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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아직은 초순이야 댓글:  조회:1319  추천:0  2012-04-24
    거울속에서 둥글둥글한 까까머리가 내다보고있었다. 웅진이는 순간 자기의 머리통이 수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점을 잃은듯 퀭하니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외까풀눈은 슬픈듯, 담담한듯 뭐라고 딱히 이름을 지을수가 없었다. 웅진이는 천천히 손을 올려 으스러지게 두눈을 비벼댔다. 약간 통증을 보이던 눈이 잠간새에 지끈지끈 빠지는듯 아파났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손님의 머리를 깎다말고 불안한 표정으로 웅진이를 살피던 노랑머리리발사가 낮은 목소리로 짤막하게 물었다. 웅진이는 눈굽을 비벼대던 손길을 멈추고 소리나는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노랑머리리발사는 웅진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웅진이는 노란 불티가 탁탁 튀는듯한 두눈을 슴뻑거리며 노랑머리리발사를 힐끗 쏘아보고는 인차 머리를 외로 탈며 “아니.” 하고 칼로 두부 자르듯이 대답했다. “10원이야, 5원만 받을게.” 리발사의 목소리도 잘 드는 칼로 싹둑 무우를 자르듯이 간결했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5원짜리 돈을 집어내여 노랑머리리발사에게 던져주고는 머리를 푹 숙이고 볼부은듯 씨엉씨엉 미장원을 걸어나왔다. 층집들 창문으로 빠져나온 희미한 불빛들이 괴괴하게 미장원마당을 비춰주고있었다. 희미한 불빛만치나 마음에도 뽀얀 운무가 서린듯 침침하기 그지없었다. 웅진이는 오른 주먹으로 말없이 가슴팍을 두어번 툭툭 치다가 오른손을 쑥 올려 머리통을 쓸어보았다. 탐스럽게 한줌 팍 쥐여오던 머리칼은 오간데 없고 까칠한 느낌만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전률 같은 그 느낌은 오른팔을 타고 쑥 올라와 페부로 날아들더니 인차 가슴을 탁 치며 “흑―” 하고 한숨을 톺게 했다. 웅진이는 잠간 두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 하나 없이 캄캄한 밤하늘에서 뿌연 초생달이 어디론가 유유히 흘러가고있었다. (아직은 초순인가봐.) 삼검불같이 엉켜진 머리속으로 채 여물지도 못한 초생달이 비집고 들어오려는것이 웅진이로서도 야릇하게 생각되였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번갈아가며 두눈을 비비다가 다시한번 쪼각달을 쳐다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디라 딱히 방향도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걸음을 옮겨놓으며 웅진이는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옴을 느끼고있었다. 무던히도 힘에 부치는것 같았다. 웅진이는 선채로 “후―” 하고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 가로수아래에 설치되여있는 간이의자로 다가갔다. 간이의자는 툭하니 무너져내리는 웅진이의 엉덩이를 아무 부담없이 받아주었다. 웅진이는 천근같이 무거워나는 엉덩이를 지그시 간이의자에 눌러 박고는 두손으로 넙적다리를 꾹 누르고 수박 같다고 생각되던 머리통을 무게 그대로 아래를 향해 떨어뜨렸다. 목이 빠듯하게 당겨졌다. (내 머리통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었나?) 그 와중에도 이런 유머스러운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드는것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웅진이는 픽 하고 허구픈 웃음을 날리며 입안에서 혀끝을 방향없이 굴리다가 척하고 머리를 들었다. 수박 같은 머리통에 고여있던 수박속같이 빠알간 피가 순간적으로 아래를 향해 흘러내려서인지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흐려졌다. “찌릉찌릉―” 문뜩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넙적다리에서 전률 같은것이 느껴졌다. 까아만 공간을 타고 날아오는 그 전률은 웅진이에게 묘한 흥분을 던져주고있었다. 웅진이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넙적다리에 가져갔다. 호주머니안으로 넙적다리우에 놓여진 핸드폰이 찌릉찌릉 진동을 하고있었다. 웅진이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안에 쑥 집어넣어 요동을 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막에는 “깜찍이”라는 세 글자와 함께 예쁜 얼굴모형이 튀여나와 찌릉찌릉하는 박자에 맞추어 혀를 홀랑거리고있었다. “은영이!” 웅진이는 신음 비슷이 핸드폰저쪽에 서있을 “깜찍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찌릉― 찌릉―” 핸드폰은 다시 웅진이를 불러댔다. 웅진이는 이번에도 선뜻이 핸드폰을 받을념을 못하고 애꿎게 오른손바닥으로 핸드폰소리입구를 막아 쥐고 툭툭 튀는 가슴쪽으로 당겨갔다. 끝없이 울어대던 핸드폰이 입을 다물었다. 웅진이는 “흑―” 하고 큰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서 보기 좋게 눈앞으로 가져갔다. 이때 핸드폰이 또 한번 “찌르릉” 하고 울렸다. 웅진이는 흠칫하며 어깨를 떨다가 정신을 가다듬어 핸드폰에 눈길을 주었다. 깜찍이로부터 문자가 날아와있었다. 웅진이는 약간 떨리는 손끝으로 문자함을 열었다. 막에는 달랑 “?”표만 찍혀져있었다. 웅진이는 한참이나 “?”표를 내려다보다가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미장원 거울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던 수박 같은 까까머리가 눈앞에 떠올랐다. 순간 웅진이는 확∼ 얼굴에 열이 오르는것을 느꼈다. 가슴이 툭툭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웅진이는 눈을 감은 그대로 지그시 아래입술을 깨물며 오른손바닥을 쫙 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꼭 눌러주었다. “웅진아, 오늘저녁이다. 알았지? 내가 전화 할가? 아님 네가 전화 할래?” 은구슬 굴리는듯한 은영이의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에서 울리는듯싶었다.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 3학년 “제1차 학부모회의” 통지를 받은것은 오전 4번째 시간이 끝나서였다. 숨막히게 하는 1년간의 장거리달리기경주에서 첫 려정을 점검하는 순간으로 되는것이였다. 모두들 손에 땀을 쥐고 담임선생님의 약간은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빠알간 입술을 지켜보고있었다. 안경너머로 작은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동학들을 참빗질하던 선생님의 입술이 드디여 열렸다. “오늘은 토요일, 오전공부만 합니다. 대신 잊지 말고 부모들께 통지를 해야겠습니다. 학부모회의는 오늘오후 4시에 열립니다. 부모들중 한분은 꼭 와야 되겠습니다. 동무들의 현재정황을 부모들도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만 약을 써서 동무들을 구할수 있습니다. 우리 학급에서 절반을 휠씬 넘기는 동무들은 약을 써야 합니다. 약을 써도 상당히 써야 할듯합니다.” 여기서 선생님은 다시한번 작은 눈을 껌뻑이며 안경 너머로 동학들을 쓸어보았다. 마치도 어느 구석에 어떤 자세로 웅크리고있어도 단번에 찾아낼듯한 기세였다. 웅진이는 그 눈길이 싫어서 머리를 책상머리에 대고 숨소리마저 크게 내지 않으려고 고심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빠알간 입술은 금방 기름을 쳐서 잘 여닫기는 문접시마냥 너무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가시있는 말들만 골라냈다. “네, 얼굴이 붉어지면 그렇게라도 머리를 책상에 틀어박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집에서 어떻게 동무들을 뒤바라지하고있고 또 어떤 희망을 동무들에게 걸고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험성적이 부모들의 기대에 못미쳐도 너무나 못미치는 동무들이 참 많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야 합니다. 최저로 얼굴이 붉어져야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고중입시가 1년도 못 남았는데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이렇게 시험을 맞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3학년에서의 첫 월고를 이 지경으로 쳐놓고 얼굴마저 붉히지 않는다면 그를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교실에서 폭소가 터져올랐다. 딱히 누구라고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그 한마디는 예리한 갈퀴가 되여 웅진이의 가슴을 아프게 긁어댔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안에 손을 넣어 죽어라고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머리에서 “웅―” 하고 소리가 나며 더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들었다. 머리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다음에 느껴지는 굳어진 증상이였다. 웅진이는 아래우 입술을 번갈아가며 죽어라 빨아댔다.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더부룩한 머리카락안으로 뽀질뽀질 진땀이 배여오르는것도 직감으로 알수 있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선생님의 마디마디가 고문으로 느껴졌다. 웅진이는 빨리 이 고문에서 풀려나고싶었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웅진이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으며 속으로 이렇게 주문처럼 외워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드디여 선생님의 고문도 끝나고 동학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웅진이도 채는듯이 가방을 집어들고 바람처럼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렇게 교정을 벗어나서 큰길에 들어섰다. 9월치고는 찌물쿠는 날씨였다. 웅진이는 한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전거를 밀고 가로수 그늘을 찾아 길섶에 들어섰다. 약간 서늘함이 느껴졌다. 침침하던 가슴이 열리는듯했다. 웅진이는 호― 가는 숨을 내쉬며 머리를 돌려 오던 길을 돌아다보았다. 은영이가 잰걸음으로 쫓아오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기분이 상쾌해났다. 괜히 가슴이 떨려왔다. 웅진이는 은영이를 향해 오던 길을 조여가며 사뭇 여유가 있는척 휘파람을 불었다. “야,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생각하니?” 스포츠머리를 한 길수가 은영이를 지나 자전거를 타고 씽― 하니 달려오더니 웅진이옆을 지나며 시까스르듯 한마디 했다. 웅진이는 곱지 않게 길수를 쏘아보며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머리칼에 가져갔다. 참빗이라도 사르르 흘러내릴듯이 함치르르한 탐스러운 머리칼이 부드럽게 손끝에 느껴졌다. 어깨에 닿일듯말듯 찰랑이는 머리칼은 웅진이의 자랑이였다. 어찌나 윤기가 흐르는지 녀자애들마저 “너 땋고 다니지 그러니?” 하며 괜히 질투를 하고 시비를 걸어왔다. 머리칼은 또 웅진이에게 시끄러움을 불러오기도 했다. 담임선생님만 해도 그랬다. 언제나 무슨 불쾌한 일이 있을 때면 웅진이의 긴 머리칼을 두고 시비를 했다. 그때마다 웅진이는 “날 죽여주쇼―” 하는 마음가짐으로 억지로 버텨왔다. 그래도 버티기 바쁠 때면 미장원에 가서 제딴에는 제일 솜씨가 좋다고 생각되는 노랑머리리발사에게 부탁해서 정성들여 몇번 가위질을 했던것이다. “머리칼이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웅진이가 생각해도 오늘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한듯싶었다. (사람이 아니면 그래 짐승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쩜 선생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입에서 겨불내가 확확 풍겨올랐다. 웅진이는 걸음을 옮기면서 한 손으로 으스러지게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어찌나 손에 힘을 주었던지 두피가 빳빳하게 당겨지며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왜 그래? 머리가 아프니?” 웅진이의 옆에 다달은 은영이가 손끝으로 웅진이의 팔을 톡 치며 물었다. “아니.” 웅진이는 움켜쥐였던 머리칼을 놓으며 짧게 대답했다. 은영이의 입가에 고운 웃음이 맺혀 찰랑이고있었다. 언제나 봐도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웃음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그 웃음을 바라볼수가 없어 눈길을 돌리며 다시한번 손가락을 쫙 펴서 자기의 머리칼을 훑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은영이가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머리칼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니?” “아니.” “그럼 왜 아까부터 머리칼을 움켜쥐고 그러니?” “괘…괜히 그…그러지 뭐.” 웅진이는 자기의 불편한 심사를 들킨것 같아서 은영이의 눈길을 피하며 더벅거렸다. “웅진이, 너. 크크크… 아까 선생님의 말을 듣구 맘이 불편해서 그러지? 맞지? 참, 넌 귀구멍이 너른것이 흠이라니까. 아까 선생님이 뭐 너의 이름을 지명한것도 아니구…” “이번 월고, 너 성적 괜찮겠지?” 웅진이는 부끄러운듯 눈길을 내리깔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 “나? 쳇. 노력한만큼 나오겠지 뭐! 넌 어떨것 같니?” 웅진이는 은영이의 물음에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자신없이 도리머리를 했다. 그러는 웅진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은영이는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이러구보니까 너 정말 머리칼이 또 길었구나. 어깨를 넘으려네. 웅진아, 오늘저녁 너 머리를 깎지 않을래? 내가 함께 가줄게.” “정말?!” 웅진이는 그러는 은영이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참, 이제 시작이지 뭐. 월고, 월고. 이놈의 월고가 우리를 숨 못 쉬게 할거다. 으― 어쩜…” 은영이는 공부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그러듯이 약간 볼부은듯한 목소리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웅진이는 그러는 은영이가 참 고맙다고 생각되였다. 은영이가 있어서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치 자기의 못난 모습을 은영에게 보이는것이 미안스럽기도 했다. 웅진이는 두손으로 머리칼을 빗어 넘기며 은영이를 향해 살짝 윙크를 보냈다. 은영이도 웅진이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 학부모회의에 갔다 오신 어머니의 얼굴은 천둥번개전의 검푸른 하늘이였다. 웅진이는 속으로 “아차!”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곧 무슨 일이 터지리라는것은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생동하게 말해주고있었다. 웅진이는 자신없이 머리를 푹 숙이며 “오셨어요?” 하고 한마디 하고는 잽싸게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어디로 들어가?!” 인차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웅진이는 침대를 향해 가다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문이 거칠게 열려졌다. 어머니의 굳어진 얼굴이 침실안으로 쑥 들어왔다. 웅진이는 한발 왼쪽으로 비켜서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어머니의 왼쪽볼에 있는 입쌀알만한 검은 기미가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폭풍전야의 개시곡이나 다름없는 풍경이였다. “어… 어머니.” 웅진이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리고있었다. “어머니?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불러? 나에게 언제 너 같은 아들이 있어? 뭐야, 40명에서 38등? 이 등신아. 남들이 공부할 때 넌 뭘 하고있었기에 이 모양이냐? 정녕 골이 둔한거냐? 아님 뒤구멍으로 호박씨를 까고 다니는거냐? 나쁜 놈!” 어머니의 사설은 끝을 볼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각 웅진이는 되려 그것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듯싶었다. 웬 일인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쿵쿵 절구질을 하던 가슴에 평온이 찾아들며 이상하리만치 느긋한 기분이 느껴졌다. “미안하지도 않아? 이놈아. 이 나쁜 놈아! 나는 그렇다손치더라도 한국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너의 아버지에겐 좀 미안한것을 알아야지. 너도 알지? 아버지가 공지에서 허리를 상하고도 그 돈을 벌려고 억지로 일하러 다닌다는것을. 누구를 위해서니? 내 잘 먹구 아버지 호강하자고 그러니? 돈 좀 모아서 너를 류학이라도 보내보자고 그러지…” 어머니는 입에 게질게질 거품을 물면서 웅진이를 향해 죽어라 삿대질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눈굽에는 벌써 이슬이 맺혀 번쩍이고있었다. 좀만 흔들면 두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릴듯싶었다. 어머니의 정서가 도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방금 느긋하던 기분이 차츰 가셔지며 은근하게 긴장이 갈마들었다. (어머니, 제발 1절만 하세요.) 웅진이는 속으로 이렇게 사치한 생각을 굴려보았다.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 어머니의 사설은 1절을 하고 2절을 넘어 3절을 지나 4절 5절까지 갈 때도 있었다. 그쯤하면 어머니도 지치고 웅진이도 흥분을 하군 했다. 일단 흥분을 하면 웅진이로서도 걷잡을수없이 입에서 구렝이도 튀여나가고 호랑이도 뛰여나가군 했다. (참자, 참는거야.) 웅진이는 어금이를 꽉 다물고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호주머니안에서 손가락으로 넙적다리를 톡톡 치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한칼에 네놈을 죽였다…” 갑자기 어머니가 웅진이를 덮쳤다. 웅진이는 피할 사이도 없이 어머니에게 머리칼을 잡혔다. “이 나쁜 놈아. 그래, 그래 넌 좋은것은 배울수 없는거냐? 이 머리도 그렇지. 나 원 낯이 뜨거워서. 너의 반에 너처럼 머리가 긴 애, 또 누가 있니? 선생님도 그렇게 너의 머리를 두고 말을 많이 했다면서? 그래도 그냥 이 모양을 하고 다닌다면서? 그렇지. 매일 아침 머리를 감을 때부터 알아봐야 하는건데. 내 오늘 이 머리에 콱 불을 질러버릴테다.” 어머니는 손에 힘을 넣어 죽어라고 웅진이의 머리칼을 흔들어댔다. 웅진이는 두피가 지끈지끈 당겨져 모진 아픔을 느꼈다. 어머니가 흔들어대던 그 맵시로 머리칼을 확 나꿔챘다. 어머니의 손에 머리칼이 한줌이나 뽑혀져나왔다. “악!” 웅진이는 순간 저도 몰래 단말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웅진이로서도 자신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왜 이래요? 왜 이러냐구요?” “왜? 왜?!” 어머니의 매서운 눈길이 웅진이의 얼굴에 와서 꽂히고있었다. 활활 타는듯싶은 눈길은 웅진이의 모든것을 발기발기 찢어버릴것만 같았다. 웅진이는 발딱 일어섰다. 이어 문쪽으로 씽하니 뛰쳐나갔다. “어디로 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등뒤로 남기며 웅진이는 벌써 신을 신고있었다. 어머니가 뛰여와 웅진이의 옷자락을 거머쥐였다. “가긴 어디로 가? 못 간다. 오늘 나가면 다신 이집에 못 들어올줄 알아라.” “안 들어올게요. 안 들어와요. 됐어요? 시원해요?” 웅진이도 어머니를 향해 건침을 탁탁 튕기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못 나간다. 못 나가. 못 나간다구! 이 나쁜 놈아. 이대로는 못 나간다!” 어머니는 웅진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옷섶을 거머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웅진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멀거니 내려다보다가 다시한번 “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힘껏 몸을 탈아 빼며 출입문을 쾅 밀어열고 뛰쳐나갔다. “웅진아, 웅진아―” 뒤에서 어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머리를 흔들어대며 층계를 내렸다. “찌릉찌릉―” 호주머니안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했다. 웅진이는 잰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집어냈다. 세차게 진동을 하는 핸드폰막에는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어머니?!) 웅진이의 뇌리에는 어머니의 손에서 뽑혀져나오던 머리칼이 클로즈업되여 또렷이 떠올랐다. 웅진이는 죽어라 온몸을 떨었다. 어머니의 얼굴도, 뽑혀진 머리칼도 더는 생각을 하고싶지 않았다. 어딘가에 가서 조용히 죽어버리고싶다는 생각만 헝클어진 머리속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웅진이는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잠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층집사이의 한적한 공간이 보였다. 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던 공간이였지만 그 순간은 어쩐지 거기 가면 시원한 바람을 맞아 갑갑하던 가슴이 열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웅진이는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 잰걸음으로 그곳을 찾아 올라갔다. 건들바람이 불어와 헝클어진 머리칼을 날려주었다. 제법 시원하게 느껴졌다. 웅진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두팔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방금까지도 “웅―” 하고 소리가 나던 머리속에 하얀 운무가 서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되여가는것일가? 내가 어떻게 이런 꼴이 됐단 말인가? 과연 내가 나쁜 놈이란 말인가?) 소학교때까지만 해도 웅진이는 괜찮은 학생이였다. 품질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학습성적도 학급에서 중상등에서 오르내리군 했다. 선생님들도 그렇고 부모들도 그렇고 모두 “좀만 더 노력하면 앞자리에 설수 있을것”이라고 웅진이에게 힘을 실어주군 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 학과목이 많아지고 진도가 빨라지자 웅진이는 점점 공부가 힘에 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암송을 많이 하는 과목은 그런대로 따라갈수 있었지만 수학 같은 과목은 정말 어쩔수가 없었다. 1학년 첫 학기 기말시험에서 22점을 맞은 수학시험지를 집에 가져갔을 때 어머니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 쇼크하기 1분 직전에 이르렀었다. “이 못난 놈아, 너 뭘 하고 다니는거냐? 이것도 시험지라고 받아왔냐? 너의 머리는 돌대갈이더냐? 한 학기 얻어들은 풍월만 읊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그날 밤 어머니는 상처 되는 말만 골라서 웅진이의 가슴을 벅벅 긁어댔다. 얼굴이 푸르뎅뎅해서 입에 거품을 물며 자기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어머니를 낯선 아줌마 보듯하면서 웅진이는 처음으로 자기가 못나보이고 세상이 싫어보이고 앞날이 암담해보였다. 어머니의 사설은 끝이 없었다. “너 말해봐라. 한 학기동안 과연 뭘 하구 다녔는가? 설마 참답게 공부를 했으면 이 정도가 될리는 없을거구, 친구를 잘못 친한거냐? 아니면 련애를 한거냐? 말해보라니까 말해봐. 어이구!” 어머니는 물먹은 담마냥 자리에 무너져내리더니 꺼이꺼이 소리 내여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아. 두메산골에서 자라면서 공부 못하던 한을 자식놈한테서나 풀어보자고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제 애비는 저 등신을 뒤바라지하자고 외국에서 그렇게 소처럼 벌고있건만, 아이고 내 팔자야―” 평소 웅진이의 작은 잘못에도 엄하게 눈을 흘기는 어머니였지만 이 같은 추태는 처음인지라 웅진이는 숨소리마저 크게 내지 못하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날 어머니는 저녁밥도 드시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웅진이도 저녁밥을 먹을 엄두를 못 내고 자기의 침실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썼다. 생각할수록 공부가 두렵게 생각되였다. 그럴수록 웅진이의 학습성적은 떨어지기만 했다. 2학년 첫 학기초인가 시내의 사립예술학교에서 웅진이네 학교를 찾아와 무용학원을 모집했다. 웅진이는 담임선생님에게서 그 소식을 들으며 저도 몰래 흥분에 가슴을 떨었다. 어쩌면 지지리도 힘든 공부로부터 탈출할수 있다는 희망에서인지는 모르지만 1.80메터를 바라보는 자기의 호리호리한 체격이면 무난히 춤을 출수 있을것 같은 자신심이 생기기도 했던것이다. 그날 저녁 웅진이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기의 뜻을 밝혔다. “뭐야? 세상에 남자가 춤을 춰? 딴따라를 하겠다구? 그짓을 하라고 어미 애비가 뼈 빠지게 뒤바라지를 하는것 같냐? 안돼 안돼! 악을 쓰고 공부해서 하다못해 전문학교에라도 가야지. 네가 대학생이 되는것을 보고야 엄마는 죽어도 눈을 감을거다.” 어머니의 견결한 태도는 웅진이의 싹터오르던 무용가의 꿈을 무참히도 밟아버렸다. 그 뒤로 웅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싶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그냥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에 자기를 맡겨버렸다. 시험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웅진이는 가끔 이렇게 어머니와 한판씩 붙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 지쳐갔고 웅진이는 웅진이대로 자기의 처지가 비참해서 가슴을 치다가 잠이 들군 했다. 숨막히는 일상속에서도 웅진이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로 되여주는것은 은영이의 해맑은 웃음이였다. 학습성적은 웅진이보다 좀 나은편이지만 역시 학급에서 중하등을 맴도는 은영이였다. 하지만 언제나 이슬 같은 미소를 함뿍 머금고 조용히 웅진이의 옆을 지켜주고있었다. (은영이―) 웅진이는 나직하게 은영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늘저녁 너 머리를 깎지 않을래? 내가 함께 가줄게.” 낮에 갈라질 때 하던 은영이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웅진이는 건듯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처량하게 보여올뿐 주위는 고요한대로 있었다. 은영이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은영이에게 전화 할가?) 웅진이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손가락을 “1”자우에 가져갔다. 은영이의 이름을 1번에 입력시켜놓았던것이다. 웅진이의 입가에 반짝 미소가 스쳐갔다. 오른손 식지에 힘을 넣어 1번을 누르려던 웅진이가 갑자기 건반에서 손을 뗐다. 웅진이는 핸드폰을 두손으로 꼭 움켜쥐고 다시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집에서 쫓겨나 이 구석으로 쫓겨온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은영이가 본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할가? 하는 우려심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웅진이는 이 시각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죽도록 싫어졌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웅진이는 고통스럽게 두손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잡아쥐고 흔들어댔다. 어머니의 손에서 뽑혀져나오던 머리칼이 다시 갈퀴로 되여 웅진이의 가슴을 허비기 시작했다. “머리가 길다고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까?” 낮에 있었던 담임선생님의 시까스름이 고름처럼 웅진이의 가슴에 녹아내렸다. (머리칼, 머리칼이 긴데는 어떻단 말인가? 이 머리칼하고 나의 학습성적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머리칼이 짧아지면 공부성적이 쑥쑥 올라갈수 있단 말인가?) 웅진이는 처음으로 자기의 머리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이 머리칼이 문제일가? 어머니도 선생님도 첨에는 학습성적이 낮다고 사설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머리칼을 공격목표로 삼아 건달이라는둥, 나쁜 놈이라는둥 하지 않는가? 그래, 이 원쑤 같은 머리칼을 잘라버리는거야, 깨끗이 철저히 검질해서 그들에게 보여주는거야!) 웅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진이는 반달음으로 미장원을 향해 뛰여 갔다. “어서 오세요.” 노랑머리리발사가 로봇마냥 판에 박은 인사를 건네왔다. 웅진이는 의자를 찾아 씽하니 다가갔다. 노랑머리리발사가 웅진이에게 가운을 입혀주며 물었다. “살짝 칠가?” 리발은 거의 이 미장원을 리용하기에 노랑머리리발사와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웅진이는 성가시다는듯 노랑머리리발사를 찔 째려보고는 자르듯 소리쳤다. “아니. 빡빡 밀어.” “뭐?” “못 들었어? 빡빡 밀라니까.” “설마… 꽝터우(까까머리)?” “그래, 뺀지골. 알아? 빡빡 밀라니까. 밀라구!” “진짜 꽝터우(光头)?” “말이 많네!” 웅진이가 의자에서 빨딱 일어섰다. 노랑머리리발사는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두팔을 올려 조용히 웅진이의 어깨를 눌러 앉히고는 전동리발기를 들었다. 잠간이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두피가 선뜻해나더니 윤기 흐르는 머리칼이 웅진이의 무릎우에 떨어졌다. 웅진이는 “윽!”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두눈을 꼭 감았다. 죽어라고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전동리발기는 “윙윙―” 소리를 내며 웅진이의 머리칼을 밀어나갔다. 오른쪽을 먼저 깎는지 오른쪽이 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웅진이는 가까스로 눈을 뜨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오른쪽이 허옇게 홀라당 깎여있었다. 나무 한대 없는 민둥산 같은 오른쪽이 함치르르한 머리칼이 남아있는 왼쪽과 대조를 이루면서 사뭇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고있었다. 웅진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두눈을 슴뻑거리며 거울속에서 내다보는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웅진이의 표정을 읽었는지 노랑머리리발사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깝다. 아까와…” * “엄마, 저 형님이 나쁜 놈이야?” 웅진이는 그 소리에 맥없이 아래로 떨어뜨렸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대여섯살쯤 되여 보이는 꼬마가 엄마의 손을 잡고 웅진이앞을 지나면서 종알거리고있었다. “크크크… 그렇게 보여?” 엄마는 꼬마를 자기옆으로 살짝 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가 계속 종알거렸다. “엄마가 말했잖아. 공부하기 싫어하면 커서 나쁜 놈이 된다구, 저렇게 뺀뺀대가리를 한다구.” “얘, 듣겠다. 목소리를 낮춰. 크크크크…” 엄마는 꼬마를 끌고 잰걸음을 놓고있었다. 꼬마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리를 돌려 웅진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웅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두커니 서서 엄마의 손에 끌려가는 꼬마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엄마가 말했잖아. 공부하기 싫어하면 커서 나쁜 놈이 된다구, 저렇게 뺀뺀대가리를 한다구.” 꼬마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웅진이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수박 같다고 생각되던 자기의 까까머리가 눈앞에 떠올랐다. 아까 거울에 비쳐있던 자기의 모습이 과연 죄범 같았던가를 떠올려보았다. 웅진이는 문득 방금 그 꼬마만할 때 받았던 충격을 떠올렸다. 그날 웅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복무대로옆을 지나고있었다. 그곳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들가운데는 십여대의 해방표자동차가 세워져있었는데 적재함우의 란간을 붙잡고 목에 이름표를 건 까까머리남자들이 줄줄이 서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이 어째 저렇게 서있나?” 웅진이가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물었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눈길로 웅진이를 내려다보면서 자냥스럽게 말씀했다. “웅진아, 봤지? 저렇게 목에 ‘개패’를 메고 서있는 사람들은 나쁜 놈이고 옆에 두리모자를 쓰고 서있는 사람들은 경찰이란다.” “나쁜 놈들의 목에는 왜 ‘개패’를 메웠나?”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느라고 메웠겠지.” “저 사람들은 어째서 나쁜 사람이 됐나?” “음… 아마도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나쁜 사람이 됐겠지. 우리 웅진이는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할수 있지?” 웅진이는 어머니의 기대어린 물음에 두눈을 깜빡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뒤로 웅진이는 다시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작 사라진줄로 알고있던 그 장면이 그렇게도 생동하게 기억에 남아있을줄은 웅진이도 생각밖이였다. 웅진이는 또다시 오른손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쓸어보았다. 어디라 없이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잡생각을 굴렸다. (내 모습이 과연 죄범처럼 보이고있을가? 내가 과연 죄범이 될수 있을가? 지금 나는 죄범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있을가?) 사색은 헝클어진 삼뭉치마냥 머리속을 어지럽히고있었다. “씨팔― 보기는 뭘 봐?” 웬 사나이의 거친 목소리가 어지럽게 귀청을 때렸다. 웅진이는 사색에서 뛰쳐나와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렸다. 웅진이는 어느새 북안시장부근에 와있었다. 길옆으로 음식난전들이 줄느런히 앉아있었다. 난전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느라 분주했다. “쌍년이, 오줌 싸…싸…싸는걸 못 봤냐? 왜?” 가로수아래에서 20대의 남자가 바지춤을 내리우고 소변을 보고있었다. 저만치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녀자애 둘이 지나가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있었다. “씨팔― 재간있으면 참아봐라. 네년들이 어애냐…” 남자는 가로수에 오줌을 갈기면서 련속 뭐라고 궁싯거리고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사나이의 머리통이 유독 빛났다. 까까머리였다. 면도칼로 빡빡 밀었는지 두피가 퍼렇게 보였다. 웅진이는 버러지를 씹은듯 이마살을 찡그리며 본능적으로 자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야! 뭘 봐? 오줌 누는것도 구경이냐?” 남자가 바지춤을 추스르다말고 또 소리쳤다. 웅진이는 머리에서 손을 내리우며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주위에는 자기를 내놓고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웅진이를 보고 시비를 걸어오는것이 분명했다. 괜히 그 남자가 미워지면서 부아통이 터졌다. 하지만 남자는 웅진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지껄여댔다. “구경이라도 났냐? 뺀뺀대가리, 널 그런다.” “헉!” 웅진이는 순간 숨이 꺽 막혀오는듯싶었다. (뭐? 나더러 뺀뺀대가리라구? 버러지 같은 자식.) 웅진이는 사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갔다. 남자가 바지춤을 채 추스리기전에 오른발을 씽 날렸다. 남자는 저만치 나가 푹 쓰러졌다. “어… 어! 얘들아―” 남자가 웅진이의 발길을 피해 두손으로 벌벌 기며 괴성을 뽑았다. 삽시에 어디선가에서 남자또래 청년들이 뛰여나오더니 웅진이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웅진이는 길바닥에 큰대자로 너부러졌다. 어지러운 발길이 우박처럼 웅진이의 몸에 떨어졌다. 웅진이는 매집을 좁히려고 큰대자로 너부러진 몸을 가누어 한껏 옴츠렸다. 그리고 두팔로 수박 같다고 생각되는 그 머리통을 한껏 움켜잡았다. 한참이나 욕질에 매질에 열을 올리던 남자들은 직성이 풀렸는지 다시 길옆난전으로 들어가며 길게 호기를 뽑았다. “까불고있네. 한줌거리도 안되는 놈이!” 웅진이는 두팔로 머리통을 움켜잡고 온몸을 새우처럼 옹송그린채 그 욕설을 듣고있었다. 온몸이 빠개지는듯 아파났다. 웅진이는 “으윽―” 하고 길게 한숨을 뽑아올렸다. 어디론가 둥― 떠나가는듯싶으면서 가물가물 묘한 기분이 머리속을 감돌고있었다. “쯧쯧… 저 코피를… 건달들이 무리싸움을 했나봐!” 지나가는 녀인의 목소리가 아물아물 웅진이의 머리속을 파고들고있었다. 이상했다. “건달”이라는 말을 듣자 저도 몰래 쿡 하고 웃음이 터지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내가 건달이였나? 내가 과연 건달이였나?) 웅진이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어머니들은 여전히 자식들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가로등아래를 걸어 지나고 련인들은 여전히 팔을 끼고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를 흘리고있었다. 나그네들은 여전히 길섶난전에서 맥주를 마시며 호기를 뽑아 올리고있었고 난전주인들은 여전히 양고기꼬치를 구우며 누런 이발을 들어내고 눅거리웃음을 팔고있었다. 웅진이는 머리를 숙여 자기의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구을렀던지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코등이 지끈지끈 아파났다. 웅진이는 코등을 눌러보았다. 코등은 퉁퉁 부어있었다. 손등으로 코밑을 쓱 긁어보았다. 손등에는 뻘건 피가 묻어졌다. 웅진이는 이윽토록 코피가 묻은 손등을 내려다보다가 맥없이 오른팔을 축 내리뜨렸다. 순간 어릴 때 복무대로앞에서 보았던 그 죄범들은 만인의 눈앞에 “개패”를 메고 서서 무엇을 생각했을가가 궁금해졌다. 웅진이는 후들후들 떨리는 두다리를 착 붙이고 서서 머리를 푹 숙였다. 어쩐지 그 순간 그렇게 서있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앞에 그렇게 서서 자기의 몰골을 적라라하게 보이고싶었다. “찌릉찌릉―” 갑자기 넙적다리에 강한 전률이 느껴졌다. 웅진이는 와뜰 놀라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막에는 “깜찍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져있었다. 그리고 문자표식이 떠있었다. 웅진이는 약간 떨리는 손끝으로 문자함을 열었다. 막에는 “??”부호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은영이!) 맑은 웃음을 날리는 은영이의 하얀 얼굴이 클로즈업되여 웅진이의 눈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 은영이가 보내온 “?”표도 떠올랐다. 싸늘한 웃음이 웅진이의 얼굴을 스쳤다. 웅진이는 핸드폰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행인들이 흘끔흘끔 웅진이를 여겨보고있었다. 저희들끼리 뭐라고 소곤소곤 귀속말을 건네기도 했다. 웅진이는 그들이 자기를 죄범 같다고 손가락질한다고 생각했다. 어쩜 자기를 소매치기나 좀도적일수 있을 거라고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 강도나 강간범일수도 있을것이라고 씹어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왜? 내가 왜? 저희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보기는 뭘 봐? 쌈을 좀 했을뿐인데, 코피를 좀 흘렸을뿐인데, 몸에 먼지가 좀 묻었을뿐인데…) 웅진이는 푹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쳐들었다. (볼테면 보라지.) 생각을 고쳐먹으니 어딘가 당당해진듯싶었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연신 피 묻은 코밑을 쓸며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구령을 높이 부르며 머리를 숙이지 말고 새로운 인생 위해 개조의 첫발자국 내디디자 …… 어디선가 우렁찬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웅진이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었다. 철조망을 설치한 커다란 담장이 눈에 안겨들었다. “아?!” 웅진이의 입에서 피 같은 신음소리가 짤막하게 터졌다. 분명 노래소리는 담장안에서 울려나오는것이였다. 웅진이는 말 못할 현기증을 느끼며 못박힌듯 굳어져서 커다란 담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조명등이 괴괴하게 비추이는 담장은 웅진이에게 말 못할 공포를 던져주고있었다. * (저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있을가? 저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을가?) 문득 찾아들던 공포가 서서히 가셔지자 웅진이의 머리속에는 담장너머에서 일어나고있을 모든 일이 그렇게 궁금할수가 없었다. 일년전의 어느날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이 피뜩 머리속을 스쳤다. 음침하게 흐린 어느 아침인듯싶었는데 400여명의 죄수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큰 마당에 줄지어 쪼크리고있었다. 하나같이 머리를 빡빡 깎았는데 그들이 줄지어 쪼크리고 앉은 그 마당이 여간만 번쩍이지가 앉았다. 웬 일인지 그래도 머리가 길다고 할수 있는 몇몇이 되려 닭무리속에 선 게사니처럼 눈에 유난히도 뜨이고있었다. 여러가지로 화면이 바뀌며 2분 가량 지속되던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만약 저 무리에 가서 앉는다면 어떤 심정일가 하고 막연한 생각을 굴린적이 있었다. 어떻다 할 답안을 찾지 못한채 그 장면을 지내보낸후 웅진이는 한번도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적이 없었다. 헌데 그 순간 그렇게도 담장너머를 살펴보고싶은 충동이 생기는것은 웅진이 스스로도 이상스러웠다. (세상과 동떨어진 담장 저쪽에서 자유를 박탈당한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가?) 그것이 호기심에서인지 공포심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시각 웅진이는 그것이 꼭 보고싶었다. 웅진이는 흘끔흘끔 주위를 살피며 높은 담장밑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담장은 개미 한마리도 기여나갈수 없을만치 견고해보였다. 담장 네 귀를 두번이나 돌아보았건만 어디다 눈길을 박을만한 곳이 없었다. 저도 몰래 “호―” 하고 한숨이 터져나갔다. 웅진이는 희망을 접으며 몸을 돌려 천천히 큰길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 공공뻐스정류소가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아래의 정류소는 여간만 한적해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공공뻐스가 있나?) 하는 생각이 피뜩 스쳐지났다. 순간 공공뻐스에 앉아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공공뻐스정류소를 바라고 발걸음을 다그쳤다. 정류소에 도착해보니 자기또래의 남녀가 나란히 앉아서 무슨 말인가를 하고는 좋아서 못 참겠다는듯 까르르 웃음을 터치고있었다. 행복한 그들을 보노라니 저도 몰래 자기의 처지가 서글퍼났다. 웅진이는 그들과 떨어져서 간이의자의 제일 끝쪽에 가 어깨를 웅크리고 앉았다.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게임을 할가?” “무슨 게임?” “재밌는 게임.” “어떻게?” 남자애가 녀자애의 귀에 입을 대고 한참이나 뭐라고 소곤거렸다. 녀자애가 갑자기 몸을 당기며 주먹으로 남자애의 어깨를 북 치듯했다. “얘가, 얘가 미쳤어, 미쳤어. 변태야. 나 인젠 널 안 만날래.” “참. 누가 변태야. 재밌잖아.” “뭐가 재밌어?” 녀자애가 남자애를 쳐다보며 물었다. “딱 네가 진다는 보증도 없잖아? 가위바위보는 녀자애들이 눈썰미가 빨라서 더 잘 논다는데. 네가 이기면 오늘밤 내게 업혀 집까지 가는 호사를 할수 있잖아.” “그러다 내가 지면?” 물어보는 녀자애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져있었다. “네가 질수는 없겠지만 그러다가 정말 네가 지면 그냥 못이기는척 속도를 내는거지 뭐?” “으― 구렝이, 남자들은 다 구렝이야. 암튼 내가 질라구. 하자, 해보자.” 녀자애는 손가락이 배쪽에 닿게 하고 깍지를 걸어 신비스럽게 눈앞에 당겨다가 뭔가를 살피더니 한결 흥분된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싸― 죽어봐라. 집까지 단숨에 가기다. 죽었어!” “그래 죽어보자.” 둘은 유치원마당에 앉은 짜개바지악동들처럼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가위바위보!” 두주먹이 운명을 결정하고있었다. “아싸― 이겼다.” 남자애가 흥분에 들떠 벌떡 일어섰다. “으악!” 녀자애가 새된 소리를 질러댔다. 남자애가 녀자애의 목을 와락 끌어안더니 녀자애의 입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녀자애는 남자애에게 입술을 점령당하면서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그저 두팔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웅진이는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적라라한 드라마를 넋을 놓고 보고있었다. 가슴이 세차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네가지가 없는 년놈들.” 이사이로 욕설이 터져나갔다. “어때? 또 한번 할가?” 남자애가 녀자애의 목을 감았던 팔을 풀고 히쭉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몰라, 몰라!” 녀자애가 얼굴을 싸쥐고 땅에 쪼크리고 앉았다. “너 설마 우는거니?” 남자애가 오른손가락을 쫙 펴서 녀자애의 긴 머리칼사이에 꽂으며 능청을 떨었다. 녀자애의 어깨가 가담가담 떨리고있었다. “괜찮아. 까짓걸 가지구 뭐. 내가 책임진다니까. 걱정 말아.” “몰라, 몰라!” 녀자애가 발딱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종종걸음을 놓았다. “한칼에 한놈을 죽였다. 한칼에 두놈을 죽였다. 한칼에 세놈을 죽였다. 한칼에 네놈을 죽였다. 한칼에 다섯놈을 죽였다…” 웅진이는 눈앞에서 멀어져가는 자기또래의 남녀를 바라보며 자기만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악!” 하는 처량한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며 들려왔다. 웅진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자동인출기를 장치한 작은 영업청앞이였다. 한 녀인이 아래배를 부여잡고 무너지고있었고 손에 가방을 든 한 남자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있었다. 녀인은 오토바이에 오르는 남자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더니 “악!” 하고 소리칠 때보다 한결 힘이 빠진 목소리로 “강도다― 강도를…” 하고 소리치다가 쓰러져버렸다. 사나이는 어느새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웅진이는 잠간 어정쩡해있다가 차츰 정신을 추스려 방금 본 장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답이 나왔다. 강도가 쓰러진 녀인의 가방을 강탈한후 녀인의 아래배를 흉기로 찔렀고 그다음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쳐버린것이였다. (저 녀인은 지금 어떤 상태일가?) 긴급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다. 웅진이는 쓰러져있는 녀인을 향해 뛰여갔다. 녀인이 쓰러져있는 땅에는 뻘건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있었다. “괜찮습니까? 정신을 차리십시오.” 웅진이는 감히 녀인에게 손을 대지는 못하고 두손을 마주 비비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녀인은 간신히 몸을 탈아 웅진이를 바라보더니 띠염띠염 말했다. “전화해주세요. 언니께요.” “네, 번호는?” 웅진이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1390443****” “1390443****” 웅진이는 낮은 소리로 번호를 외우며 건반을 눌렀다. “누구세요?” 대방에서 인차 전화를 받았다. “사고가 났습니다. 녀동생이라고 하는데요. 감옥남쪽 자동인출기앞입니다.” “네? 상했어요?” “카… 칼에 좀…” “알았어요.” 대방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꺼버렸다. “전화했어요.” 웅진이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녀인은 못 들었는지 다시 몸을 땅에 착 붙인채 죽은듯 누워있었다. 상처자국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는듯싶었다.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허리를 꺾어 앉으며 녀인을 흔들었다. “우리 먼저 병원에 갑시다. 제가 전화 받은 사람을 병원으로 오라 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녀인이 반응을 보였다. 웅진이는 녀인에게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달려오는 택시가 보였다. 웅진이는 길 중앙에까지 나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는 “칙―” 하고 웅진이네 옆에 와서 멈춰섰다. “병원, 병원에 실어갑시다.” 웅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운전수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인차 내려와 웅진이를 도와서 녀인을 들어 뒤좌석에 앉혔다. “연변병원.” 웅진이가 짤막하게 말했다. 운전수는 대답도 없이 속력을 뽑기 시작했다. 녀인의 상처를 소독하고 긴급처치를 금방 끝냈을 때 언니라는 녀인도 들어섰다. 언니라는 녀인의 뒤로 40대의 나그네와 대여섯살쯤 되여 보이는 꼬마가 따라 들어섰다. “옥녀야, 이게 웬 날벼락이냐? 어느 개새끼가 널 이렇게 만들었냐?” 언니라는 녀인이 칼에 찔린 녀인에게로 엎어질듯 달려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나이도 침대에 누워있는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의사가 종이에 뭔가를 쓰다말고 말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몹시 놀란듯싶습니다.” 언니는 여전히 쿨쩍이며 넉두리를 했다. “이 둔한것아.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무슨 큰일을 보겠다고 이 밤에 현금을 찾았냐? 정신 없는 년.” “여보!” 나그네가 언니라는 녀인을 툭 쳤다. 언니는 몸을 돌려 나그네를 찔 흘겨보더니 두손을 쫙 펴서 얼굴을 가리우며 땅에 쪼크리고 앉았다. “나그네도 없이 리혼하구 혼자서 외롭게 살더니… 봐라. 우리 옥녀를 어떻게 하면 좋니?” “언니, 저… 저 사람에게…” 칼에 찔린 녀인이 언니라는 녀인의 말을 중둥무이하고 맥없이 손을 들어 웅진이를 가리키며 떠듬떠듬 말했다. 언니라는 녀인이 손등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다말고 웅진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순간 웅진이의 눈길이 허공에서 언니라는 녀인의 눈길과 마주쳤다. 웅진이는 흠칫 몸을 떨며 머리를 돌려버렸다. “어느 나쁜 개새끼가 우리 옥녀를 이렇게 만들었냐? 감옥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감옥에서 도망쳐나온 죄범이 아니더냐?” 언니라는 녀인의 거친 욕설을 들으며 웅진이는 어쩐지 현기증 같은것을 느꼈다. 웅진이는 조용히 급진실을 나와 복도의 걸상에 몸을 실었다. 스르르 피곤이 몰려들었다. 웅진이는 살며시 두눈을 감고 몸을 벽에 기댔다. “형님이 우리 이몰 병원에 데려왔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웅진이가 눈을 떴다. 나그네뒤를 따라 들어오던 그 꼬마였다. 꼬마의 눈이 맑고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진이는 벽에서 천천히 몸을 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놀랐지? 너의 이모니?” “네, 한국 갔던 우리 이몹니다. 우리 이모는 나를…” 이때 언니라는 녀인이 웅진이네쪽으로 걸어오더니 소리없이 꼬마의 팔을 확 나꿔챘다. “어―엄마.” 꼬마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들어가, 아무하고나 말하는게 아니야.” 언니라는 녀인이 몸을 픽 돌려 웅진이를 째려보았다. 웅진이는 흠칫 몸을 떨며 저도 몰래 손을 들어 자기의 머리를 만졌다. 꺼슬꺼슬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왔다. “엄마, 저 형님이 이몰 데려왔대. 저 형님은 나쁜 사람 같지 않아. 엄마 말이 틀려.” “뭐가, 뭐가 틀려? 빨리 들어가지 못하겠니?” 언니라는 녀인이 꼬마를 급진실안으로 끌며 말했다. “엄마가 말했잖아? 나쁜 놈들이 뺀뺀골을 한다구. 저 형님도 뺀뺀골인데, 이모를 데려왔는데… 저 형님은 나쁜 놈이 아니야!” 꼬마가 언니라는 녀인의 손에 끌려 급진실로 들어가며 머리를 돌려 웅진이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 눈길은 그렇게도 맑아보였다. 웅진이는 벌떡 일어섰다. 출입문을 향해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 가?” 어느새 또 나왔는지 꼬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고있었다. 병원출입구를 나서며 웅진이는 저도 몰래 코끝이 시큼해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저 형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꼬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파랗게 살아서 웅진이의 아픈 가슴을 쓸어주고있었다. 웅진이는 두눈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애꿎게 입술을 감빨았다. 두볼을 타고 물방울이 주르륵 굴러 떨어졌다. 웅진이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며 어금이를 떡하니 깨물었다. “찌릉찌릉―” 갑자기 넙적다리에 강한 전률이 느껴졌다. 웅진이는 얼굴을 닦던 손을 내리워 호주머니에 가져갔다. 핸드폰에 “깜찍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웅진이는 핸드폰덮개를 열었다. “웅진이니?” 은영이가 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웅진이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서 도무지 말을 할수가 없었다. “웅진아, 말해봐! 뭔 일이 생겼니?” “은영아, 나 뺀뺀골을 했다. 흑흑― 은영아, 그래도 난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말을 마친 웅진이는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으며 선자리에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어깨가 세차게 들먹여지고있었다. 웅진이는 “꺽―꺽―” 흐느껴지는 소리가 입술을 타고 나오려는것을 억지로 누르며 천천히 머리를 들어 하염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 한점 보이지 않는 까아만 밤하늘에서 뿌연 쪼각달이 처량하게 어디론가 미끌어져가고있었다. (그래, 아직은 초순이야.) 웅진이는 문득 이런 생각을 굴리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347    운무의 저쪽 댓글:  조회:1581  추천:0  2012-04-24
    봉이는 두팔로 무릎을 꼭 감아쥐고 천근같이 무거워나는 머리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리고 으스러지게 어금이를 깨물며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삼검불같이 헝클어진 머리속은 운무에 휩싸인 소택지만치나 한치 앞도 가려볼수없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있었다. 봉이는 그 운무속에서 자기를 내리누르는 무형의 쇠덩이를 보고있었다. 분명 지지리도 힘들게 자기를 괴롭히고있지만 또 그것이 사랑이라는 허울에 가려져서 숨쉴수조차 힘들게 칭칭 감겨들고있는 엄마의 눈길처럼,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떨어버릴래야 떨어버릴수도 없게 느껴졌다. “후―” 세워서 꼭 감아쥐고있던 무릎이 은근히 저려오며 호들호들 떨리기 시작했다. “힘들어, 힘들어!” 하고 무릎이 하소연을 하는것 같았다. 봉이는 더욱 으스러져라 무릎을 부둥켜안았다. 어쩜 어디론가 무작정 도망가려는 자기를 고중입시라는 거대한 그물에 잡아두려고 버럭버럭 애를 쓰시는 엄마의 눈길처럼 꼼짝도 못하게 무릎이라도 잡아쥐고싶어서였다. 호들호들 떨려오던 무릎이 후들후들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억!” 봉이는 저도 몰래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며 평생 놓지 않을듯 열손가락을 쫙 펴서 깍지를 걸어 감싸쥐였던 무릎을 풀었다. 손으로 땅을 짚어 몸체를 의지하며 간신히 일어섰다. 봉이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찌뿌둥한 마음마냥 하늘도 뿌옇게 흐려있었다. 봉이는 바위아래로 보여지는 저수지에 눈길을 주었다. 뽀얀 운무속으로 저수지 수면이 보일듯말듯 술래잡기를 하고있었다. 이름 모를 아기 새 한마리가 구슬프게 울어대며 어디론가 날아가고있었다. 보고싶지 않았다. 봉이는 다시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면서 머리를 외로 탈았다. 멀지 않은 곳에 너럭바위가 있었다. 흘러가는 운무에 받들려있는 큼직한 바위는 어딘가 서글픔까지 더해주고있었다. 그 바위우에 빠알간 운동복차림의 한 녀자애가 서있었다.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있었다. 가슴앞에 두손을 합장하고 서서 약간 머리를 쳐들고 하염없이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고있는 녀자애의 모습은 마치도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아!” 봉이는 저도 몰래 이사이로 신음 비슷한것을 뽑아올렸다. 녀자애의 모습이 전해주는 그 어떤 감동을 읽는듯했다. 녀자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위끝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뿌연 하늘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타는듯 빠알간 녀자애의 옷이 아프도록 두눈을 자극해오고있었다. (불타는 심장?) 봉이는 그 드라마에 제목을 달아보았다. 순간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과연 저 심장이 타오르려는것일가? 봉이는 두손을 눈가에 가져다대고 촬영사가 화면구도를 그리듯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불타는 심장”을 그안에 집어넣었다. 운무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수면까지 화면에 잡을수있었다. 봉이는 손가락으로 만든 네모를 눈앞으로부터 멋스럽게 천천히 밀어갔다. 머리칼을 날리며 바위끝을 향해 걸어가던 “불타는 심장”이 불현듯 네모에서 사라지고있었다. “앗! ” 봉이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수면우로 빠알간 점이 보였다. 봉이는 그 점을 향해 정신없이 뛰였다.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다. 녀자애는 두팔로 물을 치며 허우적거리고있었다. 순간 물속에 쑥 들어갔다가는 다시 물우에 솟아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녀자애가 서있던 바위까지 뛰여간 봉이는 등에 지고있던 멜가방을 바위우에 던져버리고 주저없이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옷을 입은채로여서 헤염을 치기가 여간만 힘든것이 아니였다. 봉이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자맥질을 했다. 녀자애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녀자애는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봉이는 머리를 물속에 박아넣었다. 꾸무럭거리는 빨간 옷이 물속에서 아렴풋이 보였다. 봉이는 빨간 옷을 향해 헤염을 쳐갔다. 금방 잡힐듯한 거리였다. 봉이는 빨간 옷을 향해 오른팔을 힘껏 뻗어보았다. 빨간 옷이 쥐울듯싶더니 쑝 하고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버렸다. 참! 봉이는 물우로 솟아올라 한껏 참고있던 숨을 푸하― 토하며 빨간 옷을 살폈다. 빨간 옷은 마치도 한마리의 빠알간 금붕어마냥 유유히 강역을 향해 헤여가고있었다. 봉이는 황소숨을 몰아쉬며 빨간 옷을 향해 헤염을 쳤다. 빨간 옷은 아무 일도 없었던듯 너럭바위에 올라섰다. 얼굴에 좋아죽겠다는듯 밝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칼을 두손으로 훑어내리고있었다. 어깨에 닿을듯말듯한 머리칼끝에서 무수한 물방울이 구술인양 떨어지고있었다. 빨간색으로 된 엷은 운동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 묘하게 곡선을 그리고있었다. 봉이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녀자애가 머리를 숙였다가 건듯 쳐들어 머리칼을 날렸다. 그 바람에 물방울이 날아서 금방 바위우에 올라선 봉이의 얼굴을 스쳤다. 녀자애는 바위우에 놓여져있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유유히 얼굴을 문다지고있었다. 순간 봉이는 마음이 허전해났다. 저으기 부아통이 터지려 하고있었다. 봉이는 녀자애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뭘 하는거니?” 녀자애가 깜짝 놀라는듯 봉이쪽에 머리를 돌렸다. 두눈이 반짝 웃고있었다. “너, 헤염을 참 잘 치던데…” “뭐, 헤염?” 봉이는 목구멍까지 올리미는 그 무엇을 억지로 삼키며 떡하니 입만 벌리고 섰다. “수영은 언제 배웠니?” 녀자애는 역시 두눈을 빤짝하면서 봉이에게 물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듯 목소리까지 가볍게 뜨고있었다. 봉이는 자기의 심장이 튀여나오려고 발버둥질을 치고있음을 느꼈다. “너, 괜찮니?” 말을 마친 봉이는 주먹으로 힘껏 자기의 허벅지를 갈겨주었다. (이게 아닌데, 분명 이게 아닌데! 나의 허벅지가 아니라 저 애의 뻔뻔한 얼굴을 갈겨줘야 하는건데.) 봉이는 빗나가는 자기의 행동이 죽도록 미워났다. 녀자애가 봉이를 향해 또 한번 방긋 웃어주었다. “괜찮지 그럼. 얼마나 자극적이였는데…” 봉이는 수집은듯 녀자애의 눈길을 피해 머리를 숙이며 떠듬거렸다. “그런걸 난 또…” “ㅋㅋㅋ, 내가 자살이라도 하나 했지? 그래서 목숨을 건거야? ㅋㅋㅋㅋ… 그래서 목숨을 건거 맞지? 뢰봉아!” “뭐? 너…너, 어떻게 내 이름을 아니?” “뭐? 너의 이름? 내가 어떻게 안다구?” 녀자애가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고있었다. 봉이는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너, 방금…” “방금? ㅋㅋㅋㅋ… 너 설마 이름이 뢰봉이야 아니겠지?” “맞아, 내 이름이 려봉인데.” “뢰봉?” “응, 려봉!” “난 또, 너의 이름이 려봉이였구나. 난 너의 그 목숨을 걸고 남을 구하는 정신을 높이 모셔서 뢰봉이라 부른건데…” 녀자애가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너…너!” 봉이는 꺽꺽 말을 톺다가 홱 머리를 돌렸다. 녀자애가 끝내 아래배를 움켜잡고 무너져 내렸다. 찔끔찔끔 주먹으로 눈부리를 찍어대고있었다. “얘, ‘뢰봉아’. 너 학교에서 진짜 모범생이지?” “모범생은 무슨…” 봉이가 녀자애의 옆에 가 앉으며 뒤말을 얼버무렸다. “ㅋㅋㅋ… 아니라네. 환히 보이는데. 너 집에서는 엄마 말을 엄청 잘 듣는 얌전한 아들이구…” 녀자애도 봉이옆에 나란히 앉으며 하얀 웃음을 배실배실 흘리고있었다. “얌전? 흥! 얌전 좋아하구있네. 얌전하면 이렇게 가출했겠니?” 봉이가 몸을 픽 돌리며 고개를 번쩍 쳐들고 녀자애를 바라보았다. “뭐야? 가출?!” 녀자애의 동공이 확 튀여나오려 서두르고있었다. “그래, 가출! 왜, 안되니?” 봉이의 입가에 가는 웃음이 살짝 스쳐지났다. “네가, 가출을 했다구?” 녀자애가 외계인이나 바라보듯 봉이를 바라보았다. “흥……” 봉이는 녀자애를 향해 가슴을 쑥 내밀었다. “얘, 말해봐. 어째서 가출을 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지.” “저런, 저런…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으면… 말해봐라. 어째서 맘이 불편했는데?” “……” 봉이는 여전히 쓴맛 나는 찬웃음을 씩 날리며 녀자애를 일별했다. 녀자애가 봉이의 옆으로 한뽐 더 다가앉았다. “얘, 말해봐라. 응, 왜 가출했는데?” “헤잇!” 녀자애의 닥달에 봉이가 저도 몰래 산이 무너지듯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얘, 어서!” 녀자애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듯 안달이 나했다. “어제밤, 엄마하구 한판 붙었더랬어!” “왜, 왜? 왜 붙었는데?” 녀자애의 눈이 봉이의 심장이라도 꿰뚫고 영문을 알아내겠다는듯 번뜩거렸다. “나도 속이 상하거든. 상당히 괴롭단 말이다.” “알아, 알아, 원인을 말해얄게 아니니? 왜 불편하구 괴로운데?” 녀자애가 손으로 봉이의 어깨를 톡 치며 재촉했다. “이번 기말시험에서 5등급이나 떨어졌거든. 보기 좋게 락하산을 탄거지.” “5등급이나? 저런, 그럼 몇등이 되는데? 설마 마지막 일등은 아니겠지?” 녀자애의 눈에 잠간 긴장이 흐르고있었다. “비슷해! 9등밖에 못했거든.” “9등, 앞으로?” “앞이지, 그럼!” “앞으로 9등? 설마 너네 반에 학생이 아홉명밖에 없는건 아니지?” “쉰일곱이다, 왜?” 봉이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나왔다. “뭐? 얘, 쉰일곱에서 9등이면 완전히 별나라에 있는것 아니니?” 녀자애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별나라라니? 5등급이나 떨어졌는데. 그래 뭐 내가 똥별이라도 됐단 소리니?” “와― 도저히, 내 사유로는 리해가 안 가는데. 얘, 그럼 넌 몇등이나 하면 좋겠니?” “못해도 5등안에는 들어야지. 그래야 정상이구, 그래야 우리 엄마도 선생님도 동학들도 딴눈으로 안 본다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가능하지 못한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게 능력이구,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가는게 인생이래.” 말해놓고보니 봉이도 우스웠던지 제풀에 피씩 웃어버렸다. 그러는 봉이를 바라보며 녀자애가 뚫어지게 봉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웃기지, 내가?” “왜 웃긴다고 생각해?” “인생을 론하고보니 저절로도 참 웃겨보여서. 하지만 우리 집에선 이게 하나도 웃기는 일이 아니거든. 마치도 내가 살아가는 전부의 의미가 중점고중에 붙는것인것 같아. 아직 고중시험까지는 1년이나 남아있건만 우리 집의 모든 화제는 중점고중이야.” “그래서 힘드니?” “폭발할것 같아.” “가슴이?” “그렇지. 마냥 자신이 공부하는 기계 같아 보이거든. 찰칵찰칵 고르롭게 기계가 돌아갈 때면 옆에서 착착 박수를 쳐주구, 혹시나 기름이 떨어져서 덜커덕덜커덕 힘겹게 돌아갈 때면 하늘이라도 무너질듯 온 집안이 란리법석이구…” “알면서, 벗어나려고는 생각 안해봤니?” 녀자애가 도전적으로 물어왔다. 봉이는 놀란듯 녀자애를 빠금히 바라보다가 또 한번 피식 웃었다. “벗어난다구? 어디서? 엄마의 잔소리속에서? 아님 선생님의 눈초리밑에서?” “그럼 넌 어떻게 하면 편할것 같은데?” “학급 1등, 아니 학년 1등을 하면 편하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몰라, 이렇게 죽기내기로 공부를 하는데아직은 학급 1등도 못해봤거든. 아마 1등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겠지, 잠간이지만…” 봉이의 말을 들으며 녀자애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봉이는 갑자기 자기가 그 어떤 끈에 묶여서 끝도 없이 허위허위 어디론가 끌려가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봉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녀자애를 향해 소리쳤다. “너, 너… 정말 이러기야?” “왜? 내가 어쩌는데.” 녀자애도 따라 일어서며 야릇한 눈길로 봉이를 쳐다보았다. 봉이가 손가락으로 녀자애를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너무 하는거 아니니? 너…너, 왜 나만 가지구 씹어?” “아니지. 너만 가지구 씹는게. 당전 형세를 놓고볼 때, 너의 가출이 의사일정에 오른거 아니니? 가출이란 참 무서운 개념이거든, 발등에 붙은 불부터 끄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네 코도 석자 같은데? 아까 분명 보아낼수 있었거든. 너 뭔가 아주 심각해보였어.” 봉이는 아니냐는듯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녀자애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녀자애가 봉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살짝 웃음을 날렸다. “정말? 아까 내가 정말 그렇게 보였어?” “정말이라니까. 난 정말 큰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니까? 너도 솔직히 말해봐! 구경 뭔 일로 물에 뛰여들었어?” 녀자애를 바라보는 봉이의 얼굴이 자못 진지해보였다. 녀자애는 여전히 까르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참, 너 눈썰미 하나는 죽여주는구나. 그래, 아까 난 사망훈련을 해보았다.” “뭐? 사망훈련?!” 봉이가 튀여나오려는 심장을 누르며 녀자애에게 물었다. “그래, 사망훈련! 헌데 왜 그렇게 놀라니? 사람이란 다 그런게 아니니? 태여나는 날부터 죽음을 향해 엉금엉금 기여가는거지. 죽음의 신은 언제나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노리고있는거구. 이렇게 죽으면 어떨가? 저렇게 죽으면 어떨가? 한번쯤 죽음을 두고 열심히 리허설을 해보는것도 로맨틱한게 아니니?” 봉이는 자기와 나이도 비슷해보이는 이 녀자애의 머리에 이처럼 해괴한 리론이 고름처럼 들어차있다는 자체가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면서 녀자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얘, 넌 어디서 이런것들을 배웠니?” “어떤것들을?” “뭐, 이를테면 ‘엉금엉금 죽음을 향해 기여간다’는것 같은…” “그것도 배워야 아는거니? 넌 책도 안 보니?” “책? 어느 책에 그런게 씌여져있니?” “ㅋㅋㅋ… 이런 샌님이라구야? 그래 맞아. 너희들이 말하는 책이야 바로 교과서 그 자체지. 그래, 열심히 교과서를 뚜져라. 그래야 떨어진 5등급을 따라잡지. 즐거웠다.” 녀자애는 어느새 건기가 들어가는 옷자락을 당겨서 두어번 툭툭 털고는 두손을 머리속에 깊숙이 넣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마르면서 듬성듬성 엉켜 붙었던 머리칼이 떨어지면서 묘한 기분을 연출하고있었다. “야, 너 이름이 뭐니?” 봉이는 녀자애를 향해 급하게 소리쳤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웨침 비슷한것이였다. 어쩜 이 순간을 놓치면 수수께끼 같은 이 녀자애를 다시 볼수 없다는 그런 긴박감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녀자애가 바위우에 놓여있던 파란 가방을 주어들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내 이름? 알고싶어?” “그럼! 넌 다 알아버렸잖아. 나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적이 없는데, 난.” “그래두 결과적으로는…” “넌 참 재밌는 애야!” “뭐?” “ ㅋㅋㅋ… 내 이름도 너만치나 재밌거든. 내 이름은…” 녀자애가 말끝을 잡고 함뿍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마주쳐 딱하고 소리를 내며 아래 말을 이었다. “쿠야.” “엉?!” “내 이름을 물었잖아? 내 이름, 쿠야 쿠!” “쿠, 쿠라구?” “쿠쿠가 아니구. 쿠라니까.” 말을 마친 녀자애는 몸을 픽 돌려 걸음을 옮기더니 다시 머리를 돌렸다. “너, 빨랑 집에 돌아가라, 너에겐 아직 가출이 어울리지 않거든. 다시 만나―” 빠알간 등이 파아란 가방을 업고 봉이의 눈에서 멀어져가고있었다. 사라져가는 녀자애를 바라보노라니 “쿡!” 하고 뭐라 해석할수 없는 소리가 봉이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뭐? 이름이 쿠라구? 설마 진짜야 아니겠지? 그게 진짜라면 어떻게 불러? 김쿠? 박쿠? 정쿠? ㅋㅋㅋ… 동쿠? 세상에…) 봉이는 마치 짜릿한 마술에 걸렸다가 풀려나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닐거야, 절대 그 이름이 진짜일수가 없어! 뭐? 사망훈련? 과연 그게 가능한걸가? 이것도 절대 진짜일수가 없어! 그 애에게는 분명 엄청난 미스터리가 있는거야. 아까 그 순간 바위 끝을 향해 걸어가는 그 발걸음은 비장하기까지 해보였는데… 혹시 배우지망생? 그래. 이거야. 그 비장함이 꾸며낸거라면 그 애는 분명 배우지망생일거야!) 봉이는 주먹으로 자기의 허벅다리를 탁 쳤다. 사흘 낮 사흘 밤을 힘들게 하던 수학문제가 일시에 풀려나가는 그런 기분이였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애도 있구나.) 봉이는 바위우에 던져져있는 자기의 가방을 주어들었다. (그 애, 그 애가 어디로 갔을가? 어디서 사는 애일가? 나이는 얼마나 될가?) 마음이 가벼워지자 엉뚱한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속으로 기여들기 시작했다. 봉이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면서 녀자애가 사라진쪽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삐뚤삐뚤 저 멀리로 뻗어간 오솔길에는 뻘건 황토가 여미지 않은 시골아줌마의 쭈그렁가슴처럼 들어나있었다. 봉이는 그 오솔길을 딛고 어디론가 가버렸을 그 녀자애를 찾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를 내려서 두어발작 걸음을 옮기던 봉이는 길우에 떨어져있는 손수건 한장을 발견했다. 봉이는 다가가 손수건을 주어들었다. 하얀 바탕의 손수건우에는 빨간 매화꽃 서너송이가 새겨져있었다. 접때 녀자애가 얼굴을 닦고나서 손수건을 가방끈에 걸어놓던 생각이 났다. 아까는 주의해서 보지 않았지만 분명 하얀 판에 빨간 점이 있는듯했었다. 가는 길에 녀자애가 주의하지 않아 떨어뜨린것이 분명했다. 봉이는 손수건에 눈길을 주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손수건 아래쪽에 “사랑의 집”이라는 파란 글이 새겨져있었다. “사랑의 집?” 순간 봉이는 고아원을 떠올렸다. 소학교 6학년 때 “6.1절”을 맞으면서 학급에서 “사랑전하기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간단한 기념품과 위문편지를 가지고 시교에 있는 “사랑의 집”으로 간적이 있었다. 봉이는 그곳에 가서야 아빠도 엄마도 형제도 없는 고아라는 이름을 가진 애들이 이 하늘아래에 그렇게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들을 보면서 봉이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떠올려보았다. 그날 저녁 봉이는 아빠앞에서 두팔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만들며 “아빠, 사랑해요!”를 연출했다. 아빠는 깜짝 놀라는듯하더니 봉이에게 큼직한 꿀밤 하나를 얹어주며 말했다. “자식, 하지 않던 놀음을 하면서.” 분명 봉이가 아빠를 놀리고있는줄로 아는것 같았다. 그날 봉이는 아빠를 향해 혀를 홀랑 내밀어보이고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일기책을 펼쳐들었었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 ‘엄마, 아빠!’하고 부를수 있는 사람이 내곁에 있다는것이 행복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고있다는것도 눈물나게 고맙다. 불쌍한 고아원의 애들을 자주 찾아봐야겠다…” 그날이 있은지도 어느덧 3년철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봉이는 그새 한번도 고아원을 찾지 못했다. 일이란 그렇게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가보다. 봉이는 문뜩 “사랑의 집”을 찾아보고싶어졌다. 그곳에 가 불쌍한 애들을 만나보고싶은것인지 아님 “쿠”라고 하는 그 녀자애와 어떤 인연이 닿아있을법한 그곳을 다시한번 보고싶은것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꼭 한번 들려보고싶은 마음만은 간절해졌다. 봉이는 빠알간 등이 파아란 가방을 업고 사라지던 그 오솔길로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반시간쯤 걸으니 오솔길이 끝나있었다. 봉이는 시내구역에 들어서서 십분쯤 더 걸어 공공뻐스들이 정차하는 간이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6선뻐스를 타고 가다가 종점에서 내려 다시 십오분쯤 걸으면 “사랑의 집”에 도착할수 있는걸로 기억하고있었다. 간이역 서쪽켠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속에서 흥겨운 기타소리가 울려나왔다. (웬 일이람?) 봉이는 호기심이 동해 사람들이 모여선 그곳으로 다가갔다. 두세겹으로 둘러선 사람들속에서 머리를 길게 자래우고 노란 부리찌를 낸 잘생긴 남자애가 신들린듯 기타를 타고있었다. 궁금했다. “안에서 웬 일이세요?” 봉이가 곁에 선 사나이에게 물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이곳에서 가끔 볼수 있거든. 기타를 참 잘 타지 않니?” “저렇게 돈을 버는 앤가요?” “아니, 간혹 소비돈을 던져주는 사람은 있더라만 프로는 아닐거야, 저 애 입으로 직접 돈을 구걸하는걸 못 봤거든.” “그럼 뭘 하는 애래요?” “글쎄다…” 사나이가 머리를 저었다. “여러분, 정말 우리의 마음마저 찌물쿠게 하는 계절입니다. 공부에 지친 자식들의 손목을 잡고 황금빛태양이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려행을 떠나볼 의향은 없으신지요? 이 시각도 여러분의 자식들이 교과서와 씨름하느라 지쳐가고있다것은 알고계시는지요?” 남자애가 격동에 넘쳐 열변을 토하고는 흥겹게 기타줄을 튕겨댔다. “메아리소리가 들려오는 / 계곡속에 흐르는 물 찾아 / 그곳으로 려행을 떠나요.” “려행을 떠나요”라는 귀에 익은 노래였다. 7월의 찜통더위에 진땀을 짜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적셔주는 싱싱한 노래였다. 둘러선 사람들속에서 무시로 박수가 터져올랐다. “좋소, 좋소~”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절찬속에서 남자애는 완전히 무아상태에 빠진듯했다. 봉이는 문뜩 그 남자애가 무지무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해나가는 그 용기가 부러웠고 낯선 사람들앞에서 저렇게도 당당하게 열창을 할수 있는 남자애의 자신심이 부러웠다. “공부에 지친 자식들의 손목을 잡고 황금빛태양이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려행을 떠나볼 의향은 없느냐”고 하던 남자애의 뜨거운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으며 일시 코끝이 물먹은듯 시큰해났다. 드디여 6선뻐스가 역에 들어섰다. 봉이는 아쉬운듯 그곳을 떠나 뻐스를 향해 뛰여갔다. 봉이는 해살을 마음껏 마실수 있는 차창 곁을 찾아 앉았다. 차창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이 봉이의 머리칼을 날려주었다. 봉이는 손가락을 쫙 펴서 머리를 뒤로 쓸어올리며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봉이는 잠간이지만 머리속에 비여있는 하아얀 공간을 발견했다. 그 공간속에는 공부도 없었고 선생님도 없었고 아빠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다. 그 공간속에는 쿠라고 하는 녀자애도 없었고 신들린듯 기타를 탈줄 아는 남자애도 없었고 지난 기말시험에서 5등급이나 내리꽂힌 봉이라는 락방자도 없었다. 봉이는 두눈을 감은채로 달리는 뻐스에 몸을 맡겨버렸다. 시교여서 그런지 뻐스는 무시로 들추어댔다. 덜커덩덜커덩할 때마다 하얗게 비여있던 공간속으로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꾸물꾸물 기여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먼저 달려오는 모습이 쿠라고 하는 녀자애였다. (쿠? 그것이 과연 그 애의 진짜 이름일가? 쿠하고 “사랑의 집”하고는 어떤 관계가 있을가?) “배우지망생”이라고 믿고싶던 녀자애의 모습이 “사랑의 집”이라는 파아란 글자와 어울리면서 마음속으로부터 아릿한 기분을 만들어주고있었다. “사망훈련”이라는 말도 무딘 칼끝이 되여 봉이의 사색을 뚜져댔다. 만약 녀자애가 “배우지망생”이 아니라 할 때 “사망훈련”을 떠올릴만치 내심세계가 심각하다면 그 애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있는것일가? 봉이는 탱탱 소리가 나는체 밝은 허울을 걸치고 혼자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무형의 보따리에 눌려 힘겹게 가파로운 오솔길을 걸어가는 녀자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빨리 돌아가라. 너에겐 아직 가출이 어울리지 않거든.) 떠나가면서 남긴 녀자애의 마지막 말이 다시 귀전을 울렸다. 봉이는 지그시 두눈을 감고 자신없이 머리를 저었다. (가출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구? 하다면 나에게 어울리는것은 과연 어떤것일가? 얌전한 애? 공부를 잘하는 애? 엄마 말씀 잘 듣는 애?) 봉이는 잠간 자기가 살아온 16년간의 발자취들을 더듬어보았다. 4살 나던 해인가 한번은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 간적이 있었다. 엄마는 봉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봉이는 엄마가 볼 사이도 없이 저절로 아이스크림봉지를 벗겨버렸다. “엄마~” 봉이가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딴에도 대단한 일을 해낸듯싶어서였다. “우리 봉이 참 용쿠나, 저절로 아이스크림봉지를 다 벗겼네.” 하면서 엄마가 어깨를 다독여주기를 바라서였다. 하지만 아니였다. 엄마는 봉이의 옆에서 뒹구는 아이스크림봉지를 가리키며 말씀했다. “쓰레기를 저렇게 마구 버리면 나쁜 어린이가 됩니다. 빨리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세요.” 어머니의 말씀은 후둑후둑 내리치는 우박처럼 봉이의 여린 마음을 아프게 했다. 봉이는 자기가 던진 아이스크림봉지를 주어서 쓰레기통에 가져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참 무섭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뒤로 봉이는 쭉―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고있었다. 친구들과 싸우면 나쁜 사람이 되고 주은 물건을 호주머니에 넣으면 나쁜 사람이 되고 거짓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어른을 보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고… 봉이는 소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할수가 있었다. 1학년 전학기 한어과 기말시험에서 75점을 맞은 시험지를 받아가지고 학교 대문을 나오던 날, 어머니는 봉이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가다가 길거리를 쓰는 청소공아저씨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봉이야, 너 봤지?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저런 사람이 된단다.” 그후로 봉이는 길을 가다가도 길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피해서 걸었고 걸으면서 (저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사는것일가?)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기도 했다. 그래서 봉이는 죽기내기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공부도 생각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도 소학교에서는 내내 10등 주위를 맴돌았다. 엄마는 내놓고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얼굴에 서운함을 떨치지 못하고있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그래도 5등 주변을 맴돌수 있었다. 엄마는 늦은 골이 튼다면서 1등을 향해 열심히 뛰라고 채찍질을 했다. 하지만 그만치라는 한계가 있는것인지 봉이는 지금껏 최고로 3등을 초과하지 못하고있었다. 봉이는 손만 내밀면 거머쥘것 같은 1등의 월계관이 어쩜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멀리 있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될 때가 많았다. 봉이는 점점 학교가 무서워지고 공부가 무서워지고 시험이라는 그 자체가 무서워졌다. 갈수록 어머니가 무서워지고 아버지가 무서워지고 집이라는 그 자체가 무서워졌다. 어제밤에도 어머니는 하늘이 내려앉기라도한듯 락루를 하셨다. “어쩌니? 어쩌니! 고중시험이 당금인데… 5등급을 뛰여올라도 모르겠는데 되려 떨어지다니. 우리 봉이를 어쩌면 좋니?” 그러잖아도 가슴이 터져버리기 5분 직전에 이른것 같은데 어머니가 붙는 불에 키질을 하니 도무지 감정을 누를수가 없었다. “어쩔가요? 어머니! 내가 와락 죽어버릴가요?” 너무도 반상적인 봉이의 반발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가셨다. 봉이도 자기의 침실에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가놓고 침대에 벌렁 들어누웠다. 온밤 머리가 아홉개 달린 도깨비들에게 쫓기워다니다가 날이 푸름히 밝아오자 어머니와 말도 없이 가방 하나를 달랑 챙겨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던것이다. (과연 어디로 갈가?) 봉이는 어지럽게 사색을 굴리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놓다가 마주 오는 뻐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살펴보니 시교로 나가는 32선공공뻐스였다. 가방을 내리워 무릎앞에 가져오는 순간 봉이는 저도 몰래 서글픈 웃음을 날렸다. 가출을 시도하며 들고 나온 가방안에 교과서며 필기장이며 과외훈련집 같은것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던것이다. 32선종점에서 내린 봉이는 잠간 망설이다가 홍월저수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홍월저수지는 그곳에서 반시간쯤 걸으면 도착할수 있는데 주변에 바위도 있고 나무도 많아서 제법 유원지로 통하고있었다. 빨간 옷을 입은 쿠라는 녀자애를 만난것도 바로 그 홍월저수지에서였다… 뻐스는 심술 많은 아낙네만치나 신경질적으로 삑~ 소리를 내면서 멈춰섰다. 봉이는 차에서 내려 잠간 위치를 둘러보았다. 6선뻐스종점에서 서쪽으로 잠간 가면 비포장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를 따라 다시 20분쯤 올라가면 “사랑의 집”인것으로 짐작되였다. 봉이는 그 도로를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느 예쁜 손이 심어놓았는지 길섶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소담하게 피여있었다. 마음껏 향기를 풍기며 시름없이 흐느적이는 꽃들은 봉이에게도 한가슴 그득 자연의 정취를 불어넣어주고있었다. 봉이는 힘껏 꽃향기를 마시며 큼직큼직 발걸음을 옮겼다. “사랑의 집”이 멀리로 보였다. 봉이는 토닥토닥 가슴이 뛰였다. “사랑의 집” 옆은 남새밭이였다. 파아란 물결이 남새밭을 덮어서 한결 아늑한 느낌을 주고있었다. 한무리의 아이들이 남새밭 중간에서 뭔가를 하느라 분주했다. 봉이는 그곳을 바라고 발걸음을 조였다. 남새밭과 가까운 3층청사 모퉁이에 이르니 남새밭의 정경이 환하게 보였다. 가담가담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재잘거리는 소리까지도 들을수가 있었다. 남새밭에는 고추가 심어져있었다. 애들은 한창 고추를 따느라 즐거워했다. 그들은 자기들 손가락보다도 더 큰 고추를 부지런히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검푸르게 독이 올라있는 고추는 여느 사람들이 보면 저도 몰래 입맛이 확 당겨할것 같았다. 하지만 봉이는 아니였다. 봉이의 어머니께서 자극성이 강한 음식은 대뇌의 발달에 영향이 있다면서 봉이를 못 먹게 한데서 아직까지 봉이는 고추맛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누나, 점심에는 이 고추를 장에 쪄서 먹었으면 좋겠슴다.” 애티나는 남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이는 집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서서 애들쪽에 눈길을 주었다. 까까머리를 한 일여덟살쯤 되여보이는 남자애가 옆에 선 녀인에게 고추를 듬뿍 담은 바구니를 들어보이고있었다. 채갑수건을 목에 걸고 헐렁한 꽃부리적삼을 입은 녀인은 그 시각 봉이와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녀인은 바구니에서 고추를 한줌 움켜쥐더니 연극대사를 치는듯한 과장된 목소리로 서글서글하게 남자애를 칭찬했다. “우리 용길이 참 용쿠나. 고추를 많이도 땄네. 그래 점심에는 주방에 말해서 이 고추를 장에 쪄서 먹자꾸나.” 말을 마친 녀인은 목에서 채갑수건을 내리워 얼굴을 닦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이 봉이를 마주하는 순간 봉이는 깜짝 놀라고말았다. 봉이는 정말 자기의 눈이 의심스러웠다. 꽃부리적삼을 입고 채갑수건을 목에 건 그 녀인은 뜻밖에도 쿠였던것이다. 애들이 좋다고 퐁퐁 뛰며 손벽을 쳤다. “와― 좋아라. 점심엔 고추찜을 먹는다.” “누나, 토장에 찔 때 고추는 작은걸로 하기쇼. 영미는 큰 고추를 매워서 못 먹슴다.” 용길이라고 불리운 그 남자애가 자기옆에 선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녀자애를 가리키며 말했다. 쿠는 용길이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용길이의 옆에서 애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추를 따느라 여념 없는 영미를 훌쩍 안아올렸다. 쿠는 영미의 얼굴을 당겨다가 자기의 얼굴에 몇번 비비더니 채갑수건으로 영미의 코를 닦아주며 말했다. “그래그래, 우리 영미 맵지 않게 제일 맛나는 작은 고추를 골라 쪄달라고 해야지, 응?” 그리자 영미가 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캐득캐득 웃음을 토했다. “야― 신난다. 그럼 점심엔 밥을 많이많이 먹어야지―” 영미의 목소리는 그처럼 신나고 맑아보였다. 어쩜 영미는 쿠라고 하는 저 녀자애를 엄마로 착각하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봉이의 뇌리를 치고 들어왔다. (옳구나, 쿠는 정말 고아원에 사는구나. 아니면 저렇게도 스스럼없이 아이들과 한가족이 될수가 없는거야!) 봉이의 눈앞에 바위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빨간 그림이 또 한번 스쳐지났다. 봉이는 가방앞 호주머니에 넣었던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사랑의 집”이라는 네 글자가 네개의 예리한 칼끝이 되여 자기의 가슴을 저며내는듯 괴로왔다. (어쩜, 어쩜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수가 있을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것이든, 아니면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것이든 얼굴에 연출되는 그 행복한 표정만은 거짓이라고 할수 없겠지?) 봉이는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녀자애에 비하면 자기는 어쩜 고민을 하는 그 자체가 행복한 투정이라고 생각되였다. 봉이는 손수건을 움켜 가슴에 가져다댔다.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아릿한 그 무엇이 꾸역꾸역 올리밀어 봉이의 가슴을 괴롭히고있었다. 봉이는 녀자애를 만나서 상처받은 그 애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싶었지만 또 선뜻 나설수도 없었다. 그처럼 도고하던 녀자애가 이 장면에서 꽃부리적삼을 입고 채갑수건을 목에 건채 자기를 만난다면 얼마나 난처해할가 하는 생각으로 저으기 주저심이 들었던것이다. (그래, 지금은 이대로 돌아가는거야. 뭔가를 준비해가지고 다시 와서 조용히 만나는거야…) 봉이는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천천히 몸을 돌려 오던 길을 재촉했다. 봉이가 녀자애를 다시 찾은것은 이튿날오전 아홉시쯤이였다. 봉이가 수발실 창문을 두드리자 50대의 구레나룻을 한 아저씨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아저씨.” 봉이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래, 웬 일이냐?” “아저씨, 쿠를 찾아왔거든요.” “뭐라구? 누구를 찾아왔다구?” 아저씨가 턱을 약간 쳐들며 다시 물었다. “쿠, 쿠…쿠를 찾아왔다구요.” 급하니 말머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모르겠다는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젓다가 혼자말 비슷이 웅얼거렸다. “쿠쿠라고 했나?” 아저씨가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이며 봉이에게 물었다. “왜 여기 와서 쿠쿠를 찾는데?” “꼭 볼일이 있어서요. 여기 있죠?” “있긴 있다만… 허, 참! 너 어디서 온다 했지?” “시3중에서 공부하거든요. 쿠가 지금 어디 있어요?” “주방에 있겠지, 그래 저 왼쪽켠에 앉은 집, 주방으로 가봐라.” 아저씨의 말에 봉이는 기뻐하며 인사를 올린후 주방쪽으로 걸어갔다. (쿠를 만나게 된다. 그 애를 다시 만나게 된다.) 봉이의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워졌다. (그래, 조용히 불러 단둘이 만나는거야, 그리구 먼저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말을 거는거야, “받아, 너의 손수건이다.” 그럼 그 앤 어떤 표정을 지을가?) 봉이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저었다. (아니지. 그렇게 했다가 그 애가 괜히 모르쇠를 놓으면 어떻게 할가? 그럼 아예 “아야! 너 어떻게 여기 있니?” 하고 깜짝 놀라서 죽는 시늉을 해보여?) 두눈이 튀여나올듯 깜짝 놀라는 그 녀자애를 보는것이 그렇게도 재미있을것 같았다. 봉이는 시무룩이 웃으며 오른손으로 가방을 꾹 눌러보았다. 손가락끝으로 손수건이 맞혀왔다. 그리고 그옆에 있는 책 같은것도 느껴졌다. 그것은 빨간 하트가 찍혀진 다이어리였다. 그 다이어리 갈피에는 자기가 평소 모아두었던 소비돈 3백원이 들어있었다.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려면 꼭 소비돈을 넉넉히 쓸수 없으리라 생각되였던것이다. 녀자애가 받지 않으려고 하면 “사랑의 집”에 드리는 자기의 성의일뿐이라고 둘러댈 생각이였다. 주방문은 열려져있었다. 봉이는 주먹으로 열려져있는 주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50대가 푼히 됨직해보이는 아주머니가 물고기를 손질하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누구를 찾니?” “안녕하세요? 아줌마, 쿠를 찾아왔어요.” “누구를 찾는다구?” 아주머니의 눈길이 빨리 돌아갔다. 봉이는 아주머니의 거동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기요. 쿠, 쿠를 찾는다구요.” 봉이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애두 웃긴다야, 여기 와서 쿠쿠를 찾아선 뭘 하려구. 호호호호…그래 있긴 있지. 저게 아니냐?” 아주머니가 빨간 지시등이 보이는 전기밥솥을 가리켰다. “허!” 봉이는 너무도 허무해서 입을 떡 벌리고 선채 킬킬 웃음을 흘리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롱담이 아닌데요, 아주머니. 정말인데요. 쿠라고 하는 녀자애를…” “나도 롱담이야 아니지. 여긴 쿠쿠라는게 저 밥솥밖에 없어. 사람이름이 쿠쿠라구 호호호호…” 아주머니가 또다시 배꼽을 쥐고 돌아갔다. “정말 그런 애가 없어요?” 봉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없다니까. 그렇게 못 믿겠으면 저기, 숙소에 가봐라. 그곳 복도에다가 우리 원생들의 사진을 쭉 붙여놨으니까 혹시 낯익은 얼굴이 있는가 보거라.” 아주머니는 물고기를 손질하던 손을 그대로 들어 북쪽으로 앉은 빨간 벽돌집을 가리켰다. 손에서 걸직하고 뿌연 물이 뚝뚝 떨어져 진한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있었다. 봉이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올린후 비린내만치나 찜찜해나는 마음을 걷어가지고 숙소를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아니나다를가 숙소 복도 벽에 걸린 액틀에는 원생들의 사진이 줄느런히 걸려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20명은 될것 같았다. 봉이는 쏘는듯한 눈길로 사진들을 훑었다. 없었다. 그렇게 애타게 찾는 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봉이는 아쉽고 서운한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어디로 갔을가? 그래 정말 이곳에 있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제 애들과 함께 고추를 따던 모습은 어떻게 된것일가?)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듯했다. 봉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어쩔가? 방마다 돌아라도 볼가? 혹시 쿠가 제 이름이 아닐수도 있으니까, 아니야, 이름이 아니라도 얼굴이야 뛸수 없겠지. 분명 쿠의 얼굴은 사진에서 볼수가 없는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쿠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데…) 봉이는 쿠가 어제 함께 고추를 따던 애들이라도 만나 사연을 묻고싶어서 다시 아주머니를 찾아가 애들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었다. 하지만 일이 안되려고 그러는지 원생들은 집체로 박물관 참관을 갔다는것이다. “분명 봤는데요. 어제 쿠가 애들과 함께 고추를 따는것을.” “그럼 누굴가? 이곳엔 평소 다니는 사람들이 많단다. 어제는 내가 직일이 아니라서 누가 왔댔는지 모르지…” 아주머니가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참, 정말 다시 그 애를 못 보는걸가?) 봉이는 말 못할 아쉬움을 남기며 공공뻐스 간이역을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간이역 서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람들속에서 건들어진 통기타소리와 함께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굽이 또 굽이 깊은 산중에 / 시원한 바람 나를 반기네 하늘을 보며 노래 부르세 /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 부르세…” 어제 보았던 남자애가 오늘도 그곳에서 신들린듯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봉이는 사람들 틈에 머리를 들이밀고 그 남자애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와~”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랑만으로 가득찬 푸름의 계절에 자식들의 손을 잡고 려행 한번 다녀오시는것은 어떨가요? 이 시각도 공부에 지쳐 힘들어하는 자식들이 있다는것을 잊지 마십시오.” 남자애가 열띤 목소리로 침을 튕기고있었다. 봉이는 (넋을 놓고 저 애의 설교를 듣는 어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 시각 봉이는 웬지 자기보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있는 그 남자애를 보는것이 괜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돌아섰다. 열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멀거니 뻐스를 기다리자니 어딘가 멋적은 생각이 들었다. 봉이는 역에 있는 간이서점으로 다가갔다. 금방 나온 신문이며 잡지 같은것들이 유리창문에 달라붙어 길손들을 부르고있었다. 봉이는 성의없이 유리창 너머로 보여오는 잡지의 표지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중학생》이라는 잡지가 눈에 띄였다. 1학년때 주문하여 보던 조선글로 된 잡지였다. 심심풀이삼아 한책 사서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신호로 한책을 골라들었다. 봉이는 먼지가 뿌연 간이걸상을 종이로 대충 닦고 앉아서 책장을 번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하던대로 학교소개며 공부방법소개며 학생작문이며가 책갈피를 메워가고있었다. 뒤표지 안쪽에 실려있는 “사색”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봉이의 시선을 끌었다. 백양나무에 매달린 노오란 잎새 하나를 찍은 사진이였다. 봉이는 인차 작자의 이름에 눈길을 가져갔다. “아!” 봉이는 깜짝 놀라며 짤막하게 소리를 냈다. 분명 쿠라고 찍혀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사범학교 06년급 고사반이라고 밝혀져있었다. 봉이는 후둑후둑 가슴이 떨려났다. (혹시 이 애가, 이 애가 아닐가? 쿠! 옳을거야, 이같이 괴상한 이름이 그렇게 흔할수가 없어! 그렇다면 이 애가, 이 애가 사범학교 학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접때 “사랑의 집”에서 애들과 함께 고추를 따던 그 모습은 무엇일가? 혹시 “사랑의 집”에서 살다가 사범학교에 붙었을가? 그래서 휴일을 리용하여 그곳에 들린것일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치자 봉이는 가슴속 밑자락에서 일종의 련민이 아릿하게 솟아오르는것을 발견했다. (그래 사범학교, 그곳에 가서 쿠를 찾아보는거야!) 봉이는 큰 결심이나 내린듯 사범학교방향으로 가는 29선뻐스에 몸을 실었다. 29선뻐스가 사범학교 정거장에서 도착한것은 10시 반을 금방 넘겨서였다. 봉이는 당금 쿠를 볼수 있을것 같은 예감에 가슴을 들먹였다. 봉이는 조용히 가방앞주머니를 눌러보았다. 네모난것이 약간 손끝에 맞혀왔다. 봉이는 주머니의 쪼로로기를 열고 그 네모난것을 꺼내들었다. 어제 홍월저수지에서 주은 빨간 꽃이 있는 손수건이였다. 봉이는 손수건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가방앞주머니에 넣고는 사범학교 정문쪽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금방 큰길을 넘어 인행도에 올라섰을 때 사범학교 정문 북쪽으로부터 한 사나이가 쏜살같이 뛰여오고있었다. 모양이 마치도 드라마에서 경찰에게 쫓기우는 좀도적을 방불케 했다. 봉이는 달려오는 그 사나이를 눈여겨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정문 북쪽의 굽인돌이에서 경찰복장을 입은 사나이 둘이 뛰여나오며 소리소리 웨쳐댔다. “서라,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 봉이도 길가던 길손들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선자리에 굳어졌다. 쫓기우던 남자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죽기내기로 뛰기 시작했다. “범죄자구나!” 봉이는 금방 무슨 판국인지를 알것 같았다. (싱겁게 남의 일에 나서지 말고 몸을 돌봐야 한다. 사고라도 나면 고중시험에 영향이 있으니까.) 늘 이렇게 당부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일이 생기는것이 안 생기는것보다 못하다는것이 어머니의 생활신조였던것이다. “서라, 서라!” 경찰들이 계속 소리치며 남자를 쫓아왔다. 쫓기는 남자가 사범학교정문을 지나는 순간이였다. 문안에서 한 녀자애가 뛰여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쫓기우는 남자에게 안걸이를 걸었다. 쫓기던 남자가 보기 좋게 한쪽으로 나가 넘어졌다. 녀자애는 잽싸게 쫓기던 남자를 가로타고 앉아 남자의 얼굴에 강타를 먹였다. 구경을 하던 길손들이 그쪽으로 뛰여갔다. 쫓아오던 경찰들도 도착하여 쫓기던 남자를 붙잡아 수갑을 철컥 채워버렸다. 몰려간 길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봉이도 박수를 치며 그 녀자애에게 눈길을 주었다. 녀자애는 두손을 마주 쥐고 서서 손가락을 꺾으며 히쭉이 웃어보였다. 봉이는 너무도 뜻밖의 풍경에 그만 입을 떡 벌리고말았다. 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있는 그 녀자애는 뜻밖에도 쿠였다. 경찰들이 범죄자를 앞세우고 떠났다. 쿠도 파아란 가방을 고쳐 메고는 몸을 돌렸다. 어디론가 떠나는 행장 같았다. “쿠야,” 봉이가 녀자애쪽으로 뛰여가며 소리쳤다. 녀자애가 걸음을 멈추고 봉이쪽에 머리를 돌렸다. “쿠야, 정말 대단해!” 봉이가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진심으로 말했다. “너, 뢰봉?!” 녀자애가 깜짝 놀라는듯싶더니 봉이를 보고 히쭉 웃었다. 봉이도 녀자애를 향하여 웃음을 날렸다. “네가 진짜 뢰봉이지. 방금 참 멋졌어.” “그래?” “방금 다 보았거든. 어쩜 그렇게 잽싸고 용감할수 있었니?” “그래? 내가 잽싸보였어?” “그렇지. 잽싸보였지.” “와— 속이 다 시원하다. 난 한번 나의 태권도솜씨를 써먹어보려구 기회를 찾던중이였는데.” 녀자애의 얼굴이 악동처럼 번져갔다. “너, 태권도를 배웠니?” 봉이가 호기심이 동해서 녀자애에게 물었다. “그럼, 난 이미 1단을 꺾었거든. 2단도 꺾으려고 생각하다가 녀자애가 뭘 이쯤하면 되지싶어서 잠간 손을 놓고있는중이야.” “와— 어디까지가 너의 진면모냐?” “진면모?” 녀자애가 무슨 말이냐는듯 야릇한 눈길로 봉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의 진짜모습! 넌 사진도 찍잖아?” “사진? 너, 걸 어떻게 아는데?” 녀자애의 눈길이 다시 의문으로 반짝였다. “알지, 봐라.” 봉이가 가방앞주머니에서 잡지를 꺼내여 녀자애앞에 흔들었다. 녀자애가 금시 얼굴에 밝은 웃음을 피워물었다. “너, 그 잡지를 봤구나. 지난가을에 찍은 사진이야, 가을의 외로움을 말하려고 했는데, 맘에는 안 들어. 어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본딴것 같은 느낌이 들기두 하구.” “바로 그 장면을 재연한것이잖아. 난 그래도 좋은데. 희망을 보는것 같아서…” 그들은 말하는 새에 간이역까지 왔다. 둘은 란간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섰다. “봉이야, 근데 너 어디로 가는 길이였니?” 녀자애가 그제야 생각이 난다는듯 이상한 눈길로 봉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에 봉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녀자애를 쳐다보다가 가방앞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녀자애에게 돌려줄 손수건이며 특별히 녀자애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한 다이어리며가 손끝에 만져졌다. 다이어리 갈피에 끼워져있을 소비돈도 머리속에 떠올랐다. 봉이는 잠간 망설이다가 네모나게 개인 손수건만 꺼내 조심스럽게 녀자애앞으로 내밀면서 떠듬거렸다. “사실은 너에게 이것을 전해주려고…” 손수건을 본 녀자애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머, 이게 내 손수건이 아니냐? 어떻게 이게 너한테 있니? 난 아예 잃어버린줄 알았는데.” “어제…” “홍월저수지에서? 그랬구나. 그래서 없은게로구나.” “그래, 네가 떠난후 집으로 가다가 길에서 주었어. 어제 네가 이것으로 얼굴을 닦던 생각이 나서 네것이라고 생각했지.” 봉이는 여기서 말을 끊고 녀자애의 얼굴을 살폈다. 녀자애의 눈길이 봉이를 향해 반짝이고있었다. “너, 내가 여기 있는것을 어떻게 알았니?” “여기서…” 봉이가 녀자애에게 잡지를 내밀었다. “아, 그래. 여기에 나의 주소가 찍혀있지.” “근데 여기 ‘사랑의 집’이라는건 뭐야?” 봉이가 손수건을 내밀며 녀자애의 기색을 살폈다. “사랑의 집”이라는 말이 녀자애의 마음속 상처를 건드릴가 두려워서였다. 녀자애가 방긋 웃었다. “왜, 궁금해?” “아니, 그냥 조금, 어제 네가 ‘사랑의 집’에서 애들과 함께 고추를 따는걸 봤거든. 부르려다가 그만 돌아섰댔어…” “왜?” “네가 거기 있는걸 나에게 보여주고싶지 않아할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했지? 오― 넌 내가 고아인줄 아는구나. 그치?” 봉이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녀자애가 까르르 웃었다. “넌 참 재밌는 애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아니야? 그럼?” “난 그곳의 자원봉사자야. 한달에 두번씩 토요일에 가거든. 어제가 바로 ‘사랑의 집’에 가는 날이였어. 그래서 어제 홍월저수지에 사진 찍으러 갔다가 돌아오던 맵시로 그곳에 들렸던거야. 너 진짜 나를 찾아 그곳까지 갔었니?” 녀자애는 다시한번 봉이에게 물었다. 봉이는 녀자애를 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려봉이, 난 정말 너의 자상함에 손을 들었다니까. 어쩜 이 손수건때문에 그곳까지 날 찾으러 갈 생각을 다 했니?” 녀자애는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듯 봉이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냥…” 봉이는 녀자애의 얼굴을 피해 머리를 숙였다. 잠간 발끝으로 땅을 뚜지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진짜 정체가 뭐니?” “정체라니?” “난 네가 정말 미스터리처럼 생각된다.” “웃긴다. 너 참! 봉이야, 너, 나를 몰라서 그래. 나처럼 세상앞에 다 들어나있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다구.” 녀자애는 보라는듯 봉이앞에 두팔을 쫙 펴보였다. 하지만 봉이는 녀자애를 향하여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아직도 못 믿겠다구?” “그럼.” “말해봐, 뭔데?” “우선 너의 그 ‘사망훈련’이라는것이…” 봉이가 녀자애를 바라보며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왜? 믿기지 않아? 물론이겠지. 문제는 네가 모든 일을 그렇게 정식으로 심각하게 생각하는거야. 왜 그래? 그냥 개구쟁이녀자애의 렵기적인 행동쯤으로 생각하면 안돼? 그 시각 난 뽀얀 운무속에서 빠끔히 머리를 내미는 물속에 풍덩 빠져보고싶은 충동이 생겼거든. ㅋㅋㅋ… 글구 내가 물에서 허우적거리면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가도 궁금했구. 사실 어제 네가 머리를 숙이고있을 때 내가 너의 옆으로 지나갔던거야. 사실 난 너의 정체가 더 궁금했거든.” 녀자애는 구수한 옛말이라도 엮어가는듯싶었다.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면서 봉이는 외계인을 보고있는듯한 기분이였다. (뭐? 내가 궁금했다구? 큰일이 났다고 내가 놀라서 허둥댈 때 나의 행동을 깨고소하게 살펴보고있었다구?) 봉이는 마치도 전라의 몸으로 네거리에 나선 기분이 들었다.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뭔가 욱하고 머리를 쳐들었다. 봉이는 반상적으로 소리쳤다. “글구 너, 그 이름은 뭐야!” “이름이 왜?” 녀자애도 봉이 못지 않게 도전적으로 물었다. “이름이 왜, 왜 쿤가 말이다.” “멋지잖아? 필명이야, 쿠! 넌 쿠를 어떻게 생각해?” “쿠쿠가 생각되거든.” “밥솥?” “그럼. 나뿐이 아니야.” 봉이는 아까 “사랑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너뿐이 아니라구?” 녀자애가 바투 들이댔다. 그 바람에 봉이가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야. 괜히 해본 소리거든.” 봉이는 녀자애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약간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무슨 뜻이야? 쿠라는게.” 녀자애의 얼굴에 가는 웃음발이 스쳐지났다.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듯했다. “없어! 아무 뜻도. 너 생각해봐! 한어에서 쿠라면 무슨 뜻이 되니?” “잔혹하다고 해석되는가?” 봉이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다음은?” “극도로? 깊게?” “그렇지 뭐. 깊게, 찐하게, 대개 그런 뜻이야. 간단해!” “간단해?!” 봉이는 또 한번 혀를 빼물었다. 이렇게 “간단한것”을 두고 어제밤에 무척이나 심각하게 생각을 했던 자신이 못내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럼 너 진짜 이름은 무엇인데?” 봉이가 끝을 보고야말겠다는듯 바투 들이댔다. “무척 알고싶어?” “그냥 궁금해서.” 녀자애의 얼굴에는 여전히 만만한 여유가 내비치고있었다. 봉이는 멋적은듯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녀자애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알려주지 뭐. 내 진짜 이름은 김순녀야, 김순녀! 어때? 나하구는 잘 안 어울리지? 그래서 그냥 부르기 좋게 쿠라고 필명을 단거야. 사는게 그런거지 뭐. 쿨하게… 재밌잖아!” 세상을 손안에 넣은듯 당당하게 말하는 녀자애의 모습이 말 그대로 쿨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이런 애라면 정말 “사망훈련”도 할법하다고 생각되였다. “난 오늘 등산을 가는 길이야. 마반산이라구 알지? 기차 타구 도문으로 가는 길옆에… 산이 보통이 아니래. 오를 맛이 난다는거야. 한번 가보고싶잖아?” 녀자애가 봉이를 바라보며 말하다가 인차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아니지. 넌 공부를 해야 하니까. 궁금증이 풀렸으면 인젠 집에 돌아가거라. 나 떠나야 하거든.” “아니, 함께 가자.” 봉이가 벌떡 일어섰다. “아니, 그럴거 없어. 넌 나하구 한길이 아니거든.” “뭐? 한길이 아니라구?” 봉이가 도전적인 눈길로 녀자애를 찍어보며 물었다. “그래, 난 진작 보아냈어. 넌 지금 잠간 방황을 하고있을뿐이야. 지난 기말시험에서 5등급이나 떨어졌다면서, 너의 새로운 목표는 그 5등급을 따라잡는거야. 그게 너의 진정한 기쁨이고 부모님들의 기대일거야.” “그게 너무 힘들어, 난.” 봉이는 어느새 녀자애를 향해 진심을 토로하고있었다. 봉이의 진심을 읽으며 녀자애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네가 방황하고있는걸! 중점고중, 그것은 마치도 좁디좁은 외나무다리 같은거야. 천군만마가 그 다리를 지나서 어디론가 가려고 헤덤벼치니까. 마치도 다리 저켠에 노아의 방주가 있는것처럼 말이야! 갈수만 있다면 다리 저켠으로 가보는것도 참 좋은 일이지.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될수 없다는거야!” 녀자애는 흥분했는지 제법 손사래까지 해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나도 한때는 너 같은 고민을 하고 방황을 했었어. 부모님하구 엄청 싸우기도 했지.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알고있었거든. 난 분명 아니였던거야, 나의 흥취는 애들을 고와하는것, 나의 꿈은 마음껏 사진을 찍는것,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보는것이였어. 교원이라면 꼭 훌륭한 교원이 될 자신이 있었거든. 그래서 부모들을 설복하여 사범학교에 온거야. 첨에 부모들은 나의 선택을 동의하지 않았어. 돈을 내고라도 중점고중에 붙여준다는거야. 부모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거든. 평범한 출근족으로서 자식 뒤바라지를 하기가 어디 쉬운거니? 난 그런데 돈을 쓰고싶지 않았어. 내 인생의 목표대로 하고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쿨하게 살고싶었단 말이야!” 녀자애는 말을 마치고 어깨를 으쓱하며 봉이를 바라보았다. 봉이는 쿠라고 부르는 남다른녀자애- 김순녀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이때 역전으로 가는 30선공공뻐스가 들어섰다. 녀자애가 사뿐 일어서며 가방을 주어들었다. “봉이야, 믿는다. 아자!” 녀자애는 손가락 다섯개를 쫙 펴보이며 봉이에게 웃음을 날리고는 어느새 뻐스에 뛰여올랐다. 봉이는 그때까지도 멍하니 선자리에 서서 부르릉 소리를 내며 떠나가는 30선뻐스를 바라보았다. 녀자애는 차창 너머로 봉이를 향해 손을 저었다. 봉이도 녀자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뻐스와 함께 멀어져가는 녀자애의 빨간 옷이 한점의 뜨거운 태양으로 되여 봉이의 가슴속 구석구석에 서려있던 뽀얀 운무를 걷어가는듯싶었다. 봉이는 으스러지게 주먹을 틀어쥐였다. 그랬다. 운무의 저쪽은 파아란, 빠알간, 노오란 칼라가 살아 숨쉬는 황홀한 채색의 세계였다.    
346    빨간것 댓글:  조회:1000  추천:0  2012-04-24
      기차는 숨막히는 어둠을 삼키며 기승스럽게 질주하고있다. 분명 갈길이 정해져있는 기차여서 자기가 목적한바를 향해 달리고있을것이지만 그속에 몸을 담근 응이는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를 바라고 달리고있는지가 묘연하기만 하다.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리자.) 서정시의 한 단락 같은 아이디어 하나를 가슴에 담아들고 가방 하나를 어깨에 달랑 걸친채 무작정 떠난 길이여서 응이로서는 더욱 막연한지도 몰랐다. (선택을 잘한거야, 나의 이 선택이 아버지를 행복하게 할수만 있다면 나도 행복한거야.) 응이는 애써 서글퍼지려는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그게 달랜다고 해서 달래지는것이 아닌것 같았다… “헉헉…” 그때 아빠는 거칠게 숨을 톺고있었다. “헉헉…” 숨소리가 거칠어갈수록 빨간것은 세상 무서운줄을 모르고 크게크게 부풀어졌다. 한뽐도 안되던 그 빨간것이 아빠의 입김을 받아먹고 한순간에 배뚱뚱이로 되여가는것을 신비한듯 바라보면서 응이는 짝짝 손벽을 치고 토끼뜀을 하면서 가무스름한 얼굴에 맑은 웃음발을 피워올렸다. “커진다, 커져. 하늘처럼 커진다. 잘한다, 울 아빠. 하늘처럼 잘한다.” 호들갑에 가까운 응이의 재롱이 아빠의 신경을 건드렸던지 아빠는 연신 황소숨을 내뿜으며 응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빠의 얼굴은 그 빨간것처럼 뻘겋게 부풀어올랐고 눈알은 당금 튀여나올듯 충혈되여갔다. “아빠!” 응이는 갑자기 새된 소리를 질렀다. 당금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머리를 쳤던것이다. 그 소리에 아빠는 흠칫하면서 두눈을 더 크게 치뜨며 모두숨을 내뿜었다. “팡!” 소리와 함께 빨간것은 산산쪼각이 나며 사방으로 뿌리워져나갔다. 응이는 파편처럼 흩어지는 빨간 쪼박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받쳐주던 하늘이 와그르르 무너지는듯한 아픔을 느끼며 단말마적으로 “아빠~”하고 실망을 터쳐올렸다. 그 서슬에 응이는 번쩍 눈을 떴다. 카텐을 뚫고 뿌우연 쪼각달이 심드렁하니 얼굴을 들이밀고있었다. (꿈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났다. 응이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몹시도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몸은 왼쪽으로 누워져있었는데 왼쪽 겨드랑이에 끼워진 오른손이 신통하게도 심장을 누르고있었다. 몸에 깔린 왼쪽팔이 저렸다. 응이는 몸을 추스려서 천정을 쳐다보게 한 다음 오른손으로 저려나는 왼팔을 잠간 주무르다가 몸 그대로를 큰대자로 만들어버렸다. 늦가을의 누런 잔디밭에 누워있는듯한 환영이 머리속을 치고 들었다.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이 참 높다고 생각되였다. 높은 하늘에서 빨간것이 바람에 날려오고있었다. 파아란 하늘에서 한점의 붉은 점은 웬지 그렇게 처량하게 느껴졌다. 응이는 잠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파아란 하늘의 빨간 점 하나. 기억의 저편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기여나오고있었다. 응이가 여덟살 나던 해였다. 초롱초롱한 두눈에 눈물 마를 새 없던 그해 가을 내내 기별도 없이 꿈에 나타나서 응이의 새우잠을 설쳐놓던 빨간 점이였다. 꿈을 꾸고 깨여나면 그렇게 외롭고 무서울수가 없었다. 응이는 어미닭의 품을 파고드는 햇병아리마냥 아빠의 몸에 자신을 밀착시키군 했다. 벌써 길들여졌을법도 한 냄새지만 여전히 길들여지기 힘든 매캐한 톱밥냄새가 응이의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 냄새도 꿈을 꾸고난후의 외로움이나 무서움하고는 비길바가 못되였다. 악착스럽게 아빠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틀어박을라 치면 날 잡아갑수 하고 드릉드릉 코를 골아대던 아빠도 어느새 잠을 설치고 꺼슬꺼슬한 손바닥으로 응이의 배를 천천히 만져주면서 잠기 어린 목소리로 “오줌이 마려워?”하고 물으셨다. “아니.” “그럼 자야지. 랠 또 학교에 가야 하니까.” 말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아빠는 또 드릉드릉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응이는 그러는 아빠가 참 밉다고 생각되였다. (난 무서운데. 꼭 껴안아줄거지. 엄마라면 나를 꼭 껴안고 머리를 쓸어주면서 “자장자장— 내 아들아.” 하고 자장가를 불러줄텐데.) 그런 생각이 들라치면 또 엄마가 떠나가던 날 공항의 하늘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펼쳐지군 했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나던 그날도 하늘이 파아란 늦가을의 어느날이였다. 공항 휴계실의 차디찬 대리석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범 나와라 곰 나와라 하고 발버둥질을 치며 엄마를 가지 말라고 생사결단을 하다가 아버지의 거쿨진 손에 질질 끌려 밖으로 나와서였다. 아빠는 택시를 부르느라고 허둥거리고있었고 고모는 그때까지도 두발을 동동 구르는 응이를 어찌할지 몰라 “그만해라, 그만해라~”를 련발하고있었다. 그때 무서운 굉음이 울려왔다. 따라서 고모가 소리쳤다. “응이야, 봐라. 네가 이렇게 울어대니 엄마가 끝내 하늘로 오르는게 아니냐? 봐라, 저 봐! 엄마가 하늘로 오른다.” 고모의 잔사설에 놀라 응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머리를 쳐들어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고 생각되였다. 높고 푸른 하늘로 은색의 비행기가 앞을 가르며 치솟고있었다. 비행기의 옆구리에 붙은 뭐라고 씌여진 빨간색 타원형포스터가 한눈에 안겨들었다. 웬 일인지 비행기의 거대한 몸뚱이보다도 타원형의 그 빨간 포스터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고무풍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저게 터지면 어떡해? 고모…” 응이가 울음을 그치고 멀어져가는 빠알간 포스터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얘는, 불길하게 웬 소리냐? 비행기가 왜 터져?” 고모가 못마땅하다는듯이 응이를 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응이는 응이대로 하늘 어디에선가 그 빨간것이 “팡!” 하고 터져버릴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로부터 응이는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가끔 그 빨간것을 떠올렸고 그러는 밤이면 또 하늘로 떠다니는 그 빨간것을 꿈에 보군 했었다. 꿈에 그 빨간것은 언제나 하늘 어디에선가 “팡!” 하고 터져버렸고 응이는 그 소리에 놀라 잠을 깨군 했다. 그때마다 응이는 외롭고 무서워서 아빠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들이밀군 했다. “자야지? 랠 또 학교에 가야 하니까.” 응이를 어르는 아빠의 대사는 목수라는 변하지 않는 아빠의 직업만치나 변함이 없었다. 터져버리는 빨간것에 놀라 잠을 설치고난후 외로움에 떨고 무서움에 떨며 긴가민가 풋잠이 들면 응이는 또 호랑이에게 쫓기우고 사자에게 먹히우며 힘든 밤을 치러야 했다. 그러다가 일어나면 아빠는 아빠대로 부엌에서 아침준비를 하고계셨다. 아침이라 해야 대개는 전날 저녁에 먹던 국이나 반찬물에 밥을 말아서 한공기씩 비우면 그만이였다. “가자, 학교에 가야지.” 아빠는 매캐한 톱밥냄새가 코를 찌르는 작업복을 툭툭 털어서 몸에 걸치며 응이를 불렀다. 응이는 그 톱밥냄새를 맡으며 심드렁하니 아버지의 뒤를 따르군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어느때부터인지 그 빨간것은 응이의 머리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응이도 다시는 밤에 가위 눌려 잠을 설치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응이는 어느새 아빠와 다른 침실을 쓰는 열여덟살의 소년으로 자라났고 아빠도 어느때부터인지 “자라, 랠 학교에 가야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으셨다. 그랬다. 응이는 어느새 고중 1학년생이 되여있었던것이다. 오후 세번째 시간은 작문시간이였다. 명제작문이 주어졌다. 제목은 “시간의 힘”이였다. “시간의 힘은 위대한것입니다. 좀만 노력하면 우리는 곳곳에서 시간의 힘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나에게서 시간은 어떤 위대함을 과시했는지? 살며시 두눈을 감으시오. 툭툭!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위대한 시간의 발걸음소리가 가느다란 초침의 등에 실려 나에게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수업시간이면 곧잘 이렇게 격정을 토로하군 해서 “김격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번대머리 김선생님이 또 가슴을 치며 시간의 위대함을 호소했다. 응이는 선생님의 호소에 최면에라도 걸린듯 어디론가 빨려들고있었다. 그 시각 응이는 머리속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아빠의 얼굴이 아니라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고있었다. 너무나 익숙한듯하면서도 피뜩 떠오르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이여서 몹시 괴로왔다. (아버지에게서 “시간의 힘”이란 과연 어떤것일가?) 하는 생각이 내내 응이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하학하여 집에 오니 아버지가 먼저 퇴근해있었다. “응이야, 소배필을 끓인다. 옷 갈아입구 빨랑 와라. 소탕에 시원히 밥 말아먹자.” 신을 벗는 응이를 보고 아버지께서 싱글벙글했다. “네.” 응이는 외마디대답을 하면서 아버지를 눈여겨보았다. 아버지는 그때 뽀얀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는 큰 남비곁에 서서 파를 송송 썰고있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간 10년 내내 보아오던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수 없는 풍경이였다. 응이는 인차 옷을 갈아입고 나와 밥상앞에 앉았다. “국물이 뽀오얀게 기름이 동동 뜨는걸 봐라. 제법 밥맛이 당길것 같구나.” 아버지께서 응이의 앞으로 소금통을 밀어놓으며 말씀했다. “네.” 응이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가루소금을 한숟가락 푹 떠서 국에 넣었다. “얘, 무슨 소금을 그렇게 많이 넣어?” 아버지가 된겁하여 소리쳤다.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국물을 먹어보니 짜기는 짰다. 하지만 응이는 밥을 말아놓으니 그런대로 먹을수 있을것 같아 술목이 부러지게 밥을 입에 떠넣었다. 그러면서도 머리속에서는 하냥 “시간의 힘”이 맴돌이쳤다. 응이는 밥술을 뜨면서 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어릴 때 참 멋지다고 생각되던 아버지의 쌍까풀눈이 피곤한듯 우멍하게 꺼져있었고 눈확에 얼기설기 주름이 실려있었다. (아버지도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이였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니?” 응이의 반상적인 행동을 보아냈던지 아버지께서 쑥스러운듯 괜히 귀밑머리를 쓸어보며 바스음을 토했다. “아니요.” 응이는 머리를 돌리며 밥술을 입에 밀어 넣었다. 웬 일인지 목이 꺽 메여왔다. 딸꾹질이 잇달았다. “물을 넘겨라, 천천히 먹지 그러니…”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씀을 하시며 물고뿌를 들어 응이의 앞에 내밀었다. 응이는 물고뿌를 받아 꿀떡꿀떡 몇모금 마셨다. “내려갔니?” “네.” “올해는 작년보다 김장배추를 일찌기 사야겠다. 작년에 늦었더니 괜히 비싸기만 하더구나.” “네.” “조선사람은 그래두 김치를 먹어야 하는거야. 김치힘이라는게 있거든. 허허허허… 로씨야마우재들이 빠다힘을 쓰는것처럼 말이다.” “네.” 응이는 외마디대답을 하면서 다시한번 아버지를 훔쳐보았다. 아버지도 그 순간 응이를 바라보고있었다. 응이가 입가에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아버지, 흰머리가 많이 났습니다.” “어, 흰머리? 그래 나이가 얼만데. 휴~ 오십도 넘었구나. 응이야, 올해 내 나이 쉰 몇이던가? 허허허허…” 아버지는 애써 목소리를 맑게 내려고 소리를 한 옥타브 높이고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되려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아버지.” “그래, 쉰둘이지. 허허허허… 너를 서른 네살에 낳았으니까. 그때 너의 엄마가 서른두살이였나? 집체호에서 제일 막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와 자리를 잡느라구 고생을 하다나니 좋은 세월이 싹 흘러버린것이였어.” “아버지도 집체호에 갔댔어요?” 응이가 밥술을 뜨다말고 뜻밖이라는듯 물었다. “그럼, 갔댔지.” “처음 듣는데요. 왜 그런 말씀을 일찍 안했어요?” “그래? 허허허허… 살려구 버둥거리다나니 그런 말을 할 새가 없었나보다. 집체호로 가던 해가 열여덟살이였으니, 그게 74년도던가? 참, 그러고보니 지금 너하구 같은 나이였네.” 아버지는 일어나 응이의 앞에 놓인 수저와 빈 밥사발을 주어들고 몸을 돌려 수도앞으로 다가가며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열여덟살은 어떠했을가? 문뜩 그것이 알고싶었다. 하지만 응이는 이미 아버지와 너무 많은 말을 한듯싶어서 궁금증을 속으로 누르며 침실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열여덟살은 어떠했을가? 그 생각이 집요하게 응이를 놓지 않고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했다. 오른 볼이 확확 달아올랐다. 응이는 손을 들어 자기의 오른 볼을 만지작거렸다. “말해봐, 내가 몇번째야? 몇번짼가 말이야.” 응이는 볼을 만지던 손을 내리워 자기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만졌다. 접때 그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소리소리 질러대던 지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떠올라서였다. 그날 응이가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네가 나의 첫 키스상대라고 아무리 해석해도 지려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당황함이 없이 키스를 하는 그 자세가 너무 로련해보인다는것이였다. 응이가 더 어떻게 해석할수 없어 쩔쩔매고있을 때 지려가 갑자기 덮쳐들어 응이의 볼을 할켰다. 응이는 오른쪽볼이 따끔해남을 느끼면서 손을 볼에 가져갔다. 빨간것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까불구있어. 내가 몇번째냐구? 난 처음이야, 누구에게도 나의 첫 키스를 허락한적이 없었다구. 알아둬. 넌 나의 첫 키스를 훔쳐간 도둑놈이야.” 지려는 발뒤꿈치를 들어 빨갛게 피가 맺힌 응이의 오른 볼에 뻑 소리를 내고는 응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자, 이 도둑놈아.” 그날 응이는 학교에서 단지부활동을 한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지려와 함께 맥주 두병을 마셨다. 지려의 말대로라면 열여덟살 성인식을 치르는것이요 소녀에 대한 고별식을 치르는 자리라는것이였다. 첫 키스를 도적맞혔다고 응이의 허벅다리를 꼬집을 때와는 달리 그렇게도 담담하게 맥주잔을 홀짝이며 키득거리는 지려를 보면서 응이는 과연 “고별식”이라는 낱말로 이렇게 소녀의 첫 키스를 대체할수도 있을가를 생각해보았다. 어쩜 충분히 그럴수 있을것 같았다. “고별”이란 무엇인가를 떠나보낸다는 말일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엇인가를 떠나보낼 때면 늘 이런 식을 하게 될것이니 “고별식”이란 역시 그렇게 가슴을 들먹일 필요는 없는것이요 첫 키스란 역시 간단한 “고별식”으로도 스쳐버릴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도둑놈아!” 하는 소리를 가슴 쩡하게 들으며 지려에게 끌려올 때의 흥분이나 공포 같은것이 우수경칩에 대동강 녹아내리듯 맹랑하게도 응이의 뜨거운 가슴속에서 사라지고있었다. 응이는 그러는 지려를 묘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컵을 들어 맥주 두어모금을 입에 쏟아넣으며 시까스르듯 말했다. “지려, 너 알지. 넌 나한텐 고마와해야 하는거야?” “엉? 건 또 무슨 얼어 죽을 론린데?” “당신을 도와 소녀에서 고별시켜준 그대! 고맙잖아.” “야, 이 짭새야, 누가 소녀와 고별했어? 너 남의 규수를 로처녀귀신 만들 일이라도 있냐? 꿈에라도 그런 소리를랑 말어라. 나 시집 못 가면 너 책임질라니?” “허, 시집은 가야겠는 모양이지?” “시집을 안 가면? 짜식, 총각귀신은 몽당귀신이라는데 처녀귀신은 크크크크… 미칠한 비자루귀신이라도 되려나?” 지려는 키득거리며 오른손을 쑥 내밀어 할퀴워서 뻘건 줄이 나있는 응이의 오른 볼을 뻑 쓸어주었다. 바로 그 뻘건 줄이 새삼스럽게 회억의 쪽문을 열어젖히는것이 이상하다고 응이는 생각했다. 그날 밤 잠들기전까지 그 뻘건 줄은 내내 응이의 사색을 삼뭉치로 만들어버렸다. 아버지의 열여덟살은 과연 어떠했을가? 큰대자로 누운 응이는 은은하게 당겨오는 아래배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으로 지그시 아래배를 눌러보았다. 방광이 째지듯이 아파왔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저녁때 아버지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소고기국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은것이 탈이 난 모양이였다. 못 견디게 목이 타며 물이 당겨서 자리에 눕기전에 생수를 벌컥벌컥 몇 고뿌 들이켰던것이다. 딱 일어나기 싫었다. 응이는 잘 튀겨진 새우처럼 한껏 몸을 옹송그리고있다가 저려오는 아래배를 슬슬 문지르며 부시시 일어나 어정어정 침실문을 열었다. “어!” 응이는 잠간 선자리에 굳어졌다. 화장실에 전등이 켜져있었던것이다. 웬 일일가? 응이는 머리를 돌려 동쪽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새벽 1시 5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참, 아버지가 화장실을 쓰고 깜빡해서 전등을 끄지 않은 모양이구나.) 응이는 주저없이 화장실문을 당겨 열었다. “앗!” 순간 응이는 새된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버지가 알몸으로 화장실 거울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간후 꼭 십년간 밥하고 빨래하고 돈 벌어들이던 그 거쿨진 손으로 뭔가를 꾹 거머쥐고 거울앞에 서있었다. “수… 수… 수으응아.” 아버지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응이는 두눈을 꽉 감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돌리며 “탕!” 소리나게 화장실문을 닫아버렸다.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나서 좀처럼 걸음이 되여주지 않았다. 응이는 허둥지둥 벽을 짚으며 용하게 침실을 찾아들어갔다. 가슴이 활랑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더 이상 생각을 굴리고싶지 않았다. 밤은 길기도 했다. “얌마, 응이 너 오늘은 좀 변태스럽다.” 지려의 손이 어느새 응이의 어깨우에 찰싹 떨어졌다. “짜식, 뭐가?” 응이는 웬 일이냐는듯 지려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그럼?” “그게 뭔데.” 지려가 모니터에 뜬 남색으로 된 아이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두눈을 올롱하게 치떴다. “너 언제 그런데 관심이 생겼어?” “어떤데?” “파란 아이디에…” “오~ 아냐, 그저 그런게 있어.” “설마 너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는건 아니지?” “짜식, 너 날 뭘루 보구 떠벌이는거야? 떠벌이긴.” 응이는 악의없이 지려의 어깨를 툭 치며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지려가 역시 아니라는듯 응이를 뚫어지게 건너다보며 말했다. “그럼 아니냐? 다른 때는 나의 눈을 피해서 녀자애들을 꼬시느라 정신없더니만 오늘은 웬 일이야? 웬 남자사냥이냐구?” “남자사냥?” 응이가 되물으며 두눈을 커다랗게 뜬채 지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 시각 지려의 눈길은 뭔가를 알고싶어 죽겠다는듯 무시로 반짝이고있었다. 응이는 지려의 얼굴로부터 머리를 돌리고 모니터에 나타난 남색아이디들을 훑어보다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그런게 있어.” “어떤게?” “녀자애가, 자꾸 설레발을 떨래?” “설레발이라니? 거 무슨 뜻인지나 알구 써먹어? 난 지금 진지하단 말이야.” 지려가 응이옆에 바싹 다가앉으며 노려보고있었다. 응이는 그러는 지려를 한참이나 더 지켜보다가 서글프게 픽 웃으며 한마디 했다. “나 지금부터 남자들을 연구해보려구.” “뭐? 너 끝내는 미쳤구나.” 지려가 발딱 일어섰다. “50대의 남자들을 연구해보려구 그런다.” “왜?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너 설마…” 지려가 자기의 무릎을 탁 치며 발딱 일어섰다. 세기의 말일이 도래했다면 그보다 더 놀랄가싶을 그런 표정이였다. 응이가 목소리를 낮추어 킥킥거렸다. “크크크크… 아가씨. 소설을 쓰지 마세요. 나 오늘부터 아버지와 친해질려구 그런다. 안되니? 아버지들을 알아야 친해질거 아니냐? 알려면 연구를 해야 할거구. 됐어? 까불긴, 계집애가.” 응이는 50대방에 들어가 마우스로 모니터에 뜬 남색아이디들을 눌러 “안녕? ” 하고 인사를 보내며 지려를 까박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지려는 그러는 응이의 태도를 개의치 않고 응이의 옆에 한뽐 다가앉으며 입을 열었다. “재밌네, 넌 참 미스터리하단 말이다. 왜 아버지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동기가 있을거 아니야? 말해봐. 내가 내심하게 들어줄거니까.” 응이는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는 지려를 바라보며 (너도 필경은 녀자구나.) 하는 생각을 굴렸다. 고중에 입학하여 지려와 친해지던 이 몇달사이 지려는 사실 필요이상으로 기본에도 없는 웅성적인것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런지 응이를 부르는 칭호도 항상 “얌마”가 아니면 “짜식”이였다. 그래서 응이는 지려라면 여느 애들처럼 그렇게 어지간한 일에 놀라거나 흥분을 하지 않을거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있는터였다. 하지만 아니였다. 응이는 “픽” 하고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계집애들은 참. 뭐가 그렇게 궁금하니?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려구 그런다. 왜? 녀자만 심청이 되라는 법이 있냐? 내가 남자심청이 되자구 그런다. 됐냐?” “암튼 못 말린다니까. 너 진짜 소설을 쓰렴. 뭔가 될것 같은데. 근데 네가 연구하고싶은 남자들 부류는 어떤 부륜데.” “둔하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면 되지. 50대 초반, 와이프가 한국 간지 10년! 됐냐?” “뭐야? 어머니가 한국 간지 10년이나 됐니? 그럼 그사이 넌 어떻게 살아왔는데?” “……” 응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잠간 입술을 씹었다. 얼굴에 한가닥 서글픔이 흐르고있는듯했다. 지려는 좀전의 흥분을 누르며 잠간 응이를 지켜보다가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싫으면 관두구. 암튼 남자 낚는데는 내가 전업대가 아니냐. 내가 금방 하나 낚아줄게.” 자신있다는듯 자기의 컴퓨터앞에 다가앉으며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지려의 목소리가 지려답게 명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지려를 바라보며 응이가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너의 아이디로 들어갔다가는 네가 먼저 낚일걸.” “뭐야? 사람 어떻게 보구.” “쳇, 채팅방을 몰라 그래? 남자와 녀자가 만나서 무슨 말들을 하는데? 아가씨, 또 무슨 고별식을 하지 않도록 자중하세요~” 응이가 지려를 보며 벌씬 웃을 때 “반갑습니다~” 하는 문자가 모니터에 떴다. 문자의 주인은 “영원한 신사”라는 아이디를 가진분이였다. “어, 한마리 물렸다.” 응이는 모니터앞으로 바싹 다가앉아 흥분한듯 소리치며 자판을 두드렸다. -네, 저도 반가와요. 선생님은 50댄가요? -그래요, 50대 초반이거든요. 근데 남성분이신가봐요??? “영원한 신사”가 물음표 세개를 달아서 날려보냈다. 응이의 얼굴에 알수 없는 웃음기가 짧게 피여올랐다. “봐, 싫다잖아? ‘나는 녀사님들을 기다리고있습니다.’ 하는 말이거든 저건.” 지려가 모니터를 손가락끝으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그러건말건 응이는 잽싸게 자판을 두드렸다. -맞아요. 저 남자거든요. -남성분이라면 무슨 일로 저에게… -이러고보니 미안하네요. 선생님은 꼭 녀자들하고만 대화하나보죠?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할수 있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환영이죠. 하지만 챗방에 와서는 이렇게 대놓고 남자들을 찾는 남성 대화상대가 적어서요. 제가 결례를 범했나요??? “영원한 신사”는 이번에도 물음표 세개를 달아서 날려보냈다. 응이는 그 물음표들이 마치도 큰 갈구리 같다고 생각되였다. 그 갈구리라면 대방의 무엇도 모두 걸어낼수 있다는 무언의 장담이나 되는듯이 생각되였다. 이렇게 자신있는 사람이라면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대화를 이어갈수 있을듯싶기도 했다. 응이는 더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했다. -결례라면 제가 되려 미안하죠. 오늘 선생님의 시간을 좀 허비시켜야 할것 같은데요. -재밌네요. 마치도 어떤 인터뷰석상에 앉은 기분이네요. 대방이 어떤 화제를 던져올가 하는 궁금증? 아니면 대화에 대한 기대감이라 할가요? 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필요이상으로 긴 웃음이 문자끝에 달려서 넘어왔다. 응이는 마치도 눈확에 주름이 얼기설기한 나그네의 석쉼한 웃음소리를 듣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웃음이 가슴 편하게 느껴지면서도 또 어딘가 누군가에게 자기의 유치함을 보인듯싶어서 기분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응이는 짐짓 무게를 넣어 문자를 꾸며보았다. -무언가에 대해 기대를 가진다는것은 참 좋은 일이죠. 저도 그런 기대감에 들떠있다구요. 선생님은 50대 초반의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50대 초반의 남자라면 대개 모두들 누군가의 아버지가 돼있겠죠? 잘 나가는 자식을 두었다면 대학생 아버지로 돼있을거구요. -행복하세요? 그들은 행복할가요? -네? 선생님은 년세가………… 역시 필요이상으로 이어지는 줄임표를 보면서 응이는 “웬 일이냐?” 하고 눈을 치뜨는 나그네의 형상을 그려보았다. 눈확에 주름이 쪼록쪼록할 아저씨가 녀자들처럼 올롱하게 눈을 치뜨는 모습이 꼭 렵기스러울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응이는 갑자기 “영원한 신사”를 골려주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크크크크… 년세까지는요. 아저씨, 저 올해 열두살이거든요. “얘는 미쳤구나, 미쳤어. 쯧쯧쯧…” 방금까지도 진지해서 자판을 두드리는 응이를 한참이나 지켜보고있던 지려가 깜짝 놀라며 응이의 허벅다리를 꼬집었다. -뭐야, 애들이 왜 이 시간에 pc방에 온거야. 너 오늘 학교를 땡땡이 쳤지? “맞아요, 땡땡이. 아저씨 이 자식 볼기짝을 쳐주세요.” 지려가 키득거리며 응이의 엉뎅이를 두드려댔다. “까불구있네. 그만해라.” 응이는 지려에게 눈을 흘기고는 진지하게 다시 시작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롱담했어요. 저 올해 열여덟살이거든요. 학생이구요. 10년간 아버지의 손등을 씻어먹으면서 자랐어요. 오늘 문뜩 아버지를 알고싶어졌어요. -그래? 그 말이 진짜라면 감동이구나. 아버지를 알고싶다? -그래요. 아버지를 알고싶어요. 아저씨네 열여덟살은 어떠했어요? 약지로 자판을 눌러 문자를 띄워보내면서 응이는 잠간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저녁 아버지와의 대화가 머리속에 떠올라서였다. 대방에서 인차 문자가 날아왔다. -집체호라고 들어봤니? -네. 저의 아버지도 집체호에 갔었다고 했어요. -그럼 아버지에게서 많이 들었겠네. 그 시절 열여덟살의 이야기를. -전 불효자거든요. 아버지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여직 생각 못했어요. 자판을 두드리는 응이의 얼굴이 스스로 붉어졌다. -그럼 오늘 돌아가서 들려달라구 해라. -네? 응이는 순간 가슴이 꺽 막혀오는감을 느꼈다. 오늘 돌아가서 들어보라구? 과연 내가 오늘 아버지를 마주하고 아버지의 열여덟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를수 있을가? 생각하고싶지 않은 어제밤이 또 머리속에 찾아들었다. 응이는 창문으로 비쳐드는 괴괴한 초생달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굴려보았다. 하지만 응이에게서 아버지는 밥하고 빨래하고 몸에서 톱밥냄새를 풍기는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수 없는 아버지일뿐이였다. 아버지는 워낙 그런줄로만 알고있었다. 아버지는 응당 그렇게 살아야 하는줄로만 알고있었다. 그런것에 길들여진 응이였기에 지친 다리를 끌며 집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보고도 그렇게 덤덤할수가 있었고 그런것에 길들여진 응이였기에 어지러워진 옷도, 지어는 뭔가 묻어있는 팬티까지도 스스럼없이 벗어서 세탁기에 던져넣으며 “씻어줘요.” 하고 말할수가 있었다. 응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쉼터였고 항구일뿐이였다. 동틀무렵에 깜빡 재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시계는 여섯시 반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지루하게도 긴 밤을 치렀지만 생물시계는 용하게도 기상시간을 기억하고있은 모양이였다. 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문을 밀어 열려다가 흠칫했다. (아버지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있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는 순간 평소처럼 스스럼없이 아버지를 대할 자신이 좀처럼 서지 않았던것이다. 응이는 잠간 서서 궁리를 하다가 침실문손잡이를 놓고 돌아서서 옷장문을 열었다. 아버지 몰래 조용히 학교에 갈 생각이였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침만이라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으면 덜 난처할것 같아서였다. 응이는 조용조용 옷을 찾아 입은후 책가방을 손에 들고 조용히 침실문을 밀었다. 객실이며 주방쪽이 너무도 조용해있었다. (웬 일일가?) 무겁게 느껴지는 고요가 부담스럽다고 생각되였다. 응이는 발볌발볌 주방쪽으로 다가가 목을 쑥 빼들어 주방안을 살펴보았다. 아버지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아버지는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하고있어야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주방의 밥상우에는 고추가루를 곱게 올려 볶아낸 두부반찬이 있었다. 한 접시가 그대로 있는것을 보아 아버지는 수저도 댄것 같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들자 차마 그대로는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응이는 출입문가로 다가가며 아버지의 침실쪽에 대고 소리쳤다. “학교 갑니다.” 신을 다 신을 때까지도 대답이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침실이 아니라 화장실에 앉아서도 “알았다∼” 하고 한마디 던져줄 아버지였다. (웬 일일가?)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응이는 아버지의 침실로 다가가 침실문을 밀었다. 침실도 비여있었다. 화장실에도 없었다. 아버지는 분명 집에 계시지 않았다. (아침도 안 드시고 어디로 갔을가? 아직 출근시간이 안됐는데.) 응이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버지의 행방을 찾지 않고는 시름을 놓을수가 없어서였다. 마침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밥 먹어라. 먼저 간다.” 아버지가 보내온것이였다. 일단 “후—” 하고 안도의 숨이 새여나갔다. 응이는 몇 글자밖에 안되는 문자를 세번이나 읽었다. 거쿨진 손으로 문자를 때렸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웬지 목이 메고 코끝이 시큼해났다. 응이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힘들고 지루한 하루를 용케도 마치고 응이는 하학하는 길에 곧추 pc방을 찾아들었다. 막연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뭔가를 찾아낼수 있을것만 같은 기대 비슷한 생각이 충동을 했던것이다. 응이가 금방 번호판을 받아들고 컴퓨터를 찾아 앉았을 때 지려가 pc방에 나타났다. “불여우 같은 계집애.” 하고 응이가 선수를 치자 지려도 “매너 없는 곰탱이.” 하며 응이의 옆에 찰싹 붙어앉았다. “얌마, 안해?” 지려가 응이의 어깨를 톡 쳤다. “엉?” 응이는 흠칫 놀라며 지려쪽에 머리를 돌렸다. “안하니?” “뭘?” “그 아저씨하구…” 지려가 손끝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바빠? “영원한 신사”로부터 어느새 문자가 날아와있었다. -아니요. 잠간 뭔가 생각을 굴리느라구요. -그래? 난 또… -근데 어쩌죠? 전 오늘 아버지에게서 열여덟살의 이야기를 들을것 같지 못한데요. -하긴 아버지도 아들앞에서 흘러간 그 이야기를 하고싶지는 않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이는 리해할수 없다는듯 물었다. -회억이란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으니까. 힘들었던 그 세월을 아들을 상대로 이야기한다는것, 어쩜 즐거운 일이 아닐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넌 소고기 몇점때문에 울어본적이 있니? -…… “무슨 뜻일가?” 응이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수 없어 지려쪽에 머리를 돌렸다. “놀구있네, 생뚱같이. 얌마, 있다구 해. 난 소탕을 먹기 싫어서 구정물통에 던져넣다가 엄마한테 엉뎅이를 맞아 운적이 있거든. 왜? 실감이 안 나? 크크크크…” 지려가 캐득거리며 손사래를 칠 때 모니터에 문자가 날아들었다. -내가 열여덟살에 집체호에 가서 이듬해 추석이였으니 열아홉살 나던 해였겠지. 생산대에서 추석이랍시고 소 한마리를 잡았거든. 인구가 3백명도 넘는 생산대에서 소 한마리라니 상상할수 있잖아. 한 사람당 고기 3냥씩 돌아갔단다. 그 주일 식사당번을 서는 녀자애는 손부리가 여물기로 소문난 애였거든. 두고두고 썰썰할 때 먹는다며 얼마 안되는 소고기를 세등분 냈어. 추석날 저녁에 그중 한등분을 삶았었는데 소가 장화를 신고 지나간 물 4촌이나 됐겠지. 긴긴 여름 고기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우리들이였는지라 그날 소탕은 큰 유혹이였다. 고기 두어점씩 놓은 소탕을 큰 사발에 그득 담아들고는 얼마나 가슴이 부풀던지. 우리 남자애들은 옥수수쌀을 섞어 지은 밥을 사발에 넘쳐나게 말아서 먹기 시작했단다. 못사는 년이 고추가루 팔러 가면 바람질이라고 그 며칠 나는 감기때문에 코물을 훌쩍거리며 다녔었다. 뜨끈뜨끈한 소탕에 밥을 말아서 후룩후룩 먹어대는데 그놈의 코물이 어떻게나 흘러내리는지. 연신 코물을 훔치며 밥을 조겨주는데 그만 그 렴치 없는 코물이 소탕에 똘랑 떨어져 들어가는거다. 고기는 아까와서 얼마 먹지 않고 소탕에 만 밥만 먹고있었는데 코물이 떨어져 들어갔으니 사발에서 고기를 건져먹을수도 없는짓이고, 아쉬운대로 구정물통에 넣는수 밖에 없었지. 고기는 한점씩 헤여서 사발에 담았는지라 남은것이 있을리 만무하고, 멀건 국물을 다시 떠서 밥을 말아먹느라니 그때까지도 소고기를 입에 넣는 애들이 얼마나 밉고 부럽던지. 그날 밤따라 열이 나고 목이 마르고 해서 잠은 잘 안 오구, 던져버린 그 소고기 몇점이 눈앞에서 아롱아롱 춤을 춰대는것이… 저절로 눈물이 두르르 굴러떨어지더라. “크크크크… 이 나그네 웃긴다야. 그렇게 먹고싶었으면 코물 떨어진 소고기를 건져 먹지 그랬니? 이 나그네 아마두 식충인가봐. 소고기 몇점이 뭐라구 남자가 울기까지.” “영원한 신사”가 보내오는 문자를 도정신해서 읽어보던 지려가 갑자기 키득거리며 배를 끌어안았다. 여느때 같으면 뭐라고 몇마디 손벽을 쳐주었을 응이지만 웬지 그 시각만은 그럴 흥미가 없었다. “지려,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사뭇 정색해있는 응이의 얼굴이 놀음 같지 않아서였던지 지려가 혀를 홀랑 내밀며 한마디 했다. “아니, 그렇다는 얘기지 뭐. 너라면 울겠니?” “모르겠다.” “크크크크… 재밌다야, 그냥 옛말을 시켜라.” 지려가 응이의 손등을 쳤다. 응이는 못마땅한듯 지려를 흘겨보며 자판을 두드렸다. -아저씨,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퍼요? -생각하기나름이지. 슬플 때 생각하면 슬프구 성공의 희열에 벅찰 때 생각하면 감동이구. 돌아보면 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응이는 “영원한 신사”의 문자를 읽으면서 은은한 아픔이 느껴져오는듯싶었다. 응이는 잠간 생각에 잠겼다가 손가락을 놀렸다. -아저씨는 어느때가 더 많아요? -너의 아버지는 어떨 때가 더 많았니? -네? 응이는 또 한번 가슴을 흠칫하며 할 말을 잃었다. 지려가 못 참겠다는듯 자판을 자기앞에 당겨다가 두드려댔다. -리해가 안되네요. 소고기 몇점때문에 울지 말고 소를 가득 길러서 매일 잡아먹지 그랬어요? -크크크크, 너 역시 아직 어리구나. -네? 제가 어리다구요? 지려가 바람소리 쌩 나게 문자를 날리며 약이 오른 고양이처럼 쌕쌕 모두숨을 몰아쉬였다. -그래. 너희들이 아직 태여나지 않았던 그 세월에 우리 나라도 배고픈것이 젤로 무섭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때는 쌀들이 다 어디 갔었게요? 지금은 농민들은 쌀을 팔지 못해 아우성이구만. -글쎄다. 그 쌀들이 다 어디루 갔었는지… 배가 고프면 잠이 잘 안 온단다. 배에서 꼬륵꼬륵 소리가 나 잠을 못 이루는 밤이면 옆에 누운 친구를 깨우기 마련이지. 그러느라면 어느새 한칸에 자던 친구들이 모두 눈을 뜨구 합의가 맞는 애들은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는거다. 여름이면 농민들집 채소밭에 기여들어 오이며 가지며 닥치는대로 따서 먹구 겨울이면 하다못해 부엌에다 감자라도 집어넣어 익혀먹군 했더랬지. 그것도 없으면 김치움에 들어가 생무우를 꺼내다 무우추렴을 하든가, 그럴 때면 벽 저쪽에 자던 녀자애들도 솜옷을 우에 걸치고 슬금슬금 남자들 호실에 마실을 오는거다. 그런 날 밤이면 옛말잔치가 벌어지는데 이야기를 할라치면 시내에 두고 온 엄마가 그립구 아버지가 보고싶다구 녀자애들은 엉엉 울구. 그러면 남자애들도 보통은 눈굽에 손이 올라가거든. 언제면 시내로 돌아갈수 있을지. 정녕 부모들옆으로 돌아갈수는 있을지? 정말 한치 앞도 안 보이더라. 그때는 힘든 일에 몸이 힘들고 암담한 전도에 심신이 피로하고… -크크크크… 아저씨 소설을 쓰는거 아니예요? 녀자애들과 벽 하나를 사이 두고 살았다면서요, 함께 술두 마시구 노래도 부르구 춤도 추구 맘 맞는 애들끼리 서로 좋으면 련애도 하구. 부모들의 잔소리도 없는데서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참 재밌는 애네. 그 세월 농촌을 벗어날수 있는 도경이라면 빈하중농들의 추천을 받아 군대에 가거나 공농병대학에 가거나 아니면 쌀에 뉘만치도 안되는 명액을 얻어서 시내에 로동자로 들어오는것뿐이였지. 그런 판국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고 련애하면 빈하중농들의 추천을 받을수가 있었겠니? 죽기내기로 일하는 길밖에 없었지? -크크크크… 새파란 나이에 남자애 녀자애들이 벽을 사이 두고 련애도 못하면 어떻게 살아요? 그 말 누가 믿어요? “야, 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응이가 문자를 날리려는 지려의 손을 잡았다. “왜, 재밌잖아? 그냥 듣자야.” “그래두 그렇지 아무 소리나 하겠니? 상대는 어른이야. 50 고개를 넘긴 선배라구.” “크크크크… 세상을 먼저 산 선배들의 무용담, 어떻니? 날아라.” 지려는 끝내 오른손 약지를 살짝 눌러 문자를 날려보냈다. 응이는 지려앞으로부터 자판을 활 나꿔채오며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그러는거 아니지. 오늘 저 아저씨의 정서가 슬플수도 있잖아. 적당히 하자, 응? 이 철 없는 아가씨야.” “온다, 온다.” 지려가 응이에게 혀를 홀랑 내밀어보이며 손끝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넌 상상할수 없다는거지? 그래.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놀랍지. 벽을 하나 사이 두고 녀자애들의 잠꼬대를 들으며 어떻게 그 시절을 지나왔던지가. 한번은 우리 남자애들이 내기를 했단다. -무슨 내기를요? 응이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여름날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집체호 마당앞의 빨래줄에 밤을 잔 빨래들이 걸려있었단다. 보통은 너무 씻어서 색바랜것들이구 또 진때가 잘 나가지 않아서 거무칙칙 꼴불견인것도 있었지. 그러다가도 가끔 옷가지들사이에 꽃부리팬티가 걸려있을 때도 있었지. 어느날 우리 남자애들 몇이 그 꽃부리팬티임자를 맞출 내기를 했단다. 지는 놈이 다음번에 석탄이 오면 굴에 퍼들이기로 약정하구. 맞춰봐. 결과가 어떠했을가? 기실은 누구도 못 맞췄단다. 애들마다 제 맘에 두고있는 녀자애의 팬티라는거다. 기실 그 팬티임자는 집체호 웃집 아주머니의 팬티였으니까. 얼마나 맹랑하던지. 허허허허허허허허허… “영원한 신사”는 또 긴 웃음을 끝에 달아보냈다. 응이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 문자를 보면서 (정녕 이런 이야기도 저렇게 웃으면서 할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며 자판을 때렸다. -아저씨는 지금 행복하신가봐요. 이렇게 통쾌하게 웃을수가 있으니 말이죠. -너의 아버지는 지금 행복해하고있는것 같니? “영원한 신사”가 보내온 문자를 읽으면서 응이는 손으로 자기의 넙적다리를 탁 하고 내리쳤다. 알고싶은 문제마다에 아버지를 거드는 신사가 미웠던것이다. 응이는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때려 문자를 날렸다. -아저씨는요? -50대는 불행한 사람들이란다. -왜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집체호라는 소택지에 빠져 몸도 마음도 그리고 파아란 소년도 힘든 세례를 받은것이 우리 50대거든. 배운게 없이 시내에 올라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으니 세상은 변했지. 아까 너 십년이나 아버지의 손등을 씻어먹었다고 했지? 안해가 없는 그 10년을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너 아니? 사람들은 40대를 인생의 두번째 사춘기라 하거든. 너의 아버지의 두번째 사춘기도 열여덟살 첫 사춘기때처럼 그렇게 힘들고 비참했을거다. 얘야, 너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려야 한다. 그게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길일것이다. -네?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리라구요? 응이는 뽀얀 운무속에 가려진듯한 “영원한 신사”의 묘한 글을 읽으며 또 한번 오리무중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뭔가 잡을듯하면서도 또 그것을 잡기에는 너무나 자신의 힘이 작은듯한 느낌이였던것이다. 응이는 멍하니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하고 속으로 외워보았다. “아싸… 걸렸다.” 갑자기 지려가 신명나서 소리쳤다. 응이는 깜짝 놀라며 지려쪽에 머리를 돌렸다. 지려가 득의양양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얌마, 이 짭새가 날 보구 밥 사준단다. 이걸 어떻게 차놓을가?” “그만하자. 지려야, 날이 저물었거든.” 응이는 흥미 없다는듯 지려에게 한마디 하며 “아저씨, 대화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말을 날렸다. “왜? 재밌잖아? 잠간 데리구 놀다가 뻥 차버리는 멋!” “엄마가 기다려요. 아가씨, 집에 가자 응?” 응이는 모니터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려도 아쉽다는듯 컴퓨터를 돌아보며 못마땅한듯 응이를 따라 일어섰다.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깃들어있었다. (벌써 어두워졌나?) 응이는 낮이 참 짧다고 생각되였다. “집에 갈래?” 밖에 나서자 지려가 물었다. “그럼 집에 가야지. 넌 또 어디로 가고싶은데?” “아냐, 집에 가야지. 반기는 사람은 없지만.” 지려도 언제 까불었냐는듯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어둠이 지려에게 시름을 얹어주는가보다고 생각하며 응이가 물었다. “반기는 사람이 없다니? 지금쯤이면 할머니께서 ‘왜 오늘두 이렇게 늦냐?’ 하며 층계를 내려와 기다릴텐데.” “그래, 할머니가 불쌍해서라도 집에 들어가야겠다.” 지려의 목소리는 흐려있었다. 응이는 그러는 지려를 돌아보고는 기분 나쁜 대화를 더 하고싶지 않다는듯 낮은 목소리로 “그만하자.” 하고 한마디 하고는 앞에서 씨엉씨엉 걸어갔다. “랠 만나.” 지려가 뒤에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시각 지려의 목소리가 참 처량하게 들렸다. 그렇게 소탈하게 살려고 애쓰는 지려도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는 집으로 들어가는 이 시간만큼은 두렵고 부담스러운 모양이였다. 응이는 돌아보지 않고 뒤에 대고 손만 흔들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지금쯤 뭘 하고계실가?)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리라던 “영원한 신사”의 문자가 또 머리속을 헤집어 기분이 착잡해났다. (내가 50대 초반의 남자를 알겠다고 채팅방에서 사이버세계를 헤집고 다닐 때 아버지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셨을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자 아버지도 오늘 꼭 일손이 잡히지 않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평소처럼 아버지를 대하자. 어제밤에 있었던 일때문에 아버지께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게 하자.) 아빠트앞에 도착해보니 다행히도 집에는 전등이 켜져있었다. 응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응이는 1층 슈퍼마케트에 들어가 맥주 세병을 사들고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술을 부어드리면서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하고 너스레라도 떨고싶어서였다. 비록 전에 없는 행동이여서 아버지가 좀 어색하게 생각은 하겠지만 맥주가 두어병 속에 들어가면 모든것이 편해질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밖으로 전등불빛이 새여나오던 집인데 출입문은 잠겨진대로 있었다. 응이는 일부러 주먹으로 문을 탕탕 두드려댔다. 아버지가 달려나올 시간이 지났건만 집안은 조용한대로 있었다. (못 들으셨나?) 응이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 집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네! 혹시 잠이라도 드셨나?) 응이는 생각을 굴리며 옆구리에서 열쇠뭉치를 꺼내 자물쇠구멍에 꽂았다. 객실엔 전등이 켜진대로 있었고 문가에는 아버지의 구두가 놓여져있었다. 응이는 신을 벗자 바람으로 주방쪽에 머리를 기웃거려보았다. 주방에도 전등만 켜져있었다. 응이는 주방에서 나와 아버지의 침실로 다가갔다. 침실문은 닫긴대로 있었다. 응이는 조용히 침실문을 밀어 열었다. 아버지는 침실바닥에 쓰러져있었고 옆에는 술병 하나와 김치사발이 댕그러니 놓여져있었다. (혼자서 술을 마셨나?) 응이는 이상한 생각을 굴리며 술병을 주어들었다. 병은 이미 굽이 나있었다. “조양왕?” 응이는 상표에 눈길을 주었다. 집에서 본적이 없는 술병인것으로 보아 올라올 때 사들고 온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혼자서 흰 술 한병을 다 마신것이 아닌가? 응이는 아버지의 주량을 알고있었다. 혹시 친척집 군일에라도 가서 흰 술 서너냥을 마시면 얼굴이 새빨개나서 몹시 힘들어하군 했던것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김치쪼박에 흰 술 한병을 다 마셨으니 아버지의 상태를 알고도 남음이 있을것 같았다. 순간 응이는 아버지를 푹 쉬게 하고싶었다. 응이는 빈 술병과 김치사발을 주어 주방으로 가져간후 베개를 내리워 아버지의 머리에 베여드렸다. 아버지는 두어번 손을 흔들며 뭐라고 입속으로 우물우물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한껏 몸을 옹송그렸다. 응이는 이불을 내리워 옹송그린 아버지의 몸에 덮어드리고는 불을 끄고 침실문을 닫았다. 응이는 객실로 나와 쏘파에 쪼크리고 앉았다. 현관등만 켜놓은 집안에서는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응이는 그 괴적속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두손으로 턱을 받쳐들었다. 이때 갑자기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었다. 응이는 와뜰 놀라며 튕겨일어났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련속 울어댔다. 전화기의 번호판을 여겨보니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머니구나!) 하는 직감이 머리를 쳤다. 응이는 수화기를 거머쥐기 바쁘게 소리쳤다. “어머니, 맞죠? ” “응이니!” “어머니.” 응이는 절절하게 어머니만 불러댔다. 응이의 다급한 반응에 놀랐는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섭게 떨리고있었다. “응이야,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 “어머니, 돌아오세요. 네? 어머니. 돌아오세요. 어머니는 돌아와야 해요.” “응이야, 도대체 웬 일이냐? 낮에는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서 다짜고짜 들어오라구 그러더니, 너도 두마디 안짝에 돌아오라구 그러니? 말해봐라,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 “어머니, 제발 빌어요. 돌아오세요. 네? 어머니. 인젠 돌아올 때가 됐잖아요?” 어느새 응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묻어있었다. 그러건말건 어머니가 전화 저쪽에서 소리치고있었다. “다 큰 사내애가 울기는. 말해봐라.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거니? 돌아오라면 당금 돌아갈수 있는줄 아니? 나도 여기서 많은 일들을 벌여논게 있어서 당분간 돌아갈수 없구나. 그리구 돌아가서는 어떻게 하겠니? 10년간 쌓아놓은 공적이 다 이곳에 있는데 중국에 돌아가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수 있겠니? 안된다. 못 돌아간다. 나는 못 돌아간다.”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해요? 우리 집은 어떻게 하구 아버지는 어떻게 해요?” “10년이나 이렇게 잘 견뎌오지 않았니? 차라리 네가 한국에 나오너라. 여기서 고중공부를 하구 여기 대학에 들어가거라.”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츰 리성을 찾아가고있었다. 응이도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정말 집에 돌아오지 못하겠다는거예요? 정말 그런 말씀인가요?” “영 못 간다는것은 아니구, 당분간은 안된다는 말이지. 어머니도 여기서 힘들거든. 하루도 너의 생각을 안하는 날이 있는줄 아니?” “그런데 왜 못 돌아와요? 아버지를 버리고 저를 혼자 한국에 오라구요?” 응이의 목소리는 저도 몰래 날이 서갔다. “그럼 어쩌겠니? 엄마는 한국에 일자리가 있구 아버지는 중국에 자신의 생활이 있는것을. 낮에 아버지와 이야기가 통했다. 나는 돌아갈수 없으니 동의되면 너의 한국수속을 시작하라구 말이다.” “참으로 감사하네요. 하지만 저 한국으로는 안 갈거예요.” 응이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끝내버렸다. (어머니는 어떻게 아버지를 집에 두고 나를 한국에 데려갈 궁리를 했을가? 나까지 한국으로 간다면 아버지에게는 무엇이 남는걸가?) “영원한 신사”와 나누던 이야기들이 귀전을 스쳤다.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리라던 “영원한 신사”의 이야기가 귀전을 스쳤다. (정녕 어떻게 해야 아버지에게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드렸다고 할수 있을가? 아버지는 스스로 아버지 자신을 버리고있는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있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없다면 아버지는 자기 스스로를 찾으려고 하시지 않을가? 나에게 쏟던 정성을 자기 스스로에게 쏟지 않을가…) 순간 응이는 아버지를 보고싶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한껏 몸을 옹송그린채 잠들어있었다. 연신 “푸푸~” 하고 입바람을 불 때마다 입가에 흘러내린 느침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응이는 손으로 아버지의 입가에 흘러내린 느침을 닦아주며 이윽토록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이 순간만이라도 아버지를 편하게 쉬게 하고싶었다. 응이는 아버지를 침대우에 올려 눕히려고 허리를 굽혀 아버지를 안았다. 한숨에 건뜻 들렸다. 키가 한메터 칠십을 넘기는 아버지가 이렇게 가벼울줄은 정말 생각밖이였다. 응이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다. 사실 이제까지 응이는 아버지를 산으로 알고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면 아버지가 받쳐주고 홍수가 오면 아버지가 막아줄것이라고 든든하게 믿고있었다. 그래서 괜히 아버지에게 밥투정도 부리고 옷투정도 부리군 했었다. 그래서 어제밤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버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냥 그러려니만 생각했던것이다. (아버지는 52년 세월속에서 과연 자신을 위한 인생을 몇년이나 살아오셨을가? 아버지도 열여덟살에 집체호로 나갔다니 역시 그 아저씨처럼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에 대하여 고민했을거고 항상 배를 곯으며 허기를 느꼈을거고 벽 하나를 사이 두고 들려오는 녀자애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힘겨운 밤들을 보냈었겠지? 가정을 이루고는 또 이렇게 나를 돌보느라 10년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내고있구나.) 응이는 아버지를 침대우에 곱게 눕힌후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바지를 벗겨드렸다. 앙상한 아래도리를 감싼 꽃부리팬티밑으로 뭔가가가늘게 꿈틀거리는것이 보여왔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푸하푸하~” 입김을 불며 단잠에 빠져있었다. 응이는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드린후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래, 나도 인젠 자립을 할수 있는 나이다. 아버지곁을 떠나는거야. 넓디넓은 이 땅우에 내가 살아갈수 있는 땅이 없을가? 하지만 한국에는 안 갈거야. 아버지와 한하늘아래에서 아버지의 행복을 지켜보면서 살거야.) 응이는 아버지에게 자기의 생각을 적어내려갔다. 꽉 막혀서 터져버릴것 같던 가슴이 펑 뚫리는듯싶었다… “덜커덩덜커덩…” 레루를 씹어삼키는 둔중한 기차바퀴소리가 어둠의 장막을 헤치며 불안하게 들린다. (래일아침 나를 기다리는것은 구경 어떤 풍경일가? 이 밤이 새고나서 내가 정착해있을 항구는 과연 어디일가?) 응이는 천근같이 무거워지는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머리속 한구석으로부터 갑자기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들어가는듯한 막연함이 덮쳐들면서 말 못할 피곤이 몰려들었다. 10년전 어머니를 싣고 가던 비행기 옆구리에서 보았던 빨간 타원형포스터가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나타났다. 응이는 그 빨간것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빵!” 하고 터져버릴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며 천천히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345    책머리에 댓글:  조회:848  추천:0  2012-04-24
    책머리에 저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작은애는 올해 열살, 아직까지는 보고싶은 그림영화를 마음대로 보면 좋아하고 먹고싶은 새우깡을 마음대로 먹으면 좋아하고 하고싶지 않은 숙제를 빼먹어도 욕을 먹지 않으면 만족해하는 때묻지 아니한 순진한 개구쟁이입니다. 하지만 올해 열아홉살에 나는 큰애는 아닙니다. 남들이 사춘기를 앓느라 힘들어하는 열대여섯살 때까지만 해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학교생활을 착실하게 해서 우리 부부는 “저 애에게는 사춘기가 없는 모양”이라고 롱담을 하며 시름을 놓았더랬습니다. 헌데 지난해 중점고중에 붙은 다음부터 차츰 신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초중때까지만 해도 부모들이 머리를 감았냐고 물어야 겨우 뜨거운 물을 찾던 애가 요즘은 날마다 머리를 감고야 학교에 가고 남들이 간다면 우스워하던 pc방에도 몰래 다니는 눈치입니다. 전에는 교과서공부밖에 모르던 애가 요즘은 부모들 몰래 서점에 다니며 공포나 련정에 관한 자극적인 책을 사다가 밤도와 읽군 합니다. 다른 애들보다는 좀 늦게 온 사춘기지만 필경 내 아들도 사춘기를 앓는것이였습니다. 그래도 로골적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고 반항적으로 부모들과 엇서는 일이 없어서 한시름은 놓이지만 날로 변해가는 아이의 신상변화를 읽으며 과연 우리 아들은 별고없이 사춘기를 넘길수 있을가가 무척 근심스럽습니다. 직업적인 민감성이라 할가,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묵묵히 아들의 모든것을 살폈고 진정 오늘의 소년소녀들은 어떻게 사춘기를 넘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여 인터넷에 올라 사춘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여러가지 아이디로 소년소녀들과 채팅도 했으며 인터넷에 싸이를 만들어놓고 아들 친구들과 1촌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아동문학작가의 작은 공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소년소녀들”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하여 사춘기를 겪는 소년소녀들과 대화도 시도했습니다. 그러한 공간을 통하여 저는 오늘을 살고있는 소년소녀들의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수 있었습니다. 따져보면 우리는 소년소녀들을 교정안에 있는 부류와 교정밖에 있는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하다면 교정안에 있는 친구들이 행복할가요? 아니면 교정밖에 있는 친구들이 행복할가요? 어느 정도 오늘의 소년소녀들을 접촉해본 사람이라면 그 생각 자체가 천진하다고 느껴질것입니다. 교정안에 있는 친구들은 응시교육의 멍에에 눌리워 성적순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숨도 바로 쉴수 없어하고 교정밖에 있는 친구들은 암담한 자기의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때문에 방황을 하고있습니다. 사춘기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어할 나이에 우리 조선족소년소녀들은 또 새로운 민족대이동으로부터 오는 부모들과의 리별, 부모들의 불화로부터 오는 가정의 파탄 등 원인으로 하여 이중, 삼중의 성장통을 겪고있습니다. “운무의 저쪽”에서 성적순때문에 고민하는 봉이의 형상, “아직은 초순이야”에서 자기만의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려다가 불량아로 점찍혀 방황하는 웅진이의 형상 그리고 “노란것”에서 알콜중독이 된 아버지와의 갈등때문에 힘들어하는 령이의 형상 등은 정말 누구라도 머리를 돌리면 볼수 있는 이웃집 소년소녀의 형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보고서도 그냥 스쳐버린 형상들이 많을것입니다. 정말 “아이들을 구하라!”고 호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조선족청소년들을 위한 아동문학작가라고 자부하는 저로서는 방황하고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의무감 같은것을 느꼈습니다. 큰일은 할수 없지만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실한 형상을 세상앞에 보여주고 대중들로부터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낼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 올해 마흔다섯, 소년소녀들과 몇 세대를 사이 두고있지만 아직도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하고싶습니다. 그들과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춘기라는 인생의 보리고개를 넘는 소년소녀들의 지팽이로 되고싶은 마음입니다. 2009년 5월 4일 최동일   
344    동심으로 쓰는 이야기*최학송 댓글:  조회:2884  추천:1  2012-04-24
평론   동심으로 쓰는 이야기 최학송 (중앙민족대학교)     최동일선생이 “동심”에 다가가는 또 다른 길을 찾았다. 16살에 아동소설 “나의 동생”을 발표하며 문학의 길에 들어선 최동일선생은 그후 줄곧 아동문학창작에 정진해오고있다. 그사이 연변인민방송국 청소년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오면서 바쁜 일정 때문에 한동안 창작활동이 뜸해지긴 하였지만 이런 경력은 그에게 동심으로 보다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2007년, 그는 중국작가협회 로신문학원에서 연수를 하던 기간에 중국조선족아동문단에서 10여년간 장편소설이 창작되지 못했던 공백을 메우며 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를 창작하였다. 아동장편소설 《천사는 웃는다》(2007. 12)의 출간을 계기로 또다시 왕성한 창작활동을 시작한 최동일선생은 그후 산문집 《엄마의 별》(2008. 5), 아동소설집 《민이의 산》(2008. 5), 중편성장소설집 《아직은 초순이야》(2009. 5) 등 작품집을 륙속 내놓았다. 이미 출간된 작품집으로부터도 알수 있는바 최동일선생은 지금까지 주로 소설을 중심으로 하는 산문적글쓰기를 통하여 동심에 다가가고 동심을 그려냈다. 청소년들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진실하게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그들의 현장감 넘치는 성장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신념으로 필을 잡았기에 최동일선생의 글쓰기는 여직 이를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진행되여 왔다. 소설은 작가의 주장이나 견해, 감수, 인식을 론리적으로 폭넓게 드러냄에 있어서는 효과적이나 작가의 미세한 감정이나 느낌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데서는 비효과적인 일면이 없지 않다. 소설이라는 산문적글쓰기를 통하여 표현하지 못하였던 “동심”을 최동일선생은 이번에 동시라는 쟝르를 통하여 표현해냈다. 최동일선생은 소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쓴것이지만 동시는 순전히 마음으로 써보고싶어 시작한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취미로 시작한 문학카페(동심여선: http://cafe.daum.net/ybcdr)에 동시를 옮겨오면서 한국의 동시들을 접촉하게 되였고 차츰 동시의 매력에 빠지게 되였으며 자신도 무언가를 써보고싶다는 충동을 받고 시작한것이 동시 쓰기라고 한다. 최동일선생은 동시는 “짓는것이 아니라 줏는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속 곳곳에 숨어있는,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것들을 주어 글줄에 꿰면 가장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동시가 된다는것이다. 때문에 최동일선생은 자신의 동시가 특별히 예쁠것을 바라지 않으며 그냥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조용하고 해맑기만을 기대한다.   동심으로 보는 세계   동시의 가장 큰 특점이 바로 어린이 특유의 감각과 목소리를 통하여 시적효과를 발생하는것이다. 최동일선생은 어린이의 눈높이로 어린이들을 둘러싼 사물과 환경 그리고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는 모든것을 바라봄으로써 동심에 공명과 감동을 주는 동시를 써내고있다.   조 꽃을 똑 따서 엄마를 주고 조 꽃을 똑 따서 아빠를 주고 조 꽃을 똑 따서 …… 속구구를 하는 새에 녹아버렸다 창문을 가득 메운 성에꽃들이 ―“속구구”전문   “속구구”는 성에라는 한 사물을 소재로 한다. 성에란 영하의 기온에서 수증기가 사물에 부딪쳐 맺힌 덩어리를 말한다. 북방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아침마다 창가에서 쉽게 볼수 있는것이다. 동시는 성에꽃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어린이다운 발상과 이런 속구구를 하는 사이에 성에꽃이 녹아버렸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아침이 되여 해살이 비추면 성에가 녹아내리는 자연현상을 동심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동시가 어린이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성에꽃을 따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에 있어서도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 순서이다.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사람들 순서로 성에꽃을 “선물”하겠다는 그 마음에 어린이다운 순수함이 숨겨져 있는것이다.   하늘아 왜 까만 천으로 얼굴을 가렸니? 부끄러워그래 낮에 나쁜 일을 했었거든 밝은 얼굴로 세상을 볼수 없거든 ―“밤”전문   “밤”은 하늘과의 대화라는 형식을 취하고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밤은 “본래 어두운것”이라는 형상으로 자리잡고있다. 우리는 이것을 상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적화자는 이러한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것에 의문을 달고 사는 어린이다운 발상이라 할수 있겠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하늘이 낮에 나쁜 일을 하고 부끄러워 까만 천으로 얼굴을 가렸기때문”이라고 한다. 어린이다운 질문에 어린이다운 해답이 아닐수 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이 어린이다운 해답에는 “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도리가 내재되여 있다는것이다. 재미와 교육을 동시에 가져다주고있다고 해야겠다. 이처럼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단풍, 눈, 성에꽃, 태양, 가로등, 시계 등 우리의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면서도 또 무심코 지나쳐 버리던 사물들을 설교가 아닌 동심으로 다시 바라봄으로써 어린이들의 공감과 취미를 유발하며 그 과정에 일정한 교육적효과도 가져오고있다. 그 형식에 있어서도 현란한 수사적기법의 사용보다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비유, 의인 등 가장 간단한 수사적기법의 활용을 통하여 형상성을 확보한다.   동심으로 보는 어린이의 일상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동심으로 주변의 사물들을 바라봄과 동시에 또 어린이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내앞으로 달려오는 짝궁 엉뎅이차주기 계집애들 놀래우기 시간에 발언 잘하기 간식 날라오기 오늘도 나 보고 놀아달라 조른다 어느 놈을 선택할가? 나는 고민 많은 대장이다 ―“나는 대장”전문   매일 아침 오늘은 무엇을 하면서 놀것인가를 “고민”하는것이 어린이이다. “나는 대장”은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진 개구쟁이를 주인공으로 하였고 그 “고민”의 내용을 시로 다루었 다. 이처럼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의 모습, 어른이 보기에는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엄숙한 문제와 고민들을 포착하여 려과없이 보여준다. 그러기에 어린이들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있는것이다. “매롱 매로롱”, “낮잠”, “나는 부자다”와 같은 동시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최동일선생에게 있어 어린이들은 천사이다. 천사로서의 어린이는 천진란만하며 개구쟁이다. 해맑은 내면을 가졌기에 그들의 시선으로 본 세계도 밝고 명랑하다. 이는 최동일선생의 동시의 기본구조이다. 그러나 그의 동시가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이 직면한 현실적고뇌를 전부 비켜간것은 결코 아니다. 해맑은 동심을 그림과 동시에 그 동심에 비낀 어두운 그림자도 보여준다. 이는 흔히 “어머니의 부재”라는 형식을 통하여 나타난다.   엄마가 떠나가신지 5년철 그해 네살의 철부지가 인젠 아홉살의 소녀로 자랐습니다 ……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주룩주룩 엄마가 내립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면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엄마를 찾습니다 비를 맞습니다 ―“주룩주룩” 일부   동시는 9살나는 소녀가 비 내리는 날이면 한국으로 떠나간 어머니를 더욱 그리게 된다는 내용을 다루고있다. 어머니는 한국에 간지 5년이 되였지만 아직도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이제 소녀에게 남은것은 막연한 그리움뿐이다. 최동일선생의 동시중에는 이처럼 한국에 나간 어머니에 대한 소녀의 그리움을 다룬것이 적지 않다. 동시에서 어린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를 그린다는 설정은 어쩌면 이제 너무나 식상한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조선족사회와 만날 때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어린이가 동년을 량친 부모와 함께 보내는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일이 오늘날 조선족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 되고있다. 다년간 계속된 한국행의 결과인것이다. 한국행은 조선족들에게 경제적풍요와 함께 많은 사회적문제들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부작용은 어린이들에게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있다. 소설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 나타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루어온 저자는 동시에서는 “그리움”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문제의 근원이 부모님 사랑의 결여에 있다면 “그리움”은 사랑의 결여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수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어머니의 부재”와 그에 따른 “그리움”은 “빈집”, “정답”, “누구네 집일가”와 같은 동시에 와서는 “조선족사회의 해체”와 “집을 잃은 어린이의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를 통하여 최동일선생은 조선족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동심으로 본 어른의 세계   배가 아프다 빠질빠질 식은 땀이 돋도록 병원에도 가기 싫고 약 먹기도 싫고 엄마, 나 배 아프오― 한소리 지르고싶다 여섯살의 까까머리 머슴애처럼 뜨개 뜨던 엄마가 무릎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엄마손이 약손이다 노래하면서 아픈 배를 스리슬쩍 만져주면 좋겠다 나그네의 꿈도 ㅋㅋㅋ 요렇게 야무질 때가 있다 ―“나그네의 꿈” 전문   나그네는 식은 땀이 돋도록 배가 아프나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 않는다. 전날 폭음한 후유증이기에 시간이 지나야만 완치된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이다. 그러기에 약보다는 “엄마”의 관심과 리해를 더 바란다. 이 엄마는 애엄마 즉 “안해”를 가리키는것이다. “나그네의 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 보기 어렵다. 다루고있는 내용이 어린이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기때문이다. 최동일선생의 동시에는 술, 커피, 빼빼로데이 등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물을 소재로 한것이 적지 않다. 어린이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술, 커피, 빼빼로데이를 바라보는 작품도 있지만 “나그네의 꿈”처럼 직접 어른의 이야기를 다룬 어른을 독자대상으로 한 작품들도 가끔 보인다. 동시 리론서에서는 “시적화자는 어린이가 될수도 있고 어른이 될수도 있으나 그 독자는 흔히 어린이에 한정해두고있다.”고 쓰고있다. 때문에 동시는 소재나 주제도 어린이와 관련되며 나아가 어린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있는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갈수록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그림영화나 만화의 관중, 독자가 되는것처럼 어른도 동시의 독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져있는것이다. 어른들의 내면에도 동심이 살아 숨쉬기때문이다. 어른들의 삶의 이야기도 그들 내면에 숨겨진 동심을 만나면 동시가 되기때문다. 최동일선생은 동시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런 어른들의 동심에도 말을 걸고있다. 그 점에서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읊을수 있다고도 할수 있겠다.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매일 접하기에 무감각해져 무심코 지나쳐 버리던 사물, 현상들로부터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찾아내여 그것을 동시로 쓰고있는것이다. 천사와 같은 동심을 가진 개구쟁이들의 일상이 곧 최동일선생의 동시로 된다는 말이 되겠다. 최동일선생의 동시는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소박하지만 친근감이 다분하다.
343    와인잔을 들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댓글:  조회:1849  추천:0  2012-04-24
    올해 음력설련휴기간의 어느날, 외지에서 사업하는 고향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가 연변에 있을 때 우리는 가끔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때 그의 주량이 “소주 한병”이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분위기가 좋은 양고기구이집을 찾았다. “어쩌지, 나는 소주를 완전히 뗐는데.” 내가 미안해 하며 량해를 구하자 친구도 다행이라는듯 말했다. “나도 지금은 소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술을 마시고 사업에서 실수를 한후로 결심을 내리고 소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나와 친구는 맥주 두병을 시켜놓고 양고기궴을 구웠다. 전에 랭수 마시듯 술을 마시던 우리들인지라 맥주잔을 들고 홀작거리자니 정말 멋적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앉기만 하면 술술 나오던 “속심의 말”도 닫아놓은 수도꼭지처럼 도무지 흐르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맥주 두병도 채 마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지라 그저 그렇게 보낼수 없어서 나는 2차로 친구를 분위기가 괜찮은 다방에 안내했다. 그날 나는 생크림을 살짝 바른 과일에다 육포와 함께 와인 한병을 청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 그럴사한 잔에 레드와인을 부어놓고 앉으니 방금 양고기구이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였다.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래도 이런 분위기가 좋구나.” 친구가 말했다. “그래, 우리도 인젠 술문화를 바꿀 때가 됐나보다. 시골에서 나온 우리도 이런 분위기가 좋게 느껴지니…” 나도 친구의 말에 동을 달았다. 그날 나와 친구는 부담없이 나름대로 와인을 마시며 흘러간 옛일을 회억했다. 그중에는 술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전에 친구들은 나를 두고 “한근 술을 마시면 한근 힘이 솟고 두근 술을 마시면 두근 힘이 솟는다.”고 말했었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여서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술만 마시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손이 좌우로 춤을 춘다.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다가도 속에서 뭔가 올리밀기 시작하면 죽인대도 더이상 술을 넘길수 없어하지만 나의 내장은 어떻게 되여먹었는지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윽— 처리하고 나면 또 그만한 술이 배속으로 들어갈수 있었던것이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온줄을 모르는 동료들은 나의 주량이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워낙  술을 그렇게 좋아한것은 아니다. 25살에 입사를  해서 몇년간, 내가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은 “술을 마실줄 모르는 젊은이”였다. 처음 들어간 단위에서 4년쯤 일을 하다가 나는 다른 단위로 전근하게 되였다. 운수가 좋아서였던지 새 단위로 전근해 가서 2년후에 주임자리가 하나 생겨 내가 차지하게 되였다. 그해 내 나이 30살, 동료들이라고 해야 모두 나하고 비슷한 젊은이들이여서 나는 세상 무서운것 없이 일을 하고 누구 눈치를 볼것 없이 술을 마시고 즐겼다. 31살 땐가 내 인생에서 손꼽아 기념할만한 "큰 일(?)"을 끝낸것을 기념하여 나는 처음으로 소주 한병을 혼자서 굽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 없이 술을 배워서 그런지 나는 점점 술상에서 담이 커졌고 주량도 늘어갔다. 그후로 나는 자주 폭음하기 시작했고 주사도 부리는것 같았다. 형님, 누나들이 그러는 나를 두고 못내 근심을 했다.  "닮을것이 없어서 아버지의 술버릇을 닮자고 그러냐? 조심해라." 나의 머리속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주정을 부리고 어머니와 싫은 행동을 하던 기억이 깊히 박혀있다. 내가 아버지의 그런 주사를 닮아가다니,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다니… 나는 스스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술을 마시고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날 나는 괴로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꼭 술을 통제하자고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술을 통제하자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지만 내가 술상분위기를 깨는것 같아서 여간만 민망한것이 아니였다. 그것도 나에게는 작지 않은 고민이였다. 어떻게 하면 이 현실을 타개할수 있을가? 나는 짬나는대로 인터넷을 뒤지며 마땅한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눈길을 끈것이 와인이였다. 많은 사람들은 와인은 고상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 차츰 불기 시작한 와인바람은 와인인구 및 와인산업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와인은 어디에서나 흔히 접할수 있을 정도의 대중적인 술로 자리를 다져가기 시작하고있는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와인을 술이 아니라 약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기원전에는 외상치료제, 안정제, 수면제로 와인을 사용하였는데 전투에 출정하는 군인들에게 와인을 마시게 하여 장질환을 예방하였다는 설도 있다. 레드와인은 피부의 기미, 주름 그리고 피부가 처지는 현상을 막아준다. 그리고 레드와인속에 함유된 폴리페놀은 피부로화방지에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하기에 매일 레드와인 1~2잔을 마시면 피부 트러블이 없어져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유지할수 있다. 와인은 마시는 야채라고도 할수 있는데 수분 85%, 알콜 8~13% 그외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폴리페놀이 함유되여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도 불린다. 와인잔을 손에 들면 맥주잔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스스로 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내가 마련해야 할 술자리는 극력 와인을 찾아 다방이나 와인바로 간다. 그런 장소의 분위기가 좋고 너무 강렬하지 않은 와인의 유혹이 좋아서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자리를 비켜갈수 없다. 문제는 어떤 술문화를 고양해야 하는가이다. 우리의 술문화도 변화를 가져올 때가 되였다. 아직도 술자리여하를 불문하고 맥주잔을 높이들며 목에 힘을 주는이들에게 나는 한마디 귀띔하고싶다. 와인잔을 손에 들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342    단편소설*기적소리 댓글:  조회:1544  추천:0  2012-04-24
     뿡— 기적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정우는 약속이라도 한듯이 기적소리와 함께 잰걸음으로 걸상을 찾아 앉았다. 출입구가 잘 보이는 대합실마당앞에 놓인 길다란 걸상이였다. 그 걸상에 앉으면 출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혹시 오늘은 오지 않았을가? 정우는 걸상끝에 쪼크리고 앉아서 출입구를 나오는 려행용신을 빼놓지 않고 세였다. 정우의 머리속에서 빈이는 분명 하얀 려행용신을 신고있었던것이다. 어느 순간 머리속의 그 하얀 려행용신이 뚜벅뚜벅 자기앞으로 걸어와 턱 하니 멈추어 서는 환영을 정우는 늘 보고있었던것이다. 빈이, 그 놈이 온다해도 과연 나를 알아볼수 있을가? 정우는 그렇게 삼검불같이 엉켜 붙는 사색의 실날을 정리하면서 눈앞으로 지나가는 려행용신을 세고 또 세였다. 정우가 백 스무두컬레째의 려행용신을 세였을 때 “아—아악!” 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그 소리에 와뜰 놀라면서 걸상에서 벌떡 뛰여일어나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죽여라, 죽여. 이 버러지 같은 놈을!” 걸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약국앞에서 거쿨지게 생긴 웬 사나이가 한 소년을 마구 걷어차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있었다. 사나이의 발밑에서 소년은 튀겨지는 새우처럼 잔뜩 몸을 옹송그리고있었다. 구경군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소년은 소리도 지르지 않고 죽은듯이 자기의 몸을 사나이의 발길에 맡겨두고있었다. 저러다가 큰 일을 치는게 아닌가? 정우는 벌떡 뛰여일어나 쏜살같이 사람들속을 헤집고 들어가 몸으로 소년을 막았다. “웬 일이요? 왜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거요?” “좀도적이요. 버러지 같은 놈. 오늘 죽여버리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알어. 퉤!” 사나이는 연신 침을 뱉으면서 두손을 툭툭 털고는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 법이 어디 있소?” 그때 누군가 소년을 파출소에 넘기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나이가 픽 웃으며 너희들이 뭐 알기나 하느냐는듯 입을 열었다. “이까짓 좀도적을 끌고 파출소에 가라구? 흥! 파출소에 가서 자료를 작성하고 손도장을 찍고 처리결과를 기다리는게 쉬운줄 아시우? 차라리 늘씬하게 때려주는게 통쾌하지.” 사나이는 다시한번 소년에게 퉤 하고 침을 뱉고는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 약국으로 들어갔다. “쯧쯧쯧… 못 된 송아지 뿔부터 난다더니, 아직은 애숭이군만 그래.” “저런 놈들은 애초에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니까.” “어시들은 어쩌구 살길래 애들을 저렇게 마구 나돌게 하는지 원…” 구경군들이 너 한마디 나 한 마디 궁시렁거리다가 흩어져버렸다. 약국앞에는 두손을 사타구니에 찌르고 몸을 잔뜩 옹송그린채 바들바들 떠는 소년과 눈앞의 장면에 어찌할바를 몰라 서성이는 정우만 남게 되였다. “후—” 정우는 긴 한숨을 내쉬며 소년의 주위를 부산하게 돌아치다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혀 두손으로 연신 소년을 흔들었다. “얘야, 일어나, 일어나보라구.” 소년은 누운채로 살풋이 두눈을 뜨고 머리를 약간 들어 주위를 살피더니 옆에 사람들이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 불면 훌 날려버릴것 같은 강마른 몸매의 소년이였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아낼수 있을만치 와들와들 떨고있는 소년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끊임 없는 떨림과 함께 소년의 코끝으로 마알간 코물이 길게 흘러내려 한들한들 춤을 추고있었다. “몹시 다치지 않았니? 몸을 움직여봐라.” 정우의 말에 소년은 기계적으로 두팔과 다리를 움직여보였다. 아픔으로 얼굴은 잔뜩 찌프러져있었지만 그래도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는 큰 지장이 없는것 같았다. 정우는 그제야 약간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낮은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무서워 말어. 끝났다. 가자, 저기 가 앉아서 한숨 돌려라.” 소년도 그제야 자기의 팔다리가 그대로 성해 있는것에 한시름을 놓았던지 코끝에서 춤을 추는 마알간 코물을 주먹으로 쓱 훔치고는 후들후들 걸상쪽으로 걸음을 옮기는것이였다. 정우에게 팔이 이끌려 걸상머리에 도착한 소년은 감히 걸상에 안지를 못하고 흘끔흘끔 정우를 훔쳐보았다. 무시로 허공을 도는 그 눈길은 정우에게 앉아도 되느냐고 묻는것 같았다. 정우는 하얗게 질린 소년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 겁을 먹었는지 소년은 여전히 걸상머리에 붙어선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있었다. 정우가 앉으라고 말하지 않으면 소년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고만 있을것 같았다. 보이지 않던 마알간 코물이 다시 코끝에 나와 한들한들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소년의 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움푹 꺼져 들어간 눈확밑에서 무시로 슴뻑거리는 두눈동자는 종잡을수 없는 불안으로 짙게 타고있었다. “앉아.”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소년은 물 먹은 담처럼 걸상에 무너져 내렸다. “자식.” 정우는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툭 쳤다. 그바람에 소년은 용수철마냥 튕겨 일어났다. “앉으라니까.” 정우는 오른손에 약간 힘을 주면서 소년의 어깨를 내리 눌렀다. 소년은 주먹으로 코물을 쓱 문지르며 정우를 바라보다가 맥없이 걸상에 주저 앉았다. “훔쳤다구?” 정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물었다. 소년은 정우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가싶더니 드디여 낮은 목소리로 외마디 대답을 했다. “네.” “뭘 훔쳤는데.” 정우의 목소리가 높지 않았지만 소년은 와뜰 놀라면서 다시 튕겨 일어났다. 지나친 공포로부터 오는 본능적인 반사반응인것 같았다. “그저 물어보는거다. 놀랄것 없다.” “네.” 소년은 신음소리처럼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정우는 그러는 소년을 더 놀래우고싶지 않았던지 소년의 옆으로 한발 다가가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역전마당의 혼잡한 사람들의 흐름속에서도 쌔액—쌕 하는 소년의 숨소리가 정우의 고막을 간지르고있었다. 평소 같으면 신경이 쓰일것 없는 소리였지만 그 순간만은 그 소리가 예리한 칼날이 되여 정우의 가슴을 허비고있었다. 흐흑흑! 갑자기 소년이 어깨를 들먹이면서 울음을 삼켰다. 빈이야, 너도 지금 이렇게 울고있는게 아니냐? 정우는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진한 아픔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느꼈다. 울고싶었다. 코끝이 먹먹해 나고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정우는 괜히 혀끝으로 입안 곳곳을 누비며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달래려고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눈물은 두볼을 타고 뚤렁뚤렁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괜히 코방울이 벌렁벌렁 해나더니 끙— 끄끙 하고 신음소리마저 새여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소년이 정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소년의 눈동자가 크게 번져가고있었다. 소년은 떨리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오른손으로 왼쪽 손등을 몇번 뿌비다가 여전히 겁 먹은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아저씨, 우…우…울어요?” 그 바람에 정우는 와뜰 놀라면서 주먹으로 눈확을 꾹 눌렀다. 못된 짓을 하다가 어른들에게 들킨 악동처럼 당황한 기색으로 소년을 흘끔 훔쳐보던 정우는 짐짓 으흠— 하고 건가래를 떼고는 애써 목소리를 진정하면서 입을 열었다. “자식, 울기는. 너 아까 왜 맞았다고 했지?” 소년은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정우를 한번 훔쳐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방에서 야…약을 훔쳤어요.” “저런, 하필이면 왜 약이냐? 돈도 아니구.” 정우는 모르것다는듯 소년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좀도적이 돈도 아니고 약을 훔쳤다는 그 사실이 어딘가 석연치가 않게 느껴졌던것이다. 소년은 두려움이 가득 찬 눈길로 정우를 흘끔흘끔 훔쳐보더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할머니가 쓰러졌어요.” 정우는 자기가 혹시 소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가싶어 되물었다. “방금 뭐라구 했니? 할머니가…” “네. 며칠이나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요.” 소년이 정우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사실일가? 정우는 스스로가 오리무중에 빠져들어가는듯싶었다.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년은 고혈압으로 앓고있는 할머니를 위해 약을 훔쳤다는것으로 되는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정우는 마치도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그럴수야, 그럴수 없을거야. 정우가 소리쳤다. “자식, 거짓말까지. 너 선수구나.” “네? 저 아…아무 서…선수도 아닌…데요.” 소년이 얼떠름한 기색으로 더듬거렸다. 정우가 피식 웃으면서 쏘아붙였다. “자식 뻔뻔하기까지. 너 좀도적… 선수라구.” “정말이예요, 아저씨 저 처음이예요..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소년이 말끝을 맺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 “그만해라, 이 자식아.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어른들과 말해서 돈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야지.” 정우는 당연한것이 아니냐는듯 소년을 바라보면서 핀잔조로 말했다. “그러게요. 휴—” 소년이 길게 한숨을 그었다. 그 모습은 나이에 맞지 않게 곰삭아있었다. 곰삭은 그 모습만치나 정우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도 이름할수 없이 막연하게 안겨들었다. 정우는 갈피를 잡을수 없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오른주먹을 왼손바닥에 탁 치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게요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러게요. 난 그저 이래요.” “하!” “아저씨, 고맙습니다. 내가 만약 오늘 맞아죽었더라면 울 할머니를 어떻게 했을가요?” 소년이 다시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정우는 가슴속으로부터 소년에 대한 련민이 피여오르며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할가? 정우는 최소한 소년이 거짓말은 하는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소년의 모습으로부터 진정 소년의 아픔이 물씬 풍겨나오고있었던것이다. 어떻게 해야 아파하는 소년의 마음을 보듬어줄수 있을가? 정우는 오른팔을 들어 소년의 어깨를 감아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다 좋아질거다. 좋아지구 말구. 넌 이렇게 여기에 있잖니?” “꿈만 같아요. 다시 할머니를 볼수 있게 돼서요.”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니?” “아까는 그저 이대로 맞아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아저씨가 아니였으면 난…” “세상이 그렇게 험악한게 아니다. 그런데 너 집에 어른들은 없니?” “없어요.” 소년이 초점 없는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며 머리를 저었다. “아버지는? 엄마는?” 정우는 자기의 물음이 너무도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렇게 어이없는 물음을 던져버렸다. 소년은 다시한번 후—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몰라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또다시 무겁게 머리를 흔들었다. 놀랍게도 소년의 얼굴은 차츰 담담해지고있었다. 방금전에 “울 할머니를 어떻게 해요?” 하고 근심 할 때 비끼던 그 우수에 담긴 모습도 찾아볼수 없었다. 정수는 만화경 같은 소년의 얼굴을 뚫어져라 지켜보다가 끝내 묻고말았다. “부모들은 어떻게 된거냐?” “정말 몰라요. 제가 3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가짜 리혼을 하고 한국으로 먼저 갔대요. 한 1년간 전화가 오더니 그후로는 전화조차 없었대요.” “진짜 리혼이 된거로군, 그런 일이 많거든.”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돈이 없어 안깐까지 잃었다며 할머니와 주정을 부렸대요. 내가 7살쯤에 아버지는 로씨야로 간다고 떠났대요. 보름쯤 지나 로씨야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한번 오고는 소식이 끊어졌대요.” “저런, 그 후에는?”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내 기억에는 빚군들이 달려들어 우리 집 기물을 마스던 장면밖에 없어요. 할머니는 땅을 치며 울고… 나는 무서워서 웃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한번은 어떤 아저씨의 발길에 채여 쓰러졌는데 너무도 아파서 이틀이나 걷지를 못했어요.” “후에는 어떻게 살았니?” “후에는 빚군들도 우리 집에 더 이상 가져갈것도 마슬것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더는 그렇게 행패를 부리지 않았어요. 한참 있다가 한번씩 와서 ‘아들이 소식이 없슴둥?’ 하고 물을뿐이였어요. 나와 할머니는 경제래원이 끊기게 되였어요. 할머니는 시장으로 다니면서 남들이 버린 남새랑 주어다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했어요. 우리 사정이 너무 딱해서 그랬던지 가두에서 나와 할머니에게 ‘최저생활비’라는것을 신청해서 지금은 그것으로 겨우 살아가요. 학교에서도 나에게서는 일절 돈을 거두지 않아요.” 정우는 다시한번 가슴이 꺽 막히는 감을 느끼면서 심장이 터지는듯 아파났다. “혼미해서 쓰러져있는 할머니를 차마 그저 두고볼수 없었어요. 하지만 집에는 돈이 일전도 없어요. 달초에 생활비로 나온 돈으로 쌀 같은 딱 먹고 살것들을 사고나면 얼마 남지 않거든요. 이번 달 들어 할머니가 혈압이 자꾸 올라서 혈압약을 한번 사고 전기세랑 물고나니 정말 동전 한잎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약을 훔치기로 마음 먹은거에요. 전에 내가 할머니의 혈압약을 사러 다녀서 어떤 약인지 알아요. 한 병에 42원씩 하는 약이에요. 차마 동네에 있는 약국에서는 손을 쓰지 못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 역전으로 온거예요. 여기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기회를 보다가 주인이 점심을 먹는 새에 손을 썼는데 그만 재수 없게 후—” 소년은 또다시 꺽꺽 울음을 삼키더니 와— 하고 소리를 터치고말았다. 정우는 일시 소년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세상앞에 떠밀려온 소년을 마주 보면서 정우는 과연 어떻게 해야 소년에게 위로가 될지를 알수 없었다.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년을 도와줄수 있는 구세주는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구세주가 손 내밀어 구해주어야 할 미아는 과연 소년 한 사람뿐일가? “얘야, 괜찮아. 너 훔치려고 했을뿐이지 진짜 훔친것은 아니지 않니. 그 혈압약 내가 사주마. 그것을 가지고 가서 할머니에게 대접하구 이후부터는 훔칠 생각을 말고 착하게 살아라. 그러느라면 생활이 좋아질거다.” “그렇게 될수 있을가요? 아저씨.” “될수 있구 말구.” “아저씨는 참 좋은분이세요.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둔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뭐?” 정우는 소년의 말에 깜짝 놀라며 “어!” 하고 입을 떡 벌리고말았다.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둔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소년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귀가에 울리는듯싶었다. 정녕 너는 내 아들이여서 행복했었니? 빈아! 정우는 속으로 그 피 같은 이름을 애절하게 불러보았다.     그랬다. 정우도 정녕 아들 빈이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고싶었다.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어김없이 달마다 생활비를 푼푼하게 보내주었고 빈이가 요구하는것이면 무엇이나 만족을 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만치 빈이의 욕심은 굽 빠진 항아리마냥 넓어만 같고 성격 또한 뿔 난 송아지마냥 거칠어만 졌다. “안되겠네, 얘가 점점 거칠어진다니까. 이 늙은 힘으로는 아무래도 얘를 잡쥐지 못하겠으니 애비가 들어와 애를 사람으로 만드세.” 빈이가 열두살을 넘기면서부터 어머니는 전화에서 늘 그렇게 빈이를 두고 신심이 없어하셨다. 하지만 리자돈으로 7만원이라는 거액을 내고 한국에 나와 불법체류자로 숨어 사는 몸이기에 훌쩍 귀국을 하여 빈이를 “사람으로 만들수도 없는 일”이였다. 정우는 일본에 가 있는 안해에게 빈이의 사정을 말하면서 그래도 엄마가 귀국하여 애를 돌보는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러자 빈이의 엄마라는 정우의 안해라는 그 녀인은 세상에 되지도 않을 소리를 한다면서 전화 저쪽에서 펄쩍 뛰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미쳤어요?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모두들 일본에 나오지를 못해 헤매고있는데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벌써 들어가요? 십년은 벌다 들어가야 빈이를 류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집 사주고 할게 아니예요? 그래도 일본에서 버는게 훨씬 더 쉬우니까 당신이 한국인지 하내빈지 집어치우고 귀국하세요.” 정우는 련주포를 쏘는듯한 안해의 말을 들으면서 안해가 일본에서 날로 더 거칠어져간다고 생각했다. 하긴 일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럴수도 있겠지. 정우는 그렇게 안해를 리해하려고 애썼다. 하다면 빈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우가 빈이를 두고 한국에 나올 때 빈이는 아홉살, 소학교 1학년 후학기를 보내고있었다. 그 이듬해, 안해도 어떻게 일본사증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던것이다. 그새 정우는 빈이가 전화에서 돈을 달라는 말만 꺼내면 두말없이 돈을 보내주었다. 안해도 빈이에게 돈만은 그립지 않게 쓰게 하련다면서 빈이의 전화를 받기 무섭게 뛰여가 빈이의 카드로 돈을 입금해주었다고 했다. “돈 무서운줄 모른다니그랴. 주먹만한 애가 돈 100원을 들고나가 한시간이면 다 쓰고 들어온다니까. 애를 뭐로 만들려구 그라이? 세상 무서운줄 알아야제.” 어머니가 전화 저쪽에서 안타깝게 넉두리를 할 때마다 정우는 가슴 한끝이 은근히 켕겨나면서도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어머니를 위안해드렸다. “시름 놓으십소, 어머이. 지금은 옛날하구 다릅니다. 집집마다 어시들이 외국 나와 돈을 버는게 누구네 집 앤들 그렇게 돈을 쓰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흔자만자 쓰는 판에 우리 빈이만 축에 빠져보십소. 애가 얼마나 기 죽겠습니까?” “몰라이, 이 늙은이는 모른다니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죽은 늙은이가 알게 무언고. 아무튼 나를 믿지 말구 돌아와 제 새끼를 돌보라니께.” 어머니는 번마다 한참씩이나 넉두리를 하다가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머니와 그런 전화를 하고 난 후이면 정우는 장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리자돈을 내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정우의 꿈이라면 나올 때 꾼 리자돈을 다 갚고 돈을 좀더 벌어그럴듯한 아빠트나 한채 장만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게 아니였다. 이듬해에 안해가 일본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정우는 아빠트 한채가 아니라 안해의 마음을 돌려 귀국시킬수 있을 만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였던것이다. 정우가 한달에 3천원씩 보내주는 생활비에 매워 조용히 집에서 빈이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실 안해가 아니라는것을 정우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우도 차츰 한국을 알게 되였고 한국에서의 생활에 습관되였던것이다. 어머니가 계시고 아들 빈이가 있는 고향,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밤하늘에 둥실 뜬 둥근달을 보면서 저 달도 고향을 비추고있겠지 하고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생각을 하면서 눈굽을 촉촉히 적셨지만 일에 거칠어진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누르고나면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였던것이다. 하기야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지는것도 아니였다. 한국에서 그새 벌어 모은 얼마 안되는 돈을 달랑 들고 고향에 돌아간들 무슨 뽀족한 수가 있단 말인가? 안정된 직업이라도 있으면 풍족하지는 못해도 근근히 생활을 영위해가면서 직장인으로서의 긍지감이라도 느껴보겠지만 고향땅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정수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이기에 참으로 선뜻 밟을수도 없는 고향땅이였던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버는게 훨씬 능률적이지. 빈이야, 아빠를 욕해다구. 이제 너를 류학 보낼수 있고 너를 남 못지 않게 장가를 들게 할수 있고 너에게 엘레베터가 달린 아빠트를 사줄수 있을 만치 돈을 번 후에 고향 가서 그새 주지 못한 사랑까지 듬뿍 보상해줄게. 정우는 그렇게 자신을 달래면서 장장 12년을 한국에서 보냈던것이다. 떠나올 때 1학년 후학기를 다니던 아들 빈이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였다. 비록 점수가 너무 낮아서 정규적인 대학에는 입학할수 없었지만 딱히 시험점수를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러가지 명목의 민영대학들도 많은 지라 정우는 1년 학비로 2만 4천원을 내고 해변도시의 어느 대학 디자인전업에 빈이를 입학시켰던것이다. 대학에 입한한후, 빈이의 소비는 점점 더 심해갔다. 전업학습에 필요한 재료값이요. 생활비요 하는 명목으로 한달에 5, 6천원은 보통이였고 많을 때면 만원을 치달아오를 때도 있었다. 정우는 빈이의 생활소비를 두고 안해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빈이는 여러가지 명목으로 안해에게서도 그렇게 돈을 얻어쓰고있었던것이다. 더는 근심만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놈이 비정상적인 생활에 물젖어 간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던것이다. “빈이야, 소비가 너무 심한것이 아니냐? 통제 할줄 알아야지. 너희들은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이 말을 꺼내던 날 빈이는 전화 저쪽에서 억울하다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래요. 내가 소비자라는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게 누구때문인데요. 인젠 이렇게 살아 습관해놔서 돈이 없으면 저 못 살게예요.” “쓰지 말라는게 아니구, 적당히 통제를 하라는게 아니냐?” “통제를 해요? 왜 내가 쓰는게 아까우세요? 나를 위해 돈을 번다면서요? 지금 쓰나 후에 쓰나 다 내가 쓸 돈을 버는게 아니예요?” “너 한다는 소리가… 아버지가 여기서 돈 버는게 쉬운줄 아니?” 정우는 전화라는것도 잊고 격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온몸에 전률을 느끼게 하는 랭소가 들렸다. “ㅎㅎㅎ… 그래요. 알겠어요. 인젠 돈을 대주기도 아깝다 이거죠. 그런데 어쩌죠? 돈이 없으면 전 죽을거예요. 알아요? 여기서 돈을 쓰지 않으면 친구들속에 끼이지도 못해요. 아버지가 붙여주는 그 눈꼽만한 돈도 여기서 돈인줄 아세요? 50만원짜리 자가용을 굴리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애들에 비하면 나는 거지나 다름없어요.” “너…너, 점점 한다는 소리가.” 정우는 빈이의 당돌한 말에 너무도 분해 송수화기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빈이는 정우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날이선 말만 골라 뱉었다. “왜요? 내가 틀린 말을 했어요? 아버지하구 엄마하구 나하구 선택한 삶이 이런게 아니예요? 아버지, 엄마는 외국에서 자유롭게 마음대로 돈을 벌구 나는 그 돈을 펑펑 쓰면서 외롭게 크구… 그럼 됐잖아요. 비오구 번개치구 우뢰 우는 밤에 내가 침실에서 무서워 부들부들 떨 때 아버지랑 엄마랑 어디서 무슨 재미를 보았는지 알게 뭐예요. 내 울음소리가 안 들렸어요? 인젠 저 안 울어요. 그까짓걸… 난 인제 돈 밖에 몰라요. 돈 부쳐주지 않으면 저 죽어버릴게예요.” 그번 전화가 있은후 빈이는 정우에게 전화를 하는 태도마저 변해버렸었다. 전에는 그래도 돈소리 먼저 아프지는 않는가고 인사라도 한마디 했지만 후에는 정우가 전화를 받기 무섭게 “자료비 5천원, 래일까지 입금하쇼.” 하면 그만이였다. 그런 전화를 받은후에도 정우는 어김없이 은행으로 달려가 빈이의 카드로 돈을 입금시켜주었다. 하지만 한면으로는 날로 망가져가는 아들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던것이다. 이 애가 도대체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기나 하는것일가? 돈을 그렇게 쓰더라도 학교생활만은 차실없이 해주었으면 하는것이 정우의 마지막 바램이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을 졸업하기만 한다면 한국에 불러다가 마땅한 학교에 류학을 시키든지 아니면 적당한 일자리라도 마련해주든지 하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초, 어머니가 정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던것이다. “이보게 큰 사람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그랴?” 어머니는 목이 꽉 잠겨 겨우 소리를 뽑아내고있었다. 정우는 분명 가슴에서 널장 같은것이 쿵 하고 떨어져내리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끝내 올것이 왔구나. 정우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어머이,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이 사람아, 빈이가 글쎄 큰 일을 저질렀다아이가.” “큰 일이라니요?” “글쎄 이…이 애가 도…도박을 놀다가 잡히게 되자 도…도망을 치다가 경찰을 카…칼로 찍었다고 하네 그랴.” “네?” 정우는 심장이 폭발하는 진동을 느끼며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이 사람아.”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어요?” “학교에서 이 늙은이에게 전화가 왔지 그랴. 이 늙은것이 너무 오래 살았나 보이.” 어머니는 전화에서 꺼이꺼이 울고 계셨다. 정우는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전화를 끊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추스렸을 때 핸드폰은 닫기지도 않은채 그채로 발밑에 떨어져있었고 눈물은 두볼을 타고 둘둘 굴러내리고있었다. 하아얀 얼굴에 옴폭 보조개를 파면서 달게 웃음을 짓군 하던 빈이의 얼굴이 미치도록 그리워났다. 12년 동안 정우는 어느 한순간도 가슴에서 빈이를 내려 놓은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처럼 미친듯이 보고싶기는 처음이였다. 아니다. 정말 이것은 아니다. 돈이 무엇이기에 식구들이 이렇게 산지사방으로 돈을 찾아 헤매야 한단 말인가? 돈은 얼마간 벌었다지만 구경 우리 가정에 남은것이 무엇인가? 정우는 고통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핸드폰을 꺼내 일본에 있는 안해의 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떨려 몇번만에야 번호를 정확히 누룰수 있었다. 뚜— 신호가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전화 저쪽에서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날아왔다. 그럴수가 없는데… 분명히 이 번호로 안해랑 전화를 했었는데. 정우는 다시 한번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대방에서는 여전히 똑 같은 말만 반복했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사용되지 않는 번호입니다.” 정우는 다리에서 맥이 풀려 도무지 그대로 몸을 지탱할수가 없었다. 정우는 겨우 벽을 짚고 침대가로 다가가 물 먹은 솜처럼 주저 앉아버렸다. 가슴은 여전히 북치듯 쿵쿵 거렸고 심장은 또다시 쑤시는듯 아파났다. 정우는 오른손바닥을 펴서 지그시 심장을 눌렀다. 아픔은 온몸으로 퍼지고있었다. “후—” 정우는 고통스럽게 한숨을 몰아쉬였다. 기억의 저편으로 부터 안해와 마지막 통화를 하던 그 순간이 영화처럼 펼쳐지고있었다. 그것은 벌써 다섯달전이였다. 그날도 빈이는 전화에서 돈을 부치라는 통첩을 해왔던것이다. 정우는 빈이가 구경 한달에 얼마나 되는 돈을 쓰는가를 알고싶어 안해에게 전화를 했던것이다. 전화가 통해서 한참이나 지나서야 안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 일이세요?” “웬 일이라니?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는거요?” 기다림에 급했던지 정우의 목소리가 괜히 높아졌다. “아니예요. 뜻밖이라서.” “못 할 전화라도 했다는거요? 남편의 전화가 뜻밖이라니?” 그러자 안해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날아왔다. “무슨 남자가 이래요? 전화에서까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화장실에서 뒤를 보고있었어요. 그 일에 정신을 팔다보니 벨소리에 놀란거죠. 됐어요?” “하!” 정우는 안해의 신경질적인 소리에 너무도 억이 막혀 입만 쩝쩝 다셨다. 어느때부터인가 안해가 망가지고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상스럽게 막나갈줄은 생각지도 못했던것이다. 12년, 과연 12년을 보지 못하면 애까지 낳은 부부도 이렇게 낯설고 생소해질수 있는것인가? 정우는 빈이가 또 돈을 부치라고 전화가 왔더라면서 그쪽에서는 한달에 얼마씩 소비돈을 주는가고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안해는 몹시 흥분해 했다. “왜요? 내가 뭐 애 생활비를 떼먹는줄 아세요? 애비라는 사람이 그까짓 생활비를 좀 대주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생색을 내는거예요? 시끄러우니 다시는 이런 전화를 말아요. 내가 알아서 내쪽에서 그애 소비돈을 잘 보내고있으니 그쪽에서도 떼 먹지 말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줘요. 얼마나 힘들게 크는 애인데. 그깟 돈도 못 보내줘요? 이런 말을 할거면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아요.” 안해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던것이다. 그로부터 정우는 정말 안해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벌써 다섯달이 흐른것이다. 먹통이 된 안해의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정우는 자기가 끝없이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들어가는듯한 환영을 느겼다. 정우는 그로부터 사흘후 출입국사무소에 불법체류를 자진신고 하고 부랴부랴 귀국하게 되였다. 학교에서는 이미 빈이의 학적이 취소된 상태였다. 빈이가 잡혔다는 파출소를 찾아가보았지만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아서 빈이가 간수소에 송치되여있기에 면회도 할수 없다고 했다. 너무도 상심해 하는 정우를 보고 담당경찰이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시오. 판결이 나면 우리가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연길로 돌아온지도 벌써 20일이 지나고있었다. 그새 정우는 하루도 빠짐없이 역전에 나와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기적소리만 울리면 출구가 잘 보이는 대합실마당앞 걸상에 앉아서 돌아오지도 않는 빈이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둔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정우는 소년의 말을 다시한번 떠올리면서 흐흐흐 어설픈 웃음을 빼여물었다.     뿡—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으로 보아 장춘에서 들어서는 기차 같았다. 아무 곳에서 오는 기차도 정우에게는 별 다은 의미가 있을수 없는것이만 정우는 그래도 기적소리가 그렇게 가다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손님들이 출입구를 빠져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반사적으로 하얀 려행용신을 세기 시작했다.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 넷… 손님들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출구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나오고 종업원이 출입구의 철문을 닫아서야 정우는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였다. 소리없이 정우의 거동을 살펴보던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손님을 기다리는거죠?” 그 물음에 정우는 와뜰 놀라면서 “어!” 하고 외마디 대답을 했다. “기약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저 너무 잘 알아요.” “너도 누구를 애타게 기다려 봤니?” 정우가 소년을 건너다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소년이 입을 실룩거리며 대답했다. 소년은 워낙 정우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려고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 그 사나이의 발에 채여 입술이 터지는 바람에 퉁퉁 부어서 그저 실룩거리는 흉내만 내는것이였다. 정우는 안쓰럽게 소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너 누구를 그리 애타게 기다렸었니?” “몰라요, 가능하게 엄마일거예요. 아니, 아빠일수도 있어요. 그때는 이렇게 역전에 나오면 엄마나 아빠가 문뜩 그 출구에서 걸어나오며 나에게 손을 저을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랬구나.” “하지만 후에는 역전을 싫어하게 되였어요.” 말을 마친 소년이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정우는 소년의 옆으로 한뽐 다가 앉으며 다잡아 물었다. “그건 또 왜서이지?” “그날도 저는 발 가는대로 역전에 나왔댔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광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도 몰래 대합실에 발을 들여놓은거예요. 북경으로 가는 기차가 한창 검표를 하고있었어요.” “거야 날마다 있는 일이지 뭐.” “하지만 그날 나는 잊지 못하게 아픈 장면을 보게 되였어요. 다섯살쯤 되는 아니 그보다는 좀더 클거예요. 그런 녀자애가 죽기내기로 발버둥을 치는거예요. 큰 려행가방을 든 녀자가 눈물을 훔치며 검표구를 넘어서서 손을 젓는거예요.” “딸을 떼놓고 어디로 멀리 떠나는 모양이였네.” 정우는 담담한 어조로 소년의 말에 동을 달아주었다. “그런 같았어요. 녀자애가 발버둥질을 치며 소리쳤어요. ‘엄마, 가지마. 나 고운 옷도 사달란 말을 안 하구 맛있는것두 사달라고 떼질을 안 쓸게, 엄마 가지마. 엄마 한국 가면 영영 안 온댔어. 철이가 그랬어, 엄마 가지마.’ 하고말이죠. 녀자애의 그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거예요. 그때로부터 전 역전이란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곳만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지게도 하는 곳이라는것을 알게 된거지요.” 말을 마친 소년이 잠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샘물 같은 눈동자를 감싼 눈까풀이 수시로 팔딱팔딱 뛰고있었다. 정우는 힘들게 뛰고있는 소년의 심장을 보는것 같았다. 뭐라고 위로해주면 좋을가? 뭐라고 위로를 하면 소년의 마음이 잠시라도 편할수가 있을가? 정우는 다시 소년곁으로 한뽐 다가 앉아 소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너 참, 힘들었겠구나. 너 지금 무엇을 제일 하고싶니?” “할머니에게 약을 구해드리고싶어요.” 소년이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알았다. 근심하지 말어. 아저씨가 할머니의 약을 사드린다고 했잖니? 여기서 잠간만, 잠간만 앉아서 네가 마음을 진정한후 우리 약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약을 사자꾸나.” “정말 미안하지만 아저씨, 그렇게 해주실래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괜찮아, 내가 그러고싶어서 그러는거니까. 자, 그리구 또 생각해봐. 무엇을 하고싶은가고.” “정말 또 생각해도 돼요?” “자식, 속고만 살았나?” 정우가 소년을 향해 곱게 눈을 흘겼다. 퉁퉁 부은 소년의 입술이 또 벙글서 치켜졌다. “아저씨, 저 공원에 가서 놀이감비행기랑 마음껏 타보고싶어요. 어릴 때 친구들이 부모랑 공원 가서 그런것들을 타는것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전 아직 한번도 타본적이 없어요. 아저씨, 저 웃기죠? 이렇게 큰 놈이 유치하죠?” 소년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맑아있었지만 정우는 또다시 목이 꽉 메여 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소년의 어깨를 당겨다가 품에 꼭 껴안았다. 소년이 아니라 빈이를 안고있는듯한 환각이 머리속을 맴돌고있었던것이다. 빈이, 내 아들은 과연 놀이감비행기랑 타보았을가? 정우도 사실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서 그런 놀음을 놀아본 기억이 없었다. 함께 있을 때엔 호주머니 사정이 딱하다보니 문표를 사기가 버거워 감히 그런 생각을 내지 못했고 그렇게 갈라져서 어언 12년 세월이 흘러버린것이다. 물론 그 동안 빈이에게 소비돈을 달라는대로 보내주었으니 그 애가 마음만 먹었다면 타보지 못했을수 없을테지만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그런 놀음을 해보지 못했다는것을 생각하니 역시 가슴이 켕겨 들었던것이다. “우리 할머니에게 약을 사다드리고 그 길로 공원에 갈가? 가서 아저씨하구 그런 놈들을 몽땅 타볼가?” “아저씨가 저하고요?” 소년이 믿지 못하겠다는듯 정우를 빤히 건너다보며 눈동자를 키웠다. “그럼, 싫어?” “아저씨, 아들을 기다리고있죠?” 소년이 갑자기 당돌하게 물어왔다. “어!” 정우는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뭐라고 말을 이을수 없어 입을 헤 벌린채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애써 밝게 웃으려고 퉁퉁 부은 입술을 움씰거렸다. 정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소년이 벙긋 웃으며 손벽을 쳐댔다. “그렇구나, 아저씨 아들을 기다리고있구나. 내가 맞췄죠? 나 와늘 귀신이죠?” “그래, 너 와늘 귀신이다. 자식.” 정우가 소년의 어깨를 툭 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몇시 차에 온대요? 아들은 뭐 하세요?” “글쎄다.” “네?” “몇시 차에 온다는 소식이 없네. 그 자식…그…그 자식, 대학에 다닌다…” 정우의 얼굴이 붉어지고있었다. “아들은 뭐하세요?” 하고 기대에 차서 묻는 소년에게 그놈 지금 간수소에 있다고 차마 말할수 없었던것이다. 정우는 소년이 복잡한 자기의 심사를 보아낼것 같아서 인차 머리를 푹 숙였다. 소년은 과연 정우의 마음을 읽지 못한것 같았다. “야— 아저씨, 참 좋으시겠어요. 아들을 대학까지 다 보내구.”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가자. 할머니 약 사러 가자.” 정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저씨!” 소년도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울 할머니도 아저씨를 고맙게 생각하실거예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잊지 않을게요. 우리 3선을 타고 가요. 3선 종점에 우리 집이 있어요. 우리 집옆에 약방이 있어요.” 말을 마친 소년이 정우의 앞에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래, 가자.” 정우도 소년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뿡— 기적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있었다. 들어오는 차일가? 아니면 떠나가는 차일가? 정우는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찰칵찰칵… 초침은 시름없이 시간을 조여가고있었다.        
341    수필*아버지는 종이범이 아니셨다 댓글:  조회:2210  추천:0  2012-04-24
        어머니는 아버지를 “종이범”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만치 못마땅한 존재로 보이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말없이 어머니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잔일들을 찾아하시느라고 무척 애를 쓰다가도 일단 술만 몇잔 마시고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시였다. “나는 범이다.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어느땐가 나도 ‘따웅—’ 하고 소리칠 때가 있을기다. 꺾이면 꺾였지 네놈들에게 굽어들지는 않는다. 암 그래 내가 범이지, 범은 죽을 때 ‘따웅—’ 하고 소리치는기라.” 아버지께서 겨릅대같은 팔을 홰홰 내저으시며 “범타령”을 할라치면 어머니는 어이없다는듯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보시다가 한마디씩 하셨다. “얘, 아버지를 좀 봐라. 당신이 범이라신다. ‘종이범’이면 또 모를가. 한평생 ‘똥푸개’를 하시면서…” “ ‘똥푸개’면 어떤가? 누가 내만치 똥을 잘 푸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라.누가 그 일을 내처럼 잘할수 있는가? 암, 나는 범이다.” “그래, 좋겠습꾸마. 똥 잘 푸는 범이돼서…” 어머니가 곁에서 그렇게 비꼬으셔도 아버지는 혼자서 중얼중얼 “범타령”을 하시다가 지쳐야 잠에 곯아떨어지시군 하셨다,. 입을 “하—” 벌리리고 느침까지 흘리시며 단잠에 빠져버리신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때 “아버지는 진찌 ‘범’일가 아니면 ‘종이범’일가?” 하고 유치한 생각을 굴려보았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네살 때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그날도 탁아소에서 시름없이 놀고있는데 난데없는 꽹과리 소리가 들여왔다. 우리 또래들은 그 소리에 홀려 마당에 나가 바자굽에 붙어서서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상호네 집 굽인도리에서 꼬깔모자를 쓰고 목에 개패를 건 사람들이 줄을 지어오고있었는데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이 꽹과리를 두드리고있었다. 나의 머리속에서는 “나쁜 놈들을 투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 “나쁜 놈”들속에서 놀랍게도 꼬깔모자에 개패를 건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도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 나는 더럭 겁이나서 울음을 터뜨리며 “탁아소아매”한테로 달려갔다. 그날 내가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그후에도 “탁아소아매”는 나의 어머니를 보기만 하면 “어린것이 뭘 알았던지 그렇게 슬피 울더라니께. 그래서 나도 얘를 따라 울었다니께.” 하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날 밤에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셔서 여느날과 다름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곱드라니 아버지에게 머리를 들이대고있을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서웠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던것이다. 정말이지 그날의 그 느낌은 아버지의 몸에서 일년내내 풍기는 그 인분냄새보다도 더 싫고 역겨운것 같았다. 세상과 대화하면서부터 나는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인분냄새를 맡아야 했다. 딱히 어느해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자청을 해서 생산대의 변소를 치는 일을 도맡으셨다고 한다. 워낙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라 누구도 나서지 않고있던차에 아버지께서 자청을 하는지라 생산대에서는 지력이 차한 일군 한명을 아버지에게 붙여주면서 그 일을 떠맡기셨던것이다. 일년사시절 당나귀를 메운 인분수레를 몰고 집집을 찾아다니시며 변소를 쳤기에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인분냄새가 떠날줄을 몰랐다. 형님, 누나들은 성장하면서 차츰 아버지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있었다. 특히 작은 누나는 “아버지때문에 얼굴을 들고다니지 못하겠다.” 면서 다른 일을 바꾸어 달라고 생산대에 제기하라고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하셨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가타부타 아무말 없으시다가는 아침에 또 일을 나가시군 했다. 아버지는 원래 화룡현 룡수토산에서 소문난 황연기술원이셨다 한다. 아버지는 뛰여난 솜씨로 일터에서 한창 솜씨를 펴다가 갑자기 “현행반혁명”이라는 모자를 쓰게 되셨던것이다. 1961년에 아버지는 “현행반혁명분자”라는 모자를 쓴채 어머니와 나의 형님누나들 넷을 거느리고 화룡현 룡문이라는 곳으로 쫓기워오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43세에 나를 낳으셨다. 그때 식구들은 모두 아버지를 바라보고 살았다. 어머니는 병때문에 일년내내 가벼운 일밖에 못했기에 하루에 8부밖에 받지 못하셨다. 하여 가정살림은 막막하기로 이를데없었다. 해마다 보리고개를 넘기지도 못하고 쌀독이 굽이나면 어머니는 “공인집”에 가서 옥수수쌀을 꾸어다먹고 가을에 입쌀을 물어주군 했었다. 어머니는 그 사이에서 약간씩 벗겨내는 웃돈으로 우리의 학용품같은것을 사주셨다. 독한 인분냄새를 일년내내 맡으면서도 기름냄새 한번 제대로 맡아보지 못했던지라 아버지의 심신은 억수로 찌들리신것 같았다. 어느해 여름, 아버지께서는 아동저수지쪽에 있는 인분구뎅이에 인분을 싣고갔다가 부식되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돼지대가리 하나를 얻어오셨다. 아동저수지공지식당에서 버리려는것을 가져왔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도 코를 싸쥐고 당장 던져버리라고 하셨다. “왜, 푹 삶으면 아직 먹을만 하겠능게.” 어머니의 잔사설도 못들은척하고 아버지께서는 직접 소래에 돼지대가리를 담아들고 강변에 나가 검질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뒤울안에 림시 가마를 걸어놓고 깨끗하게 검질을 한 돼지대가리를 삶기 시작했다. 고기가 익어갈수록 냄새는 더 지독하게 퍼졌다. 작은 누나가 코를 싸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온 동네 개들이 다 찾아왔으꾸마.” 아니나다를가 응산이네 개며 쑈산이네 개며 동범이네 개며… 마을의 개들이 총 출동하여 돼지대가리를 끓이는 가마곁에서 어슬렁거리고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아버지께서는 돼지대가리고기를 뜯어서 자시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모두 나무라는지라 아버지께서는 집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 앉아서 고기를 간장에 뚝뚝 찍어 그렇게도 억척스럽게 잡수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 고기를 잡수시려고 태여나신분 같았다. 어머니께서도 더는 뭐라고 하시지 못하고 집안에서 멀거니 아버지를 바라보셨다. 그날 밤중에 깨여나보니 아버지께서는 또 밖에 나가 고기를 잡수셨고 어머니는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눈굽을 찍고 계셨다. 나는 그러는 어머니가 무서워 어머니의 무릎에 다가가 앉았다.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아주셨다. 아버지께서는 그 며칠 고기를 비닐주머니에 담아서 흐르는 도랑물에 잠그어두시고 가끔 그렇게 꺼내 잡수셨지만 그로 하여 몸에 별 이상이 생기지는 않으셨다. 그처럼 어려운 가정살림에도 아버지께서는 해마다 《연변일보》를 꼭 주문하셨다. 아버지는 매일 저녁을 자신후 목침을 베고 잠간 누우셨다가 일어나 그날 신문을 찾아드셨다. 아버지지께서는 신문을 눈에서 멀리쩍하게 들고는 마치도 노래를 하시듯 별나게 중얼중얼 곡을 넣어 읽으셨다. 나는 그러는 아버지가 재밌게 느껴져 곁으로 다가가 “아부지, 왜 창가처럼 신문을 봄둥?” 하고 물은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러는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글을 배워서 그렇지.” 하고 대답하시면서 나를 당겨다 무릎에 앉치고는 계속 노래처럼 신문을 읽으셨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통하여 이 세상에 “최고지시”라는것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버지는 혼자만 신문을 읽은것이 아니라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도 늘 신문을 읽으라고 요구하셨다. “배워야 큰 사람이 된다.”는게 아버지의 삶의 신조셨다. 그때 마을에는 손버릇이 나빠서 늘 남들의 입에 오르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 집의 누가 어느집 자류지에서 옥수수를 따다가 들켰소, 누구네 호박을 돼지풀속에 숨겨오다가 들켰소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늘 “사람은 손끝이 깨끗해야 쓰네라. 굶어죽어도 남의 물건에 가만히 손을 대면 사람구실을 못하네라.” 하고 한마디씩 하군 하셨다. 큰형이 장가를 들던 해 겨울이였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아버지께서는 며칠전에 돼지를 팔아 마련한 돈을 들고 함에 넣을 호랑탄자를 사러 투도로 가셨다. 그날밤, 아버지께서는 예산보다 퍽 늦게 귀가하셨는데 코등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머니께서 놀라시며 웬 일인가고 물으셨다. 아버지께서는 투도에 가서 호랑탄자를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연풍에 있는 큰누나네 집에 들려 술을 마셨다는것이였다. 그후 어둠을 헤치며 강뚝을 따라오다가 넘어졌는데 돌멩이에 코등을 쪼았던것이다. 아버지는 쓸어진채로 숱한 피를 쏟으셨다고 했다. 곁사람이 보기에도 상처가 몹시 아플것 같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런 일이 없는듯 아예 개의치 않으시고 “허허허…” 통쾌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제일 좋은 호랑탄자를 골랐다니까. 이 호랑탄자에 범같이 날 쌘 손주놈을 싸안게 됐다니까. 허허허… 내가 누구라구.”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한참이나 “범타령”을 하시다가 갑자기 꺼이꺼이 황소울음을 터치셨다. “왜 또 그럼둥, 집이 부산하게…” 어머니께서 불안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나무라셨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호랑탄자를 당겨안으시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높이높이 소리치셨다. “그래 내가 범이다. 누가 나만치 변소를 잘 치는가 나와보라구 해라. 이 놈들, 내가 누구라구. 꺾이면 껶였지 굽어들지는 않는다. 내 새끼들은 시라소니가 없다. 이제 우리 집에서 숱한 범들이 나올기다. 범은 죽을 때 ‘따웅—’ 하고 소리를 치는기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엇에 꽉 막히셨던지 부르르 떨리는것 같았다. 그러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도 머리를 외로 꼬셨다. 그 무렵, 20대중반부터 생산대 업무대장과 대대 민병련 련장으로 활약하던 큰형님이 연변대학 정치학부의 입학통지서를 기다리다가 아버지의 력사문제로 하여 정치심사에서 떨어졌고 작은형님은 어느 공군부대에 뽑혀가기로 했다가 역시 아버지의 력사문제때문에 정치심사에서 떨어져 의기소침해있었던것이다. 그 일들은 아버지의 가슴에 그대로 돌덩이가 되여 남아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평소 자식들앞에서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1982년 1월 3일, 무던히도 춥던 그날밤에 아버지께서는 59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일곱달전에 어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하루하루 병자랑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끝내 간경화복수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던것이다. 그때는 형님누나들이 다 장성하신후라 집 살림도 얼마간 펴이셔서 “최령감이 복이 터지게 될” 때였다. “아버지께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군들을 지켜보면서 뭐라고 말씀하실가?” 형님누나들은 자식들을 “범”으로 키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모두들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오셨다. 아버지께서 구천에서 지금 손군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아마 또다시 “나는 범이다. 내 새끼들은 시라소니가 없다.” 하고 목청을 돋구실것이다. 조카들속에는 지금 기자, 대학교 교수, 컴퓨터소프트웨어설계사, 호사, 외자기업부문경리가 있다. 특히 큰누나네 둘째 아들은 카나다에서 박사후를 마치고 지금 중국과학원 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사업하고있다. “물질상에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물려준것은 빚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꺾이면 껶였지 굽어들지 않는’ 값진 정신을 물려받았다.” 지금도 가족들이 모여앉으면 큰형님은 가끔 이렇게 “령도강화”를 하신다. 세상의 불의에 눌리워 살면서 아버지께서는 “꺾이면 껶였지 굽어들지 않는 그 정신”을 “범”이라는 맹수에 기탁하여 세상앞에 시위하신것은 아니셨을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는 어쩜 아버지를 잘 모르셨던것 같다. 그랬다. “꺾이면 껶였지 굽어들지 않는 정신”을 가슴깊이 숨겨두시고 십여년간 당당하게 인분차를 몰면서 떳떳하게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최기춘. 아버지는 진정 한마리의 굴강한 범으로 되여 오늘도 나의 가슴속에 살아계신다.   
340    수필*누나 댓글:  조회:3482  추천:1  2012-04-24
        카나다에서 박사후 공부중인 외조카네 부부다. 큰누님의 둘째아들인데 큰누님이 평생 농사 지으며 인생이라는 시험지에 적어오신 만점짜리 성적표일것이다.   ***************   “누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너와 미화를 제일 근심했단다. 그래도 미화는 좋은 사람을 만나 시집을 가서 시름을 놓았다고 좋아했는데… 너는 그냥 가슴에 걸려있었는지 ‘우리 막내를 어쩌면 좋소.’ 하고 늘 외웠단다.” 산전수전을 다 껶어오신 매형이여서인지 그 말을 하면서도 표정만은 그처럼 담담했다. 그것이 되려 나의 가슴을 그렇게도 아프게 긁었다. (누나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였는가? 누나는 어쩌면 떠나기전까지도 나를 가슴에서 놓지 못하셨을가?) 하는 생각에 가슴은 찢어지는듯 괴로와났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볼로 흘러내렸다. 나는 매형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아 몸을 돌려 앉았다. 창턱우에 놓인 누나의 영정사진이 눈물로 가득찬 나의 눈에 안겨들었다. 영정사진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어느 사진에서 뽑아낸듯했다. 누나는 사진을 찍던 그날에도 나를 근심했었는지 눈에는 어딘가 깊은 우수가 담겨져있었다. “후—”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누나의 사진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누나가 사진에서 나오셔서 나의 손을 잡고 “지금도 술을 마시면 그렇게 힘드니?” 하고 묻는듯싶었다. 누나의 가슴에 맺혀있는 응어리가 바로 그것이였다. “큰일을 하는 사람인데 술을 그렇게 마셔서야 쓰겠니? 너 워낙 마음이 여려서 남의 말을 거절 못하는게 흠이다. 후에는 얼굴 가려워 말고 못 마시겠으면 아예 딱 잘라버려라.” 가족모임때 간혹 만나면 늘 나의 손을 잡고 하시던 누나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맨날 술에 빠져사는 그런 고주망태인것은 아니다. 30살전까지는 흰술 두잔만 속에 들어가면 눈이 내려오고 사지가 나른해져 어디에라도 눕고싶은 그런 체질이였다. 30살나던 해 단위에서 중임을 맡으면서부터 부득불 술과 접촉하게 되였다. 혈기왕성하던 때라 일에서도 술에서도 누구에게 지고싶지 않은게 내 마음이였던지라 못하는 술에도 감히 달려들게 되였던것이다. 아마 그게 1996년 3월 7일밤이였을것이다. 내 인생에서 기념할만한 큰 일을 해제낀 나는 두명의 동료와 함께 사무청사에서 멀지 않은 한 양고기꼬치집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해는 겨울이 늦게 가서 3월인데도 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다른 동료들은 맥주를 청했지만 나는 웬지 눈오는 날 양고기구이에 맥주가 싫은것 같아서 흰술을 청했다. 서너잔쯤은 마실수 있을것 같았던것이다. 뜻깊고 기분 좋은 날 동료들의 축하까지 받았는지라 나는 기분이 둥둥 뜨는것 같아서 속에다 흰술을 야금야금 부어넣기 시작했는데 술 한병을 다마셔버리고 말았다. 마실 때는 몰랐는데 그 술이 속에 들어가서 전쟁을 벌인것이다. “술 한병 더 가져와.” 하고 소리친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 정신을 차리고보니 집에서 손등에 링겔바늘을 꽂고있었다.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지고 대단하게 느껴져 며칠후에 누나를 만났을 때 그 일을 자랑삼아 말했는데 누나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얘, 얘를 어쩌니? 큰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러면 쓰겠니?’ 누나는 언제나 나를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무슨 큰일도 아니고 그저 남들이 다니는 제대로 된 직장을 찾아 출근하는 정도였지만 누나의 눈에는 그게 그렇게 큰일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고중 2학년에서 공부를 그만두고 기어코 군대에 가겠다고 나의 주장을 세우던 그날밤 누나는 저녁을 거르시고 몸이 아프다며 일찌기 벽을 마주하고 누우셨다. 그날도 진종일 밭에 나가 힘들게 일하다가 오셨다는것을 아는지라 나는 새우처럼 꼬부리고 맨 구들에 누으신 누나곁으로 다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요도 안깔고 이렇게 누웠소? 일어나 저녁이야 자셔야지.” 누나는 미동도 없으셨다. 나는 다시한번 누나를 부르며 누나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누나는 내쪽으로 몸을 돌리셨다, 눈귀에서 고름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셨다. “너 정녕 왜 그러니? 내가 왜 널 끌어안았는데? 네가 큰일을 하는것을 보고싶었는데…” 누나는 뒤말을 잊지 못하고 흑흑 느끼셨다. “누나…” 나도 목이 꺽 막혀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누나의 큰아들은 12살로서 나보다 6살이 어렸다. 그뒤로 또 10살, 6살이 되는 애들이 달려있었는데 나까지 합치면 누나네 내외는 애들 넷을 기르는 셈이였다. 천성적으로 감성적이여서인지 나는 사춘기를 힘들게 넘겼다. 15살에 처음으로《연변일보》에 통신 한편을 발표하면서 당금 작가로 되는듯한 환상을 가진 나는 다른 공부는 뒤전으로 하고 글쓰기와 독서에 온갖 정력을 다 쏟았다. 그러다가 고리끼처럼 사회대학을 다닌다면서 초중 3학년 전학기에 사회에 나와버렸다. 그 사건은 온 가정을 휘딱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취재를 한다고 마을을 휩쓸고 다니면서 나의 유치한 세상체험에 미쳐있었다. 이듬해 봄에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실것이라고 믿어왔던 어머니의 죽음은 큰 충동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생활이 풍족하지는 못해도 항상 “우리 막내 우리 막내”하는 받들림속에서 자라던 나는 그때에야 앞으로는 아버지도 세상을 뜰수 있고 형제들과도 분가를 해야 할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자기의 미래에 망연자실하여 방황을 하고있을 때 누나가 나를 당겼다. “작가가 되든 땅을 뚜지든 그래도 공부는 할만치 해야 한다. 이대로 살다간 건달밖에 더 될게 없다. 이곳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싫으면 투도중학교에 다니거라. 우리 집이 투도하고 가까우니 우리 집에 와서 다녀라.” 형님들도 누나와 합심하여 나를 다시 학교에 밀어넣었다. “근심을 말고 학교에만 잘 다녀라. 나는 너를 아들처럼 생각할것이니 아무 근심도 말아아.” 다시 공부를 한다고 누나네 집에 첫발을 들여놓던날 누나는 그 한마디를 힘있게 하셨다. “법이 없어도 산다.”는 평판을 달고 사시는 매형도 “대학에 가게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나에게 힘을 실어주셨다. 누나가 사는 마을에서 투도까지는 10여리나 떨어져있었다. 누나는 학교가는 내 시간이 늦을세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해서 도시락을 갖춰주셨다.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길을 떠날 때면 누나는 날마다 사립문가에 나오셔서 나를 바래주었고 별을 이고 돌아올 때면 또 그 사립문가에서 나를 기다리군 하셨다. 비오나 눈이 오는 날에는 정말 학교로 가는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사립문가에 서있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억지로 등교길에 오르군했다. “절대 배를 곯지 말야 한다. 네가 지쳐서 쓸어지면 모든게 나무아미타불이 된다. ” 이것이 누나의 신조였다. 하여 누나는 언제나 나의 도시락에 대해 신경을 써주시군 했다. 그때 학교뒤에는 두부방이 하나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은 가끔 두부방에 가서 두부를 사먹을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기름간장을 맛있게 해오는 학생”으로 통했다. 누나는 늘 두부방에 가서 두부에 얹어먹으라면서 정성들여 기름을 딱다가 파를 송송 썰어넣고 고추가루까지 살짝 얹어서 먹음직스러운 기름간장을 만들어 통졸임통에 넣어주셨다. 누나는 그렇게 며칠에 한번씩 기름 간장을 만들주셨는데 두부방아주머니들도 소문을 듣고 나의 간장맛을 보았던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누나의 자식들도 커가면서 소비가 점점 많아지게 되였다. 그때는 도거리농사가 금방 시작되던때라 누나와 매형도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쳤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나의 도시락을 챙겨주느라 힘드신 누나를, 우리들이 학교에 내는 돈을 해결하느라 주일마다 거르지 않고 농산품을 이고 장마당을 다녀오시는 누나를 보기가 괴로왔다. 누나가 아무리 아들처럼 생각하는 동생이라지만 그때 여물지 못한 나의 생각으로는 “누나의 신세”를 지는것이 그렇게도 힘들수 없었다. 만 일년만 견지하면 대학시험을 칠수있다는 생각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그 일년을 그렇게 부담스럽게 보내다가는 지레 내가 병이 날것 같았다. 그렇게 선택한 홀로서기가 군대에 나가는것이였다. 18살에 누나네 집을 떠나 군대에 갔던 나는 7년후에 연길에 자리를 잡게 되였다. 군대에가 있는 7년사이 누나와 형제들이 나에게 쏟은 정성은 이루다 헤아릴수 없이 많다. 누나와 형님들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마다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학습만은 놓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그게 힘이되여 나는 군대에 가있는 7년사이 시간만나면 공부를 했다. 그 덕에 퇴대를 할 때 연변대학성인학원 조선언어문학전업졸업증을 가지고 오게 되였다. “네가 끝내 큰일을 하게 됐구나. 이게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이냐. 이제는 큰일을 하면서 잘사는 일만 남았다.” 사업에 참가한후 처음으로 누나네 집으로 갔을 때 누나는 그렇게 기뻐할수가 없었다. 겨우 제앞에 차려지는 일이나 하는 내가 누나에게는 그렇게 대견하게 보이셨는지 후에도 누나는 언제나 나의 자랑을 달고계셨다 한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누나에게 약간의 기쁨도 드렸고 근심도 만들어주었다. 내가 첫 혼인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은후 누나는 그날로 달려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살에 엄마를 잃고도 사는게 사람이다. 무슨 대단할게 있다구. 기 죽지 말구 보란듯이 큰일을 해라.” 그때 나는 “누나가 말씀하시는 큰일이란 과연 무엇일가” 하고 생각해본적이 있다. 후에 새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나눈 가끔씩 술을 과음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안해를 힘들게 했던지 어느 가족모임에서 안해가 누나에게 나의 “죄장”을 공소한 모양이였다. “누나가 어쨌는지 알아요? 당신이 다시 술에 취하면 부지갱이로 치라고 했어요.” “허허허… 연길에 부지갱이가 있던가?” 내가 넉살좋게 받아넘기자 안해가 웃음을 터뜨리며 아래말을 이었다. “당신 정말 조심 해야겠어요. 당신이 다시 술을 마시면 누나가 부지갱이를 만들어 메다 준다고 했어요.” “저런, 그 할매가 부지갱이를 지고오는 일은 없어야지.” 그후 나는 술을 마시다가도 그 말이 생가나면 속이 셈찍해서 술을 통제하느라 했다. 하지만 누나의 말처럼 내가 “마음이 여려서” 그런지 술자리에서 남들이 두번만 “마시우.” 하고 권하면 더이상 거절을 못하고 받아마셨고 그렇게 술을 시작하면 술이 술을 청해서 또 흐트러지군 했다. 그렇게 내가 술을 마시는 사이 누나는 내내 가슴을 졸이며 사신것 같다. 나와 누나는 뭔가 텔레파시라도 통하는게 있은것 같다. 언젠가 내가 술을 과음한후 손등에 링겔바늘을 꽂고 누워있는데 누나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간밤에 너네 집에 홍수가 터지는 꿈을 꾸어서 근심돼 그런다. 또 술독을 들이마시잖았니?” “시름놓소, 누나. 나 인젠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전화에서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웬지 가슴이 알알해나서 나는 핸드폰을 놓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인젠 정말 술을 적게 마시고 몸을 조심해라. 그래야 너네 누나가 저 세상에서라도 시름을 놓지.” 그 말을 하시는 매형의 목소라가 떨리는듯싶었다. 나는 입술을 옥물며 머리를 끄덕였다. 2009년 12월 3일, 누나는 피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시고 보름을 앓다가 63세를 일기로 급작스럽게 눈을 감으셨다. 모두들 나이가 아깝다고 누나를 아쉬워했다. 그처럼 힘든 세월에도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악착까지 자식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못난 동생을 위해 아글타글 살아오신 누나— 최순자! 누나의 큰아들은 어엿한 기자로 되여 신문전선에서 뛰고있고 작은 아들은 외국에서 박사후까지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중국과학원 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큰일”을 하고 있으며 항상 나와 같이 마음에 걸려하던 딸도 좋은 남편을 만나 부럼없이 생활하고있다. 누나가 떠나가신지 1년이 되여온다. 나의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누나의 존재가 약이 되였던지 나는 과연 지난 1년간 악착스럽게 술을 통제해왔다. 그때문인지 비만때문에 툭 불거져나왔던 배가 들어가면서 체중이 10키로그람이나 줄어 몸이 호리호리해졌다. 요즘 가끔 거울앞에서 보기 좋은 몸매를 스스로 바라보노라면 또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고 누나의 목소리가 귀전을 스치는것을 어쩔수 없다. “애두 이게 뭐니? 반동자처럼 곱던 얼굴이 호한삼처럼 유들유들 해진게 아니니? 너 좋은것을 너무 먹는가본데 조심해야겠다.” 어릴 때 나는 쌍까풀눈이 유달리도 까많고 살결이 포동포동하고 맑았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은 나를 영화 “반짝이는 붉은 별”에서 나오는 주인공 반동자를 닮았다고 입을 모았던것이다. 10여년간 내처 술을 과음해서였던지 그 시절 160센치메터를 웃도는 나의 키에 체중은 80키로그람을 넘어섰던것이다. 망가진 나의 몸매가 마음에 걸렸던지 누나는 가끔 역시 그 영화에 나오는 지주 호한삼을 거들어 나에게 롱담을 하셨던것이다. 누나는 그렇게 나의 모든것을 살피시면서 아껴주고 근심을 해주신것 같다. “유들유들하던 호한삼”이 중년의 반듯한 “반동자”로 다시 돌아온듯싶다. 애써 과음을 통제해서인지 요즘 나는 정신적으도 여유가 생긴것 같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늘 같이 넓은 마음으로 고생을 받아안으시고 식구들을 끌어안으시던 누나의 그 소박하고 도량 넓은 삶의 자세를 배워야 겠다. 오늘의 나의 모습을 하늘나라에 계시는 누나에게 보이고싶다.  
339    1956년의 채무 * 철응 댓글:  조회:1662  추천:0  2012-04-24
   1956년의 채무                                              철  응 작                                            최동일 역     아버지는 림종시에 만보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1956년이였네라.” 아버지는 자신있게 그 시절 그 일에 대하여 회억을 더듬었다. 만보산이 태여나던 그해, 아버지는 동사자였던 리옥택에게서 돈을 꾸었던것이다. “아마도 네 어미가 병원에 가서 너를 낳을 때였을거다. 집에 있는 돈으로는 부족했었지. 그래서 나는 그때 우리 집 맞은켠에 살았던 리옥택에게서 돈 5원을 꾸게 된거다. 후에 어떻게 됐던지… 아무튼 그 돈을 갚아주지 못했단다. 올해가 2009년이지? 어느새 53년이 지났구나. 여섯째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네가 직접 그 돈을 갚아야 한다.”   만보산은 형제자매들중에서 여섯째여서 아버지는 평소 만보산을 여섯째라고 불렀던것이다. 53살에 나는 “여섯째” 만보산은 병상머리에 서서 침대에 꼬부리고 누워 힘겹게 말끝을 이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수시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만보산이 머리를 끄덕이는것을 보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베개밑에서 볼품없이 구겨진 누런 편지봉투를 꺼내 손에 들고 말끝을 이었다. “이 봉투에 돈이 들어있단다. 그래, 물론 5원이 아니지. 5원을 53년간 정기저금을 해서 나오는 리식을 계산해넣었단다. 1956년의 정기저금리식으로 계산했거든. 기억하건대 그때 리식은 아마 백분의 5였을거다. 그러니 지금까지 계산하면 58원 가까이 되더라. 요 며칠 나는 날마다 그 5원의 리식을 반복해서 계산해보았단다. 그러니 대체로 틀림이 없을거다.” 만보산은 아버지의 손에서 편지봉투를 받아들었다. 편지봉투아래쪽에는 붉은색 명조체로 “복안시인민병원”이라고 찍혀져있었다. 그 글을 읽노라니 만보산은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말못할 감개가 괴여올랐다. (참, 못 말린다니까. 아버지는 평생을 이렇게 꼼꼼하게 살아오셨지. 병으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어느때 무슨 방법으로 이 병원의 편지봉투를 구했을가? 편지봉투 하나를 사기도 아까왔던거야!) 아버지는 웬 일인지 평소 말이 두서 없을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대체로”라는 말도 “대채로”라고 발음하거나 “침대”를 “깔대”로 표현하는것과 같은것이였다. 하기에 아버지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첫 대면에서 벌써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의식하고는 아버지에게 웬간해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성인이된후 만보산은 늘 이런 생각을 굴려보았다. (사실 아버지도 궁리에 밝으신분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생 어떻게 하면 가정살림을 잘 꾸릴것인가만 궁리해오신것 같다.) 그만치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가정의 경제권을 두손에 꽉 잡고 계셨던것이다. 만보산은 얇다란 편지봉투를 마주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사실 편지봉투안에 들어있는 본금과 리자를 합한 돈의 액수를 셈 해볼 마음이 없었다. 많으면 어떻고 적으면 어떠랴. 세월은 벌써 53년이 흘러버린것이다. 베개를 베고 누웠던 아버지는 갑자기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일으키더니 만보산을 향하여 두팔을 크게 벌리는것이였다. 그 거동은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듯해보였다. 그것은 애들이 어른을 보고 응석을 부리면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조르거나 누군가에게 중요한 일을 부탁하면서 다시한번 확인을 하려는듯한 자세였다. 그때 아버지는 분명 “우리 이렇게 서로를 안아야 네놈이 진짜 내 부탁을 들어줄것이다.”라고 말하는듯싶었다. 만보산은 그때 아버지의 그 자세를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지에 대하여 근본 심리준비가 되여있지 않았다. 만보산이 비록 형재자매들중에서 엿섯째로 막내이지만 종래로 아버지와 그렇게 친절하게 신체접촉을 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그만치 아버지도 종래로 만보산의 어리광을 친절하게 받아준적이 없었다. 만보산은 사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친구가 별반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과도한 린색함때문이라고 만보산은 나름대로 생각하군 했다. 아버지의 린색함때문에 어린 만보산은 수시로 부끄러움을 느끼군했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아버지가 림종을 앞두고 외국사람들이나 취할수 있는 방식으로 만보산을 안으려고 하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팔을 벌리고있었다. 아버지의 흰 머리는 다듬지 않아서 부수수한 그대로였고 눈동자는 흐릿해 보였으며 얼굴은 검으스레 해있었다. 그리고 팔과 다리는 몹시 수척해보였는데 마치도 소슬한 바람에 떨고있는 한마리 새를 방불케 했다. 아니, 그보다도 박제를 해 세운 큰 새라고 표현함이 나을것이라고 만보산은 생각을 굴렸다. 순간 만보산은 아버지를 큰 새의 표본에 비유한 자신이 놀랍게 느껴졌다. 아버지에 대한 방금전의 그 비틀려진 인상이 어느새 일종의 이름할수 없는 아릿한 련민으로 바뀌여졌다. 만보산은 포옹을 하려고 두팔을 벌린 아버지의 그 거동이 전에 보아오던 아버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보산은 이제 곧 마감을 고하게 될 한 생명이 또 어떤 거동을 취하게 될지 알수 없는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굴려보았다. 만보산은 약간 몸을 굽혀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안았다. 이미 간암말기에 이른 아버지는 가볍다 못해 뼈마저 없는것 같았다. 만보산은 아버지의 몸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있었다. 그 냄새는 만보산으로 하여금 주방구석에 오래동안 처박아두었던 기름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며칠후, 아버지는 끝내 눈을 감으셨다.    만보산은 꼭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드리고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아버지가 빚 졌던 돈 5원을 갚아드리기 위한것이 아니였다. 만보산은 늘 병상에서 아버지가 힘껏 벌렸던 그 팔을 보는것 같았던것이다. 병든 새를 방불케 했던 아버지의 그 자세는 수시로 만보산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것 같았다. 만보산은 림종시 보았던 아버지의 그 마지막 순간이 늘 머리속에서 배회하는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만보산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 돈을 갚아야만 아버지의 그 형상이 머리속에서 사라지게 될것이라고 느꼈다. 아버지는 림종시 만보산을 보고 그 돈을 “직접” 전하라고 특히 강조했었다. 그 뜻인즉 리옥택을 찾아가 직접 돈을 넘겨주라는 뜻이라고 만보산은 나름대로 생각하고있었다. 아버지의 그 유언을 따르려면 만보산이 직접 북경으로 가야만 했다. 만보산은 아버지가 생전에 다니던 공장의 동사자들로부터 북경에 있는 리옥택의 구체적인 주소를 수소문하였다. 공장의 많은 사람들이 리옥택의 주소를 알고있었다. 그들은 만보산에게 리옥택의 주소를 적어주었을뿐만아니라 리옥택이 지금 퇴직을 하고 아들과 함께 사는데 그 주소는 아들네 집의 주소라는것도 세세히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봄에 세상을 떴지만 만보산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가을을 맞게 되였다. 만보산은 성인이 된후 한 중등전문위생학교에서 배관공으로 일하게 되였는데 결혼을 하자마자 분가를 했었다. 만보산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편이였다. 간혹 생활비가 여유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만보산은 북경으로 가는데 들게 될 경비를 세세히 핵산하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 했다. 만보산은 절대로 경솔하게 행동할수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학교에서는 건국 60돐 경축행사로 가을에 교직원들을 조직하여 륜번으로 북경참관을 하게 되였다. 만보산은 이 참관이야말로 직접 리옥택에게 돈을 전해줄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조직하는 북경참관비용은 학교측에서 안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니 이번 참관은 사실 공비로 즐길수 있는 북경일일유람이라고 할수 있었다.   집을 떠나기전 만보산은 리옥택에 대하여 곰곰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보산의 머리에는 리옥택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옥택에 대한 인상이라면 대부분 큰형에게서 얻어들은것뿐이였다. 전에 리옥택네와 만보산네는 방직공장주택구에서 문을 마주하고 살았었다. 만보산의 아버지는 그때 공장선전과에서 공장신문편집으로 일했고 리옥택은 공장의 기술원으로 일했었다. 큰형은 그때 리옥택네는 언제나 자기네보다 더 좋은것을 먹었다고 회억했다. 리옥택의 아들 리가심과 만보산의 큰형은 소학교동창이였다. 리가심은 늘 만보산의 큰형에게 자기의 아버지는 여름만 되면 자기에게 수박을 사준다고 자랑했다는것이다. 하지만 그때 만보산의 아버지는 만보산네 형제들에게 치약껍질을 모아팔라고 요구했다. 치약껍질을 팔아 받은 돈은 물론 아버지에게 바쳐야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3전씩 용돈을 주었는데 한달에 록두로 만든 얼음과자 한대씩밖에 사먹지 못하게 했다. 후에 리옥택은 북경으로 전근되여 갔는데 그해 만보산은 아직 세살도 채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꾼 돈을 갚지 않고있다는 사실은 만보산이 어릴 때부터 알고있는 사실이였다. 소학교 일학년 때의 여름방학에 만보산과 몇몇 친구들은 늘 아빠트대문어구에서 얼음과자를 파는 할머니를 둘러서서 얼음과자를 사먹느라고 법석대군했다. 만보산과 그의 친구들은 그 할머니의 얼음과자는 외상으로 사먹을수 있다는것을 모두 알고있었던것이다. 할머니는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종업원의 가속으로서 만보산과 그의 친구들과 익숙한 사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먼저 얼음과자를 먹고 후에 집에 가서 돈을 가져다가 물어줄수 있었던것이다. 만보산도 외상으로 얼음과자를 사먹고 후에 돈을 물어주고싶었다. 만보산이 정말 외상으로 얼음과자를 사먹으려고 하자 만보산보다 좀 나이가 많은 애가 만보산을 손가락질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까밝히기라도 하겠다는듯이 소리쳤다. “저애네 집 어른들이 남의 돈을 꾸고 아직 갚아주지 않고있어요.” 만보산은 그 고함소리에 데기라도 한듯이 내밀었던 손을 훌쩍 당겨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만보산은 “창피스럽다”는 말로 자기의 심정을 표달할줄을 몰랐었다. 하지만 돈을 꾸고 갚지 않는다는것은 실로 머리를 들수 없는 일이라는것만은 명백하게 알고있었다. 나이를 몇살 더 먹은후 만보산은 1956년에 돈 5원의 가치가 어떠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따라서 꾼 돈 5원을 갚지 않았다는 문제의 엄중성을 더 한층 느끼게 되였다.    1956년, 북경과 3백키로메터나 떨어진 어느 성의 한 도시에서 아버지는 한달에 로임 36원을 받으셨는데 그 돈으로 여덟식구를 먹여살려야 했던것이다. 가정살림은 매우 군색했지만 그런대로 겨우 연명할수는 있었다. 1956년에 고급기숙제소학교 학생의 한달 화식비는 12원 5십전이였다.      1956년, 가로무늬카키천으로 만든 중산복 한벌을 사자면 6원 30전을 들여야 했다.   1956년, 어머니는 만보산을 낳은후 시골로 가서 산후조리를 하게 되였는데 장도뻐스에서 내린후 역전앞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가 10전을 주고 닭알국 한사발을 청해 잡수셨는데 큼직한 그 사발에는 닭알이 10개도 더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1전짜리 동전만한 기름방울이 두툼하게 떠서 사발을 꽉 메우고있었다는것이다. 이 이야기를 어머니는 후에 백번도 더 외우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온 가족이 모여앉아 식사할 때 하는것을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만 있으면 따로 료리를 볶지 않아도 입맛이 돈다고 했다. 식구들은 한손에 옥수수가루만두를 하나씩 들고 그것을 기름이 가득 발린 닭알로 생각하면서 맛나게 먹었다.   1956년, 돈 5원은 평범한 중국가정의 큰 재산이라고 할수 있었다. 아버지가 돈 5원을 꾼 맞은켠의 리옥택네는 말그대로 “한 울타리안에 살아서 시도 때도 없이 보게 될” 사람들이였다. 아버지는 그 시절 무슨 방법으로 2년도 넘게 그 돈을 갚아주지 않았을가? 만약 2년후에 리옥택이 북경으로 전근되여 가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날마다 리옥택과 얼굴을 마주할수 있었을가? 그래도 그냥 리옥택을 보려면 아버지는 정말 쇠같은 얼굴에 강철같은 신경이 있어야 했을것이다. 만보산은 그날 외상으로 얼음과자를 먹으려다가 친구들에게 “적발”된후 어머니에게 그 일을 물은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두손바닥을 탁탁 마주치다가 또 한손바닥으로 다른 손등을 때리면서 맞은켠 집 리씨네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기여들어가고싶다고 푸념을 했다. 하지만 그때 어머니는 일자리가 없는 가정주부로서 근본 가정의 경제권이 없었다. 어머니는 2전짜리 성냥 한갑을 사려고 해도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던것이다. 나이를 몇살 더 먹게 만보산은 어느날 용기를 내서 아버지를 찾아가 그 일에 대하여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흥분을 하지 않고 되려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 돈 5원 말이냐? 갚아야지. 나는 종래로 갚지 않겠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단다. 리옥택네는 아들 하나밖에 없어서 우리 집 보다 살림이 얼마나 더 좋은지 모른단다. 리옥택도 종래로 나를 보고 그 돈을 갚으라고 재촉한적이 없단다.” 아버지는 또 자신이 노력해서 그 돈을 갚으려고 하던 그 무렵에 리옥택이 북경으로 전근되여 갔다고 자신을 변명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어떤 리유를 가지고 자신을 변명해도 모두 억지감밖에 줄수 없다는것을 만보산은 잘 알고있었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리옥택이 아들 하나밖에 두지 않아 살림이 좋기에 응당 자식이 여섯이나 딸려있는 자신에게 구제를 해야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한번 이렇게 아버지를 나무람했다. “남들이 어떻게 당신을 두고 뒤공론을 하는지 알아요? 당신이 새끼를 낳을줄만 알았지 꾼 돈은 갚을줄을 모른다고 해요.” 그러자 아버지는 즉시 이렇게 받아쳤다. “그래, 그래서 여섯째까지 낳은후 나도 새끼를 더 낳지 않는게 아닌가?” 그 말을 들으면서 만보산은 실로 어머니의 생육도 끝이 났고 아버지가 돈을 꾸는 행실도 끝이 난거라고 생각했다. 만보산이 알건대 말도 많던 그 “5원의 채무사건”이 있은후 아버지는 정말 평생 다른이에게서 돈을 꾸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도 사실은 공장의 동사자들이 뒤에서 자신을 씹어대는것을 그렇게 달가와 하지는 않고있었다. 그리고 동사자들의 그 뒤공론이 자기 새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것도 짐작하는것 같았다. 리옥택이 비록 아버지앞에서 직접 그 돈을 갚으라고 재촉을 한적은 없지만 사실 동사자들의 뒤공론이 처음 리씨네 집으로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은 자명한 일이였던것이다.    아버지가 돈을 꾼 “유명한 전설”은 리옥택네 일가가 북경으로 이사를 간후 잠시 한단락 끝나는것 같았다. 그러자 아버지의 다른 습성—궁상맞은 “구두쇠본질”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구두쇠”, 어쩌면 그 말을 듣기 좋게 “극단적으로 절약”을 중시한다고 표현할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표현되는 “구두쇠본질”은 정상을 초월한 집착 같은것이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거리로 남새 사러 나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가지를 살 때 큰것을 하나 사나? 아니면 작은것을 두개 사나? 내 생각에는 그래도 큰것을 하나 사는게 좋을것 같아. 뭣때문인줄 알아? 작은 가지 두개라면 가지꼭지가 하나 더 있게 되니 그만큼 무게가 더 나가게 되는것이지.” 집에서 아버지는 늘 몸소 절약을 체험하고 힘써 실천했다. 먹다가 남긴 쉬쉬해진 남새국이며 기한을 넘긴 약 같은것도 아버지는 달게 잡수셨다. 그리고 15와트 이상의 전등은 켜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종래로 위생종이를 사지 않았다. 그는 직업의 편리를 리용하여 프린트를 한 공장신문을 집에 가져다가 아기들 손바닥만하게 베서는 변소에서 쓰게 했다. 자식들이 종이가 너무 작아서 뒤를 깨끗하게 처리할수 없다고 불평을 부리자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종이를 유용하게 사용할것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후에도 그 일만 생각하면 만보산은 말못할 괴로움을 느끼군 했다. 아버지는 또 연탄을 톱으로 켜서 유명해진적이 있다. 연탄 한장을 두쪽으로 갈라 두번에 나누어 화로에 넣으면 더 깨끗하게 탄다는것이 리유였다. 그러는 아버지를 보면서 만보산은 그게 과연 그럴가고 의심했다. 아버지는 연탄을 넣는 작은 움을 만들고 그 움에 자물쇠를 잠근후 열쇠를 허리에 차고다녔다. 아버지가 자물쇠를 열지 않으면 누구도 연탄 한장 다칠 생각을 말아야 했다. 식구들이 만두를 찌거나 료리를 볶다가 연탄이 다해서 한장 더 넣으려고 해도 아버지가 없은면 어쩔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쌀이나 밀가루, 기름 같은것을 넣은 통에는 더구나 명심해서 자물쇠를 잠궜다. 쌀을 떠낼 때, 아버지는 늘 특별한 용기를 사용하군 했는데 그 용기란 바로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지고 온 호두나무로 만든 사발이였다. 만보산의 인상속에서 자기의 동년과 소년 시절은 모두 배고픔의 련속이였다. 만보산과 그의 형제자매들에게는 그 시절 한번도 배부르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 시절, 식구들은 누구나 아버지가 출장을 가기를 고대했었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면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출장이라는것을 가지 않았다. 사실 방직공장에 아버지가 가야할 출장은 없었던것이다.   2009년 가을의 그 아침, 만보산은 북경으로 가는 렬차에 몸을 실었다. 호주머니에는 아버지가 손수 넘겨주신 리옥택에게 갚아야 할 돈이 들어있었다. 만보산은 렬차에 앉아가는 내내 군음식을 먹지 않았고 돈을 주고 물 한병 사 마시지 않았다. 차안에서 식품을 파는 밀차가 몇번이나 옆을 오갔다. “와하하영양음료”며 여러가지 스낵이며 빵이며 차잎에 간장 등을 넣어 삶은 달걀이며 해바라기씨며 우유락화생사탕이며… 밀차에는 실로 없는것이 없었다. 함께 차를 탄 교원들은 밀차에 가득 담겨있는 식품들을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맘에 드는것을 고르느라고 복새판을 벌렸지만 만보산은 시종 덤덤한 표정이였다. 만보산은 문뜩 자기의 그 절약정신이 어쩜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은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밀차에 담겨져있는 비닐봉지에 정교하게 포장되여 있는 노랗게 구워진 빵을 보면서 만보산은 소년시절 딱 한번 맛 보았던 그 빵을 떠올렸다. 그날 아버지는 뜻밖에도 출장을 떠났는데 기일은 10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성에서 대형종업원문예회연을 하게 되는데 방직공장에서 “태양의 빛발 금북과 같아라”라는 제목의 녀성소합창을 무대에 올리게 되였던것이다. 아버지는 그 합창의 가사창작에 참여했었다. 하기에 공연팀을 따라 성소재지로 갈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출장도 집에 남아있는 식구들을 시름 놓고 밥을 먹을수 있게는 하지 못했다. 집을 떠나기전에 아버지는 진작 만단의 준비를 해놓았던것이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10일간 먹을 쌀을 내놓았는데 자신의 몫은 빼버린것이였다. 아버지는 쌀과 밀가루가 들어있는 통에 자물쇠를 잠그는것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통에 자물쇠를 잠그기전에 밀가루 반사발을 빌었 다. 어머니는 그 밀가루로 풀을 써야할 일이 있었던것이다. 만씨네 식구들은 종래로 신을 사 신지 않았다. 식구들은 누구나 어머니가 손수 지은 헝겊신을 신었던것이다. 신바닥을 만들려면 반드시 풀이 있어야 했다. 어머니가 난로에 풀을 끓을 때 만보산은 늘 어머니곁을 맴돌기 좋아했다. 만보산은 밀가루와 물이 섞여 부글부글 끓으면서 내는 향긋한 냄새를 맛기 좋아했던것이다. 풀이 다 끓으면 만보산은 어머니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식지를 쑥 내밀어 풀을 찍어서는 게눈 감추듯 입으로 가져갔다. 손가락에 묻은 풀을 다 빨아먹고도 만보산은 아쉬워서 오래도록 식지를 빨아대군 했다. 만보산은 풀 향기가 식지에 며칠은 남아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여섯째를 달랬다. 아버지가 쌀이나 밀가루를 담은 통에 자물쇠를 잠그는것은 모두 식구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하기 위한것으로서 후날 굶지 않으려면 “정량”을 먹어야 한다는것이였다. 만보산은 “정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있었다. 그 시절에는 “정량”외에 돈이 있어도 어디 가서 쌀이나 밀가루를 살수 없었던것이다. 사실 그때 만씨네는 쌀이나 밀가루가 충족해도 살만한 돈이 없기도 했었다. 10일후에 아버지는 성소재지에서 돌아왔다. 만보산은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 익숙할대로 익숙한 흰색 비행기가 찍혀져있는 검푸른 색갈의 돛천으로 된 들가방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2009년 섣달에 아버지가 입원하실 때까지 비행기모형이 어슴프레 해지고 쟈크까지 망가진 옛 들가방은 여전히 이버지를 따라다녔다.) 만보산은 들가방이 불룩하다고 생각했다. 이 발견은 만보산을 사뭇 흥분하게 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맛나는것을 사온것이 아닐가?) 부식품이 매우 부족하던 그 년대, 대부분의 아이들은 출장을 다녀온 어른들의 손에 들려있는 들가방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것이다. 아버지의 손에 들려진 가방에는 과연 무엇인가가 들어있는듯싶었다. 아버지가 꺼낸것은 빵 여덟개였다.   아버지와 방직공장의 공연팀이 기차에 앉아 성소재지로 갈 때 어느 큰 역전을 지나게 되였는데 기차방송에서 통지하기를 그 역전에서 기차표를 보이고 빵을 구입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기차표 한장에 빵 하나를 준다고 했다. 방송에서는 또 볶은 산초와 소금을 다져 가루로 만든 조미료를 넣고 잘 발효시킨 밀가루로 정성들여 만든 빵은 량표를 받지 않는데 하나에 5전이라고 자랑하듯 말하는것이였다. 기차에 앉아 달리던 아버지는 그 방송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량표를 받지 않는다는것은 대단한 혜택이였던것이다. 무엇이나 표를 내밀어야 살수 있었던 그 년대, 량표를 내지 않고 빵을 살수 있다는것은 그야말로 빵을 거저 준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에는 기차역전의 플래트홈이 아니면 어디서도 량표를 받지 않는 부식품을 살수 없었다. 아버지는 민첩하게 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차에 있는 동사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 빵을 사겠는가고 물었다. 트럼프를 치느라고 경황이 없던 몇몇 녀자들이 사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성소재지에 도착하면 때마다 공짜로 식사를 할수 있었던것이다. 아버지는 그들의 기차표를 걷어 손에 쥐였다. 기차는 서서히 홈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나는듯이 기차에서 내려가 삽시간에 형성된 길다란 구매행렬에 끼였다. 아버지는 그 행렬의 앞으로 세번째 자리에 서게 되였다. 아버지는 손에 들려진 기차표를 세보았다. 자신의것을 빼면 기차표 7장을 얻은 셈이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빵 여덟개를 사게 되였던것이다. 아버지네 공장의 동사자들은 평소 아버지가 구두쇠임을 모두 알고있었다. 그런 구두쇠가 한번에 빵 여덟개를 사는것을 본 동사자들은 모두 이상하다는듯 아버지앞에서 의론이 분분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만쓰푸(师父)님이 오늘 뭔가 잘 못 계산한게 아닌가요? 빵을 사는데 량표를 내지 않았으니 물론 득을 본듯 하시겠지만 그렇게 많은 빵을 언제 잡수려는거죠? 아니라면 그 빵을 열흘간 먹지 않고 보관해둔단 말씀인가요? 그새 빵은 퍼렇게 곰팽이가 낄건데요.”   아버지는 남들이 자기를 구두쇠라고 해도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기를 구두쇠라고 하는것도 자신이 돈을 꾸고 갚지 않은것 하고는 본질적으로 구별이 된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아버지는 평소 자기의 어떤 우점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듯 사람들이 자기를 구두쇠라고 부르는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드렸던것이다. 아버지는 지어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의론할 때 참견까지 했다. 아버지는 여덟개의 빵을 가방에 넣으면서 이렇게 해석했다. “성소재지에 가서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통일적으로 식권을 나누어줄겁니다. 만약 그 식권을 다 쓰지 못하면 돌아올 때 남은 식권에 따라 량표와 돈을 돌려줄겁니다. 식권 한장에 적어서 량표 넉량에 돈 30전은 주겠지죠. 나는 빵 하나로 한끼를 해결할겁니다. 그렇게 남긴 식권으로 량표와 돈을 바꿔야지요. 누가 이 점을 생각이나 했습니까?” 아버지의 말은 사람들에게 큰 흡인력으로 되였다. 몇몇 동사자들이 아버지처럼 해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한발 늦었는지라 량표를 받지 않는 빵을 살수 없었다. 하지만 성소재에 도착한후 아버지의 예산도 빗나가고말았다. 그번 공연활동중의 식사는 식권을 사용하지 않았던것이다.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식권이 없이 마음대로 식사를 하게 되였던것이다.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수 있다는것은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을 사뭇 흥분하게 하는 일대 사변이였다. 그 년대에 “마음대로 먹을수 있다”는것은 날마다 그들에게 로임을 발급한다는것과 다를바없이 흥분되는 일이였던것이다. 꿈과도 같이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수 있다는 이 혜택앞에서 아버지의 들가방속에 들어있는 여덟개의 빵은 사람들의 예측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흘만에 곰팽이가 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빵을 던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초대소의 창턱을 깨끗이 닦은후 여덟개의 빵을 일자(一)로 널어 볕쪼임을 시켰다. 빵 한쪽을 다 말린후 아버지는 침대를 쓰는 작은 비자루로 겉에 돋은 곰팽이를 말끔하게 쓸어버렸다. 그후 빵을 번져서 다른 쪽을 볕쪼임 시켰다. 그 열흘간 여덟개의 빵을 번져가며 볕쪼임을 시키는 일은 아버지의 유일한 재미였다. 열흘후 아버지는 그렇게 정성들여 말린 빵을 다시 들가방에 넣어 왔던것이다. 후에 아버지의 “빵사건”은 공장에 널리 퍼지게 되였다. 선전과에서, 차간에서 그리고 여름날 그늘아래에 앉아서 땀을 들이면서 그번에 성소재지에 다녀왔던 사람들은 그 일을 이야기 삼아 흥미롭게 되네이군 했다. 이야기는 날이 갈수록 재미나는 세절들이 더해져 전설로 되여갔다. “빵사건”이 의론될 때마다 당사자인 아버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도와 세절적인 자료들을 보충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침대를 쓰는 작은 비자루로 마른 곰팽이를 쓸어냈다는 세절은 아버지 스스로 부충한것이였다.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현장에서 직접 보충까지 하는 이야기때문에 언제나 즐거워했다. 만보산은 아버지가 빵을 가져왔던 그날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있다. 만보산에게 있어서 그밤은 즐겁고 아름다운 밤이였다. 저녁을 먹을 때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옥수수죽을 끓이려는 어머니를 말리고 나섰다. “오늘 죽 한때를 절약하게 되였네. 내가 마른 음식을 좀 가져온게 있거든.”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들가방에서 여덟개의 마른 빵을 꺼내 밥상에 둘러 앉은 식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자기에게 차려질 그 빵을 만보산에게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섯째야, 네가 막내니까 두 사람 어치를 먹어라.” 형과 누나들은 부러운 눈길로 만보산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머니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여섯째는 아직 힘을 낼만한 나이가 아니여서 두 사람 어치를 먹을 필요가 없다는것이 리유였다. 어머니는 빵을 당겨다가 아버지앞에 밀어놓았다. 아버지는 그러는 어머니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새 이렇게 살이 찐게 보이지 않소? 나는 이번 걸음에 참으로 잘 먹었다우. 이번 활동기간에 우리는 때마다 마음대로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소. 누구도 수량을 제한하지 않았다니까.” 말을 마친 아버지는 빵을 들어 다시 만보산의 손에 쥐여주었다. 만보산은 한손에 빵 하나씩 들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만보산은 아버지가 정말 두볼이 퉁퉁해지고 윤기가 도는듯싶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만보산이 더욱 재미나다고 생각한것은 아버지가 걸친 가짜적삼목깃이였다. 아버지의 목에 둘러져있는 그 가짜적삼목깃은 어머니가 파랗고 하얀 네모칸이 엇갈려 있는 몇개의 손수건쪼박을 무어 만든것이였는데 어깨까지 약간 가리울수 있었다. 어깨아래는 물론 빈것이였다. 그 가짜적삼목깃은 겨드랑이 아래에 고무줄을 리용하여 몸에 고정하게 되여있었다. 그 세월에 아버지는 종래로 적삼을 사입지 않으셨다. 가짜적삼목깃은 그렇게 양복밑에 입는 목깃 대신으로 사용되였던것이다. 방금 아버지는 집에 들어선후 급히 겉옷을 벗고 애들에게 빵을 꺼내주느라고 덤벼치다보니 가짜적삼목깃을 벗는것을 잊었던것이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가짜적삼목깃을 두른채로 있었는데 가짜적삼목깃밑에는 방직공장에서 생산한 너무 오래 입어 판나서 여러 곳을 기운 회색침직가을내복이 있었다. 아버지의 그 모양은 마치도 턱밭치개를 두른 유치원 어린이 같아보였다. 만보산은 가짜적삼목깃을 두른 아버지에게 벌씬 웃어보였다. 만보산은 걸탐스럽게 빵을 뜯기 시작했다. 빵은 너무도 딴딴하게 말라서 돌멩이를 씹는듯 했다. 만보산의 이발은 빵을 떼지 못하고 연신 빵우에서 미끌어져내렸다. 하지만 만보산은 빵에서 풍기는 볶은 산초와 소금의 은은한 향을 맡을수 있었다. 그날밤, 만보산은 침대에 누워서도 이발 사이에 끼인 빵쪼각을 뚜져내서 다시다시 씹어보았다. 만보산은 그 빵조각마저 그저 삼키는것이 못내 아쉽다고 생각했다. 만보산은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빵조각을 입에 문채 달콤하게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후에 만보산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아버지가 빵을 말리던 이야기를 들었다. 만보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부터 울화가 치밀어오르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 울화는 여전히 그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빵을 먹던 그 순간의 달콤함을 없애버릴수는 없었다.   그새30여년이 흘렀다. 만씨네 자식들은 모두 성장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나 다른 도시에 가서 가정을 이루고 선후로 자식들을 낳아 길렀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지나친 린색함에 두려움을 느꼈던지 하나같이 아버지 가까이에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여섯 형제자매중에서 만보산이 그래도 아버지 가까이에서 산다고 할수 있었다. 만보산의 집과 아버지네 집은 거리 두개를 사이 두고 있었던것이다. 무엇이나 표를 받던 시대가 지나갔다. 서민들의 생활은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입쌀이나 밀가루도 마음대로 살수 있게 되였다. 사람들은 료리를 볶을 때 아쉬움이 없이 기름을 팍팍 넣을수 있게 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구두쇠정신”만은 여전히 변할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여전히 쌀이나 밀가루를 통에 넣고 자물쇠를 잠구었다. 아버지는 값이 싼 물건을 사기 위해 꼭 재래시장을 다녔다. 닭알도 병아리가 들어안기전의 곰삭은 닭알을 사군했다. 지난세기 80년대, 만보산은 부모들에게 인조가죽으로 된 쏘파 한쌍을 사드린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틀날로 쏘파를 들고 나가 팔아버렸다. 아버지는 쏘파를 판 돈마저 호주머니에 깊숙히 넣어버렸다. 아버지는 낯 익은 사람들을 만나면 “쏘파말이여, 돈이 들구 자리를 찾이하는 쓸데 없는 물건이란 말이여.” 하고 푸념을 했다. 퇴직을 한 아버지에게는 남아도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였다. 어느날 아버지는 만보산을 보고 소학교에 다니는 만보산의 딸을 자기의 곁에 두고싶다고 했다. 하지만 만보산의 안해는 견결히 반대해 나섰다. 그렇게 되여 딱히 할 일이 없게 된 아버지는 자청하여 남새를 사들이는 일을 맡았다. 아버지는 사실 남새를 산다기보다 남새를 줏는다고 하는것이 나을것이였다 날마다 장사를 마칠 무렵이면 아버지는 시장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남의 눈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남새장사군들이 팔지 못해 버리는 남새잎이나 우거지 같은것들을 주어모았다. 운수가 좋은 날에는 꽤 먹을만한 남새를 얻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금방 싹이 트려고 하는 감자나 방금 쇄기 시작한 미나리 같은것들이였다. 아빠트에 사는 이웃들은 늘 아버지를 보고 “고기라도 한근 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돼지고기를 볶아서 원이 없이 먹을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것이였다. 아버지는 그 말에 몹시 기분이 상해하면서 “생활개선을 하자고 고기를 줏겠느냐? 마음만 먹으면 나는 오늘이라도 생활개선을 할수 있다.”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자 이웃들은 시물시물 웃으면서 어떻게 생활개선을 하려는가고 바투 들이댔다. 아버지는 그러는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미나리볶음”을 해먹으련다고 시뚝해서 대답했다. 그바람에 이웃들은 배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어투에는 조금도 롱담기가 섞여있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린색함은 더 이상 생활의 핍박이 아니였다. 린색함은 바로 아버지 인생의 일종 “신앙”이나 생명의 동력이였다. 아버지의 린색함은 실로 아버지의 인생과 잠시라도 떨어질수 없는것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린색함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영광을 가져다주는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돈을 절약하는것이야 말로 영광”이라고 믿고있었다. 이것은 돈을 꾸고 갚지 않은것과 별개의 개념으로서 확실히 자신을 위한 즐거움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 즐거움은 누구의 생활을 방해하는것도 아니여서 누구도 왈가왈부할수 없는것이였다.  기차는 서서히 북경역에 들어섰다. 만보산은 동사자들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려 플래트홈을 벗어났다. 그들은 학교의 통일적인 배치에 따라 천안문광장을 참관했고 “새둥지”와 “수립방”도 돌아보았다. 만보산과 동사자들은 도시의 웅장함에 감탄을 련발하면서 그야말로 수도가 다르기는 다르다고 혀를 찼다. 2009년의 북경은 바로 1년전에 올림픽을 주최했던 도시였고 공화국 창건 60돐을 맞은 수도였다. 하기에 만보산은 북경이 자기가 살고있는 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수도의 하늘은 푸르디 푸르렀고 곳곳에 화초가 만발해있었다. 새로운 고층건물들이 얼기설기 어울려 우후죽순마냥 솟아오르고있었다. 거리를 거니는 행인들은 저마다 활력에 차넘쳤다… 동사자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만보산에게는 사진기가 없었다. 만보산은 한 교원에게 청을 들어 “새둥지”앞에서 기념사진 한장을 남기고는 인솔자인 부교장에게 청가를 맡았다. 자기의 핸드폰으로 북경에서 통화를 하면 로밍서비스를 받아야 하기에 통화비가 많이 나온다는것을 알고있는 만보산은 자기의 핸드폰에 전지가 나갔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부교장의 핸드폰을 빌어 아버지가 다니던 공장종업원들이 알려준 번호대로 리옥택에게 전화를 했다.   리옥택이 인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통해 만보산은 리옥택이 가는 귀가 먹은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로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만보산은 로인에게 높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명함을 들먹이면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로인님께 문안을 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만보산은 전화에서 리옥택에게 아버지가 꾼 돈을 갚아주려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은 마주 앉아서 차근차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리옥택은 여전히 아버지를 똑똑하게 기억하게 있었다. 50여년전에 외성의 어느 방직공장주택구에서 문을 마주하고 살던 이웃이라는것까지도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던것이다. 리옥택은 매우 기뻐하면서 만보산과 자기의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리옥택은 만보산에게 자기네 집으로 오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아들이 오늘 집에서 큰 파티를 열게 되여 집이 좀 복잡할것이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만나기에는 별 지장이 없을것이라고 하면서 아예 만보산도 함께 파티에 참가하여 술을 마시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이라고 했다. 만보산은 일시 “파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필경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술을 마시는 일과 관련이 있을것이라고 추측했다. 통화를 마친 만보산은 “새둥지”역에서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순리롭게 리옥택이 사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록수장원”이라고 이름한 별장구역이였다. 만보산은 황금으로 된 기린이 조각되여 있는 두개의 큰 검은색 철대문을 마주하고서야 공장종업원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종업원들의 소개에 의하면 리옥택의 아들 리가신은 부동산경영을 하고있다는것이였다. 리옥택은 아들과 함께 편안한 만년을 보내고있는데 그 생활은 그야말로 행복의 극치라는것이였다. 만보산은 어떻게 그 장원으로 들어설가를 두고 근심에 쌓였다. 그때 감색제복을 입고 어깨에 누런 견장을 단 보안원이 경비실에서 뛰여나오는것이였다. 보안원이 만보산에게 성씨를 묻자 만보산은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보안원은 인차 만보산을 깎듯이 대하면서 방금 A8좌의 업주가 자기들에게 통지를 하여 손님을 들여보내라고 했다는것이였다. 보안원은 만보산을 안내하여 대문안으로 들어선후 열정적으로A8좌로 가는 길을 가리켜주었다. 앞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선후 아치형다리를 지나 다시 앞으로 200메터쯤 가면 도착할수 있다는것이였다.  만보산은 보안원이 가리켜준대로 걸어서 아치형다리에 이른후 기계적으로 다리우에 올라섰다. 아치형다리는 경사도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경간은 매우 넓었다. 만보산은 머리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물속의 수련, 못을 둘러싼 대면적의 잔디, 분수, 나무의자 그리고 매우 진귀해 보이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만보산은 조심스럽게 다리를 내려와 앞으로 200메터쯤 걸었다. 그는 도중에 몇 채의 흰 별장과 누른 별장을 지났다. 만보산은 어두운 회색으로 된 거부기등모양의 유점토로 된 기와를 얹은 붉은 색 별장을 보게 되였다. 만보산도 자기가 왜 그 붉은색 별장지붕우의 유점토로 된 거부기등모양 기와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는지를 몰랐다. 어쩌면 전에 외국영화에서 그런 형태의 지붕을 보았던것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쯘하게 수선을 한 잔디밭이 별장을 감싸고 넓게 펼쳐져있었다. 잔디밭은 얼핏 보기에도 천여평방메터는 됨직했다. 정원대문의 베이지색 모석(毛石)문기둥에는 “A8”이라는 글자를 새긴 적동문패가 박혀있었다. 만보산은 문어구에 멈춰섰다. 담장안에는 성인 키의 절반쯤 되는 흰 나무란간이 세워져있었다. 그리고 마루바닥에 닿는 큼직한 창문과 그 창문에 달린 흰색의 큰 베란다가 눈에 안겨들었다. 몇몇 로인들이 그 베란다에 앉아 가을날의 쾌적한 해볕을 즐기고있었다. 만보산은 그 로인들속에 리옥택이 있을것이라고 짐작했다. 장원의 잔디밭에는 백설같이 흰 보를 친 장방형 음식상이 놓여져있었다. 번쩍이는 은쟁반에는 여러가지 과일과 과자 그리고 고기가 담겨져있었다. 만보산은 그 고기가 꼭 불고기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기를 구을 때 쓰는 화로가 세워져있었다. 그곳에서는 흰색의 높은 모자를 쓴 두명의 료리사가 분주하게 돌아치고있었다. 고기를 굽는 냄새는 기름냄새와 함께 날아와 만보산의 코를 간지럽혔다. 일부 남자들과 녀자들 그리고 좋아라 뛰여다니는 어린이들, 그들은 앉거나 서서 아니면 잔디밭을 거닐면서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고 한담을 하고있었다. 다섯살쯤 되여보이는 가리마를 낸 머리를 한 남자애가 어머니인듯 보이는 녀인을 향해 소리쳤다. “난 프랑스의 ‘에비앙’을 안 마실거야, ‘에비앙’을 안 마신다구. 난 방금 마셨던 한 병에 26원씩 하는 ‘무량장천(无量藏泉)을 마실거야. 한병에 26원 하는 그 샘물을 달란 말이야.”   장원안으로 들어가려고 마음 먹었던 만보산은 A8좌의 나무란간밖에서 저도몰래 몸을 돌리고말았다. 순간 뭐라 할수 없는 처량함과 함께 온몸이 후둘후둘 떨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만보산은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볼가봐 두려웠다. 만보산은 잔디밭에서 바로 리옥택이 말하던 “파티”가 벌어지고있는것이라고 단정했다. 만보산은 공장종업원들의 말을 통해서 리옥택네 부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했던것이다. 방금 그 애가 달라고 하던 한병에 26원씩 하는 샘물은 만보산으로 하여금 자기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아버지가 림종시까지 들먹이던 그 58원의 돈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장원에서 58원은 겨우 샘물 두병을 살수있는 돈밖에 안되였다. 리옥택과 그의 아들은 과연 옛 이웃이 돌려주는 돈 58원을 어떻게 생각할가? 잔디밭에서 이 정도의 파티를 열고있는 그들이 정녕 53년전에 다른 사람에게 꾸어주었던 돈 5원을 기억하고있을가? 만보산은 자신에 대하여 일종의 원망과 분노를 느끼고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곳에 왔는가? 53살이나 되는 나그네가 몇백키로메터를 달려와서 별장에 사는이들에게 주제 넘게, 당당한듯 주름이 가득한 보잘것 없는 봉투를 건네줘야 한단 말인가?) 만보산은 자신의 행실이 너무도 해학적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막연함마저 갈마들었다. 자기의 행동이 꼭 “해학적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만보산은 A8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만보산은 자기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멀리에 보이는 아치형다리를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만보산의 걸음은 생각외로 매우 가벼웠다. 만보산은 어느새 다리아래에 도착했다. 만보산은 다리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지나자 장원대문과 가까와 졌다. 그때 만보산은 별안간 다리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감을 느꼈다. 만보산은 더는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다. 만보산은 도무지 다리우에 올라설수 없었다. 만보산은 잠간 숨을 고르고는 다른 다리를 먼저 내디뎌보려고 악을 썼다. 하지만 그 다리도 도무지 만보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만보산은 자신이 귀신에게라도 홀린듯싶었다. 하지만 만보산은 절대 귀신의 조화일수 없다고 단정했다. 잠간후 만보산은 애써 정신을 진정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A8좌를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하던 다리가 차츰 만보산의 뜻을 따라주었다. 만보산은 그 힘을 빌어 다시 돌아서서 다리우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두다리는 또다시 마법에라도 걸린듯이 만보산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만보산은 뻣뻣한 다리로 힘겹게 땅을 딛고 서서 아치형다리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은 마치도 무엇인가를 깊이 사색하는 연박한 철학자를 방불케 했다. 석양이 불타고있었다. 널다란 잔디밭에서 연을 날리고있는 몇몇 아이들이 만보산의 눈길을 끌었다. 만보산은 애들처럼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만보산은 하늘 높이 날아예는 새들을 보았다. 제비, 지네, 수리개… 붉은 부리의 검은 수리개가 날개를 쫙 펴고 제일 높이 날고있었다. 수리개는 위풍당당하게 대지를 굽어보고있었다. 그 시각, 만보산은 하나의 형상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병상에서 두팔을 쫙 펴들고 무엇인가를 갈구하던 소슬한 바람속의 큰 새와도 같던 아버지의 형상이였다. 만보산은 하늘을 나는 검은 수리개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혹시 아버지의 령혼이 하늘에 떠서 자기를 굽어보는것이 아닐가 하는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만보산은 종래로 미신을 믿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만보산은 속으로부터 일종의 두려움이 스물스물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만보산은 그런 느낌속에서 몸을 돌려 다시 A8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만보산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만보산의 다리는 워낙 병이 없었던것이다. 만보산은 자기의 다리가 아주 건강한 다리라고 확신했다. 만보산은 고르로운 발걸음으로A8좌를 향해 걸었다.  검은 수리개는 여전히 만보산의 머리우에서 유유히 날아예고있었다. 그 모양은 어쩌면 만보산을 감독하는듯 했고 또 어쩌면 만보산을 호송하는듯싶었다. 만보산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고 또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한결 시원했다. 주위에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인가가 드믄 곳에는 언제나 사람그림자가 없을것이라고 만보산은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 낯선 장원에서 만보산은 놀랍게도 하늘을 향해 두팔을 젖고싶어졌다. 마치도 하늘의 큰 새가 자기에게 손이라도 저어 화답하는듯한 환영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던것이다. 만보산은 자기가 용감하게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렸을 때 오래동안 가슴속에 숨어있던 그 무언가가 소리를 치며 몸밖으로 솟아오르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따라서 오래동안 움츠려있던 가슴이 펴지면서 얼마간 편안함을 되찾은듯한 기분이였다.     철응: 녀, 1957년 북경에서 출생. 장편소설 《장미문》, 《분화(笨花)》등이 있음. 그의 중단편소설은 여러차례 “전국중단편소설상”을 받음. 중편소설 “영원은 얼마나 멀가?”가 제2회 “로신문학상”을 받음. 현임 중국작가협회 주석.  
338    손가락을 꼽는 습관 댓글:  조회:1653  추천:2  2012-04-20
  손가락을 꼽는 습관     무슨 일에 부딪치면 손가락을 꼽는 습관이  생겨났다. 딱히 그러자고 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일단 무슨 일에 부딪치면 손꼬락부터 꼽게 된다. 5월호 원고를 주필님께 넘기고 6월호 원고들을 한줄로 쭉 세워 놓은후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원고들을 두고 손가락을 꼽아보니 이게 얼만가, 7월호까지는 원고때문에 속을 썩이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순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머리속을 스쳤다. 언젠가 나는 그 속담이 어찌되여 만들어졌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본적이 있었다. 그만치 나는 나의  하늘은 무너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나는  열심히  내 하늘을 받치고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3년전의 그날,  내 딴에는 있는 노력을 다해 떠받들고있다고 생각하던  하늘이 하루밤새에 무너져버린것이다. 단위의 최고상사가 나를 불러 이리저리해서 내가 맡고있던 주임직을 내놓고 편집부에 내려가 단련하라고 했을 때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그런 느낌이였다. 25살에 사업에 참가하여 20년간 3번 단위를  옮겼지만 어디에 가서도 모든것을 사업에 올인해온 나였다. 30살부터 15년이나 주임이라는 일을 해왔으니 그까짓 주임이라는 허울을 벗어놓는것은 하나도 아쉬울것이 없었지만  사회에서  떠도는 황당한 소문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태연할수 없게 만들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망스러웠다. 말단편집으로 생소한 사무실에 출근하여 멍하니 컴퓨터앞에 앉아 있노라면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퇴직까지 얼마나 되는 시간이 남았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손을 꼽아 해수를 세고 날자를 셌다. 그때  나는 퇴직까지 15년이 남아 있었고 날자로는   5400일 푼하게 남아 있었다. 5400일이라는 나날을 넋을 놓고 앉아 손가락을 꼽으며 퇴직을 기다릴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래도 내가 새로 내려간 부서의 주임이 진정으로 내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전에도 은근히 나에게 힘이 되여주던 단위의  몇몇 누님들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히우는대로  글과 씨름했다.여기저기에 블로그며 카페도 개설했다.  그새 번역을 할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전에는 단 1000자짜리 짧은 문장도 번역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것도 부딪쳐 보고싶었다. 일에  정력을 쏟으니 밤잠을 설치게 하던 잡생각도 사라져버렸다. 처음으로 20만자를 웃도는 책을 번역하여 내 이름 석자를 박아 출판했을 때의 그 기분은 이루 말할수 없이 흥분되였다. 그렇게 2년철,  나는 “주임”이라는 허울을 벗은 진정한 편집으로서의 자신을 찾게 되였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있을 때 나는 또 다른 부서에 자리를 옮기게 된것이다. 당금 50살을 바라보는 나이, 모두들 힘들거라라고 하는 자리였지만 공직자의 신분으로 “싫소.” 하고 말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이튿날로 무작정 컴퓨터 하나를 달랑 들고 새로운 부서에 왔다.  근심스럽긴 했지만 지난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새로운 부서에 온지도 100날이 지났다. 그새 밤잠을 설쳐가며 발등에 떨어진 불들을 껐다.   “일이란 사람하기 나름”이라더니 차츰 일에 줄이 잡혀갔고  경험도 쌓여갔다. 그새 발등을 달구던 불을 꺼버리고 드디여 한쉼을 쉴수 있게 된것이다.   또 손가락을 꼽게 된다. 퇴직까지 12년이 남았다. 그새 새로운 탈피를 꿈꾸며 1100일이나 살아온것이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공직생활은 4300일 푼하다. 그새 내가 영위해가고있는 이 하늘에 또 어떤 변고가 생길지 알수 없지만 나는  내 공직생활에 남은 4300일을 위해 열심히 손가락을 꼽아갈것이다.         
337    나란 나그네의 수다 댓글:  조회:2086  추천:0  2012-03-23
또 한 고개를 넘은듯한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16일에 내 생활에 지각변동이 생겨 또 다른 동네로 떠 밀리워 온것이다. 그날부터 정신없이 채바퀴돌듯 팽팽 돌아치며 달려온 하루 하루들, 손꼽아보니 100날이 며칠 안 남았다. 아우~ 매일 같이 다니던 요기 블로그에도 그새 몇번 못 와보구 일에만 몰두... 드디여 한쉼을 쉬여두 괜찮을듯하다. 내가 맡은 일을 5월분까지 다 마치고 6월분을 준비하고있으니  최저로 두달은 앞에 두고 사는 팔자가 된것이다. 고맙다. 그새 지켜봐주고 밀어주고 당겨준 모든이들이. 가끔은 블로그에 들어와 세상 사는 이야기랑  수다랑도 떨어 봐야겠다. 허허허~ 나그네가 주책이다.
336    미소가 없는 내 마음을 울고싶다 댓글:  조회:2565  추천:0  2011-12-27
미소가 없는 내 마음밭에 과연 꽃이 필수 있을가? 서럽다. 미소를 미소처럼 지을수 없는 내가 서럽다. 미소가 고운  내 볼우물이 얼마나 깊은가며 손가락을 찔러보던이들에게 내가 미소를 잃어버렸다고 울고싶다. 과연 그게 언제부터였을가?  잘 나가는 친구가  괜히 시샘이 나던 그날부터? 아니면  옆집의 인테리어가 우리 집보다 낫다는 생각에  이웃집 벽에다가 애꿎은 신바닥을 찍어대던 그 순간부터? 미소가 없는 내 마음을 울고싶다
335    미소란 없었다 댓글:  조회:2153  추천:0  2011-12-27
그날  복도에서  네가  나에게 미소를 보낼 때 내  가슴의 높은 담장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시는 너를 나라는 우주에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그렇게도 열심히 쌓아올린 마음의 담장이 너의 그 미약한 미소에 무너져 내릴 때 나는 그 미소보다도 작은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날 나는 거울을 마주보며 너의 그 미소보다도 더 크게 더 환하게 미소를 짓느라고 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 미소는 되려 우박이  되여 무너진 내 가슴을 때리고있었다. 그랬다. 부서진 담장을 안고 사는 내 가슴에 미소란 없었다.
334    제6회 “윤정석아동문학상”공모시작 댓글:  조회:1921  추천:0  2011-12-15
  고 윤정석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새 세기 조선족아동문학을 더 높은 차원에로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제6회 “윤정석아동문학상”공모를 펼치게 된다.   1. 공모기간: 2012년1월부터2012년12월15일까지   2. 공모범위: 장편소설, 장편동화, 아동소설집, 동화집, 동시집, 아동수필집, 이야기집   3. 공모요구: 산문: 10만자~15만자 운문: 80수~100수   4. 시상 2013년8월5일   5. 기타: 응모된 작품중에서 우수작1부를 뽑아 “윤정석아동문학상”수상작품집이라는 타이틀로600부를 출판하여 수상자에게200부를 증정하며 나머지는 국내 부분 조선족학교들에 무상으로 증정한다 금후 “윤정석아동문학상”은 매2년에 한차례씩 공모하게 된다. 응모작품은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로 보내면 된다.   련계전화: 13904485767(한석윤), 13844378196(최동일) 이메일:hanxirun@hanmail.net 
333    산은 산이여야 한다 댓글:  조회:3202  추천:1  2011-12-13
산이 내물처럼 촐랑거린다면 산이라고 할수 없다. 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한자리에 듬직하니 앉아있어야만 산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산이 산처럼 한곳에 자리를 든든히 잡고있을 때라야만 나무도 뿌리를 내릴것이고 산새들도 나무숲을 찾아 날아들것이다.  나무가  있고 산새의 노래소리가 들려야만 산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내물은 산의 입내를 낼수 없다.    
332    너는 그대로가 동시란다 댓글:  조회:4834  추천:0  2011-11-30
      엄마 나  동시  200수를  읊었어!   자랑차게  말하는 너의  눈동자에 동시가  가득  피여있구나   파아란  동시를  똑  따서 이파리를  만들고 빠알간  동시를  똑  따서 꽃송이를  만들가?   엄마 내  몸에서  동시가  숨셔!   자랑차게  말하는 너는  그대로가 향기진한  동시란다 
331    친구 댓글:  조회:4960  추천:0  2011-11-29
"친구" 하고 발음해봐 입술이 "구- " 하며 둥글어 지잖니?   몸도 마음도   입술마저 둥글어 질수 있는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하는거야    
330    그 느낌 댓글:  조회:4774  추천:0  2011-11-29
동학들이 모여서   그 애 칭찬 하던 날 제일처럼 느껴지며 행복했었니?   못된 애들 모여서 그 애 험담 하던 날 제일처럼 생각되여 격분했었니?   친구란 그런거야 몸밖의 나처럼 소중한 존재거든    
329    친구도 그런거야 댓글:  조회:4755  추천:0  2011-11-29
  비 한번 맞았다고 하늘과 척질수 있니? 돌부리 한번 찾다고 땅과 등질수 있니?   하늘과 땅을 떠날수 없듯이 친구도 그런거야   말다툼 한번 했다고 친구와 등 돌릴수는 없는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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