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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봄 꽃 잔치 댓글:  조회:1505  추천:0  2012-05-02
봄 꽃 잔치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어느 회사 마당에 심겨진 어떤나무에 새하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가지치기를 하면서 너무 많이 잘라내었는지 마치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모습입니다. 그 막대기 끝에서 가느다란 가지가 나오고 누님의 분화장같은 하얀 꽃이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다니요.그 죽은것 같았던 막대기 끝에 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 고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를 내다니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돌아보니 목련뿐만 아닙니다. 울타리마다 나리나리 개나리가 미치도록 피어 노란빛을 눈부시게 내뿜고 있고, 산유수, 복사꽃 ,진달래도 연분홍 꽃잎을 내기 시작하였고, 공터엔 띄엄띄엄 노란 유채꽃도 피었습니다. 때를 따라 지 꽃 피울때를 어찌 아는지 자연은 이리도 말없이 제 소임을 다하는데,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보면 왜이리 소란스럽고 거칠고,두서가 없고,정신없이 어질어져 있는 것인지... 사람들도 저 자연속의 꽃들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진지하고, 묵묵하게 피었다가 질수는 없는것일까...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367    모아산등산길에서 주은 이야기 댓글:  조회:1752  추천:0  2012-04-30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 날 때가 있습니다.  환절기여서 그런가?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지만 딱히 그런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뭔가를 쓰고싶은데 그게 딱 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가물가물 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을 괜히 환절기에 가져다 붙이는것은 어쩜  열리는 봄날에 대한 모독인듯싶습니다. 그런 싱숭생숭한 마음을  지니고 어제 모아산을 찾기로 했습니다. 음료수병에 커피를 타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가다가 생수도 한병 샀습니다. 43선뻐스시발점에 도착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온 연길시내의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벅적이는듯 했습니다. 힘겹게 차에 올랐지만 기분만은 뻥 뚫리는듯싶었습니다.  그제야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모아산광장에서 “2012년모아산민속문화관광절"이 열린다던 뉴스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무튼 좋은 구경을 하게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름만 굉장했지 사실은 몇몇 상가에서 자기들의 상품을 가지고 나와 벌이는 홍보전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흥미를 끄는데가 없어서 모아산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산바람이 좋았습니다. 간만에 해볕도 따스했습니다. 어느 부근까지 갔을 때였던지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도 갑작스럽게 치매에 걸린 한 늙은이가 머리속에 나타났습니다. 그 늙은이의 뒤를 따라 30대중반의 한 사나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그의 안해며 깜찍한 아들까지 줄레줄레 달려왔습니다. 누굴가? 애써 치매에 걸린 그 늙은이의 얼굴을  그려보고 30대의 그 사나이를 두고 생각을 굴려보았습니다.  그로부터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아야 하는 한 가족이 떠올랐고 민족 대이동을 맞은 조선족의 삶의 현장이 떠올랐으며 한때  중국의 "꼬마황제, 꼬마공주"들로 불리우던 제1대 독신자녀들이 떠올랐습니다.  따라서 일련의 이야기들이 줄레줄레 엮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체가 한부의 소설이였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모아산등산길에서 내 머리에 떠오른 그 이이기가  고마왔습니다. 그  시각으로부터 그  가족의 이야기는  내 머리속에서 떠날줄을 몰랐습니다. 아마도 오늘 새벽에 이야기가 무르익은것 같습니다. 새벽 4시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단숨에 이야기의 첫 부분을 써냈습니다. 한동안은 이야기속의 주인공들과 같이 울고 웃어야 할것 같습니다.
366    삶의 비밀스런 법칙 댓글:  조회:1417  추천:0  2012-04-30
삶의 비밀스런 법칙  어느 예술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품을 1개만 전시했더니 관람객이 와서 10분 동안 그 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더군요. 이번에는 작품 50개를 전시했더니 관람객이 와서 10분 동안 50개의 작품을 둘러보고 가더군요. 그런데 50개를 본 사람보다 한 개를 본 사람이 제 그림의 의미와 의도를 더 잘 깨달았습니다." 여행도 많은 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보려고 욕심을 내면 정작 한곳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요리가 잔뜩 쌓여 있는 뷔페식당에 가면 잘 먹을 것 같지만, 잘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배만 터져가지고 나옵니다. 우리 눈에는 항상 남의 손에 들린 떡이 더 커 보입니다. 남이 가진 게 더 좋아 보이고 더 많아 보이고, 더 잘되는 것 같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에 비해 내가 가진 한가지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왜 우리는 내가 가진 한 가지에 집중하고 만족하기보다는 남이 가진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 때문의 의기소침해지는 것일까요? 내 삶의 그릇이 작기 때문입니다. 남이 가진 많은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삶에 여유가 없이 바쁘고 정신 없고 복합한 삶을 사는가요?  내 삶의 그릇이 작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공간에 들어와 쉬기는커녕 나 혼자 쉬기에도 옹삭한 그런 작은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가진 많은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내 하나의 그릇을 키우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릇이 크면 큰 만큼 내용물은 저절로 채워지는 법입니다. 이것은 삶의 비밀스런 법칙입니다.
365    엄마와 두아들 댓글:  조회:1920  추천:0  2012-04-30
엄마와 두아들 어느집에서 형과 동생이 싸웠습니다. 동생은 든든한 엄마의 위력을 믿고 형에게 덤벼들며 말도 안되는 단어들을 마구 지껄였습니다. 동생: 개시끼야! 엄마: 너! 지금 누구에게 욕했지? 엄마가 멍멍 개냐? 동생: 어..엄마..형한테 그런거야..형. 엄마: 형이 개시끼면 엄마는 멍멍이지..그말은 형을 욕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를 욕하는 말이야. 형: 그봐 임마! 넌 입이 삐뚤어졌어. 넌 입삐뚤이야. 엄마: 너! 지금 누구에게 입삐뚤이라고 했지? 형: 동생한테 그런거야 엄마. 엄마: 시끄러, 입이 삐뚤어졌든 코가 납짝해졌든 그건 모두 내가 만든거야.      다 내작품이니 삐뚤어졌다고 놀리는 것은 만든 나를 놀리는거야! 아이들은 눈을 꿈뻑거리며 엄마를 멀거니 쳐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364    선인장 가시 댓글:  조회:1460  추천:0  2012-04-28
날카로운 가시가 모나지 않은 이슬을 달고 있습니다. 모나지 않은 것을 그들도 차마 찌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혹은 가시에 찔린듯 보이는 이슬은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자기모습 그대로 남아있음을 봅니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준다 생각한다면 아직 내가 덜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가시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상처받아 힘드신지요? 까짓거 받아들이지요. 그래야 상처에 굴복하지 않지요.
363    꿈보다 해몽 댓글:  조회:1770  추천:0  2012-04-28
꿈보다 해몽  조선시대 점을 잘 보기로 소문난 도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 3명이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도사를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도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용히 한 손가락을 내밀고는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겁니다.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떠난 후 도사의 제자가 물었습니다. “도사님, 세 명 중 한 명만 합격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세 명 중 한 명이 붙게 된다면 그런 뜻이겠지” “그럼 만약에 두 명이 붙는다면 점괘가 틀린 것입니까?” “아니다, 그럴 땐 한 명이 붙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럼 만약에 세 명이 모두 붙는다면 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까?” “그땐 하나도 빠짐없이 붙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니라.”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362    믿는 자들의 표적 댓글:  조회:1452  추천:1  2012-04-27
믿는 자들의 표적   나이아가라폭포에 관광을 온 한 남자가 폭포를 둘러보는 도중 목도 마르고 마침 ‘폭포수는 어떤 맛일까?’하는 호기심이 생겨 물을 마셔 보았습니다. 시원하게 마신 후 돌아서는 순간 바로 옆에 “POISON”이라고 쓰인 팻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POISON은 독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관광객은 그 물이 오염된 물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참을 수 없게 되어 곧바로 차를 타고 인근의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배가 아프다는 말에 의사는 서둘러 진찰을 하고서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진찰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혹시 배가 아픈 짐작되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관광객은 자신이 마신 폭포수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 말을 듣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이보시오 선생, 거기 적힌 POISON은 프랑스어로 낚시금지라는 뜻이오.” 나이아가라폭포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한 선교사로 해마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프랑스어 푯말을 붙여놓은 것을 보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들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361    당연한 일이라도 댓글:  조회:1559  추천:0  2012-04-27
당연한 일이라도   항해를 하던 큰 배가 도중에 암초에 걸려 난파해 열 명의 선원들만이 겨우 살아남아 근처의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은 모두 바다였고 섬에는 물과 식량으로 쓸 수 있는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견디면서 그동안 근처에 구조선이 도착하는 기적과 같은 상황을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물조차 마시지 못했기에 금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선원들은 한 명 한 명 괴롭게 죽어갔고 마지막 한 명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원 역시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혔고 ‘어차피 죽는 거 바닷물이나 마셔보자’라고 생각하며 해변으로 달려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어? 물이 전혀 짜지 않은데? 내 몸에 이상이 생겼나?” 바닷물이 짜지 않다는 걸 믿을 수 없었지만 선원은 그 물 덕분에 더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고 구조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국에서 그 무인도를 조사한 결과 해변에서 지하수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바닷물이 들어오더라도 마실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해변에서 지하수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마시려고 시도한 선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실패할 것이 자명해 보이는 무모한 일이라도 그것이 해볼 가치가 있다면 용기 있게 도전해 보십시오.
360    인내(忍耐)의 힘 댓글:  조회:1744  추천:0  2012-04-26
인내(忍耐)의 힘   인내의 힘은 인생의 산사태를 막아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인내의 결여는 결국 삶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사랑에도 실패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으로 늙을 수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문제, 직장 동료와의 다툼, 배우자와의 불화, 아이들과의 불만, 투자의 실패 등 거의 모든 종류의 화근이 인내의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전체에 퍼져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인내의 결여 때문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내심 없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부위침(磨斧爲針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수적천석( 水滴穿石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입니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합니다. 플라토우스는 “인내는 어떠한 괴로움에도 듣는 명약이다.” 라고 했습니다. 봄이 오기 전까지 숨을 꾹 참고 있던 노란 야채꽃들도 한 차례 비가 오면 모두 다 한꺼번에 솟아 나와 숨을 뱉어내듯 인내의 힘은 언젠가는 찬란하게 빛을 드러냅니다. 인내의 힘은 참음과 견딤에 있습니다. 인내에서 참을 인(忍) 자는 칼날 인(刃) 자와 마음 심(心) 자가 합해서 된 글자입니다. 즉 마음 안에 칼날을 안고 살면서, 참고 또 참고 끝없이 참는다는 뜻입니다. 견딜 내(耐) 자는 말 이을 이(而) 자와 마디 촌(寸) 자가 합해진 글자로, 견디고 또 견디고 한없이 견딘다는 뜻입니다. 루소가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고 말했듯이 인내의 과정은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인내의 힘입니다. 온갖 수모를 참고 수많은 시련을 견디는 것입니다. 인생 상처의 고통을 견디어 내는 적극적인 인내의 힘이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영롱한 진주도 처음에는 하나의 상처였으나, 오래도록 상처를 보듬고 인내할 때 아름다운 보석으로 태어납니다. 그렇다고 인내는 단순히 꾹 눌러 참거나 속으로 삭여 혼자 끙끙 앓는 것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인내의 힘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데서 더 탄력을 받습니다. 인내에는 기다림이 필수적으로 따릅니다. 극동지역 사람들은 중국산 대나무(Chinese Bamboo)를 심는다고 합니다. 나무를 심고 나서, 물과 거름을 주지만 4년 동안 이 대나무는 거의 혹은 전혀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5년째 되는 해에 놀랍게도 나무는 5주일 동안 높이가 90피트나 자란다고 합니다. 4년 동안 중국산 대나무는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물과 비료를 주면 나무는 죽지 않고 때가 되면 급속히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일수록 빨리 되어지지 않습니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는 사과나무를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속담에 "시간과 인내가 뽕잎을 비단으로 바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빨라야 하는 세상이지만 위대한 업적은 단번에 성취되는 일이 없고, 최상의 진보는 늦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인내의 결여는 결국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성급함이야말로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인내의 힘은 성급함을 다스림에 있습니다.「욱리자」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나라 변방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어렵게 우산 만드는 법을 익혔지만 큰 가뭄이 들어 우산을 사는 사람이 없자 바로 우산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양수기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3년 동안 어렵게 기술을 익혔지만 이번에는 연일 비가 내려 다시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사방에 도적 떼가 일어나 군복과 무기가 모자라게 되자 그는 또 무기가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심지가 수시로 흔들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평범한 일도 지속적으로 전념하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아르디니는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는 젊은이에게 "24시간씩 20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곰도 춤을 추게 됩니다. 인내의 힘을 기르려면 성급하게 포기하려는 순간을 이기는 것입니다. 인내의 힘은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으로 나타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마음속의 어둠이나 순간의 고통과 계속 싸워나가는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이런 인내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는 참고 견디어서 이룬 인내의 역사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인내하는 과정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59    崔东日简历 댓글:  조회:1968  추천:0  2012-04-25
                            崔东日     崔东日, 1965年7月出生,和龙县人。1982年10月入中国人民解放军81250部队。现任《延边文学》杂志首席编辑,延边作家协会儿童文学创作委员会主任。主任编辑。历任延边电台记者、延边电视台青少年部编导,主任。 2007年在中国作家协会鲁迅文学院第六届中青年作家儿童文学作家班进修。   1981年16岁在延边人民出版社《小溪》杂志上发表处女作儿童小说“我的弟弟”。 以出版儿童长篇小说《天使在微笑》,儿童短篇小说集《小敏的山》,中篇成长小说集《现在是初旬》,散文集《妈妈的星星》。 翻译出版长篇名著《十五少年飘流记》,报告文学集《寒夜勾魂:20位戒网少年的心路历程》,《警惕孩子变成问题少年:20位问题少年口述实录》等22部。 曾获第二届“延边作家协会新人文学奖”,第八届“延边作家协会文学奖”,第六届“延边州金达莱文艺奖创作奖”,韩国 “启蒙儿童文学奖”等20余次各种创作奖。 成长歌曲“中学生时代”,“我们的花园”被选入中小学校音乐教课书。儿童小说“金达莱花开的时候”收录《新世纪中国儿童文学第五代儿童文学作家作品集》. 此书汇集了17位中国第五代儿童文学作家的17篇优秀小说。 “我很想在与朝鲜族青少年最近的距离中,极其真实地讲述他们的痛苦,以及富有现实感的成长故事。只有在我的小说是真正为朝鲜族青少年真实的成长而创作的时候,我才能真正成为一个名副其实的朝鲜族儿童文学家,才能真正成为朝鲜族青少年可以信赖的朋友。” 这样的理念,构成了崔东日作品的思想主旋律。因此,他的作品极尽反映朝鲜族青少年真实的生活。 崔东日在工作岗位也是称职的工作者。他曾获“第二届吉林省新闻出版奖精品奖”,第九届“全国少数民族题材电视 ‘骏马奖’一等奖”,第四届“全国优秀青少年维权岗创建活动先进个人” 称号。 최동일   1965년 7월 길림성 화룡현 룡문촌 출생. 1982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 81250부대 복역. 현재 《연변문학》잡지 수석편집,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주임편집. 연변인민방송국 기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연출, 주임 력임. 2007년, 중국작가협회 로신문학원 제6기 중청년작가고급연구반(아동문학작가반) 연수.    1981년 16세 나던 해, 연변인민출판사 《시내물》잡지에 처녀작 아동소설 “나의 동생” 발표. 아동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  아동단편소설집《민이의 산》, 아동중편소설집《아직은 초순이야》, 산문집《엄마의 별》이 있음. 장편명작 《15소년 표류기》, 보고문학집《방황하는 령혼들》등 번역저서 20여부 있음.  제2회 연변작가협회 신인문학상, 제8회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제6회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창작우수상, 제2회 연변작가협회 인터넷문학상, 제17회 한국 계몽아동문학상 특별상 수상.  
358    행복을 결정하는 것 댓글:  조회:1486  추천:0  2012-04-25
행복을 결정하는 것  어느 날 신문을 보던 중 같은 면에 실린 두 개의 기사가 너무도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위 기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도리스 레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도리스는 너무 기뻐하며 좋아했지만 유명세로 인해 작품 활동을 멈추고 인터뷰와 사진촬영만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외출조차 맘대로 할 수 없게 된 도리스는 노벨상은 오히려 재앙이었다며 수상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밑의 기사는 고졸 검정고시를 최고령으로 합격한 이종희 할머니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더 배우고 싶다며 공부를 시작한 이종희 할머니는 그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며 배우지 못한 갈증을 풀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 오신 이종희 할머니는 앞으로 대학교도 진학해 남들을 체계적으로 도우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간단합니다. 마음의 조건을 행복에 맞추십시오.
357    고이면 썩는다 댓글:  조회:1587  추천:0  2012-04-25
고이면 썩는다  마더 테레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귀부인이 테레사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에 의욕을 잃고 말았습니다. 매일 하는 일에, 매일 같은 사람들...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쩔 땐 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테레사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마침 잘됐습니다. 제가 있는 인도로 온다면 새로운 삶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자신이 존경하는 테레사라 해도 갑자기 인도로 떠나는 것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여기보단 나을 것 같아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녀가 도착한 인도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부인도 어느새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남들을 돕는 동안 부인은 점점 삶의 의욕이 다시 샘솟았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생기며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기쁜 얼굴로 마더 테레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할 일이 아직도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위해 힘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의욕이 사라질 때는 더 낮은 곳을 바라보십시오. 걱정과 근심을 잠시 미뤄두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사랑을 흘려 보내십시오.
356    가슴 뿌듯한 하루 댓글:  조회:1601  추천:0  2012-04-24
쉼없이 돌아쳤다. 5월호 잡지를 공장에 내려보내느라 팽이처럼 돌아쳤고  그 일이 끝나자 오래동안 방치해두었던 블로그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월간잡지편집은 올해가 처음이라 아직도 원고를 공장에 보내 놓고는 강가에 애를 혼자 내보낸듯 긴장하다. 혹시 부주의로 어느 한 구석이라도 소홀히 한 곳은 없는지 하는 근심에 손에 땀을 쥐게 되는것이다.  책이 인쇄되여 나와 사고가 없어야 한 시름을 놓을수 있다.  긴장하면서도 뿌듯한 이 느낌, 진정 일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기분이리라. 그렇다. 블로그라는 이 물건도 만질수록 재미를 느끼게 하는 놈이다. 진종일 글과 씨름했지만 나름대로 가슴 뿌듯한 하루였다.
355    들고양이호수 * 진응송 댓글:  조회:1989  추천:0  2012-04-24
 들고양이호수 진응송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쳤다. 호수물과 갈대잎이 바람을 타고 호수가에 기여올랐고 창살은 기승스럽게 흔들렸다. 대지가 신음하고 하늘은 슬픔에 울부짖는듯싶었다. 대살같은 비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뒤에 있는 수림은 윙윙 무서운 소리를 내고있었는데 마치도 망령들이 일제히 울부지는듯했다. 그 순간 산과 들은 모든것이 신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오기를 고대하고있었다. 그녀—장언니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그녀는 장언니에게 전화를 하고싶었지만 두손이 전화에 닿기만 하면 전기가 통하는듯하고 지어는 마비까지 되여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고있을 때 뜻밖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장언니였다. “향아니? 내가 갈가? 집에 돌아간거지? 그놈은 돌아왔니?” 장언니의 목소리는 매우 따뜻했다. 그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서 향아는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몰아낼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향아는 종래로 두려움을 몰랐을수도 있다. 누구도 향아앞에서 “두려움”이란 말을 꺼낸적이 없었던것이다. 누가 곁에서 특별히 “두려움”이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도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모를것이였다. 어쩌면 생활이란 워낙 그런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향아의 아들 오자는 진의 기숙제학교에서 공부하고있었다. 향아네가 사는 마을앞의 호수는 아주 컸다. 반면에 향아네 마을에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다. 하여 마을은 누군가 던져버린 우렁이껩데기 같아보였다. 마을 여기저기에 한 가구씩 널려있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수 없었다. 여기에 웅뎅이, 저기에 물곬이요, 여기에 물줄기, 저기에 언덕이였다. 호수물이 불면 그것들이 깜작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여 언제나 시름을 놓고 살수 없었다. 오직 천년의 황페한 호수만이 시름 없이 노래를 부르고 들고양이들이 청승스럽게 울어댈뿐이였다. 한무리 또 한무리의 들고양이들은 호수를 따라 들어앉은 들고양이도랑을 따라 움직이면서 기승스럽게 표호하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그 모든것은 실로 마을의 밤을 공포에로 몰아가는 잔혹한 노래소리라고 할수 있었다.   장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쉰듯 했다. 하지만 그는 열정적이고 붙임성이 좋았으며 친절하고 성격이 곧았다. 향아와 장언니는 전에 락막교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다가 이곳—들고양이호수마을에 시집을 오게 된것이다. “언니, 오지 마세요.”   “너 정말 무섭지 않겠니? 뭐? 정말 무섭지 않다구? 야웅—” 장어니는 들고양이울음소리를 흉내내보였다. 비방울은 후둑후둑 떨어져내렸다. 그바람에 길은 진작 잠겨버렸다. 향아는 모종들도 이미 물에 잠겼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길이 물에 싹 잠긴것을 보면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는 일이였다. 향아네 밭은 지형이 낮은 곳에 자리 잡고있어서 “랭돌”이라고 불리웠다. 지난해 향아는 그 밭에 올방개를 심었었다. 한해 동안 “랭돌”과 씨름을 하고나니 향아와 남편 삼우의 손톱은 거의 번져질 지경이였지만 수확은 그닥지 않았다. 하여 올해는 조로 바꾸어 심었다. 올해 남편 삼우마저 집에 없어서 혼자 올방개를 심는다는것은 힘에 부쳤던것이다. 삼우는 돈푼이나 벌어보려고 도회지로 들어갔던것이다. 사실 조를 심으려는것은 향아의 뜻이 아니였다. 향아는 사실 조를 심는데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장언니가 나서서 극구 조를 심으라고 권했던것이다. “남정네가 없다고 그래 손을 동여매고 있겠니? 보란듯이 뭔가를 심어야지. 남정네들이 생각하지 못하는것을 심어서 보란듯이 키워야지.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당당해야 하거든.” 향아는 소를 보러 우리로 나갔다. 요즘 마을에는 소도적이 성하여 집집마다 뒤숭숭해 있었던것이다.  소는 뒤뜰에 있는 나무로 지은 우리안에 있었다. 향아네 집은 바로 주방 하나에 소우리 하나 그리고 변소 하나인 전형적인 시골농가였다. 뜨락에는 밥상 하나에 걸상 두개가 놓여져있었는데 전에는 삼우와 함께 그 밥상을 마주 하고 식사를 했었다. 볕좋은 날에는 훈훈하게 불어보이는 남풍에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에는 총총한 별무리를 볼수 있었다. 가끔 밥상우에 일부 잡물들을 올려놓기도 했다. 소는 어둠속에서도 용하게 여물을 찾아 씹었고 가끔 새김질을 하기도 했다. 마치도 나이를 먹은 령감처럼 자기의 전생과 금생을 생각하고있는지 다른 소리는 내지 않고있었다. 그 모양은 매우 침착해보였는데 두눈만은 그래도 빛나고있었다. 소는 사람이 다가가도 아무 반응이 없이 자기가 할 일만 열중하고있었다. 향아는 소도 생명이며 그것도 매우 큰 생명이기에 소도적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나름대로 추측하고있었다. 일단 소가 도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차 도살장에 팔려가게 될것이라고 믿었다. 소 한마리에 3천 5백원좌우를 받을수 있다고 했다. 도살장에 넘기지 않고 자비로 잡아서 팔면 5천원도 가능했다. 소는 이렇게 귀한 동물이였다. 소 한마리를 도적질하면 4, 5무의 밭을 다룬것과 수입이 같았다. 하지만 밭 4, 5무를 다루자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야 하는가? 한해 농사를 마루리하고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가죽이 한벌 벗겨졌다고들 했다. 비록 요즘은 기계화가 실현되기는 했지만 농사를 짓기란 여전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농사를 짓는데는 웃음도 노래소리도 필요 없었다. 소는 향아를 바라보고 향아는 소를 지켜보았다. 서로 마음속으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있는듯 했고 또 서로를 위해 일종의 련민을 느끼고있는듯싶었다. 비가 내리고있었지만 우리안의 소는 비 한방울 맞지 않아 마른 털 그대로 있어서 향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향아는 물을 길어들고 뜰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바람에 머리는 비에 젖어버렸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지고있었다. 향아는 침대에 올랐다. 발정기의 들고양이들은 비속에서도 청승스럽게 울어대고있었다. 비속을 뚫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들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그처럼 처량하게 들렸는데 마치도 깊은 밤의 검은 장막을 오리오리 찢어버리려는듯싶었다.   향아는 아침에 일어나자바람으로 바깥부터 살폈다. 밤새 하늘은 검은 장막을 벗어내친듯 했고 대지는 찬연한 빛을 만방에 뿌리는듯싶었다. 날이 개였다. 천만갈래의 붉은 노을빛이 인간세상에 쏟아지고있었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와 사람들로 하여금 금방 머리를 쳐드는 새싹처럼 저도 몰래 기지개를 쭉쭉 켜게 하여 호흡마저 파아랗게 피여나는듯한 기분을 선물했다. 장언니는 푸릇푸릇한 곡식처럼 생기있는 모습으로 향아를 찾아왔다. 장언니의 손에는 참죽나무싹 두묶음이 들려있었다. 장언니는 마을어구의 오동나무아래에서 남새와 과일을 팔고있었다. 참죽나무싹은 붉으스름한 색을 띠고있어서 홍목에서 돋아난듯한 착각을 주었다. 장언니가 참죽나무싹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닭알에 볶아먹으면 맛이 좋거든. 너 유채는 먹니? ” “땅에서 나는 남새야 다 먹지요. 저절로 뜯어도 될걸요.” 향아의 말에 장언니가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번개가 쳐가면 어쩔라구?” “그럴수 있겠어요? 내가 무슨 남 보기 미안한 일도 한것이 없는데요.” “그걸 누가 알아? 보자, 네가 간밤에 잘 잤는가?” “언니가 어찌 내가 잘 잤는지 못 잤는지를 알아요?” “알지, 너의 눈덩이가 처졌는가 안 처졌는가를 보면 알게 아니냐?” 장언니는 향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차츰 향아의 눈까풀에 옮겨갔다. “너 간밤에 한잠도 못 잤구나.” “아니요, 죽은 돼지처럼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잤는걸요. 못 자다니요.” 그 말에 장언니가 정색해서 말했다. “거짓말, 눈확이 거멓게 죽어있잖아. 눈확이 검은 년들은 남의 사람을 홀려내는 불여우라던데.” “아니, 그 입은 헐어떨어지지도 않나봐. 나를 이렇게 헐뜯으면서도 뭐, 언니라구?” 향아는 악의 없이 주먹을 쳐들어 장언니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너 얼마나 오래 하지 않았니? 너 하고싶지?” 장언니는 잠간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벌써 몇년이나 그 일을 잊고 살았단다. 나 인젠 남자로 된것 같아. 내가 너의 남정네를 대신해줄가? 나에게 너같이 예쁜 녀편네가 있다면 절대 도시에 들어가지 않을거다. 날마다 품에 안고 즐겨야지.” 장언니는 말을 마치자마자 향아를 끌어안고 애무를 하려고 했다. 향아는 본능적으로 장언니를 품에서 밀어냈다. 그러자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너의 밭이 물에 잠겼더구나. 그래도 괜찮아. 다시 올방개를 심으면 되지 뭐.” 그 말에 향아가 중얼거렸다. “그래요, 언니. 차라리 나를 죽으라고 주문을 하세요.” 장언니는 향아와 함께 논으로 나갔다. 논은 과연 물바다였다. 향아는 너무도 억이 막혀 당금이라도 울고싶었다.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내 밭도 3무가 넘게 잠겼는데 뭐, 그래도 나는 울지 않잖아. 그런데 너는 왜 당나귀상을 하고 그러니? 울지 마, 넌 울면 곱지 않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밭이 물에 잠겼지, 물은 뺄 방법이 없지… 그래 논에다가 고기라도 기를 셈인가요?”   향아는 그 길로 “마파람”을 찾아갔다. 마파람은 마을의 촌장이였다. 촌장이라면 자기에게 좋은 방도를 대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마파람은 대답대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향아의 아래우를 쓸어보았다. 어쩌면 향아의 젖무덤을 탐닉하는듯 했고 또 어쩌면 향아의 젖꼭지를 빨려고 시도하는것 같기도 했다. 마파람은 땅에 떨어진 개똥을 내려다보것처럼 하다가 다시 향아의 가슴에 도적눈을 박았다. 그 눈길은 초점없이 허망에서 들들 구을고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마파람은 마을 대부분 녀인들의 젖꼭지를 빨아보았다고 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빼놓지 않고말이다. 마파람은 늘 이렇게 씨벌이고 다녔다. “내 닭을 먹이면 어떻고 나를 먹이면 어떻고… 청고한체 하기는…” 마파람은 과연 마을에서 첫 손 꼽히는 “닭우두머리”라고 할수 있었다. 마을에는 8, 9호의 양계전업호가 있는데 모두 마파람이 관리하고있었다. 하여 마을사람들은 마파람을 “닭우두머리”라고 불렀던것이다. 마을에서 마파람네 양계장이 제일 컸는데 닭이 만여마리는 되였다. 그의 양계장으로 가면 늘 닭울음소리에 하늘땅이 맞붙는듯 했다. 마파람은 그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흥겨워 이렇게 중얼거리군했다. “들어보라구,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 멋에 산다니까.” 마파람은 이렇게 많은 닭을 치면서 마을의 다른 양계호들에게 병아리를 넘겨주고 사료를 공급해주었으며 예방주사를 맞히는 일도 직접 나서 해결해주었다. 촌민들이 일을 하고싶어하면 양계장에 받아들여 최저로임을 주어 부려먹군 했다. 마파람의 병아리를 외상으로 가져간 집들에서 닭을 키워 출하시키면 수입은 대부분 마파람의것으로 되였고 닭을 길러준 사람들은 보잘것 없는 수입밖에 얻을수 없었다. 하지만 마파람은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이 자기가 촌민들을 이끌고 치부의 길로 달린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마파람은 병아리 한마리를4원에 사양호들에 넘겨주었다. 그러니 천마리면 4천원이 되는것이다. 마파람은 이 일도 “부녀창업”을 돕는다면서 녀자들에게만 주었다. 마을사람들은 뒤에서 마파람을 두고 그야말로 “쪽제비가 닭에게 세배를 하는격”으로서 절대 좋은 심보를 품은것이 아니라고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마을에서 일손을 놀릴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녀인들밖에 없는것도 사실이였다. 힘꼴이나 쓴다는 남정네들은 모두 도회지로 가서 돈을 버느라고 했지 누구도 마을에 남아 촌장 마파람네 닭을 키우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힘이 약하고 별 다른 재간이 없는 불쌍한 녀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파람네 닭을 먹이면서 호구를 이어가고있었던것이다. 녀인들이 닭을 기르고 촌장이 닭 마리수에 따라 돈을 셈해주는 이 방법은 촌장 마파람으로 하여금 녀인들을 손에 넣기 쉽게 했다. 어쩌면 마파람이 슬쩍 당겨도 녀인들은 품에 안기게 되여 있었던것이다. 정말이지 마파람을 위해 “닭도 먹여주고 젖도 먹여주는격”이였다. “자네가 밭 4무를 다룰수 있나?” 마파람이 향아에게 물었다. 향아는 마파람의 뜻인즉 “닭 4천마리를 기를수 있느냐?”라는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밭 한무를 다루어봤자 천원 남짓한 수입을 얻을수 있는데 그것도 일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야 얻을수 있는 수입이였던것이다. 남편 삼우는 도회지로 떠날 때 향아에게 절대 마파람네 닭을 먹이지 말라고 경고를 한적이 있었다. 그래도 마파람네 닭을 먹인다면 자기가 돌아와서 몽땅 몰살을 시키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던것이다. 향아는 그때 삼우가 닭을 몰살시키겠다는 뜻인지 사람을 몰살시키겠다는 뜻인지 모호하다고 생각했었다. “안돼요. 삼우가 못 먹이게 해요.” 향아의 말에 마파람이 한술 떴다. “삼우가 자네더러 똥을 먹으라면 그래 똥까지도 먹을셈인가? 예쁜 년들은 모두 머리통에 물이 들어갔다니까.” 향아는 다가오는 마파람을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만약 제때에 자리를 뜨지 않으면 마파람에게 젖무덤을 잡히게 될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마파람의 손가락은 그만치 힘이 좋았다. 마파람을 낳을 때 마파람의 아버지는14살이였고 엄마는 13살이였다. 13살 나는 엄마에게 젖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으랴. 마파람은 어릴 때 젖이 나오지 않는 엄마의 젖무덤에 매달려 손으로 젖무덤을 마구 당기면서 앙탈을 부렸다. 참지 못한 엄마는 마파람을 집어다가 개다리밑에 처박아놓았다. 그때로부터 마파람은 개젖을 먹고 자랐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마파람의 손아귀는 아주 억세였다. 그리고 녀자의 젖무덤만 보면 눈알을 붉히며 달려들었다.   지어는 아들이 먹는 젖을 빼앗아 먹기도 했다. 그바람에 아들은 제대로 젖을 먹지 못해서 어릴 때 얼굴이 누르끼레 하고 볼품없이 여위였다. 불쌍한 아들의 몰골을 보면서도 아비라는 사람은 여전히 녀편네의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혈지가 높고 혈당이 높고 혈압이 높은” 삼고(三高)에 이르게 되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마을에서 촌장이라는 대권을 쥐고있으니 과연 어디가서 도리를 따진단 말인가.   향아는 도랑옆에 있는 묘비석우에 앉아 볼품없이 수재를 입은 논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당금 무너져내리려는듯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있었고 태양은 언제 빛을 뿌린적이 있었냐는듯 검은 구름에 가리워 얼굴을 감추고있었다. 흐리터분한 날씨는 숨이 턱턱 막히게 찌물쿠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원한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후덥지근해서 사람들을 침울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향아는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면서 “논이 물에 싹 잠겼는데 어찌 천근이 나기를 바라겠는가?”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순간 향아는 웬 일인지 사무치게 아들이 보고싶어졌다. 아들이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독침을 쏘아 개를 훔치는 놈들과 맞띄울가봐 더럭 겁이 났다. 만약 그놈들이 분 독침이 잘못 돼서 아들의 몸에 꽂히기나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향아는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것 같아 견딜수 없었다. 남편이라는 량반은 도회지로 간후 집에 련락 한번 없었다. 남편을 생각하면 향아도 집이고 밭이고 아들이고 다 뿌리치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도망가고싶어졌다. 향아는 자기에게도 발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도망갈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 웬 사람 둘이 어슬렁어슬렁 향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첨에는 그림자가 멀리서 보이다가 차츰 모습이 크게 들어났다. 향아는 첨에 그들이 촌의 파견을 받고 자기의 밭에 들어온 물을 빼주려고 오는가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것을 보아 그런것 같지 않았다. 그럼 고기잡이군인가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같지 않았다. 그러자 독침을 불어 소를 훔치는 놈들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은 뱀껍질로 만든 자루를 메고있었던것이다. 둘중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 사람은 키가 작았다. 가까이 온것을 보니 키가 큰이는 우랄자라고 부르는 안면있는 사람이였지만 키가 작은이는 처음보는 사람이였다. 그의 키는 우랄자의 가슴에 닿을가 말가 했는데 얼굴이 무척이나 거칠어보였다. 그들은 들고양이를 잡으러 온것이였다. 우랄자는 당시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있었는데 평소에도 늘 게으름을 피웠었다. 그의 눈은 언제나 팽글팽글 돌았는데 마치도 목표물을 찾는 도적놈의 눈을 방불케 했다.   우랄자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걷다보니 걸음이 온당치 못했다. 전에 그는 엉뎅이가 꽤 컸지만 후에 불편한 다리를 끌고 사처로 싸다니다보니 차츰 엉뎅이가 싹 줄어서 걸을라치면 물에서 흐늘거리는 조롱박을 방불케 했다. 우랄자는 자기보다 키가 절반이나 작은 그 남자를 꾸짖었다. 그 남자는 웬 일인지 정신이 흐리마리해 있었다. 그리고 피부는 군데군데 허옇게 번져있었는데 보매 백전풍을 앓고있는것 같았다. 어깨에 멘 뱀가죽주머니가 짧다란 그의 다리에 맞혀 달랑이고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맵시로 부지런히 우랄자를 따르고있었다. 그들은 향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지만 향아를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향아는 풀밭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개사철쑥우에 앉아버렸던것이다, 개사철쑥은 비를 맞아 놀랍게 커버렸다. 수림처럼 빽빽하게 높이 자라있었던것이다. 이어서 향아는 공포를 자아내는 들고양이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였다. 향아는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았다. 우랄자네는 과연 들고양이 한마리를 잡았는데 잠간 봅고 서있다가 자루에 집어넣고는 흥이 나서 유사(揉麝)를 하고있었다. 얼마전, 그러니까 반년전쯤에 우랄자는 역시 이 골에서 고양이를 잡아 유사를 하다가 개사철쑥을 베고있던 마파람 아버지의 눈에 띄웠던것이다. 마파람의 아버지는 미친듯이 낫을 휘둘러 우랄자의 다리를 찍어버렸다. 하지만 우랄자는 감히 파출소에 이를수도 없었다. 우랄자는 도시에서 살다가 남들의 돈을 많이 꾸고 이곳으로 도망왔던것이다. 그번에 마파람의 아버지가 휘두르는 낫에 찔린후 우랄자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해서 다리가 위축되였던것이다. 우랄자는 실로 벙어리가 황련을 씹은격이 되고말았다. 우랄자는 결김에 마파람네 닭을 한 트럭 도적질하여 도시에 가져다 팔았다. 마파람은 분명 우랄자가 저지른 짓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허허 웃어버리고말았다. 아버지에게 효도를 한 셈 치자고 스스로를 달랬을뿐이였다. 들고양이를 붙들어 유사를 하는것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일이였다.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것과 같다고 해야할것이다. 사실 살인을 해도 그보다는 잔인하지 않을것이다. 정말이지 뢰공(雷公)이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은것이 놀라울 지경이였다. 우랄자와 그의 뒤를 따르던 “백전풍”은 고양이배를 미친듯이 주물러댔다. 들고양이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들고양이는 뱀가죽주머니안에서 마구 몸부림을 치면서 뛰쳐나오려고 최후의 발악을 했고 하늘이 찢어질듯 처참하게 소리를 질렀다. 우랄자는 큰 소리로 “백전풍”을 훈계했다. 뜻인즉 고양이를 꽉 누르고있으라는것이였다. “백전풍”이 갑자기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때 “백전풍”의 의 손에서는 선지피가 줄줄 흐르고있었다. 들고양이는 자루안에서 “백전풍”의 손을 물어뜯었던것이다. “백전풍”은 너무도 아파서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커다란 몸집의 갈색 들고양이는 기회를 타서 자루를 찢고 나와 어딘론가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우랄자는 그때 향아를 발견하게 되였다. “향아야, 너 담이 대단히 크구나.” 향아는 흠칫 놀라면서 일어나 못 박힌듯 선자리에 굳어졌다. 우랄자는 한손으로 다른 한손을 꼭 붙잡고있었는데 그도 어느때 상처를 입은것 같았다. 손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우랄자는 음침한 눈길로 향아를 바라보고있었다. 향아는 속으로 흠칫 놀라면서 생각했다. (저 놈이 나에게 나쁜 심보를 품은게 아닌가?) 향아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들고양이생식기는 뽑아서 약국에 넘길수 있는데 한번에 몇백원을 받을수 있다고 했다. 우랄자는 향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불렀다. “향아야.” 우랄자의 부름에 흠칫 놀란 향아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지만 우랄자는 이미 그의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순간 향아의 머리속에서는 마을의 소를 이놈이 다 도적질한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났다. 그리고 개에게 독침을 쏘아 죽인것도 우랄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의 소들은 괴상하게도 눈 깜빡 할 새에 잃어지군 했다. 하여 파출소에서 길목마다 보초를 세웠지만 밤만 되면 소는 여전히 감쪽같이 살아지군했다. 실로 귀신에게 홀려간듯 하늘에 솟은듯 했다. 이 일은 파출소 소장으로 하여금 머리를 쳐들수 없게 했다. 어느한번, 소장은 모터찌클을 타고 개에게 독침을 쏘는자를 쫓아가게 되였는데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그만 콩크리트바닥에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 되였다. 하여 파출소 소장은 엉뎅이의 가죽을 뜯어서 얼굴에 붙이게 되였는데 그바람에 40여살을 먹은 나그네의 피부가 애기피부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게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엉뎅이의 피부인지라 백성들은 뒤에서 그를 “엉뎅이소장”이라고 불렀다. “엉뎅이소장”은 가끔 마을을 돌아보면서 “소들이 그래 하늘로 날아올랐단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우랄자는 온몸으로 들고양이와 죽은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시물시물 웃는 얼굴로 향아를 향해 다가왔다. 그 모양을 보면 인차 우랄자가 향아에게 무슨 짓을 하리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도망치려고 마음 먹은 향아는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우랄자를 쏘아보았다. 우랄자는 향아의 그런 심사를 모르는지 여전히 사뭇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우랄자는 입가에 허연 거품을 달고서 한걸음 한걸음 향아를 조여왔다. 우랄자는 녀자가 강렬하게 반항하면 그 힘이 얼마나 크다는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만약 녀인이 무엇인가에 반감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의 그 어떤 노력도 쓸모 없는것으로 될수 있는것이였다. 하지만 마을의 남정네들은 웬 일인지 그런 도리를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가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되면 녀자들과 집쩍거리면서 비린내를 맡아보려고 맴돌이를 쳤던것이다. 누구를 불러도 쓸모 없는 짓이였다. 향아는 이 황량한 들판에서 우랄자와 최후의 결판을 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랄자는 들고양이를 잡던 손을 쫙 펴들고 향아를 향해 다가왔다. “오지 말아요. 소리치겠어요.” 우랄자는 향아의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보지 못했던지 아니면 불타는 향아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했던지 여전히 걸음을 조여왔다. 정서가 극도로 악화된 정황에서 향아가 과연 그 짓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 우랄자는 근본 생각조차 하지 않는듯싶었다. 아무리 성욕에 미친 남자라 해도 그 짓은 감정을 동반해야 한다는것을 모를수는 없으련만 우랄자는 완전히 짐승처럼 돌변해있었다. 시간도 장소도 가리지 않는 돼지요 개로 돌변해있었던것이다. 눈을 지긋이 감고 목표물을 찾기만 하면 올라탈 자세였다. 향아는 너무도 분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시각 분노는 당금 폭발할것만 같았다. 우랄자는 끝내 향아에게 덮쳤다. 비록 다리를 절름거렸지만 남자는 그래도 남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붙어서 물어뜯고 할켜댔다. 바로 그때 장언니가 나타났다. 장언니는 밭에 배수구를 파려다가 그만 이웃과 말싸움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이웃은 촌장을 불러다가 시비를 가르겠다고 했다. 그바람에 장언니는 아예 향아까지 불러다가 함께 밭에 고인 물을 처리할 방도를 토론하려고 했던것이다. 장언니는 먼저 향아네 집으로 찾아갔지만 향아가 보이지 않자 밭으로 나왔던것이다. “우랄자, 너 이 좆 같은 놈아. 뭐 하는거야?” 석쉼한 목소리를 내는 장언니의 목은 매우 굵었고 몸매도 거쿨졌다. 장언니는 운동복웃도리 팔소매를 썩 걷어부치고 손발을 잽사게 날려 우랄자에게 강타를 퍼부었다. 우랄자는 당금 향아를 따 먹으려고 하다가 그만 풀치고 만것이다. 우랄자는 정신을 가다듬어서야 대방이 장지화(장언니의 이름)라는것을 알아보고는 내꼴 봐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까지 곁에서 우랄자와 향아네를 훔쳐보던 “백전풍”도 악을 쓰고 우랄자를 따라 도망갔다. 향아와 장언니는 숨이 턱에 닿아 밭으로 뛰여갔다. 장언니네 이웃은 늙은이였는데 그는 여전히 자기네 밭에 물돌을 낼수 없다고 잡아뗐다. 로인은 장언니를 보고 물이 흐를수 있게 배수관을 묻으라고 했다. 로인은 자기의 땅에 도랑을 판다는것은 자기 선조의 맥을 파내는것과 같다고 엄포를 놓았다. 로인은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는 고집쟁이였다.   화해를 시키려고 찾아왔던 마파람도 분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였다. 마파람은 누구에게라 없이 소리질렀다. “이것도 촌의 일이란 말이요?” 장언니도 그에 못지 않게 높이 소리쳤다. “개같이, 누가 나를 건드려?” “청상과부 같으니라구, 누가 너를 건드려? 너 하구는 말도 섞기 싫어. ” “청상과부면 어째? 내가 좀 실팍할뿐이지. 욕심나? 꿈이나 깨라구. 아무리 임자 없는 고기덩이라도 네 놈은 안줘!” 그 말에 마파람이 받아쳤다. “흥, 너 같은 비게덩이는 거저 줘도 안 먹는다. 나는 삼고(三高)가 있거든.” 그 로인은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싶어서 마파람에게 말했다. “촌장, 뭐라고 말 좀 해보소. 배수관을 묻더라도 촌장이 해결해줘야 하지 않겠소? 장지화는 아녀자라 그 일이 쉽지 않을거요.” 그 말에 마파람은 석자나 올리 뛰면서 소리질렀다. “뭐요? 나를 보고 배수관을 도적질해 오라는거요? 내 일년 로임이 5천원밖에 안되오. 상급에서 날마다 검사를 내려와 거저 먹고 마시고 사람마다 담배 한보루씩 가져가는것은 명문처럼 되였소. 그래도 나는 그 돈을 어디가서 해결 받을데가 없소. 그들이 나의 닭을 몇마리나 먹어치웠는지 알기나 하오? 그것도 수탉으로 말이요. 거기다가 산초에 형주두부볶음까지 그게 얼만지 아시오? 나라의 돈은 다 먹어버릴수 없어도 나 이 마영재(마파람의 본명)의 재산은 굽이 나게 생겼다오. 붉은것(红道), 흰것(白道), 검은것(黑道) 어느 하나를 건드릴수 있겠소? 그들과 사이 좋게 지내자면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당신들, 누가 나를 리해해주려고 하오? 누가 나때문에 속을 태워주나 말이요. 올해 나는 이미 배수관 500메터를 사서 묻었소. 그런데도 당신들은 나더러 5천메터를 묻어달라는거요? 촌의 사무경비가 고작 5천원밖에 안되오. 부촌장이 마을의 상점들을 돌면서 담배나 남새를 외상으로 가져다 쓰는것을 보지 못하오? 비렁뱅이들처럼 말이요. 내가 촌장으로 된 3년래 길을 얼마나 닦았고 배수관은 얼마나 묻어주었소? 모두들 량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란 말이요. 우리 마을에는 적어도 3개의 배수로와 수문을 앉혀야 배수문제를 해결할수 있소. 하지만 배수로와 수문을 하나 앉히자면 적어도 30만원은 있어야 하오. 나라에서 돈을 주지 않으니 난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그 말을 장언니가 받아쳤다. “그렇다고 촌장이 나 몰라라 한단 말이요? 만약 올해 농사를 망쳐 먹으면 우린 누구를 찾아 손을 내민단 말이요? 그리고 향아네도 그렇지, 너도 올해 아무것도 남을게 없지? 마을의 소며 개며 양이며… 도적 맞힐것은 도적 맞히고 독침을 맞을것은 독침을 맞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어디 하나 시름 놓고 살수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어디 하나 관심이라도 하오?” 마파람은 장언니의 격한 목소리를 맞받아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내가 그래 관심하지 않았단 말이요? 왜 그렇게 말하는거요? 더 이상 관심을 하고싶어도 돈이 없어서 문제지. 당신들은 알기나 하오? 파출소에서 사건을 조사해도 촌에서 돈을 내라고 하는 판이요. 그들이 촌에다 보초소 두개를 앉혔는데 일군들은 촌의것을 거저 먹고 촌의것을 거저 마시고 지어는 촌에서 차를 세내여 자기들을 싣고 형주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발까지 씻게 하라고 하니 낸들 쉬운줄 아시오? 사실 말이지 마을의 남정네들이 다 떠나가 마을이 빈것과 다름이 없지 않소? 자네 같은 아녀자들이나 환자들 그리고 어린이며 늙은이들이 도적놈들에게 놀라서 병이 날 지경이라는것을 나도 알고는 있소. 장지화, 자네도 쩍하면 모할아버지께 선서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할아버지 그 세월에야 어디 지금처럼 도적놈들이 날뛰였소? 간혹 도적놈이 있었다고 해도 잡아서 늘씬하게 때려주고 투쟁대회를 몇돌개 하면 인차 곰상곰상해졌더랬지. 하지만 휴— 점점 가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할려고 이러는지… 나쁜 놈들이 더 판을 친단 말이요.” 마파람은 장언니가 로인에게 “황학루”표 담배 한보루를 사드리기로 하고 일을 한단락 매듭 지었다. 그제야 로인은 자기의 밭으로 도랑이 지나갈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날 장언니는 향아를 보고 진에 가서 애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약속대로 하면 이날은 장언니가 애들을 데리러 진에 가야했다. 금요일에 애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한 사람이 한 주일씩 맡아서 하기로 했던것이다. 장언니와 향아의 애들은 진에 있는 학교에 주숙하며 공부했다. 장언니도 향아처럼 늘 개를 잡아가는 사람들의 독침에 애들이 잘못 맞을가봐 근심했던것이다. 만약 정말 그 독침을 맞기라도 한다면 영낙없이 목숨을 빼앗기게 될것이였다. 그놈들이 독침에 묻힌것은 “삼불도(三步倒)라고 하는 비상이였던것이다. 진으로 가는 길에 또 한차례의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는 왜 끊이지 않고 진종일 내리는지. 향아는 거무튀튀한 공공뻐스에 오르자 공교롭게도 마파람을 마주하게 되였다. 정말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격이였다. “허허허… 향아야, 너희들이 재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보다 더 재수가 없거든.” 마파람은 향아네 일을 금방 조해한후 병아리를 사려는 사람에게 직접 병아리를 전해주러 갔다가 그만 그집 개에게 다리를 물렸던것이다. 다리에는 둥그렇게 깊은 개이발자리가 났다. 개이발자리는 붉으스름하게 변해있었는데 어딘가 목단꽃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다 큼직한 목단꽃을 피운 마파람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있었다. 마파람은 진병원으로 광견왁진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이였다. 마파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를 웃지 말거라, 누구나 재수 없을 때가 있는거다. 너의 유채나 결협(结荚)도 그닥 자람새가 좋지 않더라. 붕소나 생명소 같은 비료를 뿌려야 할것 같더라. 배수문제는 비록 내가 어쩔수 없었지만 내가 너에게 닭을 줄테니 네가 한번 길러봐라. 나는 그렇게라도 너를 돕고싶으니까.” 마파람은 잠간 말끝을 끊었다가 계속 이어나갔다. “삼우가 그렇게 너를 돌보지 않는데 너는 또 내가 돕겠다는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니. 참 뭐, 내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그래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촌장이라도 된단 말이냐?” 마파람은 말을 하면서 기어코 향아의 곁에 비비고 들어앉았다. 뻐스는 이미 낡을 때로 낡아서 자리와 등받이의 해면은 진작 어느 손 빠른 놈이 다 뽑아가버려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마치 쇠덩이우에 앉은듯한 느낌이였다. 게다가 길까지 좋지 않아 한번 차가 들출라치면 엉뎅이가 들썽거리고 척추가 아래로 눌려 여간만 불편한것이 아니였다. 언젠가 이 뻐스에 앉았다가 척추가 부러지면서 사지마비가 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거저 자신이 재수없다고 탓했뿐이였다. 마파람은 개에게 물려 광견왁진주사를 맞으러 가면서도 신혼차에 앉은 사람처럼 벙글거렸다. 우뢰가 울자 운전수도 잔뜩 긴장해 했다. 그가 한시 바삐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허둥대다보니 차는 정신나간 황소처럼 허둥지둥 질주를 해야 했다. 운전수는 말라꽹이였는데 어쩌면 “길이 험하고 차가 아무리 들추어도 기껏해야 누군가의 갈비뼈가 나갈것이고 더 험하면 차바퀴가 떨어지겠지.” 하는 배짱을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차가 앞으로 질주하자 흙탕물이 사처로 튕겼다. 차안에 숨어있던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손님들의 몸에 내려앉았고 하 벌린 입으로 날아들었다. 그바람에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좀 천천히 몰면 안되오?” 손님들은 대부분 운전수와 익숙한 사이였는데 그는 진에서 고기를 파는 류할머니의 남편이였다. 그들의 가정생활은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닌것 같았고 성생활도 그다지 조화롭지 않은것 같았다. 운전수의 눈확은 언제나 푹 꺼져들어가 있었고 두눈은 뭔가에 놀란듯 늘 불깃불깃해 있었던것이다. 향아는 입을 꼭 다물고있었다. 마파람이 자꾸 옆으로 밀어서 몹시 불편했다. “삼우는 언제 돌아온다니? 삼우가 마음이 변하면 어쩔라구? 그래도 너는 삼우를 위해서 이렇게 정조를 지키고있구나. 너는 어쩌면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줄도 모르니? 밤이면 밤마다 독수공방을 하지? 몸은 너의것이니 너의 맘대로 할수 있는것이 아니냐?” 마파람은 끝도 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며 향아에게 치근거렸다. 차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부하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마파람은 그중에서 유독 향아를 편히 놔두려고 하지 않았다. 차안의 사람들은 모두들 웬 일이냐는듯이 마파람과 향아를 바라보았다. 마파람은 누군가 권하는 담배를 받아서 피우기 시작했다. 향아는 마파람이 내 뿜는 담배연기에 질려 연신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향아는 자리를 바꿔 앉으려고 생각했다. 그때 차창으로 비가 스며들었다. 향아는 그것이 기회라싶어서 인차 몸을 일으켜 다른 자리에 가 앉았다. 마파람은 대번에 얼굴을 찡그렸다. 마파람은 향아의 그 거동이 자기의 자손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 향아보다 더 이쁘장한 녀인이 차에 올라왔다. 마파람은 그 녀인을 향해 소리쳤다. “막자야, 이리 와 내곁에 앉아라.” 그리고는 향아를 보면서 말했다. “저 애는 초대언덕의 막령감네 딸이란다. 진초대소의 복무원이지.” 향아는 못 들은척 잠간 서있다가 차가 멈춰서자 나는듯이 차에서 내려버렸다. 향아는 붕소와 생명소를 사주겠다는 마파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절로 그것들을 샀다. 향아는 또 우유와 꿀과 검은 들깨가루도 샀다. 그것들은 락막교에 살고있는 새언니에게 선물할것이였다. 향아는 후에 시간을 타 락막교에 가서 새언니를 보고오리라 벼르고있었던것이다.   락막교의 새언니는 오래전부터 앓고있었다. 원인도 모르게 말이 똑똑치 않고 두다리에 맥이 빠져 제대로 길도 걸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이미 2, 3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새언니를 두고 귀신에게 홀린것이 아니냐고 뒤공론을 했만 향아는 그렇게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향아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기의 새언니만은 그런 병에 걸릴수 없다고 확신했던것이다. 그래서 향아는 어느때 시간을 타서 락막교에 가 새언니를 보려고 생각했다. 가는 걸음에 맛나는 음식을 사서 새언니에게 대접하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향아는 새언니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여 가을까지 새언니가 살아있으면 꼭 해쌀 한마대를 메다가 새언니에게 드리려고 계획했다. 전에 새언니는 걸핏하면 향아에게 쉰 밥을 먹으라 했고 지어는 아예 밥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향아가 심은 품종은 잡교종이였다. 잡교종은 비교적 품질이 좋았는데 흠이라면 다른 품종들보다 산량이 적은것이였다. 한무에서 1, 2백근이 적게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자기 밖에 없는지라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사촌오빠는 새언니를 맞은지 벌써 12년철에 접어들었는데 자식도 벌써 10살에 났다. 하지만 새언니는 겨우 28살 밖에 안되였다. “그 나이에 애는 어떻게 낳았대?” 사람들이 궁금해서 이렇게 물으면 새 언니는 “녀자가 애를 못 낳아?”라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향아가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강물에 빠져 익사했고 그의 엄마는 어느날 친척집에 간다고 나간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엄마가 재가를 했을것이라고 수근댔다. 하여 향아는 그후로 쭉 사촌오빠와 새언니에게 얹혀서 살게 되였다. 향아가 초중을 졸업하게 되자 새언니는 사처로 다니면서 혼사자리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사촌오빠는 그러는 새언니를 말렸다. 하여 새언니는 늘 이를 갈면서 사촌오빠를 미워했다. “저 년을 당금 시집보내요. 그래 그냥 끼고서 첩이라도 만들 셈인가요?” 향아는 어느날 사촌오빠가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두눈이 벌겋게 충혈되여 부들부들 떨고있는것을 직접 본적이 있었다. 향아는 사실 사촌오빠나 새언니가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해줄것이라는 희망조차 가지지 않고있었다. 하여 어릴 때부터 자기의 일은 자기로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첫 달거리가 왔을 때도 그랬다. 그후로 옷을 사도 저절로 어떤 옷이 어울릴가를 따져가면서 직접 샀다. 좀 힘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향아는 그런 일들을 모두 스스로 익히게 되였다. 학교 음악선생님이 향아를 두고 아쉽다는듯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오향아, 너의 손가락은 바로 피아노를 칠 손가락이거든. 참 아쉽구나.” 선생님도 부러워할만치 향아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던것이다. 향아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얼굴에 약간 수집은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천만에요. 저는 아직 놀음감피아노도 본적이 없어요.” 봄이 되면 향아는 사람들을 따라 호수가에 가서 쑥을 뜯었고 가을이면 갈대를 꺾었다. 그리고 또 남자애들을 따라가 고기를 낚거나 반두를 가지고 고기를 건져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진에 가서 잔일을 찾아 돈벌이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조카들에게 얼음과자를 사주었고 옷이나 책가방 같은것들도 마련해주었다. 향아는 그처럼 헴이 들고 눈치가 빨라서 사촌오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며 새언니가 함부로 트집을 잡지 못하게 했다. 후에 새언니는 자기의 사촌동생을 향아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새언니는 향아가 자기의 사촌동생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향아는 별 소리 없이 새언니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향아의 눈에 새언니의 사촌동생 삼우는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였던것이다. 향아는 삼우가 사촌누나인 자기의 새언니처럼 그렇게 마음씀씀이가 나쁘지는 않다고 느꼈던것이다. 향아는 나이를 세살이나 불궈가지고 삼우와 결혼을 했다. 그제야 새언니는 앓던 이를 빼버린것처럼 속이 후련해 했다. 아이를 낳은후 향아는 형주에 가서 시름 놓고 시내구경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향아는 악기상점앞을 지나게 되였다. 상점안에는 빛이 번쩍번쩍 나는 피아노가 진렬되여 있었다. 향아는 그 피아노를 만져보고싶어서 한달음에 상점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앞에서 향아는 저도 몰래 자기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향아는 그 손으로 피아노건반을 한번 눌러보고싶었다. 하지만 그때 향아의 손은 거친 일때문에 벌써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그때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있었는데 그 피아노소리는 그렇게도 아름답게 들렸다. 향아는 피아노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피아노를 치는이는 동그스름한 얼굴을 가진 귀여운 녀자애였다. 녀자애의 손가락은 길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의 손가락보다는 길지 않다고 향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향아는 그 녀자애의 모습에서 어릴 때의 자기를 보는것 같았다. 향아는 녀자애의 곁으로 다가가 피아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향아의 두볼에서는 저도몰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향아는 으스러지게 자기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장언니도 향아의 손가락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너의 손가락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나는 진작 봐냈다. 넌 전생에 꼭 도시에 사는 규수였을거다.” 삼우도 첫날밤에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 손가락이 참 예쁘다니까. 손가락이 길어서 쓰리군이 되여 남들의 돈가방을 집어내면 제격이겠다니까.”   향아는 물건을 다 산후 또 류아주머니네 가게에 들러 소고기 서근을 떴다. 사촌오빠는 언젠가 향아에게 새언니가 지금은 푹 삶은 소고기밖에 먹지 않는다고 말해준적이 있었던것이다. 새언니가 소고기를 즐겨 먹는다니 의례 몇근 떠다드리는것이 당연하다고 향아는 생각했다. 어쩌다가 찾아가는데 새언니가 군소리를 못하게 해야 했던것이다. 전에 새언니가 자기를 어떻게 대했던지 자기는 그 일을 되새기지 않을것이라고 향아는 마음 먹었다. 향아는 진심으로 새언니를 잘 대해주려고 했다. 그러면 이웃들은 시누이가 셈이 들었다고 할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향아는 만족할것이였다. 새언니에게 줄 선물을 산후 향아는 또 집에서 쓸 강두(豇豆)며 조롱박이며 당지의 빛이 나는 오이도 얼마간 샀다. 장언니는 빛이 나는 오이를 미꾸라지에 넣어 푹 고면 맛이 참 좋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향아는 장언니를 생각하면서 빛이 나는 오이를 샀던것이다. 그후 향아는 학교에 가서 아이 둘을 마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즘즉해지기 시작했다. 폭우도 잠간 쉬려는것 같았다. 폭우가 끊자 전야는 온통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죽은 개가 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바람에 차도 놀라서 올리 솟는듯싶었다. 모두들 눈길을 길섶에 돌렸다. 수삼(水杉)나무 아래의 진흙탕에 커다란 황둥개 한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쓰러져있었다. “번개에 맞은게 아닌것 같군. 분명 독침에 맞은거야.” “저기도 한마리가 있네.” 누군가 또 소리쳤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죽은 개를 두고 분분히 의론을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몇만원을 들여 산 장오(藏獒)도 얼마전에 독침을 맞아 죽었다고 했다. 독침을 맞아 죽은 개는 인차 내장을 들어내고 식당에 넘겨주는데 한마리에 2백원은 실히 받을수 있다고 했다. 길에는 미처 끌어가지 못한 독침을 맞은 개들이 쓰러져있었던것이다. 향아는 손으로 애들의 눈을 가리워주었다. 그러면서도 향아는 자기가 더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죽은 개의 몸뚱이에 꽂혀있던 록색의 독바늘이 자꾸 향아의 머리에서 맴돌이 쳤던것이다. 향아는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해먹으려고 했지만 장언니가 기어코 향아네를 눌러앉혔다. 하여 향아는 오자와 함께 장언니네 집에서 한끼를 해결하게 되였다. 향아는 새언니에게 주려던 우유를 한봉지 꺼내 장언니앞에 내놓으면서 언제 시간을 타서 친정에 한번 다녀오자고 청을 들었다. 그러자 장언니가 향아에게 “함께 가지 말고 따로 다녀오자.”고 말했다. 둘이 함께 가면 집에서 기르는 소들을 누가 돌보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하긴 소도적들이 웃실거리는 판에 누군가는 집에 남아서 소들을 지켜야 할것이였다. 장어니는 또 친정으로 자주 가면 자기의 시어머니가 의심을 할것이라고 근심했다. 아직도 10여만원이나 되는 부양비가 시어머니의 손에 있었던것이다. 장언니의 남편은 남방에 가서 일을 하다가 삼년전에 차사고로 돌아갔던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언니는 향아와 별 다른 관계가 없었다. 그저 향아도 락막교에서 들고양이호수로 시집왔기에 비슷한 말투를 쓴다는것 정도로 알고있을뿐이였다. 어느한번, 향아는 진에 가서 신분증을 수속하게 되였다. 그가 순서를 기다리고있는데 누군가 파출소청사 꼭대기에 웬 남자가 죽어있다고 알렸다. 그바람에 사람이 우르르 파출소로 구경을 갔었다. 향아는 그때 장언니가 “엉뎅이소장”의 사무실에 있는것을 보았다. 장언니는 그때 “엉뎅이소장”과 한창 말다툼을 하고있었다. 오가는 말을 들어보니 장언니의 남편이 무슨 불행을 당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장언니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피부색마저 뿌옇게 변해있었다. 장언니는 “엉뎅이소장”을 보고 증명자료를 떼달라는것이였다. 그래야만 남편이 일하던 곳으로 가서 배상을 받아올수 있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웬 일인지 “엉뎅이소장”은 기어코 증명을 떼주지 못한다고 잡아떼는것이였다. “자네의 남편이 그곳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이요? 혹시라도 무슨 범죄전과가 있다면?” 대방에서는 이곳 파출소에서 당사자가 아무 범죄전과도 없다는것을 증명해오라는것 같았다. 장언니 남편의 호구가 여전히 이곳에 있으니 형식적으로 이같은 증명서류를 요구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마저 죽은 마당에도 “엉뎅이소장”은 여전히 원칙을 내세웠다. “만약 자네의 나편이 무슨 범죄전과라도 있으면 어떻게 하냐 말이여. 살인이나 방화 같은 죄라도 저지른적이 있다면 누가 책임질겨?” “사람이 다 죽은 마당에 왜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당신을 찾을가 걱정인겨? 그들 보고 돈이나 배상하라고 할건데 사람도 없는 판국에 소장까지 되는 사람이 순례대로 증명서에 도장 하나 찍어주면 그만이지, 그러면 어디가 덧 나는겨?” 그날 장언니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파출소의 책상을 번져버렸다고 한다. “엉뎅이소장”은 장언니가 공무방해죄를 졌다고 해서 일주일이나 구류소에 가뒀다는것이였다. 남편까지 죽은 사람이 구류소에 갇힌다는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라고 향아는 생각했다. 그후 향아는 늘 장언니네 가게에 가서 남새를 샀다. 친정이 같은 고장이라 차츰 서로는 마음을 나눌수 있는 좋은 친구로 되였던것이다. 장언니는 료리를 참 잘 볶았다. 그덕에 향아는 맛나게 한때를 먹을수 있었다. 그날 먹은 료리는 황고어(黄古鱼)에 쑥갓나물을 넣어 곰한것이였다. 마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산해진미 생각없네, 황고어에 쑥갓나물을 넣고 고면 제격이라네” 금방 머리를 쳐들 때의 쑥갓나물의 연한 약냄새가 황고어의 비린내를 없애주고 황고어의 비린내가 또 쑥갓나물의 약냄새를 눌러주어 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던것이다. 거기다가 고추와 마늘을 약간씩 다져넣으니 국 또한 맛이 진해서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판이였다.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맛 좋은 음식을 구경하지 못했던 두 아이는 금방 감옥에서 나온 사람인양 황고어를 한마리씩 손에 들고 하모니카를 불듯이 한쪽으로 쓱 당겼다. 그러자 손에는 고기 한점 없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쑥갓나물에도 황고어의 냄새가 푹 배여있었다. 향아는 락막촌으로 새언니를 보러가면서 열쇠를 장언니에게 맡겼다. 그리고 소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장언니는 밤에 향아네 집에서 자면서 소와 집을 지키겠다고 했다. 새언니는 간신히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몸은 너무도 여위여 겨릅대를 방불케 했다. 향아는 새언니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새언니는 병으로 말도 하지 못했다. 새언니는 눈물이 그렁거렁해서 시누이를 힘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사람은 아마도 병이 들어야 얼굴에 선량함을 담을수 있는가보다. 향아는 새언니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나를 알아볼수 있나요?” 새언니는 간신히 머리를 끄덕였는데 그바람에 입귀를 타고 멀건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향아는 새언니의 입귀에서 흐르는 침을 닦아준후 영양품과 소고기 등 식품을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사촌오빠는 또 “저 사람은 소고기를 즐겨한다니까. 보드랍게 찢어 줘야 해. 고추는 넣지 말구. 고추를 조금만 먹어도 한참이나 구역질을 한다니까.” 하고 말했다. 향아는 직접 새언니에게 음식을 끓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촌오빠가 말했다. “여보, 향아가 당신을 주자고 소고기를 가져왔다오.” 향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새언니의 무릎을 덮은 낡은 솜저고리를 잘 여며주었다. 향아는 주방으로 가서 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향아는 사촌오빠의 명도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어찌 젊어서 안해가 이렇게 힘든 병을 얻을수 있단 말인가? 주방에는 온통 때자국이 꾀죄죄한 식기들이였고 구석구석 거미줄이 드리워있었다. 가시지 않은 사발이며 쟁반이 가득 쌓여있었다. 녀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그렇게 첫눈에 티가 나는 모양이였다. 그 주방은 전에 향아가 관리했었다. 향아는 사발이나 쟁반을 알른알른하게 닦았고 남새를 깨끗하게 다듬었었다. 도마에 남새를 올려놓고 썰 때면 칼소리가 여간만 절주있고 흥겹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주방엔 생기가 차넘쳤다고 할수 있었다. 소고기를 씻어 넣은 가마가 불렁불렁 끓는것을 보고난 향아는 새언니를 해볕 좋은 창턱아래로 안아다가 볕쪼임을 시켰다. 마을사람들이 향아가 온것을 보고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또 새언니의 병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모두들 향아의 사촌오빠가 매우 힘들게 사는데 참으로 불행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향아의 사촌오빠는 늘 날 밝기전에 밭으로 나가는데 남들이 밭으로 나가면 벌써 밭 두무가량을 갈아엎은뒤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은 또 새언니가 너무 린색하다고들 나무랐다. 그래도 사촌오빠는 아무말도 못하고 산다는것이였다. “너의 오빠는 실로 너무 로실해서 탈이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집에 남아 녀편네를 보살피고있단다. 오줌똥을 받아내면서 말이다. 너의 새언니가 어디가서 네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날수 있겠느냐? 너희들 오씨네 식구들은 실로 법이 없어도 살 사람들이란다.” 향아는 푹 삶은 소고기를 잘게 찢어서 새언니에게 먹였다. 3일후, 향아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떠날 때 사촌오빠는 향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밭은 나도 어쩔수가 없구나.” 사촌오빠네 집에 도착했던 날 향아는 사촌오빠를 보고 밭에 들어온 물을 빼는 일을 도와달라고 청을 들었던것이다. 사촌오빠는 향아의 손을 잡고 또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면 저 사람은 누가 돌보겠느냐?” 새언니네 친정에서는 아예 새언니를 죽은 사람으로 치부했는지 한달이 다 가도 얼굴 한번 들이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너네 그 밭 말이다. 넘 작아서 양수기를 동원하면 애 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것이다. 올방개를 심을수 없다니까 미나리를 심어보렴. 저 사람이 삼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지? 나는 그저 삼우가 도시로 돈 벌러 갔다고만 했단다.” 향아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오동나무아래의 장언니네 매대가 비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문에는 자물쇠가 잠궈져있었다. 향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으로 장언니를 찾았다. 그때 장어니는 밭에 있다고 했다. 향아는 그 길로 밭에 나갔다. 향아는 그만 깜짝 놀라고말았다. 뜻밖에도 그때 장언니는 어디에서 빌려왔는지 작은 양수기로 밭의 물을 뽑고있었다. 배수관은 밭으로부터 백여메터나 길게 늘여져있었다. 얼마나 물을 뽑아냈는지 묘들이 이미 머리를 내밀고있었다. 향아는 장언니가 너무도 고맙게 느껴져 목이 메여올랐다. 장언니는 머리를 들어 향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보고 심으라고 하지 않았니? 네가 낟알을 걷우지 못하면 내 마음도 편치 못하지. 내 재간에 배상할수도 없구. 하하하…” 장언니는 양수기를 빌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기름값이나 좀 쥐여주면 될것이라고 했다.   입에 발린 말을 할줄 모르는 향아는 정말 뭐라고 더 이상 고마움을 표시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향아는 장언니에게 식사를 했는가고 물었다. 아직 식전이라고 장언니가 말하자 향아는 주저하지 않고 곧추 마을어구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가 볶음밥을 시켜다 밭두렁에 앉아서 먹었다. 향아는 올 때 맥주도 한병 들고왔다. 장언니는 술을 참 잘 마셨는데 웬간한 남자들보다도 주량이 컸다. 성격도 남자들처럼 거칠었다. 그들의 뒤는 푸르른 물결이 출렁이는 들고양이호수였다. 차츰 밤장막이 드리우고 달빛이 어슴푸레 대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들고양이가 물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내는 눈빛은 마치도 고기배에서 반짝이는 등불같아 보였다. 들고양이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는 그처럼 높고 앙칼스러웠다. 들고양이소리와 어울려 퍼지는것은 언제나 끊을줄 모르는 개구리울음소리였다. 두가지 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사뭇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그바람에 양수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는 그처럼 단조롭고 작게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도 어쩌면 밤장박이 드리운 전야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리들에 진작 조화된듯싶었다. 향아는 개구리울음소리를 좋아했다. 들고양이호수에 시집을 와서부터 향아는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으며 이 마을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고보니 개구리울음소리는 향아가 들고양이호수에서 살아가는 리유라고 할수 있었다. 개구리울음소리는 봄에 뾰족뾰족 머리를 쳐드는 새싹들과 함께 시작되였다. 개구리울음소리는 마치도 흠입력이 풍부한 자연의 호소와도 같았다. 그 울음소리는 사람들이 묵묵히 살아가는 동력과도 같은것이였다. 이밤, 산간의 고즈넉한 전야에서 들려오는 원시적인 음악은 바로 그 작은 생령들의 장엄한 합창이였다. 물의 따스함, 바람의 훈훈함, 심록색의 수초와 파아란 벼모들 그리고 아름다운 련잎과 수련초(水帘草)는 개구리들의 장엄한 합창과 어룰려 뭔가를 이야기 하는듯싶었다. 향아에게 있어서 개구리울음소리는 시골의 꿈의 한자락이였다. 훈훈한 바람으로 보아 계절은 5월에 들어선듯싶었다. 바람은 지심의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것이라고 향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바람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의 웨침 같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물에 들어서서 물속의 수초를 건져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풀잎이 양수기에 말려들어가 사고가 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잘 흘러내리게 했다. 그후 그들은 밭두렁에 올라가 발과 다리를 씻었다. “너 곤하지? 잠간 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눈을 붙여라.”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땅에 비닐쪼박을 펴서 습기를 막았다. 장언니는 아까 맥주 한병을 대부분 마시고 향아에게 몇 모금 맛을 보라고 했다. 향아는 근본 술을 마실줄을 모르기에 몇 모금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다. “술도 그냥 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시면 돼.” 장언니는 웃으면서 향아에게 말했다. 향아는 머리가 몹시 무겁고 아프다고 생각되였다. 향아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장언니가 가까이에서 오줌을 누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향아는 눈까풀이 자꾸 내려오는감을 느꼈다. 진종일 너무 힘들었던것이다. 장언니가 다리를 쭉 폈다. 향아는 장언니의 다리를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인차 눈을 감았다. 자는지 마는지 향아는 일종 혼미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향아는 자기가 장언니에게 새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고 생각했다. 들고양이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손전지를 들고 향아네를 향해 오고있었다. 향아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향아네를 지나가버린 뒤였다. 그들의 거친 목소리만 여전히 바람에 날려올뿐이였다. 장언니가 뭐라고 말하느것 같았는데 향아에게는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때 장언니의 손은 향아의 어깨에 올려져있었다. 이어 장언니는 손으로 향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향아는 또 장언니의 손이 자기의 목쪽으로 천천히 미끌어져 내려온다는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비몽사몽간에 전해지는것이였다. 그때 향아는 아직 완전히 잠을 깨기전이였다. 누군가 자기를 애써 꿈속에서 끌어내는듯한 그런 환각이 들었다. 그때 장언니의 목소리가 향아의 귀전에 울렸다. “향아야, 너의 피부는 정말 귀신도 놀랄지경이구나. 아마 마을에서 제일 좋을거다. 새끼를 낳은 녀인네라면 누가 믿겠니?” 그때 향아는 머리를 장언니의 사타구니쪽에 묻고 그곳으로부터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있었다. 향아는 어릴 때 엄마의 품에 머리를 박고있는 자신을 보는것 같았다. 장언니의 손은 얇은 적삼 하나를 사이두고 가슴으로부터 천천히 복부쪽으로 미끌어오고있었다 “향아야, 넌 배가 하나도 안 나왔구나. 처녀애들 같다니까. ” 간간히 들려오는 장언니의 석쉼한 목소리는 그때 웬 일인지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장언니의 얼굴이 차분하게 향아의 얼굴에 대였다. 이어 장언니의 입술이 향아의 입술우에 포개졌다. 그때 장언니의 동작은 거칠지 않았다. 마치도 그 모든 동작이 무의식중에 이루어지는것 같았다. 향아는 첨에 자기의 몸뚱이를 장언니에게 맡겨버린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언니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포개지는 순간 향아는 일종의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쫙 펴지는것 같아 흠칫 몸을 떨었다. 장언니는 향아가 추워서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웃옷을 벗어서 향아의 몸에 덮어주었다. 향아는 완전히 잠에서 깨여있었다 하지만 향아는 그대로 누워서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나를 이처럼 따뜻하게 만져주었던가? 향아는 영원히 그대로 누워 잠들고싶었다. 개구리울음소리는 여전히 전야에 울려퍼지고있었다. 교교한 달빛아래에서 우렁찬 개구리울음소리는 짙은 안개와도 같이 밤장막을 칭칭 감싸고 향아의 꿈을 보듬어주고있었다. 장언니의 부드러운 손은 여전히 가담가담 향아의 몸을 더듬고있었다. 향아는 수정을 가득 담은 큰 솥이 자기의 몸에 그대로 엎어진듯한 묘한 느낌을 마음껏 향수하고있었다. 반디불이 주변에서 깜빡깜빡 빛을 뿌리고있었는데 마치도 별똥이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향아의 웃몸은 장언니의 운동복에 가리워져있어서 아주 따듯했다. 세상은 그 순간 장언니의 손을 감지하지 못하고있는것 같았다. 그 손이 바야흐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다시 쓰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계절을 알리느라 신나있었다…   땅에 습기가 돌자 향아는 씨를 뿌리려고 서둘렀다. 향아는 먼저 오이를 심으려고 작심했다. 모종은 형춘(荆春)40호였다. 그 모종은 당지에서 나온것으로서 오이의 모양새가 아주 름름했고 잔가시도 털도 없었다. 향아는 또 강두도 심으려고 준비했다. 향아는 그때까지도 그날밤의 야릇하던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종 꿈속을 헤매는듯한 환영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날아침, 향아는 눈을 뜨고서야 이슬에 옷이 흠뻑 젖은것을 발견했다. 향아는 그날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던것이다. 그때 장언니는 양수기임자와 결산을 하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것이다. 양수기임자는 그때 벌써 양수기와 배수관을 정리하여 차에다 실은 뒤였다. 향아는 뛰여가서 돈을 물었다. 물이 밭에서 빠진것을 보니 기뻐서 날것만 같았다. 장언니가 먼저 뚱뚱한 몸뚱이를 움직이며 떠났다. 빨리 가서 남새매대를 열어야 한다는것이였다. 하기야 남새나 과일을 제때에 팔지 않으면 못 쓰게 될수 있었던것이다. 장언니는 가면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던지 향아에게 소리쳤다. “너 빨리 집에 가서 휴식 좀 해라. 몸이 그렇게 허약해가지구서야.” 양수기임자는 돈을 세여본후 향아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충해를 입지 않을거요. 이렇게 물에 말끔히 씻겼는데 어찌 해충이 남아있겠소.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된거지. 올해 대풍을 거두기를 바라오.” 양수기임자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어쩌면 그가 논에 있던 모든 번뇌를 다 달고 가버렸는지 논은 또다시 옛날의 고요를 되찾은듯 했다. 향아는 다시 두눈을 감았다. 오래동안 남에게 만지워 본적이 없던 몸, 물거미마냥 자유로이 움직이던 장언니의 손 그리고 그의 가벼운 발걸음… 장언니는 과연 무엇을 하려는것일가?   그런것들을 생각하자 향아는 온몸이 굳어지는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해볕이 따스한 어느날이였다. 향아는 혼자 남새밭에 나갔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득 자라있었다. 형춘40호도 사실은 장언니가 향아를 보고 심으라고 한것이였다. 모든것이 어쩌면 장언니와의 계약이 아닌가 생각되였다. 그 계약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향아를 향해 다가온것이였다. 향아는 일이 어떻게 될지를 알수 없었다. 하지만 향아는 형춘40호를 심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맞춤하게 습기를 먹음은 폭신폭신한 땅을 밟고선 향아는 곡식들이 땅에서 머리를 밀고 나올것 같은 뜨거운 느낌을 온몸으로 감수할수 있었다. 그 계절, 파종을 하고 김을 매느라면 사람들은 바로 그 땅의 한부분으로 된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사람은 더구나 땅을 떠날수 없어 하는 모양이였다. 이 낯선 호수가에서 향아는 스스로 십여년을 소리없이 살아왔다. 자매도 없고 부모도 형제도 없이 그리고 장엄한 의식도 없이 묵묵히 살아왔던것이다. 마치도 바람에 날려온 이름 없는 풀씨처럼 이 곳에 떨어져 싹이 트고 뿌리를 박았던것이다. 향아는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세상살이에 허둥거리다가 아들을 보게 되였다. 그렇게 가정이라는것을 일구어냈지만 향아는 여전히 자기는 가정이 없는 혼자의 몸으로 여기졌었다. 누구도 눈 여겨 보아주지 않는 삶, 누구의 관심도 자아내지 못하는 녀인, 급히 이 땅에 왔다가 급히 늙어가는 인생, 호미와 낫과 소고삐와 밥주걱을 동무하여 늙어가는 생명, 혼자서 흙과 씨름하는 사람―향아는 자신이 마치도 오라지 않아 두 동강이 나게 될 지렁이와 같다고 생각되였다.   향아는 침대에 늘 자기의 냄새가 배여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크면서 품을 떠나자 향아는 당연히 혼자서 침대를 쓰고 살았던것이다. 향아는 언제나 남이있는 절반 침대를 슬프게 생각하고있었다. 향아는 언제나 자기의 자리에서만 잘뿐 삼우가 눕던 그쪽은 다치지 않았다. 어쩐지 그 자리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것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어쩌면 그 자리는 다치기만 해도 아픔이 느껴질것 같았다. 향아는 침대보를 반듯하게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소도 배가 불룩하게 먹였다. 집을 다 거둔후 지어는 변소까지도 깨끗하게 청소해놓았다. 두통의 봉선화화분에도 물을 주었다. 희딘흰 들냉이꽃은 훈훈한 바람에 시름없이 날리고있었다. 집 뒤뜰에 있는 못에서 련은  해볕을 받아 노르스름하게 번지고있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동에서 서쪽으로 분주히 헤여가고있었다. 전에 종래로 눈길 한번 준적이 없는 물고기들이였다. 삼우는 전에 물고기들이 노니는 그 못을 죽은 물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배수구나 논밭에서 남생이나 드렁허리를 주어다가 못에 던져주기도 했다. 련뿌리는 파내여 설에 먹기도 하고 가끔은 사촌오빠네 집에 보내주기도 했었다. 닭들이 구구구 기분좋게 울어댔다. 그것들은 마파람촌장네가 가두어서 기르는 닭이 아니라 이웃들이 밖에 내놓고 기르는 닭이였다. 닭들은 대가리를 건뜻 쳐들고 자유롭게 뛰여다녔다.   그날밤에 장언니가 향아를 찾아왔다. 한손에는 과일구럭이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안에는 미꾸라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향아는 전에 장언니와 뒤뜰안의 못에다가 미꾸라지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한적이 있었던것이다. “너 래일 오이를 심는다고 하지 않았니? 종자는 물에 불궜니? 미꾸라지와 오이를 한데 고면 황고어에 쑥갓나물을 한데 곤것보다 더 맛있단다.” 그들은 손전지를 찾아들고 뒤뜰에 들어갔다. 청개구리들이 놀라서 풀떡풀떡 뛰였다. 향아가 자루아구리를 풀었다. 자루에는 물도 얼마간 들어있었다. 미꾸라지들은 자루에서 꾸불떡거리다가 못으로 들어갔다. 미꾸라지들은 한껏 몸을 흔들어대며 못속으로 사라졌다. 향아가 장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이것들이 내것인가요? 아니면 언니의것인가요?” 장언니가 잠간 생각을 굴리다가 말했다. “물론 내것이지. 네가 나를 대신해서 기를뿐이야. 그러니 내가 두마리를 먹을 때 넌 한마리만 먹어야 해. 게다가 내가 너보다 더 뚱뚱하니까.” “알았어요. 좋아요.” “만약 늙은 오이에 미꾸라지를 고으려면 내가 나서는게 나을거다.” 그 말에 향아가 대답했다. “언니가 만든 료리는 정말 맛있어요.” 이때 장언니가 말머리를 돌렸다. “향아야, 넌 청바지를 입으면 더 멋져보인다. 바지가 엉뎅이를 꽉 조이고 다리가 길어서 말이야.” 그들은 오래도록 컴컴한 못가에서 한담을 했다. 향아는 여러번이나 장언니가 만든 료리가 맛있다고 치하했다. 그러자 장언니는 자기 남편도 살았을 때 자기가 만든 료리가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밤에 남편이 자기를 찾아와서 장에 조린 생강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장언니는 또 남편이 자기가 사는 곳의 화식이 너무도 차하다고 불평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장언니는 염라대왕도 탐오부패를 일삼고있는 모양이라고 했다면서 하하하 웃는것이였다. 향아가 그러는 장언니를 보고 물었다. “벌써 몇년이 지났잖아요? 왜 다른 사람을 찾지 않아요?” “찾기는, 시끄럽기만 하지. 혼자 사는게 얼마나 편해. 그리구 내가 무슨 남자 손을 빌 일이 있니.” “남자들의 손을 빌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정은 있어야 하잖아요?” “가정? 나와 내 새끼가 있으면 가정이 아니냐? 다른것은 필요 없어. 만약 내가 다른 남자를 찾아봐라. 나는 이 들고양이호수에 더는 남아있을수 없을거다. 시어머니는 당장 나를 쫓아내려고 할것이다. 나는 아직 애의 부양비로 만원밖에 받지 못했단다. 지금은 더 이상 생활비를 주지 않지만 우리 애가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게 되면 주겠지. 사실 나는 그들과 생활비를 달라고 징징거리기 싫단다. 만약 내가 마음 먹고 소송이라도 걸면 그들은 무조건 지고 나앉을걸. 생각해보면 그들도 불쌍하지 뭐. 그들은 아들을 잃지 않았니?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니? 내 마음이 여린거야. 될대로 되라지 뭐. 나는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다른 남자도 찾지 못하는거야. 그리고 사실 남자를 찾아서는 뭘 하겠니.” 향아도 장언니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장언니가 또 입을 열었다. “애 아버지가 살았을 때 내가 얼마나 그에게 맞으면서 살았는지를 너 아니? 그가 죽으니 내가 해방을 받은거지 뭐. 봐라, 애 아버지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살고있잖니? 어쩌면 더 잘 산다고 할수도 있지.”   들어보면 장언니도 사실은 힘들게 사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가 힘들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던것이다. 장언니는 무엇이나 남들에게 지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였다. 향아는 장언니에게 어딘가 영웅적인 기백이 있다고 생각했다. 장언니처럼 파출소 소장의 책상을 뒤집어 엎은 남자가 마을에 또 있는가? 잠간후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장언니는 갈 때 세면도구와 전에 씻어서 널었던 옷을 가지러 왔다고 했다. 향아는 그것들을 찾아서 곱게 포개여 장언니의 손에 들려주었다…     진응송: 1956년 호북에서 출생. 장편소설, 소설집, 수필집, 시집 30여부를 출판. 중편소설 “어치는 왜 지저귈가?”는 “로신문학상”을 받음. 현임 호북성작가협회 부주석, 호북성문학원 원장.    
354    13층 1509 * 류대 댓글:  조회:1967  추천:0  2012-04-24
    13층 1509   류대   어느 여름의 저녁무렵이였다. 내가 퇴근하려고 바삐 서두르고있는데 갑자기 왕천의 전화가 걸려왔다. 왕천은 웬 일로 매우 흥분해있었는데 마디마다 끝소리가 바르르 떨리는것이 힘에 부쳐 아래말을 겨우 이어대는것 같았다. 왕천은 끝내 집이 생겼다는것 같았다. 집, 똑같은 낱말이지만 시종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을 지지눌러 숨도 바로 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요즘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떠다니는 구름송이처럼 너무 멀어보이고 또 허무하게 느껴졌다. “왕천, 네가 집이 생겼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왕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라.” 어쩌면 천진하기까지 한 왕천의 말에 나는 픽- 하고 랭소를 지었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에 립수교곁에 있는 “인간세상”이라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왕천이를 만나기로 결심한것은 그가 2년전의 그 리별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알고싶어서였다. 그때 아무 리유도 없이 그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그 억울하고 분하던 기분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서 꿈틀대고있었다. 혹시 50살이나 되면 나와 왕천 사이에 있었던 잡다한 일들이 그저 한번 웃어넘길수 있는 에피소드로 변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을 저며내는듯한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그 왕천이란 사람이 끝내 망망한 사람바다에서 파도에 밀려 내앞에 나타났던것이다. 나는 한시바삐 지금의 그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래야 나는 진정으로 왕천으로부터 해탈할수 있을것 같았다. 금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전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잡지를 보고있는 남자친구에게 래일 특근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나 같은 인테리어설계사가 특근하는것은 밥 먹듯 흔한 일이였다. 많은 업주들이 쉬는 날을 리용해서 인테리어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휴식날 혼자서 거리를 거니는데 습관이 되여있었다. 그런 남자친구가 웬 일인지 유심하게 나의 얼굴을 뜯어보며 “진짜야?” 하고 의미있게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놀랐다. 나의 어조는 전과 아무 차이점도 없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물을가? 나는 남자친구의 그 야릇한 물음에 어딘가 불안스러웠다. 나는 급히 몸에 걸쳤던 목욕수건을 벗어들고 물에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말했다. “특근하는데 무슨 진짜, 가짜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신경질적으로 버럭버럭 책장을 번져대다가 입을 열었다. “래일 만난다는 그 업주가 긍정적으로 보통이 아니겠지?” 그 말에 발끈해진 나는 목욕수건을 남자친구의 머리에 확 뿌려던지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친구는 덮어쓴 목욕수건을 빠끔히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풍만한 나의 몸뚱이를 삼킬듯이 바라보면서 실실 웃다가 말했다. “괜히 해본 소린데 왜 흥분하구 그래?” 기분을 간지르는 끝소리에 이어 남자친구의 코방울이 벌름거려졌다. 그 사람은 분명 내 몸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를 맡고있는것 같았다.   나의 몸은 왕천의 따뜻하고 자상한 애무속에서 차츰 성숙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나의 몸을 더듬던 왕천의 손을 그려보노라면 여전히 짜릿짜릿한 전률을 느끼군 한다. 나는 희고 가느다란 그 손이 키가 1.82메터나 되는 왕천의 몸에 달릴것이 아니라 예쁘고 우아한 기질을 가진 어느 녀사의 몸에 달려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롱구뽈을 던지면 영낙없이 그물에 걸려 관람자들의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멋지게 기타를 치면 한패의 남자애들이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다. 왕천은 그 손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멋진 시를 지어 학교신문이나 석간신문의 문예부간에 발표했었는데 갈수록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였다. 내가 왕천이를 처음 만나게 된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가냘픈 몸매의 나는 그때 금방 분명치 못한 미래를 두고 고민할 때였다. 앞날을 생각하면 마치도 자신이 뽀얀 운무속에 놓여진 기분이였고 그 운무속에 있는 수많은 소택지와 함정때문에 어디로 갔으면 좋을지 몰라 방황하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짙은 안개에 삼키우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왕천의 하얀 두손을 잡아야만 겨우 안개속을 헤집고 나올수 있었다. 그렇게 왕천은 나를 대학교의 마지막 2년을 용케 헤쳐갈수 있게 이끌어주었던것이다. 폭풍우가 유난히도 무섭게 쏟아지던 그후의 어느 오후, 왕천은 또 나를 이끌고 북경으로 가는 렬차에 올랐었다. 우리가 북경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릴 때, 비는 금방 그친 뒤였다.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북경의 공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향긋함마저 스며있는듯싶었다. 길가에 줄느런히 늘어선 프랑스오동나무잎에는 수정 같은 물방울들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하늘을 치솟을듯한 고층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마주왔는데 우리가 어디론가에 깊숙이 빠져드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승용차들이 실북나들듯 오가면서 뽀얀 물안개를 날리고있었다. 장안거리를 걷고있노라니 마치도 꿈속을 거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왕천은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아안고 왼손으로는 즐비하게 일어선 고층건물을 가리키며 감탄을 뽑았다. 아츠랗게 보이는 층집꼭대기는 원래 모양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신기루를 보는듯하였다. “우리 집도 저속에 있게 될거야.” 왕천이 엉뚱하게 말했다.   “인간세상”이라고 불리우는 그 음식점은 워낙 작은 가게에 지나지 않았는데 스낵바였다. 하기에 대부분 전철을 타기에 급급한 손님들이였다. 가게옆은 하수도가 잘 통하지 않아 구정물이 고여 퀴퀴한 냄새를 풍겼고 쓰다 버린 위생지나 일차성저가락 같은것들이 사처에 나뒹굴었다. 정말이지 배가 고파 참지 못할 형편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선뜻이 그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립수교지역이 날로 번화하게 발전됨에 따라 그 가게도 규모를 넓히게 되였고 그럴듯하게 장식하여 제법 큰 술집모양을 갖추게 되였다. 나는 한산한 홀에 잠간 앉아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것 같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사실 할 일이 없는 복무원들이 혼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자주 흘끔거렸다. 시계를 보니 정각 10시였다.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들면 워낙 우리가 살던 아빠트를 볼수 있었다. 그 아빠트는 전에 이 지역에서 군계일학(鹤立鸡群) 같은 존재였었다. 그 아빠트의 1509호가 바로 우리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아빠트들에 포위되여 위용을 잃었고 늘 제대로 해볕도 보지 못하게 되였다. 아빠트들에서 반짝이는 창문은 어두운 거울을 방불케 했다. 어지러운 그 창문들마다에는 혼란스럽고 번다한 인간세상의 모습이 투영되여있었다.   우리가 집주인과 함께 집을 돌아볼 때 왕천은 어느새 엘레베터에 13층과 14층이 없이 12층 다음에 직접 15층이 표시된것을 발견했다. 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개발상이 미신을 믿었던 모양이예요.” 집주인이 말했다. “개발상이 총명하다고 해야지요. 13층을 그대로 13층이라고 부르면 나라도 사지 않았을거예요.” 집주인은 등이 약간 휜 중년남자였다. 우리는 그를 리아저씨라고 불렀다. 리아저씨는 얼굴이 누르께하고 몸이 여위다 못해 금시 바람에 날려버릴것 같았다. 하여 나는 그가 엄중한 영양불량이나 심한 난치병이 있지 않을가고 생각하였다. 리아저씨는 딸애가 너무 말썽을 일으켜 얼마전에 큰 화병을 앓고 며칠전에 출원했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세를 맡으려고 하는 그 집은 리아저씨가 딸이 시집을 가면 주려고 준비해놓은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리라고 부르는 그 딸은 근본 아버지의 감수에 대하여 달가와하지 않고 얼마전에 사천에서 온 한 남자와 함께 심수로 도망을 쳤다는것이였다. 리아저씨는 딸이 자기를 버리고 심수로 간것에 대해 별로 의견이 없었다. 하지만 딸을 꼬드긴 그 사천사람에 대해서는 격분하였다. 리아저씨는 짙은 하북방언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그 애가 어쩌면 외지사람하구 도망갈 생각을 다했을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심수로 간 리리때문에 우리는 순조롭게 북경에서 집을 구할수 있었다. 집은 매우 정교하게 꾸며져있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내가 보아도 흠집을 잡기 힘들었다. 아니, 내가 되려 그 집 장식에서 전업적인 계발을 받았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가구는 모두 새것이였다. 침대나 쏘파에 씌운 비닐마저 아직 걷어내지 않았었다. 옷장에서는 여전히 장식기름냄새가 간간이 풍겨나왔다. 바닥과 통한 베란다는 매우 널직했다. 왕천은 창턱을 짚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공현장의 기중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리아저씨, 왜 흔들의자는 갖추지 않았나요?” 내가 웃으면서 왕천에게 한마디 했다. “넌 리아저씨를 아버지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나는 그때 머리수건을 쓴채로 방안의 먼지를 털어내고있었다. 집안은 겉보기에 아주 깨끗한듯했지만 정작 손을 대니 곳곳이 먼지투성이였다. 왕천은 내가 열심히 걸레질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대충 하고 그만둬라. 너 진짜 이 집을 제 집으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힘을 남겼다가 후에 진짜 제 집을 만났을 때 써라.” 후에 나는 한 장식회사에서 설계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업주들과 인테리어에 대해 상의할 때마다 내 집을 장식하고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았다. 하기에 나는 매번 설계를 할 때마다 갑절 신경을 써서 구석구석 따듯하고 안온한 느낌이 풍기게 했다. 이런 사업태도는 업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많은 업주들이 직접 나를 찾아와 일을 맡겼다. 일들이 너무 밀려 인츰 시간을 내지 못할 때면 며칠씩이라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왔다. 기다리기에 급급한 일부 업주들은 나에게 돈봉투까지 건네면서 자기 일을 먼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수입은 점차 높아졌지만 퇴근은 날로 더 늦어졌다. 따라서 왕천은 나의 전문 보디가드나 다름없게 되였는데 매일 내가 퇴근할무렵이면 회사아래에 와서 기다렸다. 늦은 밤이면 거리는 그야말로 한산했는데 행인을 기다리는 불법택시들에서 가끔 담배불이 반짝일뿐이였다. 왕천은 길가의 감탕나무사이에 쪼크리고 앉아 나의 사무실창문을 외롭게 지켜보았다. 왕천은 취직이 잘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기에 겉으로는 아주 박식하고 배포유한것 같았지만 직접 취직 일선에 나서서는 자기가 배운 전업이 그닥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도 둬번 취직하였었지만 모두 시용기를 넘기지 못한채 용돈 몇백원을 받아들고 나와버렸다. 그는 다시 세번째 회사를 찾아볼 흥취를 잃고말았다. 아니, 실지는 용기를 잃었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어느날 밤, 왕천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 생각컨대 내가 무용지물 같지?” 그때 왕천은 창문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짙어가는 밤장막을 감상하고있었다. 머리와 가까운 창문유리에는 왕천의 절망 어린 얼굴이 비껴있었다. 짙어가는 어둠은 왕천의 절망과 함께 당금 유리를 깨고 온 집안에 덮쳐들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로임을 받았었다. 기본로임에 장려금을 합하니 꽤나 되였다. 거기에 보스가 또 일을 잘했다고 따로 500원을 얹어주었었다. 나는 그 돈을 고스란히 왕천의 손에 쥐여주면서 그가 입에 침이 마르게 나를 칭찬할것이라고 수판알을 튕겼다. 하지만 왕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돈을 침대우에 훌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돈이 침대우에 되는대로 널렸는데 마치 누군가 마구 던진 꽃종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얼굴에 가득 담았던 웃음을 거두고 왕천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를 위안했다. “나는 네가 북경으로 온 목적이 단지 취직을 위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천은 머리를 돌려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와락 당기며 품에 꼭 그러안아주는것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고있던 왕천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다.” 이튿날아침, 내가 눈을 떠보니 그는 벌써 창가에 붙어서서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인츰 머리를 돌리는것이였다. 벌겋게 충혈된 두눈으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의 얼굴에는 뭐라고 형용할수 없는 묘한 웃음이 가볍게 깔려있었다. 나는 오래동안 그의 그런 종잡을수 없는 웃음을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왕천이 뭔가를 충분히 생각해둔후 나를 놀리느라고 짓는 습관적인 웃음이였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물어도 그는 그냥 모르쇠를 놓았다. 내가 그 표정때문에 불안해서 어쩔바를 모르다가 드디여 분통을 터쳐야 그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적당하게 둘러댈뿐이였다. 이것은 나와 왕천이 오랜 생활속에서 형성한 일종의 소통습관 같은것이였다. 어쩌면 그 습관이 다소 과도하다 할수 있었지만 그래도 왕천은 나중에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입을 열기전에 앞질러 말했다. “여보, 나 책 한권을 쓸거야.” 우리는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편안하게 나날을 보냈다. 1509호에서 그는 나중에 요절하고야말 자기만의 꿈을 싹 틔우고있었던것이다. 집값은 사람들을 놀래우면서 올리뛰였다. 나는 그무렵에 업주들의 얼굴에서 매일 큰 리익이나 챙긴듯한 그런 행복감을 읽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되려 말할수 없는 처량함과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있었다. 나는 그 처량함과 아픔을 왕천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자기를 잊은듯한 경지에 처해있었다. 그의 눈확은 하루가 다르게 깊이 꺼져들어갔지만 두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오기가 빛발치고있었다. 그가 두눈을 껌뻑거릴 때마다 나는 그의 눈까풀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이른아침이면 그는 밤을 밝히며 컴퓨터 건반을 두드리던 그 손으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워낙 자애롭고 따스하던 그 손길은 급하고 지어 조폭하게 변했다. 그 미묘한 변화는 나에게 일종 새로운 느낌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몽롱하고 취한듯한 느낌속에서 한번 또 한번 고조에 들어갔다. 내가 출근할 때면 그는 달콤하게 꿈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어린애처럼 부담없이 편하게 누워있는 그를 살펴보면서 나는 꿀이라도 마신듯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에게 달콤한 키스를 해주었다. 그런 날이면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였다. 나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에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오직 왕천만 내곁에 있으면 모든것에 만족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은 왕천을 바라보면서 내가 책임지고 왕천이를 “키울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늘 집세때문에 근심하였다. 이미 집세가 한배나 올랐던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있는 1509호는 여전히 우리가 들어올 때의 그 집세값을 유지하고있었지만 언젠가는 꼭 오르게 될것이였다. 만약 집세가 절반 오른다면 나와 왕천이가 쓸 생활비는 천원도 되지 않을것이였다. 매번 집세값을 주는 날이면 나는 숨이 한줌만해서 왕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왕천은 그무렵에 리아저씨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다. 집세를 물 때가 딱히 아니더라도 왕천은 2, 3일에 한번씩 리아저씨를 찾아가 한담하였는데 마치 북경에서 친척을 만난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를 찾아갈 때 늘 과일이나 보건식품을 사들고 갔다. 한번은 자아심리조절에 관한 도구서적까지 사가지고 간적이 있었다. 왕천은 리아저씨가 그 책을 읽으면 능히 딸이 사천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는 그 음영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리아저씨도 왕천이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리아저씨는 왕천의 손에 파 한단을 들려주거나 마늘 몇쪼각을 들려보낼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만두 한봉지 들고 오기도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네 집 일은 우리 집 일처럼 잘 알고있었다. 그러는 왕천이를 보면서 나는 리아저씨가 혹시 요즘 시내의 세집값이 놀랍게 오르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것은 아닐가고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리아저씨가 보내준 만두가 돌멩이처럼 생각되여 도무지 삼킬수 없었다. 그날 밤, 하늘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우뢰가 진동하면서 가끔 번개까지 쳤다. 그러다가 또 우박이 쏟아져 유리창을 때리기도 했다. 그때 왕천은 컴퓨터앞에 앉아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부드러운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대고있었다. 나는 이불속에 누워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꿈나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되여 다급한 발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말았다. 눈을 뜨고 사위를 살펴보니 왕천이 집안에서 불안한 기색을 띠고 왔다갔다하고있었는데 우리에 갇힌 성난 승냥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불안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다가 난국에 빠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침대머리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베개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두눈을 살풋이 감고 그가 어디에 전화를 거는가에 신경을 도사렸다. 전화가 통하자 리아저씨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급해서인지 아주 높았는데 리아저씨가 병이 도져서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왕천은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빨리 병원으로 가보자고 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엘레베터안에서 나는 의아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쩌면 리아저씨와 텔레파시가 통하는게 아니니? 혹시 네가 리아저씨가 밖에서 본 아들이라도 되는게 아니냐?” 내 말에 왕천은 신경질적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성난듯이 한마디 했다. “너 우리 엄마를 뭘로 보는거냐?” 나는 늘 왕천이와 리아저씨가 한집식구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필경 내가 근심하던 일이 발생했다. 그 토요일의 이른아침, 나는 전과 다름없이 제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은 금방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나의 손은 습관적으로 오른쪽을 더듬었다. 응당 왕천의 가슴이 나의 손에 만져져야 했는데 손끝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왕천의 이불은 포개여진채로 있었다. 컴퓨터앞에도 왕천은 없었다. 순간 나는 자신이 어딘가에 버려진 어린애와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속에 찾아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의식하며 다급히 왕천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자물쇠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깨울가 저어되는듯 아주 낮게 들렸다. 나는 머리칼이 곤두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눈은 움직이는 자물쇠쪽으로 쏠렸다.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고 왕천이 발볌발볌 들어섰다. 나는 성난 사자마냥 소리쳤다. “너 어디 갔던거야?” 왕천은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너… 너 잠이 깼니?” 왕천은 침대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두손에는 비닐봉지가 몇개 들려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가 왕천의 품에 안겨버렸다. 그 바람에 왕천은 비닐봉지를 든 두손을 높이 들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기다려, 내가 이 남새들을 랭장고에 넣고 올게.” 나는 여전히 왕천의 품에 안겨 떨어질념을 하지 않았다. 나의 가슴은 그때까지도 쿵쿵 높뛰고있었다. 나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그만 왕천의 옷을 와락 당겼다. 그 바람에 왕천은 손에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안에 있던 남새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따스한 해살이 카텐을 뚫고 들어와 그우에 찍혀져있는 참죽이 살아있는듯 생기를 띨무렵에야 나는 다시 잠에서 깨여났다. 나는 침대머리에 두었던 머리핀을 찾아 긴 머리에 얹은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왕천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어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특근이 없는 날인지라 나는 왕천이를 위해 솜씨를 펴보려고 작심했다. 내가 출근한후 왕천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늘 있는대로 대충 끼니를 에우다보니 얼굴이 홀쪽하게 되였다. 나는 그새 창작도 일종의 체력로동이라는것을 잊고 살았던것이다. 나는 어쩐지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 같아 왕천에게 너무 미안했다. 왕천이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이미 84개의 물만두를 빚어놓고있었다. 왕천은 침대머리에 턱을 고이고 누워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물만두를 빚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으면 좋겠지?” “그래, 이제 네가 이름을 날려 큰 돈을 벌게 되면 난 출근하지 않을거야. 그때면 우린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겠지.” 순간 왕천의 눈빛이 전에없이 밝아졌다. “책이 출판되여 큰돈을 벌면 나는 먼저 너에게 큰집을 사줄거다. 넌 그 집에서 살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그럼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는거지.” 그 말에 나는 약간 웃음기를 띠면서 익살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날마다 바라보다가 어느날 내가 싫증이 나면 어떻게 하려구?” 왕천은 별말이 없이 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불을 달았다. 삽시에 왕천은 뽀얀 담배연기속에 잠겨버렸다. 나는 태평스럽게 담배를 피우고있는 왕천이를 향해 소리쳤다. “묻잖아? 못 들었어?” 왕천은 뜻밖에도 성이 나있었다. “나 워낙은 너와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자고 했거든. 헌데 그렇게 외길로 나가니?”     나는 그러는 왕천이 너무 천진하게 느껴져 까르르 웃으면서 마지막 물만두를 마저 빚었다. 나는 일어나 사처에 뿌리워진 밀가루를 닦으면서 물었다. “창작은 어떻게 돼가?” “곧 끝나게 돼.” 왕천이는 그때까지도 성이 가시지 않은것 같았다. 익은 물만두를 금방 다 건졌는데 갑자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나와 왕천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북경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주말 점심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것일가? 속구구를 하면서 급히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리아저씨였다. 그의 손에는 락화생기름 한통이 들려있었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는 뭔가가 툭- 하고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하지만 왕천은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참 잘 오셨네요.” 말을 마친 왕천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수저 한쌍을 더 내왔다. 리아저씨의 홀쪽한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 한줄기가 어려있었다. 그 웃음이 억지스러워서인지 리아저씨의 얼굴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형용하기 어려운 험상궂은 모습을 연출하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열정적으로 맞아주는 왕천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있었다. 그는 마치 심문을 기다리는 범인마냥 쏘파끝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손바닥을 비비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왕천이 앞에 가져다놓은 물만두를 보면서 오히려 고통스럽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리아저씨는 그새 또 많이 여윈것 같았다. 리아저씨는 내가 그를 위해 마련한 차물을 보더니 급히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 먼저 식사를 하게나. 난 잠간후에 다시 오겠네.” 나는 급히 리아저씨를 잡으면서 말했다. “다 한집식구처럼 생각하면서 왜 이러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리아저씨의 표정에서 이번 걸음은 집세때문이라는것을 읽어낼수 있었다. 하기에 나는 더구나 리아저씨를 남겨 물만두를 권하면서 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하도 죽기내기로 잡아끄는통에 리아저씨는 도로 쏘파에 눌러앉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한 눈동자는 막연하게 천정에 설치된 무리등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마치도 “자네들도 신혼살림에 쉽지 않을테지. 휴—” 하고 내쉬는 리아저씨의 한숨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코끝이 시큼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지나 왕천이 일자리를 찾으면 곧 생활이 나아질거예요.” 리아저씨는 떨리는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더니 쪼그라든 담배 한가치를 꺼냈다. 나는 왕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을 했다. 왕천은 인차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자기의 담배를 가져다가 리아저씨에게 권하고는 불을 붙여드렸다. 리아저씨는 담배를 크게 한모금 빨았다. “아저씨, 의사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왜 또 피우기 시작했어요?” 리아저씨가 갑자기 담배연기에 사래가 들려 련속 기침을 해댔다. 그 바람에 밀랍 같던 얼굴이 불그레 달아올랐다. 리아저씨는 담배 한가치를 다 태운후 또 한가치를 꼬나물었다. 왕천이 리아저씨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안돼요, 더 피우면 안돼요.” 왕천의 목소리에는 친인에게만 할수 있는 강압적인 기분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러는 왕천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왕천이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너 뭘 안다구 그래? 지난번에 의사가 말하기를 리아저씨가 계속 담배를 피우면 생명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댔어.” 리아저씨는 자신의 왜소한 몸뚱이를 들어 쏘파안쪽에 옮겨놓으며 입을 열었다. “별것 있나. 난 이미 살만치 살았다니까.” 말을 마친 리아저씨의 눈에 이슬 몇방울이 맺혀 반짝이였다. 하지만 눈물은 금방 눈확을 벗어나자마자 얼기설기 맺혀진 주름에 스며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화제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아저씨는 집세를 올릴 문제를 토론하러 온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찾아온 원인을 알고싶어서 리아저씨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저씨, 혹시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요?” 리아저씨는 말없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리아저씨의 눈에는 로인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쓸쓸함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리아저씨는 이어 왕천이에게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리리가 돌아왔네.” 리리는 아버지를 보러 온것이 아니라 더 이상 떠돌아다닐 형편이 안되여 돌아왔던것이다. 리리를 데리고 도망을 쳤던 그 남자는 심수에서 갑자기 무슨 기발한 구상을 했던지 운남 서려에 가서 보석을 수구하겠다고 떠났다 한다. 처음에 리리는 그 말을 듣고 그 남자보다도 더 기뻐했다는것이다. 애초에 리리는 그 남자의 머리속에서 흘러나오는 괴상한 부자꿈에 현혹되여 그 남자를 따라나섰던것이다. 리리도 서려의 “돌도박(赌石)”에 대하여 진작 소문을 들은적이 있었던것이다. 운수가 좋으면 돈 만원이 하루밤에 몇백만원으로 새끼를 칠수 있다고 했다. 하여 리리는 심수의 작은 방에 들어박혀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달 또 한달, 하루 또 하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리리는 집주인으로부터 거리로 내쫓기게 되였던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리아저씨는 고통스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가 분명 보석을 구매하러 운남으로 간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리리를 떼버리려고 거짓말을 한것이라는것이였다. 왕천은 리아저씨에게 종이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저씨, 리리가 돌아온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남자의 진면목을 하루빨리 아는게 하루라도 늦게 아는것보다 더 좋은거지요. 아니면 꼭 크게 상처를 받게 될것이니까요.” 리아저씨는 종이로 천천히 눈까풀이며 눈귀며 눈두덩이며 눈섭이며를 닦고 또 닦았다. 종이는 눈물에 젖어 한덩이로 되여버렸다. 리아저씨는 그 종이를 손바닥에 꽁꽁 움켜쥐고는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왕천이와 나를 바라보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하면서도 눈물에 젖은 두눈을 보면서 나는 말할수 없는 불안에 떨었다. 리아저씨는 힘들게 일어나 차탁을 지나서 둬걸음 걸어가 손에 움켜쥐였던 종이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후들후들 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아저씨의 손이 금빛의 문손잡이에 닿았다. 리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큰 결심이나 한듯 머리를 푹 떨구면서 말했다. “미안하구려. 이달안에 집을 리리에게 내주어야겠네.” 그날 나는 점심을 먹은후 왕천과 함께 환락곡에 가서 즐겁게 보낸후 왕부정에 가서 가로등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북경에서 사는 느낌을 향수하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나와 왕천은 사는게 힘들어 오래동안 북경의 밤거리를 거닐어보지 못했었다. 리아저씨의 불안한 목소리를 타고 내려진 축객령은 다시 우리와 북경이란 지구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북경이라는 큰 바다에 떠있는 한방울의 기름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물만두는 식어버리고 마늘은 맑은 식초에 푹 퍼져있었다. 집안에서는 사람을 토하게 하는 혼탁한 기운이 흐르고있었다. 나는 침대머리에 앉아 머리를 쳐들어 태양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담홍색으로 물들고있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안은 차츰 피빛으로 물들고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기중기는 웬 일인지 작업을 멈추고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한채로 석양의 어둠속에 자취를 감춰가고있었다. 왕천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침대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중얼거리고있었다. “씨팔, 내 집!” 멀리 보이는 거리에 가로등이 밝아서야 나는 마치 꿈속에서 깨여나기라도 한듯이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나는 차탁우에 놓여져있는 물만두를 주방으로 가져간후 간단히 설겆이를 했다. 그후 행주를 들고 나와 허리를 굽혀 차탁을 닦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차탁우에 올려놓은 유리를 적시고있었다. 물방울은 닦고닦아도 여전히 유리우에 맺혀있었다. 유리우의 물방울은 워낙 깨끗이 닦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나는 문뜩 행주질을 멈추고 막연하게 천정을 쳐다보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듯싶었다. 그때 왕천이 중얼거렸다. “흥, 리리. 그 실팍한 몸뚱이를 거리에 내던져도 누가 한눈 팔지도 않을걸.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는 십중팔구 시집을 가지 못할 물건이였지. 그 사천남자는 도대체 무슨 놈의 눈이란 말인가? 리리 같은 녀자를 데리고 도망을 다 치다니. 아마 약을 잘못 먹어도 단단히 잘못 먹었을거야.” 왕천이 리리를 욕질하고 저주하는 사이에 나는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잠시 할 일이 없게 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갑자기 말 못할 서러움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왕천의 입은 여전히 쉬지 않고 리리를 욕해대고있었다. 마치도 리리가 우리의 집을 빼앗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나는 왕천의 욕설이 어느때 가서야 끝날가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왕천이 나의 위안을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아통이 터졌다. 나는 침대머리에 놓여져있는 베개를 주어 왕천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궁시렁거리지 말구 우리 이제 어디로 이사갈지나 생각해봐.” 갑자기 베개에 얻어맞은 왕천은 잠간 멍해있다가 해면베개를 주어 가슴에 대고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이 나를 뜯어보는것이였다. 한참후 왕천은 자신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인젠 우리 어디로 가야 하나?”   비가 내렸다. 서늘한 비줄기가 얼기설기 기승스럽게 퍼붓고있었는데 마치도 뽀얀 안개를 방불케 했다. 비줄기가 나의 시선을 가로막아 나는 더 이상 1509호실의 깜찍한 창문을 제대로 볼수 없었다. 비속에서 거리며 차들이며 층집들이 모두 몽롱하게 나의 시야로 찾아들었다. 거리에서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춤추듯 오고갔다. 우산아래의 사람들은 비때문에 조금도 걸음에 영향을 받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더 여유롭게 비를 즐기는것 같았다. 비속에서 움직이는 행인들의 모습은 마치도 선경속에서 노니는것 같았다. “인간세상”홀이 차츰 사람들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좌우와 앞뒤에 모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살려 출입문쪽을 바라보았다. 왕천이 들어와서 첫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할가봐 근심이 되는듯싶었다. 나는 이미 “인간세상”에 홀로 한시간이나 앉아있었던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워낙 왕천이에 대한 분노가 가득 쌓여있었다. 하지만 1509호실에 대한 회억으로 그에 대한 한가닥 련민이 생겨났다. 내가 다시 시계를 내려다볼 때 왕천은 이미 내앞에 와 앉아 두손을 들어 흐트러진 긴 머리칼을 쓸어넘기고있었다. 차디찬 물 두방울이 나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어쩌면 두방울의 눈물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물방울을 닦지 않았다. 왕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니?” 나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니, 나도 금방 왔어.” 나는 우리의 상봉을 얼마나 많이 그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상상속에서 그한테 덮쳐들어 귀뺨을 몇대 갈겨주고는 그의 해석도 듣지 않고 몸을 돌리군 했었다. 그때 왕천이가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면 더 멋질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왕천이 진짜로 내앞에 앉아있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큼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왕천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있었고 표정도 너무 따분해보였다. 그리고 더욱 나를 아연하게 하는것은 그의 몸에서 지독한 술냄새가 풍긴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연기는 지독한 술냄새와 섞여 나를 습격해왔다. 갑자기 토하고싶어졌다. 나는 급히 코와 입을 감싸쥐였다. 그러자 왕천이 담배불을 비벼끄려고 서둘렀다. “먼저 밥을 먹자.” 왕천이 손을 흔들어 복무원을 불렀다. “어향육사(鱼香肉丝)”와 도마도닭알볶음을 청했다. 이것은 전에 내가 즐겨 먹던 료리였다. 왕천은 또 이과두(二锅头)술도 한병 청했다. 내가 놀라운 눈길로 왕천을 뚫어지게 건너다보자 그는 수집은듯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나 인차 술을 끊을거다. 이건 마지막 한번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왕천에게 “너 원래 술을 마시지 않잖니?” 하고 물으려다가 입술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있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들었다가 문뜩 나를 의식했던지 흘끔 내쪽을 훔쳐보고는 도로 넣어버렸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하얗고 가늘었는데 피뜩 보면 어떤 동물의 발을 련상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상우에 올려놓은 두손이 갑자기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천은 두손을 한데 모아쥐고 극력 떨림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자 두손만 아니라 어깨까지 부들부들 떠는것이였다. 나는 그러는 왕천의 몰골을 건너다보면서 말했다. “담배 피우고싶으면 피워라, 이곳은 그러잖아도 담배연기천진데 뭐. 네가 피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피우고있잖니?” 왕천은 감격스러운듯 나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더니 급히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이고 걸탐스럽게 빨아댔다. 순간 담배불이 빠알갛게 달아오르더니 한참이나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왕천은 그렇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오래도록 입안에 물고있다가 후- 내뿜었다. 하지만 그때 담배연기는 보이지 않고 연한 입김 같은것이 몇오리 흘러나올뿐이였다. 그러자 왕천의 눈은 처음보다 훨씬 정기가 돌았다. 왕천이 물었다. “너 잘 지내고있지?” 남들이 보건대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있다 할수 있었다. 지금의 남자친구가 나를 보배마냥 아껴주고있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한 녀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소유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집, 승용차,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능히 생활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만한 저축도 가지고있었다. 반면에 그는 “전 안해”와 15살 나는 아들도 가지고있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만족한다고 할수도 없었고 또 만족을 하지 않는다고 할수도 없었다. 불만족 되는게 없으면 만족된다고 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궁금해서 죽겠다는듯한 왕천의 눈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우고 한마디 했다. “그럼, 잘 지내고있지.” 나의 대답에 실망했는지 왕천은 얼굴에 약간 그늘을 지으며 머리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것이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있었다. 큰 비방울들이 총알처럼 땅에 내리꼰지고있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서 황망히 어디론가 뛰여가고있었다. 급히 거리를 가로질러 뛰여가던 한 남자가 갑자기 달려오던 승용차와 부딪쳐 허망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옆에서 달리던 다른 승용차우에 풍덩 떨어져내렸다. 그 사람은 큰 새마냥 두팔을 쩍 벌리고 자석에라도 끌리듯 그 승용차우에 떨어져 철썩 붙어버리는것이였다. 하지만 달리던 승용차는 멈출줄을 모르고 여전히 그 속도로 비속을 달려 잠간새에 시선에서 사라져버렸다. 왕천은 막연한 눈길을 돌리더니 다시 머리를 푹 숙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왕천의 말뜻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천이 아래말을 이었다.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순간 나는 폭발하고말았다. 이것이 그래 당년에 그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나를 떠나버린데 대한 해석이란 말인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떠난게 아니였지. 응당 네가 인간세상에서 증발해버렸다고 해야지.” 왕천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웃음이 비꼈다. “그때 나는 집을 얻어보려고 떠난것이였어. 너 내가 쓴 쪽지를 보지 못했니?” 나는 너무도 분해서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그래 넌 나를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 작은 방안에서?”   만약 왕천이 그렇게 화제를 그 시절로 돌려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던 두칸짜리 그 집을 기억해내지 못할수도 있을것이였다. 하지만 그 시각,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하던 눈길을 떠올리노라니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말 못할 괴로움이 꾸역꾸역 괴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돼지대가리 같은 얼굴에 느끼한 두눈을 가진 호색한이였다. 나와 왕천이 간단하게 짐을 꾸려가지고 그 집 문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뚫어져라 부담스럽게 살펴보는것이였다. 나중에는 그의 눈길은 다시 나의 풍만한 엉뎅이에 와서 멈추었다. 무엇이나 꿰뚫어볼듯한 그의 눈길앞에서 나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듯 불안하게 몸을 떨었다. 나는 황망히 적삼목깃을 우로 당겨올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더욱 흥분되여 거슴츠레한 두눈을 련속 슴벅거리는것이였다. 하지만 순진한 왕천은 그때 그 사람의 엉큼한 심보를 보아내지 못하고 되려 나에게 그를 “장오빠”라고 부르라고 귀띔했다. 그 사람은 40여살쯤 되여보였는데 우리와 함께 집을 쓸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의 딸 정도밖에 안되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애와 함께 남쪽 방을 쓰고있었다. 우리는 북쪽에 있는 해볕이 잘 들지 않는 방에 들게 되였다. 그때 우리의 수입으로는 그런 방에 들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게 싫다면 농촌으로 돌아가는수 밖에 없을것이였다. 나와 왕천은 둘 다 본능적으로 농촌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고있었다. 하기야 나도 왕천이도 모두 농촌에서 왔기때문이였다. 고중시절에 그처럼 목숨을 걸고 대학입시를 본것도 사실은 그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것이였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한 마당에 나도 왕천이도 절대 농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북경근교의 농촌에 집을 잡는것마저 우리는 인생의 비애로 간주하고있었던것이다. 우리가 짐을 방에 옮길 때 그 남자는 과분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실팍한 몸집을 의식적으로 내 몸에 비비는것이 죽도록 싫어났다. 왕천이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 남자는 눈을 끔뻑하면서 나에게 윙크를 보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와 아는 사이이기라도 한듯싶었다.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는 비스듬히 문턱에 기대여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적의에 찬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그날 밤은 달빛이 아주 좋았다. 나는 오래도록 혼탁한 공기에 절어버린 어슴푸레한 달빛만 보았었지 그처럼 밝은 달은 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왕천은 그날 밤, 글을 쓰지 않고 진작 나의 옆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처량한 마음으로 1509호실에서의 랑만적인 하루하루를 그리고있었다. 1509호실을 떠나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방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번 청소는 어쩌면 우리가 1509호실에 들어가서 제일 참다운 한차례라고 할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집안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걸레질을 해서 먼지 하나 숨어있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들어올 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곧 그곳을 떠나야 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문밖에서 끌신을 끄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소리로 보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십여명이 동시에 오가는듯싶었다. 나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끌신소리가 끝나기를 내심하게 기다렸다. 얼마나 오래 지났던지 끌신소리가 요행 끝나버렸다. 내가 금방 잠이 들려는데 왕천이 조용히 일어나 책을 번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한 녀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도 우리가 그 어떤 살인현장에 와있는것처럼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나와 왕천은 약속이나 한듯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녀자의 고함소리는 그 남자네 방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비록 그 방과 우리 방은 문을 두개나 사이두고있었지만 녀자의 목소리는 마치도 우리 방에서 들리는듯 그처럼 똑똑했다. 나와 왕천은 소리없이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 남자와 녀자가 싸우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싸우는것 같지도 않았다. 녀자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후 차츰 신음소리를 내는것이였다. 따라서 침대머리가 힘있게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시무룩이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는 손에 들었던 책을 한쪽에 훌렁 던지고는 급히 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나는 왕천이와 달리 기분이 엉망으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나의 가슴을 더듬는 왕천의 손을 쳐버렸다. 이튿날아침, 우리는 출근을 서두르다가 그 남자가 객실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두눈을 슴뻑거려보이는것이였다. 나는 온역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바삐 문을 밀고 나왔다. 공공뻐스에 앉았지만 나는 여전히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이 나의 뒤를 뚫어져라 지켜보는듯하여 온몸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왕천에게 메쎄지를 보냈다. “나 그 집에서 살기 싫어.” 왕천이 인차 답장을 보내왔다. “나도 그 집이 싫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대흥의 새로운 아빠트에다 분회사를 설립한다고 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그쪽으로 가겠다고 신청했다. 내가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왕천은 순간 멍해지는것이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함께 옮겨가는거지. 그 부근에서 세집을 찾으면 되는거지 뭐. 그래도 너의 창작은 지장이 없잖아?” 왕천은 내 말에 매우 흥분해하면서 그 남자를 찾아가 남은 방세를 돌려달라고 청을 들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견결히 반대해나섰다. 금방 이사를 들어온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느냐 하는것이였다. 나중에 그 남자는 나가든지 말든지 관계는 않겠으나 계약금과 남은 집세는 돌려줄수 없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돌아와서 절대 그 자식을 용서할수 없다면서 분개해 말했다. “너 먼저 회사의 숙소에 들어가 살아라. 나는 보증코 이 집에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살거다. 하루라도 그 자식을 득을 보게 할수야 없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왕천은 이 말을 할 때 벌써 나를 떠나려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그의 말에도 일정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동시에 세집 두개를 쓴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분회사의 실무는 본 회사에 있을 때보다 엄청 더 분망했다. 분회사나 나나 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 그 어떤 믿음도 얻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모든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매일 16시간 이상 일을 했다. 하루종일 집면적을 재고 설계도를 그리고 업주들에게 설계도를 해석하고 설계도를 수정하느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면 언제나 다리며 발등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느날, 나는 우연히 왕천이 보내온 메시지를 받았다. “여보, 당신이 그립소.” 나는 간단하게 회답을 했다. “나 지금 바빠.” 그때로부터 왕천의 메시지가 차츰 적어졌다. 그새 왕천은 회사에 와서 나를 한번 보고 갔다. 그날 나는 한 업주와 설계도를 토론하고있었다. 그 설계도는 이미 그 업주와 세번이나 토론하고 수정을 한것이였다. 하지만 그 업주는 여전히 꼬치꼬치 따져가면서 흠집을 찾고있었다. 나는 점점 정서가 저락되여갔고 당금이라도 그 업주라는 사람의 따귀를 올리붙이고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얼굴에 웃음을 쥐여바를수 밖에 없었다. 하기에 나의 미소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굳어져있었는데 어찌 보면 웃는 가면을 뒤집어쓴듯해보였다. 얼굴근육이 뻐근해날 때면 나는 나의 직업을 두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늘 자신이 컴컴한 동굴속을 걷는듯한 착각을 하군 했다. 나는 한시바삐 그 동굴을 헤여나오기 위해 진종일 악을 쓰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찬란한 해볕을 향수하고싶었다.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나는 매일 그 지지리도 힘든 동굴을 헤집고있었던것이다. 그날, 왕천은 복잡한 사무실에 앉아서 수시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벽에 붙어서있었다. 그 가련한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마네킹 같아보였다. 왕천은 내가 조용히 앉아서 자기와 말할 계제가 못되는것을 보고는 어느 순간인가 조용히 자리를 떠나버렸던것이다. 그무렵, 나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업주들에게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머리를 쳐드는 순간, 창문을 통하여 멀어지는 왕천의 뒤모습을 보게 되였다. 왕천의 길다란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마구 헝클어져있었다. 살 때 몸에 잘 어울리던 적삼이 훌렁해져서 마치 되는대로 마대쪼각을 몸에 걸친듯해보였다. 워낙은 꼿꼿해보이던 등이 굽어서 목이 더 길어보였는데 걸음을 걸을라 치면 온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아빠트경비실문앞까지 간 왕천은 머리를 돌려 나의 사무실이 있는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또 한번 코끝이 찡해났다. 생각 같아서는 뛰여내려가 그를 끌어안고 한바탕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본 환경은 그렇게도 눈에 익어보였다. 나는 어느 소택지에 서있었다. 주변은 짙은 안개에 싸여있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그렇게 서있었다. 움직이기만 하면 소택지에 빨려들어갈가봐 두려움에 떠는듯싶었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나는 그만 히스테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하지만 누구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도 조용해서 내가 마치 창세기전에 돌아가있는듯싶었다. 내가 절망에 달해 그 자리에 넘어지려는 찰나 눈앞에 가늘고 흰 손이 보였다. 그 손은 자욱한 안개속에서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와락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은 나를 피해 천천히 들려지더니 이어 가볍게 흔들리는것이였다. 너무나도 처량한 리별의 순간을 연출하고있었던것이다. 꿈에서 깨여난 나는 급히 왕천에게 전화를 했다. 왕천의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의 핸드폰이 그렇게 영원히 꺼져버릴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날이 샐 때까지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남 5환에서 차를 갈아타고 북 5환에 도착하여 왕천이가 혼자 남아있는 그 세집으로 갔을 때 나를 맞아주는것은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과 갸날픈 몸매의 그 녀자가 내쏘는 적의에 찬 눈길이였다. 왕천은 이미 그 집에 살고있지 않았던것이다. 내가 우리가 살았던 북쪽의 그 방에 들어가보니 찢어진 원고지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왕천의 심혈이 슴배여있는 원고지는 갈기갈기 찢어진채 그렇게 죽어있었던것이다. 찢어진 원고지를 밟고 선 나의 두발은 마치도 차디찬 얼음우에 맨발로 서있는듯한 느낌이였다. 내가 가져가지 않은 옷가지들은 정연하게 포개져 행리가방에 들어있었다. 대학으로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녔던 그 행리가방은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하게 닦아져 연한 빛까지 뿌리고있었다. 가방손잡이에 쪽지 한장이 끼워져있었다. “여보, 너무 힘들지? 내가 노력해서 꼭 집을 마련할게. 그래서 당신을 편하게 할게. 기다려줘.”   비가 멎었다. 방금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층집이며 거리는 이슬을 머금은듯 반짝반짝 빛이라도 뿌리는듯싶었다. 공기속에서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것 같아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듯했다. 나와 왕천은 “인간세상”문앞에 서서 리별을 준비하고있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왕천은 묵묵히 혼자서 술잔만 기울였다. 술잔을 들 때마다 왕천은 습관적으로 “이건 마지막 잔이야. 내 말을 믿어.”라고 말했다. 술을 입에 털어넣은후 왕천은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고통스럽게 두손을 비벼댔다. 손등에 퍼런 힘줄이 불뚝불뚝 불거져올랐는데 그것은 빚어놓은 동상을 방불케 했다. 왕천은 그렇듯 힘들게 속으로 몸부림치고있는듯싶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왕천은 마사진 축음기를 풀어놓은듯 여전히 이 말만 반복했다. 그때 왕천은 근본 자기앞에 앉아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자기앞에 누가 앉아있더라도 그는 역시 그 말만 되풀이할것 같았다. 그때 왕천의 몸에서는 알콜냄새가 지독하게도 풍겼는데 마치도 알콜에 불궈놓은 시체표본에서 풍기는 냄새 같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구토가 나게 했다. 나는 도무지 음식을 넘길수가 없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빨리 끊기를 바랐다. 비가 곧 끊을무렵에 왕천은 술병굽에 조금 남은 마지막 몇방울의 술을 쏟아내고있었다. 57도의 알콜농도를 가지고있는 술, 우수한 연료라고도 할수 있는 그 술이 왕천의 배에 모두 들어가버린것이다. 나는 언젠가 중의안마사가 안마를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그의 옆에 놓여져있는 “이과두(二锅头)”술을 담은 사발에서는 파란 불이 펄펄 날리고있었다. 안마사는 그 사발에서 불 한웅큼을 쥐여서 환자의 등에 발랐다. 파란 불은 환자의 등에서도 혀를 날름거리고있었다. 왕천은 술이 모자라는듯 술병을 꺼꾸로 들어 눈앞에 가져다댔다. 마치도 망원경을 집어다 눈앞에 대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내겠다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았다. 나는 그때 왕천의 눈에 보이는것이 꼭 혼탁하고 몽롱한 세계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세계이든간에 왕천이가 관심하는것은 병굽에 아직 남아있는 몇방울의 술일것이였다. 그것이 바로 내앞에 앉아있는 진실한 왕천이였다. 그 모습은 나에게 더 이상 그를 증오한다는것조차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왕천은 여전히 두손으로 술병을 움켜쥐고있었다. 그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다. “우리 집에 가볼가?” 나는 길옆에서 택시를 세우려고 손을 저었다. 그때 왕천은 나한테로 다가와 와락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홱 팔을 내젓자 왕천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에 나가 쓰러지면서 이마를 갓돌에 부딪쳤다. 순간 쿵- 하는 소리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 수박을 땅에 떨어뜨렸을 때의 소리를 련상케 했다. 나는 급히 뛰여가 왕천이를 부축했다. 그러자 왕천은 있는 힘을 다해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때 왕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굽혀진 나의 팔뚝사이에 깊숙이 들어갔다. 어쩌면 물에 빠져 곧 죽음을 맞게 될 사람이 요행 떠내려오는 막대기라도 잡은듯한 형국이였다. 왕천은 후들후들 겨우 일어나서 다시 쓰러지려는 몸을 나의 몸에 기대고는 왼손을 들어 저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이 저- 기 있다니까.” 나는 왕천이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마음 먹었다. 한때의 련인사이가 아니라 어쩌다가 본 보통친구라고 해도 왕천의 랑패상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수 없을것이였다. 나는 택시 한대를 잡아서 왕천이를 뒤좌석에 겨우 끌어올렸다. 나는 앞좌석에 올랐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내가 머리를 돌려 왕천에게 방향을 물으려고 할 때 왕천이 나를 향해 히쭉 웃으면서 말했다. “앞에 있는 길어구에서 왼쪽으로 굽어들면 돼.” 그 말을 할 때 왕천은 근본 술에 취한 사람 같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도 몽환세계에 들어선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눈에 웃음기를 살살 바르고 손님을 맞아주던 잡지가게의 주인이며 지하주차장문어구에 앉아있던 절름발이보안원이며 구운 오리목을 팔던 뚱뚱한 아줌마며 과일가게를 지키던 새각시며 그 많은 사람들과 환경은 어느 하나 눈에 익숙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나는 왕천이를 부축하여 아빠트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왕천은 내가 술에 곤죽이 되였다고 믿는 그 몸뚱이를 한껏 나에게 기대고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쓰러져버릴것 같았다. 하지만 실지 그 모양을 보면 왕천이 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간다고 할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왕천이와 함께 엘레베터에 올랐다. 엘레베터에는 13층과 12층이 없었다. 12층 다음에는 직접 15층이였다. 엘레베터안에서 얼굴이 편하게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바래진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순간 나는 그 할머니가 전에 주먹만한 깜찍한 강아지를 끌고 다니던 생각이 났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란귀비”였다. 어느날 할머니는 그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옹근 아빠트를 다 돌아다니면서 찾았었다. 그 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할머니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놈이 없다면 나도 살수 없을거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으로부터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마치 내가 그 강아지를 훔치기라도 한듯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란귀비는 찾았나요?” 할머니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누구던가? 그래, 우리 귀염둥이는 지금 집에서 자고있다오. 그놈은 참으로 엉뚱한짓만 골라하거든.” 왕천이 1509호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철저히 놀라버리고말았다. “여보, 당신이 이 집을 그렇게도 좋아했었지? 지금 이 집은 당신것이요.” 하얀색옷궤는 여전히 벽에 붙어있었다. 옷궤문의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내가 너무 힘들여 당겨 떨어진것이였다. 그때 잠시 맞는 나사못이 없어서 그 손잡이를 다시 달지 못했던것이다. 천을 씌운 쏘파는 여전히 문가의 그 구석쪽에 놓여져있었다. 오른쪽 팔걸이에는 테프가 붙여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왕천이 담배를 피우다가 조심하지 않아 구멍을 내서 붙인것이였다. 침대머리에 설치된 전등갓은 왼쪽이 흰색이고 오른쪽이 빨간색이였다. 왕천이 침대에 누워서도 책을 보기에 특히 그렇게 생긴 등갓을 고른것이였다. 컴퓨터상에는 여전히 나의 사진이 놓여져있었다. 사진속의 나는 마치도 그 집의 주인이라도 되는듯 집안의 모든것을 둘러보고있었다. 그 사진은 내가 대학교 교정 뒤산의 언덕에서 찍은것이였다. 나는 두손을 등뒤로 한채 짐짓 신중한 기색을 띤 얼굴로 왕천의 손에 쥐여져있는 사진기를 응시하고있었다.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1509호실은 내가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굳어져버린듯싶었다. 그렇게 굳어져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듯싶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의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왕천이 으스러지게 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는 왕천의 그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의 눈물은 그대로 왕천의 가슴을 적시고있었다. 왕천은 가볍게 나의 등을 도닥이며 울먹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별안간 주먹을 들어 왕천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너 그새 도대체 어디로 갔던거야?” 그렇게 왕천의 가슴을 두드리고있노라니 그동안의 억울함이 눈물과 함께 뚤렁뚤렁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왕천은 나를 끌어안았던 손을 스르르 풀더니 비틀거리면서 침대가로 다가가 앉았다. “모든게 좋아졌다. 우리에게 집이 있게 되였다. 이제부터 너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였다.” 왕천은 갑자기 말을 끊더니 구역질을 했다. 나는 급히 화장실에 달려들어가 쓰레기통을 가지고 다시 침대가로 다가갔다. 그때 왕천은 침대궤에서 술 한병을 들춰내여 병채로 꿀꺽꿀꺽 마셔대고있었다. 나는 급히 술병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너 죽으려고 그러니?” 왕천은 손을 뻗어 술병을 잡으려다가 내 몸에 부딪쳐 한쪽으로 훌렁 넘어져서는 힘들게 말했다. “여보, 래일부터 나 정말 술을 끊을거야. 나를 믿어줘.” 어쩌면 집안의 모든것이 하나도 변한것이 없는듯싶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래도 변한것이 있었다. 베란다에 참대로 만든 흔들의자가 놓여져있었던것이다. 방금 누가 앉았다가 일어난듯 의자는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집안이 매우 깨끗한듯했지만 사실 집안은 구석구석 먼지투성이였다. 하여 어디를 다쳐도 선명하게 자국이 남았다. 방안의 공기도 매우 혼탁했다. 술냄새만이 아니였다. 그외에도 무엇인가 한창 썩어가고있는것 같았다. 구석구석에 술병이 숨어있었다. 소주병, 맥주병, 와인병… 없는것이 없었다. 차탁이며 침대궤며 주방궤며 랭장고며 지어는 화장실에도 술병이 있었다. 왕천은 침대에 쓰러져 가볍게 코를 골고있었다. 나는 창문이며 출입문을 열었다. 습윤한 공기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서 비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들었다. 그것들에는 얼기설기 거미줄이 늘여져있었다. 나는 먼저 그것들을 깨끗이 씻은후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밀걸레를 어느 정도의 각도로 해야 바닥을 제일 깨끗이 닦을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또 비자루를 어느 정도 눕혀 쓸어야 먼지가 일지 않는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이곳은 전에 나의 무대였었다. 하기에 나는 이 무대의 구석구석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종려색의 나무장판이 나의 손끝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와 이 집의 관계를 잠시 잊은듯싶었다. 어쩌면 내가 줄곧 이 집에서 살고있었던듯싶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일상이 바빠서 이 집을 제때에 청소하지 못한줄로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불렀다. 그 노래는 전에 왕천이 동학들과 함께 나의 숙소아래에서 부르던 그 노래였다. 문뜩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오고있었다. 남자친구가 보내온것이였다. “여보, 일이 끝났어?” 가슴에서 뭔가가 떨어져내리는듯했다. 손에서 맥이 풀려나갔다. 밀걸레가 스스로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왕천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왕천이는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컴퓨터상에 올려놓고는 다시 밀걸레를 찾아들었다. 그때 밀걸레는 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객실청소를 끝낸후 나는 주방청소를 했고 이어서 화장실청소도 했다. 청소를 하면서 나는 줄곧 나와 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하는것일가? 쓰레기는 구석쪽에 모아놓았는데 큰 비닐봉지로 세개나 되였다. 나는 주방궤 왼쪽의 제일 아래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더 꺼내려고 했다. 전에 나는 슈퍼마케트에서 물건을 담아온후 비닐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차곡차곡 그곳에 모아두었던것이다. 나는 서랍을 당겨 열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비닐봉지들속에 빨간 증서 하나가 숨어있었다. 그것은 결혼증서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결혼증을 주어 펼쳐보았다. 나의 눈에 안겨든것은 왕천과 한 녀자였다. 결혼증사진속의 왕천은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있었다. 리가리라고 부르는 그 녀자는 더구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 끼여있었다. 어쩌면 결혼증에 붙일 사진을 찍을 때 둘이 다투기라도 한듯싶었다. 사진사가 꼭 그들을 웃게 하려고 노력했을거지만 필경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것이였다. 순간 나는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 같았다. 아빠트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대로 날아떨어지는듯한 환각이 들었다. 잠간 정신을 추스리고난 나는 다시 서랍을 뒤져보았다. 북경제3병원에서 떼준 병력카드가 있었다. 카드에 적힌 글은 도무지 내가 알아볼수 없을만치 갈겨쓰이여있었지만 나는 용케도 그중에서 “암”, “화학치료”라는 몇 글자를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차디찬 벽에 간신히 기대여섰다. 하지만 몸은 점점 땅으로 미끄러져내렸다. 나는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흰 타일은 인차 나의 엉뎅이를 차겁게 했다. 속은 아리다 못해 백쌍의 마귀손이 마구 헤집고 다니는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소리치고싶었지만 끝내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소리를 칠 힘마저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킨후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겨우 컴퓨터상앞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남자친구에게서 온것이였다. 나는 흠칫 몸을 떨면서 급히 거절버튼을 눌렀다. 왕천이 침대에서 가볍게 몸을 비틀며 웅얼거렸다. “여보, 여기 와. 내 한번 보자구.” 나는 남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립수교에 있어요. 절 데리러 와주세요.”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방안의 공기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비닐봉지에 넣은 쓰레기는 여전히 방 한구석을 지키고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이 집에서 나갈 때 꼭 그 쓰레기를 던질것이며 문이나 창문도 잘 닫아놓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깊이 잠든 왕천이에게 포근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류대(留待), 본명 곽귀종. 1970년 출생. 산동성 고당현 사람. 1989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 장편소설 《소리, 색》과 중, 단편 소설 여러편이 있음. 현재 북경의 모 잡지사에서 사업.
353    껍데기사람, 속사람 댓글:  조회:1553  추천:0  2012-04-24
껍데기사람, 속사람   겁이 매우 많은 쥐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고양이였는데, 고양이만 없다면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게 찾아가 고양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창조주는 쥐의 처지가 너무 딱해 소원대로 해주었고 쥐는 자신이 고양이가 된 것을 보며 만족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좀 지내다 보니, 이제는 자신을 괴롭히는 개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을 아예 호랑이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창조주는 쥐의 소원을 다시 한 번 들어주었습니다. 쥐는 이제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냥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다시 두려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호랑이로 만들어준 쥐가 잘 지내나 보러 온 창조주는 쥐의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너를 세상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네 겁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구나, 너는 그냥 쥐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어울리니 다시 쥐가 되거라.” 물론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겉을 아무리 화려하게 꾸민다 하더라도, 속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52    동시의 매력에 빠진 소설가*한석윤 댓글:  조회:3315  추천:2  2012-04-24
동시의 매력에 빠진 소설가 한석윤     최동일 하면 경이스럽다. “화림신인문학상”과 한국 “계몽아동문학상”이라는 쌍중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하던 그의 화려한 경력도 경이스럽고 13년 동안이나 잠적해있다가 “연변작가협회문학상”을 받아안은 아동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를 단방에 터뜨린 그의 폭발성적인 문학재능도 경이스럽고 문단복귀후의 짧은 4년 사이에 4부의 아동문학작품집을 쏟아내며 일약 아동소설계의 중견작가로 자리잡은 그의 눈부신 도약도 경이스럽다. 최동일은 탄탄한 문학재능과 넘쳐나는 창작성과로 문단의 찬탄과 기대를 모으면서 새별처럼 떠오른 소설가이다. 그러나 더 경이스러운것은 요즘 최동일의 변신이다. 소설로 상승가를 부르던 최동일이 갑작스레 “동시인 최동일”로 변신하고있는것이다. 소설이나 시의 문학적본질은 같다하더라도 이 두 쟝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작품을 창작해낸다는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요즘 최동일은 동시에 빠져있고 그 열정 또한 만만치 않다. 근래 최동일이 쓴 창작수기를 보면 장편소설《천사는 웃는다》는 누군가의 자극에 의하여 오기로 시작한것이였기에 창작과정에서 별로 기쁨 같은것을 느낄수 없었다 했다. 하지만 이번 동시쓰기는 동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자기도 뭔가를 쓰고싶다는 충동으로 시작한것이기에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고있다고 했다. 동시창작의 동기부터 심상치 않은것이다. 그런 매력, 그런 충동, 그런 행복감에 빠져 동시를 쓰고있기때문일가? 지난 반년 사이에 최동일은 “동심으로 쓴 칠색 이야기” 200수를 쏟아내고 오늘 그것을 묶어서 동시집 《나는 외롭지 않다》를 내놓았다. 정말 찬탄을 보내지 않고 박수를 보내지 않을수 없다. 최동일의 동시집 《나는 외롭지 않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풍격을 가지고있다. 그의 동시집을 보면서 내가 흥분했던바는 동시의 소재나 형식면에서 보여준 새로운 시도였는데 그것이 바로 당대 어린이들에게로의 적극적인 접근이였다. 개혁개방이후 우리의 동시는 본질적인 면에서 새로운 차원에 올라섰다. 동시가 정치성, 교육성, 설교성에서 탈피하여 문학 본연에로 회귀한것이다. 문학성에 한한 우리의 동시는 그 어느 쟝르보다 떳떳하고 이것은 또한 전반 문단이 공인하는바이다. 그러나 동시가 동시문학의 주체대상인 어린이들한테서 멀어져가고있는 뼈 아픈 현실도 직시하지 않을수 없다. 동시가 자기의 존재가치를 잃어가고있는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의 동시가 문학성을 고양하면서도 주체대상인 어린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을가? 이것은 우리 동시인들의 고민이 아닐수 없다. 내가 흥분했던것은 이번 동시집에서 최동일이 이 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적탐구를 하고있기때문이다. 첫번째 시도가 당대 어린이들의 생활속에서 시적소재를 발견했다는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동시를 보면 소재 대부분이 자연이라든가 자연친화적인것이 아니면 과거회상적이거나 과거지향적인 시인들의 신변이야기가 대부분이여서 독자의식이 동시접근에 난점을 만들어놓고있다. 그러나 최동일의 동시집《나는 외롭지 않다》를 보면 대부분의 동시들이 당대 어린이들의 생활주변에서, 그들의 고민과 희열과 생생한 꿈속에서 시적소재를 발굴하고있기때문에 어려움이 없이 어린이들한테로 다가가서 시적감응을 일으킬수 있다. 그 시도가 단연 돋보인다. 두번째는 형식면에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법과 대화체기법을 동시창작에 대담하게 응용하고있다는것이다. 이런 기법은 지난세기 90년대이후 한국의 동시단에서 동시의 난해성해결의 대응책으로 널리 리용되고있는데 그 우점은 동시의 딱딱한 이미지를 완화시켜 어린 독자들이 쉽게 동시에 다가설수 있도록 할수 있고 동시의 친근감과 정다움을 느낄수 있게 할수 있다는데 있다. 최동일은 동시창작에서 이런 기법을 대담하게 활용하여 어린이들의 가슴에 가 닿을수 있는 동시들을 창작해내고있는데 이런 탐구자체가 우리 동시단에 주는 계시가 크다. 이런 기법은 자칫하면 동시의 산문화경향을 낳을수 있고 동시의 미학인 단순성, 간결성, 명쾌성, 음악성을 잃어버릴수 있기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고 가배의 노력을 전제로 해야 할것이다. 동시가 시로 되여야 한다고 하여 동시의 주체대상인 어린이까지 잃어버려서도 안되거니와 동시의 주체대상인 어린이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하여 동시의 본질인 문학성까지 버려서는 안되기떄문이다. 최동일은 이번 동시집을 통하여 동시인으로의 새로운 변신을 완성하였다. 최동일의 동시창작에 큰 기대를 가지고싶고 다시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싶다.          
351    동심여선 (童心如仙) 댓글:  조회:1252  추천:0  2012-04-24
동심여선 (童心如仙)   김혁 (소설가)   아직도 유난히 큰 눈망울에서 소년같은 숫기와 동심을 읽어낼수 있는 최동일씨, 그가 신간을 펴냈다. 중편성장소설집 《아직은 초순이야》. “빨간것”, “운무의 저쪽”, “아직은 초순이야”, “선녀를 찾아주세요”, “노란것” 등 5편으로 무어진 작품집은 작자의 창작근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편 또 게으름없이 아동문학에 혼신을 던지고있는 작자의 창작자세를 보여주고있다. 최동일씨는 1965년 화룡현 룡문촌에서 출생했다. 간간이 잡지들에 수록되는 옛말에 현혹되여 시간만나면 잡지를 뒤적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싶다는 충동 하나로 필을 들어 첫 아동소설 “나의 동생”을 연변인민출판사 《시내물》 제3호에 발표하던때가 16살, 초중 3학년시절이였다. 그때로부터 문학은 그에게서 생각만해도 감동이 느껴지고 가슴 떨리는 존재였다. 1982년 10월, 최동일씨는 중국인민해방군 81250부대 입대하여 7년간 복역했다. 부대생활이라면 매서운 군기의 닦달질에 매인 험지라 생각되겠지만 매사에 열씸인 최동일씨는 그곳을 인생의 또 하나의 도장으로 간주하고 군복을 입었다. 그 진국인 생활자세는 지금도 퇴역전우들이 외우곤한다는 “김치사건”을 만들어냈다. 신병시절의 어느날, 련장이 최동일씨를 불렀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단시일내에 배추김치 5천근을 담그라는것이였다. 최동일씨가 눈을 휘둥그레 키우자 련장이 말했다. “널 내놓고 누가 배추김치 5천근을 담글수 있어?” 단 김치를 즐겨 먹는 조선족이라는 신분이 아닌, 매사에서 보여주는 진지함때문에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게된 최동일씨는 겁없이 그 일에 도전해나섰다. 전련의 60여명 병사들을 휘동하여 짜장 “김치담그기 전역”에 나섰다. 첫날에는 통배추 5천근을 다듬었다. 잘 다듬은 통배추를 큰 오지독에 넣고 통소금을 듬뿍 뿌린후 통배추가 잠길수 있을 때까지 물을 붓고 그 우에 물통에 물을 담아 짓눌러놓았다. 엄마가 하는것을 어깨너머로 배운대로 초절이를 한것이였다. 다음날은 “마늘까기”전역이였다. 깐 마늘만 해도 큰 대야로 두개나 되였다. 세번째날 오후 마늘을 찧고 거기에 고추가루며 맛내기며 다진 사과즙이며 사탕가루며를 넣어 양념을 만들었다. 5천근의 배추김치는 독을 열기도전에 맛있다는 소문이 련대는 물론 전영에 퍼져나갔다. 며칠후 련대에서는 배추김치잔치가 펼쳐졌다. 소문을 듣고 영장과 교도원도 동참하여 김치값을 올려주었다. 그 겨울, 최동일씨의 “걸작”인 배추김치는 전우들이 주말이나 명절이 되여야 맛을 보는 련대의 명물로 되였다. 최동일씨의 참된 일본새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힘든 병열생활중에서도 문학에 대한 최동일씨의 꿈은 이어졌다. 아무리 지쳐도 하루에 책 50페지 읽기와 한어단어 20개를 암송하기는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하여 시요, 수필이요, 소설이요 닥치는대로 써보았다. 병영에서 9시에 전등을 끄면 복도에 나와 책을 읽었다. 그렇게 스스로 정한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12시가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이면 기상시간 먼저 5시에 일어나 련대의 마당도 쓸고 취사반을 도와 남새 다듬질도 해주었다. 그사이 그의 수필이며 벽소설이며 하는것들이 잡지와 신문에 몇편 발표되였다. 그 노력을 보아내고 련지도부에서 그를 련대통신원으로 제발시켰다.” 이렇게 힘든 부대생활속에서도 대학교 통신공부를 원만히 끝마쳤고 중국인민해방군 제64군의 “자습인재기준병”의 영예까지 지니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너무도 힘들게 달려온, 그러나 또 너무도 삶에 충실했던 7년간의 군인생활이였다. 1989년 6월, 최동일씨는 군영생활을 마치고 연변인민방송국에 입사, 1993년 6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3월부터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주임직을 맡아하면서 2007년 11월까지 10여년간 붙박이로 어린이들을 위한 텔레비죤프로를 제작해왔다. 25살의 피끓는 청춘으로 연변인민방송국 청소년부에 첫발을 들여놓던 날, 최동일씨는 다시 어린이로 돌아간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하기에 어린이들이 노고지리처럼 재깔이며 뛰노는 교정을 찾아가는것이 그처럼 신날수가 없었고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하고 앉아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를 지켜보는 것이 그처럼 좋을수가 없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조동한 이듬해 그는 음악무용풍경영화 “아, 장백산”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일군들과 함께 수십명의 어린이들을 휘동하여 장백산에 올랐다. 신참기자로 제작팀과 함께 장백산에 오르게 된 그는 명실공히 어린이들의 생활을 책임진 “보모”였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촬영을 돕던중 어느날 갑자기 한 어린이가 눈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살펴보니 벌겋게 충혈이 된 눈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두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해 여름 어린이들속에서 눈이 부어오르는 전염병이 돌고있었던것이다. 이튿날부터 그 증상이 애들속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촬영은 계속해야겠고 애들은 눈을 뜰수 없다고 야단들이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어린이들의 눈을 소독해주고 약을 넣어주고는 또 아픈 어린이들을 업고 촬영현장으로 가군했다. 3박 4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날부터 최동일씨의 눈도 벌겋게 부어오르고 진물이 흘러 병원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린이들과 몸과 마음과 아픔까지 같이한 그 나날들이 있었기에 음악무용풍경영화 “아, 장백산”은 전국 제8회 텔레비죤프로 “금마상”평의에서 어린이프로 1등상을 따낼수 있었고 그번 촬영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묶은 다큐 “장백산을 찾아가요”는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그는 어린이프로기자로 오래동안 뛰여온 자신을 기꺼이 “보모”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그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주임으로 있는 기간에 개설한 중, 고중생들을 위한 지식, 오락성 프로그램 “청춘스타트”는 지금까지도 이어져내려와 청소년들과 여러계층 시청자들의 애대를 받고있다. 사업에서 거둔 성과로 그는 2004년에 제4회 “전국미성년보호선집사업일군”의 영예를 안았다. 다년간 청소년사업의 전초에서 뛰면서 최동일씨가아이들을 위해 펴낸 저서로는 아동소설집 《민이의 산》, 산문집 《엄마의 별》, 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가 있다. 근년래 최동일씨는 청소년들의 성장기 진통에 작가의 시각을 맞추어 “운무의 저쪽”, “선녀를 찾아주세요”, “아직은 초순인가봐”, “빨간것”, “노란것”등 중편성장소설을 펴냈는데 중학생독자들속에서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있다. 근년래 량산으로 쏟아내는 그의 창작물은 지금까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바쳐 폭넓은 령역을 감당하면서 그가 보여준 아동문학창작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근면성에서 기인된것일터이다. 그가 창작한 아동소설 “강변에 심은 꿈”은 제2회 연변작가협회 “화림신인문학상”을, 아동소설 “백조와 부체육위원”은 제9회 “백두아동문학상”을, 아동소설 “진달래꽃 필 때까지”는 제17회 “한국계몽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일전 그가 중국작가협회 로신문학원에서 연수하던 기간 밤을 밝혀 창작한 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는 중국조선족 아동문단에서 10여년간 장편소설이 창작되지 못했던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제8회 “석화컵” 연변작가협회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창작한 아동소설 “진달래꽃 필 때까지”는 중국 새아동문학계렬선집 《특소설(特小说)》에도 수록되였다. 중국 새아동문학계렬선집은 1960년부터 1979년 사이에 출생한 106명 우수한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한것인데 소설, 동화, 우화, 산문, 동시 등 쟝르 총 6권으로 묶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책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중국 제5대 아동문학작가군의 집단모습이며 목전 국내에서 활약하는 아동문학 중견작가들의 창작수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고 평하고있다. 2007년, 최동일씨는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 주임이라는 중책을 짊어졌다. “조선족아동문학작품을 중국 주류문단에 번역소개하는것이 급선무이다. 이는 우리 아동문학시장을 개척하고 창작기반을 튼튼히 다지는데 아주 유조하다. 그러자면 우선적으로 우리의 작품질을 향상시켜야 하며 아동문학작가들의 중국 주류문학과 접목하려는 피타는 몸부림이 필요하다.”고 아동문학의 진로에 대해 분석, 그 일환으로 일련의 활동들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있다. 해마다 아동문학창작 및 연구모임을 조직하고 6.1절을 계기로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동시랑송모임”, “아동문학작가 봄맞이 한마당”과 같은 친선모임을 조직하여 아동문학작가들간의 련계를 강화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게 하고있다. 그러한 노력으로 2008년 아동문학창작위원회는 연변작가협회 선진창작위원회로 당선되였다. 올해부터는 아동문학작가 후비력랑 발굴에 눈길을 돌려 관련활동을 벌릴 타산이다. 그와 함께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창작스케줄도 빼곡히 잡고있다. 그는 중편성장소설창작을 계속 주요한 창작테마로 잡고 써내는 한편, 변혁기 조선족군체의 새로운 대이동속에서 부모들이 외국이나 대도시로 진출한뒤 남겨진 편부모 청소년들의 곡절 많은 성장이야기를 다룬 장편르포를 기획하고있다. 중국 새아동문학계렬선집 제3집《특소설(特小说)》의 행간에 그는 이렇게 자기의 문학주장을 적었다. “나의 민족, 나의 일터, 나의 사랑하는 청소년친구들이 곧 나의 프로이고 나의 소설이다. 청소년들의 성장이야기는 그대로가 한부의 소설이다. 청소년들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진실하게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그들의 현장감 넘치는 성장이야기를 들어주고싶다. 나의 소설이 진정 조선족청소년들의 건실한 성장을 위해 엮어질 때라야만이 나는 명실에 부합되는 조선족 아동문학가가 될것이고 조선족 청소년들의 믿음직한 친구가 될수있을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창작주장을 그는 말없이 실천에 옮기고있다. 그의 근작들을 보면 이 시대 소년들의 고민에 앵글을 맞추고 그 고민을 작품에서 풀어보이려고 시도하고있다. 로무송출과 도시진출에 흔들리는 오늘날 조선족사회상을 보여주며 그 아픔속에서 힘들게 커가는 소년, 소녀들의 고민과 사색을 투영시키고있다. 또한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자연적본성으로서의 동심이 세상에 어떻게 휘둘리는가를, 혹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성장이야기가 역시 이번 그의 창작집에서의 주류를 이룬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현실의 고통에 초연한 존재가 아니다. 더우기 흔들리는 조선족공동체속에서 함께 하고있는 오늘의 아이들에게는 여느시기의 아이들보다 더 멀미나고 험난한 현장이 주어지고있다. 이런 아이들의 생활을 이래도 웃고 저래도 예쁘고 하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면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아이들을 그려 보일 수가 없다. 때문에 최동일씨의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은 마냥 밝은것만은 아니다. 현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가리지 않고 두루 비추어 보인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사회상이 그대로 옮겨진 교정내의 경쟁에 지치고 하학후 부모의 자리가 비여있는 가정에서 또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맑았던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피곤의 때가 끼고 머리속에는 순수는 커녕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최동일씨의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은 춥고 힘든 현실속에서도 나중에는 밝게 웃는다. 절박한 현실도 비극적인 현실도 이 작가를 통하는 순간 맑게 걸러지고 정화된다. 현실을 넘어가버리는 락천이 아닌 현실에 탄탄하게 자리한속에서 락천적인 전망을 작품들은 그려보이고있다. 아이들의 심리를 곧바로 잡아내는 관찰력과 묘사로 이어진 사실주의정신이 그의 작품들에 내재해 있다. 비록 어떤 작품의 구성이나 갈등이 그다지 탄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 못한 부족점이 보임에도 시대상황과 련관시켜 읽을수 있는 편편의 작품이 그 허점을 보강해 준다. 그리고 그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무양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념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작품집의 행간마다에 가득하다. 세상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때문인것일가.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 대신 어린 시절의 순수를 잃어간다. 몸은 어린시절 그때로 돌아갈순 없지만 대신 문학이라는 이름의 타임머신을 타고 마음만이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보는건 어떨가. 어린시절 우리의 초상에서 잃어버렸던 순수를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우리는 가끔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그리스의 석학 소크라테스는 일찍 이렇게 력설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의 경험에 맞추어 말해야만 한다. 례를 들어 목수에게 이야기할 때는 목수가 사용하는 말을 써야 한다.” 우리의 학교가 줄고 부모들과 떨어져있는 편부모 자녀들이 늘면서 아이들도 느닷없이 들이닥친 변혁기의 진통을 함께 겪고있는 오늘날 지성과 량지가 있는 어른들의 아이들과 동조한 눈높이가 더욱더 수요되는 시점이다.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는 경구가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투신하고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작품창작만을 고집하는 최동일씨, 소재면에서 편향이 없이 시종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깊이 끌어안고 필봉을 달리고있는 최동일씨, “동심여선”의 심태를 내내 잃지말고 사업과 창작에서 일가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해 본다. 
350    노란것 댓글:  조회:1238  추천:0  2012-04-24
      령이는 “득―” 하고 성냥을 그었다. 하지만 성냥개비에 누기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손이 떨려 성냥개비를 제대로 부시에 치지를 못해서인지 기대하던 불꽃은 일지 않았다. 맹랑하게도 첫번에 불꽃을 얻지 못한 령이는 괜히 가슴이 후둑후둑 떨리기 시작했다. (웬 일일가? 왜 성냥개비에 불이 일지 않을가? 그 노란것을 가져오지 않아서가 아닐가? 노란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혹시 아버지가 가지고 간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아버지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아니 그럴수가… 먼저 이것들이라도 태워버리는거야, 그래 태우는거야…) 령이는 괜히 삼검불처럼 엉켜지려는 사색의 끈을 좁혀 쥐고 온몸의 신경을 성냥가치에 집중하며 다시 성냥개비로 부시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냥개비는 부시종이를 쭉 찢으며 빗나가더니 툭하고 허리가 불거지고 말았다. (안좋아, 성냥개비에 불꽃이 일지 않다니? 이건 분명 좋은 징조가 아닐거야. 아직도 엄마의 혼이 나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질을 치고있는지도 몰라. 과연 그런것이라면… 그 노란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령이는 더 이상 생각을 굴리고싶지 않아 성냥을 쥔 오른손을 들어 내려오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망망한 밤하늘 여지저기에서 껌뻑이는 별들이 어지럽게 보여왔다. 그 별들 사이로 뿌연 쪼각달이 어디론가를 향해 미끌어지듯 흘러가다가 먹장구름에 가리워버렸다. 아직은 여물지 못해서 그렇다할 빛을 주지 못하던 쪼각달이였지만 정작 구름에 가리우니 주위가 캄캄하게 변한듯싶어졌다. 령이는 쪼각달이 빨리 구름속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쪼각달이 구름속에서 빨리 얼굴을 내밀어야 성냥가치에 불꽃이 일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리숭하게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호―” 령이는 실날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쳐들었던 머리를 맥없이 내리뜨리며 자기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쪼각달이 구름에 가리워 주위가 캄캄하다고 생각되였지만 그래도 멀리서 비쳐지는 가로등불빛에 땅우의 물체를 헤아려볼수가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자기의 어깨를 타고 앉은 엄마의 혼이 발밑에 무둑하게 쌓아놓은 돈을 볼수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었던것이다. (그래, 엄마는 지금쯤 종이돈을 향해 달려오고있을지도 몰라. 성냥을 그어 종이돈에 불만 붙이면 엄마는 마음껏 종이돈을 안고 훨훨 천당으로 올라갈거야. 그러면 나는 엄마의 령혼에서 해방될수 있을것이고 아버지는 그 깊은 술바다에서 헤여나올수가 있을거야. 그래, 한개비면 돼. 많이도 필요없이 꼭 한 개비만 제대로 그으면 되는거야. 그 한개비의 파아란 불꽃이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놓지를 않는 엄마의 령혼을 위로해서 천당으로 올려보낼거야. 천당으로 가는 엄마의 뒤길에 그 노란것도 던져주면 엄마는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를 던져버리고 훨훨 날아갈수있을거야. 그러면 모든것이 좋아질거야…) 령이는 “후욱―” 하고 길게 들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들었다. 령이는 성냥개비를 부시종이에 치려다말고 머리를 쳐들었다. 구름송이에 가리워 얼굴을 내밀것 같지 않던 쪼각달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가던 길을 재촉하고있었다. 령이의 입가에 가는 실웃음이 피여올랐다. 령이는 성냥개비를 득하고 부시종이에 쳤다. 순간 빨간 불꽃이 팍 하고 피여났다. “호―”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빨간 불꽃은 승무를 추는 무당의 손에 들린 빨간 부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고있었다. 령이는 허리를 굽히며 날름거리는 불꽃을 조심조심 발밑에 무져져있는 빨간 종이돈에 가져다댔다. 종이돈에서 불꽃이 튀더니 삽시에 확하고 피여올랐다. 잠간 새에 불꽃은 종이돈무지를 감싸 안으며 뻘건 불룡을 만들어 하늘에 올렸다. 령이는 불룡으로부터 한발뒤로 물러서서 기둥을 이루며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령이의 얼굴이 불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령이는 두손을 합장하여 쥐고 날름거리는 불룡을 바라보며 열심히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떠나가요, 떠나가요 울 어머니 떠나가요 억울한 일 힘든 일들 다 걷어 안으시고 이 돈으로 로자 삼아 태평세상 찾아가요 누가 배워준적도 없고 어디서 들은적도 없는 노래였다. 그런 노래가 그렇게도 거침없이 입에서 술술 풀려나오는것이 령이로서도 놀랍게만 생각되였다. 노래소리가 익어갈수록 령이의 기분은 날듯이 가벼워졌다. 령이는 합장하여 쥐였던 두손을 풀어서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사위는 익어가고 화염을 토하던 불꽃은 사그라졌다. 령이는 두눈을 꼭 감았다. 머리속에서 아물아물 뭔가가 정처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아득한 머리속 저쪽 끝에서 거친 노래소리가 날아왔다. 한강수야 깊으나 옅은 물에 한강선 띄워놓고 얼씨구 놀아나 보세 령이는 꼭 감았던 두눈을 반짝 떴다. 방금까지도 가벼워서 날것 같던 기분이 살얼음우에 놓여진듯 섬뜩해졌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한강수야 를 부르며 령이를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허허허… 우리 령… 령이구나. 네가 여기서 웬 일이냐? 웬 일루 여기 있느냐? 아빠를 기다리는거냐? 그래그래… 딸이 있어야 한다니까, 한강수야 깊고 옅은 물에… 아버지는 또다시 “한강수야”를 불러댔다. “아버지!” 령이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단말적으로 소리쳤다. 그 소리에 아버지는 불르던 한강수타령을 끊고 입을 떡 벌린채 령이를 바라보았다. 령이의 두볼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계집애가 왜 소리는 지르고 란리야? 애비가 죽었어?” “왜 이래요? 왜 이렇게 살아요?” “뭐야? 이년이 미쳤나? 애비하구 웬 말대답질이냐? 간이 부었구나, 배밖으로 밀밀 나오는구나. 에익―” 아버지는 령이를 때리려고 주먹을 꼬나멘채 비칠거리며 령이를 향해 다가왔다. 령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아버지 쪽으로 다가가며 이사이로 한마디한마디 씹어뱉었다. “왜 이래요? 어디 가서 또 이렇게 술을 마셨어요?” “그래 ,마셨다. 속이 타서 강술을 마셨다. 안돼? 의견 있어?” “아버진 안보여요? 나는 살자구 별짓을 다 하고있는데. 아버진 왜 이렇게 살아요?” “하, 이년이 정녕 미쳤구나.” 아버지는 령이를 향해 후둘후둘 떨리는 손을 쳐들었다. “그래요. 내가 미쳤어요, 미쳤다구요.” 령이는 쓸어질듯 다가오는 아버지를 피하며 피터지게 소리를 쳤다. “쌍년… 썩 가서 죽어버려!” 아버지는 끝내 령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래요. 죽을게요. 내가 죽는다구요!” 령이는 아버지의 팔을 확 잡아채서 한옆으로 밀쳐버리고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뛰여가기 시작했다. 저쪽으로부터 택시가 쏜살같이 달려오고있었다. 운전수가 달려오는 령이를 보았는지 빵빵 하고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령이는 조금도 서슴치 않고 길에 뛰여들면서 분명 뭐라고 소리치고있었다. 모음과 자음을 감지할수 없이 기괴한 소리였다. 소리에 엄마라는 부름이 섞여있는듯 했다. “삑―” 택시가 힘들게 급정거를 하고있었다. 령이의 몸은 택시에 부딛쳐 기둥 뽑힌 나무처럼 넘어졌고 어둠속에서 검붉은 피가 천천히 땅우로 흘러내렸다. “령이야, 우리 같이 죽자. 죽어 버리자. 무슨 락을 보자구 이렇게 사냐. 령이야―” 령이는 시장바닥이라도 되는듯 웅성웅성 하는 속에서 분명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그 소리에 령이는 천근같이 무거운 눈을 힘들게 떴다. 첫눈이 내린 허허벌판처럼 하얀것이 망막에 비쳐들었다. 령이는 눈이 시리다고 생각되였다. 그래서 다시 두눈을 감고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전신으로 모진 동통이 느껴졌다. 집에서 한겨울 날 시루떡을 쪄낼 때 가마에서 푹푹 뿜어대던 뽀얀 김 같은것이 서리서리 머리속을 감돌고있었다. 령이는 그 속에서 헤여나오고싶다고 생각되였다. 령이는 힘겹게 헉헉 숨을 톺았다. 머리가 빠개지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령이는 애써 오른 손을 들어 머리로 가져갔다. 분명 손이 머리에 닿은듯한데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머리칼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감싼 보자기를 만지는 느낌이였다. 머리속에 꽉 찬 뽀얀 김 같은것을 뚫고 “뭘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령이는 애써 천근같은 두눈을 다시 떴다. 역시 첫눈에 허허벌판 같은것이 보여지더니 차츰 그 가운이 벗겨지며 하얀것의 실체가 망막에 박혀들었다. 천정이였다. 실날 같은 금이 가닥가닥 나있는 하얀 천정이였다. (여기가 어딜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것일가?) 하얀 백지우를 달리는 개구쟁이의 연필끝처럼 삐뚤삐뚤 두서없는 생각이 머리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령이는 몸을 일으켜 구경을 보고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가뿐하게 일어설수 있을것 같던 몸이 천근 돌을 달아맨듯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령이는 온몸으로 통증을 느끼며 가까스로 아래입술을 사려물었다. “령이야,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이렇게야 어찌 살겠니? 혼자 죽으려 해도 네가 눈에 밟히지, 아이구― 내 팔자야― 아이구― 령이야―” 잘 부르지도 못하는 석쉼한 목소리의 타령 같은 소리가 다시 어지럽게 울렸다. 그 소리는 눈덮힌 허허벌판을 달리는 달구지소리처럼 불안스럽게 령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누구세요, 누가 절 불러요? 여기가 어디예요?” 령이는 꽉 막혀버린듯한 성대에 힘을 주어 높게 소리쳤다. “깨났구나. 이 계집애야?” 피곤기가 섞였지만 무딘 칼날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같다고 생각되였다. 령이는 목소리에 힘을 담아 또박또박 소리쳤다. “누구예요? 여기가 어디냐구요?” “이년아. 정말 죽지 못해 환장을 한거냐? 차라리 이 애비를 잡아먹지 그러냐? 이 곰통같은 년아.” 차츰 날을 세워가는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수염투성이의 거친 얼굴이 령이의 눈앞에 다가왔다. “아버지…” 령이는 신음비슷하게 소리쳤다. 아버지의 얼굴이 차츰 또렷하게 령이의 눈확에 안겨들었다. 턱에 말라붙은 느침자국이 우묵하게 들어간 아버지의 눈귀에 말라붙은 누런 눈곱과 조화를 이루며 지치고 힘든 로숙자의 몰골을 연출하고있었다. 초점 없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디루룩 구을다가 령이의 얼굴에 와서 박혔다. 그때 아버지의 손에는 반쯤 남은 술병이 들려져있었다. “아버지…” “이년아, 네년이 죽는가 했다. 저레 죽어버리지 왜 살아난거냐? 내 원, 이년을 병원에 데리고 오지 말것을…” 아버지가 신경질을 가득담은 목소리로 문안인지 욕인지를 가릴수 없게 웅얼거렸다. 령이는 그러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여기가 병원이라구? 그럼 내가 병원에 누워있는건가, 무슨 사고라도 난것일가? 노란것은 어디에 있을가?) 령이는 애써 기억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김서린듯 뽀얀 머리속을 헤집었다. 4년전 령이가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어코 령이를 마음껏 공부하게 하겠다며 시골의 집을 처분하고 무작정 연길로 올라왔었다. 시골의 모든것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을만치 령이의 공부실력은 훌륭했던것이다. 아버지는 연길에 와서 먼 친척의 도움으로 건축공사장을 뛰였었다. 하지만 내지에서 밀려나온 민공들 틈에 끼여 건축현장의 막로동을 한다는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느 한번 현장에서 자그마한 일로 내지에서 온 민공들과 멱잡이를 한후부터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한다며 건축현장을 나가지 않았다. 공부를 못하고 배운 재간이 없는 아버지는 며칠이나 고민을 하다가 삼륜차를 사가지고 짐실이를 시작했다. 맡아 놓고 하는 일이 아니여서 그것도 입살이를 하기 힘들었다. 대소한 때는 온 하루를 나가 추위에 떨어도 5원 벌이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같은 짐실이군들과 함께 상점에서 몸을 녹인다고 다마톨이를 했다. 안주도 없이 해바라기씨 한줌을 앞에 놓고 강술을 마시면서 소태 같은 일생을 통탄할라치면 술이 술을 불러서 일어날 때 쯤이면 걸음도 옮겨놓기 힘들었다. 몇번인가는 삼륜차마저 상점앞에 두고 왔다가 이튿날에 가서 찾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껌 씹듯이 잘근잘근 씹어대군 했다. 능력도 없는 남자, 제 노릇도 못하는 남자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평가였다. 처음엔 아버지도 죽여줍소사 하고 머리를 숙이고있던것이 어머니의 욕설이 심해질수록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잔사설이 시작되기만 하면 아버지가 먼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중에는 손찌검까지 했다. 령이는 차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자주 술을 마셨고 마실 때마다 어머니와 전쟁을 했다.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머니도 차츰 두려움을 느꼈던지 멀리서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만 들리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것처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불을 벗겨버리고 다가앉으며 “내가 또 술을 마셨다. 이년아, 왜 욕을 안하냐?” 하고 선창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한국에라도 나가 돈벌이를 하겠다며 첫패로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을 쳤다. 아버지에게는 한국으로나가는것이 유일한 구명환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첫 시험에서 아버지는 점수가 요구선에 도달하게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앞길은 그 무엇에 꽉 막혀버린것인지 두번이나 추첨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두번째로 자신이 추첨 못되였음을 확인하던 그날 밤 아버지는 또 어디 가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여 집에 들어왔다. “아이구, 내 팔자야, 난 어떻게 살라오.” 아버지는 문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바닥을 치며 넉두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아버지를 부축하여 구들에 올리려고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활 풀려버린 눈을 거슴츠레 뜨고 한참이나 어머니를 올려다보더니 흐흐흐 히스테리적으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구 어서 올라 가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재촉에도 끔쩍하지 않더니 갑자기 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 알았다. 내가 왜 이렇게 재…재수 없는지를… 네년의 이…이마에 난 사…사마귀가 마귀처럼 내 앞…앞길을 막는게로구나. 흐흐흐…” 그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급기야 이마에 난 사마귀를 움켜쥐였다. 어머니도 어느때 났는지를 모르는 사마귀였다. 맘이 편할 때면 참 없어도 될것이 보기 싫게 났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아버지도 언제 한번 “언제 났소?” 하고 묻지도 않던 사마귀였다. 그 사마귀를 아버지가 거들어 자기의 앞길을 막는다는것이다. 령이도 아버지의 그 말에 무척이나 신경이 씌였다. (정말일가? 간대로사 사마귀때문에 집안 일이 안 풀릴라구? 아버지가 취해서 하는 소리겠지.) 령이는 상심해서 앉아있는 어머니를 위로하자고 입을 열었다. “엄마, 신경쓰지 마시요. 술먹은 사람이 헛소리를 치는걸 가지구.” 그때 어머니는 살 맞은 토끼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연신 손으로 이마의 사마귀를 만지작거리고있었다. “에잇, 때…때려 죽일 년, 에…에잇, 마귀 같은 년…” 아버지는 령이에게 질질 끌려 구들에 올라오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어머니에게 욕지걸이를 해댔다. 어머니의 이마에 있는 사마귀는 그렇게 아버지의 총알이 되였고 어머니는 사마귀에 대한 말만 나오면 정말 총 맞은것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가슴을 조이군 했다. 숨막히는 기분속에서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날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쟁판을 벌렸다. 아버지가 동네상점에서 술을 마시고있는것을 어머니가 간장 사러 갔다고 보고 집으로 가자고 조른것이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게 원인이였다. “재수가 없어서. 재수에 옴이 붙은거지. 네년의 그 사마귀가 내 청운을 막은거야, 내 청운을…” 아버지는 술냄새를 팍팍 풍기는 입으로 침방울을 탁탁 튕기며 고래고래 소리질러댔다. 매양 그러하듯이 어머니는 살 맞은 토끼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면서 이마에 파란 피줄을 세우고있었다. “보라니까. 봐, 그 사마귀가 온 집안을 말아먹지 않는가구. 나두 잡아 먹구 딸년두 잡아 먹구… 에잇, 마귀 같은 년이.” 아버지는 비칠비칠 어머니앞으로 다가와 후둘후둘 떨리는 손을 들어 어머니의 이마에 난 사마귀를 툭툭 치면서 악담을 퍼부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와닥닥 뛰쳐일어났다. 전에 없던 행동이였다. “이… 이 년이 미쳤나? 뚱포 맞은 미친개처럼 어쩌라구 설치는데?” 아버지가 깜짝 놀라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그래, 내가 죽을게. 네놈앞에 내가 죽어보일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엇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것 같았다. 그 서슬에 아버지도 놀라 한발 뒤로 물러섰다. “내가 죽을게. 네놈이 혼자 잘 살아봐라. 배터지게 복 누리며 실컷 살아봐라.”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다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엄마―” 식장앞에 등을 대고 앉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을 묵묵히 지켜보던 령이가 뛰여일어나 덴겁하여 소리치며 어머니를 쫓아갔다. “놔둬라, 나둬. 어디 가서 뒈지라구 해라.” 령이는 아버지의 악담을 등 뒤로 남기며 젖 먹던 힘을 다해 어머니를 쫓아갔다. 어머니는 머리를 수굿하고 앞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였다. 정말 그 대로 뭔가 일이 날것 같았다. 령이는 단말마적으로 소리쳤다. “엄마, 서쇼. 서시요.” 하지만 어머니는 뛰여가던 그대로 달려오는 차를 덮치고있었다. 령이가 차앞까지 뛰여갔을 때 엎어져있는 어머니의 머리밑으로 검붉은 피가 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 엄마!” 령이는 무서운 감도 없었다. “엄마, 왜 이래? 정신을 차려. 엄마…” 령이는 소리치며 어머니의 머리를 들어 한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검은 눈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흰자위만 숨막히게 망울을 덮고있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갔을 때는 어머니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어머니의 액사현장을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난 후부터 령이는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고열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어머니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가 눈앞을 덮쳐왔다. 그 피는 흘러서 령이의 젖가슴이며 신다리며를 흥건하게 적시는듯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령이는 으스스 몸서리를 치며 단말마적으로 악악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에는 그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도 그 소리에 놀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난 그날 밤으로 아버지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던것이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이웃집에 사는 할머니가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웃집 할머니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령이네 집을 드나드는분이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생전에 속 탄 일이 있으면 곧잘 할머니를 찾아 아픈 마음을 토로했고 할머니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는 이래라 저래라 하고 충고도 해주었다. 그 며칠 사이에도 할머니는 하루에 서너번씩은 문을 열고 들어와 령이에게 밥을 먹어라, 밖에 나가 바람을 쐬라 하며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고 계셨다 “얘야, 아직도 누워있니? 정신을 추슬려야겠는데. 이렇게 넋을 놓으면 쓰겠니?” 그날도 할머니는 구들에 올라오며 따뜻하게 걱정을 해주셨다. 하지만 령이는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면서도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사흘째나 음식을 전페하다싶이 했으니 그럴만도 할 일이였다. 령이는 모든것이 그대로 굳어져버리는듯 함을 느끼며 초점 없는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께서는 령이의 곁에 다가와 앉은후 가슴우에 놓여져있는 령이의 왼손을 잡아 꼭 쥐여주었다. “애비는 아직 안돌아 왔냐?” “……” “쯧쯧쯧, 세상도 무심하지. 이 노릇을 어찌 하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고…”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더니 호주머니에서 노란 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얘야,이걸 베개밑에 깔고 자거라.” 할머니는 말씀을 하면서 손에 꼭 쥐고있던 노란 주머니를 령이에게 넘겨주었다. 령이는 그러는 할머니를 목석처럼 쳐다보면서도 손을 내밀어 그 노란 주머니를 받으려고 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휴―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얼마나 놀랐을가? 그 못볼것을 그림처럼 똑똑하게 보았을테니… 이걸 베개밑에 깔고 자거라. 그러면 혹시 마음이라도 편해질지…” 할머니는 말씀을 하시며 노란 주머니를 손수 령이의 베개 밑에 넣어주었다. 순간 령이는 온몸으로 전률 같은것이 느껴지며 머리칼이 쭈볏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령이는 누구에게 멱살이라도 잡혀일어나듯이 움쭐 일어서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뭐예요?” 할머니께서 령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팥주머니다. 예로부터 붉은 팥이 액을 막아준다 했거든.” “할머니―” 령이는 별안간 할머니의 품을 파고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어라, 울어. 실컷 울어라.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실컷 울어라” 할머니는 소리없이 령이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날 밤 령이는 꿈에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소복단장을 곱게 하고 령이를 향해 달려오고있었다. 그때도 엄마의 머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령이는 엄마의 머리에서 흐르는 그 피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게 느껴졌다. 하건만 엄마는 령이의 목을 끌어안더니 령이의 어깨에다 머리를 박으며 어이어이 곡을 했다. 령이는 엄마를 떠밀며 악 소리를 지르다가 깨여났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괴괴한 달빛속에서 검은 형체가 눈에 안겨들었다. “악!” 령이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뛰여일어나 스위치를 당겼다. 아버지가 옷을 입은채로 한껏 몸을 옹크리고 누워있었다. 술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어디 갔다가 왔을가?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가 아버지를 불러온게 아닐가?) 령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선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아버지는 꿈에서도 누구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지 웅얼웅얼 하며 손을 저어댔다. 령이는 갑자기 가슴이 턱턱 막혀오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났다. 당금 집 천정이 문어져내릴듯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령이는 자기가 누웠던 곳을 향해 벌벌 기여가서 베개를 들었다. 이웃집 할머니께서 베개 밑에 넣어준 노란 주머니가 보였다. 령이는 주머니를 주어 가슴에 꼭 가져다 대고 두눈을 꼭 감았다. 눈앞에서 노란 오각별 같은것들이 란무하더니 어디론가 동동 떠가는듯한 환각이 생겼다. 령이는 두눈을 감은채로 날아가는 오각별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저도 모르게 후- 하고 긴 한숨이 터져나갔다. 가슴이 뻥 뚫리는듯싶었다. 령이는 두눈을 번쩍 떴다. 꼬부리고 누운 아버지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들었다. 푸푸 입김을 뿜어대는 아버지의 입가에서 걸찍한 느침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이 사람이 나의 아버지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도 머리속을 치고 들어왔다. (나의 몸에서 이 사람의 피가 흐르고있구나. 그런데 난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싫고 무섭게만 느껴지는것이지?) 령이는 생각하면서 가슴에 가져다 붙혔던 노란 주머니를 내리워 두손으로 꼭 감싸쥐였다. 손바닥이 따뜻해나는것 같았다. 그 느낌때문인지 얼음물에 잠긴것처럼 뼈속같이 얼어들었던 가슴속 밑자락이 따뜻해지는것 같았다. (지금쯤 엄마는 어디에 계실가? 정말 저승이라는것이 있을가? 이승에서는 아버지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하시더니 저승에 가서는 부디 행복하게 살으셨으면…) 령이는 생각을 하면서 소복단장을 한 엄마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환영을 보고있었다. “령이야,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아라. 아버지도 힘들게 사는분이다. 원망 말구 아버지에게 효도해라. 아버지는 유일한 너의 가족이니까.”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냥스러운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령이는 으쓱 몸서리가 쳐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엄마―” 령이는 소리치며 두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는 추위를 느끼셨던지 왜소한 몸을 더욱 옹크리고있었다. 령이는 발딱 일어나 아버지의 머리에 베개를 베워드리고 이불도 덮어드렸다. 아버지는 령이의 체취를 느꼈던지 손을 흔들며 뭐라고 웅얼거리더니 잠잠해졌다. 령이는 베개우에 놓았던 노란 주머니를 다시 주어들었다. (하느님,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면 울 아버지가 마음을 잡게 해주세요. 나쁜 술버릇을 던지고 나와 함께 별고없이 편하게 살게 해주세요.) 령이는 노란 주머니를 싹싹 쓸면서 보지도 못한 하느님을 향해 진심으로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몸만 쏙 빠져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디로 갔을가?) 집이라 해야 손바닥만한 단칸방이라 어디 찾아볼 곳도 없었다. 령이는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신을 찾아 신고 출입문을 열었다. 혹시 마당에라도 나가있는지 찾아보고싶어서였다. 마당을 다 돌고 뒤울안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아버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살아진 아버지가 아리송하게만 생각되였다. 혹시 꿈이라도 꾼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이 쏙 빠져나간 깃이 들려져있는 이불은 분명 어제 밤에 아버지가 왔었음을 말해주고있었다. 령이도 아버지가 엄청 술을 많이 마셨댔고 손을 저으며 뭐라고 웅얼거렸고 잘 튀겨진 새우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있던 기억이 생생했다. (어제 밤에 그렇게 하느님께 소원을 빌었건만 아버지는 또 나가셨구나. 그래, 내 정성이 부족했던가? 내 정성이 부족해서 아버지가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하신걸가?.) 착잡한 생각이 가슴을 괴롭혔다. 령이는 집안으로 들어가 베개밑에 곱게 넣어놓았던 노란 주머니를 찾아들었다. 긴 밤을 베개밑에 놓여져 있어서였던지 노란 주머니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이거야. 이 주머니가 더 용해지게 다시 만드는거야, 엄청 용해지게 해서 아버지를 집에 잡아두는거야.) 령이는 노란 주머니를 손에 들고 급히 문을 나섰다. 마침 이웃집 할머니도 마당에 나와 손채양을 하고 서서 빨갛게 타오르는 일출을 바라보고계셨다. 전에도 몇번 본적이 있는 그림이였지만 그때는 무심히 흘러버린 령이였다. 하지만 이날은 할머니의 얼굴이 여간만 경건해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불타는 일출에서 뭔가를 찾아 내려는듯한 신비감까지 어려 있었다. 령이는 할머니를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할머니는 령이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하셨는지 손채양을 하고 선채로 요지부동이였다. 령이는 미동도 없이 할머니를 지켜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너, 나왔구나. 그래, 잘했다. 이렇게 나와서 바람이라도 쐬야지.” 할머니께서 손을 내리우며 머리를 돌리더니 반색하여 령이를 맞아주었다. 령이는 입을 열지 못하고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며 머뭇거리기만 했다. “얘야, 너 내게 무슨 할 말이 있구나. 주저하지 말고 어서 해라. 이 할미가 다 들어줄거니까.” 령이는 자신없어 머리를 푹 숙이고 애모쁘게 발끝으로 땅을 차다가 큰 결심을 내린듯 천천히 머리를 들며 잦아드는듯한 목소리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 “왜 그러니? 얼른 말해보라니까. 할미하구 뭐 못할 말이 있겠냐?” “할머니, 노란 주머니를 더 크게 용하게 만들어 주면 안됨까?” 령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기대에 찬 눈길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시는듯 령이를 바라보더니 호―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주머니라니? 오― 그 노란것을 말하는구나. 애두, 그건 그저 할수 없어 해보는 수작이지, 그걸 더 크게 만든다구 용해지겠냐?” 령이의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는 너무도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령이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가 못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는 령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할머니는 령이앞으로 한발 다가서서 꺼슬꺼슬한 손으로 령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야, 너 또 무슨 속 타는 일이라도 생겼냐?” “아버지가 어제 밤에 왔었는데 깨나 보니 보이지 않슴다. 아버지가 또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함까? 할머니, 난 이 주머니를 손에 쥐고있으면 가슴이 따뜻해 남다. 나에겐 이 주머니가 정말 효험이 있는것 같슴다. 그러니 이 주머니를 더 크게 만들어서, 더 용하게 만들어서 울 아버지를 집에 맘을 붙이게 하구 술을 적게 마시게 하구 나랑 별 탈 없이 조용하게 살수 있게 해주시요. 네 할머니.” “얘야, 이 불쌍한것아.” 할머니는 령이를 당겨다 가슴에 꼭 대고는 손으로 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령이는 한동안 할머니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정말 방법이 없음까? 빨간 팥을 넣은 노란 주머니를 더 크게 만들어 지니고있으면 아버지가 마음을 잡을수 있지 않겠슴까? 할머니, 도와주시요. 네?” 령이의 애절한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있던 할머니가 얼굴에 흐린 기색을 띠우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이 할미가 주책을 부렸구나. 네가 너무 안돼보여서 내가 주책을 부린거구나. 그 주머니가 무슨 쓸모 있겠냐? 옛날에 미개할 때 정말 마음을 기댈 데가 없어서 하던 노릇이지. 너의 어버지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건데. 얘야, 거기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고 너절로 정신을 차려야 하니라. 아무도 도움이 안되는거지. 저절로 일어서야 하는거지.” “할머니, 아님다. 전 속이 갑갑하다가두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를 손에 쥐고있으면 손바닥이 따뜻해나구 가슴이 활 열리는듯 편안했음다. 나에겐 이 주머니가 꼭 효험이 있슴다.” “얘야.” 할머니는 힘들게 령이를 한마디 불러놓고는 잠간 말끝을 흐리셨다가 후― 한숨을 내쉬시며 말끝을 이었다. “정말 내가 공연한 짓을 했구나. 이러는게 아니였는데. 늙은게 도와줄 방법은 없구, 마음은 급하구 해서 주책을 부린거지. 손바닥이 따듯해나구 가슴이 편해지는것같은것은 아무 기댈 데가 없다고 생각하던 너에게 작은 언덕이라도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게다. 그까짓게 무슨 효험이 있다구그러니. 밥이랑 꿍꿍 많이 먹구 너절로 힘을 내야 하는기라.” “아버지가 영 안 돌아오면 난 어떻게 살람까? 할머니―” 령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셨다. “왜 안돌아오겠냐? 애빈데, 너의 애빈데. 잠간 힘들어서 어딘가 바람 쐬러 나갔을게다. 얘야, 가자. 우리 집에 가서 아침이나 둬 술 뜨구 애비 찾으러 나가 봐라.” 말을 마친 할머니가 령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실가?) 령이는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시골에서 올라와 계절계절 노가다현장을 뛴 아버지는 사실 따로 찾을 만한 친구도 갈만한 곳도 없었던것이다. 간혹 가는 곳이라 해야 힘들고 지쳤을 때 찾군 하던 동네 상점뿐이였다. (아, 상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령이는 순간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 령이는 곧추 아버지가 다니던 상점을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아니나다를가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왔다. “아버지―” 령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상점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아침부터 왜 여기 있슴까?” 아버지는 령이의 소리에 머리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한참이나 령이를 바라보더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이…이것들이 나에게 수…술을 안준다. 나에겐 외…외상을 안준단다.” 실망에 꽉 찬 아버지의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가냘프게 들려왔다. 아버지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꽥꽥 구역질을 하고있었다. “아버지, 이러면 안됨다. 가기쇼. 집으로 가서 아침을 잡수쇼. 내가 장국을 끓이겠슴다.” 령이가 아버지를 부축하며 애절하게 간청했다. “이것들이 나에게 술을 안 판단다. 외상을 안 준단다.” 아버지는 또 그 소리를 반복하며 사탕을 먹고싶어 애간장이 타하는 어린애처럼 쩝쩝 입을 다셨다. 령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1원짜리며 2원짜리 부스럭 돈이 몇장 쥐여졌다. 세여보니 흰술 한병은 살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 내가 술을 한병 사겠슴다. 집으로 갑시다.” 그 말에 아버지는 혀끝으로 입술을 감빨며 령이를 올려다보더니 입가에 헤벌쭉 웃음을 피웠다. 령이는 감자를 깎아 넣고 장국을 끓여 상에 올렸다. 김치도 들여다 곱게 썰어 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령이가 부르기도 전에 상에 다가앉아 술병채로 마시기 시작했다. “아버지, 제가 따라드리겠슴다. 천천히 마시쇼.” 령이가 술병을 뺏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두손으로 술병을 검어쥐고 령이를쏘아보았다. 우멍하게 패인 피발이선 아버지의 눈에서 퍼런 빛이 툭툭 튀여나오는듯싶었다. 령이는 오싹 몸을 떨며 움찔 손을 당겨왔다. 그새 아버지는 또 술병을 입에 가져다가 꿀떡꿀떡 마셔댔다. 령이는 팔딱팔딱 뛰는 가슴을 손으로 꼭 누르며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 그게 다 아버지가 마실 술인데 좀 천천히 마시면 안됨까? 안주도 잡수면서 말임다.” “빌어먹을 놈들이 나에게는 외상술을 안준다는거다. 나 원 더러워서… 내 한국에만 가봐라. 돈을 벌면 걔네 상점 술을 다 사버리겠다.” 아버지는 잠간 말끝을 흐리우며 또 술병을 쳐들었다. 술병은 단번에 반나마 비워졌다. “아버지―” 령이는 애원하다싶이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손에서 술병을 나꿔챘다. 아버지는 령이가 당기는 대로 술병을 놓아버리더니 입을 떡 벌린채 한동안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왕―” 하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령이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내리는것 같았다. “아버지, 왜 이램까? 아버지가 이러니 난 무서워 죽겠슴다.” 아버지는 그 소리에 잠간 제 정신을 찾았는지 뚫어져라 령이를 바라보더니 갈린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령이야, 네 엄마 사실은 영 불쌍한 사람이다. 어느때 한번 호강도 못해보구 고생만 죽게 하더니… 죽기는 왜 죽은거야. 내가 한국 가서 돈 벌어오면 잘 살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뿌연 눈에 이슬이 맺히더니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주먹으로 찔끔찔끔 눈확을 누르더니 흐흐흐 청승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그 사마귀가 네 엄마를 데려간거다. 그 사마귀귀신이 네 엄마를 데려갔다구…” 아버지는 한참이나 중얼거리더니 그 자리에 훌렁 누워버렸다. 령이는 밥술을 뜰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잠이 들어버린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애들처럼 입귀로 느침을 줄줄 흘리며 단잠이 든 아버지를 바라보며 령이는 아버지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른 아침에 상점으로 외상술 마시러 가셨을가?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한다. 내가 아버지를 보살펴드려야 한다. 아버지니까. 내 가족이니까.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잡게 하는거야, 아버지가 마음을 잡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거야.) 령이는 생각을 굴리다가 베개 밑에서 노란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 노란것이 아버지를 술독에서 건져낼수 있는 유일한 부적처럼 생각되였다. 령이는 주머니를 손으로 싹싹 만지다가 아버지의 머리 밑에 베워드렸다. 아버지는 딴딴 팥알이 불편했던지 인차 노란 주머니를 밀어버렸다. 령이는 인차 베개를 내리워 노란 주머니 우에 놓고 다시 아버지에게 베워드렸다. 잠간 베개를 베고 누워있던 아버지가 몸을 모로 돌리자 머리는 다시 베개우에서 굴러 내렸다. 자꾸 노란 주머니와 떨어지려는 아버지의 머리를 보면서 령이는 어느새 불안한 상념에 빠지고 말았다. (웬 일일가? 왜 아버지의 머리가 자꾸 노란 주머니와 떨어지려 할가? 설마 저 주머니가 아버지에게 맞지 않는것일가? 그럼… 아버지에게 맞는것이 따로있지 않을가?) 령이의 머리속에는 접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보았던 전선대에 붙은 전단지가 떠올랐다. 그 전단지는 사람의 일생을 점쳐준다는 광고였다. 귀신처럼 사람의 전생을 알아맞추고 미래를 점쳐주며 액운을 미리 방토 해준다는 내용이였다. 전에는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무심하게 보아오던 그 전단지가 새록새록 령이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그 점쟁이를 찾아보는거야, 그 사람을 찾아가 아버지의 미래를 점쳐보고 우리 집 액운을 방토 하는거야.) 령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입가에 느침을 줄줄 흘리며 잠들어있었다. 령이는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가며 전선대들을 살폈다. 아니나다를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전선대에서 그 전단지를 찾을수 있었다. 그새 바람에 찢겨지기는 했어도 내용과 전화번호는 똑똑하게 알아볼수 있었다. 령이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단지에 찍혀져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뚜―” 신호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대방이 전화를 받는 동정이 알려졌다. “이보시요, 광고를 보고 전화 드리는건데 거기가 점치는 집이…” 령이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대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년아, 전화 올 줄 알고 기다리고있었다. 무슨 큰일을 당하려고 그러구 있는거냐? 빨랑 오지 않구 ” “네?” “뭐하고있는거냐. 빨랑 와서 액땜을 해야지?” “네? 울 아버지가 위험해요?” “위험하다뿐이냐? 그 꼴을 해가지구… 빨랑 와라.” 대방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령이는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오는것 같았다. 령이는 전단지에서 주소를 살폈다. 점쟁이네 집은 거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령이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점쟁이를 찾아 잰걸음을 놓았다. 점쟁이네 집은 들쑥날쑥한 널판자로 울타리를 두른 보통 단층 벽돌집이였다. 40대의 아주머니 한분이 소복단장을 한 녀인의 앞에 공손히 앉아있었다. 령이는 소복단장을 한 녀인이 점쟁이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쟁이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쿨적이고있었다. 점쟁이가 시끄럽다는듯 손을 홰홰 내저으며 소리쳤다. “울지 말라니까, 제 남정두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년이 쿨쩍이기는 왜 쿨쩍여? 여태 뭐하고있었는데… 벌써 와서 그놈의 아래도리가 제 노릇을 못하게 방토를 해야지…” 점쟁이는 두눈을 지긋이 감더니 입속으로 뭐라고 념불을 시작했다. 한참 지나자 점쟁이는 쿨쩍이는 아주머니에게 빨간 주머니 같은것을 던져주고는 소리쳤다. “이것을 그놈의 이불에 꽁꽁 달아줘라. 아래도리가 닿을만한 부근에 달아야 한다, 알지? 그놈 몰래 해야 하는거야, 그놈이 아는 날에는 더 기승을 부리며 날칠거니까. 그리구 보름만 지나봐라. 쫓아도 그놈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할걸.” 령이는 점쟁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다는 알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아주머니의 일이 제대로 풀려나가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저렇게 방토를 하고 우리 아버지도 주정하는 버릇을 뚝 떼버렸으면… 집에 마음을 붙이고 열심히 살았으면…) 령이는 나름대로 소원을 빌어보며 아주머니가 일어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년아, 어쩌고 왔냐?” 점쟁이가 갑자기 손바닥을 쫙 펴서 탕 하고 상을 내리쳤다. 령이는 와닥닥 놀라 몸을 옴츠리며 머뭇거리다가 기여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워 잠든것을 보고 왔슴다.” “잠이 들었군. 무엇을 베워줬니?” “베… 베개를…” “베개를?” “네 그 밑에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리를 깔아드렸슴다.” “이런, 이런 죽일 년을 봤나? 그게 뭐라고 그걸 베워드려? 큰일을 치자고 환장을 했구먼.” “엄마가 차사고로 돌아간 후 침침하고 아프던 가슴이 그 주머니를 베고 잔 다음부터 나아지는것 같길래…” “이년아, 패끼(팥) 몇알을 베고 자서 귀신이 떨어졌으면 사람마다 패끼 뒤주에서 살아야겠다.) “네? 그 주머니에 패끼(팥)가 들어있는걸 어떻게 암까?” “이런, 이런 죽일 년을 봤나? 그것도 모르면서 내가 자리를 깔았을가? 네 애비도 불쌍쿠나. 천당에 못가 떠돌아다니던 너의 할애비 술시중에 항상 머리뚜껑이 훌렁훌렁 해 하더니 또 억울하게 죽은 녀편네까지 끌어안게 됐구나.” “네? 그게 무슨 말임까?” “네 애비한테 물어봐라. 워낙 너의 할애비가 유명한 술뒤주였거든. 그 술버릇을 저승까지 가지고 갔다가 신령님 눈에 나서 천당에 못간거야. 그래서 아직도 이승에 떠돌며 네 애비에게 붙어서 술충이나 달래는 판이였지. 그래서 네 애비가 술주정을 부리는거야.” “설마요, 시골에 살 때는 아버지도 술주정을 하지 않았거든요.” “요런, 요런 괘씸한 년을 봤나? 그때야 신령님이 너의 할애비를 눈여겨 살펴볼 때니까 그랬지. 아직 너의 애비에게 얹히지않았을 때니까 그런거지.” “그럼 언제 부터…” 령이는 말끝을 흐리우며 점쟁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점쟁이가 또다시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입에서 침을 튕겼다. “요런, 요런 그 주둥이가 제법 야물었네. 언제부터는 언제부터야, 너희들이 시내로 게바라들어온 그때부터 잘못된거지. 쯧쯧쯧… 네 에미는 딸년이 불쌍한것도 모르고 제 남정이 불쌍한것도 모르는 년이구나. 너 하구 네 애비한테로 왔다갔다 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날뛰는것을 보니… 이년아, 무겁지? 두 어깨가 천근같이 무겁지? 그래 안 무거우면 이상하지. 차에 치워죽은 네 에미가 동네귀신들을 한무리나 끌고 와서 팔자 좋게 척하니 너의 어깨 우에 올라앉아 헤벌써 웃고있는데 어깨가 안무거우면 이상한거지. 여보소― 놀라 죽은 귀신, 물러가소, 억울해서 죽은 귀신도 물러가소. 동에 귀신 서에 귀신 마음 곱게 잡수시고 이 년 어여삐 여기시고 물러가소, 물러가소.” 한폭의 커다란 승무도가 두려움에 떠는 령이의 머리속에 펼쳐지고있었다. “진짜 울 엄마가 나의 어깨 우에 앉아있나요?” 령이는 반신반의 하며 점쟁이에게 물었다. 점쟁이의 두눈이 홱 꼭뒤에 올라가 붙었다. “요런, 요런 맹랑한 년을 봤나? 네 에미 하나가 아니구 뭇귀신들을 끌고 올라앉아있다니까.” “그럼 제가 어쩌면 좋아요?” “이년아 그 뭇귀신들을 쫓아야 하지. 에미귀신을 쫓지 못하면 아무 일도 뜻대로 안될거다. 이년아, 왜 인제야 찾아오는거냐? 이럴 줄 알았지, 알았어. 요즘 어쩐지 내 머리가 소란스럽더라니까. 이런 귀신들을 목마 태우고 다니니까 그렇지. 물러가라, 물러가라. 놀라 죽은 귀신아, 물러가라. 억울해서 죽은 귀신도 물러가라. 동에 귀신 서에 귀신 마음 곱게 잡수시고 이년 어여삐 여기시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점쟁이는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 빨간 부채를 펴들고 신내린듯 덩실덩실 춤을 춰댔다. 령이는 동그렇게 바람을 먹으며 돌아가는 점쟁이의 하얀 치마자락을 멀거니 바라보며 무서워서 잔뜩 어깨를 옹크렸다. 그날 령이는 돈 200원을 내고 누런 종이돈을 한아름 가져왔다. 밤 10시가 지난 후에 어머니가 차사고로 돌아간 그 자리에서 종이돈을 태우라는것이였다.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가 그 돈을 로자로 해서 천당에 간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도 함께 태워버리라는것이였다. 한 집안에 집지킴이가 둘이 있으면 서로 다투기에 큰 사고가 난다는것이였다. 그날 령이가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또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령이는 점쟁이의 말대로 밤에 태워버리려고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를 찾았다. 분명 아버지의 베개 밑에 넣어두었던 노란 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왜 없을가? 혹시 아버지가 가지고 간것이 아닐가? 그럼 어쩌지? 태워버리지 않았다가 정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령이는 근심에 쌓여 가슴을 조이다가 종이돈을 안고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던 마을 길로 나갔던것이다… 령이는 차츰 어제 밤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리속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차에 뛰여들었댔구나. 정말 내가 죽으려 했을가? 아닌데, 정말 죽고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어제 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하도 어이없게 놀길래 치미는 분을 누르지 못하고 무작정 뛰여가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거야. 그래, 그런거야. 죽으려고 생각했다면 내가 점쟁이를 찾아가 방토를 하고 종이돈을 태웠겠어? 그래, 맞아. 점쟁이는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노란 주머니도 함께 태우라고 했는데… 맞아 그것을 태우지 않아서 내가 사고를 당한거야.) 령이는 또 노란 주머니를 생각하게 되였다. 한 집안에 집지킴이가 둘이 있으면 서로 다투기에 큰 사고가 난다던 점쟁이의 목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싶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노란 주머니를 태우지 않아서 귀신들이 서로 다투다가 내가 사고를 당한거야. 그것을 태우지 않으면 우리 집에 또 어떤 액운이 닥칠지 몰라. 그 노란 주머니를 태워버려야해.) 령이는 한시 바삐 그 노란 주머니를 불속에 집어넣고싶었다. 령이는 애써 숨을 고르고는 바싹 말라터진 입술을 감빨다가 나직하게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손에 술병을 들고있었다. 령이의 부름을 들었는지 아버지는 입가에 가져갔던 술병을 내리우고 령이를 찔 가로보며 웅얼거렸다. “이년아, 죽지 못해 환장을 했더냐? 차에는 왜 뛰여들어? 에미가 어디 천당에라도 갔는줄 알았어? 네가 에미를 찾아가느라고 차에 뛰여들었지?” “아버지, 그러지 마쇼. 나 힘듬다. 아버지, 그 노란것을 어쨌슴까? 아버지가 가져갔지 예?” “노란것이라니?” 아버지가 다시 령이를 가로보며 물었다. 령이는 잠간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 “아버지의 베개밑에 있던 노란 주머니 말임다. 그 주머니를 어쨌음까?” “아,” 아버지가 술병으로 자기의 신다리를 탁 내리치며 알은체를 했다. “그 패끼(팥)를 넣은 주머니를 그러지? 그게 뭐야?” “어쨌음까?” “흐흐흐… 난 그안에 돈이라도 넣구 꿰맸는가 해서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 길에서 뜯었봤는데 그 잘난 패끼가 와르르 쏟아지길래 그대로 던져버렸다. 흐흐흐…”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청승스럽게 웃어댔다. “아버지!” 령이는 가슴이 꺽 막혀오는 감을 느꼈다. 눈앞에서 무수한 별찌들이 탁탁 튀면서 머리가 흐릿해났다. 령이는 흐릿한 그속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노란것을 보았다. 령이는 노란것을 잡고싶었다. 잡아서 활활 타오르는 불에 태워버리고싶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나쁜 술버릇이 떨어지고 아버지가 가정에 마음을 붙일수 있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그렇게 하고싶었다. 령이는 노란것을 따라 허위허위 날아가는 자기의 환영을 보고있었다.    
349    선녀를 찾아주세요 댓글:  조회:1291  추천:0  2012-04-24
          A 컴퓨터앞에 앉아서 질근질근 껌을 씹는 퍼어런 눈두덩의 수금원녀자에게 돈을 넘겨주면서도 홍수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숨마저 크게 쉬고싶지 않았다. 어쩜 “후―” 하고 날숨을 내쉬는 사이에 방금전 그 아지랑이같이 아물아물하던 기분이 “붕―” 날아가버릴것 같아서였다. (뭐? 아직은 그런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공부할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먼저 중점고중에 붙고 그다음 명문대학에 가서나 생각할 문제라고? 깜찍한것!) 홍수는 생각할수록 눈앞에 꼭 깨물어주고싶게 귀여운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래, 분명 그 애야, “선녀”가 틀림없어!) 홍수는 저도 몰래 헤벌쭉 웃었다. 수금원녀자가 멍청이처럼 혼자 웃는 홍수를 괴물이나 바라보듯하더니 컴퓨터옆의 빈자리에 거스름돈을 탁 내려놓으며 “어이”하고 소리쳤다. 홍수는 우뚤 놀라며 정신을 번쩍 차렸다. 수금원녀자가 까아만 점이 도드라진 빠알간 입술을 외로 탈며 “승천!” 하고 짤막하게 소리쳤다. “어, 승천!” 홍수는 수금원녀자에게 멋적게 머리를 끄덕해보이고는 컴퓨터옆에 놓은 거스름돈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쫓기듯 PC방에서 나왔다. 홍수는 밖에 나오자 바람으로 터질듯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까스로 누르며 머리를 쳐들었다. 뭇별이 깜빡이는 망망한 하늘에서 채 여물지도 못한 쪼각달이 어디론가 바삐바삐 걸음을 재촉하고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던 날 어느 골짜기 숲을 지나서 단둘이 처음 만났죠…” 홍수는 하늘에 대고 휙휙 휘파람을 불었다. 반짝이는 별들마다 “선녀”의 맑고 깊은 눈동자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홍수는 처음으로 도시의 밤하늘에도 이렇게 많은 별들이 깜빡이고있음을 느꼈다. 홍수는 “선녀”와 한하늘을 쓰고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홍수는 아침에도 마을 뻐스역에서 “선녀”를 만났었다. “선녀”는 역시 머리를 살며시 숙이고 2선이라고 쓴 패말밑에 오똑 서있었다. 그는 언제나 무엇을 속삭이는듯한 까아만 눈을 살짝 감았다가는 반짝 뜨고 주변을 살피는것이 어쩜 마음속으로 한없이 그리는 그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듯싶었다. (혹시 그 애 기다리는 사람이 내가 아닐가? 정녕 그 사람이 나라면 얼마나 좋을가?) 홍수는 나름대로 제 좋은 생각에 김치국을 챙겨 마시며 저도 몰래 그 애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홍수는 늘 모르는척 그와 몸이라도 한번 부딪쳐보고싶었고 그것이 안되면 그로부터 풍겨오는 향긋한 체취라도 맡아보고싶었다. 홍수는 그 애가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릴 때보다도 살며시 두눈을 감고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살며시 감겨진 까아만 눈은 마치도 금방 피여나려고 파르르 떠는 꽃망울을 방불케 한다고 생각했다. “선녀”는 또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치려는지 살며시 두눈을 감고있었다. 홍수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호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종이쪽지를 꺼내여 그 애옆에 떨구어놓았다. 홍수는 가슴이 활랑거리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홍수는 호주머니에 손을 지른채 살랑살랑 휘파람을 불며 그 애와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섰다. 홍수가 타야 할 5선뻐스가 먼저 오고있었다. 홍수는 뻐스를 탈 준비를 하면서 흘끔 “선녀”를 훔쳐보았다. 종이쪽지는 아직 그의 발밑에 떨어진대로 있었다. 홍수는 마음이 조급해났다. 그 애가 종이쪽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어쩔가? 그새 종이쪽지가 바람에 훌 날려버리기라도 하면 어쩔가? 5선뻐스는 홍수네를 싣고 부르릉 소리를 내며 뻐스역을 떠났다. 홍수는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선녀”와 그의 발밑에 있는 종이쪽지를 살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선녀”는 종이쪽지를 줏지 않고있었다. “나는 나무군, 선녀를 찾는다. 나무군의 오두막주소: ******@hotmail.com 진심으로 련락을 기다린다.” 홍수는 학교에 가서도 “선녀”와 종이쪽지만 눈앞에 삼삼거려 온종일 정신을 집중할수가 없었다. 홍수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하루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선녀”가 처음으로 홍수의 눈앞에 나타난것은 한달전, 개학 첫날이였다. 그날 홍수는 아침 일찍 뻐스를 타려고 마을 뻐스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방 아빠트 굽인돌이를 지나 뻐스역에 눈길을 주었는데 하얀 적삼에 하얀 치마를 받쳐입은 낯 모를 녀자애가 첫눈에 안겨들었다. 파르스름한 가방이 하얀 옷에 어울리면서 금방이라도 날아나버릴듯 무척이나 산뜻해보였다. (누굴가?) 사과향기 비슷한것이 하얀 옷으로부터 은은하게 풍겨와 홍수의 페부에 스며들었다. 홍수는 무심결에 하얀 옷을 훔쳐보았다. 어깨까지 찰랑찰랑 기른 생머리를 까아만 헝겊끈으로 꼭 묶어 한결 깔끔해보이는 녀자애, 큰 호수 같은 까아만 눈이 무시로 반짝이는 녀자애, 백설같이 하아얀 얼굴에 아침해살같이 마알간 웃음을 살며시 물고있는 녀자애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마치도 금방 그린 선녀도처럼 홍수의 눈앞에 펼쳐졌다. 홍수는 새삼스럽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활랑거렸다. (쳇, 남자가 면목이 없이, 이게 웬 일이람. 아자, 정신 차려. 저 애가 뭔데, 정월대보름에도 본적이 없는 저 애가 내게 뭐가 되는데…) 홍수는 호주머니안으로 손을 넣어 자기의 넙적다리를 꽉 꼬집었다. 넙적다리에서 얼얼한 아픔이 전해졌다. 그날은 2선뻐스가 먼저 미끄러져오더니 하얀 옷을 입은 녀자애의 앞에 와 멈춰섰다. 몇 안되는 손님들이 다투어 뻐스에 오르려고 헤덤볐다. 녀자애는 손님들이 뻐스에 다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 사람으로 뻐스에 올랐다. 달리는 뻐스창문으로 하얀 옷이 유표 나게도 눈에 안겨들었다. 이튿날에도 녀자애는 같은 시간에 역전에 나와있었다. 녀자애는 그날 교복을 입었는데 ㅅ중학교의것이였다. 홍수는 그 녀자애와 한학교에 다니면 좋겠지만 한마을에 사는것만으로도 더 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저 애, 이름은 뭐라고 부를가?) 알고싶었다. 홍수는 이것저것 주어서 생각하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쳇, 이름을 알아서는 뭐해?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듯한 선녀 같은 모습만 생각하면 되는거지. 그래, 그 애는 나의 선녀야, 나를 만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거야.) 홍수의 얼굴에는 홍조가 피여나고있었다. 개학 첫날에 맞은 화살때문에 홍수는 한달내내 가슴앓이를 했다. 숙제를 하다가도 멍하니 앉아있는 홍수를 보고 어머니는 벌써 몇번째나 충고를 주었다. “홍수야, 너 요즘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있다.” “제가 뭘요?” “엄마 눈은 못 속인다. 너, 요즘 뭔가를 앓고있는것 같은데…” “어머니, 그만하세요. 소설은 그렇게 쓰는게 아니거든요.” 홍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씽긋 웃어보이고는 수학숙제책을 번졌다. 녀자애의 까아만 눈이 홍수에게 뭔가를 속삭이는듯 또 홍수의 머리속에 찾아들었다. 홍수는 필을 놀리는것처럼 하면서 옆에서 사과를 깎고있는 어머니를 훔쳐보았다. 역시 어머니는 홍수를 지켜보고있었다. 홍수는 문뜩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려있는 작은 물고기가 생각났다. 잡지사 편집으로 계시는 어머니는 요즘에 와서 홍수의 일상을 무척이나 열심히 살피고있었다. 초중 2학년은 인생에서 관건의 관건이라는것이 어머니의 인생철학이였다. 초중 1학년에서는 중학교생활에 익숙해지느라고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별로 없지만 중학교생활에 익숙해진 2학년부터는 찾아오는 사춘기와 함께 새로운 버릇들이 자라기 시작한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그중에서 제일 피해가기 어려운게 사춘기의 “사랑놀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완전히 도사가 다됐네. 도사야, 하지만 지금 나의 이 감수를 어떻게 다 안다구? 어머니네 시절의 고리타분한 격정은 지나버렸습니다. 녀사님!) 눈귀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어머니의 머얼건 얼굴을 바라보면서 홍수는 어머니와의 세대차이를 느끼고있었다. 10년같이 지루하게 하루공부를 끝낸 홍수는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곧추 PC방에 들렸던것이다. 혹시나 오매에도 그리던 “선녀”가 아침에 종이쪽지를 주어보고 홍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쯤은 PC방에 내려와 나무군을 기다리고있으리라 생각되였던것이다. 홍수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금방 메신저에 올라서 친구리스트를 훑어보고있는데 모니터에 대화창이 뜨며 “할룽―” 하고 인사말을 건네왔다. 대방은 “선녀는 없다”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였다. 순간 홍수는 호흡이 뚝 멎는듯싶었다. (맞아, 바로 그 애야, 나의 선녀야!) 홍수는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후들후들 떨려 자꾸 오타가 생겼다. 홍수는 두손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가 후― 심호흡을 하며 또박또박 키보드를 눌렀다. “안녕?” “나 누군지 알어? ㅋㅋㅋ, 지금 어디니?” “집이야.” 홍수는 저도 모르게 집이라고 대답해버렸다. 글을 보내고나서야 홍수는 저도 몰래 거짓말을 한 자신이 사뭇 못나게 느껴졌다. 집에서 기다릴 어머니의 모습도 머리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홍수는 “선녀”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집이라고 했으니 그냥 집인것처럼 하고 대화를 나누자 생각하며 넌지시 물었다. “처음 보는 아이딘데 누구지?” “그럴거야, 하지만 아직은 비밀.” “왜 비밀인데?” “너무 빨리 알면 싱겁잖아? 모든것이 그래, 너무 익숙하면 맛이 없거든.” 홍수는 대방이 참 묘한 애라고 생각되였다. 줄것처럼 하면서도 감출줄도 아는 씹을 맛이 있는 애라고 생각되였다. 홍수는 이런 애들앞일수록 둔한것처럼, 철 없는것처럼 덤벼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 남자친구가 있니?” “ㅋㅋㅋㅋㅋㅋ…” “왜 웃는데?” “너, 참 급한 애구나. 몇살인데 벌써 그런 궁리를 하니?” “인젠 생각할 때가 됐지. 우리 어머니는 늘 옛날 같으면 장가라도 들었겠다 하시는데.” “하긴 일곱살에도 장가가는 세월이 있었다고 하더라만.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공부할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먼저 중점고중에 붙고 그다음 명문대학에 가서나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홍수는 “선녀”가 보내온 글을 읽으며 그 애가 화사한 해살만치나 해맑던 얼굴같이 말도 해박하게 할줄을 안다고 생각했다. 홍수는 이런 애와 함께라면 고독도 외로움도 없을것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속에 없는 소리를 한마디 했다. “말하는것 하구는. 너, 참 우리 어머니 같다.” “왜 그렇게 말하지?” “너의 말에 철리가 쫘르르 흐르잖아. 어머니대가 아니구서야 어쩜 그런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겠니?” “ㅋㅋㅋ, 기분이 좋아지는가? 아니, 꿀꿀해 지는것 같기도 하구. 그래, 너도 빨리 너의 엄마를 친구해드려라. 난 빨간 사과나 추렴하며 잠간 세상 사는 옛말이나 보겠다.” 홍수가 미처 인사를 하기도전에 “선녀”가 먼저 “안녕!” 하고 글을 띄워보내고는 메신저에서 사라졌다. 홍수는 파아란 잔디가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컴퓨터의 배경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구픈 웃음을 킥 날렸다. 진짜 “선녀는 없다”로 되여버렸던것이다. 엄마를 동무해드리라던 “선녀”의 말이 귀전을 스쳤다. 집이 가까와올수록 홍수는 가슴이 초조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금 PC방에서 나올 때의 무르익은 홍시 같던 감흥은 해볕을 만난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흑구름이 감돌아있을 어머니의 얼굴이 무시로 눈앞에서 언뜰거렸다. 잘못하면 폭우도 퍼부을지 모른다는 근심까지 머리를 쳤다. (어떻게 하면 오늘밤, 젖지 않을가?) 홍수는 부지런히 속구구를 하며 집을 바라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B 홍수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흠칫 손을 멈추고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들었다. 어쩜 지금쯤 벼락이 치려고 먹장구름이 몰려오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 판에 버젓이 초인종까지 눌러 내가 왔노라 시위한다면 모르기는 해도 단번에 벼락이 떨어져 머리를 칠것 같았다. 홍수는 조심스레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렸다. 찰칵,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홍수는 천천히 출입문을 당겨 열었다. 다행히 객실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후―” 홍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집안에 들이밀었다. “인제야 오는거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왔다. 홍수는 혀를 홀랑 내밀며 “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인젠 밥을 먹어도 되겠구나. 참, 겨우 참았네.” 아버지도 침실에서 짧은 바지 바람으로 나오시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안의 분위기를 보니 의외로 벼락까지 칠것 같지는 않았다. 홍수는 자기의 침실에 들어가 가방을 벗어놓은후 인차 편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과 손을 씻었다. “뭐 하니? 빨리 와라.” 주방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 울렸다. 홍수는 “네―” 하고 대답하며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식탁에 앉아서 홍수를 기다리고있었다. 홍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발볌발볌 식탁으로 다가가 앉았다. “자, 밥 먹자. 도련님을 기다려 밥 먹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닌데. 어찌된거야? 학교에서 이렇게 늦게 오는거니?” 역시 아버지가 김치찌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가며 먼저 물었다. “네.” “너희들 학교에서 이번 학기는 단단히 잡아 쥘 모양이구나. 그렇지, 너희들때는 누군가 뒤에서 자꾸 채찍질을 하며 감독을 하는게 사랑인거다. 그만치 자각이 없는 세대들이니까.” 어머니도 배추김치잎을 집어 손으로 찢으며 홍수의 얼굴에 눈길을 주었다. “네. 그래요.” 홍수는 머리를 살며시 숙이고 부지런히 밥술을 옮기며 혀아래로 웅얼거렸다. 어머니는 그러는 홍수를 잠간 지켜보다가 방금 찢은 배추김치잎을 홍수의 밥술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왜? 너 무척 피곤해보인다. 배고프지?” “아니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늦었니?” 홍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속이 꿈틀해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인제야 시작되는가?) 하는 근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었다. (그냥 PC방에 들려온다고 말해버릴가? 아니야, 그러면 당금 벼락이 떨어질거야, 지금이 어느때라고 PC방 출입이냐며 소비돈까지 자르면 긁어서 부스럼이거든. 그럼 뭐라고 해? 회의? 복습? 아니면…) “얘! 혼 나간 애 같네. 무슨 생각을 하고있니?” “네, 아, 3반 애들하구 롱구시합을 했어요. 제가 주력이였거든요. 이겼어요.” 홍수는 말을 마치고 흘끗 어머니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어머니의 눈길이 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치고있었다. 홍수는 다시 멋적게 머리를 숙이고 숟가락을 놀렸다. 밥상을 둘러싸고 잠간 사각사각 음식 씹는 소리만 오고갔다. 홍수는 숨막히는 저기압을 느끼며 점점 저 멀리로 달아나버리는 음식맛을 잡을 길이 없었다. “여보, 당신이 얘기하던 그 애는 지금 어때요?” 어머니가 화제를 돌렸다. (뭔 소릴가? 그 애라니?) 홍수는 머리를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진듯싶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야릇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아버지께서 김치찌개그릇에 숟가락을 가져가다말고 입을 열었다. “아, 그 애, 짝사랑하던 녀자애를 칼로 찔러버렸다는 그 애 말이지?” “네, 그 애가 몇살이라 했죠?” “열여섯살이라든가? 열일곱살이라든가.” 아버지께서 김치찌개를 한술 입에 떠넣고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출근하는 간수소에 그런 애가 갇혀있는 모양이였다. “쯧쯧쯧…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이 난다구, 저희들이 무엇을 안다구 짝사랑은 짝사랑이예요. 그럼 그런 애들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아직은 미성년이니 제대로 판결은 못할거구요.” “아마 소년범관리소 같은데 보내야겠지. 지금 무서운 애들이 참 많소. 우리 홍수처럼 참한 아들을 둔것도 복인줄 아시구려.” 아버지께서 홍수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홍수는 후줄근히 젖지도 못하고 가슴을 조이느니 차라리 “우르릉 쾅!” 하고 우뢰가 우는쪽이 나을것 같았다. 가슴이 침침해서 “펑―” 하고 터지기 일보직전에 이른듯싶었다. 홍수는 수저를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입을 열었다. “왜? 좀 더 먹지 그러니? 무척이나 배고팠을텐데.” “배불러요. 천천히 잡수세요.” 홍수는 딱딱하게 한마디 남기고는 인차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사이문을 닫아버렸다. 침대우에 훌쩍 자기의 몸을 던졌다. 충격에 시몬스침대가 슬렁 홍수를 흔들어주었다. 홍수는 두눈을 꼭 감았다. 어금이도 꽉 사려물었다. 손으로 가슴을 꼭 누르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 정도로 넘어간것이 과연 다행일가? 어쩜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PC방에 들렸다가 온 눈치를 채시면서도 저렇게 시치미를 떼고있는건 아닐가? 진정 그렇다면?) 홍수는 으스스 몸서리를 쳤다. 전라의 몸으로 네거리를 활보하고 난것처럼 기분이 찜찜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비참할라구. 그래 아버지 어머닌 아직도 나를 모범생으로 점찍고있는거야, 그래, 난 모범생이지. 이만하면 모범생줄에 설수 있는거야.) 홍수는 애써 자기를 위해 변명을 해보고싶었다. (그래, 아직 누구와 싸움 한번 못해보고 오늘까지 오기가 쉬운가? 게다가 반에서 학습성적은 언제나 다섯손가락안에서 오르내렸지. 반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에서 쭉 간부로 활약을 해왔었구… 이쯤하면 모범생인거지 뭐!) 홍수는 자기가 모범생인 까닭을 찾으라면 아직도 열가지는 더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마음이 열리자 그 녀자애의 하얀 얼굴이 빠끔히 머리를 쳐들었다. 흑진주같이 반짝이는 까아만 눈이 자기를 바라보며 뭔가 속삭이고있는듯싶었다. 홍수의 입가에는 차츰 홍조가 비껴오르기 시작했다. (뭐? 선녀는 없다구? 흐흐흐… 유머감각까지 푹 배인 애야, 이런 유머감이야말로 세상을 초개같이 보는 오늘의 우리 모습이지. 헌데 어떻게 하면 그 애의 마음을 열수 있을가? 뭐? 명문대학에나 가서 생각할 일이라구? 와― 그때가 언젠데…) 홍수는 벌떡 일어나 책상서랍에 잠근 자물쇠를 열고 일기책을 꺼내 펼쳤다. “그리운…” 써놓고보니 싱거운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그리운 아들아!” 하고 부르는것 같이 슴슴하고 격정이 없어보였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 사랑하는 나의 선녀야? 으― 닭살!!! 아님? ㅠㅠㅠ…) 홍수는 만년필을 일기책 갈피에 끼워놓고 살며시 두눈을 감은채 걸상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하늘에서 하얀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춤추며 내려오고있었다. 선녀는 컴퓨터앞에 내려와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방긋이 웃고있었다. 그러다가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멋지게 엔터키를 눌러 글을 띄워보냈다. 홍수는 마치도 선녀가 보낸 글을 읽는듯 아리송한 환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자, 사과나 한쪽 먹을가?” 갑자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왔다. 홍수는 깜짝 놀라며 손으로 책상우의 일기책을 덮었다. 홍수의 반상적인 거동에 어머니가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왜 이렇게 놀라니? 일기책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있는게 아니야?” “아…아니요.” “이런, 말까지 더벅더벅 더듬으며… 웬 일인데? 홍수야,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말해봐라. 혼자서 메고 가기 버거운 일이라면 엄마와 함께 지고 가는것도 나쁘지야 않겠지?” 어머니가 홍수의 옆에 다가서며 들고 들어온 쟁반을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홍수는 당황한 눈길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떠듬거렸다. “없어요. 그런게 없어요. 어머닌 괜히…” “그래? 근데 엄마는 자꾸 근심이 앞선다. 요즘 분명 너의 일부 행동이 반상적이거든. 혹시라도 혼자서 너무 힘들지 않을가 근심이 자꾸 나구. 엄마는 언제나 홍수의 편이 되고싶은데… 친구처럼 편한 짝이 되고싶은데…” 어머니는 침대모서리에 약간 몸을 걸치고 앉아 금방 초록을 찾아가는 대지를 어루쓸어주는 봄비마냥 잔잔하게 홍수의 마음밭을 적셔주고있었다. 홍수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각 말을 마치고 입술을 감빠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도 방금 끝을 맺은 자기의 작품에서 티를 찾는 까끈하고 다정다감한 화가와도 같아보였다. 홍수는 어쩐지 코끝이 시큼해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머니―” 홍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옆으로 다가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윽한 눈길로 홍수를 지켜보고있었다. 홍수는 어머니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으며 어머니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너, 인제야 마음이 열리는거니?” “어머니, 방금 PC방에서 오는 길이였어요.” 홍수는 낮지만 진정을 담아서 한마디한마디 마음속 말을 하고야말았다. 어머니는 홍수의 어깨를 다정히 도닥여주고는 천천히 홍수의 팔에서 몸을 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서 늦었구나. 급히 찾을 자료가 있었다면 집에 와서 시름 놓고 찾는게 더 좋았을텐데.” “그런게 아니구요, 멘저에 올랐댔어요.” “멘저에? 친구들하구 비밀이야기라도 나눌게 있었니? 얼마나 주요한 비밀인데 그렇게 철통같이 수비를 하는거냐?” “아니예요. 그런게.” “그래, 엄마를 믿어줘서 감사하다. 이만하면 너, 나를 짝꿍으로 생각하는거지? 아들, 아자!” 어머니는 홍수에게 주먹을 흔들어보이며 가는 실웃음을 입가에 물고 날리듯 침실에서 나갔다. 홍수는 사라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다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자신이 너무도 허무하고 초라해보였다. 천둥번개를 맞은것이 아니라 잔잔한 봄비에 쓰고있던 가면이 홀라당 씻겨져버려 발가숭이로 네거리에 나선 기분이였다. (뭐? 어머니 고맙습니다. 멘저에 올랐습니다? 거기다가 어머니의 어깨까지 끌어안구… ㅠ―) 홍수는 어깨를 움씰하며 몸을 떨었다. 어딘가에서 선녀가 자기를 훔쳐보면서 키득키득 웃고있는듯싶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말 그 애가 알면 얼마나 웃을가? 남자애가 감상에 빠져가지구? 그래, 난 마음이 여린게 문제야, 어머니의 몇마디 말에 혼이 싹 나가구, 가슴이 울렁거려가지구, 뭐? 딴에는 사내대장부라구? 이 재간을 가지고 그 애의 마음을 훔치겠다구?! 쳇― 이게 아닌데…) 홍수는 벌떡 일어나 오른 주먹으로 왼쪽손바닥을 탁 들이치며 “아자!” 하고 속으로 웨쳐보았다. 홍수는 다시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선녀야: 어제저녁에 멘저에 올라줘서 감사하다. 오늘저녁 우리 멘저에서 다시 만나자. 기다린다. 나무군!” 홍수는 멋지게 몇 글자 갈기고는 종이를 쭉 찢어 그것으로 정성 다해 종이학을 접었다. 홍수는 종이학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소중한 보물이라도 다루듯 정히 가방 겉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 시각 홍수는 래일의 태양을 그려보고있었다. C (이걸 어떻게 줘? “어제밤 멘저에 올라줘서 고마왔다?” 이― 그럼 너무 직설적이잖아, 무드가 없어. “웬 남자애가 저래?” 하고 웃을걸, 그럼? 슬그머니 히쭉 웃으면서 “얘, 이걸?”, 그러다 그 애가 일부러 “이게 뭐니?” 하고 샐쭉하면서 안 받는것처럼 하면 어떡하지? 아하!)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있을 때 홍수가 타야 할 5선뻐스가 북쪽에서 구을러오는것이 보였다. 홍수는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종이학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더는 주밋거릴 시간이 없었던것이다.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호주머니속에서 열번도 더 날아나오려고 하는 종이학을 “선녀”에게 보내줘야 했던것이다. 5선뻐스는 칙― 소리를 내면서 역에 와서 멈추어섰다. 홍수는 호주머니에서 종이학을 꺼내들었다. 잠간 머뭇거리다가 “선녀”의 앞에 다가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얘, 읽어봐라!” 홍수는 “선녀”를 향해 수집게 한번 씩 웃어보이고는 그의 반응도 살필 새 없이 몸을 돌려 뻐스에 뛰여올랐다. 뻐스는 “삐이익―” 문소리를 내며 부르릉 떠났다. 홍수는 뻐스창문에 붙어서서 뚫어지라 “선녀”를 바라보았다. “선녀”는 뜻밖의 놀이감을 받아쥔 익살궂은 소녀처럼 종이학을 이리저리 돌려보고있었다. (풀어봐, 어서 풀어보라니까.) 뻐스는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참, 그 애가 지금쯤은 종이학을 풀어보고있을가? 만약 풀어보고있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있을가? 흐흐흐, 날보고 참 멋진 애야! 하며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일지도 몰라. 그래, 잘한거야! 종이학을 줄 때 아마도 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터프해보였을걸, ㅋㅋㅋㅋ… “얘, 읽어봐.” 목소리가 약간 떨렸던가? 그래도 괜찮지 뭐, 터프한 속에서 흐르는 약간의 격동, ㅋㅋㅋ…) 평소에는 멀게만 느껴지던 상학길이 오늘은 아름다운 상상때문인지 반이나 짧아진듯싶었다. 홍수는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교실에 들어섰다. 언제나와 같이 교실에는 일찌기 학교에 오는 몇몇 동학들이 앉아서 열심히 교과서를 뒤적이고있었다. 홍수는 얼굴에 웃음을 담고 들어서며 동학들을 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아침―” 동학들이 약속이나 한듯 머리를 들어 홍수를 바라보았다. “얘, 오다가 길에서 모아바이라도 주었니? 큰걸루?” 옆에 앉은 정호가 자리에 앉은 홍수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홍수는 시물시물 웃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호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여?” “너의 얼굴에 그 정도는 씌여져있다. 아님, 그렇게 입이 귀에 가 걸릴수 있을가?” “그래? 모아바이 한장에 이렇게 흥분을 할 내가 아니지.” “그럼? 그보다도 더 엄청난 기쁨이라? 어허― 수상한데. 뭘가? 아! 그렇지?” 정호가 별안간 알겠다는듯 오른손을 쫙 펴서 책상을 탕 내리쳤다. 그 바람에 책을 보던 애들이 모두 홍수네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정호가 시물시물 웃으며 홍수에게 한마디 했다. “홍수, 너 아침에 해결을 봤구나.” “뭘, 내가 뭘?” 홍수가 정색해서 정호를 바라보았다. 어쩜 “선녀”에게 종이학을 날린것이 정호에게 발각되지 않았나 속이 꿈틀했다. 정호의 입가에 아릴듯말듯 묘한 웃음이 피여났다. (이 자식이 분명 눈치 챈거야, 어떻게 안거지?) 홍수쪽에서 되려 궁금증이 나 안절부절 못했다. 정호가 여전히 킥킥거리며 입을 열었다. “홍수야, 너 아침에 분명…” “오, 어떻게 알았니?” 홍수가 정호옆에 바싹 붙어앉았다. “어떻게 알긴, ㅋㅋㅋ… 네가 시원히 큰 문제를 해결하구 기분 좋게 화장실에서 나오는걸 내가 분명 봤는데.” 정호의 말을 듣고난 홍수가 어이없다는듯 주먹으로 정호의 어깨를 쥐여박았다. “에잇, 유치한 놈!” 교실에서 폭소가 터졌다. 홍수는 수학교과서를 꺼내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기분이 좋아 그런지 어렵기만 하던 수학문제가 술술 잘 풀려나갔다. 홍수는 오전 내내 꿀먹은 기분이였다. 오전공부가 끝나자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오후에 “시조선족중학교애국주의교양웅변대회”에 방청을 갈 동학들의 명단을 공포했다. 모두 일곱명이였는데 홍수와 정호도 들어있었다. 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급간부들과 웅변에 재간이 있는 동학들 몇명을 뽑은것 같은데 정호는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듯싶었다. “아자!” 홍수와 정호는 나지막이 쾌재를 불렀다. “시조선족중학교애국주의교양웅변대회”는 교원연수학교강당에서 열렸다. 시내 아홉개소 조선족중학교에서 모여온 학생들과 선생님들로 강당은 초만원을 이루고있었다. 관중들은 학교별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교육국 부국장님의 개회사가 있은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시조선족중학교애국주의교양웅변대회, 첫 연사를 모시겠습니다. ㅅ중학교에서 온 박옥자연사입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사회자의 도어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졌다. 첫 연사라 모두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정호가 홍수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피씩 웃으며 속삭였다. “박옥자, ㅋㅋㅋ… 왕청에 사는 우리 이모가 생각난다.” “왜? 하필이면 너네 이모야?” “촌티가 줄줄 흐르잖아? 박옥자가 뭐야?” 두손을 가슴아래로 들어보이며 뚱뚱한 모습을 그리는 정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어려있었다. 장내에서 또다시 박수소리가 울렸다. 홍수와 정호도 따라서 박수를 치며 무대우에 눈길을 던졌다. ㅅ중학교에서 온 연사가 무대우에 올라서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굽혀 곱게 인사를 하고있었다. 연사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헉!” 순간 홍수는 호흡이 뚝 멎는듯싶었다. (저 애가, 저 애가, 그래! 나의 선녀야.) 홍수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헤벌리고 무대우에서 눈길을 뗄줄 몰랐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애국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빛 따스한 교실에서 마음껏 지식의 바다를 헤염치며 저는 늘 이런 생각을 굴려봅니다…” 격정에 떠는듯한 “선녀”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쩌렁쩌렁 강당에 울려퍼졌다. “그래, 넌 뭐라고 생각하니?” 정호가 홍수의 넙적다리를 툭 쳤다. 홍수는 깜짝 놀라 정호쪽에 머리를 돌렸다. “어, 좋아하는거지 뭐.” “뭐가?” “뭘 물었는데?” 홍수는 정신을 추스리며 정호를 건너다보았다. 달콤한 기분을 망그러뜨린 정호가 입안에 들어온 사탕을 빼앗아가기라도 한듯 밉고 야속스러웠다. 정호가 홍수를 건너다보며 시무룩이 웃었다. “박옥자는 아닌것 같은데. 참 아깝다.” “뭐가?” “저 애, 저 애가 박옥자래.” “그런데? 너, 저 앨 아니?” “아니 몰라. 이쁘잖아…” “이쁜데는?” “좋거든, 보기만 해도. ㅋㅋㅋ…” “짜식!” 홍수가 눈을 뒤집으며 못마땅한듯 정호를 흘겨보았다. 정호는 홍수의 기분을 아직 읽어내지 못하고있었다. “아깝잖아.” “뭐가?” “ㅋㅋㅋ 이름이.” “이름이 왜? 그럼 넌 저 애 이름이 뭐가 됐으면 좋겠는데?” “섹시하게. 저 애 얼굴처럼 아름답게.” “자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홍수는 주먹으로 정호의 어깨를 슬쩍 쳐주면서 머리를 돌리고 무대우에 눈길을 주었다. “애국이란 말로만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실제 행동으로, 나부터 실천해야 하는것입니다. 학생인 우리의 실제 행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기의 신분에 충직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자기를 성숙시켜나아가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각부터, 나부터 진정 애국의 주인공으로 되자고 이 연사는 소리 높여 호소합니다.” “선녀”는 머리우로 두주먹을 올려 힘껏 흔들며 격앙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소리가 터졌다. 홍수도 그 소리에 섞여 무대옆으로 사라지는 “선녀”를 바라보며 죽어라 두손을 마주쳐댔다. “어때? 보통이 넘는 애지?” “근데, 넌 왜 이렇게 흥분하니?” 정호가 이상하다는듯 야릇한 눈길로 홍수를 바라보았다. “자식! 그럴만한 일이 있어.” 홍수는 정호에게 두눈을 끔쩍해보였다. 가슴이 활랑거리는것이 이 세상을 다 안은듯한 기분이였다. 웅변대회를 끝내고 밖에 나와보니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어진지 이슥한 때였다. (어쩔가? 기회를 봤다가 그 애를 불러가지고 함께 집으로 갈가?) 피뜩 홍수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였다. 하지만 인차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약속대로 메신저에서 보는거야, 지금 만나서 집적거리면 사내대장부가 그새를 못 참는다고 웃을지도 몰라. 그래, 보고싶어도 참는거야.) 홍수는 먼저 어머니에게 웅변대회가 아직 끝나지 않아 늦어질것 같다는 거짓전화를 넣은 후 속웃음을 실실 날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PC방에 들어섰다. 수금원녀자는 오늘도 질겅질겅 껌을 씹어대고있었다. 홍수는 수금원녀자에게서 자리번호를 새긴 패쪽을 받아가지고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파워버튼을 눌렀다. 컴퓨터가 날카로운 전자음을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선녀는 없다”가 먼저 메신저에 올라있었다. (참, 의리가 있는 애야, 속이 깊은 애라니까!) 홍수는 아끼고있는 소중한 보석을 찾았을 때처럼 가슴이 활랑거렸다. “할룽―” 홍수가 먼저 인사를 보냈다. “어디니?” “선녀는 없다”가 뒤따라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 홍수는 잠간 망설였다. 어제밤에 생각없이 집이라고 대답을 보낸것이 속에 걸렸던것이다. (그래, 제대로 대답하자. 그게 이 애에 대한 례의야.) 홍수는 “선녀”의 얼굴을 그려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금 PC방이거든. 하학하는 길에 곧장 들렸어. 너 이름이 박옥자 맞지?” 홍수는 엔터키를 누르며 혼자서 히쭉 웃었다. 낮에 이름을 들으며 정호가 왕청에 사는 이모를 떠올리던 생각이 났던것이다. “왜, 이 시간에도 PC방에 있는데? 집에서 얼마나 기다리겠니?” “선녀”는 이름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아칠하게 높이 있는 년장자마냥 공식적으로 물어왔다. 홍수는 글에서 풍기는 설교비슷한 냄새를 흠씬 맡으며 잠간 뭐라고 답을 썼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정말 이름만치나 고풍스러운 앤가? 열정에 들떠 애국을 부르짖더니 정말 머리속에 빠알간 물감만 그득 찬건가?) 홍수는 용기를 내서 한번쯤은 그 애와 다른 냄새를 풍기는 당당함을 보여주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약속은 지켜야잖니? 난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남자거든. 멘저에 올라줘서 고맙다.” “약속? 난 약속이란 아무렇게나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하지 않은 약속은 할 필요도, 지킬 필요도 없지 않겠니?” 역시나 판에 박은듯한 속이 꽉 찬 말이였다. 홍수는 차츰 진주목걸이를 꿰기만치나 힘들어가는 자기들의 대화분위기를 의식하고있었다. (얘가 일부러 이러는건가? 아님 정말 고리삭아빠진건가?) 실망이라는 두 글자가 기분 나쁜 송충이처럼 머리속을 스멀스멀 헤쳐 지나갔다. 하얀 차림에 파르스름한 가방, 뒤로 모아서 한데 묶은 치렁치렁한 생머리, 그리고 하얀 얼굴에 함초롬히 물고있는 마알간 웃음… (아니야, 절대로 그 애에게서 삼년 묵은 토장냄새가 날수 없어, 일부러 그러는거야. 분명 그 애는 로맨틱한데가 보였어.) 홍수는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대담하게 한발 다가섰다. “옥자야―” “??????????????” “우리 랠저녁, 만날가?” “……” “우리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 난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참 많거든.” 진정이였다. 홍수는 남자인 자기쪽에서 먼저 그 애에게 진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자기의 진정이 꼭 그 애로 하여금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진심을 들어내게 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선녀는 없다”가 글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뭔 말을 하고싶은데? 너, 너무 스스로가 감상적이다는 생각이 안드니? 어제도 말했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문제를 생각할 때가 아니야, 우리에겐 우리만의 중요한 임무- 학습이라는게 있거든. 시간은 흘러가면 돌이킬수 없는거야. 이 순간도 이 순간에 할 일이 따로 있는거야, 얘, 꿈을 깨라. 현실을 정시하구 사나이처럼 당당하게 현실을 대하자. 우리에게 지금 할 일이 뭔데? 너 총명하니까 정답을 알고있으리라고 믿는다.” 숨막힐 정도로 부지런히 날아오는 글을 읽으며 홍수는 잠간 헤여나오지 못할 소택지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그려보았다. (과연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뭘가? 공부? 언제면 끝날지 모르는 공부? 해도해도 끝이 없는 공부? 과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공부뿐일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다면 세대차이라고 밀막아붙이겠지만 어쩜 같은 길을 걷고있는 이 애에게서 이런 설교를 들어야 하는것일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달통되지 않았다. 어딘가 배심 비슷한것이 꿋꿋이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그래, 만나는거야, 만나서 그 애의 진정을 근 떠보는거야, 그 애도 어쩔수 없는 녀자인거지 뭐, 내숭이 없으면 녀자라고 할수도 없는거구. 에잇, 깜찍한것.) 홍수는 제 생각에 머리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알았다. 너의 설교를 듣고나니 앞이 다 환해지네. 래일 만나서 너의 정치강의 한시간 더 들어줄게. 약속, 우리 만나는거다.” 홍수는 멋지게 오른손 약지를 놀려 글을 띄웠다. “꼭 만나야 해?” “그럼!” “그래, 좋다. 래일저녁 8시에 만나. 마을 뻐스역에서!” “와~” 홍수는 오른 주먹으로 자기의 넙적다리를 탁 내리쳤다. 미칠것만 같았다. 살아숨쉬는듯 생생한 선녀도가 클로즈업되여 머리속을 꽉 채우며 펼쳐졌다. (너, 참 멋진 면이 있어. 남자의 매력이 풍긴단 말이야.) “선녀”가 분명 이렇게 속삭이고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홍수는 으스스 어깨를 떨었다. 다시한번 모니터에 뜬 글을 읽으며 어깨를 쩍 벌려보았다. 홍수는 무척이나 성숙되고 당당해진 자신을 보는듯싶었다. D “홍수야, 아버지는 우리 한번 참답게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사뭇 정색해서 홍수를 건너다보며 목소리를 한껏 깔았다. 그 서슬에 홍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아버지는 어느새 깔끔하게 경찰복장을 차려입고계셨다. (아버지께서 웬 일로 대화를 청하실가? 오늘밤, 지금껏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홍수는 아버지가 이상스럽게 생각되였다. 아까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와 “늦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때도, 저녁밥을 먹을 때도, 아버지의 표정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헌데 홍수가 저녁밥을 다 먹고 침실에 들어오자 아버지께서는 기다렸다는듯 이렇게 경찰복장까지 차려입고 침실로 따라 들어온것이다. (낮에 어머니께 웅변대회가 늦게 끝나서 늦어질것이라고 전화를 했으니 오늘 늦어진 일을 가지고는 다른 의심이 없을것이고… 혹시 어제저녁에 내가 PC방에 갔던 일을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일러바친것이 아닐가? 에잇, 녀자들이란 믿을수 없다니까!) 홍수는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한번 아버지를 힐끗 훔쳐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진채로 있었다. “이야기하세요.” 홍수는 혀아래로 기여들어가듯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아버지께서 홍수의 앞으로 한뽐 다가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우리 서로 실말을 하기로 하자. 서로 속이기 시작하면 자연히 믿음이 없어지고 믿음이 없어지면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겠지?” “알았어요, 아버지, 무슨 말씀 하고싶은데요? 잘 들을게요.” 홍수는 아버지께서 말머리에 다는 긴 볏이 사뭇 부담스럽게 생각되였다. 아버지는 평소 홍수와 이야기를 할 때 종래로 이렇게 긴 볏을 달아본적이 없었다.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하고싶은 말씀만 하고 하회를 기다리군 했던것이다. 전에 없던 행동을 보이시는 아버지의 표정도 여느때없이 경직되여있다고 생각하며 홍수는 다시한번 아버지의 표정을 읽었다. “그래, 홍수야, 우리 약속한거다. 말해봐라, 오늘 어째서 이렇게 늦었니?” “웅변대회가 늦게 끝났어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랬는데요.” 홍수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어머니께서 다 이야기했을텐데 하는 투로 별생각없이 가볍게 대답해버렸다. “오, 웅변대회가 늦게 끝났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크게 떨리고있었다. 아차! 홍수는 순간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쳤다. 오늘밤 대화의 시작을 잘못 뗀것이 아니냐는 위구심이 몰려들었다. 드디여 아버지께서 오른발을 탕 하고 들었다 놓으며 소리쳤다. “임마! 뭘 하고 돌아다니는거야?” 그 서슬에 홍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홍수는 아버지의 이같이 성난 모습을 보는것이 처음이였다. 홍수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손으로 걸상등받이를 꾹 짚고 서서 아버지의 입술만 지켜보았다. “정말 실망이다. 홍수야, 아버지는 여태껏 우리 홍수만은 굳게 믿었거든. 자기절로 자기를 단속할줄 알고 분촌은 얼마든지 잡아가며 행동할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헌데 너, 다시한번 묻는다, 어디 가서 뭘 하다가 인제야 왔어!” “저…저, 아버지.” “또 웅변대회가 늦게 끝나서 늦었다고 말 할래?” “아…아니요.” “솔직하게 말해봐!” 홍수를 쏘아보는 아버지의 눈길은 이글이글 타고있었다. “치…친구 집에 갔다가 느…느…늦었어요.” “그래, 친구 집에 갔다가 늦었지. 말해봐. 친구, 누구네 집에?” “저…정호요, 정호네 집에요.” “끝까지 곧은길로는 안 가려는군, 자식!” 아버지는 거쿨진 손바닥을 쫙 펴서 홍수의 얼굴을 힘껏 갈겨주었다. 순간 홍수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왜 때려요?” 홍수는 얼얼해나는 얼굴을 싸쥐고 아버지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왜 때려? 것두 말이라고 묻니? 정호가 널 찾아 전화가 왔었는데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싶니?” 홍수를 쏘아보는 아버지의 눈길은 완전히 범죄자를 다룰 때처럼 경멸에 차있었다. “오늘밤, 시간을 준다. 잘 생각해보고 래일아침, 정답을 내놔봐. 그래도 거짓말이 나오는가 보자!”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침실을 나갔다. 경찰복을 차려입은 아버지의 우람한 뒤모습은 홍수에게 말 못할 위압감을 주고있었다. 홍수는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깊고깊은 나락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많이 늦어지는가요?” 객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소.” 아버지의 대답이였다. 이어 “쾅” 하고 출입문이 닫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나가셨다.) 딱히 뭘 바라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홍수는 아버지께서 이 순간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속을 맴돌았다. 홍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께서는 뭘 하고계실가?) 어머니의 표정이 어떠한지 무척이나 궁금해났다. 홍수는 사이문에 잠간 귀를 가져다대고 객실의 동정을 살폈다. 잠잠한것이 객실에서 무거운 고요가 흐르고있는듯싶었다. 홍수는 살그머니 사이문을 밀어열고 객실로 나갔다. 어머니는 텔레비죤도 켜지 않은채 그린듯이 쏘파에 앉아계셨다. 홍수는 일부러 “으흠!” 하고 건가래를 떼며 어머니를 흘끔 훔쳐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셨다. 아예 홍수의 존재는 잊은듯했다. 약간 서운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홍수는 주방에 들어가 일부러 고뿌를 식탁에 딸랑 부딪쳐 소리를 내고는 정수기에서 생수를 뽑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홍수는 다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면서 객실에 눈길을 던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쏘파에 굳어진듯 앉아서 인정에 다욕한 마귀할멈처럼 으스러지게 자기의 감정을 끌어안고있었다. 홍수는 침대에 몸을 던졌지만 두눈이 올롱해나면서 도무지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왕―” 소리를 내는 홍수의 머리속으로 육박해오고있었다. “오늘밤, 시간을 준다. 잘 생각해보고 래일아침, 정답을 내놔봐. 그래도 거짓말이 나오는가 보자!” 그 시각, 아버지의 날이 선 목소리가 홍수의 귀전을 때리고있었다. 가슴이 갑갑해났다. 래일아침, 래일아침에 마주하게 될 아버지의 얼굴이 그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래일아침, 과연 아버지에게 무엇이라고 대답을 준담?) 홍수는 정말 “선녀”와 메신저를 하느라고 늦었다고 이실직고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앞에서 그것까지 밝혀지는 날이면 아버지의 그 거쿨진 주먹이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하다면 래일아침, 아버지께 뭐라고 말해? 또 거짓말을 해?) 홍수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 아래 단추도 내리내리 잘못 채워지게 된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홍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에서 쪽배 같은 쪼각달이 외롭게 흐르고있었다. 까아만 밤하늘에서 홀로 가는 쪼각달을 쳐다보노라니 저도 몰래 서글프고 외로운 생각이 갈마들었다. (달은 어디로 가고있을가? 무슨 일로 저리도 외롭게 가는것일가?) 홍수는 도로 침대에 누워 두눈을 꼭 감았다. 어제밤처럼 어머니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으며 어머니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고싶었다. 하지만 오늘밤, 홍수는 어머니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머리를 쳤다. 사람과 사람지간의 거리를 좁히고 서로를 보듬어 안으려면 그 상대가 누구든간에 항상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사실로 증명이 되는것 같았다. “휴―” 삼뭉치 같은 한숨이 홍수의 침침한 가슴을 훑고 지났다. (랠아침, 아버지께 “선녀”와 메신저를 하느라 늦었다고 실토를 해야 할가?) 홍수는 다시한번 똑같은 물음을 자기에게 던졌다. 이 시각에 와서 홍수는 아까처럼 아버지의 손바닥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실토를 하고 난후 자기가 처할 처지가 더 근심되였다. (아버지는 분명 다시 “선녀”와 거래를 하겠는가고 물을것이다. 그러면 나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수 있을가? 나에게는 과연 “선녀”와 다시 거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건가?) 홍수는 홀연 눈앞에서 춤추는 선녀를 보았다. 선녀는 하얀 날개옷을 하늘거리며 운무처럼 하늘을 날아오르고있었다. 다시는 그 선녀를 보지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미칠것만 같았다. 홍수는 책상앞으로 다가가 서랍에 잠근 자물쇠를 열고 일기책을 꺼내서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나무군은 선녀를 찾아야 한다. 꼭 찾아 떠나야 한다. 나무군은 선녀를 놓칠수 없다.” 홍수는 멋지게 마침표를 찍고는 만년필을 일기책 갈피에 척하고 내려놓았다. 그날 밤, 홍수는 꿈에 선녀를 보았다. 선녀가 아득히 먼곳에서 홍수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었다. 홍수는 한달음에 선녀를 향해 달려가지 못하는것이 죽도록 안타까왔다. 하지만 선녀와 홍수 사이에는 깊고깊은 골짜기가 가로놓여있었다. 홍수는 그 골짜기를 날아 넘으려고 두팔을 힘껏 퍼덕거려보았다. 아래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워나서 도무지 날수가 없었다. 홍수는 해리포터처럼 마술의 비자루라도 있다면 타고 갈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홍수는 애타게 점점 무거워지는 아래다리를 꼬집다가 눈을 떴다. 홍수의 손은 허벅다리를 누르고있었다. 그때 허벅다리는 흥건히 젖어있었다. 홍수는 손에 묻어 찐득찐득한 액체를 살펴보면서 말 못하게 가슴이 찜찜해났다. 홍수는 부석부석한 두눈을 비비며 일어나 알람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다섯시 반이 좀 넘은 뒤였다. 피뜩 머리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또 어제저녁에 어디 가서 돌아다니다 왔는가를 따질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지?) 역시 정답이 없는 물음이 홍수의 머리속을 치고 들어왔다. 홍수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조용조용 교복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 시간표를 보면서 가방에 교과서를 바꿔 넣었다. 홍수는 아버지 어머니를 깨울가 두려워 세수도 못한채 살그머니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후―” 하고 안도의 숨이 터져나왔다. 후에야 어찌 되든간에 이 시각만은 용케도 아버지의 손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니 한시름이 놓였던것이다. E 뻐스에서 내린 홍수는 교실을 바라고 여드레 팔십리 걸음으로 늘쩡늘쩡 걸었다. 다른 때 같으면 10분이면 걸을 길을 얼마나 더 걷는지 몰랐다. 학교옆에 있는 식품상점을 지나노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먹구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데 어디 먼저 먹구보자.) 김밥 한곽을 게 눈 감추듯 먹고 음료까지 한병 꾸르륵 해치우니 아래배가 든든해진것 같았다. 홍수는 상점 동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6시 30분, 여느때보다 십분쯤 일찍 했지만 그래도 교실문은 이미 열어놓았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홍수는 상점에서 나와 학교를 바라고 발걸음을 옮겼다. “홍수야―” 금방 학교 대문에 들어서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수는 소리를 따라 뒤로 머리를 돌렸다. 정호가 헐레벌떡 뛰여오고있었다. 정호를 보는 순간 홍수의 머리속에는 문제의 어제밤이 떠올랐다. (정호, 저 자식이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해바쳤다고?) 홍수는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뭔가 욱하고 올리치미는것을 느꼈다. 홍수는 걸음을 뚝 멈추고 정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호는 아침에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에 웃음이 번지르르 번지고있었다. 다른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기는 좋아 죽겠다는듯 해시시 해있는것이 보기만 해도 미워났다. “얌마, 너 어제밤에 정말 좋은 일을 했더구나.” “홍수야, 미안, 사실은 너에게 수학숙제를 물어보려구 전화했었는데 네가 집에 없더구나. 어데 갔댔니?” “왜? 알고싶어?!” 홍수가 무서운 눈길로 정호를 향해 찔 흘겨보았다. 홍수의 그 눈길에 정호는 혀를 날름해보이며 한풀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홍수야, 왜 그러니? 너, 설마 나의 전화땜에 고역을 치른건 아니지?” 홍수는 가슴에서 치솟는 울분 그대로 정호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자식,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전화야? 내가 아버지에게 왕창 터지니 너 깨고소한거지? 아침도 못 먹구 도망쳐나왔다. 너 어쩔래?” 한바탕 퍼붓고나니 속이 다 후련해났다. 정호가 홍수를 훔쳐보며 떠듬떠듬 변명을 했다. “너의 아버지가 별말씀이 없이 그저 함께 웅변대회에 갔댔냐고 묻기에 첨엔 그냥 함께 갔었다고 말해버렸다.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네가 어디로 간다는 말이 없었냐고 물어서야 나는 네가 집에 들어가지 않은것을 알게 됐거든. 근데 너 어디 갔댔니? 그 시간에?” 정호가 무척이나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듯 홍수곁에 한발 다가섰다. 홍수는 타는듯한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다가 한마디 하며 돌아섰다. “달나라에 갔다가 왔다. 됐니?” “홍수야, 홍수야―” 뒤에서 정호의 부름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홍수는 시끄럽다는듯 머리도 돌리지 않고 교실을 바라고 씨엉씨엉 걸음을 재촉했다. 첫 시간부터 숙제검사가 있었다. “자, 오늘도 파도를 거슬러올라가신분들이 계시겠죠? 그 얼굴을 한번 자랑해볼가요?” 언제나 반어법을 구사해서 동학들속에서 “꺼꾸로 샌님”이라 불리우는 수학선생님이 한손으로 교탁을 떡하니 짚고 서서 시물시물 웃으며 동학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차, 수학숙제!) 홍수의 머리속에서는 “윙―” 하고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이맘때면 단골로 일어서는 몇몇 동학들이 삐딱하니 책상모서리를 짚고 섰다. 홍수는 차마 따라 일어설수 없었다. 여느 동학들처럼 이런 장면에 습관이라도 됐더라면 이다지 난처하지는 않을것 같았다. “자, 거룩하신 얼굴들이 다 나타나셨나?” 수학선생님이 동학들에게 다시한번 눈길을 주었다. 홍수는 마지못해 머리를 푹 숙이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수학선생님이 퍽 놀라는 눈치였다. “저런저런, 간부님도 계시네. 인젠 간부들이 앞장서서 모범역할을 하시겠다? 참 좋습니다. 좋아요. 자 거룩하신분들 모두 잘 들으세요. 시간이 끝난 다음 왜서 수학숙제를 못해오셨는지 시말서를 써서 올리세요. 이만, 오늘시간을 보겠습니다.” 수학선생님이 교과서를 번졌다. 정말 요강덮개로 물 떠먹은 기분이였다. 홍수는 중간체조시간에 나갔다 오고는 오전 내내 교실에서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있었다. 정호가 그러는 홍수를 보기 미안한지 옆에서 집적거렸다. 홍수는 그러는 정호의 행실이 마치도 병 주고 약 주는 시누이 같아서 여간만 밉지가 않았다. 정호는 그런줄도 모르고 지겹게도 홍수에게 달려들었다. “괜찮아, 괜찮대두. 남자가 이 정도 좌절이야 웃으면서 넘길수 있어야지. 매일 숙제를 안해서 선생님께 욕을 보는 애들이 어디 한둘이니?” “……” “그리구 어제밤의 일도 그렇지. 너의 아버진 벌써 그 일을 까맣게 잊고있을거다. 그럴거라니까. 근데 홍수야, 너 어제밤에 진짜 어디 갔댔니? 설마 련애하러 갔던건 아니지?” 평소 같으면 그저 “실컷 씨부렁거려라!”하고 흘려버릴 말이였지만 그 순간만은 꼭 마치도 무엇인가를 비꼬아 시까스르는것처럼 들려서 도무지 참을 길이 없었다. 홍수가 책상을 탕 내리쳤다. “너, 그냥 씨부렁거려?” 정호가 깜짝 놀라서 입을 하 벌리고 홍수를 건너다보다가 키득키득 웃어댔다. “너, 어쩌라구 깜짝깜짝 소리쳐 사람을 놀래우니? 별소리도 아닌데.” “에잇, 질려. 질린다구!” “야, 웃자구 한 말인데 진짜 성격을 내는게 아니니?” 정호의 기분도 차츰 흐려지고있었다. 홍수는 그러는 정호옆에 탁 하고 침을 뱉으며 코웃음을 쳤다. “웃어? 웃음이 나오니? 발랑개비 같은 자식!” “발랑개비라구? 너 말 다했니?” 정호가 홍수의 턱밑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래, 다했다. 어쩔래?” 홍수가 주먹으로 정호의 가슴을 한대 툭 쳐버렸다. 정호도 지지 않고 홍수를 향해 슬쩍 주먹을 날렸다. “속이 좁아가지구, 뭔 일을 하겠니? 뭘 대단한 일이 터졌다구, 오늘 내내 이렇게 궁시렁거리니? 남들은 진작 잊어버린지 오랜데?” “그래, 내 속이 좁은걸 인제야 알겠니? 흥, 너 같은 새끼를 친구라고…” 홍수는 코앞으로 다가서는 정호를 옆으로 밀치며 몸을 돌렸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정호가 옆으로 나가 너부러졌다. 정호가 발딱 일어서며 홍수에게로 덮쳐왔다. 홍수는 주먹으로 정호의 얼굴을 냅다 갈겼다. 정호의 코구멍에서 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피를 본 정호가 “악―” 소리 지르며 죽기내기로 홍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때까지 그냥 놀음으로 생각하고 지켜보고있던 동학들이 욱 몰려들어 싸움을 뜯어 말렸다. 홍수는 그러는 친구들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나쁜 새끼, 소박채가 쥐구멍만해가지구. 가다가 뒈지기나 해라.” 정호의 앙칼진 욕설이 홍수의 등을 사정없이 때리고있었다. 한숨에 학교밖으로 피해 나온 홍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물아물해지는 눈길로 멍하니 학교건물을 바라보았다. 고역 같던 오전일상이 언뜻언뜻 머리속을 스쳐서 다시는 학교안으로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에잇―” 홍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 어느새 ㅅ중학교에 거의다 오고있었다. (왜? 내가 왜 여기로 왔을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입가에 가는 실웃음이 피여났다. 아름다운 선녀도가 아늑하게 눈앞에 펼쳐지고있었다. (오늘밤 8시, 마을 뻐스역에서!) “선녀”와의 약속이 뇌리를 쳤다. (그래 만나는거야, 만나서 나의 갑갑한 마음을 털어놓는거야, 그 애라면 나의 마음을 리해할수 있을것이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수 있을것이야, 저녁 8시, 그래 만나는거야.) 홍수는 터질듯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어디에 주체할 길이 없었다. 홍수는 손가락을 비벼 딱 소리를 내며 풀을 만난 망아지마냥 앞으로 뛰여갔다. 오후 내내 PC방에서 컴퓨터와 씨름을 하며 끝내는 밤 8시를 눈앞으로 당겨왔다. 홍수는 미리 결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다가가 10원짜리 돈을 건네주었다. 수금원녀자가 질근질근 껌을 씹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얼굴도 돌리지 않고 서랍에서 1원짜리 한장을 꺼내 홍수앞에 던졌다. (아홉시간?) 홍수는 저로서도 흠칫 놀랐다. 그제야 아직 점심밥도, 저녁밥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홍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가 7시 45분을 가리키고있었다. 홍수는 PC방에서 나와 곧추 마을 뻐스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의 뜻이였기에 서로를 리해하면서 행복이라는 보짐을 메고 눈부신 사랑을 했죠…” 홍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휘파람을 불었다. 뻐스역에는 사람이 없었다. 홍수는 가로등 불빛을 빌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 56분이였다. (4분, 4분만 있으면 “선녀”가 나타날것이다. 그 애는 분명 약속을 지킬것이다.) 홍수는 흥분으로 하여 가슴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홍수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선녀”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그 애를 만나서 어떻게 말을 걸가? 나와 줘서 감사하다? 이― 너무 맹맹하잖아. 격정이 없단 말이야, 기다렸다. 난 널 진심으로 좋아한다? 으― 닭살!) 홍수가 깨고물 같은 생각을 혼자 굴리며 활활 타는 눈길로 어둠을 가르고있을 때 남쪽 아빠트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홍수는 가슴이 쿵쿵 방아를 찧었다. 홍수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점점 가까와오고있었다. (아니잖아?) 익숙한듯하면서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 모습이였다. 홍수는 바람 빠진 기구처럼 어깨가 처져내렸다. 홍수는 다른쪽으로 머리를 돌려 혹시나 그리운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처량한 가로등아래로 음침한 정적만이 무겁게 흐를뿐이였다. 홍수는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계는 8시 3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이럴수가 없는데, 이럴수가 없는데…) 홍수는 속으로 아파지려는 자기의 마음을 보듬으며 머리를 돌렸다. “앗!” 홍수는 순간 짤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두어발 떨어진 곳에 어머니가 그린듯이 서있었다. 옳았다. 아까 분명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하고는 련계시키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오래 기다렸니?” 어머니께서 홍수쪽으로 걸어오며 부드럽게 물었다. “네,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라니? 우리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잖아?” “네? 어-머-니!” 어머니께서 홍수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호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쪽지를 꺼내여 홍수앞에 흔들어보였다. “아직 때가 아닌거야, 그래서 이 쪽지가 너의 ‘선녀’를 찾아가지 못한것이지. 그날, 엄마가 출근하다가 땅에 떨어져있는 이 쪽지를 주었거든.” 어머니는 잠간 말을 멈추고 홍수의 표정을 읽었다. 홍수는 당금 튀여나오려는 심장을 누르고 서서 애타게 발뿌리로 땅바닥만 우벼댔다. “세상일이란 이런거란다, 무슨 일이나 때가 돼야 결과가 있는것이지. 아마 이 쪽지가 엄만데로 오는게 제일 합당할것 같아서 하느님이 엄마에게 전해줬나보구나.” 어머니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홍수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머니.” 홍수는 도무지 뒤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어머니앞에 서있는 자신이 그렇듯 작고 초라하게 생각되였다. (내가, 내가 이 며칠 무슨짓을 한것일가?) 홍수는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홍수야, 엄마는 아직도 홍수를 믿고있다. 엄마는 우리 홍수가 요즘, 고약하게 아픈 사춘기를 앓고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꾸고있는거지, 꿈이 깨면 홍수는 꼭 제자리로 돌아와있을거다. 홍수야, 어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홍수의 가슴을 찢고있었다. 홍수는 가슴속으로부터 뭔가 욱 올리밀어 목구멍이 꺽 막혀왔다. 몸을 픽 돌렸다. 눈귀에서 뜨거운것이 맺혔다가 주르륵 굴러 떨어졌다. 홍수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채 둥글어지지도 못한 쪼각달이 망망한 밤하늘에서 정처없이 어디론가 흘러가고있었다. 홍수는 집을 바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는듯한 노래소리가 쓸쓸하게 어둠을 가르며 홍수의 뒤를 밟고있었다. … 선녀를 찾아주세요, 나무군의 그 얘기가 사랑을 잃은 이내 가슴에 아련히 젖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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