 한후이면 누가 그놈을 돌보아줄것인가가 금심스러웠다. 소년들이 아니면 그놈은 어디가서 먹이를 찾는단 말인가? 나는 그놈의 목에 걸려있는 가는 목걸이를 만져보았다.검은색이였는데 그놈의 목부위의 털과 비슷했다. 그점은 내가 주의하지 못한것이였다. 나는 그놈의 목부근의 털을 헤치고 자세히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목걸이는 아주 질이 좋은것이였는데 정교로운 표찰까지 박혀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씻지 않아 우에 약간 녹이 쓸어서 빛은 나지 않았다. 불빛을 빌어 자세히 살펴보니 우에 무슨 도안 같은것이 찍혀져있었다. 나는 힘주어 목걸이를 닦았지만 녹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손을 멈추자 그놈은 흠칫 놀라면서 두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의 손을 지켜보았다. 손, 손은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세상을 창조하는 신비의 대명사이지만 그놈에게는 죄악의 돌멩이를 던지는 도구로밖에 느껴지지 않을것이였다. 가련한 그 개는 정말 사람들의 손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있었던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되도록 그놈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낮은 목소리로 위안하면서 낮에 스키를 타느라 얼어서 스팀우에 올려놓아 말리우던 장갑을 주어들었다. 하지만 그 작은 동작에마저  그놈은 놀라는듯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다. 그놈은 내가 그 나른한 장갑에다 자기의 머리를 칠수 있는 돌멩이라도 감추지 않았는가 의심하는것 같았다. “괜찮다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놈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어조에서 기분을 감수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흥건히 젖은 장갑을 그놈의 앞에 내밀었다. “믿기지 않으면 냄새를 맡아봐라.” 개들은 자기의 후각을 제일 믿었던것이다. 그놈은 정말 코를 장갑에 대고 킁킁거렸다. 하지만 장갑에서는 돌멩이나 쇠붙이 냄새가 날수 없었다. 나는 젖은 장갑으로 녹이 쓴 표찰을 힘껏 닦았다. 그러자 레이저빛을  리용해 새긴 도안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두귀를 바싹 치켜든 개머리였다. 바로 그놈의 머리인것 같았다. 우에는 또 “Hake”라는 네개의 영어자모가 찍혀져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것은 없었다. 나는 그 영어자모를 살펴보면서 “하커(哈克)” 하고 불러보았다. 그놈은 머리를 번쩍 쳐든채 잘 생긴 두귀를 치켜세우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커!” 나는 다시한번 그놈을 불러보았다. 그놈이 벌떡 뛰여일어나 웬 일이냐는듯 나에게 눈길을 박았다. “하커”는 분명 그놈의 이름이였다. 다만 그놈이 “하커”로 불리워본지 너무 오랠뿐이였다.  하커의 몸은 얼어버린듯 꽛꽛해졌다. 하지만 하커의 두눈에서는 뭔가가 차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듯싶었다. 하커는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있었다. “하커!” 개들이 제일 처음 기억하는 단어는 자기의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커는 아직 잘 적응이 되지 않는듯싶었다 하커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길고 긴 어둠을 헤치고 나와 끝내 태양을 본 어린애처럼 하커는 오래동안 잊고 살았던 자기의 이름을 다시 찾게 된 감격때문에 흥분하고있었다. 그 순간 아무리 따뜻한 해볕이라고 해도 차디찬 어둠속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하커에게는 습관이 잘 안될것이고 그 빛은 또 잠시 하커의 눈을 아프게 자극할수도 있을것이였다. 하커! 그의 주인이 그를 스키장에 던지고 간 그날부터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준적이 없을것이였다. 자기를 부르는 이름을 들으며 하커는 조금이라도 얼었던 몸과 마음을 덥힐수 있을것이였다. 사람들에게 천리밖으로 팽개쳐진듯한 그 아픔은 오래된 얼음처럼 하커의 마음에 남아있었던것이다. 하커는 머리를 들어 또 잠간 나를 바라보더니 코등을 나의 팔밑에 밀어넣고 나의 냄새를 맡았다. 하커는 한참이나 그 자세를 유지했다. 나는 다시 책을 집어들고 읽어내려갔다. 그새 하커는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고있었다. 나는 하커가 그 자세로 그렇게 서있는것이 편안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내가 몸을 움직이자 하커가 머리를 쳐들었다. 그의 부드러운 눈길이 나의 얼굴에 잠간 머물다 갔다.  나는 하커를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계속 둘수가 없어 집에서 나의 개들에게 하던대로 침대를 다독이며 “올라오렴.” 하고 권했다. 하커는 과연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눈빌이 반짝 빛났다. 하지만 하커는 여전히 주저하는것 같았다. 침대는 사람의 소유물로서 개가 올라오는것을 금했던것이다. 하지만 나의 진정어린 표현이 하커를 감동시켰던지 그는 나를 믿기 시작하는것 같았다. 하커는 침대에 뛰여올라   얼마간 돌아치더니 나의 발치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엎드렸다. 그후 하커는 인차 잠이 들었다. 하커는 오래동안 그렇게 시름을 놓고 굳잠을 자본것 같지 않았다. 하커는 소년들의 숙소에도 들어가본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으로 그냥 스키장에 남아있는것만으로도 하커는 만족해야했던것이다.  나는 차츰 하커의 체온으로 하여 나의 발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얼마 안되여 하커는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듯싶었다. 어쩌면 나의 개들처럼 행복한 꿈나라에서 헤매이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하커는 강아지처럼 신음소리를 냈고 가볍게 몸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네다리는 노를 젓듯 허우적거렸다. 어쩌면 꿈속에서마저 주인의 차를 따라 달리고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하커는 그러한 꿈을 한두번만 꾼것이 아닐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또 꿈속에서 한번도 그 차를 따라잡은적이 없을것이였다. 나는 하커가 그 불행한 꿈속에서 헤매이는것이 가음 아파 부드럽게 그의 목을 다독여주었다.  하커가 잠에서 깨여나 두눈을 멍하니 뜨고 나를 바라보고있었는데 어쩌면 젖은 유리넘어에서 오는 눈길처럼 느껴졌다. 하커는 나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안심하고 두눈을 감았다. 하커는 인차 다시 잠이 드는것 같았다. 이튿날아침, 내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 나지도 않았는데 소년들이 나의 침실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하커가 나의 침대에서 굳잠을 자는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에 하커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대청의 한쪽구석에 누워 쪽잠을 잤던것이다. 대청바닥에 스틈이 들어오지 않을 때 소년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하커를 자기들의 숙소에 들여다 재우려고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커는 종래로 소년들의 뜻을 따르지 않았었다.  어제 금방 스키장에 도착한 내가 놀라운 속도로 하커의 신임을 얻어내자 소년들은 어딘가 나를 질투하는듯한 눈빛들이였다. 하지만 소년들은 어제밤에 내가 하커의 이름을 알아내던 이야기를 듣고는 다소 리해가 간다는 표정들이였다. 그날아침, 나의 침실은 여간만 흥성하지 않았다. 십여명의 소년이 저마다 하커의 이름을 부르기에 흥겨웠다. 하카, 하커… 우리는 한번 또 한번 그놈의 이름을 불렀다. 하커도 흥성흥성한 그 분위기에 푹 빠진듯 명쾌한 목소리로 흥겹게 짖어대며 우리 주변을 돌아쳤다. 한 소년이 나에게 하커가 그렇게 흥겹게 짖어대는것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날아침, 나는 첫사람으로 삭도에 오를 기회를 포기하고 대청에 앉아 하커를 살펴보았다. 8시가 지나자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륙속 마당에 들어섰다. 하커는 대청의 유리창을 통하여 차에서 내라는 유람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보고있었다. 새로운 차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면 하커는 몹시 긴장해 했다. 어쩌면 아리빠빠의 대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듯한 기분이였다. 나는 하커의 눈을 살펴보았다. 차가 도착해서 손님들이 다 내리기까지 하커의 눈은 시종 복잡한 분위기속에서 껌뻑이는것 같았다. 그 과정에는 박절한 기대감, 어쩔바를 몰라하는 긴장감, 이미 습관된듯한 실망감 그리고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한마리의 개가 그처럼 풍부한 표정을 가지고있다는것이 놀라왔다. 하커는 찌프차를 더 주의 깊게 살폈는데 나는 인차 그 원인을 알것 같았다. 소년들은 나에게 하커의 주인이 찌프차를 몰고 스키장을 떠났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이틀간의 휴식을 마치고 내가 스키장을 떠날 때 하커는 그렇게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차를 몇발자국 따라 나오다가 멈추어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 스키장을 찾았을 때는 두주일뒤였다. 동생이 차를 몰아 나를 스키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애써 아무일도 없는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에서 행리를 내리웠고 가끔은 대청쪽을 바라보았다. 하커가 달려와 나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서였다. 스키장으로 떠나오기전에 나와 동생은 낯선 환경에서 누가 먼저 낯선 개의 믿음을 얻는가를 내기하자고 했던것이다. 나와 동생 사이에는 이것 말고 또 하나의 시합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가 말을 더 잘타는가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이 시합은 나에게 큰 흥미가 없었다. 한것은 나의 말 타는 솜씨가 영원히 동생을 따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하여 나는 누가 먼저 낯선 개의 믿음을 얻는가 하는 이 시합에서 동생을 이기고싶었던것이다. 갑자기 몇몇 녀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인차 머리를 돌렸다. 하커가 그자리에 있었던것이다. 나는 하커가 나의 개들처럼 안간힘을 다해 달려들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하커는 애써 정서를 통제하는것 같았다. 그는 근근히 앞발을 나의 손에 올려놓고 살랑살랑 꼬리를 저을뿐이였다. 동생은 어릴 때의 나처럼 세퍼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하커와 같이 훌륭한 쎌매개를 본 동생의 눈은 삽시에 어린애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형, 얘를 알아?” 동생은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하커를 살펴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세상의 모든 개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일뿐이지.” 나는 짐짓 아닌보살을 했다. “아니야, 내 눈은 속일수 없어. 얘는 꼭 형을 알고있다니까.” 동생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갔다. 동생이 아무리 친절을 보여도 하커는 시종 랭담한 표정으로 동생을 대했던것이다. 지어는 먹이를 던져주어도 외눈 한번 팔지 않았다. 스키대의 소년들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삭도에 오를 때까지도 하커는 나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대청문앞에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와서 멈춰서자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뛰여갔다. 우리는 그새 스키를 두시간이나 탔다. 스키대의 소년들은 아주 권위적인 어조로 나의 스키재간이 참 빨리 는다고 치하했다. 그들은 물론 내가 평소 시간만 나면 스키도구를 둘러메고 우리 아빠트가 있는 뒤켠의 작은 스키장으로 가서  련습한다는것을 모를것이다. 우리는 미끄럼길중간에서 휴식을 하다가 저도 몰래 하커를 화제에 올리게 되였다. 나는 부지중 소년들의 분위기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것을 발견했다. 소년들은 이미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자기들만의 협의가 이루어진것 같았는데 나만 모르고있는듯싶었다. 나중에 그들의 대표로 나선 전국선수권보유자가 나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하커를 수양할수 없는가고 제의했다. 그들은 내가 집에서 개를 기르고있는것을 알고있었고 또 하커가 무척 나를 따른다고 믿고있었던것이다. 스키장이 곧 상업화운영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손님이 많아지면 하커는 우환거리로 될수 있었다. 얼마전에도 하커는 자기를 놀려대는 한 유람객의 스키복을 물어 찢어놓았던것이다. 물론 사건은 그 유람객이 먼저 도발한것이지만 스키장에서 큰 개를 기르고있다는것도 정당한 리유로는 될수 없었다. 하커는 필경 유람객들의 안전에 위협으로 되였던것이다. 스키장 지배인은 이미 하커를 어디든지 보내버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소년들은 그 일을 두고 안타까와했다.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하커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찾아주고싶다고 했다. 소년들의 권고는 나에게 너무 돌연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하커를 좋아하는것은 사실이였지만 나에게는 이미 두마리의 개가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그놈들이 하커를 용납할수 있을지도 걱정이였다. 나는 점심에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그가 동의하면 하커를 수양하겠다고 소년들에게 대답했다. 점심에 스키장의 스낵점에서 대충 밥을 먹은 나는 공중전화를 찾아 동생과 통화를 했다. 동생은 하커가 스키장에서 자기의 성의를 무시한것때문에 마음이 편치않아 했다. 하지만 내가 하커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자 동생은 인차 동의했다. 지어 하커라는 이름이 입에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놈이 집에 오면 그보다 더 멋진 몽골식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동생은 스키장에서 하커를 보는 순간 좋아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내가 전화를 마치고 나올 때 하커가 갑자기 무엇에 놀란듯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나는 하커가 있는쪽으로 뛰여갔다. 하커가 어느 유람객에게 발을 밟혔던것이다. 더블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싣는 눈신은 경질수질로 만든것이여서 돌덩이처럼 딴딴했는데 밟히기만 하면 여간만 아픈것이 아니였다. 하커의 발을 밟은 사람은 펭긴처럼 생긴 남자였다. 그는 자기의 실수를 부끄러워할 대신 걸상에 털썩 들어 앉아서 손에 든 스키스틱으로 쩔뚝거리며 다가오는 하커를 향해 힘껏 찔렀다. 하커는 비록 성격이 포악한 축은 아니였지만 그 남자의 행동을 노려보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왕왕 짖어댔다.  남자는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서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그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자 얼굴이 깎인다고 생각했던지 손에 들고있는 스키스틱을 번쩍 들어 하커의 옆구리를 향해 힘껏 찔렀다. 하커는 그제야 북방세퍼드의 흉포함을 다 들어내보이려는듯 그 남자를 향해 미친듯이 포효했다. 그리고 늑대처럼 두귀를 빳빳이 치켜세워 머리에 딱 붙이고 웃입술을 한껏 말아올리며 하얀 송곳이를 들어냈다. 그것은 개들이 공격을 시도할 때의  전주곡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남자는 내심으로부터 오는 커다란 공포를 감지하고있었지만 그래도 그 얄팍한 체면을 살리려고 손에 든 스키스틱을 마구 휘둘러댔다.  시간은 긴장하게 흘러갔다. 하커는 이미 몸을 납짝 땅에 붙이고있었다. 그 동작으로보아 하커는 절대 먼저 공격할 태세는 아니였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본능적으로 반항할 준비는 충분히 하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 남자와 하커의 사이에 서서 천천히 손을 내밀어 하커의 머리를 살랑살랑 만져주었다. 나는 하커의 목으로부터 전해지는 가벼운 전률을 느낄수있었다. 하커는 분명 속으로 포효하고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소리없는 포효속에 하커의 분노와 공포가 섞여있을것이고 일종의 절망도 숨어있을것이라고 느꼈다. “당신의 개요?” 남자는 끝내 흉악한 개와 마주하지 않아도 될것이라는 생각때문인지 다소 안도감을 느끼는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더 마땅찮은 기색을 띄우면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 남자처럼 개를 학대하는 사람을 용서할수 없었지만 일이 더 크게 발전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써 정서를 통제했다. 그때 나는 동생이 그 자리에 없는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성격이 나보다 훨씬 급했다. 소학교에 다닐 때 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는 세 남자애가 작은 개를 강에 처넣으려는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그애들에게 달려든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불 보듯 뻔한것이였다. 하지만 동생은 끝내 그 작은 강아지를 구해내고야 말았다. “당신이 먼저 얘 발을 밟은게 아니요?” 내가 남자에게 따지고들었다. 남자는 나의 목소리에 섞여있는 분노를 의식한것 같았다. 나의 큰 키는 하커로 하여금 나를 자기의 주인으로 착각하게 한 외에도 그 남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줄수도 있었다.  나는 하커를 한쪽구석으로 끌어왔다. 하커는 오른쪽앞발을 몹시 다쳤는지 땅에 대지 못하고 세발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쭈크리고 앉아 하커의 오른쪽앞발을 살펴보았다. 뼈는 상한것 같지 않았다. 그 남자가 스키스틱으로 찔렀던 옆구리도 가죽이 좀 긁혔을뿐 뼈에는 문제가 없는것 같았다. 내가 가볍게 상처를 만져주자 하커는 시름이 놓이는지 앓음소리를 했다. 하지만 일이 끝난것이 아니였다. 스키를 둘러메고 삭도를 향해 가던 소년들이 그 남자의 행실을 보게 되였던것이다. 그들은 남자의 소행에 큰 분노를 느끼고있었다. 그 남자가 무거운 눈신을 신은 발을 힘겹게 옮겨놓으며 소년들의 앞을 지날 때 그중 한 소년이 손에 들고있던 스키로 남자의 옆구리를 갈겼다. 옷을 너무 많이 주어입어 몸집이 펭긴을 방불케 하는 남자인지라 그만한 충격에 어디를 상한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픔은 느낀 모양이였다. 남자는 소년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년은 확실히 고의적으로 그 남자를 공격한것이였다. 소년은 스키대원들중에서 몸집이 제일 약한 축이였다. 하지만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비게덩이를 련상시키는 그 남자를 쏘아보았다. 남자는 소년의 눈길에서 무엇인가를 의식한듯싶었다. 사실 그때 십여명의 소년들이 이미 남자의 주변을 빽빽이 에워싸고있었던것이다. 소년들은 저마다 스키를 앞에 들고 수시로 공격할 태세를 보였다. 소년들은 모두 스키를 제 몸처럼 아끼고있었다. 사흘에 한번씩 초를 바르는 스키는 보기에도 그처럼 훌륭해보였다. 오직 그런 스키라야만 달리면서 미끄럼길에다가 멋진 호선을 깊숙히 그을수 있는것이였다. 남자는 어느 소년이 휘두른 스키가 당금 자기의 얼굴에 깊숙한 상처라도 내는것 같아 오금이 저려 하는듯싶었다. 남자는 여전히 욕지거리를 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제야 소년들은 하커를 찾아와 상처를 살폈다. 나는 그 소년들이 고마왔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인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있었던것이다. 래일 동생이 차를 몰고오면 나는 하커를 데리고 함께 스키장을 떠나려고 했다. 내가 상처를 보살펴줄 때 하커는 줄곧 잘 배합해주었다. 하커는 나로부터 그 어떤 힘을 느꼈던지 더 이상 고독해 하는것 같지 않았다. 나는 산꼭대기에 도착하여 삭도에서 내리다가 깜짝 놀랐다. 하커가 이미 산길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와 나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하커처럼 그렇게 아무 곳에나 서있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스키애호자들이 수시로 바람처럼 그곳을 스쳐지날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하케에게 빨리 그곳을 떠나 내쪽으로 오라고 소리치려 했다. 그때 하커도 애타게 나를 찾고있는듯싶었다. 나의 눈길이 하커의 눈길과 부딪쳤다. 하지만 그때 나는 스노우고글을 쓰고있었기에 하커가 나의 눈길을 의식했는지는 알수 없다.  그것은 고급미끄럼길이여서 수시로 사람들이 스쳐지날수 있었다. 나는  하커를 향해 크게 소리치려던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높게 소리지르면 하커는 내가 자기를 질책하는것이라고 착각할수도 있을것이였다. 그것은 나와의 접촉에서 금방 따사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하커에게 일종의 공포로 느껴질수도 있을것이였다. 그때 하커는 나를 잃는다는것이 세계의 종말과 다름없을것이였다. 나는 미끄럼길밖의 사람이 적은 곳을 택해서 하커를 끌고 천천히 내려갔다. 평소라면 몇분이면 될 미끄럼길을 나는 십여분이나 허비했다. 하커는 줄곧 나의 뒤를 바싹 따랐다. 미끄럼길을 다 내린 나는 인차 스키를 벗었다. 하커는 흥에 겨워 다시 미끄럼길을 오르려고 서둘렀다. 나는 하커의 머리를 끌어안고 애써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면서 빨리 미끄럼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나는 하커가 나의 말을 알아들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견결한 태도로 대청쪽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하커는 나의 명령을 알아들었던지 대청쪽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렇게 실망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다가도 가끔씩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군 했다. 그날오후,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삭도입구는 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다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산중턱에 있는 역에 들어가 다시 올라가는 삭도를 타군 했다. 그곳은 초급스키애호자들을 위해 마련한 출구였다. 그들에게는 보통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용기가 없었고 혹시 삭도를 타고 올라갔다고 해도 가파로운 산풍경이나 구경하고 급급히 내려가군 할뿐이였다. 그날오후, 고급미끄럼길은 여느때 없이 사람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은 전에 고급미끄럼길을 달려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하기에 그렇다할 요령이 없어 그냥 스키에 몸을 맡기고 미끄럼길을 달릴뿐이였다. 그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그들곁을 지날 때 숙도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피한후에는 또 속력을 가했다. 이 방법이 비록 안전하기는 했지만 조절하기 십분 힘든것이였다. 그렇게 조심하느라 해도 한번은 끝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야 말았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불쑥 내앞에 나타났는지를 몰랐다. 내가 뒤에서 검은 구름같은 존재가 날아온다는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비켜설 시간이 없었다. 그 사람은 폭탄처럼 나를 치고 넘어졌다. 행운스럽게도 그도 나도 상처는 입지 않았다. 다만 내가 금방 산 스노우고글이 금이 갔을뿐이였다. 그날오후, 나는 그래도 기분좋게 스키를 탄 셈이였다. 소년들은 나에게 새로운 동작도 한가지 가르쳐주었다. 내가 오후내내 미끄럼길아래까지 내려가지 않았기에 하커는 시종 미끄럼길과 삭도 사이에서 배회하고있었다.  한참이나 스키를 타다가 내려다보니 미끄럼길아래쪽에 몇몇 사람이 몰려서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소년들이 스키를 타고 나는듯이 그곳으로 내려갔다. 나는 혹시 어느 유람객이 상하기라도 한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곳에 하커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속력을 내여 그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한 녀자애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고의적으로 그런게 아니란다.” 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커가 그곳에 쓰러져있었다. 소년들이 어쩔바를 몰라 하커의 주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있었다. 나는 스키를 벗고 하커의 곁에 쭈크리고 앉았다. 하커는 그때 이미 호흡이 멎어있었다. 나는 하커를 측면으로 눕혀놓고 그의 입을 힘껏 벌렸다. 그의 이몸은 이미 푸르스레한 색을 띠고있었다. 산소가 부족한것 같았다. 나도 금방 산에서 달여왔는지라 몹시 숨이 찼다. 하기에 모자를 벗고 귀를 하커의 가슴에 댔을 때 그의 심장박동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나는 하커에게 인공호흡을 시켰다. 한 남자애가 나를 도와 하커의 가슴을 눌러주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끝난것 같았다. 하커의 입귀에서 거품이 섞인 검스레한 피가 흘러나왔던것이다. 그 녀자애의 발에 신겨진 스키가 하커의 가슴을 힘껏 들이쳤던것이다. 하커는 페만 상한것 같지 않았다. 소년들이 스키장의 구호차를 불러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모든 희망을 접은 뒤였다. 하커의 눈은 먼지가 가득 묻은 얼음처럼 부옇했다. 령하 30도의 기온에서 하커의 몸은 차츰 얼어가고있었다. 하지만 소년들은 그때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 또 한 사람 바꿔가면서  내가 하던 동작대로 하커에게 인공호흡을 시키느라고 바삐 돌아쳤다. 하커는 인차 얼어서 꽛꽛해졌다. 그 시각 나는 죽어서 땅에 얼어붙은 하커가 그처럼 가냘파보였다. 하커는 겉보기보다 매우 여위였던것이다. 그날, 오스트리아 국가소년스키팀의 코치가 대청에서 스키보양에 대한 강좌를했지만 나와 소녀들은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내가 그 강좌에 가지 않은것은 그저 좋은 기회를 한번 놓지는것뿐이겠지만 스키팀의 소년들에게는 학점을 깎이는 큰 일이였을것이다. 우리는 하커를 스키장옆의 나무숲에 묻어주었다. 겨울날의 눈밭은 돌멩이처럼 딴딴하게 얼어있었다. 우리는 우등불을 피워서 옹근 두시간이나 땅을 녹인후 하커를 묻을만한 구뎅이를 파고 역시 얼어서 돌처럼 된 하커를 안에 눕혔다. 하커라는 이름의 그 씨베리아썰매견은 끝내 주인을 기다려내지 못하고 그 스키장에서 최후를 맞은것이다. 만약 하커의 주인이 지금 이 글을 보고있다면 꼭 한번  찾아주기를 권하고싶다. 하커는 지금 스키장의 고급미끄럼길오른쪽에 있는 삼림의 큰 자작나무아래에 묻혀있다. 그 자작나무는 줄기에 큰 상처자국이 나있어 찾기가 참 쉽다.  그 상처자국은 누군가의 한쪽눈을 방불케 한다.  씨베리아썰매견(西伯利亚雪橇犬) 동씨베리아에서 유래된 중형견으로서 두겹의 두터운 털과 낫모양의 꼬리, 똑바로 선 삼각형 모양의 귀, 뚜렷한 무늬가 특징이다. 씨베리아썰매견은 활동적이고 힘이 넘치며 쾌활한 품종으로서 씨베리아 북극지방의 극심한 추위와 혹독한 환경에서 건너와 북동아시아의 축치인에 의해 교배되었다. 고기와 개사료를 먹는다. 씨베리아썰매견은 대다수의 개에 비해 더욱 촘촘한 모피를 가졌는데 다양한 색상과 문양이 있다. 다수가 황금빛이나 잡색의 얼룩을 띠기도 하지만 가장 흔한 색상으로는 검은색과 흰색, 회색과 흰색, 구리빛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전체 흰색이다. 씨베리아썰매견은 늑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있다.  
537    49살나그네에게도 꿈은 있는가? 댓글:  조회:2841  추천:2  2013-11-22
커피 한잔을 타들고 컴퓨터앞으로 왔다. 날마다 맛이 달라지는 커피를 오늘도 무덤덤하게 홀짝이며 군입거리를 찾는 무엇처럼 대중없이 인터넷세계를 헤집다가 문뜩 나는 지금 무엇을 살고있나 하는 생각이 긴 꼬리를 끌며 날아내리는 류성처럼 뇌리에 떨어졌다.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살고있는가? 지나온 시간들을 참으로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갈마든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 또 아침 출근 또 저녁 퇴근… 의 반복이였다. 그러다 닷새마다 이틀씩 차례지는 주말휴식은 방콕! 굳어진 이 생활의 룰을 깨면 무언가가 잘 정리된 공간이 흐트러질것만 같은 강박증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군 했다. 두려움을 느낄만치 나의 사상은 고루함에 길들여져있었고 두려움을 느낄만치 나의 뇌파는 경직되여있었다. 달마다 어김없이 카드에 날아드는 그 얼마안되는 로임에 길들여져있었고 그 얼마안되는 로임으로 가정 꾸리고 아들놈 뒤바라지 하고 그 와중에 몇푼 남겼다가 친구들과 맥주 한잔 즐기는 일상에 길들여지면서 내 마음의 맥박이 하루하루 경직되여갔던것이다. 누군가는 아침에 깨여나보니 스타가 돼있더라고 한다. 오늘 문뜩 커피잔에 빠진 내 얼굴을 살피니 나는 꿈이 바랜49살의 나그네로 변해있다. 커피 한잔 앞에 놓고 긴긴 하루를 다 보내도 매달 19일이면 어김없이 얄팍한 로임봉투를 받아쥘수 있는 내 직장에 만족하면서도 울바자굽에 남아있는 초겨울의 호박대가리처럼 오글조글 말라가는 자신이 애달파 가끔 한숨도 짓는 그런 창백한 얼굴의 나그네로 변해있다. 나는 여기서 래일도 아침이면 커피 한잔을 타 들고 컴퓨터를 찾을것이고 모레도 군입거리를 찾는 그 무엇처럼 대중없이 인터넷세계를 헤집을것이며 글피도 커피잔에 빠져드는 뿌연 해빛오리들을 셀것이다. 그러다 가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우아한척 폼을 잡으면서 나는 과연 누구일가를 물을것이다. 돌을 삼켜도 소화해낼수 있을것만 같던 그 20대 중반에 내 몸뚱이가 다른 어느 곳에 떨어졌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나를 살고있을가? 이렇게밖에 뇌까릴수 없는 스스로가 또 슬퍼지려고 한다. 커피잔에 비낀 나의 마흔 아홉살을 마주하고 내가 과연 당당하게 ”무엇이 돼야지!”를 꿈꿀수 없어 울고싶다. 49살나그네에게도 꿈은 있는가?
536    나는 오늘도 살아있나보다… 댓글:  조회:2503  추천:1  2013-11-20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면 나는 왕왕 내가 살고있구나 라고 느끼군 한다. 힘든 마음의 빗장을 열고 수많은 사색의 끄나불들이 스멀스멀 뇌리를 향해 기여오르기때문이다. 스멀스멀의 그 절주를 따라 살펴보면 그 리듬에는 40대 마지막역을 벗어난 나그네의 성숙함이 아니라 십대의 유치함과 이십대의 정열과 삼십대의 방황과 40대의 막무가내가 차곡차곡 쌓여져있는듯싶다.  래일이면 50살인데, 돌아보면 해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래일이면 50살인데 앞을 내다보아도 막막하기만 하고… 내 일생은 그저 요 모양 요 꼴로 끝나는것일가? 하는 우려가 가슴을 지지눌러 숨이 가쁘다. 40대의 막바지를 사시던 아버지를 가끔 떠올리군 한다. 시골에서 지지리도 힘들게 살아오셨던 아버지의 40대 마지막역은 십대를 살아가던 나에게 그 자체가 반면교재였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면 시골을 벗어나야 한다는게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 시사해준 전부의 의의였다. 고향집 마당의 울바자 둘러진 남새밭에서 마늘밭김을 매면서 아버지도 40대 마지막역을 달리는 당신의 인생렬차를 두고 한번쯤 슬퍼하고 감동하고 회의를 느끼셨을가? 지난 추석에 부모님산소에 갔다가 고향친구를 만난적이 있다. 밤낮으로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십대를 보아오던 친구였다. 친구는 내 부모님산소가 있는 그 산에서 100년을 묵묵히 살아왔다는 소나무만치나 듬직하게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있었다. 아니, 고향을 떠니지 못하고있다고 함이 더 옳을가? 너네 시내사람들은, 너네 간부들은… 마치도 “너네”는 그 시골과 하등의 상관도 없는것처럼 말하는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그 때문이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그 친구의 몸에서 흘러간 내 십대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싫었다는것이  진심이였을것이다. 아픔과 방황과 실패와… 과연 아름답지 못했던 십대의 시간들을 반추하며 가슴을 뜯기 싫어서였을가? 몸도 마음도 힘든 오늘에야 나는 친구의 눈에 “너네 시내사람, 네네 간부”로 비쳐지는 내가 친구가 부러워 하는 “너네”로 당당하지 못함을 스스로 느꼈기때문이라는것을 알것 같다. 친구에게 이 말을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떤 눈길로 나를 보아줄가? 모든것을 내려놓고 현실에 안주하면 나는 친구가 부러워 하는 “너네”로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을것이다. 그렇게 살아가고싶다가도 다시 20대의 정열이 고패쳐오름에 나는 슬프다. 내 마음에 아직 살아있는 20대를 보는것이 시골을 벗어나려고 고열을 앓던 나의 십대를 보는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남자는 두번 사춘기를 앓는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40대중반에서 50대로 가는 이 길에 바로 남자의 두번째 사춘기가 자리하고있지 않나 새삼 느껴진다. 바야흐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될 내 아들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놓여져있을가가 두렵다. 나에게 이런 감성이 남아있는것을 진정 기뻐해야 할가? 몸도 마음도 유난히 지쳐있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나보다…
535    나에게 리유를 달라 * 리치방 댓글:  조회:2058  추천:0  2013-11-18
문학의 창/단편소설 나에게 리유를 달라 리치방 1 37살이라니, 스스로도 놀라왔다. 겉보기에는 금방 30살 문턱에 올라선듯싶다. 1.78메터의 키에 하얀 피부, 두눈이 특별히 매력적인데 녀자들의 봉의눈을 방불케 했다. 겉모양만 보아서는 유럽쪽의 사람이 아닌가 착각이 갈것이지만 사실 리중은 유럽사람들과는 아무 유전관계도 없다. 친구들은 리중을 두고 응당 멋지게 생겨야 할 부분은 한곳도 빠짐없이 충분하게 멋지게 생겼다고 말한다. 리중은 한 광고회사에서 부총경리로 일한다. 부총경리, 처녀들이 들으면 귀가 활짝 열릴지도 모르지만 리중이 일하는 광고회사는 겨우 직원이 7명뿐이다. 주요한 업무는 거리의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다. 총경리는 리중의 친삼촌이다. 리중은 몇번이나 삼촌의 회사를 떠나려고 했지만 삼촌이 번마다 간곡하게 말려서 여직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간후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 내가 아니라면 너의 오늘이 있었을가?” 삼촌이 이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리중은 무엇인가 묵직한것이 지지리도 힘들게 가슴을 내리누르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뒤 듣기 싫은 노래처럼 한루건너 반복되자 그냥 귀등으로 흘려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리중이 해마다 회사를 위하여 벌어들이는 돈은 삼촌이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에 대답을 못할만치 적은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삼촌은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라는 리유때문에 그냥 리중을 시장바닥에서 구을러다니는 못생긴 호박정도로나 생각하고있을뿐이였다. 삼촌은 3년에 차를 3대나 바꾸더니 나중에는 보마(BMW)에 올라앉았지만 리중은 여전히 중고차시장에서 들여온 마고탄(MAGOTAN)을 굴리고다녔다. 리중은 대학시절부터 련애를 했는데 그뒤로 몇번이던지 스스로도 아리숭했지만 여직껏 기억에 남아있는 상대는 몇이 안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방에서 리중을 보고 헤여지자고 제기를 했었다. 리중으로서는 그게 분하고 억울했지만 상대는 그렇다할만한 리유도 주지 않고 돌아서군 했다. 후에 삼촌이 리중에게 직설적으로 한마디 했다. “너 주제를 알아야 하지, 너에게 뭐가 아쉬운게 있니? 그것도 파악 못하고 줄창 예쁘게 생긴 녀자애들의 꽁무니만 따랐으니…” 리중이 생각해보아도 삼촌의 말에 도리가 있는듯싶었다. 그야말로 한달을 뼈빠지게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것은 겨우 강초 두병 값이 될가말가 하지 않는가. 친구들과 함께 밥 몇끼 먹으면 호주머니가 바닥을 보였다. 리중은 고지식한 사람이였다. 사귀던 녀자애들이 떠나갈 때마다 그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리유나 알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것은 똑 같은 한마디 “리유가 없다.”였다. 어느한번은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리유를 받아내겠다며 달려들었다. 2년간 련애를 했고 호상 헉헉 오르가즘을 타며 그 장면까지 연출했던 녀자에게서 갈라져야 하는 리유 한마디 듣지 못한다는것이 그처럼 억이 막혔던것이다. 그녀는 침대우에서 줄곧 리중의 이름을 불렀고 “사랑해, 이대로 죽어버리고싶어!” 하고 열연했었다. 리중은 그 말에 너무도 감동되여 닭똥같은 눈물까지 둘둘 떨궈버렸다. 그러던 녀인이 눈길을 돌려버린것이다. 그후 리중이 하도 검질기에 리유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너, 알어? 네가 사는 그 집이 되게 작은거. 특히 그 화장실은 너무 작아서 방귀도 맘대루 뀔수 없었단 말이다. 그 낡아빠진 침대란 놈이 방안을 다 차지해버렸다는거 너 생각해보았니? 그 침대두 너의 아버지가 너에게 물려준거라며? 삐꺼덕삐꺼덕… 듣기싫게 타령은 왜 그렇게 한대? 그 소리만 들으면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이…” 리중은 그녀가 주어대는 리유때문에 떡 벌려진 입을 다물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리유때문에 2년간 련애를 하고 살을 섞던 사람들이 헤여질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는가? 정말 사랑했는데 “화장실이 작아 방귀를 맘대루 뀔수 없어”서, 침대가 “타령을 불러…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해서 갈라진단 말인가? 그녀는 고통에 부르르 어깨를 떠는 리중을 바라보면서 약간은 미안한듯 얼버무렸다. “네가 기… 기어코 말하라 했잖아? 내가 죽어두 말 아아…안한다는데…” 리중의 집이 20평남짓하니 작은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침실외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수 있는 복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저쪽끝에 “방귀도 맘대로 뀔수 없는” 화장실이 있었다. 이 집은 아버지가 리중에게 물려준것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리혼한후 이 집을 리중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리중의 손에 열쇠를 넘겨주던 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늘 리중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너 재간이 있으면 이 집을 가지지 말아봐라. 이 집을 가지면 넌 무골충밖에 안되는기라.” 리중은 아버지의 손에서 열쇠를 받았고 그후 2년이 채 안되여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급급히 이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어머니는 원한에 찬듯 말했다. “누구를 탓할게 없어. 모두 그 물건이 속이 너무 좁았던 탓이야. 그야말로 밴댕이소박채를 그대로 닮았더랬지.” 아버지가 어머니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리중은 줄곧 모르고있었다. 겉보건대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실이 좋은 잉꼬부부였다. 간혹 거리를 나갈 때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다면 그 친절도 꾸며낸것이였단 말인가? 리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아버지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얼굴을 확 붉히면서 내쏘았다. “너 에미에게 물어봐라.” 리중은 어머니에게도 리유를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몹시 상심해서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근본 나를 눈에 차하지 않았단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모두 충분한 리유로 될수 없다고 느껴졌다. 리중이 34살에 나던 해,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렸다. 리중은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더 이상 련애에 정력을 쏟을수 없없다. 매일 칼날같이 퇴근해서는 어머니를 돌봐야 했던것이다. 돌본다고 해야 고작 밥을 짓고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가 되여주고 잠자기전에 얼마간씩 안마를 해드리는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점점 응석이 많은 어린애로 변해서 가무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 무렵, 리중은 친구들의 소개로 문화관에서 사업하는 무용보도원처녀를 만나게 되였다. 리중보다 나이가 6살이나 어렸는데 보기에는 23, 4살밖에 안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리중네 집이 좁은것을 탓하지 않았고 “타령을 하는” 그 낡은 침대를 꺼리지도 않았다. 리중은 어느 모로보나 조건이 괜찮은 그녀가 자기를 따르는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부모가 모두 무용학원의 교수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예쁜 축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절대 미운축에는 들지 않을것이였다. 그날, 리중은 그녀와 함께 커피숍에 들어갔다. 리중은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오. 자궁암에 걸린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시간을 다투구 월급이라 해봤자 4천원 푼히 되구 달린지 20만킬로는 더 될 헌 마고탄을 굴리구…” 그녀가 입가에 실웃음을 피워물었다. “전… 사실 그쪽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쑥스러움을 탈줄 알구 솔직한…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식사가 끝나고 그쪽에서 복무원을 불러 얼마인가고 물었었죠? 복무원이 460원이라고 대답하자 그쪽은 나를 건너다보며 쑥스럽게 웃었더랬죠. 그리고는 몸을 돌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구요. 쑥스러움을 탈줄 안다는거, 지금 그만치 보귀한게 또 있을가요?” 그녀의 말에 리중이 또 한번 쑥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날, 내 호주머니에 딱 460원이 있었거든요. 물론 쑥스러울만 했었죠.” 그녀가 리중의 말을 받았다. “지금 세월에 쑥스러움을 아는 남자는 꼭 녀자를 아낄줄도 알거예요. 절대 딴눈을 팔지 않을거니까요. 그것만 있으면 전 만족이예요. 집이 작은게 뭐가 중요해요? ” 그날밤, 리중은 그녀를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문에 들어서는 리중을 향해 빨리 뒤를 파달라고 소리쳤다. “어머니, 화장실에 가셔야지요.” 어머니가 노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이놈아, 내가 제 발로 화장실에 갈만하면 왜 너를 부르겠냐?” 리중은 그녀를 보고 잠간 자리를 피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워낙 집이 작은지라 딱히 어디로 피할 자리도 없었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그 방을 내놓고 갈수 있는 곳이란 화장실뿐이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후비는것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뒤를 절반쯤 파냈을 때 어머니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웬지 신음이 아니라 행복한 타령같이 듣겼다.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다 후비고 머리를 들려보니 그녀가 서있던 자리는 어느새 비여있었다. 어머니가 입가에 실웃음을 물고있었다. 리중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 왜 딱 그녀앞에서 나보구 뒤를 파달라했어요? 어머니는 마음 먹구 내가 녀자친구를 못 사귀게 하려는게 아니예요?” 어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내가 죽은 담에나… 네가 련애에 빠져 재미를 보느라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어쩌니?” 리중은 뭐라고 말을 이을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가 돼있다고 하지 않는가? 헌데 나의 어머니는 어쩌면… 리중은 무슨 일에나 과분하게 참다운 태도를 보였다. 그만치 무슨 일이나 리유를 똑똑히 알지 않고는 마음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어 했다. 하여 리중은 어머니에게 캐여 물었다. “어머니, 내가 친아들이 맞아요? 납득할수 있게 리유를 줘봐요. 내가 친아들이 옳다면 왜 나를 이렇게 대해요? ” 어머니는 텔레비죤프로를 보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데리고 왔던 그 녀자, 안돼. 제가 나를 얼마나 지켜봤다구 그새를 못 참구 꼬리를 빼는가 말이다. 내가 일부러 그년을 떠보느라구 그랬다. 너 이제야 알겠니?” 리중은 그야말로 울수도 웃을수도 없었다. 리중은 그녀에게 여러번 련계를 하려 했지만 번마다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사흘후, 그녀가 리중에게 메쎄지를 보내왔다. “그쪽이 한 늙은 녀인의 뒤를 후비는것을 보고 웬지 토하고싶었어요. 나를 토하고싶게 만든 그쪽도 메스껍게 느껴졌구요.” 리중은 분노해서 인차 메쎄지를 보냈다. “그 ‘늙은 녀인’은 나의 어머니란 말이요. 그쪽은 응당 나의 효심에 감동을 했어야 했소.” 흙인형이 바다에 떨어진듯 그후 그녀에게서는 다시 회답이 없었다. 리중은 선후로 그녀에게 십여차례나 메쎄지를 보내여 갈라져야 하는 리유를 달라고 했지만 그녀에게서는 시종 아무 회답도 없었다. 어머니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듯싶었다. 리중은 구급실에서 힘겹게 숨을 톱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뜨고 리중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리중에 대한 부름이 담겨져있는듯 했다. 리중은 귀를 어머니의 입가에 바싹 가져다댔다. 어머니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었다. “너너…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왜 리혼을 했는지 알고싶다 했지?” 리중이 두눈을 슴뻑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눈가에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어머니는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싶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비비, 비밀을 가지고 지옥에 가가, 갈란다. 그곳에 가서 네 애애, 애비를 만나 도리를 따져볼란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나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이이, 이젠 겨겨, 결혼할 때가 됐다. 나의 통장에 아아, 아직 4만원이 남아있을게다. 너에게 주는 이이, 이 에미의 사랑이라구 새새…생각해라.” 말을 마친 어머니는 스스로 옆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리중은 어머니의 몸을 가리웠던 흰 보의 복부쪽이 홀쭉해지면서 심전도가 곧게 줄을 긋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리중은 그때까지 어머니의 침상옆에 무릎을 꿇고있었다. 리중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두무릎이 몹시 아프다고 느꼈다. 의사가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그제야 리중은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그 한마디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저금통장이 어디에 있는가? 통장을 찾았다해도 비밀번호가 얼마인지는 어떻게 알아내는가? 리중은 2년나마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면서 숱한 말을 들었지만 모두 별로 값 가는 내용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림종에 어쩌다가 무게 있는 말 한마디를 들었는데 열쇠가 없는 자물쇠로 되고만것이다. 리중은 곧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리중은 자기에게 있던 3만원의 저축을 털어 교외에다 묘지를 사서 부모를 합장했다. 묘지는 크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다. 리중은 비석에 박혀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났다. 당신들 생전에 복혼을 못했으니 천당에서나 함께 하세요. 무용보도원이 리중의 어머니가 돌아간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지 귀신같이 나타나 리중을 도와 어머니가 살던 집을 거두기 시작했다. 리중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쪽, 다시 나를 찾아온 리유를 말해줄수 있어?” 그녀가 살풋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모든것에 리류를 따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 세상에 그쪽 혼자 남은게 아니예요? 그쪽이 고독해할가봐 말동무나 해주려고 왔어요. 설마 믿지 못하는거야 아니겠죠?” 리중은 말없이 무슨 생각엔가 잠긴듯싶었다. 따져보면 그녀의 말이 못내 감동스럽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리중은 으스러지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리중은 그녀의 몸이 그처럼 가냘픈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쩌면 뼈다귀를 안고있는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를 끌어 자기의 갈비뼈쪽에 당겨왔다. 여전히 뼈가 딱딱하게 맞혀오는 느낌이였지만 리중은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갔다. 리중이 어머니가 쓰던 궤짝을 밑바닥까지 뒤졌지만 저금통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2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하라고 했는가고 따졌다. 리중이 대답했다. “내 생각대로 했어요. 이것두 삼촌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 “미친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의 아버지는 리혼후 나에게 죽어서두 네 에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삼촌의 말에 리중은 웬지 말못할 분노가 치밀었다. “그만하세요. 회사에서 삼촌이 나의 상사이지 집에서는 그저 삼촌일뿐이예요. 나에게는 내 부모를 합장할 권리가 있다구요. 그들은 분명 한때 부부였으니까요.” 리중의 말을 듣고 삼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씨팔, 네 부모들이 저승에서 너를 후레자식이라구 할거다.” 말을 마친 삼촌이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무용보도원이 리중에게 말했다. “그쪽, 있잖아요. 그쪽이 살고있는 집과 어머니의 이 집을 모두 팔고 돈을 합해서 새 집을 한채 사요. 내가 보아둔집이 한채 있는데 화장실이 두개나 달렸어요.” 리중이 웬 일이냐는듯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둔게 있다니?” 그녀가 흥이 도도해서 말했다. “89평이라나요, 침실은 18평이구 객실은 30평이래요. 화장실 두개를 합치면 20평이 되구요. 그리구 베란다도 두개나 됐어요. 복도도 꽤 넓었어요. 거기다가 얼마든지 주방을 앉힐수 있을거예요. 우리 둘이 쓰기에는 충분해요. 그쪽의 집을 팔면 40만원은 받을수 있을거예요. 어머니의 이 집은 위치가 좋아서 60만원은 받을거구요, 합치면 100만원이 아니예요? 장식에 드는 돈은 제가 낼게요. 십여만원이면 충분할거예요.” 리중은 그녀의 열변을 들으면서 마치도 꿈속에서 헤매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후 그녀가 먼저 자기를 찾아온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본후 방향을 잡아놓고 달려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마저 갈마들었다. 이튿날아침, 그녀가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리중의 앞에 나타났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녀는 손을 내저으면서 흥이 도도해 집을 소개했다. 리중은 곁에서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야말로 이 집을 사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 바보, 천치로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감염되여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집 값을 높였다. 집 값이 70만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그녀는 맑고 순진한 눈길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의 눈길에 반죽되여있는 기쁨을 읽을수 있었다. 바로 그때, 변호사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 “망자의 아들이 옳은가요?” 변호사가 물었다. 리중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변호사가 다른 설명도 없이 서류가방에서 어머니의 유서를 꺼내 읽었다. 어머니는 유서에서 분명하게 이 집을 황천초라고 하는 사람에게 증정한다고 밝혔다. 리중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짐작할수 없었다. 무용보도원이 앞으로 한발 나서더니 변호사의 옷깃을 잡아채며 언성을 높였다. “리중은 망자의 유일한 아들인데 어디서 굴러온 황씨예요?” 변호사는 그녀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랭정하게 못을 박았다. “믿기지 않으면 공증처를 찾아가보십시오.” 말을 마친 변호사는 몸을 돌렸다. “황천초, 황천초가 누굽니까?!” 리중이 대중없이 변호사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망자가 유서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까? 집을 친구인 황천초에게 증정한다구요. 황천초 그 사람의 련락방법을 알려드리지요. 하지만 이 유서는 인젠 개변할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떠나갔지만 리중은 넑을 놓고 침대가에 앉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루아침에 자기 집을 삼켜버린 그 황천초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춤후에야 정신을 차린 리중은 변호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인차 련결되였다. “내가 황천초요.” 대방의 목소리는 년륜이 들어있는것 같았지만 웬지 끌리는데가 있었다. 리중이 에돌지 않고 정곡을 찔렀다. “저의 어머니가 왜 집을 선생님께 주었습니까?” “자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자네 아버지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결국 자네를 위해 나와 합치지도 못했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나에게 진 감정빚을 갚기 위해 그 집을 나에게 주기로 결정한거라네.” 리중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찌 그럴수가 있죠?” 전화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나는 나의 모든 정을 깡그리 자네 어머니에게 쏟았다네. 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과 관계를 단절하면서 말이네. 자네 어머니가 병치료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는가? 그게 모두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거라네. 자네 어머니는 전에 주식에 손을 댔다가 20만원이란 빚을 지고 말았다네. 그때문에 자네 아버지는 자네 어머니와 죽네 사네 하는 사이로 됐더랬지. 나는 내게 있던 집 한채를 팔아 그 빚을 갚아주었다네…” 리중은 더 이상 들어내려갈수 없었다. 리중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지만 필경 일은 이미 터져버린것이였다. 리중은 핸드폰을 내리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을 사려고 왔던 두 사람도 무용보도원도 보이지 않았다. 리중은 혼자서 묘지를 찾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찍은 부모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그 사진을 두드리며 가슴이 터지게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고 왜서냐고 무엇때문이냐고 그 리유를 물었으며 왜 자기를 속였는가고 절규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구질구질 비가 내렸다. 비록 비살이 굵지는 않았지만 진종일 끊이지를 않았다. 리중은 묘지주변을 두서없이 맴돌았다. 비방울이 리중의 온몸을 때려주었다.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왜 집을 너에게 준줄을 알겠는가고 물었다. 삼촌은 또 만약 아버지가 너에게 집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너는 거리에 나앉았을것이라고 했다. “인제는 내가 왜 네가 부모들을 합장하는것을 반대했는지 알만하겠지? 너의 아버지는 저승에서 너를 이를 갈며 욕할것이다. 미친놈 같으니라구.” “이런 일을 왜 인제야 나에게 말하는거예요? 아버지는 생전에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나요? ” 리중이 리해할수 없다는듯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네놈이 등한해서 보아내지 못했을뿐이지, 따져보면 그래 너네 집에 이상한 일들이 적게나 많았니? 내가 너에게 돈을 적게 준것도 사실은 다 너를 위해서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너에게 돈을 조금만 주고 나머지는 저금하라고 당부했었거든.” 삼촌의 말에 리중이 코웃음을 쳤다. “옛말이면 듣기나 좋게요? 삼촌 같은 깍쟁이가, 인제 와서 아버지를 방패로 삼지 말아요. 좋아요, 그 돈, 나를 위해 저금했다면 인젠 돌려주세요.” 리중의 말에 삼촌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리중에게 줄욕을 퍼부었다. 리중은 묵묵히 묘지를 걸어나왔다. 비살이 조금 누그러든듯싶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세때쯤 굶은 며느리상으로 잔뜩 흐려있었다. 때는 어스름이 깃드는 저녁무렵이였다. 리중은 차에 올랐다.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묘지에서는 두려울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있었다. 차창유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비방울은 누군가의 눈물을 방불케 했다. 리중은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무척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머리속을 파고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리중을 낳던 그해 어머니는 40살을 바라보고있었다. 리중은 태여나자마자 골연화증에 걸려 팔과 다리가 비가시처럼 여위여갔다. 어머니는 매일 리중에게 어간유를 먹였는데 리중은 투명한 알약을 보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렸다. 리중이 울면 어머니도 따라서 눈굽을 찍으셨다. 그때 집에서는 어머니의 급성신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집에 있던 대부분의 저금을 써버리고있었기에 살림이 매우 힘들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프면서도 기름진 음식이 생기면 모두 아버지와 리중에게 양보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종까지 들어 신다리를 약간만 눌러도 그 자리가 한참 지나야 웬 상태를 회복하군 했다. 음력설을 쇠던 어느날, 아버지가 리중의 국사발에서 돼지고기 한점을 건져 먹었다. 그것을 본 리중이 기절하듯 울어번졌다. 어머니는 그러는 리중이 가슴 아파 자기의 국사발에 있던 몇점 안되는 고기를 건져 리중의 사발에 놓아주었다. 리중은 그러던 어머니가 집을 황천초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리해되지 않았고 또 리해하고싶지도 않았다. 리중은 도무지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리유를 생각해낼수 없었다. 황천초는 무슨 방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모조리 빼앗아 아버지와 리혼하게 했고 나중에는 집까지 삼켜버렸을가? 어머니에게는 그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것일가? 비는 띁내 멎었다. 리중이 차에 발동을 걸 때 한오리의 해빛이 힘들게 구름을 뚫고 나와 주변을 붉으스름하게 물들이고있었다. 리중은 그 한줄기의 해빛이 어쩌면 어머니의 눈빛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것이 진정 어머니의 눈빛이라면 단번에 자기를 알아볼것이고 무엇인가 적당한 리유를 줄수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중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두볼을 타고 둘둘 굴러내렸다. 리중은 그 눈물을 딲을념도 못하고 묵묵히 힘들게 차를 몰았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집으로 걸음을 재우치는것 같았다. 하지만 리중은 자기에게 집이 없다고 생각되였다. 아니 집에서 기다려줄 사람이 없다고 하는게 더 타당할것이다. 리중은 차들의 길다란 흐름속에서 버러지처럼 꿈틀꿈틀 하면서 아직 살아있음을 아렴풋이나마 느끼고있을뿐이였다. 리중은 무의식적으로 라지오를 틀었다. “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기다리고있네/얼어터진 마음을 치유하고있다네/지난 일은 어느때고 잊혀질것이니/즐거움은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바라보고있다네/그대의 웃음이 나의 눈동자를 빛내여주기를/검은 구름 지나가고 비는 멎어 하늘 개였네/무지개처럼 기쁨이 걸렸네/어제날의 음영에서 벗어나/마음은 차츰 맑아진다네” 삼촌이 큰 돈벌이항목 한가지를 맡아왔다. 금방 시장에 나온 새로운 브랜드의 승용차를 위해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였다. 광고비가 100만원이 드는 일감이였다. 삼촌은 리중에게 잘만 하면 효익에 따라 장려를 주겠다고 장담했다. 리중은 두눈을 쪼프리고 피식 웃고말았다. 리중은 여태 그런 말을 수없이 들어오다나니 더 이상 흥미를 느낄수 없었던것이다. 삼촌은 리중의 표정을 보고 정중하게 물었다. “얼마쯤 장려하면 될가?” 리중이 짧게 한마디했다. “10만원.” 삼촌이 허허허 너털웃음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넌 나의 친조카다. 일이 성사되면 설마 너를 서운하게야 하겠니?” 리중은 삼촌과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싶지 않아 몸을 돌리며 속으로 두덜거렸다. “삼촌은 시종 나를 서운하게 했거든요.” 삼촌은 리중에 대하여 그다지 근심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리중은 늘 표현은 애매하게 했지만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침식을 잃어가는 그런 타입이였다. 게다가 리중은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촬영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령감이 튀여나오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 승용차회사의 경리조리는 시체를 따르는 모던아가씨였는데 황황이라고 불렀다. 리중은 그 이름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 같아서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리중은 대방의 요구에 따라서 간편한 촬영기를 들고 승용차회사를 찾아갔다. 황황이 리중을 접대했다. 몇마디 대화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황황이 리중을 데리고 새로운 브랜드 승용차곁으로 다가갔다. “몇개 각도에서 화면을 잡아봐요. 현장효과를 봅시다.” 리중은 황황이 자기에게 먼저 장군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쯤은 두려울게 없는 리중이였다. 리중은 촬영기를 들고 아래우와 좌우로 몇개 화면을 잡아 황황에게 보여주었다. 황황이 몇번 화면을 돌려보더니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현장엔 빛이 없는데요, 어떻게 빛효과를 촬영했죠?” 리중이 창문쯤으로 비쳐드는 몇오리의 해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요. 하지만 좀더 늦으면 저 빛도 잡기 어려울걸요.” 황황이 머리를 돌려 창문밑으로 새여들어오는 그 몇오리의 해빛을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가 그 빛들이 눈에 뜨일 속도로 바깥쪽을 향해 움직이고있었다. 황황이 입가에 실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그쪽 같은분이 왜 그런 회사에 박혀있어요?” 리중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황황의 앞가슴과 코끝을 스쳐지나는 붉으스레한 해빛을 살피면서 웃다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회사’에 그처럼 큰 일감을 맡기는 그쪽도 그저 그렇다고나 할가요?” 리중의 말에 황황이 입을 다셨다. “그쪽도 참 고지식하군요. 그쪽 어른은 아마 그쪽을 데리고 놀자고 생각했을거예요. 그야말로 쇠몽둥이를 들고 바늘이라고 생각하고있는거죠.” 리중이 격하게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겁니까? 협의까지 끝난 상태가 아닙니까?” “누가 협의까지 끝났다고 했어요? 그쪽 어르신, 참 꿈은 야무지셔. 이 새로 나온 브랜드를? 흥, 그쪽 회사에 광고를 의뢰해서는 한대도 못 팔아먹을거예요.” 리중도 사정없이 소리쳤다. “잘 듣고 전해줘요, 그쪽 어르신께. 이까짓 브랜드, 천만원을 준대도 홍보하지 않을거라구.” 말을 마친 리중은 촬영기를 거두어가지고 돌아섰다. 리중은 황황이 뒤에서 킥킥 거리며 “우린 꼭 다시 만날거예요” 하고 소리치는것을 들을수 있었다. 회사에 돌아온 리중은 삼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삼촌이 얼굴에 간교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일부러 너를 골탕 먹이려는것은 아니였다. 먼저 사연을 알려주지 않는게 너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유리할것이라고 생각했을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우리앞에는 경쟁상대가 셋이나 됐는데 모두 우리보다 실력이 앞섰단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네가 있지 않니? 나는 너만을 믿었더랬지. 그래서 나두 그 항목을 감히 욕심내게 된거구.” 리중이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를 믿어요? 너무 믿어서 일이 끝나면 장려를 한다는 말로 나를 유혹했어요? 말해보세요. 어떻게 장려를 하려고 했어요?” 삼촌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너 이런 어조로 나와 말하지 말아. 나는 네가 이런 방법으로 나를 대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중도 격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삼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데 나보구 일에 목숨을 걸라는거예요?” 그 말에 삼촌이 탕 하고 상을 내리쳤다. “난 너의 삼촌이다. 너의 아버지가 진 20여만원의 빚을 내가 다 갚아주었다.” 리중은 삼촌의 뜻밖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삼촌이 계속 열변을 토했다. “너의 아버지는 도박쟁이였다. 도박빚을 20여만원이나 졌는데 갚을수 없었지. 빚쟁이들이 너의 아버지를 쫓아다녔단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이 사실을 알가봐 전전긍긍했었지. 어느날,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더라.” 리중이 더 이상 들어내려가지 못하고 상을 내리쳤다. “누가 믿어요? 증거가 있어요? 나는 왜 하나도 몰라요?” 삼촌이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여 책상우에 메쳤다. “너의 아버지가 죽을 때 너는 대학교에 다녔더랬지. 이것은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차용증이다.” 리중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당겨다 펼쳤다. 차용증에는 아버지의 지장까지 찍혀져있었다. 뻘겋게 찍혀져있는 지장은 마치도 아버지의 손끝에서 흐른 피자욱 같아보였다. 리중은 아버지의 림종무렵에 담당의사가 알려주어서야 아버지가 심한 심장병을 앓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병을 치료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이였다. 리중은 대학교에서 친한 녀자친구를 데리고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까지 병간호를 했었다. 아버지는 리중의 녀자친구를 보고 “자네, 내 아들과 결혼해준다면 그것은 내 아들에게 더 없는 복으로 될걸세.”라고 한다미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총망히 떠났다. 누구도 응당 리중에게 알려야 할 비밀들을 알려주지 않고 총망히 떠났다. 리중은 합당한 리유를 찾아 부모들의 그런 처사를 리해하고싶었다. 3 삼촌을 떠나 집에 온후에야 리중은 자기가 아직 저녁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중은 차를 몰고나와 한 물밴새집을 찾아 들어갔다. 리중은 고기소를 넣은 물밴새 석냥 반을 청했다. 리중은 물밴새를 먹으면서 자기와 함께 아버지의 림종을 지킨 그 녀자친구가 누구던가를 떠올려보았다. 리중은 자기의 사랑이 서글프다는생각이 갈마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물밴새집에는 손님이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리중은 여전히 창가에 묵묵히 앉아있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짙어가는 어둠과 함께 비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리중은 머리를 돌려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살같은 비줄기는 리중으로 하여금 지나온 나날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리중은 그 시각 어머니를 떠올렸다. 비가 내릴 대면 어머니는 늘 뒤에서 리중을 향해 소리치군 했었다. “우산을 쓰거라,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관계치 않겠다.” 그 목소리가 그리웠다. 하기야 지금은 비가 와도 그렇게 소리쳐줄 사람 하나 없다는것을 리중은 잘 알고있었다. 리중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어머니가 집을 리중이 얼굴조차 모르는 황천초라는 남자에게 줘버렸지만 리중은 어머니를 그렇게 증오하고싶지는 않았다. 리중은 또 아버지도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왜 도박을 하셨을가?” 하는 리유를 못내 알고싶을뿐이였다. 아버지가 혹시 무엇인가를 잃으셨던것은 아닐가? 아니면 어머니와 갈라진 타격을 받아당할수 없어 그 고독을 달래려고 도박에 손을 댔던것인 아닐가? 모든것이 추측일뿐 누구도 리중에게 정확한 리유는 주지 못했다. 사흘후의 오후, 네 광고회사의 고수들이 승용차회사에 모였다. 황황이 회의를 사회했다. 황황은 그날 검은색 정장차림이였다. 리중은 그날 편안한 기분으로 천천히 황황의 얼굴을 살펴볼수 있었다. 황황의 살결은 놀랍게도 희였고 두눈은 아주 컸다. 하지만 그 큰 두눈에 웬지 말 못할 애수같은것이 그들먹하게 고여있는듯싶었다. 얇은 두입술은 짙은 빨간색을 띠고있었는데 입술의 원색이지 절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것은 아닌듯싶었다. 황황은 열정적으로 네명의 경쟁상대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리중과 악수를 나눌 때 뜻밖에도 황황이 이렇게 속삭였다. “나를 미워하나요?” 리중은 못들은듯 례의적으로 황황의 손을 잡았다가 인차 놓아버렸다. 리중은 제비 4번을 뽑아 맨 마지막에 경쟁연설을 하게 되였다. 리중은 다른 경쟁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긴장한 모습으로 사태를 지켜보고있는 삼촌의 얼굴을 살폈다. 리중의 차례가 되였다. 리중은 먼저 연설을 한 세 경쟁자들처럼 서류를 황황에게 넘겨주지 않고 침착하게 열변을 토했다. “승용차가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있습니다. 십자기거리의 신호등도 모두 이 승용차를 위해 푸른등만 켜주는것 같군요. 승용차는 립체교를 지납니다. 립체교를 지나서 호수가를 달립니다. 네, 승용차가 상업거리에 들어서네요. 승용차는 거기서 나와 따듯한 가정분위기가 흐르는 주택구역에 들어섭니다. 여러분들은 묘령의 모던아가씨가 승용차에서 내릴것으로 상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승용차에서는 백발을 떠이신 우아한 모습의 로인님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리고있습니다.” 리중은 흥에 겨워 연극대사처럼 연설을 끝내고는 자리에 돌아와 차고뿌를 손에 들고 황황을 건너다보았다. 삼촌이 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와 간절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희망이 있는것 같아?” “알수 없죠.” 리중이 짧막하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삼촌이 봉투 하나를 리중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안에 만원이 들어있다. 황황이라는 저 녀자와 저녁 한끼 먹어라. 저 녀자가 승용차회사 기획부 경리다.” “저보구 ‘미남계’를 쓰라는건가요?” 삼촌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혼한 녀자야. 하지만 남편은 미국에 있대. 요즘 아마 리혼소리가 오가나보더라.” 리중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보이지 않는 경쟁이 더 심할걸요.” 삼촌이 긴장한 얼굴로 바투 들이댔다. “거, 무슨 뜻이냐?” “다른 회사들에서도 목숨 걸 각오를 한다던데요. 인맥에 돈이 합쳐지면 못해낼 일이 있겠어요?” 삼촌이 묵묵히 머리만 끄덕였다. 리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삼촌, 그쪽 어른께 얼마나 찔렀어요?” 삼촌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질펀하게 부었지. 하지만 그래두 60만원은 떨어질걸. 대단한 돈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로 말하면 적지 않은거야.” 그날밤, 뜻밖에도 황황이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리중을 청했다. 리중은 고급상업구역의 43층에 자리잡은 그 커피숍에 가본적이 없었다. 커피숍은 네면이 모두 대형유리창으로 되여있어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었다. 커피솝에는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가 대부분 두 사람이 앉게 배치되여있어 여간만 아기자기해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마실래요?” 황황이 물었다. “블루마운틴으로 할가요?” 황황이 다소 흥분한듯 말했다. “제가 에스프레소를 대접할게요.” 리중이 다소 긴장한듯한 표정을 짓자 황황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못 마셔봤어요?” “아니요, 못 들어봤어요.” “최상급이예요. 시내에서 오직 이 집에만 있어요. 때를 잘 못 오면 없을수도 있구요. 오늘밤에는 있을려나?” 말을 마친 황황이 웨이터를 불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잠간 난색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간 들어가 이 브랜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올게요. 오래 동안 이 브랜드를 들여오지 않아서요.” 리중은 거들먹거리는 황황의 행실이 곱지 않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정곡을 찔렀다. “우리 회사, 어떻게 될가요?” 황황이 입가에 가는 웃음을 띠우며 물었다. “그렇게 급해요?” “락선될가봐 이러는게 아닙니다. 다만 나는 나의 기획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가 궁금할뿐입니다.” 황황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바투 들이댔다. “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백발의 로인이여야 하죠?” 리중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쪽 회사의 승용차는 아직 류행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목표를 보통사람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가격도 15만원좌우니까요. 백발의 로인이 탈수 있는 승용차라면 누구도 감히 넘볼수 있지 않을가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집앞까지 몰아갈수 있는거죠.” 황황이 웃으면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쪽 혹시 예쁜 녀자들에 대해 흥취가 없는것은 아니겠죠?” “승용차광고에서 예쁜 녀자라… 너무 식상한게 아닌가요? 실증도 안나나보죠?” 황황이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은은한 조명에 비쳐지는 미끈한 다리가 성감적으로 느껴졌다. 리중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황황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리중도 못 당해본 장면이 없을 정도로 사교장소에 드나들던 사람이였다. 그럴 때마다 일반적으로 리중이 결산을 했고 그 값으로 한참씩 대방을 애 먹이다가 자리를 뜨군 했었다. 황황이 물었다. “듣자니 그쪽 아직도 싱글이라면서요?” 리중의 입가에 가는 웃음이 스쳤다. “나는 그쪽 회사의 태도를 알고싶습니다.” 하지만 황황은 여전히 리중의 관심사에 눈길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그쪽과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있나요?” 그때 웨이터가 쟁반에 커피잔 두개를 받쳐든 산뜻한 옷차림의 중년신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분은 우리 커피숍의 커피조제사입니다.” 황황이 조제사의 손으로부터 커피잔을 받아서 리중에게 권했다. 커피잔은 작다못해 손바닥으로 움켜쥐면 보이지 않을것 같았다. 리중은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두어번 맛을 보는듯 하더니 후루룩 마셔버리고는 그 맛을 음미하는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황황이 놀라며 한마디 했다. “이렇게 빨리 마셔버리다니요.” 커피제조사가 황황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분이야말로 마실줄 안다고 봐야죠. 이 커피는 빨리 마시지 않으면 맛이 변합니다.” 황황은 얼굴이 시쁘둥해서 입을 열었다. “마셔본적이 있죠?” 리중이 만족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커피를 마시는데도 참 학문이 많답니다. 지난해 제가 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갔을 때 한 부자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였습니다. 마시고난후에도 오래동안 그 은은한 맛에 취했더랬지요.” 리중의 말을 들으면서 황황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은은한 맛에 취했다구? 이거야 뭐 모기가 피를 빨아먹은거나 진배없지 않은가? 3밀리리터도 되나마나 할것 같은데… 리중이 말을 이었다. “커피라고 해서 어느 브랜드나 모두 천천히 마셔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빨리 마셔야 맛이 변하지 않죠. 문제는 어떻게 마시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무궁무진한 맛을 음미할줄 아는가 하는것이죠…” 황황이 리중의 말을 중동무이하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그쪽은 나에 대해 연구가 있는것 같네요.” 리중이 황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커피에 조예가 깊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 황황이 웃었다. “그쪽, 참 남다른 사람 같아요. 알려드릴게요. 그쪽, 떨어졌어요.” “그래요? 리유는요?” “없어요, 리유는.” “없다니요? 리유가…” 리중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있었다. 황황이 입을 열었다. “저 그쪽과 친구하고싶어요.” 리중은 뭐라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다가갔다. 커피 두잔 값이 3960원이 나왔다. 리중은 그 천문수자에도 놀라는 눈치가 아니였다. 리중은 삼촌이 주던 봉투를 찾아서 돈을 꺼내여 한장한장 열심히 세였다. 황황이 다가와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를 두고 이대로 가려했어요? 무엇때문이죠? 리유나 알려주세요.” 리중이 돈을 물고 돌아서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리유요? 없어요.” 황황이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번쯤 나의 태도를 물어주면 안돼요?” 리중이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요?” 4 누군가 리중과 황황이 고가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삽시간에 몇천명의 블로거들이 그 사진을 전재했고 평론을 달았다. 그것을 보고 삼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리중을 찾아왔다. “그놈들이 우리를 속인거야. 그런데도 넌 어떻게 되여 그녀자와 그런 관계까지 되였니? 결산은 누가 했니?” “물론 내가 결산했죠. 삼촌이 준 그 만원으로.” 삼촌이 분통이 터져라 소리쳤다. “돈을 쓸데가 없었더냐? 황황이란 그년이 절대 우리를 위해 좋은 말을 해준것 같지 않다.” 리중은 그 시각 삼촌과 계속 대화를 하는것이 매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렸다. 삼촌이 뒤에서 소리쳤다. “그쪽에서 큰 마음이나 쓰듯이 우리에게 작은 항목 하나를 던져주더라. 20만원쯤 될거다.” 리중은 걸음을 멈추고 야멸찬 눈길로 삼촌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무용보도원이 사무실에 와있었다. 리중은 그녀가 일부러 옷차림을 요염하게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장도 과분할 정도로 짙은것 같았다. 리중이 먼저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쪽두 내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본게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많이 생각해봤어요. 우리 계속 합시다.” 리중이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번이나 일방적으로 나를 떠났었는데 인젠 적당한 리유를 줘야할게 아니요?” 그녀가 인차 말을 받았다. “저는 보이는대로 구속없이 사는 사람이랍니다. 불쾌한 기분이 들면 당장에서 폭발했다가도 인차 사그러들지요. 아무일도 없었던듯.” “하지만 그 아무일이 나에게는 그대로 남아있는걸.” 그녀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쪽, 황황을 좋아하나요?” 그 말에 리중이 깜짝 놀라며 다잡아 물었다. “그쪽, 어떻게 황황을 아오?”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입을 열었다. “뻔한 사실이 아닌가요? 블로그에 대서특필됐는데.” 리중이 어설프게 웃음을 짓다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참 한심한 사람이요. 30살도 훨씬 지났지만 아무 일도 해놓은것이 없으니. 게다가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구… 집이며 차는 더 이상 낡을래야 낡을수도 없는 고물이구… 그러니 그쪽, 나에게서 눈길을 돌리는게 좋을거요.” 그녀는 가위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황황하고는 비할수 없이 천해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 종래로 그쪽의 물건이나 돈을 탐해본적이 없어요. 나는 그쪽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거예요.” 그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어딘가 서글퍼지는 기분을 달랠수 없었다. “번마다 내가 채였는데 이번에 그쪽이 이렇게 나오니 참으로 몸둘바를 모르겠소.” 그녀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줄 알았어요. 그쪽은 그렇게 뼈속까지 선한 사람이예요. 난 그점이 맘에 들어요.” 그날밤, 리중은 황천초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황천초는 전화에서 꼭 한번 옛집을 찾아달라고 간청했다. 옛집이란 바로 어머니가 살던 그 집이였다. 리중의 가슴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집이기도 했다. 황천초는 리중을 찾는 리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리중은 한번 옛집을 찾아보려고 마음 먹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물에 물 탄듯 아무 격정도 기대할수 없는 일상사였다. 물을 끓이다가 밀가루국수를 넣고 잠간후 닭알을 풀어넣은 다음 송송 썬 파를 몇잎 집어넣고 깨기름을 몇방울 뜰구면 끝나버렸다. 리중은 밥을 지을줄을 몰랐다. 언젠가 무용보도원에게 밥을 지을줄을 아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몰라요, 결혼하면 아마도 그쪽 신세를 져야할것 같아요.” 그 말에 리중은 기분이 잡쳤다. 웬지 운명이 늘 자기에게 롱담을 걸어오는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사흘이나 무용보도원에게 련계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일도 없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녀는 리중에게 자기에게도 20여평쯤 되는 단간방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지금 세월에 80평쯤 되는 집을 가지고있으면 참으로 괜찮은 셈이라고 했다. 그녀는 리중에게 빨리 집을 팔아치우고 새집을 사야하며 20만원쯤 들 장식비도 어서 마련해놓으라고 달구쳤다. 리중은 그녀가 집문제를 말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했다. 어쩌면 그녀가 자기에게 시집 오려는게 아니라 자기가 이제 사야할 새집에 시집 오려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중은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였다. 전에는 이 문을 어머니가 열어주었었다. 어느한번은 광고촬영을 마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며 어머니에게 “어머니, 문 열어요.” 하고 메쎄지를 보낸적이 있었다. 그후 어머니가 리중에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보낸 메쎄지를 대부분 삭제해버리고 딱 하나만 남겨놓았단다. 그게 바로 ‘어머니, 문 열어요.’란다.” 리중은 더 이상 어머니가 그 문을 열어줄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기어코 그 문을 두르려야 하는 리중의 팔은 그 순간 더없이 무거워났다. 드디여 문이 열리고 60세를 넘긴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이 포만해보였는데 어딘가 문화적인 기질도 있는것 같았다. 로인이 리중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황천초라네.” 리중은 집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느 한곳도 변한것이 없이 어머니가 계실 때와 꼭 같았다. 리중은 습관적으로 침대머리에 섰다. 마지막 두해 동안 어머니는 바로 그 침대에 누워계셨고 리중은 늘 그렇게 서서 어머니에게 사과껍질을 깎아드렸던것이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저금통장 하나를 넘겨주며 말했다. “자네 어머니가 자네에게 남긴것이라네. 비밀번호는 자네의 생일이라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760525일거야. 바로 76년 5월 25일이라는 뜻이겠지. 은행에 가서 비밀번호를 변경하게나. 비밀번호는 내가 모르는게 좋아.” 리중은 저금통장을 호주머니에 잘 간수한후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리중은 황천초에게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고 묻거나 어머니가 왜 자기에게 남기는 저금통장을 당신에게 주었는가고 묻고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말들을 모두 속에 담아두고말았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커피를 마시겠냐, 아니면 차물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커피요.” 황천초가 주방으로 건너간지 한참 지나서 향긋한 커피향기가 풍겼다. 이어 황천초가 커피 두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때 리중은 객실에 책꽂이가 하나 늘어난것을 발견했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황천초가 커피를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자네가 나를 찾아준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네. 자네 어머니가 이 집을 나에게 준것때문에 당신은 꼭 불평이 많을거야…” 그때 리중의 눈길이 문뜩 베란다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옷에가 멎었다. 리중은 천천히 베란다로 다가가 옷 한벌을 벗겨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즐겨 입던 치포였다. 리중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굴러내렸다. 리중은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돌려보니 황천초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황천초가 목이 메여 더듬거렸다. “나와 자네 어머니는 워낙 오래전부터 사귀였다네. 그 와중에 내가 경제상에서 잠간 문제가 생겼더랬지. 하여 나는 잡혀들어가 2년동안 로동개조를 했다네. 로동교양소에서 나와보니 자네 어머니는 자네 아버지와 결혼을 했더군. 나는 자네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다네…” 황천초는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리중은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치포를 내려놓지 않았다. 황천초가 잠간 지나서 말을 이었다. “자네 아버지가 세상을 뜬후 나는 자네 어머니와 결합하려고 안해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자네 어머니는 결국 자네를 위해서 나와 합치지 않았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잃을가봐 두려웠던거야. 하지만 나는 리혼을 하면서 가장 사랑하던 딸을 잃고말았어. 딸이 나와 관계를 끊어버린거야.” 리중은 더 이상 그곳에 있고싶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천초가 리중을 눌러앉히며 말했다. “자네도 나의 딸을 알걸세. 나두 블로그에서 자네와 나의 딸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다네.” 리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황황이 딸이라구요?” 황천초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자네를 부른게 저금통장을 건네주려는것만은 아니였다네. 자네, 나를 도와주게나. 그 애에게 잘 말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게나. 자네의 어머니가 없는 이 마당에 딸애까지 떠나버렸으니…” 리중은 세상이 너무 좁아 손바닥에 모두 움켜쥘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되였다. 리중은 황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할게요, 하지만 내가 말한다고 그가 들을가요?” 황천초는 어딘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자네 왜 그럴거라고 생각하나?” “황황은 시종 자신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있어요. 내가 그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한다는것은 그에게 내가 스스로를 높게 보는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거예요. 그러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것이 나을거예요. 내가 말한다고 해도 그는 곧이 듣지 않을게 뻔하거든요.” 말을 마친 리중은 문을 밀고 나왔다. 리중은 자기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청승스럽게 들리는것 같았다. 그 시각 리중은 못견디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어머니가 뒤에 대고 “얘야, 조심하거라. 2층복도에 큰 광주리가 놓여져있네라.” 하고 소리쳐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무용보도원은 리중에게 줄곧 집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자기가 보아둔 그 집이 아주 좋다는것이였다. 리중은 더 이상 그녀의 청구를 거절할수 없어 따라나섰다. 그녀는 성격 좋은 가이드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고 소개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변기우에 들어앉아서 시범을 보였다. 리중은 정말이지 그것만은 보아줄수 없었다. 울컥 화가 치밀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뭘하고있는거요?”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더듬었다. “나나, 나… 지금 그쪽 보구 이 집을 좋아해달라고 청들고싶어요.” 리중이 어이없어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물었다. “왜 자꾸 집을 좋아해달라는 말만 하구 그쪽을 좋아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소? 이 집이 그래 그쪽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요?”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리중의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전 정말 이런 집을 가지고싶어요. 그쪽은 모를거예요. 전 어릴적부터 9평도 되나마나한 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댔어요. 가끔은 오빠가 내옆에서 수음을 하는것까지 보아야했어요.” 리중을 끌어안은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리중이 몸을 뽑아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안았다. 하지만 뭐라고 위안을 해야할지 일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익숙한듯 하면서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있겠지?” 스스럼없는 그 말투에 리중은 깜짝 놀랐다. 분명 자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였지만 그 얼굴이 인차 그려지지 않았다. 대방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쳐올렸다. “왜, 생각나지 않아? 나 고영이야.” 리중은 컥 하고 심장이 멈추는것만 같았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네 집 화장실이 너무 작아 방귀도 마음대로 뀔수 없다고 돌아섰던것이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을 동무해서 병원으로 가 림종에 이른 리중의 아버지를 간호했던것이다. 그번에 고영은 사흘낮, 사흘밤을 별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2년간, 고영이 줄곧 리중을 동반해주었다. 그들은 그때 벌써 결혼생활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고영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리중과 갈라진후 바다에 들어간 흙인형마냥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리중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어디에 있니? 나의 핸드폰번호는 어떻게 알았구?” “너의 핸드폰번호, 원래거잖아? 난 너의 핸드폰번호를 시종 남겨두고있었거든.” “어… 어, 그래?” 리중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때 고영이 또 한번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너, 곁에 녀자가 있지?” 리중이 무용보도원을 훔쳐보았다. 그녀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리중을 지켜보고있었다. 리중이 고영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생각했니? 인젠 십년도 더 지났는데.” 고영이 일부러 익살스럽게 말했다. “네가 생각나서 전화했지. 나 아직 너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거든.” 리중은 고영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이미 녀자들의 그같은 도발적인 말을 받아 당할수 없었던것이다. “너너…너, 어떻게 지내니?” “만나서 얘기해, 우리. 나도 블로그에서 네가 예쁜 아가씨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거든. 대단하다, 너. 커피 두잔에 3900원이라니… 사람피보다도 더 비싸구나.” 리중은 놀라운 블로그의 힘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고영이 리해할수 있게 해석하려고 애를 썼다. “아니야, 그것은 한차례의 비즈니스였어.” 그 말에 고영이 동을 달았다. “나두 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싶다. 하지만 그녀와 마셨던 그런 고급커피가 아니라 우리가 늘 함께 마셨던 블루마운틴을 마시고싶을뿐이야. 너 시간과 지점을 정한후 나에게 련락해라.”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집까지 차에 실어다주었다. 리중은 그녀가 자기와 침대에 오르고싶어한다고 느꼈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진정으로 참답게 살을 섞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리중은 조금도 그럴 흥심이 없었다. 그녀는 리중의 어깨에 머리를 살풋이 대고 쉴새없이 종알거렸다. 리중은 품격이 있는 녀자라면 절대 그녀와 같이 가볍게 놀지 말아야 하며 가볍게 놀기 시작하면 곧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구질구질 비가 내려 차창유리를 깨끗이 씻어내리고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나, 이번 달에 안 왔어요, 달거리가.” 순간 리중은 무엇엔가 호되게 머리를 얻어맞은것만 같았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마지막으로 침대에 오른것이 언제였던지도 기억이 묘연했다. 리중은 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바투 들이댔다. “언제야? 차안에서 그때야?”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리중은 그번 차안에서의 정사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날 실 한오리 남기지 않고 리중의 옷을 홀렁 벗기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 차안에서 처음이야. 실컷 경험해보고싶어.” 그녀가 리중을 차 뒤좌석으로 밀어갔다. 리중의 머리가 뒤창문에 맞혔고 두다리는 창문밖으로 밀려났다. 리중은 그날 차를 어디에 세웠던지 기억에 없었지만 그곳이 어느 호수가라는것만은 또렸했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호수였는데 시내중심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날 리중은 분명 물새들의 지저귐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녀의 신음소리가 아니였던지도 아리송했다. 그녀가 물었다. “어쩔래요?” 리중은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워나 일시 뭐라고 대답을 주지 못했다. 그녀가 기분이 잡친듯 말했다. “부담을 갖지 말아요. 원하지 않는다면 수술해버릴게요.”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만약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결혼해야죠. 새집을 그쪽도 보지 않았나요? 우리 어서 낡은 집들을 팔아요. 새집주인이 시간을 한달밖에 주지 않았어요.” 그때 리중은 차머리가 무엇인가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다를가 차 한대가 앞에 멈춰서있있다. 차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리중의 차앞에와 버티고 섰다. 리중이 차창을 내리웠다. 남자가 리중의 코끝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내리지 못해?” 리중이 차에서 내렸다. 남자가 자기의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나 똑똑히 보라구.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리중이 다가가 살펴보니 약간 긁힌 흔적이 나있었다. 리중이 큰 일이 아니다싶어 한마디 했다. “보험회사에 가보시죠. 약간 긁힌건데요뭐.” 그 말에 남자가 분노했다.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알겠소? 당신의 눅거리를 어디에 비기려구.” 그 말에 리중도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보만데 나하구 무슨 상관이요? 보험회사를 찾으라고 하지 않았소?” 남자가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내 차를 박았는가 말이요?” 리중이 맞받아쳤다. “내가 고의로 들이박았소? 그만 조심하지 않아 당신 차에 내 차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것뿐이지.” 남자가 갑자기 리중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픽 하고 랭소를 하며 말했다. “당신, 리중이구만. 내 와이프하구 커피를 마신 그놈이지?”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당신 와이프가 황황이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우린 아직 리혼을 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년을 기다릴 필요는 없소. 그년을 위해 줄을 선 병신들이 가득하니. 당신은 아마 열번째쯤에나 설수 있을가?” 그 말에 리중이 랭소를 하면서 소리쳤다. “줄? 나는 종래로 그런 놀음을 하지 않소. 내 녀자친구가 차안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으니까. 생각있으면 보여줄가?” 그때 무용보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남자가 홰홰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헛소리는 걷어장지구 말해보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리중도 맞받아 소리쳤다. “못 들었소? 보험회사를 찾으라구. 세번은 말했을거요.” 말을 마친 리중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남자도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녀가 다시 차안으로 들어갔다. 잠간후 남자가 리중의 곁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넘겨주며 말했다. “내 와이프 당신하구 보통 사이가 아니네.” 리중이 핸드폰을 받아 귀가에 가져갔다. “뜻밖이네요, 우리 두 사람이 진정 블로그스타가 되였네요. 듣자니 그 커피숍장사가 전보다 훨씬 잘 된대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가요?” 리중이 화제를 돌렸다. “어느 정도예요?” 리중이 긁힌 자국을 다시한번 살피고는 대답했다. “살짝 한군데…” 황황이 남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워낙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데 습관이 돼있어요. 그래서 전 그 사람과 리혼하려고 해요…” 리중이 황황의 말을 중동무이하며 물었다. “저, 어떻게 하랍니까?” 황황이 칼로 자르듯 과단하게 대답했다.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뜨세요.” 리중은 핸드폰을 남자에게 넘겨주고는 차에 올랐다. 남자가 리중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 어찌하든 먼저 사과는 해야 할게 아니야?” 리중이 중얼거렸다. “보험회사를 찾아 가든 말든 맘대루 해보시우. 아무튼 내 돈이 나가는게 아니니까.” 남자가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당신의 차가 내 꼬리를 쳤단 말이요. 이럴 때는 먼저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는게 도리가 아닌가?” 무용보도원이 듣다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리중이 부르릉 차를 몰아나갔다. 남자가 리중의 차에 주먹질을 하면서 소리쳐댔다. “알아두라구, 난 아직두 황황의 남자야. 제딴에 뭐가 대단하다구!” 비가 멎었다. 온 하늘의 공기가 비에 젖어 녹녹해진듯싶었다. 리중은 뭐라고 형용할수 없이 마음이 산란해났다. 무용보도원이 옆에서 쉴새없이 재잘거렸다. “어서 결정하세요. 맞같지 않으면 아예 수술을 해버리고말겠어요. 그쪽을 좀 보세요, 당황해서 어쩌구 있는가. 정말 절 미치게 만드네요.” 리중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소리쳤다. “수술해, 수술하라구. 진짜 날 미치게 하네.” 그녀가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면서 리중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좋아요. 말해보세요. 그러는 리유를 말해보세요.” 리중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는 실로 자기가 그처럼 분노하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둥근 달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나와 번잡한 밤도시를 비추고있었다. 5 리중은 승용차회사를 위해 짧막한 영상광고를 제작했지만 웬지 그것을 들고 황황을 찾아가고싶지 않았다. 삼촌이 되려 그러는것이 당연하다는듯 얼굴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네가 싫으면 내가 다녀오마. 돈은 비록 많지 않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봐야지.” 리중은 회사맞은켠에 있는 물밴새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아직 숨도 채 돌리지 못하고있는데 뜻밖에도 고영이가 다가와 맞은켠 걸상에 눌러앉았다. 그 바람에 리중은 깜짝 놀라며 고영의 얼굴에게 눈길을 박았다. “너두 저 청사에 출근하니?” 고영이 말하면서 손을 들어 맞은켠을 가리켰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호- 고영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나두 저 청사에 출근한단다. 그런데 어쩌면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을가?” “넌 어느 회사냐?” 리중이 물었다. “해관의 통관수속을 하는 회사다.” “그 회사 몇층이지?” “20층. 넌?” “난 너보다 높아, 22층.” 말을 마친 리중이 허허 웃었다. 고영이도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넌 언제나 나의 우에 있었더랬어. 내가 우에 오르려 하면 넌 절대 안된다고 했지.” 이어 두 사람은 하하하 호호호 시름없이 웃어댔다. “너, 양고기소를 청했지?” 고영이 문뜩 화제를 돌렸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맞아, 넌 돼지고기소를 청한거지?” 고영이 또 한번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그래, 둘 다 하나도 변한게 없네.” 두 사람은 한담을 하면서 물밴새를 먹었다. “너, 하나두 안 궁금해?” “뭐가?” “결혼했니? 리혼은 안했니? 애는 있니? 이런것들 말이지.”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황이 걸어온것이였다. “그쪽, 왜 직접 작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나를 보고싶지 않다 이거죠?” 리중이 인차 대답했다. “그럴수가요. 그저 그쪽에 가서 주눅이 들고싶지 않았을뿐이지요.” “회사의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어른의 일이지 나와는 상관 없어요. 전 그래도 그쪽을 위하여 좋은 말을 많이 했어요.” 리중이 인차 화제를 돌렸다. “그쪽 아버지께서 말씀했습니다. 그쪽보구 신변에 돌아오라구요.” 그 말에 황황이 잠간 뜸을 들였다가 물어왔다. “그쪽이 어떻게 저의 아버지를 알아요?” 순간 리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그쪽 아버지가 나의 어머니의 집에 살고있다는것을 모르는것은 아닐테죠?” 황황이 다시한번 뜸을 들이더니 놀랍다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저희 아버지가 좋아했다는분이 설마 그쪽 어머니란 말씀인가요? 이거 참, 귀신을 봤나?” “뭐요? 뜻인즉 나의 어머니가 귀신이라는 말씀?” 리중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힌것을 느낀 황황이 급히 해석했다. “아니요, 그럴수가요. 귀신이라면 저의 아버지가…” 리중은 괜히 기분이 잡쳐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고영은 여전히 물밴새를 맛나게 먹으면서 창밖에서 흐르는 인파와 차물결을 바라보고있었다. 물밴새집을 나온 두 사람은 묵묵히 걸어서 어느새 호수가에 이르렀다. 고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 대학때 우리 늘 오던 곳이지? 여기서 우리 첫 키스를 했구 너 무던히도 나를 밝혔었지. 어느 한번인가 우리 키스를 하고있는데 한무리의 남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치안대원들이라고 하면서 벌금을 물라고 했었지.” 리중이 고영의 말을 받았다. “맞아, 그들이 우릴 보고 벌금 200원을 내라고 했잖아. 그때 학생인 우리에게 어디 그 많은 돈이 있었겠어.” “너, 그래서 잽싸게 나의 손을 끌고 도망을 쳤잖아? 그들이 우리를 쫓아오구… 나중에 더 도망갈 곳이 없으니 우린 호수에 뛰여들었댔지. 난 헤염을 칠줄을 모르잖아. 너 나를 끌고 헤염을 쳐서 끝내 맞은켠 기슭에 올랐더랬지.” 리중이 말을 받았다. “그때 나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네가 나와 함께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간호했더랬지.” 고영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을 달았다. “맞아, 너의 아버지가 뒤를 보시겠다고 할 때 네가 곁에 없으면 내가 방조해드리군 했어. 그러느라면 내 두손에 모두 너의 아버지의…” 고영의 말을 들으며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고영이가 자기와 함께 아버지를 간호해드렸다는 그 사실을 어찌 잊을수 있었을가도 생각했다. 순간적으로라도 그 사실을 잊고있었던 리유를 찾을수 없었다. 한무리의 물새들이 수면을 스치며 날아서 땅에 올라와 쫓거니 쫓기거니 재롱질을 했다. 리중과 고영은 그쪽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물새들은 조금도 놀라는 기미가 없이 시름을 놓고 먹이를 주어먹고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와 보였다. 그 평화를 깨며 리중이 입을 열었다. “너, 너 왜 그때 그렇게 나를 떠났니?” “너에게 한단락의 공백을 남겨주고싶었어. 어떤 일은 밝히면 되려 재미가 없어지잖아?” 리중이 차분한 눈길로 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은 어때?” “혼자야, 여섯살짜리 아들놈을 데리고있어. 장난이 심해. 의사들이 그러는데 그놈, 산만증이 있대나?” 그들은 호수가를 떠났다. 걸음을 옮기면서 리중은 수시로 머리를 돌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호수가의 나무들에 단풍이 내려앉았다. 붉은색, 귤색, 록색으로 아롱진 나무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그대로 보여주려는듯싶었다. 고영이 리중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네 집 그 침대 말이야, 지금도 일하고있니? 삐꺽삐꺽삐꺽… 참 지금 생각해보면 요람곡 같을수도 있었는데… ” 고영이 말을 끊고 킥킥 웃어댔다. 리중도 시무룩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바로 그 삐꺽거리는 침대에서 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쳤댔다.” 고영이 그윽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난 왜 하나도 기억이 안날가?” 6 동지날, 리중은 삼촌에게 청가를 맞지 않고 오스트랄리아로 유람을 떠났다. 삼촌의 광고회사에서 그냥 일만 하다가는 질식하고말것 같았던것이다. 그래도 일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고 일을 맡을 때마다 리중은 창의력이 점점 못해지는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머리속에 있는것을 깡그리 털어내도 뾰족한 수를 떠올릴수 없었다. 리중은 스스로가 초라해보였다. 어쩌면 자기야말로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자기의 고물차 마고탄처럼 몰면 몰수록 모병이 생기는것 같았다. 리중은 수도공항에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오스트랄리아에 가서 며칠 바람을 쏘이다오겠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삼촌이 관심조로 물었다. “너, 오스트랄리아돈이 있니? 나에게 만원이 있는데, 떠나기전에 말이라두 하지.” 비행기는 싱가포르에서 5, 6시간을 체류한후 다시 날게 되여있었다. 리중은 싱가포르공항에서 조용히 리륙시간을 기다렸다. 공항대기실에 abc 세개의 슈퍼마케트가 있었지만 리중은 웬지 돌아보고싶은 흥심이 없었다. 평소에 리중은 늘 팽이처럼 돌아쳤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리중은 어느 한순간도 머리속에서 일을 놓아본적이 없었다. 잠이 들어서도 낮에 처리하던 일이나 근심하던 일이 꿈에 나타나 리중을 괴롭히군 했다. 꿈에서는 무슨 일을 처리해도 그렇게 순리롭지가 않았다. 지어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여날 때도 있었다. 리중은 대기실에 있는 서점을 잠간 둘러보았다. 눈길이 일본의 저명한 작가 와타나베준이치의 《부휴(浮休)》에가 멎었다. 리중은 책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여 몇장 번져보았다. 머리말에서 “부휴”에 대하여 해석을 했는데 그 내용이 리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인생의 짧음과 세속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있었다. 글은《장자 각의》에 나오는“삶은 뜬 구름 같은것이요, 죽음은 휴식 같은것이여라.” 라는 구절을 인용하고있었다. 헌데 사람은 왜 늙어야만 “뜬 구름”이요, “휴식”이요 하는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을수 있는것일가? 글의 마지막부분에는 당조의 대시인 백거이의 시 한구절이 인용되여있었다. “사람은 천지의 손님이거늘 모든것이 뜬 구름이요, 휴식과 같아라.” 작자는 “뷰휴”의 뜻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이런 통속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것은 조금만 시기를 늦추어도 가버리게 된다. 하기에 눈앞의 생활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리중은 글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무용보도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인공류산을 시키던 그날을 떠올렸다. 수술을 끝내고 복도에 나온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중은 정말 “우리 결혼합시다.” 하고 말해주고싶었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렀다. “그쪽, 나에게 배상해야 해요. 난 이렇게 내 자식을 아무 대가없이 버릴수 없어요.” 리중은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고영이 떠올랐다. 그날, 리중과 함께 물밴새를 먹은후 고영은 어디론가 출장을 갔었다. 외지로 연수하러 가는데 짧아도 반년은 걸릴것이라고 했다. 고영은 그후 리중에게 메쎄지를 한번 보내왔다. “너를 다시 보게 되여 참 기쁘구나.” 리중이 오스트랄리아로 떠나오기전에 황황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끝내 해방됐어요. 나도 그쪽처럼 싱글이예요.” 리중은 황황에게 진심으로 아버지곁에 돌아가라고 권했다. 그러자 황황이 또박또박 이렇게 대답했다. “전 용서할수 있는 일을 극력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용서할수 없는 일은 영원히 용서할수 없어요.” 리중은 아버지에 대한 황황의 원망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그렇게 친아버지마저 용서할수 없는 녀인과 함께 한다는것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비행기가 다시 리륙했다. 비행기안에서 리중은 계속《부휴》를 읽었다. 마지막부분을 읽을 때 비행기가 들썽이기 시작했다. 리중은 금시 토할것만 같아 비닐봉지를 찾아들었다. 하지만 내용물은 올라오지 않았다. 리중은 더 이상 책을 읽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와타나베준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리중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했던것이다. 와타나베준이치 역시 자기만의 고루한 사상으로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있었다. 남자주인공 구와 녀자주인공 아신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은 갈라지게 되였고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몇년후에 다시 만난 그들은 또 다시 사랑을 불태우게 되는데 그때 아신이 불치의 병에 걸린다. 세속관념의 압력과 가정에 대한 책임 앞에서 구는 아신과 갈라져야 하는가? 아니면 잡아줘야 하는가? 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결과는 식상하게도 “부휴”라는 책 제목을 그대로 그리고있었다. 현창밖으로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을 내다보면서 리중은 이제 얼마만한 시간을 진정 자기만을 위해 살수 있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리중은 전에 쉬임없이 높뛰던 자기의 심장에 안정을 찾아주고싶었다. 이제 다시 번잡한 일에 몸을 맡기면 언제 다시 시간을 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을가싶었다. 리중의 사무실에는 큰 베란다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서면 큰 나무 한그루를 볼수 있었다. 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전에 일이 바쁠 때면 그 나무에서 까치가 지저귀여도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리중은 자기가 너무 일에만 빠져있고 사회교제에만 열중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모임이 두 곳에 있으면 그는 그 두곳 모임에 모두 참가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도 노엽히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하여 리중은 한 곳에 잠간 앉았다가는 인차 다른 곳으로 달려가군 했다. 리중은 힘들어 죽을 맛이였지만 친구들은 그런 작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 친구가 리중에게 물었다. “너, 말해봐라. 그렇게 죽을둥 살둥 모르고 뛰여다니는 리유가 뭐니?” 리중의 첫 려행코스는 황금해안이였다. 리중은 려행사에 편입된것이 아니라 자유려행형식을 택했었다. 호텔은 리중이 인터넷에서 예약한것이였다. 리중은 행리를 들고 6층에 있는 방에 들어섰다. 베란다에 나서면 바다를 볼수 있었다. 침대는 놀라울 정도로 컸는데 여간만 폭신폭신하지 않았다. 리중은 샤와를 하고 여름옷을 갈아입은후 호텔을 나가 모래사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시름없이 바다우를 날고있었다. 리중은 자기가 살고있는 그 도시의 호수를 머리속에 떠올렸고 그 호수의 수면을 날아예던 물새들을 상기했다. 고영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석달동안 고영은 아무 소식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그제야 리중은 이미 저녁때가 지났다는것을 상기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기내식을 먹은게 전부였다. 리중은 발이 가는대로 작은 음식점을 찾아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가 창문너머로 보여왔다. 센 파도가 이는것 같았다. 리중은 소갈비를 주문하면서 숙련되지 않은 영어로 6할쯤 익혀달라고 부탁했다. 웨이터가 크림수프는 필요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리중이 일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멋거리고있을 때 뒤에서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셔봐, 버섯을 넣었거든. 쏘세지도 들어있구.” 리중이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리다가 깜짝 놀라 굳어졌다. 고영이 땅에서 솟은듯 그곳에 서있었던것이다. 리중은 마치도 영화나 텔레비죤드라마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있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게 웬 일이야?” “웬 일이긴, 너 내가 황금해안에 와 연수를 하고있는줄을 몰랐니? 너 특별히 황금해안으로 나를 찾아온게 아니였니?” 고영은 자리에 앉아 숙련된 영어로 웨이터와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후 리중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넌 이미 내가 이 호텔옆에서 연수를 하고있고 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것을 다 알고있었던거야, 그러면서 웬 일이냐구?” 리중은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석해도 고영이 믿어주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저녁을 먹은후 두 사람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바다에 떨어져내리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화인이 다가와 배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면 더 아름답다고 꼬드꼈다. 그리고 배우에 맛이 좋은 술도 있다고 덧붙였다. 리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많은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면 좋지 않답니다.” 석양이 해면에 동동 떠있었다. 하늘은 더 이상 떨어지는 태양을 잡을수 없었던지 손을 놓아버렸다. 석양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비록 석양은 볼수 없었지만 그가 남겨놓은 붉으스름한 여광은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모래사장에서 원반을 뿌리고있었다. 리중도 그들과 함께 원반을 뿌리고싶어 다가갔다. 리중이 뿌린 원반이 바다에 날아들었다. 리중은 바다에 들어간 원반을 건져올렸다. 그 순간 리중은 바다에 떨어진 석양을 건져올리는듯 가슴이 활랑거렸다. 호텔의 폭신폭신한 침대우에서 고영이 흥분하여 가슴을 떨면서 “사랑해, 사랑해!” 하고 소리쳤다. 리중이 차분하게 말했다. “너,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치고있다.” 고영이 말했다. “사랑해, 진정 사랑한다구!” 밤이 깊어갔다. 두 사람은 베란다에 앉아 등불이 깜빡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고영이 말했다. “우연이라구? 이 부근에 몇십개나 되는 음식점이 있는데 우리가 딱 그곳에서 만날수 있었다는게 우연이라구? 어디 내가 믿을수 있게 리유를 말해봐.” “없어, 리유 같은게.” 고영이 리중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숨박히는 그 순간이 지나자 리중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리유를 알아야겠어. 왜 다시 나를 좋아하게 됐는지?” 고영이 속삭였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수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내가 이미 너를 만나버렸다는거야. 내 마음을 움직여 놓은 사람이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네가 이미 내옆에 나타났다는거야…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없어. 나는 이미 어떻게 너를 아껴야 한다는것을 알아버렸거든.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내가 점 찍은 사람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고도 많지만 나는 너 하나만으로 만족할거야!” 리치방(李治邦), 천진시군중예술관 관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천진문학원 계약작가, 연구원.
534    단편소설 * 유희인생 댓글:  조회:1966  추천:0  2013-08-29
단편소설 유희인생 최동일 1 안해의 눈길이 타고있었다.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하게 빠작빠작 타버릴것만 같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천사의 날개같은 하얀 잠옷을 차려입은 안해의 쌍까풀눈이 그 같은 불을 토하고있다는것에 정우는 놀라울따름이였다. 아니 놀랍다기보다는 두려움에 가슴이 꺽꺽 막혀왔다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것이다. 정우는 화장실문앞에 우두커니 서서 잠간 분위기를 살피다가 안해를 태우는 그 불길이 어디로부터 시작된것이라도 알고싶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 “여보.” 하고 낮게 불렀다. 안해가 용수철 튕기듯 튀여 일어나며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침대우에 둘러메쳤다. 쏘파위라서 그렇지 맨 봉당에 그 힘으로 던져졌더라면 핸드폰이 산산 조각이 났을것이다. 정우는 자기의 몸뚱이가 그렇게 바닥에 팽개쳐지는 퉁 하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아 몸을 흠칫하면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화장실에서 막 나오는 걸음이였던지라 한걸음 물어서자 화장실문에 몸이 닿았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두손으로 움켜쥐였던 타올을 놓아버렸다. 배꼽아래로부터 치부까지만 살짝 가리우고있던 타올이 주르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사와를 한후 아직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한 정우의 그 물건이 검실검실한 대가리를 여섯시방향으로 툭 떨군채 들어나버렸다. 정우는 급히 두손바닥을 쫙 펴서 그 물건을 가리우며 다시한번 “여여, 여…여보.” 하고 목소리를 쥐여 짲다. ―여보라니, 개떡같은… 어디다 여보라는거야? 이럴줄 알았지. 내 정녕 이럴줄 알았다구. 고래고래 괴성을 질러대는 쫙 벌린 안해의 입은 그대로 정우를 삼켜버리고도 남을상싶었다. 정우는 그 물건을 가리운 두손에 힘을 주며 한껏 몸을 옹크리고 더듬거렸다. ―왜 그러는거요? 갑자기. ―뭐, 갑자기?” 안해의 동공이 기가 막히다는듯 무서움 없이 커지고있었다. 정우는 입을 하 벌린채 무기력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넋이 나간듯한 정우의 몰골을 쏘아보던 안해는 “천사의 날개”를 훨훨 날리며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정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쏘파곁으로 다가가 안해가 던져버린 핸드폰을 주어들었다. 액정에 메시지가 펼쳐져있었다. “그날 너무 즐거웠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언제 또 당신에게 안길수 있을가요? 불러주세요. 유희가.” ―유…유희? 정우는 핸드폰을 손에 든채 얼굴을 천정으로 향하면서 입을 떡 벌리고말았다. 하지만 그렇다할 답안이 입으로 떨어져들어오는것도 아니였다. 정우는 한껏 쳐든 그 맵시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풀썩 쏘파에 주저앉으며 다시 핸드폰에 눈길을 가져갔다. 틀림없었다. 안해에게는 청천벽력이 되고도 남을만 하고 정우에게는 사형판결서가 되고도 남을만한 메시지였다. 유희? 즐거웠다니…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라니… 내가 언제 너를 안은적이 있게? 다시 불러달라구? 갈수록 심산이라고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천천히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기 시작했다. 그로서도 자기가 왜 그 시간에 옷을 주어 입어야 하는지를 알수 없었다. 아니, 알수 없는것이 아니라 아예 그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그 순간 그렇게 그 모양으로 그 옷들을 몸에 걸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하고있을 따름이였다. 정확하게 혁띠의 네번째 구멍을 찾아 걸침을 걸고난 정우는 량쪽 엄지손가락을 혁띠안쪽에 넣어 앞으로 툭툭 튕기며 후― 하고 긴 숨을 토해냈다. 스르르 두눈이 감겨졌다. 정우는 미동도 없이 선자리에 굳어졌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여들었다. 정우는 꿈속에서 헤여나온듯 두눈을 번쩍 뜨고는 출입문쪽을 향하여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안해의 앙칼진 목소리가 칼처럼 정우의 귀에 박혔다. 정우는 칼 맞은것처럼 흠칫 몸을 떨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어이 간다는거지? ―왜 이래? 정우는 피를 토하듯 힘들게 한마디를 뽑아올리면서 픽 몸을 돌렸다. 안해가 문설주에 기대여 있었다. 아예 침실로 들어가지 않고 쭉 정우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인지 아니면 정우가 옷을 입느라고 부산을 떨 때 일어나서 문설주에 기댄것인지는 모를 일이였지만 그 자태는 퍽 온건해보였다. ―몰라서 물어? 말을 마친 안해가 오른손식지를 들어다 입어 넣었다.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오른손식지가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 사이에 물렸다. ―당신, 그 버릇 아직도 못 버렸어? 정우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튀여나갔다. ―당신은 세살적 버릇 떼버릴수 있어? 안해가 빨간 혀끝을 날름거리며 빨간 입술 사이에 물려진 빨간 손톱을 핥고있었다. 정우는 한달음에 안해곁으로 뛰여가 한아름에 안해를 번쩍 들어 침대우에다 메쳤다. ―이러는게 아니야, 당신. 정우는 침대에 큰 대(大)로 널부러진 안해를 넌지시 내려다보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어쩌면 안해에게 아니라 혼자서 애타게 중얼거리는듯싶었다. ―그럼 어쩌는건데? 안해 역시 침대에 큰 대(大)로 널부러진채 눈도 뜨지 않고 잠꼬대 하듯 물었다. ―물었어야 했지. 정우가 침대가에 한발 다가서며 또박또박 말했다. ―뭘 물어? 안해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누군가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정우가 다시 침대가에 한발 다가섰다. ―그래? 누구야? 유희라는 그 녀자? 어떻게 된 일이야? 유희라는 그 녀자와는? 안해의 목소리가 여전히 파르르 떨리기는 했지만 처음보다는 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우는 인차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감빨다가 갑자기 안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안해가 몸을 빼려고 정우를 밀었다. 정우는 우악스럽게 안해의 목을 와락 당겨다가 헉헉 모두숨을 톺으면서 입술을 덮쳤다. 흐흑― 안해가 경련을 일으키는듯 부르르 몸을 떨면서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정우의 심장이 팡팡 널뛰기를 해댔다. ―죽었어, 죽여버릴거야. 쾅쾅 밟아버릴거야! ―죽여, 죽여버리라구! 쾅쾅 밟아버리라구!! 안해가 발딱 일어났다가 다시 정우앞에 무릎을 꿇고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혁띠의 네번째 구멍에 건 걸침을 빼느라 헤덤비면서 피를 토하듯 한마디한미디 뱉어냈다. ―넌덜머리가 났어. 진종일 일에 지치고 들어왔으면 죽은 돼지처럼 팍 쓸어져야 도릴텐데 왜 자꾸…자꾸 발정난 고얘((고양이)처럼… 혁띠의 네번째 구멍에 걸렸던 걸침이 빠졌다. 정우는 아래도리에 감전이라도 된듯 흠칫 몸을 떨면서 허리를 꺾었다. 안해가 걸침이 해제된 정우의 바지를 단번에 와락 당겨내렸다. ―헉! 안해가 허무한듯 외마디 소리를 토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두손바닥을 쫙 펴 아래도리를 감쌌다. 그 물건을 감싼 팬티가 흥건히 젖어있다는 느낌이 머리를 쳤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눈앞에서 무수한 오각별들이 탁탁 튀여오르는듯싶었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정녕 이게 아닌데… 정우는 팬티위로 그 물건을 꽉 움켜쥔채 안해옆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2 ―당신, 괜찮아. 진실을 말해줘. 내가 싫어진거지? 아예 내가 싫어져서 나하구는 안되는거지? 안해가 빨간 손톱으로 정우의 가슴을 박박 긁으면서 앙탈지게 파고들었다. 정우는 그러는 안해를 밀어버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쏘파에 다가가 앉았다. 자기의 몸뚱이가 천근 돌이 되여 자자드는것만 같았다. 정우는 잔뜩 몸을 옹크리고 머리를 무릎우에 박았다. 뜨거운 액체가 무릎을 적시고있었다. 내가 울어? 정우는 머리를 번쩍 쳐들고 주먹으로 눈확을 찔끔찔끔 눌렀다. ―당신, 울어?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했다. 정우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소리나는쪽에 눈길을 돌렸다. 안해가 창가에 기대서서 넌지시 정우를 바라보고있었다. 달빛이 교교했다. 교교한 달빛이 정우에게는 사뭇 처량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발등에 걸린채 볼품없이 구겨져있는 바지를 집어 당기며 쏘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우는 자기의 두손이 약간 떨리고있음을 감지하고있었다. 푸― 애써 자신을 진정하면서 길게 들숨을 끌었다가 한껏 내쉬였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정우는 엉덩이까지 올라온 바지를 놓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손바닥에까지 열기까 느껴졌다. 정우는 두손바닥에 힘을 주어 한껏 두볼을 비비다가 다시 바지춤을 잡았다. 혁디가 손에 잡혔다. 정우는 혁띠를 찬찬히 내려다보며 네번째 구멍을 찾았다. 그래, 조 구멍에 꽂아야지. 정우는 그 와중에 걸침이 네번째 구멍에 쑥 들어가는 그림이 그처럼 또렷하게 머리속에 펼쳐지는것이 이상하리만치 놀랍다고 생각되였다. 그래, 조 구멍에 쑥 꽂는거야! 정우는 오른손으로 혁띠의 걸침을 찾아들고 네번째 구멍을 묘준하여 쑥 밀어넣었다. 걸침은 별 소리도 없이 슴슴하게 네번째 구멍을 찾아들어갔다. 습관대로 량쪽 식지를 혁디안쪽에 넣어 앞으로 툭툭 튕겼다. 바지가 혁띠에 걸려 한결 편하게 허리를 감싸고있었다. 정우는 혁띠에서 손을 떼고두팔을 어깨와 나란히 올려들고 쑥쑥뒤로 뻗으며 가슴을 앞으로 튕겼다. ―자자. 아마츄어배우의 어설픈 연기를 감상하듯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멀거니 정우를 지켜보던 안해가 한마디 던지고는 “천사의 날개”를 하늘거리며 침실로 들어갔다. 그 말에 안해를 따라 침실로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던 정우가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네번째 걸음을 떼다 말고 우뚝 멈춰섰다. 침실쪽을 바라보던 정우의 눈길이 천천히 창문쪽으로 옮겨졌다. 몸도 창문쪽으로 향해졌다. 발걸음이 다시 창문쪽으로 세 걸음 옮겨졌다. 정우는 두팔을 창턱에 올려놓고 창문넘어에 눈길을 던졌다. 뭉게구름밑으로 둥근달이 흘러가는 모습이 환영처럼 뿌옇게 보여왔다. 너무 뿌옇해서 달에 상아가 있는지 옥토끼가 있는지 보여지지 않았다. 그냥 달이라고만 생각되였다. 후― 정우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뿜으며 담배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다. 떨리는 손으로 라이타를 켜들었다. 재수없게도 불꽃은 담배를 묘준하지 못하고 코밑으로 날아들었다. 다 된 죽에 코물을 떨궈버린 못 사는 집 아낙네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빵에 눈동자를 맞아버린 나그네처럼 정우는 절망적으로 악! 하고 짤막하게 비명을 질러올리며 라이타를 떨어뜨렸다.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시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우는 파아란 불꽃이 사그러진채 댕그라니 바닥에 떨어져있는 라이타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꺽었다. 대뇌가 오른손에다가 라이타를 주으라는 신호를 보내고있는것 같았다. 라이타를 주어들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있었다. 정우는 오른손엄지에 힘을 주었다. 그것마저 뜻대로 되여주지 않았다. 엄지가 아파날 지경으로 라이타를 켜려고 애썼지만 종시 불꽃은 일지 않았다. 정우는 맥을 놓고 오른손에 라이타를 움켜쥐고있다가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다시 눈확이 젖어들었다. 자신이 그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라이타, 라이타도 제대로 켜지 못해? 등신, 병신, 무골충… 정우는 오른손에 움켜쥐였던 라이타를 사타구니밑에 쑥 밀어넣었다. 라이타가 들어가면서 그 물건을 스치는듯싶었다. 찡― 하고 전류가 흘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때 그 물건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다게 쳐 죽이고싶도록 괘씸해났다. 정우는 한줌에 와락 그 물건을 움켜쥐고 흔들어댔다. 하지만 바지에 살짝 대가리를 숨긴 그놈은 일부러 정우를 골려라도 주려는듯 용케도 정우의 손바닥에서 몸을 빼는가싶었다. 맹랑하게도 괜히 바지앞섶만 쥐고 아래우로 흔들어대던 정우는 모든것을 체념한듯 벌렁 뒤로 몸을 날려 큰 대자로 널부러졌다. 두눈을 감아버렸다.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떻게 된걸가? 내가 왜, 왜… 왜 이렇게 되여버린것일가? ―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요? 6년전, 공항에서 정우의 손을 잡고 안해가 목소리를 파르르 떨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안해의 바스음에는 근심과 불안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살아볼게. 믿어! 정우가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안해가 정우의 가슴에 살풋이 머리를 댔다. 툭툭툭… 정우는 자기의 심장이 급촉하게 뛰기 시작한다는것을 느꼈다. 안해가 그 심장소리를 듣고있는것 같았다. ―이번에 꾼 돈을 갚아버리구 100평짜리 아빠트 한채를 사구 아들놈 대학 보내구 장가보낼 돈만 벌면 돌아올게요. 안해가 정우의 가슴에 얼굴을 댄채 속삭였다. 정우는 안해를 꼭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 ―그 돈이 언제쯤 벌어지는데? ―한 3년? 4년? ―3, 4년? ―너무 길어? ―나, 그때면 아바이로 될거야? ―당신은… 참. 40대중반의 아바이도 있어? 길게 쳐 4년이라도 당신은 45살밖에 안돼. ―반 구십이네. ―괜찮을거야. 당신은 쎄잖아. 반백이라도 당신은 씩씩할거야. 안해가 주먹으로 정우의 가슴을 툭 치면서 자기의 얼굴을 뗐다. 손님들이 거의 빠지고있었다. 안해도 가방을 끌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정우는 안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대기실을 향해 손을 저었다. 1년 3개월만에 안해가 한국으로 갈 때 꾸어들였던 빚 5만원을 다 갚아버렸다. 다시 2년 5개월이 지나 20만원을 주고 시내변두리에 100평되는 아빠트 한채를 샀다. 그날밤, 정우는 가옥소유증을 베개밑에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안마방으로 가자고 잡아끌어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모양으로 떡 벝이고 서는 정우를 일러 “가짜내시”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그 소리가 고깝게 들리고 그 소리에 부아통이 터지기도 했었다. ―쨔식들, 맘대루 짖어봐. 내가 눈 한번 끔뻑 하나? 안해를 돈 벌러 외지에 보내고도 집에서 흥야붕야 신선놀음을 해대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정우였다. 네놈들처럼 미친듯 놀아대다가 언제 아빠트를 장만해? 언제 와이프를 다시 집에 불러들여? 안해가 없는 나날에 아들애를 건사하면서 출근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밤이면 밤마다 옆구리가 시려 외로왔지만 그 힘든 세월이 모여 가옥소유증으로 된것 같아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행복, 그 위로는 딱 그때까지였다. ―여기다 돈을 저금하는게 더 유리할것 할것 같아. 한국돈이니까 여기에 두고있어야 시세를 따를게 아냐? 금방 집장식을 마치고 숨도 채 돌리지 못하고있을 때 걸려온 안해의 전화였다. “그그, 그… 그래 그럼.” 정우는 등곬에 식은땀이 쫙 흐르는것을 느끼며 송수화기를 쥔 손을 떨었다. 순간 다리맥이 쫙 풀려나갔다. 정우는 송수화기를 어떻게 놓았던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우의 손은 후줄근해 있는 그놈을 꾹 쥐고있었다. 정우는 벌떡 일어섰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에 비쳐진 얼굴이 파김치를 방불케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깃불깃 혈기가 도는듯 하던 자기의 얼굴이 어느새 그렇게 풀이 죽었는지 알수 없었다. ―어! 흠!! 정우는 힘있게 건가래를 떼고는 급히 잠옷바지춤을 아래로 쑥 밀어내렸다. 안해가 떠나간 시간들에 굳어진 습관이였다. 이 정도쯤 되면 그놈이 벌써 마을돌이를 나선 이웃집강아지마냥 벌떡벌떡 모두뜀을 했어야 했다. 이상했다. 그놈이 병든 고양이처럼 대가리를 아래로 떨어뜨린채 미동도 없이 여섯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화가 터지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화염인지도 알수 없었다. 정우는 그놈을 꽉 잡아 흔들었다. 역시나 죽여줍시사였다. 한참이나 싱갱이질 했지만 그놈은 종시 열두시를 가리키지 못하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안해는 정말 돈 한번 부쳐오지 않았다. 로임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문을 닫을일이 없는 든든한 일자리를 가지고있는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대학에 간 아들놈에게는 안해가 직접 생활비를 보내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기를 믿지 못하는 안해가 좀 고깝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인차 리해가 되였다. 전에도 경제권은 시종 안해가 쥐고있었던것이다. 그래, 필요 없는 돈을 건사하느라 힘들기만 했지… 내 벌어 내 사는게 편하지. 일이란 마음 먹기에 달린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찜찜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탁 트인 가슴이 투닥투닥 뛸 때면 정우는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아들었다. 마실을 나선 이웃집강아지처럼 벌떡 벌떡 모두뜀을 하는 그놈의 대가리를 꾹 쥐고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그 즐거움이 한량없었다. 6년이였다. 그새 안해는 한번도 귀국한적이 없었다. 필경은 불법체류라 섣불리 귀국했다가는 다시 나갈수 없는 처지였다. 6년이였다. 그새 한국문턱도 많이 낮아졌다. 불법체류자도 자진신고를 하고 일정한 벌금을 물면 다시 정상적인 도경을 통해 나갈수 있다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던것이다. 그 동풍을 타고 안해가 6년만에 날아온것이다. 그 6년간 정우는 자기가 죽어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놀라왔다. 억울했다. 통분했다. 정우는 벌떡 얼어섰다. 탕 소리 나게 화장실문을 닫아버렸다. 끌신도 신지 않고 급급히 거울앞에 마주섰다. 거울에 비쳐진 얼굴은 불깃불깃한 풍채 좋은 사나이의 얼굴도 아니요 그렇다고 3, 4월의 쉬여빠진 파김치 같은 얼굴도 아니였다. 정우는 헉헉 모두쉼을 톺으며 거울에 얼굴을 가져갔다. “가짜내시”라던 친구들의 비아냥소리가 귀전을 스쳤다. 미친놈들, 괘씸한 놈들, 단매에 쳐죽여야 속이 씨원할 놈들… 정우는 연신 궁시렁거리며 와락 그놈을 움켜쥐였다. 한식경이 지났지만 그놈은 사흘 굶은 이웃집 강아지처럼 종시 맥을 추지 못하고있었다. 그놈을 잡아 흔드는 오른손가락이 뻣뻣해졌고 두다리가 지진을 만난 담벽처럼 후들거렸다. 정우는 그 짓을 포기한채 허둥지둥 객실로 나왔다. ―앗! 정우의 입에서 신음같은것이 터져올랐다. 아까 샤와를 할 때 바닥에 흘린 물을 닦지 않았던지라 정우의 발바닥이 젖어있었던것이다. 젖은 발바닥이 마루판에 쫙 밀키면서 보기좋게 정우를 무너뜨렸다. 정우는 다시 일어설념도 못하고 큰 대자로 너부러진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아이(爱)”라는 글이 찍혀져있는 등갓이였다. 집장식을 할 때 정우가 조명상점 십여집을 돌아보고난후에야 결정한 등갓이였다. 바로 그 “爱”자옆에 먼지알갱인지 아니면 파리똥인지 모를 까아만 점들이 찍혀져있었다. 점 하나, 점 둘, 점 셋… 푸하핫!!! 갑자기 웃음을 뿜어올렸다. 푸푸푸… 하하하… 푸하푸하… 정우가 벌떡 일어섰다. 목욕통창문넘어로 샤와를 하는 녀체를 훔쳐보려는 악동처럼 한껏 발뒤꿈치를 치켜들고 머리를 뒤로 하며 등갓의 까아만 점에 눈길을 박았다. 녀자야, 그래. 바로 녀자얼굴이라니까. 그 생각이 정우를 그처럼 웃게 했던것이다. 정우는 손등으로 두눈을 비비고 다시 그 점들에 눈길을 가져갔다. “爱”자옆에 자잘하게 들어붙은 까아만 점들은 신통하게도 녀자의 얼굴을 그리고있었다. 녀자다, 저 녀자가 왜 저 갓우에 올라가있을가? 뿌옇게 먼지가 오른 등갓으로부터 부옇한 얼굴이 나타났다 살아졌다를 반복했다. 누굴가? 정우는 지그시 주눈을 감았다. 유희! 그 이름 석자가 정우의 머리속을 치고들었다. 유희, 유희! 그녀는 과연 누구일가? 3 저녁노을이 타고있었다.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그림자도 없이 깡그리 타버릴것만같았다. 정우는 활활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막연하게 바라보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저녁노을이 언제까지 더 타오를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겉으로는 타오르는듯싶지만 속은 이미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멀어진 여운에 지나지 않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허구픈 웃음 한자락이 스쳐지났다. 정우는 저녁노을로부터 천천히 눈길을 돌리고 푹 머리를 숙였다. 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킨 한숨이 처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이 갑갑해났다. 정우는 두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어데라 없이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한식경을 그렇게 걸은듯싶었다. ―찌르라는데, 안되지? 맥이 없지? 물알 같은것이… 악청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 소리에 놀라 정우는 순간 머리를 쳐즐었다. 발걸음은 이미 강변광장에 와 있었다. 소학교 3, 4학년쯤 되여보이는 애들 넷이 뽈을 차고있었다. 십여메터를 사이 두고 가방으로 만든 꼴문이 있었다. 둘씩 한편이 되여 대방의 꼴문을 공격하고있었다. 키가 크고 몸집이 뚱뚱하게 생긴 애였다. 동작이 그닥 날렵하지 못했다. ―물알이라니까, 몸뚱이가 커서 뭐해. 빨리 쏴라니까. 키가 작말막하고 몸이 다부지게 생긴 애와 한편인듯싶었다. ―무슨 말이 그리 많니? 쏘쏘…쏜다는데… 뚱뚱하게 생긴 애가 뽈을 몰고 대방의 꼴물을 향해 가며 말을 벅벅 더듬었다. ―개소리 치지 말구 말리 쏴라, 찍! 다부지게 생긴 애의 말을 뒤로한채 뚱뚱하게 생긴 애가 뽈을 얼마간 더 몰고 가다가 꼴문을 힘껏 날려보냈다. 하지만 뽈은 꼴문을 명중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기울면서 생뚱같이 나가버렸다. ―에―잇, 물알같은것이… 너하구 한편이 된 내가 재수없는게지. 다부지게 생긴 애가 뚱뚱하게 생긴 애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보이고있었다. 그래도 뚱뚱하게 생긴 애는 이미 그런 핸동에 습관이된듯 다부지게 생긴 애를 향해 헤헤 웃음을 지어보일뿐이였다. ―자식, 성격이 좋은거야? 머리에 물이 들어찬거야? 정우는 뚱뚱하게 생긴 애가 맹랑하게 생각되여 쩝쩝 입을 다시며 뚝에 올라가 강울을 바라보고 앉았다. 저녁노을이 마지막 그림자를 강물에 길게 드리우고있었다. 붉으스름한 강물이 반짝이고있었다. 저 붉은 색조가 다 하면 어둠이 찾아들겠지? 어둠이 기다려지는것인지 아니면 찾아드는 어둠이 두려운것인지 정우로서도 짐작할길 없었다. 다만 이제 곧 어둠이 대지를 감쌀것이고 자기도 어김없이 그 어둠속에 삼켜질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꽉 채우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 어둠속에서 자기가 잠들것이고 그 잠길에서 어지러운 꿈밭을 헤매이게 될것이라는 막연함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사랑했던 마음도/미워했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스쳐버린 그날들/잊어야할 그날들/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노래소리가 슬프다고 생각되였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노래소리가 울리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생머리를 어깨에까지 드리운 하얀판에 연분홍 꽃잎이 자잘하게 박힌 원피스를 차려입은 녀인이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느때 어디에서 와 그 자리에 서있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가 왔을 때 그녀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자기가 와서 강뚝에 앉은후에 그녀가 왔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노래소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진 핸드폰에서 울리는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서산으로 사라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더더욱 가슴을 긁어대는 그림이고 노래였다. 무슨 아픈 사연이 있는것일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 정우는 저도 몰래 뻘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어쩌려구?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정우가 입가에 서글픈 웃음 한오리를 피워올리다가 갑자기 “아!” 하고 신음비슷하게 내뱉었다. 유희, 유희! 그 이름을 떠올리자 정우는 또 다시 가슴이 꺽 막혀오는것 같았다. 유희, 그녀는 과연 누구일가? 정우는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제밤, 정우를 쇼크직전에 몰아갔던 그 폭탄같은 메시지가 고스란히 핸드폰에 담겨있었다. “그날 너무 즐거웠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언제 또 당신에게 안길수 있을가요? 불러주세요. 유희가.” 정우는 뿌옇해지는 눈시울을 비벼가며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그만치 안해가 한국에 있었던 그 6년간, 정우는 어느 녀자에게 눈길 한번 더 준적이 없었던것이다. 그날이라니? 영원히 잊지 못한다면 그날 꼭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 아니야, 이건 아니야? 정우는 다시한번 힘껏 머리를 저으면서 핸드폰메시지창을 열었다. “메시지를 받고 놀랐습니다. 누구시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아요…” 정우는 주저없이 메시지를 날려보냈다. 만약 정말 자기와 관계가 있는것이라면 유희라는 그녀가 꼭 다시 메시지를 보내올것이라고 생각했다. 잊는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미련이 남아/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설레이던 마음도/기다리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스쳐버린 그 약속/잊어야할 그 약속/허공속에 묻힐 그 약속      바다에 던진 돌멩이가 솟구쳐 오르기를 기다리는 소년처럼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보고있는 정우의 뒤로 슬픈 노래가락이 흘러지나고있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에서 눈길을 돌려 노래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가져갔다. 하얀 원피스였다. 하얀 원피스에 자잘하게 박힌 연분홍 꽃잎이 눈에 부셨다. 장미꽃잎인가싶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어디서 본듯싶으면서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장미꽃잎보다도 더 작은 꽃잎이였다.   어디서 보았던가? 저 꽃잎을…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춤을 추네…”   갑자기 귀전을 치는 노래소리에 정우는 깜짝 놀라면서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에 눈길을 가져갔다.   “에루와 어쩔씨구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자치주 세웠네.”   아, 전화다!   정우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다댔다.   유희, 그녀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순간에 스치는 생각이였다. 가슴이 벌렁벌렁 파도를 탔다.   ―여여, 여…보세요…   ―개뿔, 여보는… 밥시간이 다 됐는데 어디서 뭐하고있는거야?   헉!   정우는 전신으로 한가닥의 한기를 느꼈다.   ―다…당신.   ―왜? 퇴근시간이 지난지 언젠데? 기여와도 그새면 집에 다 왔겠다.   안해의 목소리에는 큰 가시가 떡하니 박혀있었다. 정우는 무엇에 목구멍을 꽉 막히운듯 도무지 소리를 뽑아낼수 없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 들어와? 어디서 뭐하고있는거야? 재밌어?   정우는 바락바락 후벼대는 안해의 목소리를 가름하며 핸드폰을 쥔 손을 스르르 내리웠다. 머리속이 바퀴벌레 백마리에게 짓밟히듯 어지러워났다. 정우는 천천히 무릎우에 얼굴을 얹었다. 안해의 가시 박힌 목소리가 어디나를 가리지 않고 팍팍 찍어대는것 같았다.   안해의 목소리가 6년전에도 그렇게 앙칼졌던지 아니면 한국에 가있는 6년 사이에 그렇게 앙칼스러워 졌는지 기억에 없었다. 아니, 안해의 목소리가 어떨 때 그렇게 앙칼지게 변하는지 가늠할수 없다는게 나을것이였다. 지난밤, “죽여, 죽여버리라구. 쾅쾅 밟아버리라구!” 하던 그 목소리는 앙칼지다기보다 열광에 가까왔다고 생각되였다. 6년만에 만난 안해는 그대로가 어느때 터질지 모를 활화산이였다. 활화산을 옆에 두고 산다는것은 그 자체가 고문이였다. 그런 고문은 안해가 집에 도착했던 첫날밤에 벌쎄 예언된것이였다. ―당신, 어떻게 참았어? 샤와를 마친 안해가 “천사의 날개”를 나풀거리며 다가와 정우의 목을 끌어안고 던진 첫 마디였다. 어떻게 참았지? 코등이 시큰해났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정우는 입가에 가는 웃음을 피워 물며 안해의 손을 당겨다 무릎에 앉쳤다. 안해가 오른손식지를 정우의 왼쪽볼에 가져다댔다. ―주름이 생겼다, 당신. 안해의 오른손식지가 정우의 얼굴을 오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가볍게 쉼을 몰아쉬며 안해를 끌어안은 두팔에 힘을 넣었다. ―당신, 고생 많았어. 진심이였다. 언제나 안해를 떠올리기만 하면 자기가 부족해서 안해를 한국에 보내여 고생시키는것이라고 랭가슴을 앓던 정우였다. ―고생? 고생도 고생이지만… 후― 얼마나 그리웠는데. 돈이 뭐길래… “돈이 뭐길래”라는 그 말이 폭탄이였다. 3년전의 그날밤, 안해의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아래도리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였다. 정우는 안해를 끌어안았던 두팔을 풀면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괜히 목에서 겨불내가 나는것 같았다. 정우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랭수를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당신, 뭐해? 안해가 소리쳤다. 하지만 정우는 안해의 곁으로 가기 두려웠다. 정우는 쏘파로 다가와 담배갑을 주어들며 힘끔 안해를 훔쳐보았다.기껏해서 5초가 될가 말가한 순간이였지만 안해는 벌써 정우의 기색에서 뭔가를 짚어낸것 같았다.안해의 정우의 오른팔을 당겨다 곁에 앉혔다. 정우는 말 잘 듣는 막둥이처럼 안해가 당기는대로 쏘파에 엉뎅이를 붙였다. 안해의 손이 갑자기 정우의 그곳을 치고 들어왔다. 정우는 다시한번 흠칫 몸을 떨었다. 안해의 동공이 커지고있었다. 놀라움과 야릇함이 반죽되여 있었다. ―당신, 너무 긴장한게 아니야? 안해가 근심이 어린 눈길로 정우를 쓸어보고있었다. 정우가 오른 손을 들어 과장된 동작으로 손부채질하며 한마디 했다. ―덥네. ―더워? ―응, 땀이 나! ―개뿔… 한밤중에도 이렇게 덥네. 그 말에 정우가 안해에게 눈길을 돌렸다. 안해의 입에서 그같이 험한 소리가 나온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6년전, 정우의 머리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해의 목소리는“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요?” 하던 바스음이였다. 그 목소리에는 근심과 불안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 불안한 목소리가 머리에 남아 무시로 정우를 괴롭혔었다. 그 마음 여린것이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업수임을 당하는것은 아닌지? 업수임을 당해 팡팡 울고있는것은 아닌지? 내내 그런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던것이다. 그때면 자기가 무능한것 같아 자신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6년간, 무시로 그렇게 자기의 가슴을 꼬집은것이 몇번이던지 정우로서도 가늠할수 없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그 시점에 정우가 느낀것은 아픔과 련민만이 아니였다. 그 6년간 안해는 변해이썼다. 정우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안해로 하여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고있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멀어져버린 그대”처럼 느껴졌다. 안해가 돌아온후의 그 한달간, 정우는 벌써 여러차례나 안해가 무섭다고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그 한달간 정우는 한번도 밤일에 성공하지 못하고있었다. ―이 물알아, 그것도 못 넣어? 코앞에서… 잔뜩 거칠어진 목소리가 정우의 귀속에 날아와 박혔다. 정우는 흠칫 하면서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렸다. 아까 올 때 보았던 그 애들이 그때까지도 광장에서 뽈을 차고있었다. 뚱뚱하게 생긴 애가 또 제앞에 굴러온 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모양이였다. 그래서 많이 주눅이 든것 같았다. 상대가 분명 자기보다 약해보이는데도 뚱뚱하게 생긴 그애는 멀거니 그애를 바라만 볼뿐이였다.어쩐지 보고싶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되였다. 정우는 그애들로부터 천천히 머리를 돌리고 괜히 입술을 감빨다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춤을 추네…” 흥겨웠다. 흥겨워서 특별히 벨소리로 다운받은것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정우는 도무지 흥겨움을 느낄수 없었다. 괜히 그 노래를 벨소리로 다운받은것이 부아통이 터질것 같았다. 하지만 벨소리가 울리는 핸드폰을 그때문에 받지 않을수도 없었다. 정우는 약간 떨리는 손을 호주머니에 가져다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당금 안해의 앙칼진 목소리가 고막을 치는것 같았다. 잠간이라도 늦게 그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정우는 액정에 눈길을 박으며 찬찬히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얼핏 떠오르지 않는 번호였다. 누구던가? 맞아! 정우는 오른손에 쥐고있던 핸드폰을 급히 왼손에 바꿔지고 다시 전화번호를 살펴보았다. 틀림 없었다. 전화는 바로 유희가 걸어온것이였다. 4 ―뭐뭐, 뭐라구요? 정우의 눈동자가 한정 없이 커지고 목소리가 필요이상으로 높아졌다. “뭐라구요?” 하면서 동그랗게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 못한채 그대로 동그라미를 그리고있었다. 전화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정우가 소리쳤다. ―뚱퉈우(东头)에 있다구요? 유…유희다방이? 네? 정우가 “네?”하며 물음표에 악센트를 가할 때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정우는 뚜―뚜― 전류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입을 쩝쩝 다셨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다방이라구? 그럼 유희가 다방마담이라도 된다는 얘기인데… 뚱터우에 있다구? 정우는 동쪽교외를 떠올려보았다. 아직 건설이 잘 안되여 스산한 동네가 눈앞에 펼쳐졌다. 정우는 평소 동쪽교외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언제쯤이였던가? 동쪽교외에 산다는 중학교때 동창을 만나러 간것이 3년전이였던지 4년전이 였던지 기억에도 아리숭했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곳에 가 다방출입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게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 눈먼 낚시로 고기를 낚아다 자기 어장에 던져넣으려는 다방마담의 꼬임수란 말인가? 정우는 괜히 부아통이 터지려고 했다. 유희라고 부르는 괘씸한 그 마담을 만나 건침이라도 탁 뱉어주고싶었다. 뚱터우라고 했지? 정우는 주저없이 길옆으로 달려가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모실가요? 택시기사가 깎듯이 물어왔다. ―뚱터우, 유희다방. 잠간 어리둥절해 있던 택시기사가 인차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아, 유― 유희다방… ―알아요, 유희다방? ―그런 이름 들은적이 있는것 같아요. 뚱터우 고물시장곁에서요. 택시기사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정우는 그 말을 들으면서 두눈을 살풋이 감고 의자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생각할수록 한심한 세상이라고 느껴졌다. 옛날 어른들이 “눈감으면 코라도 베갈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해서 설마 하고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아닌것 같았다. 자기의 행동이 대방에게 어떤 폭탄이 될지를 생각지도 않고 그 같은 메시지를 함부로 날리는 유희와 같은 녀자들은 코가 아니라 심장이라도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도려낼수 있을것 같았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우를 불렀다. ―아, 네. 정우는 급히 값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렸다. 한국 녀배우 리영애의 사진오른쪽으로 “유희다방”이라는 글이 궁서체로 찍혀진 자그마한 간판이 눈에 뜨였다. 6층짜리 건물의 1층이였다. 정우는 인차 안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빠트앞으로 포장도로가 나있었는데 언제 부설한것인지 콩크리트가 떨어져 곳곳에 웅뎅이가 패여있었다. 그 웅뎅이에 비물이 고여 섞으면서 악취를 풍기고있었다. 아빠트서쪽에는 큼직한 쓰레기상자가 놓여져있었는데 비닐봉지들이며 종이곽들이며 지어는 음식물찌꺼기들까지 주변에 널려있었다. 청승스러운 주변환경은 실로 다방과 어울리지 않았다. 정우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테지. 이런 곳에 자리 잡은 다방에 손님이 많을수가 없지. 마담도 별수없어서 그런 얄팍한 수를 생각해낸거겠지. 정우는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피워 올리며 느릿느릿 다방으로 들어갔다. 붉으스름한 조명이 침침하게 비추는 방안의 오른쪽켠 카운터앞에 20대초반의 한 처녀가 서있었다. ―어서오세요. 정우는 그녀에게 눈길을 돌리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마담을 찾았다. ―아, 네. 로반(老板)님을 찾으세요? 오늘 나오시지 않으시는데요. 정우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얼마나 존경했으면 구구절절 존경어로 도배를 할가? 아무렴… ―마담이 무슨 분부가 없었소? 정우가 다시한번 무뚝뚝하게 물었다. ―없었는데요. “로반님이 나오시지 않으시는데요.” 할 때보다 조금 날이선 목소리였다. 정우는 빠알갛게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에 잠간 눈길을 주었다가 돌리면서 말했다. ―들어가 기다리겠소. 마담하구 약속이 있었으니까. ―그럴리가요. 카운터처녀의 목소리가 또 한옥타브 높아졌다. 그 목소리가 저으기 귀에 거슬렸다. ―왜? 안 믿어? 카운터처녀가 입가에 쌀쌀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로반님은 오늘 할빈으로 가셨어요. 친척집동생이 결혼식을 한대서요. 그런 로반님께서 어떻게 약속을… ―뭐요? 그럼… 정우가 말끝을 흐렸다. 유희가 전화에서 정우를 “유희다방”으로 오라고 했을뿐 자기가 “유희다방”의 마담이라고 말하지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정우는 다시 부아통이 터지려고 해서 괜히 입술을 소리나게 감빨다가 머리를 저으며 두덜거렸다. ―마담이라도 되는것처럼… 왜 하필 유희야? 유희다방은 또 뭐구… 일시 어쩔바를 모르고 서성이던 정우가 결심을 내린듯 다방을 나서려고 하는 찰나, 출입문이 열리며 하얀 원피스가 들어섰다. 하얀 바탕에 연분홍 꽃잎이 자잘하게 박힌 원피스였다. ―아! 놀라움이 아니였다. 흥분도 아니였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소리가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정우의 입에서 튀여나왔을뿐이였다. 정우는 왼쪽으로 한발 비켜섰다. 하지만 눈동자는 되려 하얀 원피스를 따라 움직였다. 원피스가 카운터로 다가가더니 오똑 멈춰섰다. ―조용하고 깨끗한 방 있어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남실거려 강변에서 보았던 그 슬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의 표정이 때에 따라 이렇게 판이하게 변할수 있다는게 놀라울따름이였다. 카운터에 섰던 처녀가 하얀 원피스를 안내했다. 하얀 원피스가 카운터처녀를 따르며 말했다. ―이제 한 중년선생이 와서 유희를 찾을거예요. 들여보내주세요. 유희? 유희! 저 녀자가… “숙명”이라는 엄숙한 낱말이 정우의 머리를 치고들어왔다. 어떤 이야기가 이제 곧 펼져지게 될것이라는 예감을 밀어버릴수 없었다. 정우는 하얀 원피스를 따라 걸음을 재우치다가 그녀가 들어간 방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멍하니 출입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빠알간 조명이 수집게 내리비추는 천정을 쳐다보았다. 순간이였다. 머리속에서 찰칵 하고 볼륨이 켜지는 소리가 울리는듯 했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정우의 입에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래된 고장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기라도 하는듯 곡조가 파도를 타고있었다. 카운터처녀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웬 일이냐는듯 정우를 지켜보았다. 정우는 그녀가 보든 말든 관계치 않고 계속 노래를 불러댔다. 설레이던 마음도/기다리던 마음도/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 카운터처녀가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카운터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화답이라도 하는듯 방안에서 노래소리가 울렸다. 스쳐버린 그날들/잊어야할 그날들/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정우는 드디여 접선을 이루어낸 특무처럼 주저없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오셨네요. 그녀가 사쁜 쏘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정우쪽에 얼굴을 돌렸다. 아까 “조용하고 깨끗한 방 있어요?” 하고 물을 때 얼굴에서 남실거리던 웃음은 오간데 없고 강변에서 보았던 그 우수와 슬픔과 처량함만이 얼굴 가득 어려있었다. 정우는 자기가 두눈을 펀히 뜨고 백만갈래의 미궁속으로 빠져드는듯해서 정신이 흐릿해났다. ―초면인것 같은데요. 정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초면이죠.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듯 미약했다. ―잘못 보낸거죠? 정우의 목소리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잘 간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려있었다. ―네? 정우의 동공이 한껏 커졌다. 카운터처녀가 차주전자를 들고 들어섰다. ―고마와요. 그녀가 카운터처녀에게 머리를 끄떡해보였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카운터처녀가 허리를 다소곳이 숙여보이고는 문을 나섰다. 하얀 원피스의 그녀가 다시 일어나 차주전자를 잡더니 허리를 굽히고 정우의 앞에 놓인 잔에 차물을 부으며 물었다. ―선생님은 믿어요? ―뭘요? ―인연, 운명… 이러루한걸요. ―글쎄요. ―난 오늘 이런것들을 믿기로 했어요. 그녀는 자기의 잔에 차물을 채워놓고는 조용히 쏘파에 엉뎅이를 대였다. 그 시각 그녀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잡념을 벗어버린듯 그처럼 담담해보였다. 아니, 세상의 모든것을 체념한듯한 표정이였다. 정우는 어떻게 허두를 뗄가고 망설이며 입술을 감빨다가 더듬거렸다. ―그럼… 우리가 인연이 닿았다는… 그렇게 리해해도… 정우가 말을 끊고 그녀를 살폈다. 두눈을 꼭 감고있었다. 왼쪽눈까풀이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가슴쪽으로 올려가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빨간 혀를 날려 빨간 입술을 쓸었다. ―한국에 갔다가 5년만에 돌아왔어요. 빠알간 색으로 섬세하게 디자인된 빠알간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듯한 바스음이였다. ―그새 한국에서 번 돈을 한푼도 남김없이 몽땅 남편에게 부쳐보냈더랬죠. 그만치 남편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몽땅, 깡그리 믿었던거죠. 얼마전에 귀국했어요. 집을 사고도 30만원쯤은 남았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돈으로 자그마한 옷가게나 하나 차려놓고 남편과 아기자기 살아보려고 꿈을 꿨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새 내가 돈 벌어 산 집에서 내가 보낸 돈을 가지고 다른 녀자를 품고있을줄을 어찌 알았겠어요. 미칠것만 같았어요. 하늘이 무너지는듯싶었어요. 그 사실이 밝혀지던 그날밤, 나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어요. 정처없이 거리를 헤맸죠. 맥이 지나자 무작정 찾아든게 이 다방이였어요. 맥주를 불렀어요. 한병 또 한병… 사는게 마치도 유희를 노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열심히 돈을 버는데 그 사람은 제놀음에만 빠져 그 돈을 탕진하고… 얼마나 허무하고 재미나는 세상인가요? 그래서 나도 유희를 놀아보고싶었어요. 그래서 그 같은 메시지를 작성해서 무작정 손이 가는대로 번호를 찍어 날려보냈죠. 유희다방! 이름이 얼마나 로맨틱해요? 그래서 이름을 유희라 달았구요. ㅋㅋㅋ…ㅋㅋㅋ… 그 돌멩이에 선생님이 맞은거예요, 선생님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우는 눈앞에서 탁탁 튀여오르는 무수한 오각별들을 보고있었다. “아, 예” 하고 볏 한번 달아볼 새 없이 그녀의 말에 끌려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듯싶었다. ―바보처럼 말이죠. 바보천치처럼 말이죠. ㅋㅋㅋ…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아, 예! 그제야 정우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더듬거렸다. ―유흰거죠. 모든게 유희예요. 유희! ―유희요? ―그럼요, 유희! 우리도 유희 한번 놀아볼가요? 그녀가 와락 정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 정우는 헉 들숨을 끌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그녀를 밀쳤다. ―유희라니까요. ―이…이러시면 안됩니다. ―산다는 자체가 유희죠. 그녀가 다시 정우의 목을 끌어안으며 입술을 덮쳤다. ―헉! 순간 정우는 짜릿한 전률을 느꼈다. 천만 볼트의 고압선에 툭하고 몸이 맞혀 쾅 하고 터져버리는것 같았다. 정우는 으스러지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부르르 몸을 떨며 가슴을 밀착해왔다. 정우는 벌떡 뛰여일어나 무작정 그녀를 쏘파에 쓰러뜨렸다. 급히 바지춤을 내렸다. 그녀가 흑흑 느끼며 팬티우로 그 물건을 잡아쥐였다. ―허억! 갑자기 정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아악! 그녀가 괴성을 뽑았다. 뿌우연 액체가 그녀의 손바닥을 적시고있었다… 5 그녀의 눈빛이 타고있었다. 점도록 정우를 올려다보며 활활 눈빛을 태우고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일종의 막연함이 커다란 물름표로 되여 걸려있었다. 정우는 감히 그녀의 눈동자를 정시할수 없어 머리를 숙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흥건히 젖은 팬티의 그 부분이 유난히도 눈길을 끌었다. 정우는 급히 손바닥을 쫙 펴서 팬티의 그 부분을 가리웠다. 밑에 놓인 왼손바닥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정우는 급히 팬티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굽히면서 허벅다리에 걸려있는 바지춤을 찾아쥐였다. -병원에 가보세요, 그녀가 쏘파에 일어나 앉아 함에서 종이 몇장을 뽑아들고 손바닥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네? 정우가 혁띠를 찾다 말고 굳어지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칫 놀라는 정우를 일별하던 그녀가 왼손에 쥔 종이를 오른손에 옮겨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비벼댔다. 종이가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갔다. 그녀는 공들인 작품을 감상하듯 동그란 종이말이를 눈앞에 가져다 잠간 들여다보더니 쓰레기통에 훌 던져넣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가보시라구요. 어쩜 선생님이 무슨 병에 걸렸을수도 있어요. -네? 제가요? 정우가 그녀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요?”에 악센트를 주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였다. 그녀는 인차 대답을 하지 않고 정우의 얼굴에 이윽토록 눈길을 박고있다가 입가에 가는 웃음 한오리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괜한 소리를 한것 같아요, 제가... -네, 아니요. 제가 일시 리해를 못해서요. 정우는 진정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듯한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가 빠알간 혀를 내밀어 빠알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한번 살랑 핥더니 물었다. -오래됐어요? -뭐가요? 정우는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듯 다잡아 물었다. 그녀는 다시한번 입술을 깜발고는 “후우-”하고 긴 한숨을 내뿜더니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욕망뿐이겠죠? 그 욕망이라는것이 있었기에 고통스러웠을거구요. 말을 마친 그녀는 쏘파에 등을 기대며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우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잡은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당황했습니다. 당황할수록 더 당황한 일만 생기더라구요. 그녀가 살며시 두눈을 뜨면서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우는 혁띠의 네번째 구멍을 찾고있었다. -6년이였습니다. -6년이였다구요? 그녀가 복창을 하듯 정우의 말을 받았다. 정우는 혁띠의 걸침을 찾아쥐고 말했다. -6년만에안해가 돌아온 그날밤, 처음으로 당황한 일을 겪었더랬죠. -그랬었군요. -네. 그랬습니다. 365일이 여섯번 흘러가는 동안이였죠. 이 말을 하면서 정우는 자기의 목소리에 일종의 익살같은것이 섞여져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익살스러움을 느꼈던지 그녀가 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만족했나요? -만족이요? 정우가가 어설프게 웃음 한송이를 입가에 꽂으며 담담하게 되물었다. -녀자들은 그래요. 습관되면 덤덤해지거든요. 하지만 습관되기가 그토록 힘든거죠. -힘들어요? 그럼 습관 못될수도 있겠네요? 역시 “요?”에 악센트를 주는 정우를 바라보며 그녀는 또 한번 입가에 웃음 한오리를 피워물었다. 아까 “제가요?” 하고 되묻던 정우의의 물음에 보내던 웃음보다 약간 짙어보였는데 어쩌면 장한 일을 해놓고 “잘했죠? 제가요.” 하고 엄마에게 묻는 아들놈을 련상하는듯해보였다. 그녀는 혁띠의 네번째구멍을 찾아 걸침까지 든든히 걸어 잠근 정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못될수도 있겠죠, 습관이. 녀자도 그렇구 남자도 그렇구... 억지로 습관을 하느라면 병이 생기죠. 남편을 떠나 한국에 가 있는 녀자들중 수란관에 종기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게 많대요. 그때문에 그녀들은 갱년기를 빨리 맞구요. 그렇게 자기를 죽여가면서 돈을 버는거죠. 남자들은 어때요? 6년간 와이프랑 떨어져있으면 남자들은 어떻게 돼요? 그 물음을 그처럼 담담하게 물을수 있는 그녀로 하여 정우는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6년간 꿀단지에 혀를 안대면 어떻게 될가요?”하고 엉뚱한 수수께끼라고 내는듯싶어서 한심하게 생각되였다. 이 녀자가... 뭐 하자는거야?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시 어떻다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있을 때 그녀가 또 입을 열었다. -남자들도 병이 나겠죠. 병이 안나자고 우리 집 그 물건은 고삐를 벗어난 들말처럼 그렇게 날쳤겠지만. 푸하하... 잠간 말을 끊은 그녀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쳐올렸다. 정우는 순간 온몸으로 한기를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웃음소리에 걸맞지 않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툭툭 소리나게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몇번 두드려대더니 어-흠- 건가래를 떼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병에 걸렸어요. 큰 병이 들었다구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차탁에 올려놓았던 핸드백을 주어들고 정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병원에 가보세요. 환자는 응당 병원에 가야 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는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다가가더니 다시한번 정우를 돌아보며 살짝 웃고는 문을 밀었다. 툭 하고 문이 닫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쏘파에 털썩 주저 앉아 지그시 두눈을 감아버렸다. 숨소리만 간간히 들려올뿐이였다. 분명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우는 숨쉬기가 가빠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정우는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다가 푸 하고 크게 숨을 토하고는 벌떡 쏘파에서 일어났다. 붉으스름한 조명이 괴괴하게 내리비추는 방안이 당금 터지려는 또치카를 방불케 했다. 당장 그 숨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싶었다. 한시라도 더 그 공간에 몸을 담고있으면 그대로 폭발해버릴것 같았다. 정우는 카운터쪽으로 다가가면서 돈지갑에서 오십원짜리 돈 한장을 꺼내들었다. 카운터처녀가 문소리를 듣고 정우에게 얼굴을 돌렸다. 정우는 카운터처녀와 눈 한번 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면서 돈을 카운터에 던졌다. -하셨어요. 카운터처녀가 소리쳤다. 정우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카운터쪽에 눈길을 던지며 소리쳤다. -언제 했어? -방금 하셨어요. 카운터처녀의 목소리가 챙챙하게 울렸다. 하지만 정우는 못 믿겠다는듯 소리쳤다. -안했어, 안했다구. -하셨다는데요, 방금 먼저 나간 녀사님이. 카운터처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또 다시 부아통이 터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가 뭔데, 제가 왜 해. 하기는... 정우는 씨엉씨엉 카운터로 다가가 돈을 확 집어들고는 다시 문쪽을 향했다. 카운터처녀가 웬 일이냐는듯 잠간 정우를 째려보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했다. -징선삥(精神病)! 뭐야? 징선삥? 내가 왜 정신병이야? 왜왜... 정우는 마치도 스스로가 다시 헤여나오지 못할 수렁속에 말려들어가는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는다면 머리카락한오리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릴것만 같은 두려움이 머리속을 엄습해왔다. -왜냐구? 내가 왜 정신병이냐구? 정우가 다방안으로 다시 들어가며 소리쳤다. 왜 그렇게 다시 다방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는 그로서도 알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싶다는게 전부였다. 사람이 없는 카운터만 조용히 정우를 맞아주었다. 카운터를 지키던 그 처녀가 어디로 갔을가를 생각할 새도 없이 눈굽이 젖어들었다. 코등이 시큰해났다. 괜히 입술을 빡빡 긁어댔다. 닭똥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정우는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두볼을 훔치며 급히 밖으로 뛰여나왔다. 머리를 푹 숙인채 어디라없이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앗! 정우가 급한 소리를 지르며 우뚝 멈춰섰다. 길옆에 누군가 자전거와 함께 너부러져있는것이 보였다. 왼쪽어깨로부터 시큰시큰 통증이 느껴졌다.자건거와 함께 쓰러져있던 사람이 기여일어나며 소리쳤다. -쌰촹싸야? 메이짱 얜징아?(瞎闯啥呀?没长眼镜啊?) 나이 지긋해보이는 중년 녀인이였다. 정우는 다가가 부축하려다가 우뚝 멈춰섰다. -찡선삥(精神病). 중년 녀인이 자전거를 일으키며 앙칼지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정우는 순간 쿡 하고 웃음을 뽑아올렸다. 뭐, 정신병이라구? 또 날보구 정신병이라구... “쑈신댈, 뿌왠이따리니(小心点,不愿意搭理你). 중년 녀인이 궁시렁거리며 자전거에 훌쩍 뛰여오르더니 힘있게 페달을 밟았다. 어둠속으로 살아지는 그녀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우는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고있었다. 왜 모두들 나를 보고 병에 걸렸다는거야? 정말 병에 걸린거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그렇게 처음으로 정우의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다. 설마... 정우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면서 얼굴을 쳐들었다. 촉수 낮은 가로등빛이 괴괴하게 거리를 비추고있었다. 정우는 연신 두눈을 슴뻑거리면서 멍하니 가로등을 쳐다보았다가로등도 아무 표정 없는 눈길로 정우를 내려다보는것만 같았다. 분하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병에 걸린거야? 6년간 착실하게 출근을 하고 때가되면 아귀아귀 밥을 먹고 감기 한번 하지 않았는데... 풀떡풀떡 뛰는 그 놈을 어르느라 허구한 날 팔힘은 얼마나 뺐다구...이렇게 건장한 나를 왜 모두 병에 걸렸다고 하는거야? -에루와 어쩔씨구 좋구나 좋네 핸드폰이 갑지기 노래를 시작했다. 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잡생각에서 헤여나와 급히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액정에 “마누라”라고 떠있었다. 장백산날씨처럼 한순간에도 검으락 푸르락 해지는 안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서 선뜻 핸드폰을 받을수 없었다. -장백산도 노래하고 해란강도 춤을 추네 핸드폰은 정우의 기분 같은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흥겨워했다. 정우의 머리가 손을 향해 어서 핸드폰을 받으라고 지령을 보내고있었다. 정우는 핸드폰의 수신버튼을 누른후 천천히 귀가에 가져다댔다. -당신, 어디야? 천둥번개가 아니여서 다소 시름은 놓였지만 인차 어떻게 대답할수 없었다. 정우는 잠간 말을 끊고 멍하니 가로등을 쳐다보다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여여... 여기 있잖아, 병원이야. -뭐? 병원? -그래, 벼...병원. -병원엔 왜 갔어? -여보, 나...나나... 병에 걸렸대. 그래서 지금 여기서 링겔을 맞고있어. -...... 당금 터져버릴것 같은 침묵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왔왔다. 안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안해가 자기의 말을 믿어줄가가 궁금했다. 흐흥- 코웃음이 터졌다. 링겔을 맞는다구? 내가 지금 링겔을 맞는다구? 정우는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렇게 못나고한심해보일수 없었다. 정우는 오른쪽 귀에 댔던 핸드폰을 왼손에 바꿔쥐였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핸드폰을 왼쪽귀에 꼭 가져다댔다. 적막감은 여전히 핸드폰을 타고 정우의 가슴에 흘러들고있었다. 순간 말 못할 두려움이 스멀스멀 정우의 머리속으로 기여들었다. -여...여보. 정우는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안해를 불렀다. -알았어, 큰 병이 아닐거야. 안해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생각되였다. -그래, 큰 병은 아닐테지. 정우는 그 말이 안해를 위로하는것인지 자기를 위로하는것인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안해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그렇구 말구. 큰 병일수 없지.당신, 원래 강한 사람이였잖아. 그 말을 들으면서 정우는 문뜩 “당신, 나 없이 살수 있어?” 하고 묻던 6년전의 안해의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부지중 안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내가 못난거잖아? 내가 못나서 와이프를 외국에 돈 벌러 보낸거잖아? 한달전, 비행기에서 금방 내린 안해의 손을 잡고 이 생각을 한번 해본후로는 처음인것 같았다. 그 여리던 사람이... 제대로 습관이 되였을가? “억지로 습관을 하느라면 병이 생기죠. 남편을 떠나 한국에가 있는 녀자들중 수란관에 종기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게 많대요. 그때문에 그녀들은 갱년기를 빨리 맞구요. 그렇게 자기를 죽여가면서 돈을 버는거죠.” 그 순간 새삼스럽게도 아까 다방에서 그녀가 하던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당신, 괜찮아? 정우가 저도 몰래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안해의 대답이 인차 날아왔다. -괜찮지, 나는. 알았어, 근심 말구 링겔을 다 맞구 집에 와. 기다리고있을게. 안해는 말을 마치고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래, 여기는 병원이야.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고 이어 기분좋게도 말 못할 해탈감이 느껴졌다. 그래, 아직도 한시간쯤은 여기 있어도 되는거야. 아직도 한시간쯤 지나야 링겔 한통을 다 맞을수 있는거야. 정우는 만부하로 당겨졌던 탕개가 스르르 풀리는듯하면서 다리맥이 빠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정우는 그곳이 가로등밑이라는것도 잊고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나는 지금 링겔을 맞고있는거야. 그래. 링겔 한통만 뚝딱 맞고 나면 나는 예전처럼 강하게 변할수 있을거야. 정우는 한없이 넓은 정글속에서 껑충껑충 뛰여다니는 자기를 보고있었다. 아니, 분명 자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갈기를 잔뜩 세운 수사자였다. 자기라고 생각되는 그 수사자가 수많은 암사자들을 끌고 위무당당하게 정글을 누비고있었다. 6    -가자, 우리. “우리”라는 말이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면서 정우는 두눈을 번쩍 떴다. -힘들었지? 우리 집에 가자. 말을 마친 안해가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오른손식지를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사이에 물렸다. -다다, 당신이... 정우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안해가 입에 문 오른손식지를 배배 돌리다가 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끝났어. 끝났다구. 유희는 이제 끝난거야. -뭐? 뭐뭐... 유희? -유희가 끝났으니 이제 우리 행복하게 잘 살 일만 남은거야. 안해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들렸다. -당신, 어떻게 알고 여기 왔어? 여기… 정우는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것을 의식하면서 한껏 동공을 키워 안해를 바라보았다. 안해가 말없이 정우의 손을 꼭 잡아쥐고 흔들더니 목소리에 힘을 담아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나, 다시 한국에 나가지 않을거야. 여기서 당신하구 제대로 한번 살아볼거야.
533    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댓글:  조회:2128  추천:0  2013-08-11
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1   고희연을 치른 이튿날 아침, 온구(温九)는 여느때보다 늦게 잠을 깼다. 고희연을 치르느라 기쁜김에 술을 좀 과하게 마셨던것이다. 그가 힘겹게 두눈을 뜨고보니 어느새 일곱시가 되여있었는데 해살은 그의 집어구의 마당을 비추고있었다. 빠알간 해살은 마치도 마당에 따뜻한 비단이불을 한벌 덮어놓은듯싶었다. 그때 김국(金菊)은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있었다. 아침밥을 지으려는것이였다. 온구가 객실에 막 들어서는것을 본 김국이 부엌에서 나와 잰걸음으로 온구앞에 와섰다. 김국은 너무 급히 달려나오느라 취화통(吹火筒)을 내려놓는것마저 깜빡 잊고있었다. 취화통을 손에 들고 허둥지둥 달려나오는 김국을 보고 온구는 김국이 자기를 때리려고 헤덤벼치는줄 알았다. 김국은 온구를 때리려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온구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되였다. 입귀가 우로 올라가있었고 머리는 18살 소녀처럼 갸우뚱 기울어져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온구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이 로친이 왜 나를 보고 이렇게 웃는것일가? 김국이도 사실은 이미 68세에 나는 할망구였다. 지난 몇십년 동안 김국은 온구앞에서 종래로 그렇게 머리를 갸웃하고 웃음을 지은적이 없었다. “왜…왜 그렇게 웃는거유?”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김국에게 물었다. 김국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물고 눈까지 껌뻑거리면서 말했다. “령감, 령감이 꼭 70살이 됐다우.” “내가 70살이 됐는데 뭐가 그렇게 우스운 일이라구…” 온구는 더욱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국은 취화통으로 온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70살이 되면 령감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거라 하지 않았수? 령감, 설마 그 일을 잊은거야 아니겠지?” “어느 일을 그러우?” 온구가 김국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신…” 김국이 취화통을 휙 저으면서 목소리를 높여 다시한번 그루를 박았다. “꽃신에 대한 일을 말이우.” 김국이 “꽃신”이라고 꼬집자 온구의 머리에는 즉시 예쁜 꽃신 한컬레가 떠올랐다.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온구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김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참, 대단하오. 로친… 기억력이 좋기도 하구려. 어느 왕금년의 일인데… 깨알만한 그깐 일을 나는 잊은지 옛날인데 로친은 아직두 기억하구있소?” 온구는 껄껄 웃으면서 배꼽을 잡고 돌아가다가 철썩철썩 허벅다리를 치기까지 했다. 김국은 약이 오른듯 취화통으로 온구의 입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웃긴? 왜 이렇게 배꼽 빠지게 웃는거유? 웃지만 말고 얼른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수? 그 꽃신이 도대체 어디서 온거였수? ” “급하기는…” 온구가 겨우 웃음을 거두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아침밥을 먹은후 천천히 말해주리다.” “안되우!” 김국이 꽥 소리치며 다그쳤다. “당장 말하란 말이우. 령감이 분명 약속했더랬지. 칠십살을 채우면 꼭 말해주겠다구. 내 이날을 꼭 22년이나 기다려왔단 말이요. 나는 워낙 어제밤에 령감에게 물을가 생각했더랬수. 령감이 어제밤에 그 뜨물을 들이켜구 인사불성이 돼 돼지처럼 쓰러지는 바람에… 그래두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깨우지 않은게우.” 김국의 말이 끝나자 온구는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참, 성질 하나는 급하다니까. 몇십년을 기다려왔을라니 아침밥 먹을 새를 못 참는단 말이우? 그래 그새도 못 참겠다는게유? 이런… 변소가 급해지네. 온밤을 채웠더니 오줌깨가 터지려구 하네. 좀만 더 지체하면 오줌을 지리게 생겼다우.” 말을 마친 온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변소를 향해 어정어정 걸어갔다. 김국은 별수없다는듯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좋수. 아침밥 다 먹을 때까지만 참아주겠수. 그래두 말을 하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을게유.” 그 말에 온구가 머리를 돌리고 물었다. “로친, 가만 놔두지 않으면 어쩔건데?” 김국은 잠간 머뭇거리더니 소리쳤다. “밥을 안 끓여줄거유.” 온구는 무슨 일에서나 솜씨가 쟀지만 부엌일만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 하기에 김국은 오직 밥을 끓여주지 않는다고 을러메야만 온구를 굴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온구는 공손히 김국을 향해 흰기를 들었다. “알았다니까. 아침밥을 다 먹은후 내 꼭 그 꽃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해주리다.” 온구가 그렇게 고분고분 나오자 김국은 취화통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당가에는 돌구유며 매돌이며가 가득 널려있었고 채 만들지 못한 작은 돌절구도 하나 놓여져있었다. 돌절구는 절구홈과 절구공이로 되여있었다. 절구홈은 모양이 번져놓은 모자를 방불케 했고 정구공이는 길고 굵직한 오이를 떠올리게 했다. 유채파의 사람들은 돌절구로 많이는 깨를 빻았지만 간혹 마늘이나 산초를 빻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는 모두 온구의 손에서 만들어진것이였다. 온구는 유채파일대에서 이름난 석공이였다. 온구가 만들어낸 석기들은 만드는족족 팔려나갔다. 온구는 변소에서 나오는 길에 또 석기를 사러 온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복아(福娃)였는데 리귀의 아들이였다. 리귀와 그의 마누라 원봉은 온구네 집 맞은켠에 있는 산등성이에 집을 잡고 살았다. 두 집 사람들은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서로 마주볼수 있었고 말하는 소리도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똑똑히 알아들을수 없었다. 복아는 서른살을 훨씬 넘긴 로총각으로서 해마다 외지에 돈 벌러 나갔다. 하기에 집에는 늘 리귀와 원봉이만 남아있었다. 효심이 많은 복아는 계절마다 집에 와서 부모들을 찾아뵙군 했다. 복아는 온구에게 절구를 사겠다고 했다. “우리 집 늙은이들은 말인데여… 마늘즙을 내 자시길 좋아하거든여. 식칼로 마늘을 쪼으려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되나요.”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돌절구라… 만드는게 하나 있긴 한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단다. 홈은 이미 다 팠지만 절구공이는 아직이구나.” “그러세요? 그럼 오후에 다시 올게요.” 복아가 일어나 돌아가려고 하자 온구가 인차 입을 열었다. “아침밥을 먹으려면 아직도 한시간 기다려야 하니 이 짬에 내가 손을 보마. 너 가서 아침밥을 먹구 와라. 그때면 아마 일이 끝날게다.” “그럼 수고하세요.” 복아는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온구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도구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무걸상도 하나 들어왔다. 복아는 그때까지 돌아가지 않고있었다. 복아는 만들다만 돌절구옆에 서서 뚫어져라 온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바이는 참 기력이 좋으시네요. 걸음걸이가 날파람이 나서 전혀 로인 같지 않아요.” 온구가 허허 웃으며 말을 받았다. “늙었단다, 늙었지. 벌써 칠십인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어디 저의 아버지 같겠어요. 우리 아버지가 아바이보다 몇살 아래지요? 그래두 어디 아바이처럼 망치를 흔들수 있나요? 비자루로 마당을 쓸라 해도 우리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기 힘들어할거예요.” 그때 부엌으로부터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겨나왔다. 복아는 코를 몇번 벌름거리더니 또 말을 시작했다. “이 집 아매두 참 기력이 좋은것 같아요. 밥을 짓고 돼지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어디 하나 빠지는데가 있나요? 아까는 왜 취화통을 들고 아바이한테로 뛰여왔댔어요? 우리 엄마는 이 집 아매에게 비기지도 못해요. 몇걸음만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란리인데요. 이 집 아매는 우리 엄마보다 세살이나 이상인걸요.” 온구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복아야, 너 참 입이 달구나. 우리 어디 네가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기력이 좋으냐? 너의 에미애비는 참 복받은게지, 너 같은 효자를 둬서…” 복아가 사라지자 김국이 부엌에서 쓰던 뒤집개를 손에 든채 문밖으로 나왔다. 온구가 마당에서 열심히 절구공이를 다듬는것을 본 김국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담고 시까스르듯 소리쳤다. “세상에… 칠십이 돼도 일손은 역시 잽싸네유.”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아쳤다. “왜? 칠십이 되면 서북풍을 먹고 사는가?” 온구가 그렇게 들이대자 김국은 일시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김국은 진작 온구의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있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사실이지 그 몇년간 가정살림은 모두 온구의 손에 의지해왔었다. 그렇다고 온구와 김국에게 아들딸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아들은 장가 가서 세간을 났고 딸도 이미 시집을 갔었다. 그들은 해마다 두 로인에게 천원씩 생활비를 보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강물에 가랑잎 흘러간 꼴로 되여버렸다. 두 로인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라고 독촉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도 생활이 여의치 않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온구에게 돌을 다루는 좋은 재간이 있는게 참으로 다행이였다. 온구가 석기를 만들어 벌어들이는 돈으로도 두 로인은 얼마든지 생계를 이어갈수 있었다. 김국은 부엌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가 다시 부엌문앞에 나와섰다. 김국의 입에서 또 꽃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밥을 먹은후에는 절대 떼질을 못쓸거유.” “떼질이라니?” “꽃신에 대해 말해야지유. 얼른 말해보슈. 도대체 그 꽃신은 누가 준거였수?”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쩝쩝 입을 다시다가 말했다. “떼질이라니? 이 나이를 먹구서… 내가 만약 떼질을 쓰면 로친이 나에게 밥을 안해준다면서?” 김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배포유하게 한마디 했다. “흥! 무서운걸 알면 됐슈.”   2   온구는 나무걸상에 앉아 절구공이를 다듬었다. 그는 일손을 놀리면서 그 꽃신을 머리에 떠올렸다. 김국의 말은 실로 그른데 없었다. 꽃신에 대한 추억은 2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었다. 그해 온구는 48살이였는데 몸집이 젊은이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일은 온구의 48살 생일 전날에 생겼다. 그날 저녁편에 온구는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의 한손에는 소고삐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등초융(灯草绒)으로 만든 헝겊신이 들려있었다. 온구는 흥겹게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마치도 인삼탕을 한사발 마신듯한 기분이였다. 그때 김국은 마당에서 돼지풀을 썰고있었다. 김국은 멀리에서 벌써 온구의 손에 들려있는 헝겊신을 보아냈다. 김국은 그 신을 보자마자 돼지풀을 쏠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어디서 났어요?” 김국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다가 주은거라우.” 온구가 시물시물 웃었다. “그래서 흥얼거렸군요, 신 한컬레가 생겼으니…” 말을 마친 김국은 다시 돼지풀을 썰기 시작했다. 두어번 칼질을 하던 김국이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어딘가 석연치가 않았던것이다. 김국은 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바투 들이댔다. “어디서 주었어요?” “방공호어구에서 주었지.” 말을 마친 온구는 꽃신을 들어 찬찬히 여겨보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앞에 샘터가 있잖수? 그옆에는 또 오동나무가 한그루 서있구. 아마두 누가 샘물을 마시느라구 신을 오동나무가지에 걸어두었다가 깜빡하구 두고갔나보지 뭐. 하하하… 내가 횡재를 한거지.” 그 말을 듣고서야 김국은 시름을 놓고 다시 돼지풀을 썰었다. 소를 우리에 몰아넣은 온구는 집으로 들어와 신을 부억칸과 이어진 따뜻한 안방벽에 걸어놓았다. 저녁밥을 다 먹은 온구와 김국은 안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발을 다 씻은 온구는 갑자기 벽에 걸려있는 신을 가리키면서 김국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주어온 그 신을 벗겨주오. 발에 맞는지 한번 신어보게…” 김국은 신을 벗겨들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신안에는 꽃 한송이가 수놓아져있었다. 복숭아꽃이였다. 분홍색을 띤 복숭아꽃은 활짝 피여있었다. 그 꽃을 바라보는 김국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제대로 말해요. 이 신을 도대체 누가 주었어요?” “말했잖아? 주은거라구? 몇번을 더 말해.” 온구가 태연한 기색으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김국이 온구를 쏘아보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주었다구요? 진짜 솜씨가 좋네요. 꽃신을 다 주어오다니…” 온구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꽃신이라구? 꽃을 수놓았다구?” 말을 마친 온구는 김국의 손에서 와락 신을 빼앗아 눈앞에 가져왔다. 온구는 신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정말이네, 진짜 꽃을 수놓았네.” 잠간 말을 끊었던 온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이런… 그것도 복숭아꽃이네. 아마두 맘에 있는 사람에게 주려던것 같군.” 온구의 말을 들으며 두눈을 껌뻑거리던 김국이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신어요, 얼른. 당신 발에 맞는가보자요.” 온구가 웬 일인지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 “됐소. 신어보나마나… 이같이 예쁜 신을 내가 어떻게 신고 밖에 나간다구. 그대루 벽에 걸어두오. 혹시 누가 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돌려줘야지. 시간이 흘러두 찾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 신어봐두 늦지 않지 뭐.” 하지만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듣는척도 않고 소리쳤다. “신어보라는데두, 왜? 오늘 꼭 내앞에서 신어보아야 해요.” 온구는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담고 마지못해 신을 신기 시작했다. 신은 온구의 발에 딱 들어맞았다. 어쩌면 온구의 발을 재여서 맞춘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싶었다. “하하하… 재수가 좋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을가?”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김국의 분노를 자아냈다. 김국은 주먹으로 온구의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당신, 제대로 말해봐요. 이 신을 어느 년이 줬어요?” 온구는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주었다고 하잖았소? 방공호앞에서.” 김국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개뿔, 줏기는… 귀신이나 속을가.” 그날 밤, 김국은 울고 불고 하며 복새통을 벌렸다. 지어 온구의 온몸을 손이 가는대로 잡아뜯기도 했다. 김국이 한번 또 한번 신을 누구에게서 가졌느냐고 물었지만 온구는 한번 또 한번 주었다고 되풀이했다. 련속 대엿새를 그렇게 달구어치고서야 김국은 약간 분이 풀려했다. 김국이 온구에게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주었다는것을 제대로 말만 하면 나는 더 이상 떠들지 않을거예요.” 그러자 온구도 대놓고 주었다며 딱 잡아떼지는 않았다. 김국이 그렇게 양보하는데 자기가 계속 주었다고 하는것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온구는 사실의 경과를 김국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않고 둘러붙였다. “그 신 말이야, 사실 주은것은 아니거든. 어느 녀자가 기어코 던져주길래…” “누가 준거야?”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아직은 대답할수 없어.” 온구가 잡아똈다. “왜 대답할수 없어?” 김국이 바짝 다가들었다. “거야 당신이 찾아가 큰일을 칠가봐 그러지.” 온구가 대답했다. 일시 뭐라고 말을 못하고 씨근거리던 김국이 물었다. “그럼 당신, 언제나 실말을 할건데?”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건… 내가 칠십살이 되였을 때 말해줄게.” 김국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세상에… 아직도 22년을 기다리란 말이야?” 온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길더라도 기다려야 할걸. 나는 70살이 되지 않으면 때려죽인대두 말하지 않을걸.” 온구가 그 꽃신을 들먹이고있을 때 사실은 김국이도 그 꽃신에 대하여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김국은 반찬을 만들면서 조용히 꽃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실이지 지난 22년간 김국은 늘 꽃신을 온구에게 선물한 녀자가 누구일가를 추측했었다. 몇몇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종시 누구라고 딱히 짚을수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세 녀인에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세 녀인의 얼굴이 다시 김국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제일 의심이 가는 녀자는 그래도 “조롱박”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녀의 젖무덤이 조롱박 두개를 앞가슴에 달아맨듯 해서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박”이라고 불렀다. 날이 감에 따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다싶이 했다. “조롱박”은 여러 남정들과 집적거려 말썽을 일으킨적이 있었다. 김국은 비록 온구가 “조롱박”과 좋아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적은 없지만 어느땐가 직접 “조롱박”의 젖무덤이 풍만하다고 말하는것을 들었던것이다. 그날 온구는 김국을 보고 파렴치하게도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신의 젖무덤이 조롱박처럼 크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한 녀인의 별명은 “야래향”이였다. 그녀의 남편은 좀 어리숙한편이였고 몸도 비실비실했다. 하기에 다른 남정네들이 밤이면 늘 그녀네 집을 기웃거렸다. 다른 남정네들이 밤중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면 그녀의 남편이 먼저 나와 문을 열어준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김국은 온구가 밤중에 “야래향”네 집에 간적이 절대 없다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야래향”을 위해 매돌을 만들어준적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그날 아침, 온구는 아침 일찍 “야래향”네 집으로 갔다가 밤중이 되여서야 돌아왔었다. 김국이 뾰로통해서 물었다. “그까짓 매돌을 온 하루 만들었단 말이예요?” 온구가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두짝이 아니요? 오전에 웃쪽을 만들고 오후에 아래쪽을 만들었지.” 김국이 의심을 하는 다른 한 녀인은 신을 누빌줄 아는 “작은아씨”였다. 그녀는 신을 누비는 재간이 좋아서 린근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녀가 신바닥에 수놓은 꽃송이는 실로 일품이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씨”는 심성이 고와서 종래로 남녀간의 일에 말려들지 않았다. 김국이 구태여 그녀를 의심하는것은 온구가 들고 온 신에 수놓여진 복숭아꽃이 보통솜씨가 아니기때문이였다. 김국은 당년에 그 꽃신때문에 온구와 크게 다툰후 유채파의 부녀주임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촌에서 부녀주임은 비록 권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사소하게 삐치는 일은 적지 않았다. 오직 녀자들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나서지 않는데가 없었다. 누군가 온구에게 꽃신을 선물했다는 김국의 말을 듣고 부녀주임은 아주 놀라는 표정이였다. 그날, 부녀주임은 김국과 함께 온구를 찾아 집으로 왔었다. 부녀주임은 먼저 온구를 예리하게 비판한후 누가 신을 선물했는가고 따져물었다. 온구가 두덜거렸다. “이렇게 비평하면 됐지 왜 기어코 누군가고 묻는거유?” “누군가를 알면 찾아가서 엄숙하게 비평하자고 그래요. 손벽은 혼자서 소리를 낼수 없어요.” 부녀주임이 그렇게 들볶는데도 온구의 입은 자물쇠를 잠근듯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부녀주임은 김국을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날도 김국이 온구에 대한 불만때문에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았기에 김국도 온구도 하루종일 쌀알 한알 입에 넣지 못하고있었다. 그 정황을 알게 된 부녀주임이 저녁무렵에 찾아와 밀가루수제비를 끓여주었다. 부녀주임은 수제비를 사발에 담아 그들앞에 놓아주며 따뜻할 때 얼른 먹으라고 재촉했다. 김국은 부녀주임의 관심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김국은 부녀주임이야말로 이를데없이 훌륭한 간부라고 생각했다. 그날, 부녀주임이 문을 나서려 할 때 김국은 자기가 의심하고있는 세 녀자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자기를 도와 “진범”이 누구인지를 알아맞춰달라고 청을 들었다. 부녀주임은 량미간을 찌프려가며 한참이나 분석을 하더니 머리를 저으면서 자기도 “진범”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했다. 부녀주임은 나중에 김국이를 보고 말했다. “쓸데없이 자꾸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지거든. 그리구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굴수도 있구. 후에 온구를 잘 지키기만 하면 돼.” 부녀주임은 말을 마치고 김국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김국은 마지막 료리까지 다 볶아냈다. 아침밥을 먹을수 있었다. 김국의 가슴은 어떻다고 형언할 길 없이 설레였다. 아침밥만 다 먹으면 누가 꽃신을 저 령감에게 선물했던가를 알게 되겠지. 그새 온구도 절구공이를 다 다듬은후 만족해서 살펴보고있었다.   3   아침밥상은 풍부했다. 전골 한가지에 뜨거운 료리 4가지가 올랐다. 김국은 또 온구를 위해서 닭알후라이 두개를 해올렸다. 온구는 어딘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무슨 닭알후라이는…” 김국은 두눈을 쪼프리면서 말했다. “닭알후라이를 먹어야 힘이 나지유.” 온구는 김국의 말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고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힘을 내서는 뭘 하는데? 석재 나르러 갈것두 아니구.” 김국이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대답했다. “꽃신에 대해서 얘기해야지유.” 그 바람에 온구는 킥킥 웃음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못 말린다니까, 이 로친은.” 온구는 말하면서 저가락으로 김국의 이마를 살짝 찔러주었다. 그 모양이 어쩌면 신혼부부가 사랑놀이를 하는듯싶었다. 아침상이 거의 끝나갈무렵에 김국이 또 입을 열었다. “내가 설겆이를 대충 끝내면 령감은 즉시 그 얘기를 해야 해유.” 온구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김국은 마당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마당에 나가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을거유. 따듯하게 해볕을 쪼이면서 말이유.” 온구는 여전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두 좋겠지. 얘기를 듣다가 로친이 덜덜 떨지도 모르니까.” 김국은 풀이 펄 나게 설겆이를 끝냈다. 온구는 도구상자를 사랑채에 가져다 둔후 나무걸상을 들고 인차 마당으로 나왔다. 김국은 자기가 들고 나왔던 나무걸상을 방금 온구가 가져온 걸상옆에 나란히 놓았다. 김국은 머리를 돌려 온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됐어유, 편히 앉아서 얘기를 시작해유. 나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수.” 온구는 나란히 놓인 걸상 두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허허허… 걸상을 참 재미있게 놓았구려. 조본산하구 송단단이 소품을 하는것 같네. 부끄럽지도 않수?” 김국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입을 열었다. “부끄럽긴? 당년에 령감이 그 꽃신을 받을 때는 부끄럽지 않았수?” 온구는 김국의 시까스름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시 뭐라고 할말을 찾지 못해 공손히 걸상에 엉뎅이를 붙였다. 하지만 김국은 인차 온구의 옆에 앉지 않고 갑자기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져나올 때 김국의 손에는 차탁이며 주전자며가 들려있었고 입에는 차잔도 물려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으며 목청을 높였다. “세상에… 로친, 무슨 재간을 피우는거유?” 김국은 차탁을 나무걸상앞에 놓은후 걸상에 앉아 차잔에 차물을 부으며 온구를 향해 머리를 까땍했다. “됐어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천천히 얘기해봐유. 낯 뜨거운 얘길텐데 입이 마르면 안되지유.” 온구는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며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참… 로친두, 못 말린다니까. 이게 와늘 유명한 사람들이 땐스(电视)프로를 찍는것 같지 않수?” 김국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입가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 “령감두 워낙 우리 유채파의 명인이 아니유?” “나같은 석공이 무슨 명인씩이나…” “명인이 아니면 어찌 꽃신까지 선물받을수 있었겠수?” 해볕이 참 좋았다. 마당에는 두터운 금빛해살이 한벌 쫙 깔려있었다. 비록 초겨울이지만 사람들에게 초봄인듯한 착각마저 일으킬것 같았다. “날씨가 참 좋지?” 온구가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으면 왜유? 말을 돌리지 말구 얼른 꽃신얘기나 하세유.” 김국이 재촉했다. 온구가 어험 건가래를 떼더니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내 얘기를 시작하지.” 김국은 온구의 곁으로 한뽐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온구가 정색해서 말했다. “로친, 내가 본론을 얘기하기전에 두가지 요구를 제기하겠수. 반드시 그러마 하구 대답해야 하우.” “무슨 요구라는거유?” 김국이 급히 들이댔다. “누가 그 꽃신을 선물했다는것을 말해도 절대 화를 내면 안되우.” “생각하는것 하구는, 벌써 22년이 지났는데두. 화는 무슨 화를 낸다구 그러우?” “그리구 나에게 성깔을 부려두 안되우.” “알았슈, 성깔을 부리려면 진작 당신을 기 채워 죽였을거유. 됐으니께 얼른 얘기나 하슈.” 김국이 두가지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온구는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복아가 마당에 들어서며 알은체를 했다. 김국이 복아를 바라보며 입을 쩝쩝 다시다가 원망 비슷이 한마디 했다. “복아야, 왜 딱 이때에 오는거니?”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허허… 돈이 굴러들어오네. 복아는 절구를 사러 온거라우.”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복아가 차탁앞에 와섰다. 복아는 두눈을 크게 뜨고 웬 일이냐는듯 온구와 김국을 살펴보더니 다시 눈길을 차탁에 옮겨왔다. 잠간후 복아가 입가에 약간 웃음을 띠고 물었다. “아매아바이, 무슨 땐스프로를 찍어요?” “땐쓰프로는 무슨, 볕이 하두 좋아서 차를 마시며 볕쪼임을 하는게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복아가 그래도 못 믿겠다는듯 잠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참 생활이 재미있으시네요.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웃고 얘기를 하고… 뭐가 그리 재미나서 막 손짓까지 신나게 하셨어요? 아까 저 마당에서 다 보았어요. 땐스프로를 찍는가 했어요.” 복아의 말에 김국이 얼굴을 붉히며 장황하게 동을 달았다. “산골에 사는 령감로친이 무슨 날구뛰는 재간이 있어서 땐스프로까지 다 찍겠냐? 겨울이라 별루 할 일도 없구 해서 나앉아 볕쪼임을 하는게지. 참 볕이 좋지? 이런 날씨가 어디 흔하냐?” 복아는 김국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돌려 자기네 집쪽을 바라보다가 후―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 아부지, 엄마두 아바이와 아매 같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분들은 진종일 가두 서로 말씀 한마디 안 나눈대요. 벙어리들 같아요. 아침에 그분들도 마당에서 볕을 쪼였어요. 서로 등을 돌리구요. 마치두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요.” 온구는 처음에 복아의 말이 믿기지 않아 머리를 들어 복아네 집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가 리귀와 원봉이도 마당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있었다. 복아네 마당에는 동서에 벼짚무지 두개가 있었는데 리귀가 동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고 원봉이 서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이 든것 같았다. 김국이 리귀와 원봉을 건너다보고 복아에게 물었다. “복아야, 너네 아부지, 엄마는 왜 나란히 누워서 볕쪼임을 하지 않는다냐?” “우리 엄마는 아부지가 코를 곤다구 꺼리구 아부지는 엄마가 이를 간다구 꺼려요.” “그런게 싫으면 밤에는 어쩐다냐?” 김국의 물음에 복아가 잠간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두분이 다른 침대에서 잔지가 오래요. 벌써 십여년이 됐을거예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김국은 슬쩍 온구를 건너다보았다.그때 온구도 김구에게 눈길을 보내오고있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반짝 하고 불꽃을 튕겼다. 그 불꽃은 두 사람의 얼굴을 빠알갛게 물들였다. 복아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매와 아바이도 잠자리를 갈랐나요?”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아직은…” 하고 얼버무렸다. 김국이 인차 온구의 말을 받았다. “우리두 진작 갈라야지 하구 생각은 했는데… 우리 집은 워낙 이불이 적어서.” 온구는 그때 절구공이를 주어들고 복아에게 말했다. “절구가 다됐다. 얼른 가지구 가서 부모들께 마늘즙을 내드려라.” “얼마예요?” 복아가 온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100원을 받겠는데 그저 80원만 내라.” 복아가 절구를 안고 사라지자 김국은 다시 온구를 재촉했다. “인젠 됐지유? 어서 얘기를 시작해봐유.” 온구는 걸상에 앉아 차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며 차분하게 물었다. “어디로부터 얘기하면 좋을가?” “직접 이름만 말해유, 그게 누구라구.” “그럼 당신이 너무 놀랄걸. 그래두 처음부터 천천히 얘기하는게 좋을거유.” 김국이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말했다. “좋아유. 그럼 처음부터 들읍시다.” “그날은…” 온구는 이마살을 약간 찌프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그날은 바로 내 생일 전날이였수. 나는 소를 끌고 방공호부근으로 갔댔지.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지 않았수? 샘물터옆에는 오동나무 한그루가 있지. 내가 샘물터로 다가가면서 보니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 한오리가 걸려있는거유. 실오리가 워낙 가늘어서 찬찬히 여겨보지 않으면 아예 있는줄도 모를거유. 하지만 나는 붉은 실을 한눈에 보아냈구 또 방공호안에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우.” “그게, 바루 그게 누군가 말이유.”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급해하기는? 천천히 들어보슈.” 온구가 김국을 슬쩍 건너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붉은 실은 사실 우리만 알고있는 암호였소. 오동나무에 붉은 실이 매여져있으면 영낙없이 안에 사람이 있었지.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사람은 나의 생일을 알고있었소. 그는 벌써 며칠전에 내 생일 전날에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었다오. 나에게 생일선물을 주겠다는거였소. 나는 소고삐를 부근에 있는 소나무에 매여놓았소. 그곳은 풀밭이였던지라 소가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을수 있었다우. 나는 풀을 뜯는 소를 잠간 바라보다가 시름을 놓고 흥겹게 방공호로 들어갔다우.” “안에 사람이 있었수?” 김국이 또 참지 못하겠다는듯 물었다. “있었지.” 온구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푸― 하고 긴숨을 내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안은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웠수. 하지만 나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인차 크림냄새를 맡을수 있었다우. 나는 그가 꼭 안에 있다구 확신했수. 그는 방공호에 올 때마다 얼굴에다 크림을 발랐다우. 목이나 가슴에다두 가끔 문대군 했었지. 나는 그 크림냄새를 무척 좋아했수. 그 냄새를 맡기만 하면 애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풍선처럼 온몸이 불어나는것 같았다우.” “아유― 길기도… 도대체 그게 누구유? 안에서 둘이 무슨 짓을 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분명 로친이 화를 안 낼거라 했수. 화를 내면 나는 말을 안할거유.”     온구가 김국을 건너다보면서 침을 놓았다. “내가 어디 화를 내우? 누군가 묻지를 않수?” “급하긴, 내가 알려준다는데. 그리구 우리 둘이 안에서 무엇을 했겠소? 남녀가 둘이 컴컴한 방공호안에서…” “선물은? 생일선물은?” 김국이 소리치며 온구를 쏘아보았다. “그가 방공호안에서 생일선물을 건네준게 아니라우.” 온구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안에서 급급히 그 일을 치렀다우. 일이 끝나자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갔수. 나를 보고 한시각 지나서 나오라는거유. 번마다 일을 끝내고는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나는 한시각뒤에 나갔댔으니까. 남들의 눈에 뜨일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날 그는 밖으로 나가면서 생일선물을 오동나무에 걸어두겠다고 말했수. 절대 잊지 말고 가져가라면서 김국이 물으면 주은것이라고 말하라 당부까지 했다우. 내가 방공호에서 나와보니 아니나다를가 오동나무가지에 무슨 물건인가 걸려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신이였수.” 김국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령감쟁이가… 빨리 말하라는데. 그 화냥년이 도대체 누구냐구?” 온구가 얼굴을 흐리우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로친이 성을 내면 난 말하지 않을거유.” 김국이 급해서 변명했다. “누가 화를 냈다구 그래유? 당신, 변덕을 부리면 안돼유.” “로친이 지금 화를 내구있지 않수?” 김국이 한풀 꺾여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알았어유. 화를 안 낼테니 빨리 말이나 하슈.” “진작 이렇게 나올게지.” 온구는 입가에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리면서 김국에게 그 사람이 누구일가를 맞춰보라고 했다. 김국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왜 맞춰보지 않았겠수? 제대루 맞추지 못해서 그렇지.” “허허허… 오늘 또 한번 맞춰보구려.” 김국이 눈알을 몇번 굴리다가 물었다. “ ‘조롱박’인가유?” “아니유.” “그럼 ‘야래향’이겠네유.” “그도 아니라우.” 김국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설마… 신을 잘 누비던 그 ‘작은아씨’는 아니겠쥬?” “더구나 아니지. 나는 그의 손 한번 잡아본적이 없으니까. 하하하…”  온구가 푸하 웃음을 터치며 머리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유? 제발 좀 뱅뱅 탈지 마슈.” 김국이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온구는 여유작작차 한모금을 마시고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추홍이였다우.” 김국은 벌떡 뛰여일어나 두눈을 한껏 치뜨면서 물었다. “누누…누구라우?” “추홍이였다니까.” 온구가 다시 확인해주었다. “그럴수 없수, 절대 그럴수 없수.” 김국이 딸랑이북처럼 머리를 마구 젓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라면 그 부녀주임이잖아유? 부녀주임이 어떻게…” “믿든지 말든지 맘대루 하구려. 나는 이미 알려주었으니까.” 온구의 목소리가 배포유하게 들렸다. 김국은 아무 말도 못하고있었다. 잠간 지나자 김국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을 부축하며 긴장한 기색을 하고 물었다. “로친, 괜찮겠수?” 김국이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말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그런다우. 집에 들어가 누워야겠수. 나를 좀 부축해주슈.”   4   김국이 온돌방에 들어가 눕자 온구는 옆에 앉아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국을 지켜보았다. 김국은 마치도 술에 취하기라도 한듯 두눈을 꼭 감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김국이 정신을 차리는듯싶었다. 김국은 눈을 뜨자마자 온구를 보고 소리쳤다. “당장 여기서 나가슈!”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로…로친, 왜왜…왜 그러우? 우리 약속하지 않았소?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구.” “내가 그래 화를 내구 성깔을 부리는것으로 보이유?” “그럼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는 사람이 왜 나를 쫓아내는거유?” 온구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제야 김국이 약간 부드러운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유, 혼자 있게 해주세유.” 온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당으로 나갔다. 나무걸상에 엉뎅이를 붙인 온구는 눈이나 좀 붙여볼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온구는 몸을 털고 일어나 사랑채로 가서 도구상자를 꺼내다가 석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석재가 가득 무져져있었다. 온구는 그 석재들로 아무것이나 만들어낼수 있었다. 온구는 절구를 하나 만들어볼가 생각했다. 아까 복아가 사갔기에 절구가 없었던것이다. 온구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몇번이나 헛망치질까지 하여 손등을 칠번했다. 온구는 진심으로 김국이를 근심하고있었다. 혼자 온돌방에 누워 무엇을 하고있는지가 궁금했다. 온구는 몇번이나 온돌방에 들어가 김국이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 올가 생각했다가도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해가 중턱에 걸릴무렵이 되자 절구홈이 모양을 갖추었다. 이미 점심때가 되였는지라 온구는 살살 배가 고파옴을 느꼈다. 온구는 끝내 온돌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김국이 온 오전을 온돌방에 혼자 있었으니 화도 어느정도 가라앉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김국에게 점심밥을 지으라고 귀띔도 해야 했다. 온구는 도구들을 상자에 챙겨넣고 슬금슬금 온돌방으로 들어갔다. 문쪽을 바라고 누워있던 김국이 들어오는 온구를 보고 등을 돌려댔다. 그 바람에 김국의 엉뎅이가 온구의 눈에 들어왔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잉어가 펄떡이는듯싶었다. 김국의 반상적인 동작에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로친, 아직도 화 안 풀렸수?” “누가 화를 내우?” 김국이 등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온구가 김국의 엉뎅이를 툭 치면서 말했다. “화를 안 내면 좋은 일이지. 그럼 얼른 일어나서 밥이나 챙기우. 배에서 꾸륵꾸륵 란리가 났다우.” 김국이 온구의 팔을 밀치며 바락 소리 질렀다. “추홍이를 찾아갈게지.” “이 말하는 꼴 좀 보우…” 온구가 어설프게 입가에다 웃음을 피워올리며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 언젠데, 어디 가서 추홍이를 찾는단 말이유?” “거리에 가면 찾을수 있지.” 김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년이 로아진에다 차잎공장을 꾸렸다는걸 몰라서 그러우?” 온구는 뭐라고 일시 대답할수 없어 입만 쩝쩝 다셨다. 푹 숙어진 온구의 머리속에 추홍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추홍의 아들은 농업전업학교를 졸업한후 로아진에다 차잎가공공장을 꾸렸는데 돈을 많이 벌어 진복판에다 번듯하게 층집도 지었었다. 그후 추홍이와 그의 남편을 진에 모셔갔다. 시간은 류수같이 흘러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도 10여년이 되였다. 추홍이 이사를 가서 처음 몇년간, 온구는 가끔 진으로 가서 차잎가공공장에 들려보군 했었다. 온구는 겉으로는 추홍의 남편을 만난다고 했지만 실지는 추홍이를 보기 위한것이였다. 온구와 추홍의 남편은 유채파에 있을 때 관계가 아주 좋았는데 평소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한번은 김국이도 온구를 따라 진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부녀주임을 못 뵌지가 오래됐어유. 보고싶네유.” “그럼 같이 가보세.” 온구가 쾌히 동의했다. 온구가 추홍이를 떠올리고있을 때 김국이도 추홍이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김국은 그날 온구를 따라 로아진으로 가던 그 정경을 여전히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그날, 문을 나설 때 김국이 입을 열었다. “전문 시간을 내서 부녀주임을 찾아뵙는데 빈손으로 갈수야 없지요.”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돌상을 하나 가지구 갈가? 마당에다 놓구 차를 마실 때 쓰게.” “좋아요. 당신이 쪼은 돌상을 볼 때마다 그들은 당신을 떠올릴거예요.” 김국이 기뻐서 손벽을 쳤다. 그들은 돌상에 딸린 작은 돌걸상 4개도 가져다주었다. 그날, 그들은 뜨락또르를 세내여 그것들을 실어갔다. 추홍은 온구네 부부가 선물한 돌상과 돌걸상을 보고 감동돼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온구는 너무도 배가 고파 견딜수 없었다. “로친, 얼른 일어나 밥을 챙겨주우. 배 고파서 죽을 지경이라우.” 온구는 김국의 표정을 살피면서 용기를 내서 또 한번 김국의 엉뎅이를 철썩 때렸다. “추홍이를 찾아가라는데.” 김국은 역시 그 한마디였다. “거리에 있는 사람을…” 온구가 뒤말을 흐렸다. “그럼 거리에 갈거지.” 김국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김국의 마지막 말에 온구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온구는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머리에 떠올렸던것이다. 사실 거리가 아니여도 촌사무실옆에 작은 음식점이 몇개 있었던것이다. 그래, 오늘 식당놀이나 해볼가? 아까 복아에게 절구를 판돈 80원이 있는데. 한끼는 푸짐하게 먹을수 있을게다. “식당놀이”를 생각하자 온구는 괜히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전에 온구는 종래로 촌사무실곁에 있는 그 음식점에 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온구가 시물거리며 김국에게 말했다. “밥 안 챙겨주려면 말구, 설마 내가 굶어죽을라구?” “그래, 추홍이 있는데 굶어야 안 죽겠지.” “추홍에게 가는게 아니여.” “그럼 령감, 또 다른 녀편네가 있다는거유?”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촌에 있는 음식점에 갈거유.” 그 말에 김국이 뭐라고 말할듯 입을 벌리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금방 온돌방을 나갔던 온구가 다시 들어와 김국의 옆으로 다가갔다. “왜 돌아왔어요?” 김국이 아니꼬운 눈길로 온구를 쏘아보며 물었다. 온구가 잠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로친두 나와 함께 가기유. 어쩌다가 식당놀이를 하는데 부인을 옆에 끼구 가야 체면이 서지.” “부인”이라는 말에 김국이 참지 못하고 키드득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체면 좋아하구있네. 부인씩이나. 령감이 뭐 총리라두 됐나 착각하는게 아니우? 낯짝이 두꺼운 석수쟁이 같으니라구.” 김국의 얼굴에 웃음이 어리자 온구는 더욱 신나서 손을 내밀어 김국을 당기며 말했다. “낯짝이 두꺼우면 좋은게지 뭐. 어서 일어나슈. 석수쟁이 부인.” 그래도 김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가고싶으면 령감이나 가시우. 나는 오늘 밥을 먹고싶은 생각이 없수다.” “그럼 로친은 지금 뭘 하구싶소?” 온구가 물었다. 김국이 잠간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령감하구 추홍이 어쩌다가 눈이 맞았는지를 알구싶수.” 온구가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거야 쉽지. 로친이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면 알게 아니유? 식당에 가서 내가 추홍이와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게.” 김국이 기뻐하며 바투 들이댔다. “그게 정말이쥬?” “나는 역시 그 한마디라우.” 온구가 여부가 있느냐는듯 대답했다. “어느 한마디를 그러우?” “장부일언 중천금!” 김국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어입고는 온구의 손을 끌고 문을 나섰다. 음식점은 유채파기슭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옆에는 큰길이 뻗어있었다. 근년에는 또 큰길옆에 층집들이 들어앉아서 어느 진의 작은 거리를 방불케 했다. 음직점은 온구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온구네는 마당을 벗어나 뜨락또르길을 따라 10분쯤 걸은후 굽이를 돌아서 층집들이 일어선 거리에 들어섰다. 그 층집들은 촌민들이 외지에 나가 돈을 벌어다가 지은것이였다. 워낙 그들은 유채파골짜기 여기저기에 널려살았댔는데 층집을 짓고 내려와 이웃으로 살아가고있었던것이다. 김국이 전에 의심하던 그 세 녀인도 모두 층집에 살고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김국이처럼 늙은 할머니로 되여있었다. 온구네가 촌사무실에 거의 도착하고있을 때 김국이 문뜩 온구에게 물었다. “오늘 그 세 녀편네를 만나지야 않겠쥬?”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다잡아 물었다. “세 녀편네라니?” “ ‘조롱박’, ‘야래향’ 그리구 그 ‘작은아씨’를 말이지유.” “왜, 그들을 보기 무섭수?” “무서운게 아니라 좀 미안해서 그러지유.” 온구가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물었다. “미안하다니? 왜?” 김국이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말했다. “그때 나는 정말 그 셋중에 꽃신임자가 있는줄 알았다니까유.” “그러게 누가 로친 보구 맘대루 억측을 하라 했수?” 김국이 팔굽으로 온구를 툭 치면서 말했다. “모두 령감탓이라우. 그때 령감이 추홍이라고 알려만 주었어두 내가 왜 그런 억측을 했겠수?” 그들은 너 한마디 내 한마디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잡화점이 눈에 띄였다. 김국은 잡화점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식당은 저쪽끝에 있는데, 왜 멈췄수?” 온구가 물었다. “아침에 절구를 판 돈에서 10원을 꺼내줘유.” “돈 10원을 해서 뭘 하려구?” “사탕을 사려구유.” “이 로친네가 애들처럼.”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말했다. “내가 먹으려는게 아니유. 그 녀편네들 손군들에게 주려구 그래유.” 그제야 김국의 심사를 알아챈 온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사탕을 주고 미안함을 씻겠다 그거로군.” 온구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여 김국에게 넘겨주었다. 김국은 사탕 한봉지를 손에 사들고 신나서 흔들어보였다. 온구는 그 모양을 보고 푸하하 웃음을 터쳐올렸다. 그러자 김국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웃어유? 웃긴?” 얼마 걷지 않아 그들은 “야래향”네 문앞에 도착했다. 그때 “야래향”은 문앞에 앉아서 락화생을 말리우고있었다. “야래향”은 곱게 늙어있었는데 머리는 여전히 깔끔하게 빗어서 얹었고 바지에는 꽃도안까지 수놓았었다. 김국이 다가가서 손자는 어디에 갔는가고 물었다. 학교에 갔다고 했다. 김국은 사탕을 한줌 쥐여주며 말했다. “이 사탕을 손자놈이 오면 주시유.” “야래향”이 어정쩡해있다가 물었다. “혹시 집에 무슨 경사라도 생겼수?” 온구가 인차 해석했다. “아니유, 경사는 무슨. 방금 저 로친이 길에서 돈 10원을 주었다우.” 그제야 “야래향”은 사탕을 받으면서 말했다. “글쎄… 내가 이상하다 생각했지. 암튼 감사하우.”  “작은아씨”네 집에 도착하니 그는 없고 그의 다섯살 나는 손녀가 문앞에 앉아서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있었다. “할머니가 어디 갔니?”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할머니는 고모네 집으로 갔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구나, 너 사탕을 먹을래?”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기뻐서 “먹을래요.” 하고 대답했다. 김국이 사탕 한줌을 손녀에게 쥐여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며 온구가 말했다. “너의 할머니가 돌아오면 김국할머니가 사탕을 주더라고 일러야 한다.” “알았어요.” 손녀가 사탕을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조롱박”의 아들은 특산품수구소를 경영하고있었다. 그는 온구와 김국을 알아보고 뛰여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두분,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김국이 좌우로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자네 엄마는 왜 안 보이나?” “조롱박”의 아들이 대답했다. “어머님은 뒤울안에서 검정귀버섯을 포장하고있어요.” 온구와 김국은 인차 뒤울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가 “조롱박”은 한창 비닐봉지에다 검정귀버섯을 담고있었다. 온구는 허허 웃으며 롱담을 했다. “자네, 아직도 앞가슴이 조롱박 같나?” “조롱박”이 손으로 앞가슴을 더듬으며 말했다. “언제적의 소리를… 내려앉은지 옛날이라우.” 김국은 나머지 사탕을 모두 “조롱박”에게 주면서 말했다. “참, 오랜만이네그려. 이 사탕이나 맛보게.” “조롱박”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성의까지…” “조롱박”네 집에서 나온 그들은 몇십메터를 걸어서 “일과자(一锅煮)”라는 이름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온구와 김국을 알고있는 음식점주인은 웬 일이냐는듯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무슨 바람이 두분을 여기까지…” “왜 우리는 못 올덴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주인이 게면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디 두분처럼 멋지게 식당놀이를 하는 어르신들이 있나요?” 온구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주인의 어깨를 툭 쳤다. “참, 듣던중 기분 좋은 말일세.” 료리를 주문할 때 온구가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맛 좋은 료리가 어떤것인가?” 온구의 물음에 주인이 더 생각지도 않고 대답했다. “물론 일과자지요. 고기두 풀두 다 들어가니까요. 한가마에 50원입니다.” 온구가 주저없이 말했다. “좋아, 한가마 들이세. 그래, 그게 한가마면 되겠지?” “너무 비싼게 아니우?” 김국이 온구의 눈치를 살폈다. “비싸지 않아, 비싸지 않구말구. 처음으로 ‘석수쟁이 부인’을 음식점에 모셨는데… 한끼 기분 좋게 먹어야지.” 그 말에 김국이 상밑으로 온구를 걷어차며 말했다. “이 두상이, 정말 낯가죽이 두껍네.” 온구는 일과자를 올릴 때 흰술도 반근 가져오라고 했다. 김국은 처음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온구가 김국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로친두 마셔야 내가 추홍이와 사귀던 옛말을 하지.” 온구가 이렇게 나오자 김국은 두말없이 술잔을 들었다. 너 한잔 내 한잔… 두 로인은 점점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5   온구와 김국이 “일과자”에서 나왔을 때는 오후 3시가 넘어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볕이 좋았는데 오전 8, 9시경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김국인지라 술이 좀 과하니 머리가 어지러워나고 걸음이 비틀거렸다. 온구는 할수없이 김국의 팔을 부축해 걸었다. 그들이 팔을 겯고 촌사무실앞을 지날 때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나 난듯 나와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정말 사는것 같네.” 하고 부러워했다. 촌사무실앞을 지나 뜨락또르도로로 얼마간 걸으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잠간 앉았다 가유.” 김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을대루 하기유.” 온구가 대답했다. 온구가 금방 자리를 찾아 앉자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툭 쳤다. “빨리여, 추홍이와의 일을 얘기하슈. 내가 술을 마시면 얘기한다구 하지 않았수?” “급하기는… 내 입술이 바짝 말라든게 보이지 않수?” 온구는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면서 말했다. 갈림길의 한가닥은 방공호로 통했다. 김국은 방공호로 뻗은 그 길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생각해낸듯 두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방공호에 가서 샘물을 마시자유.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잖수?”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두 좋지. 거기서 집이 멀지 않으니까.” 그들은 걸어서 10분도 채 안되여 방공호앞에 도착했다. 방공호는 문화대혁명시기에 판것이지만 한번도 사용한적이 없었다. 김국은 방공호앞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듯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살폈다. 온구는 정말 목이 말랐던지 샘물터에 도착하자마자 물가에 쭈크리고 앉아 손바닥을 쫙 펴서 연신 물을 퍼마셨다. 얼마간 갈증이 가라앉을무렵에 김국이 다가와 물었다. “꽃신을 걸어두었다던 그 오동나무는 왜 보이지 않수?” “벌써 잘라버린지 오래다우.” 온구가 대답했다. 김국이 호― 하고 한숨을 내쉰후 말했다. “그 아까운 오동나무를… 왜 베버렸대유?” “하지만 그루터기는 아직 있을걸.” 온구가 말을 마치고 샘물터 가까이를 돌면서 찾아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샘물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오동나무그루터기가 있었다. 그루터기는 썩지 않았는데 국사발만큼 통사리가 굵었고 높이는 반메터 정도 되였다. 걸상으로 쓰기 좋을것 같아 온구는 그 그루터기에 엉뎅이를 붙였다. “거기에 앉으니 행복하지유?” 김국이 얼굴에 묘한 웃음을 담으며 물었다. “행복하지.” 온구가 정말 행복에 도취된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잘됐구려, 목도 마르지 않겠다, 행복하게 옛 나무를 찾았겠다… 인젠 그 풍류사를 더듬어도 되겠지유?” 그제야 온구는 자기의 허벅다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알았소, 잘 들으라구. 옛말은 그 절구로부터 시작되였지.” 그해 여름의 어느날, 김국은 부녀대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구에게 말했다. “부녀주임이 당신 보고 래일 집에 와서 절구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온구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간부들에게 석기를 만들어주는 일은 하고싶지 않은데… 그들에게서 어찌 돈을 제대로 받을수 있겠소?” “그래두 가서 하나 만들어주세요. 부녀주임은 좋은 사람이니 섧게 대하지 않을거예요.” “당신의 면목을 봐서 갈수 밖에 없구려.” 온구가 대답했다. 이튿날, 온구는 추홍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추홍이는 차물을 따라주고 담배를 권하면서 아주 살갑게 굴었다. 그날 점심에는 또 랍육(蜡肉)까지 삶아주는것이 무슨 귀한 손님을 초대하는것 같았다. 온구도 있는 솜씨를 다해서 일을 제껴나갔다.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오후 3시가 되자 끝났다. 그때 추홍의 남편은 일하러 밭으로 나가고 추홍이만 집에 있었다. 온구가 추홍이를 불러 절구를 검사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추홍이 온구를 보고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급할게 없어요. 저 먼저 가서 목욕을 하고 올게요.” 추홍은 목욕을 마친후 비단옷을 바꿔입고 나왔는데 옷이 너무 엷어서 안에 입은 팬티까지 다 보일 지경이였다. 추홍의 모습을 본 온구는 너무도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추홍이는 또 크림을 얼굴에 발랐는데 그 냄새가 온구의 코구멍을 파고들었다. 절구는 추홍이네 뒤뜰에서 보기로 했다. 온구는 절구공이를 절구홈에 넣었다. 새로 다듬은 절구공이는 매캐한 돌가루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추홍은 먼저 절구홈을 살펴본후 절구공이를 꺼냈다. 추홍은 한손으로 절구공이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절구홈을 만지면서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띠였다. “이 절구홈과 절구공이가 무엇 같아요?” “절구공이는 오이 같구 절구홈은 모자 같지유.” 추홍이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보다 더 같은게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온구가 급히 물었다. “더 같은게라니요? 뭘가요?” 추홍이 온구에게 눈을 끔쩍해보이며 신비하게 말했다. “이것들이 남자와 녀자의 그 물건과 똑같지 않아요?” 추홍이는 말을 마치고 절구공이를 다시 절구홈에 밀어넣은후 힘을 다해 몇번 찧어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온구는 추홍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금세 알것 같았다. 온구는 갑자기 두팔을 쫙 벌려 으스러지게 추홍을 끌어안았다… 온구는 여기서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래, 그렇게 바루 잤수?” 김국이 바투 들이댔다. “아니, 그렇게 잠간 안고있는데 추홍이 나를 밀어내더군. 제 남정네가 돌아올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럼 언제 또 만나서 자기 시작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그날 오후 다섯시쯤이였을게유.” “어디서?” 온구는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뒤에 있는 방공호를 가리켰다. 김국은 멍하니 방공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누가 먼저 이곳을 생각해낸거유?” “추홍이 생각해낸거지. 그가 나를 보고 다섯시에 그곳에 오라고 했소. 만약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이 걸려있으면 바루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소.” 온구의 말이 끝나자 김국이 몸을 돌려 방공호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온구가 김국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안되우. 몇십년을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는데 위험할수 있수.”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들은체도 않고 기어이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말리지 마우, 나는 기어코 들어가볼거유.” 온구는 더 으스러지게 김국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래두 오늘은 안되우. 기어코 들어가보겠으면 후날에 손전지를 가지고 와서 다시 들어가기유.” 온구가 애원하듯 말해서야 김국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날, 온구와 김국은 방공호앞에 오래동안 머물다가 석양이 불타오를무렵에야 돌아섰다. 뜨락또르도로가 굽이를 도는 그곳에서 김국은 걸음을 멈추고 온구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래일 로아진으로 가유.” 그 말에 온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로아진에 가서는 뭘 하려구?” “추홍이를 보려구.” 온구가 긴장해서 말했다. “로친, 설마 가서 성깔을 부리려는게 아니지?” 김국이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22년이나 지난 일인데 무슨 성깔을 부릴게 있수.” “그럼 왜 가보겠다는거유?” “모르겠슈. 갑자기 부녀주임이 보고싶어 그러우.” 온구는 김국의 말이 진정으로 들려 큰 결심을 내린듯 말했다. “좋소. 그럼 래일 가는거로 하기유.” 집에 거의 도착할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복아였다. 복아의 어깨에 화학비료 한자루가 메워져있었다. 복아가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매아바이, 식당놀이를 하셨다면서요? 참으로 멋지게 사셔요.” “식당놀이 한번 한게 그렇게 멋져?” 온구의 말에 복아가 부러운듯 말했다. “그럼요. 어디 우리 아부지, 엄마 같을라구요. 진종일 밖에는 한발작도 나가려 하지 않지요.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따분할가요?” 온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신나서 한마디 했다. “래일 우리는 또 로아진에 가기로 했다.”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욕했다. “참으루 얼굴이 두껍구려. 로아진에 왜 가는지 잊고 떠들어대는것은 아니겠쥬?”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으며 하하하 웃었다. 김국이도 호호호 웃음을 터쳐올렸다. 웃음소리가 통쾌하게 울려퍼졌다. 그들의 얼굴에 피여난 웃음꽃은 불타는 석양보다도 더 찬란했다.   효소(晓苏), 1961년 출생. 1983년 화중사범대학 중문전업 졸업. 1985년에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이미 400여만자의 작품을 발표. 소설집 《산사람 산밖의 사람(山里人山外人)》, 《검은 등(黑灯)》,《구희(狗戏)》,《금미(金米)》등이 있음. 현재 화중사범대학 문학원 교수로 사업. 1급작가. 중국작가협회 회원.      
532    호불귀(胡不归) * 적안 댓글:  조회:1824  추천:0  2013-07-03
단편소설     호불귀(胡不归)   적안     사실 그는 75세부터 85세 사이의 십년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 십년사이 그는 내내 죽음이 두려워 전전긍증했었다. 언제라도 그 십년을 돌이켜보면 늘 부끄럽고 난처했다. 75세 되던 해가 1982년이였던지 1983년이였던지는 딱히 기억되지 않지만 그해 제일 작은 손녀가 태여났다는것만은 확실했다. 그날 그는 엄숙하게 두눈을 꼭 감고있는 어쩌면 거대한 파충 같은 손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녀가 못견디게 미워났다. 손녀가 너무 작은것이 미웠고 그 애가 자라 성인이 되는것을 볼수 없다는것에 분노를 느꼈으며 손녀가 일부러 그렇게 늦고 작게 태여난것만 같아 화가 치밀었고 또 의식적으로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난후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 소박하거나 섹시한 녀인으로 되려는것 같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모든것에 혐오감을 느끼고있었다. 안해는 진작 그의 기분을 꿰뚫어본것 같았다.  “손자가 셋이나 되지 않아요? 그러니 이번에 손녀를 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요. 애 눈이 얼마나 커요? 입술선도 선명하게 살아있구요. 크며는 꼭 얼굴이 반반하다는 소리를 들을거예요.” 안해는 만족되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었다. “성이는 1978년에 태여났지요. 그리구 올해 손녀가 태여났으니 이 두 애는 참으로 명이 좋다고 해야지요. 우리 가정의 힘든 나날이 다 지난후에 태여났으니 참으로 제때를 만나 태여났다고 할만 하거든요…” 두눈을 쪼프리며 웃는 안해의 코등에 가는 주름이 보였다. 그는 안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안해는 태여난 애가 녀자애라고 그가 뿌루퉁해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안해는 늘 자기의 마음을 빌어 그의 모든것을 추측하고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안해는 더구나그의 뼈속까지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있다고 자신하는것 같았다. 그 바람에 그는 자기에게 속하는것인지 아니면 안해에게 속하는것인지도 모를 그 추측들을 당연한 자기의 일부분으로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종래로 안해에게 그런것들을 구태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손녀가 태여나서 6개월이 되였을 때 그는 한차례의 검진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검진에서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날 그는 병원 복도의 긴 걸상에 앉아서 처음으로 저승사자를 보았는데 어쩌면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듯싶었다. 60살이나 됐을가? 그는 나름대로 사색을 굴렸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그나 저승사자나 모두 늙은이로 보일것은 당연한것이였다. 저승사자는 볼품없이 낡았지만 깨끗하게 손질을 한 중산복을 입고있었다. 만약 안해가 저승사자의 중산복을 보게 된다면 보증코 첫마디로 “원단이 참 좋네요.” 하고 말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의 얼굴은 온화하고 자애로와보였는데 첫눈에도 쉽게 접촉할수 있는 사람, 아니 쉽게 접촉할수 있는 신으로 느껴졌다. 저승사자는 스스럼없이 그의 앞에 놓여진 낡은 장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두손을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저승사자는 입을 열기전에 먼저 호주머니에서 누렇게 된 위생종이 한장을 꺼내여 힘껏 코를 풀었다. “요즘 날씨가 참 좋네그려?” 저승사자가 드디여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얼마나 남았는지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면서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곱게 접은 화험단을 꼭 움켜쥐였다.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화험단을 네모나게 곱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던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이 랭정하게 현실을 받아드렸다고 확신했다. “뭐가 얼마나 남았는가구 물었수?” 저승사자가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것 같았다. 신이라는 그 량반이 구사하는 표준어는 그보다도 더 서툴었는데 딱히 어디 방언이 섞여있는지는 가늠할수 없었다. “나를 데리러 온것이 아닌가요?” 그는 억지로 입가에 웃음 한점을 피워올리면서 마음속에 내려앉은 그 쓸쓸함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 처량함은 필경 자존심으로부터 생겨나는것이라고 믿고있는 그였다. “오― 그 문제를 물은거유?”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차츰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 대단한것이 아니유. 해결하자면 아주 쉬우니까.” 저승사자는 여유작작 담배를 꺼내더니 그를 보지도 않고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성냥이 어디 있더라?” “저…저는 페암이거든요.”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저승사자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쪽에 대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의사의 말로는 내가 운이 좋아서 초기에 암을 발견했다고하지만요…” 저승사자는 어디서 성냥을 찾아냈는지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괜찮소, 담배 한대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라구.” 그도 사실은 저승사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75세가 되던 그해 많은 일들을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매우 천진했었다고 생각했다. 근 30년이 흐른뒤에도 그는 자기가 어떻게 사형판결서와도 같은 화험단을 억지로 접었고 그때 손가락이 어떻게 떨렸으며 나중에는 또 어떻게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딱 맞춰냈는가를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잡아서 백분의 백으로 딱 맞게 접어내는 순간 그의 오른손 식지와 중지와 무명지는 신통히도 평면을 이루었다. 그는 아래, 우 귀가 꼭 맞게 놓인 화험단에 힘을 주어 손가락들을 쓱 그었다. 화험단은 그의 손가락들에 순간적으로 따끔한 느낌을 주면서 깔끔하게 접혀졌다. 그는 다시 손가락들에 힘을 주어 접혀진 그 부분을 여러번이나 그어댔다. 그러한 동작들을 반복하면서 그는 스스로도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알수 없었다. 그런 어색한 장면을 회억할 때마다 그에게는 그 어색함을 피면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다. 매양 그렇게 몸둘바를 모르게 하는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는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곡조는 당시의 기분에 따라 정해졌다. 최근 20여년간, 그는 비교적 유쾌하고 밝은 곡조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좋아했는데 그 노래들은 그가 1948년에 해방구에서 배운것이였다. 1948년에 그는 이미 40살을 넘겼었지만 그 노래들을 부를라치면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아홉살에 엄마로 되였다고 자랑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보초를 서라니 귀신이 잡으러 올가 무섭다 하겠지 하하하… 우습구나, 여러분들 말해보슈 귀신이 어데 있다고 그런 얘기 하는지 그가 왜 바보 같을가, 문화가 없기때문이지 글을 읽으면 바보를 면할수 있지   그는 간단하면서도 재미나는 이 민요를 고집스럽게도 매일 반복했다. 그때면 그는 의식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조소를 노래에 담아냈는데 그러느라면 어색한 추억들이 머리를 움츠리군 했다. 이 노래를 배울 때 그는 교원이였는데 해방구의 어린이들과 촌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소흑판에다가 수자보를 적고 아래에 가사를 적어나갔다. 그러다가도 틀린 글자가 있으면 급급히 팔소매로 쓱쓱 닦았다. 그 일이 끝나면 군중들앞에 나서서 힘있게 손을 저으며 노래를 지휘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알릴듯 말듯한 자부심 같은것이 어려있었는데 어쩌면 오직 혁명자의 눈길만이 보아낼수 있는 광채 같은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당당해보였다. 그는 자기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에 넘쳐야 그 노래의 선률을 흥겹게 표달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은 군중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면서 점점 더 흥분했고 그럴수록 그는 노래에 빨려들어갔는데 힘껏 당겨진 활을 방불케 했다. 그는 그 신비로운 정토에서 늘 자신의 복잡한 과거때문에 일종의 공포감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북양시기의 학당을 졸업했고 후에는 또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오래 동안 일을 했던것이다. 그러한 공포감은 오직 노래를 배워줄 때라야만 다소 사라지는듯싶었다. 그는 자기가 새롭고 합리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선택했기에 흘러간 청춘을 되찾을 기회를 가지게 되였고 그로 하여 천진란만한 어린이의 감수를 다시 느끼게 되였다고 믿었다.  그는 누군가의 긍정을 받고싶었고 포상을 받고싶었으며 용서를 받고싶었다… 그의 생명은 그러한 기다림속에서 흐르는 세월과는 상관 없을 만치 강력하게 변해갔다. 그의 웃음과 눈물도 더 이상 그의 존엄을 념두에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하구 얘기하는거예요, 아니면 혼자서 중얼거리는거예요?” 그날, 그는 보청기를 끼고있었기에 손녀 녕향의 목소리를 똑똑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입술이 약간 벌려져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마음속에서 흐르는 곡조에 따라 반복적으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두시간전에 무엇을 먹었던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반세기전에 배웠던 그 노래만은 기억하고있었다. 그는 손녀에게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입술을 꼭 다물었다. 사실 녕향은 진작 그의 무관심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104세에 나는 그는 이미 녕향의 눈에 요물로 보인지 오랬었다. 하기에 녕향은 종래로 보통사람들의 표준으로 그를 바라본적이 없었다. 14년전, 식구들이 모여서 그의 90세 생신을 쇠여드리는 순간에도 녕향은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오늘 진짜 몸을 뺄수 없을것 같아. 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90세 생신을 쇠거든… 쇼핑은 아무때나 할수 있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힘들게 오늘까지 사셨거든. 그러니 손녀인 내가 어찌 축하를 하지 않을수 있겠니?” 녕향의 아버지 즉 그의 막내아들이 녕향의 통화를 엿듣고 마뜩찮은 눈길로 흘겨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는 청력이 좋아서 웬간한 소리는 다 들을수 있었다. 그는 사실 누구앞에서도 승인하지 않았지만 몇몇 손자손녀들중에서 녕향을 제일 이뻐했다. 그것은 녕향이 제일 어려서가 아니였고 그가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 자색을 갖춘 녀인으로 자라주어서도 아니였다. 식구들은 모두 그를 공경스럽게 대했지만 녕향만은 그의 몸에서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것이다. 그만치 녕향의 몸에는 천성적으로 익살스러운데가 있는것 같았다. 녕향은 스스로도 자기의 스스럼없는 웃음뒤에 일종의 심각한 랭혹함이 서려있다는것을 모르는듯싶었다. 그는 바로 녕향에게서 풍기는 그 랭혹함을 좋아했다. 녕향은 그가 앉아있는 휠체어앞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죠?’ 녕향은 가볍게 그의 얼굴을 보듬어주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도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방불케 했다. 녕향의 뒤에 놓여진 쏘파에는 그의 18살에 나는 손자가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그는 이 가정의 제4대로서 그의 장손의 아들이였다. 그 애는 고집스럽게도 녕향을 “고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애는 누나벌로밖에 보이지 않는 녕향이 어떻게 “고모”로 되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했다. 그 애는 그 여름이 지나면 대학에 입학하게 되였다. 식구들은 그에게 악을 쓰고 몇년 더 살아서 5대까지 보라고 했다. 그도 가끔은 5대가 태여나면 어떤 모습일가 하고 상상한적이 있었다. 5대라고 해도 모양은 같을것 같았다. 두눈을 꼭 감고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무런 뜻도 담기지 않은 동물성적인 소리를 낼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5대를 보고싶다는 말을 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주역을 맡은 드라마가 이미 너무도 오래 동안 이어져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제5대로 태여나는 손군은 사실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엮는 드라마가 30집 푼하다면 자기가 엮어가는 드라마는 이미 300집에 이르렀다고 느껴졌다. 이 드라마는 길다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부여했고 그 호기심때문에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가를 보고싶어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가 75세 나던 해에 종말을 고할번한적이 있었다. 그는 수술이 성공적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맹아상태에 있던 종류를 깨끗하게 도려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것이다.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그가 사는 도시에서 제일 유명했다. 관건은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가를 자세히 관찰하는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같은 락관적인 말도 병상을 둘러선 가족들의 얼굴에서 근심을 몰아가지는 못했다. 그날 그는 처음 저승사자를 보게 되였다. 저승사자는 빙그레 웃음을 띠고 안해와 큰 며느리 사이에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거슴츠레한 눈을 완전히 떴을 때 저승사자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게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는 미처 어떻게 반응도 하지 못했다. 75살이라 그럴만도 하지, 게다가 방금 암수술까지 받았으니 행동이 느릴만도 한게지. 그는 입가에 쓸쓸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행동만 느려진것이 아니라 정서마저 무감각해졌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애써 팔을 들었다. 스스로라도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것을 증명하고싶었다. 팔이 약간 우로 올라갔지만 검버섯이 가담가담 피여난 손등은 볼수 없었다. 안해는 그의 쇠약한 팔을 잡아다 이불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팔은 왜 꺼내요? 힘들게…” 그날새벽, 그는 드디여 저승사자와 단독으로 만날수 있었다. 병상을 지킨다는 맏아들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고있었다. 그는 맏아들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쩜 자기보다 먼저 갈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허무한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그한테로 다가올 때 병실에서 한가닥의 빛이 번쩍이는것 같았다. 새벽이라고 하지만 그는 똑똑하게 저승사자의 얼굴을 가려볼수 있었다. “맘대루 하시죠.” 그는 저승사자를 보고 웃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평소 누구에게나 깍뜻하게 례의를 갖추었지만 저승사자를 보고는 웬지 “교양”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사람과 신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누가 구태여 배워주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뭘 맘대루 하라는거유?” 저승사자가 물었다. “지금 바로 갑시다. 날자를 골라 가느니보다 이렇게 만났을 따라가는게 더 좋을듯하군요.” 그는 자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다고 느꼈다. “왜 그리 급해하는거유?” 저승사자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래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떠날 길인데, 급해하는 그 모습이 보기 안 좋구려.” “기다리기 갑갑해서 그럽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그렇게 평온할수 없었다. “이보소,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침대가에 걸터앉아 이윽토록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지금 데려가주시오, 안되겠습니까? 식구들이 없는 이 순간이 얼마나 맞춤합니까? 아들놈도 잠을 자고있는데요.”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자기에게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불안을 표달할만한 기력마저 없다는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정말 그렇게 급한거요? 날 밝기마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거요?” 저승사자는 마작상에 앉아 벙글거리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엇을 더 바란단 말입니까?” “이렇게 비관할것까지는 없을텐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저승사자는 허물없는 이웃집 나그네를 방불케 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딱 멈추었다. 그는 하얀 빛이 반짝이는 어둠에 자기의 의지를 모았다. 잠간후 그는 마치도 큰 결심을 내린듯싶었다. “그런 말을 마십시오. 정말 더 기다리고싶지 않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지금 갑시다. 내 소원을 들어주시오.” “소원이라니? 생사는 지천명이라고 했소. 나는 그저 길잡이에 지나지 않소. 다른 일들은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소.” 저승사자의 표준어는 점점 더 표준에서 멀어지는것 같았다. 아마도 탕개를 늦추니 몸에 배여있던 방언이 머리를 쳐드는것 같았다. “그래도 기다리라면 자신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두눈을 떴다. 그는 이 말을 할 때 반드시 두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진정을 보여주는 이 말을 할 때 두눈을 감고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는것은 자기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네, 참 쉽지 않구려. 후―” 저승사자는 큰 짐을 벗어버린듯 길게 숨을 내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승인하게나. 지금 두려움에 떨고있는거지?”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까? 말해보시오. 그래 진정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는 자기의 속심을 숨김없이 들어내보였다. “본적이 있지. 자네는 영웅을 본적이 없소?” “그렇습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여서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겠지요?” “내가 만족스러운것 하구는 별도의 문제지. 설사 죽음을 두려워 한대도 그건 얼굴이 깎이는 일이 아니거든. 나같은 저승사자앞에서 얼굴이 깍이는것을 두려워 할 사람도 없을게구.” “나는 이미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공포에 빠지기전에 빨리 나를 데려가주시오.” “참으로 답답하구려. 자손들이 가득한데 좀더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우?” “그래서 더구나 그들에게 떠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겁니다. 지금 그들이 보지 않을 때 빨리 떠나면 안되겠습니까?” “안되오. 그들이 보면 뭐라우? 자네는 자손들로 하여금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것을 모르게 하려는게지. 그렇게 사느라니 피곤하지도 않소?” “물론 피곤하지요. 그래서 더 살고싶지 않다는겁니다. 빨리 나를 데리구 떠나주시오.” “뭐라구? 다시한번 큰 소리로 말해보오. 자네 방금 어쩌고싶다 했지? 참―” 저승사자는 약간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탄식을 했다. “나…나는…” 그는 말끝을 잇지 못하고 두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다잡고있던 자신의 정서를 본래의 면목 그대로 놓아버린것이다. “정녕 나를 데려가지 않을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사실 죽고싶지 않습니다. 비록 빨리 떠나고싶지만 나는 너무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도대체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오…” 그는 이 말을 할 때 자기가 울고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오줌을 흘렸던것이다. 그는 두눈을 떴다. 창밖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담록색 빛이 창문으로 새여 들어와 눈섭을 간질렀다. 그는 아래몸에 걸쳐져있는 바지며 침대보가 오줌에 푹 젖어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수 없었다. 자기의 몰골을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올뿐이였다. 맏아들이 잠에서 깨여났다. 머리칼이 푸수수하고 눈에는 여전히 잠기가 어려있었다. 맏아들은 초점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길게 하품을 했다. 그는 맏아들을 불러 바지를 갈아입혀달라고 청들고싶었다. 막 입을 열려던 그는 문득 잠투정을 하던 맏아들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맏아들에게 자기의 루추한 몰골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저승사자를 만나 길고도 굴욕적인 이야기를 나눈 사실도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버지라는 신분을 다시한번 자각하고있었다. 비록 그 순간 바지가 오줌에 절어있고 침대보가 질퍽해 있을지라도… 그는 애써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반드시 좀더 사랑이 담긴 눈길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 이것저것 따질것도 없다고 느꼈다. 만약 그때가 정말 림종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20년후, 맏아들의 장례에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거기서 모든것을 끝낸다면 이를데 없이 좋았을것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란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물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뜻대로 살고 뜻대로 죽을수도 있는데 그런 삶을 모두어보면 대개 우아하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뒤에 수많은 정밀한 고리들이 이어져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맏아들은 60살 나던 해 심근경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맏아들을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훔쳐보고있다는것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맏아들의 돌연적인 사망으로 하여 타격을 받고 그도 인차 떠날것이라 근심하는것 같았다. 90살을 넘긴 로자에 대한 그 같은 근심은 맏아들의 사망으로부터 오는 비감과 그리움을 달래주는듯싶었다. 그는 웬지 앞서 떠나간 맏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맏아들의 장례식에서 그는 시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 눈길속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첫 아들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맏아들은 항일전쟁이 승리를 거두던 해 중경에서 태여났다. 그와 안해는 공기 좋은 어느 아침에 가릉강변에서 만났다. 그해 그는 30살이였고 안해는 19살이였다. 넓다란 강변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안해의 두눈은 수시로 깜빡이고있었는데 저도 몰래 그로 하여금 고향의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벌써 몇년이나 고향의 호수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앞에 서있는 열아홉살의 녀대학생은 마치도 하늘가에 걸려있는 깜찍한 초승달처럼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을 불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산 부부페편(夫妻肺片)을 먹었으니 그쪽은 나와 부부로 되여야 하오.” 그녀는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녀, 아니 안해도 맏아들도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안해를 처음 만나던 60년전의 그날에 보았던 강물도 아득한 그 옛날에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을것이다. 하다면 오늘의 가릉강에 더 이상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할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해는 그가 암수술을 해서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웬지 자신이 안해의 생명을 갉아 먹은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안해가 만약 자기의 병시중을 드느라 힘들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오래 살수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안해를 처음 보던 그 순간에 벌써 안해가 그렇게 견강하고 튼튼한 녀자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안해와 달리 일부 녀인들은 확실히 태여날 때부터 윈시인들이 숭배하던 토템처럼 그 어떤 곤난도 이겨낼수 있을듯 튼실해보였던것이다. 안해는 몸매가 가냘프고 뼈골이 약했다. 기나긴 생명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때 안해와 같이 생긴 생명체는 세상에서 소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였다. 수술을 하고난후 그는 늘 안해에게 “빨리 죽어야겠는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하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도 속으로는 이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때문인지 저승사자는 확실히 그 몇년 동안 한번도 나타난적이 없었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안해는 손바닥을 가볍게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때 그는 병원 복도의 의자에 앉아있었고 안해는 그의 옆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화학치료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그는 내심하게 안해를 설복하려고 했다.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 말을 하고나자 웬지 가슴이 갑갑해났다.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안해는 일분일초가 아까운듯 차분하게 그를 위안했다.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그는 갑자기 말 못할 분노가 느껴졌다. “당신, 점심에 무엇을 자실래요?” 안해가 살갑게 물었다. “안 먹어!” 그는 소리치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자기의 눈길에 그 어떤 원한이 담겨져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필경은 자기가 없게 될 이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자기를 가끔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없는 그 공간을 다른 무엇으로 메워가면서 완전한 호수를 이루어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또 혹시 자기를 떠올릴 때가 있겠지만 그때 자기는 벌써 호수에 거꾸로 비춰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분노가 치밀었고 쓸쓸함이 덮쳐들었다. 그는 가끔 저승사자가 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오직 저승사자라야만 자기의 분노와 쓸쓸함을 알아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왜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식들을 떠나기 아쉬워 한다고 생각하는걸가? 나는 하루 빨리 떠나고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뭔가가 시름이 놓이지 않는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 중산복을 입은 늙은이들이 여럿이나 병원 복도에 있었지만 그중에 저승사자는 없었다. 그의 가슴은 차츰 높뛰기 시작하였다. 높뛰다 못해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올려 가슴을 문다졌다. 별 이상은 없는것 같았다. 그는 입가에 가는 웃음을 피워올렸다. 그래, 어느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마감길을 간적이 있었던가?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갈 확률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에 그는 자기의 심장이 당금 폭발할것 같았고 당금 타번질듯 뜨거워났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증상때문에 죽지는 않을것이라고 확신했던것이다. 그러한 느낌속에서 그는 매일 안해와 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다. “빨리 죽어야 할텐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절망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여기와서 생겨나군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거짓말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다가도 어찌해서 여기까지 와서는 번마다 진심을 들어내군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때문에 안해가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하고 말한후 침묵을 하지 못하는것일가? 그리고 안해는 왜 “당신은 먼저 갈수 없어요. 당신의 몸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해주지 못하는것일가? 하지만 그는 또 인차 무엇인가를 알수 있을것 같았다. 만약 안해가 정말 “당신의 건강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한다면 더구나 분노를 느낄것 같았던것이다. 그는 이 말이 너무도 황당하다고 느껴졌다. 누구도 진실을 말할수는 없지만 또 너무 황당한 거짓말을 해도 안된다고 생각되였다. 이것이 바로 생활이라고 그는 믿고있었다. 그 몇년간 그는 날로 쇠잔해 가는 안해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르게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 다르게 조폭해지고 불안해 하는 안해의 정서도 읽어내지 못했다. 안해는 검진을 받으러 그를 배동하여 병원에 갈 때면 늘 그보다도 걸음이 느렸었다. 병원에 새로온 호사는 되려 안해가 환자인줄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어느날, 시집갔던 딸이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찾아왔다. 그는 사뭇 놀란 눈길로 딸을 바라보며 웬 일인가고 물었다. “어머니 건강이 날로 못해가는게 안보여요? 내가 와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돌봐야지요.” 그는 딸의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딸은 그의 이런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것 같았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 그는 의식적으로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아버지.” 딸은 못마땅한듯 목소리를 높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날이후, 딸은 그의 원쑤로 되였다. 딸의 일거일동은 그에게 오래 사는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그는 늙은 몸으로 살아가려면 어딘가 요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딸과 대화할 때면 언제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로 끝냈다. 시간이 흐르자 딸은 아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아침, 그는 혼자 식탁앞에 앉아 안해가 뜨거운 콩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듯싶었다. 딸은 그때 주방문앞에 서있었다. 그는 딸이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딸이 문득 입을 열렀다. “아버지, 여위신것 같아요.” 그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이 어찌 여위지 않을수 있겠냐?” 그 말에 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에는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녹아있는듯싶었다. 딸은 웃음끝에 호― 하고 한숨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콩물을 떠다드릴게요. 어머니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좀더 쉬라고 해야죠.” 하지만 안해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자다가 뇌출혈이 생겼던것이다. 안해는 그처럼 조용히 떠났다. 그는 안해의 죽음이 작다 못해 그 이상 더 작을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도 늘 상에 올리던 콩물 한사발을 잊고 올리지 않은것만치나 작은 일로 생각되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몇달후, 그의 80세 생일이 지나서 며칠 안되여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수술한지 만 5년이 지났는데 도지지 않는군요. 아마도 암세포가 말끔히 살아진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딸은 자기의 가방을 들고 그의 집을 떠났고 또 며칠이 지나서 작은 아들네 세 식구가 그의 집을 찾았다. 작은 아들은 그가 혼자 있는것이 시름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작은 아들이 사는 단칸방이 불편해서일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녕향은 그해 다섯살이였다. 녕향의 미간에는 빨간 점이 작게 나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동거는 어느덧 25년을 이어가고있었다. 이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였다. 작은 아들네가 집에 들어오던 그날밤, 저승사자가 그를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는 길게 들숨을 쉬고는 일어나 침대에 앉아 저승사자를 보고 말했다. “의사가 그러던데 내 병이 다 나았답니다.” 말을 마치고난 그는 자신이 사리분별이 잘 안되여 저승사자를 보고 이런 말까지 할수 있었다고 후회했다. 저승사자는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의사는 의사로서의 일이 따로 있는게지. 그들은 병만 볼뿐 생사는 관계할수 없다네.” 그는 무겁게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왜 딱 지금 찾아온겁니까? 바로 지금에 말입니다. 2년전에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 나는 마음속에 아무런 상념도 없었더랬는데요.” 저승사자도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자네, 참으로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려. 나와 생사를 두고 흥정을 하려는거요?” 그가 푸―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는 5년을 뻗쳐왔단 말입니다. 지금 간다면 그 5년철에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5년은 실로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이요. 나는 그저 자네를 안해에게 데려다 주려는것뿐이요. 자네의 안해는 지금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세월을 보내고있단 말이요. 자네는 안해한테 가는게 즐겁지가 않소?”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그를 보고 저승사자가 물었다. “자네들은 50년간 부부로 살았었는데 보고싶지도 않단 말이요?” “보고싶죠. 꿈에서도 보고싶습니다.” “그렇지. 내가 보건대도 자네는 꿈에서나 보고싶어하는것 같소.” 저승사자는 잠간 말을 끊고 허허 웃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사실 이 세상은 진작 자네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되였단 말이요. 자네의 자식들을 보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있소. 자네는 허수아비처럼 이 세상에 남아있는데 그래 외롭지도 않단 말이요?” “물론 외롭지요.” “그래서 자네를 데려가려는거요. 우리 함께 자네 안해가 있는 곳으로 가기요.”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자네가 아니고 안해가 먼저 죽었다는것이 기분 좋은것은 아니겠지?” 그는 저승사자의 돈후한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신인데 어찌 인간들의 사정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자네가 지금 살아있는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있다네.” “언젠가는 나도 이 곳을 떠나게 될겁니다. 그때면 로친을 다시 보게 되겠지요.” “보게나. 자네 지금 살아있는것을 얼마나 행복해 하는가?” “그러니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난 그는 마치도 무거운 짐을 벗어내친듯 홀가분한 심정이였다. 저승사자는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저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사는게 진정 그렇게 좋소?” “아니요.”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아래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사는데 습관이 되여버렸을뿐입니다.” “이런 리유라면 나도 접수할수 있을것 같구려.” 저승사자의 말은 그리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저 멀리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싶었다. 순간 그는 저승사자와의 몇차례 만남을 어떻게 끝 맺었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번마다 저승사자와의 만남을 떠올릴 때면 시간이 그 만남으로부터 얼마간 지난후인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 만남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에 돌멩이가 떨어져 내린듯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물보라가 튕겨올랐다. 그는 다시한번 암환자는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그는 늘 자신은 암세포와 5년간의 사투를 벌렸고 의사가 자기를 보고 이미 암세포를 물리쳤다고 했기에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했다. “할아버지.” 녕향의 작은 몸체가 빠끔히 열려진 문틈으로 보였다. “왜?” “나 오줌 누고싶어.” 그는 힘들게 침대에서 내려와 끌신을 찾아신었다. “그래, 오줌 누러 가자.”  끌신 끌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녕향은 금방 그의 집에 왔기에 화장실문이 세탁기가 놓인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군했다. 그는 녕향의 작은 손을 끌고 화장실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말 못할 “감동”으로 설레이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아닌 손녀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동하는것 같았다. 그는 녕향을 위해서라도 살수 있는 한 악착같이 살아낼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녕향이 자라 성인이 되는것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면서 그는 저승사자의 너털웃음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그후의 몇년간 그는 늘 “죽음”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간혹 옛 친구들을 만나도 자기의 “죽음”을 두고 롱담을 했는데 대개는 잊지 말고 자기의 장례음식을 먹으러 오라는것과 같은것이였다. 그는 어떤 음식을 상에 올리는것이 좋으냐를 두고 친구들과 상론도 했다. 친구들은 정말 상에 올릴 음식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리기까지 했다. 그는 작은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후에도 자기 집에 눌러 살라고 당부했다. 대신에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잘 처리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는 생각 같아서는 책들을 녕향에게 물려주고싶지만 녕향이 책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자신이 출근했던 단위의 도서관에 기증을 해도 된다고 소원했다. 전에 그의 암을 치료했던 의사가 그믐날에 전화를 걸어와 설인사를 올렸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게 신비할따름입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울려나갔다. 바로 그 무렵부터 그는 진작 잊은줄로 알고있던 그 오래된 민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사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당년에 자기들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듯이갖은 유머와 락관적인 태도로 죽음이라는 현실을 대체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에게 억지로 보여주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죽음을 전승하려고 발버둥질 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그러한 노력을 들여야만 좀더 오래 살수 있을것이라고 착각하고있었다. 암수술후의 두번째 5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뒤의 기억들은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 눈 깜빡 할 사이에 세상은 살같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면서도 질풍같이 달리는 세월의 말발굽소리는 똑똑히 듣는것만 같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암에 걸렸었다는것조차 잊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부터일가? 딱히는 알수 없지만 대개는 자기가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던 그때부터일거라고 생각되였다. 그의 청력과 시력은 나이에 비해 괜찮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는 점점 말을 들어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반석처럼 굳어버렸다. 객실로부터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그에게는 고대의 두 봉화대 사이의 거리만치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종이기저기를 착용했기에 그 거리가 얼마나 멀든지 별 문제가 아니였다. 그의 몸은 어쩜 모래가 휘날리는 전쟁마당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암세포마저 그의 몸에서 잠들고 화석으로변했으니 말이다.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면서 그를 찾아온것은 날로 늘어가는 막연함뿐이였다. 그는 차츰 자기의 몸에서 풍기는 무엇인가가 부식되는듯한 그 냄새에도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객실에서 누군가 자기의 바지를 벗겨놓고 몸을 씻어주는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졸음이 올 때 느침이 흘러내려 옷섶을 적시는것도 개의치 않았다. 하기야 느침이 흘러 옷섶을 적셨다 해도 잠간이면 말라버리는데 무슨 대수랴. 느침이 인차 마르지 않는다 해도 또 무슨 대수랴? 그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다른 친구들의 부고를 전해도 무감각해 했다. 딱히 어느때부터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날부터 간병인이 찾아와 매일 3시간씩 그를 씻어주고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고 먹여주느라 분주하게 돌아쳤다. 간병인은 워낙 이웃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였다. 그와 30년을 이웃하여 살고있는 나그네는 그보다 20살이나 젊었는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있었다. 그 나그네에게는 괴상한 증상이 있었는데 간병인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씻겨줄 때면 갑자기 덮쳐들어 간병인의 어깨를 물어버리는것이였다. 간병인은 약들을 접시에 놓아주며 그를 보고 말했다. “내 어깨에 난 이빨자국을 좀 보세요. 어제밤까지도 피가배여나와 무서워 죽는줄을 알았어요. 그 사람에 비하면 로인님은 정말 행복해요. 90세가 넘었는데도 정신이 말짱하니까요. 이웃집에서 일할 때면 언제 퇴근시간이 되나 시계만 쳐다봐요. 그집 일을 빨리 끝내고 로인님을 보러 오고싶어서요.” 그는 간병인을 보고 어뚱하게 물었다. “손님이 있소?” 간병인은 잠간 멍해있다가 대답했다. “아니, 없는데요.” 그는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잠을 잘 때도 없었나?”  “그럼요. 손님이 오면 내가 어련히 로인님을 부르지 않았을라구요.” 그는 저승사자가 오래동안 오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어코 저승사자를 따라가려는것은 아니였다. 구체적으로 따라가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분위기에 따라서 다시 상론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편하고 온후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교활함이 어려있는 그 얼굴을 보고싶을뿐이였다. 그 무렵, 저승사자처럼 그를 흥분하게 하고 격동하게 하는 사람이나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언젠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지팡이를 짚고 이웃집으로 간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웬지 이웃집나그네를 꼭 한번 만나보고싶었다. 하지만 이웃집나그네는 진작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처량한 눈길로 이웃집나그네를 마주보기만 했다. 이웃집나그네는 그를 보면서 연신 알아들을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긴장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지켜보는듯 했다. 잠간후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그의 집으로 건너가 간병인을 불러왔다. 그들은 합심해서 그를 부축해 세웠는데 마치도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는듯한 긴장함을 내비쳤다. 간병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인님, 담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집에 가서 약을 드십시다.”  그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힘껏 머리를 돌려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담에 또 당신 보러 올거요.” 이웃집나그네는 갑자기 어린애들처럼 두팔을 쩍 벌리면서 히스테리적으로 소리 질렀다. “당신에게 실말을 하오만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였소. 일본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하라고 핍박을 한거요. 그들이 나를 보고 그 녀자를 강간하라고 협박했소. 정말 그들이 나를 핍박한거라니까.” 간병인은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참느라 킬킬 거렸는데 마치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99세가 되던 해에 녕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도 손님들은 결혼식보다 그를 “참관”하는것을 더 흥미있어 하는것 같았다. 그는 눈꺼풀이 무거워 뜨는듯 마는듯 하고있었다. 결혼식장을 장식하느라 띄워놓은 고무풍선이 포도송이처럼 안겨들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특별히 아는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먼저 허리를 굽적거리며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한 얼굴로 갓난애나 참대곰을 어를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는 하얀 보를 씌운 밥상 사이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간교한 웃음을 질질 흘리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따사로운 해빛속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저승사자는 그와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녕향의 사이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려.” 저승사자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승사자의 나이가 자기 아들들또래나 될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쇠락의 시간이 보통사람들의 일생만치나 길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인젠 갑시다.” 그는 잠간 말을 끊고 저승사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젠 떠날 때가 됐겠지요?” “여전하시구려.” 저승사자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아래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그래 정말 살고싶으면 살고 죽고싶으면 죽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그것도 자기가 제일 죽고싶을 때 죽을수 있다고 말일세. 생사가 그렇게 뜻대로 된다면 자네를 어찌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나?” “내 뜻은 내가 전처럼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는다것을 알려주고싶을뿐입니다.” “축하하네. 자네가 그 경지에 이르러서.” 저승사자의 말에는 짙은 조소가 어려있었지만 그는 이미 그런것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이번엔 진심입니다. 하지만 역시 조금도 두렵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말끝을 맺았다. “이번엔 꼭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저승사자가 바투 들이댔다. “정말 생각을 굳힌겐가?” “정말입니다.” “무엇때문이지?” “전에는 죽음만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두려워 죽을것 같았지요. 하지만 인젠 두려움에 지쳐버렸습니다. 지쳐버리니 되려 두렵지가 않습니다. 당신을 따라 가는게 더 행복할듯 합니다. 지금 죽으면 모든것이 그처럼 안락하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엄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도 이런 말을 하는 그를 본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는것이 죽는것보다 더 두렵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게지?” 저승사자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처량함이 묻어있었다. 저승사자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실말을 하기를 두려워 하는가?” “믿기지 않으면 맘대루 생각하십시오.” 그는 볼부어 소리쳤다. 순간 그는 자기의 몰골이 이웃집 나그네와 흡사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녕향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힘겹게 눈길을 소리나는 쪽으로 돌렸다. 녕향이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함께 사진을 찍는게 어때요?” 그는 100세 생일을 침대에서 쇠였다. 100세를 살아가던 어느날 그는 자기가 완전히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의식했다. 그날부터 휠체어는 그의 신체의 일부분으로 되였다. 팔도 굳어져서 누군가 그의 입에 밥을 떠넣어줘야 했다. 언어능력도 떨어져서 누구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는 말을 하고싶었고 또 능히 말을 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도 사실 자기가 말을 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아예 말을 할수 없는것처럼 위장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사람들을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실례는 안될것이라고 생각되여서였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이웃집에서 나는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놀라는듯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는듯한 동정이 나더니 이윽고 이웃집나그네의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이어 강아지가 놀라서 왕왕 짖어댔다. 그는 문어구에 놓아둔 개사료를 이웃집나그네가 훔쳐 먹어서 생긴 해프닝일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하는 소리가 그것을 충분하게 증명한다고 믿었다. 그의 작은 아들은 퇴직을 하던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젠 남아 도는게 시간이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작은 아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들을 복용했다. 그는 104세가 되였다. 녕향은 29살에 과부로 되였다. 녕향의 남편은 어느 비 오던 날밤에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고속도도로의 란간에 부딪쳐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그는 녕향이 음침한 표정을 한채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었다.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저승사자에게 물었다. “신이라는 당신이 뭔가 착각한게 아닌가요?” 그는 매일 텔레비죤을 보았다. 아니 그가 본다기보다 식구들이 텔레비죤을 볼 때면 그의 휠체어를 당겨다 텔레비죤앞에 놓아주었다. 텔레비죤에서 방송하는 프로가 뉴스든 경제프로든 드라마든 관계없이 텔레비죤을 들여다보고있으면 그만이였다. 누군가 갑자기 다른 채널을 돌려놓아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텔레비죤을 바라보다가 네모난 그 막에서 혹시 저승사자를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램같은것을 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어느때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것은 깊은 밤이였다. 작은 아들과 며느리는 대학교 동창만회에 참가하러 나가고 없었다. 녕향은 쏘파에 앉아서 몇분에 한번씩 채널을 바꾸어댔다. 그는 멍하니 텔레비죤만 바라볼뿐 녕향의 신경질적인 행동에는 아무 불만도 없었다. 그는 텔레비죤프로보다도 조용한 여름밤에 풍기는 공기중의 촉촉한 느낌을 더 좋아하고있었다. 녕향이 손에 들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때 텔레비죤에서는 대화프로를 방송하고있었는데 내용은 석유가격과 중동전쟁의 관계에 대한것이였다. 녕향은 얼굴도 돌리지 않고 한참이나 웃어제꼈다. “할아버지, 참 재밌죠? 그 사람이 죽은 이 몇달간 저는 왜 한번도 울지 않았을가요?” 녕향은 뭔가를 알고있다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알고있을거예요. 사실 나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년에 나는 그가 모는 차에 앉아 다니면서 진작 그 점을 의식했어요. 그에게는 속도를 빨리면서 안전띠를 풀어버리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웬지 그 위해성을 끝까지 그에게 귀뜸하지 않았어요. 그 습관이 계속되면 꼭 사고를 칠것이라는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말이죠. 할아버지, 사람의 행동이란 참으로 이상하죠? 분명 그 습관이 위험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속도가 빨라질 때면 나까지 가끔 안전띠를 풀어버린거 있죠? 내가 안전띠를 푸는것을 보면서도 그는 못 본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이건 무엇때문일가요?” 녕향은 잠간 한숨을 내쉬고 아래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나는 왜 울지 않을가요? 할아버지에게만 미리 말씀 드리는건데요, 저는 많은 사람들앞에서 우는것을 제일 싫어해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을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절대로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아서가 아니예요. 이 점을 꼭 기억해주세요. 될수 있겠죠?” 그는 녕향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울지 마라. 나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으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능히 말할수 있다는것을 진작 알고있었어요.” 녕향은 그를 바라보며 다섯살 나는 계집애처럼 천진하게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날밤, 우뢰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눈을 꼭 감았다. 자기의 몸이 목 마른 식물처럼 비를 기다리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승사자가 침대머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갈 때가 됐겠지요?”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것 같네.”  저승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보기 시작해서 처음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두눈을 감았다. “정말 미련이 없다는게지?” 저승사자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애써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은 틀린데 없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사는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사는것도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로 때가 된게 아닌가요?” 그는 저승사자가 약간 허리를 굽히고있다고 느껴졌다. 이어 웃음기를 띤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자네에게 한가지 비밀을 알려줘야겠네. 내가 왜 자꾸 자네를 찾아오는지 알고있는가? 나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같은 관심을 가지고있는게 아니라네. 자네는 이 나라에서 가장장수한 사람이라네. 그러니 길이길이 력사에 남아있을거네. 자네보다 더 장수한 사람이 나타나 자네를 대신할 그때까지는 말일세. 그러니 너무 급해 말게. 아직도 갈 때가 멀었으니까.” 그는 더 으스러지게 두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 스치는것은 지난세기 60년대말에 그가 살았던 농장이였다. 그날 그는 소를 방목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아침에 그는 조심하지 않아 신을 잘못 신었다. 두발에 모두 왼쪽신을 신었던것이다. 진종일 발이 불편했지만 그는 책임자에게 차마 신을 바꿔 신으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로동시간에 신을 바꿔 신으로 간다는것은 당시 또 하나의 죄증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책임자는 그가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신을 짝짝이로 신고나왔다고 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신을 짝짝이로 신어 걸음을 걷기 힘들어 하는것을 재미나게 바라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눈길들은 지금 간병인이 이웃집나그네가 개사료를 훔쳐먹는것을 살필 때의 그 눈길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황소에게 기대서서 퉁퉁 부어오른 오른발을 왼쪽다리뒤에 숨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듯 위장하면서 태연한 목소리 중얼거렸다. “석양이 참 좋구나!” 그는 자신이 그 맵시로 이미 100년을 위장하여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막연하게 나마 자기의 애원을 듣고있었다. “제발 빕니다. 빨리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그는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을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것은 알른알른 빛이 나는 장판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신의 령지일것이고 자기는 그 장판을 닦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때물이 흐르는 구질구질한 밀걸레는 “죽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나 “살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갈망 같은것일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다시한번 저승사자를 향해 구걸했다. 아니, 엄숙하게 말해서 응당 간구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필경 그를 마주한것은 신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구별이 있을가? 창문유리를 두드리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비가 내렸다. 이제 곧 5대가 한집에서 살수 있을것이였다.   적안(笛安), 녀, 1983년 산서성 태원시에서 출생. 빠리 제4대학, 프랑스고급사회과학원을 졸업. 2003년부터 소설을 발표. 《천당을 고별하다》, 《련꽃은 얼굴과 같고 버들은 눈섭과 같아라》,《서결(西决)》, 《동예(东霓)》등 장편소설이 있음. 현재 《문예풍상(文艺风赏)》잡지 주필로 사업.  
531    밴댕이소박채 댓글:  조회:2460  추천:0  2013-05-09
지난 4월초에 블로그에다  “소설의 묘미”라는 제목으로 그새 성인소설을 창작하면서 느낀 감수를 몇자 적은적이 있다. 며칠이 지나서 누군가 “소설이 그렇게 쉬웠으면 얼마나 좋겠소. 당신은 천재구만.” 하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 글을 보니 어딘가 나를 비웃어주는것 같아 “에라, 이놈아 총살이다!” 하고 중얼거리며 삭제해버렸었다.  오늘 문뜩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르는게 이상스럽다. 그만한 “웃음”도 담아두지 못하는 나의 소박채!  밴댕이소박채처럼 참 좁기는 좁나보다.  흐허허허허... 
530    해님아 댓글:  조회:1919  추천:0  2013-05-09
재글재글 재글재글 쉼도 없이 생생 끓는구나 너 좋은 일이 생겼나보지? 그 모습 과히 보기는 좋다만 내 몸에선 철철 짠 물이 흐른단다 검으락 푸르락  청둥번개 쳐번지던 그날 생각하면서  적당히 맞춤하게 끓으면 안되겠니? 해님아.
529    속일수 없나봅니다 댓글:  조회:2149  추천:0  2013-05-08
시험만 치면 나보다 성적이 높은  철수놈 집에 가다 너부러져라 그 날밤 철수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두근두근 토끼뜀을 했습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등산을 갔다온 날 밤을 패며 종아리가 띠끔띠끔 아파나 도무지 굳잠에 들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물으면 ―아니요 입은 시치미를 떼지만 몸은 스스로를 속일수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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